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사'검색결과 - 전체기사 중 48,544건의 기사가 검색되었습니다.
상세검색명예퇴직을 신청했다가 거부당한 강원도의 현직 교사 2명이 도교육청의 명퇴대상 결정이 규정에 위배된 채 이뤄져 불이익을 받았다며 최근 강원도교육감을 상대로 행정소송을 제기했다. 이들은 소장에서 "도교육청이 지난 8월말로 시행한 교원 명예퇴직과 관련, 국가공무원 명퇴수당 등 지급규정에는 상위직·장기근속자 순으로 우선 고려토록 돼 있는데도 평교사의 경우 원로교사를 우대한다는 이유로 근속연수를 무시한 채 42년 8월31일 이전 출생자중에서 연령이 많은 순서로 결정해 부당한 처분을 받았다"고 주장했다. 이들은 또 "교육공무원 임용령에는 원로교사를 교장의 임기를 마친 자가 교사로 임용될 경우로 규정해 연령과는 무관한데도 도교육청은 당시 원로교사에 관한 법리를 오해, 연령을 기준으로 결정하는 바람에 근속연수가 오히려 적은 교사들이 대상자로 결정됐다"고 밝혔다. 이들은 특히 "타 시·도교육청에서는 명퇴 신청자를 모두 수용했는데도 불구하고 강원도교육청이 예산부족을 이유로 신청자 일부에 대한 수용을 거부한 것은 타 시·도와의 형평성을 고려하더라도 부당하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도교육청은 "명퇴수당 지급 대상자는 교육공무원 명퇴수당 지급에 관한 특례규정에 의해 인사위원회에서 심사·결정토록 하고 이때 원로교사를 우선 고려토록 하고 있다"며 "인사위에서 42년 8월31일 이전 출생자를 명퇴 대상자로 결정한 것은 적법한 절차에서 이뤄진 것"이라고 밝힌 것으로 알려졌다.
교수 중심의 승진제도를 확립하기 위해 현행 2정-1정의 자격체계를 수석-선임-1정-2정 4단계로 분화하고 우대하자는 방안이 제시됐다. 한국교원교육학회(회장 서정화)가 23일 교총 대회의실에서 연 `새로운 교원정책의 쟁점과 과제' 세미나에서 박종렬 경북대 교수는 `교수활동을 중시하는 수석·선임교사제'를 주제로 발표하고 `수석교사의 자격화'와 `교사자격 4단계화'를 주장했다. 이에 따르면 현재 교사의 자격구분을 현행 2급-1급 정교사의 2단계에서 교직발달단계와 전문성 수준에 따라 정원을 정하지 않고 일정 교육경력과 연수를 받으면 선임 및 수석교사 자격을 취득하도록 4단계로 분화하는 것이 골자. 박 교수는 "수석교사 자격증은 교육전문직 경력 10년 이상인 자, 1급 정교사 자격 취득 후 교육경력 15년 이상인 자 혹은 선임교사 자격 취득 후 교육경력 10년 이상인 교사가 자율적인 지원으로 평가 인정받은 재교육기관에서 자격연수를 받은 자에게 발급하고 자격증 취득자에게는 1호봉 가산의 특전을 주자"고 제안했다. 또 선임교사 자격증은 1급 정교사 자격 취득 후 교육경력 5년 이상인 1급 정교사 자격증소지자가 평가 인정받은 재교육기관에서 소정의 연수를 받으면 발급하고 1호봉 가산의 특전을 부여하자고 주장했다. 이와 관련 교원직위체계에서 보직교사는 선임교사 및 수석교사 자격증을 가지고 학급담임 경력 5년 이상인 교사 중 교장이 선발, 임명하고 상응하는 수당을 지급하는 방안을 내놨다. 박 교수는 "현행 조직이 사무중심으로 편성돼 장학이나 연구활동을 주도할 지도자가 없다"며 "시안에서는 수석교사가 이를 수행하도록 할 계획이지만 보직이 아닌 자격증제로 바뀌면 팀장으로서 보직교사에게 이 권한을 줘야 한다"고 말했다. 이어서 "이들 보직교사를 팀장으로 하는 학교경영방식을 도입해 장학과 행정활동을 맡도록 하고 팀원의 근무평정권도 부여하자"고 말했다. 박 교수는 보직교사는 1급 정교사, 선임, 수석교사 자격증을 갖고 담임 경력 5년 이상인 자 중에서 교장이 임명하는 안을 제시했다. 한편 표준수업시수에 대해서는 "단기적으로 예산 문제가 있으므로 유·초등교는 25시간, 중등학교는 18시간으로 하되 학교규모, 업무, 담당교과 수 등에 따라 차등 적용해야 할 것"이라며 "초과수업에 대해서는 수당을 지급해야 한다"고 말했다. 토론에서 송경헌 서울 삼선초등교 교감은 "1급 정교사 후 길게는 정년까지 승진의 기회가 없는 점을 해결하기 위해서도, 교육행정직의 9단계, 교수들의 4단계와 형평을 맞추기 위해서도 수석교사제가 도입돼야 한다"고 말하고 "다만 현행법상 교감의 업무와 수석교사의 업무간의 갈등 유발 문제 해결을 위해 수석교사의 명확한 직무역할이 논의되어야 한다"고 지적했다. 한편 이날 세미나에서는 송광용 서울교대 교수의 `교원교육의 발전과 교원전문대학원·교육전문박사 과정 설치 운영', 이윤식 인천교대 교수의 `교원의 전문성 심화를 위한 연수이수 학점화', 박덕규 한국교육개발원 수석연구위원의 `승진기준 재조정을 통한 인사체계 합리화 방안', 우정남 서울 홍파초등교 교장의 `유능한 학교행정가 확보와 교장 연임제' 등의 주제발표와 토론이 이어졌다.
연간 7억불 적자…총체적 교육부실에 원인 국제교육진흥원 국제포럼 국제교육진흥원이 19, 20일 세종문화회관에서 개최한 `21세기 국제교육교류포럼'에서 발표자들은 국내 학생의 외국유학 규모가 외국학생의 국내유학 규모의 수 십 배에 달하는 국제교육교류 역조현상을 심각히 제기하면서 다양한 해결방안들을 제시했다. 실제로 국제교육진흥원이 제시한 통계에 따르면 99년 현재 국외 내국인 유학생 수는 15만4000여명에 달하는 반면 외국인의 국내 유학 총수는 6200여명에 불과한 것으로 드러났다. `한국사회의 세계화와 교육의 국제교류방향을 발표한 신극범 광주대 총장은 "연간 해외유학수지 적자가 7억불에 달하는데는 여러 가지 이유가 있겠지만 정부 관련부처, 민간단체, 대학이 제각각 추진하는 교육교류사업, 대학간 국제교류프로그램을 하나로 연결하는 인프라 미비, 국제화된 전문인력조차 없는 현실 등이 주원인"이라고 지적했다. 조정민 MBC 통일방송연구소 위원은 "교육교류의 역조는 한국교육의 총체적 부실과 관계돼 있다"며 "특히 초중고 학생의 조기유학 열풍을 잠재우기 위한 각급학교의 교육력 강화가 시급하다"고 말했다. 이어 "홈스테이 방식으로 외국학생과 교사를 적극 초빙하는 방안을 권장할 필요가 있다"고 제안했다. 어수영 이화여대 사회과학대학장은 "외국 유학에 대한 정보는 풍부한데 한국으로 공부하러 오려는 학생들에 대한 한국의 장학금제도, 학교 커리큘럼, 숙소문제, 교수 소개 정보는 미진하다"며 "외국 학생을 유치할 수 있는 우수한 교육프로그램 개발, 장학금 제도 확충, 기숙사 건설 외에 이런 사실을 알리는 자료, 인터넷 정보망이 구축돼야 한다"고 지적했다. 또 "외국 유학생들에게 요구하는 재정보증서, 천 만원 이상의 은행 잔고 증명서 등 불필요한 구비서류를 없애고 까다로운 체류비자 연장 문제도 해결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11과목에 98종, 31개 출판사 합격 교육부는 20일 7차 교육과정에 의해 내년부터 사용할 중학 1학년 2종교과서 검정 심사결과를 발표했다. 검정된 중학 1학년 2종도서는 11과목(사회1·사회과부도 포함, 수학7-가·나, 과학1, 기술·가정1, 체육1, 음악1, 미술1, 중학영어1, 한문1, 컴퓨터, 환경)의 교과서와 교사용지도서이다. 검정 심사업무를 위탁받은 교육과정평가원은 신청도서를 접수해 기초조사, 교과서 1, 2차 심사 등의 과정을 거쳐 합격교과서를 결정했다. 1차 심사를 통과한 교과서는 신청도서 312책중 105책(34% 합격률)이며 교사용지도서는 99책중 92책(93% 〃)이나 교과서와 교사용지도서가 함께 적합해야만 한다는 규정에 따라 교사용지도서가 없는 사회과부도 6종을 포함, 98종이 최종 합격했다. 합격한 도서는 10월중에 교육청과 일선중학교에 배포, 전시될 예정이며 각급 학교는 교과담당교사의 검토와 학운위의 심의절차를 거쳐 학교별로 사용할 교과서를 최종 선정된다. 출판사별로는 10종을 합격시킨 금성출판사가 가장 많은 합격교과서를 냈으며 두산(9종), 지학사(8종), 대학교과서(7종), 동화사·중앙교육진흥연구소(각 6종)의 순이며 31개 출판사가 합격했다.
이돈희 장관 교총 방문 이돈희 교육부장관은 15일 오후 취임후 처음으로 한국교총을 방문, 김학준회장, 채수연 사무총장 등 교총 관계자들과 교원 정년환원 등 현안을 논의했다. 김학준 회장은 "교총을 방문해준 것에 감사하며 장수장관이 되시길 바란다"고 인사말을 했다. 채수연 총장은 교총현안을 설명하면서 ▲교원정년 단축 환원 ▲학교정책실 폐지 재검토 ▲교육자치와 일반자치의 통합 반대 ▲공무원연금법 개정 백지화 ▲교원 처우개선 ▲수석교사제 도입▲교섭·협의사항의 성실 이행 등을 요구했다. 채총장은 특히 교총이 전문직단체로서의 기능을 수행하기 위해 교원들의 각종 연수를 주관할 종합연수기관 설치을 위한 지원 등을 건의했다. 이에대해 이장관은 "공무원연금법 개정문제 등은 관계기관에 교총의 뜻을 전달하겠으며 학급당 학생수 감축, 교육재정 확보 등은 교총의 협력이 필요한 사항"이라고 말했다. 이장관은 또 "교육부의 인적자원기능이 강화된다고 해도 인적자원 개발의 핵심은 학교교육이며 학교정책실은 계속 존치할 것"이라고 밝혔다. 특히 수석교사제 도입과 관련 이장관은 교직단체간 이견이 있기 때문에 합리적 방안을 마련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고 했으며, 이밖에 교총의 종합 연수기관화 및 건물 신축지원은 검토할 것이나 교총도 이에 걸맞는 연수프로그램을 개발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장관의 교총방문에는 김조영 학교정책실장, 김정기 교원정책심의관, 유춘근 교원복지담당관이 수행했다. /박남화 news2@kfta.or.kr
올보다 배증된 392명 내년도에 원어민 영어보조교사 초청규모가 올해의 178명보다 배증된 392명 수준으로 크게 늘어난다. 교육부는 이에 소요되는 국고지원분 13억3000만원을 시·도교육청에 배분키로 했다. 그러나 소요예산의 국고지원 규모는 단계적으로 축소하는 대신 지방비 부담을 늘여나가기로 했다. 교육부에 따르면 내년도 초청 원어민 영어보조교사 392명은 16개 시·도교육청과 180개 지역교육청별로 2명씩 배치돼 영어교사 연수요원 등으로 활용된다. 초청대상은 미국, 영국, 캐나다, 호주, 뉴질랜드, 아일랜드 등 영어상용 6개국의 교사자격증 소지자나 TESOL/TEFL 등 영어자격증을 소지한 원어민이다. 교육부는 원어민 영어보조교사 초청사업을 점차 시·도 사업으로 이양할 예정이며 국고지원 규모 역시 연차적으로 축소할 계획이다.
