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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세검색현재 중학교 3학년 학생들이 대학에 가는 2008학년도부터 대입전형이 대폭 바뀌게 되면서 지방 중소도시 중학생들의 대도시 고교 진학률이 뚝 떨어질 것으로 예상되는 가운데 충남도내 상당수 시·군의 고교 정원이 해당 지역 중학교 3학년 학생수를 크게 밑돌아 논란이 일고 있다. 6일 충남도교육청에 따르면 서산지역의 경우 16개 중학교 3학년 학생수는 1872명이나 7개 고교의 입학정원은 1514명에 그쳐 358명이 다른 지역 고교로 진학할 수 밖에 없는 상황이다. 하지만 서산지역 16개 중학교 운영위원장들이 최근 조사한 결과, 중학교 3학년생들의 99% 이상이 관내 고교 진학을 희망하는 것으로 나타나 지역 고교 입학을 놓고 대혼란이 빚어질 것으로 예상된다. 이런 사정은 다른 시.군도 마찬가지로 아산 226명, 연기 191명, 당진 181명, 부여 149명, 보령 120명이 각각 부족한 것으로 집계됐다. 반면 천안지역의 경우 현재 고교 입학정원이 중학교 3년 학생수를 419명이나 웃도는 데도 내년에 고교에 20여학급을 증설하고 학급당 학생수를 35명에서 37명으로 늘릴 방침인 것으로 알려졌다. 남건우(44) 서산여중 학부모회장은 "서산지역 고교에 가지 못한 학생들을 입학정원이 많은 천안과 공주, 논산, 서천 등 거리가 먼 지역의 고교로 내모는 것이 바람직한 교육정책인지 묻고 싶다"며 "이는 도 교육청이 추진 중인 '내고장 학교 다니기 운동'과 전면 배치되는 것으로, 당장 개선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서산중학교 최송산(50) 운영위원장은 "최근 지역 16개 중학교 운영위원장 연명으로도 교육청에 고교 신설과 학급수 증설을 촉구하는 촉구하는 건의문을 보냈지만 아직까지 이렇다할 대책이 나오지 않고 있다"며 "교육청이 지역의 학생수급 불균형 현상을 방치할 경우 집단행동도 불사하겠다"고 경고했다. 도 교육청 관계자는 "입시전형이 바뀐다하더라도 중소도시 우수 학생들의 대도시 명문고 진학이 적잖은 것으로 예상된다"며 "최근 교육청이 자체적으로 조사한 결과에서도 도내 전체 고교의 수급에 큰 문제가 없는 것으로 파악됐다"고 말했다. 교육인적자원부는 최근 사교육비 경감대책의 하나로 2008학년도부터 '내신위주'로 대입 전형을 하는 내용을 골자로 한 '2008학년도 이후 대입제도 개선안(시안)'을 마련하고 조만간 공청회 등 의견수렴을 거쳐 최종 확정할 계획이다.
국회 교육위는 6일 인천시교육청 국정감사에서 고교 선택과목인 '한국 근현대사'의 특정 검정교과서가 편향적으로 기술됐다는 한나라당 권철현(權哲賢) 의원의 주장을 놓고 논란을 벌였다. 여야 의원들은 정강정(鄭剛正) 교육과정평가원장을 참고인으로 불러 교과서 검정과 채택 과정 등에 대한 설명을 들은 뒤 ▲교과서 내용의 편향성 여부 ▲검정 기준과 절차 ▲집필진과 검정위원의 구성 등을 따지면서 치열한 공방을 벌였다. 우리당 의원들은 검인정 교과서가 채택되는 과정이 복잡할 뿐만 아니라 다양한 계층이 참여하고 있어 편향적으로 서술될 수 없다는 점을 부각시키는데 주력했다. 반면, 한나라당 의원들은 일부 검정교과서에 편향적인 내용이 담겨있다고 거듭 주장하면서 "여당이 국감을 파행으로 몰고가기 위해 다수당의 행포를 부리고 있다"고 역공을 취했다. 교육위 우리당 간사인 조배숙(趙培淑) 의원은 "개인 한 사람이 교과서를 만들고 채택하는 것이 아니라 무수한 견제와 여과장치들을 통해야만 비로소 학생들이 받아볼 수 있다"고 권 의원의 편향성 주장을 반박했다. 같은 당 이인영(李仁榮) 의원은 "문제가 된 검정교과서는 남한 정부를 의도적으로 비판한 것이 아니라 '김영삼 정부' 시절 제7차 교육과정 개편에 따라 고시된 내용을 충실히 반영한 것뿐"이라며 "그럼에도 교과서가 남한 정부를 의도적으로 폄하했다는 한나라당의 주장은 색깔론을 부추기는 정치공세"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같은 당 구논회(具論會) 의원은 "검정교과서는 몇단계에 걸친 검정과정을 거치고 다양한 인사들로 구성된 학교운영위원회가 자율적으로 채택한다"면서 "한나라당은 마치 일부 운동권이 교과서를 만들고 운동권 출신 교사가 이를 채택해 가르치는 것처럼 몰아간다"고 가세했다. 이에 대해 한나라당 간사인 이주호(李周浩) 의원은 "편향된 내용들을 교과서 검정과정에서 걸러내지 못한 것도 문제이지만 의원 한명이 제기한 이슈를 갖고 우리당의원들이 모두 나서 국감을 파행으로 몰고가는 것은 다수당의 횡포"라고 주장했다. 논란의 시발점인 권철현 의원은 "특정인과 단체에 대한 공격과 반국가적인 내용을 금지한 교과서 검정기준에 위배되는 내용들이 분명히 있다"며 "학자로서 학생들이 배울 내용에 대한 우려를 표명한 게 왜 색깔론이냐"고 반문했다. 한국교총회장 출신인 이군현(李君賢) 의원은 "장학편수실이 없어지고 교과서 검인정체제로 바뀌면서 이런 문제들이 발생했다"며 "국가와 민족, 체제가 우월하다는 자긍심을 심어주는 작업은 교과서를 통해 해야하므로 교육부가 교과서 편찬을 다시 맡아야 한다"고 말했다.
교육평준화 정책의 보완과 사교육비 절감을 위해 추진하고 있는 수준별 이동수업이 제대로 정착되지 못하고 있고 지역간 차이가 심하다는 지적이 나왔다. 국회 교육위원회 이주호(李周浩.한나라당) 의원은 5일 서울시 교육청 국정감사에서 16개 시.도 교육청의 1학기 수준별 이동수업 실태를 분석한 결과, 중학교는 전체의 16.9%, 고등학교는 38.5%만 수준별 이동수업을 시행하는 것으로 파악됐다고 밝혔다. 이 가운데 서울시내 중학교의 경우 교사 1인당 학생수나 교실당 학생수, 학년별 학급수 등 교육여건이 다른 시.도에 비해 양호함에도 불구하고 수준별 이동수업 비율이 대전(48.6%), 인천(38.9%), 대구(35.1%), 부산(24.0), 울산(21.0%) 등 다른 광역시보다 낮은 16.9%로 집계됐다. 고등학교도 전체의 40.5%만 수준별 이동수업이 이뤄지고 있어 울산(78.0%), 대전(75.4%), 대구(70.0%), 인천(68.4%) 등 다른 광역시에 비해 낮은 것으로 나타났다. 이 의원은 "교사들의 실천 의지를 제공하지 못하는 정부의 정책 추진방식에 문제가 있다"며 "수준별 이동수업이 제대로 시행되기 위해서는 교실 수나 학교 규모, 교원확충 등 교사들이 이를 실천할 수 있는 유인을 제공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그는 "영어.수학 등의 과목은 학습결손이 누적되면 향후 학습에 어려움이 많다"며 "여유 교실 확보가 어려운 인구밀집지역에서는 지속적인 학교규모 조정 및 교실확보 등이 필요하고 농어촌에서는 별도의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17대 국회 교육위원회(위원장·황우여 한나라당 의원) 첫 국정감사가 '교육부와 전교조의 NEIS 밀실 합의' '고교등급제 의혹' 등의 문제가 제기되면서 시작부터 열기를 띠고 있다. 교육위원회는 4일 교육부 본부에 대한 국정감사를 시작으로 20일 간의 250회 정기국회 국정감사를 시작했다. 황우여 위원장의 개회선언과 안병영 교육부총리의 증인 선서, 안 장관·구관서 교육부 기획관리실장의 업무보고로 이어지면서 'NEIS 밀실 합의' 문제를 두고 야당의원들의 추궁이 이어졌다. 안 장관의 교육부 주요 업무보고 중 최근 논란이 되고 있는 교육부와 전교조의 나이스 합의 내용이 빠진데 대해 한나라당 안상수 의원이 "전교조와 단독 합의해 교총이 항의 시위를 벌이고 있는 나이스 문제에 대해서는 왜 보고를 안 하느냐, 지금 보고해 달라"고 요구했다. 안병영 장관은 "이 문제가 중심 쟁점이라고 생각 안 해 보고를 미뤘다. 다른 의원들이 합의해 주면 보고하겠다"고 답변하자 황우여 교육위원장은 "질의는 헌법 기관인 각 의원의 권한 사항"이라며 안 장관의 답변을 종용했다. 한나라당 이군현 의원은 의사진행발언과 질의를 통해, 교육부와 전교조의 나이스 합의에 대한 문제점을 지적했다. 이 의원은 "(교육부와 전교조의 합의에 의한)충분한 시험기간 없이 나이스 시스템을 사용할 경우 전체 교사가 실험용이 될 수 있다"는 점을 언급했다. 그는 이어서 "나이스 문제를 특정단체와 합의해 (정보화위원회의 결정을)번복하는 것은 정책의 일관성과 형평성 차원에 맞지 않다"고 지적했다. 아울러 "500억 원을 들여 나이스를 보완하겠다는 것은 (나이스)기획단계에서부터 문제가 있었다는 것이며, 추가 예산에 대한 충분한 설명이 있어야 할 것"이라고 요구했다. 같은 당 진수희 의원도 "나이스 문제를 특정교원단체와 합의한 것은 이해할 수 없다"고 언급했다. 교육부와 전교조의 나이스 합의를 중재한 열린우리당의 구논회 의원은 그 동안의 중재 과정을 설명하면서 "NEIS문제가 지난해와 같은 갈등에 빠지지 않았으면 한다"는 입장을 밝혔다. 한편 교총회원 200여 명은 아침 8시부터 정부종합청사 후문에서 교육부와 전교조의 나이스 합의에 항의하는 농성을 벌였다. 교총 측은 오전 9시 30분 경 국정감사가 진행중인 정부종합청사 진입을 시도하다 경찰의 저지를 받았다. 아울러 윤종건 교총회장은 8시 40분 경 황우여 교육위원장을 방문해, 교육부와 전교조의 나이스 합의의 문제점을 지적하는 항의서를 전달했다. 한국교직원노동종합(위원장 류명수)
청년실업 문제가 날로 심각해지는 가운데 서울시내 4년제 대학 졸업생의 취업률은 60%, 2년제 대학 졸업생 취업률은 67%인 것으로 나타났다. 그러나 취업난 속에서도 의학·약학계열 졸업생 취업률은 학교를 불문하고 가장 높은 것으로 조사됐다. 국회 교육위원회 안상수(한나라당) 의원은 4일 교육인적자원부 국감에서 서울시의 36개 4년제 대학과 11개 2년제 대학을 대상으로 취업률을 분석한 결과 이같이 조사됐다고 밝혔다. 특히 지난 2001년부터 올해까지 4년 간의 평균 취업률 비교에서도 2년제 대학이 71%로, 4년제 대학의 63%보다 8% 포인트 더 높았다. 그러나 2년제 대학의 연도별 취업률도 지난 2001년 76%, 2002년과 2003년 각 70%, 올해 67% 등으로 하락하고 있어 청년실업의 심각성을 더해주고 있다. 4년제 대학 36개교 가운데 올해 평균 취업률이 60%에 미치지 못하는 학교는 서울대와 건국대, 홍익대 등 절반인 18개교에 달했으며, 취업률이 80%를 넘는 학교는 고려대와 경희대, 서강대 등 3개교에 불과했다. 학과 중에서는 의학·약학 계열 취업률이 가장 높았으며 교대 또한 다른 학교에 비해 취업률이 좋았으며 사법시험 때문에 취업률이 가장 낮았다. 서울대의 경우, 취업률이 높은 학과는 2001년 치의학과, 2002년 의학과, 2003년 간호학과, 2004년 의학과였으며 이에 비해 법학부는 2001년과 2003년 각각 취업률이 가장 낮은 학과로 꼽혔다. 또 4년 간 취업률이 77%인 고려대도 의학과와 간호학과 취업률이 거의 100%에 달했지만 법학과 취업률은 60%를 밑돌았다. 안 의원은 "대졸자 중 60% 가량 취업했다는 점에서 `대졸자 2명 중 1명꼴로 백수'라는 말이 틀린 얘기는 아니다"며 "대학교육을 담당하는 교육부가 취업률을 높이고 실업률을 줄이기 위한 대책을 마련해야 할 것"이라고 주문했다.
학교생활 중 안전사고로 학생이나 교사가 부상을 당하거나 사망할때 이를 보상해 주기 위해 설립된 학교안전공제회가 각 시·도별로 제각각이어서 형평성 문제와 함께 제 기능을 발휘하지 못하고 있다는 지적이다. 3일 전국 각 시·도 학생안전공제회에 따르면 보상 한도액이 가장 적은 지역은 강원도로 5000만원이고 서울과 부산, 울산, 경기 등 4곳은 한도액을 정하지 않고 `무한 보상'을 해주고 있다. 나머지 전북과 대구, 광주, 대전, 충북, 경북, 경남지역은 한도액이 1억~1억7000만원인데 반해 전남은 절반 가량인 7000만원에 그치는 등 지역별로 차이가 크다. 또 기금도 서울은 170억원에 달해 강원(18억원)에 비해 거의 10배에 가깝다. 전문가들은 기금 부족이 보상 한도액과 직결되고 일괄적인 보상금 지급 기준안이 없어 실질 보상이 이뤄지지 않고있는 만큼 정부차원의 지원과 지급기준 마련이 시급하다고 입을 모으고 있다. 또한 안전공제회의 모호한 보상금 지급기준은 이해 당사자 간에 피해 보상을 놓고 마찰을 빚게하는 등 문제점도 낳고있다. 실제로 지난해 제84회 전국체전을 앞두고 무리하게 체중감량을 시도하다 숨진 고교 레슬링선수 김종두(사망 당시 17세·전북체고)군의 유가족은 도교육청이 보상금으로 1억원을 제시하자, 이에 불복해 소송을 제기했고 지루한 법정 공방 끝에 승소해 지난 7월에 2억1500만원을 받기도 했다. 또 정읍 B고 학부모 K씨도 "지난 달 아들(2년)이 컴퓨터수업을 받기 위해 걸어가던중 뒤따라온 급우 J군과 충돌, 앞니 3개가 부러져 500만원의 치료비가 나왔으나 공제회로부터 70만원밖에 밖에 받지 못했다"며 턱없이 부족한 치료비에 불만을 터뜨렸다. 지난해 전북도 안전공제회에는 1천46건의 사고신고가 접수돼 4억5000여만원의 보상금이 지급되는 등 매년 1천여건이 넘는 학교 안전사고가 발생했으며, 이는 타 시도도 비슷한 수준인 것으로 알려졌다. 사단법인 형태의 안전공제회는 지난 90년을 전후로 각 시·도교육청에 설립됐으며 유치원과 초등학생이 입학할 때 내는 1000원 안팎의 회비(중·고생은 1500원 가량)로 운영되고 있다. 전북도학생안전공제회 관계자는 "지역별 학생 수와 예산에 따라 기금 조성액 의 차이 가 커 보상 한도액이 제각각이다"면서 "정부가 공적자금을 투입해 동일한 상해에 대해서는 동일한 보상이 이뤄지도록 해야할 것"이라고 말했다. 교육인적자원부 관계자는 "실질적인 학교 안전망 구축을 위해 지난 2월 `학교안전사고예방 및 보상에 관한 특별법(안)'을 입법예고했다"면서 "상호부조적 공제제도 형태인 학교안전공제회에서 벗어나 전국적인 보상기준을 마련하는 등 교육의 국가적 책무성을 강화하는 사회보험 수준의 공적 보상제도 도입이 시급하다"고 밝혔다.
