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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세검색미완의 건국, 숨차게 달린 한국교육 35년 서럽고 쓰라린 일본의 식민 지배를 자력으로 벗어나지 못한 대가는, 정작 건국 과정에서 중심 역할을 해야 될 주인이 주도력을 갖지 못했다는 것이다. 남과 북에 외국 군대가 진주하고, 종국에는 일 민족 두 개의 국가가 들어섰다. 이 민족에게 드리워진 국토 분단의 멍에는 대한민국 건국 60년이 된 오늘에도 우리에게 좌절과 각오를 교차시키고 있다. 하지만 대한민국 건국은 그 자체가 놀라운 사건이었다고 생각한다. 건국은 힘들었고, 건국 후에도 위기의 터널을 달려왔다. 건국초기부터 내외의 온갖 방해와 저항이 있었으나 건국 후에는 국제전으로 비화한 6·25 동족상잔으로 취약했던 경제기반 마저 잿더미가 된 피폐한 나라가 되었었다. 전후에도 안보위협을 계속 받았고, 선거부정, 학생유혈봉기, 군부독재, 시민유혈봉기와 같은 내부 진통이 있었다. 그러나 대한민국은 이러한 대내외의 위기를 극복해왔고, 서구 사회가 200여 년에 걸쳐 이룩한 산업화를 불과 40여 년 만에 이루는 경제적 기적을 낳았다. 민주화도 달성했다. 대한민국은 명실상부하게 OECD 회원국, G20 그룹에 속하는 경제대국이 되었다. 이제 대한민국의 국가 발전 경험은 많은 나라들에게 좋은 교훈이 되고 있다. 대한민국은 끊임없이 앞을 향해서 나가는 나라이고, 미래가 있는 나라이다. 대한민국이 이렇게 가능성 있는 나라로 움직이고 있는 데에는 두 가지 요인이 상호 상승적으로 호응하고 있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하나는 자유민주주의를 국가체제의 기본으로 삼고 있다는 것, 다른 하나는 우리 국민의 자녀 교육에 대한 무한 투자이다. 우리 교육은 이 두 요인의 상승작용으로 이제 더 이상 팽창할 수 없는 양적 성장의 한계점에 도달했다. 한 마디로 숨 가쁘게 달려온 길이다. 이렇게 한계점에 도달하기까지 양적 성장을 거듭해 오면서, 우리 교육은 국가 발전의 원동력으로 역할을 해 왔다고 확신한다. 세상을 읽는 기본 능력을 키웠다. 민족정신과 자유민주주의 원리와 가치를 소중히 여기고, 합리적 사고와 성취동기가 높은 시민들을 길러냈다. 전통사회로부터 잔존했던 저항적, 냉소적, 운명론적 태도들을 긍정적, 합리적 세계관으로 바꾸었다. 이런 교육으로 충원된 시민들에 의해서 오늘의 대한민국이 움직이고 있다. 첫째, 우리 교육은 민족자주독립정신과 민족 정체성을 기르는 민족교육에 공헌했다. 해방되자마자 ‘한글 첫걸음’, ‘국사’ 교과서를 우선적으로 발행 보급하여 자주독립 국가 교육으로서 민족 정체성, 민족의 긍지를 확립하는데 중점을 두었다. 우리의 교육은 민족혼을 길러내는 보루였다. 둘째, 민주주의 교육에 공헌했다. 건국 초기에 교육선각자들이 시도했던 민주주의 교육은 지금도 한국교육을 지배하는 중요한 논리이다. 건국 60년 역사적 굴곡에서 있었던 반부패, 반독재 항쟁들과, 오늘날 우리가 누리고 있는 민주화의 수준은 학교가 민주주의 가치와 정신을 일관되게 가르쳐온 교육이 있었기 때문에 가능했다. 셋째, 우수한 기초교육으로 시민의 문해력을 고양했다. 팀스(TIMMS), 피사(PISA) 등 각종 국제학력평가결과가 보여주는 것과 같이 한국의 기초교육은 세계 정상을 달리고 있다. 넷째, 경제발전에 필요한 과학 기술 교육에 공헌했다. 외국의 교육내용과 비등한 수학, 과학의 이론과 방법론을 학교는 가르쳤다. 다섯째, 교육재정 열세에도 불구하고 내용 압축 정선식 교과서 발행, 다인수 학급 운영 등을 통한 저비용 전략으로 교육기회를 확대했다. 적어도 학교 교육 기회에 관한한 우리 교육은 저비용 고효율의 나라이다. 여섯째, 지속적 교육개선, 또는 개혁 정책으로 교육발전을 위한 노력을 펼쳐왔다. 1980년대 이후로는 국가 주도로 교육개혁을 정권이 바뀔 때마다 시도해 왔고, 나름대로 교육의 변화를 가져오는데 공헌했다. 반성적 성찰 이러한 긍정적인 성과에도 불구하고, 우리 교육은 여전히 극복해야 할 고질적 문제를 가지고 있다. 그것은 역대 정부의 감축 노력에도 불구하고 전혀 위축되지 않는 사교육 시장, 우수 두뇌들의 외국 대학으로의 유학 행렬, 국내 학교에 만족하지 못한 학생들의 조기해외 유학 현실이 보여주듯이 학교가 수요자들에게 만족을 주고 있지 못하고 있는 문제이다. (1) 고비용 저효율의 부실한 교육 = 가계의 사교육비 규모는 20조원이 넘고, 외국 유학으로 유출되는 국부(國富) 또한 10조원에 달하고 있다. 참고로 2008년도 국가 총 교육 재정 규모는 40조원이다. 이 모든 것을 합치면 70조원이 된다. 대한민국은 교육에 고비용을 지출하고 있는 나라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교육 경쟁력은 하위권에 있다. 우리가 다 알고 있는 바와 같이 국내 대학가운데 세계 100대 대학 가운데 포함된 대학은 1개뿐이다. 스위스 국제경영개발원(IMD)의 2008년도 ‘세계 경쟁력 연차보고서’에 따르면, 대한민국의 고등교육 경쟁률은 55개국 중 53위를 차지했다. 반면, 고등교육(대학) 이수율은 55개국 중 4위를 차지해 최상위권이었다. 2007년도 29위였던 국가 교육경쟁력은 35위로 6단계나 떨어졌다. 이 경쟁력 지표는 우리 국민의 고비용 부담을 무릅쓴 높은 교육열에도 불구하고, 저급한 것이라는 것과, 특히 최종 단계인 고등교육은 세계에서 바닥권에 있다는 것을 단적으로 입증하고 있다. 고비용을 쏟아 붓는 노력에도 불구하고, 교육경쟁력이 낮은 이유는 무엇인가? 그것은 지금까지의 분석과 처방이 적합하지 않았다는 것을 나타낸다. 반드시 교육을 그 본령에 충실하도록 살리겠다는 결연한 결단과 일관된 의지가 없었다는 것이기도 하다. 문제의 근원을 새롭게 규명하고 거기서 도출되는 해법을 찾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2) 학교교육의 이중구조 = 우리 교육이 질적 수준이 낮고, 경쟁력이 없게 된 원인은 복잡한데에 있지 않다. 너무나 관행적으로 오랫동안 후진적 교육형태인 간판주의 교육에 영합하여 교육 제공자들(학교, 대학, 정책당국 등)이 편의위주로 제도 교육을 운영해 오는 동안에 교육의 본질을 무시하게 됐다는 것, 그리고 교육의 본질이 무시되고 있으므로 해서 야기되는 교육의 문제가 너무나 오랫동안 방치되어 고질적인 문제가 됐다는 것, 그래서 어떤 처방으로도 단기간 해결 가능하지 않으므로 해서 또 다시 당면 정책의제에서 제외되는 악순환이 되풀이 되고 있는 데에 문제의 근원이 있다. 여기서 필자가 말하는 교육의 본질이란 교육과정에 설정된 교육목표에 충실한 형태로 학습이 이루어지는 과정을 말한다. 우리 교육에는 교육과정은 있으되, 교육과정을 무시하는 학력관리제도가 위세를 떨치고 있다. 즉, 학교 교육 이중 구조가 존재한다. 하나는 정규 교육과정이고, 다른 하나는 수능과 학교생활기록부로 대표되는 학력관리제도이다. 이 이중구조의 틀에서 후자가 학생들의 대입진학에 결정적 역할을 하는 한 후자는 전자를 누르게 되어 있다. 교육과정은 있으되 그것은 죽은 교육과정이 되는 것이고, 학생, 학부모, 교사, 학교를 지배하는 것은 학력관리제도이다. 즉, 수능과 학교생활기록부 방식이 교육과정을 대신하는 것이다. 우리 교육의 경쟁력은 모든 학교가 정상적으로 교육과정을 운영할 수 있는 날이 올 때에라야 만 가능하다. 질 높은 교육, 경쟁력 있는 교육은 공동체적 동의에 의해서 설정된 교육과정에 충실하도록 학교의 모든 학습활동이 교육과정 중심으로 정렬되어 있는 교육, 교육목표가 세계 수준에 있는 교육, 목표 달성을 위해 지켜야 할 기준이 서 있고 이를 엄정히 지켜나가는 교육, 즉 교육본질을 살리는 교육이라야 가능하다. 한국 교육의 과제 한국 교육의 가장 중요한 과제는 지금처럼 경쟁력 없는 고비용 저효율 구조의 시험준비 교육을 계속할 것인가? 아니면 교육본령을 살리는 방향으로 바꿀 것인가? 양자 가운데 무엇을 선택하느냐에 달려 있다. (1) 기본으로 돌아가자 = 잘못 채워진 단추는 처음부터 다시 채워야 한다. 그것은 교육본질을 왜곡시키는 학력관리제도를 혁파하는 것으로 귀결되는 과제이다. 학력관리는 교육과정의 지배를 받아야 한다. 