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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세검색BC 490년. 아테네의 밀티아데스는 아테네 북방의 마라톤 평원에서 아테네군 1만과 플라테이아군 1천을 이끌고 2만 5천여 페르시아군에 맞섰다. 페르시아의 기병이 주력군과 떨어져 있음을 확인한 밀티아데스는 페르시아군의 측면을 공격한 후 포위하는 데 성공했으나 결국은 참담한 패배로 마라톤전을 끝냈다. BC 480년. 아테네해군은 8일 전 아테네를 정복하고 약탈한 페르시아군과 살라미스 해에서 최후의 일전을 벌였으나 역시 대패했고, 그로 인해 최초의 동양과 서양의 전쟁으로 운위(云謂)되기도 하는 페르시아전쟁도 10여 년 만에 막을 내렸다. 물론 사실은 그 반대였다. 그리스는 마라톤전과 살라미스해전을 값진 승리로 장식했다. 하지만 만약 아테네를 비롯한 그리스 세계가 페르시아에 패했더라면 고대 그리스의 역사, 아니 서양의 역사는 어떻게 달라졌을까? 서양문화의 뿌리, 고대 그리스 1820년대에 그리스인들이 400여 년에 이르는 오스만 제국(현 터키)의 식민통치에서 벗어나기 위해 독립운동을 일으켰을 때 영국 시인 셸리는 “우리의 법률, 우리의 문학, 우리의 종교, 우리의 예술, 그 모든 것의 뿌리는 그리스에 있다. 그리스가 없었다면… 우리들은 아직까지도 야만인과 우상숭배자로 남아 있을지 모른다”고 말했다. 춘추전국시대의 문화가 중국권 동양문화의 토대였다면 고대 그리스문화는 문자 그대로 서양문화의 뿌리였다. 영어 ‘music(음악)’과 ‘museum(박물관)’이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여신 Muse(뮤즈 : 제우스의 딸로서 시·음악·무용 등을 관장한 아홉 여신 중의 하나)에서, ‘January(1월)’가 Janus(야누스 : 두 얼굴을 가진 문의 수호신)에서 파생됐고 ‘uranium(우라늄)’이 Urania(우라니아 : 천문학을 관장하는 여신), ‘gas(가스)’가 Chaos(카오스)에서 유래한 것에서도 그것을 알 수 있다. 인간적이고 합리적인 세계관, 자유와 평등의 민주주의, 플라톤과 아리스토텔레스가 상징하는 철학, 호메로스의 서사시, 아이스킬루스와 소포클레스 등의 비극, 헤로도토스와 투키디데스의 역사학, 파르테논 신전을 비롯해 제우스·아폴로·포세이돈·니케 신전 등 일일이 열거할 수도 없는 신전들, 비너스·니케·엘긴 마블스 조각들 등 이 모두가 후대 문화에 지대한 영향을 끼쳤다. 하지만 BC 490년의 마라톤전과 480년의 살라미스해전에서 아테네를 비롯한 그리스가 패했을 경우 그 모든 것들이 존재했을까? 그 무렵 이란에서 발흥한 페르시아는 소아시아까지 진출했다. 페르시아의 서진(西進)은 영토 확장은 물론 지중해 제해권(制海權)을 장악하기 위한 것이기도 했다. 지중해는 오늘날도 정치, 군사, 경제, 문화 등 모든 면에서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지만 고대에는 지중해를 장악하는 세력이 아시아, 유럽, 아프리카를 연결하는 세계의 주인이 될 수 있었다. 마라톤 신화 탄생시킨 마라톤전 서쪽으로 영토를 넓혀가던 페르시아는 이오니아(지중해 연안)의 그리스계(系) 폴리스들을 짓밟았고 BC 492년에 결국 발칸 반도에 침공했다. 하지만 태풍이 페르시아의 그리스 정복을 허락하지 않았다. 페르시아 황제 다리우스는 포기하지 않고 기원전 490년에 두 번째 원정을 단행했다. 페르시아는 에게 해를 건너 유베아 섬을 거점으로 삼고 한때 아테네를 통치했던 반역자 히피아스의 안내를 받으며 아티카 반도로 달려들었다. 아테네의 밀티아데스는 민회를 설득해 마라톤 평원에서 자웅을 겨루기로 했다. 9월 12일 마라톤 평원에 진을 친 아테네는 1만 명의 중무장 보병과 폴리테이아의 원군 1천명 등 1만 1천 명으로 2만 5천의 페르시아군을 맞아 사력을 다해 싸웠다. 대담하고 용의주도한 밀티아데스를 비롯한 10명의 장군이 그리스군을 지휘했다. 12일 새벽에 페르시아 주력군에 기병이 없음을 확인한 밀티아데스는 양 날개를 보강한 다음 적을 그리스군의 중심부로 밀어붙였고 결국은 포위하는 데 성공했다. 포위당해 맹공을 받던 1만 5천 페르시아군은 급기야 흩어져 도주하기 시작했다. 아테네·폴리테이아군은 문자 그대로 완승을 거두었다. ‘역사학의 할아버지’로 일컬어지는 헤로도토스에 따르면 아테네군은 192명이 전사한데 반해 페르시아측은 6400명이나 전사했다. 다리우스는 군대를 철수시켰고 더불어 2차 페르시아전쟁도 막을 내렸다. 마라톤전의 신화는 그로서 끝나지 않았다. 전설에 따르면 그때 전령 페이디피데스가 마라톤에서 아테네까지 42.195㎞를 한숨에 달려 “기뻐하시오. 우리가 이겼소!”라고 말한 다음 숨을 거두었다고 한다. 하지만 헤로도토스에 따르면 마라톤전을 앞두고 페이디피데스가 원군요청서를 들고 스파르타까지 240㎞를 이틀 만에 달려 임무를 완수했다고 한다. 어쨌든 아테네인들은 마라톤전의 승리와 그 전령을 기념하기 위해 당시의 올림픽경기에 ‘마라톤 경주’를 포함시켰다. 마라톤 경주는 근대 올림픽에도 채택되어 대미를 장식하는 꽃이 되었다. 아테네 해군, 그리스를 지켜내다 그러나 그리스 세계의 비극은 종결되지 않았다. 다리우스를 이어 페르시아의 황제가 된 크세르크세스가 36만여 대군-헤로도토스에 따르면 5백만이 넘었다-을 동원해 수륙양면으로 침공했다(BC 480). 200여 개의 폴리스(polis)로 구성된 그리스 세계는 그야말로 풍전등화 처지였다. 10년 전의 마라톤전 때까지도 뭉치지 못했던(당시 종교적 축제 중이던 스파르타는 축제도 축제지만 아테네가 승리해 그리스 세계의 패자가 되는 것도, 페르시아가 이겨 스파르타를 포함한 전체 그리스를 지배하는 것도 받아들일 수 없어 아테네의 원군요청 수용을 주저했고 그 사이 아테네는 고군분투해 승리했다) 그리스의 폴리스들은 힘을 합쳐 싸우지 않을 수 없었다. 크세르크세스가 아테네만이 아니라 전체 그리스를 정복하려는 것이 명백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지상전은 그리스연합군의 완패로 끝났다. 스파르타의 팔랑크스(密集步兵)가 주력군이던 그리스연합군은 기원전 480년 8월 스파르타 국왕 레오니다스의 지휘 하에 테살리아 남쪽 테르모필레에서 적군과 혈전을 벌였다. 7천여 그리스연합군은 6일 동안 분투하며 버텼으나 결국 참패했다. 레오니다스와 그를 옹위하던 1천여 전사는 최후의 1인까지 모두 장렬히 전사했다. “지나가는 나그네여, 가서 말하라. 여기 누워있는 우리 스파르타인들은 적의 칼에 쓰러져 여기 잠들었노라고.” 후일 그곳에 세워진 비석의 한 구절이다. 해전은 아테네 몫이었다. 스파르타가 보수적 농업국이며 육군국이었다면 아테네는 개방적 교역국이며 해군국이었다. 지상전에 완패했으므로 아테네가 맡은 해전만이 그리스세계의 남은 한 가닥 희망이었다. “나무벽 안으로 피신하라”는 신탁(神託)을 쫓아 해전에 운명을 걸자고 주장한 인물은 테미스토클레스였다. 페르시아의 대형 겔리선 800여 척을 370여 척의 소형 3단 노(擄)겔리선으로 대적해야 했던 그는 큰 배에 유리한 대해를 피해 좁고 물살이 빠른 살라미스 해협으로 적선을 유인했다. 그리스의 운명이 걸린 기원전 480년 9월 29일. 소형이라 기동력에서 앞선 아테네해군은 11시간에 걸친 해전에서 완승했다. 아테네의 소규모 함선들이 단단한 뱃머리로 페르시아함선의 옆구리를 들이받아 파괴하고 수병들은 적선에 뛰어올라 장창을 휘둘렀다. 페르시아는 300여 척의 전선을 잃은 데다 나머지 전선들도 뿔뿔이 흩어졌지만 아테네는 40여 척을 잃었을 뿐이었다. 12척으로 133척의 왜적을 좁고 물살이 빠른 울돌목으로 유인해 대승한 이순신의 명량해전과 비교된다. 그리스연합군은 이어 벌어진 육전에서도 테르모필레에서의 패전을 되갚았다. 당시 페르시아육군은 테살리아의 동북부에서 아테네 부근의 플라테이아로 옮겨와 있었다. 스파르타군을 포함한 그리스연합군은 페르시아와 그 동맹국 테베의 군대를 꺾었다. 그때 테베 등 그리스의 일부 폴리스는 대국 페르시아에 붙었다. 헤로도토스에 따르면 그때 10만의 그리스연합군이 페르시아군과 싸웠는데, 아테네의 보병이 페르시아군을 패퇴시키는 데 주도적 역할을 했다고 한다. 전쟁 승리 후 찬란한 문명 꽃피워 살라미스해전에 이어 플라테이아에서도 패한 크세르크세스는 철군하지 않을 수 없었고, 10여 년에 걸친 페르시아전쟁도 끝났다. 전쟁을 주도한 아테네는 전후 정치, 경제, 문화 모든 면에서 크게 발전했다. 그리스 세계가 페르시아의 도전을 일축하고 지중해 제해권을 확고히 장악했으므로 아테네를 비롯한 폴리스들의 지중해 해상활동은 더욱 왕성해질 수밖에 없었다. 특히 전후 최대의 번영기를 맞이한 아테네에서는 민주제가 확립되고 파르테논 신전이 재건되는 등 활기가 넘쳐흘렀다. 철학을 비롯한 학문과 예술이 만개한 것도 페르시아전 이후의 일이었다. 물론 소크라테스나 플라톤은 페르시아전쟁 50여 년 후에 일어난 펠로폰네소스전쟁 이후에, 즉 페르시아전 후의 번영기가 아니라 고대 그리스 세계가 몰락의 길에 들어섰을 무렵에 활동했지만 말이다. 페르시아전 후의 번영기 아테네를 이끈 페리클레스는 그때 아테네를 ‘그리스의 학교’라고 자랑했지만, 그리스 고전문화를 주도적으로 창조한 것도 아테네였다. 그리스 세계는 페르시아전쟁 후 아테네가 페르시아의 재침에 대비해 결성한 델로스 동맹(BC 478)-아테네는 얼마 지나지 않아 동맹국의 동맹 탈퇴를 불허하고 동맹회비를 마음대로 사용하는가 하면 자국의 화폐를 동맹국 공용의 화폐로 만들고 동맹국들의 재판권마저 장악하는 등 동맹국들 위에 군림했는데, 사가들은 그것을 아테네의 제국화(帝國化)로 규정한다-과 스파르타가 주도한 펠로폰네소스 동맹으로 분열해 대립하다 결국 30년에 걸친 내전인 펠로폰네소스전쟁(BC 431~404)으로 무너지고 그리스 북부의 마케도니아에게 병합되었다(BC 339). 그리고 20세에 마케도니아의 통치자가 된 알렉산드로스대왕이 그리스 세계를 괴롭힌 페르시아에 대한 응징이기도 한 동방원정에 나서 페르시아를 정복하고 유럽·아시아·아프리카에 이르는 세계제국을 건설하는 역사를 이룩하였다. 야만적 후진지역에서 벗어나 페리클레스의 말대로 아테네는 그리스 세계의 학교였다. 아테네와 더불어 패권을 겨루던 군국체제의 스파르타는 그리스 고전문화에 거의 기여한 바가 없지만 민주체제의 아테네는 빛나는 고전문화를 창조했다. 그리스 문화하면 아테네고 아테네하면 그리스 문화를 생각하지 않는가. 하지만 마라톤전이나 살라미스해전에서 패했더라면 그리스의 역사는 어떻게 기록되어 있을까? 헤로도토스는 페르시아전쟁을 그리스인이 자유를 지키기 위해 싸운 전쟁으로 평했지만 패했을 경우 아테네는 자유를 자랑하고 찬란한 문화를 창조하기는커녕 생존할 수조차 없었을 것이다. 뿐만 아니라 ‘그리스-헬레니즘세계-로마’로 이어지는 고대 지중해 세계의 역사는 물론 고대 이후의 지중해 세계 역사도 다르게 전개되었을 것이다. 그리고 유럽은 세계사의 주역이 아니라 셸리의 말처럼 야만적 후진지역으로 남아있을지 모른다.