내년 개교 예정인 한국외국어대 부속 용인외고의 지역할당제가 30일 채택됐으나 경기도교육청과 학교 공동설립자인 외대, 용인시가 지역할당 인원을 제외한 나머지 70% 선발 문제를 두고 다시 갈등을 빚고 있다. 용인외고 모집지역에 대한 고시 권한을 가진 윤옥기 경기도교육감은 30일 신입생 중 30%를 용인 소재 중학교 출신자로 선발하는 지역할당제를 승인했으나 나머지 70%는 경기도 학생으로 뽑자는 새로운 제안을 했다. 그러나 한국외대와 용인시는 도교육청의 이같은 제안에 크게 반발, 당초 계획대로 나머지 70%의 학생을 전국단위로 모집하는 입시요강안을 1일 도교육청에 제출했다. 도교육청은 나머지 70%를 전국 학생을 대상으로 모집할 경우 용인 지역 학생보다 상대적으로 치열한 경쟁을 뚫어야 하는 도내 다른 지역 학생과 학부모의 반발이 예상된다며 개교 첫해에만 신입생 모집을 경기도 내로 제한할 것을 요청하고 있다. 용인외고 개교 다음 해인 2006년부터는 수원외고와 성남외고가 문을 열기 때문에 용인외고가 전국단위 모집을 하더라도 도내 다른 지역 학생들의 반발이 크지 않을 것이라는 게 도교육청의 설명이다. 도교육청은 또 지역할당 혜택을 받은 용인지역 학생과 아무 혜택 없이 전국적인 경쟁을 뚫고 입학한 학생 간의 학력 차이를 인정하지 않을 수 없어 수업 운영에도 문제가 있을 것이라며 경기도 단위 모집을 주장하고 있다. 그러나 용인외고 공동설립자인 한국외대와 용인시는 전국의 우수 학생을 유치, 세계적 명문을 만들겠다는 전제 하에 학교 설립 계획을 세웠다며 경기도 단위 모집은 결코 받아들일 수 없다는 입장이다. 게다가 지난 봄부터 전국 단위로 학생을 모집한다고 홍보해왔고 전국순회 입시설명회까지 치른 상태여서 이제와서 모집지역을 경기도로 제한하는 것은 불가능하다입장이다. 외대 관계자는 "우리대학 부속 외고가 생긴다는 사실이 알려진 뒤 전국 각지로부터 엄청난 문의가 들어오고 있다"며 "당초 홍보한 대로 지역할당 인원을 제외한 나머지를 전국단위로 뽑은 뒤 차후 문제점이 있으면 그 때 모집 지역에 대한 논의를 다시 해야 마땅하다"고 말했다. 경기도교육청은 내달 1∼3일 특목고 입시를 치르고 그로부터 30일 전까지 각 특목고의 신입생 모집요강이 발표되도록 하고 있으나 모집지역이 결정되지 않은 용인외고의 경우 30일 입시요강이 발표된 다른 특목고와 달리 1일에도 입시요강을 발표하지 못하고 있다. 외대, 용인시와 도교육청은 용인외고의 지역할당제 채택을 두고 갈등을 빚어왔으며 도교육청은 30일 이 학교 신입생의 30%를 용인 소재 중학교 출신으로 선발하는 지역할당제를 승인한 바 있다.
교육방송 강좌 대부분이 일반 사설인터넷 학습프로그램과 마찬가지로 문제풀이 학습 위주로 구성되어 있어 학교 교육을 뒷받침하는 차별성이 부족하다는 주장이 제기됐다. 제주도교육청 지정 교육방송 활용 시범학교를 운영중인 제주제일고등학교는 1일 발간한 보고서에서 고등학교 1.2학년 학생을 대상으로 하는 교육방송 강좌에 대해이같은 견해를 밝혔다. 제주일고는 "고등학교 1.2학년용 교육방송 프로그램은 학교에서 이루어진 단원별 학습에 대하여 다시 한번 정리해 주는 보충, 심화과정을 다루어야 하며 이를 위해 개념 이해 학습과 문제 적용 학습을 균등하게 구성할 필요가 있다"고 제안했다. 제주일고는 또 "2005학년도 대학입학수학능력시험에 EBS인터넷수능방송의 강의내용을 반영하겠다는 발표 이후 고등학교 교실 현장에서의 EBS 방송에 대한 비중은 매우 높아졌으나 이로 인해 문제풀이 학습성향이 보다 심화되고 있다"고 지적했다. 제주일고는 특히 "교육방송을 통하여 과대한 사교육비 지출의 문제점을 해소하고 공교육을 정상화하려는 대책이 현실적으로는 교육방송 강의내용을 오히려 학교교육보다 우선시하는 부정적 기능을 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제주일고는 이어 "EBS 인터넷수능에서 방송하고 있는 교과 또는 영역별 강좌 수가 너무 방대해 학생은 물론 학부모와 교사들도 각 강좌의 내용을 제대로 파악하는데 어려움을 겪고 있으므로 교과별로 각 강좌의 구체적인 정보를 사전에 일목요연하게 파악할 수 있는 강좌안내가 필요하다"고 밝혔다. 제주일고는 2003년 3월부터 현재까지 교육방송 활용 시범학교를 운영하고 있다.
전국 고등학교의 사회 및 과학 교과목을 담당하는 교사 중 동시에 3과목을 가르치는 이른바 겸담(또는 상치)교사가 1000명을 넘는 것으로 나타났다. 특히 겸담교사가 대도시에 비해 농어촌 지역에 집중돼 학습권 침해가 심각한 것으로 지적됐다. 1일 한나라당 이주호 의원이 전국 16개 시·도교육청으로부터 제출받은 국정감사자료에 따르면 전국 고교의 사회 및 과학교사 2만2174명 가운데 3과목 이상을 가르치는 교사는 1090명으로 4.9%를 차지했다. 지역별로는 강원도가 871명 중 235명인 27%로 가장 많았고 광주광역시가 742명중 3명인 0.4%로 가장 적었다. 평균치인 4.9%를 넘는 지역은 강원을 비롯해 전남(11.8%), 경남(9.2%), 경북(8.1%), 제주(7.9%), 충북(7.4%), 전북(6.6%), 충남(6.4%) 순이었다. 반면 광주를 비롯해 서울(1.1%), 울산(1.2%), 경기(2%), 인천(2.2%), 대전(2.5%), 부산(3.7%), 대구(4.%) 등 특별시와 광역시는 모두 평균치를 밑돌아 도-농간 격차가 현저했다. 이밖에 강원과 전남, 경남, 경북 등에서는 과학교사가 본인의 전공과는 전혀 상관없는 음악이나, 역사, 체육, 미술, 윤리, 영어, 수학 등을 가르치는 사례도 비일비재 논란을 했다. 이 의원은 "교육여건이 열악한 농어촌 지역에 겸담 및 상치 교사 비율이 높은것은 심각한 문제"라면서 "순회교사 제도를 적극 시행하고 유사과목을 가르치는 교사에 대한 연수를 강화해야 한다"고 말했다.
'2005년 9월부터 교무/학사 등 3개 영역을 새로운 NEIS 시스템으로 전면 개통한다'는 교육부와 전교조의 지난달 23일 합의의 부당성을 지적하는 목소리가 거세게 일고 있다. 한국교총은 지난달 24일 교육부장관 항의 방문에 이어 지난 30일부터 광화문 정부종합청사 후문에서 회원 200여명이 참여하는 농성을 시작했다. 교총은 교육부와 전교조의 NEIS 합의가 시행될 경우, 검증기간의 절대 부족으로 졸속 시행의 우려가 높고, 40만 교원을 새로운 시스템의 실험 대상으로 전락시킬 수밖에 없다고 문제를 제기했다. 교육부는 '2005년 9월 전면 개통한 뒤 시스템 안정화 기간을 거쳐 2006년 3월 전면 시행한다'는 입장이지만 교총의 문권국 부장은 "전면 개통과 전면 시행이 어떤 차이가 있느냐" "불완전한 시스템을 2005년 9월 개통한다는 게 말이 되느냐"며 문제를 제기했다. 교육부도 이 부분에 대해서는 제대로 답변을 못하고 있다. 이에 따라 교총은 2005년 1년간을 새로운 시스템의 검증기간으로 설정하고 2006년 3월부터 전면 시행할 것을 요구했다. 아울러 '밀실협약'을 체결한 교육부 관계자를 문책하고, 합의를 전면 취소하라고 주장했다. 항의단들은 "말로만 참여정부 하는 짓은 독재정부" "밀실야합 주도한 관련자를 문책하라" "나이스 파행주도 교육부장관 퇴진하라" "교원단체 편가르는 교육부는 각성하라"는 등의 구호를 외치며 거세게 농성했다. 지난달 30일과 1일의 농성에는 대구와 충북교총회장, 경기, 충남, 서울, 대구교총 사무총장 등이 함께 했다. 한편 구논회 열린우리당 의원이 주선한 교육부와 전교조의 NEIS 합의과정에서는 컨설팅 자문회의에 참여한 다른 단체들은 물론, 교육부내 관련 부서들과도 논의조차 없어 교육부 의사소통 시스템에 심각한 문제가 있는 것으로 드러났다. 3교원단체의 업무를 담당하는 교직단체지원과 관계자들은 지난달 30일 "교육행정정보화지원팀이 주도한 전교조와의 합의과정을 전혀 통보 받은 바 없고, 22일 전교조측으로부터 간접 암시받았다"고 밝혔다. 한 국장급 인사도 "NEIS 합의과정을 전혀 알지 못했다"고 말했다.
초·중·고교 학교 급식에 `가짜 한우'가 납품된 것으로 드러났다. 교육부가 30일 국회 교육위 안상수(한나라당) 의원에게 제출한 국감자료에 따르면 지난 2000년부터 올해 7월말까지 전국의 111개 초·중·고교에 3억원 어치의 수입쇠고기와 젖소고기가 한우로 둔갑돼 납품됐다. 가짜 한우가 납품된 학교는 전국에 걸쳐 초등학교 84개, 중학교 15개, 고등학교 12개 등이며, 삼성에버랜드, 한국냉장㈜ 등 유명 납품회사도 가짜 한우를 납품하다가 적발됐다. 삼성에버랜드는 대구의 효성초등학교에 젖소를 한우로 속여 납품하다가 지난 6월 23일 대구 남부교육청에 적발돼 현재 경찰로부터 수사를 받고 있다. 서울의 경우 `축산사랑'이라는 납품회사가 2002년 2월4일부터 3월15일까지 한우갈비.뼈 70%와 수입갈비.뼈 30%를 섞는 방식으로 181㎏, 400여만원 어치의 쇠고기를 한우로 속여 D초등학교 등 3개교에 납품했다. 가장 많은 가짜 한우 납품사건이 발생한 곳은 강원도였으며, `미트뱅크' `한밭축산' 등 4개 업체가 B여고, C초등학교 등 22개교에 1억7000여만원 어치의 가짜 한우를 납품하다 검찰에 적발됐다. 안 의원은 "가짜 한우 문제는 아이들의 건강을 해치고 부당한 이익을 취하려 한다는 점에서 강력 대처해야 한다"고 말했다.
