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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해 태어나는 출생아 수가 간신히 20만 명대에 머무르는 시대이다. 전 세계적으로 한국처럼 극단적인 출산율 감소로 유소년 인구가 급감한 전례는 없었다. 이러한 상황에 부닥쳤음에도 교육계가 별다른 목소리를 내지 않는 것은 믿기 어렵다. 우리에게 있어 학령인구 감소는 유례없는 위기이자, 고질적인 체제 개선을 위한 기회이기도 하다. 학령인구 감소는 이미 현실이며 막을 수 없다. 미래에는 더 심각해질 뿐이다. 지금이라도 이 흐름에 맞춰 대응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교육계의 미래는 물론 한국의 장래도 밝지 않다. 학생수가 급감하면 학교 통폐합이 활발해진다. 이는 비단 지방에 국한한 얘기가 아니다. 이미 서울의 학교도 매년 통폐합이 이루어지고 있고 올해는 처음으로 일반계 고등학교 1개 교가 폐교되었다. 초등학교와 중학교의 학령인구 감소가 고등학교 정원에도 드디어 영향을 미치기 시작했다는 증거이다. 서울의 학교 통폐합 속도는 점차 빨라질 것이며, 지방에서 관찰되는 학교 통폐합보다 더 큰 사회·경제적 문제를 수반할 것이다. 학생수와 학교수가 급감하면 교원 채용 역시 어려워질 수밖에 없다. 교직의 큰 장점 중 하나가 사학연금을 포함한 공적연금의 안정적 수혜인데, 신규교원이 급감하면 연금의 안정성을 보장할 수 없다. 연금에 의존하는 인구는 급증하는 반면, 납입할 수 있는 인구는 빠르게 감소하기 때문이다. 법정 정년을 채우지 못하고 떠나는 교원의 명예퇴직은 미래에 당연하게 여겨질 수 있다. 직업의 안정성이 떨어지면 우수한 교원을 확보하는 것이 더욱더 어려워진다. 더 나아가 학생·학교·교사가 모두 급감하면 시·도교육청은 앞으로 줄어들 교부금 문제에서 절대 자유로울 수 없다. 이러한 상황임에도 교육계가 이렇다 할 목소리를 내지 않고 있는 것은 심각한 문제이다. 우리는 손 놓고 가만히 있어야 하는가 학령인구가 감소한다고 하여 우리는 손 놓고 가만히 있어야 하는가? 현행 추세라면 머지않아 많은 학교들이 없어져도 이상하지 않다. 이렇다 할 자원 하나 없는 분단국가가 선진국 반열에 들어서기까지 교육이 크게 기여했다는 사실에는 이견이 없을 것이다. 그렇다면 한국은 학교가 없어도 밝은 미래를 장담할 수 있는 것일까? 절대 장담할 수 없다. 한국의 미래는 교육에 달려있다. 교육이 굳건해야 반도체와 자동차도 꾸준히 잘 만들 수 있고, 초고령사회나 기후변화와 같은 사회적 위기에 제대로 대응할 수 있다. 교육부와 교육청은 한시라도 빨리 폐교를 지양하고 교원을 지속적으로 충원해 「헌법」에서 보장하는 모든 국민이 교육받을 권리를 지켜줘야 한다. 학령인구가 급감하고 있음에도, 교사 1인당 학생수는 여전히 OECD 평균 수준에 미치지 못한다. 경제 논리에 초점을 두고 제정한 해묵은 지침에 따라 기계적으로 학교를 통폐합하는 것이 더 이상 당연시되지 않는 사회를 먼저 만들어야 한다. 교육부와 교육청은 그 누구보다도 학교 통폐합과 교원 채용에 비판적으로 접근해야 한다. 재정적 가성비만 고려해서는 안 되며, 현 시국을 기회 삼아 학교 통폐합에만 나설 것이 아니라 이를 잘 활용하여 한국 교육의 질적 발전을 도모하는 데 주력해야 한다. 무분별한 폐교는 이미 기력이 쇠할 대로 쇠한 지방의 마지막 생명유지 장치를 떼어내는 것과 다를 바가 없다. 이를 간과한 채 한국의 가장 중대한 국가적 이슈인 인구감소·지방소멸·초저출산·초고령화를 논의해 봤자 현실적인 대안이 도출될 리 만무하다. 지자체별로 많게는 1억, 적게는 기백만 원의 출산 및 양육지원금을 보조한다고 해도 당장 아이들이 다닐 학교가 없다면, 그 지역에 미래가 있다고 말하기 어렵다. 정부가 아무리 많은 양질의 직업을 만든다고 한들 아이가 다닐 학교가 없다면 부모는 그 지역으로 이주할 수 없다. 한국 인구의 절반이 거주하는 수도권도 이 점에 있어서는 여느 지방과 다를 것이 없다. 지역상황을 고려하여 마련해야 한다 인구 규모에 따라 수도권과 비수도권의 학교 통폐합이 다른 양상으로 나타날 것인바 이에 대한 대응책도 지역상황을 고려하여 마련해야 한다. 소규모 인구가 산재하여 있는 농촌·어촌·산촌지역은 이미 학교 통폐합이 많이 진행되었다. 한편 수도권을 중심으로 한 ‘경부선’ 라인의 인구밀집지역은 이제 시작인 셈이다. 대규모 학령인구를 품고 있는 지자체가 그만큼 감소폭 또한 클 수밖에 없는 구조이다. 수도권 내에서도 서울보다는 학교와 학생수가 절대적으로 많은 경기지역(성남 분당구, 용인 기흥구, 화성시, 남양주시 등)이 취약하며, 서울 내에서도 강남구와 송파구의 학령인구가 가장 큰 폭으로 감소할 것으로 예상된다. 경부선에서도 영남권보다는 수도권 학령인구가 더 큰 폭으로 감소할 것이다. 초저출산과 초고령화를 비롯한 한국의 인구문제는 전 세계 많은 인구학자가 눈여겨보고 있을 정도로 심각하다. 다른 어느 선진국도 우리와 같은 상황에 부닥쳤던 적이 없었다. 그렇기에 다른 어느 누군가가 대안과 해결책을 제시해주기를 바라서는 안 된다. 당장 무엇이라도 할 수 있는 의사결정권자가 앞장서야 하며, 이에 교육부와 교육청은 기계적인 학교 통폐합을 지양하고 국민이 받아들일 수 있는 현실적인 대안을 강구해야 한다.
인터넷 미디어를 활용한 교원의 활동이 확대되면서 교육부가 2019년에 마련한 ‘교원 유튜브 활동 복무지침’을 ‘교원 인터넷 개인 미디어 활동 지침’으로 변경해 2022년부터 적용하고 있습니다. 해당 지침에 대한 사항을 알아보도록 하겠습니다. ● 적용 대상 : 유·초·중등 모든 교원 ● 인터넷 개인 미디어 활동 : 본인이나 다른 사람의 콘텐츠(영상·음성·사진·글 등)를 네이버 TV나 블로그, 아프리카 TV, 유튜브, 다음 브런치 등 인터넷 플랫폼의 개인 계정에 탑재해 불특정 다수의 인터넷 이용자와 공유하고 상호 소통하는 일체의 행위 ※ 유의사항 - 원격수업 등 수업활용 목적의 콘텐츠를 제작해 공개 범위를 제한해 탑재하는 경우에 해당되지 않음. - 업무의 일환으로 콘텐츠를 제작해 인터넷 플랫폼 공공 계정에 탑재하는 활동은 해당되지 않음. ● 준수사항 : 국가공무원 복무·징계관련 예규 등에서 교원에게 적용되는 사항 동일 적용 가. 직무상 알게 된 비밀 누설 금지 나. 공무원으로서 품위 유지 다. 정당 결성이나 가입, 특정 정당이나 특정인에 대한 지지·반대 행위 금지 라. 직무능률을 떨어뜨리거나 공무에 부당한 영향을 끼치거나 국가 이익과 상반되거나 정부에 불명예스러운 영향을 끼칠 우려가 있는 행위 금지 마. 학생 및 동료 교직원 등이 등장하는 콘텐츠 공유로 타인의 초상권 침해행위 금지 바. 학생평가의 공정성에 부정적 영향을 초래하는 콘텐츠 탑재 금지 ● 겸직허가 - 인터넷 플랫폼에서 수익이 발생하고 이후에도 계속 활동을 하고자 하는 경우에는 겸직허가 신청을 하여 승인을 받아야 함. - 소속 기관장(학교장)에게 개인 미디어 채널별로 겸직허가 신청 - 겸직 신청 대상에 해당되면 새로운 콘텐츠 게시 전에 신청 - 겸직허가기간은 허가일로부터 1년 이내를 원칙으로 하되, 전보 등 소속기관 변경 시 변경 기관에 재신청 필요 인터넷 개인 미디어 활동 지침 QA Q. 근무시간 중 교사의 개인 일상을 담은 유튜브 영상 촬영은 가능한가요? A. 교원은 근무시간 중에 직무에 전념할 의무가 있으며 직무능률을 떨어뜨릴 행위를 해서는 안 되므로 원칙적으로 금지됩니다. 다만 소속기관이나 교육부·교육청 등의 요청에 따라 업무의 일환으로 촬영하는 것은 가능하며, 학교장에게 사전 보고하는 것이 필요합니다. Q. 인터넷 개인 미디어 활동 시, 물품이나 금전을 받고 직·간접 광고를 하거나 후원 수익을 취할 수 있나요? A. 공무에 부당한 영향을 끼치거나 정부에 불명예스러운 영향을 끼칠 우려가 있는 행위로 판단돼 금지되어 있습니다. Q. 겸직허가 대상이 아닌 인터넷 개인 미디어 활동 시 제작한 콘텐츠에 학생이 등장할 경우 초상권 동의를 받아야 하나요? A. 겸직허가 여부와 무관하게 초상권 동의를 받아야 합니다. 겸직허가를 받기 전에는 동의서를 사전에 받아 보관해두고, 겸직허가를 신청하는 경우에는 촬영 및 초상권 활용 동의서를 겸직허가 신청서에 첨부해 제출해야 합니다. 또한 영상이나 사진 탑재 시에는 출연자의 동의를 받았음을 자막 처리 등으로 명시해야 합니다. Q. 유튜브 영상에 촬영 및 초상권 동의를 받지 않는 학생이 등장한 채 탑재돼 있으면 어떻게 해야 하나요? A. 학생의 신분이 특정되지 않도록 인물을 불투명 처리해 다시 탑재하거나 해당 콘텐츠를 삭제해야 합니다. Q. 콘텐츠를 상당 기간 탑재하지 않고 계정을 유지하며 댓글만 관리하는 경우에도 계속적으로 활동을 하는 것으로 보아야 하나요? A. 계속 활동에는 콘텐츠 게시뿐만 아니라 댓글 작성, 계정 유지 등 일체의 활동을 포함하고 있습니다. Q. 가족이나 지인 등 타인이 개설한 인터넷 미디어에 출연하거나 기획 등 운영에 참여한 경우에도 겸직허가를 받아야 하나요? A. 교원이 직접 개인 미디어 계정을 개설하고 운영하는 것이 아니라면 ‘인터넷 개인 미디어 활동’에 포함되지 않습니다. 그러나 타인이 개설한 미디어에 기획·출연하고자 한다면 영리업무이거나 비영리업무일지라도 계속성이 있다고 판단되는 경우에 겸직허가를 받아야 합니다.
불법행위에 대해 법적분쟁을 시작하거나 경고할 때, 우리는 흔히 상대방에게 ‘민·형사상 책임을 묻겠다’라는 말을 쓴다. 그리고 이러한 법적분쟁을 마무리할 때에도 합의문에 ‘민·형사상의 이의를 제기하지 않는다’라고 적는다. 법을 잘 몰라도 이를 보면 불법행위에는 크게 민사책임과 형사책임이 뒤따른다는 것을 짐작할 수 있다. 그렇다. 불법행위자는 자신의 불법행위로 인한 피해자의 손해를 배상하여야 하고(민사책임), 그 행위가 범죄인 경우에는 국가로부터 형벌을 받을 수 있다(형사책임). 얼마 전 건물 8층에서 소화기 두 개가 연달아 아래로 떨어져 건물 앞에 서 있던 고등학생과 50대 행인이 크게 다치는 사건이 발생했다. 3.3kg와 1.5kg의 소화기를 건물 밖으로 던진 범인은 놀랍게도 만 12세의 초등학생이었다. 피해자 가족들은 이 같은 사실에 매우 황당해했다. 가해자가 초등학생이므로 제대로 책임을 물을 수 없을 것이라는 볼멘소리도 나왔다. 이렇듯 연소자로부터 불법행위를 당하면 피해자는 난감하다. 아무리 가해자가 연소자라도 손해배상은 받아야 할 터인데, 피해자는 누구에게 어떻게 민사책임을 물어야 할까? 이는 학생을 보호·감독하는 교원과도 관련될 수 있으므로 이번 호에서 자세히 살펴보고자 한다. 미성년자의 불법행위에 대한 민사책임 사람이 태어나 온전한 권리·의무의 주체로 성장하기까지는 오랜 성장시간이 필요하다. 그때까지 미성숙한 연소자를 미성년자라고 하며 보호한다. 민사상 미성년자는 만 19세 미만의 자로 정하고 있다. 「민법」은 불법행위를 한 미성년자에 대한 민사책임을 제한한다(제753조). 「민법」 제753조(미성년자의 책임능력) 미성년자가 타인에게 손해를 가한 경우에 그 행위의 책임을 변식할 지능이 없는 때에는 배상의 책임이 없다. ● 미성년자가 불법행위 책임을 변식할 지능이 없는 경우 특정 행위의 책임을 분별하여 알 수 있는 지능이 없는 미성년자는 피해자에게 손해배상을 하지 않아도 된다. 즉, 민사책임을 지지 않는다는 것이다. 이때 그 행위의 책임을 분별하여 알 수 있는 지능을 갖추었는지는 해당 미성년자를 두고 개별적으로 판단하므로 일률적인 연령 기준을 말할 수는 없다. 하지만 실무적으로는 대개 만 13~14세 전후에서 나눠지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그렇다면 만약 위 규정에 의해 미성년자에게 배상책임이 없다면, 피해자는 누구에게 손해를 배상받아야 하는가? 「민법」은 이 부분을 보충하기 위해 미성년자의 법정 감독의무자 책임을 인정한다(「민법」 제755조). 「민법」제755조(감독자의 책임) 제1항 다른 자에게 손해를 가한 사람이 제753조 또는 제754조에 따라 책임이 없는 경우에는 그를 감독할 법정의무가 있는 자가 그 손해를 배상할 책임이 있다. 다만 감독의무를 게을리하지 아니한 경우에는 그러하지 아니하다. 여기서 법정 감독의무자는 일반적으로 미성년자의 친권자, 즉 부모를 말한다. 그러므로 미성년자가 「민법」 제753조에 따라 민사책임을 지지 않는다고 하면 미성년자의 부모가 미성년자 감독의무를 게을리하지 않았다는 것을 증명하지 않는 한 피해자에게 손해배상을 해야 하는 것이다. 이때 부모의 감독의무는 미성년자의 생활 전반에 대한 것이므로 부모가 이를 게을리하지 않았다는 점을 증명하기는 어렵다. 만약 학교에서 학생에 의한 불법행위가 발생한 경우에는 학교장·교사에게도 민사책임이 발생할 수 있다. 학교장과 교사는 학교에서 부모를 대신하여 학생을 감독하는 지위에 있는데, 「민법」 제755조 제2항은 이와 같이 법정 감독의무자를 대신하여 미성년자를 감독하는 사람에게도 책임이 있다고 규정하고 있다. 「민법」 제755조(감독자의 책임) 제2항 감독의무자를 갈음하여 제753조 또는 제754조에 따라 책임이 없는 사람을 감독하는 자도 제1항의 책임이 있다. 관련 사례를 살펴본다. 어느 초등학교에서 학생들 간에 집단괴롭힘 사건이 발생했다. 피해학생은 가해학생들로부터 수개월 동안 이유 없이 폭행 등 괴롭힘을 당했고, 스트레스 장애 등의 증상에 시달리다 결국 자살에까지 이르게 되었다. 가해학생들은 당시 만 12세의 초등학교 6학년 학생들로서 자신의 행위로 인한 법률상 책임을 변식할 능력이 없는 자로 판단되었다. 이에 피해학생의 부모는 가해학생들의 부모 외에도 학교장과 교사에게도 책임이 있다며 지방자치단체를 상대로 민사소송을 제기했다. 결과는 지방자치단체의 패소였다(대법원 2005다24318 판결). 폭행이 대부분 학교 내에서 이뤄진 점, 담임교사가 평소 학생들의 동향 등을 면밀히 파악하지 않은 점, 폭행이 적발된 후에도 미온적으로 대처한 점, 이후 특별한 조치를 취하지 않은 점 등이 인정된 결과였다. 다만 학생에 대한 교사 등의 보호·감독책임은 학교 내에서 학생의 모든 생활관계에 미치는 것이 아니고, 학교 교육활동 및 이와 밀접 불가분의 관계에 있는 생활관계로 한정하였다. 나아가 그 의무범위 내의 생활관계라고 하더라도 사고가 학교생활에서 통상 발생할 수 있다고 하는 것이 예측되었거나 예측할 수 있었던 경우에만 책임을 진다. 그러므로 학교 내 집단따돌림으로 인한 학생 자살사고가 발생하였고, 교사에게 집단따돌림을 감독하지 못한 과실이 있더라도 교사가 자살을 예견할 수 없었다면 자살에 대해서는 책임이 없다(대법원 2005다16034 판결). ● 미성년자가 불법행위 책임을 변식할 지능이 있는 경우 미성년자가 그 행위의 책임을 분별하여 알 수 있는 지능이 있는 경우(이하, 책임능력이 있는 경우라고 함)에는 미성년자가 불법행위에 따른 손해배상책임을 진다. 따라서 보통 고등학생 정도가 되면 자신의 행위로 인한 손해배상책임이 인정될 수 있다. 문제는 미성년자의 대부분이 스스로 손해배상책임을 질 수 있는 경제적 능력이 없다는 것이다. 따라서 피해자로서는 경제적 능력이 있는 그 감독자에게 민사책임을 묻고자 할 것이다. 미성년자가 책임능력이 있는 경우에 「민법」 제755조의 감독자 책임을 물을 수는 없다. 자칫 피해자 구제의 공백이 생길 수 있는 부분이다. 법원은 이 문제를 감독자에게 일반 불법행위 책임(「민법」 제750조)이 인정될 수 있는 것으로 다루고 있다. 하지만 적용법조와 법리가 달라지면서 차이가 발생한다. 미성년자가 책임능력이 없는 경우(제755조)에는 감독자 측에서 감독의무를 게을리하지 않았다는 것을 증명해야 하지만, 미성년자가 책임능력이 있는 경우(제750조)에는 피해자가 부모나 교사의 보호·감독의무위반 사실과 사건 발생과의 인과관계를 증명하여야 한다는 점이다. 민사소송에서 증명은 고도의 개연성을 증명하여야 하고, 이에 이르지 못한 경우 증명책임이 있는 자의 불이익으로 돌아가므로 이러한 차이는 재판의 승패에 큰 영향을 미친다. 형사책임이 없는 형사미성년자 형사상 미성년자의 나이는 민사상 미성년자의 나이(만 19세 미만)와 다르다. 「형법」 제9조는 형사미성년자를 만 14세 미만의 자로 규정하고, 이에 해당하는 자는 형사처벌하지 못하도록 했다. 또한 만 19세 미만의 소년에 대해서는 일반 형사절차와 다른 특별한 절차를 두고 있는데, 바로 「소년법」에 의한 소년심판이다. 「소년법」은 소년이 건전하게 성장하도록 돕기 위한 것으로 「소년법」상 보호처분은 소년의 장래 신상에 어떠한 영향도 미치지 않는다. 물론 전과기록도 남지 않는다. ● 만 10세 미만 행위 시를 기준으로 만 10세 미만은 소년심판 대상도 아니다. 따라서 만 10세 미만의 교화는 사법적 기능이 아닌 교육적 기능에 전적으로 맡겨져 있다. ● 만 10세 이상, 만 14세 미만, 이른바 촉법소년 행위 시를 기준으로 만 10세 이상, 만 14세 미만의 자는 형사미성년자로서 형벌 대상은 아니나, 소년심판의 대상은 되므로 이 점에서 만 10세 미만과 구별된다. 이른바 촉법소년이다. 「소년법」상 보호처분은 다음과 같다. ● 행위 시 만 14세 이상, 보호처분 시 만 19세 미만 행위 시 만 14세 이상, 보호처분 시 만 19세 미만의 자에 대해서는 형사처벌도 가능하고, 「소년법」에 의한 보호처분도 가능하다(택일). 마치며 연소자는 자신의 불법행위 책임을 분별하여 알 수 있는 지능이 있는지에 따라 민사책임(손해배상)을 지고, 만 14세에 이르렀는지에 따라 형사책임을 진다. 누군가가 보기에는 부당할 수도 있다. 특히 형사책임과 관련해서는 형사미성년자의 나이를 낮추자는 목소리가 거세다. 아이들의 범죄가 끔찍해지고 잔인해졌다는 것이다. 만약 이것이 사실이라면 먼저 그 원인이 어디에 있을까 고민해 봐야 할 것이다. 아마 아이들 탓으로만 돌리기는 어려울 것이다. 과거보다 아이들의 지적·신체적 능력이 훨씬 향상되었다고 하지만, 해체된 가정이 많아지고, 저급한 사회문화가 확산된 것도 사실이기 때문이다. 연소자의 범죄를 줄이기 위해서는 다양한 원인에 대한 해결 노력이 뒷받침되어야 할 것이다.
