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사'검색결과 - 전체기사 중 48,546건의 기사가 검색되었습니다.
상세검색3월 11일 오전, 학기초라 이것 저것 할일이 있어 학교에 출근했다. 이날은 토요휴업일이 월 2회로 확대 시행되면서 첫번째 맞이한 휴업일이다. 9시 가까이 되어서 교무실에 들어 갔더니 이미 교감선생님은 출근 후였다. '안녕하세요? 교감선생님?' '아니 어쩐일로 나오셨습니까?' '부서일도 할 일이 좀 있고, 학년 일도 좀 챙겨야 할 것이 있고 해서 나왔습니다.' 이렇게 인사를 마치고 있는데, 교감선생님의 손에 책이 한권 들려 있었다. '무슨 책을 보십니까?' '아 제가 교감되기 전부터 참여했던 연구회가 있는데, 그동안 한 번도 제대로 참여를 못했습니다. 오늘 공연이 있는데, 시간이 없어서 대본을 못 외웠습니다. 그래서 지금 보고 있는 중입니다.' '무슨 연구회 인데요?' '탈춤관련 연구회 인데, 이미 수년전에 전수를 받았어요. 그런데, 교감된 이후에는 거의 참여를 못했습니다. 교감되고나니까 교사시절보다 훨씬 더 바쁘더군요. 제가 능력이 없어서 그런지 모르지만,....' '교감되고 나니까 교사 시절보다 훨씬더 바쁘다'는 이야기가 마음에 와 닿는다. 보통은 교감되면 수업을 거의 안하기 때문에 편할 것으로 생각하는 경우가 많다. 그런데 그렇지 않은 모양이다. 리포터는 교감을 안해봐서 정확히 알 수는 없지만, 얼마전(3월 7일)에 이영관 교감선생님이 올리신 기사를 보았다. 그 기사를 보면서 '정말 교감 역할을 제대로 할려면 바쁘겠구나'라는 생각 정도는 했었다. 그런데, 연구회 모임을 뒷전으로 할 만큼 바쁘다는 이야기를 듣고보니, 교감도 나름대로 할일이 많고 바쁜 위치라는 것을 새삼 느꼈다. 한국교총의 교섭위원 중에 초등학교 교감선생님이 한 분 있다. 만날 때마다 교감의 역할이 얼마나 중요한지 아느냐는 이야기를 많이 한다. 그런데도 선생님들은 교감이 뭐가 어렵다고 그러느냐고 한다는 것이다. 나중에 교감되어 보면 자연히 알게 될 것이라고 이야기 해준다는 것이다. '교감의 역할을 제대로 할려면 한도 끝도 없습니다. 그 역할이라는 것이 선생님들의 업무분장처럼 정해져 있지 않습니다. 항상 할일을 찾고 스스로 선생님들을 위해 뭔가를 해야 한다는 중압감도 있습니다. 교감 역할이 이렇게 어려운 것인줄 진작에 알았다면 아마도 교감 안했을지도 모릅니다.' 그 교감선생님의 말씀이다. 그런 바쁘고 힘든 교감의 역할을 누가 알아주고 위로해 주어야 하는가. 그것은 바로 우리 교사들이 해야 할 일이 아닌가 싶다. 어쩌면 소수이긴 하지만 우리들 중에도 교감이 될 수도 있다. 그때가서 예전의 교감선생님 말씀이 옳았다는 것을 깨닫을 것이다. 교감선생님들 힘내십시오. 우리 교사들이 돕겠습니다.
난 너와 생각이 틀리다 / 난 너와 생각이 다르다 대학교는 고등학교와는 틀리네 / 대학교는 고등학교와는 다르네 '다르다'와 '틀리다'는 어떻게 틀려? / '다르다'와 '틀리다'는 어떻게 달라? 이 가운데 어느 것이 바른 표현일까요? 물론 뒤에 것이 맞는 표현입니다. 그럼에도 우리 사회에서는 언제부터인가 '다르다'는 말을 써야 할 자리에 '틀리다'는 말을 쓰고 있습니다. 분명히 '틀리다'와 '다르다' 뜻도 다르고 품사도 다른 말입니다. '다르다'는 "비교가 되는 두 대상이 서로 같지 아니하다.", 혹은 "보통의 것보다 두드러진 데가 있다"라는 뜻으로 쓰입니다. 그러나 '틀리다'는 "셈이나 사실 따위가 그르게 되거나 어긋나다", "바라거나 하려는 일이 순조롭게 되지 못하다"라는 뜻으로 쓰입니다. 쉽게 표현하자면, '다르다'는 '같다'의 반대말로 영어의 'Different'의 뜻이고, '틀리다'는 '맞다'의 반대말로 영어의 'Wrong'에 해당되는 말입니다. 그런데도 방송을 보다보면 연예인 출신 진행자들뿐만 아니라 심지어 아나운서 출신의 진행자들까지 "역시 신세대는 기성세대와 사고방식이 틀리군요"와 같은 표현을 서슴지 않고 있어 안타깝기 그지없습니다. 이런 세태에 대해 한 누리꾼(BIG-RED-SUN)은 목소리를 높여 탄식합니다. "요즘 '다르다' 와 '틀리다'라는 표현을 구분할 줄 몰라서 엉터리로 쓰는 분들이 많습니다. 해가 갈수록 그런 분들이 더 많아지는 것 같습니다. 분명히 학창시절 문법시간에 다 배운 것입니다. 그런데도 그렇게 모릅니까? 기본으로 알아야 할 건 알아야죠. 우리가 쓰는 언어이고, 모국어인데……. 제 주위 사람들의 무려 90%가 엉터리로 쓸 정도입니다. 이 표현법을 정확히 알고 제대로 쓰는 대한민국 사람은 아마 열 사람 중에 한두 사람뿐일 겁니다. 저도 그런 사람들 분위기에 흘러 그냥 따라 말한 경우도 더러 있어요. 그렇지만 이건 아니라고 봅니다." 그럼, '다르다'와 '틀리다'는 어떤 차이가 있는 말인지 좀더 자세히 살펴보겠습니다. 먼저 에서 '다르다'와 '틀리다'를 찾아보았습니다. 국어사전에서 보듯 '다르다'는 '같지 않다, 차이가 있다'를 뜻하는 형용사로, '같다'의 반대말이며, 문장에서 '명사+와'성분이 꼭 필요하다는 점에서 '틀리다'와 차이가 있습니다. '다르다'는 우선 비교되는 두 대상이 서로 같지 않을 때 쓰입니다. '그들은 형제지만 생김새나 마음씨나 행동이 전혀 다르다'가 그 용례입니다. 또 '다르다'는 보통의 것과는 다르거나 특출할 때 쓰이기도 합니다. '역시 예술가라 다르군 / 생각하는 게 다른데' 등이 그 예입니다. 그리고 형용사 '다르다'에 관형사형 어미를 결합하여 만든 관형형 '다른', 그리고 관형사 '다른'은 서로 구별됩니다. 국어사전에서 보듯 '다르다'는 '비교가 되는 두 대상이 서로 같지 아니하다.'는 의미를 가지며 '아들이 아버지와 얼굴이 다르다 / 나는 너와 다르다'와 같이 쓰입니다. '다른'은 '당장 문제되거나 해당되는 것 이외의'의 뜻을 갖는 관형사로 '다른 사람들은 어디 있지? / 다른 생각 말고 공부나 해라'와 같이 쓰입니다. '다르다'는 문장에서 서술어의 역할을 하며 '다르다'의 관형사형인 '다른'도 관형절 안에서 서술어의 역할을 할 수 있습니다. 또한 "거기에 다른 사람도 있었니?"라는 문장에서 '다른'은 올바른 말일까요? '딴 사람'이라고 해야 더 정확하고 바른 표현입니다. 왜냐하면 '딴'은 타인의 뜻이고, '다른'은 '성질이 다른'이라든가 '얼굴이 다른'과 같은 뜻으로 쓰이는 말로 한자로 표시하면 '異'에 해당되는 말이기 때문입니다. 다시 말해, '딴'은 관형사이고 '他'의 뜻이며 '다른'은 형용사이고 '異'의 뜻입니다. 국어사전에서 보듯 '틀리다'는 '그르다'와 의미가 비슷하고 '옳다'와 반대되는 의미를 가집니다. '합계가 틀렸는데요(계산) / 틀린 답만 골라내시오(사실) / 하는 짓이 틀렸는 걸(기준) / 틀린 까닭을 말하시오(이치)'처럼, '사실이나 이치, 계산 따위에 어긋나거나 맞지 않다. 