서의식 / 서울산업대 교수, 역사학 Ⅰ. 중국의 ‘동북공정’과 고구려사 편입 시도 중국은 2001년 6월에 ‘동북변경지역의 역사와 현상에 관한 체계적인 연구 프로젝트(東北邊疆史與現狀系列硏究工程 ; 이를 줄여서 ‘동북공정’이라고 한다)’를 추진하기로 결정하고, 이듬해 2월 정부의 승인을 받아 본격적인 시행에 들어갔다. 그러나 중국은 이미 1996년에 비공개로 ‘고구려사와 동북 지역의 강역문제’를 중점연구과제로 설정하고, 사회과학원의 변강사연구중심(변강사연구센터)으로 하여금 이를 주도케 했다고 전해진다. 사회과학원은 중국 최고의 학술기관이지만, 실질적으로는 국가가 설정한 정책과제를 국가예산으로 수행하는 준정부기구이다. 중국은 공북공정 관련 사업에 2002년부터 5년간 200억 위안(약 3조 원)을 투입하기로 하였고(연구비만 24억), 둥베이3성[東北三省; 지린성(吉林省)·랴오닝성(遼寧省)·헤이룽장성(黑龍江省)]의 성 위원회가 사회과학원과 연합해 사업 추진에 나섰다. 동북공정은 수년간의 은밀하고 치밀한 준비 기간을 거쳐, 중국 정부가 국가정책으로 공식 채택하고, 막대한 국가예산을 집중적으로 투여하여 조직적·체계적으로 추진하는 국가사업인 것이다. 동북아가 세계의 주목을 받게 된 국제 정세의 변화에 따라, 그 동안 상대적으로 소홀히 취급되어 낙후를 면치 못하였던 동북변경지방에 대해 중국 정부가 이제 관심을 갖고 투자하겠다는 것이야 우리가 시비할 문제가 아니지만, 이 동북공정의 핵심 연구 내용이 고조선 및 고구려·발해의 역사를 중국사로 편입하는 쪽으로 향하면서 우리의 정체성 자체를 짓밟기 시작했다는 점은 우리로서 결코 좌시만 할 수 없는 일이다. 동북공정에 참여한 대다수의 중국학자들은 한입으로 말하듯 일사불란하게 다음과 같이 주장하고 있다. 첫째, 고구려는 중국의 영역에서 기원하였고 중국 왕조와 조공 또는 책봉 관계를 맺어 지속적으로 예속되어온 데다가 그 멸망과 더불어 대부분의 주민이 중국에 흡수되었으므로 그 역사를 중국사의 일부로 보아야 할 것이며, 둘째 현재의 한민족은 신라 및 백제족에 소수의 고구려족이 섞여 이루어졌으므로 고구려족을 계승한 민족이라고 볼 수 없고, 셋째 같은 이유로 고조선 또한 현재의 한민족과는 전혀 무관하다는 것이다. 요컨대, 고조선 이래 누천년을 두고 이어져 온 우리 한민족사의 계기적 발전과정을 전면 부인하고 한국인의 정체성을 뿌리째 흔드는 내용이다. 1980년대까지만 해도 고구려사가 한국사임을 의심하지 않았던 중국 학자들이 갑자기 천편일률로 이처럼 터무니없는 주장을 피력하고 나선 것도 문제지만, 더 큰 문제는 이를 중국 정부가 의도적·조직적으로 유도·조장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그것이 어떤 내용이든, 학자의 양심과 소신에 따른 학문적 연구 결과의 산물이라면 정확한 논증과 학술적 토론을 통해 그 오류를 수정해갈 수 있겠지만, 애당초 무리라는 것을 알면서도 국가가 나서서 정략적인 암수로 억지 주장을 유도해낸 결과라면 이는 더 이상 학문 논리로써 설득이 불가능한 대외적 침략 행위라 할 것이다. 중국 정부는 이미 국민홍보용 책자를 만들어 배포하는 등 왜곡된 한국고대사상(韓國古代史像)을 기정사실화하는 작업에 착수했다고 전해진다. 이러한 중국 학계와 정계의 동향에 유의할 수밖에 없는 우리로서는, 일단 저들의 논리가 무엇인지 정확히 알고, 그 주장의 한계를 명백히 지적하는 동시에, 왜 갑자기 저들이 이런 주장을 들고 나왔는지 그 배경과 이유를 제대로 파악함으로써 적절하고 올바른 대응책을 마련해야 할 것이다. Ⅱ. 소위 ‘중국고구려’론의 논거와 문제점 중국 학자들은 고구려사와 관련한 남북한의 상고사 인식체계를 조목조목 비판하면서, 고구려는 중국 왕조가 관할하던 변방의 한 지방정권이므로 그 역사를 중국사로 편입해야 마땅하다고 주장하고, 고구려 앞에 꼭 중국을 붙여 ‘중국고구려’라고 부르기 시작했다. ‘중국고구려’라는 용어는, 고구려를 훗날의 고려와 명확히 구분하기 위해 쓰는 것이라고 강변하기도 하지만, 그 역사가 중국 것이라는 저들의 인식을 고스란히 담아낸 신조어인 셈이다. 남북한 상고사 부정하는 ‘중국 고구려’론 이른바 ‘중국고구려’론은 단지 고구려사만을 문제삼고 있는 논리가 아니다. 단군조선을 상상에 의한 가공의 허상으로 규정하는 등 그 출발부터 남북한의 상고사 체계 자체를 부정하는 논리이다. 1998년에 비공개로 개최된 제1차 중국동북지방사학술대회의 결의문에서는 한국과 북한 학계의 상고사 인식체계를 자기들에 대한 ‘도전’으로 파악하고 이에 정면으로 대응하겠다고 천명할 정도였다. 그리하여, 선사시대 둥베이3성 지역과 한반도 북부는 한인(漢人)의 이주와 개발에 의해 역사가 시작되었다고 파악하고, 이는 기자조선이 이 지역에 처음 들어선 사실을 통해 알 수 있다고 주장하였다. 기자조선은 은(殷)의 유민과 동이족의 습합에 의해 건국된 주(周) 제후국이라는 것이다. 일제강점기의 식민지사관에 의한 역사왜곡보다 그 정도가 심각한 이해형태다. 이러한 논의는, 연(燕)의 동북경략과 한무제(漢武帝)의 한사군 설치를 주목하면서, 고구려현이 현토군의 속현으로 나타나는 기록을 고구려가 본디 중국 중앙정권에 대해 종속된 국가로 출발하였음을 입증하는 자료인 것처럼 인식하는 논리로 확대된다. 둥베이3성뿐 아니라 한반도 북부 또한 일찍부터 중국의 강역이었다는 주장이다. 그런데 흥미로운 것은 이 주장이 백두산을 둘러싼 천지의 반환문제를 언급하는 데까지 번지고 있다는 점이다. 그러나 천지의 반환이나 간도의 귀속 문제를 거론하는 것이 이러한 논의의 궁극적 목표라고는 생각되지 않는다. 오히려 이것은, 뒤에 다시 자세히 말하겠지만, 동북공정을 국가사업으로 추진하는 중국 정부 지도층의 본의를 곡해한 몇몇 학자의 뜬금없는 주장일 뿐이다. 한국에서 동북공정의 핵심이 한반도 통일 후에 전개될 영토분쟁에 대비하는 데 있는 것이 아닌가 하는 분석이 언론을 통해 확산되자 마치 정곡을 찔리기나 한 것처럼 최근 중국의 고위 관리가 갑자기 방한한 것은 한국 내에서의 논의를 이 정도에 묶어두려는 얕은 술책에 불과하다. 이에 현혹되어서는 안 된다. 중국 전통 사서들 ‘한국 고구려사’ 인정 중국인들이 고구려의 영역이었던 동북 지역에 주목하기 시작한 것은 19세기 후반에 들어와서의 일이었다. 조선과 청 사이에 국경을 획정하는 문제가 현안으로 제기되자, 중국은 1880년대에 둥베이3성을 설치하여 만주(滿洲)를 정식 행정단위로 편입하였다. 이를 위한 기초조사 과정에서 발견된 것이 광개토대왕릉비인데, 북경의 금석학자들은 이 석비의 발견을 계기로 비로소 고구려사에 관심을 갖기 시작했다. 우리가 고구려사를 일찍부터 우리 역사로 인식하고 이를 정사(正史) 체계 속에서 정리해 왔으며 실학이나 독립운동 과정에서 그 의식을 더욱 강고하게 다져온 것과는 그 역사성과 인식 방향이 크게 다르다. 고구려사가 우리에게 본원(本源)이었다고 한다면, 저들에게는 정치현실상의 한 재료에 불과했던 셈이다. 중국의 전통 사서는 고구려사를 중국의 역사로 서술하지 아니하고 동이전에 편제하여 그들로부터 독립한 외국사로 기록해 왔다. 일제가 만주를 차지하고 전면적인 대륙침략을 감행하자 중국인 사이에는 민족적인 위기의식이 고조되었는데, 이런 시류를 타고 동북지역을 중국사로 보는 일부 역사가가 있기도 하였으나 크게 주목받지는 못하였다. 중국 정부가 들어선 이후 마르크스주의사관에 입각하여 자국사를 체계화하고 이를 통해 사회주의 정권의 정통성을 확립한다는 것이 당시 중국 역사학이 당면한 최대의 과제였기 때문이었다. 농민전쟁을 중심으로 한 역사동력 논쟁이나 시대구분 문제 등 사회성격과 관련한 논의가 중국 역사 연구의 주류를 이뤘다. 더구나 ‘항미원조(抗美援朝)’가 정책의 기조를 이루던 때에 북한을 자극할 우려가 있는 역사 연구가 가능한 한 억제된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당시 중국의 교과서와 일반 역사책들은 거개가 고구려사를 한국의 고대정권으로 인정하고 이를 대외관계 속에서 서술하였다. 1980년대부터 시작된 중국 고구려사론 그러나 1980년대로 들어서면서 이러한 고구려사 이해의 방향이 크게 변하기 시작했다. 국제사회를 두 진영으로 가르던 냉전체제가 쇠퇴한 데 따른 변화였다. 제2차세계대전 이후의 냉전체제는 보편주의를 앞세움으로써 국가 중심, 민족 중심의 역사인식을 세계질서를 해칠 우려가 있는 바람직하지 못한 의식으로 간주하고 이를 억제하는 구실도 해왔는데, 이 체제가 유명무실해지자 그동안 억제되어 왔던 국가주의적 역사인식이 다시 고개를 쳐든 것이었다. 일본의 한국사 왜곡이 본격화된 것도 이 무렵의 일이다. 중국은 특히 발해사의 귀속문제를 새로운 쟁점으로 들고 나왔다. 발해사를 중국사로 편입하기 위한 논거를 개발하고 관련 논문의 수를 양적으로 축적해 나가는 것이 연구의 주된 방향이고 목표였다. 그러더니 1990년대 들어서 급기야 고구려사까지 중국사로 보아야 한다고 주장하기에 이른 것이다. 연구의 방향과 결론이 이미 정해진 상태에서 진행된 것이었으므로, 자연히 그 논의는 학문적으로 이루어지지 않고 기존의 역사 사실과 해석을 그대로 둔 채 이해의 방향만 전환한 기술적·정치적 형태로 전개될 수밖에 없었다. 고구려족의 발생과 거주가 모두 중국의 영토 내에서 일어난 일이므로 이들이 건립한 정권은 중국 역사상 지방의 소수민족정권이었다고 보아야 한다는 논리만 보아도 그 비학문성을 여실히 알 수 있다. 현재의 중국과 고대의 중국 왕조를 동일시하고 현재의 중국 영토가 마치 고대부터 지금까지 그대로 지속된 것인양 착각한 이 논리를 학문적이라 할 수는 없을 터이다. 중국은 처음부터 단일문명체였던 듯 전제하고 논의를 전개하면서도, 기타 주변 민족은 정권 단위로 서로 다른 종족이었다고 파악하는 것은 이중적 관점이다. 중원 왕조의 변천은 종족적 차이에 관계 없이 면면히 발전해 온 문명체로 파악하면서도 고조선, 고구려, 부여, 발해 등에 대해서는 정권의 붕괴와 함께 해체된 것으로 인식한 이율배반에는 누구라도 납득할 수 없을 것이다. 고구려와 신라·백제의 관계를 전혀 다른 종족 간의 경쟁 관계로 처리한 것은 역사의식과 문화계승의식을 무시한 억지이다. 또한, 역대의 조공책봉관계를 모두 정치적 예속관계로 파악한 것도 사실을 정확히 파악하지 못한 무리한 논리이다. 조공-책봉 관계는 이른바 천하관념과 화이적(華夷的) 세계관에 기초한 의제화된 국제간의 질서체계였을 뿐이다. 그것은 중국의 정통왕조를 천하의 중심에 두고 기타 지역을 문화적 편차를 기준으로 차등적으로 구별하여 차별 대응하던 인식체계로서, 중국이 제국질서체제를 유지하기 위해 고안해낸 의제적 명분에 불과하다. 상고 이래 ‘중국’ 또는 ‘천하’의 개념 및 범주는 구체적 실상과 상당한 차이가 있고, 또 역사적으로도 상당한 변화를 거쳐 왔음은 이미 일반상식화한 사실이다. 조공책봉 관계의 실상은 이를 기록한 사서의 서술 자체가 아니라 그 실제적 운용을 고찰할 때에만 드러나는 것이며 역사적 의미를 지니는 것이다. 실제 운용 면을 애써 외면한 최근 중국 학계의 논의는 학문적으로 일고의 가치가 없는 것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모든 책봉 관계를 정치적 예속관계로 파악함을 전제하여 기자의 습봉이나 한사군, 안동도호부 등을 그 예속의 증거로 삼으며 이로써 고구려와 중원 왕조와의 관계를 중앙 정권과 지방 정권의 관계로 파악하는 것은 다분히 추상적일 뿐만 아니라 위험한 인식이다. 고구려본기는 확실한 증거 그리고 고구려사를 한국사로부터 분리시키려는 시도도 가소로운 작태다. 고구려 멸망 이후 영토와 인구의 귀속 여부를 근거로 발해 또는 고려와의 연계성을 부정하고자 하나, 이는 현재 강역을 중국의 역사 강역에 직접 대입시키려는 데서 온 것으로, 문화적 측면에서 역사의 계승 관계를 제대로 파악하지 않은 억지논리다. 특히 이러한 문화적 승계는 여러 가지 측면에서 이해할 수 있겠으나, 가장 중요한 것은 역사의식일 터이다. 고구려본기의 저술이나 고려의 고구려 계승의식은 움직일 수 없는 증거라 할 수 있다. 발해가 멸망한 후 그 영토와 민호의 많은 부분이 고려로 편입되지 못한 것이 사실이나, 그렇다고 그 역사를 중국사로 볼 수 있는 것은 아니다. 발해의 역사와 문화는 발해 독자의 것이며, 이를 계승한 것은 고구려 계승의 역사의식 위에서 건국한 고려였다. 중국이 발해의 터전에서 일어난 요·금 왕조와 후금(청)을 계승한 국가라는 의식을 전혀 갖지 않았으면서도 그 역사를 중국사라고 강변하는 것은 모순이다. 청나라로부터 국가를 되찾았다는 ‘반청(反淸)’의 기조는 현재도 중국인 일반의 역사의식이다. 물론 이러한 억지논리들은 근본적으로 고구려사를 자국의 소수민족사로 편입하려는 비학문적 의도가 전제된 데서 기인한 것으로, 연구방법론상으로 중국의 정사(正史)를 비판 없이 운용한 결정적 결함을 지닌 것이다. 따라서 이들의 논의가 안고 있는 문제점은 얼마든지 더 여러 각도에서 지적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이러한 중국의 고구려사 인식체계가 비학문적인 논리로 치닫고 있는 만큼 이를 학문적 관점에서 일일이 검토하는 것이 과연 필요한 일인지는 실로 의문이다. 또 중국 학계가 고구려사를 다루는 정치적 논리를 앞으로 더 발전시킬 수 있다고도 여겨지지 않는다. 