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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세검색독서의 습관은 아이들의 성장과정과 어른이 되었을 때의 가치관 형성에 많은 영향을 미친다. 그래서 어렸을 때부터 계획적이고 체계적인 독서지도는 아주 중요하다. 우리학교는 아침 독서시간을 두어 사제동행 독서시간을 실시하고 있다. 아침부터 책을 읽으며 차분히 시작되는 하루는 아이들을 안정시키고 저절로 학습 분위기가 잡혀 하루가 부드럽게 진행된다. 그런데 우리학교는 학급도서보다 도서관을 활성화 시켜 아이들이 쉬는 시간이나 점심시간 혹은 방과 후에 도서관에서 책을 보거나 빌릴 수 있게 하고 있으며 학급문고는 따로 비치하지 않고 있다. 그리고 도서관은 어머니 독서 도우미 선생님들이 도서대출과 도서관리를 도와주고 계셔서 학생들은 물론 선생님들에게도 많은 도움이 되고 있다. 그리고 학급에서는 필독도서나 좋은 책 목록을 선정해서 읽도록 권장하고 있다. 그런데 우리반 아이들이 빌려오거나 가져와 읽는 도서를 보니 찬찬히 살펴보니 교사가 권장하고 있는 도서보다 만화책을 더 많이 읽고 있었다. 선생님이 권하는 책을 읽도록 권유하면 “선생님 이 책은 그냥 만화가 아니라 학습만화예요”라면서 학습만화이기 때문에 괜잖다고 우긴다. 그래서 과연 아이들의 독서지도에서 만화책 읽기에 대한 지도를 어찌해야 할지 생각해 봤다. 우선 만화를 무조건 거부하기보다 만화의 내용을 따져서 좋은 만화를 읽도록 해야 하고 폭력적이거나 비도덕적인 내용을 다룬 것은 비판하면서 읽도록 지도해야겠다. 한편 좋은 만화를 따로 선정해 주어도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나 오랫동안 만화책 읽는 것을 그대로 방치하면 자칫 만화독서에서 벗어나지 못하게 된다. 또, 오랫동안 만화만 읽은 아이는 같은 시간 같은 양의 독서를 한 다른 아이보다 독서를 통해 얻을 수 있는 글쓰기 능력면에서 줄 글의 구성 능력을 갖추지 못할 뿐만 아니라 독해능력과 어휘능력이 현저히 떨어진다. 그리고 독서 수준이 항상 그 자리에 머물 수도 있다. 물론 만화책이라도 안 읽은 아이보다 읽은 아이가 나을 것이다. 학부모님들은 독서 학습향상의 역학관계에 관심이 많다. 과연 책을 많이 읽으면 공부를 잘할 수 있는가? 그렇다 독서를 많이 한 아이는 상급학교로 진학 할수록 교과 성적이 점점 높아진다는 것은 사실이다. 책을 많이 읽으면 독해력과 어휘능력이 높아져 문제이해와 해결 능력이 향상되고 많은 지식을 갖게 되며 글쓰기 능력과 논리적 사고력이 높아지고 상상력과 창의력도 향상된다. 그러므로 당연히 학습 향상도 가져 올 수 있다. 독서량이 많은 아이는 사물에 대한 이해력과 사고력이 깊어지고 독서를 통한 간접 경험으로 삶을 좀더 폭 넓게 이해하게 되는 것이다. 책을 읽으며 자란 어린이는 늘 삶을 풍요롭게 가꾸며 마음의 여유를 갖고 삶을 즐길 줄 아는 성숙한 어른으로 자라게 될 것이다. 그런데 여기서 중요한 것은 아이들이아무렇게나 책만 읽도록강요할게 아니라 계획적이고 체계적인 독서지도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새 학기가 시작되자마자 전국의 여러 학교에서 학부모에 의한 교사 폭행사건이 발생해 파문이 일고 있다. 이번에도 경기도의 모 중학교와 강원도 모 초등학교에서 교사가 폭행당했다는 기사를 보고 교육계에 종사하는 한 사람으로 착잡한 마음을 금할 길이 없다. 동방예의지국이니 군사부일체, 스승존경 운운 하는 것은 아주 먼 나라의 호랑이 담배 태우던 시절의 이야기로만 들리게 되었으니, 말을 하면 오히려 구시대의 골통이 나왔다고 손가락질 받기 십상이다. 경기도 모 중학교에서 발생한 학부모에 의한 교사 폭행사건은 학생의 두발 문제에서 비롯됐다고 한다. 폭행은 C씨 부부가 무단결석한 자녀 문제로 교감, 학생부장과 상담한 후 벌어졌다고 하는데, 학부모가 학교에 있는 사실을 모른 교사는 복도에 있던 해당 학생의 불량한 용모에 대해 주의를 주었다고 한다. 이를 본 부부가 갑자기 “아저씨가 뭔데 우리 자식에게 뭐라고 하느냐”며 항의 하면서 몇 차례 고성이 오간 후 부부는 동시에 교사의 뺨을 때리고 핸드백으로 머리를 가격했다는 것이다. 교사는 이를 피해 빈 교실로 들어갔지만 그곳까지 따라온 부부는 폭행을 멈추지 않았다는 사실은 오래도록 뇌리에 지워지지 않는다. 더군다나 당시는 점심시간이 끝날 무렵으로 많은 학생들이 지켜보고 있었다니 아이들 눈에는 어떻게 비쳐졌을지…. 강원도 태백시 D초등학교에서는 지난달 21일 오후 6학년 수업 중 E씨(38)가 교실로 들어가 수업을 진행하던 F교사(39)를 폭행하였다고 한다. E씨는 교실로 들어와 “너 나와! 나 알지”하며 교사를 복도로 끌어내 머리채를 흔들며 수차례 뺨을 때렸고, 교사가 교실로 피하자 교실에서도 욕설과 함께 난동을 부렸다고 한다. F교사에 대한 폭행은 학생들의 비명 소리를 듣고 온 동료 교사의 제지가 있을 때까지 30여 분간 계속됐다는 것이다. 5년 전 아이의 담임이었던 교사가 케이크를 선물로 받고 본인의 흉을 봤다는 것이 이유라고 한다. 그것도 5년이나 지난 지금에 와서 교실까지 찾아가서 행패를 부렸다니 너무나 어처구니없는 일이다. 우리는 여기서 몇 가지 심각한 문제점을 짚어보지 않을 수 없다. 첫째, 수업 중에 학생들이 보는 앞에서 학부모가 교사를 폭행을 가했다는 점이다. 학생들이 폭행당하는 선생님을 보고 어떤 생각을 하였을 것이며, 폭행당한 선생님은 가르치는 학생들 앞에 어떻게 교단에 떳떳하게 설 수 있을 것인지 자못 염려스럽기만 하다. 둘째, 두 사건 모두 교사들이 폭행을 피해 다른 곳으로 이동하였지만 따라 다니면서, 또 복도에까지 끌어내 머리채를 흔들고 수차례 뺨을 때리며 30여분이나 계속되는 것을 본 학생들의 비명 소리를 듣고 동료교사에 의해 제지 되었다고 하니 이것은 상식적으로 도저히 이해가 되지 않는다. 어디 만화책에서나 있음직한 조직폭력배의 이야기가 재현된 듯하다. 셋째, 폭행 사건의 내용으로 보아 무단결석이나 불량한 복장문제, 5년 전 케이크 선물을 받고 흉을 보았다는 이유로 학생들이 보는 교육현장에서 행패를 부린 행동은 도저히 용납이 되지 않는다. 얼마나 학교를 우습게보고 교사를 경시하는 풍조가 있으면 이러한 행동을 하게 되는 것인지 도저히 상상조차 할 수 없는 일이 벌어진 것이다. 지난 해 5월 하순 경 지방의 한 초등학교에서 평소 담임교사의 급식지도에 불만이 많던 학부모가 폭언과 폭행을 동반한 민원제기 과정에서 ‘무릎을 꿇은 여교사’의 전국적인 방영으로 우리 40만 교원은 충격적이며 분기탱천한 마음을 가눌 수 없었다. 뒤 늦게 그들은 담당교사에게 사과문을 쓰고 반성을 하였다고는 하나 이미 모든 사안은 전 국민이 다 알고 있는 상황이며, 젊은 여교사가 울먹이며 교육자로서 잘못은 없지만 무릎을 꿇어서 모든 것이 해결된다면 무릎을 꿇는다며 ‘모든 것을 용서해 달라’는 흐느낌만은 전 교육자들의 뇌리에서는 아직까지 사라지지 않고 있다. 이와 같은 교육계 전체를 참담한 충격으로 몰고 간 사건에 대해 검찰이 기소유예 등의 처분이 포함된 불기소 결정을 내렸었다. 검찰처분의 요지는 협박, 명예훼손, 모욕 등 대부분의 혐의가 인정되지만, 학부모가 초범이고 동종 전력이 없다는 점, 범행동기, 피해자인 여교사가 처벌을 원하지 않는 점 등의 정상을 참작하여 기소를 유예한다는 것이다. 이 기사를 본 교원들은 말로 표현할 수 없는 착잡한 심정을 금할 길 없었다. 이와 같은 판결은 교사를 아무렇게나 대해도 별것 아니라는 점을 전 국민에게 인식토록 해 준 꼴이 되고 만 것이다. 특히 이 판결에 대해 당사자인 여교사는 얼마나 억울하고 참담한 심정일 것인지는 그 아무도 모를 것이다. 그 여교사가 당한 명예훼손이나 모욕죄, 그 외 죄가 인정되는 부분에 있어서는 피해자가 처벌을 원치 않아 불기소 처분을 내렸다고 밝히고는 있으나, 하루하루가 죽기보다도 더 어려운 정신적 고통은 어떻게 할 것이며, 무참히 짓밟힌 공동협박과 모욕 및 명예훼손은 어디에서 하소연할 것인가. 