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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세검색국제법 기준‘누가 발견해 관리하고 있나’ 칙령 41호 기념해영토 주권 환기시켜야 독도는 2개의 작은 암초로 되어 있다. 예로부터 사람이 살 수 있는 섬도 아니고 오랫동안 머물 수 있는 섬도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고지도나 고문헌에 울릉도와 더불어 독도가 표기된 것은 상징적으로 조선의 영역으로 인식되었음을 알 수 있다. 독도는 한국의 울릉도에서는 보이지만, 일본의 오키섬에서는 보이지 않는다. 그런 이유로 한국의 울릉도 사람들에게는 예로부터 독도에 대한 영역의식이 생겨났고, 일본인에게는 독도에 대한 영역의식이 생겨나지 않았다. 세종실록 지리지나 숙종실록 지리지에 울릉도와 우산도(독도)가 등장하는 것은 동해의 울릉도에 왜구가 침입하였기 때문이다. 영토에 위기가 닥칠 때 일수록 더욱 영토의식이 강하게 나타나 독도까지도 영역표시를 명확히 했던 것이다. 1876년 일본의 강압에 의해 강화도조약이 체결되자 조선의 문호는 개방되었으며 일본의 한국침략은 본격화되었다. 특히 울릉도에 일본인들이 빈번히 침입했다. 조선조정은 울릉도에 대한 영토주권을 수호하기 위해 울릉도에 조선인을 이주시켰다. 더 나아가 일본인들이 울릉도에 강하게 집착하자 조선조정은 동해의 주변 섬에 대한 행정조치를 단행, 이들 섬이 조선 영토임을 명확히 했다. 그것이 바로 칙령41호이다. 그런데 일본제국주의는 독도가 한일 양국 사이의 국경지대에 있다는 점을 악용하여 대륙팽창을 본격화하던 1905년 러일전쟁 중에 무주(無主)지라고 하여 일본영토에 편입하는 조치를 취했다. 한국정부는 이러한 사실을 1년 후에 전해 듣고 일본(통감부)에 대해 인정할 수 없음을 분명히 했다. 이 내용은 한글로 번역된 ‘황성신문’ 1906년 7월 13일자 기사로서 확인할 수 있다. ‘일제 통감부가 내부(대한제국의 내무부)에 강원도 삼척군 관하 소재의 울릉도에 소속하는 도서와 군청이 처음 설치된 연월을 설명하라고 하였다. 내부는 이에 답하여 광무 2년 (1898) 5월 20일에 울릉도감을 설립하였다가 광무 4년(1900) 10월 25일에 정부 회의를 거쳐 군수를 배치하였다. 군청은 태하동에 두고 이 군이 관할하는 섬은 죽도와 석도이다. 동서가 60리이고 남북이 40리이다. 이를 합치면 200여리이다고 했다.’ 이는 대한제국정부가 통감부에 대해 칙령41호의 로 인해 오늘날 독도가 명확한 한국영토임을 확인시킨 것이었다. 다시 말하면 일본이 주장하는 1905년 독도영토편입조치를 전면적으로 부정한 것이었다. 국제법에서 영토의 귀속을 결정하는 요건으로 어느 나라가 먼저 발견해 이를 지속적으로 관리해왔고 오늘날 어느 나라가 그 영토를 관리하고 있는가가 기준이다. 독도는 지리적으로 울릉도에서 보여 자연적 요건에 의해 고대시대부터 한국영토로서 인식되어왔으며, 또한 일본제국주의의 침략에 대응, 1900년 칙령41호로 근대적인 행정조치를 단행해 독도를 관리해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일제는 독도를 침탈하려고 1905년 편입조치를 취했지만 이는 타국영토에 대한 편입조치이었으므로 불법적인 영토침략에 불과하다. 독도는 1945년 연합국의 조치에 의해 독립과 더불어 다시 한국이 영토로서 관리해오고 있다. 이를 보더라도 독도가 국제법적으로도 명명백백한 한국영토인 것이다. 금년은 근대 국제법에 의거한 독도영토 관리를 위해 행정조치를 단행한지 110돌이 되는 해이다. 지금도 일본은 틈만 있으면 독도에 대한 영유권을 주장하고 있다. 이러한 상황에 근대적인 국제법에 의한 영토 관리 조치였던 칙령41호를 기념하는 것은 대내외에 독도의 영토주권을 환기시키는 매우 중요한 일이다. 일본의 시마네현은 ‘죽도의 날’을 정하여 일본제국주의가 독도침략을 위해 불법적으로 편입 조치한 을 기념하고 있다. 이 같은 독도의 영토주권을 왜곡하고 날조하는 일본의 행위를 묵인한다면 국제사회는 독도를 일본영토로 인식하게 될 것이다. 이를 극복하기 위해서라도 독도가 진실에 입각한 역사적 권원에 의해 명명백백한 한국영토임을 명확히 해둘 필요가 있다. 지난 9일 우리는 한글창제 564돌을 맞아 한글날을 기념했다. 한글날은 1446년 10월 9일 훈민정음 반포한 날을 양력으로 환산한 것이다. 지금 우리에게는 하루빨리 ‘독도의 날’을 제정하여 근대적 행정조치로 독도영토를 관리해온 1900년 10월 25일의 칙령41호를 기념하는 일이 시급하다. 이것이야말로 진정 일본의 영토침탈행위에 대응하여 독도의 영토주권을 보전하는 조치일 것이다.
번역가이자 소설가로 이름을 새긴 이윤기 선생이 타계하고 한 계절이 지났다. 자신의 말 대로 “꽃 대접 받기엔 애초 틀린 인생”이었는지 모르지만 그가 남긴 텍스트는 꾸준히 ‘꽃’ 대접을 받을 건 분명하다. 그를 세상에 대중적으로 알린 장미의 이름은 기호학자 움베르토 에코의 역작이었던 탓도 있었겠지만 1986년 번역되자마자 폭발적인 반응을 얻었다. 중세 이탈리아의 한 수도원에서 일어난 연쇄 살인 사건을 소재로 한 이 작품은 논리학, 신학, 인류학, 기호학 등 다양한 지식들 사이를 오가며 미스터리 형식을 취했지만 결국 한 권의 책에 대한 이야기다. 주인공인 윌리엄과 아드소가 그렇게 찾고자 했고 수도사 호르헤가 끝까지 지키고자 했던 한 권의 책, 아리스토텔레스의 시학 제2권이 또 다른 주인공. 텍스트가 인간을 어떻게 변화시킬 수 있는지, 책이 인류에 어떤 의미인지 생각하게 했던 작품이기도 하다. 어김없이 독서의 계절(?)이 돌아왔다. 하지만 연평균 11.9권의 책을 겨우 읽는 대다수의 사람들에게는 아직 책이 갖는 위력이 실감나지 않는 계절. ‘책에 대한 책’들이 시선을 잡아끈다. 교과서가 아니기 때문에 그냥 마음 내키는 대로 골라 읽어도 되는, 그래서 좀 ‘헐렁’하지만 스펙트럼은 다양한 몇 권을 소개한다. 인류 역사의 빛과 그림자를 만든 50권의 책을 소개한 책 VS 역사(볼프강 헤롤레스클라우스 뤼디거 마이․추수밭)는 역사가 꼭 기억해야 하는 책과 역사에 기억되었으나 중요성이 의심되는 책을 둘러싼 흥미로운 논쟁 속으로 초대한다. 일리아스와 함께 트로이를 어떻게 발견했는지, 신약성서는 유럽의 형성에 어떤 의미가 있는지, 파우스트는 국가사회주의자들에 의해 어떻게 오용되었는지, 제1차 세계대전 중 군인들의 배낭 속에 왜 짜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가 있었는지, 그 책들이 영향을 준 역사 · 문화 · 정치 등의 다양한 면면을 살펴본다. 책을 읽을 자유(이현우․현암사)는 블로그 ‘로쟈의 저공비행’으로 유명한 저자의 두 번째 서평집이다. 로쟈의 이름을 어렴풋이라도 안다면 최소한 책동네를 어슬렁거리고 있다는 증거일지니 장장 600페이지에 달하는, 책 읽고 쓰기의 ‘기계(?)’가 펼쳐놓은 잔치에 초대받은 셈이다. “인생은 책 한 권 따위에 변하지 않”고 “비열하지 않은 인간이 되기 위해서는 한 권이 아니라 여러 권의 책이 필요하다”고 주장하는 저자는 책 읽기의 기술과 방법론, 언어(이야기)의 힘과 번역 가능성, 문학에 대한 믿음과 불신, 기술합성 시대의 예술, 삶과 학문의 관계와 책임 등을 쉴새없이 풀어 놓는다. 독서에 관한 한 일찌감치 이름을 날린 저자의 빌린 책 산 책 버린 책(장정일․마티)은 책읽기의 방법이나 주제에 대해 이야기하는 그의 여덟 번째 독서일기다. 왜 그 책을 읽는지 세 가지 이상의 동기를 가질 것, 좋은 책과 나쁜 책을 볼 줄 아는 자신만의 시각 갖기 등 저자가 보유한 독창적인 책읽기를 통해 베스트셀러에 대한 비판, 안타깝게도 잘 알려지지 않은 책들, 사회적 반향을 일으킨 최근의 책들까지 폭넓게 아우른다. 흥미로운 것은 앞의 두 책이 공히 언급하고 있는 일본발 속독술, 다독술에 대한 비판. 로쟈는 초병렬 독서법(책, 열 권을 동시에 읽어라․나루케 마코토)에는 다소 유연한 제스처를 취하면서도 “명작만큼 인생의 식량이 되지 않는 것도 드물다”는 내용을 지적하며 오로지 돈과 성공이 목적인 독서에 반감을 내비친다. 장정일은 더 나아가 다치바나 다카시의 자기 과시에 가까운 다독술과 속독술을 비판하며 “사고의 숙성을 본질로 하는 ‘책 문화’에 대한 이해가 없다”고 일갈한다. 세계 명문가의 독서교육(최효찬․바다)는 보너스다. 기자 출신 저자가 우리나라 명문가들의 자녀교육법을 다룬 5백년 명문가의 자녀교육, 외국 명문가들의 독특한 교육관을 분석한 세계 명문가의 자녀교육에 이어 다양한 분야에서 명품 인재들을 탄생시킨 각 가문의 독서교육 노하우 70가지를 자세한 일화와 사례를 전해준다. 어머니가 구성한 독서 리스트에 따라 매일 책을 읽고 뉴욕타임스를 읽고 토론했다는 케네디 가의 자녀들(4남 5녀), 영국으로 유학 보낸 아들에게 편지와 신문 스크랩을 보내 주며 조국을 잊지 않게 한 인도 초대 총리 네루의 아버지, 500년 전 이미 알파맘이었던 어머니 덕분에 경전과 역사서 등 고전적인 책 위주로 정통적인 책을 섭렵한 율곡, 할아버지의 서재에서 바다에 대한 책을 접한 뒤 해양 전문가를 능가할 정도로 해박해졌고 이때 얻은 해양 지식 덕분에 2차 세계대전을 승리로 이끌 수 있었다는 루즈벨트까지. 사례는 풍부하니 학생들을 명문가의 자녀, 명문 학교의 학생들로 이끌고 싶다면 일독하시라.