나올 수 있는 이야기는 거의 모두 제시된 셈이며, 저들 스스로 그 한계를 잘 알고 있을 터이므로 이에 대한 반박과 비판 또한 대략 예상하고 있을 것이다. 따라서 우리로서는 고구려를 주체로 그 흥기(興起)와 역사 발전의 과정을 계기적으로 체계 있게 서술해내는 것이 더 급한 과제라고 사료된다. 삼국의 형성을 고조선 사회의 계기적 발전 형태로 파악함으로써 고조선 이래 부단히 발전해 온 한민족사 초기의 역사상(像)을 구성적으로 논증해 내야 한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저와 같은 무리한 논리를 부추기고 있는 중국 정부의 정치적 의도를 정확히 파악하는 것이 중요하다. 인접국의 역사인식 체계를 근본적으로 뒤흔들면서 외교적으로도 문제가 야기될 소지가 명백한 도발을 감행하는 데는 무언가 그럴만한 이유가 있음이 틀림없다. 이를 단순히, 소수민족사를 자국사의 범주 내에서 처리하는 중국의 일반적 방식쯤으로 치부하거나 정치적 협상 카드를 하나쯤 더 확보하려는 노력 정도로 이해해서는 곤란하다. Ⅲ. 고구려사 편입 시도의 배경과 의도 문제의 초점은 최근 중국이 고조선 이래로 줄곧 한반도 북부를 지배해 왔다고 주장하고 있다는 점에 있다. 이런 무리한 시도로 감행하는 의도를 현 단계로서는 자료를 통해 입증하기 어려우나 역사적 맥락에서 짐작해볼 수 있고 또 그 결론은 사실의 실상에 매우 근접할 것이다. 우선 유의할 것은 중국에서 조선족이 차지하는 정치적 의미이다. 중국은 중국 영토의 일부를 차지하고 자치구를 형성하여 그 언어와 문화를 그대로 유지하고 있는 조선족에 대해 그 형성배경 자체를 다른 소수민족과는 다르게 파악하고 대처하고 있다. 즉 중국은 변강지역에 과계민족(跨界民族)을 30개 정도로 파악하고 있지만, 일반적으로 중원을 선민문명으로 설정하고 소수민족을 낮은 단계의 사회로 설정하여 한족에 의한 동화 및 융합과정으로 인식하여 왔다. 즉 조방농업생산방식의 남방민족이나 반농반목의 유목민족인 북방민족에 대해서는 선진적인 중원 문화를 받아들여 스스로 동화되어 간 역사 과정으로 묘술해온 것이다. 그러나 조선족의 경우는 이와 다를 수밖에 없는 사정이다. 근대로 접어든 이후의 역사과정에서 형성되었기 때문이다. 따라서 조선족에 대한 정책 자체가 매우 정치적인 성격을 띠고 나타났다. 중국내 조선족 통제와 간도 영유권 문제 차단 노려 중국 학계는 1990년대 이래 고구려사 귀속 문제를 제기하게 된 배경으로 크게 두 가지 차원의 문제의식이 여기에 개재함을 표출하고 있다. 첫째는 1990년대 이래 한중간의 교류가 활발해지면서, 조선족 사회 내부의 변화와 함께 조선족의 민족적 각성이 진행된 사실에 유의하고 있다는 점이다. 조선족이 스스로 한민족임을 자각하고 북한에서 탈출하는 ‘동족’을 도우며 한국에 진출하여 경제력을 축적하는 등, 국적과 관계없이 민족적 귀속을 중시하는 경향이 뚜렷해지고 있다. 따라서 이에 대해 정치적으로 제동을 가할 필요가 긴급해졌던 것으로 보인다. 그러던 차에 주목된 것이, 광개토대왕릉비를 참배하고 제사를 지내는 등 조선족 사이에서 고구려를 자기 역사의 출발로 인식하는 경향이 제고된 사실이었다. 중국 정부는 이를 긴급히 차단할 필요가 있다고 판단한 것으로 여겨진다. 중국인의 고구려사 연구 논문에서 고구려는 현재의 조선족과 역사적 계승 관계가 없다는 것을 애써 주장하고 있는 사실을 볼 때 이는 아마 거의 정확한 분석일 것이다. 둘째는 한국 학계의 일부에서 간도 영유권을 둘러싼 문제에 관심을 보인 데 대해 유의하고 있는 점이다. 중국 정부는 이에 대해 미리 쐐기를 박을 필요를 느꼈던 것으로 보인다. 중국의 학자들은 현재의 경계인 압록강 두만강의 역사성을 인정한다고 하면서도 1722년과 1909년 2차례 걸친 조(朝)·청(淸) 간의 영토 획정과 정계비의 건립, 그리고 1960년 북한 정권과의 사이에 맺은 국경협약을 모두 부정하고 간도는 물론 백두산 영역에 대한 배타적인 영유권이 중국에 있다고 주장한다. 특히 고조선의 영역을 자국의 역사 영역으로 포함시켜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는데 이 점은 이러한 간도문제 등 장래의 영역문제와 불가분한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이러한 문제들에 중국 정부와 학계가 유의하고 있다고 하더라도 이것이 국가적 차원에서 무리를 감행하는 중국의 태도를 이해할 수 있는 충분한 근거가 된다고는 판단되지 않는다. 조선족의 민족적 자각을 억제하고 간도의 영유권을 둘러싼 앞으로의 분쟁에 대비한다는 것만으로는 침략성을 띤 중국 측의 동태를 합리화하기 어렵다. 더 심각하고 절실한 정치적 필요성이 달리 있음이 분명하다. 한반도 유사시 개입 근거 확보도 겨냥 이런 점에서 주목되는 것이, 특별한 경우 곧바로 한반도에 대한 간섭 또는 침략을 자행하고 이를 정당화할 수 있는 논리로까지 확대될 여지가 있는 주장들이다. 예컨대 고구려 멸망은 고조선과 마찬가지로 중원 왕조의 말을 듣지 않고 독립을 꾀했기 때문이며, 따라서 고구려에 대한 침공은 중앙권력으로서 당연히 취해야 할 도리를 취한 것뿐이라는 논지가 그것이다. 수·당의 대(對) 고구려 전쟁을 중앙과 지방정권 간의 모순에서 발생한 국내 통일전쟁으로 파악하는 것도 같은 논지이지만, 기왕의 역사적 평가를 애써 부정하고 상반된 평가를 내리는 것은 결국 특정 지역이 중앙정부의 통제를 무시할 경우 언제든지 무력을 사용하여 정벌할 수 있다는 논리에 다름 아니다. 특히 이 점은 임진왜란, 청일전쟁, 6·25 등 동아시아의 중요한 만국(變局)에서 중국이 한국에 대해 이미 행해 왔던 역할을 미화해 온 배경이 있는데다가, 현재처럼 북핵 문제를 둘러싸고 국제 사회가 소란한 국면과 연관하여 갑자기 이를 여론화하는 데서 짐작할 수 있다. 2000년에 중국은 TV를 통해 이른바 ‘항미원조50주년(抗美援朝五十週年)’ 기념물을 요란하게 방영하고 대담 형식을 통해 북한 정권의 붕괴에 대비한 중국의 대응 방략을 논의한 바 있는데, 이는 중국이 북한 정권의 붕괴 후 이 지역에 대한 처리 문제로 부심하고 있음을 보여주는 단적인 증거이다. 대담에서 논의는, 국제사회의 원리를 거론하고 이를 전제로 할 때 어떤 태도가 중국의 이익에 부합하는가를 모색하는 데 초점을 두고 일반론적으로 진행되었으나, 적어도 분명한 것은 그것이 북한 지역에서 전개되는 국제적인 분쟁 또는 사건에 중국이 반드시 개입해야 한다는 점을 전제하고 또 이를 정당화하기 위한 논의였다는 점이다. 북한 지역에 대한 정치적·군사적 개입을 이미 염두에 둔 토론이었다. 따라서 고조선사 및 고구려사를 중국사에 애써 귀속시키려는 의도는 결국 한반도 유사시에 적극적으로 개입할 수 있는 역사적 근거를 확보하려는 데 본심이 있는 것으로 판단된다. 중국의 고구려사 편입 시도를 둘러싸고 근래 국내에서 이루어진 분석은 대체로 한반도의 통일 후를 대비한 중국의 선제공격이라는 쪽으로 흐르고 있다. 그러나 고구려사를 중국사로 간주하는 인식은 한국이 (통일)신라를 계승한 국가일 뿐이라는 인식을 깔고 있는 것이고, 고구려 계승의식을 강하게 표출하고 있는 북한은 이런 논리의 연장에서 결국 한국과 상관없이 중국사의 범주에 들어와야 할 대상이라는 주장을 함의하고 있다는 사실을 간과해서는 곤란하다. 고구려사를 자국사로 편입하려는 중국의 논리는 그 자체 이미 한반도의 통일을 저해하려는 의지로 작용하고 있는 것이다. 북한의 현 정권이 무너지면 저절로 통일이 이루어질 듯 기대하는 것은 국제간의 역학관계를 무시한 환상에 가깝다는 것이 현재 우리가 처한 냉엄한 현실이다. Ⅳ. 중국의 고구려사 왜곡에 대한 대응 방향 역사학은 우리가 현재 당면한 과제를 풀기 위해 그 과제가 기인하고 경과한 과거 사실들을 추출하고 탐구하는 학문이다. 그래서 흔히 ‘모든 진정한 역사는 현재의 역사’라고 말한다. 역사의 현재성, 즉 역사가 가진 문제해결 능력을 강조한 말이다. 그런데 오늘날처럼 역사학의 현재성이 절실히 요구된 때는 일찍이 없었다고 여겨진다. 우리 민족과 국가가 당면한 난제를 해결하기 위해 역사학이 나서야 할 때이고, 정부와 의회가 이를 적극 지원해야 할 때다. 중국의 자의적 고구려사 인식 방치 안 된다 지금까지 한국 국사학계는 학문의 객관성을 중시하며 주로 실증적 관점에서 역사 연구를 수행해 왔다. 그리하여 사료의 진위를 판단할 기준을 세우고, 많은 사실들을 새로 규명하였으며, 한국사의 발전을 체계적으로 이해할 안목을 키울 수 있었다. 그러나 지나치게 엄격한 문헌고증의 태도를 견지한 나머지 적잖은 문헌과 자료의 신빙성을 부인하였고, 그 결과 우리는 삼국시대부터 고대사회가 성립하고 고대국가가 건국하였다고 인식하는 경향이 강하였다. 그리고 이는 우리 민족이 고조선에서 유래하여 부단히 발전해 왔다는 사실과, 중국 등 주변 민족과의 쟁패에서 밀려 고대 영토의 상당 부분을 상실하였어도 민족의 주체성과 국가의 독립을 유지해 왔다는 사실을 체계적으로 설명하는 데 일정한 장애로 작용해온 것이 사실이다. 현재의 한국사 이해에서 고조선사는 국지적이고 특수한 발전의 사례에 지나지 않게 되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며, 발해사를 우리 민족사로 서술하는 것을 국수적인 태도로 비난하며 동북아사라든가 하는 별도의 역사로 파악해야 한다는 견해가 공공연히 횡행하는 실정에 있다. 고조선사와 삼국시대사를 계기적인 발전 형태로 설명해내지 못한 결과이다. 반면, 중국은 이 틈을 비집고 고조선에서 고구려-발해로 이어지는 역사를 자국사로 인식하기 시작했다. 이러한 중국의 역사인식은 북한 지역을 포함한 고구려의 옛 영토를 정치적·군사적으로 지배하려는 속셈을 함의한 침략적 인식 형태이다. 저들의 자의적인 고구려사 인식을 그대로 방치한다면 우리는 결국 우리의 영토와 민족의 일부를 상실할 위기에 당면하고 말 우려가 없지 않다. 중국은 민족적 자각이 점차 고양되고 있는 조선족 문제를 처리하기 위해, 그리고 백두산정계비를 둘러싼 영토 분쟁에 대비하여, 역사학의 현재성을 정치적으로 이용하고 있다. 조선족의 민족적 자각에 제동을 걸기 위해 일부 학자는 조선족과 고구려가 전혀 무관함을 주장하기에 이른 실정이다. 그러나 중국 정부의 입장에서 본다면 이는 문제의 본질에서 벗어난 노력에 불과할 수도 있음을 잊어서는 안 된다. 중국의 정치주도층은, 고구려사 자체를 중국사로 편입할 수 있다면, 그리하여 고구려인을 중국민족의 하나로 편제하는 논리가 성립할 수 있다면, 이는 저절로 해결될 문제라고 생각할 것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중국의 정치 지도자들이 고구려사에 관심을 갖는 이유의 핵심은 다른 데 있다고 여겨진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고구려사가 한국사임을 지극히 당연한 사실로 받아들여 온 중국이 갑자기 고구려사를 중국사로 편입하려고 시도하는 배경에는 북한 정권의 붕괴 이후를 대비하는 정치적 포석이 깔려 있다고 판단되는 것이다. 북한 지역을 군사력으로 장악하고, 역사로서 명분을 세우는 한편 정치력으로 버틴다면 그 지배에 대해 국제사회의 공인을 받아낼 수도 있다는 믿음이 중국으로 하여금 무리를 감행하게 만드는 직접적인 이유가 아닌가 싶다. 우리는 우리의 역사를 통해, 타국을 강제로 점령한 강대국이 그 정치적·군사적 강점을 고착화하고 합리화하기 위해 흔히 역사를 동원하는 것을 경험해 왔다. 한(漢)이 고조선을 점령하고 ‘기자동래설’을 내세운 것, 당이 백제를 점령하고 ‘남대방설’을 내세운 것, 청 태종이 조선을 굴복시키고 ‘만주원류고’를 편찬해 그 정치적 간섭을 정당화한 것, 청 말기에 원세개(袁世凱)가 ‘속방론(屬邦論)’을 들고 나와 조선 정치에 간섭한 것, 일본이 한국을 강점하고 ‘일선동조론’, ‘임나일본부설’ 등을 내세워 그 식민 지배를 합리화한 것 등이 그런 사례들이다. 같은 맥락에서 생각할 때, 최근 중국이 뜬금없이 고구려사가 중국사의 일부임을 주장하고 나선 배경에는, 북한의 핵문제를 둘러싼 동북아의 위기 상황에서 북한 지역에 대한 처리 방안을 모색하는 중국이 정치적·군사적 점령까지 염두에 두고 있는 사실이 놓여 있는 게 아닌지 적이 우려하지 않을 수 없다. 정치적 장악에 대비한 역사적 책략일 가능성을 고려해야 할 것이다. 남북한 힘 모아 파쇄해 나가야 그러므로 우리는 중국의 이런 시도를 철저히 분쇄하지 않으면 안 된다. 고구려사에 대한 올바른 인식을 체계화하여 그 역사가 한국의 역사임을, 그리고 그 민이 한민족임을 분명히 해야 하며, 정치적으로 남북이 한 민족, 한 국가임을 하루 빨리 세계에 천명해야 한다. 역사학을 통해 남북한의 상호이해를 증진하고, 법적 장치와 정책을 통해 민족적 유대감을 고양시킬 방안을 시급히 마련해야 한다. 이 과정에서 역사학이 수행해야 할 과제는 분명하다. 즉 고조선에서 부여-고구려-발해로 이어진 북방의 역사 전개를 계기적으로 설명하고, 그것이 명백히 한국민족사의 일부임을 설득력 있게 논증하는 것이다. 그리고 아울러, ‘기자동래설’ 이후 ‘속방론’에 이르기까지 중국인들이 주장해 온 한국사 인식의 침략성을 체계적으로 규명하며, 문화 계승 관계를 무시하고 현재의 영토에서 일어난 모든 역사를 자국사로 간주하는 중국인의 역사인식을 논리적으로 파쇄(破碎)해야 한다.