코스모스·국화·쑥부쟁이·구절초 등 가을꽃과 붉게 물든 단풍으로 눈길 머무는 곳마다 가을이 내려앉은 10월엔 기념일도 많다. 10월의 대표적 계기교육인 국군의 날·개천절·한글날 이외에도 학생들과 함께 생각해볼 날들이 많다. ● 국군의 날(10월 1일) 국군의 날이 되면 학교에서는 위문편지를 쓴다. 위문편지의 역사는 길다. 조선총독부가 1937년 학생들에게 쓰도록 한 게 시작이다. 지난 1월 서울의 한 여고생이 쓴 위문편지로 시끌벅적했다. 시대착오적 문화라는 지적도 있지만, 여전히 국군 장병을 위로하고 국방의 중요성을 생각하는 시간이라며 긍정적으로 평가하기도 한다. 중요한 것은 쓰는 사람의 자발성이며, 이것을 끌어내는 것은 계기교육의 힘이다. ● 노인의 날(10월 2일) 최근 젊은층에 확산된 틀딱·연금충·할매미 등 ‘혐로(嫌老;노인혐오)’ 정서가 심상치 않다. 혐오행동은 노인이 아닌 그 어떤 세대가 하더라도 불쾌감을 준다. 만약 노인들의 어떤 행동들이 혐오스러운지 이야기하면서 노인과 혐오행동을 분리할 수 있다면, 경로효친·노인공경까지는 아니더라도 비아냥거리며 혐오하는 갈등은 조금 줄어들 수 있지 않을까. ● 개천절(10월 3일) 개천절하면 단군신화만 떠올리기 쉽다. 하지만 개천절의 의미가 새롭게 부각된 것은 1919년 대한민국임시정부가 일제의 거센 탄압에 맞서 민족의 단결력을 높이기 위해 공식 국경일로 지정하면서부터이다. 개천절은 우리나라 5대 국경일 중 하나이며, 약 4350년 전 우리민족의 기원이 되는 단군신화에 등장하는 하늘 신의 아들 환웅이 하늘을 열고 인간세상으로 내려온 날이다. ● 중앙절(10월 4일) 3월 3일, 5월 5일, 7월 7일, 9월 9일처럼 홀수가 겹치는 날을 중일(重日) 명절이라고 한다. 이중 음력 9월 9일을 가리켜 중앙절이라고 한다. 중앙절은 중국에서 유래한 명절이며, 시기적으로 국화가 만발할 때이므로 국화주·국화전을 만들어 먹는다. ● 세계한인의 날(10월 5일) 영화 미나리는 아메리카 드림을 꿈꾸며 미국으로 떠난 한인의 삶을 그리고 있다. 우리나라는 세계열강들의 식민지개척시대인 1860년대, 중국·일본·하와이 등으로 이주하기 시작했고, 일제강점기 때는 사할린 등으로 강제 이주당했다. 1960년대 이후에는 매년 수만 명의 한인이 미국·캐나다·유럽 등으로 보다 나은 삶을 위해 조국을 떠났다. 세계한인의 날은 현재 전 세계에 퍼져 있는 750만 재외동포가 한민족으로서의 긍지와 자부심을 갖고 살아갈 수 있도록 2007년부터 매년 10월 5일로 지정했다. ● 세계 호스피스·완화의료의 날(10월 8일) 아름답고 멋진 인생을 위한 수식어는 웰빙(Well-being)에서 웰다이닝(Well-dying)으로, 지금은 웰에이징(Well-aging)으로 바뀌고 있다. 호스피스 완화의료란 임종이 임박한 환자와 가족의 고통을 완화시켜, 마지막 순간까지 인간답게 죽음을 맞을 수 있도록 위안·안락을 베푸는 의료서비스이다. 우리나라는 2017년 8월부터 10월 둘째 주 토요일을 ‘호스피스의 날’로 지정하고 있다. ● 재향군인의 날(10월 8일) 재향군인의 날은 제1차 세계대전이 끝난 것을 기념하고 전사자들을 추모하기 위해 만든 날이다. 우리나라는 1961년 5월 8일에 세계향군연맹의 회원국으로 가입했고, 2002년부터 10월 8일로 기념일을 변경하였다. ● 한글날(10월 9일) 말은 시간적·공간적 제약을 받는다. 말을 하는 그 시간, 그 공간에 있지 않으면 들을 수 없다. 이런 제약을 극복하기 위한 것이 글자이다. 한글이 창제되기 전 우리에겐 말은 있었으나, 글자가 없었다. 한글은 지식·정보·생각을 전달할 수 있는 수단이 되었고, 이로 말미암아 일상생활은 물론 눈부신 문화발전을 이룰 수 있었다. 한글 창제의 고마움을 마음에 새기며, 한글과 국어발전을 다짐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 임산부의 날(10월 10일) 임산부는 우리 모두가 보호하고 배려해야 할 대상이다. 특히 많은 사람이 함께 이용하는 대중교통은 임산부들을 금방 지치게 한다. 생명의 소중함은 임산부들의 어려움을 공감하고 배려하는 마음에서부터 시작할 수 있다. 임산부의 날이 10월 10일인 이유는 풍요와 수확을 상징하는 10월과 임신기간 10개월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 정신건강의 날(10월 10일) 몸이 아플 때 병원을 찾아 몸상태를 살피듯, 마음이 힘들 땐 마음건강·정신건강 상태를 확인해야 한다. 22017년 「정신건강복지법」에 따라 법정기념일로 제정되었다. ● 체육의 날(10월 15일) 건강한 몸에 건강한 정신이 깃든다. 일상회복으로 올해는 운동회·체육대회 등을 실시하는 학교도 많아졌다. ‘체력은 국력’이라는 말처럼 국민 체력 향상을 위한 각종 체육행사와 올림픽의 이상을 구현하기 위하여 지정한 날이 체육의 날이다. ● 문화의 날(10월 15일) ‘문화의 날’은 매년 10월 셋째 토요일, ‘문화가 있는 날’은 매달 마지막 수요일이다. 두 날 모두 일반인들이 보다 쉽게 문화를 접할 수 있도록 지정한 날이다. 특히 문화가 있는 날은 전국 주요 ▷국·공립 박물관 ▷미술관 ▷고궁 등을 무료로 관람할 수 있다. ● 부마민주항쟁(10월 16일) 1979년 10월 부산·마산지역을 중심으로 유신독재에 반대하며 벌인 부마민주항쟁은 4·19혁명, 5·18 민주화운동, 6·10민주항쟁과 함께 한국 현대사에서 민주이념을 계승한 민주항쟁의 하나로 평가받고 있으며, 2019년 국가기념일로 지정되었다. ● 경찰의 날(10월 21일) 1945년 10월 21일, 미군정청 산하 경무국이 창설된 이래 경찰은 건국·구국·호국의 역할을 충실히 해오고 있다. 최근에는 국민과 더욱 친근해지며, 사회의 기강을 확립하고 질서를 유지하는 등 경찰의 임무를 확대하고 있다. ● 국제연합일(10월 24일) 우리나라와 유엔의 인연은 1947년 미국이 유엔총회에 한국의 독립문제를 안건으로 제출하면서 시작되었고, 정부수립과 6·25전쟁 등 현대사의 주요 고비마다 직·간접으로 영향을 미처 온 UN은 우리나라와 70년 역사를 함께 하며 관계를 더욱 공고히 하고 있다. ● 금융의 날(10월 25일) 1960년대의 ‘저축’은 개인의 미래를 대비하는 방편일 뿐만 아니라 우리나라 경제발전의 원동력이었다. 하지만 저성장 국면에 접어든 지금은 저축의 중요성보다 투자·소비 장려로 내수 활성화를 꾀하고 있다. 정부는 2016년부터 시대적 분위기를 반영하여 저축의 날을 금융의 날로 이름을 변경하였다. ● 독도의 날(10월 25일) 독도의 날은 아직까지 국가기념일이 아니다. 현재까지 어떤 조례에도 독도의 날에 대한 조례는 없다. 대한제국 고종황제가 1900년 10월 25일 독도를 울릉도의 부속 섬으로 제정한 일을 기념하기 위해 민간단체인 독도수호대가 지난 2000년 제정했다. 그러나 일본에서는 다케시마의 날이 있다. 이날은 명량 해전이 있던 날(10월 26일)과 하루 차이가 난다. ● 교정의 날(10월 28일) 교정(矯正) 보호시설은 경찰·검찰·법원과 함께 4대 형사사법기관 중 하나이다. 과거에는 재소자를 처벌한다는 관점이 많았으나, 최근에는 재소자의 사회적응력을 길러 건전한 시민으로 사회에 복귀하게 한다는 관점이 더욱 강조되고 있다. ● 지방자치의 날(10월 29일) 우리나라 지방자치는 역사적 흐름에 따라 부침이 심했다. 1949년 처음 「지방자치법」이 제정됐지만 한국전쟁 발발로 무산되었고, 4·19혁명으로 지방자치제도가 출범했지만 5·16 군사정변으로 지방의회마저 해산되는 등 고난을 겪었다. 1987년 6월 민주항쟁을 통해 1991년 지방의회 선거, 1995년 지방자치단체 선거 전면 실시라는 결실을 맺으며 지방자치제도가 부활할 수 있었다. 지방자치의 날은 지방자치제 부활을 위한 헌법이 제정된 1987년 10월 29일을 기념해 제정한 법정기념일이다. ● 회계의 날(10월 31일) 회계는 사업의 가장 기본적 도구이다. 때문에 회계 정보는 ‘정확’하고 ‘투명’해야 한다. 회계의 날은 회계 투명성의 가치와 중요성을 국민에게 널리 알리고 회계 분야 종사자들의 활동을 장려하기 위해 2021년부터 법정기념일로 정했다.