마음이나 행동이 올바르지 못하고 비뚤어지다.' 등의 뜻을 지난 동사입니다. 그리고 '틀리다'는 '일정한 기대(기준)에 맞지 않거나 일이 순조롭지 않고 어그러졌을 때, 감정이나 사이가 나빠졌을 때' 쓰이기도 합니다. '네가 성공하기는 틀렸어 / 사소한 일로 친구와 틀렸어 / 심보가 틀렸어' 등이 그것입니다. 또한 '맞다'는 일부 의미에 한정해서 '틀리다'와 반대말 관계에 있습니다. '1번 답은 맞았고, 2번 답은 틀렸어'라는 문장처럼 '답이 맞다'의 부정이 '답이 틀리다'가 되는 경우가 바로 그 예입니다. 하지만 '음식 맛이 내 입(맛)에 맞다'의 부정을 '내 입(맛)에 틀리다'라고는 할 수가 없습니다. 오히려 이런 경우에는 '음식 맛이 내 입(맛)과 다르다'로 쓰는 것이 맞는 표현입니다. 이제는 확실히 아시겠지요? '너와 나는 틀려'라고 말하는 것은 '틀린' 표현이고 '너와 나는 달라'라고 말하는 것이 '맞는' 표현입니다. 그러므로 두 가지의 그림 중 다른 하나를 골라내는 '틀린 그림 찾기'는 '다른 그림 찾기'로 고쳐야 할 것입니다. 아직도 어렵게 느껴지는 사람들은 '틀리다'와 '다르다'의 의미를 가만히 생각해 보면 구분하기가 그리 어렵지 않을 것입니다. '다르다'를 써야 할 자리에 별생각 없이 '틀리다'를 쓰는 경우는 잦아도 '틀리다'를 써야 할 자리에 '다르다'를 쓰는 경우는 별로 없다는 점을 보아도 이 둘의 구분이 그리 모호한 것은 아니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왜 많은 사람들이 '틀리다'와 '다르다'를 구분하지 못하고 '틀리다'만으로 사용할까요? '다르다'보다는 '틀리다'가 'ㅌ' 때문에 훨씬 격하게 들리기에 자신의 의사를 강하게 표현할 목적으로 '틀리다'라는 말을 사용하게 되었다는 설도 있습니다. 이에 대해 '한말글사랑'의 김형배 교수는 다음과 같이 말합니다. "여러 가지 원인이 있을 수 있겠지만, 무엇보다 말과 정신과의 관계로 볼 때, 우리의 정신이 언어에 반영된 모습이 아닐까 합니다. 자신을 기준으로 놓고 생각이나 모양이 다른 것을 단지 다른 것으로 여기지 않고 '틀린 것'으로 여기는 우리의 생각이, 언어로 표현될 때도 '다르다'고 하지 않고 '틀리다'고 표현할 것이라는 생각입니다. 나와 다른 것은 무조건 틀리다고 생각하는 자기중심적이고 획일적인 사고가 우리의 의식 속에 자리 잡고 있지는 않나 생각해 봅니다. '틀리다'와 '다르다'를 구분하지 못하는 언어습관은 또 나와 다른 것을 인정하지 않는 사고를 형성할 수도 있습니다. 나와 다른 것을 인정하는, 다양성과 개성이 존중되는 사회였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틀리다'라는 말에는 '다르다'라는 뜻이 어느 정도 포함되어 있고, 언어는 변화하는 것이므로 '틀리다'라고 잘못 쓰는 사람이 많아지면 언젠가는 '틀리다'라는 말이 '다르다'라는 말을 대신할지도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지금은 '다르다'와 '틀리다'는 분명히 다르므로 구분해서 써야 하겠습니다. '틀리다'와 '다르다'는 분명히 다른 말이기 때문에 '다르다'를 '틀리다'라고 말하는 것은 틀리다는 것을 꼭 기억하고 올바른 말글살이를 했으면 합니다." 그렇습니다. 언어의 사회적 변화 과정을 정확하게 추적하기란 쉬운 일이 아닙니다. 따라서 이에 대한 확실한 답을 내리는 것도 여간 힘든 일이 아닙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다른' 것을 '틀린' 것으로 오해하는 일이 없었으면 좋겠습니다. 왜냐하면 독선(獨善)이라는 심각한 국면을 초래할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다르다'와 '틀리다'는 그 의미가 정말 다른 말이니 이제부터라도 틀리게 써서는 안될 것입니다. * 기사 작성에 국립국어원의 질의 응답을 참고하였습니다.
종업식과 졸업식 때문인지 2월하면 자꾸만 ‘이별, 아쉬움, 안타까움’이란 단어가 소금쟁이처럼 맴돌고, 한 학년 진급과 입학식 때문인지 3월하면 ‘만남, 새로움, 설렘’이란 낱말이 물안개처럼 피어납니다. 어느새 종점 같은 2월을 보내고, 또 다시 출발점 같은 3월을 맞이하였습니다. 교단에 있는 사람들에게는 2월이 마치 섣달그믐 같고, 3월이 정월 초하루처럼 느껴집니다. 3월 1일, 새해 첫날 같은 기분입니다. 송구영신(送舊迎新)하는 거룩하고 경건한 마음가짐으로 이 달과 이 날을 맞이합니다. 분명 떠나보냈음에도 지난 학년 아이들이 제 눈 안에 그렁그렁합니다. 교편을 잡은 지 15년이 넘었음에도 저는 아직도 새내기 교사처럼 계속되는 만남과 이별이 낯설기만 합니다. 오늘, 밖에 나가 나무들을 보았습니다. 고목 같은 겨울나무들, 그러나 고목(枯木)이 아니라 나목(裸木)이었습니다. 나무는 겨우내 알몸으로 추위에 떨면서도 새봄을 준비하고 있었습니다. 다 떠나보낸, 어쩌면 시간과 추억까지도 훌훌 털어버린 빈 가지라서 홑몸인 줄 알았는데, 결코 혼자가 아니었습니다. 달걀 안의 병아리처럼 그 여리디 여린 가지 끝에서 새봄이 아지랑이처럼 꼼지락거리며 부화할 날만을 손꼽아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산수유, 개나리, 진달래, 목련, 명자나무 등 나뭇가지마다 봄을 준비하는 꽃망울이 마치 여인의 젖가슴처럼 탐스러웠습니다. 작년 가을, 눈에 넣어도 아깝지 않을 잎새와 꽃과 열매들을 다 떠나보내고, 더불어 나비와 꿀벌과 새들까지 모두 떠나버린 후, 하얀 된바람에 속절없이 울었을 나무……. 그러나 나무에게는 마음 놓고 울 수 있는 자유도 주어지지 않았습니다. 겨울이 시작되면서 꽃사슴처럼, 또는 북극곰처럼 이미 몸 안에는 새 생명이 자라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나무가 알몸으로 혹독한 겨울을 넉넉히 이겨낸 것도 어쩌면 몸 안에서 꿈틀거리는 생명이 있었기 때문인지도 모릅니다. 새봄을 준비하고 있는 겨울나무를 보면서 큰 깨달음을 얻음과 동시에 한없는 부끄러움을 읽습니다. ‘나는 얼마나 나무와 닮은꼴일까?’ 어떤 점에서 교사라는 직업은 나뭇가지와 같습니다. 1년 동안 미운 정 고운 정 다 들었던 아이들을 겨울과 함께 떠나보내야 합니다. 그리고 3월이 되면 이별의 아쉬움에 젖어있을 새도 없이 새로운 아이들의 얼굴을 익히고 더불어 힘겨운 씨름을 해야 합니다. 내일이 입학식입니다. 34명의 학생을 다시 맞이합니다. 선보러가는 사람처럼 자꾸만 가슴이 콩닥거립니다. 자연에게서 한수 배웠으니, 새봄을 맞는 겨울나무의 마음가짐으로 ‘어린왕자’들을 맞이하고자 합니다. 목욕재계하고 이발도 새로 하고 가장 좋은 옷으로 갈아입고 최대한 봄의 차림으로 ‘저의 새싹들’을 맞으려합니다. 