웃음이 넘치는 교실 우리 교실 아침 풍경입니다. "얘들아, 오늘 공부 시작할까? 보던 책의 제목을 독서반응지에 적어두고 화장실에 다녀 오세요. " "예, 선생님" "자, 그럼 숙제를 펴 놓고 오늘 받아쓰기 할 쪽을 읽어 보세요." 월출산을 바라보며 아침독서를 하고 새 소리를 들으며 학교에 오는 아이들의 싱싱함은 하루가 다르게 무럭무럭 커 가는 모습을 보여줍니다. 작은 일에도 티격태격 곧잘 싸우고 울던 아이들이었는데 이젠 벼논의 벼들처럼 안으로 익어서 서로를 배려하고 고운 말을 쓰려고 노력하는 모습이 참 예쁩니다. 어제는 받아쓰기를 채점하다 배꼽이 빠지는 줄 알았습니다. 바른 글씨와 띄어쓰기의 기본을 잡아주는 일은 2학년 국어 공부의 필수입니다. 날마다 읽기 책 한 쪽을 칸 공책에 한 번 쓰고 열 번 읽어 오기를 숙제로 내주지만 덜렁대는 아이는 10번 읽어 오기를 채우지 못해서 100점을 맞지 못합니다. 집에서 소리를 내어 10번 읽었더라면 눈을 감고도 쓸 수 있을 텐데 엉뚱한 답을 쓰곤 합니다. 때로는 생활의 길잡이의 글을 숙제로 내 주기도 하고 시를 외워 쓰게도 합니다. 암기 교육이 나쁘다고들 하지만 최소한의 암기는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구구단을 못 외우는 아이는 그 후에 배우는 곱셈이나 나눗셈을 잘할 수 없듯이. 그런데 우리 반에서 가장 머리가 좋은 태환이의 받아쓰기를 채점하다가 웃음보가 터지고 말았습니다. 불러준 문제는 "전화벨이 울리면 수화기를 듭니다'였는데 녀석은 '전화벨이 울리면 소화기를 듭니다'로 쓴 겁니다. "태환아, 너네 집에 불난 거니? 아니, 거기가 무슨 소방서니? 소화기라니~~" 아이들도 깔깔 대고 웃고 나도 한참이나 웃었습니다. 그제야 상황을 판단한 태환이도 따라서 웃었습니다. 예전 같으면 부끄러워하며 울었을 텐데 이제는 농담도 통하는 사이가 되어서 얼마나 좋은지 모릅니다. 공부 시간에 일부러 수화기를 들고 보여주며 수업을 했건만 녀석은 그 순간 해찰한 게 분명합니다. 아니면 숙제를 읽어 오지 않아서 비슷한 발음을 쓴 것이 분명합니다. 오답 덕분에 한참을 웃어서 보약을 먹은 것처럼 행복한 하루를 시작할 수 있었습니다. 아이들의 순수함이 다치지 않게 초등학교 2학년 아이들은 어디로 튈지 모르는 공과 같습니다. 그래서 걱정이 되기도 하지만 행복도 안겨줍니다. 아이들의 순수함은 해맑은 가을 하늘 같아서 같이 있는 것만으로도 세월이 비껴 갑니다. 아이들은 바로 내면의 법에 파묻혀 살기 때문에 자그마한 일에도 쉽게 슬퍼하고 잘 웁니다. 나의 할 일은 바로 아이들이 지닌 그 순수한 내면의 법, 아름다운 양심이 훼손되지 않도록 아껴 주는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상상력도 풍부하고 사물을 보는 눈도 갖춘 나이, 아홉 살 아이들인 2학년은 선생님이나 책에서 배운 내용을 곧이 곧대로 실천하려고 노력하는 모습이 어느 학년보다 탁월합니다. 거짓말을 해도 금방 눈에 보이는 거짓말이라서 속아주면서도 귀여운 나이입니다. 그래서 나는 사람의 지능 발달이 2학년 수준에서 멈춘다면 이 세상에 범죄나 슬픈 일이 훨씬 줄어들 것이라는 엉뚱한 생각을 하곤 합니다. 세상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고 잘 웃으며 천진난만한 시어를 줄줄 달고 사는 아홉 살 아이들 속에서 나는 오늘도 건강해지는 보약을 마십니다. "태환아, 고마워! 네 덕분에 보약 한재를 먹은 것보다 더 행복했단다."
제주도교육청-도감사위원회 일선학교에 대한 감사권한을 놓고 갈등을 빚었던 제주특별자치도감사위원회와 도교육청이 2년만이 논란을 재연해 긴장이 고조되고 있다. 18일 도감사위원회가 백록초등학교를 시작으로 12월까지 32개 학교에 대한 감사를 시작한 데 이어 도교육청도 29개 학교에 대한 자체감사에 들어갔다. 지역 교육계는 중복감사에 대한 현장 혼란과 함께 최근 지방자치단체장들에 의해 제기된 교육감 직선제 폐지 요구 등 교육자치를 훼손하는 상황이 오지 않을까 우려하는 분위기다. 논란의 출발은 2년 전으로 올라간다. 2006년 설립된 제주특별자치도감사위원회의 요청에 따라 2007년까지 교육관련 기관에 대한 감사를 제주교육청이 대행했으나 2007년 5월 도교육청이 “교육청에서 자체감사가 가능하다”라는 법제처의 유권해석을 근거로 대행감사가 아닌 자체감사 실시키로 함에 따라 갈등이 시작됐다. 감사위원회는 특별법에 위배되고 교육청의 자체감사가 조례로도 되어 있지 않은 점을 들어 교육청과 관계없이 직접감사 착수를 선언했다.이중감사 우려가 제기되고 일선 학교가 술렁이자 2008년 4월 제주특별자치도의 중재에 따라 종합감사를 교육청이 담당하고 이 결과를 감사위원회가 활용하는 것으로 합의, 일단락 됐다. 그러나 2009년 3월 감사위원회의 자치감사 대상에 지역교육청 및 소속 행정기관을 제외하는 내용의 ‘제주특별자치도 감사위원회 구성 및 운영에 관한 조례’가 의결됐고 감사위원회는 이에 대한 무효 소송를 진행했다. 이에 대한 대법원 판결이 내려지자 감사위원회가 도교육청에 대행감사를 요청했고 도교육청이 이를 거부함에 따라 갈등이 다시 촉발된 것이다. 상황이 이렇게되자 지난 1일 감사위원회는 “대법원 판결에서 승소했으나 교육청이 이를 받아들이지 않고 있다”며 24학급 이상 학교 23개교, 3개 학교법인, 6곳의 병설유치원에 대한 직접 감사계획을 발표했다. 이에 대해 도교육청은 5일 “대법원 판결은 도교육감의 자체감사권이 있다 없다를 판결한 것이 아니며 도교육감이 소송의 당사자도 아니다”라며 맞섰고 감사위원회에 직접감사 재고를 요구했다. 결국 두 기관이 합의점을 찾지못한 채 이번주 도감사위원회의 자치감사와 도교육청의 자체감사가 동시에 시작됐다. 양성언 교육감은 18일 기자간담회에서 “중복되지 않는 범위 내에서 20일부터 자체감사를 진행하겠다”고 밝혔다. 양 교육감은 “감사위는 주어진 일을 하시겠다는 것이고 우리도 나름대로 일을 해야 한다”며 “지난 2008년 절충안이 실현되도록 우리도 노력하겠다”고 말했다. 도교육청도 “도와 교육청이 참여하는 11월 교육행정협의회를 통해 논의가 이뤄질 것으로 본다”며 절충 가능성을 열어뒀다. 그러나 현장 입장에서는 두 기관의 충돌로 자칫 중복감사를 받는 사태가 발생하지 않을까 우려하고 있다. 물론 일단 중복감사는 피한 상황이지만 앞으로 전개될 상황이 불투명하기 때문이다. 한편 제주교총(회장 이창준)은 이번 사태와 관련 최근 성명서를 내고 “전국시도지사협의회가 교육자치를 일반자치로 통합하라는 요구나 감사위원회가 각급학교를 직접 감사하겠다는 것은 지방분권을 빌미로 교육자치를 말살하고자 하는 시도”라고 지적하고 “감사위원회의 감사권은 중앙정부의 권한을 이양받은 것으로 특별자치도로 변경되기 이전처럼 지방자치단체만 감사한다해도 현행 법령상 하등의 문제가 없다”고 주장했다. 제주교총은 또 “감사위원회와 교육청은 어떠한 경우에도 학생들의 학습권을 침해할 우려가 있는 중복감사를 지양하고 교육자치를 부정하는 어떠한 시도도 이뤄져서는 안된다”고 강조하고 제주특별자치도에 조례 재개정을 요구했다.
19일 한국교총, 한국교육학회, 한국교육행정학회, 한국정책학회, 한국행정학회 공동주최로 대한상공회의소 의원회의실에서 '후반기 이명박정부, 공정사회를 위한 교육과제는?'이란 주제로 대토론회가 개최됐다.
