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육'검색결과 - 전체기사 중 79,293건의 기사가 검색되었습니다.
상세검색
박하선 | 사진작가, 여행칼럼니스트 과거와 현재가 공존하는 현장 동양과 서양을 잇는 곳, 즉 아시아와 유럽을 연결하는 가교 역할을 하고 있는 '이스탄불'. 아득한 옛날부터 실크로드를 오가던 모험가들에게 있어서 대단히 중요한 역할을 해 왔던 이곳에 대한 이야기는 그저 환상이었다. 또 근래에 들어서는 영화 속에서도 많이 등장한 곳이다. 애정 영화, 첩보 영화 등을 막론하고 그 속에 배경으로 깔리는 이곳 이스탄불은 왜 그리 멋있게만 보였던고. 그래서 온갖 복잡한 사건과 무언가 신비한 일들이 수시로 일어나며 바삐 돌아가고 있을 것만 같이 생각되는 곳이어서 이름만 들어도 왠지 가슴 설레게 하는 곳이다. 이곳은 각 시대별로 '비잔티움', '콘스탄티노플'로 불려오다가 15세기에 들어서부터 오스만 제국의 수도가 되면서 오늘날의 '이스탄불'로 불리기 시작했으며, 그 각각의 이름들은 그 시대를 대표하는 도시의 이름으로 역사에 남아있다. 그래서 오늘날까지도 과거와 현재가 공존하면서 또 다른 한 시대의 흐름을 만들어 가고 있는 역사의 현장이 바로 이곳 이스탄불이다. 관광객을 압도하는 볼거리들 이곳 이스탄불의 볼거리 중에서 가장 깊은 역사를 지니고 있는 것은 '아야 소피아(Aya Sofia)'성당이다. 이곳은 537년에 비잔틴 제국의 '유스티니아누스' 황제에 의해 건축된 동방 정교회의 대성당인데, 900년 동안 기독교 교회로 사용되어 오다 1453년에 오스만 투르크 제국이 들어서면서부터 회교사원으로 쓰였다. 십자군 원정 무렵인 1240년경 많은 보물이 약탈당했으며 회교도 정복자 마호메트는 비록 이교도의 상징적 건물이었지만 그 엄청난 규모와 각종 모자이크의 아름다움에 반하여 결코 파괴하고 싶지 않았다고 한다. 그래서 벽면에 석회만을 덧발라 회교사원으로 개조시켜 사용케 했다. 하지만 세월이 흐르면서 건물이 너무 낡아 1935년부터는 박물관으로 사용되어 현재에 이르고 있다. 내부에 들어서니 엄청난 크기의 돔과 그 화려함이 보는 이를 압도한다. 술탄 아흐메트 공원의 가로수에 만개해 있는 꽃들의 향기를 맡으며 여섯 개의 첨탑이 하늘을 찌를 듯이 솟아 있고 마치 거대한 비행접시가 앉아 있는 것처럼 보이는 둥근 지붕을 가진 '술탄 아흐메트 사원'으로 발길을 옮겨 본다. 이곳은 오스만 제국 시절 술탄 아흐메트 1세가 1606년에 아야 소피아의 위용을 넘는 거대한 이슬람 사원을 짓고자 장대한 포부를 가지고 짓기 시작해 근 10년 만에 완성한 것이다. 처음 그의 포부는 보다 더 많은 첨탑들을 세워 세계 최고의 것으로 만들고 싶었다. 하지만 '메카'에 있는 것보다는 절대 많아서는 안 된다는 이슬람 지도자들의 의견이 강해 결국 그들과 마찰을 일으키는 것을 싫어한 나머지 현재의 6개의 첨탑으로 결정했다고 한다. 내부는 아야 소피아 성당처럼 높다란 천정의 돔 아래 텅 빈 기도실뿐이다. 하지만 이곳저곳의 벽면이 파란 타일로 아름답게 장식되어 있는 것이 특징이어서 일명 '블루 모스크(Blue Mosque)'라는 이름으로 더 알려져 있다. 해마다 5월이 시작되면서 이 블루 모스크에서는 매일 밤 '빛과 소리의 제전'이 행해진다. 어둠 속에서 행하는 이 쇼는 '나는 술탄 아흐메트이다. 무슬림의 위대한 힘과 영광을 보여주기 위해 맞은편에 있는 아야 소피아를 능가하면서 이 세상 최고의 모스크를 짓고자 했다. 하지만….' 이런 식으로 매일 영어, 독일어, 프랑스어, 터키어 순으로 번갈아 가면서 술탄의 위엄 있는 목소리가 현장감 있게 울려 퍼진다. 그런 가운데 다양한 각도로 조명을 받고 있는 이 모스크는 환상적인 분위기를 연출해 내면서 당시 오스만 제국 시절의 꿈을 꾸게 만든다. 화려함 뒤에 숨겨진 부패의 실상 오스만 제국 시대의 문화와 슐탄들의 실체를 보기 위해서 역시 근처에 있는 '톱카피 궁전(Topkapi Sarayi)'을 찾았다. 이곳은 정복자 마호메트 2세에 의해 건설되었으며, 제국의 부의 극치를 보여주는 왕궁으로 1467년에 완공되어 약 400년간 오스만 제국의 권력의 중심이 되었던 곳이다. 현재는 박물관으로 사용되고 있는데 술탄에게 보내온 각 국의 보물과 도자기, 의복, 장신구, 무기 등이 화려하게 전시되어 있다. 그 중에서도 엄청난 크기의 다이아몬드를 비롯하여 체스, 칼 등을 비롯한 각종 보석들로 장식된 술탄들의 사치품에 놀라지 않을 수 없다. 그 강성한 오스만 제국이 ‘슐레이만 대제’의 통치 기간에 전성기를 맞은 이후로는 타락과 부패의 길로 빠져들어 멸망하게 되었다고 하더니, 결국 보는 이들에게 황홀하리 만치 화려하게만 보이는 이 전시품들이 백성들의 피와 땀을 빨아들인 그 부패의 실상임을 적나라하게 보여주고 있는 셈이었다. 이곳 이스탄불의 구시가에서는 어느 방향으로도 눈만 돌리면 보이는 것이 오스만 제국 시절 모스크들의 둥근 지붕과 첨탑들이다. 갈라타 다리 건너에 있는 '갈라타 타워'의 전망대에 올라서 구시가 쪽을 바라보니 그 첨탑이 솟아있는 거대한 모스크들이 무려 13개 보였다. 앞서 언급한 것들을 제외하고도 '베아지트', '슐레이마니', '누루오스마니' 등등의 모스크들이 바로 그러한 것들이다. 그러니까 결국 이것들이 이 이스탄불의 분위기를 꽉 잡고 있는 것이다. 이국의 정취가 묻어나는 대시장 하지만 이러한 모스크들만 보다가는 금방 식상하게 된다. 그래서 뭔가 보다 더 이스탄불 적인 것이 없나 하고 찾게 되는데, 그 욕구에 딱 맞는 곳이 없을 리 없다. 구시가 안에 있는 '그랜드 바자르'와 '이집시안 바자르'가 바로 그러한 곳이다. 이 두 곳은 모두 오스만 제국 초기에서부터 형성된 시장인데 이스탄불 최고의 분위기를 자랑하는 곳이다. 그래서 이 두 곳을 보지 않고서는 이스탄불을 봤다고 할 수가 없을 정도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4000여 개의 상점들이 둥근 지붕 밑에 들어서 있는 그랜드 바자르는 기다란 통로들이 거미줄처럼 이어져 있고 그 통로를 따라 이곳저곳을 구경하다 보면 길을 잊기가 십상이다. 카펫 가게 앞을 지날라치면 어김없이 종업원들이 불러들이기 때문에 살 마음이 없다고 해도 구경이나 하고 가라고 안으로 잡아 다닌다. '차이'가 나오고 수십 장의 화려한 카펫들이 펼쳐진다. 모두가 몇 년씩 걸려서 손으로 짠 것이라고 설명한다. 그 중에 어떤 것이 조금 낡았기는 해도 고풍스러운 멋이 있기에 물었더니 자그마치 백만 달러라고 해서 입이 딱 벌어지고 만다. 처음에는 농담인가 했는데 수백 년이나 된 골동품으로 족보가 있는 것이기 때문에 그렇다고 한다. 또 가죽 제품이 싸서 많은 관광객이 쇼핑을 즐기기도 하는데, 막상 무엇을 살 수 있어서 라기 보다는 그 독특한 분위기에 취하고 싶어 모두들 이곳을 찾는다. 좀 더 바닷가 쪽으로 자리를 잡고 있는 이집시안 바자르는 그랜드 바자르 보다는 훨씬 규모는 작지만 분위기 면에 있어서는 이스탄불 최고를 자랑한다. 건물들은 낡았지만 어둑어둑한 조명하에서 운치가 더 있어 보이고, '로쿰(Lokum)'이라는 터키 특유의 과자들을 즐비하게 널려 놓고 지나는 사람들마다 맛보게 하는 종업원들과의 만남도 여정을 돋우어 준다. 또 하나같이 머플러를 둘러쓰고 다니는 터키 여인들이나 콧수염의 사내들 사이를 비집고 다니면서 이곳저곳을 기웃거리다 보니 저 먼 곳에 와 있음을 실감케 한다. 에미뇌뉘의 선창가로 나오니 오고 가는 페리들이 분주하다. 아시아 쪽 이스탄불은 물론이고, 저 멀리 에게 해 쪽 다른 도시로까지 왕래하는 페리들도 있다. 이스탄불의 또 다른 멋을 느껴보기 위해 보스포러스 해협을 왕래하는 페리에 몸을 싣는다. 서구와 회교권이 혼재된 틈바구니에서 몸부림치면서도 조화를 이루어 가는 이스탄불! 이곳에 영광이 있을 지어다.
안범희 | 강원대 사대 교수 개미는 부지런함의 대명사이다. 언제보아도 부지런히 오가며 먹이를 나른다. 그런데 곤충학자가 관찰한 바에 의하면 실제로 열심히 일하는 개미는 전체집단의 15%에 지나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나머지는 그냥 하릴없이 왔다 갔다 하거나 빈둥거리며 시간을 보낸다는 것이다. 그래서 그 곤충학자는 부지런히 일 잘하는 15%의 개미들만을 모아 한 집단을 만들고 농땡이 치는 개미들을 모아 한 팀으로 하여 분가를 시켜보았더니 모두가 부지런했던 개미집단에서 단지 15%만 일하고, 놀랍게도 게을렀던 개미집단에서도 15%의 부지런한 개미가 생기더라는 것이었다. 그 이유는 밝혀지지 않았다. 아마 15%만 열심히 일하면 전체가 다 먹고 살만하기 때문이 아닐까 추정해 볼 뿐이다. 15%는 정예군이고 나머지 85%는 예비군일 것이다. 인간의 능력이나 행태를 비교하는데 흔히 쓰이는 것이 정상(정규)분포곡선이다. 지능을 예로 들면 평균적인 지능을 100이라하고 표준편차를 10으로 했을 때 표준편차 +1시그마와 -1시그마 사이의 지능, 즉 90~110 사이의 지능을 평균지능이라 한다. 이의 분포는 약 68%이다. +2시그마 이상에 분포하는 수치는 약 16%이다. 지능지수가 110이 넘는 사람의 수는 100명 중 16명이고, 역으로 90 이하인 사람도 16명이다. 대학에서의 수업을 제대로 이수하는데 필요한 지능을 전통적으로 110 이상으로 보아왔다. 다시 말하면 같은 또래의 16%만이 대학 공부를 제대로 할 수 있다는 얘기다. 그런 까닭에서인지 확실치는 않지만 얼마 전까지만 해도 서구의 대학진학률은 이 수치를 밑돌았고, 이 학생들을 나라에서 장학금을 주고 공부시켰다. 독일의 경우 대학생에게 주는 혜택이 워낙 많아 일부러 졸업을 늦추는, 그래서 직업이 대학생이다시피 한 학생도 꽤 많다. 우리나라의 경제는 짧은 시간에 그 규모가 매우 커졌다. 이른바 압축형 성장의 모델이 되고 있다. 그 성장의 원동력이 바로 교육과 교육열 때문이라는데 대해 아무도 이의를 제의하지 않는다. 남들이 별다른 노력을 하지 않을 때에 열심히 노력한 사람이 성공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남들이 공부하지 않을 때 열심히 공부하면 성공한다. 1970년대 초반 까지만 해도 대학 진학률은 10% 에 지나지 않았고, 1980년대 초 졸업정원제가 시행될 때까지만 해도 20%를 밑돌았다. 지금은 원하면 누구나 대학에 갈 수 있는 상황에 이르렀고, 급기야 대학정원을 줄이는 데 교육부가 골몰하고 있다. 넘치는 대학과 대학생 수는 우리나라 대학의 경쟁력이 떨어질 수밖에 없는 큰 이유 중 하나이다. 이른 바 집중과 선택이 되고 있지 않은 것이다. 비밀의 수치 16%를 넘어서도 너무 많이 넘어서버리고만 것이다. 경제력이 신장되면서 모든 국민이 대학진학의 꿈을 갖게 되었고, 그것이 실현되면서 또 다른 16%의 경쟁이 과열되어 왔다. 일류대학에의 진학과 유학이 그것이다. 어지간히 능력만 되면 해외 어학연수를 하고, 조기 유학을 하고, 외국 박사학위 취득에 열을 올린다. 일단은 우수 자원이 해외로 빠지니 우리나라 대학원의 질은 상대적으로 높아지기 어렵다. 국내 유수 기업들은 20년 전에는 우수 해외 유학생들에게 장학금을 지급하는 등의 방식으로 인재를 입도선매(立稻先賣) 했는데 이제는 잘 조련된 해외파 인재들 중 입맛에 맞는 인재만 고르면 되는 편한 입장에 있다. 그나마 해외유학생들의 다수가 국내에서 일자리를 구하기를 원하므로 고급두뇌의 해외 유출현상을 막을 수 있는 것은 천만 다행한 일이라 하겠다. 문제는 경쟁력 있는 두뇌가(16%) 경쟁하는 일은 바람직한데 그렇지 않은 경우에 까지 과도한 경쟁의 대열을 이루고 있다는 점이다. 부족한 2%를 채우기 위해 사교육에 의존하고 그도 안 되면 외국 유학을 택한다. 애당초부터 성공의 확률이 적은데 학부모는 이를 인정하려들지 않는다. 결국은 자식과 부모 모두 낭패를 보는 경우로 왕왕 나타난다. 공부는 지능 외에도 인내력, 주의집중 능력, 개인적 인지전략 등 인지적․성격적 요인이 망라되어 결정되는 것이다. 그 여러 요인 중에 물론 부모의 관심과 열의를 빼놓을 수는 없다. 그러나 결국은 본인만 남게 된다. 학습 환경을 좋게 해주는 것은 좋은 일이나 능력이 되지 않는데 계속 끌고 가는 것은 교육적 낭비라 하지 않을 수 없다. 학교의 교사나 학부모 모두 이러한 점을 감안하여 개인의 소질과 적성, 그리고 사회 적응 능력을 개발하는 일에 더 많은 관심과 지도가 있어야 할 것이다.
