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방과 더불어 현대적 교육방식이 도입된 후 교육제도가 수없이 바뀌었지만, 그 어느 것도 난마처럼 얽힌 교육현안을 시원하게 해결하지는 못했다. 한 마디로 교육에 관한 한 만병통치약은 없으며, 그것은 영원히 이룰 수 없는 꿈이요, 이상일 뿐이다. 그런 가운데서도 최대한 많은 사람들을 만족시킬 수 있는 최대공약수를 찾는 것이 해결책일 수 있을 것이다.
오늘날 교육에 관한 일이라면 전문가가 아닌 사람이 없다. 주위 사람들 혹은 언론보도 등으로부터 얻은 간접경험을 추가하여 모두가 자칭 교육전문가로 군림한다. 제반 교육문제에 대해서 서슴없이 칼을 들이대고 자신들의 상식과 잣대로 교육을 비판하고 평가를 내린다. 깊이 연구하고 생각해본 적도 없으면서 교육이 무너진다는 무시무시하고 엄청난 말을 서슴없이 내뱉는다. 당면한 문제들을 스스로가 세운 기준에 의거해서 예리하게 분석하고 명쾌하게 판단하며 때로는 그럴듯한 처방까지도 내려준다.
사회 어느 분야보다도 교육은 그 특성상 성과나 실적을 가늠하기 어렵다. 교육의 궁극적 결과물은 사회 각 분야에서 활약하고 있는 전체 국민들이기 때문이다. 현재 각종 교육기관에서 공부하고 있는 학생들은 최종 산출물이 될 수 없다. 사회 각 분야로 흩어져 학창시절에 배우고 익힌 실력을 바탕으로 국가발전에 기여하고 있는 국민 모두가 교육의 결과이다. 학교 시설물이나 그 속에 있는 교사, 학생을 평가의 대상으로 삼는 것은 참으로 우스운 일이다. 핵심과 본질은 놔둔 채 건물을 얼마나 짓고 기자재를 어떻게 개선하고 어떠한 행사를 몇 번 실시했다는 등의 가시적·외형적·단편적 실적이 점수화, 계량화되어 교육의 결과로 간주되고 있다.
교육에 관한 한 5000만 국민 전체가 당사자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국민 모두가 지대한 관심을 가지고 교육을 예의주시하고 있다. 너나없이 일가견을 가지고 교육을 논한다. 교육의 영역이 너무나 광범위하고 관련된 사람들이 많다 보니, 그중에는 문제가 되는 부분도 있을 수 있다. 하지만, 그게 어디 교육 자체만 탓할 문제이든가. 일류대학 일류학과를 나오지 않으면 사람 대접을 못 받고 결혼은 물론 취업마저도 어려우니, 누가 학교교육에만 만족하고 가만히 앉아 있겠는가. 어떤 제도, 어떤 여건 속에서도 내 아이만은 옆집 아이를 누르고 세칭 일류대학의 인기학과에 진학을 해야 하는 지상과제 앞에 과연 누가 자유롭고 초연할 수가 있겠는가.
우리 사회가 겉으로는 민주화되고 직업에 대한 귀천이 없어진 것처럼 보이지만, 자세히 속을 들여다보면 아직도 갈 길이 멀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사람들은 입만 열면 인간교육이 중요하며 순수과학과 기초학문에 대한 교육이 강화되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인다. 하지만, 안정된 직장에서 괄시받지 않고 궁핍하지 않은 생활을 하기 위해서는 현실과 타협할 수밖에 없다.
고3 진로지도를 할 때의 일이었다. 심사숙고 끝에 적절한 학과를 추천하면, 학부모가 “거기 나와서 밥벌이나 제대로 하겠습니까?”라고 되묻는다. 결국, 특기니, 적성이니 소질 따위는 무시하고 모두가 하나같이 세상 사람들이 알아주는 인기학과로 눈을 돌릴 수밖에 다른 방도가 없었다.
