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점. 섬으로 나앉은 추도가 저 편에 말없이 떠있지만 흐르는 물살에 표류하는 것만 같다. 뭉글뭉글 떠다니는 바다안개가 가릴 때면 저 편까지의 거리가 아득하기만 했고 섬은 없이 바다만 보이는 착각에 빠지게 한다. 그 막막한 느낌 속에서 바다는 안개를 삼킬 듯, 그 안에 포화된 섬을, 그리고 내가 딛고 선 발 밑의 한 줌 땅 덩이마저 쓸어 갈 듯 사나운 물살을 흘려 보내는 것이었다.
언제나 한가롭게 보일 수도 있는 한 점 섬, 그 섬들을 있게 한 바다는 더러 수려한 한 폭의 수채화처럼 푸르고 넘실대는 유희로 사람들을 홀렸다. 그러나 맑은 날 모래해변에 사는 바다강구들 까지 모두 해 구경하러 나오는 날에는 바다를 배경으로 섬들은 마치 판유리 위의 물방울처럼 표면장력을 키우며 의연하게 자태를 드러내었다. 그 홀연한 자태가 비굴한 고독보다는 의연할 수 있는, 그래서 현실을 초월하고 있는 듯하여 찬란하기만 했다.
추도는 내게, 적어도 나 같은 아이에겐 그러나 섬으로서의 본연을 초월하기에는 너무 초라하고 보잘 것이 없었다. 그리고 언제나 마음만 먹으면 도달할 수 있다는 생각에서 비롯된 어떤 신비로움 따위도 또한 미지의 것에 대한 막연한 동경심이랄까 하는 감정도 자아낼 수 없는 흔해빠진 상투성, 바로 그것이 추도가 나에게 주는 설된 느낌이었던 것이다. 항상 대하는 것으로부터 희소성이나 각별함 따위란 없는 것이 세상의 이치일는지 모른다. 그래서 서로들 늘 지척에 사람을 두고도 고립감이나 소외의 소용돌이 속에서 헤어나지를 못하는 것일 게다.
아까부터 그 섬을 앞에 두고 나란히 바윗돌 위에 걸터앉은 선생님과 나는 별 말이 없다. 선생님은 자리를 잡고 앉는 순간부터 망연히 섬을 바라보면서 뭔가 골똘히 생각에 잠긴 모습이었다. 배에서 내린 나를 여기까지 데려 왔으면 할 말이 있었을 텐데, 애꿎은 돌멩이만 집어던진다.
서로의 영역을 확인하면서 동떨어진 섬들처럼 서로의 높은 성을 어쩌면 침범 당하기를 꺼리는 것은 아닌지. 나는 바람에 쓸리는 머리를 연신 매만지고 있었다. "가자 이젠." 집었던 돌멩이를 놓고 선생님이 일어서서 앞장섰다. 바위 위에 앉아 있어서 바지자락에 묻어있을 것도 없건만 선생님은 습관처럼 바지를 털어 댄다. 얼굴이 여위어 자연스레 생긴 볼우물은 선생님이 말을 하는 대로 패었다간 들어간다. 말소리도 열이 없다. 아버지만큼 키가 크다고 생각을 했었다.
길쭉한 얼굴에 큰 키의 이열 선생님. 군데군데 솟아있는 바윗돌 위를 저만큼 앞서 걷고 있는 모습이 부질없는 바닷바람에도 이내 휘청거릴 것만 같다. 갑자기 멀미가 났다. 배에서부터 그다지 속이 편하지는 않았다. 나를 돌아보는 선생님의 앞머리가 지나가는 해풍에 나부낀다. 선창으로 통하는 해변 길을 다 가도록 바람은 살랑거렸다. 물새 서너 마리가 선창을 낮게 날아다닌다. 새들은 선창 하단부터 비탈에 홀연히 서있는 하얀 인어 상까지 수시로 날아들었다. 금방이라도 물 속에 뛰어들 듯 두 손을 높이 쳐들고 바다를 향하고 있는 인어. 하지만, 여신 레토를 모욕해서 고난을 당하는 탄탈러스의 딸, 슬픔으로 대리석이 되어버린 뒤에도 눈물을 흘려야 했던 니오베의 모습만 같다. 선생님은 부지런히도 걷는다. 어서 나를 할머니에게 데려다 주고픈 심정일 게다. 할머니를 어떻게 바라보아야 하나. 멀미가 조금 더 해진 것 같다.
집으로 들어서는 막다른 골목에 이르자 선생님은 잠시 나를 세웠다. 며칠 전 서울에서 만났을 때처럼 손을 힘있게 잡았다. 멋 적은 미소를 지으며 나는 고개를 돌려버렸다. 마주 보기가 머쓱하여 내 손을 잡은 가늘고 길쭉한 손가락만 쳐다보았다. 손가락이 유난히도 파리해 보였다. 집 앞문간에 동백나무가지가 수줍게 서 있었다. 곁의 오동나무는 그 큰 잎사귀 몇 개를 떨군 채 고즈넉이 바다를 응시하는 듯하다. 큰아버지가 심었다는 오동나무는 심은 사람이 저승길로 가야 잘 자란다는 속설을 실천이라도 하듯, 여름이면 무성한 잎들을 달고 마치 거함의 돛처럼 우리 집을 이끌고 있는 듯한 위용을 보여 주곤 한다. 그 위세에 눌려 동백은 꽃조차 숙여 피었다간 지고 말았다.
오동나무 잎들이 뚝뚝 떨어져 내리고 가지가 어둡게 드러나기 시작할 무렵이면 아버지는 늘 무엇인가를 잔뜩 짊어지고 들어 왔다. 아버지가 풀어놓는 꾸러미에는 말린 오징어며 도다리, 삼치 따위가 가득 들어 있었고, 더러는 미라처럼 말라비틀어진 상어가 촘촘한 이를 하얗게 드러내기도 했다. 아버지는 가져온 생선다발이 바닥이 나고 어머니가 투정을 부리기 시작할 때쯤이면 타고 온 배에 올라 기약도 없이 떠났다. 나는 아버지가 떠나는 게 싫었다. 아버지는 나를 한없이 안고 다녔다. '아빠는 항상 정연이 생각에 사는구나. 이담에 올 땐 아빠가 예쁜 선물 한아름 사올게. 엄마 말 잘 듣고 할머니하고 잘 있어야돼 알았지.'
"정연이 돌아왔어요. 나와 보셔요!" 안방 문이 드르륵 열렸다. 할머니는 단정한 차림으로 앉아서 눈으로 모든 걸 말하고 있었다. '오라질 년! 어딜 기어다니다 이제 들어오는 게여.'
"할머니......" 나는 할머니의 마른 장작 같은 손을 잡았다. 금방이라도 머리채를 잡고 흔들 것만 같다. 노발대발 소리를 지르며 혼을 낼 것이며 날벼락이 떨어질 것이다. 그러나 할머니는 슬며시 손을 빼더니 엎드린 내 등을 토닥거린다. 좁은 가슴이 떨리는 것은 할머니가 흐느낀다는 표시다. 가슴이 답답하며 주먹만한 것이 치미는 느낌이다. 멀미가 심해진 모양이었다. 출발할 무렵에는 괜찮았는데. 배에 오르기 전 무얼 먹었던가. 자리에서 일어나 먹은 거라곤 과자부스러기 몇 개뿐이었다. 아침나절에는 무척이나 속이 쓰렸다.
어제 밤까지 과음을 했다. 일을 끝내고 더 많은 술을 마시게 된다. 손님들이 남긴 술을 버리기 아깝다고 홀짝홀짝 마시다보면 가랑비에 옷 젖듯 술에 취한다. '술이 사람을 삼키는 거야. 사람이 술을 마시는 것은 첫 잔뿐이지. 그 다음부턴 내가 술을 마시는 게 아니라 술이 널 마셔버려. 너 말야 내가 충고하는데 며칠 전 찾아왔었다던 선생인지 서방인지 그 사람 눈 밝아서 찾아가. 넌 아직 술이 너를 먹어버리는 정도는 아니잖아. 더 젖기 전에 우산을 써. 이미 흠뻑 젖으면 우산도 필요 없게 되는 거야.'