참, 자두맛 알사탕도 준비해야겠네요. 내일 첫 단추를 끼우는 자리에서 하나씩 나누어주면서 한 마디 할 것입니다. “얘들아, 우리 사탕처럼 달콤하게 지내자~”. 저와 새롭게 인연을 맺는 34명의 아이들도 저처럼 가슴 설레며 내일을 기다리고 있을까요? 그랬으면 좋겠습니다. 저와 아이들 모두 우리의 만남이 우연(偶然)이 아니고, 인연(因緣), 아니 더 나아가 오랫동안 준비되었던 필연(必然)이라 여겼으면 좋겠습니다. 그런 아름다운 마음으로 3월의 첫 단추를 끼웠으면 좋겠습니다. 엊그제 신입생 오리엔테이션 하는 날 한번 보았지만, 아직 한 명의 얼굴도 제대로 모릅니다. 내일 입학하는 우리 반 아이들을 위해 이름을 외웁니다. 1번 고명훈, 2번 김국환, 3번 김대규……. 그러나 웬일인지 쉽게 암기되지 않습니다. 그새 기억력이 나빠진 것일까요? 그것은 아닌 듯합니다. 자꾸만 지난해 아이들이 오버랩 되기 때문입니다. 1번 고명훈… 그러면 자꾸만 지난해 1번 강병무가, 2번 김국환… 그러면 지난해 2번 김근호가 떠오르기 때문입니다. 작년 아이들의 번호와 이름이 빨리 내 머릿속에서 사라져야 새로운 아이들의 번호와 이름이 쉽게 자리 잡을 텐데 이렇게 진도가 느려 큰일입니다. 과연 오늘 34명의 이름을 다 외울 수 있을까요? 그러나 한편으로는 내 가슴에 조금은 따뜻함이 남아있다는 생각에 위로가 됩니다. 그만큼 지난해 아이들과 정이 듬뿍 들었다는 뜻이겠지요. 새로운 아이들의 이름을 외우면서 지난해 아이들이 떠오르지 않는다면 그 때는 교편을 놓아야 하지 않을까요? 저는 지금 더디지만 기쁘고 설레는 마음으로 아이들의 번호와 이름을 외우고 있습니다. 1번 고명훈, 2번 김국환, 3번 김대규……. 한 계단 한 계단 오르렵니다.
지난 주말부터 찾아온 꽃샘 추위가 급기야 눈을 몰고 왔습니다. 출근길에 이따금 내리던 눈발이 학교에 도착하자마자 폭설로 변했습니다. 겨울이 서서히 꼬리를 감추고 있다고 생각했는데, 다시 매서운 모습으로 나타난 것이지요. 실외청소에 나간 아이들은 추위보다도 내리는 눈이 더 반가운지 가벼운 장난을 치고 있었습니다. 흔히 볼 수 없는 삼월의 눈이기에 그 눈에 실어보내는 소망도 그만큼 크겠지요.
학교를 옮기고 새 학교에 부임하면 이런 것은 고쳤으면 하는 것들이 눈에 들어온다. 사람을 사귀게 될 때 첫인상이 매우 중요하고 오래 남는 것과 같은 것 같다. 그런데 6개월 내지 1년이 지나고 나면 타성에 젖어 신경이 무디어진다고 한다. 좋게 말하면 현장에 동화가 되어 그냥 지내거나 첫인상의 거슬림이 사라지는 것 같다. 교사시절에 전근을 다니면서 느꼈던 점들도 있었지만 관리자와 대화의 채널이 없어서였던지 반영시켰던 기억이 거의 없었다. 그런데 학교관리의 부책임을 맡고부터는 또 다른 시각으로 보게 되고 더 많은 것들이 눈에 들어오는 것은 책임감 때문인 것 같다. 지금은 도우미교사라고 쓰고 있는 주번교사가 되면 운동장에 떨어져있는 휴지도 눈에 더 잘 뜨인다는 선생님들의 말도 내경험에 비춰 봐도 맞는 것 같다. 부임 교에 안착이 된 며칠 전 교장선생님께서 교감선생님이 본교에 부임해 왔을 때 이런 것을 고쳤으면 하고 느끼신 것 있으면 말해보라고 하신다. 내가 느낀 것을 몇 가지 이야기 했더니 교장선생님께서 부임해 오실 때도 똑같은 것을 느꼈다고 하신다. 그런데 아직 바뀌지 않은 것도 있었다. 올해도 학교예산에 반영이 되지 않았다고 한다. 예산을 수립할 때는 우선순위를 잘 정해야 한다. 무엇이 더 급한 것인가? 그리고 무엇이 학생들의 학습에 더 필요한 것인가를 생각하여야 교육과정이 효율적으로 운영되기 때문이다. 올해는 예산이 줄어서 학교의 재정이 원만하게 지원되지 않을 전망이어서 절약방안이 강구되어야 할 것 같다. 지방자치단체에서 예산지원을 받아야 숨통이 트일 전망인데 재정자립도가 낮은 지역의 교육재정은 예산지원이 원만하지 못할 전망이라서 안타까운 실정이다. 새로 짓는 학교의 호화스러운 시설에 비하면 기존의 학교는 상대적으로 열악한 교육환경이 아닐 수 없다. 교육재정운용을 할 때 학급 수 학생 수 등 획일적인 기준으로 예산배정을 하는 것보다는 학교의 설립연도, 도시지역, 농산어촌지역, 현재의 시설이나 기자재 등 정학한 자료에 기초하여 재정운영을 효율적으로 하여 낭비요소를 없애는 노력이 있어야 한다. 일률적인 예산지원보다는 재정수요를 정확하게 산출하여 연차적, 지속적으로 예산지원이 이루어지면 어느 정도 교육환경의 차이를 줄일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대통령의 이야기를 읽으면서 위정자들이 생각하는 '교육과 교사'들이란 어떤 것이며 어떻게 되어야 하는 걸까하는 궁금증이 불같이 일어난다. 그들은 늘 말하기를 나라의 운명은 교육에 달렸고 교육은 교사들에 의해 좌우된다고 말한다. 그러나 그들의 말과 행동은 사뭇 다르기만 하다. 국정 최고 책임자가 남의 나라에 가서 개혁에 가장 걸림돌이 되는 저항세력이 교사집단이라고 했으니 그들이 말하는 교육개혁이란 어떤 것인지 자못 궁금할 뿐이다. 개혁이란 반드시 개선 적인 의미를 수반해야 가치가 있는 것일 것이고 가치란 그 사항의 본질적인 의미에 따라 결정되어야 할 것이다. 교육이란 궁극적으로 인간다운 인간의 육성을 목적으로 생각할 때 결코 경제논리로 설정되는 가치로 개혁을 추진해서는 안될 것인데 교육정책을 입안하는 사람들은 막무가내로 밀고 그것을 반대하는 교사들을 집단이기주의자로 몰았다. 이제 그것이 대통령의 뜻이라는 것을 만천하에 공개한 것이다. 교육이란 대통령 한 사람의 뜻으로 그 방향이 결정되기에는 너무나 국민 개개인의 삶과 나아가서 나라의 백년대계에 미치는 영향이 크다. 그런데도 깊지도 않은 교육철학을 금과옥조로 생각하는 최고 지도자와 거기에 영합하는 소수의 학자, 또 이론만 아는 젊은 관료들에 의해 우리의 교육은 마치 부평초처럼 물결에 따라 흔들리며 흘러 왔고 또 지금도 그렇게 흔들리고 있는 것이다. 누가 무어라 해도 아이들의 삶이나 장래, 또 이 나라의 교육을 생각하는데 현장의 교사보다 더한 사람이 있으랴. 현정부는 정치, 경제, 사회, 문화 등 거의 전방위로 과거사를 정리한다고 야단이다. 만약 교육개혁을 꼭 해야한다면 검증되지도 않은 서구의 교육제도를 무분별하게 도입한자와 그것에 동의하고 허락해서 이 나라의 공교육을 이렇게 만든 책임자를 찾아 그 책임을 묻고, 삼척동자도 알 수 있는 입시를 근간으로 하는 교육제도를 개혁하여 성실하게 공부하면 누구나 선량한 시민으로 인간적인 삶을 유지할 수 있는 교육제도를 위한 개혁에 주안점을 두어야 할 것이다. 자기가 가르치는 제자가 누구보다도 따뜻한 가슴을 가지고 행복하게 살기를 원하는 교사들의 이야기를 개혁에 저항하는 이기주의로 몰지 말고 교사들의 생각을 바탕에 깐 교육개혁을 시도하는 현명한 지도자로 생각을 바꾸든지 그런 생각을 가진 지도자가 국정의 책임자가 될 날이 기다려진다.