교직발전종합방안 검토보고서 연수결과는 호봉승급만 반영 `우수교원확보법' 제정해야 현재와 같은 부전공제 지양을 교직발전 종합방안추진협의회(위원장 김상권 차관)는 15일 전체회의를 열고 교직발전 종합방안(시안)검토안을 확정하고 이를 교육부에 제출했다. 교육부는 협의회안을 기초로 이달말까지 종합방안의 정부안을 확정할 계획이다. 검토안의 주요내용은 다음과 같다. ◇양성·자격·임용제도 개선=교사 연계자격증제도는 부적절하므로 보류되어야 한다. 그러나 지역권별로 교육대와 종합대학내의 사대를 통합해 별도의 교원종합양성대(교원대 형식)를 설치하는 것은 바람직하나 기존 종합대내로 사대나 교대를 통합하는 것은 부적절하다. 전문직업인의 교직입직 확대는 신중을 기해야 하며 초빙교사, 기간제교사, 강사제의 활용기회는 확대하되 교원자격증을 남발해서는 안된다. 교원 양성·연수기관의 평가인증제 도입의 경우 기존 평가방식을 점검해 신뢰도를 증진하고 평가결과에 대한 조치를 사전에 확고하게 해둘 필요가 있다. 그러나 연수평가는 곧바로 시행해 교원연수의 질을 향상시켜야 한다. 교원양성 인원의 조정은 초등의 경우 1.1대1로 유지하고 중등은 1.5대1로 목표를 점차 낮추는 것이 바람직하다. 교사 자질신장의 경우 양성대학의 표준교육과정을 마련하되 대학별로 자율성을 부여하며 교육실습은 기간을 최소한 한 학기 이상으로 연장하고 방법과 과정도 대폭 보완 개선해야 한다. 복수전공은 주전공과 같은 수준의 학점을 이수해야 하며 현재와 같은 부전공제(20학점 이수)는 지양해야 한다. 양성과정에서 초·중등자격을 동시에 취득하는 경우는 복수전공으로 보기 어려우며 학사편입제, 계절제, 다학기제 등을 통해 주전공이 요구하는 학점을 이수토록 한다. 병역특례제의 도입은 임용고사합격자에 한해 적용해야 실익이 있다. ◇연수 강화=직전 양성프로그램의 개선과 현장 교육실습 강화가 바람직하다. 신규교사 및 현직연수에서 수준 미달자에 대한 자비부담 연수의무화는 교직특성상 실익이 없다. 그러나 단위학교에서의 자율연수 지원강화나 학교내 연수의 강사료 지급이 현실화돼야 한다. 특히 연수성적과 승진제도의 지나친 연계에 따른 폐단을 시정하기 위해 호봉승급만 인정하되 승진 가산점제는 점차 폐지해야 한다. 자율연수 휴직기간 동안에도 보수의 백% 지급이 바람직하며 이 기간이 경력기간이나 호봉승급에서 누락되어서는 안된다. 교육전문 박사과정을 담당하는 교육대학원의 설립조건과 평가인정제 실시방안을 마련해야 한다. 아울러 초등교육 전공 박사과정이 미비하므로 교대 교육대학원에 박사과정 설치가 우선적으로 조기 시행돼야 한다. ◇승진 평가제 개선=수석교사제 도입 취지에 대해서는 대부분 찬성하였으나 전교조가 반대하고 있다. `직무수행 기준'과 `표준수업시수' 설정은 별문제가 없다. 승진 평정체제는 이해가 엇갈리므로 개선방안과 함께 치밀한 경과조치가 마련되어야 한다. 장기적으로는 경력평정 전체 기간내의 근평결과를 누가기록해 활용한다. 또 교원평가위원회에 교사를 포함시키는 것이 타당하다. 교장중임제를 유지하되 초빙계약제를 개선, 확충해 유능한 교장에게 기회를 줘야 한다. ◇교육공동체 참여 및 자율성 강화=교원정책의 수립과 평가단계에 교원의 참여를 의무화한다. 또 정책부서에 교사출신 전문직 비율을 확대하고 현장교원의 정책모니터 결과를 수렴하고 정책화하는 장치를 마련한다. 이와함께 학교단위 행정직원의 인사권이 부여되어야 하며 보고심사 통제 및 각종 교육통계의 DB화 추진, 규제사무일몰제 도입 등이 바람직하다. 교원의 근무시간을 정하는데는 학생의 학습권이 우선돼야 하나 학급활동, 학생 자치활동, 동아리활동 등도 매우 중요한 교육활동이다. ◇교권신장 및 존중풍토 조성=학부모 및 시민단체의 교원관련 언론보도 감시활동 강화 및 정례적인 간담회를 통해 협조분위기를 조성한다. 특히 `교원지위특별법'을 개정해 언론의 교원 명예훼손에 대한 특별심의제 및 가중보상제도를 신설한다. ◇처우개선과 근무여건 개선=교직특성을 반영하는 보수제도 마련은 교원사기앙양의 최우선 과제다. 일본의 `인재확보법' 같은 특별법을 제정해 실질적 보수인상이 획기적으로 이뤄지도록 해야한다. 학교안전공제회 기능을 강화해 교육활동중 상해를 입은 교원에게 보상을 해줘야 하며 교직원 전용병원 건립, 교원자녀 학비 전액보조, 교원들의 학비나 연수경비의 소득공제 등이 이뤄져야 한다. 특히 계약제 교원 증원은 독소조항이므로 제외해야 하고 기간제 교원확대도 부당하다. 학교정보화 기반을 조성하고 5학급 이하에도 교감을 배치해야하며 공공근로인력보다 공익근무요원을 배치해 교원업무 부담을 완화하고 서무실보다 교무실 보조인력을 강화해야한다. 또 공문서 유통량을 줄이기 위해 DB를 구축하고 자율성을 보장해 공문서를 근원적으로 줄여야 한다. /박남화 news2@kfta.or.kr
교원의 교육활동중 신분을 보장하고, 학교안전사고에서 학생과 교사의 피해를 보상하기 위한 종합적인 장치로 `학교안전망' 제도를 설치하기 위한 정부의 계획이 발표되었다. 이 제도에 대한 필요성과 내용에 대한 논의는 오래 전부터 있었지만 이번에 정부가 계획을 발표하게된 것은 학교교육의 안정과 발전을 위해 매우 바람직한 일이라 할 수 있다. 교원안전망은 그 동안 제기되어온 문제들에 대한 연구결과 및 정책제안들을 가능한 수용한 것으로 보인다. 다만 학교안전공제회를 전국단위로 단일화하는 문제를 아직 확정하지 못한 것은 앞으로의 과제로 생각하고 계속적인 노력을 해야 할 것으로 본다. 예방적 안전망에는 교원불체포특권 및 교원예우규정에서 정한 교원에 대한 무고, 폭행, 협박, 명예훼손 등 교권침해 사건에 대한 엄정한 조사를 사법당국에 협조 요청키로 했다. 학교분쟁조정위원회를 단위학교별로 설치하는 것과 교권침해교원보호를 위한 학교장의 전보내신권 부여 등은 타당하다고 본다. 다만 학교분쟁조정위원회의 구성인원을 5명으로 한정하고 있는데 학교규모나 지역사회 실정에 따라 인원을 신축적으로 조정할 수 있도록 5명 이상 10명이하 정도로 정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본다. 보전적 안전망으로 학교안전사고에 대해 임의가입회원제를 유·초·중등학교 및 특수학교로 확대하고, 보상한도를 전액으로하며 보상범위 역시 교육활동중의 모든 사고로 하며 학생과실의 상계비율을 축소한 것, 교직원의 합의금 지원, 정부 지원의 증가 등을 포함하고 있는데 이중 교직원이 부담하는 합의금 지원은 합의 내용과 액수 결정에 영향을 미칠 수 있으므로 합의과정과 내용, 액수 등에 대하여 법적 자문을 할 수 있는 지원체제가 필요하다고 본다. 부가적 안전망으로 교원의 경제적 애로사항에 대해 공제회를 통한 저금리 융자, 장기 별거교원의 인사배려 등이 포함되어 있다. 나아가 교원 본인의 계속교육을 위한 교육비 지원 및 세제혜택이 포함되기를 바라며, 사립학교교원도 이 혜택을 누릴 수 있도록 해야 할 것이라 본다. 이러한 교원안전망이 제도화된 것을 환영하며, 부분적으로 미흡한 것은 계속 연구하고 검토하여 보다 충실한 제도로 발전하여 학교교육의 안정적 발전에 크게 기여할 수 있기를 바란다.
9월은 독서의 달이지요. 책 많이 읽으셨나요. 비도 자주 내려 독서하기 좋은 9월이었지만 실상 출판계의 가을은 비수기가 된지 오래 라고 하지요. 올림픽까지 겹쳐 더욱 썰렁하게 지나가고 있는 독서의 달. ‘출판저널’'출판문화’'간행물윤리’'송인소식’등에 실린 독서와 관련된 말들을 인용 또는 재인용했습니다. 독서에 대해 다시 생각해 볼 기회를 가지게 될 겁니다. ▲회남자=시간이 없어서 책을 읽지 못하는 사람은 시간이 있어도 책을 읽지 못한다. ▲베이컨=독서는 완성된 사람을 만들고, 담론(談論)은 기지 있는 사람을 만들며, 필기는 정확한 사람을 만든다. ▲스티븐 코비(미 클린턴 대통령의 전 시간관리 자문관)=전세계 4500명을 대상으로 시간 사용법을 조사한 결과 성공인의 70% 정도는 시간과 에너지를 독서·외국어공부·운동·인간관계 등‘당장 급하진 않지만 장기적으로 유용한 일’에 쓴 반면 평범한 사람은 회의·전화 등 ‘당장 급하지만 중요하지 않은 일’에 쓴 것으로 나타났다. ▲이춘원(변호사)=어느 휴대폰 광고를 보면 한 소녀가 기차 안에서 하루키의 ‘상실의 시대’를 읽고 있다. 소녀에게 말을 건네고 싶은 소년은 그 책을 읽어보는 대신에 휴대폰 단말기를 조작하여 토막정보를 얻어낸다. 이 광고는 지식이나 교양에 관한 현대인의 태도를 잘 드러내고 있는 것이다. 요즘 흔히 읽히는‘부자 아빠 가난한 아빠’를 보면 “가난한 아버지는 독서의 중요성을 강조했고 부자 아버지는 돈에 관한 지식의 중요성을 강조했다”고 나온다. 현대인에게 독서는 가난에 대한 원인의 제공자로 누명을 쓰는 지경에 이르렀다. ▲고영실(진주외국어고 교사)=미국 대학들은 신입생들에게 가하는 프레시맨 잉글리시 과정부터 1주일에 5~6권의 책을 읽히고 각 권마다 타이프용지 1~2장에 내용의 요약과 의견을 쓴 보고서를 제출케 한다. 등화가친 계절의 독서주간에만 책을 읽고서는 부자 나라가 될 수 없다. ▲최영철(시인)=하루 몇 백원으로 연명하던 시절, 입석버스 요금과 도서관 입장료, 낱담배 세 개비와 지하식당의 우동 한 그릇으로 하루를 견디던 시절에 (부산) 서면 시립도서관은 나와 같은 선량한 백수들을 품어준 따스한 둥지였다. ▲박완서(소설가)=피난시절, 활자에 대한 허기를 채울 길이 없어 사방 벽에 도배해놓은 신문지를 돌아가며 다 읽었다. ▲권혁수(북디자이너)=살아있는 나무를 베어 책을 만든다. 그 책이 살아있는 나무의 가치를 대신하고 있는가. “나의 책을 불태워 다오” 독일시인 브레히트의 이 외침은 21세기 한국출판의 종말을 알리는 신호인가, 아니면 진실을 향한 불멸의 정신인가.
통일에 대한 기대가 고조되고 있는 요즘 남북한 중등학교 국사 교과서에 수록된 인물을 비교 연구한 논문이 발표돼 눈길을 끌고 있다. 지난달 경남대에서 논문 '남북한 중등학교 국사교과서 등장인물의 비교연구'로 교육학 박사학위를 취득한 김선규 교사(경남 진해고)가 그 주인공. 김교사는 남한의 중학교 및 고등학교 국사교과서와 북한 고등중학교의 "조선력사" 등 3종류의 남북한 국사교과서를 대상으로 등장 인물의 유형과 빈도, 공통 등장 인물과 한쪽 등장 인물의 정도, 그리고 공통 등장 인물에 대한 설명과 평가의 일치 여부 등을 비교·분석했다. 연구결과 가장 큰 특징은 남북한 교과서에 공통으로 등장하는 인물이 133명으로 전체 735명의 18%에 불과하다는 점이다. 이는 남북한이 인물을 보는 시각차가 매우 큼을 반영하는 것으로 남한교과서에는 학자 문인 국왕 왕족 정치가 군인을 비롯 등장유형이 다양한 반면 북한은 정치가 군인과 피지배층의 입장을 옹호하거나 반봉건 반외세 활동을 한 인물들을 부각시키고 있음을 보여준다. 남한의 교과서에는 북한 교과서에 전혀 언급이 없는 문무왕, 진흥왕, 진덕여왕 등 고대 왕이나 왕족이 43명 등장하는 반면 북한 교과서에는 설죽화, 관수, 김보, 방보 등 남한에서는 생소한 농민 천민군 지도자 11명이 22회나 기술됐다. 황희 맹사성 김정희 윤선도 황진이 사명당 등은 남한 교과서에만 실렸으며 리명욱 김두량 정한순 등은 북한 교과서에만 등장하고 있다. 공통 등장인물의 경우 남한의 교과서에는 인물을 간단하게 언급하는 경우가 많아 인물 비중을 가늠하기 어려운 반면, 북한의 교과서에는 반봉건·반외세에 공을 세운 인물에 대해서는 그 활동이나 업적뿐 아니라 전투 당시의 병력, 날짜, 구체적 전투 상황까지도 상세히 서술하고 있다. 을지문덕, 강감찬, 이순신 등은 특별히 '장군'이란 칭호를 붙여 높이 평가하는 반면 지배층 인물이거나 외세와 결탁한 인물, 침략과 관련된 외국인에 대해서는 '놈'자를 붙여 적대감과 호악(好惡)을 분명히 하고 있는 점은 인물 평가를 적극적으로 수록하지 않거나 가치중립적으로 서술하는 우리 교과서와는 비교되었다. 공통 등장인물 133명 가운데 28명만 유사한 평가를 내렸다는 점도 주목할 만하다. 최치원의 경우 남한의 교과서에는 신라말 개혁을 주장한 6두품 지식인으로, 북한의 교과서에는 지배층을 비판하며 가난하고 고통받는 사람들을 동정한 시인으로 평가했다. 주몽의 고구려 건국도 남한은 B.C. 37년으로 서술한데 비해 북한은 B.C. 277년이라 하여 백제와 신라보다 오래 되었음을 강조하고 있다. 연개소문도 남한은 '정변' '독재' 등의 표현으로 부정적으로 평가했으나 북한은 당나라에 용감히 맞선 애국명장으로 높이 평가하는 점이 달랐다. 견훤은 남한이 '농민의 아들'로, 북한은 '봉건지주의 아들'로 서술하고 있다. 또 북한의 교과서는 최영의 요동 원정이 이성계의 반대로 무산되었다며 조선 건국을 부정적으로 평가했다. 신윤복의 풍속화에 대해서도 남한은 '양반들의 풍류 생활'로 해석하는 반면 북한은 '양반들의 썩어 빠진 몰골을 폭로'한 것으로 해석, 차이를 드러냈다. 김교사는 "남북한 국사 교과서의 이질성이 큰 만큼 그 극복을 위한 노력도 중요하겠지만 '무엇이 얼마나 같으냐'와 같은 동질성의 측면에 더 관심을 쏟아야 한다"고 강조한다. "이념적 차이만 부각시켜 비판적 시각으로 연구하면 이질성이 더욱 확대 재생산될 가능성이 있기 때문"이라는 것이 그의 주장이다.