학교가 오로지 시험준비기관으로 예속되는 한, 학원과 경쟁할 수 없다. 더욱 중요한 것은 교육의 진정한 목표가 죽게 되는 것이다. ‘기본으로 돌아가자’는 것은 진정한 교육목표의 정신으로 돌아가자는 것이다. 크게 두 가지 작업이 요구된다. 첫째는 교육목표로서 각 교육주체들(학교, 교사, 학생, 행정당국 등)이 이행하고 수행해야 할 교육표준을 엄정하게 설정하는 것이다. 초·중등 학교급별 목표, 교과별 목표를 선언적인 문서가 아니고, 달성해야 할 과제로서 제시하는 것이다. 지금까지 유명무실하게 관행적으로 문서화 해 온 교육과정을 살아 움직이는 교육의 표준이 되도록 목표중심으로 재조직해야 한다. 학교 생활기록부가 대입선발에서 가장 중요한 전형 자료가 되도록 해, 학생들은 고득점 시험 점수를 위해서 학원을 찾지 않아도 되도록, 학교의 위상을 확립하고 교사의 권위를 세워주어야 한다. 둘째, 수능과 등급제 학교생활기록제도를 교육과정 중심으로 개혁해야 한다. 수능에는 두 가지 대안이 있다. 교육과정 중심 학력시험으로 전환하든가, 아니면 원점수의 효력이 수년간 유지되는 순수한 학업적성검사(SAT)로 개선하는 것이다. 학력시험으로 전환하는 경우, 지금과 같은 학교외적 시험으로 실시하기보다 학교 자체평가가 공정하게 되도록 지원하는 방식으로 개선해 나가야 할 것이다. 등급제 학교생활기록부는 학생들이 친구들과의 비교 등급이 아니라 교과별 성취목표에 비추어 달성한 성적이 무엇인지를 엄정하게 표기하는 방식으로 개선되어야 할 것이다. 대학입시 자율화가 이명박 정부에서 중요한 화두가 되고 있지만, 고등학교 교육에 심대한 파급효과를 가져오는 대학본고사, 논술고사와 같은 고등학교 외적 시험을 반대한다. 대학은 어떠한 형태로든지 자체 시험을 실시하려고 하기보다, 대학이 원하는 지원자가 갖추어 주기를 바라는 실력이 무엇인지를 공지하여, 학생들이 고교 과정에서 준비하도록 해야 할 것이다. (2) 상황주도력을 기르자 = 미래 세계를 선도해 갈 수 있는 한국인들을 기르려면 상황주도력을 기르는 교육을 해야 한다. 즉, 어떤 미래 상황에서도 원하는 대안을 선택할 수 있을 만큼의 역량을 가진 사람들을 길러내는 교육이다. 예측 가능한 상황은 물론, 불확실한 인재, 자연 재해 등 어떠한 돌발 상황에서도 주도력을 갖추어 주는 교육이 무엇이어야 하는가를 중요하게 의식해야 한다. 상황주도력을 갖추는 교육의 핵심 요소가 무엇이어야 하는가는 우리나라 최고의 지성인들이 협력해 지혜를 총동원하여 늘 새롭게 설정해 나가야 할 것이다. 그리고 이 작업의 결과가 교육과정에 목표로 설정되어야 하고, 이것이 교실 수업으로까지 규율할 수 있어야 한다. 차기 교육과정은 우리의 성장 세대들이 세계 선도역량을 기르는 것을 목표로 하는 세계 수준의 목표를 설정하고 반영해야 한다. (3) 한국형 국민역량 자격체계 개발하자 = 교육의 실제는 설정된 교육목표를 구체적으로 실현해 가는 과정이다. 교육목표는 전 국민에게 우리 사회가 가치 있게 지향하는 것이 무엇이고, 그것을 달성하기 위해서 시민 누구나 기본적으로 갖추어야 할 핵심 역량이 무엇이고, 각자의 적성이나 취향에 따라 선택할 수 있는 진로선택의 영역에 무엇이 있고, 선택한 영역에서의 자격 체계는 무엇이며, 그것을 갖추기 위해서 학습해야 할 과제는 무엇인지를 설정해 놓은 것이다. 그것이 선명하면 할수록 국민의 학습을 안내하는 길잡이가 될 것이다. 국민 역량 자격체계는 서구에서는 오래전부터 정착되어 왔다. 영국은 국민의 자격 체계를 크게 학력(學力)과 직업능력으로 대별하여, 각 영역별로 자격 단계를 8단계로 위계화하고, 동일 단계의 자격 간 호환이 가능하도록 한 국민자격체계(National Qualification Framework)를 구축했다. 이 자격체계에는 국민공통 역량으로 핵심기능 여섯 영역을 설정하였는데, 의사소통력, 수리력, 정보력, 문제해결력, 학습력, 협동력의 6개이다. 각 핵심 영역의 기능은 1-6단계 수준으로 위계화하고, 수준별로 학습내용과 성취기준을 명시하고 있다. 경쟁력 있는 교육은 총체적으로 국민의 자질 향상에 직결된 목표설정을 선명하게 설정하는 작업에서부터 시작되어야 한다. 이것은 새로운 작업이 아니다. 이미 있는 학교 교육과정, 각 직업분야별로 설정되어 있는 자격기준들을 하나의 국민적 자격체제 틀로 연계시키고 체계화 시키면 되는 것이다. 국가 인적자원개발 과제의 첫 번째 과제는 국민역량 자격체계를 구축하는 일에서부터 시작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4) 교육과정 리더십을 세우자 = 우리 교육이고비용 저효율의 저급한 경쟁력에 머무르고 있는 근본문제는 교육과정 리더십 부재에서 생긴 문제이다. 교육과정이 교육의 중심에 있어야 함에도 불구하고, 그것을 주변적인 것으로 경시한데에서 우리나라 교육의 만병이 생겼다. 어떤 대입제도이던 고등학교가 교육과정에 충실하지 못하게 하고, 그것에 춤추게 하면, 고교 교육을 입시준비기관으로 전락시키는 것이다. 대입제도의 중심에 교육과정이 있어야 한다. 학교 교육을 교육과정 중심으로 정렬시켜 학교가 본령에 충실하게 하고, 학교에서 생성되는 자료가 가장 중요한 학생들의 정보가 되게 하는 학교 교육 정상화를 도모하는 길 이외에는 교육 경쟁력을 확립하는 일이나 사교육 부담을 줄이는 대안은 없다고 확신한다. 한국 교육의 위기는 교육과정 리더십의 위기이고, 교육 세력들이 이를 무시한 대가에 불과하다. (5) 아픈 역사 치유하는 교육을 생각하자 = 건국 60년은 남북 대치 60년이고, 아픈 역사 60년이다. 민족 고통의 역사, 분열의 역사, 대결의 역사를 화합과 상생으로 가는 역사, 그래서 역사를 치유하는 교육의 대안을 찾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아픈 역사를 치유하는 교육에 대한 이야기를 우리가 먼저 제안하고 시작해야 할 것이다. 어떤 돌발사태가 남북관계에 있을지 모르지만 어떤 상황에서든 치유로 가는 대안을 적극적으로 찾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마치는 말 : 교육이냐?, 정권이냐? 국가의 진운이 현명하고 책임 있는 시민에 의해서 좌우되는 자유민주주의 국가로 대한민국이 건국된 덕분에, 그리고 자녀 교육에 아낌없는 투자를 해온 한국 국민의 높은 교육열에 의해서 우리 교육은 그 한계점에 도달할 정도로 양적인 성장을 이룩했고, 오늘의 대한민국 위상을 확립하는데 공헌했다. 그러나 그것은 외래 지식과 기술을 베끼고 암기하는 교육으로 가능했던 산업사회 시대의 이야기이다. 세계화, 정보화가 전면적으로 우리의 생활을 압도하고 있는 지금, 우리의 교육구조는 고비용 저효율의 저급한 경쟁력 수준에 머물러 있는, 매우 낙후한 교육으로 판명되고 있다. 이런 교육으로 미래 상황을 주도하는 구성원들을 길러낼 수 없다. 우리 교육은 과감한 방향전환이 절실히 필요하다. 그러나 그것은 무슨 굉장한 처방이라고 볼 수도 없는 아주 단순한 것이다. ‘기본으로 돌아가라’이다. 교육 이용자의 입장이 아닌 교육자의 입장에서 교육해법을 찾는 것이다. 그러나 우리 교육현실은 기본에서 너무나 왜곡되어 있기 때문에, 그 기본으로 돌아가는 일이 어려워졌고, 그래서 쉽게 손댈 수 있는 과제가 아니다. 그것은 ‘정권이냐? 아니면 교육이냐?’를 놓고 한 판의 운명적인 도박을 벌려야 하는 일과 같은 위험을 감행하는 일이다. 막대한 세력들의 이해관계로 고착된 지금의 교육을 뜯어 고치려면, 그것은 정권에 위협이 되는 엄청난 도전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언젠가는 반드시 해야 할 과제이며 정권을 초월하여 장기적으로 꾸준히 지속해야할 과제이다. 교육과정 리더십을 살리는 교육은 정권을 걸고 감행하지 않으면 안 되는 정도의 힘든 과제일지 모른다. 하지만 저급한 경쟁력에 머물러 있는 이 나라 교육을 살리는 길은 그것 이외에 대안은 없다고 생각한다. 교육의 본령이 중시되는 학교 교육이 이루어진다면, 그 교육은 일차적으로 우리 교육이 안고 있는 고질적 문제들을 크게 완화시킬 것이다. 학교가 즐거운 학습의 공간, 생활공간이 될 것이다. 선생님들의 권위가 신장될 것이다. 사교육이 위축될 것이다. 개성, 창의성이 자연스럽게 신장될 것이다. 궁극적으로 국가 교육 경쟁력이 강화될 것이다.