정부에서는 일선 학교의 학생들의 탈선을 막고 교사의 학생 통제권을 강화시킨다는 취지로 교사에게 유해업소 단속권을 주려는 준사법권은 전례를 통해서 본다면 그 실효성에는 큰 의문을 던질 수밖에 없다. 가뜩이나 학생 통제가 교사의 손아귀에서 벗어나 교내에 경찰을 상주시켜 가는 추세에 있는 지금 또 다른 양상으로 교사에게 준사법권의 형태를 띠는 권한을 부여한다고 하면 오히려 교사의 위상만 추락하는 결과만 가져올 것은 자명한 일일 것이다. 과거에도 학생과 교사에게 학생 단속이라는 미명하에 학생들이 출입해서는 안 되는 영화관에 무료로 출입할 수 있는 통행증을 발행하여 사용된 적이 있었다. 그러나 그것도 교사들이 영화를 보기 위해 영화관을 드나드는 데 이용되곤 했다. 학생의 지도를 교사가 잘 할 수 있도록 다각도로 방법을 고안하고 있는 것도 교육부의 고뇌는 고뇌일 것이다. 그러나 현실적으로 교사에게 준사법권을 준다고 해도 그 권한으로는 교사에게 원망만 가져올 뿐 그 단속이 제대로 이루어질 수 있는 것은 아닐 것이다. 교사의 단속이 심하면 심할수록 교사와 학부모간의 이질간만 더할 뿐 아니라 우리 사회에서 지속적으로 추락하고 있는 교사에 대한 이미지도 더욱 나쁘게 만들어 가는 첩경일 뿐이다. 현실적으로 학생들을 잘 지도하게 하고 따뜻한 교사의 손길이 학생들에게 더욱 밀착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입시구조부터 먼저 바꾸어야만 한다. 아무리 교사에게 준사법권을 준다고 해도 교사로서 경찰과 같은 권한을 행사하기에는 우리 사회의 구조적인 이미지가 용납되지 않고 있다. 정실주의로 이끌어 가는 사회의 분위기가 공과 사를 명확하게 바꾸어 가는 데는 그 한계가 있기 마련이다. 인정으로 맺어지는 한국사회요, 사랑으로 연줄을 만들어 가는 끈끈한 이웃 정은 지역 학교로서 지역 교사로서의 역할을 하기에는 그러한 끈끈한 정실주의를 배제하고 나아갈 수 있는 현실은 아닌 것 같다. 학교의 일을 학교의 교사에게 맡겨서 풀어가려고 하지 않고 어떻게 하든 외부의 힘으로 학교 현실을 이끌어 나아가려는 발상에 심오한 생각을 자아내게 한다. 교사가 학생들로부터 학부모로부터 지탄의 대상이 되고 있는 현실에서 학교 내실을 더욱 든든하게 다지는 일로부터 매듭은 풀어나가야 한다. 교사의 위상을 바로 세우는 일, 장학을 더욱 돈독하게 하는 것, 인성 교육에 전교사의 상담 교육화, 교실의 질 좋은 복지 시설, 교사를 채용하는 데 엄격한 면접 심사와 재교육 등등이 먼저 있어야 한다. 무능한 교사를 바로 퇴출시켜 가는 것도 중요하지만 그 과정이 번개 불에 콩을 볶아 먹듯 하는 데서 일은 오류를 드러내고 있다. 계약제를 도입하여 하루속히 신임 교사들부터 교사의 진정한 본분이 무엇인가를 가르쳐 주는 길을 열어 놓아야 한다. 경기가 좋지 않으니 너 내 할 것 없이 사범대로 몰려드는 현상은 결코 바람직한 일이 아닐 것이다. 마치 교직은 스쳐가는 바람에 지나지 않는다고 생각하는 데서부터 벗어나야 한다.
한국교직원공제회가 영남제분 지분을 매입한 배경에 대해 의혹이 증폭되면서 공제회 투자 방식에 대한 비판이 고조되고 있다. 공제회는 "외압과 무관한 일상적 투자행위였다"고 해명하고 있으나 교직원들은 전문성 부족과 정치적 외압 가능성 등을 지적하면서 공제회측을 비판하고 있다. '교원'이라는 이름으로 공제회 게시판에 글을 올린 한 회원은 "공제회가 효율적으로 운영되지 않아 일선 교원들의 불만이 하늘을 찌른다"라며 "전문성이 없는 자들이 자리를 차지하면 결국 재산권 침해로 이어진다"고 말했다. 그는 일반 공무원이 아닌 자산운용 전문가가 공제회 운영을 맡아야 한다며 "행정공문이나 만지던 교육부 공무원들이 우리 교직원들의 생명과 같은 소중한 돈을 운용하는 공제회 수장을 맡는 악순환을 제거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회원 박은희씨는 12일 공제회 자유게시판을 통해 "피땀이 서린 회원들의 소중한 돈으로 이런 짓을 저질러도 되는 거냐"며 이사진 사임을 요구하고 감사원 감사와 검찰 수사를 촉구하는 서명 운동을 벌이자고 제안했다. 공제회측의 의사결정 과정에 대한 자료 공개를 요구하는 목소리도 높아지고 있다. 한국교원단체총연합회는 지난 8일 발표한 성명에서 공제회의 재무 운영과 투자의 적절성에 대해 의혹을 제기하고 "향후 이런 사태가 재발되지 않도록 운영 전반에 걸쳐 공정성과 투명성을 높여야 한다"고 촉구했다. 공제회 회원 문진영씨는 '낙하산식 인사'로 인한 폐해를 지적하며 "현 교육부 차관과 현 총리, 현 공제회 이사장의 재산 증식과 공제회 투자의 관련성에 대한 자료를 밝히라"고 요구했다. 회원 류기오씨는 "도대체 누구를 믿어야 되느냐. 철저한 감사와 뼈저린 통찰을 통해 거듭나길 바란다"고 말했으며 김종신씨는 "무조건 안심하라고 하지 말고 책임있는 자세를 보이라. 이러다가 원금 다 날리는 것 아닌가 불안하다"고 말했다. 퇴직 교사 강재식(63)씨는 "공제회는 거의 모든 교직원이 가입하는데 운용을 그런 식으로 해서는 안 된다"며 "그런 식의 투자행위는 교직원들의 이익에 반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회원들의 이 같은 비난과 불안은 공제회가 과거에도 권력이 개입한 사업에 끼어들었거나 잘못된 투자로 손실을 입은 사례가 적지 않기 때문에 증폭되는 측면도 있다. 작년 국정감사에서 한나라당 임태희 의원은 공제회의 '행담도 개발' 투자를 거론하면서 "해외투자 규모가 1천억원에 불과한 공제회가 250억원을 투자하면서 감사실장 등이 모르고 담당자 전결로 이뤄졌다는 것은 공제회가 부실금융기관이 아니라면 뭔가 작용한 것"이라며 의혹을 제기한 바 있다. 당시 같은당 이군현 의원은 공제회가 2004년 마이에셋자산운용사의 마이에셋마켓 뉴트럴 종목에 200억원을 투자했다가 2005년 3월까지 -1.42%의 수익률을 기록했는데도 투자액 삭감없이 재계약한 경위를 추궁했다. 공제회 측은 '골프파문'이 확산되면서 성난 회원들이 '공제회 탈퇴'까지 거론하자 위기감을 느끼면서 "이번 투자로 손실을 보지 않았으며 오히려 이익을 남겼다"며 해명자료를 내는 등 회원들을 달래는데 안간힘을 쏟고 있다.
