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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 이건 너무 지나친 것 아닌가?" 수원시민의 허파 광교산을 오르면서 형제봉 가까이 등산로에 설치된 4개의 현수막을 보고 한 말이다. 과유불급(過猶不及)이라는 말도 떠오른다. 지나침은 오히려 부족함만 못한다는 말. 또 이런 말도 떠오른다. 과공비례(過恭非禮). 지나친 공손은 예의가 아니며 정도를 넘어선 공손은 오히려 타인에게 폐를 준다는 말이다. 요즘 공무원들의 서비스 정신을 강조하다보니, 또 공복(公僕)이니 머슴의 리더십이 공감을 얻더니 이런 현상이 일어난 것은 아닐까? 형제봉 등산로 공사를 알리는 현수막, 2개면 족하지 않을까? 582 미터의 거리에 4개의 현수막이 있다보니 평균 140여 미터마다 같은 내용의 현수막을 접하는 시민의 짜증나는 심정을 헤아려 보았는가? 4개의 현수막은 등산을 방해하는 일종의 공해고 예산낭비라고 생각하는데…. 국민들이 원하는 서비스 정신은 진정 이런 것이 아니라고 생각하는데.
연말연시만 되면 신춘문예 신드롬이 한바탕 기세등등하다가 잠잠해지곤 한다. 곧 없어질 것으로 예상도 해보았는데 여전히 존속되고 있는 신춘문예 제도를 어떻게 생각해야 할까. 행여나 하고 신춘문예 모집공고를 기다리고 작품을 가다듬으며 올해는 반드시 행운의 주인공이 되리라 다짐해보는 것을 연례행사처럼 치루는 문학지망생도 많을 것이다. 아마 수천 명은 족히 넘을 것이다. 나는 자신하건데 우리 문학사의 명작들이 과연 신춘문예 심사대에 오른다면 당선이 되었을까 가늠해보면 절대로 그렇지 않았을 것이라는 결론이다. 해마다 쏟아져나오는 많은 신춘문예 응모작들은 그 문학성과는 상관없이 어쩌면 요구되는 조건에 맞춰 한껏 치장하고 미인대회 무대에 오른 미인들이라는 생각이 얼핏 든다. 그런 인공의 미인들에게서 어떻게 본래의 순수한 아름다움을 발견할 수 있단 말인가. 나는 엄정한 심사를 거쳐 뽑힌 미인대회의 입상자들 보다는 길거리나 버스에서 우연히 마주치는 선남선녀에게서 진짜 미인을 발견하는 경우가 적지 않다. 신춘문예라는 제도가 존속되려면 문단의 등용문이라는 이미지보다는 각 지방의 지역축제에서 인삼아가씨나 포도아가씨를 뽑듯이 연례 문학축제의 이미지로 새롭게 바꿔야할 것 같다. 상금과 명예를 놓고 한바탕 겨뤄보는 문학축제의 성격이면 모르되 그것이 권위 있는 등용문처럼 인식되는 상황 아래서는 언제까지나 문학지망생들의 사기를 꺾는 역효과로 작용할 소지가 다분히 있다. 신춘문예라는 그 권위에 현혹되어 정작 개성과 창의성을 마음껏 발휘하지 못하고 심사위원들의 구미에 맞추고 최신 신춘문예 경향을 분석하는 어이없는 일이 벌어질 공산도 크기 때문이다. 예전보다야 그 권위가 못하다하도 아직도 신춘문예 아니면 안된다는 강박관념으로 자유롭게 창작활동을 하지 못한다면 신춘문예의 존재 의의를 다시 생각해보아 야 할 것이다. 나도 한편으론 신춘문예나 유명 문예지에 작품이 당선되는 영광을 꿈꾸기도 했다. 그러나 해마다 연례행사처럼 몸살을 앓으며 매달리지는 않는다. 어쩌다 정성껏 작품을 선정하여 기대에 부풀어 투고를 해놓고 나서 발표만을 기다리다가 결과가 발표되는 날 나는 여지없이 무너지고 마는 것이다. 그 동안의 내 노력, 자신만만했던 패기가 한 순간에 무너져내리는 것이다. 그리고 가장 잘된 작품이라고 스스로 생각했던 그 작품이 다시는 보기도 싫어져 아무렇게나 방치하거나 심지어는 폐기처분되어 쓰레기통으로 내던져지기도 하는 것이다. 다시 마음을 추스르기엔 또 상당한 시일이 필요하다. 시일이 지나 다시 그 열정과 패기를 회복한다면 다행이지만 혹자는 그냥 자신의 한계를 인식하고 문학에서 손을 떼는 상황이 벌어지기도 할 것이다. 신춘문예는 많은 사람들의 이목을 집중시키는 행사이기는 하지만 문학의 생명이라 할 작가의 개성과 창의성보다는 일정한 규격과 기준을 요구하는 틀에 밖힌 공개행사적 요소가 다분히 있다. 어쩌면 내가 신포도의 원리를 얘기하며 내 재주없음을 호도하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닿을 수 없는포도를 보며 '저 포도는 따먹어 봤자 실 것이다'하고 돌아섰다는 이솝우화의 여우 얘기 말이다. 그럴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수 백명 천여 편이 넘는 작품 중에 한 편이 선정되는 그 경쟁에 한번 투신한다는 것이 보통 용기를 가지고 되는 일인가. 한 명을 제외하고 수 백명이 겪을 실망과 좌절을 그냥 모른체 해도 좋단 말인가. 그 화려한 관문을 통과한 사람은 물론 생각이 다를 것이다. 자신들만이 문학을 할 자격이 있고 한국문단에서 활약할 수 있다는 자만과 교만이 은근히 고개를 들 수도 있는 것이다. 문단의 그런 현실을 엿보며 좌절을 겪는 사람이 얼마나 많을 것인가. 어떻게 해서라도 그 관문을 뚫고 나서 다시 시작하자는 생각이 팽배해지기도 할 것 아닌가. 말하자면 간판 따기 경쟁이 되고 마는 것이다. 마치 미술계에서 어느 대학 출신이냐가 작품의 질을 결정하는 결정적 요소가 되는 것 처럼 말이다. 신춘문예가 아니라도 마음껏 창의성을 발휘하여 작품활동을 하고 그 작품이 정당하게 인정받는 문단풍토가 되었으면 좋겠다. 문단이나 명예, 돈과는 무관하게 순수하게 문학을 사랑하는 아무추어 작가들이 폭넓게 문학저변을 형성하고 있을 때 문학의 발전은 물론 서민들의 삶도 더 윤택해지지 않을까.
내가 어렸을 때 ‘우리는 단일민족이다. 한핏줄 한겨레로 반 만 년의 자랑스러운 역사를 지켜온 문화민족이다. 우리만이 쓰는 말과 우리만이 쓰는 독창적인 한글이 있는 우수한 민족이다.’면서 민족의 자긍심과 국가에 대한 애국심을 고취시키려는 교육을 받으면서 자랐다. 민족 말살정책으로 우리말을 쓰지 못하게 했다는 일제의 만행에 어린 가슴에도 분노가 일었었다. 알퐁스 도데의 단편동화 ‘마지막 수업’은 일제시대의 우리의 처지와 매우 흡사했기에 지금도 벅찬 감동으로 남아 있다. 나라는 망했어도, 독일어만을 쓰라고 강요하더라도, 프랑스말을 잊지 않는다면 감옥에 갇혀 있어도 열쇠를 가지고 있는 것과 같다던 소설 속의 아멜 선생님 말이 귓전을 맴도는 듯하다. 조선시대에는 중국말을, 일제시대에는 일본말을, 해방이후 사회적으로 정치적으로 어수선한 시대에는 미국말(영어)을 잘 했던 사람들이 부와 권력을 누렸다고 한다. 국력이 약했던 우리들에게는 큰 권력을 휘두르는 외국인과의 관계가 매우 중요했을 것이다. 그들의 의지를 알아내어 적절하게 대응할 필요가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기에 의사소통의 중간 역할을 잘 해주는 사람이야말로 국가적으로 절대 필요한 사람이었다. 당연히 그들의 입지는 탄탄할 수밖에 없었다. 지금도 마찬가지다. 글로벌시대에 외국인들과의 원활한 의사소통은 개인의 발전은 물론 국가발전에 중요한 수단이 되었다. 욕심 같아서는 전 국민 모두가 미국인이나 영국인처럼 영어를 잘했으면 좋겠다. 그러나 그게 어디 간단한 문제인가. 혹시 우리말과 우리글을 교육하지도 않고 사용하지도 못하게 한다면 가능할지 모르겠다. 혹자들은 진심인지 비아냥거림인지 몰라도 ‘미국의 51번째 주가 되어 영어를 공용어로 쓴다면 가능할 것이다.’라고 한다. 현실적으로 그럴 가능성은 전혀 없지만 요즘처럼 영어의 중요성이 부각되고, 교육의 최정상에 우뚝 서 있는 영어, 영어만 잘하면 만사가 오케이라는 생각들, 영어를 잘해야만 좋은 대학에 갈 수 있는 입시제도, 영어로 타 교과 수업을 하겠다는 등등의 설왕설래와 어떻게든 경제를 살려서 잘 살면 된다는 물질만능 사고가 국민들의 절대 가치가 돼 버린다면 불가능할 것도 없는 것 아닐까? 영어를 정말 완벽에 가깝게 구사해야 할 사람들이 있다. 의사소통에서 사소한 해석의 오류 때문에 엄청나게 큰 괴리가 발생해서는 안 될 일을 하는 사람들이다. 학문을 연구하는 학자, 국익을 도모하는 외교관, 외국과의 경제교류를 위한 무역업자, 금융업자, 회사관계자, 관광업자 등은 영어에 달통하여야 할 것이다. 그러나 국민 대부분은 기본적인 생활영어 구사능력만 있어도 된다. 외국인들을 만났을 때 손짓 표정 서툰 낱말 몇 개만 써도 필요한 의사소통이 되기도 한다. 물론 잘하면 좋지만……. 초등학교에서 정식으로 영어교과가 도입될 때 많은 사람들은 사교육의 확산과 사교육비의 증가를 염려했다. 학부모들은 초등학교에 들어갈 자녀가 영어 학력이 뒤지지 않도록 유아시절부터 영어를 가르친다. 아직 우리말과 우리글에 대한 언어생활이 제대로 정착되기도 전에 영어를 가르치기 위해 온갖 노력과 교육비를 지출한다. 심지어 초등학생들까지 해외 어학연수를 시키고 있다. 앞으로 영어교육을 확대 실시한다고 한다고 하니 그 역작용이 심히 우려스러울 뿐이다. 잘 알아듣는 우리말로 수업을 해도 그 학습 성취 정도가 만족스럽지 못한데 영어로 수업을 한다면 과연 어떨까! 근래에는 대학 입학, 회사 취업, 직장에서의 승진이나 보직 등 영어 구사 능력이 우수하지 않으면 뜻을 이루기 어렵다. 영어 능력이 꼭 필요하지도 않은데 선발하기 위한 기본 조건으로 제시하고 그 조건을 충족하지 못하면 아예 응시조차 못하게 하는 경우가 많다고 한다. 토익이나 토플 등의 고득점을 쟁취하기 위한 교육비는 말할 것도 없고 전형료로 유출되는 경제력도 무시하지 못할 것이다. 전 국민을 영어에 달통하게 만들려말고 정말 필요한 사람들을 집중으로 교육시켜 국가적으로 더 많은 이익을 창출하게 하자. 영어 구사 능력이 절체절명인 것처럼 사활을 걸어 더 중요한 것을 잃지 않아야겠다. 영어의 환상에서 깨어나자.
아름다운 스위스에서 하루 더 머물고 싶었지만 여행 일정에 따라 이탈리아 밀라노를 향하는 길은 지루하기 까지 하였다. 밀라노가 가까워오니 안개가 자욱하게 끼여 주변경관을 볼 수 없었다. 온화한 지중해성 기후로 면적은 한반도의 약1.5배로 약 5,700만 명이 살고 있는 나라이다. 로마교황청이 있는 가톨릭의 본산지로 98%의 국민이 가톨릭을 믿고 있는 나라, 세계에서 가장 큰 성당이 있고 가는 곳 마다 거대한 성당이 관광객의 시선을 끌고 있었다. 고대의 화려한 전통과 유물을 간직하며, 현대의 최첨단 패션과 유행을 잘 융합시키고 있는 이탈리아는 유럽 대륙에서 지중해 쪽으로 장화처럼 뻗어 나와 있는 반도국가 이다. 로마제국의 찬란한 역사와 르네상스의 화려한 꽃을 피운 곳으로 줄리어스 시저 등이 활약한데 이어, BC 27년 아우구스투스가 왕위에 오른 것으로 시작된 로마 제국은 그 뒤 아프리카 북부는 물론, 중동과 영국에까지 손을 뻗치는 큰 제국을 이루었던 나라라고 한다. 이탈리아 국경 KOMO는 온천지대로 유명인의 별장이 많다고 한다. 물이 많아 호수가 아름다운 관광의 도시를 지나 밀라노에 도착하였다. 밀라노는 패션의 거리인 갤러리아와 두우모 대성당의 아름답고 웅장한 모습에 입이 다물어지지 않는다. 버스에서 내려 한참 걸어서 성당 안으로 들어서니 미사를 보고 있었다. 도모성당 앞은 넓은 광장이 있어 광장문화가 융성했던 시대를 말해주고 있었다. 두우모 성당은 3,159개의 동상이 있고 종탑이 없는 성당이라고 한다. 라폴레옹이 보수하였으며 두우모 성당을 정신적 지주로 삼았다고 한다. 화가이자 건축가이며 비행기까지 설계한 레오나르드다빈치는 그의 천재적인 역량을 발휘하여 많은 업적을 남겨서 로마공항도 레오나르드다빈치 공항이라는 이름을 붙였다고 한다. 이탈리아 하면 떠오르는 것이 대리석, 이탈리아가구, 패션(와이셔츠, 넥타이 등)과 밀라노에서 많이 생산되는 포도는 와인으로 생산되어 미식가의 입맛을 돋운다. 밀라노 시내에서 전통 피자와 스파게티에 와인을 곁들여 저녁을 먹고 시내를 벗어나 처음으로 별4개짜리 호텔에서 편안한 하룻밤을 보낼 수 있었다. 베니스의 상인이라는 유명한 서적으로 알려진 물의 도시 베니스로 이동하였다. 베네치아 항에서 현지에서 직행버스라고 하는 배에 옮겨 타고 전쟁에 밀려서 삶의 터전을 만들기 위해 갯벌에 나무를 박아서 건물을 지었다는 아드리아 해(海) 인공도시 베니스에 내렸다. 물고기 모양으로 생겼고 112개의 작은 섬으로 천년의 역사를 가지고 있다고 한다. 현지 가이드의 안내를 받아 카사노바가 걸었다는 탄식의 다리는 사형선고를 받고 마지막으로 가족과 멀리서 볼 수 있는 건물과 건물을 잇는 작은 다리인데 이 다리를 건너고도 유일하게 살아난 사람이 카사노바라고 한다. 가면 축제가 열리는 산마르코 광장, 산마르코성당은 모자이크성당, 천정을 금으로 입힌 황금성당이라고 한다. 99m 높이에 있는 천사상인 가불레 상은 황금으로 만들어 졌다고 한다. 광장 옆 건물에 있는 무라노 글라스 유리세공 공장에서 크리스털 제품 만드는 모습을 보고 휘황찬란한 제품을 구경하고 주변의 상가에서 쇼핑도하였다. 산마르코 광장에는 비둘기 들이 너무 많아 관광객과 친해져 있어 아이들 머리위에도 앉아 웃음을 자아냈다. 베네치아에서 1박을 하고 르네상스의 발상지인 플로렌스로 이동하였다. ‘신곡’의 작가인 단테의 생가를 보면서 우리처럼 생가 복원을 위해 많은 돈을 드리지 않고 옛 모습을 그대로 보존하는 그들의 문화에 감동하였다. 오래된 건물의 벽에 이곳이 단테가 생활하던 곳이라고 작은 표찰, 현수막과 흉상을 볼 수 있었고 마당 바닥에는 단테의 얼굴 부조가 새겨진 대리석이 가이드의 소개로 발견 할 수 있었다. 문예부흥의 발상지인 피렌체에 도착하였다. 베네시아는 이탈리아의 옛 수도였다가 로마로 옮겼다고 한다. 피렌체를 대표하는 두우모 성당은 분홍색 초록색 대리석으로 고딕체로 지어졌다고 한다. 코로스쳐치 성당도 구경하고 가죽 옷이 제품이 부드럽고 우수하며 세일을 한다고 하니 아내가 내 상의를 한 벌 사주겠다고 하여 옷을 골라보았는데 유럽인 체형에 맞추어 만들어서인지 내 몸에 맞는 옷이 없다. 아내는 나오다가 한국인 종업원의 안내로 여자 옷 코너로 가서 옷을 입어보니 맞춘 듯이 잘 맞았다. 미안하여 안 사려고 하는 것을 내가 봐도 잘 맞으니 사라고하여 이탈리아 여행 기념으로 가죽옷 한 벌을 건져왔다. 피렌체 공화국의 정치 무대였던 시뇨리아 광장 등을 관광하고 마지막 밤을 보낼 로마로 향하였다. 한인식당에서 상치(배추종류의 야채)에 돼지고기를 얹어 맛있게 저녁을 먹고 교외에 위치한 호텔에 투숙하였다. 로마 바티칸시티 교황청을 향했다. 가는 길에 가로수로 심어 놓은 나무가 우리 소나무와 너무 닮았다. 소나무와 잣나무를 접붙인 것 같은 나무가 우리에겐 너무 친근감을 안겨주었다. 로마는 나무, 물(분수), 조경이 잘되어있고 시내를 흐르는 아르노 강에 민물고기가 많은데 이 곳에서는 고기를 먹지 않는다고 한다. 그리고 올리브나무가 많아 올리브로 만든 관광 상품이 많았다. 세계3대 박물관의 하나인 바티칸 박물관을 수신기를 지급받아 설명을 들었다. 카톨릭의 총 본산지인 성베드로 성당과 미켈렌젤로 걸작품인 천지창조가 있는 시스티나 소 성당을 관광하였다. 교황바오로 2세 무덤이 있는 지하무덤도 관람하고 나와 교황청 넓은 성당에서 현 베네딕토 교황이 집무하는 방도 바라보고 수많은 관광객 속에 끼여서 기념사진을 찍고 이탈리라 전통식으로 오찬을 즐겼다. 오후엔 로마의 휴일의 배경이 되었던 진실의 입, 콜로세움(투기장(鬪技場) 내부를 구경하며 허물어진 모습 그대로 후손들이 볼 수 있어 이들의 문화제 보존방식에 찬사를 보내게 되었다. 스페인 광장 등 로마제국의 흥망성쇠를 볼 수 있는 문화유적들을 관광하고 마지막으로 1762년에 완성되었으며, 분수의 아름다운 배경은 나폴리 궁전의 벽면을 이용한 조각으로 이루어졌다는 바로크 양식의 걸작품인 트레비분수엘 갔는데 오른손으로 동전을 어깨너머로 멀리 던져 조각상 오른편 작은 웅덩이에 동전을 넣으면 행운이 온다고 하여 뒤로 동전을 던지고 얼른 뒤돌아보니 그 작은 웅덩이에 동전이 들어가는 모습을 보고 서유럽 마지막 관광코스에서 행운의 기(氣)를 받았다는 성취감에 여행의 기쁨이 한층 고조 되어 로마공항으로 향해 귀국길에 올랐다.