1 아부(阿附)를 싫어하는 사장님이 있었다. 그는 기회 있을 때마다 부하 직원들에게 자기는 아부하는 사람을 가장 싫어한다고 말하였다. 또 실제로 아부 모드로 접근해오는 부하 직원이 있으면 그 자리에서 면박을 주며 나무라기 일쑤이었다. 그렇게 되자 모두들 사장님 앞에서 환심을 사려고 알랑거리는 말이나 태도를 취하기는커녕, 사장님에게 격려가 될 수 있는 말조차도 꺼내기를 조심하는 분위기가 되었다. 모두들 사장님이 기분이 나빠져 있을 때 무슨 말로 위로를 드려야 할지 전전긍긍하는 분위기가 나타나기도 했다. 회사 내에 그야말로 아부하는 분위기는 사라져 갔다. 물론 사장님 앞에서는 아부의 ‘아’자조차도 튀어나올 수 없게 되었다. 그런데도 사장님은 달라진 분위기가 되어도 부하 직원들의 변화를 인정해주려는 기색이 없었다. 그냥 계속해서 자기는 아부하는 사람을 가장 싫어한다는 말만 되뇌는 것이었다. 그런데 영업부장 직위를 가진 부하 직원이 사장님을 모시는 공식·비공식 자리가 있을 때마다 이렇게 말하는 것이었다. “우리 사장님은 아부하는 사람을 정말 싫어하십니다. 아주 강직하신 분입니다.” “사장님께서는 아부하는 근성을 용납 않으시는 분입니다. 사장님 또한 아부의 처세를 하시는 분이 아닙니다. 우리 모두 정직과 성실로 인간관계를 맺고 당당하고 합리적인 자세로 업무에 입하도록 합시다.” 사장님은 흡족해했다. 영업부장의 사장님 예찬론은 널리 퍼져 나갔다. 사장님 자기 스스로 ‘나는 아부를 싫어한다’라고 말하는 모습 대신, 영업부장의 사장님 예찬이 더욱 세련되게 퍼져 갔다. 그만큼 아부를 싫어하는 사장님의 이야기는 입에서 입으로 퍼져 나갔다. 사장님이 아부를 싫어한다는 것은 이제 모든 회사원이 알고도 남게 되었다. 심지어는 이 소문이 회사 바깥에로도 알려져서 사장님의 곧고 바른 성품이 사람들 입에 오르내리기 시작했다. 마침내 사장님의 신화가 생겨나고 있었다. 사장님은 매우 흡족해했다. 영업부장이 너무도 마음에 들었다. 말할 것도 없이 영업부장은 사장님의 독점적 총애를 입었다. 누구보다도 빨리 중역으로 승진하고, 회사 내에서 가장 힘 있는 실세 중의 실세로 통하게 되었다. 일이 이렇게 되자 사장님이 아부를 싫어한다는 사실에 대해서 회사 직원들은 심각한 회의(懷疑)를 가지지 않을 수 없었다. 사장님은 정말 아부를 싫어하는 분이실까. 사장님이 정말로 원한 것은 무엇이었을까. 사장님은 아부를 싫어하신 것이 아니라, 아부를 싫어하는 멋있는 분으로 알려지기를 원한 것은 아니었을까. 아부를 즐기는 것은 권력 가진 사람에게는 뿌리칠 수 없는 유혹이다. 게다가 중독성까지 있어서 좀더 강력한 아부를 원하면서 점점 더 그 쪽으로 빠져들게 되는 것도 바로 아부라는 것이다. 그런데 그보다 더 유혹이 강한 것이 있다. 더구나 그것은 중독되는지도 모르면서 중독되어 가는 것이다. ‘멋있는 사람으로 인정되고 싶은 욕구’가 바로 그것이다. 2 대범함을 강조하는 교장 선생님이 계셨다. 학교를 위해서 노심초사 일을 많이 하셨다. 교육청에 들어가 학교 시설의 열악함을 호소하고, 새로운 학교 운영 계획을 의욕적이고 창의적으로 지역사회에 제시하고, 유관기관들을 부지런히 설득하여 학교 발전을 획기적으로 실현해나가는 중이었다. 워낙 대범하신 분이어서 이런저런 노력과 공적들을 자기 스스로 말하고 다니거나 자랑하지 않았다. 교장 선생님의 활동이 학교 밖에서의 활동들이어서 학교 내의 선생님들도 교장 선생님의 수고와 공(功)을 소상하게 잘 알지는 못했다. 교장 선생님은 처음에는 이렇게 생각했다. 이건 의당 교장이 할 일이다. 이런 일 정도로 내가 내 수고를 스스로 공치사하고 다니는 것은 소인배나 할 행동이지, 대범한 사람이 할 일은 아니다. 어쨌든 교장 선생님의 노고로 눈에 보이는 가시적인 학교 발전의 성과들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그래도 교장 선생님은 대범하게 자기 공을 내세우지 않았다. 그러다보니 사정을 잘 모르는 학교 선생님들로서는 교장 선생님의 공을 무심히 지나치게 되었다. 그런데 차츰 시간이 경과하면서 교장 선생님은 섭섭한 마음이 조금씩 들기 시작했다. 자신의 수고를 몰라도 너무 몰라주는 교직원들의 마음이 왠지 야속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면서도 자신의 소인배 같은 마음을 스스로 나무랐다. 대범하게 품위를 지켜야 할 내가 내 입으로 학교를 위해 이런 노력도 하고 저런 업적도 쌓고 등등 이렇게 말한다는 것 자체가 낯간지러운 일 아니겠는가. 언젠가는 알아주겠지. 이렇게 생각하고 마음을 달랬다. 그러나 한번 생긴 서운한 마음은 쉽사리 사라지지 않았다. 아무리 눈치가 없다지만 교장의 이런 헌신적 노력을 그렇게 외면하듯 몰라줄 수 있단 말인가. 젊은 교사들이야 학교 실정을 몰라 그렇다손 치더라도, 중견 교사 누군가 나서서 “아! 우리 교장 선생님께서 이러이러하게 활동하시고, 저러저러하게 애를 써주신 덕분으로 우리 학교와 구성원들이 이런 혜택을 누리게 되었습니다”라는 말 한 마디 해주면 얼마나 좋단 말인가. 교장 선생님은 서운한 마음이 조금씩 깊어지기 시작했다. 그러면서도 다시 대범하게 생각하기로 했다. 일찍이 공자님도 말하지 않았던가. 남이 나를 몰라준다고 해서 화를 내면 그것은 군자가 아니라 소인배의 행동이라고 하지 않았던가. 이 일로 선생님들께 섭섭하게 생각 말아야지. 그거 뭐 별 대수로운 것도 아닌데. 교장 선생님은 자신이 그렇게 쪼잔하고 쩨쩨한 사람이 된다는 것을 자기 자신이 용납할 수 없었다. 그러나 참으로 이상한 일이었다. 대범하고 멋있는 모습을 유지하려 하면 할수록 자신의 노고를 몰라주는 교직원들이 미워지는 것이었다. 그런 자신을 발견할 때마다 근본적인 회의가 들었다. 나는 대범한 사람이 아닐지 모른다. 그냥 대범한 사람으로 보이려는 욕구, 그래서 멋있는 관리자로 인정받고 싶은 욕구에 내 자신이 지고 있는 것인지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더더구나 고약한 것은 나를 몰라주는 사람들에 대해 미움과 짜증의 감정이 날로 커 가고 있다는 것을 확인하니 자신에게도 화가 났다. 교장 선생님은 깊이 고민했다. 대범한 사람으로서의 멋을 보이기 위해 계속 이런 상태를 유지하는 것이 좋을지, 아니면 내가 내 입으로 교직원들에게 내 노력과 업적들을 이야기하는 것이 좋을지를 고민했다. 생각 끝에 교장 선생님은 후자를 택하기로 했다. 그 이유로서는 현재 상태로 학교 교직원들이 섭섭하고 미워지는 자신의 마음을 더 이상 방치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한 것이다. 그까짓 거, 내가 좀 대범하지 못한 사람으로 보이면 어떤가. 내가 교직원들을 미워하는 마음을 고치는 것이 중요하지. 그렇게 생각을 한 것이다. 교장 선생님은 마침내 자신의 공적을 스스로 말하기로 했다. 그간 아무도 몰라주는 것 같아서 좀 섭섭했다는 말도 농담 반 진담 반으로 살짝 끼워 넣었다. 그 대신 대범하고 멋있다는 평가를 받는 것은 포기하기로 했다. 또 한 가지를 분명히 했다. 이러한 자신의 공치사는 전체 교직원이 모인 공식적인 자리에서 오늘 딱 한 차례만 하고 이후에는 절대 하지 않을 것이라고 했다. 3 교장 선생님의 판단은 지혜로웠다. 효과가 금방 나타났다. 교장 선생님의 말씀이 끝나자마자 박수가 터져 나왔다. 회의가 끝나고 사람들이 저마다 교장 선생님의 수고를 따뜻한 말로써 화답해 주었다. 며칠 동안은 사람들이 교장 선생님을 만나면 인사처럼 교장 선생님의 수고에 감사의 언어를 표현해주었다. 교장 선생님의 마음에 자리 잡고 있던 섭섭함과 미움의 감정들이 서서히 씻겨 내려갔다. 다시 평명한 감정의 상태로 돌아와 학교 관리에 유쾌하게 전념할 수 있게 되었다. 무엇보다도 교직원들과 밝은 감정과 상쾌한 기분으로 소통을 할 수 있는 마음의 기조를 되찾을 수 있어서 좋았다. 이 대목에서 사실 교장 선생님과 같은 지혜를 발휘하기는 상당히 어렵다. 아마도 대부분의 사람들은 한편으로는 자신의 대범함을 강조하면서, 부하 직원들에 대한 섭섭함과 미움의 감정은 술자리 등 비공식적이고 사적인 자리에서 여과 없이 거칠게 나타낸다. ‘내가 대범해서 그런 이야기 안 하려고 했는데, 내 참 섭섭했다고, 나쁜 놈들…’ 어쩌고 저쩌고 하면서, 술자리가 있을 때마다 단골 메뉴처럼 이야기를 꺼내서, 나중에는 모르는 사람이 없게 되는, 매우 고약한 상황을 자초한다. 이야말로 자기모순의 상황이다. 이렇게 되면 대범함은 대범함대로 상실하면서, 직원들과의 소통은 단절되고, 관계는 악화일로를 걷게 된다. 애초에 교장 선생님이 그렇게 집착하여 보여주고자 했던 ‘대범한 멋’이라는 것이 섭섭함을 솔직하게 털어놓고 마음의 미움을 없애는 것보다 더 가치 있는 것이라 할 수 있을까? 교장 선생님은 ‘연출된 멋’에 홀리지 아니하고 ‘우러나는 멋’의 경지를 체득하신 것이다. 아부를 싫어했다는 사장님 경우도 마찬가지이다. 진정으로 아부를 배척하는 철학을 실천했다기보다는, 아부를 싫어하는 ‘멋있는 사장님’이라는 이미지에 집착한 것인지도 모른다. 현대는 이미지가 넘쳐나는 시대이다. 이미지는 보여줌으로써 멋과 매력을 극대화한다. 그럴듯한 멋진 모습들은 모조리 이미지로 전달되고, 대중매체는 그것을 열심히 매개한다. 이미지가 빚어내는 멋은 순간의 감성으로 전달되고 포착된다. 현대사회에서 사람들의 관계 또한 파편적이고 순간적이다. 그런 탓인지 현대인들은 누구나 자신의 멋을 ‘보여주는 이미지’로 연출하려 한다. 상업 자본들이 그런 욕구를 끊임없이 부채질한다. 그러니 리더십마저도 ‘멋있어 보이려는 성향’으로 흐른다. 더러는 ‘연출된 멋’에 ‘우러나는 멋’이 쫓기는 형국도 있다. 그러나 연출되는 멋은 일시적으로 매력을 발하지만, 우러나는 멋은 오래 향훈이 남는다. 그렇기 때문에‘연출되는 멋’은 ‘우러나는 멋’보다 한 수 아래이다.