한 점. 섬으로 나앉은 추도가 저 편에 말없이 떠있지만 흐르는 물살에 표류하는 것만 같다. 뭉글뭉글 떠다니는 바다안개가 가릴 때면 저 편까지의 거리가 아득하기만 했고 섬은 없이 바다만 보이는 착각에 빠지게 한다. 그 막막한 느낌 속에서 바다는 안개를 삼킬 듯, 그 안에 포화된 섬을, 그리고 내가 딛고 선 발 밑의 한 줌 땅 덩이마저 쓸어 갈 듯 사나운 물살을 흘려 보내는 것이었다. 언제나 한가롭게 보일 수도 있는 한 점 섬, 그 섬들을 있게 한 바다는 더러 수려한 한 폭의 수채화처럼 푸르고 넘실대는 유희로 사람들을 홀렸다. 그러나 맑은 날 모래해변에 사는 바다강구들 까지 모두 해 구경하러 나오는 날에는 바다를 배경으로 섬들은 마치 판유리 위의 물방울처럼 표면장력을 키우며 의연하게 자태를 드러내었다. 그 홀연한 자태가 비굴한 고독보다는 의연할 수 있는, 그래서 현실을 초월하고 있는 듯하여 찬란하기만 했다. 추도는 내게, 적어도 나 같은 아이에겐 그러나 섬으로서의 본연을 초월하기에는 너무 초라하고 보잘 것이 없었다. 그리고 언제나 마음만 먹으면 도달할 수 있다는 생각에서 비롯된 어떤 신비로움 따위도 또한 미지의 것에 대한 막연한 동경심이랄까 하는 감정도 자아낼 수 없는 흔해빠진 상투성, 바로 그것이 추도가 나에게 주는 설된 느낌이었던 것이다. 항상 대하는 것으로부터 희소성이나 각별함 따위란 없는 것이 세상의 이치일는지 모른다. 그래서 서로들 늘 지척에 사람을 두고도 고립감이나 소외의 소용돌이 속에서 헤어나지를 못하는 것일 게다. 아까부터 그 섬을 앞에 두고 나란히 바윗돌 위에 걸터앉은 선생님과 나는 별 말이 없다. 선생님은 자리를 잡고 앉는 순간부터 망연히 섬을 바라보면서 뭔가 골똘히 생각에 잠긴 모습이었다. 배에서 내린 나를 여기까지 데려 왔으면 할 말이 있었을 텐데, 애꿎은 돌멩이만 집어던진다. 서로의 영역을 확인하면서 동떨어진 섬들처럼 서로의 높은 성을 어쩌면 침범 당하기를 꺼리는 것은 아닌지. 나는 바람에 쓸리는 머리를 연신 매만지고 있었다. "가자 이젠." 집었던 돌멩이를 놓고 선생님이 일어서서 앞장섰다. 바위 위에 앉아 있어서 바지자락에 묻어있을 것도 없건만 선생님은 습관처럼 바지를 털어 댄다. 얼굴이 여위어 자연스레 생긴 볼우물은 선생님이 말을 하는 대로 패었다간 들어간다. 말소리도 열이 없다. 아버지만큼 키가 크다고 생각을 했었다. 길쭉한 얼굴에 큰 키의 이열 선생님. 군데군데 솟아있는 바윗돌 위를 저만큼 앞서 걷고 있는 모습이 부질없는 바닷바람에도 이내 휘청거릴 것만 같다. 갑자기 멀미가 났다. 배에서부터 그다지 속이 편하지는 않았다. 나를 돌아보는 선생님의 앞머리가 지나가는 해풍에 나부낀다. 선창으로 통하는 해변 길을 다 가도록 바람은 살랑거렸다. 물새 서너 마리가 선창을 낮게 날아다닌다. 새들은 선창 하단부터 비탈에 홀연히 서있는 하얀 인어 상까지 수시로 날아들었다. 금방이라도 물 속에 뛰어들 듯 두 손을 높이 쳐들고 바다를 향하고 있는 인어. 하지만, 여신 레토를 모욕해서 고난을 당하는 탄탈러스의 딸, 슬픔으로 대리석이 되어버린 뒤에도 눈물을 흘려야 했던 니오베의 모습만 같다. 선생님은 부지런히도 걷는다. 어서 나를 할머니에게 데려다 주고픈 심정일 게다. 할머니를 어떻게 바라보아야 하나. 멀미가 조금 더 해진 것 같다. 집으로 들어서는 막다른 골목에 이르자 선생님은 잠시 나를 세웠다. 며칠 전 서울에서 만났을 때처럼 손을 힘있게 잡았다. 멋 적은 미소를 지으며 나는 고개를 돌려버렸다. 마주 보기가 머쓱하여 내 손을 잡은 가늘고 길쭉한 손가락만 쳐다보았다. 손가락이 유난히도 파리해 보였다. 집 앞문간에 동백나무가지가 수줍게 서 있었다. 곁의 오동나무는 그 큰 잎사귀 몇 개를 떨군 채 고즈넉이 바다를 응시하는 듯하다. 큰아버지가 심었다는 오동나무는 심은 사람이 저승길로 가야 잘 자란다는 속설을 실천이라도 하듯, 여름이면 무성한 잎들을 달고 마치 거함의 돛처럼 우리 집을 이끌고 있는 듯한 위용을 보여 주곤 한다. 그 위세에 눌려 동백은 꽃조차 숙여 피었다간 지고 말았다. 오동나무 잎들이 뚝뚝 떨어져 내리고 가지가 어둡게 드러나기 시작할 무렵이면 아버지는 늘 무엇인가를 잔뜩 짊어지고 들어 왔다. 아버지가 풀어놓는 꾸러미에는 말린 오징어며 도다리, 삼치 따위가 가득 들어 있었고, 더러는 미라처럼 말라비틀어진 상어가 촘촘한 이를 하얗게 드러내기도 했다. 아버지는 가져온 생선다발이 바닥이 나고 어머니가 투정을 부리기 시작할 때쯤이면 타고 온 배에 올라 기약도 없이 떠났다. 나는 아버지가 떠나는 게 싫었다. 아버지는 나를 한없이 안고 다녔다. '아빠는 항상 정연이 생각에 사는구나. 이담에 올 땐 아빠가 예쁜 선물 한아름 사올게. 엄마 말 잘 듣고 할머니하고 잘 있어야돼 알았지.' "정연이 돌아왔어요. 나와 보셔요!" 안방 문이 드르륵 열렸다. 할머니는 단정한 차림으로 앉아서 눈으로 모든 걸 말하고 있었다. '오라질 년! 어딜 기어다니다 이제 들어오는 게여.' "할머니......" 나는 할머니의 마른 장작 같은 손을 잡았다. 금방이라도 머리채를 잡고 흔들 것만 같다. 노발대발 소리를 지르며 혼을 낼 것이며 날벼락이 떨어질 것이다. 그러나 할머니는 슬며시 손을 빼더니 엎드린 내 등을 토닥거린다. 좁은 가슴이 떨리는 것은 할머니가 흐느낀다는 표시다. 가슴이 답답하며 주먹만한 것이 치미는 느낌이다. 멀미가 심해진 모양이었다. 출발할 무렵에는 괜찮았는데. 배에 오르기 전 무얼 먹었던가. 자리에서 일어나 먹은 거라곤 과자부스러기 몇 개뿐이었다. 아침나절에는 무척이나 속이 쓰렸다. 어제 밤까지 과음을 했다. 일을 끝내고 더 많은 술을 마시게 된다. 손님들이 남긴 술을 버리기 아깝다고 홀짝홀짝 마시다보면 가랑비에 옷 젖듯 술에 취한다. '술이 사람을 삼키는 거야. 사람이 술을 마시는 것은 첫 잔뿐이지. 그 다음부턴 내가 술을 마시는 게 아니라 술이 널 마셔버려. 너 말야 내가 충고하는데 며칠 전 찾아왔었다던 선생인지 서방인지 그 사람 눈 밝아서 찾아가. 넌 아직 술이 너를 먹어버리는 정도는 아니잖아. 더 젖기 전에 우산을 써. 이미 흠뻑 젖으면 우산도 필요 없게 되는 거야.' 같은 일을 하는 언니였다. 처음 상경해서 같은 업소에서 우연히 알게 된 여자였고, 제니라는 좀 세련된 느낌의 이름을 사용하며 단골 손님이 많다고 했다. 그녀는 가끔 외박도 하며, 남자들이 집까지 따라오는 경우도 더러 있었다. 그녀가 나가는 업소는 충무로의 작은 카페였다. 「아뜨리에」라고 쓰인 큰 간판이 현란한 네온사인에 번쩍였고, 낮에 보아도 쉽게 눈에 띄었다. 그녀는 간판더러 배보다 배꼽이 더 크다고 했다. "어떻게 여길 찾아왔니? 야, 너도 이제 서울사람 다 되었구나." "처음 치고는 정말 나도 놀랄 정도로 잘 찾아 온 것 같애. 가게가 좀 작다. 언니, 여긴 주로 어떤 손님들이야?" "그렇고 그런 사람들이지 뭐. " 테이블을 닦고 바닥을 물걸레로 닦아낸 다음 의자를 정돈해 놓는데 어떤 남자가 들어왔다. 키가 크고 강인한 인상에 곱슬머리를 잘 빗어서 뒤로 넘긴 폼이 여간내기 같지가 않았다. 그는 제니에게 가까이 가더니, "이 아가씬 누구야? 제니가 데려왔구나. 물건인데 진짜." "괜히 헛물켜지마. 나랑 상관없는 애야." 그는 카운터에 데려간 제니에게 인상을 쓰면서 쥐어주는 돈을 주머니에 넣고 나를 아래위로 훑어보며 끈적한 웃음을 흘렸다. 돈을 거머쥐고 나가는 그에게, "거머리 같은 자식! 나 같은 년 없으면 저런 자식 어떻게 풀칠하고 세상 살아갈지 의아해 정말." "생긴 것은 멀쩡해 보이는데." "누가 바보처럼 생겼으면 넘어갔겠니. 너도 저 자식 앞에서 괜히 허점보이지 마. 정말 늑대 같은 자식야. 하긴 세상 남자란 작자들 다 마찬가지지. 술만 들어가 봐라 점잖은 신사가 어디 있나. 다들 노예로 변해간다. 무슨 노예냐구? 글쎄 너도 곧 네 입에서 뱉어지게 될 말이지." 나는 어둠의 나락 속으로 추락하는 길목에 서 있었다. 가도 가도 끝이 보이지 않는 미로. 그 미로의 시작은 어디? 내가 섬을 떠나는 배를 타던 순간, 학교에 나가기 싫던 시절, 아니면 애타게 엄마를 찾다 숨가쁜 꿈속에서 엄마의 손을 못 잡아 놓쳐 혼자 남은 그 꿈의 나락들?... 오동나무 잎사귀들이 하나 둘 떨어지다가 앙상한 나목으로 남아도 아버지가 돌아오지 않던 어느 가을이었다. 학교에서 돌아오는 길에 나는 선창가에 사람들이 모여서 웅성거리는 소리를 들었고, 할머니와 엄마가 사람들 틈에 둘러싸여 애절하게 통곡하는 것을 사람들 틈으로 간신히 보았다. 할머니는 통곡을 하다가 끝내 혼절하여 동네 어른들에게 업혀왔다. 머리를 산발하고 기진맥진 울부짖다가 지쳐 쓰러진 할머니를 보면서 나는 무언가 상당히 잘못된 일이 있다는 것을 짐작하였다. 나만큼이나 기다림에 지쳐버린 오동나무가 잎새 하나 남길 수가 없게 된 가지에 하얗게 서리가 내려앉아도 아버지는 돌아올 줄을 몰랐다. "엄마, 아버지는 정말 사람들 말대로 바다에 떠다니셔?" 그러나 엄마는 지친 듯 별 말이 없었다. 대신 긴 한숨을 쉬는 날이 많아졌다. 날마다 무당을 데리고 바다에 나가는 할머니와 다투는 회수도 잦아졌다. 할머니의 언성도 차츰 높아갔고 엄마의 대꾸도 만만치가 않았다. "세상에 인정머리가 있는 년이면 한번쯤 따라 나와서 지 냄편 넋이라두 불러볼 일여. 시퍼렇게 살어있던 사내 잡어먹었단 소리는 듣기 싫구. 시신두 넋두 못 찾어 저 원수같은 물 속 워디를 헤매구 있는 사내 애틋한 생각이 바늘 끝 만큼이라두 있으면 이러지는 않능겨!" "허구헌 날 이렇게 사는 년의 팔자는 뭐가 좋아서 그러는 줄 아셔요? 저두 헐 만큼 했네요. 뭍에서 죽은 것두 아니구 망망대해 나가서 죽은 사람을 전들 어쩌라는 거예요. 전들 넋이라두 있어 건질 수 있다면 이러구 앉았겠남요. 죽은 사람은 그렇다구 쳐요. 불쌍하구 애처럽지요. 하지만 산사람 목숨은 워쩐대요..." 엄마는 하얀 고무신을 늘 선반에 놓아두고 있었다. 아버지가 사다 준 것이라서 그런다기 보다는 마땅히 태울 시간이 없어서인 듯 했다. 그러던 어느 날, 그 신발을 감쪽같이 태우고는 어디선지 하얀 구두 한 켤레를 그 자리에 대신 올려놓고 있었다. 엄마의 조그마한 발에 잘 어울린다고 생각했다. 엄마는 가끔 젖은 눈으로 나를 바라보았다. 할머니와 다투어서 우는 것만도 아닌 듯 했다. 엄마가 나를 안고 눈물을 흘리는 일이 잦아지면서 엄마는 내게 그랬다. '내년이면 정연이가 4학년 맞지? 정연이는 할머니가 좋지? 할머니는 좋은 분이야. 엄마한테 꾸중한다고 미워하면 못써. 하나밖에 없는 손녀딸이라서 너에게 쏟는 정도 각별하시잖니. 엄마는 있잖니. 정연이의 장래를 위해서도 무엇인가를 해야 한다구 생각해. 엄마가 없더라도 할머니와 잘 지낼 수 있겠니? 그래야 엄마가 이 담에 꼭 데리러 오지.' 아버지를 기다리던 오동나무 아래에서 날마다 선창을 내려다보며 오지 않는 엄마의 환상이 빛 바랜 편지봉투처럼 희미해질 무렵, 이열 선생님이 들어온 것이다. "이번에 창곡학교루 오신 선생님이시란다. 하숙집을 찾다가 마침 교감 선생님이 소개루 우리집에 오신 거여." 할머니의 설명이 다소 미흡했던지 선생님이 끼어 들었다. "창곡 1학년이라구? 함께 다닐 수 있어서 좋겠구나. 앞으로 잘 지내보자. 이름이...?" "정연이, 박정연이라구 부르지요. 지 애비가 지어준 이름이랍니다." 할머니의 성화로 선생님의 짐을 정리하면서 잘 드나들지 않던 엄마의 방에 들어갔다. 입고 쓰던 것들은 어느 결에 자취를 감추었지만 빛이 바랜 사진 한 장은 여전히 장롱의 화장대 위에 대롱대롱 매달려 있다. 내 돌날 찍은 기념사진이었다. 나는 사진을 떼어내었다. 대신 선생님이 가져 온 액자를 그 자리에 놓아두었다. 역시 단촐한 가족사진이었다. 셋이서 찍은 사진 속에서 선생님은 웃는 표정이었고 부인은 미소를 머금고는 있지만 다소 어두운 그늘이 있어 보였다. 부부 사이에 자리를 독차지하고 앉아 있는 사람은 두 사람 중 어느 누구도 닮아 보이지가 않았다. 자꾸 앞이 캄캄해온다고 마루에 나와 혼잣말을 하다가 방으로 들어가면 할머니는 금세 다시 나와 앉아 있기 일쑤였다. 동백나무가 올해는 매우 무성하다. 늘 오동나무에 가려 키 작은 나무로 밖에 여겨지지 않았지만 지난 겨울 오동나무가지를 자른 덕에 동백이 제 모양을 내게 된 것이다. 할머니는 나무들에게 무슨 도박을 거는 모양이었다. '동백이 성했으면 쓰겠구나, 올해는 말이다. 자꾸 눈이 침침해져서......' 집에 돌아온 후 거의 바깥출입을 삼가고 있는 내게도 나무들은 예사롭지가 않았다. 아침에 일찍 일어나는 선생님은 별다른 기척도 없이 나갔다가 해질 무렵 지친 모습으로 돌아왔다. 마주쳐도 별 말이 없다. 동백나무를 유심히 바라보던 할머니가 지팡이를 찾았다. 며칠 전 선생님이 마련해준 것이었다. "어디 나가지 말어. 잠깐 댕겨올 겨. 