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년숲길, 바람, 물소리…휴(休)의 시간

아이들과의 체험여행 테마가 넘쳐난다. 갯벌체험, 경제 캠프, 별자리 관찰, 박물관 견학… . 산속 깊숙이 자리한 사찰은 어떨까. 수학여행이나 답사지로 들르는 곳이 사찰이기는 하지만 하룻밤을 자면서 스님과 똑같이 지내보는 템플스테이는 특별한 경험이 된다. 새로운 세계와 삶에 대한 성찰의 기회를 줄 수 있을 것이다.
현재 우리나라에는 전국 80여 개 사찰에서 템플스테이를 실시한다. 템플스테이란 전통 사찰이나 수도원에 머물며 사찰 고유의 문화와 수행을 체험해 보고 느끼는 것을 말한다. 산사에서의 하루는 새벽 예불을 위한 목탁소리를 들으며 깨어나 맑은 음식으로 공양을 하고 단정히 앉아 마음을 비우는 참선을 통해 정신적 풍요를 만들 수 있다. 여기에 불교문화체험, 생태체험, 청소년 템플스테이 등의 요소가 가미되어 다양한 템플스테이가 진행된다.
그 중 강원도 오대산 자락에 자리한 월정사 템플스테이를 살펴보자. 오대산은 태백산맥의 중간에 위치하며 1563m의 비로봉을 주봉으로 동대산, 두로봉, 상왕봉, 호령봉의 다섯 봉우리가 병풍처럼 늘어서 있다. 그 너른 산자락에 유서 깊은 천년사찰인 월정사와 상원사가 안겨 있다.
<삼국유사>에 의하면 자장(慈藏)이 당(唐)나라에서 돌아온 643년(신라 선덕여왕 12), 오대산이 ‘문수보살(文殊菩薩)이 머무는 성지’라 하여 지금의 절터에 월정사 초암(草庵)을 지었다고 한다. 1300년이 넘는 고찰인 것이다. 문수보살이 머무는 성스러운 땅으로 여겨지고 있는 이곳은 조선시대 <조선왕조실록> 등 귀중한 사서(史書)를 보관하던 오대산 사고(史庫)가 있던 곳이고 피부병을 앓던 세조와의 인연도 깊다. 석가의 사리를 봉안하기 위하여 건립한 8각 9층 석탑이 우뚝한 월정사에 도착하면 가장 먼저 하는 일은 속세에서 입던 옷을 벗어 가지런히 두고 수련복으로 갈아입는 것이다.
사찰에서 지켜야 할 예절 배우기이어 차 한 잔을 두고 스님과 잠시 시간을 나누며 법당을 드나드는 법 등 사찰예절을 익힌다. 법당의 가운데 문은 스님들이 다니는 문이니 출입할 때는 측면의 문을 사용해야 하고 정중앙 자리도 스님의 자리이니 피해야 한다.
더불어 합장과 합장절, 큰절을 배운다. 합장은 불교의 독특한 예법으로 두 손의 손바닥을 맞대어 몸과 마음을 다 모아 일심으로 예의를 표현하는 것이다. 합장한 자세에서 허리를 앞으로 45~60° 기울이는 것은 합장절로, 일주문을 넘어 부처님 도량으로 들어가거나 나올 때, 법당에 첫발을 들여놓거나 나올 때, 경내에서 스님과 인사할 때 합장절을 한다.

큰 절은 삼보(부처님, 법, 스님)에 대한 예경과 상대방에 대한 존경을 의미하며 동시에 스스로를 낮추는 수행법이다. 신체의 다섯 군데(양 무릎, 양 팔꿈치, 이마)를 땅에 닿게 하는 것이다. 방법은 두 무릎을 살며시 굽히면서 오른손, 왼손 순으로 바닥을 짚되, 손은 나란히 어깨넓이만큼 벌려서 짚는다. 그 다음 무릎을 꿇고 엎드리면서 왼발이 오른발 위에 오게 포개고, 엉덩이가 두 발의 뒤꿈치에 닿게 한다. 양 팔꿈치와 이마가 바닥에 닿은 상태에서 양손을 뒤집어 손바닥을 위로 향해 귀에 닿을 정도로 받쳐 올린다. 이를 반복해 108배나 1080배, 3000배의 기도나 참회가 이루어진다.
어둠이 내릴 쯤이면 저녁예불을 알리기 위해 사물(四物)을 친다. 사물은 북과 목어, 운판, 종으로 구성되어 있는데 소리로 모든 생명을 구원한다. 북은 가죽을 가진 짐승을 구원하고 목어는 물고기 등 수생생물을, 운판은 하늘을 나는 조류를, 그리고 종은 명부에 든 귀신들을 구원한다. 법고와 목어, 운판이 차례로 스님들에 의해 쳐지면 경내가 경건해진다. 저녁 종은 총 28번을 치는데 본래는 스님이 치지만 템플스테이 행사 때는 참가자들이 칠 수 있는 기회가 주어진다. 저녁 공양 후 잠자리에 드는 시간은 오후 9시. 도심의 사람들에게는 다소 이른 시간이다.