오늘날 교육에 관한 일이라면 전문가가 아닌 사람이 없다. 주위 사람들 혹은 언론보도 등으로부터 얻은 간접경험을 추가하여 모두가 자칭 교육전문가로 군림한다. 제반 교육문제에 대해서 서슴없이 칼을 들이대고 자신들의 상식과 잣대로 교육을 비판하고 평가를 내린다. 깊이 연구하고 생각해본 적도 없으면서 교육이 무너진다는 무시무시하고 엄청난 말을 서슴없이 내뱉는다. 당면한 문제들을 스스로가 세운 기준에 의거해서 예리하게 분석하고 명쾌하게 판단하며 때로는 그럴듯한 처방까지도 내려준다. 사회 어느 분야보다도 교육은 그 특성상 성과나 실적을 가늠하기 어렵다. 교육의 궁극적 결과물은 사회 각 분야에서 활약하고 있는 전체 국민들이기 때문이다. 현재 각종 교육기관에서 공부하고 있는 학생들은 최종 산출물이 될 수 없다. 사회 각 분야로 흩어져 학창시절에 배우고 익힌 실력을 바탕으로 국가발전에 기여하고 있는 국민 모두가 교육의 결과이다. 학교 시설물이나 그 속에 있는 교사, 학생을 평가의 대상으로 삼는 것은 참으로 우스운 일이다. 핵심과 본질은 놔둔 채 건물을 얼마나 짓고 기자재를 어떻게 개선하고 어떠한 행사를 몇 번 실시했다는 등의 가시적·외형적·단편적 실적이 점수화, 계량화되어 교육의 결과로 간주되고 있다. 교육에 관한 한 5000만 국민 전체가 당사자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국민 모두가 지대한 관심을 가지고 교육을 예의주시하고 있다. 너나없이 일가견을 가지고 교육을 논한다. 교육의 영역이 너무나 광범위하고 관련된 사람들이 많다 보니, 그중에는 문제가 되는 부분도 있을 수 있다. 하지만, 그게 어디 교육 자체만 탓할 문제이든가. 일류대학 일류학과를 나오지 않으면 사람 대접을 못 받고 결혼은 물론 취업마저도 어려우니, 누가 학교교육에만 만족하고 가만히 앉아 있겠는가. 어떤 제도, 어떤 여건 속에서도 내 아이만은 옆집 아이를 누르고 세칭 일류대학의 인기학과에 진학을 해야 하는 지상과제 앞에 과연 누가 자유롭고 초연할 수가 있겠는가. 우리 사회가 겉으로는 민주화되고 직업에 대한 귀천이 없어진 것처럼 보이지만, 자세히 속을 들여다보면 아직도 갈 길이 멀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사람들은 입만 열면 인간교육이 중요하며 순수과학과 기초학문에 대한 교육이 강화되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인다. 하지만, 안정된 직장에서 괄시받지 않고 궁핍하지 않은 생활을 하기 위해서는 현실과 타협할 수밖에 없다. 고3 진로지도를 할 때의 일이었다. 심사숙고 끝에 적절한 학과를 추천하면, 학부모가 “거기 나와서 밥벌이나 제대로 하겠습니까?”라고 되묻는다. 결국, 특기니, 적성이니 소질 따위는 무시하고 모두가 하나같이 세상 사람들이 알아주는 인기학과로 눈을 돌릴 수밖에 다른 방도가 없었다. 대학을 나오지 않아도 사회생활을 하는 데 지장이 없고 인간 대접을 받으며 사람 구실하는 데 문제가 없는 사회가 빨리 와야 한다. 전문기술과 특별한 재주로 사회생활을 하는 데 불편한 점이 없다면, 누가 구태여 대학에만 시선을 고정하고 모든 것을 걸겠는가. 학벌과 관계없이 기술인과 전문인이 우대받는 풍토가 조성된다면 모든 문제는 저절로 해결될 것이다. 그리되면 아이들은 능력과 소질에 따라 자신에게 맞는 길을 찾아 나설 것이다. 과다한 눈치작전도 없을 것이며 모두가 일류대학 인기학과에 진학하고자 온 몸을 던지는 비극도 사라질 것이다. 교육은 전체 사회현상 중의 한 부분이다. 따라서 교육이 안고 있는 여러 가지 문제도 사회라는 큰 틀 속에서 해법을 찾아야 한다. 각종 교육문제를 낳게 한 근본 원인에 대한 치유책도 당연히 범국가적 차원에서 강구해야 한다. 단순히 입시제도만 바꾼다고 해결될 일이 아니다. 아무나 나서서 함부로 교육을 말하지 말아야 한다. 법은 법을 전공한 법조인에게 맡기고 질병은 전문적인 의술을 습득한 의사에게 맡기듯이, 교육도 아이들 가르치는 일을 전문으로 하는 교사들에게 맡겨라. 일단 맡겼으면 믿음을 갖고 지켜보라. 우물가에서 숭늉을 찾듯 조급증을 보여서는 안 된다. 절대로 교육을 단기적 안목으로 보지 말라. 적어도 10년 혹은 20년의 시간을 두고 생각하라. 밥은 몇 숟갈만 먹어도 배가 부르지만 몇 달 공부했다고 해서 바로 표가 나는 것이 아니다. 평가라는 장치를 통해 아이들의 머릿속에 든 것을 측정하려고 애쓰고 있지만, 이것은 다른 적절한 방법을 찾지 못해서 택한 궁여지책일 뿐 교육의 본질과는 거리가 멀다. 땅은 좁고 자원이 부족하여 믿을 것이라고는 인력자원뿐인 우리나라가 이만큼 살고 있는 것은 바로 교육의 힘이 아니었던가. 세계가 놀라는 경이적인 경제발전도 교육의 힘이었으며, 지구촌 곳곳을 누비는 대한 건아들의 더 높은 기상도 교육의 결과임을 잊지 말라. 무엇보다도 내 아이를 가르치는 선생님들이 즐거운 가운데 긍지와 보람을 느낄 때 내 아이의 장래도 밝다는 점을 명심하라. 아이들 앞에서 선생님에 대한 험담을 함부로 늘어놓지 말라. 문제가 있다 하더라도 신중하게 이성적으로 접근하라. 사회 구성원 전체가 그들을 진심으로 존중하며 학교교육을 신뢰하고 지원할 때, 우리 교육은 제 구실을 다할 것이며 국가의 미래도 보장될 수 있다. 가슴 벅찬 감동과 크나큰 희망 속에 기축년(己丑年) 소의 해가 밝았다. 소는 옛날부터 인간과 친숙하게 지내면서 온갖 힘든 일을 도맡아 했던 든든한 일꾼이었다. 가축이기보다는 오히려 가족과 같은 존재였다. 그 유순하고 성실한 천성이 사람들에게 골고루 전파되어, 우리 국민 모두의 심성 또한 여유롭고 부드러워졌으면 좋겠다. 소처럼 드러나지 않는 곳에서 묵묵히 자신의 일을 다 하는 인재를 길러내야겠다. 그러기 위해서 교육현장에서 구슬땀을 흘리고 있는 교육가족뿐만 아니라 국민 모두 힘과 정성을 한데 모아야 한다. 새해에는 교육을 비롯한 국가의 모든 일들이 순조롭게 잘 풀려서 온 국민이 환한 얼굴로 함께 활짝 웃을 수 있기를 기대해본다.