같은 일을 하는 언니였다. 처음 상경해서 같은 업소에서 우연히 알게 된 여자였고, 제니라는 좀 세련된 느낌의 이름을 사용하며 단골 손님이 많다고 했다. 그녀는 가끔 외박도 하며, 남자들이 집까지 따라오는 경우도 더러 있었다. 그녀가 나가는 업소는 충무로의 작은 카페였다. 「아뜨리에」라고 쓰인 큰 간판이 현란한 네온사인에 번쩍였고, 낮에 보아도 쉽게 눈에 띄었다. 그녀는 간판더러 배보다 배꼽이 더 크다고 했다.
"어떻게 여길 찾아왔니? 야, 너도 이제 서울사람 다 되었구나." "처음 치고는 정말 나도 놀랄 정도로 잘 찾아 온 것 같애. 가게가 좀 작다. 언니, 여긴 주로 어떤 손님들이야?" "그렇고 그런 사람들이지 뭐. "
테이블을 닦고 바닥을 물걸레로 닦아낸 다음 의자를 정돈해 놓는데 어떤 남자가 들어왔다. 키가 크고 강인한 인상에 곱슬머리를 잘 빗어서 뒤로 넘긴 폼이 여간내기 같지가 않았다. 그는 제니에게 가까이 가더니, "이 아가씬 누구야? 제니가 데려왔구나. 물건인데 진짜." "괜히 헛물켜지마. 나랑 상관없는 애야."
그는 카운터에 데려간 제니에게 인상을 쓰면서 쥐어주는 돈을 주머니에 넣고 나를 아래위로 훑어보며 끈적한 웃음을 흘렸다. 돈을 거머쥐고 나가는 그에게, "거머리 같은 자식! 나 같은 년 없으면 저런 자식 어떻게 풀칠하고 세상 살아갈지 의아해 정말." "생긴 것은 멀쩡해 보이는데." "누가 바보처럼 생겼으면 넘어갔겠니. 너도 저 자식 앞에서 괜히 허점보이지 마. 정말 늑대 같은 자식야. 하긴 세상 남자란 작자들 다 마찬가지지. 술만 들어가 봐라 점잖은 신사가 어디 있나. 다들 노예로 변해간다. 무슨 노예냐구? 글쎄 너도 곧 네 입에서 뱉어지게 될 말이지."
나는 어둠의 나락 속으로 추락하는 길목에 서 있었다. 가도 가도 끝이 보이지 않는 미로. 그 미로의 시작은 어디? 내가 섬을 떠나는 배를 타던 순간, 학교에 나가기 싫던 시절, 아니면 애타게 엄마를 찾다 숨가쁜 꿈속에서 엄마의 손을 못 잡아 놓쳐 혼자 남은 그 꿈의 나락들?... 오동나무 잎사귀들이 하나 둘 떨어지다가 앙상한 나목으로 남아도 아버지가 돌아오지 않던 어느 가을이었다. 학교에서 돌아오는 길에 나는 선창가에 사람들이 모여서 웅성거리는 소리를 들었고, 할머니와 엄마가 사람들 틈에 둘러싸여 애절하게 통곡하는 것을 사람들 틈으로 간신히 보았다. 할머니는 통곡을 하다가 끝내 혼절하여 동네 어른들에게 업혀왔다. 머리를 산발하고 기진맥진 울부짖다가 지쳐 쓰러진 할머니를 보면서 나는 무언가 상당히 잘못된 일이 있다는 것을 짐작하였다. 나만큼이나 기다림에 지쳐버린 오동나무가 잎새 하나 남길 수가 없게 된 가지에 하얗게 서리가 내려앉아도 아버지는 돌아올 줄을 몰랐다.
"엄마, 아버지는 정말 사람들 말대로 바다에 떠다니셔?" 그러나 엄마는 지친 듯 별 말이 없었다. 대신 긴 한숨을 쉬는 날이 많아졌다. 날마다 무당을 데리고 바다에 나가는 할머니와 다투는 회수도 잦아졌다. 할머니의 언성도 차츰 높아갔고 엄마의 대꾸도 만만치가 않았다.
"세상에 인정머리가 있는 년이면 한번쯤 따라 나와서 지 냄편 넋이라두 불러볼 일여. 시퍼렇게 살어있던 사내 잡어먹었단 소리는 듣기 싫구. 시신두 넋두 못 찾어 저 원수같은 물 속 워디를 헤매구 있는 사내 애틋한 생각이 바늘 끝 만큼이라두 있으면 이러지는 않능겨!" "허구헌 날 이렇게 사는 년의 팔자는 뭐가 좋아서 그러는 줄 아셔요? 저두 헐 만큼 했네요. 뭍에서 죽은 것두 아니구 망망대해 나가서 죽은 사람을 전들 어쩌라는 거예요. 전들 넋이라두 있어 건질 수 있다면 이러구 앉았겠남요. 죽은 사람은 그렇다구 쳐요. 불쌍하구 애처럽지요. 하지만 산사람 목숨은 워쩐대요..."
엄마는 하얀 고무신을 늘 선반에 놓아두고 있었다. 아버지가 사다 준 것이라서 그런다기 보다는 마땅히 태울 시간이 없어서인 듯 했다. 그러던 어느 날, 그 신발을 감쪽같이 태우고는 어디선지 하얀 구두 한 켤레를 그 자리에 대신 올려놓고 있었다. 엄마의 조그마한 발에 잘 어울린다고 생각했다.
엄마는 가끔 젖은 눈으로 나를 바라보았다. 할머니와 다투어서 우는 것만도 아닌 듯 했다. 엄마가 나를 안고 눈물을 흘리는 일이 잦아지면서 엄마는 내게 그랬다. '내년이면 정연이가 4학년 맞지? 정연이는 할머니가 좋지? 할머니는 좋은 분이야. 엄마한테 꾸중한다고 미워하면 못써. 하나밖에 없는 손녀딸이라서 너에게 쏟는 정도 각별하시잖니. 엄마는 있잖니. 정연이의 장래를 위해서도 무엇인가를 해야 한다구 생각해. 엄마가 없더라도 할머니와 잘 지낼 수 있겠니? 그래야 엄마가 이 담에 꼭 데리러 오지.' 아버지를 기다리던 오동나무 아래에서 날마다 선창을 내려다보며 오지 않는 엄마의 환상이 빛 바랜 편지봉투처럼 희미해질 무렵, 이열 선생님이 들어온 것이다.
"이번에 창곡학교루 오신 선생님이시란다. 하숙집을 찾다가 마침 교감 선생님이 소개루 우리집에 오신 거여." 할머니의 설명이 다소 미흡했던지 선생님이 끼어 들었다. "창곡 1학년이라구? 함께 다닐 수 있어서 좋겠구나. 앞으로 잘 지내보자. 이름이...?" "정연이, 박정연이라구 부르지요. 지 애비가 지어준 이름이랍니다."
할머니의 성화로 선생님의 짐을 정리하면서 잘 드나들지 않던 엄마의 방에 들어갔다. 입고 쓰던 것들은 어느 결에 자취를 감추었지만 빛이 바랜 사진 한 장은 여전히 장롱의 화장대 위에 대롱대롱 매달려 있다. 내 돌날 찍은 기념사진이었다. 나는 사진을 떼어내었다. 대신 선생님이 가져 온 액자를 그 자리에 놓아두었다. 역시 단촐한 가족사진이었다. 셋이서 찍은 사진 속에서 선생님은 웃는 표정이었고 부인은 미소를 머금고는 있지만 다소 어두운 그늘이 있어 보였다. 부부 사이에 자리를 독차지하고 앉아 있는 사람은 두 사람 중 어느 누구도 닮아 보이지가 않았다.
자꾸 앞이 캄캄해온다고 마루에 나와 혼잣말을 하다가 방으로 들어가면 할머니는 금세 다시 나와 앉아 있기 일쑤였다. 동백나무가 올해는 매우 무성하다. 늘 오동나무에 가려 키 작은 나무로 밖에 여겨지지 않았지만 지난 겨울 오동나무가지를 자른 덕에 동백이 제 모양을 내게 된 것이다. 할머니는 나무들에게 무슨 도박을 거는 모양이었다. '동백이 성했으면 쓰겠구나, 올해는 말이다. 자꾸 눈이 침침해져서......' 집에 돌아온 후 거의 바깥출입을 삼가고 있는 내게도 나무들은 예사롭지가 않았다. 아침에 일찍 일어나는 선생님은 별다른 기척도 없이 나갔다가 해질 무렵 지친 모습으로 돌아왔다. 마주쳐도 별 말이 없다. 동백나무를 유심히 바라보던 할머니가 지팡이를 찾았다. 며칠 전 선생님이 마련해준 것이었다.