코미디언 김형곤씨의 돌연사가 사람들의 가슴에 잔잔한 파문을 일으킨다. 김형곤씨는 남보다 앞서 코미디의 새로운 장르를 만들어낸 훌륭한 개그맨이었고 사람은 이렇게 살아야 한다는 것을 몸소 보여준 참인간이었다. 그러하기에 갑작스러운 사망 소식을 듣고 동료 연예인들이나 네티즌의 추모 열기가 뜨겁게 이어지고 있다. 싸이월드에 있는 그의 미니홈피 ‘코메디언 김형곤의 홈피입니다’를 보면 그가 웃음전도사로 어떤 삶을 살았는지 쉽게 이해할 수 있다. 엔돌핀코드에 웃음의 테크닉을 20가지 열거했는데 그중 1번이 ‘힘차게 웃으며 하루를 시작하라. 활기찬 하루가 펼쳐진다.’이고 마지막 20번째가 ‘죽을 때도 웃어라. 천국의 문은 저절로 열리게 된다.’고 써있다. 죽음을 하루 앞둔 3월 10일 09시 07분에는 대한민국이 웃는 그날까지_03에 ‘온 국민이 웃다가 잠들게 하라’는 글을 남기며 웃음전도사로서 웃음을 중요시하는 자신의 철학과 시청률에 의존하는 방송계를 비판했다. 글의 내용을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세상에 웃는 것보다 더 소중한 것은 없다. 우리 인간이 다른 동물에 비해 우월한 이유도 웃을 수 있기 때문이다. - 생략 - 웃음은 우리에게 저절로 오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우리가 웃음 곁으로 자주 가야 한다. - 생략 - 엔돌핀이 팍팍 도는 그런 사람들만 만나기에도 시간이 모자란데 왜 만날 때마다 스트레스를 주는 인간들을 만나느라 시간을 보내는가 말이다. - 생략 - 우리는 잠자리에 들기 전 강도, 강간, 사기꾼, 양아치, 패륜, 불륜, 조폭, 살인 등등의 사건들을 보며 잠이 든다. - 생략 - 10시대에는 코미디프로를 고정 편성해야 한다. 그래서 온 국민이 웃다 잠들게 해야 한다. 시체실에 세 구의 시체가 들어왔다. 그런데 시체가 모두 웃고 있는 얼굴이었다. 그래서 검시관이 물었다. "아니, 시체들이 왜 웃는 얼굴이오?" "첫번째 시체는 1억 원짜리 복권에 당첨되서 심장마비로 죽은 사람입니다. 두번째도 심장마비 인데, 자기 자식이 1등 했다고 충격 받아서 죽은 사람입니다." 그러자 검시관이 물었다. "세번째 사람은?" "이 사람은 벼락을 맞았습니다." "벼락을 맞는데 왜 웃지?" "사진 찍는 줄 알고 그랬답니다. 심장마비사라는 자신의 죽음을 예고라도 하듯 글 끝에 생뚱맞게 써있던 짤막한 한편의 글이 그가 우리에게 남긴 마지막 유머였고, 그가 진정한 프로 코미디언이었다는 것을 우리에게 확인시켜줬다. 더구나 1999년 3월 가톨릭대학교 의과대학에 시신 기증을 등록했고, 유족들이 고인의 뜻을 기려 시신을 기증하기로 결정했다는 소식에 한편으로는 가슴이 아프면서도 다른 한편으로는 눈시울이 붉어질 만큼 훈훈한 정을 느낀다. 그러했기에 그가 사회나 사람들에게 그렇게 부르짖으며 바랐던 삶이 많았고, 스스로 웃음전도사를 자처할 수 있었을 것이다. '호랑이는 죽어서 가죽을 남기고 사람은 죽어서 이름을 남긴다.’고 했다. 코미디에 대한 열정과 센스가 남달랐고, 좋은 일이라면 발 벗고 앞장설 만큼 인간적이었던 코미디언으로 사람들에게 오래오래 기억될 것이다. 그가 마지막 글에 남긴 ‘온 국민이 웃다가 잠들게 하라’는 말이 아이들을 가르치고 있는 나에게는 ‘모든 아이들이 즐겁게 하라’는 말로 들려온다. 어떤 일이든 억지로 하는 것보다 즐거워야 능률이 오른다. 하지 않으면 안 되는 공부도 마찬가지다. 어려운 일이지만 교사들은 아이들을 즐겁게 해야 한다. 재능이 많았던 코미디언의 죽음을 바라보면서 내가 맡은 아이들을 더 즐겁게 해야겠다는 다짐을 한다.
학년 초가 되면 이런저런 일로 조사하여 제출할 것이 많습니다. 학급이나 학교 운영에 필수적인 자료들은 대부분 이맘때쯤 확보하게 되지요. 아침부터 바쁘게 움직이던 중, 책상 위에 놓인 유인물을 발견하게 되었습니다. 바로 학부모들을 대상으로 한 설문지였습니다. 잠시 설문지의 내용을 살펴보니 충청남도 교육청에서 금년을 '학교 혁신의 해'로 정하고, 수업과 행정의 변화를 통하여 학교를 '행복한 배움터'로 만들겠다는 의도가 담겨 있었습니다. 몇 몇 아이들에게 설문지를 나눠주고 부모님의 의견을 받아오라고 했더니, 다음날 일제히 설문지를 가져왔습니다. 설문지를 보니 문항마다 학부모님들의 정성이 가득 담겨 있었습니다. 학부모님들의 의견 가운데는 교육 현실을 정확히 이해하고 바람직한 대안까지 제시한 경우도 있었습니다. 문제는 애써 설문만 받아놓고 정작 실천에 옮기지 않으면 무용지물이나 마찬가지라는 점에서 정책 담당자들의 의식 개혁도 함께 따라야 한다는 생각이들었습니다.
올해부터 서울지역 초ㆍ중ㆍ고교에 다니는 자녀를 둔 학부모들은 휴대전화 SMS(Short Message Service) 문자서비스를 통해 자녀의 학교생활을 알수 있게 된다. 서울시 교육청은 상월초등학교와 청담중학, 방학중학, 수도여고 등 학교에서 이런 내용의 서비스를 시범 운용한 결과 학부모로 부터 큰 호응을 얻음에 따라 전체 학교에 확대 시행키로 했다고 12일 밝혔다. 이에 따라 학부모들은 학교를 직접 방문을 하지 않고도 SMS 문자서비스를 통해 교사와 상담을 할 수 있게 되고 시험일정 등 다양한 학사일정도 휴대전화를 통해 받아볼 수 있게 된다. 이와 함께 학부모가 초등학생들의 학력신장 변화를 한눈에 파악할 수 있도록 성적 통지표를 개선하는 방안을 검토키로 했다. 현재 교과목 중심의 통지표 서술문은 학생들의 정확한 성적을 구체적으로 표현하지 못하고 있기 때문에 해당 학부모들이 자녀의 성적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하는 문제점이 지적돼 왔다. 시 교육청 관계자는 "현재 고원초등학교에서 활용하고 있는 '나의 학교생활 기록장'은 교과목 중심에서 탈피, 학교생활 전반에 걸친 평가 체제와 그래프등 다양한 평가방법을 사용함으로써 학생들의 학력을 제대로 진단해주는 역할을 하고 있다"며 "성적표를 이런 방향으로 개선하는 것을 검토중"이라고 설명했다. 또한 시 교육청은 학생과 학부모의 교육만족도를 높이기 위해 각 학교로 하여금 '학교서비스 헌장'을 제정, 실천토록 적극 권장하기로 했다. 시 교육청 이대영 학교혁신팀장은 "학교혁신은 교사와 학생, 학부모 모두에게 친근하면서도 반드시 자율적으로 이뤄져야 한다. 특히 교육수요자에게 감동을 주도록 다양한 교육 서비스를 발굴, 실시할 것"이라고 말했다.
