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검색결과 - 전체기사 중 78,704건의 기사가 검색되었습니다.
상세검색만약 학교교육과정 운영상 A교과 교사가 3명 필요하고, B교과 교사가 1명 필요한데, 정기전보에서 B교과 교사를 3명, A교과 교사를 1명 배정했다면 학교장의 심정은 어떨까. 반면 A교과 교사가 1명 필요하고, B교과 교사가 3명 필요한 학교에는 A교과 교사 3명, B교과 교사를 1명만 배정했다면 이 학교의 학교장은 어떨까. 아니 학교장 뿐 아니라 해당학교 교사들의 생각은 어떨까. 그리고 만약 이런일이 실제로 발생했다면 교육청에서는 어떤 조치를 내려야 할까. 물론 이들 교과는 교사배정을 묶어서 하고 있다. 그러나 학교의 사정에 따라 전공교사를 형평에 맞게 배정하는 것이 지금까지 해왔던 전보배정 방식이다. 가령 기술·가정 교과에는 기술전공자와 가정 전공자를 고르게 배정한다. 사회나 과학교과의 경우도 각각의 전공교사를 고르게 배정한다. 교과 명칭이 그렇다고 해도 학생들을 가르치는 과정에서 전공자가 가르칠 수 있도록 일선학교에서 운영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간혹은 교원수급이 맞지 않아서 특정 전공자가 많이 배정되는 경우는 있다. 어차피 같은 교과이니 수업을 진행해 가는 과정에 다소 어려움이 있어도 최선을 다해서 가르치게 된다. 그러나 가급적이면 전공자가 가르치는 것이 학생들에게 더 유리하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그렇다면 사전에 학교에서 전공교과 담당교사를 요청했다면 교육청에서는 최선을 다하여 학교의 요청에 맞는 배정을 해야 한다. 사전에 학교에서 관련 자료를 제출하도록 되어있다. 제출 받았다면 그 자료에 가급적 맞게 배정해 주어야 한다. 그것이 교육청에서 할 일일 것이다. 그런데 서울의 어느 교육지원청에서 중학교 교사 정기전보 과정에서 지적했던 문제가 발생했다고 한다. 필요한 교사는 적게 보내고 불필요한 교사를 대거 보냈다는 소문이 무성하다. 더구나 같은 교육지원청 관내의 다른 학교에서는 정 반대의 현상이 나타났다고 한다. 같은 교과의 교원수급인데 양쪽 학교에 정 반대로 배정을 했다면 정기전보가 잘못된 것이다. 어떻게 이렇게 배정을 할 수 있다는 이야기인지 이해하기 어렵다. 잘 못 배정한 것도 문제가 되지만, 더 큰 문제는 교육지원청에 해당학교에서 재배정을 요청했는데, 교육지원청 관계자가 불가를 통보했다고 한다. 이유는 이미 발령이 난 상태임은 물론이고, 교육장까지 결재가 난 사항을 다시 돌리기 곤란하기 때문이라고 했다고 한다. 분명 배정이 잘못되어 학교에서 원하지 않는 교과의 발령이 이루어졌음에도 안된다고 했다는 것이다. 같은 교육지원청 관내의 학교에서 발생한 문제이므로 두 학교만 간단히 재발령을 내면 양쪽 학교에서 똑 같이 문제가 쉽게 해결됨에도 안된다는 것은 문제가 있다고 본다. 해당교과의 교사는 물론 정상적인 교육과정을 운영해야 하는 학교의 입장에서도 이 문제로 인해 상당한 어려움을 겪을 것이다. 한번 발령을 냈으면 끝이라는 것에 과연 얼마나 공감할 수 있겠는가. 잘못이 명백하다면 당연히 수정해서 배정을 다시해야 옳은 것이 아닌가. 초등학교 학생들도 중입배정에서 명백하게 중학교 배정이 잘못되었다면 다시 재배정을 하고 있다. 교사는 한 학교에 배정이 되면 5년 근무를 원칙으로 하고 있다. 단 한번의 잘못된 배정으로 5년동안 비전공 분야를 가르쳐야 한다. 누가 가르치든 가르치는 교사는 곤혹스런 시간을 보내야 한다. 물론 위 내용을 필자가 정확히 확인한 것은 아니다. 그러나 상당히 신빙성 있는 관련자로 부터 얻은 정보이다. 해당교육지원청도 어느 지원청인지 알고 있다. 교육청에서 돌아온 답변 역시 신빙성 있는 이야기이다. 확실한 것은 그 교육지원청에서 정기전보와 관련하여 문제가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논의 자체를 막는 것은 학교를 도와주어야 할 교육지원청의 태도는 아니라고 본다. 자신들의 실수를 인정하기 보다는 원칙을 내세우는 태도가 옳지 않다는 이야기이다. 잘못된 부분이 있다면 재발령을 내서라도 문제를 최소화하는 태도가 아쉽다.