교사가 학교생활에서 가장 어려움을 느끼는 것은 무엇일까? 동료 교사 또는 교장, 교감과의 관계, 수업, 승진, 잡무 등 많은 문제들이 있겠지만 무엇보다도 항상 함께 수업하는 학생들과의 관계가 가장 어려울 것이다. 학생은 교사에게 보람을 주는 존재이면서 동시에 골칫거리를 안겨주기도 하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학생들과 갈등 상황 없이 좋은 관계를 유지하려면 어떻게 해야 하나? 호주에서 온 교사역할훈련(Teacher Effectiveness Training·T.E.T.) 강사 로버트 페레이라(Robert Pereira) 대표는 “학생과의 원활한 관계를 위해서는 커뮤니케이션 기술을 배워서 몸에 익혀야 한다”고 강조한다. 역할 훈련 트레이닝 전문 회사인 GTI 코리아의 초청으로 방한한 그를 만났다. -여러 번 초청 강연을 오신 것으로 알고 있는데 한국에 대해 어떤 인상을 받으셨습니까? “5년 동안 한국을 다녀갔는데 이번에는 교회 교사들을 위한 역할훈련 강의 때문에 한국을 방문했습니다. 한국은 굉장히 진보된 사회인 것 같고 한국인들은 도전적이고 진취적인 분들 같습니다. 또 어느 곳에서나 교육을 잘 받은 사람들을 만날 수 있다는 것도 인상적입니다.” -교사 출신으로 지금은 호주의 유명한 교사역할훈련(T.E.T.) 강사가 되신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교사 생활은 1973년부터 10년 정도 했습니다. 과학을 가르쳤죠. 1974년에 토마스 고든 박사가 쓴 부모역할훈련(P.E.T.) 책을 보게 됐는데 정말 훌륭하다고 생각했습니다. 책에서 P.E.T. 강사 과정이 있다는 것을 알고 직접 찾아가게 되었고, 토마스 고든 박사 측에서 교사 경험을 살려 교사역할훈련(T.E.T.)을 해보라고 제의해 강사로 활동하게 됐습니다.” -T.E.T.는 40년 동안 전 세계에서 150만 명 이상의 교사가 교육을 받았을 만큼 역사가 오래된 것으로 알고 있는데 국내에는 소개된 지 얼마 되지 않았습니다. 교사역할훈련이란 무엇이고, 교사에게 왜 필요한가요? “교사들은 대부분 교대나 사대에서 교과 전문 지식과 그 지식을 어떻게 효과적으로 가르치느냐를 배웁니다. 그렇지만 과목에 대한 전문지식이 많다고 해서 잘 가르치는 교사가 되는 것은 아니죠. 학교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학생들과의 ‘관계(relationship)’입니다. 그렇지만 어느 곳도 ‘사람’을 가르치는 일에 대해 교육 시켜주지 않아요. T.E.T.는 바로 그것에 대해 교육합니다. 교사와 학생 간의 커뮤니케이션 기술을 가르치는 것이죠.” -학생과 교사의 주된 갈등은 어떤 것이 있습니까. “연령이 어떻든 학생들은 자기만의 아젠다(agenda)가 있습니다. 자신의 생각과 상황을 가지고 학교에 오죠. 학생이 기분 좋은 날에는 선생님과의 수업도 잘되지만 걱정이 있고 스트레스를 받는 등의 문제가 있다면 수업에 집중 할 수 없어요. 그렇지만 교사는 이런 상황을 고려하지 않고 학생을 나무라게 되죠. 그러면서 교사와 학생 간의 갈등상황은 더욱 심해집니다. 이럴 때 학생들을 대하는 방식이 달라진다면 상황은 충분히 개선될 수 있습니다.” -T.E.T.에서 학생과의 갈등 상황과 그에 따른 교사의 역할에 대해 말씀해주십시오. “신임교사로 예를 들면, 학교에 처음 부임했을 때 굉장히 열의를 가지고 수업에 임하고, 또 학생들도 새 선생님에 대한 기대에 차 있을 것입니다. 그렇지만 수업은 마음먹은 대로 되지 않습니다. 학생들이 말을 듣지 않거나, 수업을 방해하면 신임 교사는 당황하고 갈등하게 되죠. 이런 상황에서 이 교사가 대응하는 방식에는 크게 두 가지 유형이 있습니다. 우선은 과거 자신의 경험을 바탕으로 학생을 훈계하거나 체벌 하는 선생님이 있습니다. T.E.T.에서는 ‘Method-1’ 스타일이라고 하는데 권위주의적이고 지시적인 교사들을 말합니다. 이 경우에는 학생들이 그런 무서운 교사를 싫어하게 되죠. 두 번째는 갈등 상황을 해결할 다른 대안을 찾지 못해 어떻게 행동해야할지 모르는 경우입니다. ‘Method-2’ 스타일의 교사인데 학생을 대할 때 자꾸 당황하게 되고 나중에는 교사가 학생을 싫어하게 됩니다. 대부분의 교사가 이 두 경우에 해당되는데 둘 중 어느 것도 생산적이지 못합니다.” -그렇다면 이런 갈등 상황을 해결하는 방법 중 중요한 것은 무엇인가요? “T.E.T.를 배운 교사는 그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 학생들과 대화를 나눕니다. 학생들을 가르치는데 있어 가장 민주적인 방식이죠. ‘Method-3’ 스타일인데 선생님이 자기 생각이나 주장을 학생들에게 적극적으로 말하고 이해시키려고 노력하는 것입니다. 자기주장을 얘기하는 것을 훈계하는 것과 착각해서는 안 됩니다. 교사가 자신의 생각을 말하는 것이 바로 T.E.T.의 첫 번째 기술입니다. 또 중요한 기술 중 하나는 ‘적극적 경청’입니다. 교사가 학생의 말을 어떻게 듣느냐에 따라서 관계가 달라지죠. 이런 식으로 갈등해결을 위한 6가지 기술이 있습니다. T.E.T.에서는 어느 때 효과적으로 그 기술을 사용하는지를 역할훈련을 통해 배웁니다.” -선생님께서는 T.E.T.를 접하시기 전과 후에 어떤 변화가 있으셨습니까? “저는 원래도 권위주의적인 교사는 아니었어요. 하지만 ‘Method-3’ 스타일의 교사도 아니었죠. 학생들의 말을 귀 기울여 들었지만, 적극적으로 경청하는 쪽은 아니었습니다. T.E.T.를 배우고 난 뒤에는 그 기술들을 체득해 학생들과 더 커뮤니케이션을 잘 하게 됐습니다.” -호주에서는 T.E.T. 교육이 어떻게 이루어지고 있고 교사들의 반응은 어떤 가요? “호주에서는 주로 학교나 교육청 단위로 교육을 하고 있습니다. 5일 동안 총 30시간 교육인데 7200명 이상의 교사가 교육을 받았습니다. 교육을 받은 호주 교사들은 교사로서의 5년 경험보다 5일 동안 더 많은 걸 얻었다고 말합니다. 그러면서 ‘왜 이런 지식을 대학에서는 가르쳐주지 않느냐’라고 하죠. 그렇지만 예비 교사들은 실제로 학생들과 부딪치고 가르쳐본 경험이 없기 때문에 공부라고 생각하고 재미없어 합니다. T.E.T.는 현직 교사에게 유용한 프로그램이에요. 바로 현장에서 학생과 직접 부딪혔을 때 적용할 수 있는 기술이죠.” -요즘 호주의 교사들은 어떤 일로 고민하고 있습니까? “어느 나라든 교사들의 고민은 한가지라고 생각합니다. 어떻게 하면 학생들을 잘 가르치는 좋은 교사가 되느냐 하는 것이죠. 최근에는 호주의 청소년 중 25%가 엄청난 스트레스에 시달리고 있는 것으로 나타나서 학교에서도 문제가 되고 있습니다. 대부분 부모의 이혼 등의 가정문제나 이성문제, 그리고 요즘에는 부정적인 자아상(Self Image) 문제를 가지고 있는 학생들도 많습니다. 자기 외모나, 자기 모습에 전혀 만족하지 못하는데서 오는 불만입니다. 이런 문제들로 파생되는 자살과 자해 등의 문제도 심각한 수준입니다. 그래서 T.E.T.에서도 이런 문제에 대한 역할 훈련을 늘려야겠다는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마지막으로 한국의 교사들에게 당부하고 싶은 말씀이 있다면. “선생님들이 책을 통해서 이미 많은 커뮤니케이션 기술들을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머릿속에 든 지식이 실제 상황에서 바로 적용되지는 않습니다. 어떤 상황에서 어떤 방식으로 사용해야하는지를 모르기 때문이죠. 컴퓨터 자판을 보지 않고 워드를 치려면 부지런히 타이핑 연습을 해야 하는 것처럼 커뮤니케이션 기술도 트레이닝을 받아 체득화 해야합니다. 학생과 교사 모두를 위한 것이죠.” | 이상미 smlee24 @kfta.or.kr ------------------------------------------------------------------------------------ T.E.T.(교사역할훈련 프로그램)란? T.E.T.는 교사들에게 바람직한 학생지도 방법을 알려 주고 학생과의 갈등을 쉽게 해결할 수 있도록 돕는 커뮤니케이션 훈련 프로그램이다. 부모역할훈련 P.E.T.(Parent Effectiveness Training)를 개발한 미국의 임상심리학자 토머스 고든 박사가 세계적으로 널리 알려진 대인관계 모델을 학교 현장의 교사들에게 적용해 1966년 처음 시작됐다. 우리나라에는 지난해에 처음 소개되어 연수를 통해 1000여명의 교사들이 교육을 받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
최효찬 | 자녀교육 컨설턴트, 저자 가정에도 필요한 위기관리 시스템 기업경영에서 '위기관리(crisis management)'는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는다. 한때 세계적인 기업으로 위세를 떨친 기업이 하루아침에 몰락하기도 하는데, 위기관리가 제대로 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기업에서 위기관리는 이제 하나의 제도로서 정착하고 있다. 담당부서도 핵심부서로 대우받는다. 이른바 위기관리전문가인 'CRO(Chief Risk Officer)'를 두고 있는 대기업들이 늘어나고 있다. CRO는 기업이 직면하거나 직면할 가능성이 있는 위험들을 파악해서 대처방안을 수립하는 업무를 담당하는데, 기업 안팎의 변화에 주목하면서 어떤 변화나 결정이 미치는 영향을 파악해 위험 회피방안을 제시해 위기를 미연에 방지하는 전위역할을 하는 것이다. 위기는 인간 개인의 육체적·정신적인 면에서부터 기업체나 사회, 국가에서도 발생한다. 특히 현대 사회는 급격한 변화가 상시적으로 일어나고 있어 어느 시대보다 위기관리가 중요하지고 있다. 위기를 미연에 방지하는 것이 최상이고 뜻밖에 위기에 봉착하더라도 위기관리 시스템이 제대로 작동한다면 위기를 벗어날 수 있을 것이다. 위기관리는 회사나 국가뿐만 아니라 가정에서도 예외가 아니다. 가정들도 위기를 맞았을 때 여기에 제대로 대응하느냐, 그렇지 못하느냐에 따라 가정과 그 가정의 구성원들의 운명이 달라질 것이다. 흔히 자녀교육으로 성공한 대표적인 사례로 세계적인 대문호인 괴테(1749~1832)가 회자된다. 다방면의 체계화된 과외로 세계적 대문호에 올랐는가 하면 당대에 귀족 칭호를 받았기 때문이다. 괴테 가문은 할아버지가 여관업으로 재산을 많이 모았다. 아버지는 법대를 나와 프랑크푸르트 시(市)의 고문관 자리에 오르기도 했다. 일정한 직업이 없었던 아버지는 괴테만큼은 큰 인물, 큰 사람이 되기를 원했다. 부친의 적극적인 교육에 힘입어 소년시절 괴테는 당대의 명문가들이 그랬듯이 최고의 가정교사에게 가르침을 받았다. 괴테는 문학과 예술, 종교, 외국어 등 다방면에 걸쳐 가정교사에게 배웠다. 부친의 자녀교육에 힘입어 괴테는 전방위적인 천재 작가로 우뚝 설 수 있었다. 괴테가 대문호가 되기까지는 자녀를 꼭 성공시켜야겠다는 목표의식을 가진 괴테 아버지의 적극적인 자녀교육에 힘입은 바 컸다 할 것이다. 그러나 때로는 부모의 욕심이 자녀의 앞날에 먹구름을 드리기도 한다는 사실을 망각해서는 안 된다. 부모의 시각으로 강요하다보면 아이는 부모의 욕망에 짓눌려 신음할 수도 있음을 결코 잊어서는 안 된다. 