신형식 / 상명대 사학과 초빙교수 동북공정이란 무엇인가 중국은 근자 동북공정이라는 국책 연구 프로젝트를 추진하면서 고구려사를 중국의 소수 민족이 세운 지방정권이라는 역사왜곡을 시도하고 있다. 그것도 모자라서 중국 외교부 홈페이지에서 한국의 고대국가에서 고구려를 아예 없애고 백제와 신라만 두고 있다. 이러한 역사 패권주의적 사고방식은 중국이 갖고 있는 고대적인 중화사상을 현대사회에까지 적용하여 조선족을 포함한 중국의 소수민족을 소위 그들의 ‘통일적 다국가론’에 편입함으로써 번영과 안정을 가져올 수 있다는 쇼비니즘(Chauvinism)의 발상이다. 이번의 고구려사 왜곡은 자기 나라의 성격 해석을 외국의 문헌내용으로 설명할 때 왜곡과 오류가 있게 된다는 사실을 보여주는 것이다. 에 신라가 왜에 조공을 하였다고 되어 있다. 그러나 신라는 왜의 속국이 아니었다. 따라서 중국 문헌에 소개된 우리 역사를 기록대로 설명할 수 없는 이유와 당위성이 있다. 중국은 1980년대 이후 고구려사 중국 편입을 위한 계획을 세워 왔다. 그 결과 (張博泉, 1981)와 (孫進己, 1985) 등을 통해 이를 적극화하면서 1990년대에 들어와 (손진기, 1994)와 (장박천, 魏存成, 1998) 등을 내놓았다. 이어 2000년에 들어와서 (馬大正, 楊保隆 등)와 그 속편 그리고 (耿鐵華, 2002)를 통해 고구려사의 중국사 편입을 공식화하기 시작하였다. 중국이 이러한 역사왜곡을 시도한 이유는 중국의 모든 소수 민족 중에 번듯한 모국을 가진 조선족에게 무언의 압력을 가하는 한편, 통일 후 간도에 대한 영토권 요구를 사전에 봉쇄하려는 정치적 계산이다. 따라서 동북공정의 시작은 고구려사 편입이며, 그 마지막 단계는 간도문제에 대한 영토분쟁의 사전 저지인 것이다. 중국이 추진하는 동북공정은 다음과 같은 내용으로 되어 있다. ①고구려는 출발부터 멸망까지 중국영토 안에 존재한 소수 민족이 세운 나라였음으로 중국의 지방정권이다. ②고구려는 중국에게 항상 칭신납공(稱臣納貢)의 신속(臣屬)관계를 가진 조공(朝貢)을 한 중국에 예속된 나라이다. ③수·당 전쟁은 고구려가 도전하였음으로 불가피하게 토벌한 국내 전쟁이다. ④고구려의 멸망 당시 인구가 70~80만 정도였는데, 이 중에서 포로, 전사, 납치, 도망자(신라·발해)를 제하면 10여만 명만 남았음으로 고구려인은 대부분 중국에 동화되었다. ⑤고구려는 고씨(高氏)왕조이고, 고려는 왕씨(王氏)왕조이므로 그 주인공이 달랐고 양왕조의 존속 기간과 지배지역이 다르므으로 서로 관계가 없다. 이러한 중국측 주장은 그들이 갖고 있는 중화사상을 자기식으로 우리나라에 적용한 것이다. 중국 최초의 정사인 와 에는 별도로 을 두었으며, 를 비롯한 중국의 문헌에도 동방의 이웃 나라(東夷傳)에 고구려, 신라, 백제, 일본 등을 함께 설명하고 있다. 고구려만 지방정권이라고 따로 기록하지 않았다. 고구려가 중국의 지방정권이라면 백제, 신라, 일본도 같은 지위가 되어야 한다. 그러나 어떤 문헌에도 고구려가 중국의 지방정권이라는 기록이 없다. 중국 기록(, , )에 음식, 의복, 예절, 풍속이 고구려와 백제, 신라가 같다고 되어 있다. 무엇보다도 당나라와 신라가 연합하여 고구려를 정복하였다는 사실은 고구려가 그들의 지방정권이 아님을 보여준 반증이 된다. 한 국가의 성격 파악에는 민족의 기원, 언어와 습관, 특히 생활풍습 등을 고려해야 한다. 고구려와 중국은 언어체계가 달랐으며, 3국은 다같이 이두문을 쓰고 있었다. 고구려인들은 중국인들과 달리 치마, 저고리를 입었고, 결혼시에 지참금(婚納金)이 없었으며, 윗사람을 공경하는 예의범절이 있었다. 고구려는 끝까지 중국의 정치제도를 채용하지 않았으며, 중국정부에 세금납부나 징병을 당한 일이 없다. 어디까지나 고구려는 중국의 세계질서에 도전하면서 그들의 동진(東進)을 막고 한반도를 지켜준 당당한 독립국이었다. 고구려는 고구려중심의 세계관을 갖고 있었으니, 그것은 스스로 하늘의 자손임을 내세웠으며(광개토왕비), 신라를 동이(東夷:중원고구려비)로 격하시킨 천하의 대국이었다. 우리는 어떻게 대응할 것인가 중국의 주장은 중국은 만국의 중심, 천하의 중앙으로서 주변 지방(四方)은 중국의 정치적 신속(臣屬)관계를 갖고 있다는 논리에서 중국황제는 천하의 공주(共主)라는 데서 출발하였다. 그러나 이것은 근대사회의 영토(Territory)와 고대사회의 영역(Frontier)을 구분하지 못한 무지의 소치이며, 중국 중심의 전근대적인 사고를 현대사회에 적용시킨 것으로 마르크스주의가 20세기 말에 무너져버린 사실을 상기할 필요가 있다. 첫째로 중국의 주장인 ‘고구려의 기원이 되는 고양씨(高陽氏) 후손의 거주지가 내몽고지역(노합하, 대릉하유역)이므로 중국의 소수민족’이라는 것은 그 성립 시기나 지역이 사실과 다르다. 즉, 고구려족의 계보가 고양씨라는 유사성이 문제가 아니다. 고구려가 출발한 곳은 내몽고지역이 아니라 만주의 장춘, 길림 지역이었고, 중국이 주장하는 그 문화는 고구려건국과 3000년의 차이가 있다. 즉, 중국의 홍산문화는 청동기문화이고, 고구려의 적석총문화는 철기문화이다. 둘째로 ‘고구려가 중국에 조공하였으므로 자신들에게 예속된 나라라는 것’은 조공의 의미를 잘못 해석한 것이다. 조공은 원래 주(周)나라에서 황제와 제후(諸侯)간에 있었던 주종관계였으나, 그것이 주변 나라로 확대된 고대의 외교방식이었다. 중국이 주변 나라의 왕을 책봉(冊封)하면서 정치적 우위를 나타낸 것이지만, 조공국의 국가적 정통성과 독립성이 저해된 것은 아니었다. 어디까지나 의례적인 고대 외교의 한 형식이다. 우리나라는 중국의 분열기에 한 국가와 외교를 맺는 것이 아니라 중복된 관계를 가졌으며, 가장 극성기를 구가하던 장수왕(고구려)과 성덕왕(신라)이 가장 많은 외교사절(조공사)를 파견했다는 사실이 조공의 의미를 보여준다. 셋째로 ‘수·당전쟁은 중국에 도전한 것을 응징한 국내 전쟁이며 토벌이다’라는 견해는 당시 상황이나 전쟁의 내용을 외면한 허구적 표현이다. 고구려가 당나라의 침입을 막기 위해 16년간이나 천리장성을 쌓았다. 그렇다면 자신의 속국이 본국에 맞선 방어책(천리장성)을 세울 때 보고만 있었겠는가 하는 반문이 있다. 더구나 고구려를 정복하기 위해 100만 대군을 동원했다면, 그것도 황제가 친히 앞장섰다면 그 전쟁이 국내 전쟁이 될 것인가? 정복전쟁을 일으키고는 그것이 국내 전쟁[討伐]이라는 궤변을 하고 있다. 당나라는 전쟁 직전에 고구려에 보낸 국서에서 ‘두 나라의 평화(二國通和)’라고 하여 고구려를 상대국으로 분명히 인정하고 있었다. 이미 233년 (동천왕7년)에 중국[吳]의 손권(孫權)은 고구려왕(동천왕)을 흉노의 왕인 선우(單于)로 봉하였다. 중국이 가장 두려워했던 흉노의 추장으로 임봉했으며 진귀한 물건을 보냈던 것이다. 넷째로 ‘고구려 멸망 후 그 유민이 대부분 중국인[漢族]으로 동화되었다’는 주장은 그 인원 파악에 근본적인 오류가 있다. 중국문헌에는 고구려 멸망시의 인구를 70만 호라 하였다. 당시 1호당 인구가 5명(전후)으로 파악하면 인구수가 350만이 되니까 이 수치는 잘못된 것으로 보았다. 그 대신 의 기록인 21만호에서 1/3(한족)을 제한 15만 호(70~80만 인)로 파악하였으며, 이 중에서 50~60만이 감소(30만 사천, 발해·신라 귀화 각각 10만, 사망자 다수)되었으므로 본토에 살던 고구려인은 거의 없다는 주장이었다. 그러나 70년 전쟁(수·당전쟁: 598~668)기간에 고구려는 많은 인구의 감소를 가져 중국측 기록에도 유녀(遊女), 유인(遊人)이라는 남편 잃은 여인의 존재를 기록하고 있다. 따라서 고구려 멸망 당시의 고구려 인구는 호당 3인으로 210만 인(70만 호)이라고 추정된다. 이 중에서 강제이주 42만, 피살 10만, 포로 8만5천, 고구려·해로의 귀화 각각 10만 등 80여만 명이 감소되었으므로 130~140만 명이 된다. 그러므로 이들은 고구려 옛땅에 남아 때로는 신라와 함께, 또는 자기들 스스로 대당항쟁을 주도한 것이다. 에 고구려 멸망 후 당에 항복하지 않은 성(城)이 목저성과 남소성 등 11개가 있었다는 사실을 주목할 수 있다. 따라서 고구려 멸망 후 계속된 대당항쟁은 곧 고토에 남아있던 유민들의 활동의 결과였으며, 평양에 있던 안동도호부를 북쪽으로 쫓아버릴 수 있었다. 마지막으로 ‘고구려와 고려왕조와는 관계가 없다’는 주장은 우선 국호에서부터 문제가 있다. 중국문헌에는 고구려를 고려로 불렀으며 발해나 고려의 왕들은 한결같이 고구려의 후신임을 강조하고 있었다. 송나라 때 고려에 온 서긍(徐兢)도 고려는 고구려의 후손이라고 하고 있었으며, 고려 태조(왕건)는 고구려의 옛 땅을 회복하고자 고구려의 서울인 평양을 서경(西京)이라 하였다. 993년(성종12) 거란과의 전쟁 때 서희(徐熙)는 적장(소손녕)과의 대담에서 ‘고려는 고구려의 후손이므으로 나라이름을 고려라 하였다’고 분명히 밝힌 바 있다. 중국의 동북공정은 중국인이 현대를 고대로 착각해서 나온 공상의 산물이다. 이러한 폐쇄적인 중국인의 낡은 의식은 20세기 말에 이르러 무너진 마르크시즘과 같은 한계와 과오를 범하고 있다. 세계화를 지향하는 21세기에 있어서 중국의 ‘쇼비니즘’은 시대역행의 회고적 망상과 국제적 웃음거리가 될 것이다. 우리는 중국의 주장이 모순과 오류라는 사실을 학술적으로 확인하고, 우리 고대사나 고구려사를 여러 외국어로 번역하여 제3국에 알려줄 필요가 있다. 그러한 과정에서 중국이 국제적 고아가 될 수 있다는 계기를 마련해야 할 것이다.
송상헌 / 공주교대 교수 동북공정이라는 중국의 역사 수정 시도를 계기로 역사교육에 대한 논의가 활발하게 전개되고 있다. 그 내용은 7차 교육과정에서 근현대사가 선택과목이 되었다는 것, 역사 과목이 교과로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사회교과의 한 과목으로 통합되어 있다는 것, 절대 수업 시수가 축소되었다는 것, 역사교육의 강화 주장이 과목이기주의로 간주되고 있다는 것, 교과서가 바람직하지 못하다는 것, 세계사 교육이 황폐화되어 있다는 것 등 다양한 문제점을 지적하고 있다. 대체로 역사교육이 홀대받고 있으며, 부실하다는 지적이 주류를 이루고 있다. 이 글에서는 활발하게 진행 중인 역사교육 논의에서 제기된 여러 가지 문제들을 세세하게 거론할 여유는 없지만, 현행 역사교육이 가지는 여러 가지 문제의 배경에 깔린 보다 본질적인 문제를 제기해 보고자 한다. 주로 역사교육의 질적 측면을 위주로 논의하면서 바람직한 역사교육의 방향을 가늠해 보려 한다. 최근 논의의 문제점 최근에 문제가 된 동북공정이라는 이름으로 추진하고 있는 중국의 역사 수정 시도와 관련하여 역사교육을 강화시켜야 한다는 주장이 힘을 얻고 있지만 제시되는 방안은 주로 수업시수를 늘리거나 교육내용을 확충하자는 등의 주로 양적인 문제에 치중되어 있다는 느낌이 든다. 다양하게 제시된 양적인 확충 방안과 함께 논의에서 놓치지 말아야 할 것은 역사교육의 질적인 개선 방안이다. 중국의 역사 수정 시도를 보면서 당황스러운 것은 지금까지 학생들에게 자기의 관점을 가지고 이번 사태를 바라볼 수 있고 적절한 판단을 내릴 수 있는 능력을 기르는 역사교육이 이루어져 왔는가 하는 점이다. 현실적으로 중국과 관련하여 역사전쟁의 사례를 소개한 내용도 없을 뿐만 아니라, 동아시아사의 전개에서 고구려사가 중국사로 편입되는 것과 유사한 사태가 발생할 경우 그것이 가지는 역사적 의미가 어떤 것인지를 생각할 수 있는 역사교육 내용을 찾기 어렵다. 더구나 역사라는 것이 본디 끊임없이 수정되는 것이고 수정된 역사의 객관성을 판단하는 기준은 역사 담론의 적연성(plausibility)의 정도(degree)라는 사실을 가르쳐주는 내용도 없다. 동아시아사를 시야에 넣고 역사적으로 접근하여 사고할 수 있는 능력을 키워주는 역사교육도 실행할 여지가 없다. 한 마디로 지금까지의 역사교육이 중국의 역사 수정 움직임과 같은 사태에 대응할 만한 능력을 키우는 것과 거리가 있었다는 사실을 부정할 수 없을 것 같다. 앞으로 이와 유사한 사태에 직면하더라도 그들의 이런 주장을 하나의 역사 담론으로 보고 역사적 맥락에 그 주장을 위치시켜 그것이 가지는 역사적 의미를 파악하고 그것이 가지는 적연성의 정도를 판단할 능력을 키워주는 역사교육을 모색할 필요가 있다. 그러기 위해서는 기존의 역사교육 논의 패러다임을 획기적으로 바꿀 수 있어야 할 것이다. 문제의 소재 현행 역사교육이 가진 문제를 살펴보면 교육과정이나 제도와 같은 외부적인 조건에서 오는 것과 교과 내용이나 수업과 같은 내부적인 조건에서 비롯된 것이 있음을 알 수 있다. 물론 역사교육의 외부적인 조건은 현실적으로 정책을 결정짓는 의사결정 체계를 통해서 만들어지기 때문에 역사교육 담당자들이 간여하기 어려운 부분이다. 하지만 역사교육의 틀을 결정짓는 외부적 조건이 가지고 있는 문제의 소재를 분명히 할 필요는 있고 아울러 내부적 조건과 유기적 관련 하에서 문제를 부각시킬 필요도 있다. 역사교육 내부·외부를 막론하고 가장 근원적인 문제로 지적될 수 있는 것은 역사교육의 본질에 관한 합의가 이루어지지 못하고 있다는 점이다. 역사교육의 직접 당사자가 아닌 사람들과의 합의가 어려운 것도 문제이지만 관련당사자들 사이에도 합의가 이루어지지 못하고 있는 것도 큰 걸림돌이다. 이 문제에 대한 진단은 여러 가지로 내릴 수 있지만 합의가 이루어지지 않는 근본 이유는 역사교과에 대한 관점의 불일치 때문인 것으로 보인다. 역사교육에 접근하는 시각은 다양할 수 있지만 본질적인 문제라고 할 수 있는 역사교과관을 중심으로 논의할 필요가 있다. 자국사 교육의 문제 우선 지적할 수 있는 문제는 역사교육 내부·외부를 막론하고 자국사 교육의 가치를 인정하지 않는 정서가 광범하게 퍼져 있다는 점이다. 자국사를 포함한 역사교과를 여러 교과 가운데 하나로서만 생각할 뿐, 국민의 정체성이나 공동체 의식과 관련하여 역사교과가 가지는 특성을 외면하고 있는 것이다. 우리는 나 , 와 같은 예에서 보듯이 자국사 서술의 오랜 전통을 가지고 있고, 이나 와 같은 세계적인 기록유산을 가지고 있는 민족이다. 이런 것이 가능했던 이유는 역사를 하나의 종교처럼 신봉해왔기 때문이고, 항상 자신의 전통과 시각에서 자국사를 포함한 역사를 정리해온 전통이 유달리 강했기 때문이다. 더욱이 그런 전통은 우연하게 이루어진 것이 아니라, 강대국이면서 신기할 정도로 오랫동안 통일국가를 유지해온 중국이라는 거대국가의 위협과 지정학적인 영향으로 끊임없이 이어지는 외침 속에 생존을 위한 노력으로 이루어진 것이라는 점에서 가치가 있다. 특히 우리는 유사 이래 인접국의 역사왜곡을 수도 없이 겪어왔기 때문에 자국사의 전통이 강할 수밖에 없었고 역사에 대한 애정 또한 남다를 수 있었다. 예컨대 중국은 기자 동래설에서부터 역대 사서의 을 통해 그들의 관점에서 우리 역사를 기록한 사실이 있고, 와 같이 노골적으로 한국사를 왜곡한 전례를 가지고 있다. 일본은 로부터 일제 강점기나 최근에 이르기까지 역사를 끊임없이 왜곡해 왔다. 이처럼 한국사는 중·일 양국과의 ‘역사전쟁의 역사’라고 할 수 있을 만큼 험한 역사 경로를 거쳐 왔던 것이다. 이런 역사의 흐름 속에서 우리 선조들은 항상 자신의 전통과 시각에서 역사를 정리하려는 노력을 해왔고, 역사를 소중히 생각해 왔다. 그러나 지금은 이런 강한 자국사 서술의 전통은 사라지고, 자국사 교육을 실용적인 목적에서 가르치는 교과와 다름없는 교과로서 취급하는 정서가 만연되어 있다. 고등학교 근현대사가 선택 교과로 결정되는 과정이 그런 정서의 대표적인 표현이라고 할 수 있다. 교육 정책 입안자들조차 우리의 역사 속에서 자국사를 중시하는 전통이 어떤 것이며 왜 그런 전통이 있었는지 고민하지 않고 있다는 증거이기도 하다. 