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사'검색결과 - 전체기사 중 48,544건의 기사가 검색되었습니다.
상세검색교육부는 퇴출을 전제로 한 부적격 교원의 범위를 ①성적 조작, 성범죄, 촌지 등 금품 수수등에 의한 도덕적·윤리적 문제 교원 ②민·형사상, 행정상 중대 비리·범법 행위 교원 ③약물, 알코올 중독, 정신 장애 과도한 폐쇄 성향, 고질적 신체 질환 등으로 직무 수행이 곤란한 자를 제시했다. 이들 요건에 해당하는 교사들은 교단을 지키며 계속 교육자로서 교직에 봉사하는 것이 부적합하므로 교직을 떠나도록 조치하겠다는 것이 교육부의 방침인 것 같다. 그러나 이 대책안의 시행에 앞서 우선 몇 가지 검토가 필요하다. 위에 예시한 부적격 교원의 범위 요건이 결과 위주이며, 이러한 결과가 오직 교원에게만 책임이 있는 것으로 판정하고 대처하고자 하는데 문제가 있기 때문이다. 여기서는 부적격 교사의 범위를 명시한 세가지 요건 중 3번에만 한정시켜 논평하고자 한다. 심리학에서는 인간 행동의 원인을 개인적 특성, 환경 특성, 그리고 개인적 특성과 환경간의 상호작용 효과에 의해 결정된다고 해석한다. 이들 간에는 인과관계가 성립한다고 할 수 있다. 인과관계란 원인 없이 결과가 나타날 수 없음을 시사한다. 나는 3번 요건을 결과라고 본다. 그렇다면 이러한 결과를 초래한 근원, 즉 교직 환경 특성을 분석해볼 때 과연 교육부와 시․도 교육청은 책임이 없는가. 3번의 요건을 결과로 보고 관련 당사자를 피해자로 해석한다면 가해자는 누구인가. 10년, 20년, 30년 동안 교직에 봉직해 오면서 자의 반 타의 반 교사가 경험했던 과로, 피로, 직무 불만족, 사기 저하, 직무 스트레스와 탈진에 따른 심리적․신체적 질환과 갈등을 건실하게 해소하고 위로하고 치료하고 예방하기 위한 배려와 대책이 교육계에서 언제 시행된 적이 있었는가. 법원은 상사의 질책 때문에 발생한 정신 질환 또는 업무 스트레스로 인한 질환이나 자살을 산업재해로, 만성피로 증후군도 건강보험 급여 대상이라고 인정했다. 사업주는 직장인의 신체적 피로와 정신적 스트레스 등에 따른 건강 장해에 관한 예방조치를 의무적으로 시행해야 한다는 것이 노동부의 지침이다. 이와 같은 법원 판례와 노동부 지침에서 교육부와 시․도 교육청은 과연 자유로운가. 나는 교육계도 이와 무관하지는 않다고 본다. 제2, 제3의 부적격 교사 발생을 예방하는 데에는 교육부의 책임이 크다. 따라서 교육부는 교직에 진출할 당시에는 적격교사였으나 어떤 원인, 과정, 결과로 부적격 교사가 되었는가를 연구해 부적격 교사가 양산되는 것을 예방하고 치료하는데 노력해야 한다. 원인 진단 없이 결과만으로 재단하고 처리하는 것은 당근은 없고 채찍만으로 교원 인사관리를 하겠다는 균형감각을 상실한 해법이다. OECD는 우수한 인적 자원이 한국의 교직에 진출하고 있지만 재직하는 동안 능력을 개발할 수 있는 제도적 장치가 부족하다는 점을 지적했다. 바로 이 점이 부적격 교사 양산을 조장하는 또 다른 원인이 된다. 방학마다 실시되는 교원 연수는 전적으로 학생에 대한 학습지도 역량을 강화시키는 연수로만 진행되고 교사 자신의 정신·신체 건강 증진을 위한 연수는 빠져있다. 이제 연수 방식은 학생을 위한 연수와 교사를 위한 연수로 확대, 개편되어야 하며 동시에 교장, 교감, 장학사 등 관리직 연수 내용도 현대 감각에 맞게 실질적인 내용 위주로 확대, 개편되어야 한다. 오로지 학생만을 위한 현행 연수 체제로는 부적격 교사의 양산을 예방하거나 치료 효과를 기대할 수 없다. 초·중등 교사가 심각한 직무 스트레스나 탈진을 경험하는 것은 우리나라뿐만 아니라 일본, 영국, 독일, 프랑스, 미국의 교사들에게서 공통적으로 나타나는 세계적인 현상이다. 그러나 구미 국가에서는 NEA, ILO 등 관련 단체와 전문가들이 치료․예방 대책 수립에 적극 나서고 있다. 효과를 거둘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되기 때문이다. 그동안 교육부가 추진해 온 교원 정년 단축, 교사 평가론, 부적격 교원 대책의 기저는 ‘교육 흔들기’였다. 부적격 교사 대책안의 필요성을 어느 정도 공감하지만 당근과 채찍을 병행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땜질식 처방이 아니라 교원의 자질 개발과 복지 대책이 포함된 종합적인 접근이 필요하다.
여름방학의 끝자락이 되면 나는 5년째 1박2일로 학급 야영을 다녀오고 있다. 하지만 솔직히 두려움이 앞선다. 무엇보다 학생들의 안전사고가 걸림돌이다. 올해 학급 야영은 계획했던 전날 오후부터 비가 쏟아져 어쩔 수 없이 연기를 했다. 그때 전화기 너머 학생들의 실망감이란…. 이미 계획은 어긋난 일, 볼일이 있어 시골집으로 향했다. 비상연락망을 가동하느라 핸드폰은 충전지가 바닥난 상태였지만 제자 녀석들은 시골 전화번호를 알아내 끈질기게 나를 괴롭혔다. “선생님, 정말 안가요? 까짓것 남자답게 그냥 가요.” “안돼! 이미 거의 다 연락 끝냈어.” “저희가 다시 연락할게요.” 반기를 드는 몇몇 악동들을 간신히 달래고 12시가 넘은 한밤중, 충전한 핸드폰을 가만히 열고 메시지를 확인했다. ‘아까는 죄송해요. 정말 꼭 가고 싶었어요.’ 다시 날짜를 잡았으나 이번에도 전날 저녁부터 무심하게 비가 내렸다. 몇몇 걱정스런 문자 메시지가 날아왔지만 ‘그래도 간다’고 단호하게 답장을 했다. 그러나 이른 아침 전화벨 소리, “그런데 선생님, 밤새 물이 불어서 차가 들어올 수가 없어요.” 정말 눈앞이 캄캄했다. 서둘러 몇몇에게 취소를 통보했더니 예상대로 떼를 쓰는 전화가 빗줄기보다 강했다. 이미 가방 싸서 8시부터 학교에서 기다린다고 작은 ‘협박’까지 했다. “선생님, 보험도 들었잖아요?” “…1억씩. 그래, 간다, 가!” 교실은 32명의 환호성으로 가득했다. 비록 하늘은 잔뜩 찌푸렸어도 야외수영장에 첨벙 뛰어들며 신나하던 아이들, 피서객이 우리밖에 없어 팬티 차림에 춤추던 나의 멋쟁이들, 밤새 무슨 할 얘기들이 그리 많은지…. 집에 돌아온 내게 아내는 다 알면서도 묻는다. “올해가 마지막이지?” “알았어. 힘들어서 내년에는 안간다, 절대로!”
“세계 어느 나라가 입시 한 달 앞두고 입시제도를 바꾼답니까.” 교육부의 논술 가이드라인이 발표된 이튿날인 1일 정봉주 의원이 마련한 긴급간담회에서 참석자들은 “방향의 옳고 그름을 떠나 이제 수시모집을 한 달 앞둔 시점에서 갑자기 전형방법을 바꿔 수험생과 학부모들의 혼란이 극에 달해 있다”며 교육부를 비판했다. 한국교총 박남화 교육정책연구소장은 “서울대와 싸우다 여론에 밀려 급조한 철학도 비전도 없는 가이드라인”이라고 강도 높게 비난했다. 강태중 중앙대 입학관리처장은 “고교 교육을 정상화 하고 사교육을 줄이려는 의도였겠지만 어느 것에도 효과는 없을 것”이라고 못 박았다. 그는 “논술에 제한을 둘수록 대학은 서류나 면접에 치중하게 되고 이 경우 계층간 격차는 오히려 벌어질 것이며, 또 논술 전형방법을 불쑥 바꿀 경우, 이에 대한 대처는 사교육이 훨씬 앞서기 때문에 오히려 이를 조장하게 된다”고 지적했다. 논술전문학원 ‘거인의 어깨’ 김형일 대표는 “바로 다음 주부터 학교를 선택해 원서를 써야 하는 시점이다. 당혹해 하는 학생, 학부모의 상담이 새벽까지 이어지고 있다”며 “교육부는 수년간 차분히 준비해 온 수험생, 특히 어려운 여건에서도 논술지도에 정열을 바친 일선 고교 교사들의 노력을 완전히 뒤엎어 버렸다”고 말했다. 유니드림 신청론 입시연구소장도 “촛불시위는 고 1, 2만 할 줄 아느냐는 분노가 현재 고3 학생, 학부모의 반응이다. 이 때문에 당초의 논술 전형방식을 급히 바꾼 7개 대학은 사과문까지 발표했다”며 “그런데도 교육부는 왜 그렇게 늠름하냐”며 질타했다. 신 소장은 특히 이날 간담회 자리에서 교육부의 가이드라인을 교묘히 피하면서도 충분히 어렵고 변별력을 갖춘 모의 논술문 자료를 제시하며 “가이드라인이 얼마나 효과가 있겠느냐”고 반문했다.
“저는 강원도 출신이에요. 여러분만한 중학교 무렵 밤하늘에 별을 많이 보고 자랐죠. 고1 때 환경미화 준비를 하다가 별과 관련된 책을 발견하고 별에 관한 내용으로 게시판을 장식했어요. 이것이 별에 대한 꿈을 꾸는 계기가 됐답니다.” 8월의 마지막날, 서울 공진중(교장 조만영) 시청각실에서는 화면 가득 우주 행성들이 펼쳐졌다. 한국출판인회의와 학교도서관문화운동네트워크, 서울문화재단이 공동 주최하는 ‘책의 저자가 학교에 왔다’ 행사의 일환으로 ‘별자리여행’의 저자인 천문학자 김지현 씨가 학교를 찾은 것이다. 김 씨는 “우리나라에 별에 관한 자료가 많지 않아 외국자료를 어렵게 구하다가 이렇게 책을 내게 됐고 이 자리에도 서게 됐다”며 책을 내게 된 배경도 들려줬다. “은하는 아주 많은 별들이 모여 사는 곳입니다. 우리가 살고 있는 곳은 ‘우리 은하’라고 불러요. 지구도 이 안에 있고요. 은하철도 999란 만화 알죠? 거기에 등장하는 안드로메다 운하가 바로 이것인데 2000억개 정도의 별로 이뤄져 있어요. 이렇게 작은 점처럼 보이지만 가까이 가 보면 다 수많은 별들로 이뤄진 운하랍니다.” 우주 화면 속의 작은 점들이 거대한 운하의 모습으로 나타나자 학생들 사이에서는 ‘우와’하는 탄성 소리가 저절로 터져나왔다. “이번에는 여름철 밤에 볼 수 있는 별자리를 한번 살펴볼까요? 이건 궁수자리, 이건 헤라클레스 별자리에요. 이건 땅군자리라고 합니다. 땅군이 있으면 옆에는 뭐가 있을까요?” “뱀이오!” “맞아요, 그래서 여기 이렇게 뱀자리가 있어요. 요즘 서울에서는 별을 보기가 힘들지만 그래도 매일 밤하늘에는 이렇게 아름다운 별과 성운이 자리를 잡고 있답니다.” 강연이 끝난 후에는 학생들의 호기심 어린 질문이 쏟아졌다. “태양은 우주 전체에서 어느 정도의 크기에요?” “만약 우리 은하랑 안드로메다 은하랑 충돌하면 어떻게 되나요?” ‘책의 저자가 학교에 왔다’ 프로그램은 지난 7월 인천 청천중에서 ‘나는 아름답다’의 저자 박상률 씨를 시작으로 강원 동화중, 서울 송곡여고 등에서 저자 강연을 개최했고 8월에는 공진중학교를 비롯해서 시인 나희덕 씨가 서울 중앙여중을, 독서운동가 한상수 씨가 강원 북평초를 방문했다. 강의를 마친 김지현 씨는 “과학기술 홍보대사를 맡으면서 2,3개월에 한번씩 이렇게 강연을 하곤 하는데 학생들이 재미있게 들어줘서 즐겁게 강의할 수 있었다”고 말했다. 저자의 사인을 받아든 공진중 학생들은 “무척 재미있었고 평소에 몰랐던 것을 많이 알게 됐다”며 “특히 직접 구경하기 힘든 별자리를 볼 수 있어서 좋았다”고 소감을 밝혔다. 이학교 오시용 교사는 “우리 학교는 교육복지 시범학교로 지난해에도 안도현 시인을 초청, 저자와의 만남을 가진 적이 있다”면서 “아이들이 지루해할 줄 알았는데 매우 흥미있어 하고 평상시 수업에서 거둘 수 없던 여러 교육적 효과도 큰 것 같다”고 말했다. 서울문화재단 관계자도 “이러한 저자와 청소년 독자들의 직접적인 만남은 최근의 독서 활성화 운동에 가시적인 효과를 가져 올 것”이라고 전망했다.