대전광역시교육청(교육감 김신호)은 1월 31일 불우학생돕기 등에 앞장서 온 일명 ‘헬프 미 아줌마’ 신초지 씨(67)에게 교육감상을 수여했다. 양말 행상을 하고 있는 신 씨는 지난해 5월 대전중리초등학교 소년·소녀가장 등 가정환경이 어려운 학생들에게 장학금 30만원과 양말 일천 켤레를 나눠주는 등 지난 30여 년간 지역 내 불우학생들을 도왔다. 1960년대 후반부터 줄곧 봇짐을 메고 대전 시내 관공서와 학교 등을 찾아가 “헬프 미!”를 외치며 양말과 칫솔, 수건 등을 팔아 온 신 씨는 수익금 중 일부를 고아원과 불우학생, 양로원 등에 꾸준히 기탁하고 있다. 한편 신 씨는 경찰 간부인 아버지와 대학교수인 어머니 사이 둘째 딸로 태어났는데, 1960년 결혼에 실패한 뒤 스무 살 나이에 고향인 경북 고령을 떠나 대전에 정착했다고 한다. 중구 문창동에 2평짜리 월세방을 얻어 시작한 그의 행상은 40년 동안 계속되면서 이젠 그를 모르는 공무원이 별로 없다. 신 씨가 ‘뻔뻔스럽게’ 기관을 방문해 ‘헬프 미’라고 말하면 대부분 거절을 못한다. 그가 번 돈 대부분이 개인의 영리를 위하지 않고 불우이웃돕기에 사용되기 때문이다. ‘그동안 몇 명이나 도와준 것 같냐’는 기자들의 질문에 그녀는 “몰라. 한 6만 명, 돈으로는 10억 원이 넘을 거야”라며 말꼬리를 흐린다. “베푸는 것은 내가 죽어야 끝나지….”라는 말만큼 마음을 에이게 하는 일이 있었다. 2002년 1월 자궁경부암 3기 판정을 받았으나 정작 자신의 치료비가 없어 고생하기도 했던 신 씨는 이제 ‘헬프미 아줌마’가 아니라 ‘헬프미 할머니’가 돼 있다. 그러나 그녀의 선행은 지금도 계속된다. 있는 사람들이 생색내며 내는 성금 몇 십억 원 보다는 신 씨 같은 없는 사람들이 내는 몇 십만 원의 정성과 사랑이 담긴 돈이 더 값지게 보이는 때다. 그녀의 건강을 빌어 본다.
교육에 신문을 활용하는 NIE운동을 연구하는 "일본 NIE학회"의 제4회 대회가 17,18일 양일간 히로시마대학에서 개최되었다. 그 중에서도 "일본NIE이론화"를 목표로 소개된 훌륭한 실천적인 실례는 학교에서의 앞으로의 활용 방법으로 주목을 끌었다. 현장으로부터 보고의 중심이 된 것은 요코수카시립 가모이초등학교 우스이교사와 오사카시립 쇼와중학교 우에다 교사의 국어과 실천이다. 우스이 교사는 우선, 동일본 지역을 중심으로 128건의 초등학교 국어과에서 행해지고 있는 실제 사례를 분석했다. 그 결과 저 학년에서는 「언어관련 사항, 사진을 보고 이해하기」를 중요시 하고, 중학교에서는 시 감상이나 스크랩, 신문만들기로 확대되고 있으며, 고학년에서는 주장의 글이나 바꿔 쓰기, 비교해서 읽기 등도 추진되고 있음을 알게 되었다. 또한 가모이초등학교에서는 5학년 37명을 대상으로 한 수업에서, 신문에서 비교하여 생각할 수 있는 주제를 찾아서 어떠한 느낌이 들었는지를 살펴보았다. 따돌림에 관한 기사에서는 학생이 "A신문은 따돌림의 사실만을 써 놓았지만, B신문에서는 유서 전문을 실어 놓았었다. 따돌림 당한 아이가 얼마나 분했었는지를 알았다"라고 쓰는 등, 비교함으로써 내용의 이해가 깊어졌다고 이야기했다. 우스이교사는 "초등학교 국어과에서 길러야 할 요소는 비판과 표현"임을 강조하고 있다. 수용해서 생각하고 표현하기까지의 일련의 학습이 형성되는 것이 필요하다. 비교해서 읽기를 거듭함으로써 "필자의 입장에서 읽고 이해할 수 있게 된다"라고 분석했다. 한편, 우에다 교사는 "정보의 활용"을 기본 축으로 한 실천을 보고했다. 신문의 사진을 예로 들면서, 얼굴 생김새. 복장 등에서 얻을 수 있는 정보를 중학생들에게 고찰하도록 하는 수법이나, 주변의 가까운 사람들을 취재하여 자기가 기자가 되었다고 생각하고 인물 소개란을 쓰는 등, 학생이 쓴 기사를 비교함으로써 어떻게 다른 사람에게 다가갈 것인가, 표현은 어떠한가 등을 체험하게 했다. "정보가 가치가 있는 것이 되기 위해서는 각각의 목적이나, 살아가는데 도움이 되고 있다고 실감했을 때"라고 말하는 우에다교사의 보고에는 요코하마국립대 다카기 교수가 "단순한 지식. 기능이나 활동 수준의 학습이 아니고, 학습자의 주체 즉, 자신을 성장시키고자하는 의도를 볼 수 있다」라고 해설했다. 그러면서 NIE의 "이론화"는 앞으로의 과제이다. 이번에는 이 2가지 예 이외에도 다양한 실례가 보고됨으로써 "무엇이 훌륭한 실천인가?"를 둘러싸고 하나의 시사점을 보여준 것이라고도 말할 수 있다. 동시에 신문사측에도 "신뢰성이 높은 신문의 정보는 교육현장에서 귀중한 정보의 원천"이라는 목소리에 응답할 책무가 확인 된 대회였다는 견해이었다.
정선아리랑의 고장 강원도 정선은 겨울여행이 제격이다. 눈으로 뒤덮힌 철길 위를 달리는 레일바이크를 타고, 아우라지의 섭다리를 건너다 보면 겨울의 매력에 흠뻑 빠지게 된다. 레일바이크는 구절리역에서 출발한다. 구절리역은 영화 [S다이어리]의 촬영지로 나지니(김선아)가 남자친구인 찬(강혁분)과 1주년 기념여행을 떠난 후 다투다가 헤어지는 장면을 촬영한 곳이다. 하지만 구절리역은 영화속 풍경과 판이하게 달라진 모습으로 리모델링되어 영화의 감동을 그대로 느끼기에는 다소 아쉬움이 남는다. 아우라지역까지 이어지는 7.2km 구간에 레일바이크라는 새로운 명물이 들어서 관광객들을 맞고 있다. 레일바이크는 문경과 곡성에서 인기리에 운행중인 철로자전거와 비슷하다. 폐선로 위에서 자전거를 타는 재미가 쏠쏠하다. 바퀴가 4개인데다 철로를 따라 달리기 때문에 넘어질 염려가 없어 안전하다. 터널을 빠져나오던 연인 한쌍이 필자가 사진촬영하는 모습을 보자 대담하게 키쓰신을 연출해 눈길을 끌었다. 구절리역에서 아우라지역으로 갈 때는 레일바이크를 타고 움직이지만, 돌아올 때는 풍경열차를 타고 주변 경치를 감상하며 돌아온다. 자전거와 기차 두 가지를 한번에 경험할 수 있어서 더욱 인기가 높다. 주말과 휴일의 경우 미리 인터넷 예약을 하기 않으면 타기가 쉽지 않다. 문의 : KTX 관광레저 : 033-563-8787, www.ktx21.com 구절리역에서 아우라지 방면으로 나오다보면 기차가 지나가는 아래로 굴다리가 나있다. 나지니가 남자친구와 헤어진 후 비를 맞으며 걷던 길이 바로 이곳이다. 길 양옆으로 높이 30m에 이르는 아름드리 나무들이 늘어서 있어 연인이 함께 걷기에 좋은 곳이다. 굴다리 위로 올라가면 터널을 통과하는 레일바이크 사진을 촬영하기에 좋은 포인트가 나온다. 굴다리를 지나 100m를 더 가면 만나는 사구팔구상회(033-562-5161)는 영화 [S다이어리]에서 나지니가 껌과 초콜렛을 사는 장면이 촬영된 곳이다. 상가 처마 밑에서 비를 피하는 장면과 굴다리를 공유와 자전거 타고 지나가는 장면 등도 촬영되었다고 한다. 옆으로 길게 이어진 슬레이트 지붕을 하얀 눈으로 뒤덮고 있는데다 고드름을 주렁주렁 매단 풍경 뒤의 야산 역시 눈으로 덮여있어 설국을 연상시킨다. 아우라지역에 도착하면 어름치 두 마리가 나란히 붙어 있는 어름치카페가 반긴다. 잠시 쉬는 동안 아우라지에도 들러보자. 아우라지는 정선군 북면 여량리에 자리한 하천으로 영화 [봄날은 간다]의 촬영지로 유명하다. 영화에서 상우(유지태)와 은수(이영애)가 강물소리를 녹음하던 곳으로, 옆에서 고등학교 밴드부가 남행열차와 사랑의 기쁨을 연주하던 장소이다. 아우라지는 정선아리랑(강원도 무형문화재 제1호)의 대표적인 발상지이자, 남한강을 따라 목재를 운반하던 뗏목의 시발점으로 알려져 있다. 평창군 도암면에서 발원되어 흐르고 있는 구절쪽의 송천과, 삼척시 하장면에서 발원하여 흐르고 있는 임계쪽의 골지천이 만나는 지점으로 두 하천이 합류되어 ‘어우러진다’ 하여 아우라지라 불리운다. 늦가을에 섭다리를 놓아 강을 건널 수 있게 해 놓았는데, 옛날에 소나무를 잘라 강에 기둥을 세우고, 그 위에 흙과 나무를 이용해서 만든 다리다. T자형의 섭다리가 두 줄기의 강위에 가로놓여 있고, 두 다리가 만나는 지점에는 정자가 세워져 운치를 더한다. 꽁꽁 얼어붙은 강물 위에 하얀 눈이 뒤덮여 있어 물을 건너는 다리가 아니라 눈을 건너는 다리라고 해야 맞는 표현이다. 다리 위에도 하얀 눈이 수북히 쌓여있어 겨울 정취를 더한다. 강변에는 아우라지 노래비와 아우라지 처녀상, 정자인 여송정이 세워져 있다. 추천 맛집 구절리역 철로변에 ‘여치의 꿈(033-565-8879)’이라는 카페는 열차 두량을 겹쳐 2층으로 만들어져, 꼭 여치가 짝짓기를 하는 독특한 모습이라 연인들이 특히 좋아한다. 각종 스파게티와 치킨샐러드, 돈가스, 다양한 음료 등을 맛볼수 있다. 추천숙소 영화 [S다이어리]의 출연진과 촬영팀이 건물 전체를 빌려서 숙박과 식사를 해결한 곳이 행복휴양림(033-563-2148, www.happysyk.com)이다. 휴양림의 행복수양관 건물 2호실은 김선아가, 3호실은 장혁이 묵었던 객실이다. 원룸형 객실과 황토방, 통나무집 숙소 등 다양한 40개의 객실을 갖추고 있다. 대강당과 괴목전시장, 운동장, 산책로 등의 편의시설이 잘 갖추어져 있어 가족여행이나 MT 등에도 손색없는 공간이다. 교통정보 영동고속도로 진부IC - 59번 국도 나전 - 42번 국도 아우라지 - 구절리역 중앙고속도로 제천IC - 38번 국도 영월 - 정선 - 아우라지 - 구절리역
김밥을 먹으며 야간에 TGV 기차를 타고 3시간 반의 여행을 하는 즐거움이 색달랐다. 밤9시 쯤 도착한 호텔은 아담하고 깨끗하였다. 루체른 시내 호텔에서 조식을 하고 리프트곤돌라를 타고 알프스의 아름다운 산맥을 조망할 수 있는 영봉인 필라투스를 올랐다. 조금전만해도 구름과 안개가 뒤섞여 정상의 경치를 볼 수 있을까 염려를 했는데 정상에 오르면서 구름위로 펼쳐진 만년설이 덮인 필라투스 콜른 봉은 너무 선명하게 볼 수 있어서 행운이 따라다닌다는 가이드의 말이었다. 스위스는 중립국으로 면적이 남한의 약 반 밖에 안 되는 아주 작은 나라이지만 국민소득이 높고 모두 잘살고 있었다. 나라 전체가 꽃으로 둘러싸인 스위스는 아름다운 자연환경뿐만 아니라 중세의 아름다움을 그대로 간직한 나라이기도 하다. 도시 곳곳을 장식한 발코니의 꽃들과 알프스에서 볼 수 있는 고산지대의 꽃들, 만년설이 뒤덮인 유럽의 지붕-융프라우와 필라투스, 티틀리스, 리기와 같은 많은 산과 전 세계적으로 유명한 시계공예 등 스위스는 그 이름만으로도 매력이 가득한 곳이다. 국토의 대부분이 산인 이 나라에 호수가 146개나 있다는 말에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그것도 아주 큰 호수들이 많았다. 1,200km의 알프스산맥에는 8개국이 걸쳐있고 이 곳 필라투스 봉에 산위까지 작은 철로를 깔아 놓아 여름철에는 기차로 관광을 할 수 있다고 한다. 이들은 목축을 하여 치즈, 요구르트 등을 만들어 먹는 낙농업을 한다고 한다. 우리나라도 산지를 효율적으로 활용해야 할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우리일행은 필라투스 콜른 봉을 리프트곤돌라 안에서 일행과 보온병에 담아온 커피향이 너무 좋았다. 산을 오를 때부터 내려올 때까지 감탄사의 연발이었다. 완전히 환상의 세상에 왔다는 흥분이 가라앉기도 전에 스위스 전통가옥을 감상하고 빈사의 사자 상을 배경으로 사진을 찍고 아기자기한 관광 상품 가게에서 선물을 고르는 재미에 잠시 빠져있었다. 호수를 가로지르는 나무로 된 가장 오래된 다리 카펠교를 지나 시가지를 걸어서 교포가 운영하는 식당에서 한식으로 점심을 먹으니 김치 맛이 그렇게 좋을 수 없었다. 아름다운 만년설을 차창 밖으로 구경하면서 산악지대의 터널을 빠져나가면서 남쪽으로 달렸다. 고속도로가 잘 놓여 있어서 설경과 호수를 보면서 작은 나라라는 것이 실감이 가지 않았다. 많은 눈이 쌓인 휴게소에 들려서 용변도 보고 편의점에서 간식도 사서 먹었다. 다시 한참을 달리다 보니 드디어 이탈리아로 넘어가는 국경에 우리나라 톨게이트 같은 검문소가 나타났지만 바로 통과 되어 역시 유럽은 여러 나라를 여행하기가 편리한 지역이라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지난번에는 인재과학부라는 생뚱맞은 이름을 만들어 교육 관련 분야에 종사하는 사람들의 속을 뒤집어 놓더니, 이번에는 영어만 잘하면 군대를 안가도 된다는 둥 모든 교과를 영어로 가르치는 영어몰입교육을 추진하겠다고 발표해 온 나라가 벌집을 쑤셔놓은듯 시끄럽다. 이름 하나 짓는 것도 치열한 검증 없이 섣부르게 발표했다가 뭇매를 맞고 다시 지은게 엊그제 일인데, 이번에는 한국말로도 가르치기 힘든 전문영역의 과목까지도 영어로 수업한다는 몰입교육을 발표해서 여론의 질타를 맞고 당장 하겠다는건 아니라는 어설픈 변명으로 뒤로 물러서는가 했더니 또 다시 그에 맞먹는 메가톤큽 시안을 내놓아 연일 국민들을 깜짝깜짝 놀래키고 있다. 이명박 당선자의 친위부대라는 인수위에서 펼치는 교육에 관한 청사진이 갈수록 가관이고 불협화음만 조장하는 꼴이다. 발표하고 수정하고 또 발표하고 수정하고 그러다 안되니까 토목공사처럼 밀어붙이겠다고 으름장놓고... 더 나아가 10년 후에는 아시아에서 가장 영어를 잘하는 나라를 만들겠다고 외치고 있다. 지금 아시아에서 손꼽히는 영어우위국인 필리핀을 따라잡아서 뭘 하겠다는 것인가? 그렇게 영어를 잘하는 필리핀의 국민들이 지금어떤 대접을 받으며 살아가고 있는지 너무도 잘 알고 있지 않은가? 필리핀 영어는 우리나라에서조차 2등 영어라고 해서 채용에서조차 불이익을 받는다. 영어가 모국어인 나라가 아니면 제 아무리 영어를 잘한다고 해도 짝퉁으로 취급받아 명함도 못내민다. 우리의 영어가 날고 기는 수준이된다해도 다른 나라에 가면 필리피노스처럼 그렇게 취급받을 것은 뻔한 이치다. ‘유비쿼터스 필리피노스(언제 어디에서도 있는 필리핀 사람들)라는 비아냥 소리를 듣는 가난한 나라 필리핀과 영어 한마디 못해도 떵떵거리며 잘사는 일본의 극명한 대비를 보며 도대체 느끼는 것은 없는지 묻고 싶다. 인수위의 말대로 필리핀을 제치고 우리나라가 10년 후에 아시아권에서 영어를 제일 잘했을때 얻어지는 것은 무엇이란 말인가? 영어 하나만 잘하면 영어와 전혀 관련 없는 직종의 분야에서도 우위를 점할 수 있는가? 이 땅이 한글을 쓰는 대한민국인지 아니면 영어를 쓰는 미국의 51번째 주인지 모를 일이다. 왜 그렇게 영어에 목매달아야하는지 극렬하게 반대를 하는 국민들을 설득해주기 바란다. 설득이 안된다면 분명히 문제가 있는 시안이다. 건설에 관한한 이명박 당선자가 전문가인지 몰라도 교육에 관해서만큼은 이 땅의 국민들 모두가 전문가이다. 오랜세월동안 교육이라면 물불을 가리지 않고 허리가 휘도록 뒷바라지를 해온 탓에 반전문가라 한다해도 손색이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론을 무시하고 ‘제 2의 청계천 프로젝트’라며 토목공사하듯이 밀어붙인다면 자신을 뽑아준 국민을 시험용 쥐 모르모트 정도로 우습게 여긴다는 뜻밖에는 안된다. 청계천 복원 공사 하나 성공했다고 해서 백년대계를 내다봐야할 교육 사업이 단숨에 성공하리라고 자신하는 오만과 독선은 버리기 바란다. 건설과 교육은 엄연히 차원이 다른 레벨이다. 청계천은 서울 사람들이 일하다 지쳤을 때 한번쯤 가볼만한 명소로 가도 그만 안가도 그만인 곳이다. 하지만 교육은 늘상 먹어야 하는 세 끼 밥처럼 하루라도 소홀히 하면 큰병이 나는 필수영양소와 같은 존재이다. 어떻게 선택인 청계천과 필수인 교육을 같은 레벨에 둔단 말인가? 그것도 청계천의 두 번째 프로젝트로 하위에 놓으면서... 자신들이 주창하는 영어교육에 대한 반대 의견이라면 그 어느 말도 들으려하지 않는 고집쟁이 인수위와 이명박 당선자에게 한마디 하고 싶다. 영어몰입교육으로 양산될 영어부진아의 문제는 어떻게 처리할 것인지를... 기초학력부진아의 문제도 해결 못한 판에 남의 나라 말까지도 부진문제를 해결해야하는 이런 수고로움을 무엇 때문에 무엇을 위해서 해야하는지 재차 묻고 싶다. 세계 최고 수준의 교육열을 자랑하고 있는 우리 학부모들, 영어몰입교육 어쩌고 저쩌고 하면 무리를 해서라도 사교육을 시킬 것은 뻔한 이치이다. 영어만 잘하면 앞길이 트인다는데, 자식의 앞날이 창창하다는데야 뭔들 마다하겠는가? 기둥뿌리를 뽑아서라도 영어 천재가 되도록 사교육비에 엄청난 돈을 쏟아부으리라는 것은 불을 보듯 뻔한 이치다. 고등학교를 나와도 영어한마디 못하는 고질적인 문법식 교육에서 벗어나 생활영어 가능한 교육방식으로 선회하겠다는 데는 대찬성이다. 하지만 온국민의 정력을 영어에만 몰입해서 다른 전문분야를 초토화시키는 그런 편협한 교육은 결사반대다. 편식이 몸의 불균형을 가져오듯 편애가 다수의 아이들에게 마음의 상처를 주듯 편중된 교육 정책은 국가적으로도 막대한 손실을 가져올 것임은 삼척동자도 다 아는 일이거늘 왜 똑똑하신 인수위와 이명박 당선자만 모르는지 참으로 기가 막힌 일이다. 해외에서 주로 살아 외국에 대해서는 너무도 잘 아는해외여행전문가이드가 여행객들에게 소리 높여 외치던 말이 생각난다. "괜히 안 되는 영어나 일본말 하려고 하지 말고 당당하게 한국말로 하던지 아니면 바디랭기지로 하세요. 왜 자기 돈쓰면서 바보같이 기가 죽어야 합니까? 제발 그러지 마세요.”