인간문화재 판소리 명창으로 유명했던 동초(東超) 김연수(金演洙, 1907~1974)옹의 일화이다. 그가 만년에 병고와 외로움으로 시달릴 때, 몇몇 제자들이 찾아와 스승의 형편을 어렵사리 보살폈다. 그런데 지난 날 김연수 선생의 총애를 크게 입어 출세한 제자 한 사람이 있었는데, 그는 스승의 어려움과 고통을 아는지 모르는지, 찾아오기는커녕 도대체 안부 인사 한번 없었다. 주변에서 그 제자의 그릇됨을 탓하며, 선생에게 그를 불러 한번 호되게 나무랄 것을 재촉하였다고 한다. 그러자 동초 선생이 하셨다는 말씀이 걸작이다. “내 그 녀석을 불러 욕을 바가지로 해 주려다가, (혹시라도 내 욕을 듣고 뉘우쳐서) 그 놈 사람 될까 싶어서 그만 두었네.” 이쯤 되면 욕의 기술과 품격이 경지를 넘어선다. 직접 욕설을 건네지 않았으면서도, 훨씬 더 짜릿한 울림을 전한다. 판소리 명인다운 말의 경륜이 묻어 있다. 말[言語]이 주인을 제대로 만나, 그 장면에 마땅한 의미의 울림을 기막히게 드러내기 때문이다. 김연수 선생의 욕이 짜릿한 설득력과 지적 운치를 획득하고 있는 것은 그가 격한 감정에 사로잡히지 않고, 이미 욕 자체로부터 저만치 벗어나 있다는 점일 것이다. 이런 수준의 욕을 자유자재로 구사하기란 쉽지 않은 일이다. 그러니 인상을 긁어대면서 거세고 할퀴고 질펀하게 내뱉는다고 해서 일품의 욕이 되는 것은 아니다. 욕이야말로 잘해서 본전이다. 감정을 다스리지 못하는 욕은, 궁극에는 욕한 자신이 뒤집어쓰기 십상이다. 팔 걷고 거센 욕설로 해 붙일 때는, 내 입에서 나온 욕이 일견 상대를 향해서 통렬하게 날아가는 것 같지만, 사실은 그 욕이 고스란히 나에게 부메랑이 되어 돌아온다. 독하고 독한 욕설로 악다구니처럼 몰아붙여 상대를 어안이 벙벙하게 만들었다고 해서 희열에 가득 찬 승리감을 맛보는 것일까. 그렇지는 않다. 격정의 순간이 지나고 나면 내 안에서 나오는 스스로의 쓴소리를 발견하게 된다. 가장 고약한 것은 자식 야단치면서 감정에 휘둘려 욕설을 퍼붓는 경우이다. “아! 나는 고작 이런 수준밖에 안 되는 사람인가?” 욕으로 얼룩지는 싸움에는 절대로 이기는 사람이 없다. 물론 얻는 것도 없다. ‘상처뿐인 영광’이라도 되기나 했으면 좋으련만, ‘오욕뿐인 상처’를 면하기 어렵다. 옆에서 구경하는 제삼자의 자리에서 보면 이 점은 더 명료해진다. 백이면 백, 다음과 같은 모욕적 평가를 피해 가지 못한다. “에이! 그 사람 욕하는 것 보니 못 쓰겠더라.” “두 놈 모두 다 똑같다 똑같아!” 그러고 보니 욕이란 망가지는 과정의 시발점을 제공한다. 흉하게 망가지지 않으려는 생각을 한다면, 욕에도 품격이라는 것이 있을 수 있음을 인정해야 한다. 흔히 말하는 욕쟁이할머니들의 경우(특색 있고 맛있는 음식으로 식당을 하시며, 손님들에게 질박한 욕을 잘해서 유명해진 할머니들)에도 그 나름의 욕 철학은 있다는데, 아무에게나 하는 것이 아니라, ‘될성부른 놈들에게만 욕을 한다’고 한다. 욕은 어디서 생겨나오는 것일까. 전혀 다듬지 않고 길들이지 않은 인간 본성의 언어가 욕일지도 모른다. 그래서 욕은 보기에 따라서는 질박(質朴)함의 매력을 준다. 황석영의 소설 ‘장길산(張吉山)’에 나오는 그 푸짐하고도 조야함 그대로인 욕들은 원초적 자연으로서의 인간 본성을 읽게 해 준다. 교육이니 교양이니 이념이니 하는 것으로부터 문화적 가공을 전혀 받지 아니한 삶의 모습을 보여 주려는 문학적 의도를 볼 수 있는 것이다. 그러나 이런 관점은 리얼리즘 문학예술의 영역이고, 막상 구체적 교실에서 구체적 학생을 교육시키는 장면에서는 욕이 미화될 수 없다. 욕을 몰아내어야 한다. 욕은 분명 사람의 나쁜 본성과 결부된 것이고, 사람의 나쁜 본성을 변화시키려는 구체적인 노력이 바로 교육이기 때문이다. 욕은 원시적 욕구와 깊은 상관을 가진다. 욕구의 좌절이 욕을 부른다. 나는 만약 ‘욕의 나라’가 있다면, 그 반대편에 있는 나라는 ‘교육의 나라’라고 말하고 싶다. 욕의 사용은 문맹률과도 높은 관계를 갖고 있다. 문자(쓰기) 문화가 취약한 곳에 욕설이 기승을 부린다. 또 욕은 부정적인 면에서 가정의 영향을 강하게 받고, 긍정적인 면에서 학교교육의 영향을 강하게 받는다. 그런 점에서 보면 우리는 교육적으로 상당한 진화를 해 온 셈이다. 치유 상담 전문가인 정태기 교수는 말한다. 사람의 모든 내적 상처의 근원과 불행의식 속에는 언젠가 그 사람을 할퀴고 갔던 누군가의 욕설이 작용한다고 말한다. 그러면서 그는 자신이 자랐던 50년 전 섬마을 가난한 초등학교 시절을 회상하며, 어른이나 아이나 일상의 생활언어 자체가 거의 욕이었다고 말한다. 5학년 때, 의식 있는 젊은 선생님이 오셔서 일체의 욕설을 금지하는 강력한 지도를 하셨단다. 늘 생활언어처럼 사용하던 욕을 하지 말라니, 그 욕 안하기가 얼마나 불편하고 낯설었는지, 이런 생각이 들었다고 한다. “우리에게 욕을 일체 쓰지 말라는 것은 마치 우리가 주고받는 말을 무조건 영어로 하라는 것처럼 어렵고 힘들고 낯설었습니다.” 나 자신의 경험에 비추어 보더라도, 50여 년 전, 우리 농어촌 아이들이 겪는 언어생활의 평균적 모습이 이것에서 크게 다르지 않았던 것 같다. 지금 아이들의 언어생활에서도 욕이 아주 없지는 않겠지만 정태기 교수의 어린 시절과는 사뭇 다를 것이다. 그것은 그만큼 교육이 역할을 해 주었다는 것을 뜻한다. 우리 교육의 진화를 엿볼 수 있는 여실한 대목이다. 또 그만큼 우리 교육의 힘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런데 ‘욕하는 사회’를 조장하는 것 중에 하나가 욕먹는 것을 대수롭지 않게 여기는 풍조이다. ‘욕이 배따고 들어오나’하는 사회 심리의 풍조가 바로 그것이다. 스트레스 안 받고 살겠다는 전략으로는 어떨지 모르겠지만, 왠지 ‘자존(自尊)’의 가치를 스스로 팽개치는 것 같아서 소중한 것을 잃어버리는 듯한 느낌이다. 이런 심리에는 ‘욕먹어도 돈만 많이 벌면 됐지’하는 천박한 물질 만능의 유령이 도사리고 있는 듯하다. 까짓 자존심이 밥 먹여 주나. 우리 모두 함께 천박해지자는 뻔뻔스러움이 끼어들어 있는 것이다. 철판같이 두꺼운 뻔뻔스러움이라 제법 강할 것 같지만, 의외로 약하다. 돈이 부리는 대로 온갖 망가지는 곤욕을 다 겪으면서도 막상 본인만 그것을 모르니 불쌍하기까지 하다. 근자 청소년의 욕 습관에 가장 큰 영향을 주는 것으로 영화를 꼽는 사람들이 있다. 한국영화에 조직 폭력을 다룬 영화가 약 10여 년 이상 일정한 흐름을 형성했는데, 그 중에는 학교와 조폭의 결합을 다룬 것들이 적지 않았다. 영화에서 욕들은 충동적 기제를 극대화 한다. 그리고 감정 배설의 도구로 쓰인다. 당연히 학생들에게 ‘나쁜 본성’으로서 영향력을 발휘할 것이다. 아이들에게 욕은 모방성이 강하다는 점에서, 또 쉽게 상투적이 된다는 점에서 문제가 있다. 욕을 넘어서기 위해서는 교사들의 지혜가 필요하다. 욕은 폭력이기 때문이다. 아니 욕은 폭력 이상이기 때문이다.
여느 날 아침보다 한 시간이 더 지나도 하인이 오지 않았다. 타고르는 시간이 갈수로 점점 화가 났다. 그는 하인에게 줄 여러 가지 벌을 생각했다. 세 시간이 지나자 타고르는 벌에 대해서는 그 이상 더 생각하지 않았다. 그는 이제 여러 말 않고 해고시켜서 내쫓기로 마음먹었다. 한낮이 되자 마침내 하인이 나타났다. 하인은 말 한마디 없이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일을 했다. 타고르는 화가 머리끝까지 올라 소리를 버럭 질렀다. “다 그만 두고 나가!” 하인은 그제야 뒤돌아서서 마지막 인사를 올린 후 “정말 죄송합니다. 어젯밤 제 딸년이 죽었습니다”라며 말을 잇지 못했다. 캘커타의 르네상스 연 타고르가 타고르는 하인의 말을 듣고 경솔했던 자신을 크게 책망했다. 부끄러워 하인을 볼 수 없었다. 이 충격적인 일이 있은 후 타고르는 어떠한 경우라도 상대방의 사정을 알아보지 않고는 남을 탓하거나 독단적인 판단을 내리지 않았다고 한다. 동양인 최초의 노벨문학상 수상자인 라빈드라나드 타고르(1861~1941)도 한 사람의 평범한 인간이었던 것이다. 그가 하인에게 화를 낸 이 일화는 다른 사람의 입장에서 생각해보게 하는 에피소드이다. 타고르 가문은 우리나라 경주 최부잣집이나 이탈리아 피렌체의 메디치 가문과 같이 엄청난 재력을 가진 양반계급의 부자였다. 타고르가는 인도의 명문가였지만 종교적 요인으로 브라만 계급에서 추방당했다가 타고르의 할아버지가 캘커타의 대부호가 되면서 가문의 명예를 되찾았다. 타고르의 할아버지 드와르카나드는 자선 활동뿐만 아니라 캘커타 국립도서관과 캘커타주립대학을 세웠으며 캘커타 최초의 병원과 의과대학 설립에도 큰 기여를 했다. 현재 이 대학은 인도 의학교육의 중심 역할을 하고 있다. 그는 세 아들을 두었는데 장남이 바로 시인 타고르의 아버지인 데벤드라나드 타고르이다. 데벤드라나드는 종교 개혁가이자 사상가였다. 그는 사업수완을 이어받아 사업가로서 뿐만 아니라 문화예술의 후원자 역할도 물려받았다. 그의 대저택에는 늘 시인과 학자, 종교개혁가, 철학자, 무용가 등 예술인, 화가와 천재들이 몰려들었다. 음악가들이 초대되어 연주회도 끊이지 않았다. 즉, 타고르의 할아버지에 이어 아버지도 캘커타의 르네상스를 연 후원자 역할을 했다. 할아버지와 아버지의 사업수완과 문화예술에 대한 후원 등을 배우고 자란 타고르는 정치가로서 뿐만 아니라 예술가, 문학가로서 성공할 수 있었던 것이다. 그야말로 존경받는 부자의 모범을 보인 것이다. 우리나라의 경주 최부잣집은 12대 300여 년 동안 재력을 바탕으로 주변의 가난한 이웃들을 도왔다. 이탈리아의 메디치 가문은 엄청난 재력을 바탕으로 15세기에서 18세기 초반까지 300여 년 동안 피렌체를 다스렸을 뿐만 아니라 예술인들을 지원해 이탈리아 르네상스를 열었던 것이다. 타고르가는 바로 인도의 메디치가라고 할 수 있다. ‘왕따’가 근대교육의 기틀 만들어 타고르가를 보면 우리나라 대부분의 명문가들처럼 3대에 걸친 노력과 헌신으로 명문가로 발돋움 했고 그 중심에는 사회에 대한 기여와 함께 남다른 자녀교육의 열정이 있었다. 어린 시절 타고르는 학교에 대해서 좋지 않은 기억을 갖게 되었다. 타고르는 7살이 되기도 전에 당시 명문가들이 그렇듯이 가정교사를 두고 공부를 했다. 학교에 입학한 타고르는 얼마 안 돼 선생님에게 그만 크게 실망하고 말았다. 선생님은 늘 짜증을 내거나 신경질적이었고, 학생들을 편애하거나 불공평하게 대했다. 타고르는 유년시절 학교교육에 제대로 적응하지 못하고 14살 때 학교를 그만두었다. 타고르는 17살에 영국에 유학을 갔지만 거기서도 적응을 하지 못했다. 타고르는 단 한 개의 졸업장도 따지 못했다. 