지난 7일에 있었던 새정부 핵심교육정책 진단 현장 점검 토론회가 한국교총주최로 열리면서 자유학기제에 대한 지지와 우려의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대부분의 정책들이 그렇듯이 사전 인프라 구축의 요구가 거세지고 있다. 당연히 인프라 구축이 우선이라는 주장에 공감한다. 어쩌면 학교의 현실을 정확히 꿰둟지 못하고 추진하는 정책이 되어 실패할 가능성도 있다. 그러나 이미 서울시교육청에서는 중학교 1학년을 진로탐색 집중학년으로 지정하여진로 탐색과 관련된 과목을 편성 하고 전 과목의 중간필기고사를 없애는 대신 진로탐색과 관련 있는 수행평가를 실시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고 밝히고, 시범운영 학교 공모에 들어갔다. 어떤 방법으로든지 시행이 된다고 보아야 한다. 시범운영하는 학교들은 이미 중책을 맡았다고 보아야 한다. 정말로 현실적인 운영을 통해 현실적인 방안을 내놓기를 기대해 본다. 차기 정부의 자유학기제 역시 서울시교육청의 진로탐색 집중학년 운영과 큰 차이는 보이지 않고 있다. 다만 차이점은 서울시교육청의 진로탐색 집중학년은 정규고사를 없애는 대신, 진로탐색과 관련있는 수행평가를 실시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고, 자유학기제는 시험은 물론 기본적으로 자유학기제의 평가 자체를 없애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해당학기에는 학생들이 평가의 부담에서 벋어날 수 있도록 하겠다는 것이다. 이렇게 진행된다면 관련된 규정이나 지침등의 개정도 함께 이루어져야 할 것이다. 또 다른차이점은 두 경우 모두 진로탐색을 집중적으로 하도록 하겠다는 것은 공통적이나, 그 방법에서 차이를 보이고 있다. 즉 차기정부의 자유학기제는 진로탐색이 근간이긴 하지만, 수업방법개선과도 밀접한 관련이 있다는 것이다. 독서, 예체능, 진로체험 등의 자치활동과 체험중심의 교육을 통해 학생들이 창의성을 기르고 진로탐색의 기회를 준다는 것이다. 토론수업등을 통해 이해도를 높이는 방향으로 수업방법을 개선하여 단순 암기식, 주입식 수업의 탈피를 요구하고 있는 것이다. 체험학습 역시 다양한 분야의 체험학습을 유도하고 있는 것이다. 최종적으로는 자유학기제에 학생들이 수행한 다양한 활동을 학교생활기록부에 자세히 기록하여 실질적인 효과를 얻을 수 있도록 하고 있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진로탐색을 위한 시기의 논란이 있을 수 있다. 필자의 입장에서는 진로탐색을 위한 방안이라면 당연히 중학교 1학년에서 이루어지는 것이 옳다고 본다. 다만 중학교의 상황으로 비춰볼 때 중학교 3학년 2학기가 적절하다는 생각이다. 현재 중학교 3학년 2학기는 실질적으로 체험학습이 많이 이루어지고 있어 조금만 손질한다면 수월하게 진행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또한 중학교 3학년 2학기 성적을 억지로 내신에 포함시키는 문제도 자연스럽게 해소할 수있기 때문이다. 학생들의 성장시기에 촛점을 맞춘다면 중학교 1학년이, 학교의 여건상 최대한 효과를 얻기 위해서는 3학년 2학기가 적절하다고 본다. 또하나 지적하고 싶은 것은 자유학기제가 진로탐색과 토론이나 이해력 증진의 수업에 있다면, 중학교에서만 시행될 문제가 아니라고 본다. 외국의 경우를 보더라도 진로탐색은 이미 초등학교때부터 활발히 이루어지고 있으며, 수업방법 개선 역시 초등학교 때부터 적절한 방법으로 이루어지고 있다. 중학교 1학년이 중요한 시기이긴 하지만 초등학교와 중학교의 연계된 프로그램이 필요하기 때문에 초등학교때부터 이런 활동들이 이루어져야 한다. 중학교의 한개 학년이나 한개학기로 학생들의 진로탐색이 완성될 수 없고, 수업방법 역시 자리 잡을 수 없다. 물론 해당학기나 학년 이후에도 계속해서 연계 교육이 이루어져야 한다는 전제가 있겠지만 시작 시기가 중학교 1학년이 적절한 가에 대해서는 좀더 검토가 필요하다는 이야기이다. 인적, 물적 여건은 지역사회와 학교의 자원들을 잘만 활용한다면 큰 문제가 없을 것으로 보인다. 학교에서 자체적으로 프로그램을 개발하고 이를 학생들에게 적절히 적용할 수 있기 때문이다. 모든 여건이 완벽히 갖추어진 상태로 시작되면 좋겠지만, 그것이 여의치 않다면 현재 갖추어진 여건을 충분히 활용할 수 있는 방안을 찾는 것이 우선이다. 진학,진로 상담교사가 대부분 학교에 배치되고 있는 만큼 기존의 진로 프로그램을 다듬어서 시행해 보는 것도 좋은 방안이라고 본다. 학교내의 진학,진로 상담교사와 외부 전문가의 유기적인 관계를 이끌어낸다면 성공 가능성은 높다고 본다. 여러가지 여건이 미흡한 것이 현실이라는 것에 이견은 없다. 또한 우려의 목소리 역시 많은 것도 사실이다. 서울시교육청에서 시범운영에 들어간다고 하니, 그 결과를 지켜보는 것도 문제점을 최소화할 수 있는 하나의 방안이 될 것이다. 또한 교육공동체들의 노력이 함께 한다면 더욱더 좋은 방안이 나올 수 있다고 본다. 다만 한가지 우려되는 상황은 조급증이 일을 그르치지 않을까 싶다는 것이다. 최소한 2013학년도는 준비시기로 두고 여건이 어느 정도 갖춰진 학교부터 시행하는 것이 가장 좋은 방법이라고 생각한다.