당사자는 단지 이 사건을 빨리 잊어버리고 싶어 할는지도 모른다. 문제는 이와 같은 엄청난 사건에 대해 검찰의 불기소 처분에 대해 필자는 ‘무릎 꿇은 여교사’ 판결을 보고(한국교육신문) 안타까운 심정으로 솜방망이 처벌에 대해 교사폭행 사건이 앞으로 다반사로 일어날 것임을 예견을 한바 있었다. 교총에서 발표한 2006년도 교권침해사건 처리현황에서도 학부모에 의한 부당한 교권침해 사례가 가장 많았으며, 이는 2005년도 보다 무려 20.5% 증가한 것으로 나타났다. 이와 같은 침해사건에 대해 교원들의 교권이나 인권은 어디서 찾으며, 안정된 생활 속에서 이루어져야 할 학습활동이 언제쯤 이루어질 것인지 묻고 싶다. ‘무릎 꿇은 여교사’의 판결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교권이 이렇게 까지 추락하게 된 것은 학부모만의 책임은 아니다. 교육당국이 교원을 개혁의 대상으로 내 모는 잘못된 교원정책과 이에 편승하여 일부단체와 언론이 극소수 교원의 잘못을 전체 교원의 문제인 양 성토하는 왜곡된 사회풍조가 더 큰 책임이 있다. 교권은 교사들이 지위나 권위를 누리기 위해 필요한 것이 아니라 학생들을 올바르게 지도하기 위해 존재하는 것이다. 학부모의 자기 자녀에 대한 과잉보호와 학생들의 자기중심적 사고 및 행동이 학교에서 교사의 교육활동과 갈등을 불러일으키게 되는 것이다. 학부모들도 교원들에 대한 잘못된 인식을 바꾸어야 한다. 그들의 자식을 가르치는 선생님을 믿지 못하면 어떻게 교육이 이루어진단 말인가. 이번 사건을 계기로 소속 단체나 조직은 폭행당한 교사의 인권침해와 교권보호 차원에서라도 강력히 대응을 하여, 모욕적인 교권침해와 폭행상해 및 정신적 피해를 조직이나 단체의 설립취지에 맞게 막중한 사명감을 가지고 보호해 주어야 할 것이다. 교사의 권위가 실추되고, 사기가 저하된다면 교육에 대한 열의는 떨어지기 마련이다. 교사와 학생의 인격적 만남이 가능한 학교 공동체 구축과 학교붕괴 및 공교육의 정상화를 위해서는 정부와 매스컴을 운영하는 기관에서도 자정의 협조가 있어야만 한다. 그들도 오늘 날과 같은 볼썽사나운 사태에 일조하였다는 것은 그들 스스로 너무나 잘 알고 있을 것이다. 제도권에서 교사의 권위를 세워주지 않는다면 우리나라 교육의 앞날은 요원할 수밖에 없다. 이번 사건을 계기로 학부모는 정당한 절차를 통해 민원을 제기하고 해결한다는 인식이 확산되길 간절히 기원해 본다. 교사를 폭행하는 나라로 오인되지 않길 간절히 바라며…….
벌써 3월의 끝자락에 와 있습니다. 3월이 이렇게 빨리 지나갈 줄 몰랐습니다. 나이만큼 세월이 빨리 지나간다는 말이 실감이 되기도 합니다. 아마 20대는 20km만큼 서서히 지나갈 것이고 30대는 30km만큼 서서히 지나갈 것이며 40대는 40km만큼 좀 빠르게 지나갈 것이며 50대는 50km만큼 빨리 지나갈 것입니다. 저는 50km만큼 빨리 지나간 것 같습니다. 60, 70대는 점점 60,70km만큼 더 빨리 지나감을 느끼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우리 선생님들에게는 아마 3월만큼은 그렇게 빨리 지나가지 않았으리라 봅니다. 아마 여러 선생님들께서는 3월이 제발 빨리 지나갔으면 하고 바랐을 것입니다. 너무나 바쁘고 힘들기 때문입니다. 정신을 없을 정도로 바쁩니다. 점심이 입으로 들어가는지 코로 들어가는지 모를 정도로 바쁩니다. 어떤 선생님은 너무 힘들어 입안이 다 헐어 말도 제대로 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교감선생님을 위시하여 감기는 기본입니다. 그 정도로 힘이 듭니다. 교재준비하랴, 학생지도하랴, 환경미화하랴, 학습자료 만들랴, 교통지도하랴, 식당 질서지도하랴, 청소지도하랴, 학생들 이름 외우랴, 자기가 맡은 계획을 수립하랴, 정말로 정신없이 돌아갔을 것입니다. 거기에다 교장이 새로 와서 심적으로 더 부담이 되고 힘이 들었을 것입니다. 행정실 직원들은 행정실 직원대로 바쁩니다. 평소에 하는 것만 해도 바쁜데 교장이 이거 해라, 저거 해라, 이렇게 해라, 저렇게 해라 하는데다 정신적인 자세를 가다듬게 하지요, 그래서 새 스타일에 맞춘다고 애를 먹었을 것입니다. 특히 마당발 노릇을 단단히 하시는 김 주사님께서는 더욱 바쁩니다. 낙서 지우라, 그림 지우라, 화장실 수리해라, 쓰레기 버리라 등등 온갖 궂은일을 다 시키니 아마 스트레스도 많이 받았을 것입니다. 그래도 한 마디도 불평하지 않으시고 하나 하라 하면 둘, 셋을 하시는 김 주사님이 대단해 보였습니다. 이번 주 안에 하라고 하면 오늘 당장 하시는 김 주사님이 존경스러워 보였습니다. 특히 교문 앞에 주민들이 버리는 쓰레기마저 우리학교 쓰레기봉투에 담아 우리 창고에 넣도록 하니 얼마나 힘이 들겠습니까? 그래도 말없이 열심히 해 주시는 김 주사님이 정말 고마웠습니다. 또 숙직을 하시는 류 주사님도 오늘 아침에는 상당히 얼굴이 밝으셨습니다. 저가 어느 누구보다 일찍 오니 얼마나 신경이 많이 쓰였겠습니까? 밤에 외부 차량이 들어와서 학교기물을 파손하니 학생들과 선생님들이 다 퇴근하고 나면 교문을 잠궈라, 아침에는 출근하고 등교하기 좋도록 문을 다 열어라, 새벽 3시 반이면 동네 쓰레기차가 오니 쓰레기 문을 열도록 하라, 동네 주민들이 학교에 와서 밤늦게까지 운동을 하니 자주 둘러보고, 휴지도 줍고 문제아들을 잘 타이르라고 하고... 전에 하지 않던 일을 하게 하니 얼마나 힘이 들겠습니까? 그렇지만 역시 두말도 하지 않고 그렇게 하셨습니다. 그러니 한 달이 지난 지금에는 학교가 아주 깨끗해졌습니다. 정리정돈이 되어갔습니다. 오늘 아침에는 류 주사님께서 학교 안팎이 깨끗해졌다고 하니 자기도 웃으시면서 그렇다고 하시더군요. 그러면서 주민들이 운동하러 와서 이제 학교가 질서가 좀 잡히는 것 같다는 말을 한다고 하더군요. 이렇게 모든 교직원들이 저 때문에 힘들어하고 마음고생을 하는지 모릅니다. 그래서 3월이 빨리 지나갔으면 하고 바랐을 것입니다. 어제 1학년 부장선생님께 퇴근 무렵 결재를 오셨습니다. 학교생활이 재미가 있는지 어떤지 물었습니다. 1학년 부장선생님께서는 저가 무섭다고 하시더군요. 전혀 저의 바람과는 다르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초기니까 그렇지 그러하지 않다고 했습니다. 교무부장 선생님께서는 저를 칼이라는 표현을 쓰시더군요. 그렇게 날카롭게 느껴지는지 역시 저가 원하는 것과는 달랐습니다. 이제 저의 참모습을 선생님들에게 보여줄 때가 되었다고 봅니다. 저도 역시 부드러운 남자입니다. 저도 역시 무딥니다. 저는 여러 선생님들에게 더욱 인자하게 다가가기를 원합니다. 그 마음이 저의 본래 마음입니다. 이제 3월이 지나가고 4월이 다가옵니다. 3월 한 달 동안 애써 주신 여러 선생님들과 교직원들이 너무 좋습니다. 저의 방침에 잘 따라주심이 너무 고맙고 감사할 따름입니다. 이제 어느 정도 정리가 되었습니다. 저의 스타일도 알았을 것입니다. 무엇을 원하고 있는지도 알았을 것입니다. 무엇을 해주고 싶어 하는지도 알았을 것입니다. 여러 선생님들과 교직원들의 땀과 수고가 녹아내려 잔잔한 변화를 일으키고 있음을 보게 됩니다. 많은 선생님들의 사랑과 열정이 학생들을 서서히 움직이게 하고 있음을 보게 됩니다. 많은 선생님들의 노력이 돋보이는 3월이었습니다. 오늘 아침에 볼 수 있었던 붉은 동백꽃과 연산홍의 붉은 꽃이 3월을 견디고 잘 이겨낸 여러 선생님들의 아름다운 모습이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교육은 변화입니다.
우리학교 교정에 연분홍 살구꽃이 활짝 피었습니다. 살구꽃 속에서 꿀벌들이 윙윙거리는 소리가 마치 회초리 치는 소리처럼 요란했습니다. 요란한 소음이 오늘처럼 정답게 느껴진 적이 없었습니다. 벌들이 뭐라고 하는지 귀기울여 듣지 않아도 느낌으로 훤히 알듯합니다.