전 세계적으로 유아교육의 중요성에 대한 인식이 높아지면서 정치적 의제로 부각되곤 한다. 중요한 가치를 가지는 일은 잘해야 할 가치도 있다. 국가마다 상황에 따라 저소득층 유아에 집중할 것인가, 모든 유아를 대상으로 할 것인가, 의무교육으로 할 것인가, 보편 무상교육으로 할 것인가를 비롯하여 유아를 위한 교육과정과 방법, 교사양성체제, 행·재정적 구조문제 등을 검토하여 새로운 시도를 하고 있다. 초등학교 입학연령을 당기거나 늦추는 것도 그러한 시도 중 하나라고 할 수 있다. 기존 학교체제를 활용함으로써 추가예산이 크게 들지 않을 것이란 계산이 정책자문 집단이나 정치인들에게는 매력적으로 여겨질 수도 있다. 그러나 이는 수많은 학부모와 교사뿐만 아니라 우리 아이들의 삶과 국가의 미래가 걸린 문제로, 충분한 숙고와 사회적 합의를 필요로 한다. 지난 7월에 발표되었던 ‘만 5세 초등학교 조기입학 교육정책(2022.7.29.)’은 비민주적인 절차상의 문제뿐만 아니라 유아기 발달특성에 대한 이해 부족, 경제 논리에 의존한 교육의 본질 간과, 돌봄공백과 사교육 증가로 인한 교육격차 심화 등에 대한 국민들의 우려로 철회되었다. 그렇지만 동일한 문제가 거듭되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는 세계 여러 국가에서 이루어진 학교 입학연령 관련 연구결과들을 분석하여 우리 사회에 필요한 교훈을 종합화하는 작업은 필요하다. 세계적 동향은 오히려 초등학교 입학연령을 늦추는 추세 먼저 세계적 동향을 살펴보면, 대부분의 국가는 우리나라처럼 6세에 초등학교 입학이 이루어진다. 영국처럼 4~5세인 경우도 있지만, 핀란드·스웨덴·스위스 등 교육시스템 및 성과가 우수한 국가들이 7세에 입학한다는 사실은 주목할 만하다. 서구 유럽국가들이 학업성취도 향상을 위해 초등학교 입학연령을 늦추는 추세에 맞춰 미국도 입학 기준일(cut-off date)을 1월 1일에서 9월 1일로 늦춤으로서 몇 개월 더 늦게 입학하도록 변경하였다(Dee Sievertsen, 2015; Dhuey, 2016). 실제로 6세의 상당수가 초등학교 입학을 지연하고 유치원 교실에 있으며, 생일이 입학 기준일에 가깝거나 발달이 늦는 경우를 비롯 남아·대도시·사회경제적으로 부유한 가정에서 더욱 그러한 경향을 보인다. 그렇다면 적절한 초등학교 입학연령에 관한 연구는 우리에게 무엇을 말해주는가? 일반적인 연구방법으로 부모의 선택에 따라 초등학교 입학을 1년 지연한 집단과 지연하지 않은 집단, 학년이 동일하나 생일이 다른 학생들, 연령이 동일하지만 학년이 다른 집단들, 특히 입학 기준일에 따라 생일이 하루 차이 나지만 학년에는 1년 차이가 있는 집단을 대상으로 한 횡단 혹은 종단연구가 있다. 물론 모든 연구는 제한적임을 유념해야 하고, 국외 연구는 해당 국가의 유아교육·보육의 질적 수준, 교육철학과 접근방식, 사회 제반 시스템과 문화·국가 경제력 등을 함께 고려하여야, 우리 상황에 적합한 교훈을 얻을 수 있음을 밝혀둔다. 먼저 입학 시 연령이 높은 것이 초등학교 1학년 때의 학업성취에 긍정적 영향을 주는가? 수많은 연구에서 ‘그렇다’고 말한다. 호주에서 1만 명 이상을 대상으로 한 최근 연구(Hanly et al., 2019)에서도 입학연령이 초등학교 학업성취에 영향을 주는 것으로 나타났다. 즉 생일이 한 달 빠를수록 모든 영역(신체건강과 행복감, 사회적 유능감, 정서적 성숙도, 언어 및 인지기능, 소통능력 및 일반 지식)에서 상위 25%에 들어갈 확률이 평균적으로 3%가량씩 증가하며, 1년 누적되면 그 효과가 상당하다는 것이다. 초등학교 입학 시 연령이 더 높은 학생들이 인지능력(Black et al., 2011; Herbst Paweł, 2016; McEwan Shapiro, 2008), 학습에 중요한 자기조절력과 사회적 행동(Datar Gottfried, 2015; Dee Sievertsen, 2015; Frazier-Norbury et al., 2015), 정신건강(Dee Sievertsen, 2015; Goodman, Gledhill, Ford, 2003; Morrow et al., 2012) 등에서 더 유리하다는 연구결과는 이미 누적되어 있다. 입학연령 효과가 시간이 지나면서 사라진다는 연구결과도 있다. 그러나 그러한 연구들은 횡단설계로 이루어졌다는 한계를 가진다. 이에 미국 NICHD 연구진(2007)은 900명의 K학년(5세)을 대상으로 종단연구를 실시하였다. 가정배경이나 개인차 요인을 통제하고도 연령이 더 높은 집단의 학업이 더 빨리 향상되어 우드콕-존슨(Woodcock-Johnson) 검사의 모든 하위영역(문자·단어 인식, 응용문제 해결, 문장 기억력, 그림 어휘력) 점수가 더 높았다. 또한 초등학교 3학년까지도 효과가 지속되어, 응용문제와 그림 어휘력을 비롯하여 교사가 평가한 언어 및 문해력, 수학적 사고 척도에서 더 높은 점수를 획득하였다. 이탈리아 연구진(Ponzo Scoppa, 2014) 역시 연령이 높은 집단이 연령이 낮은 집단보다 4·8·10학년의 학업성적이 훨씬 높았으며, 이러한 절대적 연령의 혜택은 시간이 지나도 사라지지 않음을 밝혔다. 더 나아가 초등학교 입학연령의 효과가 대학입학이나 성인기의 삶에도 영향을 미칠까 하는 점이다. 독일 연구진(Puhani Weber, 2007)은 6세 대신 7세에 초등학교에 입학한 학생들의 학업성취가 지속적으로 더 우수하였을 뿐만 아니라 대학진학을 목적으로 하는 중등학교(Gymnasium)로의 진학률이 12%나 더 높았다고 말한다. 미국과 캐나다의 데이터를 분석한 연구(Bedard Dhuey, 2006)에서도 동일 학년에서 연령이 어린 학생들의 대학진학률과 우수한 주요 대학에 입학하는 비율이 유의미하게 더 낮았다. 또한 생일이 각각 12월 31일과 1월 1일로 단 하루 차이 나지만 초등학교 입학 시기에서는 1년의 차이가 있었던 4만 5,000여 명의 데이터를 통계 분석한 브라질(7세 입학) 연구(Matta, Ribas, Sampaio, Sampaio, 2016)에 따르면 학교 입학이 1년 지연된 경우 대학입학·대학성적뿐 아니라 취업·임금 등에서도 긍정적 혜택을 얻었다. 엘리자베스 듀이(Elizabeth Dhuey, 2016)는 특히 남아의 경우 초등학교 입학연령이 한 달씩 늦어질 때마다 성인이 되었을 때 시간당 소득이 평균 0.6%씩 높아졌다고 밝혔다. 초등학교 조기입학은 누구에게 이득인가 그렇다면 초등학교 조기입학은 사회적 교육격차를 줄이고 형평성을 높이는가, 혹은 그 반대인가? 결론부터 말하면 의무교육을 시작하는 연령을 낮추는 것은 더 어린 시기부터 사교육을 조장하고 무한경쟁 속으로 유아들을 몰아넣을 뿐만 아니라 가정형편이 어렵거나, 발달이 느리거나, 문화적 경험이 부족한 아이들에게 더욱 가혹하다. 2008년 이래로 유아교육을 체계화한다는 명목으로 입학연령을 낮춘 영국은 가정의 사회경제적 지위·인종·성별 등에서 더 불리한 위치에 있는 학습자들에게 학습부진아 꼬리표를 일찍부터 달게 하여 교육격차를 심화시켰다(Bradbury, 2014)는 비판을 받았다. 입학지연이 부모의 교육수준이 낮은 저소득층 학생들에게 더 큰 효과를 준다는 연구결과(Altwicker-Hámori Köllő, 2012; Fredriksson Öckert, 2006) 역시 형평성 측면에서 현명한 판단을 내릴 것을 요구한다. 모든 교육정책은 누구에게 이득인가, 누가 심각한 손해를 입는가를 섬세하게 들여다보아야 한다. 입학연령 정책에 문제를 제기하는 전문가들과 유아의 행복을 지키려는 시민들의 반대운동에도 불구하고, 형식적 교육시기를 점점 앞당겨서 4세에 초등학교 교실(reception class)에서 딱딱한 책상에 앉아 학습하고 평가받게 하는 영국의 사례는 우리에게 타산지석의 교훈을 준다. 케임브리지대학교 화이트브레드(David Whitebread) 교수는 교육학·인류학·여성학·심리학·사회학·뇌과학 등 다양한 학문분야 등에서 형식적 교육의 이른 시작이 아동기뿐만 아니라 청년기와 성인기의 삶까지 미치는 부정적 영향에 대하여 수많은 증거(Whitebread, Jarvis, 2013)를 제시하며 진지하게 고려해줄 것을 정부에 요청했다. 이와 더불어 유치원 교육과정이 인지학습 중심, 교사 중심 접근으로 변하는 현상 역시 심각한 문제다. 하버드대학교 연구진들(Carlsson-Paige, McLaughlin, Almon, 2015)은 선행연구를 토대로 유아들에게 놀이 중심의 즐겁고 능동적인 교육경험이 아닌 교사 중심의 형식적인 읽기 학습을 시켰을 때 읽기 능력에 효과가 없다고 지적했다. 또 유능한 학습자로서의 정체성과 자신감을 저하시키고 정서적 불안감과 학업스트레스 등을 초래한다고 밝혔다. 요컨대 ‘얻는 것은 거의 없고, 잃는 것이 훨씬 더 많다(little to gain and much to lose)’라는 것이다. 유사한 맥락에서 뉴질랜드에서 실시된 연구(Suggate, Schaughency, Reese, 2013)에서는 초등학생을 대상으로 5세(일반학교)와 7세(슈타이너 대안학교)에 각각 형식적 문해교육을 시작했던 집단을 2년간 종단 연구한 결과, 초기에는 일찍 읽기학습을 시작한 집단이 유리하였지만, 2년이나 늦게 읽기를 배운 집단이 따라잡아 유창하게 읽게 되어 차이가 없어졌다. 더구나 중학교 때(7학년) 실시한 검사에서는 늦게 시작한 집단의 읽기 이해력이 오히려 더 뛰어났다. 유아기에 학습자 중심, 놀이기반 교육과정이 가지는 장점은 충분히 누적되어 있다. 심리학자 앨리슨 고프닉(Alison Gopnik, 2017)은 생물학적 진화과정에서 인간의 인지능력과 문화가 탁월할 수 있었던 것은 유아기의 자유로운 탐색, 더 폭넓은 가설 설정, 모방이 아닌 창의적 생성에 있다며 놀이기반 유아교육을 지지한다. 그는 다양한 실험을 통하여 유아들이 성인에 비하여 정보기억 등에서 더 뛰어날 뿐만 아니라 물리적·사회적 인과관계에서 패턴을 읽어내고 가설을 추론하고, 새로운 정보에 따라 수정하는 측면에서 더 유능하다는 점을 밝혀냈다. 즉 지시받은 목표에만 집중하며 기존 지식이나 신념에 의존하는 성인보다 유아는 정보를 훨씬 폭넓게 탐색하며 관계를 추론하고 합리적인 가설을 설정하거나 새로운 정보에 따라 수정해가는 강점을 가진다는 것이다. 결론적으로 유아는 보호받거나 관리되어야 하는 결핍된 존재가 아니라 웃고 뛰어놀면서 세상을 배우고 변화시켜가는 유능한 존재이며(이진희, 2022), 놀이는 유아기에 가장 자연스럽고도 의미 있는 배움의 방식이다. 초등학교 조기입학 논쟁의 교훈 오늘날의 어른들은 자신이 어렸을 때의 기억으로 미래를 살아갈 아이들을 그릇되게 준비시키고 있는 것이 아닐까? 착한 우리 아이들은 어른들이 시키는 대로 일찍 한글을 익힐 수도 있고, 한자나 영어단어를 외울 수도 있고, 꽤 어려운 계산을 해낼 수 있을지 모른다. 그러나 이 시기에 무엇인가를 할 수 있다고 해서 그것이 이 시기에 마땅히 해야 하는 것, 유아를 진정으로 위하는 것은 아니다. 지난여름, 그 뜨거웠던 초등학교 조기입학 논쟁은 어쩌면 우리 모두로 하여금 유아기에 가장 좋은 교육과 아이들의 미래 모습에 대하여 더 진지하게 토론하고 숙고하여 합의해가는 기회가 될 수도 있으리라는 희망을 품어본다. 세계경제포럼에 따르면 우리나라는 제4차 산업혁명에 대한 대응이 가장 부실한 국가 중 하나다. 변화에 대비하여 바람직한 방향으로 미래를 이끌어갈 교육의 방향성에 대한 논의도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고 있다는 지적은 뼈아프다(권귀염, 2017; 이선영, 2017). 주어진 지식을 습득하는 것은 공장식 대량생산 중심의 산업사회에서는 효율적이었을 수 있으나, 제4차 산업혁명 시대에는 아주 작은 것에 주목할 줄 아는 것, 통섭적으로 사유하며 새롭고 특별한 무엇인가를 만들어내는 것, 지구의 공동거주자 모두가 함께 행복할 수 있는 방법을 찾아가는 것이 더 중요하다. 이와 더불어 유아교육과 의무교육의 관계에 대한 재고가 필요한 시점이 됐다. 유아교육은 강제성을 가지는 의무교육이 아니라, 유아의 교육적 요구와 발달의 역동성, 학부모의 선택 권리, 교육의 자율성·다양성을 존중하는 동시에 접근성이 보장되어 누구든 그 혜택을 온전히 누릴 수 있는 무상교육이 적절하다. 무엇보다 유아교육을 학교교육을 위한 ‘준비’라는 편협한 도구적 시각으로 바라보면, 유아교육의 ‘학교화(schoolification) 현상’을 발생시켜 유아들과 유아교육과정 모두에 심각한 결과를 초래하게 된다(Moss, 2013/2017). 유아를 학교에 맞추어 준비시키는 것이 아니라, 학교가 유아의 특성과 요구에 맞추어 준비되어야 한다. OECD의 Starting Strong II 보고서(2006)는 기존 ‘학교교육 준비’ 중심의 관점을 버리고 유아교육과 의무교육 간의 ‘강하고 동등한 동반관계’를 구축할 것을 강조한다. 이를 위하여 유아교육과 의무교육의 관계자들이 함께 만나 마음을 열고 대화하고 공동으로 연구하면서 어린이에게 가장 좋은 교육을 만들어가야 한다. 학습자의 연속적 교육경험을 고려하지 않는 현재의 유·초 연계 절벽 교육과정(임부연, 2022)을 도외시하거나 ‘학교준비’라는 이름으로 유아교육을 학교화하여 유아들이 마땅히 누려야 할 행복한 놀이와 능동적 배움의 권리를 빼앗아서는 안 된다. 그보다는 유아교육의 학습자 중심 페다고지가 초등학교 저학년에 스며들어야 한다는 OECD(2006)의 제안을 진지하게 경청할 필요가 있다. 초등학교 조기입학문제가 일단락되었지만, 건강한 논쟁과 사회적 합의, 지혜로운 실천이 요구되는 문제들이 우리 앞에 산적해있다. 우리의 소중한 아이들, 새로운 미래를 살아갈 ‘어른보다 더 새로운 사람’을 위하여 어른들은 어떤 선택을 할 것인가? 다른 나라들이 겪었던 시행착오로부터의 교훈을 새기며, 우리는 어린이들과 함께 그들을 위한 세계를 만들어 나가야할 것이다.