괴테는 정작 자신의 아들 교육에는 실패하고 말았다. 괴테는 외아들 아우구스트에 대해 그의 부친이 했던 것처럼 과외를 시켰다. 하지만 아우구스트에게 아버지 괴테의 그늘은 너무나 짙었다. 아버지의 비서역할을 하며 수족처럼 지내며 문학적 재능을 드러내려 했지만, 아버지를 뛰어넘을 만큼 문학적 천재성을 발휘하지 못했다. 결국 아버지의 그늘을 벗어나지 못한 채 알코올 중독으로 이탈리아를 여행하던 중 41세에 요절하고 말았다. 자녀교육으로 가문의 위기 극복해 괴테의 원칙 없는 자녀교육으로 과잉보호가 꼽힌다. 괴테는 아들의 학습, 대학 진학, 취직, 여행, 군 입대 문제까지 직접 챙겼다. 심지어 전쟁 중에는 청탁을 통해 아들을 전투에서 빼돌리고 대신 후방에서 군수품을 공급하는 일을 맡도록 손을 썼다. 괴테 역시 이기적인 아버지일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이는 제대로 된 명문가의 '노블리스 오블리제(지배계급의 도덕적 의무)'와는 거리가 멀다. 결국 괴테 가문은 손자 발터 볼프강으로 이어졌지만 더 이상 괴테의 유업을 잇지 못하고 모든 유산을 그를 후원했던 바이마르의 작센공국에 맡기는 것으로 가문을 닫아야 했다. 괴테는 가문의 영광을 잇기 위해 '괴테주식회사'의 CEO로 나섰지만 과잉보호와 함께 원칙 없는 자녀교육으로 실패한 CEO에 머물고 말았다. 괴테가는 세계적인 대문호를 탄생시켰음에도 불구하고 가문의 위기관리 측면에서 실패한 케이스에 해당한다. 괴테는 가문의 최고경영자로서 체계적으로 가문을 경영하지 못했고 후손들이 본받을만한 가풍을 대물림하지도 못했던 것이다. 자녀교육이 단지 눈앞의 출세 등 양지만을 추구해서는 누대의 명문가로 이어질 수 없음을 의미한다. 최고의 권력 실세들이 모두 명문가로 존립해오지 못하는 까닭도 여기에 있다. 누대의 명문가는 권력 그 이상의 가풍이 뒷받침 될 때에 가능함을 반증해주는 것이다. 가문주식회사 CEO의 지침, 즉 가훈이나 가풍 등이 추상같이 후손들에 의해 지켜질 때 가능한 것이다. 여기서 괴테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은 결코 대문호로서의 업적에 대한 시시비비가 아니다. 다만 한 아버지로서 자녀교육을 어떻게 했고 또 가문을 어떻게 관리했느냐는 측면에서 이야기하는 것이다. 괴테가 가문주식회사의 위기관리를 제대로 못해 결국 3대째 문을 닫았다면, 괴테와 동시대를 살았던 다산 정약용(1762~1836)은 가문의 CEO로서 위기관리에 성공한 케이스로 꼽을 수 있다. 다산 정약용은 자신뿐만 아니라 둘째형(정약전)이 함께 유배를 당했다. 천주교도인 셋째형(정약종)은 그의 아들 하상과 매부인 이승훈과 함께 죽임을 당했다. 이로 인해 다산가는 절체절명의 위기에 처했다. 당시 19살, 16살이었던 다산의 아들 역시 이를 감당하기에는 엄청난 사건이었다. 아버지의 유배와 함께 대역죄인으로 몰려 참수당한 큰아버지의 죽음도 슬픈 일인데, 이제 과거시험까지 볼 수 없는 처지가 됐으니 낙심하지 않을 수 없었을 것이다. 당시 대역죄인 집안의 자손은 국법에 따라 과거를 볼 수 없었다. 그러나 다산은 실학자답게 유배중인 상황임에도 불구하고 자녀들에게 편지를 통한 서신교육에 나서면서 가문의 CEO로서의 진면목을 보여주었다. 반드시 서울 10리 안에서 살아라 그렇다면 가문이 풍비박산당하는 위기상황에서 다산은 어떻게 자녀교육에 임했을까? 다산은 자녀교육에 가장 힘써야 할 시기인 39살에서 57살까지 고스란히 유배지에서 보내 아버지로서 자녀교육을 하지 못했다. 특히 다산은 자신의 선대에서 무려 8대째 홍문관 벼슬을 역임한 명문가의 후손이었지만 자신뿐만 아니라 형제들이 줄줄이 천주교박해 사건에 휘말려 그 참담한 심정은 이루 말할 수 없었을 것이다. 그러나 다산은 유배지에 있으면서도 자녀들에게 편지로 공부에 힘쓸 것을 독려하면서 자녀교육에서 탁월한 아버지의 상(像)을 보여주었다. 유배된 다산이 할 수 있는 일은 극히 제한돼 있었다. 그래서 다산이 활용한 것은 편지를 통한 자녀교육이었다. 다산은 두 아들에게 위기를 극복하는 힘을 주면서 구체적으로 살아갈 방도를 편지를 통해 가르쳤다. 편지는 직접 대면하지 않아 감정적으로 치우치지 않게 되어 이전에 즐겨 쓰던 자녀교육법이다. 퇴계 이황이나 서애 류성룡도 아들과 손자들에게 틈틈이 편지를 보내 공부에 힘쓸 것을 당부했다. 다산은 먼저 자신의 귀양으로 위기에 처한 자녀들에게 '한양입성'이라는 특명을 내린다. 다산은 아들 학연과 학유에게 '문명세계를 떠나지 말라'고 편지를 썼다. 박석무의 와 그가 옮긴 다산의 등에 따르면 다산은 48세 때인 1810년 유배지에서 쓴 편지에서 두 아들에게 '서울입성'을 당부한다. 다산은 "만약 벼슬길이 끊어져 버리면 빨리 서울에 붙어살면서 문화의 안목을 잃지 않도록 해야 한다"고 말한다. 다산은 자신의 유배와 형들의 불행한 일로 인해 집안이 위기에 처하자 자녀들에게 '서울사수'라는 응급처방을 내렸던 것이다. 서울을 떠나 산다는 것은 벼슬길이 막힌 상황에서는 가문의 적신호가 아닐 수 없었기 때문이다. 더욱이 교육환경이나 정보습득에서 시골보다 월등한 서울에서 더 이상 살 수 없다는 것은 재기의 기회조차 잃을 수 있음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지금 당장은 어렵겠지만 앞으로 어떻게든 서울로 들어가 살아야 한다는 '서울입성'을 주문한 것이다. 이는 가문의 CEO로서 다산의 진면목을 엿볼 수 있게 해주는 대목이다. 다산은 아버지로 인해 벼슬길이 막혀버린 아들에게 용기를 북돋워주면서 단계적으로 서울살이의 방도를 들려준다. 그는 먼저 결코 서울 주변(수도권)을 떠나서는 안 되며, 가능하면 서울 한복판으로 들어가 살아야 한다고 당부한다. "지금 내가 죄인이 되어 너희들에게 아직은 시골에 숨어서 살게 하였다만, 앞으로는 오직 서울의 십리 안에만 가히 살아야 한다. 또 만약 집안의 힘이 쇠락하여 서울 한복판으로 깊이 들어갈 수 없다면 잠시 서울 근교에 살면서 과일과 채소를 심어 생활을 유지하다가 재산이 조금 불어나면 바로 도시 복판으로 들어가도 늦지는 않다." 당시 한양은 외국문물과 정보접근 등에서 다른 지역과 비교가 되지 않는 곳이었다. 시대에 뒤지지 않는 교육을 받기 위해서는 반드시 서울에 살 필요가 있었던 것이다. 다산은 교육에서 환경의 중요성을 파악하고 자녀교육에 적용했다고 볼 수 있다. 안분지족이 아닌 공격적인 가문 경영 유배당한 처지에 있던 다산으로서는 '서울사수'라는 지침은 공격적인 가문 경영에 해당할 것이다. 자신의 유배를 비관하거나 혹은 '자손보호'를 명목으로 정치적으로 화를 당하지 않게 고향에서 안분지족(安分知足)하며 살 것을 권고했을 수도 있었지만 다산은 그렇지 않았다. 다산은 두 아들에게 과거길이 막힌 폐족(廢族)의 신분이지만 학문마저 게을리 하면 더 비천한 가문으로 전락될 것을 우려했다. 그래서 자녀들에게 과거를 볼 수 없더라도 학문을 통해 성인이나 문장가는 될 수 있다고 독려하는 편지를 보내고, '서울입성'을 당부했던 것이다. 요즘도 자녀들이 공부를 안 하면 흔히 "좋은 대학에 못가면 예쁜 신부나 돈 많은 신랑을 만날 수 없다"고 '협박'한다. 좋은 대학에 가면 반드시 좋은 배우자를 만나는 것은 아니지만 그럴 가능성은 존재하기 때문이다. 다산은 두 아들에게 이 같은 다소 '세속적'인 비유를 동원하면서 학문에 힘쓸 것을 강조하기도 했다. "공부를 게을리 하면 좋은 여자를 만난 수 없다"면서 그래서 더욱 학문에 힘쓸 것을 당부했다. 더욱이 다산이 든 비유는 비약적이어서 웃음을 자아내게 한다. "혼인길이 막혀 비천한 집안과 결혼해 물고기의 입술이나 강아지의 이마 몰골을 한 자식이 태어나면 그 집안은 영영 끝장이 난다. 이래도 학문을 게을리 할 작정이냐." 다산은 아들이 벼슬길이 막힌 것을 비관해 행여나 공부를 게을리 하거나 자포자기할까 염려해 아들의 공부를 독촉했다. 유배된 처지에 있는 아버지로서 아들을 설득할 수 있는 방법은 이런 직설적인 말밖에 없었을 것이다. 때로 툭 터놓고 진솔하게 이야기할 때 더 설득력을 발휘하기도 한다. 결국 다산은 아버지로서의 속내를 아들에게 다 털어놓고 만다. "과거에 응할 수 없게 됐다고 해서 스스로 꺾이지 말고 경전 읽는 일에 온 마음을 기울여 글 읽는 사람의 종자까지 따라서 끊기게 되는 일이 없기를 간절히 바라고 또 바란다." 또 다산은 불우한 환경과 악조건에서 학문을 게을리 하지 않아 자신을 일으켜 세운 이들에 대한 이야기도 두 아들에게 들려주었다. 이 중에서 다산 자신을 학문의 세계로 이끈 등대역할을 한 성호 이익(1681~1763)을 역경을 극복하고 큰 학자로 대성한 모델로 꼽았다. 즉, 다산은 성호 이익을 자신이 본받아야 할 '역할모델'로 삼은 것이다. 성호는 진주목사를 지낸 아버지 이하진의 귀양지인 평안 영산에서 태어났지만, 이듬해 부친이 사망하는 등 비운이 잇따랐다. 그에게 학문의 길을 열어준 둘째형(이잠)마저 자신이 올린 상소로 인해 목숨을 잃었다. 그러나 성호는 경제적 곤궁 속에서 학문에 뜻을 두고 실학자로 큰 족적을 남긴 인물이다. 다산은 자신이 학문을 시작하게 된 동기가 바로 이익이 걸어간 학문의 길 때문이었다고 한다. 이외에도 다산이 자녀들에게 편지를 통해 훈계한 내용으로는 독서에 힘쓸 것, 재물은 나눠줄 것, 근(勤)과 검(儉) 두 글자를 유산으로 삼을 것 등이다. 아버지가 직접 교육에 앞장서야 다산의 자녀교육 열정은 요즘 부모들도 혀를 내 둘을 정도로 철저했다. 요즘에는 대부분 자녀교육을 위해 공무원들이나 회사원들이 서울을 벗어나 다른 지역에서 근무하게 되면 서울에 자녀를 두고 '주말부부'로 살아간다. 그러나 이전에는 대부분 아버지의 근무지로 가족이 이사를 다니면서 관사나 사택에서 살았다. 다산의 경우도 한양을 떠나 공무원 생활을 할 때 가족을 데리고 다녔다. 다산이 36세 때에 황해도 곡산 도호부사로 부임했을 때에는 두 아들을 위해 두 수레나 가득히 책을 싣고 와 직접 '서향묵미각(書香墨味閣)'이라고 이름붙인 공부방을 직접 꾸며주면서 공부할 수 있는 분위기를 만들어주었다. 서향묵미각이란 책의 향기와 먹의 맛이 있는 방이라는 뜻이다. 아버지가 이렇게 나오는데 자녀들이 아버지의 정성을 외면할 수 있겠는가. 그럼, 다산의 가르침을 받은 그 후손들은 어떻게 됐을까. 다산의 가르침대로 두 아들은 독서를 통해 세상을 읽는 눈을 기르면서 당대의 문장가로 우뚝 서게 된다. 과거를 볼 수 없는 상황에서 자포자기하지 않고 학문을 게을리 하지 않았던 것이다. 즉, "페족이어서 벼슬길에 오르지는 못해도 성인이나 문장가가 될 수 있다"는 다산의 가르침을 잊지 않고 학문을 닦았던 것이다. 장남인 학연(學淵, 1783~1859)은 당대에 이름을 떨친 시인이 되었다. 동생 학유(學游, 1786~1855)도 당대의 시인으로 를 지었다. 다산은 18년 동안 긴 유배생활을 했다. 그러나 그는 강진초당에서 후학들을 가르치며 단 한 번도 좌절하지 않고 500권에 이르는 방대한 저술 활동을 펼쳐 실학사상을 집대성했다. 유배가 다산에게는 고통스런 삶이었지만 그는 등 조선역사상 불후의 역작들을 쏟아냈던 것이다. 다산은 억울한 삶을 보냈고 기막힌 세월을 보냈지만 끝까지 좌절하지 않고 실의에 빠지지도 않았다. 