"어디 나가지 말어. 잠깐 댕겨올 겨. 선생님 금방 들어오실 겨." 할머니를 뒤따라갔다가 오동나무 아래쯤에서 앉은 채 멀거니 선창을 바라보았다. 마침 여객선이 들어와 사람들이 선창으로 내려오고 있었다. 할머니가 부지런히 내려가더니 어떤 아낙과 만나 서로 손을 부여잡는 것이 보였다. 누굴까. 나는 턱을 괴고 앉은 채 사람들이 다지나가도록 선창에서 눈을 떼지 않았다. 한참이 지나도 할머니도 기다리는 선생님의 그림자도 얼씬거리지 않는다. 옷을 몇 벌 챙겨오긴 했지만 마땅히 입고 있을 게 없었다. 서랍장을 온통 뒤져봐도 입던 옷가지들이 눈에 띄지 않았다. 할머니가 쓰는 옷장을 열어보았다. 폭이 넓어 늘 불만스럽던 스커트와 보기만 해도 가슴이 답답한 앞 가리개 달린 상의가 두벌씩이나 걸려 있다. 교복이었다. 이미 낡은 옷장 냄새가 짙게 배어있다. 다신 입을 일이 없을 거라고 내팽개치고 떠난 옷이었다.
할머니는 툭하면 교복을 태워버리겠다고 으름장을 놓았다. 쓸 데 없는 옷가지며 책가방도 그 등살에 없어진지 오래였다. "지 에미 년을 저토록 닮아갈까. 이년아 닮을 걸 닮아라. 세상에 누굴 못 닮아 에미를 닮는 겨. 학교엔 왜 안가. 누가 잡아라두 간다더냐? 공부허는 것두 때가 있는 게여. 왜 너만 못혀, 남들은 다 하는걸. 그러구 이마에 피두 안 마른 년이 나가긴 어딜 나가. 지집년 밖으루 나돌면 뻔헌 겨! 이년아 그 지랄하려거든 니 에미처럼 야반도주라두 해서 아예 내 눈앞에서 사라져!"
짧은 가출을 했다가 돌아온 날 할머니는 입에 거품을 물고 온갖 악담을 퍼부었다. 빈번한 결석에 이제는 벌써 두어 번 가출을 한 뒤여서 할머니로서도 악에 바칠 일이었다. 거기에 학교에서 날아온 자퇴예고통지서가 노여움을 한껏 부추긴 모양이었다. 할머니로서는 선생님에게 은연중 방패막이가 되어 줄 것을 바랐지만 선생님도 정말 한계에 부딪혔을 것이다. 결석을 다반사로 하는데다가 교칙은 나에게 별반 의미가 없었고 얼마 전에는 화장실 흡연사건으로 학교를 시끄럽게 했다. 여학생 화장실도 더 이상 흡연으로부터 자유로울 수가 없다는 말이 교무실에서 우스갯소리로 심심찮게 들리게 된 장본인이었던 것이다.
"화장실에 흡연구역을 만들어야 되지 않을까요?" 학생부장이 이열 선생님을 향해 빈정대듯 한다. "김인숙 선생, 박정연이 교칙대로 처리하세요!" 선생님의 갑작스런 언성에 담임선생님은 출석부를 꽂다말고 뒤를 돌아다보았다. 선생님도 이번에는 몹시 화가 나 있었다. "이 녀석이 결국 이 지경까지 가는군요. 나쁜 자식!" 2교시가 끝나고 쉬는 시간에 흡연을 하다가 적발이 되었다는 말을 듣고 담임선생님은 무심한 표정을 지었다. 그러나 책상서랍을 열더니 봉지커피를 꺼내어 컵에 부었다.
"정연이 처벌하면 가장 먼저 섭섭할 부장님이 웬 일로 그런 말씀을 다 하십니까?" 학생부장은 이열 선생님을 힐끗힐끗 바라보며 싱글거렸다. "이 사람이 아침부터 왜 이러는 거야?" 선생님은 웃음을 보였지만 기분이 좋은 내색은 결코 아니었다. 나를 향해 노여움을 보이기는 처음이었다. 그래서인지 곁에 앉아 묵묵히 커피를 마시는 담임선생님이나 엄포를 놓고 있는 학생부장보다도 훨씬 더 두렵다. 물론 집에서 느끼는 모습과는 다를 수밖에 없으리라. 집에서의 선생님은 오래도록 함께 살아온 이웃과 다를 바가 없었다. 할머니에게 가끔씩 아주머니라고 부르기도 했다. 오래 전에 돌아가신 어머니의 모습을 보는 것 같다는 말도 가끔 나누었다. 그러다가도 서울에 갔다오면 며칠 씩 혼자 방안에만 들어앉아 있을 때도 있었다. 밥상마저 그냥 물리는 경우도 있었다. 어떻게든 끼니를 거르지 않게 하려는 할머니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막무가내다. 어렵게 내가 들어가 보면 전혀 의외의 표정이다. 무척 속상해할 일이 있을 것이고 마음이 쉽게 풀리지 않으리란 기대를 뒤집고 선생님은 선선히 나를 반긴다. 나는 그럴 때마다 저윽이 놀랐다.
한번은 내게 밑도 끝도 없는 말을 던졌다. "강아지를 한 마리 얻어다 길렀단다. 토실토실해야할 놈이 어지간히도 말라비틀어져 있었지. 강아지도 생물이라서 정을 주고 잘 먹여주면 무럭무럭 클 수밖에 없지 않겠니. 나보다도 안사람이 정성을 무척이나 쏟았어. 과연 정성이 헛되지 않았는지 강아지는 잘 자라주었단다. 사실 도시생활 속에서 개를 기른다는 것은 힘이 들지. 여기처럼 마당이라도 있으면 괜찮겠지만. 그래서 남들 손가락질도 많이 당했지. 그런 천덕꾸러기 개를 어디에 쓸려고 그리 온갖 정성을 쏟는 거냐고들 했단다. 개가 어지간히도 사납고 게걸스러워 시도 때도 없이 짖어대는 통에 이웃 원성이 더 심했던 거야. 그래서 더욱 정이 든 걸 거야. 고운 정 미운 정이 다 들었는데....."
그럼 어디 도망이라도 친 거냐고 묻고 싶었지만 이야기하는 과정에서 선생님의 표정이 굳어져 차마 입을 열 수가 없었다. 선생님은 날이 기울 무렵에야 들어왔다. 점심으로 차려놓은 밥은 꼿꼿하게 식어 있을 터였다. 내게 한 약속은 아니었지만 다소 미안한 표정을 지으며 마루에 걸터앉았다.
그러면 그 여인이 바로 무당이었을까. 할머니와 서로 손을 잡고 있다가 어디로 가버리더니 혹 바다에 나간 걸까? 할머니는 비가 내리는 날에는 마루에 앉아 있는 것이 일이다. 눈길은 뜨락에 있지만 마음의 눈은 먼 바다를 향하고 있었다. '구질 놈의 비가 때를 거르지를 않는구나. 무정한 비. 여러 목숨도 앗아갔지. 누굴 이제 데려 갈 텐가. 이 늙은 것이나 데려가소.' 처음엔 원망을 하다가 끝에 가서는 초연한 자세로 경건해지기까지 하는 할머니의 넋두리는 언제 들어도 생경했다. 시신은커녕 넋마저 찾을 수가 없어 뒷전에 물러나 있지만 호시탐탐 재기를 노리는 운동선수처럼 기회만 되면 언제라도 자식을 찾겠다는 일념이었다.
'넋을 찾는다? 넋은 무엇일까. 어떻게 생겼을까. 죽으면 그걸로 끝이 아닌가?' 생각이 사뭇 헛돈다. 할머니는 두 아들을 모두 바다에서 잃었다. 큰아버지는 총각 때 연평 앞 바다에서 갈치 잡이 배를 탔다가 풍랑을 만나 다신 돌아 올 수 없이 되었고, 아버지는 남해안 일대를 이동하며 멸치 떼를 쫓아다니는 어선을 타다 역시 모진 해풍을 만나 돌아오지 못했다. 할머니의 말로는 큰아버지의 넋은 구제가 되었다는 것이었다. 시신은 아예 찾을 엄두도 못 내고 무당을 데리고 바다를 떠돌며 간신히 찾은 것은 새끼손가락크기의 머리카락으로 현신한 넋이었다고 했다. 그 세월이 자그만치 10년이라고 했다.