이 학교 참 독특합니다. 개량 한복을 입고 교실을 향하는 학생들에게 무슨 행사가 있느냐고 물었더니 씨익 웃습니다. 그리고는 “교복 때문에 그러느냐”는 대답을 들려줍니다. 그렇습니다. 개교 3년째를 맞는 수원칠보중(교장 박평제)은 개량 한복이 교복입니다. 우리 것에 대한 관심을 가져보자는 교장선생님의 제안으로 시작된 됐는데 아이들이 처음에는 거부감을 많이 느꼈다고 합니다. 학원이나 거리에서 쏟아지는 시선이 부담스러웠나 봅니다. 하지만 이젠 워낙 알려지고 익숙해지다보니 오히려 편안하다고 합니다. 이 학교의 우리 것 사랑은 여기서 그치지 않습니다. 교가가 민요풍의 경쾌한 가락인가하면 학교 행사에서도 우리 악기로 연주한 곡이 사용됩니다. 다가올 학교축제도 전통문화체험을 가미해 장승 다듬고 세우기, 전통놀이 체험, 전통공연으로 꾸민다고 합니다. 쉬는 시간이 되자 또한번 놀랐습니다. 전교생이 책을 들고 복도로 몰려나와 어디론가 이동하는 것입니다. 이유를 물으니 수업받으러 간답니다. 이 학교는 교사가 학생들이 있는 교실로 이동하는 것이 아니라 학생들이 교사가 있는 교실로 이동해 수업을 받은 ‘교과교실제’를 운영하고 있습니다. 도덕수업을 받은 도덕실은 바닥이 온돌이고, 옛날 서당에서 썼을 것 같은 좌식 책상이 놓여져 있습니다. 학생들은 앉아서 수업을 받는데, 도덕과 예절교육을 한꺼번에 하기 위한 이유라고 합니다. 수학실에는 칠판이 삼면을 가득 채우고 있습니다. 문제 풀이가 가장 중요한 교과라는 교사들의 의견에 이렇게 꾸몄답니다. 학생들은 회전식 의자를 돌려가며 친구들의 문제풀이를 지켜봅니다. 영어실에선 LCD모니터를 통해 영화를 보면서 회화를 배웁니다. 교실 중심의 교육이 이뤄지는 셈입니다. 각 교과별로 모여 있다보니 교과협의회가 자연히 활성화되고 수업에 기울이는 열정이 더 강화된다고 합니다. 반면 학교 행정력이 약화되는 점도 있고 쉬는 시간마다 학교가 어수선해지기도 한답니다. 하지만 학교 측은 교과교실제 운영이 학생들의 창의적인 사고 향상을 가져올 것으로 확신하고 있습니다. 박평제 교장선생님은 “원론적으론 모든 학교가 지향해야 할 방향이고 교실이 변해야 교육이 변한다”고 설명합니다. 아, 한가지 잊었습니다. 이 학교의 인사말은 ‘사랑합니다’입니다. 학생들이 선생님께, 선생님이 학생들에게 ‘사랑합니다’라고 인사하는, 전통문화를 사랑하는 학교, 칠보중학교입니다. -------------------------------------------------------------------------------------- 이 코너는 독자 여러분이 한교닷컴(www.hangyo.com)의 ‘우리 학교를 말한다’ 코너에 직접 올리신 내용을 중심으로 꾸며집니다. ‘우리 학교를 말한다’에 직접 학교자랑을 올리시면 특색있는 학교를 선정, 취재를 통해 학교를 소개해 드립니다. 독자 여러분의 많은 참여를 기대합니다. 문의=(02)3463-1879
최근 교육부가 ‘부적격교원대책’을 입법예고하면서 교원단체와 학부모 단체로부터 거센 항의를 받는 사태가 발생했다. 교원단체들은 ‘합의 없이 입법예고할 수 있느냐’고 따졌고, 학부모 단체는 ‘언어폭력이나 신체폭행을 가한 교사는 왜 부적격 교원에서 제외했느냐’고 따졌지만, 문제의 본질에서는 이견이 큰 듯하다. 이 과정에서 교육부는 ‘입법예고한 사실을 미리 알려주지 않은 점’에 대해 사과하는 등 갈팡질팡하는 모습을 보여주었다. 학부모 단체에서 주장하는 부분, 즉 교사의 폭력문제가 이견의 시발점이 되고 있다. ‘언어․신체적 폭력을 가한 교사를 부적격 교원의 범주에 포함시켜 교단에서 퇴출시켜야 한다’는 것인데 이에 대한 이견이 첨예하다. 학교에서 학생에 대한 폭력이 있을 수 없으나 학부모단체에서는 폭력이 존재하고 있다고 꾸준히 이의를 제기하고 있다. 이를 근절시키기 위한 교육당국의 노력이 부족하기 때문이라고 한다. 그렇기 때문에 폭력을 부적격교원의 범주에 포함시켜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본질적인 문제는 폭력과 체벌의 구별이 애매하다는 데에 있다. 이들의 사전적 의미를 살펴보면 ‘폭력’은 ‘난폭한 힘’으로 설명되어 지고, 다시 ‘난폭’은 ‘몹시 거칠고 사나움’으로 설명되어 있으며, 체벌은 ‘몸에 직접 고통을 주는 벌’로 설명돼 있다. 이렇듯 사전적 의미로만 볼 때는 최소한 학교에서의 폭력은 존재하지 않고 있다고 보는 것이 좀 더 타당할 것이다. 학생을 교육하는 교사가 ‘난폭한 힘’즉 ‘몹시 거칠고 사납게’ 학생을 지도한다는 것에 쉽게 수긍이 가지 않기 때문이다. 교사가 학생을 지도하기 위해 체벌을 가했다고 할 때, 학생이 수긍하면 교육적인 체벌이 되겠지만, 학생이 수긍하지 않으면 폭력으로 비화될 수 있는 위험성이 있다. 일례로 A, B 두 교사가 똑같은 체벌을 가했을 경우, A교사는 체벌이 되고 B교사는 폭력이 되는 경우가 생길 수도 있다. 부적격교원의 범주에 폭력이 포함된다면 B교사만 퇴출시키는 오류를 범하게 되는 것이다. 이렇듯 폭력과 체벌은 구분이 어렵다. 그렇다고 체벌을 완전히 금하면 모든 것이 해결될 것으로 보이지만 꼭 그런 것은 아니다. 실제로 교사들도 체벌을 가하지 않는 것이 좋다는 것에 공감한다. 그러나 불가피하게 체벌을 가해야 하는 경우가 꼭 나타나는 것이 현실이다. ‘학교에서 왜 체벌이 존재할 수밖에 없는가’에 대한 논의가 더 필요한 이유이다. 부적격 교원대책과 관계없이 이미 일선 학교와 교육당국에서는 폭력을 금하고, 체벌근절을 위한 노력을 꾸준히 진행하고 있다. 서울시교육청에서는 시내 모든 초․중․고교에 ‘체벌 없는 학교 만들기’ 운동을 전개하고 있으며, 2006학년도에는 이와 관련한 시범학교 운영이 계획돼 있어 체벌 없는 학교가 가시권에 들어와 있는 상태이다. 서울의 일부 고교에서는 체벌을 없애기 위해 이를 대체할 수 있는 생활지도 방안을 제정해 운영하고 있다. 사안 관련 학생을 상시지도 하되, 정도가 지나친 경우는 ‘푸른교실’을 별도로 개설해 여기에 입교시켜 지도하는 방법을 채택하고 있다. 이들 고교 외에도 대부분의 중․고교에서는 ‘학생체벌조정위원회’나 ‘생활지도위원회’, ‘학교분쟁조정위원회’ 등을 설치해 체벌관련 내용을 다루고 있다. 즉 체벌과 관련된 제반 고충의 처리, 체벌 없는 교육풍토 조성을 위한 학생 지도방법의 연구 등을 실시하고 있으며, 위원으로는 교사 학부모, 학생대표 등을 포함하고 있다. 이렇듯 체벌을 금하기 위한 각고의 노력이 이어지고 있는 와중에서 폭력을 부적격 교원의 범주에 포함시킬 경우 학교 스스로의 자정노력에 찬물을 끼얹는 결과를 낳게 될 것이다. 따라서 ‘학교교육력제고를위한협의회’에서 잠정적으로 협의한 ‘폭력문제는 어떠한 방식으로든 해결해야 한다’는 것과 ‘폭력문제는 부적격 교원 대책과는 별도 처리하는 방안’을 고려한다는 것은 매우 시의적절하다 하겠다. 학교 내에서의 폭력과 체벌은 근절돼야 한다. 다만 학교 스스로 이를 근절시킬 수 있도록 노력할 수 있는 기회를 부여해야 한다. 무조건 부적격 교원으로 분류한다면 선의의 피해자를 양산할 가능성이 더 높기 때문이다. 체벌인지 폭력인지는 양심 있는 모든 교사들의 판단에 맡기는 것이 더 바람직하다. 빈대 잡으려다가 초가삼간을 모두 태우는 일은 일어나지 말아야 한다.
영국에서 추진되고 있는 공립학교의 아카데미 전환 정책이 10월에 출간되는 백서에 의해 한층 박차가 가해 질 것으로 내다보인다. 8월 28일자 선데이 타임즈에 따르면 그동안 아카데미의 손익 논쟁의 소용돌이 속에서, 한 때, 정책 폐기까지 고려한 적이 있을 정도로 흔들렸던 블레어 수상은 아카데미 전환의 최대 걸림돌이었던 지방교육청의 개입을 완전 봉쇄하는 내용을 골자로 담은 10월 백서에 동의한 것으로 알려졌다. 블레어 수상은 97년 총선에서부터 ‘교육개혁’을 최대공약으로 삼았고, 그러한 개혁의 일환으로 ‘정부 재정지원에 민간인이 운영’하는 아카데미라는 형태의 학교가 지난 2002년 9월부터 도입됐다. 아카데미 학교는 8월 현재까지 17개교가 개교했으며 14개교가 완전 가동을 하고 있다. 노동당 정부는 이런 형태의 학교를 2010년까지 200개교로 늘리겠다는 청사진을 밝힌바 있다. 이런 학교들을 하나 개교시키기 위한 정부의 지원액은 2천만 파운드(400억 원)이며 이 정책을 실현 하기위해서 교육부가 계상한 예산은 약 10조원에 이른다. 이러한 정책을 선호하는 세력은, 피폐되어가는 학교에 대해 아무런 손을 쓰지 않고 있는 공립학교에 대해 더 이상 기대를 걸지 않는 학부모들이며, 반대 세력은 아카데미에 아무런 영향력을 행사 할 수 없게 되는 지방교육청과 고용조건이 불안해지는 교사 노조 등이다. 이러한 찬반 양대 세력간의 표면상 논쟁점은 공교육을 민간업자에게 맡길 때 발생할 수 있는 위험성이라든가, 투자액에 대한 효율성이라든가 하는 것들이지만 가장 핵심적인 논쟁의 초점은 과연 아카데미가 학생의 성취도를 향상시킬 수 있는가 하는 점이다. 하지만 아카데미가 설립되기 시작한지 얼마되지 않았기 때문에 포괄적인 비교연구의 결과물을 만들어 낼 수가 없었고, 발표된 연구들의 결과물이라는 것이 사례연구에 지나지 않아 어느 한쪽 세력을 승복시키기에는 한계가 많았다. 따라서 아카데미 효율성의 논쟁은 지난 3년 동안 끊이지를 않았다. 이러한 논쟁과는 별도로, 정부의 고민은 법령 개정의 문제로, 스폰서가 자신의 돈을 투자하여 아카데미를 설립하고 싶다고 하더라도, 지방교육청이 주어진 법적 지위를 이용하여, 관내 공립학교의 아카데미 전환에 비협조적이거나 또는 그것을 저지하고자 하면 전환이 성사되기 어려운 상황이다. 이러한 혼란들로 인하여 야심적으로 시작했던 정책도 ‘조심스러워지는’ 스폰서들에 의해 3년째 들어와서는 호응도 시들해지고 신설 학교 수의 증가 속도도 둔해졌다. 하지만 지난 주 발표된 전국 중등학교 졸업생 평가시험의 결과가 나옴으로서, 최초로 아카데미 졸업생이 나오게 되었으며, 전국적으로 비교할 수 있고 또한 포괄적인 평가를 할 수 있는 자료가 만들어 졌다. 이 결과에 의하면, 14개 아카데미 중에서 10개교는 공립학교 때 하향세를 보이던 학교 성적을 상향세로 뒤집었으며, 2개교는 동일, 2개교는 지속적 하향세를 멈추지 못했다. 더구나 상향세로 돌아선 10개교 중에는 전국 어느 중등학교와도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비약적인 상승세를 나타낸 학교가 수 개교에 이른다. 교육부내 아카데미 정책의 추진 팀장인, 아도니스경은 “이 결과는 아카데미 정책이 작동한다는 자신감을 주기에 충분하다, 이제 200개교까지 확대한다는 정책에 대해 더 이상 망설여야 할 이유는 하나도 없다, 우리는 이제 아카데미가 작동한다는 확고한 물증을 가지게 되었다”라고 자신감을 나타냈다. 이러한 주장에 반해 전국교사노조 위원장 시놋트씨는 “시험의 결과는 학교장의 리더쉽과 효율성, 교사, 학생에 의해 만들어지는 것이며, 아카데미라는 학교의 신분과는 하등관계가 없다. 학교성적의 변화를 아카데미 전환 탓이라고 주장하는 정부의 모양새는 마치 불어오는 바람이 자기들이 입으로 불어서 바람이 불어온다고 주장하는 꼴이다”라고 정부의 주장에 냉소를 보냈다. 하지만 이러한 노조의 주장은 왜 다른 공립학교는 그러지 못하고 아카데미로 전환한 학교가 그러한 성적을 올렸는가에 대한 설명을 하지 못하고 있다. 지난주 시험 결과의 발표에 자신감을 얻었는지 보류상태에 놓여져 있던 10월 국회상정 백서에, 블레어 수상은 사인을 했다. 블레어 수상은 최근 수상관저에서 열린 잠재적 스폰서들이 모인 사적 회의에서 “궁극적으로는 모든 공립학교를 아카데미로 전환하고 싶다”라는 사견을 밝힌바 있다. 공립학교를 인수받아 아카데미로 전환하고자 하는 스폰서는 약 4억원의 조성금을 투자해야하고 정부는 이에 40억원 상당을 투자한다. 현재 런던지구에 7개의 아카데미 신설을 추진하는 아크 재단은 비영리업체로 등록되어 있으며, 기부금 모금 디너파티에서 20억원을 모금했다. 이 파티에는 리챠드 기어같은 배우들을 초청해 그와 함께 춤을 추는 기회를 ‘모금 상품’ 으로 판매하기도 했다.