이는 타고르가 평생 교육문제에 심혈을 기울이게 된 계기가 되었다. 타고르의 학교에 대한 좋지 않은 추억이 오히려 인도 국민들에게는 약이 되어 인도 근대교육의 기틀을 마련하는 데 초석이 될 수 있었던 것이다. 또 ‘왕따’를 당했던 타고르를 동양인 최초의 노벨상 수상자로 만든 것은 아버지의 지혜 덕분이었다. 먼저 타고르를 키운 것은 학교가 아니라 집이었다. 학교교육을 그만 둔 타고르에게 가장 큰 영향을 준 것은 다름 아닌 아버지였다. 아버지는 당시 캘커타의 문화예술인들을 초청해 거의 매일 산스크리트어 경전과 철학, 과학에 대한 토론을 벌였다. 한쪽에서는 인도의 전통 음악이 연주되었다. 타고르가의 응접실은 어린 타고르에게 ‘살아있는 학교’ 그 자체였다. 또한 타고르는 집에서 독서를 통해 학교에서 배우는 것보다 더 많은 지식과 사상을 흡수했다. 집은 타고르에게 더할 나위 없는 산교육의 장소였다. 음악가이자 사상가, 수학가인 형들(타고르는 14남매 중 막내)의 도움도 컸다. 타고르 아버지의 이러한 자녀교육으로 형제들은 대부분 자신만의 재능을 폈다. 형제들은 각자 화가와 시인 또는 음악가로서 두각을 나타냈다. 타고르의 큰형은 시인이자 음악가, 철학자, 수학자이면서 사상가로 타고르에게 큰 영향을 준 인물이다. 둘째 형은 인도 고등문관(고시)을 통과한 최초의 주인공으로 산스크리트 학자였다. 다섯째 형은 음악가이자 시인, 극작가, 화가로 이름을 날렸고 다섯째 누나는 음악가이자 작가로서 벵골 최초의 여류 소설가였다. 우연인지 몰라도 막내 가운데 위대한 인물들이 많다. 우리나라는 퇴계 이황은 8남매 중 막내였고, 톨스토이는 4남 1녀 가운데 4남으로 태어났다. 공자는 이복형제가 10남매 있었고 아들을 원한 아버지가 세 번째 부인을 맞이해 낳았다. 공자 역시 막내인 셈이다. 세계적인 가족기업인 발렌베리 그룹을 일군 안드레 발렌베리도 막내였다. 300년 가까이 음악명문가를 이룬 바하는 8남매의 막내다. 이는 막내의 경우 성장기를 통해 형들로부터 지적 자극을 받을 수 있기 때문이라고 풀이할 수도 있을 것이다. 이런 집안의 분위기에서 자란 타고르는 동양인 최초로 노벨문학상을 수상하게 한 시집 〈키탄잘리〉를 비롯해 소설, 단편, 희곡, 평론, 전기, 철학, 종교 등 다양한 분야에 관한 책을 냈다. 또 뮤지컬을 비롯해 2000여 곡의 음악뿐만 아니라 인도와 방글라데시의 국가도 작곡했다. 그림에 대한 열정도 남달라 수채화 3000여 점을 남겼다. 성공의 원동력 된 히말라야 여행 어린 시절 어린 타고르에게 가장 영향을 미친 결정적인 사건은 아버지와 떠난 4개월 동안의 히말라야 여행이었다. 타고르는 11살 때 태어나서 처음으로 아버지와 함께 여행길에 올랐다. 타고르 부자가 처음 도착한 곳은 샨티니케탄으로 후일에 타고르의 대안학교가 세워져 세계적으로 알려진 바로 그곳이다. 아버지는 그곳에서 먼저 아들에게 대자연의 한가운데서 우주의 신비와 무한한 상상력을 맛보게 했다. 아버지는 이미 샨티니케탄에 땅을 사둔 상태였다. 타고르가 태어난 후 얼마 되지 않아 아버지는 캘커타에서 약 100마일 정도 떨어진 샨티니케탄의 친구집을 가다 광대한 평원을 접했다. 그는 그만 그 광경에 압도당하고 말았다. 그는 결국 그 땅을 친구로부터 사들였다. 요즘처럼 단순히 땅 투기를 하려고 한 게 아니었다. 그는 그곳에 집을 짓고 ‘평화의 집’이라고 이름을 붙였다. 미래에 타고르 가문이 학교를 세운 교육도시 샨티니케탄은 그의 아버지에게서 시작된 것이다. 그리고 아버지가 첫 여행지로 타고르를 데리고 샨티니케탄에 들른 것은 아들을 위해 미리 계산된 여정이었던 것이다. 다음으로 아버지는 그 여행지에서 타고르에게 산스크리트어나 영어로 된 문학작품을 가지고 가서 읽게 했다. 그리고 밤하늘에 찬란한 별들이 빛나기 시작하면 아버지는 아들에게 우주의 신비로움 등 천문학을 들려주었다. 아버지는 여행지에서 타고르에게 특별한 체험을 하게 했다. 그것은 자신의 아버지가 그랬듯이 상인집안의 후예답게 돈에 대한 책임감을 길러주기 위해 여행경비를 관리하게 하는 것이었다. 돈지갑을 맡기고 매일 지출을 적게 하면서 아들에게 어릴 때부터 경제교육을 한 것이다. 할아버지가 상업으로 거부가 된 가문답게 어릴 때부터 돈 관리 교육을 철저하게 했던 것이다. 무엇보다 실전경험만큼 소중한 것이 없다. 타고르 부자는 히말라야로 가는 도중에 시크교도의 성지에도 오래 머물렀다. 인도는 불교뿐만 아니라 힌두교의 발상지이다. 또 힌두교와 이슬람의 신비사상을 접목한 시크교의 발상지이기도 하다. 다양한 종교로 인해 종교 간 갈등이 심한 인도에서는 다른 종교에 대한 이해와 존중심이 중요하다. 다른 신을 존중하는 것은 갈등을 해결하는 중요한 길이기 때문이다. 종교 개혁가였던 타고르의 부친은 아들에게 시크교의 황금사원을 참배하고 때로는 신도들의 모임에 참석해 찬송가를 불렀다. 이는 후일 타고르의 사상에 큰 영향을 주었음은 물론이다. 아이에게 종교에 대한 포용성을 갖게 해주는 것은 다른 사람을 배려하고 존중하게 하는 기본적인 덕목이라고 할 수 있다. 여행 중에도 계속된 자녀교육 집을 떠나 한 달간 여행을 한 타고르 부자는 4월 초봄에 히말라야에 도착해 3개월을 보냈다. 해발 2000m 고지의 산장에는 작은 마을이 있었다. 그곳은 온통 히말라야 삼나무로 울창했고, 소년에게는 처음 보는 꽃들로 가득했다. 눈을 들어 하늘을 올려다보면 그곳에는 흰 눈에 덮인 히말라야 봉우리의 신비스런 모습이 눈앞에 다가왔다. 11살 소년은 대자연의 신비로움에 매료돼 절로 경탄의 감정이 일렁거렸다. 소년 타고르는 히말라야의 아름다움과 웅대함에 빠졌고, 대자연을 만끽할 수 있었다. 그렇지만 아버지는 여행의 목적을 한시도 잊지 않았다. 소년은 대자연의 신비와 경이로움을 호흡하게 하면서도 아침이면 어김없이 일찍 일어나 공부하게 했다. 대자연속에서 뛰놀게 하면서도 교만이나 나태함, 게으름을 피우지 않게 자녀교육에 나선 것이다. 타고르는 아침에 일어나자마자 정신을 차린 후에 인도의 고대 언어인 산스크리트어 공부를 했다. 그리고 아버지는 기원전 1000년 전에 산스크리트어로 쓰인 〈우파니샤드〉를 읽었다. 아버지가 낭송하면 소년은 이를 들으면서 음률을 듣게 했다. 이어 태양이 떠오를 때쯤 아버지와 아들은 히말라야의 정기를 호흡하면서 아침 산책에 나섰다. 산책에서 돌아오면 아버지는 아들에게 다시 영어를 가르치고 히말라야의 눈을 녹인 찬물에 목욕을 하게 했다. 오후에도 수업을 진행하며 마냥 놀게 하지 않았다. 히말라야의 대자연으로 여행을 가서도 아버지는 아버지의 교육방침대로 아들을 교육했던 것이다. 요즘 자녀들과 함께 세계일주 여행에 나서는 일부 부모들의 경우 여행 그 자체만 끝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1년이나 6개월 혹은 한 달 등 기간을 잡아 해외여행을 하더라도 타고르의 아버지와 같이 대자연속에서 모험을 체험하게 하면서도 정해진 계획이나 원칙에 따라 공부하는 여행을 해보는 것이 좋지 않을까. 여행이나 모험의 경험만 강조하다보면 단순한 여행으로 그칠 수도 있기 때문이다. 또 무리한 일정으로 심신이 지쳐 제대로 여행을 못하는 경우도 있다. 아버지와 함께 한 대자연속에서 머문 4개월 동안의 모험여행은 소년 타고르에게는 가장 행복한 날들이었다. 특히 학교에 적응하지 못한 타고르에게 아버지는 최고의 스승이 되어주었다. 그는 아버지를 통해 학교에서 배워야 했던 모든 것들을 짧은 4개월간의 여행기간에 배울 수 있었다. 캘커타에 돌아온 소년 타고르는 더 이상 4개월 전의 철없는 소년이 아니었다. 요즘도 도보로 전국 산하를 누비면서 극기여행에 오르는 사람들이 있다. 방학에는 초등학생 대상의 도보체험도 있다. 이러한 여행을 다녀오면 아이들이 훌쩍 자란 것을 볼 수 있다. 인내심과 책임감이 강해질 뿐만 아니라 단체 활동에서 오는 다른 사람에 대한 이해심도 높일 수 있다. 아이들은 여행을 하면서 온몸으로 체험을 통해 자연스럽게 한 단계 성숙한 아이로 변하게 되는 것이다. 아버지와 함께한 타고르의 여행은 훗날 그를 시인이자 사상가, 교육가로 만들게 한 원동력이 됐다. 아버지에 대한 무한한 존경과 신뢰, 대자연에서 호흡한 경이로움, 아버지로부터 흡수한 지식에의 열정, 종교에 대한 이해와 인간에 대한 배려 등은 모두 이 여행에서 비롯되었다고 타고르는 훗날 회상했다. 100년 전 대안교육 시작한 교육가 타고르의 아버지는 여행지에서 타고르로 하여금 자유롭게 자연과 호흡하게 했다. 그러면서 다른 한편으로는 히말라야 산장에서조차 영어수업을 직접 할 정도로 자녀교육에 원칙과 목적을 가지고 실천했던 것이다. 이러한 자녀교육으로 타고르 가문은 할아버지와 아버지에 이어 3대째 타고르라는 큰 인물을 배출했다. 그리고 타고르는 인도에 근대교육을 뿌리내리게 하면서 시인뿐만 아니라 교육가로도 큰 명성을 얻게 됐다. 현재 캘커타의 중심부에 있는 타고르의 저택은 대학교로 변모했다. 또 샨티니케탄은 인도뿐만 아니라 세계적인 대안교육도시로 각광받고 있다. 타고르는 샨티니케탄에 우리나라의 ‘간디학교’와 같은 대안학교를 이미 100여 년 전에 세워 자연 속에서 교육을 시작했다. 그는 1901년 그곳에 학교를 세우고 그의 다섯 자녀를 비롯해 학생들을 가르치기 시작했다. 1921년에 비슈바바라티대학교로 확대되어 동양과 서양의 문화를 연구하는 대학으로 발전했다. 특히 이곳에서 두 명의 노벨상 수상자를 배출했다. 타고르가 1913년 노벨문학상을 받은 데 이어 빈곤 문제로 아마르티아 센(Amartya Sen) 영국 케임브리지대 교수가 1998년도 노벨경제학상을 받았다. 또 세계적인 영화감독, 예술가들이 이곳 출신들이다. 오늘날 교육이 단순히 획일적인 인간보다 창의적인 인간을 원한다고 볼 때 자연 속에서 자유롭게 배우며 상상력을 키우는 샨티니케탄은 그 어느 곳보다 경쟁력을 가지고 있다고 하겠다. 아이들은 규제보다 자유로운 분위기에 더 궁합이 맞다. 억압하는 분위기가 아니라 상상력을 자극하는 분위기에서 더 성숙하는 것이다. 자녀교육은 성적이 아니라 ‘원칙’이 중요하다. 아이에게 상상력을 키워주면서 지식을 풍부하게 해야 한다. 원칙만 있다면 아이가 입시나 성적 지옥에서 벗어나 독서와 다양한 산 체험을 통해 재능을 키울 수 있다. 아이들의 성적이 뒤처져 고민에 빠져있는 부모라면 한번쯤 노벨상 수상자를 두 명이나 배출한 타고르의 샨티니케탄을 떠올려보자. 그곳에 해법이 있을지도 모를 일이다. 끝으로 프랑스의 사회학자 르 드블레는 어머니와 자녀 간의 친밀한 관계를 ‘신비적인 관계’라고 표현했다. 아버지와 아이의 관계가 서먹서먹하다면 타고르처럼 아빠와 자녀만의 여행이나 등산을 떠나보자. 부자유친과 함께 아이에 대한 새로운 면을 발견할 수 있을 것이다.