이대로 간다면 고등학교에서의 자국사 교육은 유명무실하게 되어버릴 가능성이 크다. 현행 교육과정에서 사회과 심화선택과목 가운데 하나인 근현대사의 경우 과목으로는 들어가 있지만 무시될 가능성이 크다. 실제로 자연계열 학생의 경우 수능에서 사회탐구 시험을 보지 않기 때문에 공부할 필요가 없고, 인문계열 학생은 비교적 쉽게 점수를 딸 수 있는 교과에 몰리게 되기 때문에 국사나 근현대사를 외면하게 되어 공부할 필요가 없게 되어 있다. 앞으로 자국사 교육은 비중이 점차 줄어들어 초라한 과목으로 전락할 것이 분명하다. 역사교과가 어떤 교과인지를 오해한 결과를 가장 뚜렷하게 보여주는 부분이다. 이런 배경에는 설익은 세계화 논리가 작용하고 있다는 의심이 든다. 자국사의 강조는 자칫 국수주의로 흐르게 되어 세계 시민의식을 함양하는데 걸림돌이 될 수 있다는 우려이다. 그러나 세계화는 후쿠야마가 말하는 세계가 하나의 모습으로 귀결되는 ‘역사의 종말’ 단계의 모습이 아니라 개별 국가의 문화가 보편으로 승화하는 ‘구체성의 보편화’로 보아야 한다. 그리고 세계 시민의식은 진정한 자국사의 교육에서 함양된다는 것을 유념할 필요가 있다. 다만 바람직한 자국사를 어떻게 서술할 것이냐 하는 문제는 남는다. 세계사 교육의 실종 현행 교육과정 하에서 문제되는 것은 고등학교에서 세계사 교육이 실종되어 버렸다는 사실이다. 국사의 경우는 그나마 따로 편찬된 교과서를 가지고 있고, 비교적 상당한 수업시수를 배정받고 있지만, 세계사의 경우는 문제가 아주 심각하다. 6차 교육과정에서 고등학교 ‘공통사회’를 일반사회와 지리만으로 구성하여 세계사를 제외시킨 바 있었다. 교육과정 입안자들이 세계사는 필요 없는 과목으로 생각하지 않았다면 도저히 나올 수 없는 상황이다. 이런 점에서 이런 일은 교육사에 기록될 만한 사건이라고 할 수 있다. 7차 교육과정에서는 ‘공통사회’가 ‘사회’로 교과명이 바뀌었지만 전체 10개 대단원 가운데 세계사 내용은 한 단원에서 다루고 있고 그것도 시민혁명, 산업혁명에 대한 내용만 들어가 있는 형편이다. 사회 교과에 세계사를 끼워주는 형국이다. 심화 선택과목으로서의 세계사도 ‘한국근현대사’와 선택을 다투게 되어 있어 거의 선택될 여지가 없게 만들었다. 이런 결과로 자연스럽게 세계화 시대에 세계사는 전혀 가르치지 않는 우를 범하고 있는 것이다. 보다 심각한 문제는 아주 어색한 상황을 만들어 놓고 무엇이 잘못되었는지 깨닫지 못하는 교육정책 당국자들의 정서에 있다. 세계사 교육과 관련하여 또 하나의 문제는 세계사 내용 구성을 어떻게 할 것인가 하는 문제이다. 중국의 역사 수정 시도와 관련해서도 세계사를 교육해야 한다는 것에 동의하지 않을 사람은 없다. 하지만 내부로 들어가 보면 세계사의 내용을 현행처럼 모든 나라의 역사를 관광 안내문처럼 나열할 것인지, 아니면 세계사의 흐름을 위주로 서술할 것인지는 상당한 논의가 필요한 주제이다. 이 경우 의제는 대개 서구 중심의 서술을 벗어나는 문제나 혹은 중국 중심의 동양사 서술을 벗어나는 문제로 설정된다. 하지만 세계사가 어차피 몇 줄기의 흐름으로 정리할 수밖에 없는 것이라면 획기적으로 교과서 서술을 바꾸는 시도도 필요할 것이다. 어쨌든 확실한 것은 세계사 교육이 개별 국가사의 단순한 종합이 되어서는 안 된다는 점이다. 사회과 통합의 문제점 현행 역사교육이 가지는 본질적인 문제 가운데 하나는 사회과 통합의 문제이다. 사회과 통합은 해방 이후 끊임없이 추진되어 왔다. 그간 많은 사람들이 사회과 통합을 반대해 왔지만 철회될 기미는 보이지 않는다. 그 원인 중의 하나는 정책 당국자들의 통합 의지에 비해 비판의 논리가 빈약했기 때문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그간 사회과 통합에 대한 비판은 많았어도 심도 있는 비판은 부족했던 것으로 보인다. 흔히 역사과가 사회과에 통합되어 있어서 문제라고 하는 동어반복적인 비판은 많지만 왜 그런지 논리적으로 따지는 일은 드물었다. 사회과에 통합됨으로써 공통사회 교사나 지리 혹은 일반사회 전공 교사가 역사를 가르치게 된다는 점을 심각하게 받아들이는 견해도 설득력있는 논리적 근거를 제시하지는 못했다고 판단된다. 사회과 통합이 미국식 발상이기 때문에 문제라는 지적도 타당성이 떨어진다. 정작 필요한 것은 이런 피상적인 문제의 지적이 아니라 왜 역사가 사회과에 통합되면 문제가 되는지 구체적인 근거를 제시하는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조리있는 비판은 부족하고 통합 사회과가 문제라는 목소리만 높였기 때문에 사태 해결에 도움이 되지 못한 것으로 보인다. 사회과 통합의 진정한 문제는 역사교육을 보는 교과관이 잘못되어 있다는 데 있다. 지금의 교육과정 입안자들은 역사교과를 ‘사회과 역사’로 생각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사회과 역사’를 주장하는 사람들이 가진 오해의 대표적인 예는 과거 사실을 가르치는 것이 역사교육이라고 보는 것이다. 그러나 역사는 과거 사실만으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다. 과거 사실은 시디롬이나 백과사전에 모두 실려 있다. 엄밀하게 말하여 교사가 역사 시간에 시디롬에 들어있는 역사적 사실을 가르치기 위해 수업할 필요는 없다. 역사교육은 과거 사실 이상의 그 무엇을 가르쳐야 하는 것이다. 예컨대 고구려사에 나오는 사실을 가르치는 것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고구려사가 중국사로 편입되었을 때의 문제도 다루어야 하는 교과가 역사교과인 것이다. 사회과 역사를 주장하는 사람들이 가진 역사교과관은 사회과 교과관을 근거로 하고 있다. 그들은 사회과는 개념이나 일반화를 가르치는 교과이고, 이런 개념이나 일반화를 가르치는데 역사가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간단하게 말하면 J. A. Banks가 주장하는 바, ‘혁명’이나 ‘변화’의 개념을 가르치기 위해 역사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이럴 경우 역사는 사회과에 통합되어야만 효과적으로 학습할 수 있게 된다. 그렇지만 이것은 역사교과에 대한 심각한 오해이다. 오히려 역사교과는 ‘혁명’이나 ‘변화’라는 개념을 활용하여 구체적인 프랑스 혁명, 러시아 혁명 등의 과정을 가르치는 교과이다. ‘혁명’ 개념을 가르치기 위해서 프랑스 혁명을 가르치는 것은 역사 수업이 아니고 사회 수업이다. 만약 혁명 개념을 이용하여 프랑스 혁명을 가르치려 한다면 사회과 역사로는 곤란하다는 의미이다. 역사교과는 과거 사실이라는 자료 더미에서 사실을 알고 그것에 관한 이야기(담론)까지 다루어야 하는 교과이다. 이런 사실을 이해하지 못하게 되면 사회과 통합이 유리하다고 생각하거나 푸념성 비판에 그쳐버리게 된다. 요컨대 역사교과가 사회과에 통합되면 안 되는 이유는 사회과의 교과 성격과 역사과의 교과 성격이 판이하기 때문이다. 만약 통합되어 서술된다면 역사를 이해하는 사고와 사회과 내용을 이해하는 사고가 다르고, 추구하는 교육목표도 달라서 소기의 목표를 달성하기 어렵게 된다. 교사 양성의 문제 사회과 통합과 교사양성제도는 밀접한 관련이 있다. 사회과 역사라고 믿는 정책 입안자들의 고안물로 대표적인 것은 대학이나 대학원에 공통사회과를 설치하여 공통사회 교사를 양성하게 한 것이다. 사회과 역사를 주장하는 사람들이 생각하는 것처럼 과거 사실을 가르치는 것이 역사교과라고 한다면 공통사회 교사의 양성은 아주 효율적인 방안이다. 역사를 다른 전공자가 가르쳐도 크게 문제될 것이 없고 가르치기도 쉽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것 역시 역사교과에 대한 심각한 오해에서 비롯된 것이다. 역사의 경우 역사를 가르치는 교사가 사학과 출신이라고 하더라도 만족스런 것은 아니다. 왜냐하면 역사에 대한 지식이 아무리 풍부해도 가르칠 궁리를 거친 ‘교사 지식’을 가지기 어렵기 때문이다. 교사가 가르칠 궁리를 포함한 ‘역사교사 지식’을 가질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는 현행 교사양성기관의 커리큘럼도 손질해야 할 상황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오히려 공통사회 교사의 양성이라는 발상을 한 것은 잘못된 교과관과 교사관에서 비롯된 것이다. 공통사회 교사를 양성할 수 있다는 발상이 논리적으로 취약하다는 것은 전문 교사양성기관 무용론으로 연결될 수 있다는 점에서 드러난다. 예컨대 적당한 역사지식을 갖춘 사람이면 역사적 사실을 가르칠 수 있기 때문에 굳이 사범대학이라는 교사양성기관이 필요하지 않은 것이다. 그러나 역사의 경우 같은 강좌명이라도 사범대학에 개설된 강좌는 사학과 학생들의 강좌와 달라야 한다. 그것은 교과교육에 관련된 과목을 끼어 넣어 사범대학의 특성을 살리려는 정도로 해결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다. 사범대학에서 개설되는 강좌는 사학사적 흐름을 강조해야 하기 때문에 사학과의 강좌와 다를 수밖에 없다. 어떤 역사적 사실을 배우는 경우 교사가 될 사람은 그 사실이 역사적 맥락에서 어떤 역사적 의미를 갖는가 하는 점을 강조하여 배워야 하는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전문 교사양성대학의 존재는 역사에 관한 한 필수적이라고 본다. 역사학의 메타 담론으로서의 역사교육 기왕의 역사교육 담론은 획기적인 변화를 시도하지 않는 한 시대적인 환경의 변화와 사회적 요구를 수용할 수 없게 되었다. 일찍이 인류가 경험해보지 못한 정보 소통 환경의 변화는 일방적 소통을 전제로 한 전통적인 역사교육의 변화를 요구하고 있다. 이데올로기적 제약도 크게 완화되어 대중들은 역사에 대해 더 이상 염증을 느끼지 않게 되었다. 공급자와 수요자의 상호 소통이 원활하게 이루어질 수 있는 조건이 조성된 것이다. 이런 현실에 대한 깊은 성찰을 통해 역사교육에 대한 새로운 패러다임의 방향을 가늠할 수 있을 것이다. 새로운 환경에 부응하는 역사교육을 하기 위해서는 ‘역사학의 메타 담론으로서의 역사교육’이 필요하다고 본다. 그것은 역사학의 논의에 메타적으로 접근하여 논의 자체를 교육대상으로 삼고 역사 담론(discourse)을 통하여 교육하는 것을 말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역사학 논의 자체를 문제화하는 역사화(historicization)가 필요하고, 전체 역사의 흐름을 설명하는데 특정한 사실이 어떤 의미가 있는지를 밝혀내기 위해 맥락화(contextualization)가 필요하다. 이는 역사학과 역사교육이 구별되는 지점이기도 하다. 중국의 동북공정의 경우를 수업할 때를 예로 들어보자. 교사는 학생으로 하여금 동북공정 움직임 자체를 역사적 맥락에 위치시켜 동아시아 역사 담론을 통하여 동북공정이 가지는 역사적 의미를 이해할 수 있도록 한다. 말하자면 19세기 후반에서 오늘날에 이르는 전체 흐름을 역사적 맥락으로 잡았을 때 전반적인 흐름은 20세기의 뒤틀린 역사 구도를 바로잡는 방향으로 나아가는 맥락이라고 이해할 수 있다. 즉 냉전 해소 이후 나타난 흐름은 19세기말에서 20세기까지 잘못된 것들이 점차 원상으로 회복되는 방향으로 가는 과정이라고 보는 것이다. 이런 역사적 맥락의 흐름 속에서 당연히 중국이나 일본이 저지른 과오에 대한 책임을 묻게 되는 과정이 있게 된다. 1980년대 일본의 전후 반성이나 위안부 문제, 전후 보상 문제 등이 대두된 것은 이런 맥락에서 이해될 수 있다. 아울러 일본의 역사교과서 문제나 우경화 경향은 이런 움직임에 대한 반동으로 이해할 수 있다. 그렇게 볼 때 갑작스런 중국의 역사 수정 시도는 일본의 우경화나 수정주의 역사관이 대두한 배경과 마찬가지로 한반도를 둘러싼 20세기 역사의 질곡을 만들어낸 책임을 회피하는 전략이라는 역사적 의미를 부여할 수 있게 된다. 다시 말하면 중국은 한반도가 뒤틀리기 이전의 상태로 되돌리기 싫은 것이고, 그렇게 뒤튼 책임을 회피하려는 전략의 하나가 역사 수정 움직임으로 나타났다고 보는 것이다. 이렇게 본다면 중국의 수정 시도는 한반도 통일 이후를 대비하는 것이라기보다는 오히려 한반도의 통일 시도에 대비하는 정책이라고 볼 수 있게 된다. 같은 역사적 맥락에 간도 문제를 위치시킨다면 중국은 지금 상태로 고착시키거나 아니면 그 이상을 추구할 가능성이 크며 최소한 19세기 말 경의 상태로 되돌리는 것을 막으려 한다는 해석이 가능하게 된다. 이런 해석을 할 수 있는 이유는 전근대 시기 중국의 대한 반도 정책은 한사군(漢四郡) 이후 분열 정책의 연속이었고 그런 사실을 바탕으로 추론할 때 중국이 한반도의 통일을 좌시하지 않을 것이라는 의심을 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중국으로서는 현재 남북한 체제의 대립 구조가 거대 한국(Great Korea)의 출현을 막는 가장 효과적인 방법이라고 믿을 가능성이 있기 때문이다. 이와 같은 역사담론은 현재 가장 유력하게 거론되고 있는 또 하나의 담론과 대비된다. 그것은 바로 한반도가 한국에 의해 통일된다는 예상 하에 통일 이후의 동북 지방의 영토 분쟁을 차단하기 위하여 동북공정을 하고 있다고 보는 역사 담론이다. 학생들은 이런 종류의 대비되거나 다양한 역사 담론을 경합시키는 가운데 역사 이해를 풍부하게 할 수 있다. 그리고 이러한 역사화, 맥락화, 담론 경합의 요구는 자체의 시점을 가진 관찰자의 입장에 서야만 총족될 수 있기 때문에 역사의 수요자(학생)와 공급자(교사, 역사학자)의 상호 소통이 전제가 되지 않으면 안 된다. 이런 과정에서 학생은 역사 담론의 적연성(plausibility)의 정도를 판단하게 되고 나름대로 역사 이해에 도달하게 되는 것이다. 역사는 그 본성이 구성적이어서 현실적으로 특정 담론에 대한 비판의 기준을 정하기는 대단히 어렵다. 따라서 역사 분쟁의 본질은 이런 역사 담론의 다툼이지만 그것이 어느 한 쪽의 일방적인 승리로 끝나기는 어려운 것이다. 따라서 일본과 중국의 역사 수정 시도를 보면서 모든 사람이 동의할 수 있는 객관적 기준을 마련하여 상대를 설득하는 것은 가치있는 일이지만 한계가 있다는 점도 인식할 필요가 있다. 이런 문제를 해결하는 방법은 현안으로 부각된 문제를 긴 흐름의 역사적 맥락에 위치시켜 역사 담론화하고 이를 바탕으로 설득력 있는 담론으로 다투게 하여 대응하는 것이다. 동아시아에 속하는 한국은 앞으로도 끊임없이 중국과 일본의 역사 수정 시도에 시달릴 수밖에 없을 것이다. 이런 문제에 대응하기 위해서 역사적 진실을 무기로 삼을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역사적 진실만으로 대응하는 것은 한계가 있다. 또 다른 강력한 무기는 우리가 처한 역사적 입장을 성찰하여 적연성의 정도가 아주 높은 동아시아 역사 담론을 만들어 내는 것이다. 피해의 기억만을 가지고 있는 우리는 중국·일본에 비해 동아시아는 물론 세계 평화와 번영을 추구하는 동아시아 역사 담론을 구성할 수 있는 유리한 위치에 있다는 점도 유념할 필요가 있다. 따라서 앞으로 역사 교육은 역사 담론들을 비교, 판단하고 역사적 맥락 속에서 역사적 의미를 추구하는 능력을 길러주는 역사 담론 교육의 방향으로 나아가야 할 것이다.