19일 한국교육과정평가원(원장 김성열)은 4층 대회의실에서 '교육과정.교수학습.교육평가를 중심으로'란 주제로 5.31 교육개혁의 성과와 전망에 관한 세미나를 개최했다.
얼마 전 당국은 국립대학 교수들의 급여체제를 성과연봉제로 하겠다는 개정안을 입법예고한 바 있다. 등급을 S(20%), A(30%), B(40%), C(10%)로 나누고, 신규교수는 당장 2011년부터, 2012년에는 비정년계약교수, 2013년에는 정년보장교수들에게 모두 적용한다는 것이다. 이에 대해 국공립대학교수연합회(국교련)를 비롯한 여러 단체들은 헌법소원도 불사한다는 강력한 반대의사를 표명하고 있다. 교육경쟁력 제고를 위해 여러 가지 수단이 강구될 수 있고, 성과연봉제를 긍정적으로 평가할 수도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국교련 등이 반대하는 데는 수긍할 만한 이유가 있다. 성과연봉제를 반대의 논리가 반드시 기득권 수호나 연구를 소홀히 하면서 이른바 ‘철밥통’을 사수하려는 데 있는 것이 아니다. 평가체제 자체를 반대하는 논리 이외에도 원론에 찬성하면서도 수긍하지 못하는 부분이 많기 때문에 저항이 거센 것이다. 두 가지만 지적하고자 한다. 하나는 성과연봉제를 포함하여 법인화 등 일련의 개혁조치를 관(官) 주도로 하지 말라는 것이다. 현 정부는 대선공약에서부터 ‘자율’을 강조했지만 실질적 자율보장 실행 의지를 보인 적이 없기 때문에 저항이 거세다는 점을 아울러 새겨야 한다. 이른바 대학자치의 원칙에 따라 자생력을 지닌 제도로 정착하도록 해야 한다. 다른 하나는 관 주도 정책이 늘 그러하지만 획일적으로 밀어붙이기 때문에 공감을 얻지 못하는 것이다. 주지하는 바와 같이, 명칭만 국공립대학으로 같을 뿐이지 국공립대학들도 그 목적이나 역할이 천차만별이라는 점을 염두에 두어야 한다. 이를 묵살하고 일률적으로 모든 대학의 급여체계를 바꾸겠다고 하니 누가 선뜻 수긍하겠는가. 무엇보다도 당국이 가장 유념해야 할 원칙은 대학구성원인 교수들의 교권을 훼손하거나 그들의 교권수호 의지를 간과해서는 안 된다는 점이다. 이 원칙에 동의한다면, 시점을 못 박아 놓고 밀어붙일 일이 아니다. 시간이 다소 걸리더라도 구성원이 합의한, 준비된 대학부터 점진적으로 시행할 일이다. 그렇지 않으면 ‘5공식 개혁’처럼 별 성과도 없이 차후에도 적지 않은 후유증이 따라다닐 것이다.
10월18일(월) 영원초등학교 5, 6학년 학생 30명은 ‘정읍시청소년성문화센터’를 찾아 체험중심의 성 문화 체험학습을 실시하였다. 학생들은 섹슈어리티 체험관에서의 체험을 통해 성의 이해를 높이게 되었고, 성교육 체험관을 활용한 자기주도적 체험학습을 통해 자신의 성가치관과 태도를 되돌아보는 계기가 되었다. 또한 임신체험 학습을 위하여 만삭된 어머니의 태아 몸무게를 실은 임신 체험복을 입어 본 학생들은 엄마들이 무척 힘들었겠다면서 부모님에 대한 고마움을 새삼 알게 됐다고 말했다. 성적, 감정적으로 아주 민감한 사춘기의 학생들이라서 부끄러운 듯 보고 듣지 않는 것 같으면서도 관심 있고 흥미 있게 참여했다면서 이론적인 배움도 중요하지만 직접 체험을 통한 교육이 얼마나 효과적인가를 알 수 있었다고 송경숙 인솔교사가 말했다.
경기도 수원 소재의 칠보초등학교(교장 안영근)에서는 공교육을 우려하는 목소리에당당하다. 교육의 주체인 학부모, 교사, 학생의 마음이 함께 어우러져 즐거운 학교생활을 꾸려가고 있고, 그 효과는 학교 울타리를 넘어서 지역사회에까지 긍정적으로 미치고 있다. ◦ 칠보초등학교 학부모들의 애교심은 조금 남다르다. 녹색어머님들께서는 “아이들 하루가 등교하면서 시작되잖아요?” 하시면서 아침 일찍부터 학교 주변의 환경을 점검한다. 독서 동아리회 어머님들은 매주 수요일에 1,2학년을 대상으로 책읽어주기를 통해 책과 친밀해지는 시간을 만들고 최근에 시행되었던 “서정오 작가와의 만남”이라는 주제로 책을 통해 작가의 마음을 읽는 수준을 넘어서서 작가들이 책을 읽는 아이들에게 바라는 점과 기대하는 점을 알 수 있었던 좋은 기회였다. ◦ 교사들은 출근길이 매우 즐겁다. 다양한 동호활동으로 인해 동료 교사들간의 관계가 매우 두텁기 때문이다. 매주 월요일과 목요일에는 배드민턴, 수요일에는 볼링, 화요일과 목요일에는 요가 동호활동이 행해지고 있다. 또 퇴근 후에 교장선생님을 주축으로 남교사들로만 구성된 당구 동호활동은 남다른 끈끈함으로 학교 내에서 말하기 어려운 건의사항도 쉽게 말할 수 있는 기회를 갖게 된다. 이러한 활동은 교사들의 직무만족도를 높여주고, 그 파급효과는 교실 수업의 질 개선에도 크게 기여하고 있다. ◦ 학생들은 오직 칠보초등학교에서만 맛볼 수 있는 교육에 매우 만족하고 있다. 선생님이나 학교 방문객들에게 인사를 잘 하는 예의바른 학생들 의 인사말은 “효도하겠습니다”. 혹여 맹목적인 인사말이 될 수 있는 “안녕하세요?” 보다는 6년 동안 “효도”라는 단어를 마음속에 새길 수 있는 꾸준한 예절교육이 실현되고 있는 것이다. 또한 수업의 시작과 끝을 알리는 차임벨, 그리고 조회 시 사용되는 음악이 “국악”이기에 우리의 것을 사랑하는 마음도 길러지고 있다. 학교 층마다 있는 세탁기는 아이들의 청소 부담을 줄여주고 또한 세제를 사용하지 않고도 걸레가 깨끗해 질 수 있다는 환경교육의 기능과 더불어 교실의 청결도는 두 배나 향상될 수 있는, 즉 1석 3조의 효과를 맛보고 있다. ◦ 지난 10월 5일. 평일임에도 불구하고 칠보초등학교 강당에서는 “금호동 경로잔치”가 열렸다. “날씨가 좋은 가을 날. 학생들의 체육수업은 운동장에서도 충분히 할 수 있답니다. 오히려 공휴일보다 평일에 우리 학교에서 이렇게 뜻 깊은 행사를 치르게 되어서 좋습니다. 강당으로 향해있을 학생들의 시선과 마음에 동네의 어른을 공경하는 마음까지 심어줄 수 있는 살아 있는 효도교육이 이루어진 셈이지요” 칠보초 교장 안영근 선생님께서는 학교와 지역사회의 두터운 관계형성과 동시에 이를 진정한 효도교육의 일환으로 생각하여 흔쾌히 경로잔치를 승낙하였다고 전했다. 한편, 학교 홈페이지의 활성화로 교육의 주체들의 원활한 의사소통이 가능하도록 노력하고 있다. 학급 홈페이지의 활성화로 각종 알림사항을 확인할 수 있고 맞벌이로 인해 교사와 학부모간의 미약한 관계를 개선하는 데에도 크게 기여했다. 이에 2009년에는 경기도 학교 홈페이지경연대회에서 은상을 수상하였고 올해에도 수원교육지원청에서 은상 수상으로 홈페이지 경연대회 예선을 통과하였다. ◦ 또한 오는 11월에는 “수원 삼성 블루윙즈”와 함께하는 축구 클리닉에 전교생이 참여할 것이라고 전해졌다. 이는 지식과 덕성뿐 아니라 건강한 신체까지 겸비한 인격인을 육성하려는 칠보초등학교의 교육방침이 잘 묻어난 행사일 것으로 여겨진다.
“바쁘고 힘들고 어색하기도하고 했는데 이렇게 축하해주시니 소속감이 생겨요.” 서울교총(회장 임점택)이 15일 서울프라자호텔에서 개최한 ‘제11회 은사와 함께하는 새내기 교사대회’에 선∙후배 교사 및 은사 500여명이 참석, 축하와 감사의 인사를 나눴다. 사제지간 꽃 전달식, 선배 및 새내기 교사 경험담 발표, 아카펠라 공연, 개그맨 박준형 씨의 축하공연, 사제사랑 콘서트 등 다채로운 행사로 화기애애한 가운데 진행된 대회는 카드·스위치·비둘기 마술 등 신비한 마술공연이 펼쳐질 무렵 절정에 이르렀다. “새내기 교사 4명과 함께 참여했다”는 서울소의초 엄용선 교사는 “33년 교직생활에 선배와 후배 교사가 함께 즐기는 행사는 처음”이라며 “이번 대회를 통해 자연스럽게 후배들과의 관계가 돈독해진 것 같다”고 말했다. 같은 학교 배현명 새내기 교사는 “평소에 존경하는 선배 선생님한테 꽃까지 받아 정말 기쁘다”며 “이렇게 환영해주시고 축하해주신 만큼 좋은 선생님이 되도록 노력해야겠다”고 소감을 밝혔다. “한 식구가 된 새내기 선생님을 진심으로 환영한다”며 축하인사를 전한 임점택 서울교총 회장은 “긍정적 마음과 부지런한 자세로 끊임없이 연구해 서울교육을 빛낼 멋진 선생님이 되어주길 바란다”며 선배로서의 진심어린 조언도 잊지 않았다. 한국교총 안양옥 회장은 축사를 통해 “교사라는 긍지와 자부심을 갖길 바란다”며 “ 한국교총은 여러분이 그 긍지와 자부심을 지킬 수 있도록 힘쓸 것”이라고 말했다.