“편수, 온반, 감자농마국수…직접 만들어요” 휴전선 인접 지역인 강원도 인제군 서화면 천도리. 6·25 한국전쟁 전에는 북한의 점령지였으며 전쟁 후 남한에 편입된 대표적 군사지역이다. 현재는 3개 연대 1만여 명의 군인이 상주하고 있다. 금강산 여행, 개성 공단 가동, 남북 이산가족 상봉 등 남북 간의 화해 분위기 조성으로 북한에 대한 경각심이 많이 사라졌지만 곳곳에 보이는 군부대 탓인지 천도리엔 아직도 긴장감이 흐르고 있다. 화해와 안보, 균형 맞추는 교육 그러나 천도리 서하초등학교(교장 장일범) 학생들은 경직된 모습일 것이라는 예상과는 달리 밝고 활기찼다. 장 교장은 “2005년부터 2년간 통일교육 시범학교로 지정돼 우리 고장에 대한 특성과 북한 주민들의 실생활을 이해하고, 군인들과 가까워지는 계기를 마련한 것이 아이들에게 영향을 준 것 같다”고 이유를 설명했다. 접적지역이라는 특성상 통일·안보교육을 매년 실시했지만, 시범학교 운영으로 효과적이고 체계적인 통일교육의 기틀이 마련됐다는 것이다. 서하초는 시범학교를 운영하면서 교육과정과 연계한 다양한 프로그램을 개발하고, 인근 군부대와 지역 주민이 함께하는 행사를 마련해 큰 효과를 거둔 것으로 평가받고 있다. 통일교육을 하면서 가장 중점을 둔 것은 화해와 안보의 균형을 맞추는 것. 남북 간의 화해 분위기가 조성됐다고는 하지만 지난 해 발생한 북한의 핵 실험 사태에서 볼 수 있듯이 언제든지 긴장 관계로 돌아갈 수 있다. 그래서 서하초는 인근 군부대의 협조를 받아 군부대를 방문하고, 금강산 체험을 하는 등 현장체험학습에 신경을 썼다. 특히 철의 삼각지, 제4땅굴 및 을지 전망대, 군부대 병영체험, 향로봉 전적지 탐방, GOP 견학 등 테마 중심의 체험으로 전쟁의 비참함을 간접 체험하고 분단의 현실을 이해하는 계기를 마련했다. 금강산 체험학습에 참가했던 이 학교 졸업생 양소연(14)양은 “북한을 방문하면서 신기하기도 했지만 남측과 북측의 출입사무소가 나눠져 있다는 사실이 안타까웠다”며 “하루빨리 통일이 돼 남북한이 반갑게 만나는 날이 왔으면 좋겠다”고 방문소감을 밝혔다. 또 통일 골든벨 퀴즈 대회, 향로봉 등반 문예대회, 통일 독서 대회, 북한 음식 만들기, 새터민 강사 초청 강연회 등을 통해 민족의 동질성 회복과 평화 통일에 대한 학생들의 관심과 이해를 높였다. 북한에 대한 이해 높인 음식 경연대회 이 중에서도 가장 높은 효과를 본 것은 북한 음식 만들기 경연대회다. 대회 전에 그 음식이 발달하게 된 지역 환경 조건, 역사적 배경, 문화 환경 등을 교육과정과 연계해 자연스럽게 흥미를 불러일으켰다. 그리고 학생들이 직접 만든 음식을 학부모, 지역 주민이 시식을 하고 평가를 함으로써 학생들뿐만 아니라 지역 주민들도 함께 통일교육을 받은 대회였다. 또한 새터민 강사 초청 강연회에도 지역 주민들을 초청해 함께 북한의 현실에 대한 이해를 높였다. 서화초를 방문한 통일교육원 김희봉 사무관은 “서화초 학생들의 통일문제에 대한 관심과 지식 그리고 통일교육 결과물들을 보고 큰 감명을 받았다”며 “어린 세대의 통일의식이 점점 엷어지고 있는 어려운 시기에 서화초의 교육사례는 학교 통일교육의 귀감이 된다”고 말했다. 서화초는 시범학교 운영을 마치면서 〈분단을 넘어 통일로 - 인제군 남북관련 자료를 중심으로〉를 발간했다. 시간이 지나 인제 지역의 역사를 기억하는 사람들이 줄고 지리적으로도 지형이 변해 과거의 흔적이 사라져 자료집을 만들었고 통일교육원의 검수도 받았다. 총 6장으로 구성된 자료집은 6·25 한국전쟁을 전후한 인제군의 생활상과 현재 인제군의 안보시설 및 전적지를 소개하고 있다. 자료집은 서화초 교사들이 직접 지역주민의 증언을 녹취·기록하고 한국전쟁 당시 전쟁 사료를 모아 완성했고 강원지역 초등학교 및 인제군 각급 기관에 배포돼 중요한 지역사료로 활용되고 있다. 자료집 발간을 주도한 신문수 교무부장은 “수업과 병행해 자료집을 만드는 것이 쉽지 않았지만 교직원들이 사명감을 갖고 노력한 끝에 완성할 수 있었다”며 “우리 고장의 사라져가는 역사를 기록으로 남긴 뜻 깊은 자료로 많은 곳에서 활용되길 바란다”고 말했다. 밝고 여유 있는 학교로 변신해 서화초가 시범학교를 운영하면서 거둔 성과는 무엇보다 학생들의 얼굴이 밝아졌다는 것이다. 전교생의 60% 이상의 군인자녀로 전·출입이 잦고 원주민들의 생활이 어려워 늘 불안한 표정이었던 것. 그러나 통일교육을 통해 지역 환경에 대해 이해를 높이고 북한도 한민족이라는 것을 몸소 체험하면서 한결 여유가 생겼다. 또 인근 부대의 사병과 함께한 ‘통일기원 서화축제 한마당 운동회’와 교대, 유학생 출신의 사병들이 강사로 나선 영어 교실 등으로 군인들에 대한 거부감도 사라졌다. 전국에서 모인 군인 자녀들이 거쳐 가는 학교가 아닌 계속 다니고 싶은 학교로 변모한 것이다. 207명 전교생의 이름은 물론 가정환경까지 모두 파악하고 있는 장 교장은 “지난 해에 전학 간 아이들이 홈페이지에 우리 학교를 그리워하는 글을 올리는 것을 보면 뿌듯하다”며 “서화초를 다녔던 학생들이 결코 잊을 수 없는 고향 같은 학교를 만들기 위해 노력할 것”이라고 다짐했다. 서화초는 올해도 통일관련 문예행사와 체험활동을 계속할 예정이다. 특히 교사들이 자발적으로 각종 통일교육 관련 자료를 공유하는 통일교육 홈페이지 활용에 힘쓰고 있다. 장 교장은 “공간 문제로 그동안 마련한 자료를 전시하지 못하고 있다”며 “하루 빨리 공간을 마련해 지역주민과 학교 방문객들이 통일과 관련한 자료들을 볼 수 있도록 해 통일에 대한 관심이 지속되는데 조금이나마 보탬이 되도록 할 것”이라고 말했다. | 엄성용 esy@kfta.or.kr
강원교육청(교육감 한장수)이 도내 초·중·고 350여개 학교에 영어전용 채널 EBS English가 수신될 수 있도록 지원한다. 교육청은 지난달 31일 이 같은 내용을 골자로 한 EBS 영어교육전용방송 활용 설명회를 개최했다. 이 자리에서 교육청은 “지역 내 영어 관련 사교육비를 경감시키고 지역·계층 간 영어 학습격차 해소를 위해 EBS English 채널을 적극적으로 활용키로 했다”며 “도내 학교에 디지털위성 수신시설 설치비를 지원하기로 했다”고 밝혔다. 약 6000여만 원이 들 것으로 추정되는 비용은 이미 교육지원비 명목으로 추경예산을 통해 확보해놓은 상태다. EBS English 채널을 교육부가 추진하고 있는 영어교육혁신의 핵심 사업으로 디지털위성방송과 홈페이지(www.ebse.co.kr)을 통해 매일 18시간(06:00~24:00)씩 방송되고 있다.
“셰인, 나는 너의 소원이 꼭 이루어지기를 기원한다.” 셰인은 캐나다 랭카스터 출신의 7살 소년이다. 5살에 셰인은 백혈병 진단을 받았으며 그의 병은 더 악화되고 있다. 그러나 그는 소박한 소망을 가지고 있다. 그의 생일날, 3억 5천만장의 카드를 받는 것! 그래서 기네스 북에 오르는 것! 갈산중학교에서는 5.30일 셰인의 생일을 앞두고 영어 수업 시간에 카드 만들기를 했다. 학생들은 셰인의 사진과 신문 기사를 인터넷으로 보고 설명을 들은 후 카드 쓰는 법과 아픈 셰인에게 할 수 있는 말을 배웠다. 그리고 A4용지로 직접 카드를 만들어 색년필로 색을 칠한 후 셰인에게 하고 싶은 말을 영어로 써 넣었다. 교과서를 통해서 다른 사람의 카드나 편지를 읽고 배우는 것이 아니라, 캐나다에 있는 백혈병을 앓고 있는 소년에게 실제 상황에서 영어를 사용하여 카드를 완성한 한 여학생은 “선생님 정말 재미있어요!”라고 느낌을 말했다. 이 수업에서 학생들은 아픈 사람에게 쓸 수 있는 영어 표현들을 배웠다. 칠판에 제시한 예문 중에 하고 싶은 말을 골라서 카드에 쓰는 학생들도 있었고, 자기가 하고 싶은 말을 친구나 원어민 영어 선생님에게 질문하여 카드를 완성하고 뿌듯해 하는 학생들도 있었다. 5.30일 생일날, 7살의 셰인이 백혈병의 고통을 잠시 잊고 갈산중학교 영어 수업 결과물인 생일 카드를 읽으면서 작은 기쁨을 느낄 수 있기를 그리고, 3억 5천만장의 카드가 채워져 기네스북에 오를 수 있기를 기원한다.
서울시교육청은 30일 중학교 내신성적을 82∼97% 반영하는 내용을 골자로 한 서울국제고등학교 입시요강을 발표했다. 다음은 서울국제고 입시요강의 주요 내용에 대한 문답풀이. --내신 성적 반영비율을 82∼97%로 대폭 확대한 이유는. ▲학교 교육에 충실한 학생을 선발하는 것이 설립 취지에 부합하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또 이를 통해 학교교육 정상화 및 사교육비 부담 경감에 도움을 줄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서울과학고 등록금은 얼마나 되나. ▲분기당 45만원 가량 하는 현 공립고교 수준이 될 것이다. 현재 공립고교의 등록금은 1년에 180만원 정도다. 기숙사비는 식비만 받지만 특기적성비, 방과후학교 비용은 수익자 원칙에 따라 일반 고교와 마찬가지로 개별적으로 부담하게 된다. 외고와 비교하면 등록금은 3분의 1 수준이다. 기초생활수급대상자 자녀, 의사자 자녀, 새터민 자녀 및 소년소녀가장 등 사회적 배려 대상자는 서 --일반전형을 부산, 경기, 인천을 제외한 전국으로 확대한 이유는. ▲국제계열 고등학교가 설치돼 있지 않은 시ㆍ도의 학생을 배려하기 위한 것이다. 모집 지역은 학생의 거주지가 기준이 아니라 재학하고 있는 중학교의 소재지 기준이다. --영어 듣기 평가를 실시하면 이에 대비하기 위해 사교육비 부담은 생기지 않나. ▲영어 듣기 평가는 중학교 교육과정 내에서만 출제하고 결과도 합격 여부만 평가하는 데 활용한다. 영어 듣기 점수를 반영하지 않기 때문에 이에 대비하기 위한 사교육비 수요는 거의 없을 것으로 판단된다. --국제고와 외고의 차이점은. ▲외고는 특정 국가의 외국어에 능통한 인재를 양성하는 것을 목적으로 전국 외국어 학과가 설치돼 있고 외국어계열 전문교과를 82단위 이상 배워야 하나 국제고는 국제 관계 또는 외국의 특정 지역에 관한 전문성을 갖춘 인재 양성을 목적으로 하지만 전공 학과는 없고 국제 경제, 사회, 문화 등 국제계열 전문교과를 82단위 이상 이수해야 하는 차이가 있다. --국제고와 국제학교(외국인학교)의 차이점은. ▲국제학교는 외국인 자녀, 외국 국적을 가진 학생 또는 장기 해외체류 경험을 가진 학생을 위한 교육기관으로 외국의 교육과정에 따라 수업을 하고 국제고는 국제계열의 고등학교로서 우리 나라 교육과정 기준에 따라 교육하며 국내의 학력을 인정받는다. --서울국제고 운영은 국내와 해외 대학 진학 중 어느 쪽에 중점을 두는가. ▲서울국제고 학생의 진로는 학생들의 희망에 따라 결정되기 때문에 어느 쪽에 중점을 둔다고 말하기 어렵다. 다만 학생들이 어느 쪽의 진학을 희망하더라도 불리함이 없도록 교육과정을 편성해 운영할 계획이다. 국내 대학 진학 희망자를 위해 수능시험에 대비할 수 있게 했고 해외대학 진학 희망자에 대해서는 IB(국제공통 대학입학 자격제도)과정, AP(대학과목 선이수제)과정 등 대학이 요구하는 기준에 대비할 수 있도록 했다. --서울국제고 교장을 공모하는 데 갖춰야 할 자질이나 능력은. ▲21세기 글로벌 시대를 열어갈 국제 분야의 전문가 양성이라는 학교 설립 취지와 교육 목표를 구현할 수 있는 국제적 안목을 갖춘 분으로 학교경영에 대한 탁월한 식견과 리더십을 갖고 세계 일류 서울교육을 견인할 수 있는 능력을 지녀야 하고 이를 위해 지역사회 및 국제사회와 교류하고 협력할 수 있는 경험과 능력을 갖추고 영어로 의사소통이 원활한 정도의 실력을 갖춰야 한다.