교사를 상대로 한 학부모의 폭행과 협박 등 부당행위가 급증한 것으로 나타났다. 특히 여자교사들이 학부모에게서 교권침해를 당하는 사례도 증가하고 있어 대책마련이 시급하다. 한국교원단체총연합회(교총)는 지난해 발생한 교권침해 사례는 총 178건으로 2004년의 191건에 비해 소폭 감소했지만 학부모의 폭언과 폭행, 협박 등 부당행위로 인한 교사들의 피해사례는 40건에서 52건으로 30% 증가했다고 12일 밝혔다. 학교안전사고에 따른 책임문제로 교사들이 피해를 본 건수는 2004년 51건에서 2005년 42건으로 감소했지만 그 비중은 학부모의 부당행위 피해사례에 이어 두번째로 많았다. 나머지 교권침해 사례는 신분피해 28건, 교원간 갈등피해 14건, 명예훼손 피해 8건 등의 순이었다. 특히 여교원을 상대로 한 교권침해 사례 59건 가운데 '학부모로부터의폭행 등 부당행위 피해'가 42.4%인 25건에 달했다. 교총은 교권을 보호하기 위해 자체적으로 운영 중인 7억6천900만원 규모의 교권옹호기금을 확충해 변호사 선임 및 소송비 지원을 확대하는 한편 교권침해 구제뿐 아니라 예방활동에도 주력하기로 했다. ◇ 교권침해 사례 = 2005년 9월 경기도 A중학교 3학년 교실에서 신규 발령받은 미술교사가 수행평가를 실시하던 중 학생이 작품을 부수고 교사에게 대드는 사태가 발생했다. 이 학생은 이 사건 전에도 해당 교사에게 "신규교사 주제에 시험문제를 어렵게 내면 짓밟아 버릴거야"라는 등의 언사를 퍼붓기도 했다는 것. 이에 학교측은 자치위원회를 개최, 이 학생에게 '사회봉사명령' 처분을 내렸다. 작년 4월에는 학부모의 잘못된 제보로 경북 지방언론에 B중학교 교사가 도난사건 해결을 위해 학생들의 알몸을 수색했다는 허위내용이 보도되는 사태가 발생하기도 했다. 교총 관계자는 "학부모가 교사를 명예훼손한 것으로 나중에 완전한 오보로 밝혀졌고 결국 해당언론사는 정정보도 내용을 게재했다"고 전했다. 경북 C초등학교 학부모 김모씨는 작년 5월 '담임교사가 자녀를 집중적으로 표적 삼아 학대한다, 자녀가 교도소 생활과 같은 학교생활을 하고 있다'는 내용의 허위 민원서를 지역교육청에 내면서 해당 교사를 심적으로 괴롭히기도 했다. ◇ 여교원과 사학교원 피해사례 심각 = 여교원에 대한 교권침해 59건을 유형별로 보면 폭행 등 부당행위가 25건(42.4%)으로 가장 많고 신분문제 10건, 학교안전사고 10건, 교원간 갈등 5건, 명예훼손 3건 등이다. 특히 학부모에 의한 부당행위는 폭언이나 협박, 폭행 등으로 나타나면서 거친 항의와 담임교체 요구, 무고성 진정서 제출, 고소 등으로까지 이어지고 있다. 이런 교권침해는 학부모 등 교육수요자의 권리가 커지면서 교원의 전문적 판단을 인정하지 않거나 일부 학부모가 이기주의를 내세우면서 야기되고 있는 것이다. 사학교원의 교권을 침해하는 사례도 심각한 수준이다. 사학교원의 경우에는 총 45건 가운데 징계처분이나 부당전보, 권고사직, 재임용 거부, 강등을 포함한 불리한 처분 등 신분문제 유형이 46.7%인 21건으로 가장 많았다. 이런 결과는 사학교원의 신분이 불안정하다는 점이 반영된 것으로 사립학교법 개정시 사학교원의 신분안정 조치가 반영돼야 할 것이라고 교총은 강조했다.
최근 청소년의 아르바이트가 사회적 문제가 되고 있다. 청소년들은 용돈을 마련하기 위하여 아르바이트를 하려하고 있지만 이를 악용하는 업주들이 많이 있다. 그 동안 청소년들의 아르바이트는 사생활이라 하여 방치하다시피 하여 왔다. 그러나 한 조사 결과 18세 이하 청소년(중, 고등학생)중 50% 이상이 아르바이트 경험이 있고, 70% 이상이 아르바이트 자리를 찾고 있다. 특히 15세 미만 중학생들의 아르바이트도 상당히 늘고 있다. 그러나 실제 아르바이트를 하고 있거나 원하는 18세 이하의 청소년들은 사회의 무관심 속에서 보호받지 못하고 있다. 공식적으로 청소년 아르바이트를 소개하고 관리, 감독하는 곳이 없다보니 자칫 음성적인 아르바이트에 휩쓸릴 위험이 높다. 사건사고를 당하거나 임금을 제대로 받지 못하는 10대들도 많은 실정이다. 10대 청소년도 공정한 근로조건과 안전하고 건강한 일자리를 제공받아 학교교육의 연장선으로 이루어지는 진로 체험학습이 돼야 하며 이를 위하여 청소년들의 아르바이트 실태에 관하여 종합적인 정보가 준비되어야 한다. 과연 청소년들이 유흥비 마련을 위하여 아르바이트를 하고 실제로 그 방면으로 수입을 지출하는지? 아르바이트를 하다가 본업인 공부를 포기하는 것은 아닌지? 등에 관한 정확한 자료가 필요하며 교사들이 어린 학생들의 아르바이트에 대하여 어떻게 나서여 하는지등에 관한 정보가 필요하다. 청소년들의 아르바이트 실태를 조사하고 부당대우 정도를 파악하여 이를 시정하고 직업탑색차원에서 교육적 지원방안을 마련할 필요가 있다. 이를 통하여 청소년 아르바이트 실태와 그 문제점을 파악함으로써 청소년의 공정한 근로조건과 안전하고 건강한 일자리 제공계기를 마련하고 청소년들의 아르바이트를 학교교육의 연장선으로 이루어지는 진로 체험학습이 되게 한다. 청소년 아르바이트는 앞으로 직업을 갖기 위해 진로탐색(career exploration)을 하는 점에서 매우 큰 교육적 의의가 있다. 평소 청소년들이 생각한 진로의 결정에 도움이 되는 내용을 실제로 체험을 한다는 차원에서 매우 큰 의미가 있다. 교육인적자원부도 학생 아르바이트 부당 사례 신고센터를 운영하려 하며 각 학교별로 전담교사를 지정하려 하고 있다(교육인적자원부, 2006 진로교육 지침). 우리 교사들도 청소년의 아르바이트에 대하여 좀 더 생각하여 보는 시간을 가져야 하겠다.