'왕따 문제 해결은 학교 하기 나름'이며 '가르치기 나름'이라는 교육적 믿음 하에 호주의 각급 학교는 '왕따 퇴치 전국 캠페인'을 전개하고 있다. 지난 18일 멜버른을 시발점으로 시드니, 브리스번, 퍼스 등 전국 대도시로 확산된 학내 왕따 방지 프로그램의 공식 명칭은 '보다 좋은 친구 (Better Buddies) 운동'. '보다 좋은 친구 운동'은 폭력과 범죄의 피해자가 되거나 창졸간에 부모를 잃은 어린이들을 보호하고 지원해 오던 자선 재단 ‘알란나 앤 메델라인’이 학교에서 따돌림을 당하는 아동 보호로까지 활동영역을 확대함으로써 시작됐다. 왕따 방지 운동을 전개하고 있는 이 재단의 존 버트랜드 이사장은 출범식을 통해 "호주 학생들 6명중 1명꼴로 왕따를 당하고 있다"고 전하며 "학창시절에 왕따를 경험한 학생들은 오랜동안 그 영향을 받으며 우울증은 물론 자살까지 초래할 수 있다"며 왕따의 심각성을 강조했다. 지난 2000년 멜버른 지역의 학교를 중심으로 첫 시행을 한 후 점차 좋은 반응을 얻으면서 5년째에 접어든 지금까지 전국 700개 학교가 동일 프로그램을 바탕으로 개별적 상황을 해결해가며 적극 동참하고 있다. 통계에 의하면 호주 어린이들은 매주 약 700명, 매일 14명 꼴로 폭력이나 범죄, 가정 내 불행한 사태에 직면하고 있으며, 이를 위한 재정적, 심리적, 정서적 보호를 필요로 하고 있다고 한다. 결국 지역사회와 학교에서 심신의 상처를 입은 어린이들을 보호하지 못한다면 어두운 성장기와 나아가 희망없는 미래를 맞게 될 것이라는 우려가 교사와 학생들로 하여금 소외된 아이들을 큰 품으로 보듬도록 하는 계기를 만들었다. 전국에서 추진 중인 왕따 방지 프로그램의 핵심 내용은 '고학년 학생과 저학년 학생의 일대일 짝짓기'이다. 이는 동급생끼리 친구가 되는 것에서 한걸음 나아가 학년차가 나는 학생들간에 교차적, 입체적으로 친구관계를 맺게 되면 결국 한 학교에 다니는 학우들 모두가 우정의 그물망에 엮기게 되어 왕따현상은 자연히 없어지게 된다는 신념에 바탕을 두고 있다. 즉 한 학교 울타리에 있는 전 학생들이 나이와 학년에 관계없이 소그룹별로 학교 행사에 참여하면서 아래 위 구분없는 우정의 디딤돌을 쌓게 하겠다는 것이다. 1학년 신입생과 6학년 졸업반 어린이가 짝이 되어 글짓기 시간을 가지고, 1, 3, 5학년 어린이들이 함께 요리 실습에 참여하기도 한다. 그런가하면 학년이 뒤섞인 상태에서 소풍이나 야외학습을 나가도록 해서 고학년생이 저학년생을 돌보고 챙기는 경험을 자연스레 할 수 있게도 한다. 이런 교육과정과 학교 환경을 통해 어린이들은 마음의 빗장을 서스럼없이 열게 되고 어려움에 처한 친구들의 호소에 진정으로 귀를 기울여 도울 수 있는 길을 모색하게 된다는 것이다. 더구나 외동이로 자라나는 어린이들은 '보다 좋은 친구' 프로그램의 나이차 짝짓기를 통해 우정을 넘어 마치 혈연같은 유대 의식을 키워나갈 수 있다는 이점도 가진다. 자기와 맺어져 있는 저학년이 학교에서 다른 학생들로부터 괴롭힘을 당할 경우 누나나 형, 언니, 오빠의 입장이 되어 문제 해결에 적극 나서게 되면서 성숙한 역할관계를 배울 수 있기 때문이다. 서로 믿는 절친한 관계에서 왕따를 시키는 일은 없다. 친구끼리 따돌리거나 친구 집단 내에서 왕따 현상이 벌어지지는 않는다. 즉 감정이입, 상호 보살핌, 상대에 대한 존중, 남과 내가 같기도 하고 다르기도 하다는 것을 인정하고 차이점을 수용하는 자세 등 긍정적 측면의 정서와 가치를 강화시키는 훈련을 받으면 왕따 현상을 불러일으키는 부정적이고 어두운 정서는 자연히 누그러지기 마련이라는 것이다. 이를 위한 간접 경험 차원에서 따돌림을 당하거나 괴롭힘을 겪는 어린이, 폭력이나 도박에 노출되어 있는 아동, 가출 등으로 거리를 헤매는 청소년들을 주인공으로 한 아동 도서를 선정하여 책을 읽은 후 독후감 발표와 사례 분석 시간을 가지기도 한다. 이를 위해 각급 학교는 지속적으로 저학년 학생과 고학년 학생을 한 명씩 짝지워 충분한 시간을 투자하여 지속적인 정서훈련을 시킬 예정이다. '보다 좋은 친구' 운동은 학원에서 펼치는 '배움과 조화로운 삶 (learning and well-being)'의 최고 모델이 될 것이라는 기대로 교사와 학생이 일치가 되어 밝고 긍정적인 교육환경 조성에 단단히 한몫을 하고 있다.
한국교육신문의 시사만평 ‘교육만평’이 작가를 모심과 함께 새롭게 바뀝니다. 이번 호부터 만평을 그리는 장용군 수원정보산업고 교사. 지난 8월 공주대학교에서 만화예술로 미술학 석사를 취득한 장 작가는 한국애니메이션고교 설립 기획과 교과서 개발에 참여하는 등 만화에 대한 애착이 남다른 분입니다. 스케치와한국화를 접목, 시사만평의 딱딱함에 부드러움을 가미한 그의 작품은 교육계 이슈를 바라보는 교사들의 시각을 대변할 것입니다. 독자여러분의 많은 성원과 관심 바랍니다.
올해도 각급학교에서 국감자료 챙기느라 수업 못하는 일이 벌어질 듯하다. 국회 교육위는 올해부터 국감자료를 CD로 배포한다고 하고, 총리는 국감자료를 국민 일반에게도 공개한다는 방침이지만 이는 종이 자료가 디지털화된다는 의미에 불과하다. 과도한 자료를 요구하는 일부 국회의원들의 행태는 여전해 학교를 포함한 피감기관의 부담은 줄어들지 않을 전망이다. 작년 국감에서 열린우리 복기왕 의원과 민노 최순영 의원은 경북교육청의 교육기자재 입찰 및 구매와 관련된 82만장 2.6톤의 자료를 요구하고 이를 몽땅 전교조와 전공노에 넘겨 줘 물의를 야기한 바 있다. 이러한 불법 사례에 대해 국회윤리위는 아무런 조치를 취하지 않았다. 때문에 올해도 이와 유사한 행태가 되풀이 될 것이 뻔하다. 지난 국감 때 교총이 전국에서 80개 학교를 표집해 조사한 바에 따르면 자료 제출요구는 8월에서 10월초까지 집중되고 학교당 평균 40건에 달했다. 같은 기간 시․도 교육위원들이 요구한 30건보다 더 많다. 교원들이 가장 싫어하는 국감자료 요구 행태는 겨우 몇 시간을 주고 막무가내 식으로 자료 제출을 요구하는 것이다. 그 다음으로 몇 년치 또는 포괄적으로 과도한 자료를 요구하는 것이다. 연초 교총은 국회에 자료 요구의 절대량을 줄이는 것은 물론 방법 및 절차도 반드시 개선할 것을 정식 요구했으나 묵묵부답이다. 국회의원들은 과도한 자료를 촉박하게 요구하는 행위야 말로 교사들에게 수업 하지 말고 자료나 챙기라고 요구하는 것과 진배없음을 깨달아야 한다. 해마다 국정감사 때가 되면 교원들은 기대와 짜증, 허탈함이 교차한다. 국정감사를 통해 정부의 교육정책 실패가 파헤쳐지고 공교육을 살리는 정책이 나오기를 기대해 학교로서는 가장 바쁜 9, 10월에 열심히 자료를 챙겨 보내면 결과가 없기 때문이다. 부디 올해는 막무가내 식 과도한 국감 자료 요구행태가 되풀이 되지 않기를 바란다.
학생들의 개인차와 자율성을 고려한 학습과제 제시로 학생 개개인의 과제 산출물이 다양해졌다. 방학 전 교사와 학생의 개인 상담을 통해 자신들의 취약한 점을 보충하도록 하고, 관심 분야에 대한 ‘1집중 탐구’ 과제를 설정하여 조사 관찰 탐구하게 하였으며, 한 가지 이상의 체험 학습을 통해 이성적 감성적 체득의 과정을 경험하도록 하였다. 가능하면 학생 스스로 해결할 수 있는 과제를 제시하였고, 가족들과의 일체감을 조성하기 위해 가족 모두가 동행 동참할 수 있는 과제도 제시하였다. 개학 직후 과제물 전시회를 개최 우수과제물을 관람하도록 하였는데 어설프고 미숙하긴 했지만 학생들이 직접 작성하고 제작한 흔적이 엿보였다. 각종 폐품을 활용한 꾸미기 및 만들기, 동심의 세계가 잘 나타난 그리기, ‘1집중 탐구’ 과제의 해결을 위한 탐구 과정의 기록물 및 사진 자료, 체험학습의 보고서 및 감상문, 부족한 부분에 대한 노력의 산출물, 독서를 통한 간접 경험의 감상문 등 긴 방학 동안의 학생들의 소중한 과제물들이었다. 특히 ‘1집중 탐구’ 과제 해결을 위한 다양한 노력들을 알 수 있었는데 그 중에서도 ‘장애인’에 대해 관심을 갖고 ‘장애인 편의시설’을 집중 탐구한 1학년 최지호의 보고물이 눈에 띄었다. 물론 부모님과 동행하여 장애인 편의 시설을 둘러보고 설명을 듣고 사진으로도 찍었지만 이 학생은 평생 동안 장애인에 대한 관심과 배려는 남다를 것이라고 생각되었다. ‘장애인 주차장’, ‘점자 유도 블록’, ‘장애인 심벌 마크’, ‘리프트’ 등 편의시설에 대해 아주 훌륭한 학습이 되었을 것이다. 2학년 최지연의 ‘배추 씨앗의 싹트기’ 관찰 보고서는 파종하고 싹이 트는 모습을 관찰하고 물을 주는 등 키우기 위해 한 일을 자세히 기록하고 느낌을 잘 정리하였다. 또한 변화 모습을 사진으로 찍어서 보고서를 작성하는데 활용하였다. 식물의 자람에 대해 지극한 관심을 갖는 것은 정서순화에도 많은 도움이 되었으리라 생각되었다. 또한 폐품을 활용하여 만든 작품들은 아동들만의 창의성과 미적 감각이 잘 표현되어 있었다. 2학년 유승현의 패트병과 컵라면을 활용하여 만든 인형은 야무진 표정과 종이 패션이 잘 어울리는 작품이었다. 4학년 이영서의 ‘화목한 우리 가족’이라는 가족 신문에는 가족에 대한 관심과 사랑이 잘 표현되어 있었다. 가족의 소개는 물론이고 장단점을 잘 이해하고 가족 구성원으로서 자신의 역할과 가족을 위해 할 일 등의 각오를 다지기도 했다. 학생들의 다양한 경험과 사고가 잘 표현된 과제물을 보면서 독특한 아동의 세계를 이해할 수 있었다. 특히 ‘1학생 1집중 탐구’는 어느 특정 분야에 많은 관심과 경험을 통해 폭 넓고 깊이 있는 학습이 이루어져 전문성(?)을 갖게 된 것 같다. 학생들 개성에 맞게 상담을 통한 과제 부여야 말로 개별화 교육의 가장 중요한 방법이라고 생각되었다.
한나라당 이주호 의원이 '교원연수·평가제도 개선방안' 토론회에서 '통합적 교원평가제' 도입을 제안해서 교원평가제를 둘러싼 논란이 새로운 국면으로 접어들 가능성이 있다. 이와 관련하여 학부모 단체와 협력해 관련 내용을 담은 교육공무원법 개정안을 이번 정기국회에 제출할 예정이라고 한다. 그 정확한 내용은 알 수 없지만, 기사의 내용을 살펴보면 기존에 교육부에서 주장했던 평가안의 내용과 별반 차이가 없다는 것을 쉽게 알 수 있다. 단지 수업능력뿐 아니라 생활지도, 학급경영, 학부모와 의사소통 등 다양한 영역을 평가해야 한다는 것이 기존의 평가안과 다소 차이가 있는 점이다. 오히려 기존의 평가안에서 더 후퇴한 느낌이 든다. 교원들의 의견은 교사가 교사 본연의 업무를 제대로 할 수 있는 여건 마련을 줄기차게 주장해 왔다. 여건이 조성된 후에나 교원평가를 논의하자는 의견이 지배적이다. 그런데, 여건 개선을 위한 별다른 노력 없이 또다시 평가를 하기 위해 '통합적 교원평가제'의 도입을 제안하고 있다는 것에 대해 수긍이 가지 않는다. 이 내용을 좀더 확대 해석하면 교원평가제를 도입해야 교원의 재교육인 연수가 활성화 될수 있다고 잘못 보는 것은 아닌가 싶다. 또다른 교원평가 문제를 들고나와서 소모적인 논쟁을 벌이는 일이 생길까 염려스럽다. 우선은 모든 교육적 여건을 갖추는 것이 더 중요하다. 그런 다음에야 교원평가에 대한 논의가 자연스럽게 이루어질 수 있는 것이다. 관련법안 제출이 당론으로 정해진 것인지 이주호 의원 개인의 의견인지는 알 수 없지만 좀더 시간을 두고 검토해야 할 사항이 아닌가 싶다. 이 의원이 이런 주장을 할 수 있다는 것이 과연 오래전부터 검토를 했었는지, 아니면 최근에 이슈를 가지고 정리를 한 것인지 궁금하다. 최소한 어떤 정책을 추진하기 위해서는 시간을 두고 집중적인 검토가 이루어져야 가능하다고 본다. 빠른 실행을 목표로 졸속 추진되는 정책이 성공한 예는 거의 찾아 볼 수 없기 때문이다.