며칠 전, 학교부적응 학생 몇 명과 학교 근처 산에 올랐다. 두런두런, 이런 얘기 저런 얘기, 힘들다고 징징거리는 녀석들을 어르고 달래며, 겨우겨우 산 정상에 올랐다. “우리 엄마랑 왔으면 분명히 ‘정신력이 어쩌고, 이런 거 하나도 어쩌고’, 그럼 또 저는 ‘그래서 안 온다니까, 억지로 끌고 왔잖아 어쩌고’…. 결국 싸우느라 정상에 못 왔을걸요. 쌤이랑 오니까, 처음으로 정상에 와 보네요.” “쌤도 딸이랑 왔으면 아마, ○○이 엄마와 똑같은 잔소리를 했을걸. 엄마들은 희한하지? 같이 학원 다니며 배우는 것도 아닌데, 잔소리가 비슷해. 그치?” “음, 쌤 잔소리랑 우리 엄마 잔소리랑 비슷한 건 맞는데, 조금 달라요. 음, 일단 기분이 나쁘지 않아요.” “아, 그래? 쌤 딸내미는 기분 나빠하던데? 얼굴에 딱 보여. 하긴, 쌤 딸도 학교 선생님 잔소리는 뭐라더라, ‘현실적인 조언’이라나? 나 참, 엄마가 하면 잔소리고, 선생님이 하면 조언이고. 쳇, 엄마는 너무 섭섭하다. 도대체 차이가 뭐야?” 딸들이 자라서 엄마가 되고, 엄마한테 배운 것을 아이에게 적용한다(물론 아들이 자라서 아빠가 되고, 엄마와 아빠에게 배운 것을 아이에게 적용한다). 학부모상담과 부모교육이 반드시 필요한 이유이다. 오은영의 요즘 육아 금쪽같은 내새끼의 수많은 ‘금쪽이’들이 부모의 변화에 놀라울 정도로 바뀌는 모습은 어쩌면 당연하다. 아이들은 부모에게 이해받고 사랑받기를 원하기 때문에 자신을 이해하고 사랑하려고 노력하는 부모를 향해 더 이상 분노감을 표출할 이유가 없기 때문이다. 교사들이 가장 힘들어하는 상담은 단연 부모상담이다. 특히 젊은 교사들은 ‘애도 안 키워봤으면서 뭘 안다고’라는 부모의 태도에 자신감을 상실하고 만다. 어떻게 대화를 이끌어 가야 할지, 어떻게 아이의 상황을 기분 상하지 않게 전달할 수 있을지, 막막해한다. 하지만 기죽을 필요 없다. 부모는 기껏해야 아이를 1명~3명 키웠지만, 교사는 (올해 갓 들어온 초임교사라도) 일 년에 적어도 25명 이상을 키우고 있으니 말이다. 이번 호와 다음 호에서는 학부모상담 요령을 살펴본다. 이번 호에서는 학부모상담을 성공으로 이끄는 상담전략을 알아보고, 다음 호에서는 학부모상담에서 흔히 빠지는 함정은 무엇이고, 함정에 빠지지 않기 위해서는 어떻게 정신을 바짝 차려야하는지 알아본다. 표현방법을 바꾸면 대화가 자연스러워 진다 학부모에게 학교는 지금까지 자녀를 어떻게 키웠는지, 그 결과가 지금 어떻게 나타나고 있는지 담임교사에게 확인받는, 즉 부모로서의 성적표를 받는 자리이다. 그래서 마음이 불편하다. 전투태세를 갖추고, 학교에 방문하거나 전화를 받는다. 담임교사가 우리 아이를 부정적으로 평가하면, 방어하기 시작한다. 그럴 수밖에 없는 상황을 설명하며, 변명해주기 바쁘다. 우리는 제법 잘 소통하고 있기 때문에 자신이 더 잘 가르치겠다며 선을 긋는다. 앞으로 잘 부탁드린다는 말로 서둘러 상담을 마무리한다. 반대로 담임교사에게 넋두리만 잔뜩 하고 가는 경우도 있다. 자신이 왜 아이를 이렇게 대할 수밖에 없는지 부모의 상황을 설명하며, 자기변명하기 바쁘다. 자신도 포기했으니, 학교에서 알아서 잘 교육해주기를 바란다며 학교에게 책임을 떠넘긴다. 어떤 경우의 학부모상담이라도 힘들기는 마찬가지이다. 물 흐르듯이 자연스럽게, 서로가 만족하는 학부모상담을 이끌어내는 것은 베테랑교사도 어려운 일이다. 한 달에 적으면 3~4번, 많으면 7~8번의 학부모상담을 하며 세운, 변하지 않는 원칙이 있다. 적어도 이 세 가지만 기억한다면, 학부모상담을 교사가 리드하며, 학생을 성장시키는 상담으로 성공할 수 있을 것이다. 첫째, 아이를 가장 사랑하는 사람은 부모이다. 둘째, 아이를 키우면서 부모는 혼내고, 달래고, 협박하고, 타협하고, 온갖 수단과 방법을 다 사용해 보았을 것이다. 셋째, 아이를 변화시키려면 부모의 도움이 반드시 필요하다. ● 어머니, ○○이가 애정결핍인 것 같아요. 어머니께서 더 많은 사랑과 관심을 주세요. 이 말처럼 잔인한 말이 없다. 한순간에 부모를 죄인으로 만들어 버린다. 부모인 내가 잘못 키워서, 아이가 이렇게 되었다는 성적표를 확인받는 순간, 당혹감·수치스러움·민망함 등 온갖 본능적 ‘쪽팔림’으로 머리가 하얘진다. 게다가 그것이 사실임을 알기에 더 고통스럽다. ○○이가 애정결핍인 것도 맞고, 이로 인해 우울·불안이 높아서 문제행동이 나타나는 것은 맞다. 하지만 표현방법을 조금만 바꾼다면, 대화의 흐름을 자연스럽게 이어갈 수 있다. “어머니, 사람마다 충분히 사랑받고 있다고 느끼는 크기는 다르잖아요. 받고 싶은 사랑의 방법도 다르고. 나는 남편이랑 함께 시간을 보내고 싶은데, 남편이 돈만 많이 벌어다 준다고 ‘내가 충분히 사랑받고 있구나’라고 느끼지 못하는 것처럼 말이에요. ○○이도 그런 것 같아요. 어머니께서 ○○이를 위해 열심히 사시고, 뒷바라지해주시는 것을 알지만, 그래도 뭔가 충분히 사랑받고 있다는 생각이 들지 않나 봐요. 그래서 서운하고, 섭섭한 마음이 들고. 이런 것들이 점점 커져서 우울해지고, 엄마와의 관계도 점점 멀어지고 있어요. 어머니께서 ○○이가 원하는 사랑의 방법으로 조금만 바꿔보시면 어떨까요? 제가 도와드릴 수 있을 것 같은데요.” ● 어머니, 아이를 혼낸다고 해결되지 않아요. 아이가 무엇을 원하는지 이야기를 들어주고, 이해하려고 노력하는 것이 중요하지 않겠어요? 이 말처럼 부아가 치밀어 오르는 말이 없다. 분명 ‘안 해봤겠어요. 다 해봤죠. 이것저것 다 해보고 안 되니까 혼냈겠죠’라고 속으로 생각했을 것이다. 처음부터 아이와 전쟁 치르듯 싸우는 집은 없다(물론 있다. 한술 더 떠서 일단 폭력부터 쓰고 보는 집도 있다. 하지만 그런 가정은 논외로 한다. 그건 아동학대이기 때문이다. 이번 호에서는 일반적인, 상식이 통하는 가정을 대상으로 하기로 한다). 타일러도 보고, 혼내도 보고, 협상을 해보기도 하고, 어르고 달래도 보고, 때려도 보고…, 온갖 방법을 해봤는데 안 되고 있을 뿐이다. 사실 학부모도 알고 싶다. 어떻게 하면 이 지긋지긋한 싸움을 끝내고, 아이와 편안하고 행복한 관계를 유지할 수 있을지. 이렇게 이야기를 이끌어보자. “어머니, ○○이에게 제일 화가 날 때가 언제일까요?” “제일 화가 나는 건 연락 없이 안 들어오는 거죠. 아예 전화도 안 받고, 카톡도 안보니까, 집에 들어오면 소리부터 지르게 되죠.” “혼날 짓했네요. 연락도 없이 집엘 안 들어오면 혼나야죠. 그런데 화가 나는 포인트가 연락 없이 안 들어오는 건가요, 전화를 안 받는 건가요, 걱정이 되는 건가요? 이 셋 중에 제일 화가 나는 게 뭘까요?” “글쎄요, 셋 다죠. 아니, 걱정되잖아요. 무슨 일이라도 생길까 봐. 그런데 연락이 안 되니까 화가 나고, 아무렇지도 않게 들어와서는 오히려 화를 내니까, 욱하고 성질이 나는 거죠.” “맞아요. 걱정이 되다가, 슬슬 화가 나죠. 막상 얼굴을 보면 걱정보다는 화가 먼저 튀어나오고. 엄마니까, 충분히 이해가 가요. 혹시 ○○이에게 엄마가 화가 나는 이유는 네가 무슨 일이 생길까 봐 걱정돼서라고 이야기해보셨나요?” “그럼요. 그럼 또, 자기를 못 믿는다고, 별걱정을 다한다고 성질을 내고.” “혹시 이렇게 말씀하신 거 아니에요? ‘야, 그렇게 밤늦게까지 돌아 다니다가 뭔 일 생기면 어쩌려고 그래? 정신이 있는 거야 없는 거야? 내가 아주 너 때문에 미쳐’ 이렇게.” “…” “이렇게 바꿔서 이야기해보세요. ‘널 못 믿는 게 아니야. 네 친구를 못 믿는 것도 아니고. 하지만 아이들끼리 노는 걸 보고, 혹시라도 나쁜 사람들이 해코지할까 봐. 무서운 세상이잖니. 아무 일 없을 확률이 더 높지만, 엄마라서 걱정이 되는 거야. 그러니까 적어도 어디에 있는지 알아야 무슨 일이 생겼을 때 엄마가 도와주러 갈 거 아니야?’라고. 이게 어머니가 걱정하시는 진짜 마음이잖아요. 아이들은 잘 몰라요. 함축되어 있는 부모의 마음을. 그저 들리는 단어 하나, 말 한마디에 상처받고 마음을 문을 닫아버리거든요. 혼날 짓을 하면 혼나야죠. 하지만 왜 혼나는지는 정확히 알아야죠. 본인이 이해가 되어야, 그 행동을 고치든 말든 하니까요. 저도 ○○이를 만나서 이야기하겠지만, 어머니께서도 ‘왜 그런 행동을 못 하게 하는지’ 설명해주시는 소통은 관계개선에 많은 도움이 될 것 같아요.” ● 어머니, ○○이가 학교에서는 이렇게 행동을 해요. 집에서는 어떤가요? 안에서 새는 바가지는 밖에서도 샌다. 학교에서 문제행동을 하는 아이가 집에서라고 모범적일까. 하지만 부모는 잡아뗀다. 엄마와 소통도 잘하고, 학교에서 일어난 일을 곧잘 이야기도 하고, 크게 힘든 일은 없다고. 그래서 처음부터 이렇게 운을 떼는 것이 효과적이다. “어머니, ○○이와 생활을 하다보니까 이런 모습이 종종 발견되더라고요. 아무래도 어머니께서 ○○이를 가장 잘 알고 계시니까 제가 도움을 좀 받고 싶어서요. 집에서도 이런 모습이 있는지, 이런 모습을 보일 때 어머니께서는 어떻게 반응하시는지 제가 정확하게 알고 있으면 ○○이를 상담하고, 교육하는데 많은 도움이 될 것 같아요.” “어머니, ○○이가 어렸을 때는 어땠나요? 아무래도 저는 지금의 모습밖에는 못 봐서요. 어머니께서 자세하게 설명을 해주시면 ○○이와 생활하면서 지도하는데 도움이 될 것 같아요.” 학부모와 교사는 이인삼각 파트너이다 체육대회에 빠지지 않는 경기가 ‘이인삼각’이다. 이 경기의 승부는 두 사람의 마음 맞추기에 달려 있다. 아무리 달리기를 잘하는 사람도 상대방과 마음이 맞지 않으면 다리가 엉키며 넘어지고, 다리가 묶인 나머지 한 사람도 넘어지게 된다. 학부모와 교사는 이인삼각 경기에 나선 선수와 같다. 두 사람이 마음을 합하지 않으면 학생의 성장을 이끌어내기 힘들다. 아이의 행동변화를 이끌어 성장시키기 위해서 학부모의 도움은 반드시 필요하다. 부모가 변해야 아이도 변하기 때문이다. 학부모상담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부모-자녀의 관계개선’이라고 생각한다. 실제로 많은 부모가 관계개선을 원하고 있지만, 아이가 먼저 변해야 가능하다고 말한다. 하지만 관계의 엉킨 실타래를 풀 수 있는 것은 아이가 아니라 부모가 먼저이다. 왜냐하면 부모는 이미 그 시절을 겪었고, 그때의 감정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 다만 알고 있으니까, 아이만큼은 경험하게 하고 싶지 않다는 마음이 앞서 갈등을 빚고 있는 것이다. 엉킨 실타래를 푸는 것은 여간 힘든 일이 아니다. 엉킨 실타래를 풀기 위해서는 마음을 차분히 하고, 어디서부터 꼬였는지 시작점을 찾는 것이 중요하다. 그리고 시간이 오래 걸리더라도, 천천히 인내심을 갖고 풀어야 한다. 어떨 땐 부모-자녀의 골이 너무 깊어 풀려고 애쓰기보다 과감하게 잘라내고, 다시 잇는 것이 좋을 때도 있다. 이럴 땐 모든 것을 담임교사가 해결하려고 하지 말고, 위클래스로 연계하거나 가족상담을 권하는 것이 최선의 방법이다. 늘 강조하듯, ‘연계’는 우리 반 아이를 다른 사람에게 떠넘기는 것이 아니라, 성장과 치유를 위한 적극적 연결임을 다시 한 번 기억했으면 좋겠다.
(고단샤 편집부 지음, 나정환 옮김, 루덴스미디어 펴냄, 144쪽, 2만7,500원) 우리 몸의 여러 구성요소를 시각화된 자료로 쉽고 재미있게 보여준다. 심장과 같이 알려진 장기들은 물론, 생소한 작은 기관과 세포의 구조, 몸이 아픈 이유, 알레르기의 원인 등 인체에 관한 이야기를 흥미롭게 풀어낸다. 일본 NHK 스페셜 ‘인체’와 협력해 만든 자세한 정보와 CG 그래픽이 강점이다. 일본에서 530만 부 이상 판매된 유명 도감 시리즈 중 하나다.
(사라 룬드베리 지음, 이유진 옮김, 작가정신 펴냄, 48쪽, 1만5,000원) 스웨덴 최고 문학상인 아우구스트상을 두 차례 수상한 사라 룬드베리의 여섯 번째 그림책이다. 주인공 노아와 엄마는 하루 종일 크고 작은 사고를 겪는다. 되는 일 없이 자꾸 잊고 잃어버리기만 해 스트레스가 가득 쌓인 하루지만, 둘이 함께해 특별한 추억으로 기억될 것이라는 이야기를 담았다.
(배민 지음, 반니 펴냄, 136쪽, 1만4,000원) 개인주의는 이미 많은 이들의 삶의 태도로 자리 잡았다. 과거에는 서양의 문화로 여겼지만, 이제는 우리에게도 이질적이지 않다. 문제는 개인주의를 바라보는 시각이 여전히 혼란스럽다는 점이다. 이기주의와 동일시하거나, 집단주의의 대안으로 여기는 경우가 적지 않다. 개인주의는 옳지도 그르지도 않다. 중요한 것은 올바르게 이해하고 삶에 적용하는 것이라는 메시지를 던진다.
(이다혜 지음, 창비 펴냄, 156쪽, 1만3,000원) 어른들은 청소년들에게 창창한 미래를 말하지만, 사실은 하고 싶은 것도, 되고 싶은 것도 뚜렷하지 않아 고민인 경우가 많다. 저자는 진로에 대한 고민이 깊은 청소년들을 다독이며, 자신의 특성을 돌아보게 이끈다. 이렇게 발견한 특성을 식물·우주·과학·스포츠 등 다양한 관심사와 연결해 새로운 재미와 진로를 찾아가도록 안내하는 내용이다.
윤흥길의 단편 기억 속의 들꽃은 중학교 교과서에 나오는 소설이다. 그런데 이 소설에 ‘쥐바라숭꽃’이라는 꽃 이름이 나온다. ‘해바라기를 축소해 놓은 모양의 동전만 한 들꽃’이다. 먼저 그 대목을 보자. 거대한 교각 바로 위 무너져내리다만 콘크리트 더미에 이전에 보이지 않던 꽃송이 하나가 피어 있었다. 바람을 타고 온 꽃씨 한 알이 교각 위에 두껍게 쌓인 먼지 속에 어느새 뿌리를 내린 모양이었다. “꽃 이름이 뭔지 아니?” 난생처음 보는 듯한, 해바라기를 축소해 놓은 모양의 동전만 한 들꽃이었다. “쥐바라숭꽃….” 나는 간신히 대답했다. 시골에서 볼 수 있는 거라면 명선이는 내가 뭐든지 다 알고 있다고 믿는 눈치였다. 쥐바라숭이란 이 세상엔 없는 꽃 이름이었다. 엉겁결에 어떻게 그런 이름을 지어낼 수 있었는지 나 자신도 어리벙벙할 지경이었다. “쥐바라숭꽃…, 이름처럼 정말 이쁜 꽃이구나. 참 앙증맞게두 생겼다.” 이 소설은 6·25 때 만경강 부근 피난민들이 지나는 마을이 배경이다. ‘나’는 피난민들이 떠나고 남겨진 고아 명선이를 우연히 집으로 데려온다. 어머니는 명선이를 박대하다가 명선이가 금반지를 내밀자 반색하면서 우리 집에서 살게 한다. 명선이는 영악하면서도 웬만한 텃세나 구박에 굴하지 않는 당돌한 아이다. 특히 부서진 다리 철근 위에서 위험한 곡예를 벌이는 것이 특기다. 그러나 비행기 폭격 후 정신을 차려보니 엄마가 자기 위에서 죽어 있어서 밀어낸 아픈 기억이 있는 아이다. 그래서 누군가 자다가 다리라도 올리면 비명을 지르며 깨어나고, ‘다른 것은 도무지 무서워할 줄 모르면서도 유독 비행기만은 병적으로 겁을 내는’ 아이였다. 명선이는 시간이 지나면서 다시 구박하기 시작하자 또 금반지를 내놓는다. ‘나’의 부모는 명선이가 금반지를 더 갖고 있을 것으로 확신하고 어디에 숨겼는지를 추궁하자 명선이는 집을 나가버린다. 이게 소문나면서 명선이는 금반지를 찾으려는 동네 사람들에게 발가벗겨지는 수모를 당한다. 이 과정에서 명선이가 ‘머스매’가 아니라 ‘지집애’라는 것과 서울 부잣집의 무남독녀였다는 것이 밝혀진다. 위에서 인용한 대목은 이런 일이 일어난 다음 ‘나’와 명선이가 부서진 다리의 철근 위에서 놀다가 꽃을 발견하는 장면이다. 그다음 대목은 이렇다. 또 한바탕 위험한 곡예 끝에 기어코 그 쥐바라숭꽃을 꺾어 올려 손에 들고는 냄새를 맡아보다가 손바닥 사이에 넣어 대궁을 비벼서 양산처럼 팽글팽글 돌리다가 끝내는 머리에 꽂는 것이었다. 다시 이쪽으로 건너오려는데 이때 바람이 휙 불어 명선의 치맛자락이 훌렁 들리면서 머리에서 꽃이 떨어졌다. 나는 해바라기 모양의 그 작고 노란 쥐바라숭꽃 한 송이가 바람에 날려 싯누런 흙탕물이 도도히 흐르는 강심을 향해 바람개비처럼 맴돌며 떨어져 내리는 모양을 아찔한 현기증으로 지켜보고 있었다. 쌓인 먼지에 뿌리내리는 쥐바라숭꽃은 전쟁 중에 홀로 강인하게 살아가는 명선이를 상징하는 꽃이다. 그런데 명선이 머리에서 꽃이 떨어지는 것은 명선이가 곧 좋지 않은 일이 생길 것을 암시하는 복선이다. 다시 다리 철근 위에서 놀던 어느 날, 명선이는 비행기 폭음에 놀라 한 송이 들꽃처럼 떨어져 죽는다. 명선이가 죽은 후 ‘나’는 다리 끝에 매달려있는 명선이의 헝겊주머니에서 금반지를 발견한다. 그러나 주머니째 강물에 떨어뜨리고 마는 것으로 소설은 끝난다. 기억 속의 들꽃은 이처럼 한 소녀의 죽음을 통해쟁의 비극을 보여주고, 전쟁이 야기하는 어른들의 비인간성도 고발하는 소설이다. 길지 않은 소설이지만 명선이, 나, 어머니, 아버지, 누나, 숙부 등 다양한 인물들의 심리변화가 장편처럼 섬세하게 그려져 있다. 쥐바라숭꽃은 개망초였을까? 그럼 쥐바라숭꽃은 실제로는 어떤 꽃일까. 아니면 어떤 꽃에 가까울까. 인터넷상에는 이 꽃이 어떤 꽃인가에 대한 다양한 견해들이 있었다. 쥐바라숭꽃은 ①교각 위 먼지 속에 뿌리를 내렸고 ②난생처음 보는 듯하고 ③해바라기 모양의 노란색이고 ④동전만 한 크기이고 ⑤대궁을 비벼서 돌릴 수 있는 들꽃이라고 했다. 이 다섯 가지 조건을 충족하는 꽃이 있을까. 먼저 떠오르는 꽃은 민들레다. 해바라기처럼 노란색이라는 점, 흙이 조금만 있어도 자랄 정도로 척박한 환경에서도 잘 자라는 점, 무엇보다 비빌 수 있는 대궁이 있다는 점 등을 그 근거로 들 수 있다. 그러나 민들레는 해바라기와 달리 갈색의 꽃 중심부(대롱꽃 다발)가 없다는 점에서 모양이 다르고, 꽃의 크기도 동전보다는 크다. 또 민들레는 흔하디흔한 꽃이어서 ‘난생처음 보는 듯한’ 꽃도 아닐 것이다. 요즘엔 토종민들레 대신 귀화한 서양민들레가 더 흔해졌다. 다음은 개망초다. 1984년 KBS에서 이 소설을 TV문학관 드라마로 만들었는데, 개망초로 쥐바라숭꽃을 표현했다고 한다. 척박한 땅에서도 잘 자라고, 꽃의 크기는 동전만 하다는 점에서 그럴듯해 보인다. 개망초는 공터 등 어디서나 흔히 볼 수 있는 풀이고, 꽃의 모양을 갖춘, 그런대로 예쁜 꽃이다. 하얀 꽃 속에 은은한 향기도 신선하다. 그러나 개망초는 결정적으로 꽃잎으로 보이는 혀꽃이 흰색이라는 점에서 쥐바라숭꽃일 수 없다. 더구나 너무 흔한 꽃이어서 난생처음 보는 듯한 꽃일 수도 없다. 노란 꽃이 피는 씀바귀 아닐까 생각해볼 수도 있겠다. 교각 위 먼지 속에 뿌리를 내릴 수 있고, 동전만 한 크기이고, 대궁을 비벼서 돌릴 수 있는 들꽃이기도 하다. 그러나 역시 전체적인 인상이 해바라기 축소판과는 거리가 있다. 줄기와 잎을 뜯으면 흰즙(유액)이 나오는 것이 씀바귀의 특징이다. 해바라기처럼 생겼다는 점에 방점을 두고 루드베키아(Rudbeckia)가 아니냐고 하는 사람들도 있다. 루드베키아는 북아메리카 원산의 꽃이다. 꽃 직경이 10∼12㎝이고 혀꽃은 노란색, 중앙부는 검은색 계통이라 해바라기와 비슷한 모양이다. 우리말로는 원추천인국이라고 부른다. 루드베키아가 해바라기와 비슷하게 생긴 것은 맞지만, 꽃이 동전보다 훨씬 크다는 점에서 쥐바라숭꽃일 수 없다. 또 키가 50㎝ 정도로 자라서 교각 먼지에서 자라기도 어려울 것이다. 확인해 보니, 만경강 근처에만 자라는 해바라기 닮은 특별한 꽃은 없었다. 결국 쥐바라숭꽃은 실재하지 않고, 작가가 상상 속에서 만들어낸 꽃인 셈이다.