강화산성 안파루(남문). 강화동종. 강화역사관에 있으며 강화성문을 여닫는 시간을 안내해주었다.서울을 지키는 천연 요새 섬을 찾아가는 여정은 이제 강화도로 향합니다. 강화도는 우리나라에서 네 번째 큰 섬으로 우리나라의 역사가 모두 축소되어 있다고 할 만큼 유적지가 많은 곳입니다. 단군이 하늘에 제사 지내기 위해 쌓았다는 참성단을 비롯하여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된 고인돌군도 있고 팔만대장경판도 여기서 만들어졌습니다. 서울로 들어가는 길목이어서 다른 어느 곳보다 외침을 많이 받았으며 특히, 외세의 개방 압력에 제일 먼저 노출된 곳이었습니다. 유사시에는 도읍지인 개성과 한양을 대신하는 피난처로 활용되었고요. 서울을 지키기 위한 천연 요새였던 이곳에는 섬 구석구석 군사시설로 꽉 차 있었습니다. 강화도로 떠나는 여행은 이렇게 강화도에 있는 관방시설을 둘러보는 것으로 시작합니다. 외규장각, 되찾아야 할 기록 고려 고종 때입니다. 몽골의 침입에 맞서 항쟁하던 고려는 드디어 개성을 떠나 강화도로 천도를 단행합니다. 서기 1232년의 일입니다. 도읍을 옮겼으니 성을 쌓고 궁궐을 지어야 하겠죠? 그 흔적이 강화산성과 고려궁터에 남아 있습니다. 이렇게 강화도는 39년간 항몽의 근거지였습니다. 강화산성은 원래 토성이었는데 조선 초에 이르러 석성으로 개축되었습니다. 동문 망한루, 서문 첨화루, 남문 안파루, 북문 진송루의 4대문을 두었으며 강화성문을 여닫는 시간을 알리는 데 쓰던 강화동종이 현재 강화역사관에 전시되어 있습니다. 고려궁터라고 하지만 막상 그곳에는 고려시대 궁궐의 흔적이 거의 남아 있지 않습니다. 지금 우리가 그곳에서 볼 수 있는 건물들은 조선시대 관아 건물이었던 동헌이나 이방청, 도서관이었던 외규장각 건물뿐이죠. 강화유수부 동헌은 조선시대 강화도가, 유수가 다스리는 유수부(留守府)였으며 이곳이 서울을 지키는 군사적 요충지였음을 말해줍니다. 서울을 둘러싼 개성이나 광주, 수원이 강화도와 함께 유수부가 설치된 곳이었죠. 이곳에 있던 외규장각은 1782년 2월 정조가 왕실 관련 서적을 보관할 목적으로 강화도에 설치한 도서관입니다. 하지만 병인양요 때 프랑스군이 서적을 약탈하고 불에 태우는 만행을 저질렀습니다. 더군다나 그때 약탈해간 고서들을 아직도 돌려받지 못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잃어버린 기록이요, 되찾아야 하는 기록인 셈입니다. 지난 1993년 당시 프랑스 대통령이 우리나라를 찾아와 한국의 고속철도기종으로 TGV를 선정하면 외규장각 도서를 돌려주기로 하고 ‘휘경원 원소도감의궤’를 반환하는 시늉을 했습니다. 하지만 고속철도기종으로 TGV가 낙찰되었건만 아직껏 그 약속을 지키지 않고 있습니다. ‘약탈한 것은 인정한다. 하지만 그동안 오랜 시간이 지났다. 따라서 이제는 프랑스 소유의 문화재가 된 것으로 봐야 한다’는 것이 그들의 억지주장일지 모르겠습니다. 한 포털사이트에서는 외규장각 도서 환수 모금 운동을 펼치고 있고 민간단체에서도 프랑스 정부를 상대로 적극적으로 반환운동을 펼치고 있는 중입니다. 〈르몽드〉지에 실린 외규장각 도서 반환과 관련한 광고 문구처럼 외규장각 도서가 반환될 때 대한민국 국민은 휴식을 찾을 수 있을 것입니다. 아울러 전 세계 낯선 땅에 잠들어 있는 7만여 해외 문화재가 하루빨리 우리 곁으로 돌아오기를 기원합니다. 정족산성, 살아 있는 기록 외규장각과 달리 정족산성 내 정족산사고에 보관되어 있던 실록 등 소중한 자료는 다행히 화를 피할 수 있었습니다. 양헌수 부대가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니까 1866년 프랑스는 자국의 선교사를 처형한 것을 구실로 7척의 군함을 이끌고 조선을 침략했습니다. 병인양요입니다. 당시 양헌수 장군은 강계포수 300여 명과 함께 정족산성에서 프랑스군과 맞서 싸웠고 그들을 물리쳤습니다. 이로써 사고(史庫)가 무사할 수 있었던 것이죠. 삼랑성이라고도 불리는 정족산성을 막 통과해 전등사로 가는 길에 양헌수 장군 승전비를 만날 수 있지요. 돌이켜보면 우리나라 실록의 역사는 고려시대로까지 거슬러 올라갑니다. 춘추관과 예문관을 상설하고 사관을 두어 기록하게 하였으며 전왕시대의 역사를 기록해 실록이라 해서 사고에 보관해왔습니다. 대개 사고에는 실록을 보관하는 사각(史閣)과 왕실의 족보를 보관하는 선원보각(璿源寶閣)이 함께 있습니다. 조선왕조는 1409년부터 1413년까지 4년간의 태조실록 15권을 편찬한 것을 시작으로 정종실록 6권, 태종실록 36권을 편찬하고 위 3조실록 각 2부씩을 등사하여 서울의 춘추관과 충주사고에 보관하였습니다. 그러나 2부의 실록만으로는 향후 보존이 염려돼 1445년에 다시 2부를 더 등사하여 전주와 성주에 사고를 신설하고 보관하게 됩니다. 하지만 1592년 임진왜란으로 인해 전주사고를 제외한 나머지 사고의 실록은 모두 소실되고 맙니다. 전주사고의 경우 실록을 내장산 용굴암에 옮겨 보관했기 때문에 무사했던 것이죠. 1606년(선조 39년) 전주사고본은 서울과 가까운 강화로 옮겨져 명종대까지의 실록이 더해져 3부가 더 만들어집니다. 그리고 전주사고본 원본은 마니산사고에, 나머지 3부는 춘추관·태백산·묘향산 사고에 보관합니다. 오대산사고에는 교정본을 보관하였죠. 사고의 관리는 인근의 절에서 담당하게 했습니다. 이후 병자호란과 이괄의 난 등으로 춘추관과 마니산에 보관되어 있던 실록이 불에 타거나 파손되었으므로 다시 4부의 실록이 작성되어 이곳 정족산, 태백산, 적상산, 오대산에 1부씩 보관합니다. 이 중 오대산에 있던 실록은 일본으로 옮겨졌다가 관동대지진 때 대부분 불타버렸고 적상산의 것은 북한에 있습니다. 지금 규장각에 남아 있는 실록은 정족산사고본, 태백산사고본입니다. 정족산사고본이 남아 있게 된 데는 외규장각 침탈과 같은 문화적 만행을 막아낸 양헌수 부대의 승전이 있었기 때문이라 하겠습니다. 정족산성 내에는 가궐터도 남아 있습니다. 가궐을 짓고 마니산 참성단에서 제사를 지내면 몽골이 물러가고 주위 대국들이 와서 조공할 것이라는 풍수설에 의해 지어진 것입니다. 안타깝게도 역사의 시곗바늘은 그 예언을 벗어나버렸군요. 어재연 장군기 (인천시립박물관에 원본이 있다).신미양요의 격전지 광성보 강화도를 여행하다 보면 ‘진(鎭)’, ‘보(堡)’, ‘돈대(墩臺)’등이 어떻게 다른지 궁금하실 겁니다. 이 군사시설들은 수장이 누구냐에 따라 그 위상이 달라지겠습니다만 대략적인 규모를 기준으로 살펴보겠습니다. 진은 덕진진, 초지진, 월곶진, 제물진, 용진진 등 모두 다섯 군데가 있었습니다. 강화지역 문화유산을 안내해주시는 분에 의하면 진은 지금으로 치면 대대급 규모를 말한다고 합니다. 보는 광성보, 철곶보, 장곶보, 선두보와 같은 곳으로 모두 일곱 군데에 설치되어 있었습니다. 오늘날로 치면 중대급 규모에 해당된다고 합니다. 돈대는 해안가나 고지에 설치된 소규모 군사시설로 그 형태는 원형, 타원형, 네모형 등 다양합니다. 오늘날 초소 정도라고 합니다. 그러니까 몇몇 돈대가 모여 하나의 진이나 보를 이루게 됩니다. 강화도에는 5진 7보 53돈대와 8포대가 해안을 따라 설치되어 있었다고 하는데, 1970년대 복원사업을 거쳐 관광지로 알려진 곳은 덕진진, 초지진, 광성보, 용진진, 갑곶돈대 등이 대표적입니다. 광성보의 경우도 광성돈대, 손돌목돈대, 용두돈대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이곳은 신미양요 때 가장 치열한 전투가 벌어진 곳입니다. 미국의 장삿배인 ‘제너럴셔먼호’가 대동강을 거슬러 와서 무역할 것을 요구하자 사람들이 그 배를 불태워버렸습니다. 이 사건을 빌미로 해서 미국은 1871년 군함을 앞세워 조선을 침략하는 데 이것이 신미양요입니다. 초지진을 거쳐 강화해협으로 들어선 미군함은 광성보 근처에서 어재연이 이끄는 조선군과 맞닥뜨리게 됩니다. 당시 미국은 1861년부터 4년간 남북전쟁을 겪으면서 풍부한 전쟁 경험을 갖추었으며 근대화된 무기를 보유하고 있었습니다. 상대적으로 조선군의 무기는 형편없어서 전쟁은 어쩌면 계란으로 바위 치는 격이었다고 하겠습니다. 백병전으로 전개된 전투에서 총지휘관인 어재연과 그의 동생 어재순 등 조선군은 거의 전멸하고 미군은 3명만 희생되었다고 합니다. 여러 모로 보나 비교가 안 되는 불리한 상황에서도 끝까지 싸운 그들의 희생정신을 높이 사고 싶습니다. 용두돈대에 있는 강화전적지정화기념비 뒷면에는 다음과 같은 구절이 적혀 있습니다. 격전지였던 강화도를 핵심적으로 잘 나타낸 말이 아닐까 싶네요. 강화는 한강 어귀에 있어 사면에 물이 둘리고 섬 안에는 산악이 중첩하여 천연적인 요새지다. 역대를 통하여 전란 때에는 피란처가 되었지만 다른 한편 병화를 입어 편안한 날이 없었기에 이 언덕 저 갯가 풀 한 포기 돌 한 덩이에 역사의 사연이 서리고 끼치지 않은 것이 없다.(이하 생략) 손돌목과 수자기 용두돈대에서 강화해협을 바라보면 물살이 급한 곳이 있습니다. 이곳을 손돌목이라고 부릅니다. 이곳에는 뱃사공 손돌과 관련한 전설이 전해지고 있습니다. 광성보 손돌목 고려 고종(혹은 이괄의 난을 피해 강화도로 향했던 조선 인조 때라고도 합니다)이 몽골의 침입을 피해 강화로 피난을 가는데 손돌이라는 뱃사공이 뱃길을 안내하게 되었습니다. 강화해협을 건너 강화도로 향하던 배가 점점 여울목을 향해 나아가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피난길에 있던 왕은 손돌을 몽골의 첩자로 의심해 즉시 처형하라고 명령을 내렸습니다. 손돌은 이곳의 지형이 원래 그렇다고 했으나 왕은 그의 말을 믿지 않았습니다. 그는 죽기 전 바가지를 배 앞에 띄워 그 바가지가 가는 대로 따라 가면 강화도에 도착할 수 있다고 말했습니다. 손돌이 죽고 난 후 상황은 더 악화되어 결국 사람들은 손돌이 말한 대로 바가지를 띄워 그 바가지가 떠가는 대로 가게 되었는데 정말로 무사히 강화도에 도착할 수 있었답니다. 그 여울목이 손돌목인 것입니다. 손돌목이 내려다보이는 곳에 손돌의 묘가 있습니다. 뱃사공의 말도 믿 지 못해 민초의 억울한 희생이 있었던 것입니다. 왕은 살아남기 위해 섬으로 피신해야 했던 절박한 상황이었겠지만 이 이야기를 통해 전쟁 동안 얼마나 많은 민초들의 희생이 뒤따랐을지 짐작해봅니다. 이를테면 고려 정부가 강화도에 머물던 39년간 육지에 살고 있던 민초들의 삶은 얼마나 비참했을까요. 또 16년간에 걸쳐 팔만대장경판을 만들면서 외딴 섬에서, 혹은 깊은 산 속에서 후박나무며 자작나무를 채취해 강화도로 옮기기까지 얼마나 많은 민초 들이 목숨의 위협을 느꼈을까요. 광성보에 있는 쌍충비각은 어재연, 어재순 장군의 업적을 기리기 위해 세운 비입니다. 참, 이 전투에서 어재연 장군기인 수자기(帥字旗)가 미군에 의해 약탈당했습니다. 이 기는 누런 삼베 천에 장수를 나타내는 수(帥)자를 새긴 것입니다. 미군에 의해 약탈당한 후 미국 해군사관학교 박물관에 보관돼 있다가 지난해 국내에 들여와서 현재 인천시립박물관에서 보관 중입니다. 2010년 개관 예정인 강화역사박물관에서 상설 전시될 예정이랍니다. 우리 문화재이지만 최대 10년간 대여형식으로 가져온 것이라 기간이 끝나면 다시 돌려주어야 한다는군요. 136년 만에 고국으로 돌아온 수자기가 두 번 눈물 흘릴 일이라 하겠습니다. 쌍충비각 근처에 있는 신미순의총(辛未殉義塚)은 미군과 싸우다 순국한 이름 없는 용사들의 묘입니다. 신원을 확인할 수 없는 51위를 7기의 분묘에 합장하여 두었습니다. 열악한 상황에서도 끝까지 싸웠던 그들의 모습을 떠올리면 자못 숙연해집니다. 1월입니다. 제가 새교육에 연재를 시작한 지도 지도 만 5년이 지났습니다. 이렇게 오랫동안 만날 수 있게 해주신 독자 여러분, 고맙습니다. 아울러 그동안의 친분을 빌미(?)로 살짝 제 자랑도 한번 할까 합니다. 전교생 22명의 우리 분교 아이들이 문화재청 스토리텔링 콘테스트에서 당당히 금상을 차지했습니다. 이 기쁨을 독자 여러분과 함께 나누고 싶습니다. 2월에도 강화도에서 만나 뵙겠습니다.