선생님 금방 들어오실 겨." 할머니를 뒤따라갔다가 오동나무 아래쯤에서 앉은 채 멀거니 선창을 바라보았다. 마침 여객선이 들어와 사람들이 선창으로 내려오고 있었다. 할머니가 부지런히 내려가더니 어떤 아낙과 만나 서로 손을 부여잡는 것이 보였다. 누굴까. 나는 턱을 괴고 앉은 채 사람들이 다지나가도록 선창에서 눈을 떼지 않았다. 한참이 지나도 할머니도 기다리는 선생님의 그림자도 얼씬거리지 않는다. 옷을 몇 벌 챙겨오긴 했지만 마땅히 입고 있을 게 없었다. 서랍장을 온통 뒤져봐도 입던 옷가지들이 눈에 띄지 않았다. 할머니가 쓰는 옷장을 열어보았다. 폭이 넓어 늘 불만스럽던 스커트와 보기만 해도 가슴이 답답한 앞 가리개 달린 상의가 두벌씩이나 걸려 있다. 교복이었다. 이미 낡은 옷장 냄새가 짙게 배어있다. 다신 입을 일이 없을 거라고 내팽개치고 떠난 옷이었다. 할머니는 툭하면 교복을 태워버리겠다고 으름장을 놓았다. 쓸 데 없는 옷가지며 책가방도 그 등살에 없어진지 오래였다. "지 에미 년을 저토록 닮아갈까. 이년아 닮을 걸 닮아라. 세상에 누굴 못 닮아 에미를 닮는 겨. 학교엔 왜 안가. 누가 잡아라두 간다더냐? 공부허는 것두 때가 있는 게여. 왜 너만 못혀, 남들은 다 하는걸. 그러구 이마에 피두 안 마른 년이 나가긴 어딜 나가. 지집년 밖으루 나돌면 뻔헌 겨! 이년아 그 지랄하려거든 니 에미처럼 야반도주라두 해서 아예 내 눈앞에서 사라져!" 짧은 가출을 했다가 돌아온 날 할머니는 입에 거품을 물고 온갖 악담을 퍼부었다. 빈번한 결석에 이제는 벌써 두어 번 가출을 한 뒤여서 할머니로서도 악에 바칠 일이었다. 거기에 학교에서 날아온 자퇴예고통지서가 노여움을 한껏 부추긴 모양이었다. 할머니로서는 선생님에게 은연중 방패막이가 되어 줄 것을 바랐지만 선생님도 정말 한계에 부딪혔을 것이다. 결석을 다반사로 하는데다가 교칙은 나에게 별반 의미가 없었고 얼마 전에는 화장실 흡연사건으로 학교를 시끄럽게 했다. 여학생 화장실도 더 이상 흡연으로부터 자유로울 수가 없다는 말이 교무실에서 우스갯소리로 심심찮게 들리게 된 장본인이었던 것이다. "화장실에 흡연구역을 만들어야 되지 않을까요?" 학생부장이 이열 선생님을 향해 빈정대듯 한다. "김인숙 선생, 박정연이 교칙대로 처리하세요!" 선생님의 갑작스런 언성에 담임선생님은 출석부를 꽂다말고 뒤를 돌아다보았다. 선생님도 이번에는 몹시 화가 나 있었다. "이 녀석이 결국 이 지경까지 가는군요. 나쁜 자식!" 2교시가 끝나고 쉬는 시간에 흡연을 하다가 적발이 되었다는 말을 듣고 담임선생님은 무심한 표정을 지었다. 그러나 책상서랍을 열더니 봉지커피를 꺼내어 컵에 부었다. "정연이 처벌하면 가장 먼저 섭섭할 부장님이 웬 일로 그런 말씀을 다 하십니까?" 학생부장은 이열 선생님을 힐끗힐끗 바라보며 싱글거렸다. "이 사람이 아침부터 왜 이러는 거야?" 선생님은 웃음을 보였지만 기분이 좋은 내색은 결코 아니었다. 나를 향해 노여움을 보이기는 처음이었다. 그래서인지 곁에 앉아 묵묵히 커피를 마시는 담임선생님이나 엄포를 놓고 있는 학생부장보다도 훨씬 더 두렵다. 물론 집에서 느끼는 모습과는 다를 수밖에 없으리라. 집에서의 선생님은 오래도록 함께 살아온 이웃과 다를 바가 없었다. 할머니에게 가끔씩 아주머니라고 부르기도 했다. 오래 전에 돌아가신 어머니의 모습을 보는 것 같다는 말도 가끔 나누었다. 그러다가도 서울에 갔다오면 며칠 씩 혼자 방안에만 들어앉아 있을 때도 있었다. 밥상마저 그냥 물리는 경우도 있었다. 어떻게든 끼니를 거르지 않게 하려는 할머니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막무가내다. 어렵게 내가 들어가 보면 전혀 의외의 표정이다. 무척 속상해할 일이 있을 것이고 마음이 쉽게 풀리지 않으리란 기대를 뒤집고 선생님은 선선히 나를 반긴다. 나는 그럴 때마다 저윽이 놀랐다. 한번은 내게 밑도 끝도 없는 말을 던졌다. "강아지를 한 마리 얻어다 길렀단다. 토실토실해야할 놈이 어지간히도 말라비틀어져 있었지. 강아지도 생물이라서 정을 주고 잘 먹여주면 무럭무럭 클 수밖에 없지 않겠니. 나보다도 안사람이 정성을 무척이나 쏟았어. 과연 정성이 헛되지 않았는지 강아지는 잘 자라주었단다. 사실 도시생활 속에서 개를 기른다는 것은 힘이 들지. 여기처럼 마당이라도 있으면 괜찮겠지만. 그래서 남들 손가락질도 많이 당했지. 그런 천덕꾸러기 개를 어디에 쓸려고 그리 온갖 정성을 쏟는 거냐고들 했단다. 개가 어지간히도 사납고 게걸스러워 시도 때도 없이 짖어대는 통에 이웃 원성이 더 심했던 거야. 그래서 더욱 정이 든 걸 거야. 고운 정 미운 정이 다 들었는데....." 그럼 어디 도망이라도 친 거냐고 묻고 싶었지만 이야기하는 과정에서 선생님의 표정이 굳어져 차마 입을 열 수가 없었다. 선생님은 날이 기울 무렵에야 들어왔다. 점심으로 차려놓은 밥은 꼿꼿하게 식어 있을 터였다. 내게 한 약속은 아니었지만 다소 미안한 표정을 지으며 마루에 걸터앉았다. "할머닌 나가신 게냐?" "선창에 나가셨어요." "안 계시던데. 오면서 둘러봤거든. 아하, 거기 가셨겠군. 너에게 얘기 안 하든? "무슨 얘길......?" "아버지 넋이 떠오른다고 말야. 대천에서 오늘 무당이 오기로 한 날이지 아마." 그러면 그 여인이 바로 무당이었을까. 할머니와 서로 손을 잡고 있다가 어디로 가버리더니 혹 바다에 나간 걸까? 할머니는 비가 내리는 날에는 마루에 앉아 있는 것이 일이다. 눈길은 뜨락에 있지만 마음의 눈은 먼 바다를 향하고 있었다. '구질 놈의 비가 때를 거르지를 않는구나. 무정한 비. 여러 목숨도 앗아갔지. 누굴 이제 데려 갈 텐가. 이 늙은 것이나 데려가소.' 처음엔 원망을 하다가 끝에 가서는 초연한 자세로 경건해지기까지 하는 할머니의 넋두리는 언제 들어도 생경했다. 시신은커녕 넋마저 찾을 수가 없어 뒷전에 물러나 있지만 호시탐탐 재기를 노리는 운동선수처럼 기회만 되면 언제라도 자식을 찾겠다는 일념이었다. '넋을 찾는다? 넋은 무엇일까. 어떻게 생겼을까. 죽으면 그걸로 끝이 아닌가?' 생각이 사뭇 헛돈다. 할머니는 두 아들을 모두 바다에서 잃었다. 큰아버지는 총각 때 연평 앞 바다에서 갈치 잡이 배를 탔다가 풍랑을 만나 다신 돌아 올 수 없이 되었고, 아버지는 남해안 일대를 이동하며 멸치 떼를 쫓아다니는 어선을 타다 역시 모진 해풍을 만나 돌아오지 못했다. 할머니의 말로는 큰아버지의 넋은 구제가 되었다는 것이었다. 시신은 아예 찾을 엄두도 못 내고 무당을 데리고 바다를 떠돌며 간신히 찾은 것은 새끼손가락크기의 머리카락으로 현신한 넋이었다고 했다. 그 세월이 자그만치 10년이라고 했다. "가신 일은 잘 되었는감요?" "잘 될 일이 아니잖아요. 인력으로 되는 문제도 아니겠고." "사모님이 큰 일이구먼유. 그렇게 차도가 없으면 어쩌요 글쎄. 한사람 잘못으로 생사람꺼정 눕게 되어 선생님 심사가 말이 아닐 거구먼 그류." "꼭 그 애 때문만도 아니지요. 원래 그 사람 허약해서 고생을 하는 사람입니다." "예부터 그랬지유. 사람 구제는 말어야 헌다구. 남의 자식 데려다 세 빠지게 길러봐야 나은 정은 따로 있는 벱이니깨." "이치야 그렇지만 자식이라고 기를 때 부모가 어떻게 그런 것까지 따지겠어요. 무조건적으로 정이고 뭐고 안 아끼고 퍼 주다가 이렇듯 낭패인 걸요. 그게 자식 키우는 부모들 심정 아니겠어요. 그건 그렇고 대천에서 온 무당은 어떻던가요?" "대천네하구야 서로 잘 아는 처지이구... 그나저나 날씨가 좋아야 쓸텐디. 고대도 밖으로 나가야 헌다는디." "그렇게나 멀리 나가세요? 어차피 인근에서 돌아가신 게 아니라면 가까운데서 하든 고대도 밖이든 그게 무슨 상관이 있나요?" "예전에 쟤 큰 애비 찾을 적엔 삽시도 근방에서 찾을 수가 있었지요. 장고도허구 삽시도사이 지나는 물이 꼭 연평 바다를 떠다놓은 상이래요. 넋이 뜨는 것두 무당허고 잘 맞어야 쓰드끼 물살하구도 잘 맞어야 허는 개비요. 죽을 때 상황이면 쉽다네유. 삽시근방허구 고대근방은 물이 다르구 고대도 쪽은 남해에서 올러 닥치는 물살이 웬 종일 머무르는 디랍니다." 장마가 끝났지만 비는 간간이 내렸다. 예년보다 일찍 왔고 그 만큼 일찍 끝났다고는 하지만 오히려 장마철보다도 빗줄기는 더 거세다. 선창에 들어 온 배들은 벌써 며칠 째 요지부동이었다. 갯냄새가 짙게 묻어 나오며 바다는 잿빛으로 변해갔다. 선창을 사이에 두고 남북으로 길게 뻗은 해변은 파도가 심란하리 만치 소란스럽다. 썰물이 나면 갯벌과 듬성듬성 자리잡은 바윗돌에는 온갖 게들이 나와 있었다. 모래밭에 숨어살던 게들이 제 철을 만난 것이다. 모든 게들은 파도가 흔들어 놓은 크고 작은 돌들 사이사이를 바삐 오가며 무엇이라도 잡히는 것은 모조리 물고 어디론지 사라졌다. 더러는 거품을 뿜으며 여유도 부린다. 그런 게들은 대게 모래밭에 집을 지었다가 파도에 씻겨 집을 잃고 헤매는 축들이었다. 어서 사태를 수습하고 새롭게 유할 곳을 물색해야하겠지만 선뜻 나서지지가 않는 모양이다. 모처럼 나선 바다는 침잠하는 정적이 아니라 하등생물들의 분주한 세상 같았다. 허물을 벗느라 딱지를 잃은 게들이 바윗돌 사이에 고인 물에 잠겨 있다. 손가락으로 꾹 찌르면 몸 전체를 움직여 민활하게 도망치는 것이 아니라 다리만 까닥거린다. 근력을 소진하여 몸을 조절할 능력을 상실한 것이다. 마치 악몽에 시달리면서도 깨어나지 못해 헛손질하는 사람 같다. 악몽. 새롭게 깨어나기 위한 과정이라면 게의 허물을 벗듯 그 무력한 시절을 감내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악몽이후의 현실이 여전히 어두운 거라면 차라리 그 세계를 벗어나지 않음만 못할지도 모른다. 새벽녘에 든 잠이 곧 악몽이었다. 집밖을 벗어나지 않고 그다지 하는 일도 없으니 밤이 되면 잠이 오질 않았다. 그러다가 꼭두새벽에나 잠이 오거나 뜬눈으로 하얗게 새다시피 하는 게 요즈음 나의 일상이었다. 어제만 해도 그랬다. 초저녁에 잠깐 눈을 붙이고는 곧 깨어나 밤새껏 뒤치락거렸던 것이다. 서울에 간 선생님이 이제나저제나 올까봐 마루에 나와 앉아 TV소리를 크게 하고 있는 할머니 탓도 있었다. 선생님은 벌써 여러 날 집을 비우고 연락도 없었다. 학교에서 오는 연락도 없었다. 선생님 말대로 잃어버린 개를 찾아 나섰는지, 차도가 별로 없다는 부인의 간병 때문인지 알 길이 없었다. 다만 할머니는 무슨 일이 일어나도 단단히 일어난 게라며 걱정이 크다. 선생님은 정말 개를 기르다가 잃은 것일까? 애지중지 기르던 개가 어쩌면 어미 개를 찾아 떠났는지도 모른다. 냇가에 찾아오는 연어도 모천을 찾아 회귀하는 것이라고 언젠가 선생님은 말했다. 미물들도 자라서 철이 들면 모정이란 걸 생각하게 되는가. 하물며 사람이야... 내게 엄마는. 꼭 돌아오겠다던 엄마에 대한 그리움은 빛이 바래 가는 오동나무 잎사귀. 누렇게 변색이 되고 벌레에 물어뜯긴 고엽으로 한낱 실바람에도 떨어질 만큼 여윈 채 안간힘을 쓰며 매달려 있는 초라한 모습. 변색이 되고 벌레에 뜯긴 잎은 순식간에 떨어지는 것 같다. 하지만 ‘순식간’이라는 것은 세상에 없다. 오동나무가 그렇고 동백이 그러하듯 잎이 피어 자라서 녹음을 이루다가 저렇듯 고엽이 되기까지는 시간의 타래가 길게 늘여져 있게 되는 것이다. 다만 순식간이라고 여기게 되는 것은 무관심이라는 슬픈 단어가 늘 곁에 따라다니며 사실을 은폐하기 때문이다. 이젠 기다림이라는 말은 호사스러움마저 감돈다. 엄마는 지금도 떠날 때처럼 나를 사랑하며 데려갈 날을 고대하고 있을까. 나는 엄마처럼 하얀 신발을 신고 싶다고 떼를 썼다. 하지만 엄마는 하얀 신발 대신 자주색 운동화를 사주었다. 애들은 때가 잘 타는 하얀색보다는 자주색이 더 귀엽고 예뻐 보인단다. 정연이는 다리가 고와서 자주색이 잘 어울려. 분홍색도 있잖아. 분홍색도 잘 어울리지만 자주색이 곱고도 단정하단다. 그러나 자주색 신발을 처음 신고 학교에 가던 날, 할머니는 내내 눈물을 지었다. 신발을 신지 말라고 하고 싶은 듯, 입이 씰룩거렸지만 눈물만 훔치고 있었다. 나는 영문도 모르고 따라 울었다. 울밑 오동나무에 기대어 기다려도 오지 않는 엄마를 그만 기다리라고 했다. 엄마 기다리느라 거기에 앉아 있는 걸 보면 아예 나무를 베어 버리겠다고 했다. 나는 가끔 할머니가 큰톱을 들고 나무를 베어버리는 꿈을 꾸곤 했다. 할머니가 다락에서 꺼내오는 톱은 처음에는 작은 실톱이지만 나무를 자르다 보면 톱은 점점 커져만 갔다. 신이 들린 듯 톱질을 하는 할머니의 모습은 배 위에서 넋을 부르는 무당과 다르지 않았다. 톱이 어느새 북채가 되고 오동나무는 거대한 북이 된다. 할머니가 혼신을 다하여 북을 두들기지만 흘러나오는 소리는 북소리가 아니었다. 오동나무가 안마당으로 쓰러지는 굉음이 아니었다. 