오히려 고단한 귀양살이에도 늘 자신을 채찍질하며 열성적으로 학문을 연구하는데 몰두했던 것이다. 또 가문의 CEO로서 유배지에서도 위기관리에 직접 나서 두 아들에게 아버지로서의 역할을 다했다. 다산의 정신이 오늘날까지 살아 숨 쉬는 이유도 실천적인 삶의 지침을 들려주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박경민 | 역사 칼럼니스트(cafe.daum.net/parque) 최초의 통일제국 마우리아 왕조 최초의 통일 왕조였던 마우리아 왕조를 비롯하여 역대 통일 왕조들은 유럽이나 중국에 비해서 군주권이 약했다. 따라서 인도는 분열 그 자체가 자연스러웠다. 정치적 여건 이외에 인도대륙의 지리적 특성, 즉 인도 남부에는 거대한 데칸고원이 자리를 잡고 있어 해안을 중심으로 많은 소국가들이 발달하였다. 인도는 북 인도와 남 인도, 그리고 데칸고원 일대의 소국가들이 흥망을 거듭하였다. 기원전 324년 찬드라굽타(Chandragupta : BC 317 ?~BC 297 ?)가 마가다 지방을 근거지로 마케도니아의 알렉산드로스 3세의 인도원정과 철수과정에서 생긴 서북 인도 일대를 정복하여 인더스 강 유역에 남아 있었던 그리스 군을 몰아내고 최초로 통일하였다. 개국자인 찬드라굽타는 서쪽으로는 아프가니스탄, 동쪽으로는 벵갈 만에 이르는 북 인도와 남 인도 일부로 세력을 확대하여 인도 역사상 가장 넓은 영토를 차지하였는데, 비록 인도 남쪽 끝까지 정복하지 못했으나 2차 대전 후 파키스탄이 분리되어 나간 현재의 인도보다 더 큰 제국이었다. 찬드라굽타의 손자인 아쇼카(Ashoka:BC 268~BC 232)는 정복사업에 더욱 열을 올려 마우리아 제국의 판도를 더욱 넓혀 동인도 해안지방인 칼링가를 정복하고 인도 대륙의 대부분을 점령함으로써 인도에서 아프가니스탄에 이르는 최대의 제국을 완성시켰다. 아쇼카 왕은 불교의 옹호자로서 잘 알려져 있다. 기원전 261년 치열했던 칼링가 전투에서 수많은 사람들이 전사한 모습으로 보고 불교에 귀의하였다고 한다. 마우리아 왕조의 전성기는 개조 찬드라굽타에서 아쇼카 왕까지로 보고 있는데, 특히 아쇼카 왕은 불교의 옹호자답게 진정한 정복이란 무력을 통해서가 아니라, 법(dharma : 佛法)에 의해서 가능하다고 생각하고 불교를 위해서 많은 사업을 추진함으로써 무자비한 '정복왕'의 이미지가 아니라, '자비로운 불자 군주'로 불교의 세계화에 큰 공헌을 하였다. 덕분에 당시 북 인도에서만 융성했던 불교가 지역 종교였던 한계를 극복하고 전국 종교로 도약하였을 뿐만 아니라, 국경을 넘어 널리 해외에까지 전파되어 지금은 이슬람 국가인 아프가니스탄에 불상을 비롯한 불교문화 유적지가 많이 있었으나, 아깝게도 탈레반 정권이 탱크를 동원하여 모두 파괴하고 말았다. 비록 마우리아 제국의 영토는 넓었지만 제국 전체가 황제의 지배에 있지는 않았다. 옛 마가다 왕국만 직할지로 두고 나머지 영토는 크게 넷으로 나누어 총독이 관할하였다. 애초부터 중앙집권이 취약했던 마우리아 왕조는 오래갈 수 없었다. 아니나 다를까, 기원전 232년 아쇼카 왕이 죽은 지 얼마 되지 않아 쇠퇴의 길로 접어들어 마우리아 제국은 여러 개의 나라로 갈라져 멸망하고 말았다. 이는 법에 의한 통치가 계속되면서 옛 정복자로서의 패기를 상실함에 따라 군사력의 저하를 가져왔고, 더욱이 후계자들은 군주로서의 재목이 아니었다. 결국 마우리아군의 장군이었던 푸샤미트라가 왕을 시해하고 숭가(Sunga) 왕조를 세움으로써 인도인에 의한 최초의 통일왕조는 멸망하고 말았다. 주인 없는 지역의 끊임없는 혼란 이후 인도의 역사는 문자 그대로 '춘추·전국시대'이다. '존왕양이(尊王攘夷)'와 '제자백가(諸子百家)'를 빼고는 혼란과 분열 그리고 흥망성쇠의 반복이라는 점에서 중국과 똑같다. 최초의 통일왕조였던 마우리아 왕조가 망하고 서기 4세기에 굽타 왕조가 들어설 때까지의 500여 년간 인도 판 춘추전국시대를 거치면서 수많은 나라가 생겨나고 사라졌다. 게다가 정치적 중심이 없는 인도에 '임자 없는 땅'이라며 아예 눌러 앉아버린 사람들이 있었으니 그들이 바로 알렉산드로스의 동방원정 때에 인도 서북부에 정착한 그리스계 민족들이다. 그들은 호시탐탐 남하를 노렸고 숭가 왕조와 그 뒤를 이은 칸바 왕조가 전력을 다해 남하를 저지했으나 이미 인도의 서북부 지역은 인도인의 것이 아니었다. 이미 마우리아 왕조의 아쇼카 왕 시절에도 인도의 서북부에는 그리스계 민족인 박트리아(대월씨국)와 파르티아(안식국)가 발흥하고 있었는데, 특히 펀자브 지방을 지배한 박트리아의 영역은 박테리아처럼 불어나더니 나중에는 북인도 중앙까지 세력을 넓혔다. 한편 중국의 한 무제가 흉노족을 치자 민족이동의 도미노 현상이 벌어졌다. 서쪽으로 밀려난 흉노족이 이 지역에 자리를 잡고 살던 대월씨족을 밀어내니 대월씨족은 아프가니스탄 지역의 이란계 유목민족인 토하라(Tokhara) 족을 밀어내는 사태가 발생하였다. 가만히 당하고만 있을 토하라 족이 아니었다. 유목민족 특유의 기질을 발휘해서 인도 방면으로 남하하면서 기원전 138년에 박트리아를 멸망시키니, 멸망당한 박트리아에서 쿠샨 족의 세력이 새로 일어나 기원전 1세기에 멸망당한 옛 박트리아의 제후가 대월씨족으로부터 독립하였다. '쿠샨'이라는 말은 당시 인도인들이 대월씨족들을 그리 불렀기 때문이다. 불교를 중심으로 왕권 강화 노려 서기 25년 대월씨족의 치하에 있었던 쿠샨 족을 독립시킨 카드피세스 1세는 서기 60년경부터 서북인도를 공략하여 펀자브 지방을 중심으로 하는 쿠샨 왕조를 세웠다. 이로써 서기 1세기 무렵에는 양대 세력이 형성되었는데 인도 서북부와 북 인도는 쿠샨 왕조가, 인도 서쪽과 이란에서 아프가니스탄은 파르티아가 지배하였다. 쿠샨 왕조의 전성기는 제 3대 왕인 카니슈카(Kanishka : AD 130 ?~162 ?)의 치세였다. 그는 북 인도에서 중앙아시아 이란으로 세력을 확대시키고 동쪽으로는 갠지스 강, 남 인도의 상당부분을 지배함으로써 마우리아 조의 아쇼카 왕 이래 대제국을 세웠으며, 그 역시 아쇼카 왕처럼 정복사업뿐만 아니라 불교를 진흥시킴으로써 '제2의 아쇼카'라는 별명을 얻었다. 카니슈카 왕은 로마황제 콘스탄티누스가 그리스도교의 교리논쟁을 해결하기 위해서 니케아 공회의(325년)를 소집한 것처럼 카슈미르에서 불교 기본교리의 정립을 위해서 '인도판 공의회'를 개최하였다. 그 결과의 산물로서 대승불교가 생겨났으며(그전에는 소승불교밖에 없었음), 나중에 '중국 → 우리나라 → 일본'으로 북방불교(대승불교)가 전해졌다. 쿠샨 왕조는 마우리아 왕조에 비해서 확고한 국가적 틀을 갖추고 있었고, 특히 수도인 페스와르가 위치한 간다라 지방은 동·서 문명의 교류 중심지였으므로 대외적으로 국가의 존재가 널리 알려졌다. 당시 로마제국의 영토가 시리아 지방까지 확대된 데다가 헬레니즘의 영향으로 인도의 국제화가 이루어졌던 것이다. 실크로드의 중간지점에 위치한 인도는 양방향적 문화교류가 가능했다. 동쪽으로부터는 중국문화를 받아들여 '왕 중의 왕' 즉 황제라는 뜻인 '마하라자 드히자라(maharaja dhijara)'라는 칭호를 사용하였다. 그러나 동·서 교류의 중심지였던 쿠샨 왕조는 3세기 초에 파르티아를 대신해서 일어난 사산 조(朝) 페르시아에게 멸망을 당함으로써 제국으로서의 도약에 실패하고 말았다. 이후 인도 전역은 또 다시 수많은 소국가로 분열되고 말았다. 쿠샨 왕조 붕괴 후 약 100여 년 간의 분열시대가 지나고 인도를 통일한 사람은 찬드라굽타 1세(AD 320~350 ?)인데, 마우리아 왕조의 건국자 찬드라굽타와는 다른 인물이다. 찬드라굽타 1세는 전 왕조인 쿠샨 왕조가 쇠퇴하자 비하르 지방에서 나와 갠지스 강 중류지역을 정복하고 왕국의 기초를 세운 인물이었으며 옛 마우리아 제국의 부흥을 꾀하여 분열이전의 인도 대부분을 재통일하는데 성공하였다. 그 역시 쿠샨왕조 때부터 사용된 '마하라자 드히자라'라는 칭호를 사용함으로써 막강한 제국의 군주로서 위상을 드높이고자 하였다. 찬드라굽타 1세의 아들인 사무드라굽타의 치세에 굽타 왕조는 튼튼한 국가의 기틀을 이루게 되었는데, 그 역시 정복군주로서의 탁월한 능력을 유감없이 발휘하여 굽타 제국의 영토를 벵골에서 인더스 강 하류에 이르는 북인도는 물론, 그때까지 직접 지배를 받지 않았던 남인도와 데칸고원 일대의 소왕국들도 굽타 제국에 대해서 충성의 맹세와 함께 조공을 바쳤다. 사무드라굽타의 아들인 찬드라굽타 2세는 할아버지와 아버지의 위업을 이어받아 서인도와 마르와 사우라슈트라를 정복하고 오랜 숙적인 사카 족도 멸망시켜 굽타 왕조의 역대 군주 가운데 가장 강대한 국가를 세웠으며 계속해서 유능한 인물이 출현하여 국력이 크게 신장되었다. 한편 쿠마라굽타는 중국에서 밀려난 흉노족의 침입을 물리쳐서 다음부터는 인도를 넘보지도 못하게 하였는데, 흉노족은 남하를 포기하고 진로를 바꾸어 서쪽으로 이동하여 중앙아시아에 정착, 투르크 족의 기원이 되면서 나중에는 동유럽까지 진출하였다. 개국 초기에는 다행히 유능한 군주들이 계속 출현하여 영토도 넓혀주고 외침도 막아주고 미약한 중앙집권을 보완해주었지만, 달도 차면 기우는 법! 쿠마라굽타 이후로는 군주로서 자질이 모자라는 사람들이 나타나는 바람에 5세기 중반부터는 급격한 쇠퇴의 길로 들어서고 말았다. 다양한 종교 받아들인 동남아시아 동남아시아 여러 나라는 인도의 영향을 많이 받았다. 특히 인도로부터 전해진 힌두교·불교·이슬람교가 서로 얽혀져 당시 민족의 흥망과 그 궤도를 같이 하고 있었다. 특히 인도로부터 남방불교가 전해져서 불교문화의 꽃을 피웠지만 나중에는 힌두교와 이슬람교도 전래되어 특히 이슬람교는 발상지인 중동지역보다 인구 면에서 최대 규모이다. 인도차이나 반도에서는 서기 1세기 무렵부터 여러 왕조가 세워진 것으로 알려져 있는데, 6세기에 들어와 크메르 족이 앙코르를 수도로 하여 강력한 왕국을 건설하였다. 당시의 모습을 엿볼 수 있는 것이 앙코르톰(Angkor Thom)이며 '위대한 도읍'이라는 뜻을 가지고 있다(현존하는 것은 12~13세기에 건설한 것임). 특히 그들이 12세기에 축조한 석조사원이 우리의 귀에도 익은 앙코르 와트(Angkor Wat :수도의 절)이다. 원래 앙코르 와트는 힌두교의 신을 숭배하는 절이었으나, 나중에 타이인들이 불교사원으로 바꾸어 버렸다. 타이인의 전성기는 17세기의 아유타야 왕조이며 역사상 한 번도 식민통치를 받지 않은 나라이다. 베트남은 진·한 시대부터 일부 지역이 중국의 식민지였기 때문에 북방불교(대승불교)가 확산되었으며 10세기 이후에는 독립해서 대월(大越)이라 했다. 19세기 원왕조(阮王朝)가 베트남을 통일하여 국호를 월남(越南)이라 하였다. 특히 미얀마의 경우에는 기원전 3세기에 인도로부터 불교가 전래되었으나, 지나·티베트계인 버마 족이 11세기에 세운 최초의 통일국가 파간 왕조가 여러 지역을 정복하는 과정에서 현 스리랑카로부터 전해진 소승 불교(남방불교)를 적극 수용함으로써 미얀마의 최대종교로 육성했다. 이는 버마 족의 왕조들이 불교를 자신들의 정통성을 뒷받침해주는 것으로 철저히 이용했기 때문인데 불교문화를 널리 전파시켜 불교가 융성하는 한 요인이 되었다. 버마 왕조는 그 후, 세 차례에 이르는 영국과의 전쟁에서 패배한 결과, 콘바웅 왕조를 마지막으로 1886년에 영국령 인도에 합병되어 혼란과 분열의 식민지 시대를 맞게 되었으나 불교는 버마 족의 정신적 지주가 되고 민족을 하나로 이어준 매개체 역할을 하였다.
