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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세검색Q. 공가처리가 가능한 구체적인 사례에는 어떤 것들이 있는지 궁금합니다. A. 공가의 사례는 다음과 같습니다. ✦ 국가기술자격법에 의한 기술자격취득자의 경우 자격의 유지를 위한 개별법령에 따른 보 수 교육에 대하여는 공가 처리, 단 공무원 임용 시 국가기술자격법 기타 개별 법령에 의 한 자격취득을 의무화한 경우에는 교육파격절차에 따라 처리 ✦ 병역법, 기타 다른 법령에 의한 징병검사·소집·검열점호 등에 응하거나 동원 또는 훈련에 참가할 때 ✦ 공무에 관하여 국회·법원·검찰 기타 국가 기관에 소환된 때 ✦ 법률의 규정에 의하여 투표에 참가할 때 ✦ 승진·전직 시험에 응시할 때 ✦ 원격지간의 전보발령을 받고 부임할 때 ✦ 국민건강보험법시행령 제 26조에 의한 건강검진을 받을 때 ✦ 교원 등의 연수에 관한 규정 제13조에 의한 외국어능력시험에 응시할 때 ✦ 올림픽, 전국체전 등 국가적인 행사에 참가할 때 ✦ 천재·지변·교통차단 등 기타의 사유로 출근이 불가능 할 때 ✦ 구속되어 출근을 할 수 없는 경울 기소 전 까지는 공가로 처리. 이는 유죄판결이 확정될 때까지는 무죄로 추정되는 헌법정신을 감안한 것임. 다만, 공가기간이 장기화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으므로 신속하게 직위해제 또는 징계 등의 조치를 하여야할 것임 ✦ 징계·소청·행정소송 절차에 출석하는 업무담당 공무원은 출장으로 처리하고 당사자 또는 참고인으로 출석하는 공무원에 대하여는 공가로 처리. 다만 행정소송의 경우 그 내용이 공직신분과 무관한 민사에 관한 사항은 연가를 활용해야 함. ✦ 교원의 노동조합 설립 및 운영 등에 관한 법률 제6조에 의하여 교원노동조합의 단체교 섭 권한을 적법하게 위임받은 단체교섭위원 및 교원의 노동조합 설립 및 운영 등에 관한 법률 시행령 제3조 제3항에 의한 교섭관련협의를 위하여 지명된 자에 한하여 공가 처리 됨. 교원노조의 단체교섭과 관련된 공가 기간은 단체교섭 및 교섭관련협의에 직접 참가 한 시간과 동 회의에 참석하기 위하여 필요한 이동시간을 포함하며, 단체교섭 및 교섭관 련협의를 위한 사전협의 등의 부대시간은 공가 기간으로 인정될 수 없음. 예시 ▶ 한국교원대 대학원 입학시험 응시가 공가인지? 공가는 복무규정상 사유에 의하도록 엄격하게 운영하도록 하고 있으며, 공무관련성이 큽니다. 외국어 시험도 공무원 교육운련법시행령 제32조 규정에 의한 외국어능력시험인 경우 허용될 뿐 교사가 자율적으로 응시하는 것이라면 휴가제도의 취지에 맞게 학교장의 판단 여하에 따라 연가가 타당한 것으로 보입니다. ▶군 입대예정자에 대한 입대 전 공가 가능 여부? 공무원이 군 입대 전에 며칠간의 휴가를 얻고자 할 경우 공가를 사용 할 수 없습니다. 다만, 연가를 사용하는 것은 무방합니다.
여름이다. 교실에 들어서면 대부분의 아이들은 축 쳐진 채 엎드려 있다. 몇몇 아이들은 아예 의자에 누워 잠을 청한 아이도 있다. 10분간의 그 짧은 시간을 아이들은 나름대로 즐기고(?) 있는 것이다. 그렇게 엎드리고 누워 있는 아이들을 깨우다 보면 목소리 톤은 올라가고 그 목소리에 아이들은 눈을 비비며 인상을 찌푸리기도 한다. 잠자는 데 왜 귀찮게 깨웠느냐는 표정이다. “어이, 예쁜이! 예쁜 얼굴 인상 쓰면 미워지잖아. 웃어야지~. 그렇지, 웃으니까 예쁘잖아.” 교실이 어느 정도 정리되면 수업이 시작된다. 오늘은 김현승의 ‘눈물’과 관련해 발표를 하는 시간이다. 수업에 앞서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가장 슬펐던 경험을 시로 써 오라고 숙제를 내 주었다. ‘눈물’이라는 시가 ‘사랑하는 자식을 잃은 슬픔’을 노래한 시라 그런 숙제를 내줬는데 생각지도 않게 교실을 눈물바다로 만들어버렸다. 아이들도 자신이 쓴 글을 읽다가 눈물을 흘릴 줄은 전혀 예상하지 못한 결과다. 많은 아이들이 사소한(?) 아픔을 시로 써왔는데 몇몇 아이들은 가슴 속에 그리움으로 묻어두었던 슬픔과 아픔을 시로 써왔다. 한 아이의 시를 보자. 열아홉 / 꽃다울 때 / 그 꽃이 / 꽃을 맺어 꽃 위에 / 꽃 있으메 / 아래꽃 / 휘어가니 윗 꽃이 / 아래꽃 보고 / 바람 따라 /휘갔네 늘 웃음이 좋은 친구가 쓴 시다. 내용을 이해할 수 없어 배경 설명을 원했더니 엄마와의 이별을 쓴 글이라 한다. 열아홉에 엄마는 자신을 낳았고, 어린 동생도 낳았다. 그런데 어느 날 엄마는 세상과 이별을 하고 말았는데 그 내용을 시로 쓴 것이란다. 시가 시조 형식이어서 이날 아이들과 함께 시조 공부도 하게 했던 이 친구는 시를 읽으며 눈물을 주르르 흘렸다. 그런데 이 친구의 첫 울음은 연쇄적 반응으로 나타났다. 다른 아이들도 자신이 쓴 글을 읽으면서 눈물을 글썽인다. 그리움의 감정이 숨겨놓은 눈물샘을 자극한 것 같았다. 그럼 이번엔 재미있으면서도 조금은 슬픈 시를 보자. 한 쪽 불이 나간 형광등 빛 짙게 내려앉은 창문 너머 밤하늘 아이고야 아웅다웅 우당탕탕 어둠 속에 흘러내리는 아이의 슬픔 수업 시간마다 눈을 똘망똘망 뜨고 바라보는 친구의 글이다. 무슨 내용일까 궁금하기도 하고 특히 ‘아이고야 / 아웅다웅 / 우당탕탕'이 무슨 장면이냐 물었더니 어렸을 때 엄마, 아빠가 싸우던 장면이란다. 희미한 형광등 불빛 아래서 우당탕탕 싸우는 엄마, 아빠를 슬픈 눈으로 바라보는 아이의 그림이 절로 그려진다. 그런데 아이들은 이 시를 듣고 재미있다면서 깔깔거리고 웃는다. 한 번쯤의 경험에 의한 웃음이다. 아이들과 함께 웃으면서도 왠지 마음이 짠했다. 지금은 열여덟의 숙녀로 성장했지만 어렸을 나이에 엄마 아빠의 사소한 싸움이 아이들에게 큰 슬픔과 상처가 됨을 이 친구를 통해 새삼 느꼈기 때문이다. 나 또한 우리 집 아이들 앞에서 간혹 목소리를 높인 적이 있었던 것이 떠올라 더욱 그런지도 모르지만 말이다. 다시 다른 시를 보자. 어둠이 낮게 내려진 밤 세상에 젖은 어머니의 어두운 옆모습 이슬이 시리게 내린 새벽 세상에 젖은 어머니의 어두운 등 그날 처음으로 어머니의 주름을 보았다 그날 처음으로 가슴속 깊고 깊은 우물을 만들었고 나는 아무런 말을 할 수가 없었다 참 살아가기 힘든 세상이다. 이 힘든 세상을 우리들의 어머니는 자식들을 위해 새벽의 시린 이슬을 맞으며 세상으로 나간다. 그렇게 세상과 싸우다 보면 늘어나는 건 주름살뿐이다. 그래도 우리들의 어머니는 자신의 주름살을 보고 한탄하지 않는다. 사랑하는 자식들을 위해 애쓴 주름이기 때문이다. 진솔이란 친구의 시를 들으며 대부분의 아이들의 눈가에 이슬이 맺혔다. 자신의 어머니 모습을 보았기 때문이다. 나 또한 늙고 백발이 성성한 어머니의 모습이 떠올라 한동안 허공을 바라봐야 했다. 눈물은 전염성이 강하다. 특히 여학생들은 더욱 그렇다. 그런데 아이들은 울면서 웃는다. 슬프고 그립기 때문에 울면서도 그 그리운 마음을 글로 표현한 것 때문인지 시간이 지나면 금세 웃는다. 애잔하면서도 사랑스러운 모습이다. 이번에 맨 앞에 앉아 있는 친구가 읽겠다고 하더니 한 소절도 못 읽고 눈물만 흘린다. 그러면서 내게 노트를 내밀며 “선생님이 읽어주세요”한다. 제목을 보니 ‘잔혹한 현실’이다. 시를 읽다가 아이를 쳐다보았다. 여전히 눈물을 흘리고 있다. 주변의 아이들도 그 울음에 동참한다. 좀 더 많은 추억을 만들어 놓을 걸 그랬나 보다 이렇게 갑자기 떠나버릴걸 알았다면 하루의 반나절 목 놓아 울다가 지쳐 잠들고 이른 새벽 일찍 일어나 꿈이길 바라며 주무시는 어머니께 다가가니 사진을 보시다 새벽에 잠드셨는지 방안에는 온통 사진들이 비어있는 어머니의 옆자리를 보고 돌아서는 내 눈에는 또다시 눈물이 흐른다 아버지와의 사별과 텅 빈 어머니의 옆자리. 그런 어머니를 바라보며 눈물을 흘리는 딸. 2년 전 아버지와의 이별을 시로 표현한 이 친구는 감정을 주체할 수 없어 내게 읽어 달라 했지만 나라고 별수 있겠는가. 나 또한 이미 눈물의 전염성에 감염되어 있는 상태. 그렇다고 눈물을 보일 수 없어 읽어 내려가다 중간 중간 끊기게 된다. 감정을 조절하기 위해서다. 그런 나의 모습을 보고 아이들이 “야, 선생님도 운다”, “저 봐. 히히. 눈물이 글썽해”하며 조잘댄다. 조금 전에 자신들의 글을 읽으며 울던 녀석들도 나의 글썽임이 뭐가 좋은지 웃는다. 눈가엔 촉촉한 이슬을 담그고 말이다. 이렇게 이 날 수업에서는 이 밖에도 많은 아이들이 자신의 시를 읽으면서 웃기도 하고 울기도 했다. 진한 그리움에 눈을 감는 아이도 있었다. 난 그런 아이들의 글을 모아 학년이 끝날 때쯤 작은 글 집으로 만들어 주기로 약속했다. 그냥 버리기엔 너무나 아까운 마음들의 표현들이기 때문이다.