3월 첫 토요 휴무일 날 아침, 교무실에서 교육계획서를 작성하고 있는데 문이 갑자기 열렸다. 동료 교직원인가 싶어 고개를 드니 웬 어린(?) 청년이 고개를 수그리고 인사를 한다. 졸업생인가 물으니 그게 아니란다. 작년에 자퇴를 했는데 선생님들께 인사를 하러 왔다는 것이다. 어린 청년은 요즘 유행하는 케쥬얼 차림에 금빛 목걸이와 폰을 달았고 몹시 헝클어진 머리(모히간 헤어스타일이라고 하는)를 했는데, 음성은 또렷했다. 본디 선생 입장에서 보면 제적된 학생들의 근황이 걱정되기도 하고 궁금도 한지라 어떻게 지내느냐고 물으니 불쑥 하는 말이 사업을 하고 있다는 것이다. 사업? 사업을 하다니? 아직 어린 나이에. 사업을 하려면 자본금이 있어야 할 텐데 집에서 준 거니? 이런 나의 의아함과는 달리 그의 대답은 매우 간단했다. 집이 가난하여 주유소에서 일을 해서 번 돈이 약 4백만 원 되는데 그 돈으로 인터넷 쇼핑몰을 열었다는 것이다. 인터넷 쇼핑몰이라? 그것 요즘 많이 하던데. 그것 쉬운 일 아니지? 경쟁이 치열할 거야. 그래, 할 만 해? 돈은 많이 벌고? 이런 나의 별 생각 없는 질문에 그의 대답은 의외로 어른스러웠고 담아 둘 만한 데가 있었다. 생각보다 쉽지 않아요. 야간 작업도 많이 하고. 저 혼자 하기 땜에 밥 먹는 시간 빼고는 컴퓨터 앞에서 살거든요. 그래. 힘들게다. 남의 돈 번다는 게 보통 일이던가. 그래, 무슨 일로 왔지. 오늘은 토요휴무일인데. 아, 참 작년 담임선생님께 인사드리러 왔댔지. 나의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다시 그 어린 청년은 ‘어른스럽게’ 말을 이어갔다. 여기 있을 땐 몰랐는데, 지난 1년 반 동안 참 많이 배운 것 같아요. 정말...... 지금에야 너무 생각이 많이 난답니다. 두 분 선생님을 꼭 뵙고 싶었는데...... 그의 희미한 말꼬리가 나를 안쓰럽게 하고 있었다. 그가 가고 난 뒤 나는 창 밖으로 씩씩하게 걸어가고 있는 그의 뒷모습을 지켜보았다. 가끔 있는 일이지만 이 곳을(본교는 해기사양성교육기관) 자퇴하여 딴 길을 가는 학생들이 찾아오곤 한다. 그 때마다 느끼는 일이지만 우리의 염려와는 달리 그들은 나름대로 각자의 길을 찾아가고 있다는 것이다. 그리고 꼭 담임을 찾아와 고맙다고 인사를 하곤 한다. 그럴 때마다 느끼는 것은 우리는 일단 입학한 학생에 대해서는 성공적으로 교육과정을 마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지만, 따라오지 못하는 소위 부적응 학생에 대해서도 다른 길을 모색할 수 있도록 그것 또한 최선을 다하여 도와줘야 된다는 사실이다. 굳이 자랑은 아니지만 우리 학교는 학생들이 기숙사에서 생활하고 선후배 위계질서가 엄격하여 전통적으로 스파르타식 교육을 지향한다. 하여, 입시철이 되면 해사고등학교란 이름이 해군사관학교의 부속인가, 하는 질문을 받기도 한다. 그것이 시대의 착오라면 수정의 과제가 되고 지켜나갈 전통이라면 그것 또한 미덕이 된다. 이 다음에 언젠가 저 어린 청년이 어엿한 사회인이 되어 다시 우리 교무실에 나타나 주길 기대하면서-.
나른한 5교시 국어생활 수업 시간이었다. '대중 매체와 언어 생활'에 대해 공부하는 시간이라 전날 학생들에게 미리 과제를 제시했었다. "지난 시간에 선생님이 여러분에게 대중 매체를 통해 우리말이 어떻게 오염되어가고 있나 그 사례들을 조사해 오라고 했었죠?" "네~." "자, 그럼 숙제를 안 해온 학생들은 손들어봐요." 그러자 한 학생이 내 눈치를 살피며 조심스럽게 손을 들었다. 나는 몹시 화가 나서 말했다. "숙제를 안 해오면 분명히 손바닥을 맞기로 했었죠? 자, 손바닥 내세요." 그러자 그 학생은 상의 주머니에서 뭔가를 부스럭거리며 꺼내더니 살그머니 나에게 내밀었다. 초코파이 한 개였다. 뇌물을 드릴 테니 제발 한번만 용서해 달라는 의미가 분명했다. 나는 그 자리에서 더욱 화가 난 표정으로 회초리까지 휘두르며 큰소리로 "이게 뭐야?"라며 소리쳤다. 순간 아이들을 바라보니 겁먹은 표정이 역력했다. "한창 배우는 학생 녀석이, 벌써부터 선생님께 뇌물을 바치고, 자기의 잘못을 용서받을 생각을 하다니, (여기서 약간 침묵을 했다가) 이런 녀석은 정말 귀여워~" 선생님이 어떤 무서운 말을 할까 긴장하며 듣고 있던 학생들은 내 말이 떨어지자마자 순식간에 책상을 치며 뒤집어졌다. 선생님의 말이 자기들이 예상했던 것에서 완전히 빗나갔기 때문에 그만 와~ 하고 웃음보가 터진 것이다. 지루하고 졸립고 따분하기 짝이 없던 5교시 수업 시간이, 이 말 한 마디로 다시 생기를 되찾았다. 바야흐로 춘곤증이 찾아오는 계절이다. 졸음을 참느라 안간힘을 쓰는 우리 불쌍한 아이들을 위해 선생님들이 잠시 개그맨이 되어보는 것을 어떨까?
'80년대 교실에서 2000년대 학생들이 공부를 하고 있다.' 몇 년전만 하더라도 자주 접하던 이야기이다. 그러던 것이 최근에는 이런 이야기를 듣는 빈도가 예전만 하지는 않은 것같다. 그만큼 여건개선이 많이 이루어졌기 때문일 것이다. 여건개선이 이루어진 탓도 있을 수 있겠지만 학교신설이 많아지면서 어느 정도 시설면에서 개선이 된 것으로 느끼기 때문이기도 하다. 이제는 학생들이 공부하는 환경이 어느정도 개선된 것만은 틀림없는 사실이다. 이런 여건개선은 향후에도 지속적으로 이루어져야 할 것이다. 그런데, 실제로는 지금도 '80년대 교실에서 2000년대 학생들이 공부하는 곳'이 많다. 인근의 학교만 비교해 보더라도 이미 30년 이상된 학교와 새로 신설된 학교의 시설은 그야말로 '하늘과 땅' 차이이다. 신설된 학교들은 강당에서부터 학생식당, 기타 부대시설(도서실, 음악실, 미술실, 정보관 등)이 잘 갖추어져 있다. 그러나 30년 이상된 학교들은 사정이 그렇지 못하다. 그 예로, 일단 학생들의 급식을 교실에서 실시한다. 학생들이 식사할 공간마련이 어렵기 때문이다. 교실에서 급식을 실시하게 되면 학생과 교사들의 불편은 뒤로 하더라도 음식의 맛이 떨어지게 된다. 조리실에서 교실까지 운반하는 과정에서 음식의 맛이 떨어지는 것이다. 쉽게 이야기 하면 밥이나 국을 다른 용기에 옮겨 놓았다가 식사를 하면 맛이 떨어지는 것과 같은 이치이다. 그래도 교실이 여유가 있는 학교는 사정이 좀 좋은 편이다. 교실2-3개를 이용해서 급식실로 이용하기도 한다. 그러나 이들 학교 역시 교실을 합치면 길이는 길어 지지만 폭이 좁기 때문에 여간 불편한 것이 아니다. 점심시간이 되면 마치 전쟁을 치루듯이 학생들이 식사를 하고 있는 것이다. 이밖에 오래된 학교일수록 가장 기본적인 교실환경개선이 필요하다. 칠판, 책·걸상을 이야기 하기 전에 창문이 맞지 않아 겨울철에 난방의 효과가 뚝 떨어진다. 아무리 잘 닫아도 그 틈을 타고 들어오는 찬바람을 막기에는 역부족이다. 또한 창문의 시건장치가 제대로 갖추어지지 않아서 각종 도난사고가 수시로 발생하기도 한다. 고리 등을 이용해서 시건장치를 해도 오래가지 못하기 때문이다. 교실의 냉·난방 시설을 완벽하게 갖추는 것도 중요하지만 가장 기본적인 교실환경의 개선은 무엇보다 우선시 되어야 할 문제이다. 노후되고 오래된 학교일수록 교육환경은 좋지 않다. 이런 학교들에 대한 예산지원이 필요한 시점이라는 생각이다. 현재도 이런학교들에 대한 지원이 이루어지고는 있다. 그러나 현재처럼 일부분을 수리하는 것 보다 좀더 체계적이고 근본적인 대책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학생들이 즐겁게 찾아와서 즐겁게 공부할 수 있는 학교를 만들기 위한 환경개선이 시급하다. 기본적인 환경부터 개선해야 할 것이다.
신학기, 야간자율학습에 임하는 아이들의 학습태도는 진지하기만 하다. 특히 옆에 앉아 있는 친구는 좋은 가정교사이기도 하다. 모르는 문제를 친절하게 가르쳐주는 아이들의 모습이 정겨워 보이기까지 하다.