누군가가 지르는 비명이었고 그 비명의 주인공은 엄마였던 것이다. 나는 저만큼 떨어져 바라보다가 할머니 앞에 서 있는 엄마를 막아선다. 그 순간 내리치는 몽둥이가 내 정수리를 향할 때 나는 비명을 지르며 쓰러졌고 엄마가 함께 쓰러졌다. 가끔 그런 악몽이 나를 혼란스럽게 했다. 여명이 밝아오는 창을 어렴풋이 바라보며 나는 제니가 있는 곳을 찾아갔다. 간판 아뜨리에는 현란하게 반짝이고 있지만 셔터는 내려져 있었다. 뒷문 쪽으로 들어가 문을 두드렸다. 제니가 술 취한 모습으로 고개를 내밀었다. 손님들이 마시다 만 양주를 혼자 마시고 있던 중이었다. 제니가 간판스위치를 내렸다. 후문 쪽에서 노크 소리가 났다. 다소 거친 소리였다. 탁자에 널브러진 술병과 남긴 안주를 치우는데, "됐어. 내가 나가 볼 테니 넌 잠자리나 좀 봐." 들어 온 사람은 지난번에 본 곱슬머리 사내였다. 그는 흰색 티셔츠에 검정 색 바지를 입고 있었다. 다부진 가슴팍이 실내의 흐린 조명에 더욱 두드러져 보였다. 그는 내 옆을 스쳐 지나며 귓불 가까이 대고 음흉한 말을 던졌다. 술 냄새가 났다. 제니와 그가 안으로 들어갔고 나는 홀 안에 있는 소파에 비스듬히 누웠다. 받아 마신 양주 기운에 얼굴이 달아올랐다. 가슴이 답답해 왔다. 짧은치마에 자꾸 손이 갔다. 그러나 가만히 보니 그 손은 내 손이 아니었고 가슴이 죄는 듯한 답답 증세가 목을 타고 삽시간에 전해졌다. 소리를 지르려 했지만 목이 막혔다. 그는 더욱 나를 조이며 급기야 입을 틀어막았다. 아아- 온 몸에 땀이 범벅이 되었다. 나는 깨어난 자세 그대로 누워 귓불에 손을 가져갔다. 아직도 그의 구역질나는 입김이 배어 있는 것만 같았다. 긴 한숨을 연신 몰아 쉬었다. 밤새 TV가 켜져 있었던지 치익 소리가 들려왔다. 머리가 아팠고 구역질이 심해졌다. "비 맞고 어딜 갔다 오는 게여?" 마루에 내 놓은 제기를 닦아 놓고 제물들과 양초며 삼베 조각들을 꺼내 놓고 지성스럽게 만지다가, 할머니는 자리에서 일어섰다. 허리를 두들기며 선창 쪽을 바라보았다. 날씨를 살피는 것이리라. "갯가에 좀 나갔었어요." "속은 좀 괜찮은 겨? 왜 아침을 그렇게 걸러. 사람이 아침 거르는 게 얼마나 해로운지 알기나 허여!" "선생님한테서 소식은 계속 없으세요?" "선창서 교감선생님을 뵈었지. 그런디 이 선생님은 어쩌면 이 길루 안 내려 오실지도 모른다더구나. 요새 뭐라더라, 명태? 뭐 명태라드냐? 그런 게 생겨서 선생님두 아마 그걸 헌다는 모얭여." "명퇴라구요? 선생님이 무슨!" 강한 부정의 어조였다. 나도 모르게 큰 소리가 나왔다. 갑자기 허물벗는 게처럼 힘이 없다. 현기증일까. 마루에 앉으려다 방으로 들어왔다. 할머니는 등뒤에 대고 주억거린다. 때가 되면 만났다가도 헤어지고 다시 만난다고. 자리에 누우려고 하다가 일어서서 안방으로 건너갔다. 전화기를 들었다. 신호음이 갔고 아주 낯이 익은 목소리가 실려왔다. 어딘지 잘못을 저지르고 불려 온 기분이다. "저......, 정연인데요." "박정연이니?" "네, 선생님. 죄송해요." 무어 그리 죄스러워야 할 것도 없는데 침이 마르고 다리가 후들거린다. "이열 선생님에게서 너 왔단 소린 들었단다. 그런데 무슨 일로?" "다름이 아니라, 저 오늘 저녁에 선생님 좀 찾아뵙고 싶어서요." "글쎄. 음... 무슨 일인지 모르겠지만 그러자." 만날 시간과 장소를 전해 듣고 나는 아직도 떨리는 손을 비비며 자리에 앉았다. 누구 몰래 도둑 전화라도 한 것처럼 두근거렸고 목이 탔다. 금테 안경의 김인숙 선생님. 회초리만큼이나 따갑게 가슴을 파고드는 어투. 화가 나면 얼굴이 창백해지면서 눈에 힘이 들어가 있었다. 눈자위가 뻘개지면서 목소리는 자꾸 높아만 갔다. 그 서슬에 여학생은 물론이려니와 남학생들도 기가 죽기 마련이었다. 지나친 원칙론의 신봉자. 교칙을 어겼을 때 받아야 하는 정신적 고통. 차라리 매로써 단죄가 되는 거라면...했었다. 그래서 처음 3학년이 되어서 그 선생님을 담임으로 만나자 급우들의 걱정은 태산이었다. 특히 원만한 학교생활을 못하는 몇몇 학생들에 대한 급우들의 눈초리는 예사롭지 않았다. 아마 정연이와 누구누구 정도는 졸업을 못하게 될지도 모른다는 우려의 분위기가 팽배했다. 그러나 3월 한 달은 그런 우려가 기우에 지나지 않는 것 같다고들 여겼다. 무서운 선생님을 만나 적어도 외견상으로는 잘 되어가고 있다고 믿기 시작했다. 하지만 우려가 현실로 드러났고 그 주인공은 바로 나였다. 나는 배를 타고 나가 며칠 씩 돌아다니다 들어왔다. 어느 날 문득 일어나 아주 우발적으로 나는 학교 길에서 선창 쪽으로 방향을 돌린다. 마음에서 일어나는 다소의 갈등은 쉽게 사위고 나는 엄마를 닮은 날씬한 두 다리를 재게 움직여 선창에 이르는 우회로인 해변 길을 택했다. 학교에 가다가 왜 돌아오느냐는 사람들의 상투적인 물음이 싫기도 했지만 행여 선생님의 눈에 띄지나 않을까 하는 염려 탓이었다. 일단 배에 오르면 느낄 수 있는 묘한 자유. 그것은 세상에서 나만이 가지는 특유의 느낌이었고 여섯 번째의 감각쯤으로 여겼다. 3학년 때라고 예외일 수는 없는 나의 감각이었던 것이다. 그래서 나는 배에 올랐고 나흘 동안을 시내 곳곳을 돌아다니며 향유할 수 있는 감각을 즐겼다. 그 감각 속엔 늘 살아 있는 엄마의 초상이 깃들어 있었다. "...난 오늘 여기 와서 처음으로 배신감 같은 걸 느꼈어요. 내가 학기초에 한달 내내 입이 마르도록 한 얘기가 뭐였죠? 온갖 짓을 다 하더라도, 공부와 담을 쌓았어도 뭐랬어요. 결석을 하지말자였지요? 한 사람이 잘못하면 단체란 쉽게 와해가 될 수도 있는 거예요. 우리 반 다수가 성실하고 착해요. 하지만 전부가 그렇진 않아요. 우리 반을 이토록 혼란스럽게 한 장본인, 앞으로 나오도록 하세요!" 교실은 물을 끼얹은 듯 조용했다. 교단 앞까지 불려 나온 -- 아니 자리가 없어 앉지 못하고 서 있던 -- 나는 메고 있던 가방을 교탁으로 가져갔다. 그녀는 가방을 들고 창가로 가더니 아래 뜰에 내던졌다. "여러분들 들으세요. 내가 단독자는 아니예요. 여러분들은 굴욕을 연상하겠지만 절대 학생의 자존심을 상하게 하려고, 그래서 앞으로 다시는 우리 학급에서 결석이 없게 하자고 하는 얄팍한 계산에서 나온 소치가 아닌 거예요..." 교무실 앞 복도에서 무릎을 꿇고 앉아 있는데 이열 선생님이 불러 세웠다. 눈물이 났다. 선생님은 아주 송구스런 표정으로 담임 선생님에게 다가가서 애원을 하고 있었다. "선생님에게 월권으로 생각되겠지만 양해를 하십시오. 어지간하면 애가 상처를 받지 않도록 선처해 주세요. 김 선생 이러는 뜻은 다 압니다." 그녀는 대답대신 의자를 당겨 자리에 앉더니 아래 서랍을 열었다. 역시 커피 한 봉지를 꺼내어 컵에 담았다. 선생님도 자리에 앉아 나를 물끄러미 바라본다. 분주히 손을 움직이는 것은 담배를 찾는 모양이었다. 차마 눈길을 마주 할 수가 없어 나는 고개를 돌렸다. 광장에 나와 서 있는 느낌이었다. 만인들이 지나고 머무르는 곳을 거쳐가고 있다는 느낌. 그것은 내가 선창을 지날 때도 예외가 아니었지만 특히 알만한 사람들이 빈번히 드나드는 동네 주위의 다방이나 술집을 들어가는 때도 마찬가지였다. 그런 곳을 혼자의 의지로 들어가는 것은 아니지만 가끔 심부름으로 들어 갈 때면 왠지 금지된 지역을 출입하고 있다는 강한 거부감을 지울 수가 없었다. 그래서 가급적 집으로 직접 찾아가고 싶었지만 담임 선생님은 밖에서 만나자고 했다. 나는 그녀가 정한 약속장소인 해변다방으로 들어가고 있었다. 배에서 내려 선창을 조금 지나면 맨 먼저 닿는 곳이 이곳 해변다방이었다. 안으로 들어서니 다방은 생각보다 한산했다. 탁자를 두 줄로 놓기에는 다소 좁아 한 줄로 길게 배열하고 한 쪽 공간은 넓게 떼어놓아 출입이 비교적 용이하게 좌석을 배치해 놓고 있었다. 구석진 자리에서 어떤 남자 손님과 노닥거리고 있던 주인 아주머니가 먼저 아는 체를 했다. 나는 목례만 하고 해변과 맞닿아 있는 쪽으로 자리를 잡았다. 벽에 붙은 커다란 괘종시계가 아직 약속시간보다 5분 정도 덜 가고 있었다. 이윽고 다방 문이 삐끔히 열리고, "많이 기다렸니?" 나는 피식 웃음을 보였다. "가까이 살면서도 여긴 처음 온다. " 그녀는 자리에 앉으며 안경 너머로 다방 안을 여기저기 훔쳐보고 있었다. 주문을 받으러 오기도 전에 커피를 달라고 해놓고 내게 무얼 마실 거냐고 묻는다.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난 하루에도 여러 잔 마셔. 병인가 봐. 남자들 줄담배 피우는 폭은 될 거야. 이열 선생님처럼 말야. 선생님 담배 많이 피우시지?" "집에서는 그리 많이 피우진 않는 편이에요." "그래? 참 놀라운 사실이다 얘. 학교에선 그냥 줄담배야." "사실은 오늘 선생님을 뵙고 싶었던 것은 이열 선생님 때문이었어요." "무슨 일인데 그러니? 내가 오히려 묻고 싶다." "이열 선생님 이제 안 오시나요? 명예 퇴직을 하신다던데......" "누구한테 들었니?" "할머니가 그러셨지요. 교감 선생님에게서 들었다고." "그럼 그 말이 맞겠구나. 나두 정확한 건 몰라. 두 분 정도 이번 학기에 그만 두신다는 말은 들었지만 말야. 연세로 봐선 아직이지만 글쎄 내가 교무부장님이래두 그만 두려고 했을 거야. 너도 아마 대강은 실정을 알고 있겠지만." "............" "그 선생님, 굉장히 외롭고 힘든 분야. 다들 그래. 그 분 인생을 공초처럼 살고 있다구." "무슨 말씀이신지...?" "가정적으로 그렇지 뭐. 그 애 말야. 어려서 데려다 키웠다는 애. 그 녀석이 지난 해 겨울 저를 버렸던 생모가 나타나 따라 가버렸대잖니. 그래서 사모님이 병이 더 깊어진 거야. 생각해봐라. 젖먹이를 데려다가 20년 가까운 세월을 길러왔고 정이 그 만큼 깊이 들었을 거 아니냐. 그런 아이가 생모라고 따라 가버렸으니. 사모님 병이 중병인데다 마땅히 간병을 할 만한 사람도 없어 무척 고통을 겪는가 보더라." 그랬었구나. 밤하늘은 별들이 무심하게 많이 나와 있었다. 담임 선생님이 먼저 자리를 뜨고도 나는 한참 후에야 다방을 나섰다. 예감은 했지만 그녀가 던진 말들의 무게는 내가 주체하기가 힘이 들었다. 어지럼증이나 멀미 아니면 현기증 따위가 생기면 자리에 가만히 앉아 있어야 한다. 오랜만에 보는 초승달이 시리게 떠 있다. 바다로부터 서너 뼘 남짓 솟아올라 있을까. 온 몸을 흔들어 털어질 수 있는 거라면 좋을 말들이었다. 나는 몸서리를 치듯 몸을 떨었다. 싸아한 냉기가 얼굴을 타고 전신에 흐르는 것 같다. 그러나 발걸음마다 그녀가 한 말들은 다져진 모래 위를 걸을 때처럼 뚜렷한 발자국으로 남는 느낌이었다. "그건 그렇고 말이다. 넌 내가 어떻게든 하려고 했어. 또 교무부장님도 노력을 많이 하셨지. 그러나 그간의 행적이 많이 걸렸단다. 누적된 징계기록이 가장 문제였어. 교무부장님의 만류 때문에 많은 망설임 끝에 자퇴예고통지서를 보냈지. 그런데 네 자신의 뚜렷한 학업에의 의욕이 없고, 무엇보다도 본인이 없으니 가부간 의사타진을 할 수가 없었던 거야. 교무부장님이 나서서 해결하려는 과정에서 학생 처벌상의 형평성 문제 때문에 다른 선생님들과 충돌도 숱하게 겪었어. 선처해서 눈감아 줄 사안이 아닌데다가 특정 학생 봐주기라는 시비에 말려들어 그 분이 곤욕을 치러야 했지......" 새벽같이 일어난 할머니는 뜰 앞에서 연신 혼잣말을 늘어놓았다. 벌써 며칠 째 동백나무를 손질하고 있었다. 거목처럼 버티고 서 있는 오동나무 가지를 여러 개씩 잘라내었고 구부러진 동백 가지를 버팀목까지 세워가며 묶어 세워준다. 진작 손을 댔더라면 이 지경으로 놔두는 일은 없었을 거라며 아쉬워하기도 한다. 가지가 무성하고 나름대로 새끼를 쳐 울타리 한쪽을 점유한 동백은 꽃도 피고 열매도 맺어 나무로서의 역할을 다 하건만 오동나무의 그늘이 너무 큰 탓에 그 존재마저 미미한 실정이었다. "벌레가 세상에 이렇게 많다냐. 왠갖 벌레란 벌레는 동백이 다 거느리구 사는가 보구나. 그렇게 벌레 봉양을 허니 이 지경이 되었어두 연명을 했지......." 북을 주는 할머니 손이 나무 밑에 쏟아진 벌레들을 훔쳐내느라 여념이 없다. 고스라진 잎이며 썩지 않은 작년 가을 낙엽들이 엉겨 힘있게 당기는 호미 끝에 걸리는 흙은 보잘 것이 없다. 할머니는 힘에 겨워하면서도 일을 멈추지 않는다. "저 가지들을 어떻게 처단하시려고 손을 대세요." "가지들이야 뒤엉켜 손을 쓸 수가 없것지만 봐라 밑동은 이렇게두 허실허잖니? 오동나무가지를 제때 쳐주었으야 이것들이 온전히 자랄 수가 있는 것인디 말이다. " "할머닌 항상 오동나무만 신주단지 모시듯 하셨잖아요." "갯바람에 견뎌난다는 게 쉽지가 않은 벱여. 동백이야 근본이 갯바람을 쐬어야 허지만 오동이야 어디 그런감." 말끝에 한숨을 몰아 쉬며 잠시 일어나 허리를 두드린다. 