최근 영어교사에 대하여 관심이 증대되고 있다.즉 대통령직인수위원회에서 영어전용교사제를 도입해 2013년까지 2만3000명을 채용하고, 현직 영어교사에 대해 매년 3000명씩 국내외 심화연수를 받도록 하겠다는 방안을 발표한 것은 그 한 예이다. 과연 영어교사는 과연 무엇을 하는 사람일까? 그 직무를 알고 성공적인 영어교사가 되기에 필요한 것이 무엇인가를 알아야 하겠다. 한국고용정보원에서 know라는 시스템을 통하여 영어교사에 대한 직업정보를 제시하고 있는데 이를 기초로 영어교사가 하는 일과 성공적인 영어교사에게 필요한 것이 무엇인가를 살펴보자. 영어교사는 국·공·사립 중, 고등학교에서 교육과정에 따라 학생들에게 영어 교과목을 가르치고 생활을 지도하는 업무를 수행한다. 구체적으로 하는 수행직무를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첫째, 영어 학습내용을 가르치기 위하여 교과서, 시청각 자료, 실험장치와 적절한 교수 방법을 적용한다. 둘째, 학습진단을 위하여 시험을 출제하고 그 결과를 평가하여 성적표를 작성한다. 셋째, 전,입학 등의 학사업무를 처리하고 교직원회의 및 교사연수교육에 참여한다. 넷째, 단체활동이나 특별활동을 지도하고 각종 학교행사를 준비,지도한다. 다섯째, 학업, 인성, 사회적응문제에 관하여 학부모와 상담하고 조언한다. 여섯째, 학문 및 기타 문제에 관하여 학생들을 지도,조언한다. 과연 영어교사는 무엇을 할까? 성공적으로 평가를 받는 영어교사들에게 물어보았다. 먼저 다른 사람들에게 일하는 방법에 대해 가르친다가 100점 만점에 98점으로 가장 높았으며, 새로운 것을 배우거나 가르칠 때 적절한 방법을 활용한다가 88점, 타인의 반응을 파악하고 왜 그렇게 행동하는지 이해한다가 76점, 자기가 알고 있는 것을 다른 사람에게 조리있게 말한다가 75점, 글을 통해서 다른 사람과 효과적으로 의사소통한다 67점, 다른 사람들의 행동에 맞추어 적절히 대응한다가 67점으로 각각 나타났다. 다음으로 필요한 지식의 중요도를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영어를 읽고, 쓰고, 듣고 말하는데 필요한 지식이 99점, 사람을 가르치고 훈련시키는데 필요한 방법 및 이론에 관한 지식이 96점, 생활에 영향을 미치는 다양한 철학과 종교에 관한 지식이 94점, 역사적 사건과 원인 그리고 유적에 관한 지식이 92점, 개인의 신상 및 경력 혹은 정신적 어려움에 관한 상담을 하는 절차나 방법 혹은 원리에 관한 지식이 92점, 사람들의 행동, 성격, 흥미, 동기 등에 관한 지식이 90점이다. 적합한 성격은 다음과 같다. 다른 사람들의 욕구나 느낌에 민감하며 타인을 이해하고 도와주려는 배려가 81점, 혼자 일하기 보다는 사람들과 일하는 것을 좋아하며 타인들과 개인적인 유대관계를 형성하는 사회성이 73점, 비판을 받아들이고, 고도의 스트레스 상황에서도 효과적으로 대처하는 스트레스 감내성이 72점, 타인을 리드하고 다른 사람들이게 의견을 제시하거나 방향을 설정해 준다는 리더쉽이 71점, 매우 어려운 상황에서도 공격적 행동을 보이지 않고 분노를 통제하며 심리적 평정을 유지하는 자기통제가 65점, 다른 사람들과 즐거운 관계를 유지하며 협조적 태도를 보인다가 64점, 장애가 있어도 포기하지 않고 계속 참고 견딘다는 인내가 57점으로 나타났다. 이상 살펴본 한국고용정보원의 자료에 의하면 영어교사는 다른 교과목 교사와 틀린 독특한 직무가 요구되고 성공적인 영어교사에게 요구되는 특성이 있다. 이를 반영한 영어교사의 양성과 보수교육이 이루어져야 하겠다.
인터넷 문화에 대해 접근하는 방법 21세기 초 현재, 우리는 인터넷 문화 속에 살고 있고, 또 인터넷 문화를 생산하고 소비하며 살아가고 있다. 그러나 정작 ‘인터넷 문화의 정체가 무엇인가?’라는 질문에는 선뜻 대답하기가 쉽지 않다. 그것은 인터넷 문화라는 말이 대단히 다양한 의미를 가질 뿐만 아니라, 우리가 일상적으로 생각하고 있는 문화에 대한 관념과 구별되는 인터넷 문화만의 특징에 관하여 정확하게 설명하기 어렵다는 점 때문일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어려움은 인터넷 문화라는 말이나 현상의 뜻을 명백하게 밝히고 규정하는 방식으로 정의(definition)를 내려, 오직 그 범위에 속하는 것만이 인터넷 문화라고 이해하려 할 때 생겨나는 문제이다. 급속하게 변해 가는 현대 사회 속에서 지금 이순간도 새롭게 생겨나는 여러 가지 문화현상들, 그 중에서도 특히 개인이 문화를 생산할 수 있다는 점을 가장 큰 특징으로 삼는 인터넷 문화에 대하여 어느 것은 그 문화에 속하고, 어느 것은 속하지 않는다고 설명하기가 어디 쉽겠는가? 그러니, 인터넷 문화의 범위를 한정하는 대신, 그것을 열린 관점에서 넓은 뜻의 대상으로 바라보고 그것에 속하는 다양한 성질에 관하여 살펴보는 방식을 이용하는 것이 인터넷 문화를 더욱 쉽게 이해할 수 있는 방법일 것이다. 즉, ‘인터넷 문화는 … 이다’가 아닌, ‘인터넷 문화가 가지는 다양한 모습들에는 … 것들이 있다’는 방식으로 이해하는 것이 필요하다. 그리고 이러한 다양한 모습들은 바로 우리 주변의 사례와 통계 자료들을 통해서 바라볼 수 있을 것이다. 인터넷 사용과 관련한 지금의 우리 모습 1997년 초고속 국가 망 서비스가 제공되기 시작하였고 1998년 두루넷이 초고속 인터넷 서비스를 시작한 이래 10년이 지났다. 따라서 인터넷 문화에 관하여 이야기하기 위해서는 먼저 우리나라의 인터넷 이용 현황에 대하여 살펴볼 필요가 있겠다. 먼저, 인터넷 이용률 및 이용자 수의 변화 추이에 관해 조사한 자료는 그림 1과 같다. 새교육 2월호 참조 이러한 자료를 통해 살펴보면, 우리나라의 인터넷 이용은 확산기를 거쳐 성숙·안정기에 접어들고 있는 가운데 안정적 증가세를 지속하고 있는 것을 알 수 있다. 가장 최근에 조사가 이루어진 2006년 12월을 기준으로 하였을 때, 우리나라 사람 4명 중 3명은 한 달에 한 번 이상 인터넷을 사용한다는 것이니, 인터넷은 바로 우리 삶의 한 부분을 차지하고 있는 것이라 말해도 과언이 아니다. 인터넷 이용자들의 하위 구성 요인을 좀 더 자세히 살펴본 자료는 그림 2와 같다.새교육 2월호 참조성별로는 남성에 비해 여성의 인터넷 이용률이 약간 떨어지는 모습을 보이고 있지만, 이는 앞으로 정보화에서의 양성평등을 위해 여성의 정보화교육 및 인터넷 이용이 더욱 활발해져야 할 필요성을 나타내는 것으로 볼 수 있다. 또한, 연령별 이용자 수를 살펴보면, 인터넷이 상용화되기 이전의 세상과 이후의 세상을 동시에 경험하며 살고 있는 장년층 이후 세대의 인터넷 이용률이 상대적으로 크게 증가하고 있다는 점이 큰 특징으로 나타나고 있다. 특히, 40대의 경우 6.2%, 50대의 경우 7.2% 라는 주목할 만한 인터넷 이용률 증가 추세를 보이고 있다. 그렇다면, 우리나라 사람들은 인터넷을 얼마나 이용하고 있으며, 주로 사용하는 시간대는 언제일까? 우리나라 인터넷 이용자는 주당 평균 13.7시간, 즉 하루로 따지자면 대략 2시간가량 인터넷을 즐기는 것으로 나타났다. 그러나, 주당 평균 35시간 이상, 즉 하루 5시간 이상 인터넷을 사용하는 사람들 또한 10명 중 1명 이상으로 나타나 인터넷의 과다사용과 관련된 문제도 심각한 사회 문제로 등장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인터넷을 주로 이용하는 시간대는 평일의 경우 저녁 7시에서 밤 11시 사이의 밤 시간대에, 주말 및 휴일의 경우는 오후 1시에서 오후 5시 사이의 낮 시간대에 인터넷을 많이 이용하고 있는 것으로 조사되었다. 평일의 경우 낮 시간에는 학교에 있거나 기타 업무에 종사하는 시간이 대부분이므로, 그 이외의 시간에 인터넷을 이용하기 때문에 당연히 이런 모습을 보이는 것이 아닌가 생각된다. 사람들이 인터넷을 이용하는 목적을 조사해서 유형별로 분류한 결과는 다음과 같이 제시되고 있다. 인터넷 이용자들의 80% 이상이 자료 또는 정보획득, 커뮤니케이션, 여가활동 등을 위해 인터넷을 이용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남성은 여성보다 커뮤니케이션, 여가활동, 금융, 동호회, 전자민원, 소프트웨어 다운로드 및 업그레이드 등의 이용 비율이 높았고, 여성은 남성보다 인터넷 구매·판매, 홈페이지(블로그) 운영, 교육·학습 이용 비율이 상대적으로 높은 모습을 보이고 있다. 한편, 연령별로는 연령이 낮을수록 여가활동과 교육·학습을 위해 인터넷을 이용하는 비율이 높고, 20∼30대 이용자는 거의 모든 범주에서 이용률이 상대적으로 높게 나타나고 있다. 웹 2.0과 참여의 인터넷 문화 우리의 인터넷 사용과 관련한 이러한 통계 자료들은 인터넷 이용자들의 수적 증가라는 외형을 나타내 보이고 있지만, 그러한 수적 변화는 ‘웹 1.0’에서 ‘웹 2.0’을 향해 나아가는 질적 변화로 연결되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웹 2.0이란 기존의 웹이 한 단계 진화했음을 의미하는 것이다. 이 단어를 처음 제안한 사람은 오라일리 미디어(O'Reilly Media)의 부사장인 데일 도허티(Dale Dougherty)인데, 이것은 수직 상승하던 닷컴 기업의 거품이 꺼져 일어난 급격한 붕괴가 웹에 일종의 전환점을 찍었다는 점을 표현하기 위해 제안한 용어이다. 이는 또한 닷컴 붕괴 이후 살아남은 회사들의 공통점을 나타내는 것이기도 하다. 웹 1.0과 웹 2.0의 가장 큰 차이점은 커뮤니케이션 구조와 깊이 관련되어 있다. 웹 1.0은 쌍방향적 직접 네트워크라는 인터넷의 기본 사상에서 출발했음에도 불구하고 실상은 TV나 신문과 같은 단방향적 정보제공 수단의 역할 밖에 수행하지 못하는 거대 미디어로의 모습을 보였다는 점에서 개선의 여지를 가지고 있었다. 이에 대해 웹 2.0은 개방, 참여, 공유를 모토로 하여 참여자 모두가 하나가 되어 웹을 만들어 나가는 것이다. 즉, 사용자가 직접 콘텐츠를 만들고, 네티즌끼리 콘텐츠를 서로 나누며, 웹사이트 운영자는 사이트를 모두에게 오픈하는, 웹 2.0의 기본 정신에 부합하는 웹사이트가 폭발적 성장세를 기록하는 모습을 보이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네티즌의 참여와 공유에 기반한 동영상 UCC(User-Created Contents)는 웹 2.0 서비스와 맞물려 현재 최대의 화두가 되고 있다. 자발적 참여와 공유, 재미성과 창의성이 가미된 UCC는 이제 사회 전반으로 확산되고 있다. 바로 얼마 전까지(어쩌면 아직도) 우리 사회를 뒤흔든 원더걸스의 ‘Tell me’ 신드롬이 바로 그 대표적 사례이다. 길 가던 서로 모르는 사람들끼리도 뜬금없이 의기투합해서 어깨를 흔드는 춤을 함께 추는 모습을 찍어 동영상으로 인터넷에 올릴 정도니, 대단하지 않은가? UCC의 확산 범위는 인터넷 포털뿐만 아니라 대통령 선거운동에 이르기까지 거침없이 질주하고 있다. 콘텐츠 측면에서도 요리법이나 포토샵 사용법 등 생활에 유용한 동영상들이 인기를 끌면서 등장한 재미 위주의 UCC가, 점차 전문성을 강조한 PCC(Proteur Created Contents), 즉 프로급 아마추어가 제작한 UCC로 진화하고 있다. 이러한 동영상 UCC들은 미국의 유튜브(www.youtube.com)가 대표적이며, 우리나라의 경우 기존의 포털 사이트와 더불어 곰TV(gomtv.ipop.co.kr), 판도라 TV(www.pandoratv.com), 엠군(www.mgoon.com), 아프리카(afreeca.pdbox.co.kr) 등의 사이트가 대표적인 동영상 UCC 사이트로 운영되고 있다. 비단 동영상 UCC 이외에도 웹 2.0의 추세에 부합하는 사이트는 여러 형태로 존재하고 있다. 네티즌들이 인터넷을 통해 정보와 의견을 공유하고 여론을 형성하는 인터넷 저널리즘 또한 이에 해당하는 것이다. 정치 웹진과 논객 사이트, 인터넷 게시판의 댓글 등은 토론과 대화의 문화를 더욱 활성화 시키는 공론의 장을 마련한다는 점에서 매우 중요한 문화적 의미를 가진다. 댓글 문화는 자칫 놓치거나 누락될 수 있는 정보를 보충함으로써 독자들의 이해를 깊게 할 수 있고, 의견 교환을 통해 공적 여론을 형성하며, 이는 또한 정부 관계자들이 민의를 파악할 수 있도록 정보를 제공하는 수단이 되기도 한다. [PAGE BREAK] 인터넷 문화의 어두운 모습들 그렇다면, 인터넷 이용자들의 참여가 점점 늘어나고 있는 지금 우리의 인터넷 문화가 긍정적인 모습만을 보이고 있는 것은 아니라는 사실은 누구나 공감하고 있지만 그 구체적인 모습은 어떨까? 정보통신윤리위원회가 2006년 6월에 실시한 ‘인터넷정보 이용실태 조사’는 우리의 인터넷 문화를 돌아보게 한다. 인터넷 이용자들 스스로가 매우 심각하게 대두되고 있는 인터넷 역기능들이라고 인식하는 것들은 사이버 음란물, 개인의 명예훼손, 헛소문 유포, 언어폭력 등 모욕, 자살유도행위, 도박 등 사행 행위, 폭력 행위 조장, 불법 다단계, 폭탄 제조 등인데, 이것 중 사이버 음란물과 도박 등 사행 행위 및 불법 다단계 등을 제외한 대부분은 사이버 공간에서 다른 사람에게 신체적·정신적 피해를 가하는 폭력 행위로서 사이버 폭력에 해당한다고 볼 수 있다. 특히 네티즌들이 가장 심각한 사이버 폭력의 유형으로 제시하는 것은 개인의 명예훼손과 언어폭력 등 모욕인데, 이것은 인터넷 주 이용층인 청소년들의 경우 매우 큰 영향을 받을 수 있다는 점에서 문제가 되고 있다. 특히 이러한 사이버 폭력은 인터넷 뉴스 댓글에서 벌어지는 설전과 상호 비방 등을 통해서 가장 많이 접촉하게 된다. 2007년 1월 새해벽두를 뒤흔들었던 여가수 유니의 자살사건은 네티즌들의 악성 댓글이 원인이었던 것으로 밝혀지지 않았던가. 이러한 실태와 더불어 문제가 되는 것은 사이버 폭력에 접촉하였을 때 특별한 조치를 취하지 않는 사람들이 많다는 것이다. 이 자료만 보면 사이버 폭력에 대해, 혹시 우리 사회가 강력하게 대처하지 못하는 것은 아닌지, 또한 실질적인 피해 구제 대책이 없기 때문은 아닌지 하는 우려를 가질 수 있다. 하지만 실제로는 사이버 폭력에 대해 적극적인 대처 방법을 알지 못해서 그러한 것은 아닌지, 어쩌면 우리는 폭력에 무디어진 사회를 살고 있는 것은 아닌지 등에 관해 돌아보는 노력이 먼저 이루어져야 할 것이다. 가. 지위비행 인터넷 문화 속의 다양한 어두운 모습들은 세 가지 형태로 나타나고 있다. 그 첫 번째는 성인에게는 허락되지만, 청소년들에게는 허락되지 않는 지위비행이다. 마치 현실에서의 음주나 흡연과 마찬가지로, 성인에게는 허락되지만 청소년들에게는 허락되지 않는 영역이 존재하는데 그것을 침범하는 것이다. 물론, 성인에게조차 허락되지 않는 음란물도 있지만 이것은 엄격한 규정에 의해 제한되고 있으므로 그것을 어기는 것은 현실 공간에서의 풍속범죄와 마찬가지로 이해될 수 있을 것이다. 나. 특수 사이버 범죄 두 번째는 해킹이나 바이러스 유포 등 정보통신 공간 자체에서만 발생하는 특수한 유형의 사이버 범죄이다. 이것은 현실 공간 속에서는 일어날 수 없는 사이버 공간이라는 기술적 특성을 배경으로 하는 것이기에, 전문적 지식이 없는 일반인들이나 청소년들은 쉽게 저지를 수 없는 유형의 범죄라고 할 수 있다. 다. 정보통신 공간 속의 사회적 일탈 세 번째는 정보통신 공간 속에서 일어나는 다양한 사회적 일탈 등과 그로 인해 발생하는 범죄들이라고 할 수 있다. 어느 사회, 어느 공간에나 일정한 규칙이 존재하고 그러한 규칙을 지키는 사람들이 대부분이지만, 그것을 어기는 소수의 사람은 존재하기 마련이다. 이는 인터넷 문화에서도 마찬가지다. 그런데, 인터넷 문화에서 함께 살아가는 사람들이 서로 지켜야 할 약속을 어기는 행위가 일탈 수준에서 머무른다면 바로 잡고 돌아올 여지가 있지만, 특별히 해로운 행위에 해당하여 법률로 엄격하게 처벌을 시도하는 범죄로 연결된다면 이는 무엇보다도 자신의 삶에 가장 큰 피해를 입히는 행동이 될 것이다. 바로 이러한 점에서 인터넷 윤리는 다른 사람을 배려하는 동시에 자기 자신을 보호하기 위해서라도 반드시 필요한 것이라 하겠다. 건전한 인터넷 문화를 향하여 문화의 한 영역이 기술적인 부분의 발전을 통하여 인간의 외적 한계를 극복하고자 하는 것이라면, 다른 한 영역은 윤리적인 부분의 성숙을 통하여 인간의 내면적 한계를 극복하는 것이 되어야 마땅할 것이다. 자동차라는 새로운 교통수단이 생겨나게 되었을 때, 그것은 우리 인간이 가지고 있는 육체적이고 외적인 한계를 극복하여 빠른 속도로 멀리까지 이동할 수 있도록 해 주었다. 그러나 동시에 생겨나는 사고와 여러 가지 문제점은 교통규칙 준수와 양보운전 그리고 보행자 우선이라는 자동차 문화의 필요성을 절감하게 해 주었다. 이는 곧 자기의 편리함만을 추구하며 자동차를 운행하겠다는 이기적인 욕심을 극복하는 윤리적이고 내면적인 한계의 극복이 필요하다는 점을 보여주는 것이었다. 이러한 모습들은 인터넷 문화에서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정보통신기술의 발달이라는 기술적 발전은 우리의 외적 한계를 극복하여 누구나 빠른 속도로 의사소통을 할 수 있게 하였다. 이에 발맞추어 정보통신기술을 이용하는 사람들은 그에 맞는 윤리적이고 건전한 인터넷 문화를 요청하고 있다. 인터넷 문화는 참여하는 사람들에 의하여 스스로 생성되고 만들어져 나간다는 점에서 진화하는 것이라 할 수 있다. 진화의 맥락에서 긴 인류의 역사를 돌아보았을 때, 이기적인 것이 생존에 적합한 것이라면 상호 협조적인 존재는 멸종해 버렸어야 마땅할 테지만, 오히려 이기적인 존재들이 적응에 실패하고 도태되어 버린 모습을 우리 스스로가 보고 있지 않은가? 그렇다면 앞으로 더욱 넓게 펼쳐질 정보화 사회의 역사에 있어서도 마찬가지로 건전한 인터넷 문화는 우리 스스로의 생존을 위해서 반드시 필요한 것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따라서 사이버 공간을 규율하는 질서는 건전한 인터넷 문화로 수렴하게 될 것이니, 함께 지켜보도록 하자.