정 진 환 / 동국대 교수 최근 정부가 마련하고 있는 지방교육자치법 개선방안은 일반자치와 교육자치와의 연계 강화에 초점을 두어, 교육에 대한 지방자치단체장의 책임감 부여, 시·도지사의 러닝메이트로 하는 교육감 주민 직선제, 시·도교육위원회의 시·도의회 분과위원회로의 소속 이동 등을 주요 골자로 하고 있다. 그러나 정부의 개선방안은 그 동안 교육의 정치적 중립성 보장과 교육위원회의 독립형 의결기구화를 요구해 온 교육계의 주장과는 역행되는 것으로 논란의 여지가 크다. 더욱이 교육자치제를 기초단위까지 확대하여 지역교육장을 구청장과 함께 선출하는 방안도 검토되고 있어 교육청의 수적 증가에 따른 예산 문제가 논란의 대상이 되고 있는 시점에 비추어 매우 적절치 않은 개선안이라는 지적이 일고 있다. 특히 개정안은 일반행정에의 교육행정의 예속을 예고하고 있어 교육자치의 기본정신인 교육의 정치적 중립성, 전문성을 저해하는 탁상행정의 표본이며 시대적 조류에도 역행하는 방안이라 생각된다. 기본적으로 교육의 본질이 가치 창조적 활동이기 때문에 교육행정은 외부의 간섭이나 통제로부터 벗어나야 하며 고도의 전문성을 요구하는 활동이다. 따라서 교육자치 확립에 있어서, 교육의 정치적 중립성 보장은 기초이념이며, 교육행정의 특수성과 전문성 인정을 기반으로 한 일반행정으로부터의 교육행정의 분리·독립은 교육자치 확립을 위한 주요 관건이 된다. 그러기에 헌법이나 지방교육자치에관한법률 등에서도 교육의 자주성, 전문성, 정치적 중립성을 명시하고 있으며, 이를 보장하게 위해 교육·학예사무를 지방자치단체의 의결기관인 지방의회와 집행기관인 자치단체장과 별도로 특별기관으로서 교육위원회와 교육감의 설치를 규정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유감스럽게도 1991년 지방교육자체에 관한 법률이 제정된 이후에도 교육자치제도는 정권이 바뀔 때마다 행·재정상의 비효율성의 문제를 내세워 교육행정의 전문성 인정과 일반행정으로부터 분리·독립은 미결의 상태로 시행착오만을 거듭해 오고 있다. 현 정부가 마련한 교육자치개정안에 기초해 보면 교육의 정치적 중립성과 함께 교육행정에 대한 외적인 세력의 부당한 간섭이나 영향력 배제의 실현은 어려울 것으로 보여 우리의 교육자치는 또 다시 시련을 겪을 것이 명약관화하다. 정부주도의 이번 교육자치법 개정안은 주민참여를 유도한다는 취지 하의 교육감 주민직선제는 바람직하다고 할 수 있겠으나, 정당 소속인 시·도지사 후보와 러닝메이트로의 연계는 ‘지방교육의 특정 정당에 의해 좌지우지될 가능성’과 ‘시·도마다의 들쭉날쭉 교육정책 혼란’으로 인한 교육의 혼란을 초래하고 진정한 교육자치 확립에 저해되는 착상이라는 생각밖에는 들지 않는다. 교육은 ‘백년지대계’라고 하는데 정권이 바뀔 때마다 당리당락적 상황에 따라 수시로 이루어지는 교육개혁 안건들은 학생들과 학부모는 물론 온 국민들을 혼란의 늪 속에서 수없이 허우적대게 하고, 희망과 신뢰보다는 ‘이번 개정안이 과연 누구를 위한 것인가“하는 회의만을 느끼게 한다. 이번에도 예외는 아니어서 풀뿌리 민주주의를내세운 참여정부의 교육혁신을 위한 과정과 정책이 그동안의 다른 정권들의 과오(위로부터의 개혁)를 답습하고 있다는 인상이 든다. 특히 교육의 정치적 중립의 훼손은 급진적 사회변화에 대응하기 위한 교육행정의 전문성 향상을 저해하는 결과를 초래할 것이다. 우리의 미래 사회는 지식이 모든 부와 경쟁력의 원천이 되는 지식기반사회로 교육자치의 중요성이 더욱 확대될 것으로 예측된다. 특히 정보화와 세계화를 동반하고 있는 새로운 시대적 조류는동안의 사회를 지배해온 중앙집권적 통제에 기초한 교육에서 개방과 경쟁을 향한 현장 중시의 다양성, 자주성, 자율성을 중시하는 교육으로의 패러다임 전환을 요구하고 있다. 이러한 교육 패러다임으로 전환될 경우 교육행정은 고도의 전문성이 무엇보다도 선행되어야 할 영역이다. 그러나 이번 교육자치법 개정안은 일반자치와 교육자치와의 연계 강화를 통해서 시·도교육위원회를 시·도의회의 한 분과위원회로 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어 교육현장을 중시하는 다양성, 자주성, 자율성 등은 물론 교육행정의 전문성 보장이 무시되고 있다. 교육행정의 특수성과 전문성 무시는 큰 정부에서의 중앙집권적 통제의 틀이 환생하는 과오의 반복과, 미래사회 변화에 대한 교육의 적응력 약화를 내포하고 있다. 더욱이 지방자치단체 자체의 행정의 다양성, 전문성을 저해하고 이로 인해 교육의 문제가 더욱 과장되고 교육시장의 개방화와 세계화의 흐름에서 경쟁력과 적응력 상실을 초래할 것이 명백하다.
곽해선 | 경제교육연구소 소장(www.haeseon.net) 최근 물가 동향과 경제 상황 부총리가 지난 6월 말 하반기 나라 경제 운용 방향을 밝히면서 올해 소비자물가 상승률을 작년 대비 3.5% 이내로 억제하겠다고 밝혔다. 그러나 하반기 들어 국내 물가는 장마와 폭염에 따른 채소류의 작황 부진, 교통요금 인상, 중동 지역 정세 불안에 따른 국제 원유가 폭등과 맞물려 상승세가 가파르다. 6월 소비자물가 상승률이 전달 대비 3.6%였는데 7월에는 전달보다 0.8%포인트가 오른 4.4%를 기록했다. 8월에도 전달 대비 4%를 넘을 가능성이 높다. 정부가 나서서 도시가스 요금과 휴대전화 기본료를 내렸지만 물가 불안은 좀처럼 진정될 기미를 보이지 않는다. 이처럼 물가는 오르는데 임금은 그만큼 오르지 못하고 금리는 떨어지는 추세라서 가뜩이나 어려운 서민 경기를 한층 어렵게 하고 있다. 8월 12일 한국개발연구원(KDI)과 노동부가 밝힌 바로는 올해 1월에서 5월까지 명목임금 상승률이 4.6%에 그쳤다. 임금소득의 크기는 물가가 오르면 오르는 만큼 뒷걸음질친다. 올해 1월에서 5월까지 소비자물가 상승률이 3.3%였던 점을 감안하면, 명목 임금상승률(4.6%)에서 소비자물가 상승률(3.3%)을 뺀 실질임금 상승률은 1.3%에 불과하다. 실질임금 상승률은 지난해 같은 기간 7.1% 수준이었다. 그러나 올해는 작년의 1/5도 안 되는 수준으로 급격히 위축되어, 물가 상승폭의 절반에도 못 미친다. 이런 현상은 봉급생활자와 서민들의 소비 능력, 의욕을 위축시켜 소비가 매우 침체한 지금 우리 경제에 한층 부정적인 영향을 끼칠 것이다. 은퇴해서 직장 없이 연금이나 이자소득에 의지해 사는 서민층은 더 어렵다. 한국은행이 8월 12일 국내 금리의 기준 역할을 하는 콜 금리를 연 3.75%에서 연 3.5%로 내림으로써 시중금리가 한층 낮아지면서 이자소득도 줄어들게 됐기 때문이다. 물가는 어떻게 정해지나 물가란 여러 개별 상품의 가격을 한데 묶어 평균 낸 값, 가격은 상거래를 위해 개별 상품에 붙이는 값이다. 가격이나 물가는 기본적으로 시장에서 수요와 공급이 어떻게 움직이느냐에 따라 결정된다. 일반적으로 상품 수급에 따라 시장에서 일단 가격이 형성되고 나면, 그 다음부터는 거꾸로 시장가격이 상품의 수급을 조절한다. 즉 상품의 수요-공급이 시장가격을 형성하고 나면 시장가격이 거꾸로 상품의 수요-공급을 좌우한다. 이것은 자본주의 시장경제를 움직이는 여러 원리 중에서도 기본이다. 그런데 가격과 물가가 시장에서 상품 수급에 따라 정해진다는 것은 그야말로 기본이 그렇다는 얘기일 뿐이다. 현실에서는 상품 수급 외에도 여러 가지 다른 이유가 끼어들어 가격과 물가를 움직일 때가 많다. 중요한 변수 두 가지만 들어보자. 첫째, 시장이 어떤 상태에 있느냐가 그 하나다. 시장에 따라서는 상품을 공급하는 기업이 한 개 혹은 몇 개밖에 없는 경우가 있다. 이른바 ‘독과점 시장’이다. 독과점 시장에서는 당연히 상품의 시장가격이 형성되는 과정에서 공급자가 수요자보다 유리하다. 소비자가 상품을 살 곳이 달리 없으니 기업이 가격을 제멋대로 매기기 쉽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해서 정말 독과점 기업이 시장에 내놓는 상품, 서비스에 자기 좋을 대로만 가격을 매기는 것은 아니다. 현실적으로 막무가내로 가격을 올린다면 소비자로부터 외면받을 것이기 때문이다. 또 아무리 그래도 소비자가 외면할 수 없는 상품, 서비스라면 기업의 횡포를 막기 위해 정부가 나선다. 전형적으로, 공정거래법과 공정거래위원회를 두고 독과점 기업의 횡포를 법률로 견제해 시장에서 거래가 공정하게 이루어지도록 유도한다. 둘째, 환율도 수급 관계 외에 물가에 영향을 자주 미치는 변수다. 수입 상품 대금이 달러 당 1000원 하다가 1050원이 된다고 하자. 외화 표시 상품 판매가가 변함없다 해도 상품 구입에 드는 원화 액수는 오른다. 이 여파가 다른 상품 가격들에까지 미치면 물가가 오른다. 만약 환율이 반대 방향으로 바뀌면 정반대 결과가 생긴다. 환율이 물가를 뛰게 하는 예로는 우리나라가 지난 1997년 후반 외환위기 때 당한 이른바 ‘IMF 한파’를 빼놓을 수 없다. 당시 우리나라는 단기외채를 못 갚을 정도로 외화가 바닥 나 있었다. 그런 사실이 알려지자 국내외 투자자들이 원화 가치 폭락을 예견하고 일제히 원화를 팔아치웠고, 이 바람에 원화는 기록적으로 폭락했다. 달러 당 900원 정도였던 환율이 삽시간에 달러 당 1800원을 넘어섰다. 그러자 수입 상품 판매가도 일제히 급등해, 전과 같은 양을 사더라도 원화 대금을 배 이상 내줘야 했다. 완제품뿐 아니라 완제품을 만드는 재료로 쓰는 수입 원자재도 가격이 올랐고, 수입 원자재로 만들어내는 국산 완제품도 가격이 뛰었다. 이렇게 수입 완제품과 원자재의 가격 인상이 국산 완제품 가격을 올리고 상품 전반으로 파급되면서 물가가 폭등했다. 환율이 뛰면 수입 원유도 마찬가지로 가격이 뛴다. 원유(crude oil)는 자동차 운행 등 각종 산업에 광범위하게 쓰이는 필수 에너지원이다. 제품 생산과정에서 직·간접적으로 원유를 쓰는 산업도 아주 많다. 때문에 원유 값 변동이 물가에 미치는 효과는 특히 크다. 원유 관련 제품 가격이 오르면 원유와 직접 상관 없는 수많은 다른 상품들도 꼬리를 물고 값이 뛴다. 물가는 경기와 무슨 관계가 있나 보통 경기가 좋아지면 물가가 오른다. 왜 그럴까. 수요가 높아지고, 생산비가 오르기 때문이다. 생산활동이 활발해지면 기업이나 가계나 소비가 늘어난다. 그 결과 원재료와 에너지, 노동력 등 생산요소와 상품에 대한 수요가 공급에 비해 전체적으로 높아진다. 수요가 공급에 비해 많아지면 상품 가격은 오른다. 원재료나 에너지 값, 인건비가 오르는 만큼 기업은 생산비 부담이 늘어 완성품 판매가를 올리게 마련이다. 이런 과정이 전 산업에 걸쳐 확산되면서 물가가 오른다. 경기가 좋을 때는 소비자들이 비싼 상품도 기꺼이 사들일 만큼 소비의욕이 높다. 그러므로 기업도 적극적으로 나서, 생산비가 더 들더라도 생산량을 늘린다. 기업이 생산을 늘릴 때는 더 많은 노동력을 필요로 한다. 노동력 공급은 한정되어 있는데 수요가 늘면 노동의 대가 곧 임금이 오른다. 임금이 오르면 봉급생활자들은 두둑해진 호주머니를 믿고 물가가 비싸도 소비를 줄이지 않는다. 물건 값이 비싸도 잘 팔리니 상품 판매가는 자꾸만 오른다. 결국 경기가 좋아지는 동안에는 기업이나 가계나 생산과 소비가 함께 활발해지기 때문에 물가가 오른다. 반면 경기가 나빠지면 물가는 어떻게 될까. 경기가 나빠져 기업의 생산 활동이 침체하면 직장인들의 임금 수입도 늘지 못하거나 줄어든다. 그 결과 가계의 소비 의욕이 떨어지므로 소비가 줄고, 그러면 물가는 떨어지거나 상승률이 둔해진다. 다만 예외적으로 경기가 나쁠 때 물가가 오르는 수도 있다. 지난 1997년 말 우리나라가 외환위기를 맞은 직후에는 경기가 나쁜데도 물가가 치솟았다. 당시 원화가치가 형편없이 떨어지는 바람에 수입 상품 가격이 폭등하면서 물가를 끌어올렸기 때문이다. 지금도 우리 경제는 경기가 나쁜데 물가가 오르고 있다. 지금은 기업의 경쟁력이 외국에 비해 떨어지는 데다 정부의 정책실패 같은 국내 요인과 해외 요인이 겹쳤다. 국내적으로는 부동산 투기와 신용카드 남발이 조장됨으로써 가계 부채와 신용불량자가 대거 양산된 끝에 빚에 짓눌린 가계가 소비를 못해 소비 침체 → 판매 침체 → 생산 위축 → 고용 위축의 악순환으로 이어지고 있다. 