조전혁 / 인천대 교수, 자유주의교육운동연합 공동대표 서울대의 통합교과형 논술과 관련한 논쟁이 갈수록 뜨거워지고 있다. 대통령의 ‘나쁜 뉴스’라는 평가에 정부․여당 그리고 일부시민단체들은 ‘막말’까지 동원해가며 서울대 때리기에 나섰다. 이에 대해 서울대 교수협의회, 전국국공립대학교수협의회 등은 "서울대 입시안 파동은 대학의 순수한 교육적 개혁조치를 정치적으로 해석해 호도한 것이고 헌법이 보장한 대학의 자율성 침해로 규정한다"며 "이와 유사한 정부 간섭에 강력 대처해 나가겠다"는 말로 서울대의 입장을 옹호하였다. 정운찬 서울대 총장은 모 경제단체가 주최한 모임에서 통합교과형 논술을 강행할 뜻을 피력했고 나아가 “고교평준화 제도도 재고(再考)되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비단 현재 쟁점이 되고 있는 논술고사 논란뿐만 아니라 한바탕 홍역을 치렀던 고교등급제 논란 등 대학의 학생선발 방법의 변경은 어김없이 사회적 저항이라는 홍역을 치렀다. 그러나 이들은 모두 ‘신뢰할 수 없는 내신, 변별력 없는 수능제도’ 하에서, 대학으로서는 ‘최소한도’의 자율성을 발휘한 고심(苦心)과 타협의 산물이다. 사실 대학의 자유는 우리나라 헌법이 보장하는 기본권 중의 하나다. 물론 우리 헌법은 공익을 위한 기본권 제한을 허용한다. 그러나 통합교과형 논술고사나 고교등급제를 금지하는 것이 과연 공익적인지에 대한 판단은 어디에 근거하는가? 이에 대한 명확한 논증이 없이 서울대의 입시안을 규제할 경우, 정부는 ‘대학의 자유’를 침해했다는 비판으로부터 결코 자유로울 수 없을 것이다. 정부는 그동안 신입생 선발과 관련한 대학의 어떠한 시도에 대해서도 일관되게 규제의 잣대를 들이대 왔다. “논술고사는 사실상 본고사 부활이다” “고교등급제는 차별이다” 등 규제의 논리도 다양했다. 그렇다면 정부의 이러한 규제논리는 합리적이고 타당한가? 안타깝게도 정부의 그 어떤 규제논리도 비합리적이고, 타당하지도 않으며 나아가 반헌법적이기까지 하다. 지금까지 교육과 관련한 많은 실증연구결과는 정부의 규제논리가 얼마나 허약한지를 여실히 보여준다. 먼저 “평준화는 과연 평준화에 기여했는가?”라는 질문에 정부는 결코 자신 있게 “그렇다”라고 답할 수 없다. 유독 교육부만 공식적으로 인정하지 않으려 하지만 다양한 교육자료들은 학력격차가 현재 전국적으로 보편화된 현상이며 나아가 확대되고 있음을 웅변적으로 증명한다. 몇 가지 증거를 들어보자. PISA 2000년도의 읽기성적을 전국의 고등학교별 평균점수로 살펴보았을 때 전체 150개 학교 중에서 최상위권 학교와 최하위권 학교간의 평균점수차가 무려 200점 이상으로 나타나고 있다. 이를 다시 인문계 학교만을 비교해 볼 경우에도 150점의 격차가 있는 것으로 조사되었다. 이 자료는 전국의 고등학교별로 실로 엄청난 학력격차가 있음을 보여준다. 2001년도 치러진 전국규모의 국가수준 학업성취도 평가 결과도 동일한 결과를 나타내었다. 조사대상 175개 고등학교 중 최상위 10%에 속하는 학생이 한 명도 없는 학교가 전체 대상학교 중에서 무려 39.4%에 달한 것으로 나타났다. 최근 고려대학교가 보유하고 있는 입시자료를 분석한 결과도 학교별 학력격차 현상을 뚜렷이 보여준다. 이 자료에 따르면 전국 1847개 고등학교 중에서 수능성적 상위 10%에 한 명도 포함되지 않은 학교가 823개나 되며, 재학생 전원이 수능성적 상위 10% 이내에 들어 있는 학교가 3개교인 것으로 나타났다. 이러한 수능점수를 통한 분석 역시 우리나라 고등학교간의 학력격차가 얼마나 심각한 상태인지를 증명한다. 상황이 이러한데도 일부 시민사회단체들은 ‘고교등급제는 인권침해(人權侵害)’라고 주장하면서 학력격차를 입시사정에 반영한 일부 대학에 대해 격렬한 비난을 퍼부었다. 그러나 이들의 주장은 거꾸로 뒤집어보면 그들의 공격논리와 정확히 같은 논리로 공격당할 수밖에 없다. 앞서 소개한 고려대 입시자료 분석에 따르면 823개 학교의 ‘전교 1등’들은 나머지 학교의 전교 50등에도 미치지 못한다. 극단적으로 재학생 전원이 수능성적 상위 10%에 속하는 3개 학교에 간다면 이들의 성적은 최하위를 기록할 것이다. 다소 과장하면 ‘무늬만 1등급’인 것이다. 그런데도 교육부는 무늬만 1등급과 진짜 1등급을 차별하지 말라고 요구한다. 그러나 곰곰이 생각하면 고교등급제 포기는 더 많은 수의 ‘진짜 2등급’과 ‘진짜 3등급’에게 역차별을 강요하는 인권차별이다. 아울러 이런 사정을 뻔히 알고 있으면서도 학력차를 반영하지 않는다면 그것이 오히려 대학의 직무유기가 아닐까. 필자는 고교등급제 반대론자들의 생각이 틀렸다고 공격할 생각은 전혀 없다. 고교등급제 반대론자들의 인권차별 주장도 옳다. 그러나 똑같은 논리로 그 대척점(對蹠點)인 고교등급제를 포기하는 것 역시 인권차별이다. ‘어떤 것이 옳고, 정확히 그 반대도 옳다’는 것은 무엇을 뜻하나? 그렇다. 고교등급제에 대한 찬반논쟁은 어쩌면 의미가 없을 수도 있다. 다른 한 편으로 고교등급제 반대론자들은 현재와 같은 학벌주의, 대학서열화 체제 내에서 고교등급제는 서열화를 더욱 강화하고 때마침 맞물린 대학의 선발권 강화는 등급제를 구조화한다고 주장한다. 나아가 일부 강경론자들은 이러한 폐해를 원천적으로 차단하기 위해 대학마저 평준화해야 한다는 주장도 서슴지 않는다. 사실 우리 사회에 학벌주의가 존재한다는 것은 ‘어느 정도’ 사실이다. 그러나 학벌주의가 심각하다는 주장은 어쩌면 피해자(?)들의 과장일 가능성이 농후하다. 예컨대 작년 국정홍보처가 국민들을 대상으로 학벌주의에 대한 설문조사는 이런 가능성을 증명한다. 조사결과에 따르면, 응답자의 87.7%가 “우리사회에 출신학교에 따른 차별이 심각하다”고 대답한 반면, “실제 사회생활에서 차별을 받은 경험이 있느냐”는 질문에는 31.9%만이 그렇다고 답했다. 이는 우리사회에서 학벌주의가 실재보다 과장되어 있다는 의심을 불러일으키기에 충분하다. 그동안 민간부문의 빠른 성장은 최근 대부분의 사회영역에서 민간부문이 정부부문을 압도하게끔 만들었다. 능력에 근거하지 않은 학벌주의는 결국 기업 및 단체의 경쟁력에 심각한 문제를 제기한다. 특히 고도지식산업사회에서는 개인의 창의력과 능력이 더욱더 중요해지고 있다. 이러한 환경 아래서 학력주의는 논리적 근거를 잃을 수밖에 없다. 필자는 최근 대학생들이 가장 선호하는 국내 모그룹의 신입사원 특강시리즈에 참여하고 있다. 수강생 프로필을 통해본 신입사원들의 출신대학 분포는 매우 인상적이었다. 소위 ‘스카이 대학’ 출신은 전체의 20%에 채 미치지 못했을 뿐만 아니라, 이공계 신입사원의 경우 사회적으로 명문취급을 받지 못하는 어느 지방대학 출신이 가장 많았다. 학벌주의는 실재보다 과장되어 있거나, 사회변화에 따라 빠르게 완화․소멸되어 가고 있다는 증거와 논거가 충분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학벌주의에 따른 폐해를 부단히 주장함으로써 사회적 공포를 유발․조장하고, 이를 고교등급제 반대의 수단으로 이용하는 것은 전형적인 ‘저급(低級) 정치행위’에 지나지 않는다. 더욱이 독일, 프랑스 등 우리보다 앞선 나라에서도 문제점이 많아 포기하려하는 대학평준화까지 주장하는 것은 그 동기의 순수성을 의심케 한다. 혹시 이들은 “계급(階級)이 국가나 국민보다 우선되는 가치다”라는 사회주의의 망령에 사로잡혀 있는 것은 아닐까. 우리나라의 현 교육시스템은 ‘국가에 의한 교육독점’과 ‘평준화’가 잉태한 저주받은 기형아다. 따라서 이 두 가지 원인을 그대로 두고 어떠한 교육정책에 관한 논의도 결국 공염불에 그칠 것이다. 교통시스템 자체가 잘못돼 있는데 신호등 한두 개를 고친다고 교통흐름이 나아지겠는가. 오히려 고치려고 나서면 신호체계는 점점 꼬여만 가고 운전자들에게 오히려 혼란을 가중시킴으로써 전체 교통흐름을 더욱 악화시킬 뿐이다. 고치고 또 고쳐도 문제는 결코 해결되지 않는다. 교통체계와 비유하자면, 현재 논란이 되고 있는 통합교과형 논술고사나 고교등급제 금지는 녹색신호가 교통사고를 부른다고 섣불리 예단하고 모든 신호등을 적색으로 바꾼 격이다. 일견(一見) 좋은 취지의 정책이 ‘항상’ 왜곡된 결과를 초래하는 이유는 바로 이러한 ‘시스템적 결함’ 때문이다. 현 교육시스템의 가장 큰 결함은 ‘좋은 것을 추구하는 인간본성’을 억압하는데 있다. 좋은 것을 추구하는 것은 인간과 사회의 본질이다. 학생과 학부모가 좋은 학교를 원하고, 학교가 좋은 학생을 원하는 것은 당연하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우리의 교육시스템은 ‘모두가 좋은 것만을 추구해서 문제가 생기니 차라리 좋은 것을 없애자’는 식과 다름이 없다. 그 구체적인 증거의 하나가 고교평준화가 초래한 ‘하향불평준화(下向不平準化)’다. 그 어떠한 사회시스템도 유인(誘引)구조가 허약할 경우 생산적인 결과를 기대할 수 없다. 사회주의 경제가 왜 망했는가? 사회주의가 내거는 평등, 공평 등의 구호들은 절절(節節)이 사람의 감성을 자극하는 호소력을 가졌지만 사람의 행동을 유발하지는 못했기 때문이다. 잘못된 유인구조는 사회적 자원을 낭비시킨다. 사교육의 기승, 공교육의 피폐는 바로 이러한 잘못된 유인구조에 기인한 바가 크다. 현재의 교육시스템 하에서는 학생도, 교사도 학교교육에 충실할 이유가 없다. 학교가 학생들의 놀이터거나 낮잠장소가 된 것도, 교사들이 관료화되고 학교가 관청화된 것도 바로 이런 잘못된 유인구조 때문이다. 아울러 우리 교육이 지속적으로 황폐화되고 있는 또 다른 주요요인은 교육의 국가독점이다. 우리 교육시스템은 공급주체인 국가가 교육의 유인구조를 결정하는 실로 편향적인 시스템이다. 일반 시장에서라면 유인구조는 거의 절대적으로 소비자에 의해서 결정된다. 그러나 적어도 우리나라의 교육시스템에서 교육소비자인 학부모와 학생은 철저히 배제되어 왔다. 그동안 수많은 교육개혁실험이 있었지만 모두 참담한 실패로 끝난 것은 바로 이 때문이다. 지식정보산업사회에서 개인의 능력과 창의성 개발은 필수적이다. 때문에 현대의 교육소비자들은 보다 다양한 소비자욕구에 부합되는 교육을 원한다. 그러나 최종교육공급자인 일선학교는 이러한 소비자의 욕구에 맞추어 변신할 수 있는 능력도 의욕도 없다. 예컨대 학생들이 중국어, 일본어, 서반아어를 제2외국어로 수요하더라도 기존교사의 수에 맞추어 독일어와 프랑스어를 학생들에게 강요하는 그런 시스템이다. 수요가 공급을 창출하는 것은 차치하고라도 공급이라도 수요를 창출했으면 좋으련만, 우리의 학교 현장에서는 교육 공급과 수요가 각자 따로 놀고 있다. 이러다 보니 우리의 교육 게임은 모든 교육주체가 피해자가 되는 ‘잃는 게임(loser's game)’을 피할 수 없다. 현재 비난받고 있는 대학도 역시 피해자의 하나다. 사회에서는 불량품을 양산한다고 아우성이고, 불량원료(?)를 최소화해 품질관리를 하겠다고 하면 차별이니, 정부정책에 따르지 않는다느니 온갖 비난을 쏟아 붓고 간섭한다. 대학인들 국․영․수 문제풀이 기술자를 선발하고 싶겠나. 문제는 획일화된 교육과정과 정부간섭에 있다. 세상이 어떻게 또 얼마나 빠르게 변하는 지에는 눈과 귀를 닫고 자신만의 가치관을 고집스레 강요하는 시민사회단체들도 결코 책임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다양하고 독특한 가치와 커리큘럼이 서로 경쟁하고, 대학뿐만 아니라 중․고등학교까지 자율성이 신장되고 그에 걸 맞는 책임을 지지 않는 한, 우리 교육 시스템에서 엇박자는 계속될 것이고 사회적 혼란과 국론 분열은 가중될 것이다.