일본의 전국학력조사에서 2년 연속 전국 최고 수준이었던 아키타현내 초・중등학생임에도 불구하고, 현교육위원회의 과제는 고교생의 학력 향상이다. 이를 해결하기 위하여 들어가기 힘든 대학 수험을 지망하고 있는 학생들을 대상으로 입시학원 강사를 초청하여 집중강의「토요강좌」를 시작했다. 학원이 적은 아키타현내에서 수도권의 학원 강사들의 강의를 받을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여 학생들의 학력 향상을 꾀하기 위한 노력이라 할 수 있다. 「자, 여기를 메모하세요」. 아키타시 메이토쿠칸 고교에서 23일에 있었던 2학년을 대상으로 한 첫 강의 시간이다. 도쿄에서 초청 된「요요기 세미나」학원의 수학강사가 1교시 수업을 적절한 속도로 진행했다. 센터 시험문제 등 대학수험의 실전적인 문제를 푸는 한편, 잡담도 섞어가면서 재미있게 진행해 나가는 것도 잊지 않았다. 이 강의에는 아키타, 아키타키타, 아키타미나미, 아키타주오, 혼조 등 5개 교 약 40명이 수강했다. 토요강좌는 현교육위원회가 올 해 시작한「고교생 파워 업 추진사업」의 일환이다. 현내 고교생의 2007년도 입시 센터시험의 성적은 전국 39위이다. 한편, 현교육위원회에 의하면 졸업자 전체에서 국공립대학 입학자의 비율은 15.5%로 전국 14위이다. 국공립대 합격자를 10명 이상 배출하고 있는 고교 수의 비율로 보면 동북지방 6개현에서 가장 높다. 실업고교에서 국공립대 진학률도 높고 공업고교에서는 전국 1위이다. 현내 고교생의 실력을 엿볼 수 있는 수치이다. 이번 강좌에서는 1,2학년에서 주로 성적이 상위권인 학생들의 실력을 높이는데 특화시켰다. 학원 강사 외에 현내 고교에서 선발된 교사가 가르친다. 학생들은 교재비만 부담한다. 2학년은 영어, 수학, 화학을 1학년은 영어, 수학을 배운다. 90분 강의를 오전에 2시간, 점심시간 후 오후에 한 시간 받는다. 아키타시, 오다테시, 요코테시 등 현내 3곳에서 내년 2월까지 14회를 예정하고 있다. 12개 학교에서 약 200명의 학생이 참가하였다. 강의를 들은 아키타미나미고교 2학년 한 여학생(17세)은「평상시에는 토요일은 늦게까지 자고 있다. 재미있고 알기 쉽게 가르쳐주니까 집중해서 들을 수 있었다. 좋은 습관이 생길 것 같다」라고 이야기했다. 어느 고교의 남교사는「다른 학교 학생이 있어서 자극을 받았을 것이다」라고 하면서「지금까지 어쩐지 대립관계이었던 학원이지만 수험 관련 자료 지도 방법을 많이 가지고 있다. 우리도 배울 점이 많다」라고 이야기 했다. 이처럼 일본의 농촌지역의 교육회생을 위한 노력이 계속되고 있는 모습에서 현직 학교 교사들의 가슴에는 어떤 생각이 떠오르고 있을까?
교대 부설학교 등 전국 43곳의 국립학교를 3월부터 공립학교로 전환하려던 정부의 계획이 2010년 이후로 미뤄졌다. 1일 교육과학기술부에 따르면 이르면 올 3월부터 전국의 국립학교를 공립학교로 전환키로 하고 최근 국립학교 설치령 등 관련 법령 입법예고까지 마쳤으나 법령 개정 작업을 유보하고 공립화 계획을 내년 이후로 미루기로 한 것으로 알려졌다. 교과부 관계자는 "국립학교 공립화에 대한 이견이 많아 좀더 의견 수렴이 필요하다고 판단했다"며 "올 3월과 5월께 공청회를 열고 필요할 경우 입법예고안을 다시 만들어 2010년 이후 재추진하겠다"고 밝혔다. 교과부가 공립학교로 전환을 추진한 학교는 서울대 부설 초ㆍ중ㆍ고를 비롯한 각 국립대 부설학교, 서울교대, 경인교대 등 전국 10개 교대 부설 초등학교 등 부설학교 40곳과 공립공고 3곳(부산기계공고, 전북기계공고, 구미전자공고)이다. 교과부는 국가 업무가 지방으로 이양되는 추세를 반영하고 학교 감독 권한이 교과부와 시도 교육청으로 이원화돼 있을 필요가 없다는 판단에 따라 이들 43개 학교를 시도 교육감이 관리, 감독하는 공립학교로 전환하는 계획을 추진해 왔다. 그러나 전국의 교대 총장, 교수, 국립학교 교장, 교사, 학부모들은 "일반 공립학교의 모델이 되는 국립학교의 기능을 무시하는 행정 편의적 발상"이라며 공립화 방침에 강하게 반발해 왔다. 교과부 관계자는 "의견 수렴을 위해 시기가 미뤄지는 것일뿐 공립학교로 전환하겠다는 기본 방침에는 변화가 없다"고 강조했다.
교단의 학습조직화, 수업전문성 신장을 위해 올 3월 시범도입된 수석교사제가 2009년 3월부터 두 배로 확대 운영된다. 하지만 수석교사 법제화는 해를 넘겨 올 6월 임시국회 이후에나 다시 논의될 전망이다. 교과부는 최근 수석교사 시범운영계획’을 각 시도교육청에 시달했다. 이에 따라 방학 중인 1월에 수석교사 선발전형이 진행되게 됐다. △기간=2차년도 시범운영 기간은 올 3월부터 내년 2월까지로 1년이다. 수석교사 선발, 배치를 시도 전체 차원에서 실시하거나 특정 지역교육청(또는 2, 3개 교육청을 묶은 시범교육청 群)을 정해 운영할 수 있다. △규모=시범운영 대상이 현재 171명에서 300명으로 두 배 가까이 늘어난다. 현장에 수석교사에 대한 인식을 제고하고, 학교급, 시도 등 다양한 조건에 따른 수석교사제 도입방안을 모색하기 위해서다.서울 34명, 부산 20명, 대구 18명, 인천 18명, 광주 16명, 대전 16명, 울산 16명, 경기 34명, 강원.충북.충남.전북.전남.경북.경남.제주 각 16명을 선발한다. △역할=수업 담당 외에 수업 코칭, 교내 연수 주도, 교육과정 교수학습평가방법 개발보급, 신임교사 지도 등 교단의 학습조직화와 수업전문성 신장이 주 임무다. 이외에 교원양성, 연수기관에서의 강의 등 교과교육 관련 외부 활동을 하게 된다. △선발교과=국민공통기본교육과정 10개 교과와 전문교과 중 공업, 상업에 관한 교과에서 선발한다. 시도별로 반드시 선발해야 하는 1개 교과를 지정해 초중등별로 각 1명을 선발하되, 그 외 과목은 자유롭게 선택해 선발하게 된다. △지원 자격=초중등 교육경력 10년 이상 1정 소지자(1안), 15년 이상자(2안)가 지원하는 두 가지 방식이 진행된다. 부산, 대구, 인천, 광주, 대전, 울산, 경기, 제주는 1안을 적용하고, 서울, 강원, 충북, 충남, 전북, 전남, 경북, 경남은 2안을 적용해 선발한다. 교육경력에는 기간제 교원으로 근무한 경우도 포함된다. △지원 서류=소정의 수석교사 지원서, 교육활동실적 요약서, 수석교사 활동계획서, 기타 수석교사 선발에 필요한 서류가 있다. △전형방법=시도 전체 교사를 대상으로 응모를 받거나 시범 지역교육청 관할 교사만을 대상으로 하거나는 시도가 정한다. 시도별 수석교사 심사위원회에서 지원자를 대상으로 3단계 전형을 실시하며, 1차는 서류전형, 2차는 수업능력 심사 및 심층면접, 3차는 동료교사 등 면담이다. 심사위는 교장, 교감, 교사, 교육전문직, 학계 전문가 등을 포함해 7인~11인으로 구성한다. 2008년에 수석교사로 활동한 대상자는 1, 2차 전형이 면제된다. △문제점=한국교총은 “수석교사제를 확대 시범운영하는 것은 환영할 만한 일이나 이들이 현장에서 제 역할을 하도록 지위를 부여하고 지원체계를 갖추는 것이 중요하다”고 밝혔다. 하지만 1기 수석교사들의 가장 큰 애로사항이었던 수업 부담은 전혀 개선되지 않을 전망이다. 지침은 ‘학교실정에 따라 20% 정도 경감가능’하다고 했지만 임의규정이라 실효성이 미지수다. 지난해에는 시간제 강사도 제때 확보하지 못해 동료교사들이 수업을 떠맡아 애꿎은 수석교사들이 비난의 화살을 감수해야 했다. 이와 관련 초중등 수석교사회는 “수업참관과 컨설팅, 연수 주도, 교육과정 등 개발 보급, 외부 특강 등의 역할을 감당하려면 주당 10시간 이내로 수업이 조정돼야 하며, 이를 위해 수석교사 수만큼 별도 정원을 확보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처우도 그대로다. 전년과 동일한 연구활동지원비 월 15만원 외에 인센티브 제공은 시도 재량이다. 동료교사 면담, 각종 자료제작, 연구에 쓰다보면 ‘우대’랄 게 없다. 그러나 가장 큰 문제는 수석교사의 위치를 ‘교감과 부장교사의 중간 위치에서 업무를 수행하는 자’로 규정한 것이다. 관리직만큼 우대받는 교수직 트랙을 만들어 교사의 전문성을 신장시키고 학교교육력을 극대화한다는 근본 취지를 근본부터 뒤흔드는 규정이기 때문이다. 이원춘 중등수석교사회장은 “수석교사에게 충분한 지위와 처우를 제공해 우수한 교사들이 교실에서 좋은 수업을 하며 긍지를 갖도록 하는 것이 목적인데 이래서야 누가 수석교사에 지원하겠느냐”며 지침 내용의 삭제를 촉구했다. 이에 대해 교과부는 “지금은 시범운영인데다 현 교단 정서상 한번에 지위를 교감급으로 끌어올리는 것은 무리가 있다”며 “단계적으로 효과를 입증하고 정착 단계를 거치면 내후년쯤에는 교감 옆자리에서 장학을 협의하고 운영할 수 있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