(서울사범대부설학교 교사들 지음, 휴머니스트 펴냄, 248쪽, 1만8,000원) 코로나19는 교육공간뿐만 아니라 일상생활과 교우관계에도 많은 변화를 가져왔다. 특히 학습결손에 따른 교육격차는 심각한 사회적 문제가 됐다. 이 책은 이런 문제의식을 바탕으로, 초·중·고 교사들이 격차 해소를 위해 실천하고 고민했던 과정과 결과를 소개한다. ‘학생의 일상’에 초점을 맞춘, 소소하지만 의미 있는 교육활동을 살필 수 있다.
(이상완 지음, 솔 펴냄, 340쪽, 1만8,000원) 7가지 질문을 통해 뇌와 인공지능의 차이점과 유사점을 탐색한다. 언뜻 비슷해 보이지만 인간의 지능과 인공지능은 출발점이 다르다. 우리에게는 어려운 문제를 쉽게 풀어내던 인공지능이 때론 너무나 쉬운 문제도 풀지 못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가장 단순한 개념부터 지능의 최고 단계인 시공간 개념까지 아우르는 지능의 탄생 과정을 탐색한다.
(박제원 지음, EBS BOOKS 펴냄, 376쪽, 1만7,000원) 문해력은 글을 읽고 이해하는 것뿐 아니라 사진·동영상 등 다양한 매체정보의 신뢰도 확인까지 포함하는 능력을 말한다. 문제는 현대인에게 꼭 필요한 필수 역량임에도 점점 나빠지고 있다는 점이다. 문해력을 키우기 위해 학교에서 할 수 있는 일은 무엇일까? 과학적 읽기와 뇌과학의 이해, 비판적 사고를 통해 알아본다.
한양도성을 병풍으로, 부암동을 정원으로 안도 타다오(Tadao Ando)나 알바로 시자(Alvaro Siza) 같은 건축가가 선사하는 미친 공간감, 수십억 대 미술작품을 영접하는 흐뭇함, 이제라도 알게 될 작가들을 학습하는 지적 호기심, 곁들여서 교양미 충만 등등이 아마도 우리들이 박물관과 미술관에 기대하는 몇 가지일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라면 이곳은 기대할 것이 없다. 이곳에 유명한 것은 하나도 없다. 다만 사람이 있을 뿐이다. 그냥 사람. 문인과 무인, 그들이 짚고 다니던 지팡이와 어린아이, 김돌석과 박을녀가 저승 갈 때 타고 간 상여. 그들의 길에 함께 가는 친구 꼭두. 부록으로 재앙을 막아주던 해태 한 마리 등등. 이들은 지금 한양 도성 성곽의 호위 하에 부암동의 가가호호를 내려다보며 평화를 누리고 있다. 목인박물관 ‘목석원’가는 길엔 운동화가 필참이다. 길이 오르막이기도 하거니와 올라가다 석파정과 ‘유금와당 박물관’을 기웃거릴 수도 있고 목석원 관람 후 ‘윤동주문학관’이나 ‘청운문학 도서관’으로 떠돌 수도 있기 때문이다. 목인박물관 ‘목석원’은 2018년 개관하였다. 태평양에서 녹차사업을 전담하던 김의광 회장이 퇴직 후, 박물관 건립에 전념하여 인사동 ‘목인박물관’을 개관한 지 13년 만의 이전이었다. 김 회장은 이곳에 산책 나왔다가 그야말로 한눈에 반해버렸다. 사비를 털어 별다른 공사 없이 수집한 작품을 모두 입주시켰다. 방문한 이들은 하나같이 김 회장의 안목에 한 번, 실행력에 두 번 감탄을 쏟아냈다. 목인을 알리고픈 투사가 되어 모든 사람의 인생에는 삶의 방향등이 켜지는 어떤 순간이 있는 것 같다. 김 관장에게는 1970년대 초 외국인 친구가 우리 공예품을 모으는 것을 본 순간이었다. 당시만 해도 우리 것에 대한 자각 같은 것이 전무하여 수많은 공예품이 외국으로 쓸려나가던 시기였다. 이후 월출산 차밭에서 마주한 상여 나가는 모습은 운명의 신이 강림한 두 번째 순간이었다. 민속예술품을 찾아 헤매는 중독의 나날이 시작된 것이다. 목인 찾기의 여정은 고달픔의 연속이었다. 주로 중앙시장을 돌아다니며 목인들을 사들였다. 안 팔겠다는 여인상을 “박물관을 세우려고 한다”며 설득하고, 상여에 쓰이던 것이라며 꺼려하는 사람들에게 “귀신 쫓는 것이 이들이 하는 일”이라고 안심시키기도 하였다. 어쩌면 사람들이 멀리하는 물건들이었기에 값이 싸 월급쟁이 임에도 골동품들을 사 모을 수 있었을 것이다. 30년 넘는 세월을 우리나라 방방곡곡, 인도·네팔·티베트까지 헤매며 얻은 작품들이 8,000여 점에 이르렀다. 김 관장에게는 야심이 있었다. 우리가 가진 우리의 문화를 세계적으로 알리고 싶다는 야심이었다. ‘목석원’은 3,000평 규모의 야외전시장과 총 7개의 실내전시장으로 구성되어 있다. 이곳을 돌아다니다 보면 시간 가는 줄 모른다. 향로석을 살펴보고 사진 한 장. 눈을 부릅뜬 문인석과 무인석 옆에서 나도 눈을 부릅뜨고 친구와 또 한 장! 그러다가 깔깔깔 웃어도 본다. 마당이 넓어 아이들이 조금 재잘거려도 여느 미술관처럼 굳이 주의를 주지 않아도 된다. 극락으로 가는 길에 길동무 꼭두 목석원의 하이라이트는 목인창고 전시장이다. 상설전시는 ‘극락으로 가는 길: 상여(喪輿)’이다. 한국 전통 나무상여와 상여를 장식하는 천여 개의 목인이 전시되어 있다. 마당에서 발랄하게 웃고 떠들던 아이들도 이곳에서는 잠시 조용하다. 상여가 갖는 의미를 아는 아이들이다. 상여는 고려시대 이전부터 사용하였다고 한다. 당시에는 수레로 운구하였으나, 세종 때 국상에는 어깨에 메도록 바꾸었으며, 점차 일반인에게 퍼져나갔다. 백정이나 노비 등은 상여를 쓸 수 없다. 양인이라 해도 역병으로 죽는 경우 상여를 메지 않았다. 서민들에게는 상여 하나를 만드는데 드는 인력과 시간이 만만치 않으므로 마을에서는 각기 상여를 꾸며 몇 십 년 동안 공동 사용하는 것이 관례였다. 한 번 사용한 상여는 마을의 후미진 곳이나 언덕배기에 보관하였는데 이를 곳집 또는 상여집이라 하였다. 아이들이 얼씬거려 훼손할 것을 우려한 어른들은 그곳에 귀신이 산다며 단단히 주의를 주었다. 목재 상여는 화려한 단청에 조립식으로 되어 있다. 기본틀인 장강에 관을 올려놓을 수 있는 횡목을 끼워 만든다. 이때 다양한 모양의 나무조각으로 관을 장식하는데 이를 꼭두 또는 목우라 한다. 흔히 ‘꼭두새벽’이라 할 때의 꼭두와 유사한 제일 위쪽, 경계의 의미를 갖고 있다. 꼭두는 ‘일상적 시공간과 초월적 시공간을 연결하는 존재이며 길동무’이기도 하다. 마을 사람들은 모여 회의를 열었을 것이다 “길 안내는 말이나 용이 혀야재.” “암만~, 사악한 넘들이 올매나 많겄어! 호위무사는 꼭 있어야 혀.” “근디 허드렛일이 많을 것인디, 시녀도 함께 가야재.” “하이고~ 죽어서 호강함만, 근디 저승 가는디 을매나 슬프겄어, 줄타기 땅재주로 한바탕 재주를 부리먼 웃어불랑게!” 임무를 다한 꼭두는 태워져 저세상으로 함께 가야 한다. 다만 재사용되다 보니 이승에 남아 있게 된 것이다. 현재 남아 있는 꼭두는 주로 조선 후기와 일제강점기에 만들어진 것으로 추정된다. 목인창고 안에는 온갖 꼭두가 다 모셔져 있다. ‘호위무사’, ‘살판’, ‘어름’, ‘광대가족’. 모양과 눈초리 입매의 해학과 풍자가 김홍도를 뺨친다. 첩과 함께 있는 남편을 째려보고 있는 이는? 그렇다. ‘본처목인’이다. 미켈란젤로나 로댕도 아니면서 그들을 나무에서 해방시켜 살려낸 기적을 행한 이들은 그냥 동네에서 솜씨깨나 있는 농부, 장사꾼들이다. 망자를 보내는 따뜻한 마음이 바로 예술이지 싶어 보는 이의 마음도 따뜻해진다. 영원한 자유로 가는 문 ‘목샤(moksha)’, 멍때리는 터에서 멍때리기 인도사람들은 죽음을 이르는 말로 목샤(moksha)라는 말을 쓴다. 영혼의 해방 또는 구원, 영원한 자유로 가는 문이라는 뜻이다. 이곳은 누구나 모두 통과해야 하는 곳이다. 이승에서 건네진 위로와 해학으로 망자는 영원한 자유가 펼쳐지는 저승에 잘 도착할 것이다. 삶과 죽음은 이렇게 손을 잡으며 이어간다. 일군의 학생들이 너른 마당에 가득하다. 이들이 불러일으키는 활기와 에너지와 수다를 바라보다 죽음에 가까운 이곳에서 저토록 생동할 수 있나 싶은 생각이 든다. 아름다운 순간이다. 2021년 8월 목석원과 콜라보하여 기획전시를 펼친 콰야는 말한다. 목인에 담긴 이야기는 우리네의 지금 모습과 다르지 않다고. 목인창고를 나와 제주의 뜰·해태동산 등의 테마 존과 편백나무 옥탑방·GP전망대 등을 올라간다. 최고의 전망이다. 너와집 ‘명상의 공간’에서 명상하기, ‘멍 때리는 터’ 그물 위에 벌러덩 누워 보기를 권한다. 이 그물침대는 최근에 새로 등장하였는데 친구와 같이 누워 하늘을 바라보니 그야말로 ‘멍’해지는 최고의 시간이다. 잠시라도 휴대폰을 손에서 놓지 못하는 노모포비아(Nomophobia) 증후군 환자들에게는 최상의 치유장소가 될 것이다. 물론 아이들은 이곳에서도 휴대폰을 놓지 못한다. “그런데 왜 멍은 때린다고 하는 거지? 멍은 아무 생각이 없는 상태인데 그걸 때리면 멍이 깨져 버리지 않을까?”라는 생각을 하다 갑자기 “아! 나는 멍때리는 중이지!”하는 자각에 이르기도 한다. 이런 공간에 대한 체험 자체가 아이들에게는 숨통이고 사색이 될 것이다. 유물들을 설명해 주고 석상과 목인 그리기나 사진 콘테스트를 펼쳐도 좋겠다. 다만 뛰거나 장난치지 않도록 주의 줄 필요가 있다. 석물들이 많아 다칠 수도 있다. 예약 없이도 11시, 2시, 4시에 맞춰 요청하면 도슨트와 함께 할 수 있다. 가을 방문 필수! 정신 차리기 필수! 목석원에서는 모두 SNS에 올릴 사진 찍기에 바쁘다. 하지만 사진은 거기까지이다. 목석원을 에두른 파노라마 풍경 읽기는 사람의 눈으로만 가능하다. 목석원은 풍경이 작품이다. 노을 지는 시간에 관람을 마치면 5점 만점에 7점을 주고 싶다. 이런 순간이면 가끔 삶은 숭고해진다. 몇 시간을 돌다 보면 석물을 돌보는 흰머리에 풍채 좋고 인상 좋은 헤밍웨이풍의 노신사를 만날 수도 있다. 방문할 때마다 조금씩 인테리어가 바뀌는 이유이다. 관장님! 이라고 부르면 깜짝 놀라실까? 아, 참! 헤밍웨이는 노년에 탈모가 심하셨지! 여름철에 방문하려 한다면 모기기피제는 필수! 긴 바지와 긴팔 소매옷을 잊지 말아야 한다. 후유증이 오래간다. 가을에 방문 필수! 어쩌면 인왕산·북한산·한양도성이 만들어내는 환상적인 가을풍경에 빠져 길을 잃을지 모른다. 정신을 차려야 한다. 주차공간이 부족하여 대중교통이 더 편리하다. 숨찬 가슴으로 부암동 전경을 내려다보는 기쁨 두 배는 뚜벅이들에게 주어지는 특별선물이다.