며칠 전 동네 서점에 책을 부탁해 놓은 것이 있어서 들른 일이 있다. 오후 10시쯤 되었는데도 신학기를 맞아 서점은 학생들로 매우 붐볐다. 늦은 시간까지 공부한 학생들을 배려하는 마음으로 차례를 양보하며 학생들이 사는 책을 살펴보았다. 대부분의 책은 주변 학원에서 쓰는 책이었는데 중, 고등학생들이 만만찮은 가격의 책값을 카드를 내고 익숙하게 지불하는 모습에 놀랐다. 학생들이 거의 다 나가고 서점 주인과 들어 온 책을 확인하는 사이 어떤 어머니가 아들과 함께 고른 책을 계산대에 올려놓는데 보니 책이 제법 많았다. 어떤 책을 샀는지 궁금하여 나도 모르게 눈이 그 쪽으로 향하여 책의 제목을 훑어보았더니 중국어와 영어에 관련한 책이 대부분이었다. 다양한 중국어 책을 산 것을 보고 학생의 어머니에게, “아드님이 중국어를 잘 하나 봐요.” 했더니, “중국으로 유학가려고 준비하고 있어요.” 나도 모르게, “유학을 보내신다고요?” 라고 하니, “우리 아이는 늦었어요. 좀 빨리 보내었어야 했는데......”하시는 것이 아닌가? 중국 유학을 준비하고 있는 학생은 지난 2월에 중학교를 졸업한 학생이었다. 계속 놀라는 나를 보고 서점 주인이, “우리 동네에 사는 학생들 중에서 중국으로 유학가기 위하여 책을 사러 온 학생들이 몇 명 있었어요.” 하셨다. 그 학생의 어머니도 이미 유학을 보낸 동네 어머니들로부터 정보를 얻었다고 하시며 아들을 홈 스테이 하는 곳으로 보내게 되었다고 하셨다. 홈 스테이를 하면 비용이 조금 더 들긴 하지만 훨씬 안심되고 공부하기도 효율적이라며 아들을 유학 보내는 어머니는 매우 기대감에 차 있는 듯 보였다. 경제 강국으로 급부상하고 있는 중국! 세계 3위의 넓은 영토에 많은 인구와 자원이 있는 나라! 역사적으로 우리나라는 중국과 왕래가 많아서 문화와 전통이 비슷하고 거리도 가까운 편이며 한자에 익숙한 점 때문에 쉽게 중국유학을 결정하고 있는 듯하다. 부모가 사업차 중국에 갈 경우 자녀들과 함께 가는 경우라면 모르지만 인생에 있어 중요한 시기 즉, 부모와 교사와의 대화가 매우 필요한 청소년기의 학생들을 타국에 보내어 말도 잘 통하지 않은 곳에서 부모 형제와 떨어져 홈 스테이하며 유학생활을 할 때 득보다 실이 많지는 않은 지 다시 한 번 생각해 보았으면 한다. 몇 년간 중국유학을 다녀오면 대학에 들어가는데 유리한 고지를 점령할 수 있다는 자녀교육에 대한 열정만 지닌 채 막대한 유학자금을 들여가며 너나할 것 없이 중국을 향하여 가고 있는 현실을 간과하고만 있어서야 되겠는가?
3월이 되자 각 학년 각 교실은 새 단장으로 분주한 하루하루를 보내고 있다. 새로운 담임, 새 교실, 확고한 마음가짐이 스스로의 마음을 업그레이드 시켜 놓은 듯, 학년이 오를수록 그러한 현상은 두드러지게 나타난다. 특히 3학년 교실은 1-2학년 때와는 달리 180도 달라진 모습이다. 대학이라는 입문 과정이 이들을 그렇게 긴장하게 만들고 나이가 이들을 성숙된 어른의 길로 이끌어 가는 것이 아닌가 싶다. 1학년 학생들을 지도하여 3학년까지 이끌고 온 지금 차분히 이들의 흐름을 살펴보니 뚜렷한 변화가 보이는 것은 3학년 수업시간이었다. 1학년에서 2학년으로 진급된 학생들의 수업 시간에서는 뚜렷한 변화를 느끼지 못했다. 그런데 가장 뚜렷하게 나타나는 것은 공부하기 싫어하는 학생들도 놀기만 좋아하는 학생도 수업 시간은 물론 자율학습시간에도 정숙을 유지하면서 책을 펴서 공부하는 모습을 보고는 참으로 놀라움을 금할 길 없었다. 그렇게 학교에서 빠져나가려고 교무실 담임 선생님께 찾아와서까지 학원이다 과외다 하면서 하교하겠다는 학생들이 선생님의 지도에 또 스스로 자중하는 면에서 고3학년이라는 부담감을 실감할 수 있었다. 매일 아침 복도를 오가며 학생들을 지도하고 관찰한 결과 학생들의 변화를 두드러지게 포착할 수 있는 것은 역시 학생들의 마음가짐이었다고 생각된다. 무엇인가를 해 보겠다고 발버둥치는 이들에게 한편으로는 안타까운 면도 있으나 또 한편으로는 1-2학년 때부터 좀더 선생님의 지도에 따랐더라면 되었을 걸 하고 앞산에 초연히 자신의 위치를 지켜가는 초목들을 보며 되뇌어 보았다. 밤늦게까지 고3학년생들이 제 자리를 지켜가면서 형광불에 얼굴을 태우면서 책을 벗삼아 시간을 지켜가는 이들의 모습은 스님이 되어 불도를 터득하기 위해 벽만을 바라보고 장좌지와(長坐之臥 - 오래 앉아있기 위해서는 눕지 않는다는 의미)를 하는 것 같았다. 농어촌 벽지학교에서 벗어나 대도시의 큰 영역에서 배움의 과정을 밟아가겠다는 학생들의 호연지기는 교사인 나에게도 새로운 호연지기를 만들어 내게 하는 것 같았다. 얻고 싶어도 소망대로 가질 수 없는 시골의 문화적 한계에도 불구하고 주어진 상황을 주어진 상황으로만 생각하지 않고 그 주어진 조건에서도 새로운 조건을 만들어 가겠다는 굳은 신념을 소유한 벽지학교의 학생들이 바로 새 시대에 새 선구자가 아닐까 싶다. 고3학년으로서 대학입문과정은 등용문을 통과하는 것과 같다고나 할까? 고통스러운 인내 과정, 억제하여야 하는 쾌락, 자중하여야 하는 감정 표출 등은 이들이 겪어야 하는 산고(産苦)인 것이다.
황우석 교수의 줄기세포 논문조작 사건을 계기로 학생들의 '정직ㆍ신뢰 교육'을 강화하기 위한 교과서 보완지도자료가 발간됐다. 교육인적자원부는 10일 정직ㆍ신뢰 교육을 제고하기 위한 철학적 기저, 청렴 교육 강화, 윤리교육 제고 방안 등의 내용을 담은 교과서 보완지도자료를 전국 초중등학교에 배포해 관련 교과 및 재량활동 시간에 활용하도록 했다고 밝혔다. 이 자료는 '황우석 파문'을 "개인의 문제를 넘어서 우리 사회에 팽배해 있는 빨리빨리 문화, 성과제일주의, 과정을 도외시한 결과지상주의, 집단이기주의, 감상적 애국주의, 글로벌 스탠더드 미숙 등 총체적 사회구조적 문제가 얽혀 나타난 사건"으로 규정했다. 따라서 학교 현장에서 학생들에게 거짓말을 했을 때 참혹한 결과가 초래된다는 사실, 결과가 뛰어나도 그에 도달하는 방법이 바르지 않으면 언젠가는 쉽게 무너지고 만다는 사실을 깨닫도록 해야 한다고 자료는 제안했다. 자료는 토론을 통해 이번 사건에 대한 학생 및 교사의 심정을 나누고 파문의 사회적, 윤리적 원인을 짚어보도록 꾸며져 있다. 난자 공여는 괜찮은지, 실험을 위한 난자매매는 허용돼야 하는지, 난치병 치료를 위한 배아줄기세포연구의 허용 범위 등 윤리적 쟁점을 다루는 수업모델도 제시돼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