정보가 중요한 가치를 갖는 사회 지구의 자연환경이라는 것이 무궁무진한 것이어서 아무리 쓰고 개발하고 해도 끝이 없을 것이라고 생각하던 시대에는 ‘환경 윤리’라는 말이 없었다. 환경이라는 것이 특별한 관심을 받을 만큼의 가치를 갖지 못한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무엇인가가 사람들에게 중요한 의미와 가치를 가지고 있어서, 모든 사람들이 그것을 갖고 싶어 하고 더 많이 누리고 싶어 하여 서로 경쟁과 다툼을 벌이는 경우가 되어서야, 그 대상물을 “보다 인간다운 방식으로 잘 다루어야만 한다”라는 깨달음과 요구가 생겨나게 된다. 농경 사회에서는 좋은 기후의 넓은 농토가 그러한 대상이었고, 산업사회에서는 생산기술과 기계가, 자본주의 사회에서는 무엇을 만들어내는 것보다는 자본 그 자체가 그러한 대상이 되었다. 이제 정보사회에서는 정보가 바로 그러한 중차대한 가치를 가진 선망의 대상이 된다. 정보가 갖는 가치가 워낙 중요하고 크기 때문에 함부로 다루거나 무원칙하게 되는대로 내버려둘 수가 없게 된 것이며, 사람들은 정보를 보다 합리적이고 공정하며 민주적으로 취급할 것을 바라게 되었고, 효율성만을 찾는 경제적 방식이나 힘의 우위에 따라 결정하자는 정치적 방식보다는 인간적인 올바름을 추구하는 ‘윤리적 방식’을 필요로 하게 된 것이다. 돈, 힘이 되며 진실을 결정하기도 해마다 수많은 학생들이 인터넷에서 비윤리적 잘못을 범하고 정보관련 범죄를 저질러 처벌을 받곤 한다. 법정에서 유죄판결을 받아 청소년 사이버범죄사범이라고 불리는 이들을 만나 상담을 해 보면, 자신이 한 일이 왜 나쁜 짓이고 범죄로 인정되어 처벌까지 받는가를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는 학생들이 많다. 그냥 별다른 악한 의도도 없이 한 일이고, 재미로 한 번 해본 것일 뿐인데 왜 이렇게까지 어른들이 호들갑을 떠는지 이해도 되지 않고 억울하기만 하다는 것이다. 이들에게는 처벌보다 먼저 정보가 갖는 위력과 가치의 중차대함을 알려주어서 깨우치도록 해야 한다. 정보사회에서 정보는 그 자체가 ‘재화로서의 가치’를 갖는다. 사소하고 별 것도 아닌 듯이 보이는 정보가 잘 가공되고 조심스럽게 유통되면 엄청난 금전적 가치를 갖게 되기 때문이다. 오늘과 내일의 날씨가 흐릴 것이다, 맑을 것이다, 바람이 불 것이다, 비가 올 것이다 등에 관한 정보인 ‘날씨 정보’ 하나만 가지고도 한 해에 190억 원 가량의 국내 시장에서 큰돈을 벌어들일 수 있다. 이웃 일본의 경우는 3000억 원 규모, 미국시장은 1조원 규모, 전 세계적으로 보면 기상정보 시장의 규모는 1년에 5조원으로 평가되고 있다. 정보가 빛처럼 빠르고 넓게 확산되는 인터넷 시대에는 한두 개의 업체가 가공하는 기상 정보가 전 세계 시장을 석권할 수도 있다. 이처럼 상상하기 어려울 정도로 큰돈이 될 수 있는 내 정보를(내가 생산한 정보이든 가공한 정보이든) 다른 누군가가 함부로 복사하거나 변형시키거나 팔아넘긴다면, 그것은 누구도 그냥 참고 넘어갈 수 없는 일이다. 그래서 우리는 타인의 정보를 조심스럽게 소중히 다루며, 사용할 때에는 정당한 대가를 지불하는 것이 인간으로서 마땅히 지켜야만 할 올바른 자세, 즉 윤리적인 자세라고 강조하면서, 그것을 심각하게 어길 경우를 범죄로 규정하고 처벌을 가하게 된다. 불법 복제나 저작권 침해 등의 다양한 문제들이 정보가 갖는 재화로서의 가치를 둘러싸고 제기되고 있으며, 점차로 더 큰 돈이 걸리게 되면서 분쟁의 빈도와 심각성은 갈수록 높아져만 가고 있는 실정이다. 별로 돈이 되지 않을 것처럼 보이는 사소한 정보라 할지라도 그것이 불평등하게 유통되었을 때에는 윤리적 문제가 제기될 수 있다. 정보가 어느 한쪽에게만 일방향적으로 집중되고, 다른 편에 있는 사람은 자신과 관련된 정보가 누구에게 흘러가고 있으며 어떻게 사용되고 있는가를 알 수조차 없다고 한다면? 정보가 ‘권력으로서의 가치’를 갖고 있기 때문에 정보의 유통 흐름은 쌍방향적이고 민주적이어야만 한다는 요구가 생겨나게 된다. 어둠 속의 누군가가 밝은 곳에 있는 나를 감시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지만 그 감시자의 눈초리를 볼 수 없을 때, 우리는 위축되고 불편함을 느낄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인터넷과 무선정보통신이 일상화된 상황 속에서 개인의 프라이버시가 함부로 노출되고, 나와 관련된 개인정보들이 마구 공개되거나 팔려나가는 상황을 편한 마음으로 방관할 수는 없는 일이다. 돈도 걸려있지 않고 권력의 문제를 야기하지도 않는 그야말로 특별할 것이 없는 정보라 할지라도 심각한 정보윤리의 쟁점이 될 수 있다. 진실과 거짓, 실제와 허구를 확실하게 구별하고 확신을 가질 방법이 없어져버린 대량 정보 유통의 사회에서는 정보가 ‘존재로서의 가치’를 갖기 때문이라고 설명될 수 있다. 인터넷에서 나에 대한 그릇된 헛소문이나 잘못된 정보가 대량으로 유통되고 있는데, 내가 아무리 해명을 해 보아도 귀 기울여 주는 사람이 없다면 얼마나 답답한 노릇일까? 내가 하지도 않은 일을 했다고 하는 정보가 인터넷에서 대량으로 복제되고 파급된다면, 그런 경우에는 정말 내가 그런 일을 했느냐라는 진실의 규명 여부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얼마나 많은 사람에게 얼마나 빠른 속도로 정보가 유통되고 있는가와 그것을 막을 수 있는가 없는가가 더 중요한 문제가 될 것이다. 사이버 명예훼손이나 거짓정보 유통, 정보의 왜곡과 조작, 공정보도와 해명권 등의 문제가 인터넷 시대에는 이전보다 훨씬 더 심각한 범죄로 취급되는 까닭이 여기에 있다. 왜 정보 윤리에 관한 ‘교육’이 중요한가? 인터넷윤리교육 혹은 정보윤리교육(정보 윤리는 인터넷 윤리를 포함하고 있는 더 넓은 개념으로 이해될 수 있다)에 대한 사회적 요구가 높아지고 있는 것은 문제가 되고 있는 정보의 가치가 갈수록 더 커지고 있기 때문이다. 혹자는 한국 사회의 지나친 보수성과 공동체주의가 성급하게 윤리교육과 같은 사회적 대응을 요구하고 있는 것이라고 비판하기도 한다. 초창기라 문제가 생기는 것이 당연하고, 조금만 더 참고 느긋하게 기다리면 인터넷과 정보시장 자체가 성숙되고 안정을 찾게 될 것이라고 보는 자유주의자의 주장이다. 누구나 인터넷이라는 무한한 정보의 바다를 처음 접했을 때에는 음란물이나 불법복제물과 같은 붉은 물의 바다에 호기심을 갖게 되고 탐닉하게 되지만, 조금 더 시일이 지나면 그러한 말초적 자극에 질리게 되면서 보다 건설적이고 창조적이며 의미 있는 정보를 찾아 나서게 될 것이라는 낙관적인 생각에도 일리가 있음은 분명하다. 우리가 냄비처럼 지나치게 호들갑을 떨고 있는지도 모를 일이다. 정보법학의 석학인 로렌스 레식(L. Lessig)도 ‘시장에 맡기는 대응’을 언급한 바 있다. “악화(惡貨)가 양화(良貨)를 쫓아낼 가능성”도 분명 존재하지만, 저급 정보는 내버려두면 그 자체가 소비자의 외면을 받아 시장에서 도태될 것이라는 방임주의적 대응도 하나의 방법일 수는 있다. 그러나 불확실성이 지배하는 상황 속에 실제로 살아가고 있는 우리의 어린 학생들을 그러한 모험의 실험물 내지는 희생양으로 방치할 수는 없는 일이다. 필자의 주장은 ‘보다 현명하고 안전한 선택으로서의 성악설적 접근’으로 요약될 수 있다. 시장과 인간의 본성이 본래부터 착한 것이어서 간섭 없이 내버려두면 저절로 나쁜 것을 정화할 능력을 가졌을 지도 모르고 혹은 그렇지 않을 지도 모르는 불확실성의 상황이라면, ‘항상 최악의 경우를 예상하고 그에 대비하는 자세’가 곧 ‘현명한 선택’이 아니겠는가? 끊임없이 올바른 길을 가르치고 개입하며 지도를 아끼지 않아야 겨우 착한 행동을 할 수 있는 학생들이라고 생각하고 정보윤리를 교육했는데, 지나고 보니 나름대로의 자정능력을 갖춘 선한 본성의 학생들이었음이 밝혀진다고 해도 큰 손해는 없을 것이다. 그러나 반대의 경우처럼 그들의 능력과 본성을 믿고 내버려두었는데, 지나고 보니 지대한 관심과 손길이 필요했던 아이들이라면 그때에는 이미 돌이킬 수 없는 결과를 어찌 할 수 있겠는가? 레식은 윤리에 호소하는 교육과 캠페인 등의 대응을 촌스러운 것이라고 생각했다. 선진사회일수록 윤리보다는 기술에, 기술보다는 법률에 더 많이 의존한다는 것이 산업사회까지의 일반적인 현상이라는 것이 그의 분석이다. 거기에서 한걸음 더 나아가 그는 정보기술의 발전 때문에 새롭게 생겨난 정보윤리 문제들은 기존의 교육과 기존의 법률로는 충분히 제어할 수가 없다는 점에 주목했다. “기술 때문에 생긴 문제는 기술로 풀어나가자”라는 생각에서 그는 DRM(정보콘텐츠의 지적재산권을 관리하는 디지털 기술-온라인으로 돈을 지불해야만 들을 수 있는 음악파일이나 논문파일 등이 좋은 예가 된다)이나 음란물 필터링(음란물 콘텐츠의 내용을 컴퓨터의 인공지능이 판단하여 자동으로 차단하거나 삭제하여 아동을 보호하는 기술) 등의 기술적 대응이 가장 바람직한 수단이라고 주장한 것이다. 문제에 대한 대응보다 더 빠른 인터넷 기술 필자는 여기에서 한걸음 더 나아가 윤리적 대응을 최고 우위에 두고, 법률과 기술이 윤리적 대응을 도와주고 손발을 맞추어 협력해 나가는 체제가 되어야 함을 주장하고자 한다. 법률적 대응과 기술적 대응도 분명 필요하고 즉각적인 효력을 갖고 있기 때문에 많은 노력을 기울여야 할 대상임은 분명하다. 그러나 법률과 기술은 인터넷에서 벌어지는 정보윤리 문제들과 관련해서는 뚜렷한 한계점들을 노출하고 있고, 설상가상으로 심각한 부작용의 문제점까지 드러내고 있기 때문에 그들에게만 의존하고 있을 수는 없다고 보기 때문이다. 사이버 포르노 문제를 필터링이나 차단 프로그램에만 의존해서 해결할 수는 없다. 포르노 업자들은 필터링에 걸리지 않도록 전혀 음란성이 없는 단어들로만 사이트를 구성하고 홍보하여 그물망을 빠져나가지만 소프트웨어는 그러한 유연한 잔머리 굴리기를 이해할 수가 없다. 아무리 차단하고 거르려고 노력해도 헛수고가 될 뿐만 아니라, 그러한 차단의 그물망을 빠져나간 콘텐츠에 대해서는 이용자들이 아무런 죄책감을 느끼지 않게 된다는 부작용까지 나타나고 있는 실정이다. 음란물 처벌에 관련된 다양한 법률들을 아무리 빠른 속도로 개정하고 정교하게 적용한다고 해도 문제를 해결할 수는 없다. 법망의 그물코를 조이면 조일수록 그것을 빠져나가기 위한 노력은 더욱 변태적인 방향으로 진화하게 된다. MP3 파일을 무한정으로 공유할 수 있도록 환경을 제공했던 소리바다 서비스를 법률로 처벌하고자 했던 공권력의 시도들이 매번 새로운 기술과 새로운 서비스 유형 변경 등의 저항에 의해 실효를 거두지 못했던 경험은 법률적 대응과 기술적 대응의 한계를 잘 보여주고 있다. 그런 경험의 누적은 이용자들이 불법복제와 불법배포 행위 자체에 대해 무감각해지도록 만드는 부작용을 낳고 있다. 윤리 교육만이 근본적인 해결책 윤리에 호소하는 교육적 대응은 효력 자체가 미미하고 즉각적으로 나타나지도 않는 한계를 갖고 있지만, 가장 근본적으로 문제 해결에 접근하는 방안이라는 점에서 중요성을 갖는다. 사이버 포르노나 불법 복제, 프라이버시 침해 등의 정보윤리 문제들에 대한 현재 우리 사회의 대응들은 서로 손발을 잘 맞추지 못하고 있는 경우가 많다. 교육에서는 나쁜 일이라고 강조하고 있는 행위가 법률적으로는 버젓이 합법적인 범주에 들어간다거나, 기술적으로 충분히 막아낼 수 있는 일임에도 불구하고 그러한 차단 기술 자체가 불법으로 묶여있다거나 하는 경우들이 있다는 것이다. 앞으로 우리가 나아가야 할 방향은 윤리적 대응을 중심에 두고, 그것이 제시하는 방향을 나아가기 위해 법률과 기술이 힘을 합쳐 서로 돕는 유기적인 협조체제를 구성하는 것이 되어야 함을 강조하고 싶다. [PAGE BREAK] 충분히 알고, 느끼며, 행동하게 해야 인터넷에서 발생하는 혹은 인터넷을 매개로 발생한 여러 가지 윤리 문제들에 관해 “그것이 왜 잘못된 일이며, 어떤 피해를 낳고, 어떤 정도의 처벌을 받게 되는가?”에 관한 지식 정보를 먼저 가르쳐야 한다. 몰라서 한 나쁜 짓도 엄연히 나쁜 짓이지만, 똑똑하게 알아야 착한 일도 제대로 할 수 있다는 의미에서 인지 영역의 윤리적 지식 정보 내용은 매우 중요하게 다루어져야 한다. 정보의 가치 유형에 대한 이해에 기초하여 어떤 행위가 왜 도덕적으로 올바른 것인지 혹은 왜 올바르지 않은 것인지를 제대로 알고, 합리적인 분석과 판단을 스스로 내릴 수 있는 능력까지 다루는 것이 정보윤리교육의 인지 영역이다. 인터넷 환경의 특성에 대한 이해와 정보범죄 관련의 법규 지식, 올바른 판단을 내릴 수 있도록 판단 기준이 되는 윤리학적 이론에 관한 공부들이 모두 이 범주에 포함되어야 한다. 다음으로는 아는 것과 행동하는 것이 별개인 사람을 만들지 않도록 ‘진심으로 도덕적인 선함을 사랑하고 악함을 미워하는 마음과 태도’를 강조하는 정의 영역이 중요하게 다루어져야 한다. 정서와 의지는 동전의 양면과 같아서 불법복제의 불법성을 충분히 아는 사람도 진정으로 그것의 악함과 피해자의 고통을 제대로 ‘느끼지 못하면’, 전후의 모든 교육이 아무런 소용이 없게 된다. 알지만 편리하니까 불법복제를 저지르는 아이들에게는 피해자들의 처절한 고통과 분노가 전해질 수 있도록 아이들의 마음을 자극하는 교육내용들이 필요한 것이다. 이성 보다는 정서에 곧바로 호소하는 정의 영역에 대한 강조는 윤리교육의 중요한 특성이기도 하며, 보다 많은 시간과 노력이 투자되어야 마땅한 영역이다. 끝으로 행동 영역에서는 “한 번이라도 연습으로라도 해본 사람이 잘 할 수 있다”라는 생각을 기초로 삼고 있다. 헌혈을 대표적인 예로 들 수 있겠다. 헌혈이 얼마나 도덕적인 행위이며 사회적으로도 필요한 것인가를 누구나 충분히 알고는 있지만, 피가 부족해 고통 받는 환자들의 영상을 보면서 모두가 그 아픔에 공감하고 분노를 느끼기도 하지만, 직접 자신이 나서서 헌혈을 실천하는 비율은 남녀의 성별 차이가 68.4:31.6으로 현격하다. 남자보다 여자가 헌혈에 대한 이해가 부족해서는 아닐 것이다. 오히려 혈액을 필요로 하는 환자의 고통에 대한 감수성은 여자가 훨씬 더 높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실제 실천에서 이러한 차이를 보이는 원인 중의 하나는 ‘구체적인 경험의 유무’로 분석해볼 수 있을 것이다. 남자들은 군대와 직장에서 단체 헌혈의 경험을 상대적으로 많이 갖고 있다. 강제로 했건 아니건 간에 한 번이라도 헌혈을 해보았던 남자들은 이후에도 큰 부담 없이 헌혈에 나설 수 있기 때문에 젊은 시절 이후에도 지속적인 차이를 보이게 된다. 인터넷에서 우리가 알고 느끼고 실천해야 할 정보윤리의 이론들은 불법복제와 음란물 차단, 개인정보 보호 등으로 매우 다양하다. 이때 교육의 마무리는 반드시 ‘직접적으로 경험해 보는 연습’이 되는 것이 바람직하다. 자신의 PC에 설치되어 있는 불법 소프트웨어를 찾아내는 자동검색 프로그램을 직접 다운로드 받아 실행시켜 보는 경험, 사이버 성희롱의 사건을 사이버성폭력 신고센터에 접속해서 직접 신고서 양식을 채워보는 경험, 개인정보 침해 피해 사실을 신고하기 위해 증거화면을 직접 캡처해서 양식에 첨부해 보는 경험들이 강조되어야 한다는 뜻이다. 이를 위해 시뮬레이션 프로그램이나 연습용 사이트들을 마련하는 일의 필요성도 매우 시급하다. ‘습관화’부터 교육해 사회 가치로 여기게 해야 인터넷과 정보에 관련된 윤리 문제가 심각함에 동의하고, 법률이나 기술에 호소하는 것보다 윤리교육에 투자하는 것이 보다 근본적인 대책이며 중요한 사업임을 알았으며, 인지와 정의와 행동 영역이 고르게 발달된 통합적 인격을 강조하는 교육이 중요함에 대해 공감하였지만, 실제 학교에서 도덕과, 컴퓨터과, 사회과 등의 교과목 수업 시간에 교재와 교육과정을 가지고 정보윤리 수업을 진행하기 위해서는 아직도 넘어야 할 산이 많다. 어떤 내용을 어떤 순서로, 어떤 깊이까지 가르칠 것인가를 결정하는 문제는 그 중 가장 첫 번째 맞닥뜨리게 되는 험한 산이다. 필자는 ‘학생의 도덕성 발달 단계에 맞추어’라는 기본 원칙의 중요성을 강조하고자 한다. 가. 초등 저학년 ‘습관화’가 키워드 초등학교에서의 인터넷 윤리는 저학년과 고학년을 구분하여 실시해야 할 것이다. 왜 인터넷 사용 시간을 줄여야 하는지, 왜 어떤 정보나 사이트는 가서는 안 되는지를 이해시키고 공감을 갖게 한 후에 실천을 요구하기에는 너무 어린 저학년 아동에게는 ‘습관화로서의 정보윤리교육’이 무엇보다 강조돼야 한다. 나. 초등 중학년 ‘정서’에 초점 초등 중학년의 경우에는 ‘정서에 초점을 둔 정보윤리교육’이 강조될 필요가 있다. 불법복제를 하지 말고 정품을 사용하라는 이야기를 카피라이트와 카피레프트의 사회 철학적 이념 이해를 토대로 한 이성적 설득을 통해 전달하기에는 인지능력의 한계가 있기 때문이다. 물론 기초적인 지식 전달은 함께 이루어져야 하겠지만 이 시기의 아동들에게는 이성적 이해에 근거한 선택보다는 정서적인 감동과 분노에 기초한 실천 의지를 기르는 것이 더 강조되는 것이 바람직하다. 다. 중학 충분한 지식전달과 이해가 중요 초등 고학년과 중학 1, 2학년까지는 정보윤리의 각종 문제들에 대해 정보의 개념과 특성, 인터넷의 구조와 위력, 관련 문제들의 현황과 심각성, 대처 방안들의 효율성과 한계 등에 관한 충분한 지식 전달과 이해를 추구하는 것에 초점을 두는 것이 필요할 것으로 본다. 새로운 정보를 가장 왕성하게 받아들이고 소화해내는 기간이기 때문이다. 사춘기를 본격적으로 경험하고 벗어나기 시작하면서부터는 인지, 정의, 행동 어느 한 영역에 초점을 두기보다는 세 영역을 고르게 강조하면서 스스로의 내면적 인격으로 통합할 수 있도록 개별화된 지도를 하는 것이 필요하지만, 현재의 학교 교실 상황으로는 그러한 개별화된 상담과 지도가 어려운 실정임이 아쉽다. 라. 고교, 대학 ‘정언명법’ 추구해야 고교 고학년과 대학 수준에서는 통합적 인격으로 내면화된 도덕성이 사회규범에 대한 자발적인 동의와 헌신이라는 자율성의 수준을 넘어설 수 있도록 이끄는 ‘보편화 가능성에 근거한 정언명법의 추구’를 강조하는 것이 이상적일 것이다. 학교에서의 교육뿐만 아니라 가정에서 학부모가 자녀들에게 인터넷 사용 습관과 정보 윤리적 태도를 지도할 때에도, 이러한 학생들의 인지적 발달 단계와 도덕성 발달 단계를 염두에 두면서 각 단계에 적합한 인지적 지식과 정서적 공감 및 행동적 기능을 가르치는 것이 필요하다. 현재 있는 교과목도 없애고 줄여야만 하는 교육 현실을 감안할 때, 이러한 논의 자체가 지나치게 이상주의적인 점은 기꺼이 인정할 수 있다. 그러나 이러한 이론적 관점과 기준에 근거하면서 인터넷 윤리 혹은 정보윤리 교육의 교육과정 계열성과 지도 방법의 특성에 관한 논의가 앞으로 더 깊이 있게 이루어져야 한다는 주장은 양보할 수 없다. 더 많은 논의는 지면 관계상 또 다른 기회로 미루어야 하겠다.