우연히 알게 된 한 호주 여대생은 학업과 밥벌이를 병행 하느라 휴일도 없이 일을 하는 통에 최근에는 체중이 부쩍 줄었다며 하소연을 한다. 고등학교 때부터. 커피 전문점과 수퍼마켓 점원, 식당일, 소수민족 대상 영어강습 등 닥치는 대로 일을 하며 학비와 생활비를 버느라 늘 피곤하다는 것. 하지만 지금 생활에 만족한다며 웃음을 짓고 다닌다. 멀쩡한 부모두고 말그대로 고생을 사서 하고 있는 이유는 단지 '집에서 나오고 싶어서' 였단다. 그 학생은 부모 곁을 떠나려면 경제적 독립을 하지 않을 수 없기 때문에 고등학교 10학년 때부터 돈을 벌기 시작해서 지금에 이르렀다며, 앞으로도 고된 생활을 해야 하지만, 그래도 혼자 꾸려가는 생활이 마냥 즐겁단다. 이 학생처럼 호주의 10대들은 부모 곁을 떠나고 싶어 그야말로 안달이다. 비단 호주 뿐 아니라 어느 나라든 10대 청소년이라면 대부분 집에서 나와 친구들과 지내거나 혼자 생활하고 싶어하기 마련이지만, 막상 실천에 옮기기는 쉽지 않다는 점은 본인들이 더 잘 아는 사실이다. 하지만 호주 10대들 가운데는 14, 15세만 되도 부모를 떠나기 위해 '구체적 채비'에 들어가거나 예행연습(?)을 시작하는 경우가 적지 않다. 14~16세 호주 청소년 700명을 대상으로 한 설문 조사에 의하면 부모들과 함께 시간을 보내기보다 또래 모임이나 스포츠 클럽, 취미 동아리 등으로 그룹을 지어 모이기를 좋아하며, 집에 있는 것보다 친구들과 한 집에 모여 놀거나 공원, 바닷가에서 배회 하는 것이 더 좋다는 응답이 절반을 차지했다. 이처럼 부모와 떨어져 지내고 싶다는 막연한 바람을 구체적으로 '실천'하기 위해 최근에는 적극적으로 돈벌이를 하러 나서는 사례가 점점 많아지고 있다. 빅토리아 주에서는 고등학교 1학년에 해당하는 16세 나이에 주당 10시간씩 일을 하는 청소년들이 3분의 1이나 되며, 이들 대부분이 "내 인생을 내가 책임지고 있는 것 같아 어른이 된 기분"이라며 매우 만족해 한다는 것. 보통 방과 후 일주일에 한 두 시간 아르바이트를 해서 용돈 정도를 벌던 것을 이제는 본격적인 독립준비 단계로 비중을 높이는 중 고생들이 그만큼 많아졌다는 의미이다. 하지만 일찌감치 집을 떠나 독립하고 싶어하는 자녀들을 바라보는 부모의 심정은 어떨까. 자녀들의 이른 독립은 한편 가족간의 이른 단절을 의미하는 것으로 받아들이는 경향이 높다. 응당 18세가 되면 나갈 자식들이 그보다 더 서둘러 집을 빠져 나가려 하는 것이 못내 서운한 것이다. 호주 청소년들의 '조기 분가 바람'은 최근들어 부쩍 거세지는 추세인데 불과 2년 전에만해도 성인 자녀들의 독립비율이 예년에 비해 현저히 떨어지고 있는 것으로 조사됐다. 기존의 18세 분가 현상이 2년 전, 한차례 주춤해졌던 것인데, 비싼 주택 임대료나 하숙비 등을 충당하기 벅차며, 설혹 경제적으로 여건이 갖춰져도 직접 밥을 해 먹고 살림을 살아낼 자신이 없기 때문에 분가를 꺼려한다는 것이 그 이유였다. 결혼을 하든 안 하든 20대, 심지어 30대 중반이 되어도 좀체 분가할 생각이 없고, 그냥 부모와 함께 사는 경향이 높았던 것인데, 그같은 경향은 남자가 여자보다 많아 18세에서 34세 사이 호주 젊은이들의 3분의 1이 독립을 하지 않고 부모와 함께 살고 있는 것으로 드러났다. 이처럼 성인이 되어도 독립하지 않은 채 둥지를 차지하고 있는 것을 빗대어 'crowded nest syndrome(붐비는 둥지 증후군)'이라는 신조어가 생겨날 정도로 호주 젊은이들의 부모와의 동거율이 40% 대를 육박했던 현상이 불과 2년 만에 경향이 바뀌기 시작한 것이다. 그렇다고 부모들이 다 큰 자식들이 집을 나가지 않는다고 구박하거나 눈치를 주기는 커녕 물질적 정신적으로 고된 뒷바라지를 하면서도 오히려 함께 살아주는 것을 대견해 하면서, 자식을 다 키워 떠나 보낸 뒤 찾아오는 중년의 고독감과 이른바 'empty nest syndrome(빈 둥지 증후군)'을 연장할 수 있었다는 것이 당시 부모들의 심정이었다. 자식이 떠나고 나면 갑자기 늙어버리는 느낌과 노년의 단계로 급속히 접어드는 듯한 심적 부담을 떨치기 어렵기 때문에 다 큰 자식들과 애면글면 함께 사는 것은 젊음을 유지하는 한 방편도 된다며 위안을 받았던 것. 하지만 이제 다시 어린 자녀들이 집을 떠나기 위해 꿈틀대고 있다. 부모 자식간에도 받을 건 받고, 줄 건 주는 확실한 계산을 하고, 부모의 인생과 자식의 인생이 여간해서는 함께 끈끈한 정으로 얽히는 일이 없는 호주인들의 냉랭한 삶이 이런 식으로 일찌감치 뿌리를 내리는 것이다.
내년에 개교할 예정인 서울국제고등학교의 입시에 중학교 내신성적이 82∼97% 반영되고 토플ㆍ토익ㆍ텝스 등 영어 인증시험성적은 활용되지 않는다. 특별전형의 경우 서울 소재 중학교 졸업 예정자만 지원할 수 있지만 일반전형에서는 국제고가 설치된 부산ㆍ경기ㆍ인천을 제외한 지역 학생들도 지원자격을 갖는다. 서울시교육청은 30일 이 같은 내용을 골자로 한 서울국제고등학교의 신입생 전형요강과 학교 교육과정 편성 및 학교장 공모 계획 등을 발표했다. 서울국제고 신입생은 특별전형과 일반전형, 정원외전형 등 3가지 방법으로 선발되며 각 전형방법에 따라 중학교 내신성적이 평가 총점의 82∼97% 반영된다. 1단계 전형은 총점 300점 중 교과성적 280점, 비교과 성적과 인성면접 각각 10점으로 이뤄진다. 2단계에서는 300점에 심층면접 50점이 더해진다. 특별전형 중 학교장추천자와 사회적 배려대상자 전형도 일반전형과 마찬가지로 교과성적이 전체 300점 중 280점을 차지한다. 특목고 지원자들의 무더기 신청으로 '대란'을 빚었던 토플을 비롯해 토익, 텝스 등의 영어 인증시험 성적은 2008학년도 입시전형부터 반영되지 않는다. 대신 심층면접과 인성면접 등을 통해 설립 취지에 맞는 학생을 선발한다는 계획이다. 특별전형은 학교장추천자, 특례입학대상자, 사회적 배려대상자 전형으로 나누어 선발하며 지원자격은 서울 소재 중학교 졸업예정자로 제한됐다. 일반전형은 국제고가 설치돼 있는 부산ㆍ경기ㆍ인천을 제외한 지역의 중학교 졸업예정자에게 문호를 개방했다. 과학고, 외국어고 등 다른 특목고와의 이중지원은 허용되지 않는다. 교육과정은 ▲한국어 및 문화 ▲사회/국제 ▲외국어(영어포함) ▲과학 ▲수학 ▲예술/체육 등의 6개 과목군으로 편성되고 전과목 무학년 교과목 선택제를 실시하며 국어ㆍ국사ㆍ제2외국어를 제외한 전과목의 수업을 단계적으로 영어로 진행한다. 학생정원은 학급당 25명씩 전체 18학급의 450명으로 하되 2008학년도에는 우선 6학급 150명(정원외 19명 별도)을 선발한다. 종로구 명륜동에 들어서는 서울국제고는 전교생이 기숙사 생활을 하는 기숙학교로 운영되며 모든 학생이 동아리 활동에 참가해 운동 1종목, 악기 1종 연주를 수준급으로 할 수 있도록 할 예정이다. 학교장은 교장자격증 또는 교사 자격증이 없어도 지원할 수 있도록 개방했으며 다음달 1일 공고를 통해 전국에서 학교장을 공모한다. 공정택 서울시교육감은 "서울국제고 설립을 통해 서울의 교육적 위상을 높이고 21세기 국제화시대를 선도할 글로벌 인재를 조기에 발굴ㆍ육성할 수 있을 것이다"라고 말했다.
서울시교육청이 30일 발표한 2008학년도 서울국제고등학교 입시 전형요강의 핵심은 중학교 내신성적이 최대 97%까지 반영된다는 것이다. 교육과정은 앞으로 국제전문가로 활동할 인재를 양성한다는 목표에 따라 국어와 국사, 제2외국어를 제외한 전 과목의 수업을 점차 영어로 진행한다는 점이 눈에 띈다. 학교장은 공모를 통해 교육적 소양과 국제적 감각을 갖춘 인물을 선발하기로 해 일반 교원 뿐 아니라 외교관, 대학교수, 국제기구 종사자의 지원이 예상된다. ◇신입생 선발 방법= 서울국제고의 신입생 선발은 사교육비 유발 요인을 최소화하는데 초점을 맞춰 중학교 내신 성적을 82∼97% 수준으로 반영하는 것으로 확정됐다. 우선 일반전형은 2단계 전형으로 실시하며 정원은 75명이다. 1단계에서 교과성적(280점)과 비교과성적(10점), 서류전형(10점)을 통해 선발인원의 2배수를 뽑은 뒤 2단계에서 심층면접(50점) 점수를 통해 최종 합격자를 선발한다. 교과성적은 전과목 석차 백분율 평균치(100점)와 가중치를 부여하는 과목인 국어(40점), 사회(50점), 수학(40점), 영어(50점) 점수를 더해 280점으로 정하고 학기별로 2학년 1학기 20%, 2학년 2학기 30%, 3학년 1학기 50%씩 반영한다. 비교과성적은 봉사활동(5점)과 출결상황(5점) 점수를 매긴다. 선발 정원 75명의 특별전형은 학교장 추천자(45명), 특례입학대상자(15명), 사회적 배려대상자(15명) 등 3가지로 나누어 실시한다. 학교당 1명씩으로 제한되는 학교장 추천자 전형은 교과성적(280점)과 비교과성적(10점), 인성면접(10점) 점수를 더해 선발하며 영어 듣기를 통해 교육과정 이수에 필요한 수준이 되는지를 판단한다. 사회적 배려대상자 전형은 기초생활수급대상자 자녀, 의사자 자녀, 새터민 자녀 및 소년소녀가장 등을 대상으로 학교장 추천자 전형과 동일한 방식으로 선발한다. 특례입학대상자 전형은 외교관이나 상사 주재원의 자녀 중 외국어 구사능력이 우수한 학생을 대상으로 외국어 에세이 쓰기(60점)와 외국어면접(30점), 인성면접(10점)을 통해 선발하며 영어 듣기 평가도 포함된다. 국내 거주 외국인 학생에게도 교육 기회를 주려고 정원외전형으로 외국인 전형(15명 이내)이 실시되며 서류전형과 영어면접으로 선발한다. 국가유공자 자녀(4명 이내)도 정원외 전형에서 일반전형과 동일한 방식으로 선발된다. 서울국제고 입시에서는 특목고 지원 학생들이 몰려 문제가 됐던 토플을 비롯해 토익과 텝스 등 영어 인증시험 성적은 반영되지 않는다. ◇지원자격 및 입시 일정 = 특별전형은 서울 소재 중학교 졸업예정자로만 한정됐지만 일반전형은 국제고가 설립돼 있는 부산ㆍ경기ㆍ인천을 제외한 지역의 중학교 졸업예정자 가운데 일정 자격을 갖춘 자로 개방했다. 일정 자격이란 3학년 1학기 국어, 사회, 영어의 교과 석차백분율이 각각 상위 10% 이내이면서 학교장의 추천을 받거나 서울시교육청 주관 비교평가시험(9월20일 예정)에서 국어, 사회, 영어의 교과 석차백분율이 각각 상위 10% 이내인 경우를 말한다. 학생 정원은 총 18학급(학년별 6학급)으로 450명(학년별 150명)이며 학급당 25명씩 배정된다. 원서는 서울 소재 과학과, 외국어고와 마찬가지로 10월 중에 접수하고 특별전형은 11월30일, 일반전형은 12월7∼8일에 실시하며 합격자는 각각 12월4일과 12월12일 발표한다. 과학고, 외국어고 등 다른 특목고와의 이중지원은 금지된다. ◇교육과정 편성ㆍ운영 = 서울국제고의 수업은 국제 전문가 양성의 목표에 따라 국어ㆍ국사ㆍ제2외국어를 제외한 전 과목의 수업을 단계적으로 영어로 진행한다. 학생들이 국내 대학의 국제학부나 해외 대학에 진학해 학업을 수행하는데도 어려움이 없도록 하기 위한 것이다. 교육과정도 국제적 교육과정의 기준 편제에 맞춰 ▲ 한국어 및 문화 ▲ 사회/국제 ▲ 외국어(영어포함) ▲ 과학 ▲ 수학 ▲ 예술/체육 등의 6개 과목군으로 편성하고 전과목 교과교실제 및 무학년 교과목 선택제 등을 실시한다. 국내 대학과 해외 대학 중 진학 희망에 따라 학생들은 필요한 과목을 선택해 이수할 수 있다. 미래 한국 사회의 지도자와 세계평화를 위한 봉사자로 성장할 수 있도록 예체능 교육 및 국제시민 교육도 실시한다는 방침이다. 국제 문화축제, 동아리 예술제, 국제시민교실 등 다양한 기숙사 프로그램을 마련해 모든 학생이 동아리 활동에 참가하도록 하고 운동 1종목, 악기 1종 연주를 수준급으로 할 수 있도록 한다. 전교생이 종로구 명륜동에 마련된 기숙사에서 기숙생활을 한다. ◇학교장 전국에서 공모 = 학교장은 학교 경영에 탁월한 식견과 국제적 감각을 갖춘 교육 CEO를 다음달 공고를 통해 전국에서 공모한다. 서울국제고는 교장 자격증 또는 교사 자격증이 없는 경우에도 학교장에 지원할 수 있도록 해 일반 교원 뿐 아니라 외교관, 대학교수, 국제기구 종사자 등의 지원이 예상되고 있다. 교수진도 내ㆍ외국인 모두 공모를 통해 선발할 계획이다.
내년 3월 개교 예정인 서울국제고의 교육과정 편성계획과 신입생 전형요강, 학교장 공모 내용이 발표됐다. 서울국제고는 종로구 명륜동에 위치하며 학생 정원은 학급당 25명씩 18학급 450명이 될 예정이다. 이에 따라 2008학년도에는 6학급 150명(정원 외 19명 별도)의 신입생을 선발하게 된다. 전교생이 기숙사 생활을 하는 기숙학교로 운영되며 정규 교육과정과 방과후학교를 연계해 모든 학생들이 방과 후에 자신의 수준에 맞는 교육활동에 선택적으로 참여할 수 있도록 할 예정이다. 국제고의 교육과정은 국제적 교육과정 기준인 IB 교육과정 편제에 맞춰 ‘한국어 및 문화’, ‘사회/국제’, ‘외국어(영어 포함)’, ‘과학’, ‘수학’, ‘예술/체육’ 등의 6개 과목군으로 편성하고, 전과목 교과교실제 및 무학년 교과목 선택제 등을 실시한다. 학생들은 국내 대학과 해외 대학 중 진학 희망에 따라 필요한 과목을 선택해 이수할 수 있다. 또한 국어와 국사, 제2외국어를 제외한 전과목 수업을 단계적으로 영어로 진행할 계획이다. 국제 문화축제, 동아리 예술제, 국제시민교실 등 다양한 기숙사 프로그램도 마련된다. 신입생은 특별전형, 일반전형으로 구분해 선발하되 중학교 내신성적을 총점의 82~97% 수준으로 반영해 사교육의 주요 요인으로 지목되던 토플, 토익, 텝스 등의 영어 인증시험 성적은 반영하지 않기로 했다. 1박 2일 합숙평가 형식의 심층면접도 도입된다. 특별전형은 학교장추천자 전형, 특례입학대상자 전형, 사회적 배려 대상자 전형으로 나뉜다. 특례입학 대상자 전형은 외교관이나 상사 주재원의 자녀 가운데 외국어 구사능력이 우수한 자를 대상으로 선발하며 사회적 배려 대상자 전형은 기초생활수급대상자 자녀, 의사자 자녀, 새터민 자녀 및 소년·소녀가장 등이 대상이 된다. 또한 국내 거주 외국인 학생들에게도 지원자격이 주어진다. 특별전형의 경우에는 서울 소재 중학교 졸업예정자만 지원 가능하지만 일반전형의 경우에는 국제고가 설치되어 있는 부산, 경기, 인천을 제외한 지역 소재 중학교 졸업예정자 가운데 일정 자격을 갖춘 학생들도 가능하다. 원서는 서울시 소재 과학고, 외국어고와 마찬가지로 10월 중에 접수하고 특별전형은 11월 30일, 일반전형은 12월 7,8일에 실시된다. 과학고, 외국어고 등 다른 특목고와의 이중지원은 허용되지 않는다. 학교장은 6월 1일 공고를 통해 외교관, 대학교수, 국제기구 종사자, 교원 등을 대상으로 전국에서 공모할 계획이다. 교장 공모 자격은 ‘당해 학교 교육과정 관련 기관이나 단체에서 3년 이상 종사자’로 교장자격증이나 교사 자격증이 없는 경우도 지원이 가능하다. 서울시교육청은 “사명감과 실력을 갖춘 우수한 교수진을 확보하기 위하여 내·외국인 교사도 공모를 통해 선발할 것”이라고 밝혔다.