"가신 일은 잘 되었는감요?" "잘 될 일이 아니잖아요. 인력으로 되는 문제도 아니겠고." "사모님이 큰 일이구먼유. 그렇게 차도가 없으면 어쩌요 글쎄. 한사람 잘못으로 생사람꺼정 눕게 되어 선생님 심사가 말이 아닐 거구먼 그류." "꼭 그 애 때문만도 아니지요. 원래 그 사람 허약해서 고생을 하는 사람입니다." "예부터 그랬지유. 사람 구제는 말어야 헌다구. 남의 자식 데려다 세 빠지게 길러봐야 나은 정은 따로 있는 벱이니깨." "이치야 그렇지만 자식이라고 기를 때 부모가 어떻게 그런 것까지 따지겠어요. 무조건적으로 정이고 뭐고 안 아끼고 퍼 주다가 이렇듯 낭패인 걸요. 그게 자식 키우는 부모들 심정 아니겠어요. 그건 그렇고 대천에서 온 무당은 어떻던가요?" "대천네하구야 서로 잘 아는 처지이구... 그나저나 날씨가 좋아야 쓸텐디. 고대도 밖으로 나가야 헌다는디." "그렇게나 멀리 나가세요? 어차피 인근에서 돌아가신 게 아니라면 가까운데서 하든 고대도 밖이든 그게 무슨 상관이 있나요?" "예전에 쟤 큰 애비 찾을 적엔 삽시도 근방에서 찾을 수가 있었지요. 장고도허구 삽시도사이 지나는 물이 꼭 연평 바다를 떠다놓은 상이래요. 넋이 뜨는 것두 무당허고 잘 맞어야 쓰드끼 물살하구도 잘 맞어야 허는 개비요. 죽을 때 상황이면 쉽다네유. 삽시근방허구 고대근방은 물이 다르구 고대도 쪽은 남해에서 올러 닥치는 물살이 웬 종일 머무르는 디랍니다."
장마가 끝났지만 비는 간간이 내렸다. 예년보다 일찍 왔고 그 만큼 일찍 끝났다고는 하지만 오히려 장마철보다도 빗줄기는 더 거세다. 선창에 들어 온 배들은 벌써 며칠 째 요지부동이었다. 갯냄새가 짙게 묻어 나오며 바다는 잿빛으로 변해갔다. 선창을 사이에 두고 남북으로 길게 뻗은 해변은 파도가 심란하리 만치 소란스럽다. 썰물이 나면 갯벌과 듬성듬성 자리잡은 바윗돌에는 온갖 게들이 나와 있었다. 모래밭에 숨어살던 게들이 제 철을 만난 것이다. 모든 게들은 파도가 흔들어 놓은 크고 작은 돌들 사이사이를 바삐 오가며 무엇이라도 잡히는 것은 모조리 물고 어디론지 사라졌다.
더러는 거품을 뿜으며 여유도 부린다. 그런 게들은 대게 모래밭에 집을 지었다가 파도에 씻겨 집을 잃고 헤매는 축들이었다. 어서 사태를 수습하고 새롭게 유할 곳을 물색해야하겠지만 선뜻 나서지지가 않는 모양이다. 모처럼 나선 바다는 침잠하는 정적이 아니라 하등생물들의 분주한 세상 같았다. 허물을 벗느라 딱지를 잃은 게들이 바윗돌 사이에 고인 물에 잠겨 있다. 손가락으로 꾹 찌르면 몸 전체를 움직여 민활하게 도망치는 것이 아니라 다리만 까닥거린다. 근력을 소진하여 몸을 조절할 능력을 상실한 것이다. 마치 악몽에 시달리면서도 깨어나지 못해 헛손질하는 사람 같다. 악몽. 새롭게 깨어나기 위한 과정이라면 게의 허물을 벗듯 그 무력한 시절을 감내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악몽이후의 현실이 여전히 어두운 거라면 차라리 그 세계를 벗어나지 않음만 못할지도 모른다.
새벽녘에 든 잠이 곧 악몽이었다. 집밖을 벗어나지 않고 그다지 하는 일도 없으니 밤이 되면 잠이 오질 않았다. 그러다가 꼭두새벽에나 잠이 오거나 뜬눈으로 하얗게 새다시피 하는 게 요즈음 나의 일상이었다. 어제만 해도 그랬다. 초저녁에 잠깐 눈을 붙이고는 곧 깨어나 밤새껏 뒤치락거렸던 것이다. 서울에 간 선생님이 이제나저제나 올까봐 마루에 나와 앉아 TV소리를 크게 하고 있는 할머니 탓도 있었다. 선생님은 벌써 여러 날 집을 비우고 연락도 없었다. 학교에서 오는 연락도 없었다. 선생님 말대로 잃어버린 개를 찾아 나섰는지, 차도가 별로 없다는 부인의 간병 때문인지 알 길이 없었다. 다만 할머니는 무슨 일이 일어나도 단단히 일어난 게라며 걱정이 크다. 선생님은 정말 개를 기르다가 잃은 것일까? 애지중지 기르던 개가 어쩌면 어미 개를 찾아 떠났는지도 모른다. 냇가에 찾아오는 연어도 모천을 찾아 회귀하는 것이라고 언젠가 선생님은 말했다. 미물들도 자라서 철이 들면 모정이란 걸 생각하게 되는가. 하물며 사람이야...
내게 엄마는. 꼭 돌아오겠다던 엄마에 대한 그리움은 빛이 바래 가는 오동나무 잎사귀. 누렇게 변색이 되고 벌레에 물어뜯긴 고엽으로 한낱 실바람에도 떨어질 만큼 여윈 채 안간힘을 쓰며 매달려 있는 초라한 모습. 변색이 되고 벌레에 뜯긴 잎은 순식간에 떨어지는 것 같다. 하지만 ‘순식간’이라는 것은 세상에 없다. 오동나무가 그렇고 동백이 그러하듯 잎이 피어 자라서 녹음을 이루다가 저렇듯 고엽이 되기까지는 시간의 타래가 길게 늘여져 있게 되는 것이다. 다만 순식간이라고 여기게 되는 것은 무관심이라는 슬픈 단어가 늘 곁에 따라다니며 사실을 은폐하기 때문이다. 이젠 기다림이라는 말은 호사스러움마저 감돈다. 엄마는 지금도 떠날 때처럼 나를 사랑하며 데려갈 날을 고대하고 있을까.
나는 엄마처럼 하얀 신발을 신고 싶다고 떼를 썼다. 하지만 엄마는 하얀 신발 대신 자주색 운동화를 사주었다. 애들은 때가 잘 타는 하얀색보다는 자주색이 더 귀엽고 예뻐 보인단다. 정연이는 다리가 고와서 자주색이 잘 어울려. 분홍색도 있잖아. 분홍색도 잘 어울리지만 자주색이 곱고도 단정하단다. 그러나 자주색 신발을 처음 신고 학교에 가던 날, 할머니는 내내 눈물을 지었다. 신발을 신지 말라고 하고 싶은 듯, 입이 씰룩거렸지만 눈물만 훔치고 있었다. 나는 영문도 모르고 따라 울었다. 울밑 오동나무에 기대어 기다려도 오지 않는 엄마를 그만 기다리라고 했다. 엄마 기다리느라 거기에 앉아 있는 걸 보면 아예 나무를 베어 버리겠다고 했다.
나는 가끔 할머니가 큰톱을 들고 나무를 베어버리는 꿈을 꾸곤 했다. 할머니가 다락에서 꺼내오는 톱은 처음에는 작은 실톱이지만 나무를 자르다 보면 톱은 점점 커져만 갔다. 신이 들린 듯 톱질을 하는 할머니의 모습은 배 위에서 넋을 부르는 무당과 다르지 않았다. 톱이 어느새 북채가 되고 오동나무는 거대한 북이 된다. 할머니가 혼신을 다하여 북을 두들기지만 흘러나오는 소리는 북소리가 아니었다. 오동나무가 안마당으로 쓰러지는 굉음이 아니었다. 누군가가 지르는 비명이었고 그 비명의 주인공은 엄마였던 것이다. 나는 저만큼 떨어져 바라보다가 할머니 앞에 서 있는 엄마를 막아선다.