아이들이 24시간 학교에서 생활하는 본교는 여타의 학교들에 비해 여러 가지로 생활지도에 어려움을 겪는다. 특히 기숙사 생활을 하는 많은 아이들이 모두 규칙적으로 일어나고 잠자리에 들기란 엄격한 규율을 바탕으로 하는 군대가 아닌 이상 힘든 부분이 항상 따른다. 특히 시험기간이나 여타 행사가 있는 날은 학생들이 피곤해 지쳐서 곧잘 아침 점오시간에 늦기 일쑤이다. 이런 점 때문에 해당 사감 선생님들은 많은 어려움을 겪는다. 아이들의 편의를 무조건 봐 주자니 학생들의 생활이 혼란스러워지고, 너무 심하게 학생들을 간섭하자니 아이들의 반발이 만만치 않다. 벌점제를 두고 선생님들도 의견이 엇갈리다! 24시간 생활을 하는 곳이라 무엇보다 아이들의 규칙적인 습관이 요구된다. 특히 담임 선생님들이 24시간 아이들을 때론 보살펴 주어야 하는 입장에 있기 때문에 학생이나 교사나 힘들기는 매 한 가지인 셈이다. 이런 어려움 때문에 부득불 학생들에게 규칙적인 생활을 유도하고자 벌점제를 도입하게 된 것이다. 하지만 벌점제 시행을 두고 선생님들과 학생들 사이에서 우려의 목소리들이 흘러나왔다. 다름 아닌 벌점제가 가지고 있는 처벌의 범위가 지나치게 비인간적일 수도 있다는 것이다. “우리 학교가 학생 전원 기숙사 생활을 하고 있는 이상 학생들이 규칙적인 생활을 하도록 유도하는 것은 바람직하지만, 지나치게 벌점제를 장학금이나 여타 학생들의 수상에 관련시키는 것은 조금 문제가 있다고 보여 집니다.” “그런 부문도 분명 있을 겁니다. 하지만 만약 우리 아이들이 이런 규칙적인 생활에 어긋나는 일을 하거나 혹은 사고가 생긴다면 엄청난 문제가 될 수 있을 것입니다. 특히나 24시간을 전원 기숙사 생활을 하는 아이들에게 …” 선생님들도 벌점제를 두고 이런저런 의견들이 많았다. 특히 벌점제가 지나치게 학생들을 억압하고 행동에 심한 제약을 준다는 점에서 비교육적이라는 것이었다. 한편에서는 24시간 기숙사 생활을 하는 아이들에게 자칫 조금의 여유라도 주면 사고가 일어날 수 있고, 그 사고는 24시간을 한 공간에서 생활하는 아이들에게 큰 파장을 일으킬 수 있다는 점 등이 지적되기도 했다. 어떤 선생님은 1점, 그리고 어떤 선생님은 3점? 이런 저런 말들이 많았지만, 결국 벌점제는 학생들의 생활지도를 위한 방편으로 실시되었다. 많은 반대 의견과 걱정의 소리가 있었지만, 우선 24시간 한 공간에서 생활하는 아이들이 더욱 안전하고 편안하게 공부를 할 수 있는 분위기 조성이 우선이라는 점이 설득력을 얻게 되었다. 하지만 출발부터가 불안했다. 특히 학생들 사이에서 선생님들의 벌점 부과에 대한 형평성 문제가 불거져 나왔다. “어떤 선생님은 해당 항목에 1점을 주시는가 하면, 어떤 선생님은 3점을 주니 지나치게 자의적이다는 생각이 들어요.” “뿐만 아니라 몇몇 선생님들은 아이들의 잘못이 눈에 보여도 그냥 묵과하고 넘어가는 경우도 있어요.” “맞습니다. 우리들에게 벌점제는 너무 가혹하는 것 같아요. 여기에 상반되게 상점제도 있었으면 하는데, 그건 없고…” “1점 초과 때문에 장학금이나 수상을 하지 못한 경우가 작년에 있었는데, 너무 억울하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학생회의를 통해 드러난 벌점제의 근본적인 문제가 확연히 드러났다. 특히 선생님들이 지나치게 자의적이다는 분석이 있었는데, 인정은 하면서도 선생님들 개개인의 학생생활지도 방식에서 차이가 나기 때문에 최대한 형평성에 맞게 지도하도록 선생님들께 알리겠다는 설명 이외에는 달리 해명할 수 있는 근거가 부족해 보였다. 뿐만 아니라 해당 벌점 항목이 때에 따라서 그 적용 범위가 다양해질 수 있다는 점도 지적되었다. 가령 “자율학습 무단 이탈”은 “교사 지시 불이행”으로 해석될 수 있다는 것이었다. 전자가 벌점이 1점인데 반해, 후자는 3점이기 때문에 학생들이 느끼는 부담의 정도가 차이가 나기 때문이다. ‘상점제’는 당근이고, ‘벌점제’는 채찍이다? 해당 업무를 처음 부여받고, 만만치 않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미 여러 선생님들로부터 작년에도 벌점제 때문에 장학금과 관련하여 많은 문제가 있었고, 특히 아이들과 학부모들에게 민감한 문제라 더욱 주의를 요하는 업무라는 말을 들어왔기 때문이다. 막상 3월 한 달을 지내보니 벌점제가 가지고 있는 문제가 만만치 않다는 생각을 여실히 할 수 있었다. 몇몇 학생들은 매우 민감하게 반응해서 간혹 선생님들과 벌점을 두고 언쟁을 일으키는 경우도 있었고, 혹은 아예 벌점제를 무시하고 해당 규정을 어기는 학생들도 생겨났다. 또한 많은 학생들로부터 벌점제는 있으면서 왜 상점제는 없느냐는 항의 아닌 항의를 듣기도 했다. 특히 이 문제는 학생들에게 많이 지적되기도 해서, 재차 교무회의나 학생회의 때 다루기로 결정했다. 하지만 내심 담당자로서는 불만이 있었다. 학생들이 벌점제와 상점제를 채찍과 당근으로 판단하지 말았으면 하는 생각이 있었다. 벌점을 만회하기 위해 마음에도 없는 일을 만들어 내거나 혹은 벌점과 상점이 서로 균형만 이루면 된다는 그런 생각들이 지배하면 이는 벌점제를 시행한 근본 목적이 퇴색될 것 같았다. 24시간을 한 공간에서 생활해야 하는 우리 아이들의 고충이 이만저만 아닐 것이라는 것을 한 달 정도 생활해보고 뼈저리게 느낄 수 있었다. 24시간을 거의 풀가동해서 공부에 전념해야 하는 시스템 속에서 받아야 하는 스트레스는 상상할 초월할 정도로 심해 보였다. 이런 생각 때문에 아예 벌점제를 없애면 좋겠다는 생각도 하게 되었다. 하지만 그건 해당 담당자의 생각일 뿐, 실천으로 옮길 수 있는 상황은 아니었다. 해당 담당자로서 겪는 고충도 만만치 않았다. 일일이 아이들에게 벌점의 사실을 알리고, 관리자에게 결재를 득하면서 받아야 하는 스트레스도 이만저만 아니었다. 다만 우리 아이들이 벌점제를 만회할 수 있는 대안으로 상점제를 만들어 또 다른 불합리한 상황을 만들어내는 일은 없었으면 하는 바람이 들었다.
충북도교육청은 31일 교육인적자원부가 충북 교직원 복지회관과 충북학생 외국어교육원 등 2개 기관을 벽지 '라' 지역으로 추가 지정, 교원들의 근무 가산점 혜택 범위가 넓어지게 됐다고 밝혔다. 이로써 도내 벽지 교육기관은 종전 31개에서 학교 28개교를 비롯, 모두 33개 기관으로 늘어났다. 지역별로는 단양군 영춘초 의풍분교장과 영동군 영동학생야영장이 벽지 '가'지역으로 도내 교육기관 가운데 가장 오지이며 '나'지역은 1개, '다'지역은 7개, '라'지역은 23개 기관이다. 도서.벽지 지역은 다른 지역에 비해 지리.경제.문화.사회적인 혜택을 받지 못하는 학생들에게 혜택을 주기 위해 지정한 것으로 도교육청은 교과서 무상공급과 무상교육 실시, 통학에 필요한 지원 등을 해주고 있다. 또 이곳에 근무하는 교원에게는 별도의 수당 지급과 함께 승진에 필요한 가산점 부여, 사택 제공 등의 혜택을 주고 있다.
서울시교육청은 학원의 심야교습 제한시간을 밤 10시를 원칙으로 하되, 관련 조례가 개정될 때까지 연장 승인을 요청하는 학원에 한해 밤 11시까지 허용하기로 했다고 30일 밝혔다. 시교육청은 "교육부의 '학원 설립ㆍ운영 및 과외교습법 개정안'이 지난주 효력을 발휘하기 시작해 '서울시 학원 설립ㆍ운영 및 과외교습에 관한 조례'도 개정해야 한다"며 "조례 개정 때까지는 학원 심야교습 제한시간을 밤 11시까지 허용할 방침"이라고 말했다. 시교육청은 조례 개정안을 4월 중 입법예고하고 학부모, 학생, 학원 운영자 등 이해 관계자의 의견을 수렴하기 위해 공청회를 개최한 뒤 교육위원회 및 시의회 의결을 거쳐 이르면 7월 중 조례 개정안을 공포한다는 계획이다. 시교육청은 아직 학원 심야교습 제한시간을 몇시까지로 할지 확정하지 않은 상황이지만 기존대로 밤 10∼11시 정도를 우선적으로 고려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시교육청 관계자는 "학원법이 효력을 발휘하고 있지만 아직 관련 조례가 개정되지 못해 학부모와 학생, 학원운영자가 혼란을 겪을 수 있어 한시적인 조치를 취하게 됐다"며 "밤 11시까지 허용하는 것은 연장 요청을 해오는 학원에 한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학원들이 학원법 개정 내용에 따라 제한시간을 따라 줄 것으로 기대하지만 제한시간을 넘겨 학원을 운영하는 경우에는 강력히 단속에 나갈 것"이라고 덧붙였다.