정혜경 | 호서대 식품영양학과 교수 Ⅰ. 제안의 배경 및 필요성 우리나라는 급속한 산업화와 경제 성장으로 짧은 기간에 절대적인 식량부족상태에서 풍족한 식량 공급이 가능하게 되었지만, 이러한 급격한 변화는 식생활의 서구화와 맞물려 영양 상태와 건강에 부정적인 영향을 주고 있다. 반면에 경제발전에서 소외된 빈곤층, 저소득층의 결식 및 식생활의 궁핍은 이들의 신체적, 심리적, 정신적 약화를 초래하고 질병에 취약하여 인간이 건강하게 살 권리를 박탈하고 있다. 특히 아동기의 불량한 영양 상태는 평생의 영양 및 건강 상태에 영향을 미치고, 성인기에 올바른 건강상태를 유지할 수 없게 하며 출발부터 공정하지 않은 삶을 살게 만드는 원인이 된다. 또한 영양과다로 인해 발생되는 질병인 '비만'은 최근 3년 사이에 초등학생 비만 비율이 2배 정도 증가하였다고 보고되고 있다. 소아비만 아동들에게서 성인병 발병률이 증가하고 있는 추세일 뿐 아니라, 75~85%는 성인 비만으로 이행되는 경향이 나타나고 있다. 2005년 보건복지부 자료에 따르면, 비만으로 인한 사회·경제적 비용은 약 1조 8000억 원으로 추계되며, 또 이는 비만으로 인한 질병율 증가 및 평균수명 증가의 요인에 맞추어 급속히 증가할 전망이라고 밝히고 있다. 미국은 전 국민의 60%가 과체중이며, 2003년 비만관련 보건·의료비용이 750억 달러에 달해 비만을 심각한 사회문제로 받아들여 '비만의 정치학'이란 말까지 부상하고 있는 실정이며, IOTF(국제비만태스크포스)는 '아동 비만은 미래 흑사병'이라 하여 '전 세계적으로 5~18세 아동, 청소년의 비만 폭증으로 이들이 성인이 되면 비만으로 인한 질병이 각국의 보건의료체제가 떠안을 수 없을 만큼 터져 나올 것'이라 주장하였다. 한국도 예외적인 상황이 아니다. 식품산업의 발달로 과도한 가공식품과 패스트푸드 섭취 증가에 따른 유해식품논란에 직면해 있으며, 이러한 문제의 원인은 개인뿐 아니라 사회·경제적 원인도 함께 있으므로, 개인의 차원보다는 국가의 정책 차원에서 해결책이 제시되지 않는다면 한국 아동의 영양건강상태는 위기에 직면하게 될 것이다. Ⅱ. 아동 영양의 현재 최근 발표된 2001년 결과에 의하면 대부분 권장량은 만족시키나 칼슘과 철, 비타민 A는 부족한 것으로 나타났다. 평균 칼슘 섭취량은 권장량의 55~73% 정도이고, 평균 철분섭취는 68~80%로 상당히 부족한 형편이다. 권장량의 75% 미만을 섭취하는 대상자의 비율은 칼슘의 경우, 3~6세는 61.4%, 7~12세는 68.0%로 나타났고, 철분과 비타민 A, 리보플라빈, 나이아신 등의 영양소도 아동의 30% 이상이 권장량의 75% 미만을 섭취하는 것으로 나타나고 있다. 성장기에 부족하면 식욕감퇴와 성장지연을 초래하는 아연의 경우, 부산지역 학령 전 아동 1~3세는 76.5%, 4~6세는 50.9%로 권장량에 못 미치고 있다. 비타민 중에서는 비타민 A 부족이 가장 심각하여 충북 지역 초등학생의 경우 권장량의 75% 미만을 섭취하는 아동이 남학생은 46.2%, 여학생은 52.9%였으며 특히 도시지역(31.2%)에 비해 시골지역(63.1%) 아동의 비타민 A 섭취가 현저하게 낮다. 간식 섭취 비율을 조사한 연구에서는 아동들이 패스트푸드점, 동네의 식료품점, 자동판매기 등을 이용하여 무계획적으로 여러 가지 간식을 섭취하고 당질을 비롯한 열량위주의 식품이 그 주를 이룬다고 하였다. 서울과 경기도 지역 4~7세 아동이 좋아하는 식품으로는 우유, 유제품, 단 음식, 과일, 탄산음료, 가공식품 순으로 나타났으며, 이는 어머니의 식습관과 상호 연관성이 있다. 보육시설에서의 급식과 간식에 대한 연구에서는 인스턴트, 편의식의 사용이 높으며 일부 조사 결과 보육시설의 점심 및 간식의 영양소 공급량은 유아의 1일 권장량 1/3의 5%에도 미치지 못하며, 특히 칼슘, 철분, 비타민 A, 비타민 B1 및 나이아신의 공급량이 적은 것으로 나타났다. 1. 영양결핍 및 결식아동 가) 저소득층 아동의 영양문제 저소득층에서는 다른 소득계층에 비해 영양소 섭취 부족 비율이 높고 특히 칼슘과 리보플라빈의 섭취부족이 심각하다. 특히 저소득층의 3~6세 아동에서 에너지와 지방 에너지 구성 비율이 낮으며, 칼슘, 철 및 비타민 A의 섭취량이 유의하게 낮아 각각 평균 54.6%, 68.3%, 68.5%로 조사되었다(국민건강영양조사, 2001). 이외 저소득층의 취학 전 아동을 조사한 결과에 의하면 저성장을 보인 아동이 3.2%, 저체중을 보인 아동이 3.2%를 나타냈고, 중정도의 저 체중은 10.2%를 보였다. 대부분의 영양소의 평균 섭취량은 영양권장량의 80% 미만을 나타냈으며, 5세 아동의 철분섭취량이 영양권장량의 69~74%로 낮았다. 2006년 1월 보도된 '부실도시락'은 위생뿐만 아니라 영양밀도가 낮은 음식을 성장기 아동에게 공급해 사회적 파문이 되기도 했다. 현재, 방학 중 저소득층 아동급식사업에는 25만 명이 해당되고, 학기 중 석식(취학아동) 사업 또는 학기 중 중식, 석식(미취학 아동)으로 나뉘어 이루어지고 있으나 실시에 있어서 많은 문제점을 내포하고 있는 실정이다. 특히 영양 상태를 반영하는 체위를 살펴보았을 때, 성장부진을 보였을 뿐 아니라 만성적인 영양불량증세를 보였으며, 철분 결핍에 의한 빈혈 이환율이 매우 높다. 이러한 결과는 미취학 아동의 성장부진은 연령이 증가할수록 더욱더 표준에서 떨어지는 결과를 초래해 회복을 어렵게 한다는 사실을 시사하며, 결식아동과 같은 영양 취약계층에 대한 국가 또는 지방자치단체 차원의 영양 전문가에 의한 효과적인 영양지원프로그램이 없다는 사실을 여실히 드러낸 것이라 할 수 있다. 나) 아침 결식 문제 보건복지부가 발표한 2001년 국민건강영양조사 자료에 의하면 2일간의 끼니 별 결식비율은 아침 21.1%, 점심 4.3%, 저녁 3.3%로 아침 결식비율이 가장 높았고, 2001년의 초등학교 식습관조사를 보면 남아의 19.3%, 여아의 11.3%가 일주일에 1회 이하로 아침을 먹는 것으로 조사되었다. 저소득층의 아침 결식률이 40% 내외로 소득수준이 높은 군에 비해 10% 이상 높게 나타났으며, 다른 연구에서는 초등학교 아동의 아침 급식률이 14%에 달한다고 조사되었고 아침을 거르는 이유는 '시간이 없어서', '귀찮아서', '식욕이 없어서'로 나타났다. 아침식사의 영양학적 의의는 혈당을 일정하게 유지하여 두뇌나 신체조직에 열량을 공급하며, 하루의 음식섭취 배분에 균형을 가지기 위해서이며, 또한 아침식사는 하루에 필요한 여러 영양소를 섭취하게 하는데 도움을 준다. 또한 정상 체중 유지와 식욕조절 및 올바른 식습관 형성의 장점을 갖고 있다. 또한 규칙적인 아침식사와 학업성취도는 연관성 있다는 연구결과가 있었으며(김숙희, 대한 영양사회 학술지, 1999) 아침식사를 하지 않는 아동이 규칙적으로 식사를 하는 아동에 비해 충치에 걸릴 확률이 높아지는 것으로 조사되었다(Dye BA. J. Lmer, Dental Association, 2004). 미국에서는 현재 'School breakfast program'을 통해 아동들의 건강과 학습능률향상을 위해 영양적으로 균형 잡힌 식사를 제공함으로써 규칙적인 아침식사를 하도록 도와주고 있으며, 2002~2003년 평균을 보면 7만 6000 개교가 참여하여 그 중 79%가 무료 혹은 저렴한 가격으로 식사를 제공하고 있다. 또한 지방 섭취비율이 줄고, 과일 및 우유 소비 비율이 늘었으며, 학습 속도와 기억력 향상 등 학업 참여도·성취도 또한 높아진 것으로 나타났다. 2. 아동비만과 생활 습관병 우리나라 아동들의 체격은 커지고 있으나 체력과 체질은 저하되고 10대 성인병 환자가 늘고 있는데 이는 좋지 않은 식습관과 운동부족 때문이다. 실제로 우리나라 아동들의 경우, 비만발생률 급증의 원인은 식생활 습관과 연관이 있다고 보고되었으며, 특히 주말의 TV 시청 시간, 컴퓨터 사용시간이 많은 아동이 체질량지수(BMI), 피하지방 두께, 허리둘레 등이 모두 높게 측정되어 양의 상관관계를 나타내고 있다(윤군애, 대한지역사회 영양학회지, 2002). 또한 맞벌이 부부의 증가, 생활패턴의 서구화 등을 통해 패스트푸드, 가공식품, 음료의 섭취비율이 증가했으며, 이로 인해 비만의 주된 위험요인인 동물성 지방 및 단순 당 섭취가 지속적으로 증가하고 있는 것도 아동 비만이 늘어나고 있는 원인이다. 아동 비만인 경우 성인과 달리 지방세포의 크기가 커지는 것은 물론, 세포 수 또한 증가하기 때문에 성인이 되어 체중감량을 하여도 존재하고 있는 지방세포로 인해 요요현상이 오기 쉽다. 따라서 비만 아동들 대부분이 성인 비만으로 이행(75%~85%)되는 경향이 있다. 비만아동 중, 만성질환 유발률이 고지혈증 81%, 간기능 이상 25.5%, 요산과다혈증 24.1%이었고(안홍석, 한국영양학회지, 1994), 당뇨병, 지방간, 고혈압, 우울증 등의 발병률 또한 증가한다는 연구결과가 있다(신은미 외 1999). 적정한 영양관리와 운동 등 생활습관 교정이 없다면 향후 당뇨병 등의 생활 습관병의 유병률이 급격히 증가해 고령화 사회에서 크나큰 건강 문제가 될 것임이 예상 가능하다. 뿐만 아니라, 사회경제적 취약계층의 비만 유병률이 2배로 개인이 전적으로 치료비용을 부담하는 상황에서는 유병률 조절이 효과적이지 않다는 연구결과(강재헌·김남순, 2002)가 있어 국가 차원에서 이들 질환 유병율 조절을 위한 적극적인 영양 정책 시행이 시급히 요구된다. 3. 패스트푸드의 과잉섭취문제 국내 패스트푸드점의 수는 급격히 증가하고 있으며, 이는 패스트푸드에 대한 접근성 및 고지방식에 대한 노출이 증가했다는 결과이다. 패스트푸드는 편하고, 같은 체인점에서는 음식의 맛, 질, 양에 대한 예측이 가능하다는 면에서 현대생활에서 각광받고 있으나, 영양학적으로는 열량, 지방, 콜레스테롤 그리고 나트륨의 함량이 높아 비만, 고혈압 및 만성질병의 위험을 높일 수 있다. 실제, 한 패스트푸드점에서는 세트메뉴의 총 열량을 공개하여, 된장찌개 등 한식이 갖는 총열량과 별 차이 없다고 소비자들에게 광고하고 있는 사례가 있으나, 그 속에는 패스트푸드와 한식의 영양학적 차별성이 설명되지 않는다. 한식이 갖는 한 끼 식사의 지방함량은 20% 내외이지만, 패스트푸드는 40%에 가까운 지방 함량을 갖고 있으며, 지방은 같은 열량의 탄수화물, 단백질에 비해 '식품 이용을 위한 에너지 소비량(Thermic Effect of Food)'이 낮다. 또한 감자튀김에 사용되는 트랜스지방에 대한 경각심이 날로 높아지고 있어 미국식품의약국에서는 2006년부터 트랜스지방이 든 모든 식품은 라벨에 의무적으로 함량을 표시해야 한다고 공고했고, 이는 트랜스지방이 인체에 해악을 미칠 수 있다는 점을 공식적으로 인정한 것이다. 그리고 감자튀김을 제조할 때 무색투명한 화학물질인 '아크릴 아마이드'가 검출된다는 결과도 보고되고 있어(스웨덴, 마가렛타, 2006) 이러한 위해요소들에 대한 높은 경각심 및 대책이 요구되고 있다. 최근에 맥도날드, 코카콜라, 버거킹 및 켄터키 후라이드 치킨 같은 대표적인 다국적 기업들은 이미 서구 사회에서 정크 푸드(junk food : 쓰레기 음식, 반 건강 음식) 및 엠티 푸드(empty food : 열량만 높고 다른 비타민과 무기질 같은 영양소가 적은 음식)로 알려져서 문제가 되고 있는 음식임에도 불구하고 다른 제3세계를 공략하고 있는 실정이다. 이러한 다국적 식품기업들은 서구화된 세련된 이미지로서 다른 나라의 식탁을 잠식하는데 이러한 식품들은 쉽게 열량과잉의 문제를 유발하고 있으며, 현재 우리나라 사람들이 겪고 있는 열량과잉으로 초래되는 건강문제들, 즉 비만 인구의 증가 및 성인병 발생률 증가현상들은 이러한 식생활변화현상과 관계가 깊다. 1998년, 2001년 국민건강영양조사의 보고에 따르면, 햄버거, 샌드위치, 빵, 피자의 섭취 연령대는 10~20대에서 높게 나타났으며, 섭취빈도는 주당 1회 이상 섭취하는 경우가 36.2%, 1년에 7회 이하 섭취하는 경우는 17.7%이다. 피자는 주 1회 이상 섭취 비율 17.8%로 햄버거보다는 섭취 빈도가 낮게 측정되었다. 햄버거의 지방 함량은 삼겹살(25%)보다 훨씬 많은 40%나 되며 감자튀김과 콜라까지 곁들이는 햄버거세트는 한식 세 끼의 열량과 맞먹는다. 따라서 패스트푸드 판매량과 아동 비만은 양의 상관관계를 갖게 되는 것이 당연한 일이라고 할 수 있으며, 패스트푸드 종주국인 미국에서는 60, 70년대에 비해 아동 비만율이 두 배나 증가해 현재 아동 4명 중 1명이 비만으로 나타났고, 우리나라도 역시 10년 사이 세 배가량 증가하는 양상을 보였을 뿐 아니라, 비만아의 30% 이상이 고혈압, 지방간, 동맥경화, 당뇨, 심근경색 등 소아성인병 증상을 보이고 있다. 올바른 식습관형성은 부모 및 교사의 노력뿐 아니라, 정책적으로도 이루어져야 한다. 패스트푸드로부터 아동을 보호하는 것, 이를 실천하기 위한 범사회적인 노력과 영양교육 및 우리나라의 전통적인 식사 형태의 영양·건강적인 측면의 우수성을 더 많이 알리고 교육하는 것 또한 중요하다. 4. 가공식품의 범람 가공식품 이용률은 점차 증가하고 있고, 앞으로도 지속될 전망이다. 도시가계연보에 의하면 우리 국민의 가공 식품 소비율은 1970년에 식료품비 중 18.4%였으나 1993년에는 36.0%에 이른다. 최근 가공식품의 매출액 추이를 보면 1997년 약 16조 원이었으나, 2003년에는 약 23조 원으로 6년 사이 약 43%가 증가하였다(자료 : 한국식품공업협회 식품산업 생산실적 추이). 한국소비자보호원에서 실시한 섭취 빈도수 조사결과 44.0%의 청소년이 라면이나 햄버거 등 인스턴트식품을 5명 중 2명은 주 3회 이상 먹는 것으로 나타났으며, 그 중 50.4%가 '맛있어서' 자주 섭취한다고 한다. 10대 청소년의 가공식품 섭취량 1주일 기준으로 햄, 소시지 등 식육 가공품류의 경우, 평균 4.56조각, 라면류 2.21개, 스낵과자류 3.25개, 사탕·초콜릿류 3.62개 등으로 나타났다. 섭취비율이 높은 가공식품은 간식 류 및 식사대용이 대부분이며, 이는 익숙한 맛에 길들여진 중독성의 결과이다. 이 밖에 가공식품은 성장기 아동에게 영양적인 불균형과 편식 습관을 길러 줄 수 있으며, 정제된 설탕 첨가, 단순 당, 에너지 섭취의 증가뿐만 아니라 몸에 유해한 MSG와 기타 첨가물 등의 문제점을 갖고 있다.[PAGE BREAK]Ⅲ. 정책 제언 현시대의 아동들은 영양 불균형, 영양 과다, 결식 등 올바르지 못한 식생활로 인해 건강에 위협을 받고 있을 뿐 아니라, 외식의 증가로 야기되는 패스트푸드, 가공식품 섭취로 인해 여러 유해물질에 노출되어 있는 실정이다. 