이민정 / 한국교총 교육정책연구소 연구원 사회적으로 파장 일으킨 고교 등급제 작년 9월, 교육부는 일부 사립대가 수시전형에서 고교등급제를 실시하였다는 전교조와 일부 학부모단체의 의혹제기를 토대로 서울시내 몇 개 사립대를 대상으로 고교등급제 실태 조사에 착수했다. 조사 결과 2005학년도 수시1학기 전형과정에서 일부 대학이 고교간 학력 차이를 학생들의 서류평가에 반영하는 형태로 고교등급제를 실시한 것이 밝혀졌다. 이 대학들은 고교 내신성적을 불신하여 학교생활기록부 교과성적의 실질반영률은 낮추는 반면 서류평가, 논술․면접의 영향력은 높이고 지원자 출신고교의 최근 3년간 해당 대학의 입학자수, 수능점수 등을 서류전형에서 반영한 것으로 나타나 사회적 파장을 일으킨 바 있다. 고교등급제는 출신 고교의 진학실적이나 수능성적 등을 토대로 고교의 등급을 매기고, 이 등급에 따라 대학입학 전형시 특정고교 출신 학생들의 내신성적에 가산점이나 감점을 부여하여 고교간 학력수준의 차이를 반영하는 것으로, 기여입학제․본고사와 더불어 '3불정책'으로 금지되고 있는 사항이다. 이러한 전형방법은 학생 개인의 능력에 근거한 것이 아니라 학생 개인과 관련 없는 외적 요소에 근거한 평가로 공정한 전형방법이라고 할 수 없다. 그러나 실질적으로 존재하는 학교간의 학력격차를 무시한 채 학생을 선발한다면, 우수한 학생들이 역차별 받게 될 수도 있다는 점에서 고교등급제는 간단히 거부할 수만은 없는 문제이다. 이 글에서는 학생선발에 있어 대학의 자율성과 사회적 공공성의 관점에서 고교등급제를 둘러싼 쟁점들을 살펴보고, 이를 해결할 수 있는 개선방향에 대해서 언급하고자 한다. 실재하는 학력차 무시가 오히려 차별 고교등급제는 1999학년도 대학입시부터 특수목적고 출신 학생에게 적용되던 비교내신제가 폐지되고, 2002학년도 대입전형부터 다양한 전형기준과 학교생활기록부의 반영이 강조되면서 논의되기 시작하였다. 특히 대학이 요구하는 특정한 재능을 가진 학생을 미리 선발하기 위하여 도입된 수시모집제도가 각 대학들의 성적 우수학생을 선점하기 위한 조기입학제도로 변질되면서, 대학 측에서의 고교등급제의 필요성은 높아졌다. 내신을 신뢰하기 어려운 상황에서 수능성적 없이 학업성적이 우수한 학생을 선발하기 위한 수단으로써 고교등급제는 대학으로서는 상당히 필요성이 높았던 제도였다. 대학을 비롯한 고교등급제가 필요하다고 주장하는 측의 도입 근거는 다음과 같다. 첫째, 학교간 학력차가 존재하는 것은 사실이므로 이러한 차이를 대입전형에 반영하는 것은 당연하다는 주장이다. 상대적으로 우수한 학생들이 모인 특목고 학생들의 내신성적과 일반고 학생들의 내신성적을 동일한 것으로 평가하는 것이 오히려 차별의 소지가 있다는 것이다. 둘째, 대학에서 우수한 학생을 선발하기 위해서는 해당 대학에 지원한 학생과 학교 측에서 학생성적에 대한 정확한 판단자료를 제공해야하나, 실제로 고교에서 제공하는 전형자료들은 내신 부풀리기 등으로 변별력이 부족하고 신뢰성이 부족하기 때문에 고교등급제가 필요하다는 주장이다. 특히 2008학년도 이후부터는 내신과 수능 성적이 9등급으로 표기됨에 따라 두 중요한 전형자료의 변별력이 더욱 약화될 것이 예상되는 가운데 내신 반영비율 또한 확대해야 되기 때문에 대학 나름의 내신성적에 대한 판단 기준을 만들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교육적이지 못한 제도로 용납 어려워 이러한 주장에도 불구하고 고교등급제의 실시는 정당화되기 어렵다. 내신성적이 전형자료로서의 효용이 떨어지는 상황에서 대학 자체의 우수학생 선발 기준을 만들려는 시도 자체는 바람직하나, 학생 개인의 성취와는 무관한 고교등급제는 교육적이지도 않고 사회적으로 용인되기 어렵다. 우선, 고교등급제는 학생 개인의 성적이 자신의 노력여하에 따라 평가되는 것이 아니라 출신학교 학생들의 성취수준이든 진학실적이든 외부기준에 의해 영향을 받는 것이므로 공정하지 못하다. 특히 평준화 정책이 시행되고 있는 상황에서는 전국의 고등학생의 약 60%가 추첨을 통해 학교를 배정받기 때문에 실질적으로 자신이 원하는 학교를 선택할 수 없다. 대학입학이 학생 본인이 선택할 수 없는 출신학교나 거주지역에 의해서 영향 받게 되는 것은 헌법상 보장된 ‘개인의 능력에 따라 균등하게 교육받을 권리’를 침해하는 행위이다. 또한 고교등급제는 대학이 원하는 다양한 재능을 가진 학생을 선발하고자 하는 수시모집의 취지를 부정하고, 오히려 경쟁적으로 다른 대학보다 먼저 성적우수 학생을 유치하기 위한 수단이 되고 있다. 원래 수시모집제도는 학업성적이라는 획일화된 학생선발기준에서 탈피하여 다양한 특기와 적성, 경력을 가진 학생들을 선발하여 대학교육에 다양성과 창의성을 더하고자 취지에서 마련된 제도였으나, 우수학생의 기준을 성적으로만 판단하는 대학들의 안일한 태도로 인하여 그 취지가 무색해지고 있다. 마지막으로 학생들의 입시준비가 가정환경, 사교육 등 배경변인에 의해 크게 좌우되는 현실에서 고교등급제 도입은 교육여건이 불리한 처지의 학생들이 선발될 여지를 차단할 우려가 있으며 이는 계층간․지역간 갈등을 불러일으키는 원인이 될 수 있다. 대학의 자율성과 사회적 공공성 문제 일반적으로 대학이 학생을 선발하는 것은 대학의 고유 권한이며 대학의 자율에 해당하는 부분이다. 이러한 입장에서는 고교등급제를 비롯한 기여입학제, 본고사 등 그 실시 여부는 대학에서 자율적으로 결정할 수 있어야 한다. 그러나 우리나라의 대학입시는 정부차원에서 항상 규제가 있어왔으며, 현재까지도 3불정책과 같은 입장을 고수하며 학생선발에 있어 대학의 자율성을 저해하고 있다. 정부 차원에서 대학입시에 규제를 가하게 되는 것은 학생선발을 위한 교육적 필요가 아니라 사회적인 필요에서부터 출발한다. 대학에서의 학생선발은 고등교육의 기회를 제공하는 차원에서 그치는 것이 아니라 향후 개개인의 삶의 질을 결정하는 사회적 선발까지 일정 부분 담당하고 있기 때문에 관련 집단간 이해관계가 첨예하게 대립할 수밖에 없다. 그러므로 학생선발에 있어 대학의 자율성 또한 존중해야 하지만 사회적 공공성도 배려를 하지 않을 수가 없는 것이다. 고교등급제 문제도 이러한 대학의 자율성과 사회적 공공성 사이의 갈등에서 출발한다. 대학의 학생선발 편의를 위하여 고교등급제를 활성화 할 경우, 대학에서 선호하는 지역과 학교로의 학생 이동이 이루어질 것이며, 그렇지 못한 학생들에겐 위화감을 조성하게 되어 지역간․계층간 갈등을 발생할 가능성이 높다. 학교간 학력차로 인하여 대학들이 원하는 학생을 선발하는데 어려움이 있다고 해도 심각한 사회문제를 발생시킬 수 있는 전형방법을 대학의 자율성이라는 이름으로 용인하기는 어렵다. 즉 학생선발에 있어 대학의 자율성은 대학교육의 사회적 공공성의 가치와 무관하게 독립적으로 정의될 수 없다는 것이다. 고교등급제 문제에 한해서는 대학의 자율성보다는 사회적 공공성 측면이 먼저 고려되어야 한다. 많은 사람들이 대학입시가 사회에서의 선발기능을 대신한다고 보고 있으며, 실제로도 그러한 기능을 어느 정도 담당하고 있는 만큼, 학생선발에 공정성을 기할 필요가 있다. 학교별 학력차가 존재한다고 해도 학교별 등급을 결정할 수 있는 객관적 자료가 부족할 뿐만 아니라, 학생이 자신이 원하는 학교를 선택할 수 없는 상황에서의 고교등급제는 대학입시에서의 사회적 공공성을 도외시하는 것이다. 그러나 고교등급제를 실시한 일부 대학의 문제를 가지고 지나치게 대학을 공격대상으로 삼아 갈등을 증폭시켜 대학의 자율성을 위축시키는 것 또한 경계해야 할 것이다.[PAGE BREAK]여전히 존재하는 학교 간 학력의 격차 대학입시에서의 사회적 공공성을 강조한다고 해도 여전히 학교간 학력차 문제는 남아있다. 교육에 있어 평등은 소중한 가치이지만, 이는 교육기회의 평등이지 교육결과의 평등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그러므로 사회적 공공성을 위한 정부의 입시규제나 변별력을 약화시키는 조치들 또한 바람직하다고만은 할 수 없다. 고교등급제도 학생선발에 대한 변별력이 확보되지 못하여 고교간 학력격차를 변칙적으로 반영하는 과정에서 나타난 현상이다. 실질적인 학력차이가 존재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이것을 도외시하는 것은 또 다른 차별이나 불평등의 문제가 될 수 있다. 예를 들어 특목고나 성취수준이 높은 학교 재학생의 경우는 역차별을 받을 수밖에 없는 것이다. 그러므로 이러한 학력차이는 인정하되 교육적으로나 사회적으로 납득할 수 있는 방법으로 학교와 학생을 공정하게 평가할 수 있는 방안 마련이 필요하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현재 지역간․학교간 학력차가 개인의 능력이 아니라 교육여건을 비롯한 외부 환경으로부터 발생한 것은 아닌지, 지역간․학교간 학력차를 줄이고 모든 학생의 학력을 일정 수준 이상으로 끌어올릴 수 있는 방안은 없는지 살펴보고 개선해 나가려는 노력이다. 고교등급제 논쟁은 대학의 고교 내신성적에 대한 불신에서부터 출발하였다. 고교 내신성적 자료가 학생에 대한 객관적이고 정확한 정보를 제공하였다면 고교등급제는 등장하지 않았을 것이다. 우선 학교생활기록부를 교과성적 위주의 서열화 자료가 아닌, 학생의 학업성취기준 도달 정도에 대한 객관적 제시자료로 활용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상대평가로 성적을 표기할 경우 학교간 학력차가 존재하기 때문에 고교등급제, 본고사를 비롯한 내신 이외의 다른 대학별 전형들이 불가피해진다. 둘째, 고교 교육과정 평가에 대한 객관성․신뢰성을 확보해야 한다. 이는 학년별․교과별 교육과정에 따라 학업성취기준을 개발하고, 이에 근거하여 학생들의 성취도 수준을 엄정하게 평가하여 교사평가에 대한 신뢰를 회복해야 한다. 셋째, 이렇게 작성된 고교 학업성취 결과를 대학별․모집단위별 기준에 따라 다양하게 활용할 수 있어야 한다. 대학 측은 다양한 전형방법 개발해야 대학은 학생선발에 있어 자율성과 사회적 공공성을 동시에 확보할 수 있도록 자구적인 노력을 기울여야 할 것이다. 첫째, 대학은 성적위주의 학생선발에서 대학수학능력을 갖춘 학생을 선발하는 데에 대학의 자율성을 최대한 활용하여야 한다. 대학교육에 필요한 자질을 타당하고 신뢰롭게 평가하는 동시에 한편으로는 모집단위별 특성을 반영하여 다양한 전형방법을 개발․활용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둘째, 대학의 학생선발은 그 자체로서의 기능뿐만 아니라 사회적 선발기능도 어느 정도 담당하고 있기 때문에 사회적 공공성 확보가 매우 중요하다. 학교간 학력차를 반영하여 성적이 우수한 학생을 선발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대학수학능력을 갖춘 학생이라면 누구든 적절한 고등교육의 기회를 누릴 수 있도록 사회적으로 불리한 계층에 대한 배려 또한 필요하다. 고교등급제에 대한 가장 근본적인 대책은 실질적으로 존재하는 지역간․학교간 학력격차를 없애는 것이지만 이는 실제로 불가능한 것이다. 다만 학생 개인의 능력의 차이가 아니라 교육여건 불평등으로 인하여 발생하는 학력격차의 문제에 대해서는 교육기회의 평등한 제공 차원에서 다양한 노력이 필요하다. 국가수준에서 학력진단 평가를 실시하여 그 결과를 토대로 부진학생에 대한 책임지도를 강화하고 학생의 수준에 맞는 교육 프로그램 및 다양한 교수․학습자료를 개발하고 지원해야 할 것이다. 또한 불평등한 교육여건으로부터 학력격차가 발생하지 않도록 교육소외지역, 소외계층에 대한 지원 학대를 통하여 교육기회의 불평등을 해소하기 위하여 노력해야 한다. 대학의 학생선발은 일반적으로 대학의 자율에 해당되는 사항이다. 그러나 우리나라에서 대학입시는 일정 부분 사회적 선발기능을 대행하는 역할을 맡고 있기 때문에 대학의 자율성과 더불어 사회적 공공성 또한 확보될 수 있어야 한다. 고교등급제는 대학의 고교 내신에 대한 불신, 학생선발의 변별력 저하 등으로 인하여 대학이 자율적으로 개발한 전형방법이지만 학생 개인의 성적이나 능력과는 무관한 자료들을 바탕으로 고교 등급을 나누고 이를 전형에 반영한 것은 공평하지도 신뢰롭지도 못하다. 학생선발에 있어 대학의 자율성과 사회적 공공성을 동시에 확보하기 위해서는 고등학교에서는 신뢰로운 내신성적을 산출할 수 있어야 하며, 대학에서는 이를 바탕으로 교육적이면서도 사회적으로 납득할 수 있는 학생평가기준을 만들어야 하며, 무엇보다도 정부 차원에서 학력격차를 줄이기 위한 노력을 기울여야 할 것이다.