천년숲길, 바람, 물소리…휴(休)의 시간 아이들과의 체험여행 테마가 넘쳐난다. 갯벌체험, 경제 캠프, 별자리 관찰, 박물관 견학… . 산속 깊숙이 자리한 사찰은 어떨까. 수학여행이나 답사지로 들르는 곳이 사찰이기는 하지만 하룻밤을 자면서 스님과 똑같이 지내보는 템플스테이는 특별한 경험이 된다. 새로운 세계와 삶에 대한 성찰의 기회를 줄 수 있을 것이다. 현재 우리나라에는 전국 80여 개 사찰에서 템플스테이를 실시한다. 템플스테이란 전통 사찰이나 수도원에 머물며 사찰 고유의 문화와 수행을 체험해 보고 느끼는 것을 말한다. 산사에서의 하루는 새벽 예불을 위한 목탁소리를 들으며 깨어나 맑은 음식으로 공양을 하고 단정히 앉아 마음을 비우는 참선을 통해 정신적 풍요를 만들 수 있다. 여기에 불교문화체험, 생태체험, 청소년 템플스테이 등의 요소가 가미되어 다양한 템플스테이가 진행된다. 그 중 강원도 오대산 자락에 자리한 월정사 템플스테이를 살펴보자. 오대산은 태백산맥의 중간에 위치하며 1563m의 비로봉을 주봉으로 동대산, 두로봉, 상왕봉, 호령봉의 다섯 봉우리가 병풍처럼 늘어서 있다. 그 너른 산자락에 유서 깊은 천년사찰인 월정사와 상원사가 안겨 있다. 삼국유사에 의하면 자장(慈藏)이 당(唐)나라에서 돌아온 643년(신라 선덕여왕 12), 오대산이 ‘문수보살(文殊菩薩)이 머무는 성지’라 하여 지금의 절터에 월정사 초암(草庵)을 지었다고 한다. 1300년이 넘는 고찰인 것이다. 문수보살이 머무는 성스러운 땅으로 여겨지고 있는 이곳은 조선시대 조선왕조실록 등 귀중한 사서(史書)를 보관하던 오대산 사고(史庫)가 있던 곳이고 피부병을 앓던 세조와의 인연도 깊다. 석가의 사리를 봉안하기 위하여 건립한 8각 9층 석탑이 우뚝한 월정사에 도착하면 가장 먼저 하는 일은 속세에서 입던 옷을 벗어 가지런히 두고 수련복으로 갈아입는 것이다. 사찰에서 지켜야 할 예절 배우기 이어 차 한 잔을 두고 스님과 잠시 시간을 나누며 법당을 드나드는 법 등 사찰예절을 익힌다. 법당의 가운데 문은 스님들이 다니는 문이니 출입할 때는 측면의 문을 사용해야 하고 정중앙 자리도 스님의 자리이니 피해야 한다. 더불어 합장과 합장절, 큰절을 배운다. 합장은 불교의 독특한 예법으로 두 손의 손바닥을 맞대어 몸과 마음을 다 모아 일심으로 예의를 표현하는 것이다. 합장한 자세에서 허리를 앞으로 45~60° 기울이는 것은 합장절로, 일주문을 넘어 부처님 도량으로 들어가거나 나올 때, 법당에 첫발을 들여놓거나 나올 때, 경내에서 스님과 인사할 때 합장절을 한다. 큰 절은 삼보(부처님, 법, 스님)에 대한 예경과 상대방에 대한 존경을 의미하며 동시에 스스로를 낮추는 수행법이다. 신체의 다섯 군데(양 무릎, 양 팔꿈치, 이마)를 땅에 닿게 하는 것이다. 방법은 두 무릎을 살며시 굽히면서 오른손, 왼손 순으로 바닥을 짚되, 손은 나란히 어깨넓이만큼 벌려서 짚는다. 그 다음 무릎을 꿇고 엎드리면서 왼발이 오른발 위에 오게 포개고, 엉덩이가 두 발의 뒤꿈치에 닿게 한다. 양 팔꿈치와 이마가 바닥에 닿은 상태에서 양손을 뒤집어 손바닥을 위로 향해 귀에 닿을 정도로 받쳐 올린다. 이를 반복해 108배나 1080배, 3000배의 기도나 참회가 이루어진다. 어둠이 내릴 쯤이면 저녁예불을 알리기 위해 사물(四物)을 친다. 사물은 북과 목어, 운판, 종으로 구성되어 있는데 소리로 모든 생명을 구원한다. 북은 가죽을 가진 짐승을 구원하고 목어는 물고기 등 수생생물을, 운판은 하늘을 나는 조류를, 그리고 종은 명부에 든 귀신들을 구원한다. 법고와 목어, 운판이 차례로 스님들에 의해 쳐지면 경내가 경건해진다. 저녁 종은 총 28번을 치는데 본래는 스님이 치지만 템플스테이 행사 때는 참가자들이 칠 수 있는 기회가 주어진다. 저녁 공양 후 잠자리에 드는 시간은 오후 9시. 도심의 사람들에게는 다소 이른 시간이다. 도량석으로 시작되는 산사의 하루 똑똑똑 또르르 똑똑똑 또르르. 도량청정무하예(道場淸淨無瑕穢) 삼보천룡강차지(三寶天龍降此地)~. 만물이 짙은 어둠 속에 잠겨 있는 새벽 3시. 도량을 깨끗하게 하기 위한 의식인 동시에 잠들어 있는 천지만물을 깨우며 미혹의 중생들을 깨어나게 하기 위한 도량석(道場釋)이 진행된다. ‘하늘은 자시(밤 11시∼1시)에 열리고, 땅은 축시(1시∼3시)에 어둠에서 풀리며, 사람은 인시(3시∼5시)에 잠에서 깨어난다’고 한다. 도량석은 단순히 잠을 깨우는 소리가 아니라, 자비를 베풀고 법음을 전하는 깨달음의 도량을 열어 뭇 생명들이 깨달음의 세계로 나아가기를 기원하는 수행의식이기도 하다. 목탁소리는 약한 음에서 서서히 높은 음으로 올리다가 내리기를 아홉 번 정도 반복하니 일체중생이 갑자기 놀라지 않고 서서히 깨어나게 하기 위한 배려인 것이다. 도량석을 마감하는 목탁소리가 끝나면, 그 소리의 끝을 받아 법고가 울린다. 법고의 여운을 운판이 받고 운판의 끝소리에 이어 목어의 둔탁한 소리가 이어진다. 그리고 이어지는 그윽한 범종 소리. 범종 소리가 끝남과 함께 법당에서는 작은 종이 울리고 예불이 시작된다. 골 깊은 강원도 오대산 월정사, 그곳에서 산사의 하루는 이렇게 시작된다. 가사장삼을 걸쳐 입은 스님들이 총총걸음으로 줄지어 적광전으로 향하고 은은한 범종 소리가 경내에 퍼지면 수련생도 어둠이 사위에 쌓인 경내를 질러 적광전으로 향한다. 코끝을 간질이는 향내음과 가만가만히 울려 퍼지는 목탁소리, 그리고 알 듯 모를 듯 염불소리와 석가모니불의 크고도 위엄 있는 자태를 경외하며 반시간 남짓의 새벽예불이 올려진다. 목탁소리에 맞춰 ‘오분향’, ‘헌향진언’, ‘예경문’, ‘반야심경’을 외는 스님들의 목소리는 장엄하다. 은은히 조명 밝힌 팔각구층석탑과 어둠새벽 하늘을 지키는 별빛이 오묘한 천상(天上)의 세계를 보여준다. 미명의 새벽에 전나무 숲 걷기 새벽예불이 끝나면 별빛에 의지하며 월정사가 자랑하는 전나무 숲길을 걷는다. 청량한 새벽 공기는 가슴 속에 가득 채워져 있는 탁한 공기와 잡념 그리고 번뇌를 씻어주는 듯 머리를 맑게 한다. 손전등 등 인공의 빛을 배제하고 원시 자연의 방법으로 길을 가야 한다. 운무가 가득하고 개울물 소리만 들리는 전나무 길은 신비로움의 극치다. 미명의 어둠길을 걸어 일주문에 도착할 즈음이면 제법 앞이 보인다. 일주문. 사찰에 들어서는 산문(山門) 중 첫 번째 문으로 사바세계에선 지극한 행복이 있는 불국정토로 가는 문이며, 생멸(生滅)이 있는 세계에서 각(覺)의 세계로 들어가는 문이며, 생사를 열반으로, 번뇌를 지혜로, 속박을 해탈로 탈바꿈시키는 문이며, 무상(無想)과 고통과 무아와 부정의 인생을 상락아정(常樂我淨)의 삶으로 전환시키는 문이기도 하다. 이 문을 통과해야만 불국정토로 들어갈 수 있고 이로 인해 인생의 대전환이 일어나는 것이다. 그 의미를 되새기며 일주문을 넘으면 지나온 어둠의 전나무길이 밝음과 열림의 전나무 길로 다시 다가온다. 그리고 이어지는 800여 m에 걸친 숲길은 참으로 아름답다. 이른 아침부터 부산히 움직이는 다람쥐를 만나고 맑은 골짝물 위에 떠가는 나뭇잎을 만나고 여덟의 친구를 잃고 이제는 홀로 서 있는 수백 년 된 전나무도 만나고 또 출가한 이들의 삭발한 머리를 묻어두는 작은 비(碑)도 만난다. 이 길은 묵언(아무 말도 하지 않고 사색하며 걸음)을 행하며 걷는 길이다. 마음까지 깨끗이 닦아내는 발우공양 새벽 찬바람과 전나무 향을 만끽하며 돌아오면 아침 공양이 기다린다. 가부좌를 하고 앉아 죽비소리에 따라 발우를 편다. 행자가 청수 물을 돌리면 큰 그릇에 물을 받아 국그릇 찬그릇을 헹구고 밥과 국은 각각 먹을 만큼만 담아, 남거나 모자라지 않게 한다. 소리를 내지 않고 꼭꼭 씹어 공양한 뒤 마지막으로 김치나 단무지 한 조각을 남겨 밥그릇과 국그릇, 찬그릇을 깨끗이 닦아 퇴수까지 말끔히 먹어야 한다. 퇴수는 아귀에게 공양할 음식인데 아귀는 몸은 태평양만하지만 목구멍은 바늘구멍보다 작아 항상 배고픔에 기갈이 든 귀신이다. 