이 사전이 기반이 되어 그 뒤로는 사전 편찬이 원활히 이뤄졌다. 1961년에 이희승 박사가 편저자로 되어 있는 ‘국어대사전’은 23만여 어휘를 수록했다. 1975년엔 신기철(申琦澈), 신용철(申瑢澈) 형제가 ‘새우리말큰사전’을 펴냈고, 1976년에 현문사(玄文社)에서 ‘한국어대사전’을 냈으며 1978년엔 남광우(南廣祐)가 감수한 ‘새국어대사전’이 이상사(理想社)에서 나왔다. 그러다가 1991년에 ‘한글학회’가 다시 ‘우리말 큰사전’을 편찬했다. 45만여 개의 표제어를 담은 사상 최대 규모로 우리말글살이의 새 이정표를 세웠다. 이 사전은 45만여 개의 어휘를 쉽고 정확한 우리말로 풀이해 싣고 풍부한 용례를 덧붙였다. 또 천연색 그림과 사진을 실어 말뜻 이해를 도왔다. 특히 기존의 사전이 표제어를 늘리기 위해 인명, 지명 등의 고유명사를 마구 집어넣어 백과사전을 연상시켰던 것과는 달리 국학과 관련된 극히 예외적 경우를 제외하고는 고유명사를 최대한 피하고 있다. 이 사전은 ‘한글학회’가 20여 년 동안 숙원사업으로 삼아온 것으로 편집 작업에만도 73명이 꼬박 5년간 매달려야 했던 대역사(大役事)다. 이 사전은 지난 1929년 ‘조선어학회’가 사전 편찬을 추진한 이래 60여 년간 계속된 ‘한글학회’의 피땀 어린 ‘우리말 사랑’의 결정판이라 할 수 있다. 1990년대 와서는 우리 국어학계에 새로운 전기가 마련된다. 1990년 초 어문관련 현안문제의 해결과 개선을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법정어문기관의 설치가 필요하다는 어문학계와 언론계의 여론에 따라 국립국어연구원(2004년 11월 11일 기존 연구기능에 정책기능을 강화하여 국어 연구·정책기관인 ‘국립국어원’으로 개편)이 설립되었다. 이는 대통령령 제13163호(1990년 11월 14일)에 따라 1991년 1월 기존의 국어연구소(1984년 5월 설립)를 확대 개편하여 문화부(현재 문화관광부) 소속기관으로 설립되었다. 이는 한국의 어문정책 전반에 관련된 연구를 주관하는 기구이다. 특히 국어사전 편찬, 각종 어문규정(한글맞춤법, 표준어규정, 외래어표기법, 로마자표기법 등)의 제정, 보급을 통해 언어생활의 표준을 제공하고, 각종 어문자료를 수집하여 국어 유산을 보존·연구하는 한편 국어 발전의 토대를 마련할 목적으로 설립되었다. 1991년 문화부장관의 지시로 수립된 ‘종합국어대사전(가칭)’ 편찬사업이 국립국어원의 주요 신규 사업으로 확정됨에 따라, 1992년 기존 사전 편찬 실무 담당자 회의를 통해 사전 편찬실을 설치하게 된다. 그 결과 1999년 ‘표준국어대사전’이 발간되었다. 이 사전은 국가에서 최초로 직접 편찬한 것이다. 이 사전은 표준어를 비롯하여 북한어, 방언, 옛말 등 50여만 단어가 수록되어 지금까지 나온 사전 중에서 가장 많은 단어수를 포함하고 있다. 분량면에서도 7,300여 면으로 기존 대사전의 두 배 분량에 이른다. 200여명에 이르는 박사 과정 수료 이상의 국어국문학 전공자가 집필과 교정에 참여하였으며, 전문어는 따로 120여 명의 해당 분야 전문가에게 감수를 받았다. 8년 동안 500여명의 인원이 편찬에 참여하였으며, 112억원(국립국어원 92억원, 두산동아 20억원)의 예산이 소요되는 등, 그 작업 과정도 지금까지 국내에서 이루어진 사전 편찬 작업 중에서는 최대 규모이다. 이 사전은 한글 맞춤법, 표준어 규정, 외래어 표기법 등 현행 어문규정의 정해진 원칙을 구체적인 단어 하나하나에 적용하여 단어를 사정하고 사전에 제시하여 기존의 통일성이 없던 사전들을 개선하여 사용자들이 혼란을 겪지 않도록 하였다. 또, 북한에서 1992년에 간행한 조선말대사전을 참고하여 북한에서만 쓰이는 말뿐만 아니라 남북의 어문 규정의 차이로 북한에서 달리 표기하는 단어들까지 실었다. 그리고 단어마다 풍부한 예문을 실었다. 그 외 용언과 어미가 결합할 때 변화하는 모습인 활용형을 모근 용언에 제시하고, 체언과 조사가 결합하거나 용언과 어미가 결합하여 발음이 바뀌는 경우에도 그 정보를 제시하였다. ‘표준국어대사전’은 명칭에서 보듯이 현재 우리나라에서 표준이 되는 사전이다. 이 사전이 나오기 전에는 개인이나 민간 출판사에서 사전 편찬 사업을 했다. 그러다보니 기존 한국어 사전들이 표제어 표기가 불일치하는 등 일관되지 않은 면이 있어서 국민들에게 혼란을 주었다. 이를 개선하기 위해 진행한 사업이 표준국어대사전 편찬이다. 이 사전은 국가에서 편찬을 하는 까닭에 수정이나 새로운 말의 등재 등이 민간 사전에 비해 신중하게 이루어진다. 국립국어원은 기존부터 표준국어대사전 웹 서비스를 하였고, 2008년 10월 9일 한글날에 개정판이 나옴과 동시에 새롭게 단장한 홈페이지에서 표준국어대사전 개정판을 웹 서비스하고 있어서 일반인도 언제 어디서나 쉽게 접근할 수 있다. 문화체육관광부와 국가경쟁력강화위원회는 ‘한글’을 통한 국가경쟁력을 높이기 위해 ‘세종사업(King Sejong Project)’을 추진하고 있다. 이 사업에는 한글ㆍ디지털 세대 소통 증진을 위한 새 한글사전 편찬을 계획하고 있다. 현재 사전의 용어풀이에 어려운 한자어가 많아 한글이 디지털 세대의 소통 능력과 학습 능력이 떨어진다는 지적에 따라 수요자 중심의 ‘새 한글사전’, 웹 2.0 기반의 쌍방향 참여형 전자사전, 다변화된 외국인·재외동포의 한글 학습을 지원하는 다국어 웹사전(베트남어-한국어, 태국어-한국어 등 20여 개 언어)을 편찬하고, 신어, 지역어(방언), 전문어 등을 활용해 우리말 어휘를 풍부하게 해 나갈 계획이다. 그러나 이러한 편리성이 오히려 우리 문화에 퇴보를 가져오고 있다. 70년대 학교 졸업식에 한 권 씩 선물로 받는 국어사전은 국어 시간뿐만 아니라 일상생활의 학습서였다. 고학년이 되어서도 손때 묻은 국어사전을 이용했다. 지금은 인터넷의 발달로 인해 국어사전을 사용하지 않고 있다. 그러다보니 출판사들이 사전 편찬 사업을 접고 있다. 대학 및 연구소에서도 국어사전 편찬 작업을 진행하지 않는다. 사실 인터넷과 전자사전은 국어 어휘와 문법 연구에 장애가 되고 있는 것이다. 국어사전은 올바른 국어생활을 하기 위한 도구이다. 우리가 아무리 훌륭한 문자를 가지고 있어도 바르게 사용하지 않으면 소용없는 일이다. 사전은 개인에게도 중요한 수단이지만, 국어 발전에도 영향을 준다. 영국의 옥스퍼드나 미국의 웹스터, 프랑스의 라루스 등은 각 나라의 언어문화를 상징하는 사전이 되었다. 오늘날 국어사전의 위기는 장기적으로 보면 우리말과 문화의 퇴보로 이어진다. 사전을 활용한 언어생활이 필요한 현실이다.