신현호 / 경기 안산 단원고 교사 서울대를 비롯한 서울의 일부 사립대학들의 통합형 논술을 통한 학생선발과, 특목고학생들을 동일계 선발이 아닌 특기자 선발로 확대함으로써 특목고 특혜라는 신(新)고교등급제가 이슈가 되고 있다. 잘하는 학생이 피해보는 것은 문제 논란의 핵심은 내신을 강화하여 대학입시를 치름으로써 공교육을 살리고, 사교육비를 절감하자는 취지이다. 그렇지만 대학입장에서는 학교마다 실력이 다른데 일률적인 내신적용과 내신의 비중 강화는 곤란하다는 것이다. 우리나라의 고등학교를 살펴보면 평준화지역, 비평준화지역, 특수목적고, 자립형사립고, 실업계고 등 다양한 형태가 있고, 학생들의 학력도 도농간, 강남북간의 차이에서 보듯이 지역별, 학군별, 학교별 차이가 완연하다. 일부 대도시에만 평준화가 존재하지 아직도 우리나라의 많은 고등학교는 비평준화 지역에 있다. 이렇게 다양한 교육과정과 학력차이를 무시하고 동일하게 학교 내(內) 상대평가를 통하여 입시에 비중을 높인다는 것도 비정상적인 말이다. 교육부의 2008 학년도 대학입시안이 상대평가로 인한 내신비중의 강화로 인하여 현재 고1 교실은 큰 혼란을 맞고 있다. 특목고나 자립형 사립고에 다니는 학생들이 고액의 사교육과, 고위층자녀로 무장된 듯한 여론과 언론의 비판은 어이없을 정도다. 3불 정책(본고사 금지, 기여입학 금지, 고교등급제 금지)을 찬성하는 쪽이 기득권층이라고 하는 의견이 있는데, 노력하여 공부를 잘하는 것도 기득권층인지 묻고 싶다. 필자가 특목고에서 학생을 지도한 경험에 따르면 그들은 어려서부터 바른 가정교육과 열심히 공부하고 노력한 학생들로 대부분 서민의 자녀이고, 바른 국가관과 창의성을 지닌 이 나라의 인재임에 틀림이 없다. 내신 비중의 확대는 곧 이러한 수월성 교육을 받고 있는 일부 자립형 사립고와 특목고 등 공부 잘하는 학생들이 모인 학교 학생들에게는 치명적이다. 모든 사람이 평등하게 교육을 받는다고 해서 평준화라는 말은 참 듣기 좋은 말이지만, 똑똑한 인재를 키워 성장시키는 것도 국가의 몫인데, 잘하고 열심히 하는 학생에게 피해가 간다면 이 제도도 문제가 있다. 모든 고교 내신 동일취급은 부적절 이 때문에 고교등급제는 설득력을 얻고 있다. 고교등급제를 반대하는 논리는 잠재적 능력을 가진 학생들을 어려운 가정환경․사회적 조건과 교육인프라 등의 제약으로 인하여 가능성의 기회조차 없게 만든다는 것이다. 하지만 각 대학에 농어촌 전형이나, 서울대 입시안의 예를 들면 어려운 지역의 실정을 감안하여 지역할당제 등으로 인재를 선발하고 있다. 그런데 열심히 공부하고 잘하는 학생에 대한 배려가 없다면 말이 되지 않는다. 특목고의 경우 일반계고처럼 학생들이 0.05%, 0.1%라는 내신을 받기란 불가능에 가깝다. 특목고 학생들의 내신경쟁은 너무 치열하고 우수한 학생들이 모여 있어서 전교 1등의 석차백분율도 7~8% 정도이다. 따라서 정시모집의 일반전형으로는 일반계고 학생들에게 내신성적에서 뒤져 수능이나 논리력 등 모든 면에서 뛰어나도 입시에서 떨어질 수밖에 없다. 이것을 만회해 주기 위한 특목고에 일부 쿼터를 정해 선발하는 것은 당연하고 이것이 신(新)고교등급제라는 것은 터무니없는 말이다. 전국 2095개의 고등학교에서 서울대에 수시든, 지역할당이든, 정시든 진학시킨 고등학교는 823곳이다. 이런 차이를 무시하고 모든 고교의 내신을 동일하게 취급하라는 것은 어불성설이고 이것이 평등에 어긋나고, 기득권을 가진 사람들의 횡포라 운운하는 것은 진정으로 노력하고 열심히 공부한 학생들에 대한 모독이라고 본다. 학생 선발의 권한은 대학에 맡겨야 고교등급제를 그 대학에서 실시하든 실시하지 않던, 대학은 우수한 인재를 선발하여 살아남아야(?)하는 것이 바로 현실이다. 그 대학에서 우수한 인재를 선발하는 시스템을 못 갖추고 일부지역에 편향적이라면 그 대학은 더 이상의 발전은 없을 것이고 지역주의 대학으로 낙인찍혀 사회적 인식이 추락하고, 대학으로서의 위상의 실추와 나락의 길을 걸을 것이다. 실력이 있는 학생이 그 대학을 못 갔다면 그 좋은 실력으로 자신을 뽑아주는 더 좋은 대학을 가서 자신의 자아를 실현하면 되는 것이다. 고교등급제는 평등지상주위와 학력지상주위를 부추기는 일부 사람들에게서 비롯된 것으로 더 이상 이런 소모적인 논쟁은 없어야 하겠다. 고교등급제와 관련하여 학생 선발권과 관련한 일련의 사항은 대학에 맡기는 것이 옳으며, 우리는 그 대학에 대하여 건전한 비판과 조언을 하고 늘 지켜보는 자세를 갖는 것이 필요하다고 본다.
조현호ㅣ울산 옥현초 교사 절터 찾아가는 길 벌써 방학이 끝나고 새 학기가 시작되었네요. ‘시간은 화살처럼 난다’는 서양 격언이 실감납니다. 새로운 마음으로 새 학기를 시작합시다. 이번 호와 다음 호는 옛 절터를 찾아갑니다. 절터란 절이 있던 곳입니다. 이런 저런 사연으로 퇴락하여 망한 절도 있고, 외침으로 스러진 절도 있으며 이념에 의한 탄압으로 종적을 감춘 곳도 있습니다. 회암사터나 미륵사터, 청룡사터처럼 웅장한 규모의 절터도 있고 초석 몇 개만 달랑 남은 작은 규모의 절터도 있습니다. 황량한 들판이나 우거진 숲속에서 과거의 영화를 추억하며 줄곧 그 자리를 지키는 그곳에 가면 ‘아, 내 속에 내가 있었구나’라는 평범한 진리를 깨닫습니다. 그곳에서 만나는 유물이나 유적은 나그네로 하여금 옛 모습을 상상하게 하고 흔한 들꽃 하나도 보물이 되어 다가옵니다. 그럼, 절터로 떠나볼까요? 호국사찰 금당엔 소나무가 주인으로 - 원원사터 원원사는 안혜, 낭융 등 네 대덕이 김유신, 김의원, 김술종 등과 함께 발원하여 세웠다고 합니다. 안혜와 낭융의 제자였던 광학과 대연 등은 고려 건국시 해적을 물리치는데 큰 역할을 하였습니다. 그들은 명랑법사의 법맥을 이어받았는데 명랑은 신인종(神印宗)의 시조였습니다. 그 자신 또한 문무왕때 당나라를 비법으로 물리쳐 삼국통일의 주역이 되었습니다. 이렇듯 원원사는 법(法)으로써 외침을 극복하고자 했던 호국사찰로 창건되었습니다. 높은 축대 가운데에는 돌계단이 마련되어 있으며 이 계단을 오르면 쌍탑과 석등이 나타납니다. 쌍탑은 윗기단에 십이지신상을, 1층 몸돌에는 사천왕상을 고부조로 새겼습니다. 통일 이후 탑에서 인왕상을 대신하여 사천왕상이 등장하고 윗기단에서처럼 십이지신상이 처음 등장하는 점이 인정되어 최근에 보물로 지정되었습니다. 동탑과 서탑을 오가며 12지 동물을 맞춰보는 재미가 쏠쏠한데 안타깝게도 양쪽 탑 어디에도 뱀을 볼 수 없습니다. 아직 문화재 안내판조차 세워지지 않은 이 탑은 대표적인 ‘초고속 승진형’문화재입니다. 이전까지 이 탑은 사적에 뭉뚱그려 포함될 뿐 국가나 시·도로부터 지정 유형문화재로는 대접을 받지 못했습니다. 그러다 문화답사 붐을 일으킨 한 교수가 문화재계 수장이 되면서 국가지정 유형문화재인 보물로 격상한 것입니다. 하루아침에 지위가 격상했으니 사람으로 치면 복권에 당첨되어 소위 대박 맞은 경우라 하지 않을까요. 시대를 잘 타면 사람도, 문화재도 출세하나 봅니다. 탑은 역사성을 인정받아 국가지정 보물이 되었지만 제 마음속 보물은 두 탑을 바라보고 있는 금당터입니다. 금당 주인인 부처는 사라졌고 그 자리엔 초석을 비껴가며 굵직하게 잘 자라준 소나무들이 새 주인이 되었습니다. 원원사의 폐망과 함께 흙이 덮이고 그 위에 작은 씨앗들이 날아와 금당의 새 주인으로 정착하기까지 얼마나 많은 시간이 흘렀고 그동안 어떤 역사가 펼쳐졌을까요. 그래서 감히 그 연륜에 존경하는 마음을 보태고 싶은 것입니다. 나를 묻으러 가는 길 - 무장사터 '무장사'라 하면 저는 개구리를 먼저 떠올립니다. 그러니까 지난 3월 경칩이 막 지났을 때였습니다. 절터로 가는 길은 갓 겨울잠에서 깨어난 연갈색 개구리들로 지천이었습니다. 막 땅을 헤집고 나온 놈들이라 사람을 피하지 않아 행여 밟을까 조심스레 한 발 한 발 떼며 계곡으로 들어갔었지요. 지난 7월 다시 이곳을 찾았을 때는 이제 제 색을 입고 건강하게 자란 놈들이 곳곳에서 퍼덕이고 있었습니다. 특히 아미타조상사적비가 서있었을 비좌 안에는 무당개구리 몇 마리가 둥지를 틀고 있어 마치 이 절터를 지키는 금와보살인듯 했습니다. 《삼국유사》 편에는 신라 38대 원성왕의 아버지가 숙부 파진찬을 추모하여 무장사를 세웠고, 소성대왕의 비 계화왕후가 남편의 명복을 빌기 위해 절 위쪽에 아미타전을 짓고 아미타불상을 조성하였다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또한 무장사(?藏寺)란 이름은 태종이 삼국을 통일한 후 이 깊은 골짜기에 병기와 투구를 감추어 둔 곳이라 해서 유래한다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절이 입지했던 곳은 경주 동북쪽 암곡리 북쪽으로 골짜기가 깊고 험준한 곳입니다. 암곡(暗谷)이라는 지명에서 예상하셨겠지만 지금도 비포장길을 따라 한 시간 정도는 걸어가야 하는 오지에 있습니다. 그래서 성급한 사람은 절터를 찾기도 전에 포기하고 돌아가기 마련입니다. 여유 있는 마음으로 걸으면서 활엽수 가득한 숲을 감상하고, 계곡을 열 번 남짓 가로지르면서도 물이 옷에 젖는 것을 기꺼이 받아들이는 마음이 있어야만 도달할 수 있습니다. 속세에서 알게 모르게 습득한 사악함을 모두 버려야만 나타나는 절터, 그래서 이곳은 나를 묻어 감추러 가는 길입니다. 현재 아미타조상사적비의 이수와 귀부, 삼층석탑이 남아있습니다. 사적비의 비신은 없어졌지만 일부 비편을 통해 이곳이 무장사임이 밝혀져 기록과 유물이 일치하는 곳입니다. 귀부는 창림사터의 그것과 같이 특이하게 쌍귀부입니다만 목이 절단되는 등 파손상태가 심합니다. 특히, 비좌 둘레에 십이지상을 조각하여 희귀한 경우를 보여주네요. 현재 여덟 종류의 십이지가 확인되지만 나머지는 파괴되어 볼 수 없습니다. 두 물줄기가 만나는 언덕 위에 우뚝 솟은 삼층석탑은 2층 기단에 3층 몸매를 가진 전형적인 통일 후 석탑입니다. 탑 윗기단엔 안상(眼象)이 두 면석에 걸쳐서 나타납니다. 나눔의 미학을 배울 수 있습니다. 왕실의 원찰로, 통일 후 평화를 갈구하는 마음으로 무기와 투구를 묻어두었다는 이 절은 고려 중기 경에 폐사한 것으로 보입니다. 사자가 우주를 받들고, 극락조가 날아다니고 - 영암사터 저는 경남 합천 삼가란 곳에 초임발령을 받았습니다. 영암사는 초임지에서 가까이 있었는데 직원연수로 처음 다녀온 후로는 그 절의 매력에 푹 빠져버렸습니다. 학교 아저씨 오토바이를 타고 산길을 달려 절이 나타날 쯤이면 사랑하는 사람과의 만남을 기다리듯 콩닥콩닥 뛰는 가슴을 진정해야 했습니다. 특히 가는 길에 만나는 오래된 이팝나무가 하얀 꽃을 피울 때면 그 아름다움에 취했고, 모산재 깊숙한 땅속에서 나오는 약수는 감로수와 같았지요. 초임이라서 불미스런 일들이 일어나 힘들었을 때면 이곳에 와 쌍사자석등과 무언의 대화를 나누며 심기일전하곤 했습니다. 그래서 영암사터는 내겐 발령동기요, 기쁨과 슬픔을 함께 나누었던 막역지우(莫逆之友)가 되었습니다. 당시 그 친구는 일반인들에게 많이 알려지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언제 찾아도 한적한 느낌이 좋았었죠. 