그 순간 내리치는 몽둥이가 내 정수리를 향할 때 나는 비명을 지르며 쓰러졌고 엄마가 함께 쓰러졌다. 가끔 그런 악몽이 나를 혼란스럽게 했다. 여명이 밝아오는 창을 어렴풋이 바라보며 나는 제니가 있는 곳을 찾아갔다. 간판 아뜨리에는 현란하게 반짝이고 있지만 셔터는 내려져 있었다. 뒷문 쪽으로 들어가 문을 두드렸다. 제니가 술 취한 모습으로 고개를 내밀었다. 손님들이 마시다 만 양주를 혼자 마시고 있던 중이었다. 제니가 간판스위치를 내렸다. 후문 쪽에서 노크 소리가 났다. 다소 거친 소리였다. 탁자에 널브러진 술병과 남긴 안주를 치우는데, "됐어. 내가 나가 볼 테니 넌 잠자리나 좀 봐."
들어 온 사람은 지난번에 본 곱슬머리 사내였다. 그는 흰색 티셔츠에 검정 색 바지를 입고 있었다. 다부진 가슴팍이 실내의 흐린 조명에 더욱 두드러져 보였다. 그는 내 옆을 스쳐 지나며 귓불 가까이 대고 음흉한 말을 던졌다. 술 냄새가 났다. 제니와 그가 안으로 들어갔고 나는 홀 안에 있는 소파에 비스듬히 누웠다. 받아 마신 양주 기운에 얼굴이 달아올랐다. 가슴이 답답해 왔다. 짧은치마에 자꾸 손이 갔다. 그러나 가만히 보니 그 손은 내 손이 아니었고 가슴이 죄는 듯한 답답 증세가 목을 타고 삽시간에 전해졌다. 소리를 지르려 했지만 목이 막혔다. 그는 더욱 나를 조이며 급기야 입을 틀어막았다. 아아- 온 몸에 땀이 범벅이 되었다. 나는 깨어난 자세 그대로 누워 귓불에 손을 가져갔다. 아직도 그의 구역질나는 입김이 배어 있는 것만 같았다. 긴 한숨을 연신 몰아 쉬었다. 밤새 TV가 켜져 있었던지 치익 소리가 들려왔다. 머리가 아팠고 구역질이 심해졌다.
"비 맞고 어딜 갔다 오는 게여?" 마루에 내 놓은 제기를 닦아 놓고 제물들과 양초며 삼베 조각들을 꺼내 놓고 지성스럽게 만지다가, 할머니는 자리에서 일어섰다. 허리를 두들기며 선창 쪽을 바라보았다. 날씨를 살피는 것이리라. "갯가에 좀 나갔었어요." "속은 좀 괜찮은 겨? 왜 아침을 그렇게 걸러. 사람이 아침 거르는 게 얼마나 해로운지 알기나 허여!" "선생님한테서 소식은 계속 없으세요?" "선창서 교감선생님을 뵈었지. 그런디 이 선생님은 어쩌면 이 길루 안 내려 오실지도 모른다더구나. 요새 뭐라더라, 명태? 뭐 명태라드냐? 그런 게 생겨서 선생님두 아마 그걸 헌다는 모얭여." "명퇴라구요? 선생님이 무슨!"
강한 부정의 어조였다. 나도 모르게 큰 소리가 나왔다. 갑자기 허물벗는 게처럼 힘이 없다. 현기증일까. 마루에 앉으려다 방으로 들어왔다. 할머니는 등뒤에 대고 주억거린다. 때가 되면 만났다가도 헤어지고 다시 만난다고. 자리에 누우려고 하다가 일어서서 안방으로 건너갔다. 전화기를 들었다. 신호음이 갔고 아주 낯이 익은 목소리가 실려왔다. 어딘지 잘못을 저지르고 불려 온 기분이다.
"저......, 정연인데요." "박정연이니?" "네, 선생님. 죄송해요." 무어 그리 죄스러워야 할 것도 없는데 침이 마르고 다리가 후들거린다. "이열 선생님에게서 너 왔단 소린 들었단다. 그런데 무슨 일로?" "다름이 아니라, 저 오늘 저녁에 선생님 좀 찾아뵙고 싶어서요." "글쎄. 음... 무슨 일인지 모르겠지만 그러자."
만날 시간과 장소를 전해 듣고 나는 아직도 떨리는 손을 비비며 자리에 앉았다. 누구 몰래 도둑 전화라도 한 것처럼 두근거렸고 목이 탔다. 금테 안경의 김인숙 선생님. 회초리만큼이나 따갑게 가슴을 파고드는 어투. 화가 나면 얼굴이 창백해지면서 눈에 힘이 들어가 있었다. 눈자위가 뻘개지면서 목소리는 자꾸 높아만 갔다. 그 서슬에 여학생은 물론이려니와 남학생들도 기가 죽기 마련이었다. 지나친 원칙론의 신봉자. 교칙을 어겼을 때 받아야 하는 정신적 고통. 차라리 매로써 단죄가 되는 거라면...했었다. 그래서 처음 3학년이 되어서 그 선생님을 담임으로 만나자 급우들의 걱정은 태산이었다. 특히 원만한 학교생활을 못하는 몇몇 학생들에 대한 급우들의 눈초리는 예사롭지 않았다. 아마 정연이와 누구누구 정도는 졸업을 못하게 될지도 모른다는 우려의 분위기가 팽배했다. 그러나 3월 한 달은 그런 우려가 기우에 지나지 않는 것 같다고들 여겼다. 무서운 선생님을 만나 적어도 외견상으로는 잘 되어가고 있다고 믿기 시작했다.
하지만 우려가 현실로 드러났고 그 주인공은 바로 나였다. 나는 배를 타고 나가 며칠 씩 돌아다니다 들어왔다. 어느 날 문득 일어나 아주 우발적으로 나는 학교 길에서 선창 쪽으로 방향을 돌린다. 마음에서 일어나는 다소의 갈등은 쉽게 사위고 나는 엄마를 닮은 날씬한 두 다리를 재게 움직여 선창에 이르는 우회로인 해변 길을 택했다. 학교에 가다가 왜 돌아오느냐는 사람들의 상투적인 물음이 싫기도 했지만 행여 선생님의 눈에 띄지나 않을까 하는 염려 탓이었다. 일단 배에 오르면 느낄 수 있는 묘한 자유. 그것은 세상에서 나만이 가지는 특유의 느낌이었고 여섯 번째의 감각쯤으로 여겼다. 3학년 때라고 예외일 수는 없는 나의 감각이었던 것이다. 그래서 나는 배에 올랐고 나흘 동안을 시내 곳곳을 돌아다니며 향유할 수 있는 감각을 즐겼다. 그 감각 속엔 늘 살아 있는 엄마의 초상이 깃들어 있었다.
"...난 오늘 여기 와서 처음으로 배신감 같은 걸 느꼈어요. 내가 학기초에 한달 내내 입이 마르도록 한 얘기가 뭐였죠? 온갖 짓을 다 하더라도, 공부와 담을 쌓았어도 뭐랬어요. 결석을 하지말자였지요? 한 사람이 잘못하면 단체란 쉽게 와해가 될 수도 있는 거예요. 우리 반 다수가 성실하고 착해요. 하지만 전부가 그렇진 않아요. 우리 반을 이토록 혼란스럽게 한 장본인, 앞으로 나오도록 하세요!"
교실은 물을 끼얹은 듯 조용했다. 교단 앞까지 불려 나온 -- 아니 자리가 없어 앉지 못하고 서 있던 -- 나는 메고 있던 가방을 교탁으로 가져갔다. 그녀는 가방을 들고 창가로 가더니 아래 뜰에 내던졌다. "여러분들 들으세요. 내가 단독자는 아니예요. 여러분들은 굴욕을 연상하겠지만 절대 학생의 자존심을 상하게 하려고, 그래서 앞으로 다시는 우리 학급에서 결석이 없게 하자고 하는 얄팍한 계산에서 나온 소치가 아닌 거예요..."
교무실 앞 복도에서 무릎을 꿇고 앉아 있는데 이열 선생님이 불러 세웠다. 눈물이 났다. 선생님은 아주 송구스런 표정으로 담임 선생님에게 다가가서 애원을 하고 있었다.