오늘 아침도 기분이 좋습니다. 출근하는데 기쁨을 선사하는 것이 눈에 많이 띄었기 때문입니다. 제일 먼저 출근하는 길에 하얀 벚꽃이 맞아주었습니다. 그들의 모습이 환희의 함성처럼 들렸습니다. 기쁨의 환호처럼 느껴졌습니다. 저의 마음을 대변해 주는 듯하였습니다. 어제 우리 선생님들인 벌인 친목체육대회 겸 잔치를 연상케 해줄 만큼 환하게 웃으며 잔치를 벌이고 있었습니다. 하늘을 쳐다보니 구름사이로 보이는 푸른 하늘이 그 어느 때보다 예쁩니다. 그 어느 때보다 더 푸릅니다. 그 어느 때보다 아름답게 보입니다. 구름의 장애물을 잘 참고 견디어 내었기에 그러하지 않나 하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구름 사이로 보이는 그 푸르고 연한 아름다움이 바로 우리 선생님들의 아름다움이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북부순환도로를 지나 달천농공단지를 달려오니 길다란 동대산이 보이기 시작합니다. 그 동안 구름안개로 인해 동대산을 희미하게 볼 수밖에 없었지만 오늘은 아침 안개가 없어 선명하게 보입니다. 뚜렷하게 보입니다. 더 가까이 다가옵니다. 그 어느 때보다 무게가 있어 보입니다. 그 동안 보지 못했던 안정감이 돋보였습니다. 더 진한 느낌을 받았습니다. 동대산의 참모습을 일부나마 볼 수 있어 다행입니다. 아마 오늘 아침의 동대산 모습이 바로 우리 66명의 교직원의 모습이 아닌가 하는 생각을 가져 봅니다. 그 동안 볼 수 없었던 선생님들의 안정되고 무게 있고 품위 있는 모습을 보는 듯했습니다. 어제 친목회를 통해 더 그러함을 발견할 수 있어 다행입니다. 학교에 들어오니 그 어느 때보다 학교가 깨끗했습니다. 휴지 하나도 운동장에 보이지 않았습니다. 이러한 모습이 일년내내 계속 되었으면 합니다. 왜 이럴까 생각해 보니 어젯밤에 비가 오니 학교 운동장에서 운동을 하는 분이 없어 그런 것 같았습니다. 이웃 주민들이, 청년들이 운동장에서 운동을 하더라도 오늘처럼 깨끗하게 해 준다면 저뿐만 아니라 1,142명의 학생들과 66명의 교직원들이 기뻐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어제는 우리학교 친목 체육대회가 신학기 들어 처음 있었습니다. 초기에 선생님들이 너무 바쁜데다 날씨도 춥고 해서 미루어 오다 어제 한 것입니다. 새로 오신 선생님들의 환영 겸 전 교직원들의 친목을 도모하기 위함이었습니다. 저는 오후에 두 건의 출장이 있었습니다만 출장을 끝내고 학교에 돌아와서 함께 하였습니다. 운동장에 나가보니 전 선생님들과 행정직원들이 다 나왔습니다. 운동장에서 교장팀과 교감팀으로 나누어 족구를 하였습니다. 저도 체육복을 입고 함께 족구를 했습니다. 우리 편을 응원하기도 했습니다. 많은 학생들이 운동장 주변에 둘러앉거나 서서 응원을 하였습니다. 교감선생님도, 행정실장님도, 토마스 원어민 선생님도 함께 하였습니다. 평생 이런 체육대회는 처음 보았습니다. 저가 총각시절 4년의 중학교 근무시절도 일부가 나와 배구하는 것이 고작이었습니다. 평소에 저가 원하던 그 모습을 우리학교에서 볼 수 있어 너무 기분이 좋았습니다. 울산여고 시절 때는 선생님들이 너무 많은 데다 오후 6시까지 수업을 하시니까 직체를 할 수가 없습니다. 1년에 많아야 두서너 번 정도입니다. 그것도 남선생님 위주로 운동장에서 축구를 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학교에서는 대부분의 젊은 여선생님들이 많지만 직체가 잘 되었습니다. 뒤에 알고 보니 교감선생님께서 선생님들을 독려하여 이렇게 된 것이라는 것을 알고 교감선생님의 역할이 대단하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우리 팀이 열심히 했지만 결국은 지고 말았는데 저는 축배시간에 우리 모두의 승리라고 말했습니다. 교감선생님께서는 경기는 교장팀이 이기고 스코아는 교감팀이 이겼다고 겸손해 하셨습니다. 저는 이런 친목의 시간이 많아야겠다는 것을 깨닫고는 저가 운동을 별로 좋아하지 않지만 1년 두서너 번 하는 친목 체육대회를 매달 하면 어떻겠느냐고 교감선생님과 친목회장님께 말씀 드렸더니 그렇게 하도록 하겠다는 말씀이 계셨습니다. 저가 부임하는 날 교직원의 화합을 강조했는데 친목 체육대회가 화합의 지름길임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더 자주, 더 많이 해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저가 총각시절 일부가 참석했지만 매주 배구대회를 했던 것처럼 우리도 매주 친목 체육대회를 가지는 그 날을 기대해 봅니다. 어제 늦게까지 즐겁게 노신다고 피로하실 텐데 더욱 힘을 내셔서 기쁜 마음으로, 즐거운 마음으로 학생들과 함께 하는 동행교육에 힘을 쏟았으면 합니다. 감사합니다.
부산하게 움직였던 3월도 어느새 끝을 향해 가고 있다. 산과 들엔 연초록의 나뭇잎과 가지가지의 색을 한 꽃들이 행인들의 눈을 즐겁게 한다. 내가 있는 교정에도 살구나무 한 구루가 서있다. 꽃이 피면 벌들의 날개짓에 꽃향기가 날리며 등하교하는 아이들을 반갑게 맞이하고 떠나보낸다. 교정 한 쪽에 서있는 살구꽃을 볼 때마다 난 이호우의 시 ‘살구꽃 핀 마을’이란 시를 생각한다. 그리고 종알종알 흥얼거리기도 한다. 살구꽃 핀 마을은 어디나 고향 같다. 만나는 사람마다 등이라도 치고지고. 뉘 집을 들어서면은 반겨 아니 맞으리. 바람 없는 밤을 꽃 그늘에 달이 오면, 술 익은 초당(草堂)마다 정이 더욱 익으리니, 나그네 저무는 날에도 마음 아니 바빠라. 고등학교 국어시간에 선생님은 이 시를 암송할 때면 눈을 감았다. 그리고 우리들에게도 눈을 감고 살구꽃이 핀 어느 낯선 동네를 걸어보라고 했다. 우리는 눈을 감았고 나그네가 되어 살구꽃이 흐드러지게 핀 동네 어귀를 어슬렁거렸다. 그리고 어느 초가집에서 술익는 냄새를 맡으로 침을 꿀꺽 삼켰다. 침 넘어가는 소릴 듣고 선생님은 ‘이놈들, 잿밥에 눈이 멀었구먼.’ 하고 큰소릴 내면 교실은 이내 웃음소리로 가득 채워지곤 했다. 교정의 살구나무는 아이들에게 아름다운 향기만을 주는 게 아니다. 일용할 양식도 제공한다. 살구가 노랗게 익을 때면 아이들은 나무 위에 올라가 살구를 따 먹는다. 그것도 치마를 입은 채 말이다. 치마를 입고 나무에 오르면 어떻게 하냐고 하면 그냥 깔깔거리며 웃으면서 ‘선생님, 이따가 갖다 드릴게요. 젤 맛있는 걸로요.’ 하고 능청을 떨며 상황을 모면한다. 그저 ‘왜냐구 물으면 웃지요’다. 그러나 3월은 내게 불안한 계절이기도 하다. 누구한테도 말은 안하지만 ‘이번엔 아무 탈 없이 넘어가야 할 텐데.’ 하고 속으로 기원하는 달이기도 하다. 헌데 이번에도 내 불안은 현실로 나타났다. 한 녀석이 학교를 그만두겠다고 엄포를 하며 나가버린 것이다. 내게 3월의 불안함은 아주 오래전부터 시작됐다. 새 학기가 시작되고 눈이 엄청 오는 어느 날, 그 아이는 내게 전화를 걸어왔다. “눈이 너무 많이 와서 버스가 안 와요. 버스 타는 데로 바로 갈게요.” 그렇게 전화를 한 아이는 1교시가 끝나도록 등교하지 않았다. 전화를 하니 그 아이는 태평하게 ‘곧 갈게요.’ 하더니 그 뒤로 소식이 끊겼다. 이리저리 수소문을 한 결과 아이는 함께 등교하던 아이들과 가출을 했다는 것이다. 어렵게 만난 그 아이에게 다시 학교에 다니자고 했지만 아이는 끝내 거절했다. 아이 어머니의 눈물어린 호소도 소용이 없었다. 학교를 그만두고 아이는 의정부에서 이모가 운영하는 미용실에서 미용기술을 배웠다. 그런 아이에게 학년이 끝나갈 무렵 다시 복합하고 싶다는 전화가 걸려왔다. 후회한다면서. 그러면서 이런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자신이 일하는 미용실에 고등학교 일학년인 듯한 여학생과 엄마가 들어왔다. 그 학생과 엄마와의 이야길 들어보니 학생은 학교를 그만두겠다고 하는 것 같았다. 그때 자신이 그 학생에게 학교에 다니라고 이야길 해주고 싶었는데 차마 말을 꺼낼 수 없었다고 한다. 자신 또한 여러 사람의 설득을 뒤로하고 학교를 그만두었다는 자괴심 때문이라는 것이다. 그때 그 학생에게 이야길 못해준 게 못내 아쉽다고 했다. 헌데 그 이후 이삼년에 한 번은 3월에 학교를 떠나는 아이가 꼭 생겼다. 그런데 이상한 건 평상시 아무런 말썽을 피우지 않은 아이들이란 것이다. 얌전히 학교생활을 하던 아이들인데 어느 순간 훌쩍 떠나버리면 다시 돌아오진 않았다. 해서 새 학기가 시작되면 난 이 삼월을 무사히 넘겨달라고 마음속으로 간절히 기도를 한다. 하지만 그게 어디 기도로만 되는 일인가. 이번에 떠난다고 엄포(?)를 놓은 아이도 어떤 바람의 마술에 걸린 아이처럼 생글거리며 날아갔다. 무슨 멍에를 떨쳐버린 듯 시원스런 표정을 짓고 떠났다. 그러면서 자기가 하고 싶은 미용을 하면서 살고 싶다고 했다. 아이들을 떠나보낼 때마다 내가 제대로 하고 있는지 반문을 하곤 한다. 아이들에게 진정 마음으로 다가가서 이해하려고 했는지 반문하지만 대답은 ‘부족해’다. 나름대로 한다고 하지만 결과는 부족하다는 것이다. 아직 책상 속에 그 아이가 써놓고 간 자퇴서가 그대로 있다. 더 설득하고 기다리기 위해서다. 화사하게 핀 꽃도 하룻밤의 비바람에 우수수 짐을 본다. 떨어진 꽃잎을 보면서 떠나갔던 아이들 얼굴을 하나하나 떠올려본다. 돌아온 아이도 있고 돌아오지 않은 아이도 있다. 기억이 뚜렷한 아이도 있고 희미한 아이도 있다. 그 희미한 기억의 잔흔들을 추스르며 남은 아이들을 생각한다. 그 아이들에게 나도 내가 고등학교 때 그랬던 것처럼 이호우 님의 시 ‘살구꽃 핀 마을’을 아이들에게 들려주며 나그네가 되어 걷게 할까 싶다. 허면 나른하고 딱딱한 학교생활이 조금은 향기가 나지 않을까 싶다.