존경하는 박형근 선생님! 영예로운 정년퇴임을 축하드립니다. 선생님이 떠나시는 이 자리, 몹시 서운한 듯 교정의 나무들마저 어깨가 움츠러 듭니다. 지난 2010년 광양여중에 부임하신지가 엊그제 같은데 벌써 3년의 세월이 흘렀습니다. 3년 동안 아이들과 함께 수많은 추억들을 만들었습니다. 늘 아이들 곁에서 사랑스런 눈빛으로 바라보는 선생님의 모습이 생각납니다. 봉강으로 옥룡으로 가정방문 갔을 때였네요. 아이에게 가정 사정을 다 듣고난 선생님께서 “뭐시야! 니는 참 좋겄다. 공부방도 있고 잉, 선생님은 니가 참 부럽다” 하시면서 자신감을 심어 주셨습니다. 아이들 등을 토닥거려 주시면서 어린아이처럼 해맑게 웃으셨습니다. 그 아이도 덩달아 웃었고 선생님과 훨씬 더 빨리 친해질 수 있었습니다. 아픔도 있었습니다. 2010년 8월 하동에서 우리들은 사랑스런 제자들을 잃었습니다. 새벽 일찍 아이들을 찾겠다고 선생님께서 같이 가자고 말씀하셨을 때 많이 힘이 되었고 든든했습니다. 선생님의 지혜를 빌려 그 힘든 아픔과 어려움을 극복할 수 있어서 참 고마웠습니다. 선생님과 함께한 수많은 친목회 모임과 배구가 생각납니다. 밤 7시까지 배구코트에서 우리들은 진한 우정의 땀을 흘렸고 웃음을 나누었습니다. 박형근 선생님의 리시브가 토스가 스파이크가 곁에 있어 참 행복했습니다. 교정 곳곳에 선생님의 꿈과 열정과 사랑이 묻어 있어 참 행복했습니다. 2012년 1월 교육과정 연수에서 우리는 늦은 밤까지 아이들을 위해 토론하면서 이야기꽃을 피웠습니다. 선생님의 경험과 경륜은 목마른 우리들에게 샘물이었습니다. “담임은 자기 학급 관리만 잘하면 된다”는 언뜻 보면 평범하지만 명언을 남기셨습니다. 야자타임 시간, 막내인 이선례선생님에게 “예. 선배님. 시킨대로 할랍니다. 앞으로 잘 하겠습니다.” 하시면서 꼼짝 못하는 모습은 지금 생각해 보아도 무척 귀여웠습니다. 이 시대 최고의 귀요미 박형근 선생님! 선생님은 참 부지런하십니다. 아이들보다 일찍 출근하시고 늘 먼저 준비하십니다. 아이들이 게으름을 피우지 못하고 부지런합니다. 그러면서도 아이들을 많이 챙겨주십니다. 설렁설렁 안하는 듯 보이면서 무슨 일이든 가장 먼저 일을 끝내십니다. 중간 걷기, 체험학습, 수학여행, 야영수련회, 학교 축제 등 학생 활동이 있을 때마다 아이들의 모습을 카메라에, 당신의 눈에 담습니다.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만큼 소중한 아이들이기에 우리는 박형근 선생님! 당신을 보내고 싶지 않습니다. 우리가 받은 사랑이 너무 크기에 당신을 보낼 수 없습니다. 당신을 보내는 마음이 너무 아픕니다. 가슴이 미어집니다. 박형근 선생님! 안타깝지만 선생님의 반어법은 아이들이 한 달이면 다 눈치로 알게 됩니다. “공부하기 싫으면 하지 마라” “야이 못생긴 가이나들아 어영부영 하지 마라” 그런데 선생님 반 아이들은 신기하게 더 열심히 공부하고 더 예뻐집니다. 2012년 제가 담임을 제안 했을 때 후배들에게 부담주기 싫다며 처음에 거절하셨습니다. 가장 아름다운 스승은 정년하시면서 담임을 맡은 선생님이고 후배들의 본보기가 된다는 말씀에 다시 용기를 내어 맡아 주셨습니다. 후배들의 본보기가 되어 주신 박형근 선생님! 고맙습니다.우리들의 아름다운 스승 박형근 선생님! 정말 존경합니다. 박형근 선생님! 정년퇴임을 진심으로 축하드립니다. 39개 성상을 쌓아 오신 그 노고와 희로애락을 어찌 말씀으로 다 하시겠습니까? 지난 광양여중의 3년, 보이지 않는 곳에서 감초같은 역할을 맡은 선생님의 지혜로 광양여중 동료애의 등불이 켜졌습니다. 고향을 지키는 후덕한 팽나무같은 박형근 선생님이 계셔서 우리들은 참 행복했습니다. 우리학교도 참 행복했습니다. 선생님이 계셔서 여기 모인 광양여중의 환하고 사랑스러운 꽃들이 다정다감하게 피었습니다. 사랑합니다. 박형근 선생님! 담배는 줄이시고 등산은 늘리면서 늘 건강하십시오. 또 뵙겠습니다. 2012년 2월 8일 교사 김남규 올림