"선생님에게 월권으로 생각되겠지만 양해를 하십시오. 어지간하면 애가 상처를 받지 않도록 선처해 주세요. 김 선생 이러는 뜻은 다 압니다."
그녀는 대답대신 의자를 당겨 자리에 앉더니 아래 서랍을 열었다. 역시 커피 한 봉지를 꺼내어 컵에 담았다. 선생님도 자리에 앉아 나를 물끄러미 바라본다. 분주히 손을 움직이는 것은 담배를 찾는 모양이었다. 차마 눈길을 마주 할 수가 없어 나는 고개를 돌렸다. 광장에 나와 서 있는 느낌이었다.
만인들이 지나고 머무르는 곳을 거쳐가고 있다는 느낌. 그것은 내가 선창을 지날 때도 예외가 아니었지만 특히 알만한 사람들이 빈번히 드나드는 동네 주위의 다방이나 술집을 들어가는 때도 마찬가지였다. 그런 곳을 혼자의 의지로 들어가는 것은 아니지만 가끔 심부름으로 들어 갈 때면 왠지 금지된 지역을 출입하고 있다는 강한 거부감을 지울 수가 없었다. 그래서 가급적 집으로 직접 찾아가고 싶었지만 담임 선생님은 밖에서 만나자고 했다. 나는 그녀가 정한 약속장소인 해변다방으로 들어가고 있었다. 배에서 내려 선창을 조금 지나면 맨 먼저 닿는 곳이 이곳 해변다방이었다.
안으로 들어서니 다방은 생각보다 한산했다. 탁자를 두 줄로 놓기에는 다소 좁아 한 줄로 길게 배열하고 한 쪽 공간은 넓게 떼어놓아 출입이 비교적 용이하게 좌석을 배치해 놓고 있었다. 구석진 자리에서 어떤 남자 손님과 노닥거리고 있던 주인 아주머니가 먼저 아는 체를 했다. 나는 목례만 하고 해변과 맞닿아 있는 쪽으로 자리를 잡았다. 벽에 붙은 커다란 괘종시계가 아직 약속시간보다 5분 정도 덜 가고 있었다.
이윽고 다방 문이 삐끔히 열리고, "많이 기다렸니?" 나는 피식 웃음을 보였다. "가까이 살면서도 여긴 처음 온다. " 그녀는 자리에 앉으며 안경 너머로 다방 안을 여기저기 훔쳐보고 있었다. 주문을 받으러 오기도 전에 커피를 달라고 해놓고 내게 무얼 마실 거냐고 묻는다.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난 하루에도 여러 잔 마셔. 병인가 봐. 남자들 줄담배 피우는 폭은 될 거야. 이열 선생님처럼 말야. 선생님 담배 많이 피우시지?" "집에서는 그리 많이 피우진 않는 편이에요." "그래? 참 놀라운 사실이다 얘. 학교에선 그냥 줄담배야." "사실은 오늘 선생님을 뵙고 싶었던 것은 이열 선생님 때문이었어요." "무슨 일인데 그러니? 내가 오히려 묻고 싶다." "이열 선생님 이제 안 오시나요? 명예 퇴직을 하신다던데......" "누구한테 들었니?" "할머니가 그러셨지요. 교감 선생님에게서 들었다고." "그럼 그 말이 맞겠구나. 나두 정확한 건 몰라. 두 분 정도 이번 학기에 그만 두신다는 말은 들었지만 말야. 연세로 봐선 아직이지만 글쎄 내가 교무부장님이래두 그만 두려고 했을 거야. 너도 아마 대강은 실정을 알고 있겠지만." "............" "그 선생님, 굉장히 외롭고 힘든 분야. 다들 그래. 그 분 인생을 공초처럼 살고 있다구." "무슨 말씀이신지...?" "가정적으로 그렇지 뭐. 그 애 말야. 어려서 데려다 키웠다는 애. 그 녀석이 지난 해 겨울 저를 버렸던 생모가 나타나 따라 가버렸대잖니. 그래서 사모님이 병이 더 깊어진 거야. 생각해봐라. 젖먹이를 데려다가 20년 가까운 세월을 길러왔고 정이 그 만큼 깊이 들었을 거 아니냐. 그런 아이가 생모라고 따라 가버렸으니. 사모님 병이 중병인데다 마땅히 간병을 할 만한 사람도 없어 무척 고통을 겪는가 보더라."
그랬었구나. 밤하늘은 별들이 무심하게 많이 나와 있었다. 담임 선생님이 먼저 자리를 뜨고도 나는 한참 후에야 다방을 나섰다. 예감은 했지만 그녀가 던진 말들의 무게는 내가 주체하기가 힘이 들었다. 어지럼증이나 멀미 아니면 현기증 따위가 생기면 자리에 가만히 앉아 있어야 한다. 오랜만에 보는 초승달이 시리게 떠 있다. 바다로부터 서너 뼘 남짓 솟아올라 있을까. 온 몸을 흔들어 털어질 수 있는 거라면 좋을 말들이었다. 나는 몸서리를 치듯 몸을 떨었다. 싸아한 냉기가 얼굴을 타고 전신에 흐르는 것 같다. 그러나 발걸음마다 그녀가 한 말들은 다져진 모래 위를 걸을 때처럼 뚜렷한 발자국으로 남는 느낌이었다.
"그건 그렇고 말이다. 넌 내가 어떻게든 하려고 했어. 또 교무부장님도 노력을 많이 하셨지. 그러나 그간의 행적이 많이 걸렸단다. 누적된 징계기록이 가장 문제였어. 교무부장님의 만류 때문에 많은 망설임 끝에 자퇴예고통지서를 보냈지. 그런데 네 자신의 뚜렷한 학업에의 의욕이 없고, 무엇보다도 본인이 없으니 가부간 의사타진을 할 수가 없었던 거야. 교무부장님이 나서서 해결하려는 과정에서 학생 처벌상의 형평성 문제 때문에 다른 선생님들과 충돌도 숱하게 겪었어. 선처해서 눈감아 줄 사안이 아닌데다가 특정 학생 봐주기라는 시비에 말려들어 그 분이 곤욕을 치러야 했지......"
새벽같이 일어난 할머니는 뜰 앞에서 연신 혼잣말을 늘어놓았다. 벌써 며칠 째 동백나무를 손질하고 있었다. 거목처럼 버티고 서 있는 오동나무 가지를 여러 개씩 잘라내었고 구부러진 동백 가지를 버팀목까지 세워가며 묶어 세워준다. 진작 손을 댔더라면 이 지경으로 놔두는 일은 없었을 거라며 아쉬워하기도 한다. 가지가 무성하고 나름대로 새끼를 쳐 울타리 한쪽을 점유한 동백은 꽃도 피고 열매도 맺어 나무로서의 역할을 다 하건만 오동나무의 그늘이 너무 큰 탓에 그 존재마저 미미한 실정이었다.
"벌레가 세상에 이렇게 많다냐. 왠갖 벌레란 벌레는 동백이 다 거느리구 사는가 보구나. 그렇게 벌레 봉양을 허니 이 지경이 되었어두 연명을 했지......." 북을 주는 할머니 손이 나무 밑에 쏟아진 벌레들을 훔쳐내느라 여념이 없다. 고스라진 잎이며 썩지 않은 작년 가을 낙엽들이 엉겨 힘있게 당기는 호미 끝에 걸리는 흙은 보잘 것이 없다. 할머니는 힘에 겨워하면서도 일을 멈추지 않는다. "저 가지들을 어떻게 처단하시려고 손을 대세요." "가지들이야 뒤엉켜 손을 쓸 수가 없것지만 봐라 밑동은 이렇게두 허실허잖니? 오동나무가지를 제때 쳐주었으야 이것들이 온전히 자랄 수가 있는 것인디 말이다. " "할머닌 항상 오동나무만 신주단지 모시듯 하셨잖아요." "갯바람에 견뎌난다는 게 쉽지가 않은 벱여. 동백이야 근본이 갯바람을 쐬어야 허지만 오동이야 어디 그런감." 말끝에 한숨을 몰아 쉬며 잠시 일어나 허리를 두드린다. 눈앞이 아득하다며 흙이 묻은 손이 연신 눈으로 갔다가 내려온다. "얘, 섬들 좀 봐라. 왜 이리 아득허다냐. 고대도, 장고도, 삽시도, 저기 고대도 뒤편 외연도......, 원산도만 뵌다. 이리도 아득허냐. 이래가지구 무얼헌다냐. 세상에......말이다." "원산도야 저 건너인데 거기만 보인다고요?" "그렇구나. 앞이 다 캄캄허니 무얼헌다냐."