세종대왕이 1446년 훈민정음을 반포한 이후 우리 겨레는 국어사전이 없이 언어생활을 해 왔다. 어휘 개념을 문헌으로 익히는 것이 아니라, 입에서 입으로 학습할 수밖에 없었다. 우리에게 사전의 존재를 알린 것은 외국인 선교사들이었다. 1869년 프랑스 페롱 신부가 제작한 것으로 추정되는 최초의 ‘불한사전’이 있다. 이는 한국에 들어온 프랑스 선교사들의 종교 활동을 돕기 위한 것이다. 단어도 역시 선교에 필요한 것 위주로 선택되었다. 그러다가 리델 신부에 의해 ‘한불자전’이 탄생했다. 이 사전은 1868년 경 완성되었으며, 1880년에 인쇄되었다. 이 사전도 역시 선교적인 목적을 위해 만들어졌다. 개신교 선교사 제임스 게일이 1897년에 편찬한 ‘한영자전’도 다분히 기독교적 맥락에서 우리말을 이해하려는 사전이었다. 이러한 활동이 우리 국어생활에는 직접적인 영향은 못 주었지만, 우리들에게 사전의 존재를 알렸다는 점에서는 의의가 있다. 우리나라에서 근대적 의미의 사전 편찬에 관심을 기울인 것은 일제 강점기이다. 당시 대한제국의 국어 정책은 크게 ‘언문 철자법’을 제정하고 ‘국어사전’을 편찬하는 일로 나눌 수 있다. 이 당시 국어 운동의 중심에는 늘 주시경 선생이 있었는데, 사전 편찬도 마찬가지다. 기록에 의하면, 1911년부터 주시경ㆍ최남선 등이 ‘말모이’라는 우리말사전의 편찬 시도가 있었다. 그러나 책으로 발간되지 못했다. 우리나라에서 국어사전을 최초로 만든 곳은 조선총독부였다. 국어사전 편찬 담당은 총독부 취조국 소관이었는데 집필과 편집은 조선인에게 하였고, 심사 수정 및 주석은 일본인에게 하였다. 이 사전은 많은 인력과 비용을 들여 착수한지 10년만인 1920년 3월 ‘조선어 사전’으로 발간되었다. 이는 우리나라에서 발행된 최초의 사전이었지만, 표제어만 한자와 한글을 병기하고 일본어로 주석을 달았다는 점에서 본격적인 의미의 국어사전이라고 하기에 어렵다. 일제는 1931년 만주사변을 일으키면서 대륙 침략이 야욕을 드러내기 시작하였다. 이를 계기로 1937년에는 중일 전쟁을 일으키고 우리나라를 전쟁 수행을 위한 병참 기지화로 만들었다. 이에 따라 조선총독부는 ‘황국신민화’ 정책을 펴는 한편 조선에 대한 지배 정책을 더욱 공고히 하기 시작했다. 1938년 제3차 조선 교육령과 1943년 제4차 조선 교육령은 이러한 지배 정책을 분명하게 보여준다. 이러한 암흑기 속에서도 지각 있는 국어학자들은 뜻을 굽히지 않았다. 드디어 1938년 문세영이 ‘조선어사전’을 간행 우리 국어 연구에 큰 업적을 남겼다. 이 사전은 이윤재(李允宰)·한징(韓澄) 등의 도움으로 편찬했고, 수록 어휘는 10여 만 단어로 현대사전으로서의 면모를 갖추고 있다. 현재 학계에서는 이 사전을 최초의 국어사전으로 보고 있다. 이 사전은 ‘한글 맞춤법 통일안’으로 표기된 최초의 국어사전이라는 점에서도 의의가 있다. 1940년 12월에는 약 1만 단어를 추가하고 일부 주석을 보완하여 수정증보판을 간행하기도 하였다. 그러나 최근 경기대 박형익 교수는 우리나라 최초의 국어사전으로 1930년 4월10일에 발행된 ‘보통학교 조선어사전’ 제3판을 발견했다고 밝혔다. 이 사전은 경성사범학교 훈도 심의린(沈宜麟)이 편찬한 것으로, 출판사는 서울에 위치한 주식회사 이문당(以文堂)으로 돼있다. 이 사전의 뒷면에는 초판 발행일로 1925년 10월20일이 명시된 판권지가 보존돼 있어, 이 사전의 처음 발행시점은 문세영의 ‘조선어사전’보다 13년 앞선 것으로 증명됐다. 이 사전은 표제어와 뜻풀이에 모두 한국어를 사용하고 일본어는 전혀 사용하지 않은 명실상부한 최초의 한국어 단일어 사전이라는 점에서 국문학사에서의 위상이 매우 큰 것으로 평가된다. 일제강점기에 조선총독부의 국어 정책에 대응하는 국어 운동으로는 조선어학회의 활동과 조선어학연구회의 활동을 들 수 있다. 이 중에 조선어학회는 ‘조선어연구회’를 조직하고, 여러 사업을 진행하던 중 1929년에 ‘조선어 사전 편찬회’를 조직하여 본격적인 사전 편찬 작업을 시작하였다. 당시 조선어사전편찬회는 조선어사전편찬위원회를 두고 신명균(申明均)·이극로(李克魯)·이윤재(李允宰)·이중화(李重華)·최현배(崔鉉培) 등 5명을 집행위원으로 선정하였으며 이극로·이윤재·한징(韓澄)·이용기·김선기(金善琪) 등 5명을 편찬원으로 선정하였다. 하지만 그때 일은 매우 어려운 상황이었다. 국어사전과 같은 대사업을 하기 위한 재정적 기초가 빈약하였다. 그리고 그때는 확정한 표준말과 맞춤법이 없었다. 다행히 1931년 한글날에 이르러 ‘한글 맞춤법 통일안’을 제정, 발표하고 힘을 한 곳으로 모으기 위해 편찬회 업무 전부를 조선어학회에서 하기로 했다. 1936년 조선어사전편찬회가 조선어학회에 통합된 뒤, 전임 집필위원으로 이극로·이윤재·정인승(鄭寅承)·한징·이중화 등 5명이 선임되고, 권승욱·권덕규(權悳奎)·정태진(丁泰鎭) 등 3명이 증원되었다. 성과도 제법 나타나기 시작했다. 1940년에는 ‘외래어 표기법 통일안’을 발표하고 사전 편찬의 기초 공사도 대략 정리가 되었다. 이 학회는 민족 학회로 성장하였고, 우리나라 국어 정책을 주도해 나갔다. 아울러 사전 원고도 대동 인쇄소로 넘기어 조판 교정까지 보고 있는 중이었다. 그러나 이를 못마땅하게 생각한 조선총독부는 1942년 이른바 ‘조선어학회 사건’을 만들어 관련자를 구속하였다. 회원 31명을 검거하고 상고심 재판의 증거물로 원고 2만 6천여 장을 압수하였다. 1945년 광복과 함께 함흥에 갇혔던 사람들도 서울로 돌아왔으나 사전 원고는 간 곳이 없었다. 절망적인 상황에서 그해 9월 8일 조선어학자들이 극적으로 경성역(지금의 서울역) 조선통운 창고에서 원고를 찾게 되었다. 그리고 비로소 1947년 10월 9일 564쪽의 ‘조선말 큰사전’ 첫 권이 세상에 모습을 드러냈다. 2권이 1949년 5월 5일, 3권이 1950년 6월 1일, 4권이 1957년 8월 30일, 5권이 1957년 6월 30일, 6권이 1957년 10월 9일이다. 1929년 10월 31일 조선어사전편찬회가 조직되어 작업에 들어간 지 28년 만에 완간의 결실을 보게 된다. 사전 편찬 도중 고비도 많았다. 전쟁이 나 서울은 인민군이 점령 해버리고 미군 폭격으로 인쇄에 필요한 기기들도 소실되었다. 이런 와중에 놀란 어학회 사람들은 큰사전 원고를 손으로 복사해서 원본과 필사본은 따로 보관하기도 했다. 필사본은 최현배 선생의 집에 묻어두고, 원본은 유제한 선생의 고향땅 천안의 땅속에 묻었다고 전해진다. 1952년 상황이 어느 정도 개선되자 한글학회는 미국 록펠러 재단의 도움으로 인쇄기기 등을 원조 받아 사전을 완성해 나간다. 한글학회(1949년 9월 25일 조선어학회에서 바뀜)의 큰사전은 역사적인 일이었다. 일제강점기에서 온갖 수난을 겪으면서 완성되었다는 것이 무엇보다도 감격스러운 일이다. 또 우리말 어휘 16만 4,125어휘를 수집, 집대성한 사전으로 우리의 국어학자들이 가담하여 국어의 규정을 제정․완성해 나갔다는 업적도 있다. 당시 1957년 10월 9일 완간된 ‘조선말 큰사전’ 최종 수정본 원고는 역사학적․국어학적 가치뿐만 아니라 기록이 갖는 진보성, 유일성, 희귀성 면에서도 가치가 높아 현재 독립기념관에 소장되어 있다.
인천광역시학생종합수련원(원장 계오남)에서는 지난 16일 인천 관내 초․중학교 다문화 가정 학생 및 학부모 1백여명을 대상으로 ‘다문화 가정을 위한 강화역사체험’을 실시성황리에 마쳤다. 이번 ‘강화역사체험’은 다문화 가정의 학생과 학부모가 강화도의 유적지 답사활동을 통하여 한국인으로서의 정체성을 확립하고 문화공동체 의식을 함양하도록 하기 위하여 실시되었는데,고인돌 유적지 견학을 시작으로 광성보 견학, 다양한 문화체험(활만들기, 깃발 만들기,가마타기, 조선시대 무기체험 등), 신미양요 전투재현 행사 참관, 영상교육, 역사 퀴즈 등 다양한 프로그램으로 진행되었다. 행사에 참가한 다문화 가정 학생 및 학부모들은 “이번 역사체험 활동을 통하여 강화도의 역사에 대한 새로운 사실을 알 수 있었으며 우리 역사와 문화에 대하여 좀 더 많은 관심을 가질 수 있는 계기가 되었다”고 말했다. 이날 행사에서 계오남 원장은 역사체험 프로그램에 참가한 학생과 학부모들에게 우리 역사와 문화에 대하여 바른 역사관을 수립하고 글로벌 시대를 살아가는 한국인으로서 긍지와 자부심을 가질 것을 당부했다.
정읍 황토현 끝자락에 있는 작고아름다운 도학초등학교(교장 박영선)에서는 지난 15일 유치원과 함께한 도학초의 현장학습을 실시하였다. 유치원과 초등학교 전교생이 함께한 현장학습은 대전에 있는 동물원과 조이랜드를 다녀왔다. 관광버스를 타고 1시간 30분정도 걸려서 동물원에 도착한 친구들은 먼저 아프리카 사파리에 가서 책에서 그림으로만 배웠던 호랑이와 사자, 곰, 코끼리, 얼룩말,퓨마등 많은 동물 친구들을 만나고 돌아왔다. 특히 유치원 아이들은 살아있는 동물들을 보며 신기하고 재미있는 시간을 보냈다. 유치원 김도훈 어린이는 "여우는 어후~~ 하고 울지요" 하면서 신나고 즐거운 표정이었다. 동물원을 돌아보고 국화축제가 열리는 플라워랜드에 가서 여러가지 모양의 아름다운 국화와 수천가지의 꽃들을 보고 아름다운 향기를 가슴에 담고 음악분수대에서 기념촬영도 하였다. 음악에 맞추어 춤을 추는 음악분수대에는 우리 친구들을 환영이라도 하려는듯 무지개를 만들어 축하해 주는것 같았다. 2학년 이상민은 "식물원에 있는 미로원에서 미로찾기가 재미있었어요" 하면서 또 가고싶다고 하였다. 자기가 선택한 맛있는 점심식사 후에는 조이랜드에 가서 조별로 다니면서 놀이기구를 탔다. 유치원은 선생님과 함께 회전목마부터 타고 초등학생들은 자유시간을 갖고 친구들과 함께 하나라도 더 타려고 이리저리 뛰어다니는 모습이 귀여웠다. 많은 사람들로 붐볐지만 우리 아이들은 질서를 지키며 즐겁고 재미있는 자유시간을 즐겼다. 1학년 장영주는 "해적선을 타보니 정말 재미있었어요"하면서 더 많이 타지 못한것을 아쉬워 하였다. 유치원과 함께한 도학초의 현장학습은 유치원과 전교생이 함께한 즐거운 현장학습이었다. 현장학습관련 장면은 도학초등학교 홈페이지(http://www.dohak.es.kr/) 학교앨범에서 감상 할 수 있다.