이들은 불가에서 공양하고 남은 퇴수를 마시는데 이때 음식찌꺼기가 있으면 이것이 목에 걸려 목구멍에 불이 나면서 엄청난 고통을 주니 배고픈 아귀가 끼니를 거르게 된다. 엄청난 악업을 짓게 되는 것이다. 발우공양(鉢盂供養)에서 발우란 ‘양에 알맞은 그릇’이란 뜻으로 스님들이 사용해 온 식기다. 발(鉢)은 인도말(범어)로 발다라(鉢多羅)의 약칭이고, 우(盂)는 중국말(한자)로 밥그릇이라는 뜻으로 번역하면 응량기(應量器)가 된다. 즉, 각자 자기가 먹을 수 있는 양에 따라 공양하는 그릇이라는 뜻이며 수행의 한 과정으로 행하기 때문에 법공양이라고도 한다. 부처께서 6년 고행 후 보리수 아래에서 성불한 다음 타푸사, 바라타 두 상인에게 첫 공양을 받았으니 발우공양의 역사는 수천 년을 넘나든다. 발우공양이 끝난 발우는 처음에 받았던 발우의 모습대로 깨끗해 설거지가 필요치 않다. 심각한 사회 문제로 대두되고 있는 음식 낭비와 환경·식수 오염으로 인간의 생존권이 위협받고 있는 이때에 쌀 한 톨, 밥 한 알도 함부로 버리지 않고 아끼며 환경 오염을 미연에 방지하는 발우공양은 참으로 환경 친화적인 식사법이다. 이 모든 것은 ‘처음처럼’ 흔적이 남지 않게 하고 좋은 것을 남에게, 나쁜 것을 나에게로 향하며 다른 사람을 먼저 배려하는 마음이 기본이 된다. 몸과 마음이 건강해지는 시간들 아침 공양이 끝나면 월정사 경내와 상원사, 수정암을 둘러본다. 60여 개의 사찰과 80여 개의 암자를 거느린 월정사는 대한불교조계종 제4교구의 본사로 국보 제48호인 팔각구층석탑을 비롯한 수많은 문화재를 보유하고 있다. 월정사 팔각구층석탑 사리구, 상원사 문수동자 좌상의 복장유물인 상원사 중창 권선문(국보 제292호), 부처님 진신사리(보물 제793-21호)를 비롯, 한암(漢岩)·탄허(呑虛) 스님의 유품에 이르기까지 500여 점이 전시되고 있다. 이는 월정사 경내의 성보박물관에 보관되어 있다. 세조 4년(1459)에 간행된 월인석보(月印釋譜·보물 제292호), 세조어의(世祖御衣·보물 제793-16호) 등 세조와 관련된 유물도 많다. 상원사는 세조가 심한 피부병에 시달릴 때 찾은 곳이다. 세조는 꿈속에서 단종의 어머니인 현덕왕후가 뱉은 침에 맞은 후에 피부병이 생겼다. 전국을 헤매다 영험하다하여 찾은 이곳 계곡물에 몸을 담갔는데 지나는 동자승이 등을 씻어준 후 말끔히 나았다고 한다. 하여 상원사에는 다른 사찰에는 없는 문수동자상이 봉안되어 있고 계곡에는 세조가 옷을 벗어 걸었다는 관대걸이가 있다. 종각 안에는 상원사 동종이 걸려 있다. 하늘하늘 꽃구름을 타고 얇은 옷깃 나풀대며 기도하는 비천상의 모습은 전율이 느껴질 정도로 아름답다. 신라 자장율사가 부처의 진신사리를 모셨다는 적멸보궁, 부도 탑들을 돌아보면 적당히 피곤하다. 이렇게 적당히 몸을 움직이고 일찍 자고(9시), 일찍 일어나고(3시), 채식위주의 절밥으로 공양하면 몸이 가볍고 마음이 가벼워진다. 빼어난 자연환경과 불교문화가 어우러진 사찰, 그곳에서 스님과 수행자의 일상을 체험하며 몸과 마음의 휴식을 얻는 템플스테이(Temple Stay)는 참으로 좋다. 일상을 잠시 내려놓고 자신의 삶을 돌아보는 소중한 시간이 될 것이다.
오타 에미코 선생님의 특별한 미술 수업, 생각수업 송 선생님. 어찌 지내시는지요. 쳇바퀴 돌아가듯 이어지는 교직생활에 지쳐가거나 가끔 아이들에 대한 회의가 느껴지지는 않으신지. 설혹 그렇다 하더라도 이내 교실로 가는 발걸음을 스스로 조절하실 선생님이기에 멀리서도 웃음이 지어지곤 합니다. 그냥 처음부터 마음을 열고 편히 읽다보면 마음 한 구석에 단단하게 잡히는 그 무엇인가를 느 낄 수 있는 그런 책, 생각수업(야마코토 미메 지음. 열음사) 이야기를 오늘은 전해드리고자 합니다. 도쿄 근교에 있는 사가미하라市 아사미조다이 중학교에는 특별한 미술실과 미술시간이 있습니다. 그리고 이 학교 학생들이 거둔 미술적 성과는 물론이고 수업에 헌신을 다한 선생님의 이야기가 일본 전역에 큰 감동을 몰고 왔습니다. 오타 에미코 선생님이 담당하고 있는 미술실의 벽면은 선명한 색상의 그림들이 빽빽하고 철따라 바뀌는 화초들도 자리잡고 있습니다. “일주일에 단 한 시간만이라도 아이들에게 자신이 존중받고 있다는 생각”을 가지도록 하기 위한 오타 선생님의 배려 덕택입니다. 오타 선생님은 아이들의 잘못을 지적할 때 “안 돼”라고 하지 않고 “싫다”라고 말합니다. 아이들을 ‘스스로 판단할 수 있는 존재’로 믿고 만나려는 마음이 깔려 있는 것이지요. 그리고 장난삼아 하는 태도만은 절대 용서하지 않는데, 그런 태도가 완전히 없어질 때까지 수업도 하지 않을 뿐더러 중요한 이야기도 절대 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칭찬에는 전혀 인색하지 않아 사소한 것에도 칭찬이 이어집니다. 수업시간에 일찍 오기만 해도 “착하다”, 자기 스스로 스케치북을 펴고 있기만 해도 “착하다”고 합니다. ‘좋은 결과를 냈기 때문에 훌륭한’ 것이 아니라 ‘좋은 결과로 이어지는 행동’을 한 것만으로도 ‘착하다’는 오타 선생님의 철학이 그 바탕입니다. 100% ‘착한 아이’가 된 다음에 인정하는 게 아니라 1% 단계에서부터 인정하고자 하는 마음을 갖는 것입니다. 수업이 어느 정도 자리가 잡히면 고정관념을 깨는 일부터 시작합니다. 직접 현장을 찾아 서로 다른 풀의 모습을 관찰하게 하고 풀 한 포기가 모두 다르듯 사람도 다 다르다는 것을 가르칩니다. “하늘은 파랗고 사과는 빨갛다고 생각하고 그림을 그리는 것은 사물의 형태를 기호로 그리는 것입니다. 기호 속에 봉인되어 버린 시각을 되찾게 해줘야 합니다.” 그 다음 단계는 스스로 조사, 연구하는 단계. 스케치북은 단순히 그림만 그리는 공간이 아니라 주제에 맞는 자료와 도표가 채워지는 공간으로 변모합니다. 신문, 인터넷, 잡지 등을 통해 주제에 대한 조사를 마치면 저마다 발표하는 시간을 가지고 그 내용은 고스란히 그림에 담기게 됩니다. 이런 과정을 통해 아이들은 자부심을 갖게 됩니다. 남을 이겼다는 우월감이 아닌, 자신이 최선을 다해 완성한 작품이 인정받았을 때의 기쁨은 아이들의 ‘자존심’을 ‘자부심’으로 진화시킵니다. “그림자라면 으레 검게 칠하는데 실제로 검정색은 어디에도 없어. 어두운 부분은 검정색을 칠하는 게 아니라 여러 가지 색깔을 섞어서 칠하는 거야.” 아이들의 그림에 들어가 있는 색들도 단순히 한 가지의 색으로 칠해지지 않습니다. 같은 잎사귀와 줄기를 그리더라도 수많은 색이 덧칠해지며 고유한 색을 찾아내는 과정을 거치게 됩니다. 세상은 저마다 다름이 겹쳐져서 이뤄진다는 것을 아이들은 그림을 그려가는 과정 속에 몸으로 체득하게 되는 셈이지요. 이런 오타 선생님의 수업방식은 사실 자신의 슬픈 과거와 연관이 있습니다. 군인과 결혼해 평범한 주부생활을 시작했지만 남편에게서 존중받지 못하는 참담한 생활이 계속 됐고 결국 결혼생활을 청산, 천신만고 끝에 교사가 될 수 있었습니다. 자신도 중요한 존재라는 기쁨을 느낀 후 남에게 인정받는 기쁨을 아이들에게도 경험시키고 싶다는 간절한 열망이 있었던 것입니다. 혹 이런 선생님의 수업에 대해 ‘공자 왈 맹자 왈’ 같은 이야기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지는 않으신지요? 오타 선생님의 주변도 사실 그러했습니다. “저런 능력은 타고 나는 것”이라며, 자신들에겐 무리라고 생각해버리는 교사나 “나도 저렇게 할 수 있다”고 가볍게 넘기는 사람 등 냉대도 많이 받았다고 합니다. 이 부분에서 저자는 “세월이 흐르면 누구나 베테랑이 될 수 있지만 카리스마는 막연히 시간이 지난다고 생기는 것은 아니다. 헤아릴 수 없을 만큼 독자적인 방법들을 오타 선생님은 남몰래 연구해 온 것”이라고 지적합니다. 송 선생님, 오타 선생님이 보여준 것은 ‘수업방법’이라기보다는, 한 교사가 아이들의 힘을 여기까지 이끌어줄 수 있다는 ‘가능성’이 아닐까요? 그 가능성을 위해 내일도 교단에 서 있을 선생님께 소리 내어 박수를 보냅니다. (* 오타 선생님은 몇 해 전 퇴직을 하셨고 이 책은 사과는 빨갛지 않다의 개정판입니다.)