“당신이 CEO로 있는 잘 나가던 회사가 갑자기 부도 위기를 맞았고 직원들의 데모가 시작되었습니다. 이 어려운 상황을 지혜롭게 헤쳐나가는 모습을 준비한 재활용품을 이용해 팀워크를 발휘하여 남과 다른 가장 즐겁고 신나는 6분짜리 퍼포먼스를 보여주십시오.” 경기도창의성교육연구회는 지난 27일 경기도수원교육청(교육장. 조성준)과 함께 경기도교육청과 수원시의 후원으로 2008 해피수원 전국학생창의력올림피아드를 수원 영화초교 다목적실에서 개최하였다. 이미 예선을 통과한 초중고 16개팀 학생과 교사, 학부모 등 3백여명이 참석한 가운데 초중고별로 주어진 각각의 과제를 팀별로 30분간 스튜디오에 갇혀 오직 12가지 재활용품만을 활용해 무대배경, 소품, 의상, 음향도구를 준비하여 해결과정을 퍼포먼스로 보여주는 열띤 경연을 펼졌다. 그리고 준비단계와 공연과정에서 주어지는 장애물 2가지를 해결해야 하고 또한 한국교총과 EBS가 선정한 ‘겨레의 스승 12명’ 중 1분을 즉석에서 뽑아 해결과정에 등장시켜야 한다. 지금까지 국내외 어떤 창의력대회에서도 볼 수 없었던 어렵고 황당한 과제를 예선을 통해 전국에서 뽑힌 팀들은 각각 다른 색깔로 재밌게 과제를 해결하여 보는 이들의 탄성을 자아냈다. 자칫 어두운 내용이 될 수 있는 고등부 주제인 단란했던 가정의 실직과 가출, 불치병의 과제를 대화와 화해를 통해 승화시키는 가하면 잘 나가던 회사의 부도와 데모 상황인 중등부 주제는 ‘겨레의 스승’의 지혜를 빌려 헤쳐 나가기도 하였다. 이날 최고상인 대상은 수원 초중등 연합인 SBMS팀(팀장. 수원북중 문미혜)이 차지해 100만원의 상금과 메달을 받았으며 부문별 금,은,동상 3팀과 장려상에게도 각각 상금과 메달이 수여되었다. 이날 상금은 창의성교육연구회 이철규 회장(수원영화초 교사)이 교육과학기술부로부터 올해의 과학교사상을 수상하며 받은 포상금 전액을 내놓아 전달되었다. 학부모 김진원(여.42세)씨는 “대회 준비기간 동안 학원을 보내지 못해 불안했는데 그동안 부족하다고 느꼈던 남을 배려하는 마음이나 문제해결력을 배울 수 있어서 오히려 얻은 것이 많아 대회결과에 관계없이 학생, 학부모들이 모두 가장 행복한 시간이었다”고 참석 소감을 밝혔다.
우리 아이들이 잔뜩 긴장한 모습으로 입학식을 하던 때가 엊그제 같은데 벌써 1학년을 마감하는 종업식이 다가왔네요. 그러고 보면 세월처럼 빠른 것이 없다는 생각이 듭니다. 앞으로 다가올 2학년은 1학년 때보다 시간이 더 빨리 흘러갈 것입니다. 따라서 잘 지낸 사람이나 못 지낸 사람이나 지난 1년은 이제 다 잊어버리고 앞으로의 계획에 충실하여 2학년 때에는 모두가 웃을 수 있는 학년말이 되길 진심으로 기원합니다.
내년 4월 8일, 경기도교육감 선거를 도민 직선으로 치룬다. 현재 자천타천으로 거론되는 후보는 7, 8명에 이르지만 공식적으로 경기도선거관리위원회에 예비후보로 등록한 사람은한만용(56. 전 대야초 교사) 후보 단 1명이다. 그는 지난 9일, 제일 먼저 교육감 후보자로 등록을 마치고 선거운동에 돌입하였다. 현행 선거법 상, 예비후보자로 등록을 하면 후보자 명함 배부, 선거사무소 설치, 현수막 게시, 메일 및 우편 발송 등의 공식 선거운동을 할 수 있다. 리포터는 28일(일)안산에서 한만용 후보를 만났다. ▲ 본인을 소개한다면? 정도(正道)를 걷고 싶은 사람이다. 남이 알아주든지 알아주지 않든지 간에 모든 면에 있어 생활에 충실한 사람이라고 말할 수 있다. ▲교육감 출마 동기는? 우리 사회 이념 갈등이 심하다. 교육계에서만큼은 여기서 벗어나 교육에 매진해야 한다. 이념 갈등을 종식시키고 공정한 인사로 능력있고 우수한 인재를 적재적소에 배치하여 교육이 원활히 이루어지게 하겠다. 예산 낭비를 줄여 교사들이 교수-학습과 인성교육에 전념하도록 도와주려 한다. 교육탕평책을 쓰겠다. ▲ 일찌감치 예비후보자로 등록한 이유는? 어차피 할 것인데 머뭇거릴 필요가 없다. 교육감 선거도 일종의 전쟁인데 선제공격을 하고 싶었다. ▲ 본인이 교육감이 되어야 하는 이유는? 교육은 정치적으로 중립이 보장되어야 한다. 교육가족의 의견을 수렴하여 현장의 의견을 들어 어떻게 하는 것이 잘하는 것인가를 수용할 것이다. 과거 교육감들은 타성에 젖어있다. 정치논리를 단호히 배격하겠다. ▲교육철학은? 따뜻한 인성과 능력을 갖춘 인재육성이다. 더불어 사는 사회와 국가발전에 이바지하게끔 교육이 뒷받침되어야 한다. ▲ 득표 전략은? 현재 다 밝힐 순 없지만 완비되어 있다. 현재는 교육선배들을 찾아다니며 인사를 드리고 있다. 교직보다는 일반사회활동을 활발히 하면서 인지도를 넓히고 있다. ▲당선 가능성이 있다고 보는지? 예상득표율은 15% 이상으로 보고 있다. 물론 당선 가능하다. 상대방이 누구냐에 따라 다르지만 대한민국 교육감 선거 역사를 다시 쓸 것이다. ▲ 언론에서 거론되는 타 후보자가 등록을 망설이는 이유를 분석한다면? 이해타산을 따지는 것 같다. 당선 가능성 여부를 계산하고 불리하면 접을 것으로 본다. 선거자금 확보가 안 된 경우도 있을 것이다. 일단 이름을 알리고 나중에 빠지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 경기도민들에게 하고 싶은 말씀은? 400억이넘는 선거비용이 들어가는데 많은 도민들이 투표에 참가하여 투표율을 높였으면 한다. 그래야 교육본질을 바탕으로 한 교육을 전개할 수 있고교육의 정체성이 살아난다.
지난 달일본에서발표된 지난해 등교거부 초・중등학생은 전국적으로 약 13만 명으로 그 전 해에 비해서 약 2,400명이 증가했다. 학교생활에 익숙해지기 힘든 고민을 안고 있는 학생들이 늘어나고 있는 가운데 그런 학생들을 받아들이는 프리스쿨을 후쿠오카시내에서 열고 있는 사람은 이마리리카코(46세)씨이다. 체험을 중시한 수업내용으로 학생들을 지원한다. 6년 전에 등교거부나 외부와 접촉하기 싫어하는 젊은이들을 지원하는 활동「오픈스쿨M・R・C」를 시작하여 작년에 주로 초・중등학생을 대상으로 한 프리스쿨로서 재출발했다. 현재는 4명의 학생이 다니고 있으며, 수업은 각 교과의 학습은 물론 요리실습, 승마 캠프, 지역행사에 참가하는 등 체험활동을 많이 하고 있다. 수업의 특징은 함께 활동함으로써 자연스럽게 교류가 이루어진다. 다른 사람과 접하는 것을 두려워했던 학생들은 자신감을 되찾는 계기가 된다. 이마리씨가 어느 날 한 학생의 어머니로부터 메일을 받았는데 자기 아이의 생기가 넘치는 모습에 날아갈 것처럼 기뻤다고 써져 있어서 이 이야기를 듣고 이마리씨도 똑같은 기분이 들었다고 이야기했다. 이마리씨는 초등학교 교사를 1년 근무한 후 학원 강사와 해외 초등학교에서 일본어 교사 등을 경험했다. 그녀 자신이 학교교사로서는 적격자가 아니었는지 모르지만 다른 곳에서 자신이 머물 수 있는 곳을 찾아낼 수 있었다고 한다. 특히 해외에서는「남과 다른 것은 당연하다」라는 사고방식이 강해서 아이들에게 준비된 선택지가 많다. 그래서 학교에서 공부하기 싫으면 그래도 괜찮다. 그렇다면 그 대신 무엇을 하고 싶은가. 여러 가지 활동을 통해서 학생들이 힌트를 얻어 낼 수 있는 장을 만들고 싶다고 이야기했다. 한편 학생들을 받아들이는 문제가 아직 순조롭다고 말할 수 없는 것도 사실이다. 등교거부 학생들에 대해서 이야기하기를 꺼려하는 학교나 가정도 많아서 프리스쿨에 대한 오해와 편견도 있다. 후쿠오카현은 프리스쿨에 출석한 것도 학교 출석으로 취급하는 방향성을 제시하고 있지만 실제 현장에서는 그 대응이 통일되어 있지 않다. 학교, 가정, 민간 프리스쿨이 삼위일체가 되어 등교거부 학생들을 줄일 수 있도록 상호간의 연대를 밀접하게 해나가기를 바란다는 소망을 이야기했다.