시애틀은 톰 행크스와 영화 〈시애틀의 잠 못 이루는 밤〉, 현빈과 탕웨이가 주연한 영화 〈만추〉로 유명한 도시다. 스타벅스 1호점과 미국에서 가장 오래된 시장이 있는 곳이기도 하다. 먼저 시애틀 추장에 대해 이야기하자. ‘시애틀’은 워싱턴 주가 되기 이전 이 지역 원주민 인디언 추장의 이름이기도 하다. 1852년 미국 정부는 유럽에서 미국으로 건너오는 사람들이 늘어나자 이 지역에 거주하던 인디언 추장에게 땅을 팔 것을 요구하는 서신을 보냈다. 이에 추장은 “땅은 신성한 것, 하늘과 마찬가지로 팔고 살 수 없다. 땅은 사람의 것이 아니라 사람이 땅의 것”이라고 써서 답장했다. 당시 미국 14대 대통령 프랭클린 피어스는 이 편지에 감동해 그의 이름으로 도시 이름을 지었다고 한다. ‘시애틀’에는 ‘조정자’라는 뜻이 담겨 있다. 커피와 록의 도시 시애틀 시애틀에 들어서면 가장 먼저 커피 향이 여행자를 반긴다. 시애틀은 미국에서 커피로 가장 유명한 도시이자, 스타벅스가 처음으로 문을 연 도시다. 1971년 시애틀의 웨스턴 애비뉴에 처음 문을 연 스타벅스. 파이크 플레이스 마켓에 자리한 이 원조점은 1977년에 자리를 옮긴 것으로, 전 세계 스타벅스 중에서 가슴을 드러낸 갈색 인어로고를 달고 있는 유일한 가게다. 가게는 작다. 20평 남짓. 하지만 원조의 맛을 찾아온 전 세계 관광객들이 가게 밖까지 줄을 선다. 이른 아침부터 사람들이 몰린다. 아침 9시가 넘어 찾으면 적어도 20분은 기다려야 한다. 하지만 그다지 지루하지는 않다. 스타벅스 1호점 앞은 거리 악사의 명당이다. 하루에 스무 명 남짓한 악사들이 돌아가며 연주한다. 이들의 활기찬 연주를 듣다 보면 어느새 자기 차례가 돌아온다. 시애틀 커피의 진수는 스타벅스가 아닌 캐피톨 힐(Capitol Hill)이라는 곳에서 느낄 수 있다. 이곳 사람들이 시애틀을 커피의 도시라 부르는 진짜 이유는 이곳에 자리한 수많은 독립 카페들 덕분이다. 이 카페들은 직접 해외의 유명 커피산지에서 농장 단위로 원두를 구매한 후, 독특한 커피들을 재생산해서 공급한다. 캐피톨 힐은 우리나라 홍대 비슷한 분위기다. 예술가와 게이, 자유분방한 캐피톨 힐 사람들이 어울려 만들어내는 여유로움이 가득한 곳이다. 헌책방도 많고, 거리도 잘 정비되어 있어 한나절 여유로운 시간을 보내기 좋다. 자, 이제 본격적으로 시애틀을 여행해보자. 시애틀을 찾은 이들이 가장 먼저 달려가는 곳은 스페이스 니들(Space Needle)이다. 시애틀의 랜드마크다. 1962년 세계박람회 개최지였던 시애틀 센터에 자리한 곳으로 약 높이 185m의 전망대다. 이곳에 서면 시애틀 시내뿐만 아니라 푸른 태평양과 유니언 레이크, 흰 눈을 덮어쓴 해발 4,392m의 레이니어 산봉이 한눈에 바라다보인다. 스페이스 니들 옆에는 EMP(Experience Music Project)가 자리한다. 록 마니아들 사이에 성지라 불리는 곳이다. 시애틀은 가장 위대한 기타리스트 지미 헨드릭스가 태어난 곳이다. 1942년 시애틀에서 태어난 그는 1970년 영국 런던에서 만 27세로 요절한다. 주요 무대활동 4년, 스튜디오 음반 3장 발매. 지미 헨드릭스의 약력은 이것이 전부이지만, 그는 영원한 전설로 남아있다. 박물관 입구에 들어서면 흰색 팬더 스트라토캐스트가 반긴다. 헨드릭스가 생전에 연주했던 기타다. 그 뒤로는 500여 개의 기타로 만든 대형 조형물이 시선을 빼앗는다. 너바나의 흔적도 더듬을 수 있다. 이들의 손때 묻은 악기·의상·유품도 전시되어 있다.EMP 박물관 옆에 자리한 치훌리 가든 글라스 전시관은 데일 치훌리(Dale Chihuly)의 유리 조형물과 그림을 만나볼 수 있는 곳이다. 치훌리는 세계적인 유리 조형의 거장이다. 미국 최초의 무형문화재인 그의 작품들은 전 세계 관광객이 찾는 주요 도시에 200개 이상의 유명 박물관과 정원에 전시되고 있으며, 한국에서도 그의 전시가 열린 적이 있다고 한다. 전시관에서는 그의 대표작인 유리공예 시리즈와 개인 컬렉션까지 볼 수 있다. 치훌리 전시관 가까이에는 라이드 덕을 탈 수 있는 정류장이 있다. 라이드 덕은 시애틀에서만 탈 수 있는 시티투어 버스다. 오리모양으로 생긴 수륙양용 버스다. 90분간 시애틀 시내 곳곳의 주요 관광지를 돌아본다. 라이드 덕, 이거 참 재미있다. 운전사는 차만 운전하는 것이 아니라 각 여행지에 대한 해설도 곁들인다. 복장도 요란하다. 우스꽝스러운 모자로 탑승객을 즐겁게 한다. 하드록 카페 앞을 지날 땐 시애틀의 록 역사를 설명해준다. 그냥 설명해주는 것이 아니라 요란한 록 음악을 귀청이 떨어질 듯 크게 튼다. 스타벅스 앞을 지날 때는 커피에 어울리는 음악을 틀어준다. 버스에 탄 사람은 운전사의 리드에 따라 박수도 치고, 노래도 함께 한다. 투어 내내 차가 들썩인다. 길옆으로 지나가는 사람들도 손을 흔들며 호응을 해준다. 시내를 빠져나온 라이드 덕은 레이크 호수(Lake Union)로 풍덩 빠져든다. 차에서 배로 변신. 호수는 마냥 평화롭다. 유유자적 카누의 노를 젓는 사람들. 부드러운 가을 햇빛이 수면 위로 내려앉고 있다. 유니언 호수는 영화 〈시애틀의 잠 못 이루는 밤〉에서 톰 행크스의 보트 하우스가 있던 곳.톰 행크스는 밤이면 쓸쓸히 베란다로 나와 호수를 바라보곤 했었다. 유니온 호수에는 아직도 선상 가옥이 있는데, 이는 1890년대 어부와 선원들이 처음 지어 살기 시작하면서 만들어진 것. 1930년대 대공황 때 세금을 아끼고 값싼 주택을 얻으려는 사람들이 대거 몰려와 2천 가구까지 늘어났다고 한다. 지금도 5백 채 정도가 남아 있다. 미국에서 가장 오래된 시장 어디를 가나 시장 구경은 빼놓을 수 없다. 시애틀에서 여행자들에게 가장 인기 있는 곳은 파이크 플레이스 마켓(Pike Place Market)이다. 시내 1번가라 할 수 있는 퍼스트 애비뉴와 파이커 스트리트 사이 엘리엇 만을 끼고 위치해 있다. 방금 잡아 올린 신선한 생선과 농부들이 직접 재배해 가져온 과일과 채소, 향기를 듬뿍 머금은 꽃, 직접 만들어 온 미술품 및 공예품 등이 가득한 곳이다. 시장은 1907년 문을 열었다. 원래 어시장이었지만 지금은 종합시장으로 변모해 시애틀 시민들도 많이 찾는 곳이다. 80여 년 전에 세워진 네온사인 시계는 지금도 멀리서 쉽게 알아볼 수 있다. 생선가게 ‘파이크 플레이스 피시 마켓’에는 사람으로 바글바글했다. 이 가게는 ‘나는 물고기’로 유명하다. 막 판매된 팔뚝만 한 참치가 점원의 손에서 손으로 날아다니는 광경을 목격할 수 있었다. 입구에 ‘레이철’이라는 대형 돼지저금통을 만들어 놓고 기부를 받아 어려운 사람들을 돕기도 한다. 미서부 와인의 진수를 맛보다 시애틀 여행이 즐거운 또 다른 큰 이유는 최고의 와인이 있기 때문이다. 시애틀에서 15분 거리에 위치한 우딘빌은 샤토 생 미셸과 콜롬비아 와이너리가 들어선 이후, 워싱톤주 와인의 허브로 재탄생했다. 시애틀이 자리한 워싱턴주는 캘리포니와주·오리건주·뉴욕주와 함께 미국에서 와인을 생산해내는 지역. 캘리포니아 와인은 우리에게 이미 대중적으로 알려져 있으며, 워싱턴 와인도 최근 들어 그 영역을 조금씩 넓혀가고 있다. 워싱턴주는 동쪽의 야키마 밸리에 포도밭이 많이 자리하고 있다. 이 지역은 강우량이 극히 적어 인근 콜롬비아 강에서 강물을 끌어다 관개를 한 후 포도를 생산하는데, 이곳에서 생산된 포도는 시애틀로 옮겨져 와인으로 재탄생한다. 우딘빌에 자리한 수많은 와이너리 가운데 ‘샤토 생 미셸(Chateau Ste. Michelle)’은 시애틀을 대표하는 와이너리다. 매년 25만 명 이상이 찾는다고 한다. “샤토 생 미셸 포도밭은 캐스케이드산맥 동쪽에 자리하고 있습니다. 산맥이 서쪽에서 불어오는 습한 바람을 막아주는 데다, 연간 강수량이 200mm 이하입니다. 위도가 높아 캘리포니아보다 여름 평균 일조량이 2시간 이상 길죠. 건조한 날씨와 척박한 토양이 포도의 풍미를 높이고, 따뜻한 기후와 일조량은 포도를 완숙하게 하죠. 여기에 큰 일교차로 인한 서늘한 기온은 산도가 탁월한 와인을 만드는 요인이 됩니다. 그 결과 보르도·부르고뉴와 견줄만한 와인이 탄생한 것입니다.” 시애틀의 또 다른 별칭은 ‘숲의 도시’다. 이를 가장 잘 느낄 수 있는 곳은 올림픽 국립공원(Olympic National Park). 짙은 안개에 둘러싸인 신비로운 숲의 몽환을 만날 수 있는 곳으로 〈트와일라잇〉, 〈트윈 픽스〉, 〈다크 엔젤〉 등의 초현실 판타지 영화들을 찍은 곳이기도 하다. 가장 접근하기 쉬운 곳은 허리케인 릿지(Hurricane Ridge). 해발 1,600m의 전망대까지 차로 오를 수 있다. 전망대에서는 올림픽 국립공원 내의 최고봉인 올림푸스산(2,430m)을 바라볼 수 있다. 길을 가며 심심찮게 만나는 야생 노루가 국립공원에 왔음을 실감케 해준다.
국가교육위원회가 출범을 앞두고 있다. 국가교육위원회(이하 위원회)는 초정권적 독립기구로, 새로운 시대에 대한 준비와 그간의 교육행정체제에 대한 반성으로 등장하였다. 미래사회를 대비하기 위해 국가차원의 획기적인 교육정책이 필요하며, 기존의 교육행정체제로는 한계가 있다는 이유에서다. 그동안 우리나라는 항상 대통령·국회 등 정치권력에 따라 교육정책 기조가 좌우되는 경향이 있었다. 교육은 ‘백년지대계(百年之大計)’라고 하지만, 우리나라 교육정책을 두고는 ‘오년지소계(五年之小計)’라는 비판이 뒤따랐다. 이에 2019년 국가교육회의 주도하에 많은 공청회와 토론회를 거듭하면서 위원회 설치 법률과 시행령이 제정되었다. 하지만 법률과 시행령을 검토해보면 아직도 우리가 숙의할 쟁점이 적지 않고, 대다수 언론과 전문가들은 이로 인해 위원회 출범 시기가 미뤄지고 있다고 판단한다. 핵심 쟁점 몇 가지를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쟁점❶ 초정권적 위원 구성? 첫째, 위원회는 초정권적인 독립기구다 보니 위원 구성을 둘러싸고 난항을 겪고 있다. 현재 법률상 위원 구성방법은 다음과 같다. 표를 보면 알 수 있듯 이미 정치권에 의해 추천 또는 지명되는 인원이 15명이고, 이는 전체 위원의 70% 이상을 차지한다. 그리고 위원회의 상임위원은 3명이며, 이 중 1명을 대통령이 위원장으로 임명한다. 참고로 위원회의 의사결정은 재적위원의 과반수로 이루어진다. 이 대목에서 과연 위원회가 본래 취지에 적합한지 우려가 된다. 정치권에서 추천하는 인원이 3분의 2가 넘는 상황에서 정치권력의 입김으로부터 철저히 독립된 의사결정을 할 수 있을까? 물론 위원 자격에는 ‘교육에 관하여 전문지식과 경험이 풍부하고 소관 업무를 공정하고 독립적으로 수행할 수 있다고 인정되는 사람’이라고 명시되어 있으나 추천·지명을 해준 정치권의 영향력에서 벗어나기란 쉽지 않을 것이다. 쟁점❷ 교육부와의 관계? 둘째, 위원회는 기존의 교육부와 관계를 분명히 하고, 공존하는 근거에 대해 사회적 동의를 얻어야 할 것이다. 법률상 교육부는 ‘교육·사회·문화 분야 정책의 총괄·조정, 인적자원개발정책, 학교교육·평생교육 및 학술에 관한 사무’를 관장한다. 그리고 교육부장관은 ‘인적자원개발정책, 학교교육·평생교육, 학술에 관한 사무’를 관장한다. 그렇다면 새로 설치된 위원회의 소관 사무는 무엇일까? 바로 ‘교육비전·중장기 정책방향·학제·교원정책·대학입학정책·학급당 적정 학생수 등에 관한 국가교육발전계획 수립, 국가교육과정, 국민의견 수렴 및 조정 등’을 관장한다. 한눈에 보아도 두 기관의 소관 사무가 중첩되며, 교육부장관과 위원회의 관계가 모호함을 알 수 있다. 대다수 국민은 이런 의문을 가질 것이다. 그럼 교육부(장관)와 위원회는 공존하면서 같은 업무를 추진하는 것인가? 단순히 공존하면서 같은 업무를 추진하는 것이라면 굳이 교육부가 아닌 위원회를 새로 만들 필요가 있을까? 많은 연구에서 지적하였듯 옥상옥(屋上屋)의 비효율이 발생하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계획수립은 위원회가 하고 세부정책추진은 교육부가 한다면, 교육부의 규모와 권한을 축소해야 한다. 하지만 지금까지 상황을 보면 교육부는 건재하고 위원회는 축소되는 모양새다. 쟁점❸ 사무처 구성은 어떻게? 마지막으로 사무처 구성은 공청회·토론회에서 자주 언급되었던 쟁점이다. 사무처 구성원·사무처장 등에 관해서 이해관계가 복잡하게 작용할 여지가 있기 때문이다. 법률상에는 사무처를 구성하되 세부사항은 대통령령에서 다루도록 돼있다. 하지만 대통령령 어디에도 사무처에 관한 조항을 찾아볼 수 없다. 또 법률에서 사무처장을 위원장의 제청으로 대통령이 임명한다고 되어 있다. 위원장도 상임위원 중 대통령이 임명하고, 사무처장은 위원장이 제청한다. 사무처 구성에도 대통령의 영향력은 지대하다. 위원회 출범 전, 사무처장을 제청하는 과정부터 사무처 구성원의 자격 등 세부사항에 대해 초정권적으로 조정·명시되어야 할 것이다. 우리는 정부가 위원회를 출범하기 전 위의 3가지 쟁점을 어떻게 개선해 가는지 지켜봐야 한다. 그러면서 교육현장에 몸을 담고 있는 교원으로서 느낀 위원회의 당면과제는 다음과 같다. 첫째, 사회적 합의를 위한 기구에 걸맞게 위원회에 대한 적극적인 홍보가 필요하다. 그동안 교사들에게 제공된 위원회 안내자료나 홍보자료를 찾아볼 수 없었다. 국가교육발전계획과 국가교육과정이라는 중요한 사무를 관장하는 기구인데 공문으로도 접하기 어려웠다. 교육행정체제의 실질적 추진체인 교원조차 자료를 구하기 어려운데, 학부모와 학생은 오죽할까 싶다. 많은 국민들이 참여하여 합의를 이루고, 이를 통해 교육정책을 수립하는 것이 본래의 취지라면 사회적인 관심과 참여를 이끌어 내기 위해 최선의 노력을 다하는 것이 위원회가 해야 할 첫 번째 역할이다. 다음으로 기존 교육행정체제와의 조화와 긴밀한 협력이 필요하다. 기존 교육행정체제란 교육부-교육청-학교에 이르는 일련의 시스템을 말한다. 문제는 교육부를 포함 지방교육행정체제와 위원회가 얼마나 조화를 이룰수 있느냐 하는 점이다. 속담에 ‘고래 싸움에 새우 등 터진다’라는 말이 있다. 위원회와 교육부, 혹은 위원회와 지역교육청이 불협화음을 내거나 비협조적인 태도로 갈등하는 상황이 발생하면 그 사이에서 학교는 우왕좌왕 혼란에 빠질 것이다. 그리고 그 피해는 고스란히 학생들에게 전해질 것이다. 따라서 위원회와 교육부·교육지원청간 협력을 통해 혼란을 최소화하는 방안이 마련돼야 한다. 마지막으로 기본을 잊지 않는 충실한 국가교육위원회가 되길 바란다. 위원회는 「교육기본법」에 명시된 교육이념, 즉 교육의 기회균등·자주성·중립성·전문성을 실현하기 위해 설치된 기구이다. 그리고 일관성 있는 교육정책을 위해 설치된 기구이다. 그러므로 소수 이익집단의 목소리에 반응하여 선심성 정책만 수립하지 말고, 진정한 독립기구로서 제 역할을 해야 한다. 지금도 각종 교육당국과 단체의 홈페이지 게시판에는 수많은 이익집단이 자신의 요구를 관철하기 위해 의견을 내고 있다. 이러한 의견을 소중하게 여기고 반영하되, 그들의 의견만 받아들여 일방적으로 정책을 수립하지는 않길 바란다. 따라서 위원 선정부터 의사결정, 사무처 구성 등 위원회 구성 전반을 재검토하여 설립 취지를 고수하는 위원회가 되어야 한다. 이처럼 국가교육위원회가 출범을 앞두고도 해결해야 할 쟁점과 과제는 여전히 존재한다. 먼저 위원과 사무처 구성, 교육부와의 관계에 대해서 취지에 적합한지 재검토한 후, 기본에 충실하면서 혼란을 최소화하는 위원회가 되도록 노력해야 한다. 그리고 이 모든 노력에 사회적 합의를 수반한다면 국가교육위원회는 본래의 취지를 가장 잘 살린 기구로 훌륭히 자리 잡을 것이다. 교육이 바로 서야 우리나라의 미래가 바로 선다. 새 술은 새 부대에 담는다고 하지만, 얼렁뚱땅 만들어진 새 부대는 손해만 가져온다. 술이야 다시 빚으면 되지만 교육은 다르다. 교육정책의 최대 수요자인 학생들의 인생은 되돌릴 수 없다. 부디 위에서 언급한 쟁점과 과제에 대해 심사숙고한 후 위원회가 출범하길 바란다.