베트남 전쟁 당시 베트남 하노이 힐튼 포로수용소에서 1965년부터 1973년까지 8년간 수용됐던 미군 장군 짐 스톡데일(Jim Stockdale)이 있었다. 그는 잘될 거라는 믿음을 잃지 않는 가운데 어려운 현실을 끝까지 직시해 살아난 반면, 다른 포로들 중 곧 나갈 수 있을 거라고 믿었던 낙관주의자들은 대부분 상심을 못 이겨 죽고 말았다고 한다. 어설픈 낙관주의자는 죽고 냉정한 현실주의자는 살아남았던 것이다. '이번 크리스마스에는 나갈 거야'라고 대책 없이 낙관한 사람은 처음엔 희망찬 모습을 보이다가 예정된 시간이 지나자 급격히 비관적으로 되었다가 끝내 상심을 못 이겨 쓰러졌다고 한다. 살아남은 포로들은 위기 속에서 내일에 대한 믿음을 잃지 않으면서도 현실속의 가장 냉혹한 사실들을 직시한 사람들이다. 세계적 경영학자 짐 콜린스가 자신의 저서 《좋은 기업을 넘어 위대한 기업으로(Good to Great)》에서 소개하면서 더 유명해진 일화다. 얼마 전 전 세계 사람들을 경이로움과 함께 환호로 들끓게 했던 칠레 산호세 광산에서 매몰되었던 33명의 광부들의 극적인 구조 장면은 위에서 소개한 스톡데일 패러독스와 오버랩 되는 장면이 있다. 지하 700여 미터 되는 곳에 매몰된 33명은 각자의 역할을 분담하고, 서로를 격려하며 어려움을 견뎌냈다고 한다. 게다가 파이프라인을 통해 밖의 가족들과 연락을 하고 그들의 생활모습 등을 교감하였기 때문에 생존가능성은 더 커졌다고 볼 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68일이 넘는 기간 동안 숨 막히는 지하 막장에서 살아남았다는 것은 보통 우리들의 상식으로는 뛰어넘는 무엇이 있을 것이라 생각한다. 다행히 그들이 탄광이 무너지기 전에 그나마 넓고 쉴 수 있으며 산소가 비교적 많은 공간인 현재의 구출장소로 점심식사를 하기 위해 모였다는 것도 천우신조였을 것이다. 하지만 무엇보다도 그들을 살아남게 한 것은 언제 죽을지 모른다는 극한의 죽음 앞에서도 냉철하게 현실을 직시하면서 버텨냈기 때문이 아닐까 한다. 이른바 스톡데일 패러독스다. 막연히 곧 구출될 것이라고 믿었다가 구조용 캡슐 굴착 작업이 만에 하나 실패한다던가 해서 어설픈 낙관주의에 빠졌더라면 탄광에 매몰되어 포기로 사망하는 비극이 있었을지 모른다. 어쨌든 그들은 냉철한 이성과 합리적인 업무분담, 서로를 격려하는 분위기 조성, 작업반장을 중심으로 하는 리더의 리더십 등이 어우러져서 전원 무사생존이라는 극적인 드라마를 연출해 냈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이러한 극적인 장면 이면에는 값싼 광산 유지를 위해 안전에 대한 투자를 하지 않고 방치한 광산개발업자와 칠레 정부의 직무유기, 구출된 광부들에 대한 무분별한 취재로 인하여 생긴 사생활 침해, 피녜라 대통령의 국정 지지도 제고를 위한 현장 언론플레이 등은 뒷맛이 개운치 않다. 무엇보다 사람 목숨이 제일 중요한데 또 다른 위험에 노출된 다른 지역의 광산노동자들을 위한 안전관리가 이번 구출작전으로 세인의 관심에서 완전히 사라졌다는 것이다. 극적인 구출 장면도 감동이었지만 사람을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고 정책의 우선순위를 다루는 것이 이번 사건의 교훈이 되어야 할 것이다.
ODA 중요성 초등부터 교육, 정보 제공해야 전문 인력 부족, 휴직교사 참여제 홍보 필요 한국이 2009년 11월 25일 OECD(경제협력개발기구)의 30개 회원국 중에서도 명실상부한 선진국들만이 회원국인 ‘개발원조위원회’(Development Assistance Committee: DAC)의 24번째 정식회원국이 됨으로써 1996년 OECD 가입 13년 만에 ‘진짜 선진국’의 대열에 오르게 되었다. 이는 1960년 1월 DAC 설립 이래 개발도상국 출신이 가입한 사상 최초의 일로서 우리나라가 과거의 절대빈곤과 혼란을 극복하고 이제는 남을 도와주는 명실상부한 선진국으로 발전했다는 사실을 국제적으로 공식 인정받은 것이다. 또한 이는 국제사회의 안정과 번영을 위한 책임과 의무를 다해야한다는 부담도 안게 되었음을 의미한다. DAC의 2대 의무는 첫째, 개발도상국을 위한 공적개발원조(Official Development Assistance: ODA)의 총량을 확대하는 것이고 둘째, 제한된 ODA의 효과를 높이는 것으로 DAC 가입은 우리에게 새로운 기회이자 위기이기도 하다. 우선 연간 약 1360억불 규모의 국제 ODA 시장에 우리 기업과 국민들의 참여기회가 확대된 반면 우리 ODA시장도 외국에 개방해야한다. 우리 ODA의 규모 확대는 납세자인 국민의 부담이 가중되는 것을 의미한다. 또한 DAC의 각종 정책권고 및 가이드라인을 준수하고 ODA 정책 및 집행방식도 국제기준과 관행에 일치시켜야 한다. 이와 관련된 우리의 과제는 아래와 같이 정리해 볼 수 있다. 첫째, 개발교육의 중요성이다. ODA 규모와 관련한 국제사회의 지표는 총국민소득(GNI) 대비 ODA의 비율이다. 2008년 우리의 ODA/GNI 비율은 0.09%로 DAC 회원국의 평균치인 0.31%에 크게 미달하는 실정으로 2015까지 0.25%로 확대할 계획이다. ODA는 국민의 세금에 의한 것으로 납세자인 국민의 이해와 지지가 필수적이다. 하지만 ODA 사업은 해외현장에서 집행되기 때문에 일반 국민들에게 그 중요성과 성과를 알리기가 어려운 실정이다. 따라서 어린 시절부터 ODA의 중요성에 대한 교육과 함께 관련 정보를 적극 제공할 필요가 있다. 이를 위해서는 여타 선진국의 경우처럼 초중고교 역할이 매우 중요하다. 둘째, ODA 사업에 대한 국민참여의 확대이다. 흔히 물고기를 주는 대신 낚시법을 알려주는 것이 진정한 원조라고 하지만 우리사회에는 국제 원조와 관련하여 검증되지 않은 신화가 있다. 우리는 짧은 기간에 눈부신 발전을 이룩한 모범생이니까 당연히 우리 경험을 남들에게 잘 가르칠 수 있는 모범교사라고 자부하는 것이다. 교수법도 모르는 중학생이 한국말을 할 줄 안다는 이유로 외국인에게 한국말을 가르치겠다고 덤벼드는 것과 마찬가지이다. 우리 ODA 규모가 늘어나면서 정작 중요한 문제는 전문 인력의 심각한 부족현상으로 전업 개발컨설턴트의 숫자는 무시해도 좋을 정도이다. 대부분의 전문가는 대학교수, 연구원 등 현업 종사자로서 적기에 필요한 기간만큼 파견이 불가하며 그나마 적격자도 희망자도 부족하다. 해외봉사단의 경우 현직교사의 휴직에 의한 참여제도가 있으나 참여자는 극소수에 불과하다. 우리도 해외개발컨설팅산업에 늦게 뛰어든 일본의 경우처럼 ODA 자금을 이용한 컨설팅 사업의 확대, 컨설팅수익에 대한 세금 감면조치, 국제 ODA 조달시장에 관한 정보제공 및 교육의 확대, 국제 ODA 조달시장 진출을 위한 금융지원 확대, 산학연 협력체제 구축 등의 방안이 필요하다. 셋째, DAC가입과 관련하여 또 다른 중요한 과제는 연구조사활동에 대한 투자확대이다. 영국의 ODA 백서는 “연구조사는 빈곤을 타파하는 중요한 무기이다. 연구를 하지 않으면 개발도상국에 대한 많은 지원활동이 실패하거나 성공가능성이 훨씬 낮아진다. 반면 연구조사는 승수효과(multiplier effects)를 가지고 있다‘고 언급하고 있다. 이제 우리는 DAC가 정한 각종 가이드라인을 준수하고 효과적인 원조를 위해서는 원조를 받는 개발도상국에 대해서는 물론 보건, 교육, 농업 등 다양한 분야와 빈곤, 환경, 여성문제 등 개발과제에 대한 연구 활동이 선행되어야 한다. 우리의 DAC 가입은 이제 한국말을 할 줄 아는 학생에서 한국어를 가르치는 교사로 탈바꿈하는 것을 의미한다. 무자격 교사가 국익을 해치지 않도록 정부차원의 적극적 대책과 국민들의 참여노력이 절실한 시점이다.