멱쇠채 작은 섬 전체에 조그마한 들꽃들이 서로의 모습을 자랑이라도 하려는 듯, 앞다투어 피어나기 시작하는 5월이었습니다. 어느 날 해변을 가기 위해 산언덕을 내려가던 중 노랗고 큰 꽃 몇 송이가 탐스럽게 피어 있는 모습을 보고 깜짝 놀랐습니다. 처음 보는 꽃이었는데 민들레도 아닌 것이 마치 원예종을 이곳에 옮겨 놓은 것이 아닐까 착각할 정도로 꽃 자체가 크고 아름다웠기 때문이었습니다. 며칠을 고생해 알게 된 이름은 ‘멱쇠채’. 미역 모양의 잎을 먹을 수 있으나 조금 질긴 채소라는 뜻에서 붙여졌다고 합니다. 여러해살이풀이며 뿌리가 매우 굵고 잎은 뿌리목에서 모여나기 하고 잎 가장자리는 밋밋한 것이 특징입니다. 꽃 속 수술의 모양은 얼핏 보면 낚싯바늘들이 촘촘히 서 있는 것 같아 아름다움과 신비로움을 동시에 느끼게 해줍니다. 주로 중부 이북 지방에서 자라고 어린잎과 꽃줄기는 나물로도 먹을 수 있습니다. 아름답고 귀한 우리나라 자연의 식물자산 중 1품종이라고 해도 좋을 꽃 멱쇠채. 개인적으로는 이 꽃을 개량하여 원예종으로 발전시킨다면 어느 꽃보다 아름답고 새로운 품종으로 탄생될 것이라 생각됩니다.
나라 이름이라고 변하지 않을쏘냐 올해 어린이날에 부산에 사는 동생 집에 놀러 갔더니 조카아이가 지구본을 선물 받았다고 자랑을 했다. 지구본 위에는 각 나라의 영토가 국경선을 따라 갖가지 색깔로 뚜렷하게 구분되어 있었고, 나라 이름과 큰 도시 이름이 적혀 있었다. 나는 무람없이 “어디 어디 좀 가리켜보렴”하고 어른 티를 냈고, 아이는 아이답게 내 앞에서 자신의 ‘대단한’ 지식을 뽐냈다. 다행인지 불행인지 나이가 30년도 넘게 차이 나는 두 사람은 나라 이름을 공유하고 있었다. 하지만 모든 언어가 그러하듯이 나라 이름이라고 영원불변할 리는 없다. 지나간 역사를 조금만 떠올리더라도 나라 자체가 생기거나 없어지는 것은 물론 사정에 따라 나라 이름을 바꾸는 일도 비일비재하다. 우리는 1988년 서울올림픽 때만 해도 존재했던 소비에트연방이 몇 년 뒤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지는 것을 목격했다. 국경선이 끊임없이 변해왔던 것처럼 어떤 지역이나 나라를 가리키는 명칭도 역사적 필요에 따라 변하기 마련이다. 우리는 별 의문 없이 학교에서 가르쳐준 대로 국가의 명칭을 외우고 있지만, 그것은 ‘현재’라는 단서가 붙은 임시적이고 시대적인 것에 지나지 않는다. 나라 이름도 한국어다! 국가의 명칭은 현재적일 뿐 아니라 어디까지나 ‘한국’이라는 울타리 안에서 생겨나 자리를 잡고 통용될 뿐이다. 예를 들어 ‘터키’는 영어 발음에서 빌려온 음으로 표기한 나라 이름이지만, 이것을 영어라고 보기는 힘들다. 왜냐하면 Turkey의 ‘r’ 발음을 굴리지 않으면 영어권 사람과 ‘터키’라는 말을 공유할 수 없을 것이기 때문이다. ‘터키’는 영어와 발음이 비슷하긴 해도 엄연한 한국어인 것이다. 아주 오래전 이야기지만, 일본인 친구와 이야기를 하다가 ‘토르코’라는 말을 들었다. 무슨 말인지 알아들을 수 없었던 나는 자꾸 모르겠다는 말만 되풀이했다. 그러니까 답답해진 친구는 “언니 같은 사람(?)이 모를 리가 없을 텐데…”하고 아쉬워했다. 그렇다, 내가 터키를 모를 리 없었다. 그러나 일본어인 ‘토르코’는 아무래도 알아들을 수가 없었다. 차라리 ‘투르크’나 ‘토이기(土耳其)’였다면 알 수 있었을지도 모르겠지만 말이다. 마찬가지로 그 친구 역시 (아무리 내 발음이 유창했다고 해도) ‘터키’라는 한국어를 알아들을 수 없었을 것이다. 본래의 나라 이름과 한자음의 나라 이름 때로는 동일한 나라인데 다른 명칭으로 부르는 경우가 있다. 왜 이런 현상이 일어나게 되었을까. 우리가 나라 이름을 붙이는 방법에는 크게 두 가지가 있는데, 하나는 본래 이름을 소리 나는 대로 한글로 적는 것이다. 노르웨이, 스페인, 쿠바, 뉴질랜드, 인도네시아, 베트남 같은 예가 그것이다. 또 하나는 한자어로 표기된 것을 음역(音譯)하거나 의역(意譯)하는 것인데, 미국, 중국, 태국, 일본 등이 여기에 속한다. 그런데 외국의 존재를 알고 이름을 붙이기 시작한 조상들은 외국의 명칭을 한글 표기보다는 한자음을 빌려 표기했다. 이제는 퀴즈 문제로나 나올 법하지만, 백여 년 전 이 땅에서는 네덜란드를 화란(和蘭), 오스트리아를 오지리(奧地里), 러시아를 아라사(俄羅斯) 또는 노서아(露西亞), 독일을 덕국(德國), 필리핀을 비율빈(比律賓)이라고 썼다. 이러한 한자음 표기는 나라뿐 아니라 구라파(歐羅巴, 유럽), 아세아(亞細亞, 아시아) 같은 지역 이름이나 윤돈(倫敦, 런던), 백림(伯林, 베를린), 나성(羅城, 로스앤젤레스) 같은 도시 이름에도 사용되었다. 이들 가운데 ‘동백림(동베를린) 사건’(1967년 7월 8일, 중앙정보부에서 발표한 간첩단 사건), ‘나성에 가면 편지를 띄우세요’(가요 제목, 길옥윤 작곡)처럼 몇몇은 아직도 귀에 익은 채 남아 있기도 하지만. 나라 이름의 표기와 이미지 사이 근대 초기에 해당하는 개화기 문헌을 살펴보면 프랑스를 표기할 때 한자어의 음역인 불란서(佛蘭西)와 의역인 법국(法國)이 혼용되었다. 중국에서는 지금도 ‘법국’이 그대로 사용되고 있는 데 비해 한국에서는 불란서와 프랑스가 줄곧 사용되어 왔고, 요즘 들어서는 그나마 프랑스로 통일되어 가는 듯하다. 그런데 본래 이름인 프랑스를 그대로 프랑스라고 부를 때는 어떤 의미도 끼어들지 않지만, 한자어로 표기하면 사정이 좀 달라진다. ‘佛蘭西’는 음역이기 때문에 부처, 난꽃, 서쪽이라는 이미지가 그다지 강하지 않으나, ‘法國’이라 적으면 마치 ‘법의 나라’라는 이미지가 떠오르기 때문이다. 이렇듯 나라 이름은 그것을 표기하는 과정에서 이미지와 결합하는 경우가 있다. 좋은 감정이나 싫은 감정, 숭배하거나 무시하는 의도가 표기를 통해 드러나는 것이다. 이것은 한자가 표의문자이기 때문에 나타나는 현상이기도 하다. 가장 대표적인 예가 ‘몽골’과 ‘몽고(蒙古)’다. 본래 몽골이라는 이름을 음역하여 한자로 표기할 때, 우매하고 낡았다는 뜻을 가진 글자를 갖다 붙임으로써 몽골이 뒤떨어진 곳이라는 이미지를 낳고 말았다. 몽골을 ‘몽고’라고 한 것은 결국 몽골을 오랑캐 나라로 낮추어 본 중화주의 사상을 고스란히 드러낸다. 미국, 아름다운 나라? 나라 이름 가운데 가장 주목을 끄는 것 중 하나는 ‘미국’이다. 미국은 주지하다시피 해방 후 한국 현대사에서 가장 영향력이 큰 나라로 손꼽힌다. 한미 FTA를 비롯하여 최근에는 온 나라를 ‘촛불집회’로 후끈 달군 미국산 쇠고기 파동을 통해 새삼스레 한국 사회에서 미국이 차지하는 막중한 비중을 실감할 수 있었다. 아메리칸 드림이 더 나은 삶의 표상으로서 보통 사람들의 환상을 충족시켰던 시절에 ‘美國’은 그야말로 이름에 걸맞은 이미지로 다가왔다. 그러나 1980년 광주민주화항쟁 이후 사회의 일각에서는 반미의 기운이 번지기 시작했고, 나아가 한국의 고도경제성장과 더불어 무역 마찰이 표면화되면서 미국의 이미지는 일변하기 시작했다. 그래서인지 2002년에는 해태제과 소액주주운동본부가 ‘미국 국가명 한자 바꾸기 운동’을 발표한 적이 있었다. ‘美國’을 ‘米國’으로 바꾸자는 이 제안과 관련하여 조선일보의 이규태 코너에는 美國의 유래를 간결하게 더듬어본 ‘美國과 米國’이라는 칼럼이 실렸고(2002. 4. 16), 이 칼럼에 대해 오마이뉴스의 조정희 기자가 ‘허점투성이 이규태 코너’라는 글을 통해 조목조목 반박을 펼쳤다. 이규태의 칼럼이 객관적인 고증을 가장하고 있지만 실증적 오류로 가득 차 있다는 것이다(2002. 4. 21~30, 자세한 내용을 알고 싶은 분들은 직접 읽어보시기 바란다). 아름다운 나라와 쌀의 나라 오늘날 중국과 한국은 ‘美國’, 일본은 ‘米國’이라는 표기를 선택하고 있다. 청나라와 미국이 처음 외교관계를 맺은 것은 1844년의 왕샤(望厦)조약을 통해서인데, 이 조약 첫머리에 ‘The United States of America’가 ‘亞美理駕洲大合衆國’라고 적혀 있다고 한다. 여기서 America를 중국식 음을 빌려 나타낸 야메이리지아(亞美理駕)란 말에 ‘美’란 글자가 떡하니 자리를 잡고 있음을 볼 수 있다. 한편, 1854년에 체결한 일미화친 조약에서 는 미국을 ‘亞墨利加合衆國’으로 표기하여 ‘米’의 자취가 보이지 않는다. 하지만 에도시대에 간행된 일포사서(日葡辭書)(일본어-포르투갈어 사전)에는 米國을 ‘쌀이 풍부한 나라’라고 풀이하고 있으며, 여기서 전하여 ‘米’는 亞米利加의 약어(略語)라고 되어 있다(일본국어대사전, 小學館). 옛 문헌을 살펴볼 때 米國보다는 美國이 훨씬 더 앞 시기에 등장하는 것으로 보아 米國은 일본의 영향을 받은 표기임이 분명하다. 1900년대 중반의 교과서만 해도 美國과 米國을 함께 썼다고 하니, 아무래도 개화기 이후 일본의 영향이 개입하면서 米國이라는 표기가 점점 힘을 얻었다고 보는 것이 타당할 듯싶다. 그리고 해방 직후까지도 공존하던 美國과 米國은 그 후 美國으로 굳어진다. 그러나 반미 감정의 골이 깊어지거나 더 이상 미국을 아름다운 나라라고 표기하고 싶지 않다는 의식이 일반화된다면 美國이라는 표기를 버려야 할 날이 올지도 모른다. 난생 처음으로 미국인을 만난 우리 조상은 미국 선원과 의사소통을 시도하다가 ‘America’라는 말을 듣고 ‘며리계’라고 받아 적었다고 한다. ‘며리계’라는 말에는 오로지 먼 곳에서 온 낯설고 신기한 손님에 대한 환대의 마음만이 깃들어 있지 않았을까 몰래 상상해본다.
