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월 첫 토요 휴무일 날 아침, 교무실에서 교육계획서를 작성하고 있는데 문이 갑자기 열렸다. 동료 교직원인가 싶어 고개를 드니 웬 어린(?) 청년이 고개를 수그리고 인사를 한다. 졸업생인가 물으니 그게 아니란다. 작년에 자퇴를 했는데 선생님들께 인사를 하러 왔다는 것이다.
어린 청년은 요즘 유행하는 케쥬얼 차림에 금빛 목걸이와 폰을 달았고 몹시 헝클어진 머리(모히간 헤어스타일이라고 하는)를 했는데, 음성은 또렷했다. 본디 선생 입장에서 보면 제적된 학생들의 근황이 걱정되기도 하고 궁금도 한지라 어떻게 지내느냐고 물으니 불쑥 하는 말이 사업을 하고 있다는 것이다. 사업? 사업을 하다니? 아직 어린 나이에. 사업을 하려면 자본금이 있어야 할 텐데 집에서 준 거니? 이런 나의 의아함과는 달리 그의 대답은 매우 간단했다. 집이 가난하여 주유소에서 일을 해서 번 돈이 약 4백만 원 되는데 그 돈으로 인터넷 쇼핑몰을 열었다는 것이다.
인터넷 쇼핑몰이라? 그것 요즘 많이 하던데. 그것 쉬운 일 아니지? 경쟁이 치열할 거야. 그래, 할 만 해? 돈은 많이 벌고? 이런 나의 별 생각 없는 질문에 그의 대답은 의외로 어른스러웠고 담아 둘 만한 데가 있었다.
생각보다 쉽지 않아요. 야간 작업도 많이 하고. 저 혼자 하기 땜에 밥 먹는 시간 빼고는 컴퓨터 앞에서 살거든요.
그래. 힘들게다. 남의 돈 번다는 게 보통 일이던가. 그래, 무슨 일로 왔지. 오늘은 토요휴무일인데. 아, 참 작년 담임선생님께 인사드리러 왔댔지. 나의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다시 그 어린 청년은 ‘어른스럽게’ 말을 이어갔다. 여기 있을 땐 몰랐는데, 지난 1년 반 동안 참 많이 배운 것 같아요. 정말...... 지금에야 너무 생각이 많이 난답니다. 두 분 선생님을 꼭 뵙고 싶었는데......
그의 희미한 말꼬리가 나를 안쓰럽게 하고 있었다.
그가 가고 난 뒤 나는 창 밖으로 씩씩하게 걸어가고 있는 그의 뒷모습을 지켜보았다. 가끔 있는 일이지만 이 곳을(본교는 해기사양성교육기관) 자퇴하여 딴 길을 가는 학생들이 찾아오곤 한다. 그 때마다 느끼는 일이지만 우리의 염려와는 달리 그들은 나름대로 각자의 길을 찾아가고 있다는 것이다. 그리고 꼭 담임을 찾아와 고맙다고 인사를 하곤 한다. 그럴 때마다 느끼는 것은 우리는 일단 입학한 학생에 대해서는 성공적으로 교육과정을 마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지만, 따라오지 못하는 소위 부적응 학생에 대해서도 다른 길을 모색할 수 있도록 그것 또한 최선을 다하여 도와줘야 된다는 사실이다.
굳이 자랑은 아니지만 우리 학교는 학생들이 기숙사에서 생활하고 선후배 위계질서가 엄격하여 전통적으로 스파르타식 교육을 지향한다. 하여, 입시철이 되면 해사고등학교란 이름이 해군사관학교의 부속인가, 하는 질문을 받기도 한다. 그것이 시대의 착오라면 수정의 과제가 되고 지켜나갈 전통이라면 그것 또한 미덕이 된다. 이 다음에 언젠가 저 어린 청년이 어엿한 사회인이 되어 다시 우리 교무실에 나타나 주길 기대하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