최근 경기도교육청은 ‘2010년 하반기 중등 부전공 자격 연수 실시 계획’이라는 공문을 생산 하달했다. 이 계획에 의하면 정보컴퓨터, 한문, 교육학, 환경, 기술, 가정, 기술․가정, 전문계고 공업계열 교과에 대해 부전공 자격 연수를 실시하겠다는 것이다. 희망자에 한해 이번 2010년 동계방학, 2011년 하계방학 동안 연수를 해 국어 교사로의 자격을 주겠다는 안이다. 부전공 자격연수 실시 대상은 2009개정 교육과정의 시행에 따라 과원이 예상되는 교과 교사이다. 이 안에는 부전공 자격연수를 이수하더라도 해당과목으로의 발령을 임의로 요구할 수 없으며, 경기도교육청의 교원 수급상 필요할 경우에만 부전공 교과로 발령 조치한다는 내용이 함께 담겨 있다. 이 조치에 대해 도교육청은 과목별 과원 교사 해소 및 소규모 학교의 교과목 상치교사 해소를 통하여 학교 교육과정의 원활한 운영과 수업의 질을 제고하기 위한 정책이라고 밝혔다. 즉 교육청이 학교 교육과정의 원활한 운영을 위해 내린 결단이다. 이는 변화하는 학교 환경을 미리 준비하는 행정이라는 점에서 기대가 되기도 한다. 특히 과목별 과원 교사에 대한 신변 불안 해소를 담고 있어 해당 교사들은 적극 환영하는 분위기다. 하지만 이번 연수 계획은 해당 교사들의 의견 수렴이 전혀 없이 일방적으로 취해져 당황스러운 면이 있다. 동시에 정보컴퓨터, 한문, 교육학, 환경, 기술, 가정, 기술․가정, 전문계고 공업계열 교과에 대해 획일적으로 국어 교과를 지정한 것도 이해하기 어렵다. 이는 국어교과를 경시하는 것은 물론 앞으로도 이렇게 계획 없이 변경한다는 논리가 보여 위험한 측면도 있다. 모든 학문이 그렇겠지만 사실 국어교육학은 일반인이 수용하는데 다른 여타 학문보다 어려운 영역이다. 국어교육학은 얼핏 보면 국어지식과 문학을 가르치는 것으로 한정짓기 쉬우나 사실 그것은 일부에 지나지 않는다. 국어지식과 문학은 국어교육의 일부분일 뿐이고, 그 보다 중요한 것은 말하기‧듣기‧읽기‧쓰기라는 언어활동 영역이다. 타교과는 지식의 양이 차지하는 부분이 많지만 국어는 오히려 고도의 심리를 수반하는 학문이다. 이런 면에서 국어는 접근이 어려운 학문으로 여겨질 수도 있다. 실제로 이번 도교육청의 부전공 연수에 대해 과목별 과원 교사 해소 차원에서 환영을 하지만 일방적으로 교과를 지정한 것에 대해서는 우려를 하고 있다. 즉 현장에 있는 일부 교사는 현재의 사태를 예견하고 나름대로 준비를 해오고 있었다. 교육대학원 등에 진학해서 새로운 전공을 배우고 있고, 기타 교육기관을 통해서 인접 교과에 대한 연수를 하고 있는 중이다. 따라서 현장에 있는 교사들에게 연수 교과에 대한 수요 조사를 했으면 좋았을 것이라는 기대가 남는다. 물론 오늘 날에는 학문의 영역이 사라지고 점차 통합적 성격을 띤 학문의 필요성이 증대되고 있다. 그러나 이번 교육청의 행정은 이러한 학문적 경향과 거리가 먼 것이다. 국어국문학 지식을 배워 그것을 가르치면 국어교육이 된다는 사고를 갖고 있는 것이다. 이는 지식 위주의 교육이 될 것이고 궁극적으로는 학생들의 언어능력 신장을 하는데 도움을 주지 못한다. 과원 교사 해소와 교육과정의 원활한 운영 방안이었다면 다른 방법도 있었다고 생각한다. 현재 학교는 학업 지도보다 더 필요한 상황이 존재한다. 즉 학생들은 폭력과 왕따로 고생하고, 우울과 자살 충동에 고민하고 있다. 기타 가출과 성폭력 등도 학교에서 해결해야 할 문제로 떠오르고 있다. 학교는 무엇보다도 이런 문제에 대해 예방하고 해결하는 전문가가 필요하다. 그 일환으로 과원 교사를 활용하는 방법이 있다. 그들을 무턱대고 타교과로 전화할 것이 아니라, 연수를 통해 상담 교사로 전환하는 시스템을 도입해야 한다. 그들이 학교에서 학업 부적응자에 대한 전문 교사나 기타 진로 및 진학 전문상담가로 역할을 다할 수 있도록 발전적 시스템을 만들어가야 한다. 또 하나 더, 관점에 따라 다르기도 하지만, 여전히 학교 현장은 정보 통신 교육 환경 구축이 주요한 과제다. 학교에서 학생들은 건전한 사이버 환경에 주도적으로 제 기능을 다하도록 교육을 받아야 한다. 그렇다면 정보컴퓨터, 기술, 가정, 기술․가정, 전문계고 공업계열 교과는 얼마든지 교육 현장에서 즉시 필요한 교사들이다. 또 지구 온난화 대책으로 일본 등은 모든 학교에서 환경을 고려한 학교 만들기(에코 스쿨)를 추진하고 있다. 이 문제는 우리에게도 필요한 교육 형태이다. 무턱대고 환경 담당 교사를 부전공 연수로 끌어들일 것이 아니라 새로운 교육 동향에 맞는 교사를 전면 배치할 연구가 더 필요하다. 앞으로의 추세로 볼 때 학교의 과원 교사는 계속 발생할 수 있다. 그때마다 교육청이 일방적으로 교사 자격을 변경하는 것도 한계가 있다. 이 기회에 장기적 안목을 가지고 교과 전환모델(Turnaround) 시스템을 구축할 준비를 해야 한다. 이때도 학교와 교육청이 상호 협력하는 구조를 만들어 가는 것이 중요하다. 학교 환경의 변화를 점검하고 그에 따른 교원 수요를 예측해 나가는 정책이 뒷받침되어야 한다. 늘 이야기하지만 구성원의 동의가 없는 일방적이고 획일적인 정책은 결코 성공할 수가 없다. 더욱 지금은 관과 민이 협력해 나가는 시대다. 일방적으로 따라오게 하는 정책은 조직의 성장 동력에 기여하지 못한다. 그런 의미에서 이번 교육청의 부전공 자격 연수는 다시 고민해 봐야 한다. 현장 교사들의 의견을 들어 자신이 희망하는 교과로 전활 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물론 어려운 점이 많을 것이라고 예상한다. 하지만 그것이 또한 우리나라 미래 교육을 위해 교육청이 감당해야 할 몫이다.
가까이 보이는 산자락에는 옅은 안개를 머금고 있다. 하늘은 높고 푸르다. 아름다운 가을날씨를 미리 예고하는 듯하다. 오늘 아침에는 중간고사 3일째라 그 어느 때보다 조용하다. 학생들은 시간을 쪼개고 쪼개도 모자랄 것 같다. 모두가 자기의 실력을 유감없이 발휘했으면 한다. 우리학교에는 명심보감을 통한 인성교육을 실시하고 있는데 나름대로 생각해 보지 못하고 넘어간 문장들이 있다. 그 중 정기편의 14번째 문장에 대해서 생각해 보려 한다. “荀子 曰 無用之辯과 不急之察을 棄而勿治하라”(순자 왈 무용지변과 불급지찰을 기이물치하라) 이 문장의 뜻은 ‘순자가 말하였다. 쓸데 없는 말과 급하지 않은 일은 버려두고 다스리지 말라.’ 이 문장은 해석하기가 그렇게 어렵지 않다. 무용지변은 쓸데 없는 말, 또는 쓸데 없는 변론으로 해석하면 될 것 같다. 불급지찰은 급하지 않는 일로 해석하면 될 것 같다. 순자께서는 이 두 가지를 버리고 다스리지 말라고 하셨다. 순자(筍子)는 BC,298~238, 이름은 황(況)으로 전국시대 말기의 조나라 사람임 자하(子夏)의 학파에 속하는 유학자로 맹자의 성선설(性善說)에 관하여 인간의 본성은 악하다는 성악설(性惡說)을 주창한 분으로 알려져 있다. 순자께서 이 말을 한 것은 자기의 경험에 의한 것이라 여겨진다. 쓸데 없는 말을 함부로 하다 낭패를 당한 경험이 있었을 것이고, 급하지 않은 일을 서두르다 낭패를 본 경험이 있어 후배들에게 그렇게 살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그렇게 말했으리라 본다. 無用之辯(무용지변), 즉 쓸데 없는 말이나 변론을 하다가 자신이 낭패를 당하는 경험을 누구나 다 해 보았을 것이다. 쓸데 없는 말은 아예 하지 않는 것이 좋다. 쓸데 없는 말을 하다 상대를 기분 상하게 할 수도 있고 오해를 받게 할 수도 있다. 심지어는 상대방이 잠을 자지 못하게 만들 수도 있다. 말은 조심해야 한다. 신독(愼獨)이라고 하여 혼자 있어도 말고 행동을 조심스럽게 하라고 하는데 두 사람이 이상이 있는 곳에서는 말할 것도 없다. 말은 잘해야 본전이라고 하지 않는가? 쓸데 없는 말을 해서 자신에게 손해를 입히는 일은 하지 않아야 할 것이다. 쓸데 없는 변론도 마찬가지다. 아무 소득도 없는 것 가지고 다투다 보면 나중에는 감정싸움으로 커지게 되고 나중에는 사이가 나빠지게 되기도 한다. 꼭 도움이 된다거나 필요하다면 몰라도 변론도 서로 삼가는 것이 좋을 것 같다. 不急之察(불급지찰), 즉 급하지 않는 일도 서둘러 하려고 해서는 안 된다. 급하지 않은데 서둘러 하다가 보면 자신에게 손해를 입히고 만다. 모든 일은 차근차근, 신중하게 하려고 해야지 급하게 서둘러 하다가 보면 꼭 후회할 일이 생긴다. 쓸데 없는 말, 급하지 않는 일은 버려야 한다. 그리고는 그런 것에 길들여 있는 자는 자신을 다스려가야 한다. 말도 아끼고 행동도 아껴야 한다. 말도 신중하게, 행동도 신중하게 해야 뒷탈이 없다. 말을 내뱉고 후회하고 일을 저지러고 나서 후회하는 일은 하지 않는 것만 못하다. 오늘 아침 순자의 말씀을 되새겨 보면서 하루를...