혜진아, 네 말처럼 열심히 노력하면 좋은 결말이 있을 것이다는 네 말은 변함없는 진리라 생각한다. 그리고 준비하는 자에게 기회는 찾아온다는 너의 생각은 참 긍정적이어서 내 마음에 쏙 드는구나! 넌 장차 심리학자가 되고 싶다고 하였었지? 세상은 사람들의 마음의 움직임에 따라 변화가 일어나고 있으며 마음을 움직일줄 알면 도를 터득한 것이 아니겠니. 그만큼 인간의 심리는 복잡하고 다른 사람들의 마음을 알면 복잡하게 얽힌 문제를 쉽게 해결할 수 있을 것이다. 요즈음 세상살이가 힘들다는 사람들의 공통점은 돈 문제가 자리잡고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지금 세상은 꼭 돈문제 때문에 일어나는 것은 아니며, 성공하지 못하는 것은 아닐 것 같다. 문제는 아이디어가 부족하고 인간의 노력이 부족한 때문이 아닐까 생각한다. 내가 70년대 초 무렵 대학 진학을 할 때도 경제적 사정이 어려운 친구들은 사관학교에 진학하여 자신의 꿈을 이루었단다. 지금은 그때와는 비교가 안될 정도로 공부를 하고자 하는 사람에겐 지원이 많아 너에게 소개하고자 한다. 현대차 정몽구재단이 저소득층 학생을 지원하는 ‘창의인성 프로젝트’를 본격 가동한다니 반가운 일이다. 올해만 총 1만7600명의 학생이 이 프로그램의 지원을 받을 예정이다. 2월 7일 정몽구재단의 2013년도 사업계획에 따르면 올해 정몽구재단은 저소득층 중ㆍ고등학생이 재능과 적성을 계발ㆍ모색하는 ‘청소년창의계발스쿨’을 신규 실시한다. 기존 ‘어린이창의계발스쿨’에 이어 초등학생부터 중ㆍ고등학생까지 아우르는 프로젝트가 완성된다. 올해 연간 1만7600명의 학생이 프로그램 지원을 받게 된다. 특히 ‘청소년창의계발스쿨’은 최근 입학사정관제 도입 등 점차 창의적인 경험이 중요해지는 시대 흐름을 반영했다는 게 특징이다. 지원대상은 교육과학기술부가 정한 ‘교육복지투자 우선지원’ 중ㆍ고등학교 동아리로, 교내 동아리에서 주로 학교 창의활동이 진행되고 대입 수시 전형에서도 동아리 활동 평가 비중이 커지고 있다는 점에 착안했다. 3월 중 공모를 거쳐 180개 동아리를 선정, 1년 동안 각종 활동을 지원할 방침이다. 활동비와 연구비를 지원하고 우수교사 등에겐 해외 견학 기회도 제공한다. 또 동아리별로 진로 멘토를 소개해 진로 상담을 받을 수 있는 통로도 마련한다. 또한, 장학사업도 확대한다. 기존 소년소녀가장, 교통사고 피해가정 자녀,순직 경찰공무원 자녀에 이어 창의인성 학생, 순직 소방공무원 자녀 대상 장학금을 신설한다. 기초과학이나 문화 예술 분야 중ㆍ고ㆍ대학생을 지원했던 ‘기초과학 및 문화예술 교육비 지원사업’의 범위도 대학원생까지 확대할 방침이다. 대학생의 학자금 대출이자 전액을 지원하는 프로그램이나 고금리 학자금 대출을 저금리로 전환해주는 프로그램, 다문화 가족 및 저소득층 2만가구에 생필품을 전달해주는 사업 등 다양한 사회공헌활동도 이어간다. 정몽구재단 관계자는 “저소득층을 지원하는 프로그램을 한층 강화해 사회 발전의 근간이 되는 분야에서 더욱 체계적이고 실질적인 지원을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정몽구재단은 정몽구 현대차그룹 회장이 출연한 사재 총 6500억원을 기반으로 설립된 재단이다. 세상에는 이렇게 현대그룹 외에도 좋은 기업들이 좋은 세상을 만들기 위하여 노력하고 있단다. 만일 너에게 가정이 어려워 유학하기 어렵다면 네가 공부만 잘 하면 길이 열릴 것이다. 교장 선생님도 35살이라는 나이에 외국 정부의 도움으로 생활비와 학비 전액을 받으면서 유학을 한 경험이 있단다. 지금의 나는 그때 결심하였던 것들을 이루는 과정에 있단다. 이처럼 우리 학생들도 이렇게 지원하는 좋은 기회를 이용하여 땀을 흘려 탐색한다면 기회는 주어질 것이다. 문제는 정말 하고자 하는 '절실함'이 있는가가 문제이다. 혜진이 너도 이제 고등학교에 진학하여 동아리 활동을 통하여 견문을 넓히고 다양한 경험을 축적하여 성공한 심리학자로 인간의 삶에 행복을 가져다 줄 수 있는 인재가 되기를 바라면서 이글을 맺는다.