밖으로는 고유가와 중국의 경기 긴축 등이 원유를 비롯해 수입원자재 가격을 올리고 있다. 인플레이션이란 무엇인가 경기가 좋아지면 상품 수요가 공급을 웃돌아 물가가 오른다. 수요가 공급을 많이 웃돌면 물가 상승세도 심해진다. 그러다가 물가가 지나치다 싶을 만큼 빠른 속도로 계속 오르는 현상이 생길 수 있다. 이처럼 단기에 빠른 속도로 진행되는 물가 상승 현상을 ‘인플레이션(inflation)’이라고 부른다. 흔히 줄여서 ‘인플레’라고도 부른다. 다만 물가가 얼마나 빨리 오르면 인플레이션인지 정확하게 정의할 근거가 있는 것은 아니다. 이를테면 ‘어느 정도 기간 동안 몇 % 이상 물가가 오르면 인플레이션이라고 본다’는 식의 규정이 없다. 그러므로 현실에서는 여느 때에 비해 물가 상승이 심한지 여부로 인플레이션을 판별할 수밖에 없다. 자연히 인플레이션은 발생 여부를 놓고 전문가들 사이에도 의견이 엇갈릴 때가 많다. 물론 이론의 여지가 없는 인플레이션 사례도 있다. 브라질이나 멕시코, 터키 같은 나라들은 심한 인플레이션을 겪은 예다. 브라질에서는 지난 1990년 물가가 한 해 전에 비해 무려 30배나 뛰었다. 1991년 물가는 전년에 비해 4.4배를 넘었다. 이후에도 계속 인플레이션이 진행되어 1993~1994년 사이에는 물가가 20배나 올랐다. 1995년이 지나고서야 겨우 물가상승률이 20% 밑으로 떨어졌다. 물가가 뛰면 뛰는 만큼 화폐 현찰은 값어치가 떨어진다. 어제 한 봉지에 1000원 하던 콩나물이 오늘 2000원 하면 1000원이라는 돈 가치는 어제의 반절밖에 안 된다. 물가가 웬만큼 오르면 몰라도 이 정도로 물가가 심하게 뛰는 인플레이션이 생기면 돈 가치도 큰 폭으로 추락할 수밖에 없다. 그러면 봉급이나 연금, 이자 등 정기적으로 일정액씩 얻는 현찰 수입에 의지해 사는 사람들은 당장 살림살이가 빡빡해진다. 물가가 뛰면 전·월세 등 집세와 가게 세, 자녀 학비, 교통비 등 생활비가 일제히 오르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해서 기업들이 때맞춰 직장인 봉급을 올려주는 것도 아니고, 금융기관 등이 연금이나 이자를 더 주는 것도 아니기 때문이다. 그래서 인플레이션은 서민 대중의 생활수준을 끌어내린다. 인플레이션이 극단적으로 심한 경우는, 아침에 1000원 하던 상품이 저녁에 2000원 하는 식으로 뛰는 수도 있다. 이럴 때는 사람들이 경제의 앞날을 자신하거나 예측하기 어렵게 되므로 돈 융통을 포함해 기업 활동, 경제 활동이 제대로 돌아가지 못한다. 디플레이션은 왜 문제인가 인플레이션과 반대 되는 현상도 있다. 디플레이션(deflation)이다. 수요가 공급에 훨씬 미치지 못해 물가가 계속 떨어지는 경제 상태를 말하는데, 흔히 줄여서 ‘디플레’라고 부른다. 물가가 떨어지면 소비자에겐 좋을 것 같지만 디플레이션 때의 물가 하락은 반드시 그렇지만도 않다. 수요, 소비가 공급을 크게 밑돈다는 것은 국민경제의 공급력에 비해 구매력이 떨어진다는 뜻이다. 이런 상태가 지속되면 국민경제의 생산과 투자 규모를 줄여 성장능력을 약화시킨다. 디플레이션 때는 제품이 팔리지 않아 기업들이 제품 가격을 잇달아 내린다. 그런데도 소비자들은 물가가 계속 떨어질 것이며 나중에 살수록 이익이라고 생각해 소비를 미룬다. 그럴수록 기업은 판매 부진이 심해져 제품 값을 더 내려야 한다. 결국 제품 값 하락과 소비 부진이 되풀이된다. 그런 가운데 경쟁을 치러내야 한다. 수익성 하락과 경쟁을 견디다 못해 상품 가격을 올리거나 상품 품질을 떨어뜨리는 기업은 소비자에게서 외면당한다. 디플레이션 때는 상품이 싸도 팔리지 않으니 기업들은 불가피하게 공장 설비와 인원을 줄일 수밖에 없다. 그 결과 실업자가 늘어 가계의 구매력은 한층 떨어진다. 가계의 소비는 더 줄어들고 제품 가격은 더 떨어지면서 실업이 늘어나는 악순환이 이어진다. 주식이나 부동산 같은 실물자산 가격도 수요가 적어 거래가 부진하므로 시세가 하락할 수밖에 없다. 그 결과 소비 침체는 한층 심해진다. 이처럼 디플레이션 때는 소비자가 돈을 절약할수록 제품 값이 더 떨어지고 투자와 생산이 부진해져 국민경제 형편이 나빠지는 ‘절약의 역설’이 나타난다. 소비 부진 → 판매·거래 부진→투자, 생산 침체→고용 감소, 실업 증가→소비 부진으로 악순환이 이어진다. 이 악순환의 고리가 어디선가 끊어지지 않는 한 경기는 불황으로 빠져들 수밖에 없다. 만약 어떤 이유로든 가계가 소비를 늘린다면, 경기가 되살아날 수 있는 길이 열린다. 소비가 늘어나면 설사 그로 인해 제품 가격과 물가가 오르더라도 생산과 투자를 자극하고 고용을 자극해 경기가 좋은 사이클을 탈 수 있기 때문이다. 소비가 늘어나지 않는다면 소비 절약이 생산·투자를 한층 부진하게 하고 그 결과 기업의 어려움이 소비자에게 전가된다. 경기가 나빠지는 악순환이 가속될 수밖에 없다. 디플레이션이 불황을 부른 심한 예가 유명한 1929년 세계 대공황이다. 당시 미국에서는 주가 대폭락을 시작으로 물가가 이후 3년여에 걸쳐 약 27% 하락했다. 실업자도 1천만 명 이상 늘었다. 경제 규모는 3년 사이 2/3로 줄어들었다. 경제가 불황에 빠지면 돈 수요가 줄어 금리가 떨어지고 각종 상거래에서 거래자 상호간 신용이 흔들려 사회가 불안해진다. 디플레이션으로 빚어지는 경제 거래의 불안이 사회, 정치 불안까지 빚는다.
교육인적자원부와 각 시.도 교육청이 지난해 민간단체에 지원한 사업비 22억여원 중 24.4%인 5억4000여만원이 용도가 불분명하게 집행된 것으로 나타났다. 국회 교육위 소속 정봉주(열린우리당) 의원은 교육부와 15개 시·도 교육청에서 받은 `민간단체 지원사업 예산집행 현황'을 분석, "전국 298개 민간단체에 지급된 시·도 교육청 보조금 22억여원 중에서 24.4%인 5억4천여만원에 대해 영수증이 첨부되지 않았거나 정산보고서가 형식적으로 이루어졌다"고 30일 밝혔다. 정 의원에 따르면 일부 민간단체들은 유적지 답사, 송년회 등 친목도모와 관광에 자체 회비가 아닌 보조금을 사용했다. 또 프린터나 빔프로젝터 등 사무기기를 구입하는데 보조금이 지원된 경우가 있는가 하면 영리업체가 여는 탁구대회나 중국어 구현대회 등에 보조금이 지원된 사례도 확인됐다. 정 의원은 "첨부된 영수증이 거의 형식적일 뿐만 아니라 첨부되지 않아도 문제가 되지 않았던 것으로 파악된다"며 "지원금이 지역교육 활성화보다는 교육감선거 등을 의식한 관련단체 관리에 전용되고 있다"고 꼬집었다. 그는 지원금이 짜임새있게 사용되기 위해서는 ▲민간단체의 결과보고서에 대한 교육부와 교육청의 실질적인 평가 ▲교육청의 지원 뿐만 아니라 민간단체의 자체적인 재정부담 규정 신설 ▲영수증 첨부 의무화 등이 필요하다고 덧붙였다.
한국교원단체총연합회(교총), 한국교원노동조합(한교조), 학교를 사랑하는 학부모 모임(학사모) 등은 24일 교육부와 전국교직원노동조합(전교조)의 교육행정정보시스템(NEIS) 3개 영역 구축․운영 방안 합의를 정면 비판했다. 윤종건 교총 회장과 류명수 한교조 위원장, 고진광 학사모 대표 등은 이날 오전 ‘NEIS 합의’를 ‘밀실야합’으로 규정짓고 정부종합청사로 안병영 교육부총리를 항의 방문했다. 교총 직원 등 30여명은 이날 오전 9시30분께 청사에 진입하려다 경찰의 저지를 받고 한때 농성을 벌인 뒤 안 부총리를 면담했으며 이 과정에서 고성이 오가기도 해 향후 이견조율에 진통이 뒤따를 것임을 예고했다. 이 자리에서 윤 회장은 안 부총리에게 “사전 협의를 무시하고 느닷없이 전교조와 일방적으로 합의해 발표한 것은 교육부가 전교조라는 특정단체와만 교육정책을 협의하겠다는 것이냐”고 따졌다. 그는 “교총 회원교사만 20만명인데 교총의 협조 없이 교육정책이 잘 될 수가 없는 만큼 합의를 전면 무효화하고 관련자를 엄중 문책하라”며 “10월초까지 결과를 지켜보겠다”고 말했다. 고 대표도 “국무총리 산하 정보화위원회에서 새 프로그램에 대한 검증을 충분히 거치기로 합의했는데 이런 방식으로 일을 처리해 학생과 학부모를 불안하게 한다”며 “왜 사사건건 전교조에 끌려 다니느냐"고 목청을 높였다. 이에 대해 안 부총리는 “지난 3월 NEIS와 관련한 대체적 합의가 이뤄진 뒤 일정 등을 놓고 일부 갈등이 전교조하고만 있었고 교총, 한교조 등 다른 단체와는 없었기 때문에 갈등이 되는 부분에 대해서만 전교조와 합의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의도와 다르게 일이 진행돼 항의 방문을 오게 한 것은 유감으로, 다른 단체를 가벼이 여기는 것은 절대 아니며 기술적 문제가 없다는 것이 전문가 의견인 만큼 새 시스템 구축 등을 책임지고 차질 없이 완결하겠다”고 강조했다. 앞서 교육부는 NEIS의 교무․학사․보건․진학 등 3개 영역에 대한 새 시스템을 내년 7~9월 순차적으로 개통, 2006년 3월1일부터 완전 시행하기로 합의했다. 교육부 관계자는 “시민․교원․학부모단체와 전문가 등으로 구성된 자문위를 한차례 더 열어 정부 계획을 최종 확정할 방침이라고 설명했다.
'교육부와 특정교원단체의 밀실 야합으로 NEIS가 졸속 시행될 우려가 높다'는 문제가 제기되면서 교육계가 또 다시 갈등의 도가니로 빠져들고 있다. 한국교총과 한교조, 학사모, 정보화교사들은 24일 오전 안병영 교육부총리를 방문해 "NEIS를 내년 9월부터 전면 시행키로 한 교육부와 전교조의 합의는 충분한 검증기간의 미확보로 운영상 예기치 못할 문제가 발생할 소지가 크다"며 "합의를 전면 무효화하고, 합의를 추진한 관련자를 엄중 문책하라"고 주장했다. 교총은 또 "교육부는 새로운 NEIS 시스템을 2005년 1년간 시범 운영하고 2006년 3월 1일부터 시행하라”고 촉구했다. 윤종건 교총회장은 “교원 절반을 회원으로 가진 교총을 제외한 이번 합의는, 앞으로 어떤 정책이라도 전교조와만 합의하면 된다는 인식에서 비롯된 것으로, 교육역사상 중대한 문제”라고 지적했다. 윤 회장은 “교육부가 추석이 지난 10월 초까지 어떤 조치를 취하는 지 지켜볼 것”이라며 “교총의 요구를 이행치 않을 경우 앞으로 어떤 교육정책에도 협조하지 않고 제2단계 조치에 돌입할 것”이라고 밝혔다. 안병영 교육부총리는 “NEIS는 교육부와 전교조의 갈등이 문제라, 실무자들이 갈등해소 차원에서 신경 쓸 수밖에 없었다”며 “유감”이라고 답변했다. 그러나 “장관 퇴진이나 책임자를 문책하라는 것은 무리한 요구”라고 말했다. 한교조의 류명수 위원장은 “매주 목요일은 전교조와 공동으로 실무협의를 하는 날인데, 갑자기 실무교섭을 취소하고 전교조하고만 합의했다”며 “고교등급제 문제로 위기에 몰린 교육부와 전교조가 빅딜한 것이 아니냐”고 따졌다. 최미숙 학사모 서울지역 대표는 “다른 교원단체들과도 논의해 다시 합의하라”며 “교단 갈등의 피해는 학생에게 되돌아온다”고 지적했다. 항의단들은 아침 9시 30분 장관실을 방문할 계획이었으나 정부종합청사 진입을 저지하는 경찰들과 격렬한 몸싸움을 벌였다. 장관실에서 오가는 대화 또한 고성이 오가면서 험악한 분위기가 연출됐다. 이날 항의방문에는 김운념 교총부회장과 김관익 대전교총회장, 손인식 교총사무총장, 김형운 전국정보화교사협의회장(과천 외고 교사) 등이 함께 했다. 이에 앞선 23일 교육부는 "2005년 7월 1일부터 새로운 시스템을 순차적으로 개통하여 2005년 9월 1일 전국적으로 전면 개통 한다"는 NEIS(교무/학사등 3개 영역) 시스템 구축방안을 전교조와 합의했다. 교총의 문권국 부장은 “새로운 시스템의 도입 시기는 자문위원간에도 다수안과 소수안으로 나눠 합의를 보지 못한 상황이었다”며 “구체적인 시행시기를 전교조와만 합의한 것은 이해할 수 없는 조치”라고 말했다. 컨설팅자문회의는 지난해 12월 교육정보화위원회에 결정에 따라 구성된 것으로 서울등 3개교육청, 3교원단체, 한국전산원등 3개 전문기관, 전자정부 및 교육정보화관련 위원, 참교육을위한전국학부모회와 학사모, 인간교육실현학부모연대, 진보네트워크 등 15명으로 구성돼 지금까지 3차례에 걸쳐 회의를 가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