“체임벌린과 달라디에, 1938년 뮌헨에서 단호한 태도를 취해 히틀러의 슈테덴 병합 야욕을 꺾다.” 물론 뮌헨회담은 정반대의 드라마로 끝났고, 연합국의 자유 수호 의지를 과소평가한 히틀러는 결국 제2차 세계대전을 도발했다. 히틀러의 체코슬로바키아 점령 계획 1938년 3월 오스트리아 병합에 성공한 히틀러와 그의 참모들은 동년 5월에 체코슬로바키아 점령을 계획했고, 우선 독일계 3백만 명이 거주하던 슈테덴을 병합하려 했다. 당시의 체코는 동맹국 프랑스의 군사원조에 의지했다. 역시 동맹관계에 있던 소련도 체코의 방위를 위해 필요할 경우 영·불과 협력할 것으로 예상됐지만 그 무렵 소련은 거의 무시되었다. 히틀러는 줄곧 독일의 체코슬로바키아 병합을 요구했다. 그렇듯 독일의 체코침공이 임박한 듯했으나 영국도 프랑스도 체코를 방어할 준비가 되어 있지 않았다. 사실 양국은 어떤 대가를 치르더라도 독일과의 전쟁을 피하려 했다. 9월 22일 체임벌린은 독일 고데스부르크에서 히틀러를 만났지만 그의 강경한 요구만을 확인했을 뿐이었다. 히틀러는 체코인들에게 9월 28일까지 슈테덴에서 철거하라고 요구했다. 체임벌린은 히틀러의 주장을 수용하려 했지만 체코는 물론 영국 내각과 프랑스는 반대했다. 체코슬로바키아는 1938년 9월 23일에 총동원령을 내렸고, 프랑스는 다음날 부분 동원령을 내렸다. 체임벌린은 긴박한 상황의 타개를 위한 4개국 회담의 즉각적 개최를 제안했고 히틀러도 그에 동의했다. 9월 29일 체임벌린, 히틀러, 달라디에, 무솔리니가 뮌헨에서 만났다. 히틀러는 이전의 주장에서 한 발도 물러서지 않았다. 무솔리니가 중재안을 제시했고, 4인은 10월 10일까지 독일 육군이 서체코의 슈테덴을 점령하되 한 국제위원회가 그 지역의 장래를 결정한다는 중재안을 승인했다(1938. 9. 30). 수년 후 무솔리니의 이 같은 안은 독일 외무성이 준비한 것으로 밝혀졌다. 영국과 프랑스는 체코에게 독력으로 독일에 저항하든 아니면 뮌헨합의를 수용하라고 했고 무력한 체코는 결국 수용했다. 군중의 환영을 받으며 귀국한 체임벌린과 달라디에는 전쟁의 위협이 제거되었다고 보고했다. 체임벌린은 “명예롭게 평화를 달성했다. 나는 그것이 우리 시대의 평화라고 믿는다”고 국민에게 말했다. 독일과의 전쟁 피하고 싶었던 英, 佛 제1차 세계대전을 도발했지만 참패한 독일은 식민지를 모두 상실하고, 알자스-로렌 지방을 프랑스에 양도하고 라인란트가 비무장지대로 되었으며 30년에 걸쳐 천문학적인 1360억 금(金)마르크를 배상해야 했다. 또 육군 10만과 군함 36척 외에는 잠수함과 공군은 가질 수 없었다. 그런 상황에서 1919년 1월 19일의 선거로 구성된 의회는 2월에 공화국을 선언한 다음 사회민주당의 에베르트를 대통령으로 선출하고 ‘베르사유조약’을 비준했다. 독일제국은 그처럼 바이마르공화국으로 탈바꿈했지만 정치, 경제, 사회, 모든 면에서 거의 절망적 상태에 놓였다. 바이마르공화국 헌법은 당시로서는 가장 민주적이고 진보적인 헌법이었다. 주권재민의 이념에 입각해 20세 이상 남녀 보통선거로 구성되는 의회와 임기 7년의 대통령을 두었다. 제한적인 대통령의 권한에 비해 의회의 권한은 아주 컸다. 또 국민의 노동권을 보장하고 노동자의 단결권·단체교섭권을 인정했으며 심지어 노동자대표가 경영에 대해 발언할 수 있는 길도 열어 놓았다. 헌법은 그처럼 진보적이었지만 바이마르공화국의 전도는 문자 그대로 암담하였다. 바이마르체제는 아무리 훌륭한 제도라도 그 자체가 발전이나 성장은커녕 최소한의 안정도 보장해 주지 못한다는 사실을 확인시켜 주었다. 각지에서 폭동을 선동해온 공산당이 1920년 3월에 역설적이게도 제국 부활을 목표로 폭동을 일으켰는가 하면, 국민은 국민대로 처음 경험하는 민주주의에 쉽사리 적응하지 못한 채 패전의 굴욕감마저 벗어나지 못했다. 게다가 국토가 잿더미와 다름없이 된 데다 식민지를 상실한 상황이라 경제의 회복은커녕 천문학적 물가고를 겪어야 했다. 인플레이션은 특히 프랑스와 벨기에의 루르 점령 후 걷잡을 수 없는 상황으로 치달았다. 독일이 배상금 지불을 지연하자 프랑스와 벨기에는 1923년 1월에 독일의 탄광지대 루르를 점령했던 것이다. 독일인들은 분노를 넘어 양국을 증오했지만 어쩔 수 없었다. 이후 바닥을 알 수 없이 폭락하던 마르크화의 가치는 독일의 경제난을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전쟁 전의 1마르크는 미화 25센트였으나 1923년 초에는 5만마르크 대 1$, 루르 점령으로 생산 활동이 마비되어 최악의 상태에 처했던 그해 말에는 25억 마르크 대 1$을 넘어 물경 수조 마르크 대 1$에 이르렀다. 우표 한 장 값이 5천만 마르크였다고 한다. 경제난은 당연히 정치적·사회적 불안을 격화시켰는데, 히틀러가 뮌헨에서 폭동을 일으켜 투옥된 것도 그때였다. 하지만 독일인민당의 스트레제만을 수반으로 하는 연립내각이 조직된(1923. 8) 후 인플레이션을 잡기 위해 진력했다. 폭동이 어느 정도 진압된 후 1조 마르크를 렌텐은행이 발행한 1렌텐마르크로 교환하는 화폐개혁을 단행해 인플레이션을 어느 정도 진정시켰다. 또한 독일의 전쟁배상금 지불을 위한 차관 공여와 프랑스의 루르 철수 등을 내용으로 하는 도즈안(案)에 따라 미국이 제공한 2억$의 차관도 경제안정에 기여했다. 온건한 외교정책을 편 스트레제만은 국제연맹에 가입해 외교적 고립을 탈피하는 등 바이마르공화국의 앞날에 약간의 서광이 비치는 듯했다. 히틀러에게 기회가 된 대공황 1929년 미국에서 시작된 대공황은 독일에 치명타를 가했다. 대서양을 건넌 공황은 영국과 프랑스에도 고통을 주었지만 특히 독일을 재기불능상태로 만들었다. 모든 은행이 폐쇄되고 모라토리움(지불불능) 상태에 이르렀다. 산업침체와 인플레이션에 시달리던 독일은 대공황으로 인해 최악의 상황을 맞이했다. 하지만 히틀러의 나치스(국가사회주의 독일노동자당)는 경제공황이 초래한 정치·경제·사회적 위기를 기회로 이용했다. 중산층과 중소농민도 생존을 위협받는 상태에서 독일인들은 베르사유조약의 파기, 배상금 지불 중지, 군비 확충 등을 주장하는가 하면 공산주의 타도와 유대인 말살을 외치며 독일의 부흥을 약속한 히틀러에게 투표하기 시작했다. 나치스는 1930년 선거에서 107석을 얻어 드디어 143석의 사회민주당에 이어 제2당으로 부상했고, 1932년 7월 선거에서 나치스가 제1당(총 600석 가운데 230석)이 되었다. 대통령 힌덴부르크는 다음해 1월에 히틀러에게 조각을 의뢰했다. 그날 밤 베를린은 밤새 소란스러웠고 시민들은 한껏 들떠 있었다. 브란덴부르크문을 지나 수상관저로 향하는 제복차림의 나치스 돌격대·친위대·히틀러 유겐트, 기타 남녀노소의 횃불행렬이 줄을 이었다. 손에손에 나치스 깃발을 든 그들은 노래 부르고 춤추었다. 히틀러는 어느새 구세주가 되어 있었다. 물론 히틀러의 성공은 우연한 것이 아니었다. 그는 대중의 심리를 파악하고 적절히 이용했다. 그의 모토는 “대중에게로 나가라”였다. 그는 대중에 직접 호소하는 것의 위력을 가장 잘 간파한 정치가 중의 1인이었고 또한 뛰어난 대중연설가였다. 논리나 이치는 문제가 되지 않았다. ‘간명한 말’을 반복해 강력하게 주장할 때에만 대중이 수용한다는 것을 믿고 실천했다. 그는 또한 신문과 방송의 위력을 잘 알고 적절히 이용했으며, 언론매체나 군중집회 등을 이용해 대중의 정서를 좌우할 줄도 알았다. 옥내외의 집회에서 열광하던 독일인들. 그는 달콤하고 통쾌한 수사로 그들을 웃고 울게 했다. 정권을 잡은 직후 히틀러는 공산당을 탄압할 좋은 기회를 얻었다. 1933년 2월 17일에 의사당에 불이 나자 그는 공산당원의 소행으로 몰아 공산당을 탄압했다. 1933년 3월의 선거에서 288석으로 의석을 늘린 히틀러는 5월에서 7월에 걸쳐 사회민주당·독일국민당·중앙당을 해산시키고 일당지배체제를 확립했다. 다음해 8월에 힌덴부르크 대통령이 사망하자 대통령제를 폐지하고 수상 겸 총통이 되어 명실 공히 독재자가 되었다. 그리하여 바이마르공화국은 무너지고 중세의 신성로마제국과 비스마르크제국에 이어 제3제국이 출현했던 것이다. M.