대학을 나오지 않아도 사회생활을 하는 데 지장이 없고 인간 대접을 받으며 사람 구실하는 데 문제가 없는 사회가 빨리 와야 한다. 전문기술과 특별한 재주로 사회생활을 하는 데 불편한 점이 없다면, 누가 구태여 대학에만 시선을 고정하고 모든 것을 걸겠는가. 학벌과 관계없이 기술인과 전문인이 우대받는 풍토가 조성된다면 모든 문제는 저절로 해결될 것이다. 그리되면 아이들은 능력과 소질에 따라 자신에게 맞는 길을 찾아 나설 것이다. 과다한 눈치작전도 없을 것이며 모두가 일류대학 인기학과에 진학하고자 온 몸을 던지는 비극도 사라질 것이다.
교육은 전체 사회현상 중의 한 부분이다. 따라서 교육이 안고 있는 여러 가지 문제도 사회라는 큰 틀 속에서 해법을 찾아야 한다. 각종 교육문제를 낳게 한 근본 원인에 대한 치유책도 당연히 범국가적 차원에서 강구해야 한다. 단순히 입시제도만 바꾼다고 해결될 일이 아니다.
아무나 나서서 함부로 교육을 말하지 말아야 한다. 법은 법을 전공한 법조인에게 맡기고 질병은 전문적인 의술을 습득한 의사에게 맡기듯이, 교육도 아이들 가르치는 일을 전문으로 하는 교사들에게 맡겨라. 일단 맡겼으면 믿음을 갖고 지켜보라. 우물가에서 숭늉을 찾듯 조급증을 보여서는 안 된다. 절대로 교육을 단기적 안목으로 보지 말라. 적어도 10년 혹은 20년의 시간을 두고 생각하라. 밥은 몇 숟갈만 먹어도 배가 부르지만 몇 달 공부했다고 해서 바로 표가 나는 것이 아니다. 평가라는 장치를 통해 아이들의 머릿속에 든 것을 측정하려고 애쓰고 있지만, 이것은 다른 적절한 방법을 찾지 못해서 택한 궁여지책일 뿐 교육의 본질과는 거리가 멀다.
땅은 좁고 자원이 부족하여 믿을 것이라고는 인력자원뿐인 우리나라가 이만큼 살고 있는 것은 바로 교육의 힘이 아니었던가. 세계가 놀라는 경이적인 경제발전도 교육의 힘이었으며, 지구촌 곳곳을 누비는 대한 건아들의 더 높은 기상도 교육의 결과임을 잊지 말라. 무엇보다도 내 아이를 가르치는 선생님들이 즐거운 가운데 긍지와 보람을 느낄 때 내 아이의 장래도 밝다는 점을 명심하라. 아이들 앞에서 선생님에 대한 험담을 함부로 늘어놓지 말라. 문제가 있다 하더라도 신중하게 이성적으로 접근하라. 사회 구성원 전체가 그들을 진심으로 존중하며 학교교육을 신뢰하고 지원할 때, 우리 교육은 제 구실을 다할 것이며 국가의 미래도 보장될 수 있다.
가슴 벅찬 감동과 크나큰 희망 속에 기축년(己丑年) 소의 해가 밝았다. 소는 옛날부터 인간과 친숙하게 지내면서 온갖 힘든 일을 도맡아 했던 든든한 일꾼이었다. 가축이기보다는 오히려 가족과 같은 존재였다. 그 유순하고 성실한 천성이 사람들에게 골고루 전파되어, 우리 국민 모두의 심성 또한 여유롭고 부드러워졌으면 좋겠다. 소처럼 드러나지 않는 곳에서 묵묵히 자신의 일을 다 하는 인재를 길러내야겠다. 그러기 위해서 교육현장에서 구슬땀을 흘리고 있는 교육가족뿐만 아니라 국민 모두 힘과 정성을 한데 모아야 한다. 새해에는 교육을 비롯한 국가의 모든 일들이 순조롭게 잘 풀려서 온 국민이 환한 얼굴로 함께 활짝 웃을 수 있기를 기대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