과거에 비해 건강에 관련된 TV 방송 프로그램 및 뉴스, 신문의 보도 증가로 인해 건강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있는 실정이나, 너무 남용되어 잘못된 정보를 마치 올바른 정보인 양 알고 있는 경우 또한 허다하다. 서구에서는 비만은 더 이상 '부자의 질병'이 아니라 '가난한 사람들의 질병'이 되고 있다고 보고되고 있는데, 저소득층의 경우 에너지 밀도만 높고 다른 영양소의 밀도는 낮은 정크 푸드만 구매할 수 있고, 채소와 과일을 구매할 능력이 없기 때문이라고 분석하고 있다. 현재 일부 보건소에서 영양 교육 사업이 진행되고 있고, 급식학교에 영양교사를 배치하여 적극적인 영양교육을 실시해야한다는 법령이 마련되어 있으나 실시까지에는 많은 지원이 따라야 할 것이다. 우리나라 보육시설은 10% 미만이 영양사를 채용하고 있고, 보육교사 및 급식관련업자들의 영양에 관한 지식은 매우 미흡한 실정이다(박은숙, 대한지역사회 영양학회지, 2004). 영양취약계층에 대한 국가 또는 지방자치단체 차원의 복지지원 서비스에 영양 전문가가 반드시 배치되어야 하며, 저소득층을 위한 식품 지원은 현금이 아닌 영양가 있는 식품을 직접 공급 또는 구매할 수 있는 프로그램이 필요하다. 또한 저소득층 아동을 위한 급식과 아침 급식 및 올바른 영양상담 및 교육 기능이 정책적으로 강화되어야 한다. 뿐만 아니라, 우리 전통 음식의 우수성을 알릴 수 있는 교육자료 및 영상물(아동 대상 만화, 비디오 등)을 제작하여 학교, 보건소, 가정에 널리 보급해야 하고, 아동 TV 시청시간의 광고 제한, 학교 내 주변 불량식품 및 간식거리 판매 규제 등을 통해 올바른 식생활이 될 수 있도록 유도해야 할 것이다. 이와 함께 이러한 정책들은 국가, 사회, 개인별로 각각 시도되어서는 안 되며, 유기적인 관계를 통해 이루어져야 할 것이다. 1. 한국형 식생활패턴 유지정책 식습관은 아동기에 형성되어 평생 계속되는 특성을 가지므로 무엇보다 아동기에 한국형 식생활의 우수성을 알리고 교육하는 정책이 이루어져야 한다. 이미 한국 전통 식품의 대표인 '김치'는 세계 5개 건강식품으로 분류되었다. 한국형 전통음식은 동물성 대신 식물성 지방을 사용하거나, 지방이 들어가지 않는 조리법을 사용하며, 조미료 사용이 적을 뿐 아니라, 탄수화물, 단백질 외 섬유질, 비타민 등의 영양소를 골고루 섭취할 수 있는 우수한 식단이라 할 수 있다. 또한 한국의 전통음식은 '슬로우 푸드' 의 대표적인 발효 음식으로 이루어지며, 전 세계적인 건강식사인 지중해식에 버금가는 식생활패턴을 가지고 있다. 따라서 학교 급식에서 활용할 수 있는 한국형 식단을 개발하여 보급해야 할 것이며 지방, 나트륨, 당분 함량이 적은 대체 식단을 제공할 수 있도록 해야 하고, 채소, 과일 등 섬유소 급원식품을 친환경 농산물 재배 업체와 연계하여 학교 급식에 활용해야 한다. 2. 영양중재 프로그램 및 교육 가) 영양중재 프로그램의 필요성 2004년 학교급식에 대한 문제가 제기되면서 '학교급식 종합대책안'에서는 영양관리 및 식생활 지도 방안에 비만 학생 식생활 개선 프로그램 운영을 계획하고 있으며, 학교교육을 통한 비만상담, 식사지도 등의 비만관리 프로그램이 시범운영 중에 있다. 그러나 예산부족, 학교보건의 정책 부재, 학교장의 인식부족 등 행정적 뒷받침이 부족한 실정이며, 부모의 역할도 중요한 것으로 나타났다(건강증진사업안내 부록 비만편, 2006). 따라서 가정의 부모와 학교의 교사, 영양사 및 아동이 함께 참여하여 체계적으로 교육할 수 있는 프로그램 개발이 시급하며, 학교의 행정관계 인사 혹은 담임교사, 부모 등 아동과 근접해 있는 어른들이 올바른 영양 지식을 갖도록 지도하는 것 또한 필요하다. 나) 건강급식프로그램 개발 저소득층의 결식아동을 위한 영양밀도 높은 건강 식단(저지방, 저염, 고단백 등) 개발 및 전국적으로 표준화된 영양교육프로그램 보급을 활성화해야 한다. 또한 아침 결식아동을 위한 아침 학교 급식을 실시하고, 우유 및 유제품, 채소, 과일 등을 포함하는 건강한 간식을 보급해야 한다. 다) 수행평가 및 홍보를 통한 교육 학교급식 시설에 영양교사를 전면 배치하고 영양교사를 통해 급식소 및 학급 내 게시판을 활용하여 영양정보를 교육하고 수행평가, 특별활동에 식생활문화반 개설을 통한 영양교육을 실시해야 한다. 또한 보건소 및 식품판매 매장에 가공식품, 영양과 건강 등에 관련된 소책자를 비치하고 애니메이션, TV 광고, TV 프로그램, 드라마 등을 이용한 간접 영양교육도 필요하다. 3. TV속 광고 규제 TV 속의 패스트푸드 및 가공식품에 관련된 광고는 아동, 청소년 프로그램 전·후로 방송되며, 다양한 연출을 통해 소비자를 매혹시키는 경향이 있어 올바른 먹거리에 대한 개념이 성립되어 있지 않은 아동은 영양적인 가치를 따지기보다 패스트푸드 광고의 화려함에 이끌리게 될 수 있다. 따라서 패스트푸드 및 가공식품의 광고가 아동 TV 시청시간에 자제 될 수 있도록 제한하는 법적 제도가 필요하다. 4. 탄산음료 자판기 판매 금지 탄산음료의 소비계층은 아동 및 청소년이며, 학교의 매점 및 자판기에서 상당량이 판매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따라서 학교 자판기의 탄산음료의 종류를 줄이거나, 음료의 종류를 바꾸는 등의 일이 수행되어야 한다. 또한 이러한 것들은 소비자단체, 정부의 법 규정을 통해 이루어져야 한다. 현재 학교에서의 콜라, 사이다 판매에 대한 제한이 제도화 과정을 밟고 있어 다행이라고 할 수 있다. 5. 유해 식품표시제 실시 100g당 영양소 함유량, 식품 자체가 갖는 영양소 함유량을 권장량 대비로 작성하여 표기해야 한다. 고지방, 나트륨, 당분의 함량 및 식품 첨가물 명칭과 함께 주 용도, 사용량, 모두 표시하도록 하는 식품표시제정책을 도입하고 식품에 대해 유해할 수 있다는 표시를 명시해야 한다. 6. 영양전문인 배치 확대 유치원 및 영·유아보육시설의 영양관리를 위해 100인 이상의 시설에 영양사가 조속히 배치되도록 예산상의 지원을 비롯한 국가의 관리·지원이 필요하며, 영양사 배치를 통해 영·유아의 영양필요량을 고려한 식단 작성, 안전한 음식제공을 위한 급식위생관리, 건전한 식습관과 편식 교정 등을 위한 영양교육 등이 시행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또한 보건소에 영양사를 전면 배치하여 취약계층의 아동 및 지역 내 아동의 영양개선 사업을 수행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7. 국민 영양관리 기본법 마련 2004년 보건복지부 개편에 따라 건강정책과 내에 운동·영양계가 신설되었으나 영양관련 담당자로 사무관 1인만 배치되어 있는 실정으로 국민 영양에 관한 종합계획의 수립 및 조정, 국민 영양 및 건강조사, 영양사의 수급계획 및 관련 단체의 지원·육성, 국민 영양개선 지도 및 국민 영양교육 업무를 수행하기에는 조직 및 인력이 부족한 실정이다. 따라서 영양전담과의 설립에 앞서 우선적으로 영양 담당 인력의 보강이 이루어져야 하며, 국가 영양정책의 원활한 수행을 보장하여 국민에게 적절한 영양서비스를 제공할 수 있도록 국민영양기본법이 마련되어야 한다.
윤종혁 | 한국교육개발원 연구위원 일본 정부는 지난 6월 1일부터 6월 30일까지 1개월 동안을 ‘학생 영양관리 및 식생활 습관 개선 교육 월간’(일본식 표현으로는 ‘식육월간(食育月間)’)으로 정했다. 이는 지난 2005년 6월에 성립한 ‘식육기본법’에 근거하여, 2006년 3월 31일 선포한 ‘식육추진기본계획’을 통해 식생활 개선 영양관리정책을 본격적으로 추진하는 것이다. 이 기간 동안 내각부, 문부과학성, 후생노동성, 농림수산성 등의 관계 부처와 지방공공단체 및 관계 기관 등이 협력하여 전국적인 식생활 개선운동을 전개하였다. 금년도 식생활 개선 운동의 실천행사는 ‘매일 아침밥을 먹자’는 주제를 중심으로 학생들의 영양 관리 교육에 집중하고 있다. 이미 일본의 문부과학성은 2001년 4월 11일 아동·학생들에 대한 바람직한 식생활 습관 개선 교육이 필요하다는 것을 골자로 하는 새로운 영양관리 교육 및 종합 건강 대책 등을 제안하였다. 이에 따라 2002년 9월 30일 중앙교육심의회는 ‘아동의 체력 향상을 위한 종합 대책’ 보고서를 통해 식생활을 포함하여 바람직한 생활습관을 확립하는 것을 강조하였다. 특히 이 보고서는 바람직한 식생활 관리는 가정, 학교, 지역사회가 상호 연계·제휴하여 개선하는 구체적인 대책에서 비롯한다는 점에 주목하였다. 보고서는 또한 최근 사회 환경 등이 변함에 따라 식생활과 관련된 건강 문제, 즉 아동·학생에 대한 바람직한 식생활 습관과 균형 있는 영양 섭취 등을 학교에서 강조하는 교육 지도가 절실하다고 보았다. 이런 측면에서 문부과학성은 ‘영양교사 제도(가칭)’를 신설하는 등 학교급식과 관련된 새로운 정책을 추진하였다. 이와 같이 학교에서 식생활 습관 개선 지도를 포함한 학교급식 체제를 전면적으로 관리·교육하는 영양교사를 설치한 배경은 식생활 및 국민체력 관련 여러 가지 유형의 조사 결과에 근거하고 있다. 최근 일본의 아동·학생은 영양 과잉섭취 등으로 인해 비만·과체중화 현상이 증대하고 있으며, 이에 따라 아동성인병 등을 포함하여 미래 국민건강을 위협하는 식생활 관리가 절실하다고 조사되었다. 예를 들면, 1997년 및 2001년의 국민영양조사 결과 20대 청년의 평균 25% 정도가 아침 식사를 거르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들 중에서 약 66% 정도가 이미 고교 이전까지의 학창 시절부터 아침식사를 지속적으로 거르는 습관을 가진 것으로 조사되었다. 또한 학교보건통계조사에 따르면, 소학교 6학년 학생의 경우 평균체중의 120% 이상에 이른 비만 아동이 1977년 6.7%였던 것이 2002년에는 11.7%까지 거의 2배 가까이 증가하였다. 일본 정부는 국가 차원에서 이와 같이 심각한 아동 체력 저하 현상에 대해 특단의 대책을 내놓게 되었다. 우선 가정·학교·지역사회가 상호 연계하는 새로운 식습관 개선 정책이 필요하다고 보았다. 특히 학교교육을 주관하고 있는 문부과학성으로서는 학교 현장에서 학생들의 식생활 습관을 개선하기 위한 새로운 정책을 모색하게 되었다. 그것은 바로 학교급식을 포함하여 학생의 식생활 습관 및 영양관리에 주력하는 교육활동을 적극 추진하는 것, 그리고 이와 같은 교육활동을 적극적으로 연계·추진할 주력 활동가로서 학교영양직원을 대체한 영양교사 제도를 도입하는 것이었다. 일본 문부과학성이 집중 육성하고 있는 영양교사 제도는 학교급식을 정점으로 하는 학생 식생활 습관 개선에서 핵심적인 역할을 하고 있다. 2005년부터 학교영양직원을 대신하여 새롭게 운영하고 있는 영양교사는 교육 자질은 물론 영양 관리에 대한 전문성을 가진 직원으로서, 학교급식을 ‘생생한 체험활동’ 교재로 활용하여 효과적인 교육을 하고 있다. 그러므로 영양교사는 주로 식생활 습관 개선을 위한 지도와 학교급식의 관리 등 두 가지 교육 활동을 중요한 직무로 담당하고 있다. 영양교사가 주로 하고 있는 식생활 습관 개선을 위한 지도 활동은 주로 다음과 같다. 첫째, 아동·학생의 식생활을 관찰하여 생활 습관병을 예방하고, 음식물 알레르기 등에 대해 적극적으로 대응하는 개별적인 상담·지도를 하고 있다. 둘째, 식생활 습관 개선 지도를 하기 위해 급식 시간이나 학급활동, 교과교육 등 학교교육 전체를 통해 전문성 있는 영양관리 교육을 하고 있다. 셋째, 학교 내외에서 식생활 습관 개선을 위해 교직원이나 학부모, 지역사회 등과 연계·제휴하는 방식으로 전문성 있는 중간 매개자 및 조정자 역할을 담당하고 있다. 또한 영양교사는 학교급식에 대한 영양 관리와 위생 관리, 음식 검역, 물자 관리 등을 담당하고 있다. 구체적인 영양교사의 직무 내용은 다음과 같다. 첫째, 학교급식에 관한 기본계획을 결정하는데 참가·기획한다. 둘째, 학교급식의 영양분량과 식품구성을 배려하는 식단을 작성한다. 셋째, 학교급식의 조리, 배식과 시설·설비의 사용방법 등에 대한 지도·조언을 한다. 넷째, 조리종사원 및 시설설비, 식품 등에 대한 위생 관리와 학교급식 안전관리를 위한 검역활동을 한다. 다섯째, 학교급식용 물자를 선정, 구입하고 보관하는 활동에 참가·기획한다. 이와 같이 영양교사는 학교급식을 식생활 개선 및 영양관리교육을 위한 중요한 교재로서 활용하는 것을 가장 큰 과제로 하고 있다. 결국 문부과학성은 학교급식 및 식생활 습관 개선 교육을 담당할 교육 주체로서 영양교사 제도를 신설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사실 그 동안 영양교사 제도를 신설하는 것과 관련하여 일본 정부 내에서도 많은 논란이 있었다. 그런데 학교급식과 관련하여 새로운 전환점을 마련한 것이 바로 1996년에 발생한 장출혈성 대장균 O-157로 인한 식중독 사태였다. 이후 일본정부는 학교급식의 위생관리에 대해 적극적인 대책을 마련하게 되었으며, 학생·학부모 등을 포함한 국민적인 여론을 수렴하여 영양교사제를 적극적으로 검토·마련하였다. 앞으로 일본의 학교급식을 포함한 식생활 개선 정책은 다음과 같은 두 가지 개선 과제라고 할 수 있다. 첫째, 현재 시행하고 있는 영양교사의 수급 및 질 관리 대책이라고 할 수 있다. 그간 학교급식관리를 해 왔던 학교영양직원 등에 대해 적절한 수준의 교원 연수 및 재교육 등을 통해 영양교사 등으로 전직시키는 프로그램을 추진하고 있다. 동시에 대학 및 대학원, 그리고 기존의 2년제 단기대학 및 전문학교 등의 영양교사 양성과정을 통일하고, 고도의 전문성을 지닌 교사 양성과정으로 변화·개선하기 위한 교육정책을 수립·추진하고 있다. 둘째, 학교급식의 영양 관리와 관련된 실질적인 ‘식생활 개선 정책’을 강력하게 추진하고 있다. 일본의 지역사회와 학교를 연계하는 방식으로 향토 음식과 지역토착식품을 학교급식으로 적극 활용하는 방안을 자체적으로 모색하고 있다. WTO 조약 등으로 인해 다소 어려운 상황이기는 하지만, 문부과학성은 학교 급식에서 향토 식품을 적극 활용하는 비율을 2004년 현재 21%에서 2010년까지 30% 이상까지 올릴 것을 목표로 하고 있다. 현재 일본의 학교급식 제도는 새로 신설된 영양교사가 핵심 조정자 역할을 하면서 아동·학생의 올바른 식생활 개선을 목표로 하는 차원에서 이루어지고 있다. 즉, 학교급식을 통한 교육이 미래 일본 국민의 건강관리를 위해 가장 효율적인 방안이 될 수 있다는 판단을 하고 있는 것이다. 이는 우리의 경우에도 많은 부분을 참조할 수 있는 내용이라고 할 수 있다. 특히 학교급식의 운영 주체로서 영양교사를 정점으로 하는 학교 당국이 직접 관리하는 교육 시스템은 상당히 중요한 대목으로 주목해야 할 것이다.