하지만 이제는 황매산과 모산재를 등산하려는 사람들에겐 명물이 되었고 특히 절터를 답사하고자 하는 이들에게는 답사1번지가 되었습니다. 이 친구가 가진 매력이 무엇이냐고요? 한둘이 아닙니다. 우선 절터를 들어섰을 때 잘 다듬어진 석축이 눈에 들어옵니다. 돌못으로 석축이 쉽게 무너지지 않도록 하였고 치성과 같이 요철을 두어 조형미가 풍깁니다. 특히, 쌍사자석등이 자리한 석축은 자칫 사각이 주는 밋밋함을 보완하기 위해서인지 돌출한 석축 좌우에 무지개 모양의 둥근 계단을 배치해 두었습니다. 계단 폭이 아주 좁아서 겸손하라는 계시를 던집니다. 쌍사자석등은 석축 아래에 서서 바위산인 모산재를 배경으로 올려다 볼 때 최고의 멋을 부립니다. 석등을 한가운데 두고 내 몸뚱이를 좌우로 조금씩 이동하면 모산재의 절경이 파노라마처럼 펼쳐집니다. 과히 영암사 답사의 절정이라 하겠습니다. 이 석등은 풍화에 의한 상처를 보이지만 매끈한 속리산 쌍사자석등보다는 인간적이고 박물관에 갇혀있는 중흥사터의 그것과는 비교할 수 없는 자유로움을 만끽하고 있습니다. 젖살 오른 사자 두 마리가 모산재의 절경을, 푸른 하늘을, 우주를 받치는 모습이 지금도 아련합니다. 금당터를 지키는 역할은 여섯 마리 사자가 맡았습니다. 사자의 형상이 확실한 놈들도 있지만 개와 같이 귀를 반쯤 접은 넉살좋은 놈들도 있습니다. 삼면에 두 마리씩 자리하고 있는데 북쪽 면에는 새기지 않은 것이 이색적입니다. 아마 신령스런 바위들이 있기에 권속이 필요 없나 봅니다. 금당터 사면 계단에 만들어진 난간은 다른 곳에서는 볼 수 없는 가릉빈가 형태를 하고 있습니다. 극락정토에 산다는 이 새는 사람의 형상인데 날개를 가지고 있어 극락조라고도 하지요. 이 금당이 곧 극락정토임을 의미합니다. 안타깝게도 정작 이 친구 이름이 영암사였는지는 장담을 할 수 없습니다. 이 일대에 수많은 절들이 있었는데 이곳이 영암사임을 뒷받침하는 사료가 부족하기 때문이죠. 서금당지에 남은 귀부 두 점의 주인공도 누구인지 알 수 없습니다. 영암(靈巖)이라는 이름마냥 사력 또한 신령스러운 곳이라 봐야겠죠? 이승과 저승을 넘나드는 사랑 - 만복사터 생육신이었던 김시습은 경주 금오산 아래 용장사에서 최초의 한문소설인 《금오신화》를 썼습니다. 금오신화 중 의 배경이 남원 땅 만복사터입니다. 만복사저포기는 노총각 양생과 왜란 통에 죽은 처녀귀신이 이승과 저승을 넘나들며 애틋한 사랑을 한다는 줄거리입니다. 김시습이 이 글을 쓸 때만 해도 만복사는 퇴락하였던가 봅니다. 부처님과 저포놀이를 해서 이긴 양생에게 드디어 천생배필이 등장하고 두 사람이 절에서 사랑을 나누는 부분이 나옵니다. 이때 만복사는 이미 퇴락하여 스님들은 한쪽 구석진 방에 머물고 있었다. 법당 앞에는 행랑만이 쓸쓸하게 남아 있고, 행랑이 끝난 곳에 아주 좁은 판자방이 있었다. 양생이 여인의 손을 잡고 판자방으로 들어가자, 여인도 어려워하지 않고 들어왔다. 서로 즐거움을 나누었는데, 보통 사람과 한 가지였다. 양생은 그녀가 혼령임을 알게 되지만 그녀에 대한 사랑을 접지 않습니다. 심지어 그 여인이 다른 나라에서 남자의 몸으로 다시 태어났는데도 말입니다. 장례를 치른 뒤에도 양생은 슬픔을 이기지 못하였다. 밭과 집을 모두 팔아 사흘 저녁이나 잇따라 재를 올렸더니, 여인이 공중에서 양생에게 말하였다. "저는 당신의 은혜를 입어 이미 다른 나라에서 남자의 몸으로 태어나게 되었습니다. 비록 저승과 이승이 멀리 떨어져 있지만, 당신의 은혜에 깊이 감사드립니다. 당신도 이제 다시 정업을 닦아 저와 함께 윤회를 벗어나십시오." 양생은 그 뒤에 다시 장가들지 않았다. 지리산에 들어가 약초를 캐었는데, 언제 죽었는지는 알지 못한다. ‘사랑과 영혼’이란 제목의 영화가 있었지요? 그 영화의 원조격인 시공을 초월한 사랑이야기는 오늘도 만복사 넓은 터에 애잔하게 전해오고 있답니다. 이름 잃은 그대여 사료가 남아있어 그나마 절 이름을 알 수 있는 곳도 많지만 대부분의 절터는 이름도 없이 그 지역의 지명을 따서 붙여진 경우가 많습니다. 장항리절터가 그러합니다. 석굴암이 있는 토함산 한 자락에 우뚝 솟아있는 절터인데 불대좌와 쌍탑, 금당터가 남아있습니다. 장항리(獐項里)라는 지명답게 국보 236호로 지정된 서탑이 고개를 쑥 내민 듯 우르러 보입니다. 이곳 쌍탑 배치는 독특합니다. 금당터 중심에 자리한 불대좌를 중심으로 해서 두 탑이 일직선상에 있습니다. 이웃한 감은사탑이 금당을 뒤로 두고 쌍탑으로 서 있는 것과 같이 일반적인 쌍탑 배치 형식과는 전혀 맞지 않는 것이죠. 그 이유는 훼손이 심한 동탑이 제자리가 아닌 곳에 있기 때문입니다. 절터가 서 있는 곳 양쪽으로 계곡물이 흐르는데 물난리를 맞으면서 절터가 유실되고 있기 때문입니다. 특히 동쪽 절터의 유실이 심해서 동탑이 계곡에 떨어지는 일이 생겼습니다. 그 동탑 부재를 모아 비교적 안전한 서탑쪽으로 옮겨 두었던 겁니다. 의성 관덕동 삼층석탑은 여성스러운 이미지가 강합니다. 아래기단에는 비천상을 새겨 두었고 윗기단에는 사천왕상을 새겨 두었습니다. 관덕마을이란 어감에서 전혀 예상치 못한 아기자기함이 이 절터에서 느껴집니다. 이정표도 제대로 안 되어 있어 한참을 헤매다가 마을뒷길을 따라 절터에 올랐을 때 저는 이미 감상적인 사람이 되어 버렸습니다. 그 감상은 과거에 만났던 옛사랑에 대한 기억을 자꾸만 끄집어냅니다. 자그마한 탑이 비천상으로, 사천왕으로, 돌사자로 치장을 하고는 혼자서 절터를 지키고 있는 모습에 한참동안 걸음을 떼지 못했죠. 이름마저 잃고 동네 마을 이름을 갖다 붙여 놓았지만 분명 이 절도 분황사처럼 향기로운 이름이 있었을 터입니다. 그대, 관덕동 석탑에게 그대 / 안으면 쏙 안길 듯 / 어이해 홀로 골바람 맞고 서 계신가 / 몸서리치는 내 사랑아 / 그대 / 사천왕으로, 보살로 예쁜 화장을 하고 / 돌사자로 하여금 너를 돋우게 하여 / 맘껏 멋 부리려는 구나 / 천녀들이 날개 달아 / 부처의 나라로 데려갈 듯하구나……. / 그대, 자네 / 그 자리 잘 지키고 계시게나 / 첫사랑에 목멘 사람 있거든 / 그를 데리고 꼭 찾아옴세…….
충북 지역의 자랑으로 자리 메김 "동문회를 비롯한 지역 주민과 함께 한 개교 100주년 행사를 통해 청산초등학교는 새 역사를 쓸 것입니다." 짧지 않은 시간 속에서, 특히 인구 약 4000명에 불과한 작은 면소재지에 위치한 초등학교가 약 9500명의 졸업생을 배출한 것은 옥천뿐만 아니라 충북 전체에서도 자랑스러운 일이다. 지난 4월 청산초는 개교 100주년을 맞아 100주년 기념탑 설치 및 기념 식수, 학생들의 학예 발표회, 사진 전시회, 시화전 등의 행사를 가졌다. 특히 동문들의 힘으로 건립된 100주년 기념탑은 청산초의 대표적인 상징물이 되었다. 이 학교 졸업생인 박수용 조각가에 의해 제작된 기념탑은 현재의 지구와 미래의 지구 모습을 형상화하여, 미래를 짊어져 나갈 청산초가 되길 바라는 마음을 표현했다. 총동문회 부회장을 맡고 있는 41회 졸업생 박명식 씨는 "우리 모교는 신교육의 산실로 조동호 선생을 비롯한 많은 독립운동가를 배출한 자랑스러운 학교다. 100주년 기념탑의 의미에 맞게 앞으로도 많은 인물들이 탄생하길 기원한다"며 "객지로 간 후배들이 고향으로 돌아와 교육을 받을 수 있도록 힘써야 할 것"이라는 충고를 하기도 했다. 또한 명예졸업장 수여라는 뜻 깊은 행사도 함께 진행했다. 26∼30회 졸업생 104명을 대상으로 한글 졸업장을 다시 수여한 것. 일제 시대 조국을 잃어버린 아픔 속에서 일본이름과 일본어로 된 졸업장을 갖고 있는 것을 아쉬워한 동문들을 위해 마련된 행사이다. 이를 위해 동문회와 학교가 함께 수소문을 하여 이미 고인이 되었거나, 연락이 끊긴 동문을 제외한 전원에게 우리말 졸업장을 전달했다. 새로운 졸업장 수여는 졸업생들에게 매우 감격스러운 행사였다. 청산초는 앞으로도 도서관 증축, 전자도서관 신축, 100주년 사료관 건립 등의 사업을 계속 진행할 예정이며, 특히 100주년 사료관을 위한 자료 수집에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이와 같은 행사가 주변에 알려지면서 인근 학교뿐만 아니라 기념 행사를 준비하는 전국의 학교에서 문의를 해 오고 있다. 새로운 학교로 바꾸기 위한 다짐 이러한 행사들은 청산초등학교를 새롭게 바꾸어 나가는 데 도화선이 되고 있다. 곽중섭 교감은 "이번 100주년 기념 사업을 통해 청산면을 하나로 묶는 계기를 마련했다. 앞으로 동문회, 지역주민과 힘을 모아 원어민 영어 교사 배치, 교원 보충, 시설 확충 등을 통해 새로운 학교로 탈바꿈 할 것"이라고 말했다. 비록 개교 100주년을 맞이한 학교지만, 다른 농어촌 학교와 마찬가지로 이농(離農) 현상에 따른 학생 수 감소라는 어려움에 직면해 있는 청산초를 위한 말이다. 이 학교 교무부장인 진순장 교사 역시 "즐겁게 일하고, 아낌없이 베푸는 것을 사명감으로 하는 선생님들이 모여 있는 우리 학교는 앞으로 새로운 모습을 보여줄 것"이라고 다짐했다. 곽 교감과 진 교사의 말은 "학교가 100주년이 되었다는 것이 믿겨지지 않는다. 100주년 기념행사 때 옛날 학교 사진을 보니까 신기하기도 하고, 우리학교가 자랑스러웠다"며 애교심을 숨기지 않은 김창희군(5학년)의 이야기 속에 그대로 나타났다. 올해 열린 제4회 전국지용백일장에서 대상을 받아 학교의 큰 자랑인 새내기 송유진 교사 역시 "처음 발령받은 학교에서 3, 4대가 함께 모여 행사를 준비하는 모습을 보며 우리 학교의 역사적 무게감을 경험하게 되어 큰 영광"이라며 "앞으로도 학생들과 함께 역사에 누가 되지 않도록 노력할 것"이라고 다짐했다. / 엄성용 dyddl96@kfta.or.kr