베버는 베르사유조약이 조인되자 “우리는 앞으로 10년 안에 모두 다 국가주의자가 될 것이다”고 말했는데, 사실 독일인은 모두 국수적 국가주의자가 되었던 것이다. 옥내외의 군중집회나 거대한 열병식 어디에서나 그들은 ‘히틀러 만세’를 외쳤다. 15~18세 사내아이들은 ‘히틀러 청년단’에 들어가 나치의 자질을 준비했다. 일부 이성적 지식인을 제외하고 대부분의 독일인은 광신적 히틀러주의자가 되거나 적어도 국수주의자가 되었다. 폴란드 침공으로 제2차 세계대전 도발 강력한 독재체제를 구축한 히틀러는 안으로 공산당 탄압, 유대인 박해, 엄격한 통제경제, 군수산업 진흥정책을 강화하고 밖으로는 배상금 지불 거부와 재무장을 선언하는 등 베르사유체제를 정면으로 부정했다. 그 위에 신문과 방송 등 언론은 물론 교육과 예술 부문까지 장악하여 사상의 통제를 강화했다. 나치즘은 국수적 민족주의와 반지성주의에 입각하고 공산주의 타도를 내건 전체주의적 독재체제라는 점에서 이탈리아의 파시즘과 유사했다. 히틀러는 장엄한 분열식과 환상적 대중 집회를 통해 국민을 열광시키면서 군국주의적 독재체제를 날로 강화해 나갔다. 베르사유조약에도 불구하고 비밀리에 재무장을 추진하던 히틀러는 1933년 10월에 국제연맹을 탈퇴하고 1935년 1월에 주민의 직접투표를 통해 자르 지방을 병합하고 이어 징병제를 발표했으며, 베르사유조약과 상제르맹조약으로 병합이 영구히 금지된 오스트리아를 1938년 3월에 병합한 다음 동년 9월엔 체코의 슈테덴 병합을 요구했다. 전술했듯이 체임벌린은 뮌헨회담으로 전쟁을 피할 수 있게 되었다고 자찬했지만 히틀러는 그렇듯 영·불의 우유부단을 비웃으며 다음해에 체코슬로바키아 전체를 점령해 버렸다. 그는 여기서 그치지 않고 국방군에게 폴란드 침공을 준비하도록 명했다(1939. 4). 그리고 1939년 8월 23일에 ‘독·소 불가침조약’을 체결해 서부전선에만 전력투구할 수 있게 된 독일은 8월 31일 ~ 9월 1일 밤에 폴란드를 침공해 2차 대전을 도발했다. 체임벌린과 달라디에가 뮌헨에서 전쟁불사의 태도로 맞섰을 경우 히틀러는 한 발 물러섰을까? 혹 히틀러의 전쟁도발을 잠시 지연시킬 수는 있었을지 모르나 아닐 것이다. 자르 지방을 점령하고 오스트리아를 병합할 때 히틀러는 이미 유럽전쟁이나 세계대전을 도발할 각오였다. 비밀리에 독소불가침조약 체결을 추진한 것 또한 그 사실을 뒷받침해 준다. 혹자는 폴란드 침공 역시 히틀러가 연합국의 의지를 시험하기 위한 것이라고 하나 히틀러의 머릿속에는 이미 세계대전과 유럽제패의 밑그림이 그려져 있었던 것이다. 다만 아쉬운 점은 영국과 프랑스 등 자유세계가 평화보전에 지나치게 매달려 전쟁 초기에 적절히 대처하지 못했다는 점이다.
일본 문부 과학성은 8월 29일, 초등학교 6학년과 중학 3학년을 대상으로 금년 4월에 실시한 전국 학력·학습 상황 조사(전국 학력 테스트)의 결과를 공개 발표했다. 기초지식을 물어보는 문제의 평균 정답율은 중학 수학으로 참가교의 약 2할이 70%이상을 확보한 한편, 40~50%대의 학교가 약 3할이나 있는 등, 학교간 격차가 선명하게 나왔다. 지식의 활용력을 보는 문제의 정답율은 초,중 모두 5~6할로, 43년만에 실시한 작년도에 계속하여 과제로 지적되고 있음을 볼 수 있었다. 전국의 초등학교 6학년에서 중학교 3학년의 거의 전원에 해당하는 약 224만명이 참가한 것으로, 국어와 산수·수학 각각 기초를 묻는「지식」(A)과 응용력을 보는「활용」(B)의 2 분류로 나누어 출제했다. 한편, 생활 습관이나 학습 환경의 조사도 실시했다. 중학교 수학 A는 평균 정답율이 63. 9%이였지만, 학교 별로 보면▽70%대 1749교(참가교의 16. 5%)▽60%대 4921교( 동46. 6%)▽50%대 2763교( 동26. 1%)▽40%대 501교(동4. 7%)등 차이가 컸다. 초등학교 국어 A(평균 정답율 65. 6%)에서도, 정답율 70%대의 학교가 22. 4%있는 한편, 50%대의 학교도 19. 1%로, 기초 학력에 학교간에서 큰 격차가 있는 것을 알게았다. 분류별의 정답율은 초등학교 산수 A가 72. 3%로, 중학 국어 A는 74. 1%. A문제 4 분류의 정답율은 작년도보다 8. 1~16. 1포인트 낮았다. B문제 4 분류는 50. 0~61. 5%로, 10. 5~12. 3포인트 저하된 수치이다. 문부과학성은「과거의 조사에서 과제로 지적된내용을 많이 출제했기 때문에, 작년도보다 더 어려워지고 있다. 따라서 작년의 정답율로 단순하게는 비교할 수 없다」라고 하고 있다. 평균 정답율의 도도부현간 격차(공립학교)는, 최대의 중학 수학 A로 22. 5포인트 였으며, 최소인 중학 국어 A에서도 10. 8포인트 차가 났다.아키타가 5 분류로 톱으로 후쿠이, 토야마도 많은 분류로 상위에 올랐으며, 오키나와는 전분류 최하위로, 오사카나 홋카이도, 코치 등이 성적이 낮았다. 상위층과 하위층의 대상은 작년도와 거의 같았다. 작년도와 같이 취학 원조를 받는 아동 학생의 비율이 높은 학교는 정답율이 낮은 경향을 볼 수 있었다. 학습 환경 등의 조사에서는 국어 수학이나 종합 학습이「도움이 된다고 생각한다」라고 대답한 아동 학생의 비율이 줄어든 것으로 나타났다.
서울시교육청의 국제중학교 설립추진과 함께 사교육열풍이 가시권에 들어오고 있다. 학부모들이 어쨌든 일반 중학교보다는 무엇이 좋아도좋을 것이라는 막연한 생각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그동안 외국어고등학교 등의 특목고의 열기가 수그러들지 않았던 이유와 같다는 생각이다. 벌써부터 학원가에서는 국제중입시에 촛점을 맞춰 수강생들을 모집하고 있다. 이런 과정에서 불법 과장광고를 낸 학원들이 서울시교육청에 적발되어 우려가 현실로 다가오고 있음을 증명해 주고 있는 것이다. 국제중 설립방침에 따라 여기에 맞게 국제중학교 대비반을 운영하고 있는 학원들을 집중적으로 단속하고 나섰는데, 그 실효성에 의문이 있을 뿐 아니라 정말로 학원들의 과장 과대광고를 막기위한 조치인지 의구심이 든다. 그렇게 의구심을 갖는 이유는 국제중학교 설립이 순조롭게 진행되도록 의도적으로 하는 행동일 수 있기 때문이다. 즉 사교육과 국제중학교는 직접적으로 관련이 없다는 것을 강조하기 위한 방안일수 있는 것이다. 여론이 잠시 수그러들면 다시 국제중학교 설립의 정당성을 부각시킬수 있기 때문이다. 국제중학교 설립에 따른 사교육비 증가가 일시적으로 끝날 수도 있다. 그러나 현재의 분위기와 그동안의 분위기를 미루어볼때 일시적으로 끝날 확률은 높지 않다고 본다. 학교교육이 아닌 사교육에 의존하여 상급학교 진학을 한다는 것은 문제가 아닐 수 없다. 이미 국제중학교설립이라는 구실을 만들어 준 다음에 국제중 운영대비반등을 운영하면서 문제를 일으키는 학원을 단속한다는 것은 앞 뒤가 안맞는 조치이다. 많은 시민들이 우려했던 것을 귀담아 듣지 않고 서둘러 결정내린 것이 잘못이라면 잘못인 것이다. 어쨌든 불법적인 영업을 하는 학원들에 대한 단속이 시작되었으니 일회성으로 끝나지 말아야 한다는 것을 강조하고 싶다. 할려면 제대로 하여 국제중학교 입시학원들의 불법 영업을 막아 달라는 것이다. 일시적으로 끝난다면 단속이 이루어질 때는 잠시 쉬었다가 단속의 손길이 미치지 않으면 다시 살아날 것이기 때문이다. 안하니만 못한 결과를 가져와서는 안된다. 한편으로는 서울시교육청에서학원들만 단속하는 것도 문제가 있기는 마찬가지이다. 국제중 설립을 서둘러서 발표함으로써 구체적인 방안이 제시되지 못하였고, 신입생선발을 두고도 말이 많은 것을 감안한다면 학원들을 무조건 단속한다고 해서 해결될 것으로 보이지 않는기 때문이다. 선발방식 자체를 손질하여 학원에 가지 않아도 충분히 합격할 수 있는 방안을 찾는 것이 더 중요하다. 결국 시교육청에서 문제 발생을 유도해 놓고 문제가 발생하고 나서 단속하는 것은 분명 앞,뒤가 안맞는 조치인 것이다. 그렇더라도 이왕 시작한 불법학원단속 방침이 지속되어야 한다. 여기에 국제중학교 입시와 관련한 다양한 선발방식개발도 함께 이루어져야 한다. 어느 한쪽을 일방적으로 몰아가서는 안된다. 모두가 공감하고 인정하는 방안이 하루빨리 나와야 한다. 현재로써는 이보다 더 급한일은 없다는 생각이다. 병주고 약주는 식의 단속은 어느 누구에게도 이득이 되지 않기 때문이다.