설날이 오면 생각나는 것들 8-- 세배할 때마다 떡죽먹기 세배를 하면 당연히 세뱃돈을 바든 것으로 알고 있는 요즘 아이들과는 달리 우리가 어린 시절에는 세뱃돈이라는 것을 몰랐다. 또 요즘처럼 자기 집에서 집안 어른들에게만 세배를 하는 것이 아니라, 온 동네를 돌면서 동네 어른들께 모두 세배를 하고 다녔다. 그런데 이런 어린이들에게 세뱃돈이 아니라 집집마다 세배를 온 사람에게 내오는 상이 있었으니, 어른들께는 술이 나오고, 함께 온 어린이들에게는 떡국이 나오는 것이다. 온 종일 3~40 집안을 돌아다니면서 세배를 하고나면 집집마다 떡국을 얻어먹어야 하는 아이들에게는 이제 먹는 것이 큰 부담이 되는 것이었다. 동네에 살다보면 어느 집에서는 어떤 음식이 맛이 있고, 어떤 집에 가면 무엇이 나오는지 이제는 대부분 잘 알게 되었다. ‘영수네 집에 가면 곶감만 먹어야지’ '경민이네 집에서는 유과가 맛이 있는데…‘ ‘부잣집 철이네에 가서는 맛있는 조청에 인절미를 찍어 먹으면 맛이 있겠지.’ 등등으로 세배를 다니면서 온 동네를 다 알게 되어 버린 아이들이었다. 그래서 아이들은 집안 어른들을 따라 다니면서 함께 세배를 하다가, 틈만 나면 한바탕 뛰어 놀다가 다시 세배를 가면 배가 부른 것을 막을 수가 있으니 틈만 나면 한바탕 뛰는 것이었다. 심지어는 다음 집으로 세배를 드리러 가는 길을 어른들이 천천히 걸어서 오시는 것을 기다리지 않고 줄달음질을 쳐서 다음 집의 앞에서 서서 기다리는 짓을 되풀이 하면서 배를 꺼치려고 노력을 하였었다. 배를 꺼친다는 말도 낯선 분들이 많을 것이다. 더부룩하게 부른 배를 뜀박질로 좀 덜 부르다는 느낌이 오게 만든다는 말이다. 가난에 찌들어 제 때 끼니를 다 먹지도 못하고 자라던 아이들은 이런 명절이나 되어야 배부르게 얻어먹을 수 있기 때문에 대부분은 집집마다 주는 떡국을 몽땅 다 먹어 치우는 것이다. 그렇게 먹고 보니 너무 배가 불러서 어떤 집에 가서는 내다 주는 떡국을 다 먹을 서가 없을 때도 있었는데, 그게 아깝게 생각이 되는 것이었다. 설날의 이야기는 아니지만, 얼마나 배가 고프게 살았던지, 하는 것을 알만한 이야기 하나 다시 들어보자. 얘들아, 앉아서 놀자 ! “엄니, 배가 고파서 잠이 안 오네에.” “그만 참고 자거라. 그래도 너는 죽을 한 그럭 반이나 묵었잖냐?” “나물만 들고 쌀도 한나 읎는 멀건 죽인디 묵으나 마나제.” 아이는 배가 고프다고 투정을 하지만 어머니는 더 배가 고픕니다. “그래 알았다야. 자 물이라도 한 그럭 마시고 자그라. 낼 모레믄 아랫뜸 김부잣집 종배네 모내기를 하는 날잉께 쌀밥 한 그럭 얻어 묵을 수 있응께. 쪼끔만 참그라.” 점돌이의 투정에 가슴이 아파오는 어머니는 어린 점돌이를 달래다가 가슴에 꼬옥 껴안고 속삭여 줍니다. 산나물에다가 겉보리 간 것을 한 주먹 넣어서 멀건 죽을 끓였지만 그것도 넉넉히 먹을 수가 없어서 점돌이에게 한 그릇을 부어 주고서 자신은 반 그릇 남짓밖에 못 먹었습니다. 온종일 산을 헤매며 산나물을 뜯노라고 지친 팔다리가 아리고, 쑤시고, 뱃속은 쪼르록 소리만 납니다. 그러나 그렇게 해서도 밥 한 그릇을 먹을 수 없는 자신이 밉고 죄를 지은 것 같아서 점돌이의 투정에 짜증을 낼 수도 없는 어머니의 마음입니다. 6.25 전쟁통에 공산당과의 싸움을 위해 살던 집들을 모두 불태우고 소개작전을 위해 사람들을 살던 마을에서 떠나 다른 곳에 있도록 하는 조치를 당해서 이웃마을로 쫓겨 온 것이 한없이 서럽고 억울합니다. 전쟁이 터지기 전까지는 오두막집이지만 내 집이 있었고, 산골 다랑이 논이지만 몇 마지기 땅도 있어서 지금 보다는 훨씬 나았는데, 전쟁이 터지고 공산당이 휩쓸고 지난 뒤 우리 경찰과 국군이 들어왔을 때 산 속으로 숨어든 공산당(빨치산) 때문에 산골 마을들은 거의가 소개를 당했고, 이렇게 이웃 마을로 옮겨와서 남의 집 방 한 칸에 눌러 살면서 지난 겨울을 났는데 벌써 식량은 떨어지고 간신히 봄을 맞았습니다. 점돌이 어머니는 점돌이의 몽구리바짝 깎은 머리를 쓰다듬으면서 등도 쓸어 주다가 내리 깔리는 눈을 주체치 못한 채 잠이 들었습니다. 드디어 종배네 집의 모내기 날 입니다. 이른 아침부터 마을 사람들은 논에 나가서 못자리에서 모를 쪄내고 있습니다. 점돌이 어머니도 남들에게 질세라 서두르고 집을 나섰습니다. “점돌아, 이따가 새참 나오면 버든 들 사장나무 아래로 와, 잉.”하고 일러두고 휑하니 사립문을 나섭니다. 