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육'검색결과 - 전체기사 중 79,293건의 기사가 검색되었습니다.
상세검색신동호 | 코리아 뉴스와이어 편집장 권총 자살한 고흐 작품이 가장 비싸 정신분열증을 앓은 괴짜 수학 천재인 존 포브스 내쉬의 일생을 그린 영화 〈뷰티풀 마인드〉가 많은 영화 팬을 감동시켰다. 정신분열증을 앓았음에도 불구하고 노벨경제학상을 받은 내쉬의 일생은 한편의 드라마와도 같은 것이었다. 낭만주의 시대 이후 천재를 정신질환자로 묘사하는 것은 문화적 유행이다. 〈뷰티풀 마인드〉도 어찌 보면 '천재 = 광기'라는 유행의 영향을 강하게 받았는지도 모른다. 광기 어린 천재의 작품은 '천재적 예술혼'의 보증수표나 마찬가지였다. 창의성과 예술은 곧 광기가 표출된 것이라는 것이다. 가장 대표적인 예가 '광기의 화가'였던 반 고흐이다. 면도칼로 귀를 자르고 권총 자살한 반 고흐의 작품인 '해바라기'는 사상 최고가인 3992만 달러에 경매됐다. 전기 작가들은 아인슈타인의 아들, 제임스 조이스의 딸, 칼 융의 엄마가 정신분열증을 앓았고, 슈만, 포, 카프카, 비트겐슈타인, 뉴턴 심지어는 다윈과 패러데이도 비슷한 증세를 보였다고 기록하고 있다. 천재의 정신질환은 신비화 전략 정말 천재와 정신질환은 관련이 있는 것일까? 다윈의 사촌인 프랜시스 갈톤은 천재와 정신병의 관련성을 연구한 최초의 인물이다. 하지만 그는 다윈처럼 훌륭한 과학자는 아니었다. 우생학의 창시자이기도 한 그는 1869년 예술, 문학, 과학 분야 천재의 가족과 친척에게 정신질환이 많다는 논문을 발표했다. 실제 주인공 내쉬의 삶은 영화 속의 내쉬와는 크게 달랐다. 그 뒤에도 한편에서는 관련이 있다, 다른 편에서는 관련이 없다는 논문이 한 세기가 넘게 쏟아져 나와 논란이 계속돼 왔다. 뉴턴과 아인슈타인이 자폐증 환자였다는 주장도 나왔다. 과연 사실일까? 얼마 전 캐나다 브리티시 컬럼비아 대학 심리학자인 샬로트 와델은 이 논란에 일침을 가하는 논문을 발표했다. 와델 교수는 20세기 들어 창의성과 정신분열증, 우울증의 관련성을 연구한 논문 29편을 분석해 '관련성은 과학적 근거가 없다'고 결론 내렸다. 분석한 논문 중 '15편은 관련이 없다는 것이었고, 9편은 있다, 5편은 모른다'였다. 중요한 것은 논문의 숫자가 아니다. 대부분의 논문이 창의성과 정신질환을 모호하게 정의하고, 임의 추출법을 무시하고 연구 대상을 구미에 맡게 골랐다. 과학자들이 과학적 방법론을 무시한 것이다. 천재와 정신질환 관련성은 '과학적 증거'가 없는데도 책과 영화가 정신질환을 천재의 운명으로 묘사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예술가, 전기 작가, 언론은 대중의 관심을 더 끌기 위해 일부러 그러는 경우가 많다. 작가들 가운데는 조울증 때문에 좀 더 많은 것을 깊게 느낄 수 있었고, 더 강도 높은 경험을 할 수 있었고, 더 깊은 사랑을 할 수 있었다고 말하는 사람도 있다. 실제로 에밀 졸라는 15명의 심리학자를 불러 자신에게 약간의 신경증이 있다는 것을 입증하려 몸부림쳤다. 이런 식으로 정신질환을 천재의 운명으로 신비화하면서 정신질환이 창의성을 고양시킨다는 헛된 망상이 유포됐다. 