“방과후학교 프로그램으로 자신감 키워요” 매현중학교 특수학급은 학기중은 물론 방학 중에도 방과후학교 프로그램을 운영하여 학생들에게는 긴 방학기간을 즐겁고 유익한 시간을 만들도록 하였다. 학부모들에게는 방학 중 장애를 가진 자녀지도의 부담을 조금이나마 덜어줄 수 있었다. 프로그램으로 사물놀이, 미술치료, 점핑 클레이 강좌를 개설하여 7월 21일부터 8월 1일까지 10일간에 걸쳐 1일 4시간씩 운영하였으며, 특수학급 학생 20명이 무더위에도 불구하고 적극 참여하여 알찬 시간을 보냈다. 특히, 학생들이 처음 접해보는 사물놀이는 10일간의 짧은 기간임에도 불구하고, 북, 장구, 징, 꽹과리 장단의 어우러짐이 일반학생들의 장단과 견줄 수 있을 정도의 수준이 되었다. 1학기부터 개설되었던 미술치료는 다양한 미술 재료를 활용하여 ‘나의 전신 그리기’, ‘협동화’, ‘곡식으로 꾸미기’ 등 다양한 활동이 이루어져 학생들의 흥미를 더 해주었으며, 자신의 감정을 미술 활동으로 표출함으로써 정서적 안정에도 많은 도움이 되고 있다. 점핑 클레이 활동은 점토를 손으로 주무르기, 감기, 섞기 등의 손 동작을 통해 소근육 운동을 통한 감각치료에 효과적이다. 연필 꽂이, 메모지 꽂이, 작은 벽걸이 시계 등 소품 만들기 활동이 이루어졌는데 모양이 다소 찌그러져 우습기도 하지만 학생들은 자신만의 완성된 작품을 보면서 뿌듯함과 자신감을 얻는 계기가 되었다. “한마음 캠프로 우정과 화합 다졌어요” 학생 18명과 교사들이 8월 11일부터 2박 3일간 국립 평창 청소년 수련원에서 실시된 '우리 두리 한마음 캠프'에 참가하여 서로의 우정과 화합을 다지며 즐거운 한때를 보냈다. '우리두리 한마음 캠프'는 전국의 특수학급에 재학 중인 학생들을 대상으로 매년 여름 방학 기간을 이용해 실시하는 캠프로 올해에는 매현중학교가 경기도내 특수학급 중에서는 유일하게 참여하였다. 여는 마당, 레크댄스, 수영, 열린체험 한마당, 모닥불 놀이, 야간 모험 산행, 자연 관찰 등 다양한 프로그램으로 진행된 캠프를 통해 장애학생들은 자연과 좀더 친숙하게 지내며 자연을 이해하고, 친구와 함께 어우러지며 우정과 화합을 다지는 계기가 되었다. 특히 페이스 페인팅, 도미노 쌓기 놀이, 달고나 만들기, 신문지 모자 만들기 등 다양한 내용으로 이루어진 열린 체험 한마당을 통해 장애학생들 모두가 체험활동에 직접 참여하면서 성취감과 자신감을 가질 수 있었다. 어둠과 함께 내리는 비속에서 이루어진 야간 모험 산행은 목표물 하나 하나를 찾기위한 장애학생들의 노력과 조별 활동에서 이탈하지 않도록 서로 챙기고 배려하는 모습이 눈물겹도록 아름다웠으며, 목표물을 찾을 때마다 환호성을 지르며 서로를 부둥켜안고 좋아하는 모습에 캠프 지도자들 또한 웃음을 자아냈다. 2박 3일간의 짧은 기간이지만 매현중학교 특수학급 학생들은 자연과 더불어 지내며 서로를 도와주고 배려하는 큰 마음을 배우게 된 시간이었다. 여름방학 방과후학교 프로그램과 ‘우리 두리 한마음 캠프’에 참여하며 알차게 보낸 매현 중학교 특수학급 학생들은 2학기에는 더욱 더 성숙한 모습으로 학교생활을 할 수 있으리라 굳게 믿는다.
미국의 부모들이 자녀들의 새학기를 앞두고 학습 준비물 부담이 갈수록 늘어나 고통을 겪고 있다. 뉴욕타임스(NYT)는 30일 교사들의 월급과 학교 시설물 유지, 교과서 등 기본적인 비용을 대기에도 버거운 학교들이 부모들에게 학습 교재를 더 많이 구입해 줄 것을 요구하고 있다며 이같이 보도했다. 학교측이 학생들에게 온갖 종류의 준비물을 학교에 가져오도록 함에 따라 새 신발과 필수 준비물만 사면 됐던 시절은 완전히 지나갔다는 얘기도 나오고 있다. 학교마다 부모들에게 요구하는 준비물은 다르지만 색연필, 각도기 등과 같은 것에서 휴대용 메모리, 일회용 카메라 등 비싼 준비물에 이르기까지 다양하다. 준비물 항목이 30개에 이르는 학생도 있다. 또 반창고, 종이 타월, 세정제 등 양호교사 등이 갖고 있어야할 것으로 보이는 물품까지 학생들의 준비물에 포함되기도 한다. 뉴욕주 학교위원회연합회에 따르면 고교생의 경우 새학기 준비물 부담액이 평균 100달러에 달하고 중학생의 경우 60달러 정도에 이르고 있다. 뉴욕시의 많은 교사들은 시의회가 교사들의 학습교재물 구입을 보상해주는 기금을 기존의 2천만달러에서 올해 1천300만달러로 줄인 이후 학생들이 직접 마련해야 할 준비물 리스트를 크게 늘렸다. 교사들은 전에는 자신이 교재물을 구입하는데 기금에서 1인당 240달러 정도를 사용할 수 있었지만 지금은 이것이 150달러로 줄었다. 이와 함께 많은 교사들이 준비물 리스트를 가정에 보내면서 특정 품목에 대해서는 부모들에게 기부할 것을 부탁하고도 있어 이것이 일부 학생을 편애하는 분위기로 이어질 수 있다는 우려도 낳고 있다. 뉴욕대의 교육.사회정책연구소 소장인 애미 엘런 슈워츠는 교사가 필요로 하는 물품을 많이 제공할 수 있는 부모들은 자신의 자녀들에에게 교사가 더 많은 관심을 갖게 만들 수도 있다고 말했다.
교육과학기술부와 한국교육과정평가원은 오는 11월13일(목) 실시되는 2009학년도 대학수학능력시험 응시원서를 1일부터 전국 78개 시험지구 및 교육청, 고교에서 접수한다고 31일 밝혔다. 접수기간은 1일부터 17일까지 12일 간(토요일 및 공휴일 제외)이며 접수시간은 오전 9시부터 오후 5시까지이다. 졸업 예정자는 재학중인 고교에서, 졸업자는 출신 고교에서 접수하며 원서 접수일 현재 주소지가 출신 고교의 시험지구와 다른 곳으로 이전된 경우 현 주소지 관할 시험지구 교육청에서 접수할 수 있다. 고졸 학력 검정고시 합격자 등 기타 학력 인정자는 현 주소지 관할 시험지구 교육청에서 교부, 접수한다. 또 장기입원 환자, 군 복무자, 수형자 및 기타 특별한 사유가 있다고 인정된 자는 출신 고교나 응시를 희망하는 주민등록상 주소지 또는 실제 거주지 관할 시험지구 교육청에 응시원서를 내면 된다. 제주특별자치도교육청에서는 제주도 소재 고교 졸업자와 제주도에 주민등록이 있는 자 중 제주도 이외의 지역에서 시험을 준비하는 수험생들을 위해 9월10일부터 17일까지 서울 성동교육청에 원서 교부 및 접수 장소를 마련할 예정이다. 응시원서를 제출할 때는 여권용 규격 사진(가로 3.5cm, 세로 4.5cm) 2장과 소정의 응시 수수료를 준비해야 하며 사진은 최근 6개월 이내에 양쪽 귀가 나오도록 정면 상반신을 촬영한 것이어야 한다. 모자나 짙은색 안경을 착용한 것은 안되고 동일원판 천연색 사진이어야 하며 디지털 사진의 경우 원판을 변형하지 말아야 한다. 졸업자 중 시험지구 교육청에 개별 접수할 경우 졸업증명서 1통을 추가로 준비해야 하며 직업탐구 영역을 신청할 경우 졸업증명서 1통, 전문계열 전문교과 82단위 이수 확인서 1통을 각각 준비해야 한다. 약시(저시력), 뇌성마비, 청각장애 등 장애인은 증빙서류를, 고졸학력 검정고시 합격자는 합격증 사본 또는 합격 증명서를, 기타 외국학력 인정자 등은 학력인정 서류를 갖춰야 한다. 응시원서는 본인이 직접 제출하는 것이 원칙이며 대리 접수는 고교 졸업자 중 장애인, 수형자, 군 복무자, 입원 중인 환자, 원서 접수일 기준 해외 거주자로 제한된다. 원서를 접수한 이후에는 수능 선택영역 및 선택과목을 변경할 수 없으므로 대학별 입시요강 등을 사전에 숙지해야 한다. 수능 시험 성적은 12월10일 수험생에게 통지되며 자세한 내용은 한국교육과정평가원 수능운영부(02-3704-3615, 3675, 3676) 또는 해당 시험지구 교육청에 문의하면 된다. 한편 내년 11월12일 실시되는 2010학년도 수능 응시영역 및 과목, 성직 통지방법은 2009학년도와 같으며 세부 시행계획은 내년 3월 말 발표될 예정이다. 교과부는 2010학년도 수능부터는 수험생 유의사항과 부정행위 적발시 불이익 처분 등을 원서 접수할 때부터 응시생에게 명확히 고지하고 이를 응시생이 확인, 서명토록 할 계획이다.