다음달부터 경기도내 초등학교와 특수학교의 청소를 외부 용역업체가 담당하게 된다. 30일 도 교육청에 따르면 도 교육청은 '깨끗한 학교만들기 사업' 명목으로 도내 1천50개 초등학교와 23개 특수학교에 학교당 월 90만원씩 모두 87억여원의 청소용역비를 지원하기로 했다. 각 학교는 이 예산을 활용, 다음달부터 용역업체를 통해 청소인력 1명씩을 고용하게 된다. 청소인력은 학생들이 평소 하기 어려운 일반교실 및 복도.계단 바닥의 왁스세척, 화장실 전면세척 및 소독, 유리창 유리세척 및 창틀 먼지 제거, 냉.난방시설의 필터 세척 및 교환, 잡초.폐기물 처리 등의 업무를 담당하게 된다. 도 교육청은 청소인력 1명이 담당학교에 상주하며 매일 청소를 실시하는 방법, 5-10명의 청소인력이 5-10개 학교를 묶여 하루씩 순회하며 대대적으로 청소를 실시하는 방법 등으로 학교 청소업무를 진행할 예정이다. 용역업체는 교육장과 학교장이 협의해 선정하게 된다. 도 교육청은 "초등학생들이 하기 어려운 부분 청소에 외부 청소전문인력을 투입, 깨끗한 학습환경을 조성하는 동시에 사회적 일자리를 창출하는 차원에서 학교청소를 외부 용역업체에 맡기게 됐다"고 밝혔다.
우리 서령고에서는 급식에 대한 학생 및 학부모님들의 불만과 우려를 불식시키는 동시에 식중독 사고를 예방하는 차원에서 4월부터 학부모님들로 구성된 급식 모니터링제를 전격 실시한다. 학부모 위원 아홉 명으로 구성된 '학교급식 모니터링제'는 주1회 이상 수시점 검과 월 1회 학교와 합동으로 영양사의 지도하에 학부모 급식 요원이 급식실 위생 관리 상태와 조리과정 및 맛과 영양 등을 세밀하게 점검하는 제도다. 학부모 급식 모니터링 요원이 발견한 문제점 등은 바로 모니터링 활동일지에 기록한 뒤 학교측에 제출하면 영양사가 바로 개선방안을 분석, 잘못된 점을 교정하게 된다. (아래 사진 참조) 교장선생님께서 학부모 급식 모니터링 요원에게 위촉장을 수여하고 있다. 요원들에게 위촉장을 수여하는 장면2 위촉장 수여가 끝난 뒤, 급식 모니터링 요원들과 학교 담당자 분들이 모여함께 기념촬영을 했다. 행사가 끝난 뒤, 영상사 선생님과급식 모니터 요원들간에 급식에 관한 진지한 대화가 있었다.
요즘 대학 입시에 관한 뉴스가 항간에 화제꺼리가 되고 있다. 그 만큼 대학 입시 전형이 차지하는 비중이 한국 사회에서는 무시할 수 없다는 것을 보여 주는 증거가 된다. 농촌에 살고 있는 학생들이나 외딴 섬 지역에 사는 학생들에게 도시의 학생들이 받을 수 없는 교육 조건을 보완해 주기 위해서 마련된 것이 농어촌 학생, 특별 전형이다. 이것이 농어촌의 학생들에게 있어서 그나마 농어촌에 살면서도 도시로 나가 대학에 갈 수 있는 조건이 되었다. 그런데 요즘 들어 농어촌 학생, 특별 전형 지역이점점 확대되고 있다. 최근에는 농어촌도 도시화 되고 있는 추세인데도 농어촌 지역이 확대되고 있는 것에는 생각의 여지를 갖게 한다. 농어촌 학생, 특별 전형 대상지역 등급화로 농어촌 학생, 특별 전형 지역이 확대되면, 진정 농어촌 학생이 누려야 할 혜택을 보장받지 못하게 된다. 이런 결과로 인해 농어촌에 거주하는 학생들조차도 도시로, 도시로 다시 나아가는 결과를 낳을 것은 당연지사다. 그나마 농어촌 혜택이 주어진다는 그것만으로 농촌의 낙후된 교육 여건을 도외시한 채 묵묵히 공부를 하고 있는 실정이다. 하지만 이제는 다시 생각을 바꾸기 위한 약진이 도래할 상황을 맞고 있다. 언론에 심심찮게 보도되는 고액 과외에 좋은 학원이 있는 곳에서 교육을 받는 학생들과 농어촌 지역 학생들처럼 학교 수업이 거의 전부요, 학원을 다닌다고 해도 도시와 같은 좋은 시설에 훌륭한 교사를 초빙하기 어려운 학원에 다니는 학생들과 비교해 보면 그 결과는 삼척동자도 짐작할 수 있을 것이다. 예를 들어, 김포시를 보더라도 00고, 0000고, 00고, 00고 등 누가 보아도 납득하기 어려운 이런 학교가 농어촌 학생, 특별 전형 대상 지역으로 지정됨으로써 이 지역에 거주하는 학생들이 대학에 들어가는 데 농어촌 특별 전형 혜택을 누리게 되었다. 농어촌 학생, 특별 전형 대상자의 기준은 과연 무엇일까? 새삼스럽게 질문을 던지지 않을 수 없다. 이제는 농어촌에 살면서 듣게 되는 “개천에서 용 난다”는 말은 어느 듯 사라지고, 대신 “투자한 만큼 얻는다”라는 말이 심심찮게 학생들의 입에서 흘러 나오곤 한다. 이런 현상이 되풀이 된다면 교육에도 빈익빈 부익부가 계속 되어 내 자손에게는 물론 농어촌에 살고 있으면서 어려운 환경을 극복해야 하는 농어촌 학생들은 시골에 있는 대학에만 다녀야 하는 결과만 만들어 내지는 않을까하는 생각마저 든다. 농어촌 학생들에게 혜택을 고루 주고 동시에 농어촌을 살려 나가는 길은 농어촌 지역의 등급화를 하루 빨리 추진하여 진정 농어촌에 거주하는 학생이 대학에 입학하는 데 조금이나마 도움이 되는 방향을 찾았으면 한다. 농어촌 학생, 특별 전형 지역 확대는 전지역 보편화 전초전 농어촌 학생, 특별 전형 지역의 확대는 좁은 면으로 본다면 그냥 학부모와 학생들 사이에서 일어날 수 있는 지역 싸움이라고 볼 수 있겠지만, 넓은 면으로 본다면 농어촌 학생들이 대학생으로 성숙해 가면서 갖게 되는 빈익빈 부익부가 이 사회에 대한 갈등으로 계속 되물림 될 수도 있는 것이다. 그러기에 농어촌 전형 지역 확대는 신중하게 고려되야 하고 등급화되어야 한다. 이렇게 계속 농어촌 학생, 특별 전형 대상 지역을 확대해 나간다는 것은 궁극적으로는 농어촌을 평준화시켜 누구든지 농촌으로 가서 살게 되면 이런 혜택을 받을 수 있다는 이미지만을 남길 수 있다. 진정 농어촌 후계자를 양성하고, 도시화로 황폐화돼 가는 농어촌을 지켜주는 것은 지금부터라도 평준화 되어 가는 농어촌을 등급화시켜 농어촌을 떠나는 학생을 막아야만 농어촌 주민의 사교육비를 줄일 수 있을 것이다. 농어촌 학생, 특별 전형 지역 확대가 계속되면 될수록 농어촌 거주 학생들의 가계의 어려움은 가속화될 것이고 농어촌 주민의 사교육비 확보는 농어민의 도시 진출을 가속화시킬 것이다.