김정호 | 서울 양화초 교사 경쟁률 최고, ‘공무원시험’ 지난 6월초 중국에서는 우리의 대학 수능시험에 해당하는 ‘까오카오[高考]’가 실시되어 전국의 고 3 수험생들이 이 한 번의 시험결과에 따라 인생의 진로가 바뀌게 되었다. 우리나라와 마찬가지로 중국에서도 까오카오는 인생에 있어 가장 중요한 시험으로 통한다. 이 시험을 통해 자신의 진로가 결정되기 때문이다. 현재 중국에는 대학입시인 까오카오 이외에도 경쟁률과 사회적 관심이 높은 시험들이 존재하는 데 이를 ‘5大 시험(五大考試)’라 부른다. 중국에서 경쟁률이 제일 높은 시험은 ‘공무원 시험’이다. 매년 11월에 치러지는 공무원시험은 만 18세 이상 35세 이하의 중국인들이 응시할 수 있는데, 최근 들어 대학입시와 대학원 시험을 뛰어넘는 중국 제일의 시험으로 자리 잡았다. 작년에 실시된 공무원 시험의 경우 전국적으로 36만 5000명 가량이 시험에 참가하였는데 이는 2004년에 비해 47%나 증가한 것이다. 직위별 평균 경쟁률은 35:1이었지만 인기 직종에는 경쟁률이 200:1 정도였고, 일부 직종에서는 2187:1의 경쟁률을 기록하기도 하였다. 이처럼 공무원 시험에 중국인들의 관심이 높은 것은 공무원에 대한 사회적인 대우가 좋고 신분이 보장되기 때문으로 최근에는 수입이 많은 일반 사기업에 다니다가 공무원 시험에 응시하는 경우도 점차 늘어가고 있다. 인생의 진로 결정되는 ‘대입시험’ 다음으로 중국 교육의 지표로 삼는 대입시험 까오카오가 있다. 이 시험은 고 3 수험생 및 재수생들을 대상으로 매년 6월 초에 치르는 시험으로 한여름의 더위와 더불어 중국 대륙을 열기 속으로 몰아넣는 시험이다. 중국의 대입시험은 전국적으로 동일한 날 실시되지만 시험 결과가 같다고 해서 같은 대학에 지원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이는 수험생이 속한 지역별로 나름의 기준을 정하여 대학에 지원할 수 있는 점수대를 정하고 있기 때문인데, 까오카오에서 동일한 점수를 받더라도 자신이 속한 지역이 어디냐에 따라 대학에 지원할 수 있는 기준을 다르게 적용받게 된다. 이는 중국정부가 낙후된 지역 및 소수민족을 배려하려는 차원 때문이다. 작년의 경우 800여만 명이 이 시험에 응시하였는데 현재 중국에서는 획일적으로 치러지는 대입시험의 문제점에 대한 지적들도 늘어가고 있다. 그 주요 내용으로는 현행 까오카오가 소질을 갖춘 학생들을 제대로 선발할 수 있는 제도인가 하는 것과 과연 이러한 방법으로 선발한 대학생들이 사회에 필요한 소질을 갖춘 인재로 양성될 수 있겠는가 하는 것이다. 또한 최근 중국 대입시험에 있어서의 평등권 문제가 새롭게 부각되고 있는데, 중요한 것으로는 ‘전국생(全國生)’을 포함한 까오카오이민[高考移民]과 재수생 문제가 있다. 중국에서는 최근 들어 좋은 대학 진학을 위한 재수생들이 늘어나게 됨에 따라 이들과 관련된 문제가 점차 사회적인 관심을 받고 있다. 고등학교 4학년(高四)이라 불리는 이들 재수생과 관련한 사회적인 문제로는 재수 비용 및 그들의 재도전의 성공 여부로 많은 수의 재수생들은 엄청난 경비를 들이고도 원하는 대학에 입학하지 못하게 됨으로써 가정에서 떠안게 되는 빚이 중국 교육에 있어서의 새로운 문제로 떠오르고 있다. 취업난으로 인기 얻는 ‘대학원시험’ 세 번째로 대학졸업자들의 가장 큰 관심사인 대학원 시험 ‘카오얜[考硏]’이 있다. 중국에서는 최근 몇 년 사이에 대학원에 진학하는 숫자가 크게 늘어났다. 각 대학에서는 지난 몇 년간 매년 10% 정도씩 입학정원을 늘렸음에도 불구하고 중국에서 대학원 시험은 여전히 경쟁률이 높은 시험의 하나가 되고 있다. 올 상반기에 마무리된 2006년도 석사생 시험의 경우 전국적으로 127만 5000명이 참가하여 작년에 비해 9% 정도 늘어난 것으로 집계되었다. 이렇듯 대학원 입학의 수요가 늘어나는 것은 대학을 졸업하고도 마음에 드는 일자리를 구할 수 없는 중국의 취업문제 때문이다. 대다수의 학생은 이에 대한 해결책을 대학원 진학을 통하여 찾고자 하나 그 역시 최근 몇 년간 크게 늘어난 대학원 입학정원으로 인하여 대학원을 졸업하고도 좋은 직장을 찾기는 힘든 상황이 계속 반복되고 있다. 대학 졸업의 필수 ‘영어시험’ 네 번째로 중요한 시험의 하나는 영어와 관련된 시험이다. 중국의 대학생들이 대학 졸업자격을 얻기 위해서는 국가에서 시행하는 영어시험을 통과하여야 한다. 이 영어시험은 ‘영어 4급’, ‘영어 6급’ 시험으로 이 시험에 통과하지 못하면 대학 졸업을 제때에 할 수 없다. 작년 초까지만 해도 ‘영어 4급’, ‘영어 6급’ 시험은 합격·불합격으로 구분되어 시험에 통과하는 것에 큰 의미가 있었으나, 2005년 6월부터 ‘영어 4급’, ‘영어 6급’ 시험을 합격·불합격의 합격증서 수여가 아닌 290에서 710점까지의 분포를 가진 영어성적 증명서가 발급되도록 제도가 바뀌었다. 또한 이번 개정된 영어시험에서는 대학 재학생 이상을 대상으로 영어 4급에서 일정한 점수를 획득해야만 다음 단계인 영어 6급 시험에 응시할 수 있도록 하였으며, 각 대학에서는 학생들이 취득한 점수를 대상으로 대학의 실정에 맞는 기준을 정하여 학생들의 졸업을 위한 기준으로 삼을 수 있도록 하였다. 부정으로 얼룩진 ‘성인대학시험’ 마지막으로 중국에서 중요한 시험의 하나로는 말도 많고 탈도 많은 ‘성인까오카오[成人高考]’가 있다. 이 제도는 직장인들을 대상으로 대학교육을 받을 수 있도록 하는 대학입학시험제도로 학위취득을 목적으로 하는 일반인들이 많이 응시하는 시험이다. 이 시험은 보통 고등학교 졸업자들이 전문대학이나 4년제 대학의 성인교육과정에 입학할 수 있도록 하는 것과 전문대학 졸업자들이 4년제 대학 졸업장이 수여되는 성인교육과정에 입학할 수 있는 2가지 유형으로 나뉜다. 매년 10월 중순에 치러지는 이 시험이 중국 사회의 주목을 받는 이유는 응시자가 많다는 이유도 있겠지만 그 시험과정에서 나타나는 대대적인 시험부정행위 때문이다. 작년에도 대다수의 성인까오카오에서 대리시험, 휴대폰을 이용한 부정행위 등의 문제가 중국 도처에서 발생하여 이 시험의 관리를 위한 중국 정부의 강력한 조치가 요구되기도 하였다. 이처럼 성인까오카오에서 많은 입시 부정이 일어나는 이유는 학력에 따른 사회적인 편견에 시달리던 일반인들이 이 시험을 통과할 경우 자신의 학력을 고등학교 졸업에서 전문대학, 또는 대학 졸업으로 높일 기회를 제공받기 때문에 많은 중국인이 이 시험에 응시하고, 그에 따른 부작용도 많이 나타나고 있는 것이다. 이처럼 현재 중국에서는 ‘공무원 시험’, ‘대학 입학시험’, ‘대학원 입학시험’, ‘영어시험’, ‘성인 대학시험’ 등이 경쟁률이 높고, 사회적인 관심을 받는 시험으로 자리 잡고 있다. 이들 시험의 열기는 최근 증가하고 있는 취업난과 중국의 학력을 중시하는 사회로의 재편과 더불어 앞으로 더욱 심해질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신동호 | 코리아 뉴스와이어 편집장 우리는 사람만이 도구를 만들어 쓸 줄 안다고 생각한다. 이런 생각이 우리의 머릿속에 뿌리 깊게 박혀 있다. 평범한 사람은 물론이요 인간을 연구하는 인류학자들조차 도구 사용을 인간의 독특한 특징으로 생각한다. 인류학자들의 이런 고정관념은 동아프리카 탄자니아에서 발견된 180만 년 전의 석기 사용자 집단인 '호모 하빌리스'에게 최초로 호모라는 말을 붙여준 데서도 알 수 있다. 하빌리스란 '손을 잘 쓰는 사람'(handy man)이란 뜻이다. 인류 진화의 계보는 오스트랄로피테쿠스-호모 하빌리스-호모 에렉투스-호모 사피엔스로 이어져 내려왔다. 오스트랄로피테쿠스는 유인원이고 호모 하빌리스부터가 인간(Homo)속에 속한다. 이처럼 도구의 사용은 인간을 동물과 구분 짓는 결정적인 차이점이라고 우리는 흔히 생각한다. 철사로 낚시 바늘 만드는 까마귀 하지만 까마귀가 도구를 가공할 줄 안다면 생각이 달라질 것이다. 실제로 저명한 과학 잡지인 '사이언스' 2002년 8월호에는 까마귀의 누명을 벗겨 준 논문이 발표됐다. 옥스퍼드 대학 동물행동학자들이 태평양의 뉴칼레도니아 섬에서 잡은 까마귀 '베티'에게 먹이가 들어 있는 좁은 통과 긴 철사를 주었다. 그랬더니 까마귀는 철사를 갈고리처럼 구부려 통 속의 먹이를 낚아 올렸다. 혹시 우연이 아닐까 해서 실험을 열 번이나 반복했지만 베티는 아홉 번이나 철사를 구부려 먹이를 낚았다. 야생의 까마귀는 돌이나 나무 틈 사이의 먹이를 사냥하는 데 나뭇가지를 쓴다. 그런데 나뭇가지를 빼앗은 뒤 철사를 주자 철사를 가공해 나뭇가지 대신 사냥 도구로 쓴 것이다. 우리는 무언가를 잘 까먹는 사람에게 "까마귀 고기를 삶아 먹었냐"고 비꼴 때가 많다. 그동안 까마귀는 건망증 심한 새란 누명을 쓰고 있었다. 그러나 이제 누명을 벗게 된 것이다. 새 박사로 유명한 경희대 윤무부 교수가 늘 하는 말이 있다. "새를 새대가리라 부르지 말라"는 것이다. 구수한 말로 강연을 하면서 새에 대해 강연할 때 이 말을 절대 빼놓지 않는다. 새가 비록 머리는 작지만 바보 같은 동물이 절대 아니라는 것이다. 도구의 사용은 동물에게서도 드물기는 하지만 꽤 많이 나타나며 인간만이 가진 능력은 결코 아니다. 굶주린 이집트 대머리수리는 부리로 돌을 집어던져 두꺼운 타조 알을 깨 먹는다. 갈라파고스 섬의 딱따구리 핀치 새는 선인장 가시를 입에 물고 나뭇가지 속에 있는 벌레를 빼먹는다. 핀치 새는 가시가 너무 길면 잘라서 쓰는 것은 물론이고 사냥 때마다 가시를 재사용한다. 검은댕기해오라기는 물에 작은 물체를 던져 이것이 먹이인 줄 알고 몰려온 물고기를 덮친다. 미끼낚시를 하는 셈이다. 북태평양에 사는 해달은 바다 밑바닥에 붙어사는 전복을 돌로 깨서 잡아먹는다. 앞발 사이에 돌을 끼고 잠수를 해서 전복이 부서질 때까지 돌로 내려친다. 또한 물가로 올라와서는 자신의 몸 위에 돌을 올려놓고 돌에 대고 조개를 내리쳐 깨먹는다. 동물원의 침팬지들은 긴 나뭇가지를 울타리에 걸치고 집단 탈출을 감행하곤 해 인간을 골탕 먹인다. 또한 침팬지는 가는 나뭇가지를 개미집 구멍에 집어넣어 여기에 붙어 나오는 개미를 핥아먹고, 나뭇가지로 땅을 파서 뿌리를 캐먹고, 나뭇가지를 지렛대로 이용해 바나나다발에서 바나나를 따낸다. 2002년 5월에는 서아프리카에서 500만 년 전 침팬지가 나무 열매를 까먹는 데 사용한 479개의 돌조각이 무더기로 발견됐다. 침팬지는 나무뿌리를 모루로 이용해 날카로운 돌로 너트를 깨먹었다. 동료를 속이고 바나나 먹는 침팬지 동물도 행동을 모방한다. 일본원숭이는 행동을 잘 모방한다. 일본의 한 공원 관리인이 원숭이에게 먹이로 줄 감자를 들고 가다 땅에 떨어뜨리고 말았다. 다른 원숭이와 달리 '이모'라는 원숭이는 흙 묻은 감자를 물에 씻어 먹었다. 그러자 모든 원숭이들이 이를 따라했다. 모방은 삽시간에 일어났다. 