문제는 이런 풍토가 자리 잡으면서 대부분의 정상적 천재가 연출된 괴짜 천재에 밀려 푸대접을 받는다는 점이다. '마음의 암'에 대한 대책 마련 시급 그렇다면 진짜 정신질환자들은 누구일까? 미국에서는 거리를 헤매는 거지, 즉 '홈리스'의 3분의 2가 정신분열증 환자이다. 우리나라에서도 노숙자의 절반이 보호를 받지 못하고 있는 정신질환자와 알코올 중독자다. 정신분열증 환자의 10%는 자살로 인생을 마감한다. 정신분열증 환자의 인생은 이렇듯 '뷰티풀' 하지 않은 게 보통이다. 정신분열증은 정신질환 가운데 가장 무서운 질병이다. 그래서 '마음의 암'으로도 불린다. 정신분열증은 워낙 증상도 다양해 확실한 진단도 없는 실정이다. 증세가 심각하지만 어떤 정신병에도 속하지 않을 경우 의사들은 대개 정신분열증이라고 진단한다. 어느 나라나 보통 전체 인구의 1%가 정신분열증 환자다. 정신분열증은 대개 유전된다. 정신분열증 환자는 다른 사람과 현실 인식을 전혀 공유하지 못한 채 환상과 환청, 망상에 사로잡혀 산다. 영화에서 천재 수학자 내쉬는 약을 먹지 않고 정신분열증을 극복한 것으로 나온다. 하지만 실제로 자연 회복되는 환자는 5명 중 1명에 지나지 않는다. 영화 〈레인맨〉에서 더스틴 호프만이 자폐증 환자의 역할을 인상 깊게 연기한 이후, 자폐증에 대한 관심도 부쩍 높아졌다. 톰 행크스가 열연한 〈포레스트 검프〉는 정신박약자에 대한 관심을 촉발시켰다. 하지만 이들 영화는 주인공에게만 초점을 맞춰 정신질환을 앓고 있는 가족이나 친척이 얼마나 고통을 당하는지에 대해서는 제대로 보여주지 못했다. 우리는 흔히 정신분열증 환자를 위험하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정신분열증 환자는 대개 방에서 돌처럼 굳어서 소리 없이 몇 시간씩 웅크리고 사는 게 보통이다. 정신분열증 환자는 위험한 존재는 아니다. 자폐증 환자나 정신박약자도 더스틴 호프만과 톰 행크스의 연기에서처럼 착하기 그지없는 경우가 많다. 이들을 거리로 내몰아서는 안 된다. 정신질환자가 보호 속에서 생활할 수 있는 시설을 만들고, 증세가 심한 환자에 대해서는 이들을 수용할 수 있는 시설과 의사를 정부가 보장해야 한다. 이들이 노숙자와 거지가 되는 것은 죽음으로 가는 직행열차를 타는 것과 다름없다.
박준용 | 한양대 강사, 문화평론가 평생의 인격 형성을 돕는 교육 명문 사립 성 베네딕트 학교에서 그리스와 로마를 중심으로 한 고대 문명사를 가르치고 있는 훈더트 선생(캐빈 클라인)은 교육이란 단순한 실용적 지식을 전달하는 것을 넘어 아이들 평생의 인격을 형성하도록 돕는 중요한 일이라고 믿고 있다. 그는 첫 시간에 '슈트럭 나훈테'라는 어느 정복자의 이야기를 통해, 아무리 많은 땅을 차지했을지라도 그에게 기릴만한 성품에서 말미암는 '업적'이 없다면 그것은 다만 세월이 흐르면 흔적도 없이 사라질 야만적인 약탈행위에 지나지 않게 된다는 점을 강조한다. 한마디로 말해 세상에서 두각을 나타내려 하기 전에 먼저 바른 인간 됨됨이를 갖추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이다. 대부분의 학생들은 그의 가르침에 순종하지만 뒤늦게 수업에 합류하게 된 현직 상원의원의 아들 세드윅 벨은 특유의 반항적 기질로 사사건건 훈더트와 맞서려 한다. 