이제 학기초에 학생들의 가정환경과 희망직업을 조사하엿으며 부모님들을 만날 기회가 있을 것이다. 이때 교사들이 부모님과 같이 이야기할 것 가운데 하나는 학생들이 무엇을 잘하고 앞으로 어떤 진학과 진로를 가질 것이 아닌가 한다. 학생들의 학력 상승만을 다루는 사교육에 비하여 공교육이 갖는 장점은 학생들의 올바른 인성과 학생의 장래를 생각할 때 가장 적합한 진로를 잡아주는 것이 아닌가 한다. 그런데 학부모들은 학교의 진로교육에 대하여 불만이 많은 편이다.교육인적자원부와 한국교육개발원에서 조사한 결과 학부모들은 학교의 진로지도가 가장 불만이 많은 것중의 하나로 나타났다. 즉 학교가 자녀들의 미래에 무엇을 할 것인가에 대하여 충분하게 지도하지 못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자녀 진로교육과 관련하여 부모들에게도 문제는 많다고 본다. 우리 나라 부모들만큼 자녀가 앞으로 뭐가 될지 관심이 많은 부모들이 없을 것이다. 최근 사교육비의 증가와 외국으로의 조기 유학 등은 결국 학부모들이 자녀들이 소위 잘나가는 고등학교와 대학을 가서잘나가는 일자리를 가지게 하려는 것이다. 이 과정에서 자녀의 적성이나 흥미 등을 반영하지 않고 부모의 욕구를 충족시켜주지 못하고 자녀의 희망에 반하여 특정과나 대학을 강요하고 있다. 그리고 일단 공부만 잘하면 무엇이든지 된다는 생각으로 자녀의 적성파악이나 자녀의 직업세계 탐색, 사회생활에 필요한 능력등에 관한 체계적인 지도를 하고 있지 못하고 있다. 자녀의 의사를 무시하고 부모가 생각하기에 괜찮은학교 혹은합격위주로 점수에 맞추어 대학만 들어가면 된다는 생각이다. 그 결과 대학생들이 되어서 10명중 3명이 자퇴나 휴학을 하고 대학 졸업 후 다른 분야로 취업을 하기도 한다. 이렇게 사회적 낭비가 엄청나는데 이 비용을 조금이라고 줄이면 학생들의 본인의 사회진출에도 도움이 되고 가정경제에도 도움이 될 것인데 부모님들은 그것을 잘 모르는 것 같다. 자녀들이 아직 어린 경우, 직업이니 진로 같은 얘기가 현실적으로 피부에 와 닿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부모들은 아이들이 어릴 때 진로교육이 왜 필요한가를 생각하여야 한다. 인간의 발달에도 여러가지 단계도 있듯이 수십년동안 직업생활을 하기 위한 자녀의 올바른 진로발달을 위하여 초등학교단계부터 여러가지 단계가 있다.초등 학교 때부터 용돈관리를 하면서 돈이 무엇이고 직업생활이 무엇인가를 생각하여본 학생과 그렇지 않은 학생은 차이가 난다. 중학교 때 공부만 한 학생과 자신이 하고 싶은 분야에 가서 체험을 하거나 직업인을 만난 학생들은 틀린 것이다. 앞으로 자신이 무엇을 하였으면 하는 것을 아는 학생과 그렇지 않은 학생은 학교생활과 공부에 임하는 자세도 틀려지리라 생각한다. 자신이 무엇을 하고 싶은 지 모르는 학생들은 공부에 대하여 목표의식도 없이 마지 못해 하며, 이것 조금 저것 조금하다보면 갈팡질팡, 우왕좌왕하면서 시간과 많은 돈을 낭비하고 있다. 자녀들의 진로지도를 위하여 부모님들의 역할이 무엇보다 중요한 부분이다. 자녀가 잘하고 원하는 분야를 찾고 종사하게 하는 것은 부모의 의무라고 생각한다. 부모와 자녀는 같은 배를 탄 입장이다. 가수가 있으면 매니저가 있고 김연아선수뒤에는 코치가 있듯이 자녀의 진로를 위하여 코치와 매니저 역할을 하여야 한다. 학교에서 진로 교육을 잘 받는다고 하더라도 부모가 알고 있어야하며 자녀의 특성과자녀가 나가고 싶은 분야와 관련된 교육, 자격, 직업의 세계에 대해서 알고 있어야 한다. 자녀에 대하여 알려면 부모님의 평소에 자녀에 대한 관찰이 가장 기본이 되어야 하며 이를 보완하기 위하여 표준화된 검사이다. 예를 들면 직업흥미검사/직업가치관검사/성격유형검사/적성검사 등이다. 이러한 심리검사를 실시하는 곳은 인터넷(http://www.work.go.kr, http://www.careernet.re.kr, 각시도교육연구원 등)과 시군구 청소년 상담실, 노동부 고용지원센터 등이다. 부모는 자녀들에게 적어도 초등학교 때부터 이런 검사를 실시하고 그 결과를 차곡 차곡 모아 자녀의 진로를 결정하는데 활용할 수 있어야 한다. 이런 검사는 검사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검사 결과를 해석하고 상담을 받는 것이 중요하다. 다음으로 학생들이 직업에 대하여 많이 알지도 못하고 체험할 기회도 많지 않다. 부모님들은 아이들을 데리고 박물관 등을 데리고 다니면서 자녀의 직업적 체험기회를 증대하여야 할 것이다. 마침 교육인적자원부에서 5월 셋째주를 직업세계 체험의 주간으로 선정하고 있는데 학생들에게직업세계를 체계적으로 체험하게 하기 위하여 학부모들이 적극 지원하여야 하겠다. 부모님들은 자녀가 다니는 학교와1校 1社 직업체험의 날운영, 특강 및직업 설명회, 현장 견학 및 체험 기회 제공,직업 박람회 등 직업체험 행사 공동 개최 및 지원,학생들이 관심 있는 직업에 대한 면담 및 인터뷰 기회 제공,학교 교육과정과 연계된 직업종합체험실 운영,부모님의 회사 탐방의 날 등에 협조할 수 있을 것이다. 교사들은 이런 내용을 중심으로1:1 부모 면담이나 가정통신문 혹은 집합교육에서 이를 강조하여야 하겟다.
일본 정부가 초.중.고교에서 도덕 교육을 크게 강화하는 방안을 추진하고 있다. 일본 정부의 교육재생회의는 29일 총리실에서 학교교육을 맡고 있는 제1분과회를 열고 도덕 교육을 초.중.고교에서 모두 정식 교과로 채택하도록 한다는데 의견을 모았다. 교과명도 '덕육(德育)'으로 하자는 의견이 제기됐다. 도덕 교육은 현재 절대평가의 대상에서 제외돼 있으나 앞으로 대상에 포함시키는 방향으로 검토, 오는 5월 제출되는 제2차 보고서에 포함시키기로 했다. 일본의 학습지도요령에 따르면, 도덕 교육은 국어나 산수 등의 교과와는 별도의 영역으로 편성돼, 초.중학교에서 연간 35시간 교육토록 편성돼 있다. 수업에서도 정식 교과서가 아닌 부(副)독본이 사용되고 있다. 그러나 정식 교과로 채택되면 교과서 검정을 통과한 교과서의 사용이 의무화 된다. 교과서 채택은 법 개정이 필요하지 않고 지도요령 개정만으로 가능하다. 하지만 문부과학상 자문기관인 중앙교육심의회의 심의를 거쳐야 한다. 일본 정부의 이 같은 도덕 교육 강화는 교육 개혁을 정권의 주요 과제로 내세우고 있는 아베 신조(安倍晋三) 총리의 확고한 의지에 따른 것으로, 교육을 통해 공중도덕을 바로 세우고 애국심을 함양하기 위한 취지로 풀이된다.
29일 오후 2시부터 개최된 교총-교육부의 2006년도 상,하반기 제5차 교섭소위는 승진규정 개정, 스승의 날 변경 등의 쟁점 사항으로 서로 간에 험악한 말들이 오고가는 난타전이 벌어졌다. 여기서는 미 합의된 23개 항에 대한 교섭이 진행됐지만, 쉽게 결론이 나지 않았다. 김운념 교총부회장은 첫 인사말에서 “4월 교육감 회의에서 스승의 날 변경 계획을 논의한다고 들었다”며 최근 서울시교육청의 스승의 날 2월 변경 움직임에 대해 강한 유감을 표시했고, 백복순 교총 정책본부장도 “스승의 날 취지를 무시하고 2월로 옮길 바에야 아예 없애 버리는 게 낫다”고 말했다. 그는 또 “정부가 전교조 출신으로만 청와대비서관, 장관보좌관을 임명해 정책의 균형을 상실하고, 잦은 실,국장 교체로 일관성마저 잃고 있다”고 지적했다. 교원승진규정은 국가조직의 관리 운영사항으로 교섭협의 대상이 될 수 없다는 교육부의 입장에 대해 김동석 교총 정책교섭국장은 “그동안 해온 수차례의 합의는 뭐냐”고 반박한 뒤 “왜 의원보좌관, 농어민단체 대표들에게 교총, 전교조가 승진규정안에 합의한 양 말했느냐?”고 항의했다. 교육부 교원정책혁신추진팀장은 “홍문표 의원실에서, 오해하고 있는 입법예고안에 대해 설명하면서 ‘협의 절차 거쳤다’고 했지, ‘합의했다’고는 안했다”고 밝혔다. 김홍섭 학교정책국장도 “(교총의 항의 공문에 대해)이제 분명히 공식적인 자리에서 소명절차를 거쳤다”고 덧붙였다. 이에 대해 김동석 국장은 “홍문표 의원실의 보좌관로부터 ‘합의한 걸로 이해했다’는 답변을 받았다며, 본 교섭에서 다시 항의하겠다고 밝혔다. 이재완 교총 교섭위원이 “지금까지의 논의 상황들을 들어보니, 이러니 교육부는 없어져야 한 기관이라는 말이 나온다”며 교육부의 무성의한 정책 추진을 비판했다. 이에 대해 김홍섭 국장은 “교섭 파트너로서 문제 있는 발언”이라며 핏대를 세워 한동안 냉기가 돌았다.