도량석으로 시작되는 산사의 하루 똑똑똑 또르르 똑똑똑 또르르. 도량청정무하예(道場淸淨無瑕穢) 삼보천룡강차지(三寶天龍降此地)~. 만물이 짙은 어둠 속에 잠겨 있는 새벽 3시. 도량을 깨끗하게 하기 위한 의식인 동시에 잠들어 있는 천지만물을 깨우며 미혹의 중생들을 깨어나게 하기 위한 도량석(道場釋)이 진행된다. ‘하늘은 자시(밤 11시∼1시)에 열리고, 땅은 축시(1시∼3시)에 어둠에서 풀리며, 사람은 인시(3시∼5시)에 잠에서 깨어난다’고 한다. 도량석은 단순히 잠을 깨우는 소리가 아니라, 자비를 베풀고 법음을 전하는 깨달음의 도량을 열어 뭇 생명들이 깨달음의 세계로 나아가기를 기원하는 수행의식이기도 하다.
목탁소리는 약한 음에서 서서히 높은 음으로 올리다가 내리기를 아홉 번 정도 반복하니 일체중생이 갑자기 놀라지 않고 서서히 깨어나게 하기 위한 배려인 것이다. 도량석을 마감하는 목탁소리가 끝나면, 그 소리의 끝을 받아 법고가 울린다. 법고의 여운을 운판이 받고 운판의 끝소리에 이어 목어의 둔탁한 소리가 이어진다. 그리고 이어지는 그윽한 범종 소리. 범종 소리가 끝남과 함께 법당에서는 작은 종이 울리고 예불이 시작된다.
골 깊은 강원도 오대산 월정사, 그곳에서 산사의 하루는 이렇게 시작된다. 가사장삼을 걸쳐 입은 스님들이 총총걸음으로 줄지어 적광전으로 향하고 은은한 범종 소리가 경내에 퍼지면 수련생도 어둠이 사위에 쌓인 경내를 질러 적광전으로 향한다.
코끝을 간질이는 향내음과 가만가만히 울려 퍼지는 목탁소리, 그리고 알 듯 모를 듯 염불소리와 석가모니불의 크고도 위엄 있는 자태를 경외하며 반시간 남짓의 새벽예불이 올려진다. 목탁소리에 맞춰 ‘오분향’, ‘헌향진언’, ‘예경문’, ‘반야심경’을 외는 스님들의 목소리는 장엄하다. 은은히 조명 밝힌 팔각구층석탑과 어둠새벽 하늘을 지키는 별빛이 오묘한 천상(天上)의 세계를 보여준다.
미명의 새벽에 전나무 숲 걷기새벽예불이 끝나면 별빛에 의지하며 월정사가 자랑하는 전나무 숲길을 걷는다. 청량한 새벽 공기는 가슴 속에 가득 채워져 있는 탁한 공기와 잡념 그리고 번뇌를 씻어주는 듯 머리를 맑게 한다. 손전등 등 인공의 빛을 배제하고 원시 자연의 방법으로 길을 가야 한다. 운무가 가득하고 개울물 소리만 들리는 전나무 길은 신비로움의 극치다.
미명의 어둠길을 걸어 일주문에 도착할 즈음이면 제법 앞이 보인다. 일주문. 사찰에 들어서는 산문(山門) 중 첫 번째 문으로 사바세계에선 지극한 행복이 있는 불국정토로 가는 문이며, 생멸(生滅)이 있는 세계에서 각(覺)의 세계로 들어가는 문이며, 생사를 열반으로, 번뇌를 지혜로, 속박을 해탈로 탈바꿈시키는 문이며, 무상(無想)과 고통과 무아와 부정의 인생을 상락아정(常樂我淨)의 삶으로 전환시키는 문이기도 하다.
이 문을 통과해야만 불국정토로 들어갈 수 있고 이로 인해 인생의 대전환이 일어나는 것이다. 그 의미를 되새기며 일주문을 넘으면 지나온 어둠의 전나무길이 밝음과 열림의 전나무 길로 다시 다가온다. 그리고 이어지는 800여 m에 걸친 숲길은 참으로 아름답다. 이른 아침부터 부산히 움직이는 다람쥐를 만나고 맑은 골짝물 위에 떠가는 나뭇잎을 만나고 여덟의 친구를 잃고 이제는 홀로 서 있는 수백 년 된 전나무도 만나고 또 출가한 이들의 삭발한 머리를 묻어두는 작은 비(碑)도 만난다. 이 길은 묵언(아무 말도 하지 않고 사색하며 걸음)을 행하며 걷는 길이다.