이상익 / 영산대 교수, 철학 지금 우리 사회에서 교원의 권위는 추락할 만큼 추락하여, 더 추락할 여지가 없을 것 같다. 초중등학교의 경우 얼마 전까지는 ‘촌지 문제’가 교사의 권위를 추락시키던 주범이었는데, 최근에는 ‘성적조작 문제’까지 불거져 교사들의 권위를 또 한번 거꾸러뜨렸다. 대학에서는 ‘성희롱’이나 ‘연구비 유용’ 등이 교수들의 권위에 먹칠을 하는 단골 소재로 등장한 지 오래되었다. 그리하여 교원들의 권위나 사회적 위상은 나날이 추락하는데도, 요즘 교직을 원하는 사람들은 해마다 증가하여, 교직에 진입하는 것은 ‘하늘의 별따기’처럼 어렵다고 한다. 교사의 위상은 추락하고 있는데도 교직을 선호하는 사람들이 느는 까닭은 무엇일까? 현실적으로 보자면 이 문제에 대한 답변은 간단할 수도 있다. 그러나 우리는 이 문제에 대해서 여러 가지를 고려하면서 신중하게 답변해야만 한다. 많은 사람들은 그 까닭을 “교직은 ‘철밥통’으로 불황기 최고 인기직종이기 때문”이라고 생각할 것이다. 이러한 생각은 매우 현실적인 답변이겠지만, 또한 매우 위험한 답변이기도 하다. 이들의 생각에 의하면 교육은 서비스산업이요, 교직은 서비스업종일 뿐이다. 그렇다면 시세(市勢)에 따라 부동(浮動)하는 서비스업 종사자들에게 우리가 기대할 수 있는 것은 무엇이겠는가? 그들에게 우리의 교육을 맡겨둘 수 있는 것인가? 우리의 교육현실을 개선하고자 조금이라도 고심한다면, 우리는 고육책(苦肉策)으로 다른 답변을 찾아내지 않을 수 없다. 요컨대 사후적(事後的)으로라도 ‘교직의 사명’을 새롭게 각성시킴으로써, 이해(利害)에 부동하는 서비스업종과 교직을 차별화시켜야 한다는 것이다. 필자는 근래의 ‘교원평가제’에 대한 논란도 근원적으로 교육 또는 교직의 본질에 대한 인식과 연관이 있다고 본다. 필자가 대략 알기로는, 교원평가제를 찬성하는 논리는 교육의 질과 경쟁력을 높이기 위해서는 교원들을 평가하여 차등적으로 대우해야 하며, 교원의 평가에는 수요자들인 학생이나 학부모도 참여해야 한다는 것이다. 필자가 짐작하기에 이러한 논리의 저변에 깔린 전제는 ‘교육은 서비스산업’이라는 것이다. ‘교육의 경쟁력’ 운운하는 것도 그렇고, ‘수요자(고객)의 평가’라는 것도 그렇다. 지금 우리 사회에는 이러한 생각이 점차 확산되고 있으며, 대학교육은 이미 시장경쟁의 논리에 내맡겨져 있다. 이 시점에서 필자는 구태의연하게 ‘교육의 본질이 무엇인가’하는 물음을 다시 던져본다. 우리는 흔히 교육을 ‘지식기능 교육’과 ‘인격덕성 교육’으로 대별한다. ‘지식기능 교육’은 피교육자가 원하는 지식과 기능을 전수하는 것이니, 이 측면에서는 교육은 서비스 산업과 유사하다. 외국어를 가르치고 컴퓨터를 가르친다는 점에서는 공교육기관은 저자거리의 사교육기관과 다를 바가 없다. 요즘에는 사교육기관에서 더 잘 가르친다는 소문도 공공연하다. 그렇다면 공교육기관을 폐지하고, 사교육기관에 일임하면 좋을 것인데 왜 그렇게 하지 않는 것인가? 그것은 ‘인격덕성 교육’이 교육의 다른 한 축을 이루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인격덕성 교육’은 피교육자가 원하던 원하지 않던, 교육자의 입장에서 바람직하다고 생각되는 방향으로 교육해 가는 것이다. 이는 ‘고객’이 원치 않는 것도 강요하는 것인바, 이 측면에서 교육은 서비스 산업이 될 수 없는 것이다. 우리는 보통 사교육기관에 인격교육을 기대하지는 않는다. 또 인격교육에서는 피교육자를 한 사람 한 사람 감화시키는 것이 중요할 뿐, ‘교육의 경쟁력’이란 애초에 어불성설(語不成說)인 것이다. 교육을 단순히 서비스산업으로 치부할 수 없다는 데에 교직의 특수성이 있다. 그리고 교직의 이러한 특수성은 결국 교원 개개인을 ‘독자적인 권위체’로 인정할 것을 요구하는 것이다. 교사는 시세(時勢)나 주변의 평가에 영합하지 않고 오직 스스로의 양심에 따라 교육할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런데 미숙한 학생들은 교사의 심모원려(深謀遠慮)를 이해하지 못하고 호오(好惡)를 표출하는 경우가 많다. 이러한 맥락에서 본다면 지금 논의되는 방식의 교원평가제란 부적절할 수 있다. 요컨대 필자의 생각은 다음과 같다. 교원평가제에 대한 찬반은 교육을 바라보는 시각에 따라 다를 수 있다. 교육을 서비스산업이라고 인식한다면 당연히 교원평가제를 시행해야 옳을 것이다. 그러나 교육을 서비스산업 이상의 것이라고 한다면 교원평가제의 시행은 부적절할 것이다. 마찬가지로 어떤 교원이 교직을 단순히 ‘호구지책(糊口之策)’으로 여긴다면 그에게는 교직이란 서비스업일 것이다. 서비스업 종사자는 고객의 평가를 달게 받아야 한다. 그런 교원이 교원평가제를 반대하면 그것은 ‘무사안일주의’로 밖에는 인식되지 않을 것이다.
이대영 / 서울시교육청 공보담당관실 장학사 최근 2008년 논술고사를 둘러싼 본고사 논쟁이 한창이다. 그러면서 꼭 나오는 이야기는 ‘대학별 논술고사는 공교육만으로는 준비가 안 되고, 사교육을 받아야만 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과연 그런가? 마치 공교육의 한계성과 사교육의 우월성을 대조하는 듯한 이러한 주장은 타당한 것인가? 공교육 신뢰회복의 방안은 공교육과 사교육의 속성을 비교하면서 찾을 수 있을 것이다. 혹자는 공교육에는 경쟁이 없고, 사교육에는 경쟁이 있다고 한다. 교사는 ‘철밥통’으로 신분이 보장되고, 학원강사는 치열한 ‘밥그릇 싸움’을 한다고도 한다. 공교육은 원하는 특정한 대상이 아니라 일정조건이 갖춰진 일반 다수를 위한 것이고, 사교육은 원하는 부분을 원하는 대상에 맞춘 교육으로 본다. 교사는 잡무가 많지만, 학원강사는 잡무 없이 수업에만 전념하면 된다고 알고 있다. 공교육에는 투자가 별로 없지만, 사교육은 적극적인 투자가 있다고 생각한다. 학교는 전인교육을 해야 하지만, 학원은 오직 시험을 잘 치르는 방법만을 가르치면 되기 때문에 사교육이 공교육을 능가한다고 한다. 이러한 것들이 공교육과 사교육을 보는 시각의 일 부분이다. 이런 현실 때문인지는 몰라도 입시가 치열한 교육현실에서 우리의 학부모․학생들은 공교육보다는 사교육을 선호하는 경향이 있다. 그리고 이런 현상은 언제나 비판의 대상이 되어 왔다. 그래서 심지어 어떤 사람은 공교육은 항상 ‘피해자(被害者)’고 사교육은 ‘피의자(被疑者)’로 지목하기도 한다. 그러나 이런 이분법적인 논리는 우리 교육에 도움을 주지 않는다. 공교육도 어떤 의미에서는 사교육을 도입하였다. 특기적성교육이란 명목으로 행하는 교과관련 방과후교육활동, 학원강사를 동원한 교육방송(EBS) 강의, 일부 학교에서 외부강사를 초빙하여 시행하는 논술특강 등이 대표적이다. 이런 상황이라면 차라리 기존의 인식을 거꾸로 해 보는 것은 어떨까? 장점이 많은 사교육이 오히려 부실한 공교육 때문에 악으로 매도당하는 ‘피해자(被害者)’라고 말이다. 공교육이 사교육의 치열함과 서비스 정신을 배워야 하지 않을까? 일반적으로 수입면에서도 교사와 강사는 대조된다. 학원강사는 돈을 많이 벌고 교사는 봉급이 적다는 것이다. 하지만 소위 언론에서 말하는 억대 수입을 올리는 스타강사는 극소수이다. 그들을 학원강사 전체로 보아서는 안 된다. 상당수의 학원강사는 현직교사보다 적은 수입에 신분보장도 안 되는 생활을 하고 있다. 현직교사 못지않은 잡무에도 시달리고 있다. 강의를 통해 돈을 벌 수 있는 기간, 소위 수명도 짧다. 굳이 공교육이 사교육과 경쟁을 하려면 상대를 분명히 알아야 한다. 사교육은 환경적으로 좋은 조건이다. 대상은 공부하려고 제 발로 찾아오는 적극적 수요자이다. 스스로 선택하는 강좌이니만큼 어느 정도 대상의 수준도 비슷하다. 강사를 다른 업무로 이끄는 제약하는 공문도 없다. 넓은 범위보다는 좁은 범위를 세분화해서 깊이 있게 가르칠 수도 있다. 공무원으로서의 품위유지 의무도 없다. 이런 상황에서 자유롭게 강의한다. 그러면 학원강사는 어떤 생각, 어떤 상황인가. 학원강사는 학생을 소비자로 본다. 따라서 자신의 강의를 상품으로 간주한다. 그러므로 그 상품을 소비자가 우선적으로 선택하게하기 위해서 최선의 마케팅을 하는데, 수업의 질은 기본이고 수업의 디자인과 효율성, 수업의 개성과 차별성 등 학생들을 감동시키고 정서를 자극하려는 노력을 한다. 심지어는 사생활도 접고 오로지 재미있는 수업방법의 연구에만 몰입하는 강사들도 많다. 학생이 질문하면 학원강사들은 질문에 대한 답변은 물론 그 문제와 연관된 참고자료를 학생에게 준다. 참고서의 선택도 단순히 부교재로 채택하는 것이 아니라, 학원강사는 거의 모든 참고서를 자신이 검토하고 코멘트를 달아 수강생들에게 적절한 참고서의 선택을 도와준다. 강의가 없는 시간에는 교재와 프린트물 제작하고, 수강생 모집 전략을 짜며, 홈피나 싸이월드, 카페, 블로그의 수강생 질문에 답변을 달아준다. 그들 나름대로의 잡무(?)인 것이다. 또한 그들에게는 주말이 없다. 오히려 주말이면 수업이 더 많아진다. 한가로이 휴일을 즐길 여유가 없다. 여유를 가지면 다른 강사에게 지기 때문이다. 흔히 학원강사는 지식을 파는 장사꾼이라고 한다. 그러나 그런 강사들에게 학생들은 스승의 날 꽃을 선물한다. 졸업 후에도 지속적으로 찾아오고, 군에 입대한다며 작별인사를 하기도 한다. 학원강사에게 자신의 진심을 털어놓기도 하며, 자신의 진로에 대하여 진지하게 자문을 구한다. 학원사회를 정글이라고 한다. 무서운 정글에도 꽃은 핀다. 이것을 공교육에 종사하는 주체인 우리는 어떻게 이해할 것인가? 반면에 교사는 어떤가? 물론 학교에 경쟁을 도입하는 것은 ‘신자유주의적’이라고 해서 비판의 말들이 많다. 하지만 어느 정도의 경쟁은 적절한 긴장을 가져온다. 적절한 긴장은 업무의 효율성을 높인다. 어떤 사회치고 경쟁 없는 사회가 있던가? 그리고 학교도 교육은 서비스라는 인식을 가져야만 한다. 이젠 교사라는 권위 의식보다는 학생을 서비스의 대상으로 여기는 사고의 전환이 필요할 때이다. 그렇다고 해서 교사의 권위가 떨어지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학생들을 정서적으로 자극하여 진심으로 존경받을 수 있다. 우리 한번 사교육과 치열한 경쟁을 해보자. 기왕에 입시교육도 공교육이 하려고 하면 오히려 사교육보다 나을 수 있다. 공교육에는 검증 받은 우수한 인적자원과 잠재력이 있기 때문이다. 요즘 젊은 교사들은 거의 모든 분야에서 만능이다. 개성과 실력에서 다른 어떤 집단보다도 우수하다. 또한 서울시교육청의 수능모의평가는 이미 그 신뢰성과 우수성을 인정받았고, 입시자료집의 발간이나 입시 설명회도 이제 어느 사교육기관에도 뒤지지 않는다. 최근 서울시교육연구원이 펴낸 입시자료집은 사교육의 전문가들로부터도 호평을 받았다. 그러니 사교육에 주눅들 필요가 없다. 우리가 인식을 달리하면 얼마든지, 입시교육도 전인교육도 할 수 있다. 서술형 평가의 예시문항 같은 것은 사교육에서는 할 수 없는 분야이다. 공교육이 주도권을 가지고 있는 것이다. 다시 처음으로 가자. 통합형 논술고사가 시행되면 공교육에서는 대처가 힘들고 사교육을 받아야 한다고 한다. 그러나 사교육 강사가 할 수 있는 일을 교사는 왜 못한단 말인가? 모든 교과 선생님들이 팀을 짜서 영어교사는 영어논술을, 수학교사는 수리논술을, 과학교사는 과학 관련 심층면접 문제를 왜 가르치지 못한단 말인가? 특기적성 교육시간에 수준별로 분반수업을 하면서 각각 해당분야에 대한 논술강의를 하면 된다. 하루 이틀 공부하면 충분히 논술의 경향과 방향을 잡아 가르 칠 수 있다고 본다. 이미 일부 학교는 이런 수업방식을 시행하고 있다. 바람직한 일이다. 학원에서 찾아보기 힘든 예체능 교사들도 충분히 논술강의에 참여할 수 있다. 예술 전문가에게 예술적 지식을 배운 학생과 그렇지 않은 학생 중에 누가 통합교과적 논술에 강할 것인가? 각 교과 전공별로 50~100명의 전문가가 포진해 있는 학원이 어디 있는가? 교사가 해당 대학을 찾아가서 논술경향을 듣고자 한다면 어느 대학이 마다하겠는가? 투철한 교직관과 깊이 있는 교과지식을 가진 우수한 교사들을 왜 무능하다 하는가? 국가가 도와주고, 교육청이 도와주며, 교사 스스로 인식을 바꾼다면 공교육이 사교육보다 못할 리 없다. 학원강사가 능력도 우수하고 시간도 많아서 지도를 잘 한다는 평을 받는 것은 아니다. 요컨대 교사는 그렇게 안 해도 별 지장이 없지만 학원강사는 그렇게 해야만 살아갈 수 있기 때문이 아니겠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