영국의 박새도 모방의 천재다. 추운 겨울 한 박새가 배달된 우유병의 종이마개를 부리로 찢고 그 속에 응고된 지방덩어리를 먹기 시작하자 곧 영국의 모든 박새가 이 행동을 따라했다. 결국 영국 우유회사들은 마개를 더 단단한 재질로 바꿀 수밖에 없었다. 속임수에도 능수능란하다. 물떼새는 둥지에서 새끼들을 품고 있다가 여우같은 포식동물이 접근하면 저만치 날아가 앉아 갑자기 날개가 부러져 잘 날지 못하는 흉내를 내며 퍼덕거린다. 그러다가 별 어려움 없이 먹이를 구했다고 생각한 여우가 가까이 다가오면 잽싸게 날아오르며 몸을 피한다. 새끼를 구하려는 속임수이다. 평생을 침팬지와 함께 살아온 제인 구달 박사는 침팬지에게 혼자 먹을 수 없을 만큼 많은 바나나를 주었다. 그러자 그 침팬지는 바나나를 자기만 아는 곳에 숨겨 놓고 조금씩 꺼내 먹었다. 침팬지 친구들이 바나나가 어디에 있냐고 아우성을 치자 그는 손가락으로 정반대쪽을 가리켜 속인 뒤 재빨리 숨겨 놓은 곳으로 가서 바나나를 꺼내 먹기 시작했다. 다른 동료를 속이고 혼자 맛있는 것을 먹는 것은 사람이나 침팬지나 매한가지다. 인간의 존재를 객관적으로 봐야 사람만이 슬퍼하고 그리워하는 것은 아니다. 코끼리는 건기와 우기에 물과 풀을 찾아 마치 철새처럼 먼 거리를 이동하는 습성을 갖고 있다. 코끼리는 이동 중 동족의 뼈를 발견하면 냄새를 맡고 이리저리 굴린다. 특히 코끼리는 이동하다가도 자기 어머니의 두개골이 놓여 있는 곳을 잊지 않고 들러서 한참 동안 그 뼈를 굴리며 시간을 보낸다. 슬프기 때문이다. 벌은 춤으로 의사소통을 한다. 정찰 벌은 꿀을 찾고 돌아와서 동료들에게 8자 모양의 꼬리 춤을 춘다. 이때 춤의 방향은 꿀이 있는 방향, 춤의 속도는 꿀이 있는 곳까지의 거리 정보를 담고 있다. 실제로 독일 막스 플랑크 연구소는 몇 년 전 꿀벌 로봇을 만들어 춤을 추게 했다. 그리고 춤으로 알려준 장소에 가서 기다렸더니 정말 벌들이 그곳으로 날아왔다. 동물 세계에도 인간처럼 고도의 정치 관계가 존재한다. 우두머리와 친한 침팬지는 훨씬 몸집이 큰 동료들 앞에서 큰 소리를 친다. 몸집이 작은 침팬지들은 우두머리가 늙고 노쇠해지면 동맹을 맺어 쿠데타를 일으킨다. 침팬지 행동을 연구해 온 미국 에모리 대학 프란스 드 왈 교수는 "침팬지 사회에서는 무엇을 아느냐보다 누구를 아느냐가 훨씬 중요하다"고 말한다. 사람이 그렇듯 '백' 없는 침팬지는 고생을 한다는 것이다. 우리는 지구가 우주의 중심이 아니라 태양 주위를 도는 하나의 행성이며, 태양 역시 우리 은하 변방의 평범한 별에 불과하다는 것을 알게 됐다. 도구가 인간의 전유물이란 생각도 편견으로 드러나고 있다. 우주와 생명체 속에서 인간의 존재를 객관적으로 바라볼 수 있을 때 비로소 우리는 우물 안에서 벗어날 수 있지 않을까?
박준용 | 한양대 강사, 문화평론가 모처럼 만나는 휴식 같은 여행 여름이다. 긴 방학, 분주한 일상을 떠나 모처럼 여유로운 여행의 시간을 가져 볼 수 있는, 삶의 흔치 않는 기회의 시간이기도 하다. 가족이나 친구 혹은 교사와 학생이 함께 하는 여행의 미덕은 무엇일까? 여행이 주는 여러 가지 유익이 있을 수 있겠지만 무엇보다 소중한 것은 긴 호흡으로 넉넉한 시간을 더불어 같이 있을 수 있다는 그 자체가 아닐까 싶다. 바삐 움직이는 도시적 일상의 시간과 그 안에서 이루어지는 인간관계는 작은 조각으로 파편화되어 있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치밀하게 구획화된 잠깐의 시간동안 기능적으로 만나고 헤어지기를 반복하는 피상적인 관계는 서로에 대해 극히 단편적인 이해만을 가능하게 하고 그만큼 참다운 인간 존재의 만남과 소통은 어렵게 된다. 영화 〈마르셀의 여름〉은 좋은 여행의 시간이 이러한 한계를 넘어서게 하는 관계의 묘약이 될 수 있다는 것을 잔잔한 목소리로 속삭이는 휴식과 같은 작품이다. 마르셀, 아버지의 빈틈을 보다 마르셀의 아버지는 교사이다. 사명감도 투철하고 실력도 있으며 동시에 아이들에 대한 사랑도 남다른 모범적인 선생님으로서 아버지는 마르셀에게 있어 절대적인 권위와 사랑, 존경의 대상이다. 어린 마르셀의 눈에 많은 학생들 앞에서 확신을 가지고 지식과 진리를 선포하는 아버지의 모습은 거의 신에 버금가는 완전한 모습이었다. 물론 마르셀의 시선 밖에서 묘사된 아버지는 새로 부임한 학교에서 겉으로는 자신만만한 태도로 첫 수업을 진행하지만 이내 칠판으로 돌아서서는 긴 안도의 한숨을 몰아쉬는 지극히 인간적인 모습이다. 다만 분주한 일상 속에서 잠깐씩 그의 모습을 볼 수 있었던 마르셀에게 그런 '빈 틈'이 발견될 수 없었을 뿐이다. 그러던 중 마르셀의 가족은 여름방학 기간을 맞아 시골 별장을 빌려 한 달여가 넘는 제법 긴 휴가를 지내기로 결정한다. 그리고 그 곳에서 마르셀은 영화 속 내레이션처럼 그의 인생에 있어 가장 아름다운 시간과 만남을 경험한다. 시골로 내려간 처음 얼마간의 시간동안 아버지는 마을 광장에서 마을사람들과 함께 한 쇠구슬 던지기 게임에서 멋진 실력을 발휘하는 등 마르셀의 기대를 저버리지 않는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모든 것이 가공된 도시의 문화와 교과서에 실린 이론에 익숙한 아버지의 능력은 실제 '삶'이 생생하게 살아 숨 쉬는 시골에서 그 허약한 실체를 이내 드러내고 만다. 그 상징적인 사건은 단조로운 휴가에 즐거움을 주기 위한 사냥과 관련하여 발생한다. 사냥을 떠나기 전 사냥감에 대한 대화를 나누던 중 아버지는 나름대로 사냥의 전문가임을 자처하는 마르셀이모부의 사소한 질문을 받게 된다. 마르셀은 모든 지식에 통달한 아버지가 당연히 멋진 답을 내놓을 것을 기대하지만 정작 아버지는 엉뚱한 답은 물론 심지어 자신이 대충 가르쳐 준 답까지 말하며 허둥거린다. 실망은 여기에 그치지 않는다. 실제 사냥에 나서 보게 된 아버지는 새를 잡기는커녕 도리어 이모부의 사냥을 방해하기나 하는 애물단지로 전락해 있었다. 총을 다루는 어설픈 실력은 물론 사냥감인 새들의 종류조차 제대로 아는 것이 없을 정도였다. 마르셀은 그런 아버지의 모습에 거의 충격을 받을 지경이다. 마르셀, 모순을 받아들이다 이러한 마르셀의 충격은 사실 우리에게 그리 낯선 어떤 것이 아니다. 사람들은 대개 한 때 자신이 존경해마지 않았던 사람이 실상 그에 합당한 대상이 아니라는 사실을 깨닫고 큰 실망과 좌절감을 느껴 본 경험을 가지고 있다. 교사는 그 상징적인 대상이라 할 수 있다. 최근 교사의 권위가 땅에 떨어졌다고는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가르치고, 가르침을 받는 사제지간의 관계에서 적잖은 학생들은 헌신적인 사랑과 열정의 선생님을 특별하고 완전한 존재로 상상하고 신뢰하곤 한다. 우스개 소리로 어릴 적 생각에 선생님은 화장실도 안가는 분들로 생각하던 때가 있지 않았던가. 그러나 효과적인 교육을 위한 권위를 부여하는 일종의 ‘아우라’로서 교사나 부모의 완전성에 관한 ‘환상’은 그 유용성만큼이나 위험성도 적지 않다. 왜냐하면 교사를 포함한 대개의 인간은 그런 완전성의 기대를 충족시킬 수 있는 대단한 존재가 아니기 때문이다. 그런 까닭에 아버지의 완전성에 대한 기대가 컸던 마르셀은 실망 역시 클 수밖에 없었다. 마르셀의 실망을 알 수 없었던 아버지는 한 술 더 떠 어렵게 잡은 황제 자고새를 들고 자랑스레 사진을 찍는다. 그 순간 마르셀의 머리에는 얼마 전 낚시에서 잡은 큰 물고기를 들고 사진을 찍은 동료 교사를 인간의 존엄성을 훼손한 어리석은 짓이라며 조롱하였던 아버지의 모습이 스쳐지나간다. 가르치는 사람에게 있어 가장 지키기 어려운 교육의 덕목은 무엇일까? 그것은 아마도 언행일치의 일관성을 유지하는 것 일게다. 가정이나 학교에서 아이들은 부모나 교사의 '말'이 아닌 그들의 '행동'을 보고 배운다. 그런 이유로 적잖은 아이들의 문제는 본인들보다는 오히려 그네들이 속한 가정이나 학교의 역할모델 당사자인 부모나 교사로부터 말미암는다. 마치 마르셀의 아버지처럼 그들은 자신이 비난해마지 않았던 행동을 하고 있으면서도 전혀 그런 모순을 깨닫지 못한다. 정작 그 모순을 발견하는 것은 마르셀과 같은 아이들의 시선이다. 마르셀, 아버지의 영광을 외치다 믿었던 아버지에 대한 이런저런 실망에도 불구하고 마르셀은 그런 아버지를 외면하지 않는다. 아니 오히려 그는 영화의 원제목처럼 '아버지의 영광'을 드러내기 위해 하늘을 향해 아버지가 잡은 황제 자고새를 높이 치켜들기를 주저하지 않는다. 영화는 그 이유를 크게 두 가지로 답한다. 무엇보다 먼저 그들은 여행 중 이었다. 긴 시간을 같이 한다는 것은 서로의 약점을 드러낼 수밖에 없는 위험성을 내포하지만 이는 동시에 그런 약점을 모른 채 지내왔던 피상적인 관계가 이러한 계기를 통해 서로를 보다 깊이 있게 이해하면서 관계를 더욱 깊고 견고하게 만들 수 있는 가능성의 장을 마련하기도 한다. 그것이 단편적이었든, 오해였든 간에 그간의 생활에서 보여준 아버지의 따뜻한 사랑의 마음은 함께하는 시간을 통해 마르셀로 하여금 그의 연약함에 대한 충격에도 불구하고 도리어 어떻게든 그런 아버지의 약점을 감싸 안고자 하는 열망을 불러일으킨다. 마르셀이 사냥터에서 계속 된 실수 속에서 거의 우연으로 아버지가 쏘아 떨어뜨린 희귀하고 값비싼 '황제 자고새' 두 마리를 누구보다 빠른 걸음으로 잡아 치켜 올리며 '아버지의 영광'을 외쳤던 까닭이 바로 여기에 있다. 다른 한 가지 이유는 참된 사랑이다. 비록 마르셀은 아버지의 인간적인 한계로 인한 부분적인 일관성의 상실을 목격했지만, 가족과 함께 하는 시간을 통해 보다 근본적인 관계에 있어 아버지가 자신을 향한 진실한 사랑의 마음을 한순간도 놓치지 않고 있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흔히 말하듯 요즘 청소년은 이전의 그 어떤 세대의 동년배들보다 감각을 중시하는 직감적인 문화의 삶을 살아가고 있다. 이를 생각 없이 삶을 살아간다는 식으로 부정적인 시선으로 바라보는 이들이 적지 않은 것이 사실이지만, 생각해 보면 그것은 그만큼 아이들이 겉으로 보이는 말이나 논리, 개념, 그럴듯한 구호나 가르침보다 그 이면의 진실한 마음을 머리가 아닌 가슴으로 느낄 수 있다는 말이기도 하다. 그렇기에 마르셀은 별로 좋아하지 않는 이모부의 입담에 아버지가 힘없이 밀려도, 또 사냥에서 허둥거리며 초보의 미숙함을 만천하에 드러내고, 심지어 잘 하지 않던 거짓말을 자신을 위한 것이라며 늘어놓아도 그런 아버지를 오히려 '귀여운 모습'으로 이해할 수 있었다. 긴장과 갈등, 불신의 골이 깊어가는 우리네 교육현장에 정말 필요한 것은 함께 하는 '여행'의 시간인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