헌신적인 교사와 문제아의 만남, 영화의 전반부는 교육소재 영화의 전형적인 양상으로 전개된다. 이를테면 벨의 반항적인 태도가 일에만 분주한 권위주의적인 아버지의 무관심으로 말미암는다는 설정이나 이런 벨을 훈더트가 특별한 관심과 애정으로 보살펴 자발적인 변화를 이끌어 낸다는 등의 설정들이 그러하다. 그러나 헌신적인 교사를 통해 문제 학생의 삶과 태도를 근본적으로 바꾼다는 식의 다소 상투적인 교육 성공담을 다루는 것처럼 보이던 영화는, 최우수 학생 선발을 위한 퀴즈 대회와 관련된 뜻밖의 상황에 부딪히면서 전혀 다른 흐름으로 전개된다. 퀴즈대회를 통해 벨이 스스로 변화할 수 있는 계기를 마련해 주고 싶었던 훈더트는 자신의 손 때 묻은 책을 빌려주는 것은 물론, 대출이 불가능한 자료를 볼 수 있도록 배려하고, 심지어는 작은 차이로 경쟁에서 탈락할 뻔 했던 그를 위해 약간의 가산점을 부여한다. 결국 벨은 최종 경쟁에 오르고 다른 2명과 함께 치열한 퀴즈 대결을 벌인다. 퀴즈를 진행하며 훈더트는 자신의 관심과 사랑에 의해 최고의 자리에 까지 오게 된 벨의 모습에서 뿌듯한 마음을 느낀다. 제자에게 안겨준 치명적 위기 그러나 그 순간 어려운 퀴즈를 풀 때 마다 같은 동작을 반복하는 벨의 우연찮은 행동을 통해 그가 부정행위를 저지르고 있음을 깨닫게 된다. 하늘이 무너지는 기분으로 퀴즈대회를 중단하려는 훈더트에게 교장 선생은 벨의 아버지로부터 거액의 기부금을 지원받아야 하므로 모른 척 계속 진행할 것을 명령한다. 하지만 그는 이에 아랑곳 않고 벨이 부정행위로는 결코 맞출 수 없는 문제를 출제해, 승리는 다른 학생의 몫으로 돌아간다. 퀴즈 대회가 끝난 후 훈더트는 혼란과 실망이 뒤섞인 마음으로 벨을 만나 묻는다. '대체 왜?' 그러자 벨은 도리어 반문한다. 자신의 부정행위를 알면서 왜 알리지 않았느냐는 것이다. 당혹스러운 것은 오히려 훈더트 쪽이었다. 그는 겉으로 이러저러한 사정이 있었노라 말하지만 벨은 자신의 아버지를 의식한 것이 아니냐고 빈정거릴 따름이다. 이후 벨은 다시 반항아의 태도로 돌아가 졸업 때까지 그러한 모습을 일관한다. 우리는 흔히 말한다. 존경할만한 선생님의 가장 큰 덕목이 바로 언행일치라고. 진리와 옮음을 외치는 그의 말과 행함이 일치할 때 비로소 학생들은, 자녀들은 그것을 진리로 받아들인다는 것이다. 문제는 이를 완벽히 이룬다는 것이 인간으로서는 거의 불가능하다는 데 있다. 훈더트 역시 예외는 아니었다. 그는 학생들에게 역사를 통해 진정한 용기, 지식, 행동을 말하였지만 정작 벨을 야단쳐야 할 그 순간에는 교장과 그 자리에 참석해 있는 상원의원의 막강한 권력의 눈치를 살폈고, 결국 자리에서 침묵으로 일관했다. 벨은 그런 훈더트를 보았다. 더욱이 그는 벨의 이러한 지적을 얼버무리며 회피하였던 것이다. 그에게는 두 번의 기회가 있었다. 첫 번째는 부정행위를 알았던 바로 그 때 벨을 지적하고 그가 얼마나 큰 잘못을 저지르고 있는가를 깨닫게 하는 동시에, 이로 인해 피해를 받은 학생들에게 정당한 권리를 되찾아 주는 것이었다. 두 번째는 벨이 그의 침묵을 비난할 때 상황을 강변하기 보다는 솔직한 태도를 자신의 비겁함, 위선을 고백했어야 했다. 이미 지나가 버린 두 번의 기회는 벨에게 있어 치명적인 위기인 동시에 그의 삶을 완전히 변화시킬 수 있는 소중한 시발점이 될 수 있었다. 