눈앞이 아득하다며 흙이 묻은 손이 연신 눈으로 갔다가 내려온다. "얘, 섬들 좀 봐라. 왜 이리 아득허다냐. 고대도, 장고도, 삽시도, 저기 고대도 뒤편 외연도......, 원산도만 뵌다. 이리도 아득허냐. 이래가지구 무얼헌다냐. 세상에......말이다." "원산도야 저 건너인데 거기만 보인다고요?" "그렇구나. 앞이 다 캄캄허니 무얼헌다냐." 할머니는 걷어올린 소매를 타고 기어올라가는 벌레를 털어 낼 생각도 않고 허리만 두드린다. 벌레가 여러 마리 할머니의 옷에 붙어 있었다. 나는 흠칫 놀라 막대기를 집어들고 할머니의 등뒤에 있는 벌레부터 털어 내었다. 자를 재듯 기어다닌다 해서 지어졌을 이름의 자벌레들이 희뿌옇게 빛 바랜 할머니의 적삼에 거뭇거뭇 매달려 잘 떨어지지 않았다. "아침이나 먹구 약을 좀 뿌려야 헐까부다. 자벌레가 아주 세상을 만났구나." "대천네 아줌마는 몇 시에 오시기로 했어요?" "오후 배로나 올 게다. 마중 나가야 쓸 게야. 선무당 같으면사 짐이라구 해봐야 뭐 그렇다지만 대천네는 벌써 짐이 한 배란다." "그럼 많은 짐을 어디에 두실 건가요?" "나룻배가 있잖니. 원산호 말이다. 어채피 그 배에 싣구 가야 헐 테니 거기다가 실어 놓는 게 눈 밝은 일이지." 나는 오동나무 쪽으로 다가갔다. 한동안 떨어지던 잎들이 단단히 매달려 있다. 나무에 기대어 본다. 오랜만의 일이다. 거기에 서면 늘 기다림이라는 단어가 가슴에 남았다. 그 단어가 퇴색이 되면 서서히 몇몇 얼굴이 떠오른다. 하릴없이 기다림이라는 모진 글자만 가슴 속 깊이 새겨 넣어준 사람들. 그리고 바다가 한눈에 들어왔고 그 너른 바다 위에는 섬들이 표류하듯 떠 있었다. 군데군데 떠나가는 배처럼 섬들은 무리를 짓는 듯, 더러 혼자이듯. 어떤 때는 섬들이 일제히 육지를 향하여 달려가는 것이었다. 손에 횃불을 들고 우렁찬 함성을 지르며 섬들은 거대한 땅덩어리에 의연하게 돌진한다. 육지에서 떨어져 나와 혼자 떠 있지만 자신들은 결코 혼자가 아님을 그래서 육지의 일부로서의 섬이 아니고 홀연히 작은 육지임을 강변하면서. ...저 떠있는 것은 무엇도 섬은 아니다. 대륙의 일부일 뿐. 바다가 잘라놓은 덩어리의 일부. 그리고 아무도 혼자는 아니다. 잠시 서로에게서 떨어져 있을 뿐. 물론 내가 네가 아니듯 또 네가 내가 아니듯 각자의 세계를 살고는 있지만 결코 따로 일수는 없는 것. 바다가 대륙에서 섬을 떼어놓고 하나로 연결하는 매개가 되어주는 모순처럼 각자의 개체로 살지만 인연이라는 매개로 서로는 얽혀 있는 것...... 선생님은 내가 살고 있는 작은 방으로 들어왔고 그날 나는 차라리 도망쳐 버리고픈 강한 충동을 느꼈다. 전날 마신 술기운이 속을 뒤집어 놓아 냉큼 일어설 수가 없었다. 어지럽고 머리가 깨질 것처럼 아팠다. 술은 마시면서 느는 거라고 했지만 늘기는커녕 마실 때마다 고통은 더욱 커져만 가는 것이었다. "여기까지 오기가 우리 집에서 몇 정거장밖엔 안 떨어져 있는데 섬에 내려가기 보다 더 멀고 힘이 들었다. 찾고 보면 가까운 것을 찾기 전엔 항상 멀고 무심하게만 지나치게 되는가 보다. 정말 네가 여기 있을 줄은 몰랐단다." 선생님은 한낮의 열기에 코끝이 뻘겋게 익어 있었다. 어지간히도 헤매 다닌 모양이었다. 다소 주체하기가 힘이든 탓도 있었지만 일이 끝나고 들어와 그대로 누웠기 때문에 옷매무시가 말이 아니어서 나는 몹시 당혹스러울 수밖에 없었다. 나는 짧은치마 자락을 자꾸 가렸고 선생님은 고개를 돌리며 말을 이었다. "가자. 집으로 돌아가자." "이대론 갈 수가 없어요." 다소 짜증이 났다. 나가버리고 싶지만 몸이 천근이다. "그럼 어떻게 가야 하는 거냐, 이대로 갈 수가 없다면?" "몰라요. 어쨌거나 내려가지 않을 거예요." 기대에 어긋났다는 표정으로 선생님은 담배를 피워 물고는, "나쁜 자식, 너 이제 보니 정말 형편이 없는 녀석이로구나!" "이제 아셨어요? 저 나쁜 애라는 거 다 아는 사실이잖아요." "정연아, 내 말은 있잖니. " 선생님이 깊이 빨아들인 담배연기가 또아리를 틀며 허공에 번졌다. 깊은 숨을 몰아 쉬면서 연거푸 담배를 피운다. "깨끗이 제적처리 했다구요?" 그래요, 저 같은 기집애는 도움이 안 되겠죠. 잘 들 하셨어요. 시원하시겠네요." "이 녀석이 보자보자 하니까!" "왜요, 제가 이러니까 속상하세요? 그럼 대접을 받으려고 절 찾아오신 건가요? 착각하지 마세요." 갑자기 내리치는 손바닥이 왼쪽 뺨을 후려쳤다. "왜 때려요! 선생님이 뭔데 때려요!" 독오른 뱀처럼 바락바락 악을 썼다. 순식간에 당한 일이고 몹시 화가 나는 것이었다. 선생님이 노려보았다. "나쁜 자식, 그래 좋겠구나. 제적을 당해도 싼 놈야, 너 같은 자식은 애당초 잘랐어야 했어. 진작 잘랐어야 했다구!" 그리고는 후다닥 문을 열고 나가면서 허어 헛기침을 했다. 나는 쓰러진 채 울기 시작했다. 울고 또 울고 눈물이 마르도록 울고 일어나 앉았다. 지끈거리던 머리가 터질 듯 아팠다. 속이 메스껍고 구역질이 났다. 그러나 헛구역질일 뿐이었다. 어떻게 알고 찾아 온 걸까. 아무도 모르는 곳에 숨었다고 생각했는데. 그래서 누구도 찾지 못할 것이고 그러면 온갖 생각들은 쉽게 지우며 살아갈 수 있을 거라 했는데. 엄마도 학교도 선생님도 그리고 어쩌면 할머니까지도...... 생각이 여기에 미치자 가슴이 미어질 듯 쓰려왔다. 나는 자리에 죽은 듯 누웠다. 주마등처럼 스쳐 가는 많은 얼굴들 위에 자꾸 할머니의 얼굴이 겹쳐 보이는 것이었다. 언제나 표정이 없는 얼굴. 좋아도 싫어도 드러남이 없었다. 떠나오면서도 나는 학교에 가는 것처럼 묵묵히 다녀오라는 식의 할머니의 표정을 뒤로했었다. 할머니는 내가 학교에 가는 것을 빤히 바라보기만 하는 것이 잘 다녀오라는 말이었다. 나는 할머니의 그런 표정을 밟고 돌아서서 곧장 선창으로 갔던 것이다. 학교와는 다른 방향인데 그 반대 방향으로 가는데 대한 미련도 없다고 여겼다. 아니 그러고 싶었다. 언젠가 그만 두게 되리라는 생각이 늘 뇌리에 따라 다녔다. 다만 조금 앞 당겨졌을 뿐, 별반 아쉬움도 서러움도 없었다. 학교를 위해서도 선생님들과 우리 학급을 위해서도 좋을 거란 생각이 막연하나마 저변에 남아 있었다. 그런데 난 왜 힘들여 찾아온 선생님에게 그런 미련 섞인 말을 나도 모르게 퍼부었던가. 무슨 미련이 남았기에. 선생님에게 얻어맞은 뺨이 후끈거리며 쓰라려왔다. 일어서서 홀 안으로 나왔다. 헛구역질이 나면서도 목이 말랐다. 홀 안은 사뭇 어질러져 있다. 간밤에 들어온 손님들의 행태가 다시 되살아나는 것 같다. 몇 개 안 되는 탁자와 의자가 아무렇게나 배치되어 있었다. 군데군데 엎질러진 술과 안주 조각들, 질펀한 술 주정, 손님들의 더러운 객담들이 주인이 불러서 온 아가씨들의 욕지거리와 한데 섞여 바닥에 나뒹군다. 술병이 어지럽게 쓰러져 있다. 현기증이 났다. 나는 거의 기어서 수도꼭지가 있는 주방으로 갔다. 수돗물을 끝까지 틀어 놓고 물을 흠씬 마시며 머리를 담갔다. 쏴아 하는 소리가 들리며 물이 쏟아졌고 거의 질식할 정도로 나의 머리는 꼭지에서 떨어질 줄을 몰랐다. 어서 술이 깨어야 정리를 하고 손님을 받을 수가 있을 일이었다. '주인이 오겠지, 곧 오겠지. 사나운 과부의 눈동자가 자꾸 눈에 걸린다. 재워주고 먹여 주는 것도 어딘데 이 모양이냐고 힐책을 하겠지.' 나는 젖은 머리를 닦아내지도 않은 채 방으로 들어가다가 후문 쪽을 바라보았다. 항상 잠그지 않고 열어 놓는 후문을 통하여 선생님이 들어왔던 모양이다. '선생님은 저 문으로 갔겠지. 망설이다가 기대에 차서 들어 왔을 텐데 나갈 때는 실망해서 화를 내며 나갔으리라.' "선생님." 내 입에서 나도 모르게 뱉어진 말이었다. 갑자기 아득한 느낌이 전신을 휩쓸며 지나갔다. 나 홀로 버려져 있다는 아찔한 느낌. 양주 두어 잔을 마셨을 때 느낄 수 있는 아득함. 나는 파도가 몰아치는 바다 위에 혼자 떠 있는 조각배처럼 무위하게 세상에 팽개쳐져 있는 거라고 생각이 되었다. 싫어졌다. 생각이 싫어졌고 혼자라는 것이 싫었다. 그러나 나는 수건을 집어들고 물기를 닦아내며 생각했다. 얼른 선생님을 찾아야할 것 같았다. "무슨 생각을 그리 골똘히 했샀는 게여." 가지런히 묶어 놓은 동백나무가 울타리를 새 단장한 것처럼이나 단정하다. 동백은 대문은 없지만 언제든 대문을 달기만 하면 되도록 해 놓은 문간에서부터 오동나무가 있는 곳까지 훌륭한 울타리로 자리를 하게 된 것이다. 대체 이번에 무당은 할머니 더러 무슨 말을 했기에 저토록 동백나무에 매달려 있었던 것일까. 애지중지하던 오동나무는 이제 뒷전에 있다. "선생님은 정말 안 오시고 말까요?" 그간 무던히도 기다리며 망설이다 던져진 말이지만 할머니는 무표정하게 받아들인다. "어렵겠지. 그러나 저러나 무슨 기별이라두 있으려나 기다리는 걸, 벌써 며칠 째더냐. 거반 보름은 넉히 됐지야?" "예. " "그냥 막연허게 기다리지 말구 연락을 좀 해봐야 쓰겠구나." 할머니가 아침상을 치우고 전화를 거는 동안 나는 자꾸 침을 삼켰다. 조바심이 나고 불안해졌다. "그렇구먼요. 그럼 병원으루 연락을 해야 통화를 하겠구먼요." 나는 할머니에게서 병원 전화번호를 돌려 받아 다이얼을 눌렀다. 내가 홀에서 뛰쳐나와 무작정 선생님에게 전화를 하던 때와 같은 기분이 들었다. "그래, 정연이구나. 어쩐 일이냐?" "선생님!......" "미안하다. 내가 미리 연락을 했어야 하는데 말이다. 사실은 애 엄마가 얼마 전 세상을 떠났단다. 할머니께 알리려다 괜한 걱정을 하실까 해서 안 했다. 학교에도 그랬구......" "그런데 왜 아직 병원에 계신 거예요?" "조금 편치가 않아서 그런데 며칠 있다가 나가게 될 게야. 미안하구나, 걱정을 끼쳐서. 정연아, 선생님이 많이 잘못했지? 네게 잔뜩 빚을 지고 온 것만 같아 하루도 마음 편한 날이 없구나. 내게서 아주 멀어질 사람들에게만 온 정신을 다 팔았던 게야. 내가 돌아가면 정연아, 얘야......" 무슨 말을 하려다가 그런 것인지 선생님은 말끝을 분명히 맺지 못한다. 울먹이는 투다. 홀가분해져서 이젠 허전하다는 선생님. 병원 신세를 지다가 결국 세상을 떠난 사람을 따라 선생님 마저 가버릴 심산일까 두려워지는 것이었다. "그러면 선생님은 누가 돌봐 주시는 거예요?" "내게 참 누님이 한 분 계시단다. 그 분이 왔다 갔다 하면서 돌봐 주시지." 전화를 끝낼 때까지 할머니는 곁에 묵묵히 앉아 있었다. 내 응답을 듣더니, 아마 병구완에 지쳐 쓰러졌을 거라며 홀연히 집을 나섰다. 할머니는 여객선이 도착하려면 아직 멀었는데도 선창에 나가 있었다. 동백나무에 뿌리겠다던 약을 마루 끝에 내어놓고도 까맣게 잊고 있었다. 선생님에게 수화기를 들기가 아마 나보다 할머니가 더 힘이 들었던 모양이다. 할머니 역시 저편에서 들려올 소리를 예감하고 있었을 터였다. 나는 배가 선창에 대었다가 저 만큼 나가고 할머니가 배에서 내린 아낙과 만나고 있는 것을 보고서야 선창을 향하여 집을 나섰다. 여객선이 왔다 간 곳에 미리 얻어 둔 나룻배가 기다리고 있었다. 그 배에서 내린 남자가 선창에 내린 짐들을 옮겨 싣는다. 짐이 정말 많았다. 오늘 울타리를 치웠으니 할머니 말대로 대천 무당이 오면 시작될 아버지의 넋을 찾는 굿판은 물때를 맞춰 먼바다에 나가 한껏 신명이 나게 벌이게 될 것이었다. 아버지의 넋이 떠 있다는 바다, 그 망망대해에서 무당의 힘찬 부름과 할머니의 간곡한 소망이 과연 아버지를 건져낼 수 있을까. 아버지는 살아서 제 발로도 못 온 길을 저 나룻배를 타고 오기나 하려나. 할머니의 눈이 온통 어두움에 시리도록 기다려 온 넋이 아닌가. 나는 일부러 선창을 피해 서울에서 오던 날 선생님과 함께 갔던 길로 들어섰다. 문득 바람결에 오동나뭇잎 단풍냄새가 실려 있고 바람결이 예리해지고 있다는 느낌이 든다. 선생님은 나를 이쪽으로 데려오면서 어쩌면 동네 사람들의 눈을 일차 피하거나 곱지 않을 시선을 완곡히 해보려는 의도였는지도 모른다. 그래서 나와 함께 바윗돌 위에 앉아 있으면서도 배에서 내린 사람들이 선창을 모두 빠져나가기만을 기다렸으리라. 나를 향하여 선생님이 물 건너 저 멀리 둥둥 떠있는 섬들을 굳이 육지의 일부라는 표현보다는 대륙의 일부라고 강변하고 싶었던 심정을 나는 되 뇌이며 고개를 들었다. 아버지의 넋이 흐르는 물살에 세월을 망각하고 표류하고 있다고 하는 고대도, 그 뒤의 섬들이 한결 가까이 눈에 들어온다. 섬은 막연히 바다라는 평면 위에 올라앉아 있는 한 점이 아니었다. 바다 밑 깊이 뿌리를 박고 섬과 섬이 연결이 되고 그 연결의 끈은 육지와 멀리 대륙과 하나로 큰 덩어리를 이루며 무한히 뻗어 있었다. 단지 그 사이사이 연결의 끈 위를 물이, 저 바다가 모든 것을 덮어 주며 넘쳐흐르고 있을 뿐이었다. 선생님의 음성이 귓전을 떠나지 않는다. 그 소리는 바람, 혹 아버지를 부르는 할머니의 외침 같기도 했다.