비가 오려나 봅니다. 오후엔 온몸이 저려오고 눅눅한 바람이 불어옵니다. 더운 기운과 습기가 겹치니 불쾌지수가 높아졌나 봅니다. 점심을 먹고 잠시 쉬려고 하는 찰나, 2학년 반장 경건이가 뛰어 옵니다. 싸움이 났다고요. 정신없이 한 달음에 이층 교실로 달려가니,아이 둘이벌겋게 얼굴을 붉히고 있습니다. 그 사이로 온 반 아이들이 빙 둘러서서 나에게 상황을 그대로 재연을 하여 보여줍니다. 왜 싸웠는지 알아보니, 한 아이가칠판에누구 마음에 속에 어떤 여자아이 누구가 있다. 이런 내용을 썼다고 합니다.(웃기게 영어로 썼다나요. in 어쩌구 하면서...) 그래서 그것을 보고 화가 나서 분필로 썬 내용을 막 지웠다고 합니다. 그 와중에 옆에서 참견을 하면서 뭐라고들 하니 녀석은 속이 상해 눈물을 뚝뚝 흘리고... 내가 칠판에 글을 써서 사태를 이렇게 만든 녀석에게 야단을 치니, 자기만 야단친다고 눈을 흘기고 울려고 합니다. 화가 나서 고함을 지르고 무섭게 야단을 치고 있는데, 갑자기 누가 막 소릴치며 웁니다.약간의 정신지체 장애가 있는아이입니다. 선생님이 고함을 지르니, 무섭다고 울어버립니다. 그래서 아이에게 친구들이 싸워서 선생님 화가 났다고 이야기를 하고 울지말라고 했습니다. 선생님도 화를 낼 수 있다고요. 그랬더니. 눈물이 글썽글썽하더니 고개를 끄덕끄덕 합니다. 이렇게 대충 마무리를 하고, 교무실로 내려왔습니다. 잠시 정신없이 앉아있다가, 인터넷에 접속해서 요즘 받고 있는 사이버 연수를 시작하였습니다. [미술치료 상담과정]으로 미술을 통해 아이들을 상담하고 치료하는 내용입니다. 이 강의를 들으며 다시금 내가 어떻게 해야하는지, 어떻게 도와줄 수 있을지 생각합니다. 퇴근 시간이 되어도 더위와 축축한 바람은 계속됩니다. 아마 이 바람 사이에 비가 숨어 있나봅니다. 그 바람을 헤집고 비가 오려나 봅니다. 종례 시간에 걱정을 하며야단친 아이를 보니 얼굴이 조금 풀려 있습니다.한 녀석은 뭐가 좋은지 히히 하고 웃고 있습니다. 안심이 됩니다. 아이들 모습이 꽃같습니다. 정신지체 아이도, 중증 장애아이도 같이 공부하는우리 학교의 교실은 서로를 알아가고, 도와주고, 때로는 싸우며 자라겠지요. 그래서 이 아이들이 세상에 나갈 때 쯤에는 장애는 단지 조금 불편한 친구임을알게되면 좋겠습니다. 비가 섞은 바람 사이에 비릿한 밤꽃 냄새가나기 시작합니다.해가 길어 졌습니다. 여름이 성큼 다가선 강마을에서 저는 오늘 많은 생각을 하며 하루를 마무리합니다. 모두 더운 날 건강에 유의하시기 바랍니다. 강마을에서 이선애드림
5월 17일(목) 10시 부석초등학교(학교장 채규웅)에 벽안의 4명의 외국인과 1명의 통역사가 찾아왔다. 이들은 지방초등학교를 방문하여 게임, 노래 대화등을 통해 어린이들이 재미있게 영어를 배울 수 있도록 하는 프로그램을 운영하는 미국여성클럽 회원들로서 헬로우프렌즈라는 교육프로그램을 운영하기 위해 부석초등학교를 찾은 것이다. “야! 외국인이다.” 갑자기 3학년 교실에서 아이들의 함성이 터져 나왔다. 1주일에 한번 정도 학교를 방문하는 원어민과 함께 공부하는 시간을 갖는 아이들이지만 4명이나 되는 금발, 벽안의 외국인은 신기할 수 밖에 없는 모양이었다. “지방초등학교에 미 원어민이 찾아갑니다.” 헬로우프렌즈라는 프로그램은 4-5명의 미원어민과 한 명의 통역사가 지방 학교에 직접 찾아와 영어를 배우기 시작하는 어린이들에게 미 원어민의 영어 발음과 대화법을 익힐 수 있도록 도움을 주는 교육프로그램인데 이번에 서산에서는 부석초등학교를 찾아오게 된 것이다. 미원어민들은 자신들의 소개를 마친 후 3학년부터 6학년까지 학생들을 대상으로 2시간여 동안 영어로 하는 영어 수업을 진행하였다. 반가운 손님을 맞은 채규웅교장은 “지방의 작은 학교의 특성상 많은 외국인과 함께 할 수 있는 기회가 극히 제한적일 수 밖에 없는데 오늘 많은 외국인이 내교하여 아이들에게 귀중한 경험이 되었다.”면서 이국인 손님에 대하여 고마움을 표시하였다.
선생님, 여기는 한국정신문화의 수도 안동입니다. 이곳에는 소년체전 복싱대회가 열리는 곳입니다. 우리학교 학생 한 명이 결승전에 올랐기 때문에 격려차 여기에 와 있습니다. 다행히 숙소에 컴퓨터가 있어 이렇게 아침에 메모를 하게 됩니다. 담당 선생님 말씀으로는 별로 기대할 수 없다고 합니다. 왜냐하면 결승에서 맞붙는 선수와 사전 연습경기를 해 본 적이 있는데 힘 한 번 써보지 못하고 실컷 얻어맞기만 했다고 합니다. 하지만 저는 실망하지 않습니다. 그래도 마음 한 구석에는 은근한 기대가 있습니다. 시합에서는 언제나 예외가 있지 않습니까? 우리가 기대했던 금메달 유망주인 두 선수는 초반에 탈락하고 말았습니다. 그런데 전혀 기대하지도 않았던 선수가 결승에 올랐다는 것 자체가 바로 예외인 것입니다. 한 달 전 전국복싱선수권대회에서 두 친구가 금메달을 목에 걸었을 때 이 학생의 마음은 어떠했겠습니까? 보나마다 어금니를 깨물고 이날을 기다리며 피땀을 흘렸을 것 아닙니까? 그러니 남들이 볼 때는 예외라고 하겠지만 그 학생이 볼 때는 예외가 아닐 것입니다. 그러기에 저도 마음속에 기대를 하기도 합니다. 꼭 해내었으면 합니다. 특히 기대를 걸게 해주는 대목은 바로 이 선수의 자신감입니다. 자기는 이길 자신이 있다고 합니다. 대부분의 선수와는 다른 점입니다. 실컷 얻어맞은 경험이 있어 주눅이 들고 자신감이 없을 법도 한데 그러하지 않음을 보면서 더욱 힘을 얻게 됩니다. 오늘 11시 30분쯤 시합이 있을 예정인데 우리 선생님들께서 많이 응원을 해주었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어제는 영천에 열리는 태권도 시합을 지켜보았습니다. 두 학생 중 한 명은 초반에 탈락하고 한 학생이 시합을 하는 날이었습니다. 4강전에서 아깝게 져 동메달에 그치고 말았습니다. 거기만 이기면 결승에 나갈 수 있었는데 정말 아쉬웠습니다. 저가 볼 때는 충분히 이길 가능성이 있었습니다. 1점이 쳐지는 상황에서 시간이 20,30초밖에 남지 않으니 얼마나 조마한지 모르겠습니다. 한번 공격을 시원하게 해봤으면 하는 바람이었지만 결국은 공격을 하지 못하고 지고 말았습니다. 정말 안타까웠지만 그 선수의 가능성을 보았습니다. 저는 시합을 마치고 온 선수에게 잘했다. 더 잘 할 수 있다는 가능성을 보게 되었으니 더 멀리 내다보고 열심히 하라고 격려를 했습니다. 자기 아버지와 어머니에게도 격려를 하고서는 안동으로 발걸음을 옮겨야 했습니다. 특히 놀라운 것은 태권도 선수들의 부모님들의 열정이 대단하다는 것이었습니다. 자기애들이 시합에 나가지 못해도 직장의 연차를 내며, 연가를 내고서 함께 응원해주고 격려해주며 비디오로 분석을 하는 것을 보며 감동을 받게 되기도 합니다. 부모님들의 뒤에서 밀어주는 힘이 장차 자녀들이 큰 선수로 발돋움하는 데 큰 디딤돌이 될 것입니다. 또 울산에서 저를 포함해 네 분의 교장선생님께서 오셨는데 남의 학교 선수가 시합을 할 때에는 자리를 옮겨가며 응원을 해주었습니다. 우리학교 학생이 시합할 때는 다른 학교 교장선생님께서 오셔서 함께 응원을 해주니 하나 되는 느낌을 받기도 했습니다. 울산에 속한 모든 선수들이 함께 응원하는 모습도 아름다웠습니다. 승부를 떠나 함께 응원해 주는 그 아름다운 모습이야말로 스포츠가 이끄는 힘이 아닌가 하는 생각도 하게 됩니다. 다른 학생들이 응원해주고, 다른 학부모님들이 응원해주고, 다른 교장선생들이 응원해주고, 다른 체육선생님들이 응원해주고 중학생이 초등학생들을 응원해주는 모습들이 계절의 여왕 5월을 더욱 빛나게 하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오늘 아침은 교육은 응원이라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어느 부서에서일을 맡아 하더라도 다른 부서 선생님들은 잘 해라고, 잘한다고 격려하며 응원하며 하나 되는 모습이 필요할 것 같습니다. 우리들은 그런 모습들을 지금까지 잘 보여 왔지 않았습니까? 계속해서 그러했으면 합니다. 이번 주에는 영어로 진행하는 수업이 우리학교에서 있습니다. 수업하시는 선생님을 응원하고 격려해야죠. 수업하시는 선생님을 도와드려야 합니다. 영어선생님이 아니더라도 관심을 갖고 함께 참여해야 합니다. 그러면 더욱 빛이 날 것 아니겠습니까? 교육은 응원입니다.
일본 카와사키시 교육위원회는시립 4곳의 초등학교를 시내에서 처음으로 로 지정하였다. 각 학교는 학부형과 지역주민들이 위원이 되어 학교운영협의회를 설치하여 학교와 지역사회가 일체가 되어 교육 방침을 정해교육을 할 방침이다. 지역사회 학교는 지역의 공립학교의 운영에 시민의 의견을 반영하면서, 지역에 열린 학교 만들기를 지향하는 구상이다. 이를 위해 시정촌 교육위원회가 학교를 지정한다. 학교운영협의회는 교장이 정하는 교육과정편성 등의 학교운영의 기본 방침을 승인하는 것 외에, 모시고 싶은 선생님 등에 대해서도 시교육위원회에 의견을 말할 수 도 있다. 이 제도는 2004년도부터 전국에 설치가 시작되어, 현 내에서는 요코하마시립 히가시야마다중학교가 지정되었다. 이번에 지정된 곳은 카와사키구의 4개 초등학교는 모두 시교육위원회의 모집에 대해서 응모하였다. 이들 학교는 올 봄부터 준비를 해왔다고 한다. 각 학교는 이번 달부터 학교운영 협의회를 설치할 예정으로 처음 년도 위원수는 14~16명을 예정하고 있다. 학부형과 PTA, 지역주민, 교원 외에 공모위원이나 유식자도 참가한다. 각 학교의 준비회에서는 영어 교육활동, 아동의 안전, 환경 문제, 시설개방 등이 화제가 되고 있으며, 이러한 테마에 대해서 학교별로 추진해 나갈 예정이다. 일본의 학교도 이제 우리 나라의 학교운영위원회 제도를 도입하여 학교의 변혁을 시도하고 있다. 그러나 모두가 참여한다고 교육이 다 잘 이루어진 것은 아닐 것이다. 진정으로 교육에 관한 식견과 안목이 없이 단지 지역 주민의 의사만을 반영하겠다고 하는 것은 교육의 성공을 가져오기 어렵다. 우리 나라도 기왕에 설치된 학교 운영위원회가 제 구실을 다하여 교육의 질을 높이는 방향으로 나가야 할 것이다.