이렇듯 아이들은 보지 않는 것 같지만 분명히 보고 있다. 선생님의 가르침이 단지 '말'뿐인지 아니면 생생한 '삶'인지를 말이다. 그러기에 성경을 기록한 어느 필자는 사람들에게 섣불리 '선생' 되기를 즐겨하지 말라고 권한다. 그렇게 힘겨운 자리가 바로 선생의 자리이기 때문이다. 비인간적인 현실 속의 교육 벨과의 만남, 곧 실패한 교육을 통해 깊은 반성과 성찰의 과정을 가졌던 훈더트 선생은 올곧은 교사로 20여 년을 넘겨 학교에 봉직하며 이제는 교장의 자리에 임명될 날을 기다린다. 하지만 오직 학생들의 인격 성숙에 최고의 교육적 가치를 두었던 그는, 기능과 효용성 그리고 자본의 논리에 복종하는 길을 선택한 학교 이사회의 결정에 의해 교장 후보에서 탈락하고, 은퇴를 선택할 수밖에 없는 처지에 놓이게 된다. 평생을 교육에 헌신했던 훈더트가 직면한 비인간적인 현실은 우리에게 그다지 낯선 모습이 아니다. 이미 일선 교육현장에서 적지 않은 학부모들은 요구한다. 인격의 성숙보다는 좋은 대학, 좋은 진로를 선택할 수 있는 구체적인 실력과 방법, 그것이 심지어 편법일지언정, 비결을 가르쳐 달라는 것이다. 여기에 사회라고 예외는 아니다. 본래의 의도가 어떠하든 '교육인적자원부'라는 교육 담당관청의 이름이 말해 주는 것은 이제 교육은 균형 잡힌 인격을 성숙시키는 전인교육의 장이라기보다는 일종의 인적자원으로서 아이들을 보다 세상에 효용성 있는 존재가 되도록 만드는 과정이라는 인상이다. 결국 탈락된 훈더트의 자리에는 많은 대학의 총장들이 존경받는 교육자들 보다는 투자유치와 경영 마인드를 앞세운 전현직 CEO들로 교체되듯, 자본의 논리와 처세에 능한 후배 교사가 임명된다. 실의에 빠져 있던 훈더트에게 불현듯 벨의 초대장이 날아온다. 동문들이 모여 다시 한 번 추억을 되살려 퀴즈대회를 하자는 것이다. 과거를 회상하며 만감이 교차하던 훈더트는 이제는 장성하여 사회의 기둥 같은 존재들이 된 제자들과 뜻 깊은 시간을 보낸다. 하지만 추억의 퀴즈대회를 진행하던 훈더트는 또다시 벨이 첨단기술을 동원해 부정행위를 저지르는 것을 발견하고는 정신이 아득해져 옴을 느낀다. 벨이 주최한 동문회는 실상 그가 상원위원에 출마하기 위한 발판을 마련하기 위해 기획된 자리였으며, 여기서 주목을 받기 위해 퀴즈대회를 이용하려 했던 것이다. 훈더트는 다시 한 번 뼈저린 후회를 느끼며 깊은 절망감에 빠진다. 실패한 교육을 통한 자아 발견 영화의 전체를 관통하는 주요한 사건으로서 교사 훈더트와 학생 벨의 관계는 〈엠퍼러스 클럽〉을 실패한 노(老)교사의 이야기로 보기에 충분한 빌미를 제공한다. 하지만 반전은 언제나 최후에 있는 법. 실의에 빠져 돌아간 그의 방 안에는 다른 모든 제자들이 모여 있었고, 그들은 훈더트에게 진심어린 환영과 깊은 감사의 마음을 돌판에 새겨 전달한다. 비록 그가 한순간의 오판으로 말미암아 벨을 잃어버린 것은 사실이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이들을 위해 포기한 적 없던 그의 진실한 사랑의 가르침은 훈더트 본인도 모르는 사이 더 많은 열매를 맺고 있었던 것이다. 이를 통해 영화는 말한다. 