외국에서 살아가는 재외국민의 교육을 담당하는 것은 우리민족의 정체성을 살리며 역사와 전통문화를 교육함으로써 외국에서 대한민국의 국민임을 자랑스럽게 생각하며 자부심과 긍지를 가지고 살아가도록 하는 막중한 임무요, 문화의 맥을 이어가는 교육을 담당하고 있는 것으로 안다. 그런데 한교닷컴(3.26일자) 기사에 의하면 『지난해 10월 재외 한국학교와 한국교육원에 교사 파견 중단 결정을 내린 교육부가 올해는 일반직 공무원을 한국교육원장에 보임하는 내용을 추진하고 있어 논란이다.』라는 기사를 읽고 교육부의 일반직 입지를 넓혀가더니 이제는 재외국민교육까지 법률을 바꾸어 교육원장을 하려는가 하는 느낌을 받았다. 이 기사에 의하면 재외국민의 교육에 관한규정을 대체하는 재외 국민의 교육 지원 등에 관한법률이 지난 1월 3일 제정돼 7월 4일 시행됨에 따라 교육부가 시행령 제정을 추진하면서 전개되는 상황이라고 한다. 폐지된 규정에는 교육공무원만 한국교육원장에 보임될 수 있었지만 제정된 법률에는 이 조항이 삭제되고 시행령에 이를 규정토록 했다니 재외국민교육도 교육자인 교원을 배제하고 일반직 원장이 차지하려는 의도는 재외국민교육의 본질을 훼손시키는 잘못된 발상이라는 것을 지적하고자 한다. 물론 재외국민교육원장을 일반직이 못하라는 법이 있느냐고 반문 할 수 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학교현장에서 학생들을 직접 가르친 경력이 있는 교원과는 상당한 거리감을 가지고 있다는 생각이다. 일반직 중에는 교육학을 전공 했거나 학위를 가진 사람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학교현장에서 학생들을 직접지도해본 경험이 없으면 재외국민 교육은 부실해 질 것이 뻔하다고 보기 때문이다. 법을 바꾸고 시행령을 정하는 업무도 일반직의 손에 있기 때문에 이러한 현상이 나타난다고 본다. 이런 논리로 나가다 보면 교원들은 학생들을 직접 가르치는 일만하고 교육행정 즉 관리하는 장(長)의 자리는 일반직 행정에서 맡겠다는 논리와 무엇이 다르겠는가? 교육과 관련한 장(長)의 자리는 행정만 하는 자리가 아니고 국운이 걸린 교육을 책임지는 자리이기 때문에 교육의 전문가인 교원이 맡아야 마땅하다는 당위성이 성립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시인들의 시를 읽다보면 시를 쓴 시인들의 마음이 보일 때가 있다. 봄바람에 밀려오는 향기처럼 소곤소곤 보일 때도 있고, 낯선 들판엔 선 고목처럼, 때론 잡초처럼 아픔으로 다가올 때도 있다. 그러면서 시인의 글들은 읽는 이에게 다가와 '넌 어때?' 하고 묻기도 한다. 시란 삶이고 인생이기 때문이다. 박정원의 시집 에 나오는 시편들에도 이러한 것들이 표출되어 있다. 시인의 전편엔 조금은 무거울 정도로 아픈 삶의 편린과 갈등, 화해와 용서를 찾아나서는 시인의 마음들이 처마의 날카로운 고드름처럼, 봄날의 새순처럼 돋아나 있다. 그래서 일면 어렵게 읽혀지는 듯싶으면서도 쉽게 공감을 하기도 한다. 떨어진 이파리 사이를 걷고 있는 개미 한 마리를 쭈그리고 앉아 한참 동안 내려다본다 그가 지나가야 할 길에 흙부스러기 한줌 뿌려놓는다 아랑곳없이 흙두덩을 에돌아가는 개미 발이 저려온다 나뭇가지를 올려다보니 또 한 마리의 개미가 나를 내려다보는데 불현듯 그에게 매달리고 싶다 내가 가려는 저쪽 길이 곧아 있더냐 휘어 있더냐 - 모두 우리네 삶의 길이란 게 미래의 한 지점을 명확하게 해놓고 가는 게 아니다. 자신이 정해놓은 길을 가다가도 어느 누군가가 흙부스러기를 뿌려놓아 다른 길을 갈 수밖에 없는 상황이 오기도 한다. 그러나 삶이란 무엇인가? 곧게 가든 에돌아서 가든 멈출 수 없는 게 인생이다. 그것이 굴곡지든 반듯하든 말이다. 그래서 시인은 개미를 바라보다 개미에게 매달리고 싶다고 한다. 스스로의 길을 찾지 못한 자신의 길이 시인은 참담하고 암울했는지 모른다. 허면 왜 시인은 이렇게 시 전편에서 한탄조의 말을 뱉어내고 있을까. 그가 지니고 있는 무언가에 대한 절망감 때문이다. 꺾은 장미를 화병에 꽂아놓은 이튿날 저녁 화병 속의 물이 모두 사라졌다 잘라내려는 가위의 힘보다 잘리지 않으려고 버티던 힘이 체면보다도 더 집요하게 물고 늘어지던 끈끈함이 여기저기 화병 속 밑바닥에 눌어붙어 있다. 살려고 바동거린 마지막 혈흔이리라 꽃보다 가시 색깔이 더 짙은 것으로 보아 피맺힌 절규는 저리 시뻘겋다 못해 날카롭다 여기기까지 내 길의 끝인가 알기라도 한 듯 목 떨군 향마저 깊다 죽음도 힘이 필요한 걸까 그러쥐었던 꽃대궁 색깔 또한 검붉은데 (……) - 의 앞부분 그의 시편에는 삶에 대한 안간힘, 절규, 그리고 의지가 행간 곳곳에서 드러난다. 사실 살아감에 어찌 삶의 향긋함만이 있을 수 있을까. 바람도 있기 마련이다. 그 바람 중에는 삶을 송두리째 꺾으려는 바람도 들어있다. 사람들은 그 거세고 야박스런 세상살이 바람에 꺾이지 않기 위해 발버둥치기도 하고 안간힘을 쓰기도 한다. 체념이나 절망보다도 더 집요한 끈끈한 그 무엇으로 말이다. 그러다 안도의 한숨을 쉬기도 한다. "일단은 모가지 당할 일은 면했다고 / 트럭에 실린 배추처럼 웃으며 / 떨어져 나간 어둠을 잠시 잊는다"('어둠의 맛' 중에서) 시인은 시집을 내면서 첫머리에 '한 줄 내 인생에서 그만 잘라내고 싶었던 지난 5년이었다'라고 말하고 있다. 무엇이 그를 그렇게 어둠 속에 가두어 놓아 잘라내고 싶었을까. 모가지 잘린 배추가 되어 트럭에 실려 가는 동료들을 바라보면서 그는 무엇을 생각했을까. 자신도 곧 그 배추처럼 밑이 잘리고 목이 잘려 어디론가 끝없는 어둠 속에 내동댕이쳐질지 모른다고 생각했을 것이다. 다만 지금은 아니라는 생각에 잠시나마 어둠을 잊고 소주 한 잔을 들이켰을 것이다. 그러면서 생각한다. 모든 것은 물이라고. 예리하지 않고서는 견뎌낼 수 없는 오기였다 가장 약한 것이 가장 강하다는 것을 증명하기 위하여 밤마다 처마 밑에서 울던 회초리였다 거꾸로 매달린 세상을 볼 수밖에 없었던 날카로운 송곳이었다 냉혹하게 자신을 다스릴수록 단단해지던 회한이었다 언제 떨어질까 위태롭다고들 했지만 그런 말들을 겨냥한 소리없는 절규였다 복수하지 마세요 그 복수의 화살이 조만간 내게로 와 다시 꽂힙니다 절 마당엔 노스님이 가리키던 동백꽃 하나 투욱, 지고 이쯤에서 풀자 내 탓이다 목이 마르다 처마 끝에서 지상까지의 거리를 재는 낙숫물 소리 결국엔 물이었다 한 바가지 들이켜지 않겠는가 - 모두 시인에게 삶은 송곳처럼 예리하고 단단한 고드름 같은 것이다. 누군가와 싸우기 위해 자신을 냉혹하게 단련시킨다. 그러나 그 단단함 속에 스며드는 햇볕은 송곳의 예리함을 가진 고드름을 물로 만든다. 그러면서 '결국엔 물이었다'고 고백한다. 그럼 물이란 무엇인가. 사랑과 용서다. 단단하고 날카로운 고드름을 만든 것은 물이다. 물이 날카로운 고드름을 만들었다가 다시 원래의 모습인 물로 돌아온다. 결국 삶이란 이기겠다고 해서 이기는 것이 아니고, 지겠다고 해서 지는 게 아니다. 억울함에 복수하고자 하나 결국 복수의 칼날이 자신에게 돌아옴을 안다. 따라서 고드름이 물이었듯 사랑과 용서도 결국은 하나라는 소리이다. 박정원의 시 전편에 흐르는 물줄기는 '아픔'이다. 절망이다. 그리고 무언가에 대한 미움이다. 하지만 그것들을 직접적으로 토로하진 않지만 사람살이에 대한 상처들이 고스란히 스며있다. 그리고 그 속에 용서라는 뿌리를 진한 어둠 속의 등잔불처럼 깜박인다. 그리고 그 안엔 자신에 대한 성찰이 수반되어 있다. 그런 면에서 시인의 시편들엔 아픔을 바라보며 이겨내고자 하는 시인의 마음이 한 바가지 물이 되어 다가옴을 볼 수 있다.