안녕하십니까? 갑자기 낯선 사람으로부터 편지를 받고 놀라시지 않을까 염려스럽습니다. 전혀 기억하시리라고 생각되지 않습니다만 저는 39년 전 1968년 8월 서울 종로 2가 EMI학원에서 신일선생의 `완전수학1`강의를 듣던 남학생입니다. 그때 교수님께서는 S여고 3학년 학생으로 금호동에 살고 계셨지요. 저는 시골에서 고등학교를 마치고 서울에 올라와 재수를 하고 있었습니다. 돈암동 고모님 댁에 의탁하여 지내고 있었습니다. 학원에 등록해서 수학을 공부하고 있던 중 한 단발머리 소녀를 보게 되었던 것입니다. 바로 B교수님이었습니다. 시골에서 올라온 촌뜨기 학생으로 서울 여학생에 대해서는 항상 선망의 눈으로 바라보았을 뿐 언감생심 어떻게 말을 쉽게 걸어볼 수나 있었겠습니까? B교수님뿐만 아니라 다른 여학생들에 대해서도 저는 그렇게 생각을 했습니다. 그 때가 한여름 밤이라 강의실 불빛으로 나방이가 날아들기도 했지요. 저는 가수 김상국의 불나비라는 노래를 떠올리며 그 나방이들을 바라보곤 했습니다. “얼마나 사무치는 그리움이냐 밤마다 불을 찾아 헤매는 마음......”하는 노래 있지 않습니까. 한 여학생이 마음에 다가 오기 시작하더니 급기야 매료되었다고나 할까요. 물론 저 혼자만의 생각이었지만 말입니다. 그때 교수님은 S여고 교복을 입고 있었지요. S여고에 대한 학교이미지도 좋았고 그 학교의 교복이며 배지가 저에겐 무척 매력적으로 보였습니다. 물론 교수님의 단발머리와 그 차가우리만치 이지적인 눈매는 지금까지도 저를 몽롱한 환상에 빠지게 하지만 말입니다. 그 후로 한 달의 강의가 다 지날 무렵 걱정이 생기기 시작했습니다. 곧 종강을 하면 여학생을 볼 수 없으리라는 불안감 때문이었지요. 어느 날 강의가 끝나고 각자 집으로 향할 무렵 학원 앞에서 제가 말을 붙여보았지요. "얘기 좀 나눌 수 있을까요?` 어색할 정도로 머뭇거리며 아마 그랬던 것 같습니다. 그때 여학생의 대답은 단호했었습니다. "스케줄이 꽉 짜여 져 있어서 시간이 없어요?"였지요. 저는 쥐구멍이라도 찾을 듯 당혹해 하며 다른 쪽 골목을 통하여 집으로 왔습니다. 그 다음 날인가 저는 책을 한 권 사가지고 무작정 그 여학생 꽁무니를 따라갔습니다. 집이라도 알아놓을 심산이었지요. 또 선물도 꼭 주고 싶었습니다. 을지로에서 버스를 탄 그 여학생은 금호동 로터리에서 내려 한참을 걸어갔지요. 저는 저만치 거리를 두고 따라갔습니다. 집 근처에 왔을 때 준비했던 책을 건넸지요. 받지 않았습니다. "빨리 가세요. 오빠가 나올지 몰라요." 책은 받지 않고 당황스러워 하며 빨리 가라고만 서둘렀습니다. 그렇게 학원 강의는 끝나고 다시는 그 여학생을 볼 수 없는 날이 계속되었습니다. 저는 밤에 차를 두 번이나 갈아타고 금호동으로 가서 그 여학생이 들어갔던 집 창문을 한동안 바라보다가 돌아오곤 했습니다. 한번은 저녁 나절 집으로 찾아가 교수님의 어머니를 뵙기도 했습니다. 어머니는 예닐곱 살 된 여자아이를 데리고 나오셨는데 그 아이가 무척 예뻤습니다. 저는 지금껏 그 어린이가 교수님의 막내 동생일 거라고 짐작하고 있습니다. 어머니는 제게 조용히 타이르셨습니다. 대학교에 들어가서도 기회가 있으니 지금은 공부를 열심히 해야 할 때라고 이르셨지요. 그 무렵 갑자기 예비고사 계획이 발표되었습니다. 시간이 지나 예비고사도 끝나고 본고사 발표도 끝난 2월이었던가요. 다시 금호동으로 찾아갔습니다. 두 오빠들을 만났었지요, 어머니도 옆에 계셨습니다. 집으로 들어서면 왼쪽에 나지막한 별채가 있었는데 그 방에서 오빠는 제게 물었습니다. "경ㅇ이 어디가 좋은가요?" 오빠는 운동을 했는지 무척 강인해 보였습니다. 얼른 순진한 모습이 좋다고 말했지만 당황해서 내 마음을 제대로 표현할 수가 없었습니다. 그러면서 하는 말이 경ㅇ이는 은ㅇ하고 은ㅇ네 고향 정읍에 갔다는 것입니다. 은ㅇ는 ㅇㅇㅇ 학생으로서 그 해 예비고사에서 여자 전국수석을 차지한 학생이었습니다. 교수님과는 S여고 동기동창이 아니겠습니까. 아마 절친한 친구사이였나 봅니다. 그날은 그렇게 하고 돌아왔습니다. 이름이 경ㅇ이라는 것을 그 날 처음 알았던 것입니다. 그리고 교수님께서 E대 가정관리학과에 들어갔다는 것을 알았지요. 나는 내가 K대 국문과에 합격한 것을 말했지요. 입학식도 끝나고 3월 하순쯤 술을 한 잔 하고 금호동으로 찾아갔었습니다. 초저녁이었지요. 그날 집 뒤 교회 옆 골목길에서 오빠와 격투가 벌어졌지요. 제 입술이 찢어져 피가 흥건하게 흘러내렸습니다. 골목 모퉁이 구멍가게에 들어가 대충 피를 닦아내고 집으로 돌아왔습니다. 여동생을 지극히 사랑하여 염려스러운 마음에 그랬던 것으로 이해하고 있습니다. 그 후 어느 날 E대 앞 ㅇㅇ동 Y대에 다니는 친구의 하숙집에서 자고 이튿날 오후 E대 앞에서 기다렸지요. 그때 그 여학생이 학교에서 나왔습니다. 저는 내심 반갑고 한편 당혹스러워 하면서도 그 여학생이 타는 차에 함께 올랐지요. 그 여학생은 동대문 근처에서 내려서는 신설동 방향으로 계속 걸어갔습니다. 나는 뒤를 따라갔지요. 신설동 로터리 다원제과 입구에서 우리는 오빠와 만났습니다. 여학생이 아마 각본을 짜고 연출을 했던 것 같습니다. 걷는 도중 공중전화에서 전화를 걸었는데 그때 오빠에게 전화를 했던 게 틀림없습니다. 우리는 다원제과에 말없이 앉아 있었습니다. 오빠가 술 한 잔 하자고 제의하기도 했습니다. 그렇게 만나보고 싶어 했으면서도 왜 그 제의를 거절했는지 지금 생각해도 잘 모르겠습니다. 아마 전날 친구들과 과음을 한 탓인 것 같습니다. 의례적인 인사성 대화 몇 마디를 나누고 우리는 제과점을 나와 각각 다른 길로 헤어졌습니다. 그것이 마지막이었습니다. 그 해 내내 삼선개헌 반대 데모는 캠퍼스를 뜨겁게 달구었고...... 저는 일 년 만에 국문학을 접고 영문학을 다시 시작했습니다. 오랜 시간이 지나 제 나이 30대 중반이었습니다. 우연하게 월간지 여성동아를 펼쳤다가 거기서 B교수의 글을 접하게 되었습니다. 신선한 충격이었습니다. 어린이 성교육에 관한 내용이었던 것 같습니다. 그 후로 막연하게 그 여학생이 대학교수가 되었구나 하고 지내왔습니다. 서점엘 가면 관련분야 책을 살펴보기도 했습니다. 혹시 교수님의 저서가 있지 않을까 해서였지요. 그래 주ㅇㅇ교수와의 공저 하나를 찾아내 구입해 읽어보기도 했습니다. 그 후 또 오랜 시간이 지나 인터넷이 널리 보급되고 저는 검색창에 교수님의 성함을 써넣고 검색을 해보았지요. 여러 가지 자료가 검색되었습니다. 근황을 접하기도 하고 여러 편의 논문을 읽어보기도 했습니다. 최근엔 또 저서를 새로 내셨더군요. 초로의 나이에 접어든 요즘에도 오래 전의 작은 에피소드는 마치 엊그제의 일처럼 새롭기만 합니다. 지난 2005년에 수필집을 한권 출간했습니다. 그 책에 교수님과의 까마득한 옛날의 작은 에피소드를 글로 엮어 `교수가 된 여학생`이라는 제목으로 싣기도 했었지요. 93년도 7월 무렵엔 다음과 같이 써보기도 했습니다. 금호동연가 그 로터리에서 나지막한 언덕길을 걸어 꼬불꼬불 너의 집에 이르던 그길 길가에 초라하던 세탁소며 쌀가게 대폿집 다시 번잡한 시장모퉁이를 지나 너의 단층집 정원의 상록수들 그 나뭇가지 사이 창문의 불빛 아늑한 고전의 불빛 나는 몰라 내 젊은 날의 열정이 꿈이었는지 사랑이었는지 어설픈 생존의 아우성이었는지 나의 스무 살은 온통 열기에 타올라 너의 집 주변을 맴돌게 했다 불나비처럼 너는 또 어떤 우여곡절을 겪어 그 아늑한 고을을 떠났을 것이냐 네가 벌써 떠났을 그곳에 열아홉 살 단발머리 너의 눈빛은 곱고 내 스무 살 불같은 열정은 지금도 종종 불꽃이 일고 잿더미 사이로 장미 빛 불꽃이 일고 제가 감히 어떻게 이런 편지를 띄울 엄두를 낼 수 있었겠습니까? 샘터사의 홍보 메일이 편지쓰기 이벤트를 알려왔기에 공적인 행사에 참여한다는 생각으로 이렇게 글을 적어보았습니다. 나이를 먹어도 마음은 어리기만 하고 청소년 시절의 이야기가 마치 어제의 일처럼 또렷하기도 하여 이렇게 이벤트의 일환으로 적어보았습니다. 너무 놀라시거나 당황해하지 마시고 천리 밖 먼 고장에 40년 전의 한 작은 인연을 소중하고 아름다운 기억으로 간직하고 있는 사람이 있구나 하고 생각을 하신다면 한없이 감사하게 여길 것입니다. 또 매우 기쁘고 영광스러운 일로 생각할 것입니다. 저는 대학과 군대를 마치고 계속 인천에서만 30년 가까이 고등학교 영어교사를 하고 있습니다. 샘터사에서 계획한 이 이벤트에 참가해볼까 생각을 하다가 갑자기 교수님이 떠올랐던 것입니다. 거듭 말씀드리거니와 어떤 의구심이나 선입견도 갖지 마시기 바랍니다. 교수님의 강의를 한번 듣고 싶다는 생각은 종종 하지만 그 기회가 오지 않는군요. 한번은 상경하여 동대문운동장 근처를 지나다가 갑자기 금호동엘 가보고 싶었습니다. 옛날의 기억이 떠올랐다고나 할까요. 차를 몰고 금호동으로 향하여 교수님의 옛 집터로 가보았습니다. 차를 골목에 세워두고 이곳저곳 서성거리며 옛일을 떠올려 보았습니다. 옛집은 간 곳 없고 병원 건물이 들어서 있더군요. 세월은 이렇게 모든 것을 바꾸어 놓으며 흘러가는 것 같아 한참을 아쉬워하다가 돌아왔습니다. 종종 교수님의 학문적인 글을 읽다가 지난해 8월에 불교여성개발원 홈페이지에 쓰신 `불교의 품속에서`를 읽었습니다. 모처럼 소회를 적은 수필 형식의 글을 아주 재미있게 읽었습니다. 비로소 불교와 인연을 맺으신 경위를 알게 되었지요. 꾸준하게 학문의 길을 걸어오신 것 같아서 존경의 마음을 금할 수 없는 것입니다. 근래 보도에 따르면 또 사범교육대학장의 중책을 맡으셨더군요. 그저 멀리서 우연하게 접하는 기사일지라도 그저 어린애처럼 즐겁고 반갑기만 했습니다. 아무쪼록 학자로서 교육자로서 후학들을 위해 더욱더 힘써 주시기를 바라며 외람되이 보내드린 글월을 마치려 합니다. 교수님 건강하시고 부처님의 품속에서 항상 행복하시기를 빌겠습니다. 2007년 5월 26일 인천에서 최일화 드림