2010학년도 전문대학 입시부터 수시 1학기 모집전형이 폐지된다. 한국전문대학교육협의회(회장 김정길 배화여자대학장)는 전국 147개 전문대학이 협의하고 전문대학입학전형위원회(위원장 이충엽 동의과학대학장)가 심의, 의결한 2010학년도 입학전형 기본사항을 31일 발표했다. 이 기본사항은 그동안 교육부가 발표했으나 정부의 대입업무가 대학으로 이양되면서 4년제 대학은 한국대학교육협의회가, 전문대학은 전문대학교육협의회가 각각 기본사항을 수립해 발표하게 됐다. 기본사항에 따르면 대입 완전 자율화 단계까지 수험생, 학부모의 혼란과 우려를 최소화하기 위해 대입전형의 급격한 변화는 지양하기로 했다. 또 초ㆍ중등교육 정상화, 공정하고 합리적인 선발을 위해 고교등급제, 기여입학제, 본고사는 실시하지 않기로 했다. 모집시기는 수시, 정시, 추가모집으로 구분되며 수시에서는 4년제 대학과 마찬가지로 수시 1학기 전형이 폐지된다. 전형기간은 수시모집이 내년 9월9일부터 12월8일까지, 정시모집이 내년 12월18일부터 2010년 2월18일까지, 추가모집이 2010년 2월19일부터 26일까지이다. 전형요소는 학교생활기록부, 수능시험 성적, 면접ㆍ구술고사, 신체검사, 실기ㆍ실험고사, 적성ㆍ인성검사, 자기소개서 등이며 학생부 반영비율, 방법 등은 대학이 자율적으로 결정하도록 했다. 지원, 발표, 등록 방법은 2009학년도와 동일하게 시행된다. 수시모집에 합격한 경우 등록여부와 관계없이 정시 및 추가모집에 지원할 수 없으나 정시모집(4년제 포함)은 합격해 등록한 자라도 추가모집에 지원할 수 있다. 여러 대학에 복수 합격한 수험생은 정해진 등록기간 내에 최종 1개 대학에만 등록해야 한다. 지원방법을 위반한 사실이 추후 적발되면 입학이 취소된다. 대학들은 지원방법 위반자 처리를 공정하게 하기 위해 정시 및 추가모집 지원서에 수시모집 합격여부를 반드시 표시하도록 하고 위반사실 적발시 입학이 무효처리됨을 수험생이 확인, 서명토록 했다. 또 지원방법 위반자 처리일정을 기존보다 3개월 단축해 수험생이 조기에 진로결정을 할 수 있도록 할 계획이다. 대학별 세부 전형계획은 오는 11월 발표되며 보다 자세한 사항은 전문대교협 홈페이지(www.kcce.or.kr)에서 확인할 수 있다.
임해규 한나라당 간사 17대 국회부터 교육위만 고집해온 ‘교육통’ 재선. 서울대 재학 당시 민주화 운동을 하다가 제적돼 15년 만에 학사모를 쓴 운동권 출신 의원으로 겸손하면서도 논리적인 언변의 소유자다. 김신일 전 교육부총리가 박사 과정 지도 교수로 평생교육 전공이다. 김문수 경기도지사의 지역구(부천 원미갑)를 이어 받아 17대부터 내리 당선됐다. 17대 후반기 국회서도 교육위 간사를 맡아 고교․ 대학․운동권 선배인 대통합민주신당 유기홍 간사와 더불어 소모전 없는 교육위 운영에 기여했다. ▲60년, 김천 ▲양정고, 서울대(학․석사, 박사과정) ▲제2,3,4대 부천시의회 의원 ▲한나라당 원내부대표, 17대 한나라당 경기도당 정책본부장, 한나라당 18대 총선 공천심사위원 안민석 민주당 간사 18대 국회 상임위가 구성되기도 전부터 활발한 의정 활동을 벌이고 있는 재선 의원. 교육감 선거 제도를 개선하자는 지방교육자치법 개정안을 제출했고, 학교 급식 종사자 정책 토론회에 이어 교원평가 토론회도 준비하고 있다. 고교 때는 육상 선수로 각종 대회에 출전해 수상할 정도로 만능 운동인이다. 서울대 사범대 재학 시절에 진보적 청년 단체인 ‘닷옴’을 오산시에 결성해 초대회장을 맡았고, 총학생회운동으로 수배되기도 했다. 17대 국회 경기 안산서 당선 됐으며 후반기 교육위로 옮겨 학교복합화시설정책을 제안했다. ▲63년, 의령 ▲수성고, 서울대, 미 북콜로라도주립대 교육학 박사 ▲공군사관학교, 중앙대 교수 ▲민주당 원내부대표 ▲2006~7년 국감우수의원 이상민 선진과창조의모임 간사 변호사 출신으로 우직한 소신파라는 평가를 받고 있다. 17대 총선서 열린우리당 후보로 대전 유성에서, 18대 총선서는 같은 지역에서 자유선진당 소속으로 출마해 당선됐다. 17대 국회서는 학교용지부담금환급특별법안을 대표 발의해 관철시켰고, 11일에는 대학 시간강사를 교원의 범주에 포함시켜 처우를 개선하자는 법안을 제출했다. 이 의원이 간사를 맡고 있는 선진과창조의 모임은 자유선진당과 창조한국당이 합의해 만든 원내교섭단체다. ▲58년, 대전 ▲충남고, 충남대 ▲열린우리당 의장경제특보, 제1정책조정위원장 ▲대통령인사자문위원 ▲대전경실련 감사 및 조직위원장 ▲우송대 및 대덕대 겸임교수
법학전문대학원(로스쿨) 예비인가를 받았던 전국 25개 대학이 모두 로스쿨 최종 설치인가 대학으로 선정됐다. 이에 따라 25개 로스쿨은 예정대로 내년 3월 개원해 첫 신입생을 받는다. 25개 대학에 있는 법과대학은 현 재학생들이 졸업하는 2012년 2월까지만 유지되고 이후에는 폐지된다. 교육과학기술부는 법학전문대학원 설치인가를 신청한 전국 41개 대학 중 서울권역(강원포함) 15개 대학, 지방 4대 권역 10개 대학 등 모두 25개 대학을 최종 인가 대학으로 확정했다고 29일 밝혔다. 이들 25개 대학은 2월4일 예비인가 대학으로 선정된 뒤 6개월여 간 교원, 시설 확보 등 개원 준비상황을 점검받은뒤 지난 25일 법학교육위원회의 심사를 거쳐 본인가 대학으로 최종 선정됐다. 총 입학정원은 2천명이며 대학별 입학정원은 서울대 150명, 고려대ㆍ성균관대ㆍ연세대 120명 등 최소 40명에서 최대 150명으로 지난 2월 예비인가 당시 배정받았던 정원과 동일하다. 이걸우 교과부 학술연구정책실장은 "대학들이 제출한 최종 신청서와 실사 결과를 종합적으로 심사한 결과 이들 대학이 최종 인가를 받는데 적합하다고 판단해 예비인가 때와 동일하게 최종 인가 및 대학별 정원을 결정했다"고 말했다. 교과부는 최종 설치인가 대학에 대해 로스쿨 설치 및 운영에 관한 사항을 학칙에 반영하도록 하고 10월부터 실시되는 대학별 입학전형이 공정하게 실시되도록 점검하는 등 내년 3월 개원에 차질이 없도록 할 방침이다. 교과부는 또 로스쿨 설치 대학은 기존의 법과대학을 폐지해야 한다고 법률에 명시돼 있는 만큼 2008학년도 입학생이 졸업하는 2012년 2월까지만 법과대학 유지를 허용하고 이후에는 폐지하도록 했다. 다만 2012년 2월 이후에도 졸업하지 않은 재학생이 있을 경우 이들이 졸업할 때까지만 법학과(부) 수준으로 운영하도록 할 계획이다. 이에 따라 대학들은 2009학년도부터 법학과(부) 신입생을 뽑지 않으며 2012년 2월 이후에는 공식적으로 법과대학 및 법학과는 폐지된다. 교과부는 대학들이 법과대학을 폐지하는 대신 자율전공학부 등을 설치해 학부 잉여정원을 활용할 경우 이를 '프리로'(Pre-Law) 등 로스쿨 준비과정이나 기존 법학과와 유사하게 운영하지 않도록 지도할 계획이다. 로스쿨 준비과정이나 기존 법학과와 유사하게 운영하는 것은 로스쿨 설립 취지에 어긋난다고 보고 고등교육법에 의거해 행ㆍ재정적 제재를 가할 방침이다. 교과부는 로스쿨 총 정원 증원 및 추가 인가 여부에 대해서는 현 시점에서 고려하지 않고 있으며 법학전문대학원 제도가 성공적으로 출범한 이후 사회적 공감대를 얻어 재논의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말했다. 이에 따라 현재 대학들이 요구하는 대로 로스쿨 총 정원을 늘리거나 추가로 인가 대학을 선정하는 것은 당분간 어려울 것으로 전망된다.
미국 뉴욕시가 수학 시험을 유치원생부터 초등학교 2학년까지 확대하는 방안을 추진해 논란이 일고 있다. 뉴욕시는 지금까지는 유치원생부터 초등학교 2학년에 대해서는 교사와 1대1 면담 방식으로 20분에서 30분간 진행되는 교양 시험만 실시해 왔다. 뉴욕시 교육부에 따르면 이달 25일 시내 1천400여개 학교에 시범사업 참여를 독려하는 이메일을 보낸 결과 65개교가 긍정적 반응을 보여 1만2천명의 유치원생 및 초등학교 1,2학년생이 올해부터 수학 시험을 함께 보게 됐다. 이들 학교는 과목당 60분에서 90분간 진행되는 주.객관식 문제풀이나 컴퓨터를 이용한 30분짜리 시험, 교사와의 1대1 면담 등 5가지 시험 방식 중 하나를 고르게 된다. 뉴욕시는 이번 사업에 40만 달러를 투자할 계획이며 내년 중간평가를 실시해 지속여부를 결정할 방침이다. 그러나 뉴욕시 교육계와 학부모들은 이러한 변화에 크게 반발하고 있다. 뉴욕시 교원노조(UFT)의 랜디 웨인가르텐 위원장은 "일단 (성적) 정보가 마련되면 학교당국이 이를 개별 학생들의 학업성취도를 살펴 때이른 평가를 내리는 데 쓸 소지가 생긴다"고 지적했다. 뉴욕시는 조지 부시 행정부가 학습 지진아의 성적 향상을 위해 2002년 도입한 '낙제학생방지법(NCLB:No Child Left Behind)'에서 한걸음 더 나아가 초등학교 3학년부터 12학년까지의 시험점수를 학교 평가에 반영하고 있다. 학부모와 교사들은 이러한 시험 위주 교육정책이 학생들의 창의력을 빼앗고 학교 교육을 획일적 시험에서 더 좋은 점수를 올리기 위한 반복연습으로 전락시킨다고 비판하고 있다. 이번 사업이 유치원마저 시험을 위한 예습장으로 변모시킬 수 있다는 우려도 제기된다. 시험 위주의 NCLB 정책은 미국에서 전국적 논란의 대상이다. 일부 연구에서는 학생들의 수학 및 읽기 능력은 향상됐지만 역사와 음악 등 다른 과목 점수는 오히려 떨어진 것으로 나타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