해가 떠오르기가 바쁘게 사장나무 아래 쉰 평 남짓한 마당에는 온 동네 아이들이 모두 모여 진을 치고 와글와글 울고 뛰고 야단이 났습니다. 굶주린 아이들이 부잣집 모내기 날이라고 푸짐하게 내오는 참이나 점심을 얻어먹기 위해 모여든 것입니다. 부잣집에서도 이날만은 커다란 가마솥을 닦아서 솥뚜껑이 솟아오를 만큼 수북하게 밥을 짓고 음식을 만들어서 온 동네 사람들을 배불리 먹이는 것이 이 마을의 풍습이었습니다. 물론 우리나라의 대부분의 마을에서는 이렇게 해서 동네 사람들에게 봉사를 해야 마을 사람들이 농삿일을 돕는데 대한 보답이라고 생각을 하고 전해온 것이기도 합니다. 이 마을 사람들은 아침을 먹지 않고 모내기를 나오기 때문에 10시쯤이면 벌써 음식을 이고 들고 나타나는 게 보통입니다. 그러나 이 때는 남자들을 위해 마련한 막걸리와 간단한 요기거리시장기를 가실 만큼만 먹는 간단한 음식만 나오니까 아이들은 자기 엄마에게 몇 숟갈씩 얻어먹고서는 물러나야 합니다. 다시 모내기가 시작되자 아이들은 도랑물에 들어가서 미꾸라지나 송사리를 잡느라고 고무신짝을 들고 이리 뛰고 저리 뛰고 야단이 납니다. 미꾸라지 한 두 마리를 잡아 가지고 무슨 보물이라도 된 것 마냥 자랑스러워합니다. “나 미꾸라지 두 마리나 잡았다 ! 이것 봐라!” “으디, 으디?” “안되야. 도망간단 말야,” 이렇게 야단들을 하는 아이들은 땀등거리삼베나 모시베로 만든 가슴과 등만 가리게 된 땀받이 옷 에 흙탕물을 매대기반죽이나 진흙을 함부로 되바름를 쳐서 아이들이 미꾸라지인지 미꾸라지가 사람인지 모를 만큼 모두가 흙투성이입니다. 그러는 동안에 점심때가 되었습니다. 점심을 이고 아주머니들이 나타나자 사장나무 밑은 벌써 아이들이 북새통을 이루고 맙니다. “느그덜은 쩌리 가서 가만히 기대리고 있어라. 곧 점심을 퍼서 나눠 줄텡께 잉.” 아주머니 말씀에 아이들은 한쪽으로 우르르 몰려가서 풀각시도 만들고 네 잎 짜리 토끼풀도 찾으면서 기다립니다. 어른들이 손발을 씻고 나오시고 푸짐한 점심상이 차려졌습니다. “점돌아, 이리 와서 밥 묵어라.” 어머니가 부르기 무섭게 접돌이는 어느새 숟가락을 들고 밥그릇에 덤빕니다. 커다란 행기밑이 널찍하며 펑퍼짐하게 생긴 주발의 한 종류에 수북하게 담긴 밥은 아마도 집에서 먹는 밥그릇에 담는다면 세 그릇은 될 성싶게 많았습니다. 아무래도 가난한 점돌네 식구를 위해 특별히 더 많이 퍼담은 그릇을 주었나 봅니다. 어머니는 점돌이가 정신 없이 퍼먹는 모습을 보니 숟가락이 가지 않습니다. 자신은 조금씩 떠먹으면서 갈치 볶음을 떼어 놔주고, 김치를 찢어 놓아주면서 점돌이가 먹는 수발을 하느라고 정신이 없습니다. “점돌아 ! 아그만 멕이지 말고, 너도 어서 좀 묵어. 여기 밥 더 줄팅께, 어서 묵어야 일을 하제 잉.” 이웃에 사시는 영순이 엄마가 밥을 가득 떠 넣은 채 우물거리면서 하시는 말씀에 점돌이 어머니는 고개만 끄덕입니다. 그 푸짐하던 밥그릇이 반도 더 없어지고 나자 , 영순이 엄마는 밥을 한 그릇 더 가져다 주셨습니다. 점돌이가 그 큰그릇을 거의 다 먹었고, 점돌이 어머니는 나중에 가져다 준 밥을 먹었습니다. 어지간히 먹었던지 점돌이가 수저를 놓고 물그릇을 찾아들고 자리를 떴습니다. 벌써 아이들은 밥을 다 먹고 저 만치 나무 그늘에서 뒹구는 아이, 씨름을 하는 아이들도 있었고, 어른들도 피곤하신지 풀밭에 누워 눈을 감고 낮잠을 청하는 분들도 계십니다. 점돌이는 너무 먹어서 움직이기가 거북해 뛰어 놀 수가 없었습니다. 간신히 물을 한 그릇 떠서 몇 모금 마시고 아이들이 노는 곳으로 갑니다. 그러나 배가 너무 불러서 아이들과 함께 뛰어 놀 엄두가 나지않습니다. 정자나무에 기대앉아서 멍하니 바라보고 있는 점돌이에게 이웃집에 사는 병식이가 “점돌아, 빨리 일어나 ! 우리 닭싸움하자.”하고 함께 놀자고 재촉을 합니다. 그러나 배가 너무 불러서 움직이기도 싫고, 움직일 수도 없는 점돌이는 “아그들아, 앉어서 놀저.”하고 말해 보지만 한 창 신바람이 난 아이들은 누구 하나 들은 채도 하지 않고 놀이에 정신이 팔렸습니다. 점돌이는 정자나무에 기대앉은 채 멍하니 아이들을 바라보고 있다가 스르르 잠 속으로 빠져듭니다. 입가에 흘러내리는 침에 파리가 날아들었지만 아무것도 모른 채 정자나무에서 땅바닥으로 쓰러져 깊은 잠이 들어 버립니다. 버드내 들판 여기저기에서 모내기에 바쁜 모습과 존재산 기슭으로 내리 뻗친 산들, 파란 하늘에 두둥실 떠있는 흰 구름이 한층 더 한가롭습니다.