지난 봄 독일 남부 바이에른주의 어느 학교에서 생긴 일이다. 라틴어 성적이 부진했던 급우가 퇴학당한 일에 앙심을 품은 소년들이 교사 처형 장면을 동영상으로 만들어 인터넷에 올렸다. 문제의 교사는 엄격하기로 악명이 높았고, 그 학교의 거의 모든 학생들이 라틴어 과목에서 저조한 성적을 받았었다. 소년들은 문제의 라틴어 교사 사진을 구해 머리 부분을 붙이고 몸은 만화로 그려 동영상을 만들었다. 이 동영상엔 문제의 교사가 길을 걷는 장면이 나오다가 갑자기 총이 나타나 머리를 쏜다. 그러면 피를 뿌리며 머리가 굴러 떨어지는 끔찍한 장면이 이어진다. 동영상 아래엔 이 교사 때문에 누가 퇴학당했다는 설명이 자막으로 붙어있다. 이 일을 공모한 학생들은 아직 만 14세도 안된 소년들이었다. 필로로기 연합이 보고하는 또 다른 충격적인 사례는 교사를 대상으로 한 포르노 몽타주 사건이다. 중서부 지방인 노르트라인 베스트팔렌의 통합학교에서 있었던 일이다. 한 무리의 남학생들이 학생들 사이에 포르노 몽타주를 유포시켰다. 이 몽타주엔 이 학교 교사와 학생이 주인공이다. 배경이 바로 그 학교 교실이어서 교사들을 경악시켰다. 이 몽타주는 거의 진짜 사진과 흡사해서 전문가도 못 알아 볼 지경이었다. 이 사진들은 학생들 핸드폰의 블루투스와 인터넷을 통해 유포되었다. 인터넷 교사 인권침해 사례 심각 또 독일 북부 소도시 헤밍엔의 어느 미술교사는 인터넷 서핑을 하다 우연히 동료교사들을 싫어하는 학생들의 ‘증오클럽’을 발견해서 정신적 공황에 빠졌던 경험을 고백했다. 그밖에도 유투브를 통한 여러 가지 교사에 대한 인권침해 사례가 속속 보고되고 있다. 원래 영국에서 시작되었던 사이버 모빙1)이 독일에도 문제를 일으킨 지 오래다. 2007년 한 해 동안 그 사례가 셀 수 없이 많다. 독일 인문계 교사연합회인 필로로기 연합 의장 하인츠 페터 마이딩어는 독일 주간 슈피겔과의 인터뷰에서 “교사가 함부로 공격해도 되는 사냥감인가. 독일의 학교 중 사이버 모빙 경험이 없는 학교는 거의 없을 정도”라고 지적하며 문제의 심각성을 일깨웠다. 특히 그는 웹사이트 동영상포털, 채팅사이트에 교사를 모독하는 내용의 글이나 사진, 동영상이 실리는 것에 대해 금지조처를 취할 것을 정치계에 요구했다. 그렇지만 사이버 모빙 사례를 세상에 내놓고 알리는 데는 교장들에게 큰 용기가 필요하다. 이러한 사건으로 학교의 명성이 땅에 떨어지고, 문제의 동영상이나 글, 소문 더 확산되는 것을 감수해야 하기 때문이다. 필로로기 연합 의장 마이딩어는 이러한 문제에 대한 해결방법으로 “무조건 금지시키고 처벌하는 것보다 아이들을 교육으로 계몽, 순화시키는 것이 우선”이라고 강조한다. 그는 “이런 실상을 부모들이 낱낱이 알게 된다면 큰 충격을 받을 것이다. 어른들은 아이들이 왜 나쁜지 스스로 깨닫도록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교사 평가 사이트 고등법원서 허가 한편 인터넷의 상징적 처형, 언어폭력, 포르노 몽타주 같은 인신공격에 비해서는 건전하지만 교사의 입장에서 반겨지지만은 않는 사이트가 있다. 바로 익명으로 교사를 평가하는 인터넷 사이트 ‘슈픽미히 포털’이다. 물론 학생들 사이에서 인기다. ‘날 봐’란 뜻의 슈픽미히(www.spickmich.de) 포털사이트에선 학생들은 누구나 회원 가입 후 익명으로 자신의 교사를 평가할 수 있다. 2007년 초에 만들어진 이 사이트는 큰 인기를 끌어 현재 등록한 회원이 25만 명이고 평가 대상 교사는 10만 명에 이른다. 사이트 운영자는 쾰른 대학 재학 중인 대학생 3명이다. 작년에 교수의 사생활 보호문제 논란이 일었던 교수평가 사이트인 마인 프로프(MeinProf.de)를 그대로 본떴다. 회원 5만 명의 교수 평가 사이트인 ‘마인 프로프 사이트’(‘우리교수’라는 뜻)도 교수 강사 협의회의 강한 반발을 받고 있다. 이는 교사들도 마찬가지다. 교사 평가 사이트 슈픽미히에서 좋은 성적을 받지 못한 교사들도 기분 좋을 리 없다. 이에 따라 이 사이트에 적극적 대항하는 교사도 있다. 쾰른 근교 소도시 노이키르헨 플루인에서 재직 중인 여교사가 이 사이트에 올려진 자신에 대한 평가를 인격권 침해로 보고 쾰른 고등법원에 해당 포털사이트에 대한 금지 가처분 신청을 했다. 교사 평가 기준으로 ‘수업 준비 양호’, ‘공정한 성적 매김’, ‘멋지고 유머감각 있음’ 등이 있다. 얼마 전까지는 ‘섹시함’, ‘못생겼음’과 같은 인신 공격적 평가 기준도 있었으나 사이트 운영자 측에서 삭제했다. 법원에 슈픽미히 사이트 금지 가처분을 신청한 여교사는 1등급에서 6등급까지 있는 점수에서 4.2등급으로 비교적 낮은 평가를 받았다. 하지만 최근 쾰른 고등법원은 “학부형과 학생들에게 유용한 정보를 주고 바람직한 의사소통을 돕는다”는 논거와 자유로운 의사표현 기본법에 의거해 이 사이트에 대해 금지조치를 취하지 않겠다는 판결을 내렸다. 교원단체들 “교사들 인격권 침해다” 이에 독일 교직원 단체들이 반발하고 있다. 필로로기 연합 의장 마이딩어는 “교사를 평가한다는 그 자체로는 문제가 없다. 교사가 평가와 비판에 너무 민감하게 반응하지 않으면 된다. 하지만 인터넷에서는 교사의 인격권이 완전히 짓밟힌다. 예를 들어 전체 학급이 어떤 특정한 교사를 골탕 먹이기 위해 함께 짜고 인터넷 평가를 하는 경우가 있었다”며 교사평가 사이트의 부작용에 대해 토로했다. 또 필롤로기 연합은 “교사의 사생활보호는 보통시민들보다 덜 중요하게 다뤄진다”며 “사실이 왜곡되기 쉬운 인터넷 공간에서 교사를 공공연히 노출시키는 것은 사이트 운영자가 대중에게 주목받아 광고 수익을 얻으려는 속셈이다”라며 슈픽미히 포털사이트를 비난했다. 한편 교육과 학문 노조는 “인터넷은 교사평가를 하기에 교육적으로 적절하지 않은 공간”이라는 입장을 표명했다. 그러나 이 사이트를 운영하고 있는 세 명의 대학생들은 교사들이 이렇게 흥분하는 이유를 이해 못하겠다고 말한다. 사이트 운영자 티노 켈러는 “우리는 정당한 토론이 이뤄지질 수 있는 환경을 만들려고 노력한다. 모욕적인 언사들은 즉시 삭제한다. 또 이 사이트는 명예 규약을 정해 놓았다”면서 “우리 사이트는 모욕, 비방이 들어있는 글들이 서있을 자리가 없다”고 항변한다. 또 그는 “사이트를 비난하는 교사들은 대개 보통 학생들에게서 나쁜 평가를 받은 교사들이다. 그들은 왜 그런 평가를 받았는지 한번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고 일침을 가했다.
최근 호주 뉴 사우스 웨일즈 주 정부가 2년마다 발표하는 청소년들의 의식변화 및 생활양식에 대한 태도 조사가 발표됐다. 그 결과에 의하면 호주의 10대 청소년들이 점차 기성세대의 가치관에 수렴되는 보수적 성향을 띄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즉, 대마초를 일상적으로 접하고, 연령에 관계없이 원한다면 섹스를 해도 좋다는 식으로 방종에 가까운 자유의사를 보이던 10세에서 17세 사이의 청소년들이 마약과 섹스에 대한 반감을 전에 없이 드러낸 것이다. 2003년 조사에서는 대마초를 가까이 하고 있는 청소년 비율이 36%였으나 올해 들어 이 수치는 23%로 떨어졌다. 학생들 마약과 섹스에 대한 반감 드러내 지난해 말, 초등학교 교정에서 알록달록한 사탕 모양의 약물이 버젓이 돌아 친구로부터 사탕인 줄 알고 먹은 몇몇 학생들이 병원에 실려 가는 일이 발생하여 사회가 발칵 뒤집힌 사건이 있었음에도 전반적으로는 마약류의 접촉에서 멀어지고 있는 것으로 조사돼 매우 다행한 일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그런가 하면 흡연율도 미미하게나마 줄어들어 지난 2003년에는 38%이던 것이 올해는 37%를 기록, 1% 낮아졌다. 호주의 성인 흡연율은 지난 20년간 지속적으로 감소하여 주요 선진국 30개국 가운데 스웨덴(15.9%), 미국( 16.9%), 포르투갈(17.0%), 캐나다( 17.3%)에 이어 다섯 번째로 17.7% 수준임에도 청소년 흡연율은 매년 40%를 기록하고 있는 실정이다. 또 16세 이전에 성경험을 한 청소년들이 2003년에는 75%에 육박했으나 이번 조사에서는 66% 수준을 밑돈 것으로 나타났다. 이처럼 마약이나 흡연, 섹스에 대한 무분별한 접촉 정도가 낮아지게 된 데에는 정부를 중심으로 교육 및 청소년 복지, 상담 단체들의 꾸준한 계몽과 폐해에 대한 홍보 효과를 거두게 된 측면과 함께 10대 스스로가 경각심과 자제력을 키운 것이 주효했다는 분석이다. 학교와 학부모들의 꾸준한 공조적 협조체계 속에서 청소년 나름으로 정서적 성숙을 이루고, 판단력을 키우는 긍정적 변화를 맞이하고 있는 것이다. 호주 경제 호황이 청소년들 변화시켜 그렇다면 이처럼 호주 청소년들이 전에 없이 의젓하게 철이 들게 된 배경은 무엇일까. 심층 설문 조사를 벌인 관계자들에 의하면 몇 년째 누리고 있는 호주의 경제 호황이 청소년들의 삶의 태도에 변화를 준 것으로 평가하고 있다. 호주 사회가 전반적으로 경제 성장세를 이룸에 따라 부모들의 경제 사정도 윤택해졌을 뿐 아니라 청소년들의 아르바이트 거리가 많아지면서 용돈을 충분히 쓰게 되고 정신적으로도 그만큼 여유가 생기게 되었기 때문이라는 시각이다. 한편, 조사에서는 마약이나 섹스 등 후미진 욕구불만 해소나 사회에 대한 반항 형태가 경제적 여유로 보상을 받게 되자 더불어 청소년들의 미래 가치관도 재력을 성공의 척도로 보는 시각으로 점차 고정되고 있는 것으로 드러났다. 호주 청소년들의 20%가량이 돈을 많이 버는 것이 곧 성공이라고 생각하며, 행복한 미래를 위해서는 인성보다 돈을 많이 버는 능력을 개발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반응을 보였다. 돈이 곧 성공은 아니더라도 돈이 없으면 행복할 수 없다는 생각에는 대다수가 동의한다는 것이다. 그러다 보니 학교를 다니는 중에도 아르바이트를 중요시하거나, 일부 청소년들은 취미 등 공동 관심거리를 매거진으로 묶어 내는 등 사업 아이디어 개발에 재미를 붙이는 경우도 있다. 이렇게 아르바이트 등 자기 벌이를 통해 올리는 수입이 10년 전에 비해 2배나 높아진 것으로 나타났다. 경제적 풍요를 누리며 성장한 세대로서, 여기에 한 술 더 떠 학생 신분임에도 적극적으로 부를 축적하는 방법을 일찌감치 터득함에 따라 마약이나 섹스 중독에 빠지기보다 실리적인 생을 꾸려가는 것에 관심이 더 쏠리고 있는 것이다. 몸매가 가장 큰 고민 설문에서는 또 10대 청소년들이 당면하고 있는 가장 큰 고민거리로 학업이나 가족 간의 갈등, 자살 충동 혹은 어떤 다른 스트레스보다 신체조건과 몸매 가꾸기를 꼽은 것으로 나타났다. 이 조사는 11세에서 24세 사이 연령층으로 광범위하게 실시되었는데, 조사대상 젊은이들 2만 9천 명 가운데 남녀 구분없이, 자신의 몸매가 어떻게 보이는지가 가장 큰 근심거리라고 응답했다. 지난번 조사에서는 가족 간의 갈등과 알코올 및 약물 중독에 이어 3번째 고민이 만족스럽지 못한 몸매라고 했지만 이번 조사에서는 첫 번째를 차지했다. 특히 몸매에 대해 지나친 집착을 보이는 여학생 비율은 34.9%로 늘어나 특별한 날, 특별한 옷을 입기 위해 단기로 무작정 다이어트에 돌입하는가 하면 매우 이른 나이부터 다이어트에 일상적으로 매달린다는 응답도 있었다. 매스컴의 영향으로 모델들의 옷맵시에 강박적으로 집착한 나머지 현실적으로 도달하기 어려운 완벽한 아름다움, 완전한 몸매에 대해 강한 열망을 갖고 있다는 것이다. 10대 청소년들의 대화 주제도 주로 몸매 가꾸기에 관한 것이며, 검증되지 않은 다이어트 정보를 서로 주고받으면서 섭식 장애를 겪는가 하면, 약국에서 파는 성인용 다이어트 제품을 초등학생 연령에서 복용한 사례도 조사되었다. 한편 호주 10대들은 자신의 인생에서 가족을 가장 가치 있게 생각한다는 긍정적인 측면을 드러냈다. 가족의 소중함은 경제적인 안정과 더불어 가장 가치 있고 귀중한 것으로 생각한다는 것이다. 그 이유는 자신을 가장 잘 아는 것도 가족이며, 어떤 상황에서도 지지와 격려를 보내며, 여러 가지 지원이 주어지는 원천이기 때문이라고 응답했다. 이번 조사에서 뚜렷이 드러난 호주 10대들이 추구하는 경제적 가치와 가족에 대한 소중함의 피력은 기성세대의 보수적 가치관과 여러모로 닮은 구석이 있다는 분석이다.