윤석열 대통령은 취임하면서 “반도체산업 및 원전 개발에 집중하여 투자하겠다”고 강조했다. 교육부가 아니라 교육인적자원부로의 회귀라는 비판 여론이 만만치 않았지만, 의도와 방향은 긍정적 평가를 받았다. 그런데 후속 조치로 내건 100만 디지털 인재양성 계획을 보면 과연 이것으로 충분한지 의구심을 가지게 한다. 실과교과의 한 단원으로 더부살이하는 정보교육 먼저 초등의 경우 실과에 반영된 정보교육 시수는 17차시에 불과하며, 이번에 강화하겠다는 시수를 반영해도 겨우 34차시에 불과하다. 그나마도 이번 개정 교육과정에서는 권장사항일 뿐이다. 교과목을 새롭게 만들어 내는 것은 매우 어려운 일이지만, 갑작스럽게 만들어지는 경우도 있다. 국민적 트라우마가 생긴 큰 사고 이후 신설된 안전과목이 대표적 예이다. 안전과목은 현재 교과도 창의적체험학습도 아닌 독특한 성격을 지니고 있다. 시수는 없는데 급하게 만들다 보니 이상한 과목이 되어버렸다. 반대의 경우도 있다. 바로 정보교육이다. 정보교육은 그동안 수없는 요구가 있었음에도 과목으로 인정받지 못한채 실과의 부속 단원에 놓여있다. 정보교육과 유사한 상황이 보건교육이다. 그래도 보건은 별도의 수업 및 업무담당 교원이 있고, 정해진 인정교과서로 수업하고 고학년으로 연계할 수 있다. 특히 저학년에는 안전과목이 있어 자기 몸은 스스로 지킨다는 대전제를 일관되게 유지하며, 창의적체험학습 내에서 자리를 완전히 잡아가는 중이다. 반면에 정보는 실과교과의 한 단원으로 사실상 더부살이 중이다. 그나마 1~4학년에는 가르칠 과목이 없어 창의적체험학습시간에 정보통신윤리교육과 교내행사로 몇 시간 체험하는 것이 전부이다. 보건처럼 전문인력이 많지 않고 정보업무와 정보교육으로 이원화되어 업무는 월 7만 원의 보직수당을 받으며 정보부장이 맡는다. 또 관련 교육은 담임교사가 교과서에 있는 17차시를 교육하는 게 전부인 상황이다. 당연히 담임교사로서는 부담이 늘어날 수밖에 없다. 초등학교 저학년에서 언플러그 활동으로 시작하여 고학년을 거쳐 중·고등학교까지 교육 전반에서 일관성 있는 교육이 필요하다. 하지만 1~4학년에서는 방치되고 있다가 5~6학년 때 갑자기 실과의 한 단원으로 등장하여 아주 잠깐 경험해버리고 끝나는 것이 현재의 정보교육이다. 엄연히 교원양성기관에는 컴퓨터교육과가 존재하지만, 초등학교 교육과정에는 컴퓨터교육에 대한 과목이 없고 실과의 한 단원으로 더부살이를 하다 보니 교육과정에서 정의하는 실과의 성격과 교과의 목표에 컴퓨팅사고에 대한 부분은 존재하지도 않는다. 실과의 한 단원에서 잠깐 다루는 내용에 불과하며, 이마저도 5~6학년에서 각각 다루지 않고 한 학년에서 선택하여 가르치는 수준에 그치고 있다. 부록에 넣어놓고 가르쳐야 하나 지난 9월 발표된 2022 개정 교육과정 시안에 따르면 정보교육에 대한 부분은 크게 개정된 내용이 없다. 기존 17차시에서 34차시로 확대하겠다는 것이 전부다. 그런데 여기에 이상한 꼼수가 등장한다. 발표 내용에는 코딩을 의무화하고 34차시를 가르치겠다고 했지만, 정작 이번에 개정하는 교육과정에는 예년처럼 그대로 17차시만 반영돼 있다. 사라진 17차시 분량은 뜬금없이 교과서 부록에 넣어놓고는 교과가 아닌 창의적체험학습의 자율활동시간이나 동아리활동, 방과후학교에서 가르치라고 한다. 교과서 부록을 자율활동시간에 꺼내서 가르치는 학교가 얼마나 있을까 하는 합리적 의심이 생긴다. 아울러 코딩을 의무화하겠다고는 하지만 기존 실과교과에서 가르치던 내용과 크게 달라진 것이 없는 상황에서 무엇을 어떻게 의무화하겠다는 것인지 손에 잡히는 부분이 없다. 말로만 원격수업, 시수 반영은 없었다 지난 9월 태풍 힌남노를 대비하면서 많은 학교가 원격수업으로 전환하였다. 그런데 원격수업은 갑자기 “시작!”을 외친다고 되는 것이 아니다. 예상대로 교육부와 교육청의 화상수업 인프라들은 맥을 쓰지 못하였고, 담임교사들은 발을 동동 구르며 줌이나 구글 및 MS의 프로그램으로 각개전투를 치러야 했다. 결국 우리는 코로나19와 같은 장기간이 아닌 하루 이틀의 돌발적인 상황에서의 원격수업이 가능한지, 학생들은 얼마나 준비가 되어 있는지 정확하게 확인해보지도 못하였다. 그렇다면 어떻게 하는 것이 바람직할까. 첫째, 가능하다면 정보를 독립된 교과로 만들어야 한다. 아니라면 최소한 한국사만큼의 비중은 다뤄줘야 한다. 초등 사회과의 경우 한국사 영역에 많은 부침이 있었다. 한 학기에 몰아서 배운 적도 있고, 다시 학년별로 나누기도 했었다. 많은 시행착오를 겪었지만, 꾸준히 지금의 시수를 유지하고 있다. 정보교육에 진정 관심이 있는 정부와 교육부라면 최소한 실과 한 학년의 한 학기 정도는 정보교육에 할애함이 옳다. 둘째, 자율활동 정보교육영역을 확대하고, 특히 원격수업에 관한 시수를 반영해야 한다. 사업의 기본이 예산이라면 교육의 기본은 시수 확보이다. 말로만 코로나19로 학력격차가 심해졌다고 할게 아니라 학생들의 원격수업에 대한 철저한 사전준비가 필요하다. 물론 기존의 디지털 리터러시에 대한 부분도 병행해야 한다. 이미 학교에는 수년간의 SW교육 선도학교와 AI교육 선도학교 사업을 통해 다양한 교구가 준비되어 있다. 셋째, 디지털 기기의 사용에 대한 부정적인 인식은 바람직한 활용방법 교육을 통해서 극복하여야 한다. 학생들은 스마트폰과 태블릿을 생활에서 밀접하게 사용하는 것을 디지털 리터러시가 있다고 착각하는 경우가 있다. 이는 인터넷이라는 정보의 바다에서 찾아낸 정보가 진실인지, 디지털 기기를 공부하는 데 어떻게 활용하는 것이 현명한지 진지하게 배운 적이 거의 없기 때문이다. 오히려 학교가 아닌 학원과 공부방에서 학생들의 빅데이터를 통해 맞춤형 지도를 하고 진로안내를 하는 상황이다. 초·중학교가 진정 보통교육을 추구하는 교육기관이라면 교육부·교육청·학교는 지금 학생들의 정보화 격차를 아프게 받아들이고, 보다 적극적으로 정보교육 시수 확보에 관심을 가져야 한다.
들어가는 글 2022 개정 교육과정에서는 그동안 초·중학교에서 없었던 자율적인 선택과목을 도입하고 있다. 국민참여소통채널에 탑재된 시안(교육부, 2022)에 의하면 교육과정 편성·운영기준에서 초등학교는 ‘선택과목과 활동의 내용은 지역과 학교의 여건, 학생·학부모·교원의 요구를 반영하여 학교가 결정하되, 다양한 과목과 활동으로 개설하여 운영한다’라고 제시하고 있다. 중학교는 ‘선택과목과 활동의 내용은 지역과 학교의 여건, 학생·학부모·교원의 요구를 반영하여 학교가 결정하되, 다양한 선택과목과 활동으로 개설함으로써 학생들의 선택권이 보장되도록 한다’라고 되어 있다. 모두 학교의 자율적 결정을 강조하고 있다. 이러한 선택과목 도입의 의의는 국가교육과정 총론에 학교 자율시간 도입을 위한 교육과정 운영근거가 마련되었고, 초등학교에서는 존재하지 않았던 선택과목이 신설되어 학교와 교사의 교육과정 편성·운영에 대한 자율성이 확대되었다는 점에서 찾을 수 있다(교육부, 2021). 특히 2022 개정 교육과정에서 강조하는 교육과정 자율화는 창의적체험활동을 20% 범위에서 시수를 증감할 수 있고, 선택과목에 의한 16+1 운영 등으로 학교의 자율성이 확대되었다고 할 수 있다. 또한 선택과목의 개발·운영은 지역화 교육과정의 특색을 가시적으로 드러낼 수 있기 때문에 교육과정 자율화의 대표적인 사례로 볼 수 있다. 2022 개정 교육과정은 초·중학교 단계에서 16+1을 도입, 학교교육과정 편성·운영에서 자율성을 발휘할 수 있도록 시수를 확보했다. 학교에서는 삶과 학습에 필요한 기초소양, 학습진단과 개별 보정교육, 다양한 진로선택활동 등 관련 교과 및 창의적체험활동과 연계하여 운영할 수 있다. 나아가 지역 여건 및 학생 선호 등에 따라 ‘지역연계 생태수업, 지역과 시민, 환경보존, 경제생활 이해, 디지털 기초소양 수업, 인공지능과 생활, 역사로 보는 우리 지역’ 등 다양한 선택활동 또는 선택과목을 개설하여 운영할 수 있다(교육부, 2021). 그러나 초·중학교에서 선택과목을 도입하기 위해서는 해결해야 할 과제가 많다. 선택과목의 개발과 운영방안 가. 선택과목의 개발 방향 교육과정의 조직원리는 ‘계속성·계열성·통합성’이다(홍후조, 2017). 학습내용은 학년과 학교급이 올라갈수록 ‘양적 확대와 질적 심화’라는 특징을 나타낸다. 이는 계열성으로 나타낼 수 있으며 계열성에서 학습은 누가적으로 반복되어 새로운 내용으로 전개되기 때문에 계속성도 내재되어 있다. 통합성은 횡적통합으로 학습내용이 교과 내, 교과 간 수평적으로 논리적 체계를 가져야 하는 것을 의미한다. 선택과목과 관련하여 3가지 조직원리를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첫째, 선택과목 내에서의 조직과 관련하여 초등학교는 3~6학년 4년간 8개의 선택과목을, 중학교는 3년간 6개의 선택과목을 선정하고 조직해야 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여기서 주목해야 할 것은 선택과목 내 계열성을 고려해야 한다는 것이다. 선택과목 간 배타성을 갖는다면 상대적으로 계열성은 고려되지 않을 수도 있다. 그러나 2개 학기에 걸쳐 선택과목을Ⅰ·Ⅱ로 연계한다면 계열성은 면밀하게 고려되어야 한다. 둘째, 일반교과와 선택과목의 계열성과 통합성을 고려해야 한다. 선택과목을 선정할 때는 일반교과내용의 단순반복이나, 확대 강화, 또는 누락 등의 문제가 발생할 수 있다. 이를 예방하기 위해서는 선택과목을 선정한 다음 내용을 조직할 때는 타교과내용을 분석하여 조직하는 것이 필요하다. 선택과목이 학년을 달리하는 교과와 중복되거나 상대적으로 비약이나 확대, 강화되는 현상을 보인다면 이는 선행학습을 하는 결과가 된다. 따라서 선택과목을 조직할 때는 학년 간 교과내용이 반복되지 않도록 해야 한다. 나. 선택과목 운영방안 1) 독립형 선택과목 독립형 선택과목은 그 자체의 고유한 선택과목으로서의 내용을 다룬다. 그러나 이것이 완전하게 타교과와 배타성을 담보하고 있다고 하기는 어렵다. 또한 선택과목에 따라서 체험학습을 동반해야 하는 경우도 있어 이는 매우 바람직하다고 할 수 있다. 이러한 점을 고려하여 독립형 선택과목을 운영하는 유형, 즉 단일형·분산형·혼합형·절충형 등 네 가지 예를 초등을 중심으로 제안해 보면 다음과 같다. 중학교에 적용하는 방식도 동일하다. 먼저 ‘단일형’은 학교 전체가 공통 주제, 예컨대 ‘생태전환교육’이라는 공통의 주제를 선정해서 8학기(3학년 1학기~6학년 2학기) 동안 학기별 수준만 달리해서 운영하는 것이다. 이 유형은 나선형 교육과정처럼 학기별·학년별 내용요소를 달리하고 수준별로 계열성에 맞게 지도하는 것이 중요하다. ‘분산형’은 학년 단위 또는 학기 단위로 주제를 달리하여 편성·운영하는 방법을 말한다. 즉 8학기 동안 주제를 모두 달리해서 선택과목을 운영하는 것이 가능하고, 학년 단위로 크게 4개 주제 정도를 운영할 수 있다. 예컨대 3학년 1학기는 ‘마을탐방 교육’, 3학년 2학기는 ‘경제교육’을 운영하는 식으로 학기별 또는 학년별로 편성과 운영을 다르게 한다. ‘혼합형’은 학년이나 학기보다 학년군이 강조되는 유형이며, 학년별 운영형태도 가능하기 때문에 ‘단일형’이나 ‘분산형’보다는 유연한 유형으로 볼 수 있다. 학년군 또는 학년별로 선택하는 주제가 다를 수 있고, 단일형과 분산형을 혼합한 형태로 편성·운영하는 방법이다. 예컨대 3~4학년군은 ‘지역사회학습 탐방교육’을 운영하고, 5학년은 ‘인권교육’, 6학년은 ‘인공지능과 생활’ 등을 운영하는 형태이다. ‘절충형’은 ‘혼합형’과 비슷할 수 있으나, 학년별 또는 학년군별로 나뉘는 것이 아닌 학기별로 공통주제 과목을 배우는 방식이다. 이 방법은 ‘단일형’과 ‘분산형’을 섞은 유형이다. 즉 1학기에는 학교 공통의 주제를 학년 수준별로 다르게 배우고, 2학기에는 매번 새로운 주제의 선택과목을 배우는 방식이다. 예컨대 3학년부터 6학년까지 1학기에는 ‘인공지능 관련 교육’을 수준에 따라 다르게 운영하고, 3학년 2학기는 ‘마을탐방 교육’, 4학년은 ‘문화재교육’, 5학년은 ‘인권교육’, 6학년은 ‘민주시민교육’ 등으로 운영하는 것을 생각해 볼 수 있다. 2) 교과 및 창의적체험활동 연계형 선택과목 2022 개정 교육과정 총론 시안에서는 선택과목을 교과 및 창의적체험활동에 편성해 운영이 가능하다. 다시 말해 모든 교과를 아우르는 주제 중심의 다양한 과목을 개발하여 운영하도록 하고 있다. 이에 따라 교과 및 창의적체험활동의 연계형 선택과목은 교과와 연계된 과목으로 운영하거나 창의적체험활동의 자율·자치활동, 동아리활동, 진로활동 등과 연계하여 운영할 수 있다. ‘교과 연계형’ 선택과목은 교과내용을 보충·심화하는 수준이 아닌 배운 내용을 체험학습으로 연계하는 시간이 되도록 활용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아울러 ‘창의적체험활동과의 연계’도 동아리나 진로활동 등에서 내용을 추출하여 체험학습으로 운영하는 방법이 있을 수 있다. 그러나 이와 같은 방법은 앞서 밝힌 바와 같이 해당 교과나 창의적체험활동, 특히 동아리활동과 연계할 경우 그 경계가 분명하지 않을 수 있으므로 이 점에 유의해서 운영해야 한다. 가령 ‘교과 연계형’은 ‘사회교과’ 또는 학교나 마을에서 편찬한 교재인 ‘마을교과서’를 결합하여 ‘마을탐방’과목으로 운영하는 방법이다. 