설날이 오면 생각나는 것들 4-- 유과 만들기 설날 차례상에 빠져서는 안 되는 것 중의 하나가 유과 유밀과 또는 산자라고 부른다.옛날부터 명절 때나 제사 때 만들어 먹던 우리나라 고유의 과자로서 특히 전남지방 특유한 조리법이 전래되어 현재에 이르고 있다. 만드는 법을 보면 찹쌀과 콩은 5일 정도 물에 불려 곱게 빻는다. 찹쌀가루와 콩가루를 골고루 섞어 따뜻한 물과 술(막걸리, 소주, 청주)을 넣어 반죽한다. 찜통에 면포를 깔고 반죽을 뒤적여 주면서 1시간 정도 찐 다음에 함지나 절구에서 서로 섞이도록 나무방망이로 20여분 간 치댄다. 도마 위에 밀가루를 깔고 반죽을 탁구공보다 좀 크게 떼어 밀가루를 묻혀가며 밀대로 두께 0.3㎝ 정도로 밀어 네모나게 만든다. 따뜻한 방바닥에 네모나게 만든 반죽을 한지 위에 놓고 골고루 건조되도록 뒤집어 주는데, 이때 톡 소리가 나면서 부서질 때까지 3일정도 충분히 건조시킨다. 이때는 아이들은 방안에 얼씬도 해서는 안 된다. 망가뜨리기도 할 염려가 있지만, 먼지나 머릿카락이 날린다고 그 방에는 들어가지도 못하게 하였기 때문이다. 이것을 반대기라하고 이 반대기를 밀가루를 완전히 털어내고 식물기름(들기름 혹은 콩기름 사용)에 튀겨내는데, 잘 튀겨지면 색깔이 하얗게 변하면서 부풀게 하는데 이때 온도는 160~180℃가 적당하다. 뜨거운 기름에서 하얗게 튀겨낸 후에 건져 기름을 쏙 뺀다. 이렇게 기름에 튀긴 것을 유과 반대기라 하며 이 반대기에 꿀, 엿, 혹은 조청을 바르고(집청) 표면에 각종 고명(튀밥, 버섯류, 실파, 실고추, 통깨, 은행, 호두 등을 이용한 장식)을 붙인 것을 유과라 한다. 이때 쓰는 튀밥도 요즘처럼 뻥튀기 기계가 없었으므로, 직접 만들어야 한다. 가마솥에서 충분히 불린 찰벼를 20분 정도 볶으면 쌀알이 튀기 시작하면서 벼껍질이 알맹이에서 떨어진다. 이때 분리가 안 된 껍질은 골라낸다. 곶감은 씨를 뺀 다음 가늘게 채를 치고 석이버섯은 물에 불려 깨끗이 씻은 다음 물기를 없애고 채를 친다. 고명 놓을 위치에 조청을 바른 다음 채친 곶감과 석이버섯 등을 놓는다. 담을 용기에 한지를 깔고 유과를 넣은 다음 바람이 들지 않도록 밀봉하여 서늘한 곳에 보관하면 오랫동안 제 맛을 잃지 않는다. 조선시대에는 과정류가 의례식품 및 기호식품으로 널리 이용되었으며, 왕실이나 양반들 사이에 성행하여 세찬이나 제품, 각종 연회상에 빠질 수 없었던 행사식으로 사용되었다. 유과 중 강정은 민간에서도 널리 유행하였는데, 특히 정월 초하룻날 만들어 먹었다. 조선시대에 한 때는 강정이나 약과를 만들어 먹으면 쌀을 낭비한다고 민가에서는 만들어 먹지 못하게 나라에서 금하기도 하였었다고 한다.