내가 너의 이름을 불러주기 전에는 상징② 서수와 식물, 기타 상상속의 서수(瑞獸) 지난 호에 이어 우리 문화에 숨은 상징의 의미를 함께 이야기해보고자 합니다. 상서로운 짐승인 서수(瑞獸)의 대표격은 용입니다. 용은 우리에게 익숙한 만큼 평범하면서도 신성함 자체입니다. 하늘을 마음대로 휘젓기도 하고 물속을 평정하기도 하죠. 그래서 예로부터 두려움의 대상이면서 믿음의 대상이었습니다. 하지만 상상속의 동물일 뿐 그 실체는 아무도 본 적이 없습니다. 바다에서 살아가는 어부들에게 물을 다스리는 용왕은 신앙 그 자체였기에 용왕제나 용왕굿이 그치지 않았습니다. 가물 때는 용왕이 하늘에서 비를 내려 주기를 빌었으며 폭우가 쏟아질 때는 용이 노한 까닭이라고 믿어 왔습니다. 절집에서는 용이 불법을 수호하는 충실한 역할을 해내고 있습니다. 곳곳에서 용의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특히, 반야용선(般若龍船)이라고 해서 지혜를 깨달아 피안(彼岸)의 극락세상으로 인도하는 배를 용이 호위하고 있습니다. 창녕 관룡사 용선대, 통도사 극락보전에 그려진 반야용선도, 태안사 극락보전 건물의 앞에는 용머리가 뒤에는 용꼬리가 조형된 것들이 극락길로 인도하는 용의 역할을 말해준다 하겠습니다. ‘좌청룡우백호’란 말과 같이 동쪽을 지키는 청룡을 으뜸으로 칩니다. 김천 직지사 천왕문이나 동화사 비로암 대적광전에서 건물 동쪽에 청룡이, 서쪽에 황룡이 버티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용안’이니 ‘용포’니 하는 말들에서 알 수 있듯이 용은 또한 황제나 왕의 상징이었습니다. 조선시대는 중국과의 대외관계상 봉황이 그 역할을 해냈습니다. 봉황은 죽지 않고 영원히 산다는 상상속의 동물입니다. 봉(鳳)은 수컷, 황(凰)은 암컷을 상징합니다. 봉황과 관련한 재미있는 이야기가 있습니다. 대동 강물을 팔아먹었다는 김선달의 이야기입니다. 하루는 장 구경을 나간 김선달이 닭을 파는 가게에서 유달리 크고 모양이 좋은 닭 한 마리가 있어서 주인을 불러 그 닭이 ‘봉(鳳)’이 아니냐고 물었습니다. 김선달은 봉황이 아니라는 것을 알면서 모자라는 체하고 계속 물어대니까 닭 장수가 봉이 맞다고 대답을 했지요. 김선달은 그 닭을 사서 사또에게 바치고는 봉황이라고 우겨댔습니다. 사또가 말도 아닌 억지논리를 펴는 김선달을 가만 놔두지 않았지요. 그러자 김선달은 자기는 닭장수의 말만 믿고 속았을 뿐이라며 둘러 대자, 사또가 닭장수를 불러오게 하였습니다. 결국 김선달은 닭 장수에게서 닭 값과 볼기맞은 값으로 많은 배상을 받았다고 하며 이렇게 닭을 봉이라 속여 이득을 보았다 해서 ‘봉이(鳳伊) 김선달’이라 불리게 되었다네요. 이 봉황은 오동나무숲에 깃들어 산다고 합니다. 그래서 팔공산 동화사에는 오동나무가 많이 자라고 있으며 일주문의 이름도 봉황문이며, 봉황이 깃들어 있다는 봉서루 앞에는 봉황의 알을 만들어 두었습니다. 그 뿐 아니라 이 절을 중창한 인악대사의 비신은 그 흔한 거북이 아닌 봉황이 받치고 있습니다. 오동나무는 가구재로 손색이 없고 자라는 속도가 빨라서 옛날 딸이 태어나면 오동나무를 심었다가 혼인할 즈음 그 나무를 베서 가구를 만들어 주었습니다. 필자가 졸업한 부산교대에는 ‘오동골’이라고 불리는 오동나무숲이 있습니다. 지금 생각해보니 여학생이 대부분을 차지하는 교대의 특성을 잘 드러내고 있는 것 같습니다. 해태라고 불리는 해치 또한 상상의 동물입니다. 해치는 그의 뿔로 죄가 있는 사람을 가려냈다고 합니다. 우리나라도 대사헌이나 왕을 대신해서 민생을 보살피던 암행어사들은 해치가 그려진 흉배를 부착했다고 합니다. 또 다른 상상의 동물인 기린은 경국대전에 의하면 대군의 흉배였습니다. 중요민속자료 제65호인 흥선대원군기린흉배는 흥선대원군을 대군으로 예우해주었다는 것을 말해주고 있으며 대군의 흉배로 보기 드물어 그 가치가 큽니다. 궁궐에서 만나는 상징 불가사리는 용이나 해치 등과 함께 궁궐에서 볼 수 있는 서수입니다. 불가사리는 쇠와 불을 먹고 산다고 합니다. 바늘에서부터 농기구, 무기까지 쇠붙이란 쇠붙이는 기본이고 악몽(惡夢)과 사기(邪氣)까지 쫓는다고 합니다. 경복궁에는 경회루로 들어가는 입구에 이 불가사리 조각이 지키고 있습니다. 경회루처럼 큰 건물에 화재가 나면 안 되겠죠? 그래서 코끼리처럼 긴 코를 가졌다는 불가사리가 유사시 그 긴 코로 물을 빨아들여 화재를 막겠다고 나선 것입니다. 경회루를 조성할 때 나온 흙으로 만든 아미산에는 왕비의 침전인 교태전과 연결된 굴뚝이 있지요? 이 굴뚝에도 불가사리가 버티고 있습니다. 굴뚝을 통해 교태전으로 들어가려는 사악한 기운은 접근을 말라며 경계를 강화하고 있는 것입니다. 경복궁 후원인 아미산 이야기가 나와서 말인데 개인적으로 궁궐 중에서 이곳을 제일 좋아합니다. 경복궁 교태전 뒤편의 아미산과 주변의 꽃담, 건너편 자경전의 꽃담과 십장생 굴뚝까지를 말합니다. 창덕궁의 후원이 깊고 넓은 맛이 있으며 늘 신비한 기운이 감도는 듯한 멋이 있다면 아미산은 그 좁은 공간에 계단을 만들어 온갖 화초와 나무를 심고 괴석을 놓아 웅장한 자연을 압축해 놓은 아름다움이 돋보입니다. 그 아름다움을 돋우는 것이 바로 꽃담입니다. 아미산 굴뚝에서 시작된 꽃담의 아름다움은 자경전까지 자연스럽게 이어지면서 이른 봄 복사꽃이 만개한 과수원에 와 있는 듯한 착각을 일으킵니다. 한겨울을 이겨내고 진한 향을 내뿜는 복사향과 시선을 어디에 고정해야 할 지 모를 듯 여성스러운 분홍빛에 몸 둘 바를 모르고 당황하기까지 합니다. 그렇네요. 창덕궁 후원이 자연의 멋이라면, 경복궁 후원은 바로 인공의 멋이로군요. 이 꽃담에는 불가사리뿐만 아니라 박쥐, 학, 봉황, 사슴, 나비, 벌, 새 등 각종 동물과 보름달이 걸린 매화나 대나무, 소나무, 모란, 석류, 국화, 덩굴 등 다양한 식물로 가득 차 있습니다. 사시사철 꽃은 피어 있으며 길상무늬와 형상무늬 등 다양한 무늬가 벽 전체를 쉼 없이 장식하고 있습니다. 이제 자경전 뒤에 있는 십장생 굴뚝으로 건너가볼까요? 굴뚝 중에 제일 아름답다는 자경전 굴뚝은 대비가 오래 살기를 바라는 마음과 자손이 번성하기를 바라는 마음을 담아 다양한 문양을 새겨 두었습니다. 무늬의 주제는 해, 산, 물, 구름, 바위, 소나무, 거북, 사슴, 학, 불로초, 포도, 대나무, 국화, 새, 연꽃 등이며 둘레에는 학, 불가사리, 박쥐, 당초무늬 등을 배치하였지요. 해, 바위, 거북 등 십장생은 장수를 상징하는 것이고, 포도는 포도송이가 주렁주렁 열리듯 자손이 번성하기를 기원하고 있습니다. 박쥐는 보통 다섯 마리의 새끼를 낳고 박쥐를 뜻하는 복(蝠)자가 복(福)자와 같은 발음이 나기에 예로부터 오복의 상징으로 여겨왔습니다. 이 모든 것들이 한데 어울려 교태를 부리고 있으니 궁궐에서 숨은 보물찾기는 바로 이곳이 적지가 아닐까 싶습니다. 식물로 보는 상징 한참 감수성이 예민하던 청소년기에 한때 꽃말을 외우고 다니신 적이 있으실 겁니다. 답사를 좋아하시는 분은 아마 저의 생각에 공감하실 거라 생각이 됩니다. 처음에는 답사를 다닐 때면 오로지 그 문화재만 보게 됩니다. 그리고 시간이 지날수록 이제 그 문화재를 둘러싼 여러 가지 조건들을 돌이켜 보게 되는데 그 중에서 어떤 꽃이 있는지, 어떤 나무가 자라는가의 문제도 자연스럽게 관심을 갖게 됩니다. 어떤 때는 답사의 중심이 꽃이나 나무로 무게중심이 이동하는 경우도 있지요. 여름철 무더울 때 만나는 상사화는 절집에서 많이 볼 수 있습니다. 상사화는 곧 스님들의 사랑이야기가 담겨 있는 꽃이기 때문이지요. 그 사랑은 어떤 가수가 불렀듯 ‘이루어질 수 없는 사랑’이라 애달픕니다. 이야기는 대략 한 스님을 사랑했던 처녀가 자기의 사람을 고백했지만 스님이 받아들일 수 없자 그를 연모하는 마음이 병이 되어 시름시름 앓다가 죽고 말았다는 이야기입니다. 또한 반대로 한 스님이 세속의 여인을 사랑하다 죽은 후 그의 무덤가에서 이 꽃이 피어났다고도 합니다. 하여튼 스님과 한 여인의 이루어질 수 없는 러브스토리가 전해지는 꽃임은 분명합니다. 두 사람의 이루어질 수 없는 사랑은 상사화가 꽃과 잎이 서로 만나지 못한다는 사실에서 확인할 수 있습니다. 언제나 잎이 먼저 나고 잎이 말라서 쓰러지고 나서야 꽃대가 올라옵니다. 이런 사연이 있기에 절집에서 많이 볼 수 있는 것입니다. 상사화와 비슷한 꽃으로 석산(꽃무릇)이 있습니다. 둘 다 전설이 비슷하고 꽃과 잎이 만나지 못한다는 공통점이 있습니다만 상사화는 7~8월에 분홍색 꽃이 피고, 석산은 9월 이후 붉은색 꽃이 핍니다. 강진 백련사와 고창 선운사, 영광 불갑사 등의 석산이 유명합니다. 경북 김천에 있는 수도암은 비구들의 수행도량입니다. 이곳에도 8월이면 상사화를 볼 수 있습니다. 세속의 여인을 사랑해서는 안 되는 그들의 모습이 그대로 꽃으로 자라고 있습니다. 재미있는 것은 이 수도암의 본절이 청암사인데 청암사는 비구니 사찰이라는 점입니다. 본절이 비구니 도량이고 부속 암자가 비구 도량이니 부속 암자가 본절의 영향을 받아야 하겠지만 각기 독립적으로 운영이 되고 있다고 합니다. 배롱나무는 흔히 백일홍나무로 불리고 있습니다. 100일 동안 붉은 색 꽃을 피운다는 꽃인데요, 실은 100일 동안 꽃이 피어 있는 것이 아니라 수많은 꽃봉오리가 돌아가면서 꽃을 피우기에 100일 동안 꽃이 피어 있는 착각을 하는 것이죠. 담양의 명옥헌 배롱나무가 유명합니다. 이 나무가 왕성하게 꽃을 피우는 때가 바로 한여름 무더위 철입니다. 그래서 백년손님이라는 사위도 배롱나무 꽃이 피어 있을 때 오면 장모가 좋아하지 않았다고 합니다. 창덕궁에서 만나는 뽕나무는 색다릅니다. 조선시대 임금이 친히 농업와 양잠을 장려하기 위해 후원에서 농사를 짓고 왕비가 친히 누에를 치기도 하였습니다. ‘잠실’이라는 지명이 누에를 키우고 종자를 나누어 주던 곳에서 비롯된 것을 서울 분들은 알고 계실 테죠? 창덕궁 후원에서는 상상을 초월하는 엄청난 크기의 뽕나무를 만날 수 있습니다. 뽕나무와 다른 나무가 후원의 숲에서 육안으로는 구분이 힘드니까 열매가 떨어지는 6월경에 찾아보시기 바랍니다. 오디라고 부르는 검붉은 열매가 바닥에 떨어져 ‘내가 뽕나무일시다!’하고 드러내 놓고 있습니다. 오리의 발모양을 닮아서 압각수(鴨脚樹)라고 불리는 은행나무는 전국에 걸쳐 천연기념물로 지정되어 있는 나무가 많습니다. 수령이 500년쯤 되는 나무도 명함을 쉽게 낼 수 없을 정도로 장수하는 나무이기도 합니다. 옛날 공자가 제자들을 가르칠 때 은행나무 아래에서 가르쳤다 하여 ‘행단(杏亶)’이라고 불렀습니다. 충남 아산에 맹씨 행단이 있습니다. 그래서 은행나무는 서원이나 향교와 같은 교육기관에서 흔히 볼 수 있으며 요즘의 학교에서도 쉽게 만날 수 있습니다. 2회에 걸쳐 문양과 상징에 대해 이야기를 나눠 보았습니다. 이 주제로 글을 쓴다면 앞으로 몇 회 더 실어야할 것 같으나 지면은 제한되어 있고 해서 나머지는 독자 여러분의 숙제로 돌리겠습니다. 독자 여러분의 관심만 있다면 자연적으로 해결될 과제라고 생각됩니다. ‘내가 너의 이름을 불러주기 전에는 흔한 동물이요, 상상속의 짐승이요, 그저 그런 식물이었고, 보기 좋게 꾸민 무늬에 불과했는데 내가 너의 이름을 불러 주고 난 후 너는 나에게로 와서 나만의 소중한 문화재가 되었다’ 바쁜 일상에서도 조금만 관심을 둔다면 흔하디 흔한 모든 것들이 내게는 큰 의미가 될 것입니다. 학년말 업무 마무리 잘 하시기 바랍니다.
글말투에서도 불필요한 ‘의’는 빼버리자 지난 호 글에서, 입말에서 ‘의’가 생략되기 쉬운 세 가지 경우를 제시한 바 있다. 이번에는 글말에서 ‘의’의 생략이 어떠한지 알아보기 위해, 아래에 제시한 표현에서 ‘의’의 쓰임을 주목해보자. 회색빛의 구름 한 덩이 : 회색빛 구름 한 덩이 여우색의 모피 : 여우색 모피 16평형의 원룸 : 16평형의 원룸 여러 가지의 논의 : 여러 가지 논의 노랑 머리의 청년 : 노랑 머리 청년 여섯 가지의 재료 : 여섯 가지 재료 대규모의 조사단 : 대규모 조사단 대용량의 김치냉장고 : 대용량 김치냉장고 우주의 개발에 박차를 가하다 : 우주 개발에 박차를 가하다 자동차의 가격이 올랐다 : 자동차 가격이 올랐다 모든 경우에 왼쪽 표현에 들어 있는 ‘의’는 불필요해 보인다. 입말투에서 ‘의’를 자연스럽게 생략하고 있는 경우라면, 그런 ‘의’는 글말투에서도 생략하는 것이 좋다. 하지만 굳이 ‘의’를 넣지 않아도 충분히 꾸며주는 말임을 알 수 있는데도 앞에 자리한 명사 뒤에 ‘의’를 습관적으로 쓴 문장들을 심심치 않게 볼 수 있다. 이렇게 ‘의’를 강조하듯이 집어넣게 되는 이유는 두 가지로 짐작된다. 하나는 글말투가 본디 형식을 중시한다는 점을 의식한 탓일지도 모르고, 또 하나는 영어 ‘of’ 혹은 일본어 ‘の’ 가 빈번하게 쓰이면서, 꾸미는 말과 꾸밈을 받는 말의 관계를 뚜렷이 제시하는 번역투 문체의 영향을 받은 까닭이기도 하다. ‘의’를 생략하기 쉬운 이유는, 본래 한국어가 명사와 명사가 어우러져 아주 손쉽게 복합명사를 이룬다는 특징을 지니고 있기 때문이다. 앞의 명사가 저절로 뒤의 명사를 꾸며주는 구조를 취하는데, 무엇 하러 굳이 ‘의’라는 거추장스러운 조사를 끼워 넣겠는가. ‘한 송이의 국화꽃’이 말하고 싶은 것 대다수 한국어사용자들의 귀에 익숙한 서정주의 시 국화 옆에서는 “한 송이의 국화꽃을 피우기 위해/봄부터 소쩍새는 그렇게 울었나 보다”로 시작한다. 그런데 이 시인은 왜 ‘한 송이 국화꽃’이나 ‘국화꽃 한 송이’가 아니라 ‘한 송이의 국화꽃’이라고 했을까. 되풀이해서 읽으면서 이 세 가지 표현의 차이를 음미해보자. 그러면 역시 ‘한 송이 국화꽃’이나 ‘국화꽃 한 송이’보다는 ‘한 송이의 국화꽃’이 ‘한 송이’를 한결 강조한다는 느낌이 들 것이다. 그런데 이런 경우처럼 특별한 시적 의도를 담고자 하는 목적이 없는데도 ‘의’를 넣어서 어색한 표현을 만드는 것을 종종 볼 수 있다. 예를 들어 ‘세 가지 질문’이라 해도 될 것을 ‘세 가지의 질문’이라는 식으로 표현하는 것이 그러하다. 이렇게 ‘의’를 집어넣는 것은 아마도 꾸미는 말과 꾸밈을 받는 말을 구별하고자 하는 의식에서 비롯하는 듯하다. 하지만 이것은 ‘의’의 올바른 쓰임을 의식하지 않은, 둔한 글쓰기를 보여주는 데 불과하다. 다음 표현들을 살펴보자. 하나의 침대, 두 명의 무장간첩, 20여 명의 관객, 다수의 국민, 대다수의 회원들, 여러 명의 구경꾼들, 단 하나의 이야기, 대박의 환상, 자신과의 약속, 한마디의 발언, 열 분 정도의 회원, 몇 개의 대문, 석 잔의 커피 주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의’의 쓰임새다. 의미를 전달하는 데에는 크게 차이가 없을지 모르지만, 불필요한 ‘의’를 무분별하게 씀으로써 표현의 경제성과 의미전달의 효율성을 해치고 있다. 좀더 예민한 촉수를 내밀고 ‘의’를 다루어야겠다. ‘의’를 넣으면 앞뒤 단어 사이에 거리가 생긴다 ‘한국의 자연’을 ‘한국 자연’이라고 하면 어색한데, ‘한국의 사회’는 ‘한국 사회’로 줄이는 것이 훨씬 깔끔하게 느껴진다. 왜 그럴까? ‘한국의 정부/한국 정부’, ‘한국의 풍습/한국 풍습’처럼 어떤 것은 ‘의’를 넣어야만 의미가 명확하게 다가오는 한편, 어떤 것은 ‘의’가 없어도 충분히 의미가 전달될 뿐 아니라 오히려 그쪽이 더 매끄럽게 느껴진다. ‘의’는 자신이 연결하는 두 낱말 사이의 관계를 규정한다. ‘한국 자연’이 복합명사로서 아직 낯선 데 비해 ‘한국 사회’가 한 단위의 명사로 받아들여지는 것은, ‘한국’과 ‘사회’, ‘자연’이 맺는 관계를 드러낸다. 예를 들어 ‘인류’, ‘사회’, ‘발전’이라는 세 낱말이 있을 때, ‘의’를 써서 이것들을 어떻게 연결할 것인가? ‘의’를 다 쓰자면 ‘인류의 사회의 발전’이라 해야 할 테지만, 보통은 ‘인류 사회의 발전’이라고 쓸 것이다. ‘의’를 통해 말하고자 하는 의미를 명확하게 하려면 적절한 곳에 ‘의’를 써야 한다. 만약 이것을 ‘인류의 사회 발전’이라고 한다면 의미를 금방 알아채기가 힐들 것이기 때문이다. ‘의’는 단어와 단어 사이에 일정한 거리를 만드는 한편, ‘의’의 생략은 두 단어의 거리를 좁혀준다. 이렇게 거리가 좁아진 두 단어는 복합명사처럼 받아들여지기 쉽다. 나아가 ‘인류의 사회의 발전’으로 쓰면, ‘의’가 한꺼번에 둘이나 들어가 매끄럽지 못한 한국어 표현이 되어버린다. ‘인류 사회’라는 두 단어를 마치 복합명사처럼 취급함으로써 적절한 의미전달이 가능해지는 것이다. ‘전통 문화의 보존’, ‘국민 복지의 실현’, ‘통일 정책의 전환’ 등이 모두 이러한 예에 속한다. 이것을 ‘전통의 문화 보존’, ‘국민의 복지 실현’, ‘통일의 정책 전환’이라고 한다면 모두들 고개를 갸우뚱할 것이다. 일본어투 조사를 남용한 예 지금 우리가 쓰고 있는 한국어 문장이 근대에 성립한 것이라는 사정에 대해서는 입말과 글말 사이 : 와/과 : (이)랑 : 하고 편에서 기술한 바 있다. 그때 한국어에 미친 일본어의 영향에 대해 언급했거니와, ‘의’야말로 일본어의 영향을 뚜렷하게 보여주는 문법적 요소라고 할 수 있다. 그 가운데서도 일본어의 영향을 받은 조사의 쓰임이 특히 거슬리는 경우가 많은데, 대개 이러한 조사에는 ‘의’가 붙어 있다. 우선 예문을 살펴보자. 나라 전체에 민주주의에의 갈망이 넘쳐나고 있다. 학교에서의 집단 따돌림 현상을 가볍게 여겨서는 안 된다. 선진국으로의 도약을 위해 더욱 분발해야 한다. 당국으로부터의 지시에 따라 일제히 통행금지를 실시했다. 이 세상에서 내 아버지와의 만남은 겨우 15년이 될까 말까 한 짧은 기간이다. 이런 표현들을 바람직하게 바꾸는 방법으로, 문맥에 어울리는 서술어를 넣어주어야 할 경우, 체언을 서술어로 고쳐야 할 경우, 조사를 바꾸어야 할 경우 등이 있다. 위 예문들을 한국어의 특성에 맞게 고쳐보면 다음과 같다. 나라 전체에 민주주의를 향한 갈망이 넘쳐나고 있다. 학교에서 벌어지는 집단 따돌림 현상을 가볍게 여겨서는 안 된다. 선진국으로 도약하기 위해 더욱 분발해야 한다. 당국의 지시에 따라 일제히 통행금지를 실시했다. 이 세상에서 내가 아버지를 만난 것은 겨우 15년이 될까 말까 한 짧은 기간이다. ‘의’를 잘 활용해야 한국어의 특성이 산다 ‘나의 살던 고향’을 굳이 예로 끌어오지 않더라도, ‘의’ 얘기만 나오면 일본어투 문제를 비껴가기 힘든 것이 사실이다. 사실상 일본어 문형에서는 ‘の’가 더욱 다양한 쓰임새로 훨씬 빈번하게 쓰이는 반면, 한국어에서 ‘의’는 그만한 역할을 담당하고 있지 않다. 물론 이런 점은 어디까지나 두 언어의 고유한 특성일 뿐이어서 우열을 따지는 기준은 결코 되지 못한다. 위의 다섯 예문에서 보듯이, 조사를 둘 이상 이어 붙여서 표현하는 어법은 일본어의 조사 쓰임을 그대로 옮겨놓은 것이어서 그다지 친근하거나 자연스럽지가 않다. 이렇게 어울리지 않는데도 무리하게 조사를 사용하게 된 것은, 서술어 중심인 한국어의 특성을 고려하지 않고 명사 중심인 외국어에 한국어를 끼워 맞춘 결과로 보인다. 즉 근대 이후 외국어, 특히 일본어와 영어를 번역하기 시작하면서 ‘의’는 쓰임새는 확대일로를 걸어오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번역을 하고 싶어하는 욕망을 “모국어의 지평을 확장하는 것, 혹은 모두가 도야, 즉 성장과 교육이라고 부르는 것, 혹은 감히 말한다면 모국어를 발견하거나 미개척 상태로 남겨진 모국어의 자원을 발견하는 것”(폴 리쾨르, 번역론)이라고 본다면, ‘의’가 이렇게 세력을 확장한 원인은 모국어의 특성을 충분히 고려하지 못한 번역의 부작용이라고도 볼 수 있다. 원래 서술어가 중심인 한국어의 특성을 잘 살려서 자연스러운 번역을 완성하기 위해서는 명사가 중심인 외국어 표현을 기계적으로 옮길 것이 아니라, 문맥에 따라 적절한 서술어를 활용하여 한국어 특성에 맞는 표현을 개발하는 것이 옳지 않을까. 이런 어색한 조사들은 입말에서 거의 쓰이지 않으므로, 한국어의 특성에 맞는 문장을 구사하기 위해서라도 글말에서도 자제하는 것이 좋을 듯하다. ‘작가와의 만남’, ‘저자와의 대화’처럼 축약형 표현이 불가피한 경우도 있겠지만, ‘작가와 함께’, ‘저자와 함께’ 같이 서술어를 생략한 문형으로 표현하는 방법도 있지 않은가.