이때 선택과목은 ‘마을탐방’으로 사회교과수업 시수 외에 따로 마을에 대한 학습을 집중적으로 할 수 있다. 현재 3학년 1학기나 2학기의 마을 관련 단원이나 학습내용에서 보조교재로 활용하는 마을교과서의 경우, 지역의 교육지원청에서 편찬한 여러 교재가 있다. 하지만 마을교과서는 학교나 학급상황에 따라 활용되지 않거나 일부 시간에만 보조적인 교재로 쓰이는 실정이다. 그래서 따로 선택과목으로 시수가 확보될 수 있다면, 마을학습을 할 때 탐방·실험·실습 등 체험 위주의 활동을 할 수도 있다. ‘창체 연계형’은 현재 창의적체험활동인 자율·봉사·진로·동아리활동 영역(2022 개정 교육과정에서는 자율·자치, 동아리, 진로활동으로 개정 예정)에서 학교 특색사업 등을 운영할 때 필요한 부분을 살펴보고, 그 내용을 선택과목으로 편성·운영하는 방법이다. 예를 들면 현장에서는 자율활동영역에서 학생자치활동, 학기 초 적응활동, 인성교육, 학교폭력예방교육 등 여러 영역에서 요구되는 교육시간이 복잡하게 얽혀있어 제대로 교육을 진행하기 어렵다. 그래서 범교과나 특색사업, 여러 체험·실습활동을 요구하는 분야 중에서 학교에서 필요하다고 특별히 여겨지는 교육이 있다면, 이를 선택과목으로 선정하여 더 집중적으로 교육할 수 있다. 단위 학교에서 ‘진로교육’ 시간이 매우 필요하다고 여겨진다면, 선택과목(예: 진로이해 등)으로 시수를 편성·운영할 수 있을 것이다. 나오는 글 선택과목이 효율적으로 운영되기 위해서는 우선적으로 고려해야 할 요소가 있다. 어떤 교육과정이든지 도입 초기의 내용이 선례를 남기기 때문에 교육과정이 추구하는 본질에 맞게 구현하는 것이 중요하다. 이를 위해서 다음과 같은 점들을 고려해야 한다. 첫째, ‘전입생의 선택과목에 대한 학습권’을 보장하는 일이다. 직전 학교에서 배운 선택과목이 현재 다니는 학교의 과목과 내용이 중복되거나 그 반대로 학습하지 못한 부분 등이 발생했을 때 선택과목에 대한 보충 이수계획을 수립하여 대응하는 것이 필요하다. 이는 학습자의 학습권과 연계된다. 둘째, 선택과목은 무엇보다 ‘교사의 교육과정에 대한 일정 수준의 문해력’이 요구된다. 가르치는 교사가 직접 개발하고 성격이나 목표를 설정하고, 필요하다면 성취기준까지 제시하는 것은 고도의 교육과정 문해력이 요구되는 일이다. 교육과정의 개발은 수업의 질을 높이는 첩경이 된다. 따라서 선택과목 개발에 필요한 교육과정 문해수준을 높이는 연수를 강화하여 질 높은 선택과목을 개발·운영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셋째, 선택과목을 교사 개인이 개발하고 운영하는 것은 교사에게 과중한 업무가 될 수 있다. 따라서 ‘동학년에서의 협력문화’가 중요하다. 동학년 내에서 동료장학 형태를 갖추어 상호 정보를 교류하고 문제점을 공유하여 해결을 모색하는 노력이 필요하다. 필요하다면 교내 교원학습공동체를 이와 관련하여 운영하고, 그 결과를 성찰하여 새로운 대안을 학교별로 수립하여 적용하는 것이 필요하다. 넷째, 장학지침이나 시·도교육과정 편성·운영지침은 학교교육과정을 획일화시키는 측면이 있다. 분권화는 교육과정의 다양화·특성화임에도 불구하고 교육과정의 행정지침을 다루는 수준에서 관리되는 측면도 있다. 심지어 컨설팅 리스트를 이용하여 학교교육과정의 편성 유·무를 확인하는 것은 분권화 이전의 모습이다. 교육청은 어떤 경우에서든 학교의 선택과목 개발권을 보장해 주고, 필요한 가이드라인 및 관련 장학자료를 지원해 줘야 한다. 이와 더불어 선택과목 개발 영역이나 학습내용에 대한 리스트를 제공하는 수준에서만 개입하는 것이 학교에 대한 자율성을 부여하는 것이라는 사실을 직시할 필요가 있다. 다섯째, 아무리 다양한 선택과목에 대한 옵션을 제시해도 학생은 자신의 관심·흥미·적성 등과 맞지 않으면 선택하지 않는다. 따라서 학생의 선호도가 무엇인지 사전조사를 통하여 파악하고 이를 기초로 본 조사를 실시, 학생의 선택권이 보장될 수 있도록 하는 방안이 반드시 수립되어야 한다. 여섯째, 학생들은 선택과목에서 이론적인 내용을 다루는 것을 희망하지 않는다. 교육 수요자인 학생들은 체험이나 실험·실습 등이 동반되거나 다양한 학습교구를 이용한 활동을 선호할 수 있다. 이를 위해서는 학교에 필요한 예산을 지원하는 것이 중요하다. 일곱째, 학교에서 선택과목을 잘못 운영하면 창의적체험활동에서 동아리활동을 확대 운영하는 수준에 그칠 수 있다. 또한 교과의 진도를 나가는 식의 수업으로 대체되는 경우도 있을 수가 있다. 이에 대한 교육청 차원에서 운영 가이드라인은 반드시 제공되어야 한다. 여덟째, 지자체나 각종 공공기관이 범교과 차원에서 각종 교재를 개발하여 선택과목을 권장하거나 강요하는 현상도 예측된다. 과거 ‘디자인 서울’이 하나의 사례이다. 이는 교육과정의 침해 현상으로 볼 수 있다. 따라서 교육청은 이와 같은 부작용을 예상하여 사전에 차단될 수 있도록 조치할 필요가 있다. 학교교육과정의 자율성을 온전하게 보장하지 못할 수 있기 때문이다.
저술과 강연에 바쁜 시간을 쪼개어 쓰고 있는 J 선생님이 SNS에 재미있고 경쾌한 톤으로 ‘잔정’ 이야기를 한다. 주변에 자신의 작은 인정을 나누는 일상의 이야기이다. 그러고 보니 잔정은 특별히 표나지 않는 방식으로 일상에 스며들어와 있다. 만약 잔정이 일상의 자연스러움으로 생기지 않고, 매우 특별한 발생 기제를 갖고 있다면, 그것은 잔정이 아닐 수 있다. J 선생님은 ‘잔정을 치르는 데 긴 시간이 필요한 건 아니다’고 전제하며, 자신의 잔정이 어떤 모습으로 나타나는지를 가볍게 이야기한다. 잔정을 치른다는 표현도 경쾌하다 못해 왠지 신선하다. 그분의 표현을 그대로 가져와 본다. 오래 도움을 주신 분께 간만에 카톡 메시지를 한 방 보내기, 어제 10년 만에 인사받은 제자에게 카톡으로 톡톡 답인사 보내주기, 내 강의 한 번 들은 인연인데 수줍게 선물 내민 어떤 선생님께 그분이 쓴 글 한 편 읽고 서프라이즈 전화해주기, 밤에 잠 못 드는 거 같아 뵈는 후배에게도 공연히 전화 걸어 주기, 산미(酸味, 커피의 신맛) 좋아하는 베스트 프렌드에게 커피원두 선물하기. 이전 근무처에서 함께 고생했던 옛날 직원분들이랑 다음 주 저녁 약속하기. 정말 재미있는 것은, 아니, 정말 지혜로운 것은 J 선생님 잔정 베풀기의 끝판이다. 마지막 잔정 베풀기의 대상은 자기 자신이다. 이렇게 되어 있다. 어차피 일도 손에 잡히지 않을 테니, 나 자신에게도 ‘참 잘했다!’ 스스로 칭찬하기. 이런 자기 강화는 좋은 일을 더 잘할 수 있게 하는 효과를 가져다준다. J 선생님이 이렇듯 잔정을 전하는 모양새가 경쾌하면서도 깊숙하다. 이런 잔정을 베푸는 마음은 아무에게서나 발현되지는 않는다. 그래서 잔정은 ‘진정성’의 일면을 가지는지도 모르겠다. 국어사전은 ‘잔정’을 ‘자상하고 세세하게 베푸는 정’이라고 풀이한다. 잔정의 ‘잔-’은 잘고 가늘고 자질구레하다는 뜻을 가진 순수 우리말 접두어이고, 정(情)은 한자어이다. 잔주름, 잔가지, 잔기침, 잔심부름, 잔소리 등에 붙는 ‘잔-’이 잔정의 ‘잔’과 같은 것이다. 그런데 ‘잔정’에 붙는 ‘잔-’은 긍정적인 의미가 더 두드러진다. 자상하다, 잔잔하다, 세심하다 등의 의미 자질이 숨어 있기 때문이다. 조금 더 부연하면, 작은 것에까지 신경을 써 주는 정, 그러나 너무 잔 것이어서 조금씩 조금씩 쌓이는 정이라 할 수 있다. 이런 풀이대로라면 잔정은 좋은 뜻이 담뿍 담긴 말이다. 그러나 그건 어디까지나 사전에 올라와 있는 말의 사전적 의미일 뿐이다. 그 말이 인간 세상 현실로 내려와 사람들 사이에서 다채로운 의미 작용을 할 때는, 아무리 좋은 말도 좋은 의미로만 나돌아 다니지 않는다. 현실세계의 인생행로에서는 좋은 것 안에 안 좋은 것이 들어 있고, 안 좋은 것 안에 좋은 것이 솟아날 기회를 품고 들어 있다. 잔정이 좋은 것이라면 응당 그 안에도 안 좋은 것이 숨어 있다. 그러나 그러면서도 복을 불러오는 것이 그 안 좋은 것 안에 있기 마련이다. 커뮤니케이션을 전공한 김정탁 교수가 새로운 시각으로 노자를 재해석한 책 노자도덕경-장자와 함께하는을 읽어 보았다. 그가 풀이한 것 중에 내 눈길을 끄는 대목이 있다. ‘천지는 사소한 은혜를 베푸는 식으로 (세상 만물을) 기르지 않는다. 천지는 어질지 않다(天地不仁)’라는 구절이다. 나는 생각한다. 그렇든 어떻든 천지는 세상 만물을 기르지 않는가. 아주 큰 어짊(大仁)은 그 어짊이 없는 것처럼 보인다. 나는 언뜻 이런 뜻으로 해석해 보았지만, 딱히 그런 뜻으로 고착되지도 않는다. 아주 크다는 것이 무엇인지, 도가의 사상은 대개 초탈의 원대함을 느끼게 한다. 노자(老子)에는 이와 비슷한 말이 또 있다. 예를 들면 대교무교(大巧無巧)나 대방무우(大方無隅) 같은 것이 그러하다. 대교무교(大巧無巧)는 ‘아주 큰 기교는 기교가 없는 것이다’로 직역할 수 있고, 대방무우(大方無隅)는 ‘아주 큰 모서리는 각이 지지 않는다’로 직역된다. 모서리가 각이 없다니, 좁은 틀에서 보면 모순인 듯하다. 그러나 도가에서는 이런 사유(思惟)를 초탈의 우주를 향하여 자유자재로 던진다. 그러면 여태 갇혀서 안 보이던 것이 보이는 것 같기도 하다. 천지무인(天地無仁)에 대한 김 교수의 풀이는 이러하다. 천지가 어질지 않다는 것은 천지의 어짊이 ‘큰 어짊’이라는 거다. 그 ‘큰 어짊’은 ‘소소한 어짊’이 아니다. ‘소소한 어짊’에 익숙한 사람은 ‘큰 어짊’을 두고 몰인정하다고 여긴다. 물론 이 풀이가 ‘큰 어짊’이 몰인정하다는 데에 방점이 있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큰 어짊’의 가치를 넌지시 깨닫게 해 주려는 데에 있다고 생각한다. ‘큰 어짊’은 유정함·몰인정함·무정함 등의 소소한 차원을 넘어서서, 인간 세상에 보이지 않는 섭리, 즉 ‘사람과 사람 간 정(情)이 이어지는 길’로 작용한다는 인식일 수도 있다. 나는 ‘소소한 어짊’에 익숙한 사람은 ‘큰 어짊’을 두고 몰인정하다고 여긴다는 풀이에서 생각이 깊어진다. 거칠게 떠올려 보는 생각으로, 우리의 세태가 ‘소소한 어짊’에만 너무 기울어져서 혹시라도 ‘큰 어짊’의 교육적 가치는 아예 도외시하는 건 아닌가 하는 데에 계속 생각이 맴돈다. 그러면서 어짊(仁)의 행위를 오늘날 우리네 잔정에 결부하여 생각해 본다. 잔정이 많다는 것, 동양의 덕목으로 말한다면 ‘어질다(仁)’에 상통할 수 있을까. 원래 어진 마음, 즉 인(仁)은 불행한 사람을 그편에서 이해하고 안타깝게 여기는 마음(惻隱之心)에서 일어나는 것 아니었던가. 잔정이 많은 사람에게 측은지심이 먼저 생겨날 법하다. 상대를 아끼고 이해하려는 마음은 잔정을 통해 드러난다. 잔정이 많은 사람은 상대가 품고 있는 동기와 과정까지 따뜻하게 이해해 주려고 한다. 잔정의 가장 대표적인 표현이 ‘네 마음 내가 잘 알아’이다. 물론 이 감정의 호응은 ‘내 마음 알아줘서 정말 고마워’이다. 잔정이 친밀감을 밀어 올려서 드러내는 일등 공신임을 알 수 있다. 잔정은 대개 겉으로 드러나 보이는 면이 강하다. 정(情)의 오고 감이 비교적 분명하게 느껴지기 때문이다. 정을 주는 쪽에서 정이 많아서 그 정을 숨기지 못하는 측면도 있다. 이런 쉽사리 드러남의 성향 때문에 잔정은 상대에게 금방 감화를 주고, 서로의 정서적 만족감을 빠르게 환류시킨다. 그런 점에서 잔정은 ‘어진 성품’과 ‘어진 덕성’에 결부되면서도 노자의 인식론에 따르면, ‘소소한 어짊’에 넣어 볼 수 있으리라. 소소한 어짊이어서 잔정은 한계도 있다. 잔정에 너무 빠져서 익숙해지면 금방 베풀어지지 않는 정에 대해서 기다리지 못한다. 또 상대의 숨은 정을 깊이 헤아리지 못할 수도 있다. 그걸로 인해 섭섭함에 들 수 있다. 더구나 요즘의 우리 소비 세태, 즉 요구하면 즉각 대령시키는, 이른바 ‘On Demand’의 세태에 익숙해지면, 가시적 잔정을 끊임없이 소비하려 할지도 모른다. 집집마다 하나밖에 없는 자녀를 양육하는 시대, 현대의 교육학은 아이들에게 부단한 스킨십과 마르지 않는 잔정으로 가르치고 배우는 사이가 되기를 원한다. 그러나 사람이 사람을 아끼고 깊이 헤아려서 그 어떤 정을 베푸는 데는, 그것을 쉽게 밖으로 드러내지 않고 숨겨 두려는 데서 정(情)의 가치와 무게를 찾을 수도 있다. 그런 점에서 나는 잔정의 상대어를 무정이나 몰인정으로 두기보다는 ‘속정’에 두어야 한다고 본다. 속정은 또 그 헤아림의 깊이가 얼마나 오묘하며, 그 생성과 교감의 회로가 얼마나 심원한 것인지! 여기서는 내가 발설했던 고백의 문장 하나로 ‘속정’을 환기해 본다. “아버지는 무뚝뚝하시고 말씀이 없으셨지만, 속정이 깊은 분이셨어요. 우리 형제는 자랄 때는 몰랐습니다. 철없을 때라 가난한 아버지를 원망도 했었습니다. 아버지가 세상을 떠나시고 비로소 알았어요. 아버지의 유품을 정리하면서, 아버지의 편지나 수첩의 기록을 들여다보면서 알았습니다. 아버지의 속정이 얼마나 깊고 큰 정인지, 그때야 알았습니다.” 이쯤서 다시 생각을 가다듬어 본다. ‘소소한 어짊’이 ‘잔정’에 결부된다면, ‘속정’은 ‘큰 어짊’에 가까운 것이 될 수 있을까. 만약 그걸 허락해 준다면, 다시 이런 생각이 잇따른다. 가정교육이든 학교교육이든 아이들을 길러내는 모든 장면에서 우리는 ‘소소한 어짊’과 ‘큰 어짊’의 균형을 얼마나 잘 살리고 있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