최근 인터넷경향신문의 뉴스메이커 726호에서 '[커버스토리]1등 아니면 수업중 발언권도 없다!'는 제하의 기사가 실렸다. 그 내용은 대략 이런 내용이다. 1등이 아니면 인격적 대우를 받지 못할 뿐더러학생이 발언을 해도 그 자체를 교사들이 묵살하는 분위기이며, 학교에서 수상되는 각종 시상도 1등에게 쏠리고 있다는 것이다. 수행평가 등에서도 1등하는 학생은 결과가 다소 좋지 않아도 높은 점수를 교사들이 주고있으며, 보충수업에서도 심화반에만 집중되고 나머지 반은 대충수업을 하는 경향이 있다는 것이다. 지난 5월 중순에 서울의 한 고등학교 3학년 교실에서 '어떤 경우에 학교현장이 1등 위주로 돌아가고 있다고 느끼는가'에 대한 설문조사결과 대다수 학생들이 위와 같은 경우을 꼽았다고 한다. 이런 기사내용 다음에는 전문가들의 인터뷰내용을 다루고 있다. 물론 학교가 1등을 중요시하는 것은 부인하기 어렵다. 그러나 1등 위주로 돌아간다는 것은 쉽게 납득하기 어려운 부분이다. 1등을 중요시하는 것은 현재 우리나라 교육의 구조에서는 어쩔수 없이 나타나는 현상이긴 하지만 학생들의 지적이나 전문가의 지적에 동의하기 어려운 부분들이 있다. 일단 수행평가에서 1등을 하는 학생은 결과가 안좋아도 좋은 점수를 준다는 부분, 실제로 이런일이 일어날 수 없다. 만일 이런일이 발생한다면 그 교사는 당장에 징계를 받아야 한다. 수행평가라는 것이 교사의 주관적 판단으로 이루어지는 것으로 보일 수 있지만 모든 수행평가에는 기준이 있다. 그 기준에 따라 평가를 하게 되는데, 기준에 반해서 점수를 부여한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다. 또한 수행평가에 있어서 학생들이 자신의 것과 다른 학생것을 비교하기 때문에 주관적으로 마음대로 점수를 조작해서 부여할 수 없다. 두번째로 각종 시상에서도 1등에게 몰아준다고 하는데, 고등학교의 경우는 어떨지 몰라도 최소한 중학교에서는 그런일이 없다. 해당기준에 걸맞는 학생을 추천하여 상을 받게 되는 것이지 무조건 성적이 1등이라고 상을 몰아주는 일은 일어나지 않는다. 이 경우도 실제로 이런일이 발생하고 있다면 추천관련 교사는 당연히 징계를 받아야 한다. 기준없이 추천하여 몰아주는 일은 있을 수 없는 일이다. 가끔씩 성적 몇%이내 학생을 추천하라는 경우가 있지만 나머지는 그런 경우가 흔하지 않다. 세번째로 함께하는교육시민모임 김정명신 공동대표는 '우리 교육현장에는 학력신장과 효율성 강화라는 구호만 남았을 뿐, 약자에 대한 배려와 공존에 대한 가치는 무너졌다'고 진단한다. 김정 공동대표에 따르면 강남의 ㄷ중학교 등 일부 학교에서는 영어수업시간 내내 영어로만 수업을 진행하고 있다고 한다. 한 반 35명 중 10여 명이 외국 체류 경험을 가진 지역 특성이 작용한 결과지만 나머지 20여 명에 대한 배려는 없다'는 지적을 했다고 하는데, 실제로 영어로만 수업을 진행하도록 한 것은 교육부의 방침이다. 일선학교에서는 그에 따라 영어로 수업을 진행하고 있을 뿐이다. 35명중에서 20여명에 대한 배려가 없다고 지적했는데, 영어의 경우는 일선학교에서 수준별이동수업을 하고 있는 대표적인 과목이다. 한 학급을 보통 세개의 단계로 나누어서 수업을 하기 때문에 충분한 배려는 아니더라도 어느정도의 배려는 하고 있다는 생각이다.또한 외국체류경험이 있는 학생들만 영어 수업을 알아들을 수 있다고 전제하는 것은 문제가 있다. 국내에서 공부한 학생들도 그정도의 수준을충분히 넘는 경우가 많다. 김대표 자체가 외국에 갔다와야 영어를 잘할 것이라는 편협된 사고를 가지고 있는 것은 아닌가 묻고싶다. 네번째로 지적하고 싶은 것은 대신고 김영삼 교사의 인터뷰 내용이다.김 교사에 따르면 최근엔 학생간부수련회를 해외로 계획하는 학교들이 많다고 한다. 학생회 간부들이 대부분 윤택한 집안 출신에 성적 또한 상위권인 점을 감안하면 학교 예산 사용이 적절치 않다고 반대하는 일선 교사들과의 마찰이 많다는 것인데, 사립고등학교의 경우는 어떤지 정확히 알길이 없지만 최근의 학교는 학생간부라고 해서 가정이 윤택한 집안출신에 성적이 상위권인 경우는 흔하지 않다. 가정형편이 어렵고 윤택한 것과는 상관이 없이 간부학생이 될 수 있다. 또한 성적을 따로 기준으로 삼지 않는다. 이미 이런 규제가 철폐된지 오래이다.그럼에도 이런 생각을 가진 것은 교사로써 한쪽만 바라보는 시각때문이 아닌가 싶다. 아니면 인터뷰 내용중에서 일부분만 인용한 뉴스메이커의 잘못이라는 생각이다. 또한 현재는 학교에서 학생간부라는용어를 거의 사용하지 않는다. 학생임원이라는 표현을 더 많이 사용한다. 기사에서 지적한 것처럼 모든 것이 1등 위주로 돌아간다는 것은 당연히 옳은 방향은 아니다. 그렇더라도 학교현장은 모든 부분이 전부 1등위주로 돌아가는 것은 아니다. 1등이 아닌 나머지 학생들에 대한 배려를 위해서 교사들은 열심히 노력하고 있다. 학교에서 학비감면이나 중식지원, 모범학생표창, 외부대회 출전, 수련회비감면, 학생임원선출규정, 장학생추천등 많은 부분이 공부에서 우수한 1등위주로 돌아가지 않는다. 1등이 아니어도 다양한 소질을 가진 학생들에게 도움을 주기 위해 노력한다. 가정형편을 충분히 고려하는 교육활동도 함께 진행하고 있다. 모든 것이 1등위주로 돌아간다는 표현은 옳지 않다고 본다. 다만 일정부분 그런 부분이 있다면 학교에서 개선해 나가야 할 문제이다. 교사들이 보통 하는 이야기가있다. '잘하는 아이들은 그대로 두어도잘한다. 우리가 더 보살펴야 하는 아이들은 공부못하고 소외되는 학생들이다. 이들에게 더 관심을 갖는 것이 중요하다.' 다소 비약된 면도 없지 않지만 학교에서 교사들이 보는 현실이다. 현실을 왜곡하는 보도나 생각은 금물이라는 생각이다.
학습과 놀이의 경계선이 허물어지고 있다. 놀이는 흥미가 있어 오랫동안 하여도 싫증이 나지 않는다. 아이들이 만지작 거리는 것을 들여다 보면 거의가 게임기이다. 그러나 학습은 그렇게 장시간 하는 것이 쉽지가 않다. 이러한 놀이의 장점에 착안하여 게임기인 놀이기구를 학습에 활용하려는 노력이 끊임없이 지속되고 있다. 이것이 바로 게임기의 학습에 이용이라 할 것이다. 일본의 고도 교토부 야와타시 교육위원회 직원이 제안한 인기 휴대 게임기「닌텐도 DS」용의 영어 단어 학습 소프트를 중학 3학년의 수업에 사용했는데, 불과 5개월만에 영어 단어 어휘수가 평균 4할 정도 올라간 사실이, 동시 교육위원회등의 실증 실험으로 알려졌다. 실험에 협력한 이케다 신·죠오치대 준교수(영문학과)는「전국의 중학생의 3할 정도 밖에 없는 영어 검정 3급에 필적할 정도의 학력이 달성된 것으로, 눈부신 효과가 있었다」라고 분석하고 있다. 시 교육위원회는 이달 21일부터, 전시립 중학교 4개교의 2 학년 수업에 게임기를 본격 도입했다. 시 교육위원회에 의하면, 이 소프트는 직원이 3년전에 도쿄의 메이커「IE협회」에 개발을 제안한「중학 영어단어 타겟 1800 DS」이다. 효과를 조사하기 위해 작년 9월부터 시립 오토코산 히가시중 3학년의 49명을 그룹으로 나누어 실험한 것으로, 수업은 모두 약 10분 실시하는 것으로 게임기의 영단어 학습을 도입했다. 학생의 어휘수는, 1~2조(합계 24명)의 1인당 평균 어휘수가 1025개에서 1386(35·2%증가)개로, 3~4조(합계 25명)가 1013개에서 1436개(41·8%증가)로 증가하였다. 이러한 수치는 영어검정 3급의 수준에 이른 정도의 것이다. 설문에 회답한 학생(42명)의 9할 이상이「즐거웠다」,「효과가 있었다」라고 대답해 7할 이상이「올바른 발음을 하게 되었다」라고 대답했다. 시 교육위원회는 정부의 지원을 받아 게임기 600대를 구입하여 2학년의 영단어 학습에 도입했다.
한 미국 중학교 한인 교사의 집념어린 노력으로 일제 말기 한국인을 가해자, 일본인을 피해자로 묘사한 '요코이야기'(So Far From the Bamboo Grove)가 미국 내 171개 초등학교 및 중학교에서 퇴출돼 화제가 되고 있다. 미국 내 교육구청 중 세 번째로 큰 메릴랜드 주(州) 프린스조지 카운티 교육청은 지난 15일자로 이 지역 171개 초등학교와 중학교에 '요코이야기'를 더 이상 교재로 사용해선 안된다는 공문을 발송했다. 이에 따라 이들 학교에서는 '요코이야기'의 교재 사용이 완전 중단됐으며 학교에서 쓰던 책과 부교재, 교사 지침서들은 모두 교육청으로 반송하라는 지시가 내려졌다. '요코이야기 파문'에도 불구하고 미국 내 상당수 학교가 이 책을 계속 교재로 이용하고 있는 가운데 프린스조지 카운티의 '요코이야기' 퇴출 결정은 이제까지 단연 최대 규모이다. 불과 몇 달 전까지 프린스조지 카운티 내 공립학교 학생들이 배우던 '요코이야기'를 모두 수거하도록 만든 장본인은 이 카운티의 켄무어중학교에서 영어교사로 재직 중인 허 선씨(미국명 밥 허). 한국 국적의 미국 영주권자인 허씨는 지난 1월 '요코이야기'가 일제 해방 무렵 역사를 왜곡했다는 언론 보도를 보고서야 자신이 몸담고 있는 켄무어중학교에서도 이 책이 교재로 쓰이고 있다는걸 알았다. "너무 부끄러웠습니다. 내가 한국인이면서 이런 책을 우리 학생들이 배우고 있다는 것 조차 몰랐으니 말이지요. 더욱 놀라웠던 것은 책을 읽고 나서였죠. 일제 36년간 피해를 당한 건 한국인인데 책을 읽어보면 한국인은 아주 나쁘고, 죄없는 일본인을 괴롭힌 것으로 나오니 너무 화가 났습니다" 영어가 모국어가 아닌 학생들에게 영어를 가르치는 ESOL 교사인 허씨는 이 책을 학교에서 퇴출시켜야겠다고 결심하고 '요코이야기'의 잘못된 부분들을 분석해 자료로 만들었다. 우선 학교 영어과장에게 '요코이야기'의 문제점을 조목조목 설명해 교재 사용 중단을 설득했고 교장도 똑같은 논리로 이해를 시켜 켄무어중학교에서는 이 책을 교재로 쓰지 않는다는 공식 결정이 내려졌다. 허씨는 이어 벤자민 카딘 메릴랜드 주 상원의원에게 편지를 보내 '미국 학생에게 부정확한 역사를 가르치는 건 문제가 있으니 이를 바로잡도록 도와달라'고 호소했다. 카운티 교육청과 메릴랜드 주 교육부, 레그 위버 전미교사협의회 회장, 각 학교 영어선생님들에게도 '요코이야기'의 퇴출을 주장하는 수 십 장의 편지를 보냈다. 카딘 의원과 메릴랜드 교육부에서 답신이 왔지만 교재 선택은 교육자치 차원에서 연방정부나 주 정부가 관여할 사항이 아니므로 카운티 교육청과 협의하라는 내용이었다. 프린스조지 카운티 교육당국자들은 허씨의 편지와 수 십 차례의 통화, 면담 등을 통해 마침내 교육청장과 8명의 교육위원, 영어 담당관 등이 의견을 모아 '요코이야기' 퇴출 결정을 내렸다. "우리 학교에 있던 100여권의 '요코이야기'는 쓰레기 처분됐습니다. 건물 밖에 쌓여 있는 책들을 보고 만감이 교차했지요. 2000년 한국을 떠난 뒤 앞만 보고 달려왔는데 조국을 위해 조그만 일을 할 수 있었다고 생각하니 너무 기쁩니다" 허씨는 이번 일을 통해 시스템 내부자의 역할이 얼마나 중요한가를 실감했다고 한다. 카운티 내의 교사인 자신이 문제를 제기했기 때문에 학교 밖의 의견보다 쉽게 받아들여질 수 있었다는 것이다. 동료 교사들의 의견을 들어 미국인들에게 먹힐 수 있는 설득자료를 만든 것도 주효했다. 특히 역사 교사들의 자문을 구해 미국 교육당국자들이 이해하기 쉬운 논리를 펼친 게 효과적이었다. 허씨는 프린스조지 카운티 171개 학교에서 요코이야기 퇴출 결정을 이끌어냈지만 앞으로도 메릴랜드 주의 다른 지역은 물론 미국 전체 학교에서 '요코이야기'를 완전 퇴출시킬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할 작정이다. 다음 목표는 인접지역인 하워드 카운티와 앤 아룬델 카운티이다. 여름 방학에 이들 카운티 교육당국자들에게 편지와 자료를 보내고 전화나 면담을 통해 또 다른 퇴출 작전을 펼칠 예정이다. 허씨는 미국 내 다른 지역에서 '요코이야기' 퇴출 운동을 펼치고 있는 한인 학부모 등과도 적극 협력해 힘을 모으려는 구상도 하고 있다. "제가 꼭 한국인이라서 '요코이야기' 퇴출에 나선 것은 아닙니다. 교육자로서 학생들이 잘못된 사실을 배우는걸 용납할 수는 없는 일이지요. 더욱이 한국과 관련한 역사를 거꾸로 배우게 할 수는 없습니다" 허씨가 교육당국자들을 설득하기 위해 만든 4쪽 분량의 자료는 이렇게 끝난다. '이 책은 완전한 진실이 아니고 아주 편향돼 있기 때문에 모든 초등학교와 중학교에서 금지돼야 합니다. 학생들은 진실과 치우치지 않은 교재들을 배워야 합니다. 어린 학생들에게 사실에 입각한 교재를 이용해 정확하게 가르치는 게 교육자의 의무입니다'
경기도교육청은 토요 휴업일(놀토)인 26일 저소득층 및 맞벌이 가정 자녀들의 체험학습을 위해 '주말 버스학교'를 운행한다. 놀토 버스학교는 양평교육청의 '친환경 놀이 예술 창의 체험' 등 도내 각 지역 교육청별로 프로그램을 마련해 진행하게 된다. 이날 버스학교 행사에는 1천200여명의 어린이들이 참여해 교사, 전문강사, 명예교사, 대학생 봉사단 등과 함께 환경체험, 영어마을 체험, 도자체험 등을 하게 된다. 버스학교는 각 시.군교육청 관내 초등학교에서 추천된 학생들이 버스를 타고 박물관 등을 방문, 1일 일정의 다양한 체험활동을 하는 프로그램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