할머니는 걷어올린 소매를 타고 기어올라가는 벌레를 털어 낼 생각도 않고 허리만 두드린다. 벌레가 여러 마리 할머니의 옷에 붙어 있었다. 나는 흠칫 놀라 막대기를 집어들고 할머니의 등뒤에 있는 벌레부터 털어 내었다. 자를 재듯 기어다닌다 해서 지어졌을 이름의 자벌레들이 희뿌옇게 빛 바랜 할머니의 적삼에 거뭇거뭇 매달려 잘 떨어지지 않았다.
"아침이나 먹구 약을 좀 뿌려야 헐까부다. 자벌레가 아주 세상을 만났구나." "대천네 아줌마는 몇 시에 오시기로 했어요?" "오후 배로나 올 게다. 마중 나가야 쓸 게야. 선무당 같으면사 짐이라구 해봐야 뭐 그렇다지만 대천네는 벌써 짐이 한 배란다." "그럼 많은 짐을 어디에 두실 건가요?" "나룻배가 있잖니. 원산호 말이다. 어채피 그 배에 싣구 가야 헐 테니 거기다가 실어 놓는 게 눈 밝은 일이지." 나는 오동나무 쪽으로 다가갔다. 한동안 떨어지던 잎들이 단단히 매달려 있다. 나무에 기대어 본다. 오랜만의 일이다. 거기에 서면 늘 기다림이라는 단어가 가슴에 남았다. 그 단어가 퇴색이 되면 서서히 몇몇 얼굴이 떠오른다. 하릴없이 기다림이라는 모진 글자만 가슴 속 깊이 새겨 넣어준 사람들. 그리고 바다가 한눈에 들어왔고 그 너른 바다 위에는 섬들이 표류하듯 떠 있었다. 군데군데 떠나가는 배처럼 섬들은 무리를 짓는 듯, 더러 혼자이듯. 어떤 때는 섬들이 일제히 육지를 향하여 달려가는 것이었다. 손에 횃불을 들고 우렁찬 함성을 지르며 섬들은 거대한 땅덩어리에 의연하게 돌진한다. 육지에서 떨어져 나와 혼자 떠 있지만 자신들은 결코 혼자가 아님을 그래서 육지의 일부로서의 섬이 아니고 홀연히 작은 육지임을 강변하면서.
...저 떠있는 것은 무엇도 섬은 아니다. 대륙의 일부일 뿐. 바다가 잘라놓은 덩어리의 일부. 그리고 아무도 혼자는 아니다. 잠시 서로에게서 떨어져 있을 뿐. 물론 내가 네가 아니듯 또 네가 내가 아니듯 각자의 세계를 살고는 있지만 결코 따로 일수는 없는 것. 바다가 대륙에서 섬을 떼어놓고 하나로 연결하는 매개가 되어주는 모순처럼 각자의 개체로 살지만 인연이라는 매개로 서로는 얽혀 있는 것......
선생님은 내가 살고 있는 작은 방으로 들어왔고 그날 나는 차라리 도망쳐 버리고픈 강한 충동을 느꼈다. 전날 마신 술기운이 속을 뒤집어 놓아 냉큼 일어설 수가 없었다. 어지럽고 머리가 깨질 것처럼 아팠다. 술은 마시면서 느는 거라고 했지만 늘기는커녕 마실 때마다 고통은 더욱 커져만 가는 것이었다.
"여기까지 오기가 우리 집에서 몇 정거장밖엔 안 떨어져 있는데 섬에 내려가기 보다 더 멀고 힘이 들었다. 찾고 보면 가까운 것을 찾기 전엔 항상 멀고 무심하게만 지나치게 되는가 보다. 정말 네가 여기 있을 줄은 몰랐단다." 선생님은 한낮의 열기에 코끝이 뻘겋게 익어 있었다. 어지간히도 헤매 다닌 모양이었다. 다소 주체하기가 힘이든 탓도 있었지만 일이 끝나고 들어와 그대로 누웠기 때문에 옷매무시가 말이 아니어서 나는 몹시 당혹스러울 수밖에 없었다. 나는 짧은치마 자락을 자꾸 가렸고 선생님은 고개를 돌리며 말을 이었다.
"가자. 집으로 돌아가자." "이대론 갈 수가 없어요." 다소 짜증이 났다. 나가버리고 싶지만 몸이 천근이다. "그럼 어떻게 가야 하는 거냐, 이대로 갈 수가 없다면?" "몰라요. 어쨌거나 내려가지 않을 거예요." 기대에 어긋났다는 표정으로 선생님은 담배를 피워 물고는, "나쁜 자식, 너 이제 보니 정말 형편이 없는 녀석이로구나!" "이제 아셨어요? 저 나쁜 애라는 거 다 아는 사실이잖아요." "정연아, 내 말은 있잖니. "
선생님이 깊이 빨아들인 담배연기가 또아리를 틀며 허공에 번졌다. 깊은 숨을 몰아 쉬면서 연거푸 담배를 피운다. "깨끗이 제적처리 했다구요?" 그래요, 저 같은 기집애는 도움이 안 되겠죠. 잘 들 하셨어요. 시원하시겠네요." "이 녀석이 보자보자 하니까!" "왜요, 제가 이러니까 속상하세요? 그럼 대접을 받으려고 절 찾아오신 건가요? 착각하지 마세요." 갑자기 내리치는 손바닥이 왼쪽 뺨을 후려쳤다. "왜 때려요! 선생님이 뭔데 때려요!" 독오른 뱀처럼 바락바락 악을 썼다. 순식간에 당한 일이고 몹시 화가 나는 것이었다. 선생님이 노려보았다. "나쁜 자식, 그래 좋겠구나. 제적을 당해도 싼 놈야, 너 같은 자식은 애당초 잘랐어야 했어. 진작 잘랐어야 했다구!"
그리고는 후다닥 문을 열고 나가면서 허어 헛기침을 했다. 나는 쓰러진 채 울기 시작했다. 울고 또 울고 눈물이 마르도록 울고 일어나 앉았다. 지끈거리던 머리가 터질 듯 아팠다. 속이 메스껍고 구역질이 났다. 그러나 헛구역질일 뿐이었다. 어떻게 알고 찾아 온 걸까. 아무도 모르는 곳에 숨었다고 생각했는데. 그래서 누구도 찾지 못할 것이고 그러면 온갖 생각들은 쉽게 지우며 살아갈 수 있을 거라 했는데. 엄마도 학교도 선생님도 그리고 어쩌면 할머니까지도......
생각이 여기에 미치자 가슴이 미어질 듯 쓰려왔다. 나는 자리에 죽은 듯 누웠다. 주마등처럼 스쳐 가는 많은 얼굴들 위에 자꾸 할머니의 얼굴이 겹쳐 보이는 것이었다. 언제나 표정이 없는 얼굴. 좋아도 싫어도 드러남이 없었다. 떠나오면서도 나는 학교에 가는 것처럼 묵묵히 다녀오라는 식의 할머니의 표정을 뒤로했었다. 할머니는 내가 학교에 가는 것을 빤히 바라보기만 하는 것이 잘 다녀오라는 말이었다. 나는 할머니의 그런 표정을 밟고 돌아서서 곧장 선창으로 갔던 것이다. 학교와는 다른 방향인데 그 반대 방향으로 가는데 대한 미련도 없다고 여겼다. 아니 그러고 싶었다. 언젠가 그만 두게 되리라는 생각이 늘 뇌리에 따라 다녔다. 다만 조금 앞 당겨졌을 뿐, 별반 아쉬움도 서러움도 없었다. 학교를 위해서도 선생님들과 우리 학급을 위해서도 좋을 거란 생각이 막연하나마 저변에 남아 있었다.