한국교총에서 28일 발표한 ‘2006년도 교권회복 및 교직상담 활동실적’에 따르면 학생ㆍ학부모의 부당행위로 인한 교권침해 사례가 갈수록 증가하고 있다. 보도에 의하면 교총에 접수된 학교안전사고로 인한 피해는 33건으로 2005년 대비 21% 감소한데 비해 교권침해사건은 발생건수 179건 중 학생ㆍ학부모에 의한 부당행위 피해가 89건으로 2005년에 비해 71%나 증가한 것으로 나타났다. 이 같은 사실을 증명이라도 하듯 학부모가 교사를 폭행하는 사건이 최근 잇따라 발생하고 있다. 경기도의 중학교에서는 많은 학생들이 지켜보고 있는 가운데 학부모에게 폭행당한 교사가 입원 치료중이다. 강원도의 초등학교에서는 수업중인 교사가 복도로 끌려나와 머리채를 잡힌 채 수차례 뺨을 맞았다. 어떤 일이든 원인이 있을 것이다. 교사가 하는 일에도 잘못이 있을 수 있다. 그렇다고 해도 도저히 있어서는 안 될 상식 밖의 일들이다. 하도 어이없는 일이라 소식을 들으면서 말문마저 막힌다. 아이들을 가르치고 있는 입장에서는 차라리 듣지 않았더라면 속이라도 편했을 이야기다. 하지만 어쩔 것인가? 지금 이 시간 신성해야 할 교육현장에서 먼 나라에서나 있을 법한 일들이 벌어지고, 남의 이야기가 아니라 나도 당사자가 될 수 있는 슬픈 이야기가 교육계의 현주소라는 것 때문에 우울하다. 교사와 학부모 사이에는 귀여운 아이들이 있다. 무슨 원한감정이 있을 수도 없다. 그런데 왜 부부가 합세해 뺨을 때리고 핸드백으로 머리를 가격하는 것도 모자라 몸을 피한 빈 교실까지 쫓아가 폭행하고, 5년이 지난 이야기가 잘못 전해졌다는데도 수업하던 아이들이 비명을 지를 만큼 폭력을 행사해야 하는지 모르겠다. 교권이 어느 수준에 와있으면 학교폭력으로부터 아이들을 보호해야 할 교사에게 학부모가 폭력을 행사할까? 요즘 발생한 일련의 일들이 교원 경시풍조에서 비롯되었다면 문제는 심각하다. 폭행당한 교사들이 허탈해하는 교육현실을 직시하고 교권이 총체적으로 붕괴상황에 직면했다는 말에도 귀 기울여야 한다. 아이들은 부모의 눈높이에 맞추게 되어 있다. 학부모가 교사를 좋게 평가하면 아이는 교감을 나누며 열심히 공부한다. 학부모가 교사를 나쁘게 평가하면 아이는 불신하며 불평만 일삼는다. 그래서 자식을 진정으로 사랑하는 학부모는 아이 앞에서 교사에 대한 칭찬을 아끼지 않는다. 국민들은 교직을 개혁 대상으로 내몰며 교원들의 위상을 추락시킨 결과가 지금 어떻게 나타나고 있는지를 되돌아봐야 하고, 교원들은 ‘승진점수에 매달리며 권위만 내세우는 교사들의 책임도 무시할 수는 없다’는 지적을 되새겨봐야 한다.
신학년에 학교를 옮기게 되었다. 10여명의 소인수 학급에서 30명이 넘는 5학년의 담임을 맡게 되었다. 그런데 교실공간은 소인수 학급이나 다인수 학급이나 똑같은 공간이 주어진다. 처음이라 그런지 아이들 책상이 교사의 턱밑에서부터 교실 뒤까지 가득한 것에 적응이 잘 안된다. 그리고 아이들이 하루 종일 너무나 좁은 공간에서 친구들과 부딪치며 스트레스를 받고 있었다. 하루종일 지루하게 딱딱한 의자에서 아침부터 오후까지 지내야 하는 아이들을 생각하니 비좁으면 비좁은 대로 좀더 다양한 공간구성이 필요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나 교실 공간이 한정 되어 있으니 공간 구성을 다양하게 하는데는 한계가 있었다. 그래서 쉬는 시간에는 자리에서 한번씩 일어나도록 하고 2시간씩 블록 수업을 하면서 2교시 후에는 시간을 많이 주어 바깥 놀이를 할 수 있도록 해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또 교실 환경판 구성도 유동적으로 하여 매일 바뀌는 날씨를 기록하게 하거나 아이들이 꾸며가는 학습판이나 학급소식란을 두어도 좋다는 생각이 들었다. 쉬는 시간에 운동장을 내다보니 학생수에 비해 터무니없이 좁은 운동장에 한꺼번에 많은 아이들이 나와 놀고 있었다. 그것도 대부분 점심시간에 축구하는 고학년 남학생 차지다. 또 그 축구팀도 여러 팀이 한꺼번에 실시하여 한 운동장에 두세팀의 축구팀이 엉켜있다. 저학년 학생이나 여학생들은 특별히 야외에 놀 공간이 없어 교실에서 소란스럽게 뛰거나 한다. 숲속의 놀이터같이 키 큰 나무 그늘에서 나무의 정기를 받으며 뛰어노는 아이들의 웃음 소리를 들을 수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 생각해 보았다. 필자의 선입견인지 몰라도 몇 개의 학교를 옮겨 다니다 보니 학교마다 아이들의 문화가 고유한 전통과 특성을 가지고 있다는 걸 알 수 있었다. 교내에 키 큰 나무들이 많고 늘 푸른 나무나 숲을 볼 수 있는 학교의 아이들은 정서적으로 많이 안정되어 있고, 아이들끼리의 다툼도 적었다. 그러나 그렇지 못한 학교의 아이들은 왠지 산만하고 소란하며 아이들끼리 싸움도 훨씬 잦았다. 자연 속에서 자라나는 아이들은 정서가 풍부해지고 스스로 자연치유 효과로 마음이 아름다워진다. 그러나 우리나라의 대도시 대부분의 학교가 과밀학급이며 교실 밖 야외 환경도 그다지 좋은 실정이 아니다. 학교에 숲이나 나무를 가꾸는 일은 당장에 눈이 보이는 효과도 없고 투자 비용도 많이 들고 장기적인 계획도 필요 하다. 그러나 교육적 투자를 아끼지 말아야 할 부분이 바로 학교에 나무를 많이 심어 사시사철 꽃이 피고 나무가 푸르고 무성한 자연친화적 환경을 가꿔야 한다는 생각이다.교육은 십년지대계라 했다. 장기적인 안목으로 학교 숲이 푸르게 가꿔지기를 빌어본다.
인간의 삶은 꿈을 세우고 이를 실천할 때 이루어진다. 1톤의 생각보다 1그램의 실천이 중요하다는 말이 새삼 떠오른다. 한강을 헤엄쳐서 건널 수 있다는 의지만 가지고 있다고 해서 한강을 건널 수는 없는 일이다. 이를 위하여 체력을 기르고 지속적인 수영 실력을 키우는 훈련을 해야 한강을 건널 수 있다. 천리길도 한 걸음 부터라는 속담도 새겨둘만하다. 우리 모두 성공하기를 기대한다. 그러나 모두 성공적인 삶을 살지느 못한다. 마찬가지로 성공할 수 있다는 열망과 의지가 있다고 모두가 성공할 수 있는 것은 아니며, 꿈을 꾼다고 행복과 성공이 우리에게 다가오지는 않는다. 무엇보다도 자신의 성공을 이루기 위해서는 물론 꿈을 꾸고 의지를 분명하게 가져야 한다. 그리고 그 꿈을 이루기 위한 계획을 세우고 실현 가능한 훈련과 노력이 있어야 하는데, 이를 뒷받침하는 가정의 노력과 이를 점검하고 격려하는 선생님이 없이 스스로 알아서 성장하는 아이들은 그렇게 많지 않다. 이런 점에서 선생님은 훌륭한 격려자이다. 가능한 모든 생활 전반에서 자녀 스스로가 상당히 많은 부분을 스스로 계획 세우고 실천하도록 기회를 주어야 한다. 때로는 실패를 맛보게 하며 그것을 계기로 다시 일어설 수 있는 계기가 마련되기도 한다. 이번 도쿄에서 열린 피겨스케이팅에서 김연아 선수는 동메달을 획득하면서 우리들에게 기쁨을 선물하였다. 이대회 금메달리스트 안도는 지난 번 올림픽 대회이후 은퇴를 계획하기도 하였으나 실패를 극복하기 위하여 피나는 노력을 한 결과 재기를 한 것이다. 이처럼 실패가 없었다면 이번 대회 금메달도 없었을 것이다. 우리 아이들이 실패하지 않고 모두 완벽하기를 바라며,언제까지나 학부모나 교사가 매니저로 있다면 아이들은 의존성이 커져 스스로 실력을 발휘할 기회를 놓치게 될 것이다. 우리 부모들이 모두 빠져있는 함정인 너무 생활에 찌들리게 학력만을 위하여 쥐어짜기 보다는 우리 아이들에게 보다 더 넓은 세계를 볼 수 있는 기회가 되도록 여행도 떠나게 하는 것도 아주 의미있는 일이다. 무엇보다도 자기 인생을 자기가 책임지고 살아야 한다는 자각을 갖게하는 기회 제공이 필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