2010.10.6일 16개 시․도지방자치단체장으로 구성된 전국시도지사협의회(회장 허남식 부산시장)가 교육감 직선제 폐지를 정부에 촉구하는 성명서를 채택해 앞으로 상당한 파장이 예상된다.협의회는 특히 성명서에서 “현재의 교육자치는 교육 수요자 요구를 반영하지 못하고 있다”며 “진정한 교육자치를 위해 교육감 직선제를 폐지하고 지방교육청을 지방정부에 통합해야 한다”고 밝혔다.가장 큰 이유로 “시도지사와 교육감이 다른 정책이나 노선을 내세워 교육 수요자인 학부모에게 혼란을 주고 있으므로 교육감 직선제는 폐지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강조했다. 이에 대해 반격에 나선 전국시도교육감협의회(회장 나근형 인천시교육감)는 2010.10.12일 전국시도지사협의회의 교육감직선제 폐지 주장 철회를 촉구했다."시․도지사가 교육자치와 지방자치 일원화를 위해 교육감 직선제 폐지를 정부에 촉구하고 나선 것은 헌법 제31조가 규정한 교육의 자주성과 정치적 중립성을 훼손한 것"이라고 지적하고, “교육감 직선제를 폐지하고 교육감을 시․도지사가 임명하려는 것은 교육을 정당이나 정치권력에 예속시키려는 반민주적인 것으로 교육자치의 근간을 뿌리째 흔드는 비교육적 발상"이라고 비난했다. 그런 가운데 안양옥 한국교총 회장은 2010.10.12 취임 100일 기자회견에서 “정치권의 포퓰리즘 교육정책으로 교단 붕괴가 가속화되고 있다며 입법 청원 활동을 통해서라도 교원의 정치활동 허용을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과거에도 한국교총은 2001년에도 교원의 정치참여 허용을 주장했지만 이번처럼 입법 청원 운동과 지지운동 전개 계획을 내놓고 본격적으로 나선 것은 처음이다. 지금까지는 민주노동당, 전국교직원노동조합 등 이른바 진보진영에서 교원 정치활동 허용을 요구해왔다. 안 회장은 “일부 교원단체에서 그랬듯이 위법행위를 하지는 않겠다. 이념수업도 결코 하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지만 “교원 참정권을 위해서는 전교조와도 연대할 수 있다”고 밝혔다. 하지만 그런 이유로 법치국가에서 교원들의 정치참여가 정당화 될 수는 없고 설득력도 현실적으로 갖기 어렵다고 보는 견해가 있을 수 있다. 좀 더 신중하게 단체구성원들의 의견을 청취한 후 입장을 발표했으면 더욱 좋은 결과가 나오지 않을까 생각하게 한다. 무엇보다 우리 헌법 제31조 4항을 보면 ‘교육의 정치적 중립성은 법률이 정하는 바에 의하여 보장된다’라고 명시되 있고, 국가공무원법65조와 교원노조법 제3조도 교원의 정치활동을 금지하고 있다. 아울려 헌법재판소도 2004년 3월 초· 중· 고 교원의 정치활동을 제한하는 현행법에 대해 합헌결정을 내렸다. 한 마디로 교원의 정치 참여는 위법이란 얘기므로 교원의 정치참여 허용 주장에 앞서 관련법을 고치는 일에 한국교총은 힘써야 한다고 본다. 우리나라 교원단체의 대표격인 한국교총은 교원들의 자긍심과 교권 회복이 중요하므로 과거나 현재나 똑 같이 일시적이고 인기 위주의 교육정책보다 미래지향적인 정책제시가 매우 필요하다. 그 동안의 성공적인 교육정책 사례들을 미 가입 교원과 국민들에게 전달하는 홍보력과 방법도 부족했을 뿐만 아니라 바른 교육 정책수립을 위한 현장교원들의 의견제시도 제대로 반영하지 못한 점을 여러 곳에서 찾아 볼 수 있다. 특히 금년에 교총에서 야심차게 추진한다는 핵심 10대 정책을 살펴보면 교원능력개발평가 객관성· 공정성 확보, 수업공개 연2회 축소 실현, 근평기간 단축 실현, 교장공모제 공모비율 단계적 축소 추진, 교육권 확립을 위한 학교교육권발전위원회 구성· 운영 촉구, 교원잡무 경간 구체방안 도출 및 현실화, 교원처우 개선 막바지활동 추진, 올해부터 교원 연구년제 첫 시범운영 시행, 수석교사 시범실시 대폭 확대, 국· 영· 수 편중 현상 및 교원수급문제 해결 촉구 등이 있으나 가장 중요한 국가미래 정책이 없다는데 문제가 있다. 그 동안 본인은 한교닷컴과 한국교육신문을 통하여 2007.12.13일부터 2009.2.17일 사이에 네 차례에 걸쳐 저출산 고령화 사회를 대비한 정책수립의 필요성과 잃어버린 정년회복(3년)을 위한 교총의 노력을 촉구한바 있고, 2008.9.22과 2010.7.2 두 차례에 걸쳐 회원확보와 교총의 실적 홍보방법 그리고 교육정책 수립을 위한 회원들의 의견청취의 필요성을 강조 했지만 오늘 이 시간 까지도 위와 같은 문제해결을 위한 교총에 노력은 회원들의 피부에 와 닿지 않고 있어 회원의 입장에서 매우 불만스러워 회원을 탈퇴하고 싶은 솔직한 심정이다. 바라건데 말로만 한국교원의 대표적인 교원단체라고 겉으로 포장하지 말고 국가의 장래를 대비하는 대안제시와 교육의 백년지대계를 위한 미래지향적인 발상의 전환과 패러다임의 변화가 필요하다.
학부모 공개수업을 하루 앞둔 전날 한 학부모가 상담을 요청했다. 자기 자녀가 6살 때 ADHD(주의력결핍 과잉행동장애 증후군) 판정을 받은 후 매일 똑같은 약을 한 알씩 복용한다는 속앓이를 털어 놓으며 눈물지었다. 왜 이제야 말했냐고 질책할 겨를도 없이 우선 오늘부터 약을 끊어볼 것을 조심스럽게 부탁했다. 이미 어린이의 상태를 모두 파악하고 있고 충분한 경험으로 약에 의존하지 않고도 단체생활에 적응할 수 있게 할 자신이 있었다. 어머니는 당장 내일 있을 학부모 공개수업을 염려했다. 혹시 많은 학부모들 앞에서 이상행동을 보일까 걱정이 앞섰던 것이다. 그러나 공개수업 당일 약을 먹지 않았고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ADHD는 원인은 참 다양하지만 뇌의 전두엽 이상인 것은 확실하다. 이렇게 21세기 경제성장의 후유증이 낳은 많은 사회 현상들이 모두 뇌와 관련이 있다. 최근 네티즌의 논란을 일으킨 사이코패스(반사회적 인격장애자)의 측두엽 간질이나 망상장애 판정도 모두 확실한 뇌 이상 증상이다. 많은 이들을 의아하게 했던 한 연예인의 도박중독도 뇌의 신경전달물질 중의 하나인 도파민 때문이다.또한 요즘 사회문제로 떠오른 치매와 자살도, 일조량이 줄어들면서 더욱 나타나는 우울증도, 기온이 떨어지면서 많이 발병하는 뇌졸중도 모두 뇌와 관련이 있다. 예전엔 생명의 중심을 심장으로 봤지만 뇌의 신비가 점점 벗겨지면서 모든 중심이 뇌의 있음을 알게 되었다. 35억년전 지구에 최초로 생식능력이 없던 생명 탄생 이후 단세포, 다세포 생명체를 거쳐 만물을 지배할 수 있는 뇌를 가진 인간으로 성장하였다. 놀랍게도 35억년동안 단세포, 다세포, 무척추동물, 척추동물, 그리고 사람의 모습을 갖춰가는 이 과정이 그대로 엄마 뱃속에서 약 280일 동안 이루어지며 소중한 한 생명으로 태어난다. 그런 인간의 몸은 작은 우주이자 지구와 같고 손과 발, 그리고 모든 오장 육부와 연결된 뇌는 태양처럼 심신의 중심이 되어 생명을 지키는 근본임이 밝혀지고 있다. 그런데 단순 뇌의학은 뇌에 생긴 병에 대한 치료만을 다루지만 ‘뇌교육’은 예방과 치료를 모두 가르치고 있기에 요즘 주목받고 있다. 이런 ‘뇌교육’ 분야에서 우리가 가장 앞서가고 있어 세계 최초로 뇌교육 관련 대학원이 설립되었고 UN공보국 NGO에 유일하게 등록된 국제뇌교육협회도 우리나라에서 출발했다. 또한 뇌교육을 통해 창의·인성교육에서 효과를 거두고 있다는 연구 결과가 전국의 많은 ‘해피스쿨’(뇌교육을 학교교육과정에 도입한 학교)에서 쏟아지고 있다. 정부도 지난 6월 2017년까지 세계 7위의 뇌연구 선진국으로 진입한다는 목표을 담은 ‘뇌연구촉진 계획’을 발표했다. 그러나 이번 국정감사에서 정두원 국회의원은 1조 5000억원 규모의 뇌연구 촉진사업이 표류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3년동안 연간 시행계획 심의회를 3번 개최했는데 모두 서면회의로 의결했고 2009년 예산책정된 18억원의 뇌연구원 설계비도 집행이 안되어 불용처리됐다고 하니 매우 안타까울 따름이다. ‘뇌교육’은 질병 치료 이상의 놀라운 동양 철학을 담고 있어 서양의 여러 분야 학자들도 비상한 관심을 보이고 있다. ‘뇌교육’은 개인의 건강과 행복을 넘어서 우리 인간의 본향(本鄕)인 지구와 우주를 살리는 교육이기도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