그런데 난 왜 힘들여 찾아온 선생님에게 그런 미련 섞인 말을 나도 모르게 퍼부었던가. 무슨 미련이 남았기에. 선생님에게 얻어맞은 뺨이 후끈거리며 쓰라려왔다. 일어서서 홀 안으로 나왔다. 헛구역질이 나면서도 목이 말랐다. 홀 안은 사뭇 어질러져 있다. 간밤에 들어온 손님들의 행태가 다시 되살아나는 것 같다. 몇 개 안 되는 탁자와 의자가 아무렇게나 배치되어 있었다. 군데군데 엎질러진 술과 안주 조각들, 질펀한 술 주정, 손님들의 더러운 객담들이 주인이 불러서 온 아가씨들의 욕지거리와 한데 섞여 바닥에 나뒹군다. 술병이 어지럽게 쓰러져 있다. 현기증이 났다. 나는 거의 기어서 수도꼭지가 있는 주방으로 갔다. 수돗물을 끝까지 틀어 놓고 물을 흠씬 마시며 머리를 담갔다. 쏴아 하는 소리가 들리며 물이 쏟아졌고 거의 질식할 정도로 나의 머리는 꼭지에서 떨어질 줄을 몰랐다. 어서 술이 깨어야 정리를 하고 손님을 받을 수가 있을 일이었다. '주인이 오겠지, 곧 오겠지. 사나운 과부의 눈동자가 자꾸 눈에 걸린다. 재워주고 먹여 주는 것도 어딘데 이 모양이냐고 힐책을 하겠지.'
나는 젖은 머리를 닦아내지도 않은 채 방으로 들어가다가 후문 쪽을 바라보았다. 항상 잠그지 않고 열어 놓는 후문을 통하여 선생님이 들어왔던 모양이다. '선생님은 저 문으로 갔겠지. 망설이다가 기대에 차서 들어 왔을 텐데 나갈 때는 실망해서 화를 내며 나갔으리라.' "선생님." 내 입에서 나도 모르게 뱉어진 말이었다. 갑자기 아득한 느낌이 전신을 휩쓸며 지나갔다. 나 홀로 버려져 있다는 아찔한 느낌. 양주 두어 잔을 마셨을 때 느낄 수 있는 아득함. 나는 파도가 몰아치는 바다 위에 혼자 떠 있는 조각배처럼 무위하게 세상에 팽개쳐져 있는 거라고 생각이 되었다. 싫어졌다. 생각이 싫어졌고 혼자라는 것이 싫었다. 그러나 나는 수건을 집어들고 물기를 닦아내며 생각했다. 얼른 선생님을 찾아야할 것 같았다. "무슨 생각을 그리 골똘히 했샀는 게여."
가지런히 묶어 놓은 동백나무가 울타리를 새 단장한 것처럼이나 단정하다. 동백은 대문은 없지만 언제든 대문을 달기만 하면 되도록 해 놓은 문간에서부터 오동나무가 있는 곳까지 훌륭한 울타리로 자리를 하게 된 것이다. 대체 이번에 무당은 할머니 더러 무슨 말을 했기에 저토록 동백나무에 매달려 있었던 것일까. 애지중지하던 오동나무는 이제 뒷전에 있다.
"선생님은 정말 안 오시고 말까요?" 그간 무던히도 기다리며 망설이다 던져진 말이지만 할머니는 무표정하게 받아들인다. "어렵겠지. 그러나 저러나 무슨 기별이라두 있으려나 기다리는 걸, 벌써 며칠 째더냐. 거반 보름은 넉히 됐지야?" "예. " "그냥 막연허게 기다리지 말구 연락을 좀 해봐야 쓰겠구나." 할머니가 아침상을 치우고 전화를 거는 동안 나는 자꾸 침을 삼켰다. 조바심이 나고 불안해졌다. "그렇구먼요. 그럼 병원으루 연락을 해야 통화를 하겠구먼요." 나는 할머니에게서 병원 전화번호를 돌려 받아 다이얼을 눌렀다. 내가 홀에서 뛰쳐나와 무작정 선생님에게 전화를 하던 때와 같은 기분이 들었다. "그래, 정연이구나. 어쩐 일이냐?" "선생님!......" "미안하다. 내가 미리 연락을 했어야 하는데 말이다. 사실은 애 엄마가 얼마 전 세상을 떠났단다. 할머니께 알리려다 괜한 걱정을 하실까 해서 안 했다. 학교에도 그랬구......" "그런데 왜 아직 병원에 계신 거예요?" "조금 편치가 않아서 그런데 며칠 있다가 나가게 될 게야. 미안하구나, 걱정을 끼쳐서. 정연아, 선생님이 많이 잘못했지? 네게 잔뜩 빚을 지고 온 것만 같아 하루도 마음 편한 날이 없구나. 내게서 아주 멀어질 사람들에게만 온 정신을 다 팔았던 게야. 내가 돌아가면 정연아, 얘야......"
무슨 말을 하려다가 그런 것인지 선생님은 말끝을 분명히 맺지 못한다. 울먹이는 투다. 홀가분해져서 이젠 허전하다는 선생님. 병원 신세를 지다가 결국 세상을 떠난 사람을 따라 선생님 마저 가버릴 심산일까 두려워지는 것이었다. "그러면 선생님은 누가 돌봐 주시는 거예요?" "내게 참 누님이 한 분 계시단다. 그 분이 왔다 갔다 하면서 돌봐 주시지." 전화를 끝낼 때까지 할머니는 곁에 묵묵히 앉아 있었다. 내 응답을 듣더니, 아마 병구완에 지쳐 쓰러졌을 거라며 홀연히 집을 나섰다. 할머니는 여객선이 도착하려면 아직 멀었는데도 선창에 나가 있었다. 동백나무에 뿌리겠다던 약을 마루 끝에 내어놓고도 까맣게 잊고 있었다. 선생님에게 수화기를 들기가 아마 나보다 할머니가 더 힘이 들었던 모양이다. 할머니 역시 저편에서 들려올 소리를 예감하고 있었을 터였다.
나는 배가 선창에 대었다가 저 만큼 나가고 할머니가 배에서 내린 아낙과 만나고 있는 것을 보고서야 선창을 향하여 집을 나섰다. 여객선이 왔다 간 곳에 미리 얻어 둔 나룻배가 기다리고 있었다. 그 배에서 내린 남자가 선창에 내린 짐들을 옮겨 싣는다. 짐이 정말 많았다. 오늘 울타리를 치웠으니 할머니 말대로 대천 무당이 오면 시작될 아버지의 넋을 찾는 굿판은 물때를 맞춰 먼바다에 나가 한껏 신명이 나게 벌이게 될 것이었다. 아버지의 넋이 떠 있다는 바다, 그 망망대해에서 무당의 힘찬 부름과 할머니의 간곡한 소망이 과연 아버지를 건져낼 수 있을까. 아버지는 살아서 제 발로도 못 온 길을 저 나룻배를 타고 오기나 하려나. 할머니의 눈이 온통 어두움에 시리도록 기다려 온 넋이 아닌가. 나는 일부러 선창을 피해 서울에서 오던 날 선생님과 함께 갔던 길로 들어섰다. 문득 바람결에 오동나뭇잎 단풍냄새가 실려 있고 바람결이 예리해지고 있다는 느낌이 든다.
선생님은 나를 이쪽으로 데려오면서 어쩌면 동네 사람들의 눈을 일차 피하거나 곱지 않을 시선을 완곡히 해보려는 의도였는지도 모른다. 그래서 나와 함께 바윗돌 위에 앉아 있으면서도 배에서 내린 사람들이 선창을 모두 빠져나가기만을 기다렸으리라. 나를 향하여 선생님이 물 건너 저 멀리 둥둥 떠있는 섬들을 굳이 육지의 일부라는 표현보다는 대륙의 일부라고 강변하고 싶었던 심정을 나는 되 뇌이며 고개를 들었다. 아버지의 넋이 흐르는 물살에 세월을 망각하고 표류하고 있다고 하는 고대도, 그 뒤의 섬들이 한결 가까이 눈에 들어온다. 섬은 막연히 바다라는 평면 위에 올라앉아 있는 한 점이 아니었다.
바다 밑 깊이 뿌리를 박고 섬과 섬이 연결이 되고 그 연결의 끈은 육지와 멀리 대륙과 하나로 큰 덩어리를 이루며 무한히 뻗어 있었다. 단지 그 사이사이 연결의 끈 위를 물이, 저 바다가 모든 것을 덮어 주며 넘쳐흐르고 있을 뿐이었다. 선생님의 음성이 귓전을 떠나지 않는다. 그 소리는 바람, 혹 아버지를 부르는 할머니의 외침 같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