제27회 시드니 올림픽을 보면서 여러 가지로 느끼는 바가 많다. 우리 정부가 과연 이 나라 체육정책을 제대로 추진하고 있는지 걱정부터 앞선다. 올림픽에 참가한 선수단은 처음부터 큰소리만 뻥뻥 치더니 예상은 모두 빚나가고 금메달 획득도 당초 목표와 너무나 거리가 멀게 되었다. 2002년 월드컵대회도 진실로 걱정된다. 월드컵을 눈앞에 두고 세계적인 스포츠 지도자인 월드컵조직위원장을 강제로 사퇴시키는가 하면 최근에는 상암동 축구경기장 건설공사비가 조달되지 않아 공사진행에 차질이 발생하고 있다니 도대체 무슨 일들을 하는지 모를 일이다. 정부의 지원을 많이 받고 육성되어 온 구기종목들은 올림픽에서 기대에 미치지 못하고 오히려 설움 받고 아무도 돌보지 않던 취약종목 펜싱이 금메달을 딴 것은 예상치 못했던 일이다. 수백억원을 투자한 결과가 이렇게 나타났다. 올림픽 선수들의 훈련장인 태능선수촌에는 격려금이 21억원이나 들어왔다고 한다. 사상 처음 있는 일이다. 그러나 우리 나라 체육의 뿌리인 학교체육의 현실은 어떠한가. 학교체육은 빈사상태의 기로에 서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대한체육회와 선수촌의 엘리트 선수에게는 천문학적인 예산을 지원하고 있으나 일선 학교 운동선수들의 형편은 말이 아니다. 체육정책은 정부 어느 부처에서 관리하는가. 교육부와 문화관광부는 지금 어떠한 대책을 갖고 있는가. 학교체육지도관리는 교육부 소관인가, 문광부 소관인가. 학교체육은 국민체육의 근간이다. 엘리트체육, 사회체육의 활성화는 학교체육에 달려 있는 것이다. 현재 전국 초·중·고 운동부는 1만2881팀에 11만1226명의 선수가 있다. 서울은 1071팀에 1만2537명의 선수가 있다. 이 선수들에게 1년간 지원되는 우리 교육청 예산은 선수 1인당 8만9770원 밖에 안 된다. 이 돈으로 선수 한 사람이 육성되는 비참한 현실이다. 1980년 대한체육회 연간 예산은 20억원 정도였으나 올해는 450억원이 넘는다. 그러나 초·중등학교의 상황은 어떠한가. 전국 모든 초등교의 체육예산은 한푼도 없으며 중등은 교당 300만원 정도다. 이 예산은 20년전과 똑같은 수준이니 이것만 비교해 보아도 우리의 학교체육이 얼마나 소외되고 열악한 여건인지를 알 수 있다. 체육회 예산은 20배 이상 늘었으나 학교 체육비는 20년전 그대로다. 무엇인가 거꾸로 된 것이다. 정부는 체육정책 똑바로 해야 한다. 장래에 국가를 대표할 오늘의 어린 선수들에게는 인색하고 대표선수들에게만 예산을 집중 지원하는 것은 개선돼야 한다. 심지어 대표선수를 길러낸 초·중등학교 지도교사는 표창은커녕 감사의 인사도 받지 못하는 현실이다. 이에 비하여 선수촌 관계자나 경기단체 임원, 체육회 관계자들은 훈장을 목에 걸고 각종 국제대회 때마다 목에 힘을 준다. 주객이 전도된 잘못된 것이다. 이번 시드니에도 체육회의 수많은 사람들이 관광성 선수단 임원으로 떠났다. 본부임원에 교사는 단 한 명도 없다. 일선에서는 예산부족으로 운동부를 지원할 형편이 못된다. 어려운 여건 속에서 운동부를 육성하는 교장선생님과 지도교사들의 고충은 말로 표현할 수 없다. 시·도교육감협의회와 시·도체육과장협의회에서는 수년전부터 학교체육진흥을 위해 정부당국의 전폭적인 지원을 요구해 왔다. 그러나 교육부는 문광부에, 문광부는 교육부에 예산을 확보하라고 서로 책임을 전가하고 있으니 어떻게 학교체육의 육성을 기대할 수 있겠는가. 정부의 1인1기, 1교1기 시책은 구호에 그치고 말았다. 현재 교육부와 문광부에는 학교체육 전담 부서도 없다. 국민체육의 뿌리인 학교체육은 정부 정책의 부재와 예산부족으로 급격히 위촉되면서 몰락위기를 맞고 있다. 뜻 있는 지도자들이 적극적인 대책을 요망하고 있으나 누구 한 사람 이 나라 체육정책을 바로 잡으려고 노력하는 의지가 보이지 않는다. 학교체육은 외면하면서 엘리트선수 육성과 사회체육진흥을 외치는 무지한 정부당국자와 체육회 관계자들의 대오각성을 촉구한다. 하루속히 교육부에 학교체육을 전담하는 직제를 만들어 문광부에서 관리하는 체육업무를 교육부로 이관하고 일관성 있는 체육정책을 추진해야 할 것이다.
교직발전종합방안 주요쟁점 과제에 대한 전문기관의 여론조사 결과가 나왔다. 교육부는 15일 여론조사 전문기관인 코리아리서치가 이달 1∼8일 교원 1530명, 학부모 504명, 전문가 및 여론선도층 306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설문조사 결과를 발표했다. 이에 따르면 교원 학부모 두 집단으로부터 지지를 받고 있는 제도는 수석교사제, 선임교사 자격 신설, 연수·연구실적 승진·보수 반영, 병역특례제, 교육학전문 박사과정 신설인 것으로 나타났다. 그러나 초·중등교원 연계자격증제는 두 집단 모두 반대 경향을 보였고 교장연임제는 두 집단간 찬·반이 엇갈렸다. 먼저 두 집단으로부터 지지를 받고 있는 제도에 대한 반응을 구체적으로 살펴보면 △수석교사제의 경우 교원55.3% 학부모64.6%가 찬성(반대는 교원40.8% 학부모28.5%) △선임교사 자격 신설은 교원69.4% 학부모69.8%가 찬성(반대는 교원24.4% 학부모15.5%) △연수·연구실적 승진·보수 반영은 교원56.9% 학부모80.3%가 찬성(반대는 교원42% 학부모17.2%) △병역특례제는 교원60.4% 학부모58.8%가 찬성(반대는 교원35.1% 학부모37.8%) △교육학전문 박사과정 신설은 교원63.1% 학부모80.3%가 찬성(반대는 교원34.1% 학부모17.2%)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그러나 △초·중등교원 연계자격증제는 교원68.4% 학부모66.2%가 함께 반대(찬성은 교원24.3% 학부모 24.6%)했고 △교장연임제는 교원의 58.7%가 반대(찬성 38.5%)했으나 학부모의 65%가 찬성(반대32.2%)하는 등 반응이 엇갈리게 나타났다.
한국교총 채수연사무총장은 19일 청와대 정순택교육문화수석과 서범석 교육비서관을 만나 수석교사제 등 현안을 협의했다. 이날 채사무총장은 연금법 개악 반대, 교원정년 환원 문제, 수석교사제 등 현안에 대한 교총의 입장을 설명했다. 특히 채사무총장은 "수석교사제를 도입해 교원들이 스스로 자질 함양을 통해 상위자격을 취득하도록 유도해야 한다"며 정부의 결단을 촉구했다. 이에 대해 정순택교육문화수석은 "교원의 사기 진작을 위해 적극 노력하겠다"면서 "교원이 교육개혁에 앞장서는 모습을 국민들에게 보여주어야 한다"고 말했다. 서범석교육비서관은 "전교조가 수석교사제 도입을 반대하는데 기획예산처에서 수석교사제 도입에 따른 예산을 반영하겠느냐"며 "현실적인 어려움이 많다"고 말했다.
교원들은 '석·박사 학위 취득 결과를 보수체계에 반영하는 것이 바람직한가'라는 물음에 대해 51.3%가 찬성하고 32.5%가 반대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석·박사 학위를 보수체계에 반영할 때 적정한 호봉을 물은데 대해 교원들은 석사학위의 경우 1호봉(49.7%)이 적정하다는 응답이 가장 많았고 2호봉(23.6%), 모르겠다(19.3%), 3호봉(5.9%) 순으로 응답했다. 박사학위는 2호봉(33.5%)이 적정하다는 응답이 가장 많았고 1호봉(19.9%), 모르겠다(19.7%), 3호봉(15.8%), 4호봉이상(11.1%) 순으로 응답했다. 이같은 사실은 한국교총이 교원의 전문성 신장을 위한 교원보수체계 개선방안 마련을 위해 지난 6월부터 실시한 전국 초·중등교원 및 대학교원 1700명 대상 설문조사(응답자 1057명, 회수율 62.2%)에서 나타났다. 이번 조사에서 85.1%의 교원들은 현행 보수체계가 교직의 특수성을 반영하지 못하고 있다고 응답했고 92.5%의 절대 다수 교원들은 교직의 특수성을 반영할 수 있는 별도의 교원보수·수당규정의 제정을 원하고 있는 것으로 드러났다. 현행 연공서열에 의한 보수체계를 능력과 실적을 고려한 보수체계로 전환하는 방법에 대한 물음에서 대부분의 교원들은 '현행과 같은 연공서열 보수체계를 유지하면서 부분적으로 능력과 실적을 가미해야 한다'(57.7%)는 입장을 보였다. 석·박사 학위를 보수에 반영하는 것에 대해선 상대적으로 지지율이 높았지만 연수이수 결과를 호봉 승급에 반영하는 것에 대해서는 응답 교원들중 37.3%가 찬성한 반면 41.3%는 반대했다. 교원들은 교원보수 수준 인상의 저해요인으로 57.3%가 '정부의 정책적 의지 미흡'을 15.8%가 '안정적인 교육재정의 미확보'를 지적했다. 교원의 절대다수인 96.6%는 본봉비율을 상향조정해야 한다고 응답했으며 93.9%는 초과수업수당을 지급해야 한다고 응답했다. 교원들은 교직의 전문성에 영향을 주는 요인으로 '고도의 전문지식'(30.2%), '장기간의 직전 및 현직 교육'(27.5%), '광범위한 자율성'(20.1%), '엄격한 자격제도'(13.2%)를 차례로 꼽았다. 여기서 '고도의 전문지식'이라는 의미는 전공을 심화시키는 상위 학력의 필요성을 강조한 것으로 풀이된다. 한편 올 4월현재 초·중등교원 중 석·박사학위를 취득한 교원이 5만4125명(박사 1161명)이다. 여기에 수료했거나 대학원에 재학중인 교원 수를 합치면 7만6553명(박사과정 1450명)이다. 석·박사 학위 또는 연수 이수 결과 등 보수 반영을 통해 교직 전문성을 고양해 나가는 방안이 현행 연공서열 위주 보수체계를 개선하는 유력한 대안으로 부상할 것으로 보인다. ◇초·중등교원 석·박사학위 현황=교육부 자료에 따르면 올 4월1일 현재 석·박사학위를 취득한 초·중등교원 수는 석사 5만 2964명 박사 1161명으로 총 5만 4125명이다. 여기에 석사과정 수료자 5069명 박사과정 수료자 789명, 석사과정 재학자 1만 5939명, 박사과정 재학자 661명을 합치면 7만 6553명이다. 이를 학교급별로 살펴보면 초등교원이 2만 435명, 중학교원이 2만 1599명, 일반계고 교원이 2만 1791명, 실업계고 교원이 1만 2728명이다. ◇외국의 학위소지 교원에 대한 보수 우대 내용=미국은 지역 교육구마다 보수체계가 다르나 대체로 학사, 석사, 박사학위 소지여부에 따라 초임급 획정을 달리하든가 서로 다른 봉급표를 적용한다. 일예로 산타모니카와 맬리부 통합교육구의 경우 박사학위 소지 교원은 연 2000불 정도 부가급을 받는다. 일본은 초·중학교 교원 초임급으로 대졸자의 경우 2급5호, 석사수료는 2급8호, 박사수료는 2급12호를 받는다. 기준학력을 석사학위로 하고 있는 고교교원은 대졸 2급2호, 석사수료 2급5호, 박사수료 2급9호를 받는다. 대만은 각급학교 교사 단일호봉제를 채택하고 있으며 봉급의 등급은 36개로 구분돼 있고 석사학위는 21호봉, 박사학위는 16호봉에서 출발한다. 사범대 졸업자는 26호봉에서 출발한다.