뜨거운 가슴을 지닌 교사도 한 아이의 영혼을 잃어버린 실패한 교육의 주인공이 될 수 있다는 것을, 동시에 포기하지 않고 그런 실패를 극복하기 위해 평생의 애씀과 수고함으로 씨앗을 뿌리는 교사만이 진정 풍성한 결실을 얻을 수 있다는 것을 말이다. 한 평범한 인간으로서의 연약함에도 불구하고 교사의 길을 꿋꿋이 걸어가야 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어린 시절 6월은 붉은 달이었습니다. 초등학교 담벼락 위엔 가시 돋친 빨간 장미들이 출렁였고, 교실에선 ‘멸공방첩’을 주제로 한 글쓰기 대회와 6·25 전쟁 관련 포스터며 표어 제작에 열을 올렸었습니다. 포스터에는 너나없이 전면에 빨간 도깨비 탈을 쓴 북한군의 모습을 그려 넣었었지요. 그때는 정말 북한 사람들의 얼굴엔 도깨비 뿔이 달려있는 줄로만 알았으니까요. 포스터의 영향이었는지, 6월 달력의 빨갛게 칠해진 6일은, 다른 공휴일보다 더 유난스레 빨갛게 보였었습니다. ‘청’ 군과 ‘백’ 군으로 나눠 싸우는 운동회가 봄, 가을로 빠짐없이 열렸음에도 그 시절 저는, 친구들 사이에서의 적과 동지를 구분하는 의미로 ‘빨간’ 색과 ‘파란’ 색을 주로 쓰곤 했었습니다. 나쁜 것은 무조건 ‘빨갱이’로 말하는 버릇도 생겼던 걸로 기억됩니다. 원숭이 엉덩이는 빨개, 빨간 것은 공산당, 공산당은 나쁜 놈…. ‘빨갱이’란 말이 촌스럽게 느껴지던 80년대 말. 빨간색은 운동권을 상징하는 색이었습니다. 그 시절, 빨간색은 또다시 빨간색을 경계하는 층과 옹호하는 층으로 나누는 아픔의 색이었습니다. 87년 6월, 대학 교정에 흐드러지게 피어있던 붉은 장미는 빨간색 머리띠를 두르고 ‘호헌철폐’를 외치는 함성에 의해 무수히 떨어져 갔습니다. 그리고 2002년 6월, 광화문 네거리는 온통 붉은 물결로 출렁였습니다. 어릴 때 무섭게만 여겨졌던 도깨비 모양을 얼굴에 그려 넣고, 빨간색 티셔츠를 다 같이 맞춰 입은 ‘붉은 악마’들이 거리거리마다 넘쳐났습니다. 그리고 그들은 월드컵 축구 대표팀을 응원하는 거대한 함성 “코리아 파이팅!”을 외쳤습니다. 너무나 강렬했던 빨간색의 물결. 세월이 흘러도 우리의 가슴에 용솟음칠 젊은 피, 한마음 한뜻이 되어 우리나라, 대한민국의 승리를 염원하던 함성의 색, 빨강. 이 강렬하고 순수한 색 속에 ‘흑백’ 논리가 끼어들 자리는 없었습니다. 깨끗한 피를 욕되게 하는 억압의 사슬도, 오해와 반목과 질시의 어두운 그늘도, 새로운 빨강의 물결에선 찾아볼 수 없었습니다. 오로지 이글거리는 여름 태양의 불꽃 같은 열정으로만 가득했습니다. 그리고 다시 2006년 6월. 광화문과 시청 앞 거리는 또다시 열정의 붉은 물결이 넘쳐날 것입니다. 지난날 전쟁의 붉은 피로 물들었던 6월의 대한민국 산하는 반세기가 지난 지금, 평화와 화해를 염원하는 축제의 붉은빛을 밝히며 전 세계를 향해 그 빛을 강렬히 발산할 것입니다. ‘붉은 악마’ 아니 ‘붉은 천사'들이 외치는 “오! 필승 코리아~ 대한민국!”의 함성은 세상을 다시 한 번 송두리째 흔들어 놓을 것입니다. 어두웠던 우리 6월의 역사를 새로이 쓰고 있는 ‘붉은 악마’. 그들이야말로 2002년에 이어 이번에도 월드컵 최고의 승리의 전사로 기억될 것입니다. | 한국교육신문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