"열정과 함께한 27년, 덕구는 제 삶의 일부죠" “어머, 진짜 교장선생님이잖아.” 어눌하게 더듬는 말투, 부자연스러운 행동, 허를 찌르는 연기에 객석에서는 학생들의 웃음이 터져 나왔다. 누구보다도 반듯한 50대 교장선생님의 감쪽같은 ‘지체장애아’ 변신이 아이들은 즐겁기만 하다. 서울 은일정보산업고 박재련 교장은 27년간 줄곧 ‘덕구’로 살아왔다. 순수한 영혼을 지닌 정신지체아 덕구의 이야기를 담은 이 연극 ‘빈방 있습니까’는 1981년 민예소극장에서 초연하면서부터 한해도 거르지 않고 공연됐다. 그동안 올린 공연 횟수만 해도 1000여 회. 박 교장은 숫자를 세다가 어느 순간 포기했다고 한다. 정기 공연은 매년 12월 대학로에서 열지만 주말마다 탈북자 보호정착시설 하나원을 비롯해 여러 복지시설을 방문해 연간 40회 정도 연극을 올린다. “수익을 목적으로 한 공연이 아니기 때문에 저를 비롯한 배우들이 기쁘게 봉사하는 마음으로 공연하고 있습니다. 조금 수익이 생기는 것은 장애우들을 돕는 데 쓰고 있죠.” 이 연극은 미국의 윌리라는 아이의 실화를 바탕으로 했다. 성탄절을 맞아 공연을 준비하는 교회 고등부의 연극반이 배경이다. 크리스마스 공연일인 24일, 우여곡절 끝에 지체장애아인 덕구가 연극무대에 데뷔하고 현실과 연극을 혼동해서 연극을 망치고 말지만 사람들은 크리스마스의 진정한 의미를 깨닫는다는 내용이다. “학생들에게는 정서적으로 도움이 많이 되는 연극이에요. 지능이 낮다고 무시당하는 현실 속에서도 그야말로 순수한 영혼을 지닌 한 인간 ‘덕구’를 보게 되거든요. 함께 살아가는 세상을 배우게 됩니다.” “연극에 대한 열정은 살아가는 힘” 박 교장이 연극을 처음 시작한 것은 1974년. 교회 연극반에서 연극에 매료돼 1980년 30여 명의 멤버와 함께 극단 증언을 창단했고 이듬해부터 ‘빈방 있습니까’를 공연해왔다. “전문적으로 연극만 하고 싶었지만 직업을 삼는다면 쉽게 열정이 무뎌질 수 있다고 생각했어요. 그래서 취미이지만 연극을 무대에 올리는 일만큼은 무엇보다 열과 성을 다해 최선을 다하기로 다짐했죠. 그 결과물이 ‘빈방 있습니까’입니다” 그렇지만 27년간 열일곱 살의 덕구를 연기하기는 쉽지 않은 일이었다. 덕구는 매해 같은 나이지만 박 교장은 어느덧 인생의 중반을 훌쩍 넘긴 나이가 되고 말았기 때문이다. “순수함의 결정체 덕구라는 인물은 저에게 연극 이상의 만족감과 희열을 주기 때문에 덕구로 살아가는 것은 보람이 있습니다. 하지만 ‘덕구가 너무 늙어 보이지 않을까’하는 걱정은 늘 하고 있죠. 건강이 허락하는 날까지 덕구를 연기하다가 더 나은 후배가 나타나면 물려줄 생각입니다.” 27년간을 걸어온 만큼 잊을 수 없는 관객들도 많다. 유치원부터 대학 갈 때까지 이 연극을 매해 보았다는 학생, 공연을 같이 본 후 청혼을 받았다며 결혼기념일마다 찾아오는 부부, 한창 공연 연습 중에 어떤 사람이 정말 정신지체아로 착각했던 황당함…. “가장 기억에 남는 관객은 10년 전의 한 어머니입니다. 아이들과 마지막 성탄절을 보내겠다며 거리를 헤매다가 우연히 저희 연극을 보게 됐고 ‘다시 한 번 열심히 살아 보자’는 삶의 희망을 발견했다고 저희 공연 관계자에게 감사의 말을 전해왔는데 저 또한 보람과 감동을 느꼈습니다.” 박 교장이 생각하는 연극의 매력은 무엇일까. “연극의 매력은 내가 아닌 다른 사람의 삶을 체험하는 것에서 오는 끌림이 있습니다. 남을 배려하고 삶을 이해하는 폭도 넓어지죠. 또 연극은 공동 작업이기 때문에 함께 고생해서 최고의 공연을 올렸을 때의 뿌듯함 또한 큰 매력입니다.” 공연 예술 특성화 학교 만드는 것이 꿈 연극에 대한 박 교장의 열정은 학교에서도 고스란히 드러났다. 은일정보산업고에는 없는 공연예술매니지먼트과, 문화홍보디자인과, 문화·영상미디어과 등 다른 전문계고에서는 볼 수 없는 특성화된 과들이 있다. 이것은 모두 박 교장의 아이디어. 현재 구로2동에서 내년에 구로구 궁동으로 학교가 이전하면 인터넷 방송 스튜디오를 만들어 지역민들을 위한 인터넷 방송을 할 계획이다. “전문계고는 더 이상 디자인이나 컴퓨터만을 가지고는 승산이 없어요. 요즘 학생들이 공연과 예술에 관심이 많은데 그것을 전문적으로 배울 만한 곳이 드물죠. 그래서 특성화된 과들을 만들었습니다. 장기적으로는 공연 예술 특성화고를 만들고 싶습니다.” 박 교장의 다음 작품은 청소년 성교육 연극. 학생, 교사들과 함께 준비해 내년에는 순회공연을 할 예정이다.
‘반드시’ 제시해야만 하는 주장의 근거나 증거 네 번째 원칙은 ‘설명하기’입니다. 결론을 뒷받침할 만한 이유를 제시하고 나면 반드시 그 이유를 설명하는 타당한 근거나 증거를 제시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여기서는 드물게 ‘반드시!’라는 전제가 붙는다는 것을 기억하면 좋겠습니다. 실제 토론에서는 의무 조항이라고 까지 합니다. 설명 없이 단순히 이유만 제시하면 결론이 얼마나 합리적인 근거에 의해 뒷받침되고 있는지 어떤 오류를 포함하고 있는지 듣는 사람들이 평가할 기회가 없어질 것입니다. 또 충실한 설명은 듣는 사람들이 스스로 판단할 수 있도록 도우면서 설득력도 얻을 수 있게 합니다. 설명하는 사람에게는 자기주장에 대해 스스로 생각할 수 있는 기회를 갖게 되어 주장에 대한 객관화가 가능해지고 책임 있게 주장을 전개하는 법을 연습하는 기회도 될 것입니다. 스스로 생각하고 자기주장을 합리적으로 옹호하는 능력은 설득에 있어 기본 중에 기본이 되는 것이지요. 설명하는 방법에는 여러 가지가 있습니다. 일의 순서나 과정을 자세히 묘사해 가면서 설명하는 법, 이치를 따져가며 설명하기, 논리의 내용에 따라 실험이나 실제 증거를 대 설명하기 등이 있는데 가장 많이 이용되는 것은 예를 들어 설명하는 방법입니다. 아이들이 토론을 처음 시작할 때 쉬워서 많이 쓰는 방법이지요. 자신의 경험이나 주변에서 경험한 것들, 책이나 기사, 자료에서 비슷한 경우를 찾아 예로 들고 그것을 자신의 결론과 이유를 연결하는 고리로 하여 일반화합니다. 그러나 몇 번만 하고 나면 늘 고만고만한 이야기들이라 아이들이 토론 수업 자체에 흥미를 잃을 수도 있으니 적절히 앞으로 나아가도록 해주어야 합니다. 이것은 심사평 할 때 심사관이나 지도자가 이끌어 주면 좋겠습니다. 설득력 있는 논거들에는 어떤 것들이 있는지 넌지시 알려 주는 것이지요. 가능하면 많은 논거나 예를 찾게 하자 어떻게 이끌어 주면 좋을지 더 많이 알아보고 싶으시면 앤서니 웨스턴의 논증의 기술을 권합니다. 그의 분류에 의하면 유비에 의한 논증, 권위에 근거한 논증, 원인에 의한 논증, 연역적 논증 등이 있는데 이런 예와 활용을 적절히 제시해 주면 좋겠지요. 아이들에게는 예를 들어 설명할 때 가장 중요한 것은 예로 든 것들이 반드시 사실에 근거해야 하고 출처나 자료가 정확해야 한다는 것이며 최소한 두세 가지 이상, 가능하면 많을수록 유리하다고 하면 좋겠습니다. 물론 한 가지만으로도 충분한 예가 될 수 있는 특별한 경우도 있지만 일반화하기가 쉽지 않기 때문이지요. 가능하면 많은 예들을 찾아내는 것이 중요한데 정말 좋은 예, 설득력 있는 예를 찾으려면 폭넓게 조사하고 탐구해야 할 것입니다. 누구나 확인 가능한 역사적 사실이나 객관적 사실, 누구에게나 정설로 인정된 학설, 각종 통계자료들을 찾을 수 있도록 암시를 주고 논리의 힘은 이 논증 과정의 충실함에서 나온다는 것을 강조해 주시면 좋겠지요. 책도 찾고 인터넷도 뒤지고 설문을 하는 등 다양한 방법들이 동원되는데 예들을 찾기 위해 조사하고 찾는 과정이 아이들에게는 자기 주도적인 학습능력과 정보 활용 능력을 기를 수 있는 훌륭한 하나의 학습 방법이 되기도 합니다. 이것이 ‘이유 찾기’에 이어 우리가 토론을 학습방법으로 선택하는 또 하나의 이유가 되겠지요. 다섯 번째 원칙은 ‘반론에 대한 고려’입니다. 자신의 주장을 준비할 때 우리는 어떻게 해야 설득력 있고 논리적인 주장을 준비할 수 있을까요? 힘 있게 결론을 전제하고 타당한 이유를 대면서 확실한 논증까지 하면 매우 논리적이고 설득력 있는 주장이 될 수는 있을 것입니다. 나와 같은 생각을 하고 있거나 비슷한 생각을 하는 사람에게는 충분히 공감이 가는 의견이 되겠지요. 그러나 만약 그러한 내 주장을 나와 반대의 입장에서 생각하고 있는 사람이라면 과연 어떻게 받아들이게 될까요? 오히려 더 강력한 반대 논리로 무장하도록 자극을 주게 되지는 않을까요? 이 때 이 안건에 대해 상대방이라면 어떤 이유로 찬성하거나 반대할까? 어떤 설명을 할 수 있을까? 이런 질문을 미리 생각해서 내 논증과 견주어 볼 수 있다면 내 주장은 어떻게 될까요? ‘반대의 입장에서 나의 논증을 스스로 검증해 보는 것’ 이것을 ‘반론에 대한 고려’라고 합니다. 이것은 반대의 입장에서 나의 주장을 저울질해 보아도 상대방의 주장보다 더 낫다는 것을 보여 줌으로써 객관적이고 공정한 주장이라는 인상을 주게 되어 토론에서 설득력이 더해질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이때도 주의해야 할 것은 너무 진지해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사람들에게 논점을 흐리게 하거나 반대 심리를 자극할 수 있기 때문이지요. 반대 입장에 서서 미리 준비하는 ‘반론 꺾기’ 그러나 만일 반론을 놓고 서로 타당성을 저울질했는데 반대의 논리가 더욱 타당하다는 결론이 나온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그때는 그 반론을 수용하거나 자기주장을 다시 고려해 보아야 할 것입니다. 더 좋은 이유를 찾아야겠지요. 이런 과정이 때로는 몇 번이고 반복이 될 수도 있을 것입니다. 이제 양쪽이 엇비슷하거나 자신의 주장이 낫다는 판단이 선다면 거기에 보다 창조적인 논증을 더해야 확실한 설득력을 획득할 수 있을 것입니다. 이 때 상대팀의 예상을 뛰어넘는 창의적인 생각을 준비해야 하는데 이것을 토론에서 ‘반론꺾기’라고 하였습니다. 아이들과 함께 해보니 이 반론꺾기를 준비하는 과정이 아이들에게는 가장 힘겨운 사유의 시간들이 되는 것 같습니다. 그러나 자연스럽게 팀 안에서 논의가 이루어지고 아이들 사이에 깊이 있는 질문과 답이 오가는 자율적인 학습이 이루어지는 것을 보며 비로소 교사는 보조자로서, 안내자로서의 역할이 가능하다는 생각을 해보았습니다. 때때로 가슴이 뜨거워지기도 하였는데 지금 돌아보니 아득합니다. 이런 생각의 과정이 찬성 반대 양쪽에서 미리 이루어지고 준비되어진 주장이라면 실제 토론에서는 과격한 논쟁이나 말싸움 같은 소모적인 일은 없겠지요. 생활 속에서 어떤 일을 정할 때도 합리적이고 지혜로운 의사결정을 하려고 한다면 반대의 입장에서 나의 결정을 바라 볼 필요가 있을 것입니다. 이렇게 냉정하고 객관적으로 견주어 보고 난 뒤 내린 결정이라면 훨씬 현명한 결정이 될 것이며 실패를 줄이는 데도 도움이 되지 않을까요? 우리 아이들이 어떤 일을 결정할 때 이 단계까지 고려하고 결정할 수 있게 지도할 수만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요? 그러나 여기까지 생각하게 하는 일이 얼마나 힘든 일인지요. 이 단계까지 생각할 수 있게 되었을 때 저는 아이들에게 이제 ‘생각하는 힘이 생겼다’고 말해 주었습니다. 토론의 찬반 주장 외에 이상적인 ‘다른 의견’도 있다 끝으로 여섯 번째 원칙 ‘예외 부분 고려하기’입니다. 우리가 토론에서 다룰 수 있는 모든 안건에 대해 어떤 결론을 내리든 거기에는 어느 정도 예외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여기서 예외 부분 고려하기란 ‘찬성과 반대 모두를 포함하고 있거나 현실적으로 양쪽 모두를 어느 정도 만족시키는 또 다른 의견들이 있는지 찾아보고, 있다면 그 중 최선의 선택은 무엇인가에 대한 고려’라고 할 수 있습니다. 저는 이 부분에서 특히 아이들에게 바람직한 대안을 한 번 생각해 보라고 하였습니다. 한 방에 모든 문제를 해결해 버릴 수 있는, 그래서 우리 모두가 만족할만한 그런 이상적인 의견은 없는지, 만약 있다면 어떤 내용이 될지, 그것이 비록 현실적으로는 불가능한 대안이라 할지라도 상상력을 발휘하여 가장 이상적인 상태를 그려보라는 주문을 많이 하였습니다. 그러면 토론이 갑자기 재미있어지고 부드러워지기도 하지요. 언제 팽팽히 맞서 대결하였는지 잠시 잊고 숨을 고르게 됩니다. 이렇게 토론을 마무리하고 나면누구도 대결이나 싸움에 졌다는 느낌은 갖지 않게 되겠지요. 이렇게 토론을 하고 나면 참여한 아이들이 서로를 미워하거나 적이 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그전보다 더 잘 이해하게 되고 더 가까워져 친구가 될 수도 있지 않을까요? 이 의견은 토론을 함께 공부한 우리 아이들이 제게 들려 준 이야기였습니다. 논리적이고 설득력 있는 주장이 되는 6가지 원칙 (1) 토론 가능한 주제의 안건에 대해 (2) 자신의 결론을 내리고 (3) 그 결론에 이르게 된 이유를 찾아 그것을 제시하고 (4) 이유의 옳음을 설명하고, 즉 논증을 하고 (5) 나의 결론에 반대 또는 대조되는 의견(반론)이나 생각을 고려하여 내 생각과 견주어 그것이 비논리적임을 보여주거나 부족함을 지적하고 (6) 예외를 정리하여 보여 주면 된다는 것입니다.