서울중앙지검 공안1부(공상훈 부장검사)는 30일 서울시 교육감 선거비리 의혹과 관련, 당시 후보였던 주경복 씨를 소환조사했다. 주 씨는 지난 7월 교육감 선거에서 전국교직원노동조합(전교조)의 공금과 전교조 소속 교사들이 모금한 돈 등 8억원을 불법적으로 기부받은 혐의를 받고 있다. 검찰은 주 후보가 선거 과정에서 쓴 전체 비용 34억원 가운데 국가 보조금으로 갚은 20억원을 뺀 14억원 중 약 60%를 전교조가 지원한 것으로 보고 있다. 검찰은 주 씨가 선거캠프에서 참모로 일했던 전교조 서울지부 이을재(구속) 조직국장을 통해 전교조의 조직적인 지원을 이끌어냈는지를 집중 추궁한 것으로 알려졌다. 검찰은 주 씨가 전교조의 조직적인 지원에 대해 얼마나 인식하고 있었는지 등을 판단해 형사처벌 수위를 결정할 예정이다. 주 씨는 이날 조사실로 가면서 "시민단체 등과 우리나라 교육을 바로세우기 위해 선거에 출마했고, 그 과정에서 선거 경험이 없는 실무진들의 일부 실수가 있었을지 모르지만, 도덕적으로나 교육적으로 부끄러운 것은 전혀 없다"고 밝혔다. 주 씨는 또 "책임은 모두 저에게 있으며, 모든 후보에게 공정한 수사가 이뤄지길 원한다"고 말했다. 한편 검찰은 이날 오후 전교조 송원재 서울지부장과 김민석 사무처장에 대해 구속영장을 재청구했다. 이들은 교육감 선거 당시 전교조 서울시지부 공금 2억원과 전교조 회원들을 대상으로 모금한 8억여원을 주 씨 측에 기부하고, 허위 회계자료 제출에 관여한 혐의 등으로 구속영장이 청구됐으나 지난 24일 기각된 바 있다.
강원교총과 도교육청은 29일 ‘2008년도 정기 교섭·협의 합의서’ 조인식을 갖고 교과직무연수제도 개선, 교원 업무경감, 학교 냉·난방시설 운영비 확대지원 등 37개 항에 합의했다. 이번 교섭·협의는 교육·학교행정 개선과 교원복지 증진, 교원인사제도의 합리성 확보에 초점을 맞춰 추진됐다. 도교육청은 최근 3년간 90시간 이상의 직무연수를 이수한 20년 이상 경력 중등교사에 대해 전공교과 직무연수 이수를 희망자를 우선해 탄력적으로 운영키로 합의했다. 또 과중한 학교업무 해소를 위해 수석교사를 운영하는 학교, 읍·면지역에 소재하면서 수준별 수업을 실시하는 학교, 복식학급을 운영하는 학교에는 계약제 강사를 확대하는데 노력하기로 했다. 교원의 복지향상을 위해 청소 용역제도를 확대하고 냉난방시설을 조속히 설치하도록 노력하는 한편, 시간외근무수당을 받고 학생지도를 맡은 중학교 교원들에게 학력관리지원금을 지급하는데 힘쓰기로 했다. 그 외에도 매년 실시하는 한마음 노래부르기 합창대회의자율적참가 제도 마련과 시간강사 수당 지급 요건 완화, 전산·과학보조 인건비 확대, 공립유치원 확대 등에 노력하기로 합의했다.
지난 참여정부때에 느꼈던 것이 급격한 변화였다. 교육현장은 급격한 변화를 받아들이기 어렵다는 생각을 그때나 지금이나 가지고 있다. 급격한 변화로 인해서 반드시 피해를 받는 곳이 있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교육은 급격한 변화가 바람직하지 않다. 당시의 피해자가 학생이건 교사건 학부모건 피해를 보는 쪽에서는 헤어나기 어렵기 때문이다. 입시제도가 급격히 변하면 당연히 학생들이 피해자가 될 수 있고, 부수적으로 학부모도 피해자가 될 수 있다. 교원정책의 급격한 변화는 당연히 교원들이 피해를 볼 수도 있다. 교원임용제도를 갑자기 바꿔보라. 학교현장이 혼란스러워질 것이고, 아마도 교육행정기관도 피해를 볼 것이다. 그만큼 개혁이라는 것이 어려운 것이다. 최소한 교육에서만은 더욱더 그렇다. 서서히 변화를 주어야지 갑자기 개혁을 한다는 것은 당시의 교육현장에 있던 교육의 주체들이 크나큰 피해를 받을 우려가 매우 높은 것이다. 자고나면 새롭게 발표되는 교육정책의 시대에서 우리는 살아가고 있다. 교장임용제도 개선에 대한 이야기가 나왔는가 싶더니 추진하겠다는 발표가 있었다. 교원의 임용도 변화를 줄 것이라고 한다. 사범대학과 교육대학을 무시하는 양성제도를 도입하겠다고 한다. 하기야 법대 안나와도 법조인이 될 수 있으니, 그런 발상을 할 수도 있을 것이다. 문제는 자격제도인데, 일반인이 교원이 되려면 사범대학이나 교육대학에 버금가는 과정을 거치도록 해야 한다. 사범대학과 교육대학을 부정하는 제도의 도입은 가당치 않다. 단순히 해당분야의 전문가라고 해서 교원이 되도록 해서는 안된다. 교장임용제도 개선할려면 공청회를 거쳐야 한다. 그 공청회는 완벽히 신뢰할 수 있어야 한다. 요식행위나 통과의례쯤으로 생각해서는 안된다. 교장을 교감도 안거치고 할 수 있도록 한다고 하는데, 그렇다면 교사 안거치고 교감도 할 수 있다는 이야기인가. 조교수 거치지 않고 바로 정교수가 되어도 된다는 이야기인가. 여기에 교장양성과정에 들어가려고 모든 교사들이 매달리면 교육현장은 누가 지킬까. 또 비난이 쏟아질 것이다. 왜 이런 비현실적인 정책을 추진하는 가. 빨리 교장시켜서 시간되면 몰아내기 위한 방편인가. 무조건 나이많은 교원은 퇴출대상인가. 실력을 갖추고 경쟁에서 이겨야 한다고 하지 않았나. 경쟁을 통해서 공교육 살린다고 하지 않았나. 그래서 교원평가제 도입한다고 하지 않았나. 그런데 실력있는 교사가 나이많다고 퇴출된다면 정당한 경쟁이 될 수 있는가. 불공정한 경쟁만이 기다리고 있을 뿐이다. 앞 뒤가 안맞는 일을 자꾸만 하는 것이다. 정책이 오락가락하면 일관성이라도 있어야 하는 것 아닌가. 이렇게 비현실적인 정책을 자꾸 내놓지 말고 하나를 하더라도 제대로 해 봅시다. 누구를 위한 것이 아니고 공교육을 정상화시키려는 의지가 있다면 모든 것을 다시 생각해 보아야 할 것이다. 교원을 무시하는 교육은 절대로 성공할 수 없기 때문이다. 모든 정책에서 일관성과 합리성을 확보할 것을 촉구한다.
학생들이 남자 교사 수업시간에 더 많이 말대꾸를 하고 수업에 집중하지 못하는 것으로 조사됐다고 텔레그래프 인터넷판이 29일 영국 최대 교사노조를 인용해 보도했다. 또 소수의 교사들은 매주 학부모들로부터 협박을 받고 있었다. 영국 전국교사노조(NUT)가 전국 13개 지역 1천500명 교사를 대상으로 설문조사한 결과 평소 수업이 중단되는 경우가 있느냐는 질문에 남자 교사 77%는 그렇다고 대답해 지난 2001년의 72%에 비해 늘어났다. 여자 교사들은 같은 질문에 66%만 그렇다고 답해 같은 기간 67.5%에서 소폭 줄었다. NUT는 이에 대해 '매우 우려할" 문제라고 전제하고 10명 중 6명은 학생들의 나쁜 행동을 다루는 방법을 훈련받지 못했다고 지적했다. 학부모로부터 협박을 받는 교사가 대체로 줄어드는 등 지난 7년간 학생 행동과 관련해 일부 개선된 점도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협박을 받아본 교사는 남자의 경우 25%로 2001년의 30%에서 줄었고 여자는 22%에서 17%로 감소했다. 그러나 4%의 남자 교사와 3%의 여자 교사는 매주 협박을 받고 있다고 응답해 2001년의 매주 협박받는 남ㆍ여교사 비율 2%와 0.5%보다 높아졌다. 학생들의 반항적인 행동은 전반적으로 줄었으며 여자 교사의 경우 감소폭이 더 큰 것으로 응답됐다. 대부분 교사들은 학생들의 밀거나 만지기 같은 원하지 않는 접촉이 줄었다고 대답했으나 일부 소수는 여전히 원하지 않는 접촉이 존재한다고 말했다. 이와 함께 남자 교사 69%와 여자 교사 57%는 모욕적인 언어를 경험했다고 말했다.
김기찬 교장선생님께서 본교 교직원들에게 일본 구미야마고교 방문단을 소개하고 있다. 12월 29일(월) 경기도 고양시 일산동에 소재한 중산고등학교(교장 김용진) 교직원 70여 명이 본교를 방문했다. 중산고등학교의 이번 방문은 본교의 뛰어난 교육과정과 선진화된 시스템을 벤치마킹하기 위한 것이다. 일행 등은 2시간 여 동안 본교에 머물며 김기찬 교장선생님과 진로지원부장의 특강을 듣고 과학실험실, 기가실, 도서관, 영어전용교실 등 시설견학을 마치고 돌아갔다. 일본 구미야마고교 카누부 학생과 인솔교사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