마음까지 깨끗이 닦아내는 발우공양

새벽 찬바람과 전나무 향을 만끽하며 돌아오면 아침 공양이 기다린다. 가부좌를 하고 앉아 죽비소리에 따라 발우를 편다. 행자가 청수 물을 돌리면 큰 그릇에 물을 받아 국그릇 찬그릇을 헹구고 밥과 국은 각각 먹을 만큼만 담아, 남거나 모자라지 않게 한다. 소리를 내지 않고 꼭꼭 씹어 공양한 뒤 마지막으로 김치나 단무지 한 조각을 남겨 밥그릇과 국그릇, 찬그릇을 깨끗이 닦아 퇴수까지 말끔히 먹어야 한다. 퇴수는 아귀에게 공양할 음식인데 아귀는 몸은 태평양만하지만 목구멍은 바늘구멍보다 작아 항상 배고픔에 기갈이 든 귀신이다. 이들은 불가에서 공양하고 남은 퇴수를 마시는데 이때 음식찌꺼기가 있으면 이것이 목에 걸려 목구멍에 불이 나면서 엄청난 고통을 주니 배고픈 아귀가 끼니를 거르게 된다. 엄청난 악업을 짓게 되는 것이다.
발우공양(鉢盂供養)에서 발우란 ‘양에 알맞은 그릇’이란 뜻으로 스님들이 사용해 온 식기다. 발(鉢)은 인도말(범어)로 발다라(鉢多羅)의 약칭이고, 우(盂)는 중국말(한자)로 밥그릇이라는 뜻으로 번역하면 응량기(應量器)가 된다. 즉, 각자 자기가 먹을 수 있는 양에 따라 공양하는 그릇이라는 뜻이며 수행의 한 과정으로 행하기 때문에 법공양이라고도 한다. 부처께서 6년 고행 후 보리수 아래에서 성불한 다음 타푸사, 바라타 두 상인에게 첫 공양을 받았으니 발우공양의 역사는 수천 년을 넘나든다.
발우공양이 끝난 발우는 처음에 받았던 발우의 모습대로 깨끗해 설거지가 필요치 않다. 심각한 사회 문제로 대두되고 있는 음식 낭비와 환경·식수 오염으로 인간의 생존권이 위협받고 있는 이때에 쌀 한 톨, 밥 한 알도 함부로 버리지 않고 아끼며 환경 오염을 미연에 방지하는 발우공양은 참으로 환경 친화적인 식사법이다. 이 모든 것은 ‘처음처럼’ 흔적이 남지 않게 하고 좋은 것을 남에게, 나쁜 것을 나에게로 향하며 다른 사람을 먼저 배려하는 마음이 기본이 된다.
몸과 마음이 건강해지는 시간들

아침 공양이 끝나면 월정사 경내와 상원사, 수정암을 둘러본다. 60여 개의 사찰과 80여 개의 암자를 거느린 월정사는 대한불교조계종 제4교구의 본사로 국보 제48호인 팔각구층석탑을 비롯한 수많은 문화재를 보유하고 있다. 월정사 팔각구층석탑 사리구, 상원사 문수동자 좌상의 복장유물인 상원사 중창 권선문(국보 제292호), 부처님 진신사리(보물 제793-21호)를 비롯, 한암(漢岩)·탄허(呑虛) 스님의 유품에 이르기까지 500여 점이 전시되고 있다. 이는 월정사 경내의 성보박물관에 보관되어 있다. 세조 4년(1459)에 간행된 월인석보(月印釋譜·보물 제292호), 세조어의(世祖御衣·보물 제793-16호) 등 세조와 관련된 유물도 많다.
상원사는 세조가 심한 피부병에 시달릴 때 찾은 곳이다. 세조는 꿈속에서 단종의 어머니인 현덕왕후가 뱉은 침에 맞은 후에 피부병이 생겼다. 전국을 헤매다 영험하다하여 찾은 이곳 계곡물에 몸을 담갔는데 지나는 동자승이 등을 씻어준 후 말끔히 나았다고 한다. 하여 상원사에는 다른 사찰에는 없는 문수동자상이 봉안되어 있고 계곡에는 세조가 옷을 벗어 걸었다는 관대걸이가 있다. 종각 안에는 상원사 동종이 걸려 있다. 하늘하늘 꽃구름을 타고 얇은 옷깃 나풀대며 기도하는 비천상의 모습은 전율이 느껴질 정도로 아름답다. 신라 자장율사가 부처의 진신사리를 모셨다는 적멸보궁, 부도 탑들을 돌아보면 적당히 피곤하다.
이렇게 적당히 몸을 움직이고 일찍 자고(9시), 일찍 일어나고(3시), 채식위주의 절밥으로 공양하면 몸이 가볍고 마음이 가벼워진다. 빼어난 자연환경과 불교문화가 어우러진 사찰, 그곳에서 스님과 수행자의 일상을 체험하며 몸과 마음의 휴식을 얻는 템플스테이(Temple Stay)는 참으로 좋다. 일상을 잠시 내려놓고 자신의 삶을 돌아보는 소중한 시간이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