복잡한 역사적 배경 지속되는 국가 평소에 달콤한 포도주를 통해 알게 된 그루지야. 영문으로 하면 ‘Georgia’(죠지아), 러시아어로 ‘그루지야’(грузия), 그루지야 어로는 ‘사크라토벨로’이다. 다양한 이름을 가지고 있는 만큼 다양한 문화와 종교, 인종이 공존하는 곳이다. 작은 영토에 적은 인구의 나라지만 오래되고 독특한 문화와 건물들이 그루지야의 마력에 빠지게 만든다. 타임머신을 타고 과거의 시간으로 돌아간 것 같은 느낌을 주는 수도 트빌리시(Tbilisi)의 구(舊) 시가지, 40년 된 러시아 지하철, 도심지에 우뚝 솟은 요새, 그루지야 음식을 맛볼 수 있는 곳 등은 꼭 빠뜨리지 말아야 할 곳이다. 또 흥미로운 것은 그루지야 정교가 이 나라의 공식 종교이지만, 곳곳에 이슬람 사원들이 있다는 것이다. 우리나라보다 더 작은 이 나라에는 국경선이 참으로 복잡하다. ‘남오세티아’와 ‘압하지야’ 지역들은 지금도 독립을 꿈꾸며 그루지야 정부에 대항하고 있고, 현재 무력충돌은 없으나 외국인은 두 지역에 들어갈 수 없다. 수 년 전 남오세티아에 있는 초등학교에 가스 살포로 많은 어린이들과 지역 주민들이 목숨을 잃기도 했었다. 두 지역 외에도 그루지야는 러시아와 아직 전쟁 중인 ‘체첸’과 국경을 마주하고 있으며, 언제 터질지 모르는 불안한 러시아 내 공화국들, ‘잉구세치아’, ‘다게스탄’과도 카프카즈 산맥을 사이에 두고 있다. 그루지야는 구(舊) 소련으로부터 독립한 이후 별다른 경제 부흥이 없었으며, 높은 실업률로 인해 이 나라 국민들은 대통령에 대한 불만이 매우 높다. 이에 따라 그루지야의 정국은 매우 불안한 상황이다. 작은 시골역의 낯선 이방인 지난 해 3일의 짧은 추석 연휴를 맞아 그루지야로 향했다. 연휴 기간이 짧아 장소보다는 비행기 시간에 맞는 나라를 찾다보니 그루지야가 눈에 들어왔다. 갑자기 정한 72시간의 짧은 여행지이긴 하지만, 달콤한 포도주의 나라를 방문한다는 생각에 출발부터 설렌다. 수도 트빌리시에 도착하자마자 스탈린의 고향인 ‘고리(Gori)’로 가기 위해 지하철을 타고 기차역으로 향했다. 이곳의 지하철은 외지인들에게는 그다지 친절하지 못하다. 제대로 된 안내판이 하나도 없어 감각으로 길을 찾아야 했다. 어느 나라나 시장 다음으로 북적거리는 곳은 역시 기차역이다. 눈썹이 유난히 짙은 그루지야 사람들이 표를 사려고 길게 줄을 서 있고, 기차역 구석에 걸린 그루지야 철도지도에는 소련시절 때 만들어진 기찻길이 그루지야 구석구석을 연결하고 있는 게 보인다. 트빌리시에서 고리까지는 한 시간이 소요된다. 한 시간이 지나 역에 도착했는데, 역 어디에도 ‘Gori’라는 간판이 없어 그냥 지나치고 말았다. 그러자 주변에 앉아있던 승객들이 자기 일인 것처럼 한 마디씩하며 도와주려 하는 광경에 작은 감동을 받았다. 고리를 지나쳐 ‘카슈리’라는 도시에 내렸다. 여행객을 처음 본 것처럼 모든 사람들의 시선이 나에게 꽂혔다. 멀리서 손 흔드는 사람, 다가와 얘기하자는 사람, 사진 찍어달라는 사람…. 필자가 여행을 하는 이유는 어쩌면 바로 이런 이방인이 된 내 모습이 좋아서인지도 모르겠다. 색색의 벽돌로 만들어진 므츠헤타 성당 트빌리시에서 고리로 가는 기찻길 양 옆으로는 포도밭이 끝없이 펼쳐져 있다. 이 나라의 주 수출품목은 포도주와 광천수로 그루지야는 카프카즈 산맥에서 내려오는 물로 축복을 받은 나라다. 우리나라 주류시장에는 없는 ‘긴즈마라울리’ 포도주와 ‘보르죠미’ 광천수가 유명한테, 특히 보르죠미 광천수는 러시아 대통령 푸틴이 즐겨 마신다고 한다. 그만큼 보르죠미는 러시아와 독립국가연합에서 흔히 살 수 있으며, ‘긴즈마라울리’는 비싼 포도주로 주변 나라에서 잘 팔리고 있다. 맛있는 그루지야 포도주가 냉대를 받는 곳이 있는데 바로 러시아다. 발단은 러시아와 그루지야 간의 분쟁이었다. 러시아 식품청은 그루지야의 포도 수확량보다 포도주 생산량이 많다고 시비를 걸었고, 이에 대해 그루지야 정부는 러시아 정보 요원을 추방했다. 이 사건으로 러시아는 그루지야에 무역 봉쇄조치를 내렸고, 상점에 진열되어 있던 그루지야 포도주 전량을 즉각 폐기 처분했다. 그래서 러시아에서는 아직도 긴즈마라울리 포도주를 찾아보기 힘들다. 같은 연방에 속해 있었던 나라이지만, 서로 싸우는 모습을 보니 안타깝다. 또 이 맛있는 포도주를 먹지 못하는 러시아 사람들이 측은하다는 생각까지 든다. 고리를 떠나 트빌리시 방향으로 30여분 달리자 ‘므츠헤타’에 도착했다. 트빌리시로 가는 고속도로에서 작은 샛길로 빠져야 하는 곳이라 현지인들의 도움이 없었더라면 찾지 못했을 것이다. 므츠헤타 성당은 다른 색들의 돌들이 쌓여 있는 모습도 멋지지만, 내부의 벽화 또한 우수하다는 것을 볼 수 있다. 참고로, 그루지야에는 UNESCO에 의해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된 유적지가 있다. 그것은 바로 므츠헤타에 있는 므츠헤타(Mtskheta) 성당, 북부 지역 스와네티(Svaneti)에 있는 우쉬굴리(Ushguli), 그리고 공업도시 ‘쿠타이시(Kutaisi)에 있는 겔라티 사원(Gelati)이다. 세 개의 유산들이 12~13세기에 지어진 독특한 양식의 그루지야 유산들이다. 이 외에도 그루지야에는 셀 수 없이 많은 성당들이 나라 곳곳에 중세 시대의 빛을 고스란히 간직하고 있다. 삼박자 갖춘 특별한 여행지 다음 목적지인 ‘아나누리’를 가려고 므츠헤타에서 버스를 수소문 해보지만, 대부분의 버스가 만석이 되서 오니 트빌리시에서 타라고 한다. 트빌리시로 돌아와 ‘아나누리’로 가는 15인승 버스를 탔다. 1시간 정도 북쪽으로 달리는 동안 카프카즈 준령들을 구비 구비 돌아 올라가고 강을 끼고 가다가 보니 아나누리 호수가 나왔다. 저 멋진 산세를 넘으면 체첸공화국이 나온다. 아름다운 자연과 어울리지 않는 전쟁터가 저 넘어에 있다니…. 호수를 한가로이 내려다보는 아나누리 요새 안에는 성당이 자리 잡고 있다. 금빛으로 찬란한 내부에 비해 성당 주변은 너무 초라하다 못해 을씨년스럽기까지 하다. 성당 안으로 들어서는 여행자를 입구에서 라벤더 향기가 반긴다. 성당 내부를 찬찬히 둘러본 다음 다시 트빌리시로 돌아가려고 길 한복에 섰다. 지나가는 차를 보기가 힘들다. 마냥 기다리는데 맞은편에서 술 마시던 사람들 중 마무카 씨가 트빌리시 가는 버스는 3시간 후에나 온다면서 같이 술이나 한잔 하자고 한다. 이 사람들은 대낮부터 보드카를 마시고 있다. 소련시대에 전해져 온 보드카가 여기에도 있다. 세 잔은 꼭 마셔야 한다는 이 나라 주도를 따라야 한다면서 마구 잔을 채워준다. 안주는 포도와 치즈. 나이와는 상관없이 무심코 지나가던 사람들이 바로 술친구가 되고, 대낮을 술로 보내는 모습이 낯설다. 도시 길 모퉁이에는 젊은이들이 할 일 없이 삼삼오오 모여 있고, 시골에는 길거리에서 술로 시간을 보내는 사람들이 있는 게 그루지야의 현주소인 듯싶다. 술을 마시던 도중 마무카 씨가 보트로 호수를 구경시켜준다는 걸 겨우 말렸다. 알고 봤더니 그는 모스크바에서 성악을 전공했고, 현재는 그루지야에서 사업을 하면서 아나누리 호수 책임자라고 한다. 그런 과거가 있기에 술 마시던 사람 중에서 러시아어를 가장 잘했다. 비록 술에 취하긴 했지만 그루지야 사람들의 문화를 엿볼 수 있었다. 그런데 버스가 오지 않는다. 버스는 언제 오나, 혹시나 버스가 만석이라도 된다면 오늘 트빌리시에 돌아갈 수 있을까? 아니면 이들과 아나누리에서 하루를 보내야 하나? 조금씩 불안해 지는 마음이 자리 잡기 시작하는데, 다행히도 버스는 텅텅 빈 상태로 도착했다. 버스는 술에 취한 필자를 태우고 트빌리시로 향했다. 비록 짧은 여행이었지만 지금도 트빌리시의 골목길이 눈에 선하다. 한 지붕에 대여섯 가구가 옹기종기 모여 사는 사람냄새 나는 곳이다. 그루지야는 저렴한 물가, 눈이 즐거운 볼거리, 친절한 현지인의 삼박자가 잘 갖춰진 나라다. 이런 곳이 정치·경제적인 이유로 어려운 삶을 살고 있는 사람들을 생각하니 안타까운 마음이 든다. 하루 빨리 안정을 찾게 되길 막연하게 기다려 본다. * 여행 TIP: 그루지야 물가는 아주 저렴하다, 하루에 30~40$ 정도 경비가 든다. 북쪽에는 스키장이 있지만, 반정부 세력들이 있어서 위험하고, 서쪽에는 흑해가 있다. 주로 터키에서 육로로 들어간다. CIS 국가들 중에 우크라이나와 함께 무비자 방문국이다. 오른쪽으로 아르메니아, 아제르바이잔이 있는데, 두 나라다 비자가 필요하다. 아직 대사관이 없어서 여행시 주의가 필요하다.
“마리 앙투아네트의 다이아몬드목걸이사건은 없었고, 따라서 프랑스혁명도 일어나지 않았다.” 물론 목걸이사건도 있었고 혁명도 일어났다. 그 사건이 없었더라면 혁명은 일어나지 않았을까? 아래에서 보듯이 혁명은 거의 피할 수 없는 상황으로 치달았고, 따라서 목걸이사건 아니라도 프랑스혁명은 일어났을 것이다. 사가들이 산업혁명과 함께 ‘이중적 혁명’으로 부르는 프랑스혁명. 19세기의 프랑스 사가 줄미쉴레는 프랑스혁명을 평등의 재생이자 영원한 정의의 출현으로, 미국의 저명한 현대사가 C.브린턴은 ‘심지어 오늘날에도 사람들로 하여금 공포심을 가지게 하는 근대사의 드문 사건’으로 평가했다. 좀 지루하지만 혁명의 전말부터 개괄해보자. 혁명의 불씨 제공한 겁 없는 왕비 1789년 5월에 170여 년간 개점휴업 중이던 ‘삼부회’가 소집되면서 혁명의 막이 올랐다. 1788, 1789년의 흉작으로 곡가가 앙등(昻騰)하고 실업자가 급증해 정치·사회적 불안이 고조되는 가운데 열린 삼부회는 투표방식을 놓고 대립했다. 평민대표는 1, 2신분의 승리를 보장하는 신분별 투표 대신에 1인 1표 방식을 주장했다. 삼부회가 3신분 610명, 1신분 291명, 2신분 300명으로 구성되어 있었으므로 1인 1표제로 할 경우 3신분이 유리했다. ‘국민의회’를 선포해(6월 17일) 의회에서 축출된 3신분 대표들이 따로 테니스코트에 모여 헌법이 제정될 때까지 저항할 것을 결의하자, 국왕 루이 16세도 1, 2신분 대표의 국민의회 참가를 허가했다. 하지만 왕이 질서유지와 의회보호 구실로 군대를 파견하고 국민의 신망이 두텁던 넥케르를 재정고문에서 해임하자 폭동이 일어났다. 7월 14일에는 독재정치의 상징이던 바스티유 감옥이 파괴되고 전국에서 제2, 제3의 바스티유 사건이 빈발했다. 그런 와중에 빵가게에서 차례를 기다리던 일단의 여인들이 왕비 마리 앙투아네트가 혁명을 모독했다는 소문에 분노해 베르사유의 국왕 처소로 쇄도했고, 국왕은 그들의 압력에 굴복해 파리로 이주해야 했다. 결국 앙상 레짐(구체제)은 그해 8월에 무너졌다. 면세특권, 매관매직, 노예제 등을 폐지한 국민의회는 8월 27일에 주권재민, 천부인권, 자유와 평등, 재산권의 불가침 등을 담은 ‘인권선언’을 발표했다. 단원제 의회와 사법부의 독립을 규정한 헌법도 제정되었다. 이후 국민의회는 헌법에 따라 해산되고 새로운 선거로 구성된 ‘입법의회’가 1791년 10월 1일에 열렸다. 입헌군주제를 지향한 온건 지롱드당의 세력이 점차 약해진 대신 과격 공화파인 자코뱅당(산악당)과 그 지도자 마라, 당통, 로베스피에르 등이 혁명을 주도했다. 이에 혁명의 전파를 우려한 오스트리아와 프로이센이 프랑스에 선전포고를 하고 아시냐화(貨)가 폭등했다. 마르세유를 비롯해 전국에서 의용병이 파리에 집결해(마르세유 출신 의용병들이 부른 ‘라 마르세예즈’는 프랑스 국가(國歌)가 되었다) 무능한 정부를 비판하는 중에 자코뱅당이 정부를 접수했다. 그리고 새로 구성된 ‘국민공회’에서 중간파를 끌어들여 다수당이 된 자코뱅당의 공포정치가 막을 올렸다. 1793년 1월 국민공회에서 100시간의 논의 끝에 루이 16세에게 반역죄가 선고되었다. 하지만 출석 의원 721명 중 361명만이 왕의 처형에 찬성했기에 1월 19일 다시 투표해 380대310으로 가결했고, 루이 16세는 “국민들이여 나는 죄 없이 죽는다”는 말을 남긴 채 단두대(기요틴, guillotine)에서 목이 잘렸다. 프랑스는 이제 공화국(제1공화국)이 됐다. 자코뱅당은 로베스피에르, 당통 등을 중심으로 공안위원회와 혁명재판소를 설치하고 집단재판을 통해 반혁명 세력, 외국인 혐의자, 망명귀족 등을 가차 없이 처형했다. 자신들이 판 무덤 앞에서 기총소사로 처형된 자들이 있었는가 하면 낭트에서는 2천명 이상을 르와르강에 익사시켰다. 마리 앙투아네트도 처형되었다. 국민의 심판으로 처형당한 왕과 왕비 공안위원회는 또한 혁명적 개혁을 단행했다. 빈농에 토지소유의 길을 열어주는가 하면 생필품 최고가격제와 임금을 포함한 일반 최고가격제를 시행했으며 망명귀족의 재산을 몰수해 농민에게 분배하고 초등교육을 의무화했다. 노트르담사원 같은 교회들이 행정사무소로 바뀌고 성직자들은 교회를 떠나야 했다. 또 국민총동원령을 내려 18~26세의 미혼 남자 모두를 징집했다. 하지만 공포정치는 오히려 사회적 불안과 경제적 침체를 격화시켰다. 자코뱅당이 지향한 도덕공화국은 국민에게 초인간적 헌신을 요구하며 비인간적 잔인성을 발휘했을 뿐이었다. 그리하여 반혁명세력이 집결하는 가운데 내분에 빠진 국민공회는 결국 로베스피에르를 버렸다. 1794년 7월 27일 군중들이 “폭군을 타도하라”고 외치는 가운데 로베스피에르와 그의 추종자들이 체포되고 다음날 기요틴에서 처형됐다. 국민공회도 해산되고 ‘5인 집정정부’가 수립되었다. 하지만 백색테러 난무, 물가 앙등, 실업 증대 등 혁명의 후유증에 시달리던 집정정부는 결국 나폴레옹의 쿠데타로 무너졌다. 정치, 경제, 사상 등으로 분류되는 혁명의 원인 또한 복잡했다. 정치적 원인은 바로 절대주의 구체제의 모순이었다. 군주들은 ‘왕권신수설’을 신봉하면서 권력을 휘둘렀다. 그들은 한 장의 밀서로 백성들을 체포·투옥했으며, 언론자유를 제한해 국왕의 정책에 대한 어떤 비판도 막을 수 있었다. 독재보다 더 심각한 것은 정부의 무능과 불합리성이었다. 정부기구들의 기능이 중복되는가 하면 효율적으로 운영되지 못했다. 예·결산제도, 왕실-정부재정의 구분, 공평조세 등이 확립되지 않았다. 토지의 대부분을 소유한 귀족과 성직자는 면세특권을 누렸다. 사법제도도 정비되지 않아 일부 지역에서는 처벌대상이 되는 행위가 다른 곳에서는 범죄행위가 되지 않기도 했다. 경제적 원인은 구체제의 계급적 착취구조에서 비롯했다. 국민의 1%도 안 되면서 20% 이상의 토지와 많은 재산을 소유한 고위 성직자들은 흔히 국민의 영혼을 구제하는 일을 제쳐두고 정치에 간여하거나 여타의 부도덕하고 사치스러운 일에 몰두했다. 국민의 6, 7%에 불과한 귀족 역시 정치적, 경제적 특혜를 누리면서 국민 위에 군림한 기생적 존재였다. 반면 국민의 94% 정도였던 3신분은 대체로 가난과 압박에 시달렸다. 하지만 사가들은 3신분의 가난과 고통을 강조하지 않는다. 빈민이 아니라 부유한 자본가들이 혁명을 일으킨 것으로 보기 때문이다. 자본가들은 국가경제의 주역이면서 과도한 세금을 물어야 했을 뿐 경제적 공헌에 걸맞은 정치적, 사회적 대우를 받지 못했다. 특히 중세적 길드와 중상주의로 인해 자유로운 기업 활동을 방해받자 산업자본들은 혁명세력으로 변해갔다. 때마침 계몽사상가들이 전제체제를 비판하고 나섰다. 합리와 자연주의를 강조하고 인간세계의 무한한 진보를 믿은 계몽사상가들은 자유와 평등을 주장했다. 그 중에서도 로크와 몽테스키외 등은 자유주의를 강조했고 루소는 민주주의를 강조했다. 그들의 자유주의와 민주주의 이론은 그처럼 대조적이면서도 공통의 요소를 가졌다. 두 이론 다 필요악인 국가는 계약에 토대해야 한다는 전제 위에 인민주권을 주장했다. 두 이론 다 기본적으로 개인의 권리를 중시했다. 결국 혁명의 도화선 역할을 한 것은 재정악화였다. 프랑스는 재정궁핍에 시달리면서도 함대를 파견해 독립전쟁을 벌리던 미국을 도왔다. 그로 인해 프랑스는 재정이 파산상태에 이르는 심각한 상황에 빠졌다. 몇몇 정책이 실패한 후 국왕은 증세를 통해 문제를 해소하기 위해 삼부회를 소집했고, 프랑스는 바로 혁명으로 빠져들어 갔다. 사기극 부른 왕비의 끝없는 사치 드디어 목걸이사건 이야기다. 동·서양을 막론하고 궁중의 여인들이 국정을 어지럽히거나 양귀비처럼 나라를 멸망으로 이끈 경우가 없지 않다. 남편 루이16세에 뒤이어 기요틴에서 목이 잘린 마리앙투아네트도 현명하지 못할 뿐 아니라 사치스럽고 탐욕스러웠다. 그녀의 끝없는 사치는 프랑스가 역사적 대혁명에 빠져들게 하는데 적지 않게 이바지했다. 그녀는 화려하고 사치한 궁정생활로 그렇지 않아도 재정적자에 허덕이던 국가의 살림살이를 어렵게 했을 뿐만 아니라, 루이 16세의 재무장관이나 재정고문들이 파산에 이른 재정 상태를 치유하기 위해 어렵사리 입안한 정책들을 그 때마다 귀족들과 결탁하여 반대하는 등 국왕의 노력에 찬물을 끼얹었다. 마리 앙투아네트의 이른바 ‘다이아몬드목걸이사건’(1785~1786)도 그녀의 역사적 역할에 걸맞게 널리 회자되는 일화이다. 오스트리아의 빈 주재 프랑스 대사로 일하다 오스트리아 여황제 마리아 테레지아와 그녀의 딸이자 루이 16세의 왕비인 마리 앙투아네트의 미움을 산 추기경 드 로앙이 라 모트 백작부인의 사기극에 말려들면서 목걸이사건은 시작된다. 백작부인은 추기경에게 왕비가 문제의 목걸이를 갖고 싶어 하니 목걸이를 사주면 자신이 왕비에게 전해 화해시켜 주겠노라고 했다. 추기경은 가짜의 왕비 메모를 읽고 왕비로 변장한 창녀를 베르사유궁 정원에서 만난 뒤 대금을 분납키로 하고 구입한 목걸이를 백작부인에게 넘겼다. 그러나 로앙 추기경은 첫 분납금을 내지 않았고, 보석상이 왕비에게 대금지불을 요청하면서 사기극은 들통이 났다. 160만 루블이나 하는(당시 노동자 월급은 3, 40루블이었다) 다이아몬드목걸이는 이미 런던에서 조각조각 나뉘어 팔린 다음이었다. 추기경이 감히 목걸이 건을 발설하지 못할 것으로 판단한 백작부인이 런던에서 팔아버린 것이다. 바스티유 감옥에 갇힌 추기경은 법정에서 목걸이 사취혐의는 벗었으나 공직에서 해임되었고 라 모트백작부인은 태형과 낙인형에다 종신형을 선고받아 투옥되었다. 이후 영국으로 도망간 그녀는 마리 앙투아네트를 비방하는 회고록을 썼다. 부정적인 왕실 이미지 구축에 일조 다이아몬드목걸이사건 어디에도 마리 앙투아네트가 직접 개입한 부분은 없다. 하지만 그 사건은 ‘사치만 추구하는 왕비’라는 이미지와 상승 작용하여 그녀를 못된 왕비로 회자되게 하는 데는 부족함이 없었다. 목걸이사건 소문은 꼬리를 물고 퍼졌고 국민은 무능하고 부패한 왕실과 정부에 더욱 분노했다. 마리 앙투아네트는 흉년으로 백성들이 빵이 없어 굶주린다니까 “빵 없으면 케이크 먹으라고 그래”라고 말했다나. “보리쌀이 떨어졌으면 쇠고기 먹으라고 그래”라와 다를 바 없는 말 아닌가. 다이아몬드목걸이사건이 없었을 경우 프랑스혁명은 일어나지 않았을까? 그렇지 않았을 것이다. 상술한데로 루이 16세 때의 프랑스는 정치·경제·사회·이념 모두에서 혁명의 불길을 피해갈 수 없는 상황으로 치달았다. 역사에서 ‘불가피한’ 사건은 없겠지만 목걸이사건도 비록 주역은 아니었으되 프랑스를 혁명이 불가피한 상황으로 몰고 가는데 일조했던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