8월말 39년의 교직생활을 마감하니 그 길이 마치 꿈과 같다. 다른 능력은 시간이 갈수록 숙달되지만 교직은 묵을수록 퇴보만이 쌓이는 것 같아 항상 나의 무능을 부끄럽게 생각했음이 솔직한 심정이다. 내가 촌부로서 논밭에서 하루종일 일했다면 학습에 이처럼 힘들어하는 아이들이 있다는 사실을 알기나 했을까. 교실에 들어서기 전 `한가지라도, 한 명이라도 더 가르쳐야지'라고 생각하며 내 처지가 고마워서, 아이들이 불쌍하다는 생각이 들어서 몰입하다가 내 자식을 갖게 된 후부터는 자식을 위한 일념으로 교육에 임했다. `나와 똑같은 사람이 내 자식의 담임이 됐을 때, 나는 학부모로서 만족할 것인가'. 남의 자녀를 잘 가르쳐야 남도 내 아이를 잘 가르쳐 준다는 신념을 지키려고 애썼다. 연필 깎아 주고 옷 입혀주고 오줌싸면 닦아주고 똥 누면 치워주고 목욕 시켜주고 돌려가며 머리 깎아주고 손톱 깎아주고 또 다시 가르치고 또 다시 설명하고 입이 아파 벌어지지 않아도, 점심시간 전에 배가 고파 허리가 구부러져도 미친 듯이 매진하고 흠뻑 취해 즐거워했다. 정말 화장실에 가는 시간도 아까워했고 해뜰 때 출근해 달을 보며 퇴근한 숱한 날 들이 순간처럼 느껴진다. 이 얘기는 결코 자랑이 아니다. 교사란 무엇인가. 어린이의 종이다. 어린이의 밥이 되고 떡이 되고, 그리고 재가 돼야 한다. 내 완벽주의 때문에 지탄도 많았고 환영도 많았다. 하지만 난 내 신념대로 살아왔고 누가 어떤 평가를 한다해도 교사로서 걸어온 그 길을 후회하지 않는다. 새하얀 도화지 같은 아이들 속에 온전히 파묻혀 산 일생이었다. 비록 세상 물정은 몰랐어도 어린 천사들 속에서 행복했다. 이제 긴 항해는 끝나고 무사히 뭍에 안착함을 고맙고, 감사하고, 눈물겨워 하면서 교단을 떠난다. 좋으신 선생님들, 훌륭하신 선생님들. 내내 건강하고 행복하고 사랑하세요. 정말 고마웠습니다.
자라나는 세대에게 쏟을 수 있는 가장 값진 투자는 교육이다. 국가 간 선의의 경쟁이 국력으로 나타날 때, 교육은 국가의 장래를 가늠하는 척도가 되기 때문이다. 우리는 입버릇처럼 내일의 역군이 청소년들이라고 한다. 하지만 그 역군을 키우는 사람이 교사라는 사실은 쉽게 잊어버리고 그 무거운 짐을 감당할 교사의 권위를 세우는 일에 너무 소홀하다는 느낌이 든다. 새 천년을 맞아 교육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이 때, 교원의 사기가 꺾이고 교육에 대한 열정과 사명감도 예전만 못한 것 같아 안타깝다. 평생 교단을 지키며 꿈나무들을 기르는 일이 자신과 사회와 국가에 대한 유일한 희망이라고 자부하던 경륜 있는 교사들이 앞다투어 교단을 떠났고 또 얼마나 훌륭한 교사가 떠날 준비를 하는 지 모른다. 무엇이 교사들을 이토록 절망하게 했을까. 교육개혁의 소용돌이 속에 이제 교육현장은 교육의 질 향상은 고사하고 교권의 실추로 학교교육의 근간이 흔들리고 교육의 목표와 방향이 배움의 주체인 학생들에게 침투되지 않는 교실붕괴 현상마저 보이고 있다. 수업 중이던 교사가 학부모에게 옆구리를 채이고 실신해 병원에 입원하고 교사가 학생에게 머리채를 잡히는가 하면 학생이 교사를 고발해 연행되는 등 연이은 교권사건이 벌어지고 있다. 교육계의 한 사람으로서 경악과 분노를 넘어 어쩌다 이 지경이 됐나하는 참담함에 서글퍼진다. 갈수록 사제지간이 무너지고 사회적 존경심도 희미해져 가는 외로운 길. 입시위주의 교육과 일부 촌지, 체벌교사 문제 등으로 학교와 교원이 불신을 받고 교사는 더 이상 설자리를 찾지 못하고 있다. 그래도 평생을 박봉과 싸우며 외롭고 험한 세월을 땀흘려 수고한 많은 원로 교사의 땀방울이 오늘날 이 나라를 이만큼이나마 살게 만든 원동력이 아닌가 자위해 본다. 분명 학교는 교원, 학생, 학부모가 사랑과 신뢰와 존경의 마음으로 만나는 공동체여야 한다. 교권이 서야 교육이 서고, 교육이 서야 나라가 바로 선다. 자율과 창의에 바탕을 둔 학생중심 교육도, 오고 싶은 학교, 즐거운 학교 건설도 가르치는 교사가 신바람이 나지 않으면 한낱 공염불에 그치고 말 것이다. 교권은 주의나 주장으로 신장되는 것이 아니라 교육자 모두가 천직으로 알고 사랑과 헌신으로 봉직하여 제자들과 지역사회의 존경과 신뢰를 한 몸에 받을 때 저절로 회복될 것이라고 확신한다.
학교 내 단군象 훼손 사건과 관련해 단군의 실존여부가 논란이 되고 있는 가운데 현행 초·중등 교과서가 단군을 서로 다르게 서술해 교사와 학생에게 큰 혼란을 주고 있다. 현재 초등의 경우 6학년 1학기 사회과목 8쪽에서 단 한 문장으로 단군 왕검을 서술하고 있다. `하느님의 아들인 환웅과 곰이 변하여 사람이 된 웅녀 사이에서 태어난 단군 왕검은 이 땅에 최초의 국가인 고조선을 세웠다'가 전부다. 삼국유사의 단군신화 부분만 단 한 문장으로 요약해 놓은 셈이다. 한 술 더 떠 교과서 하단에는 `동욱이는 우리 나라 역사가 깊고 최초의 국가인 고조선을 세운 단군 왕검이 `하느님의 자손'이라는 사실이 무척 자랑스럽게 느껴졌다'는 기술도 있다. 교과서 기술내용만 보면 단군은 그저 신화 속 가상 인물일 뿐이다. 이와 달리 고교 국사의 경우 `고조선은 단군 왕검에 의해 건국되었다고 한다'는 가설적인 문장으로 서술돼 있어 소극적으로나마 인정하는 분위기다. 또 중학교 국사는 `단군의 고조선 건국'이라는 부제의 단원에 `고조선의 단군 왕검은 종교와 정치를 함께 지배하는…'이란 내용으로 쓰고 있어 단군의 존재를 사실로 인정하는 느낌이 강하다. 이와 관련 초등교사들은 사회 교과서에서 단군을 `곰의 아들' `하느님의 자손'으로만 서술하는 것은 중·고교와 일관성도 없고 아이들에게 왜곡된 역사관을 심어줄 수 있다고 지적한다. 전북 지곡초등교 권광식 교사는 "6학년 학생에게 단군이 있었다고 생각하느냐고 물었더니 절반에 가까운 70여 명이 없다고 말해 놀랐다"며 "신화로만 기술한 교과서와 불분명한 교육지침이 아이들에게 왜곡된 역사관을 심어준 셈"이라고 우려했다. 교사들조차 단군을 신화로만 가르치는 경우가 많다. 대전 S초등교의 한 교사는 "별다른 지침서나 자료가 없어 교과서 그대로 단군을 신화 속 인물로만 가르치고 있다"며 "아이들도 단지 그렇게 이해하는 듯하다"고 말했다. 이런 교육방식 때문에 중·고생들에게는 단군이 신화 속 인물을 넘어 숭배의 대상으로까지 여겨지고 있다. 서울 Y고 이 모군은 "선생님이 뭐라고 설명해 주셨는데 잘 모르겠구요. 신화만 생각나요. 친구들 중에는 단군이 우상이라며 믿지 않는 애들이 많아요"라고 말했다. 이 때문에 교육부 사이버소리함에는 우리 민족의 뿌리를 흔드는 일제 식민사관을 버리고 단군을 교과서에 충실히 반영하라는 교사들의 요구가 수 십 여건 올라 있다. 교사들은 "일본은 없는 역사를 날조하면서까지 국민의 자긍심을 높이려고 하는데 우리는 이미 학계에서 인정하고 있는 사실조차 국정교과서에 싣지 못하고 있다"고 비난하고 있다. 이에 대해 교육부 교육과정정책과 김만곤 장학관은 "초등생의 인식수준을 고려해 단군에 대한 기술을 가볍게 처리한 것"이라"자세한 내용은 교사용 지도서에 제시돼 있으므로 교사들이 잘 가르치면 된다"고 밝혔다. 하지만 역사 전문가들은 교과서에서 단군의 실존을 인정하고 그 자료로서 단군신화 등을 가르쳐야 한다고 말한다. 노명호 서울대 국사학과 교수는 "삼국유사의 신화를 그대로 요약한 것은 학생들의 역사인식에 혼란을 줄 수 있어 부적합하다"며 "국조 단군이 고조선을 세웠다는 사실을 명기하고 단군에 대한 서술이 여러 사료에 신화의 형태로 제시돼 있다는 설명을 덧붙여야 한다"고 지적했다. 류재택 한국교육과정평가원 사회교육팀장은 "분명히 존재하지만 명확히 밝힐 수 없는 國祖를 신화 형식으로 형상화한 것으로 이해해야 한다"며 "신화이기 때문에 모든 사실을 부정한다는 것은 어리석은 역사관"이라고 주장했다.
최근 교육현장에서 가장 빈번하게 거론되고 있는 주제는 수행평가가 아닌가 생각된다. 수행평가는 어느 날 갑자기 학교현장에 도입된 새로운 방법은 아니며 오래 전부터 선택형 지필평가와 함께 교과에 따라 이미 실시하던 평가방법이다. 단지 실시 초기에 현장 여건을 무시하고 획일적·동시다발적으로 시행하려고 한 것이 `수행평가=골치아픈 평가'라는 선입관을 초래한 면이 있이다. 우리 교육청에서는 초등학교는 이미 97학년도부터 일제고사를 폐지하고 평소 학생의 학습활동 상황과 특징, 진보의 정도 등을 파악해 학년말에 서술형 문장으로 기술하고 있다. 또 중학교는 지필평가 시 논술형·서술형 평가 비중을 99년에는 30% 이상, 2000년에는 30% 이상으로 하되 50% 이상을 반영토록 권장하고 있다. 이로써 학생들의 사고력·문제해결력 신장을 위한 평가방법 개선에 꾸준히 노력 중이다. 중학교 평가방법 개선의 목적은 평가를 통한 학습 성과의 점수화, 서열화를 지양하고 평가방법도 지필검사 중심에서 벗어나 보자는 데 있다. 이점에서 우리 교육청은 중학교 평가방법에 있어 선택형 지필고사 중심의 정기고사 비중을 최대한 축소하고 서술형 평가를 포함한 수행평가를 점진적으로 확대해 나가려는 입장이다. 선택형 지필고사를 지양하고 교사가 평소의 학습과정, 학업성취도 등 수시평가 결과를 종합해 학생의 교과성적을 점수화가 아닌 성취도(수, 우, 미, 양, 가)로만 기술하게 함으로써 종래의 총점제와 서열중심의 평가관에서 벗어나자는 것이다. 물론 이러한 평가방법은 교육부 훈령과의 상치, 고입성적 산출방법의 문제, 평가대상 학생수의 과다로 인한 교사의 업무과중, 수행평가에 대한 학부모의 신뢰 확보 등 예상되는 문제점이 많다. 이런 문제점을 해결하기 위해 교육부와 긴밀히 협의하고 고입성적 산출방법을 보완하며, 중학교 전 학년에 걸쳐 선택형 지필평가 비율을 현재보다 줄여나가는 대신 논술형·서술형 평가를 포함한 다양한 평가방법을 확대·적용토록 할 계획이다. 아울러 평가 내용과 시기 등은 학교 자율에 맡겨 단위학교의 상황과 여건을 고려하고 학교 학업성적관리위원회의 자율적 결정을 존중해 부분적·점진적으로 시행하는 방향으로 정책을 추진할 것이다. 이상갑(서울시교육청 교육정책국장)
2002학년도부터 고등학교에 도입되는 제7차 교육과정을 앞두고 일선 교사들 사이에서는 큰 혼란이 일고 있다. 과거 여섯 차례에 걸쳐 개정되고 시행돼 왔지만 어떤 교육과정도 만족스럽게 운영되지 못했음에 비추어 보면 당연한 일인지도 모른다. 더욱이 학생선택중심 교육과정, 수준별·단계별 교육과정 운영, 재량활동의 신설 및 확대 실시 등을 골자로 하는 7차 교육과정은 과연 우리 현실에 부합하며 성공적으로 운영될 수 있을 지 벌써부터 우려하는 교사들이 많다. 우리 나라의 교육 현실을 무시하고 미국식 교육과정을 모방한 7차 교육과정의 도입은 학교 현장에 상당한 진통과 난항을 불러오고 한 때 열병처럼 번졌다 사라진 열린교육처럼 실패할 가능성이 매우 높다. 따라서 무리하게 운영하느니 차라리 시행시기를 유보하고 대폭 손질하는 보완작업이 꼭 선행됐으면 한다. 7차 교육과정의 문제점으로는, 우선 많은 과원교사가 발생하고 상당수의 교원들은 부전공 연수에 참여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런데 원래의 전공과 부전공 사이에 유사성이 없는 경우가 많은데다 그나마 단기간의 교육으로 전문성이 훼손되면서 수업의 질을 떨어뜨리는 것은 물론, 교사의 신분불안으로까지 연결되는 문제를 안고 있다. 현재의 부전공 연수로는 전문성을 확보하기가 어렵고 결국 전공을 잃은 교원의 사기만 꺾을 게 뻔하다. 벌써부터 부전공연수와 관련해 기술과 가정, 제2외국어 교원들의 반발이 거세지고 있는데 이에 대한 대책마련이 시급하다. 또 다른 문제는 고교 2, 3학년에서 수준별·단계별 교육과정을 운영하겠다는 것인데 이것은 여건상 불가능해 보인다. 시·도평가 대비 및 IMF체제로 인한 예산 부족을 이유로 학급당 인원수가 늘어나고 교사 수는 줄어든 것이 학교 현실이다. 이런 상황에서 교육내용을 조절하지 않고 학생 수 등 학교 여건도 고려하지 않은 채 수준별·단계별 교육을 실시한다면 6차의 수준별 이동수업과 별 차이 없는 우열반 편성으로 전락할 것이 뻔하다. 이미 많은 시범학교가 수준별 교육과정을 운영했지만 교사와 학생들만 희생양이 된 상태다. 수준별 교육과정은 국가정책으로 실시될 것이 아니라 학교나 교사 단위에서 적용할 수 있는 방법론에 지나지 않는다. 또 학생의 학습부담을 줄이고 문·이과 구분도 무시한 채 학생선택권을 대폭 확대한 것은 지나치게 학습자만의 입장을 고려한 처사다. 선택과목제를 시행하려면 선결조건으로 교사수급과 교실 확보 등 교육환경 개선이 시급하다. 현 교육재정 여건상 교사를 더 뽑지는 않으면서 한 교사가 두 과목을 가르치게 하는 것은 수업의 질을 떨어뜨리고 노동력을 착취하는 행태일 뿐이다. 과감한 예산투자로 교사를 증원하고 교실을 증축해야 한다. 마지막으로 선택과목을 일반선택과 심화선택으로 구분했는데 학생 입장에서 누가 어려운 심화선택을 할지 의심스럽다. 배우기 쉽고 점수 따기 좋은 과목을 선택하리라는 것은 불보듯 뻔한 이치다. 7차 교육과정은 얼마 전 미국에서 시행한 공통기본교과체제를 그대로 모방해 현실과 너무 동떨어진 면이 많다. 따라서 무리하게 강요하지 말고 실시를 유보하거나 폐지까지 검토해야 할 것이다. 우정렬(부산 혜광고 교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