설날이 오면 생각나는 것들 5-- 떡국대 만들기, 썰기 요즘은 떡국대도 시장이나 떡집에서 그냥 사오면 되지만, 옛날에는 그렇게 만들어 주는 곳이 없었기 때문에 각자 자기 집에서 만들어야 했다. 내가 어린 시절에 직접 떡국 대를 만드는 과정을 보고 자라다가, 중학교 시절부터 방앗간에서 떡국 대를 뽑아주는 곳이 생겼다. 그런데 우리 집에서 아버님께서 방앗간을 운영하고 계셨기 때문에 떡국 대를 뽑는 일을 도와야 하였다. 중 2,3 때인 1958,9년의 설날이 다가올 때는 방학 동안이 되어서 이일을 도와드리곤 하였다. 집에서 직접 만들기는 떡쌀을 담가서 그냥 쌀로 고두밥을 지어서 하는 경우도 있고, 그렇게 하면 곱지 않다고 가루로 빻아서 익혀서 하는 경우도 있었다. 이렇게 익힌 밥이나 익힌 가루를 절구에 넣고 곱게 찧어서 잘 찧어진 것을 큰 도마 위에 놓고 길게 늘이면서 비벼서 요즘 기계로 뽑은 떡국 대처럼 만들어서 말려 둔다. 만 하루가 지날 무렵에 썰어야 하는데, 만약이 너무 시간이 이르면 칼에 달라붙어서 썰기가 쉽지 않고, 너무 마르면 손바닥에 멍이 들도록 썰어야 하였다. 이렇게 써는 일이 힘들다 보니 어떤 집에서는 동전모양으로 떡국 대와 직각이 되게 썰어서 동전모양을 만등어서 떡국을 끓이기도 하였다. 그러나 대부분의 집에서는 약 45도의 각도로 썰어서 길쭉한 타원형이 되게 써는 것이 보통이다. 요즘 파는 떡국 모양으로 써는 것이다. 중학교 시절부터 방앗간에서 떡국 대를 뽑아주게 되었을 때부터는 떡국 대를 좀 더 많이 하게 되었는데 기계로 뽑은 떡국은 더 굳기 쉬워서 조금만 늦어지면 도저히 썰 수가 없게 된다. 중2학년 때 우리 집은 전남 장흥군 유치면 공수평이라는 마을에서 물레방앗간을 하시고 계셨다. 방학 동안이어서 떡국 대 만드는 것을 도와드려야 하였는데, 각자 집에서 밥을 쪄 가지고 오면 시루째 방앗통에 부어서, 막대로 쑤셔 넣어주어야 하는데 이것을 온 종일 하게 되면 어지간히 힘센 장정이라도 몸살이 날 지경이 된다. 온 종일 차진 쌀밥을 눌러서 내려가게 만드는 일이 보통 힘든 일이 아니기 때문이다. 힘들어 하시는 아버님을 대신하여 내가 한 두 시간씩 교대를 해드리곤 하였다. 보통은 단 번에 빼 나오지만 아주 나쁜 경우는 두 번이나 빼어야 하는데 그렇게 되면 다져져서 더 힘이 들었다. 방앗간의 틀에서 단 한 줄이 나오게 만들어져 있었지만, 우리 집에서는 아버님께서 두 줄이 나오게 손수 만드신 마우스를 썼기 때문에 그만큼 더 빨리 뽑을 수 있었다. 잘 뽑아진 떡국 대를 펴서 굳어지게 하고 마르면 썰어야 하는데, 방앗간에서 뽑은 떡국 대는 어지간히 단단해서 굳어지기만 하면 썰 수가 없었다. 그래서 써는 기계를 만들었다. 떡국대가 통과할 만큼한 대나무 통을 45도 각도로 잘라서 도마에 고정시킬 수 있게 만들었다. 이렇게 한 대나무 통을 통과하여 나오는 떡국 대를 칼을 마치 작두처럼 작용을 하게 대고 자르기ㅐ 시작을 하면 적당한 속도로 밀어 넣으면서 칼을 눌러주기만 하면 저절로 잘 썰어지는 것이었다. 이렇게 써는 작업은 온가족이 총동원이 되어야만 하였으니 온 집안의 남녀 할 것 없이 어른들은 모두 모여서 빙 둘러 앉아서 썰어서 한 가운데에 둔 커다란 함지박에 수둑하게 쌓이도록 썰어대곤 하였다. 내가 어린 시절에는 우리 집의 식구가 15,6명이나 되었으니, 한 번에 한 끼 먹을 떡국을 끓이는데도 한 함지박이 들어갈 정도이었으니 어지간히 많이 하지 않으면 안 되었었다. 그래서 설이 돌아오면 온 가족이 모두 설 준비를 하는데 함께 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잡초를 없애는 법 한 철학자가 오랫동안 가르쳐 온 제자들을 떠나보내며 마지막 수업을 하기로 했다. 그는 제자들을 데리고 들판으로 나가 빙 둘러앉았다. 철학자는 제자들에게 물었다. “우리가 앉아 있는 이 들판에 잡초가 가득하다. 어떻게 하면 잡초를 모두 없앨 수 있느냐?” 제자들은 학식이 뛰어났지만 한 번도 이런 문제에 대해 생각해 보지 않았다. 그들은 모두 건성으로 대답했다. “삽으로 땅을 갈아엎으면 됩니다.” “불로 태워 버리면 좋을 것 같습니다.” “뿌리째 뽑아 버리면 됩니다.” 철학자는 제자들의 대답에 고개를 끄덕이고는 자리에서 일어나 말했다. “이것은 마지막 수업이다. 모두 집으로 돌아가서 자신이 말한 대로 마음속의 잡초를 없애 보거라. 만약 잡초를 없애지 못했다면, 일 년 뒤에 다시 이 자리에서 만나기로 하자.” 일 년 뒤, 제자들은 무성하게 자란 마음속 잡초 때문에 고민하다 다시 그곳으로 모였다. 그런데 예전에 잡초로 가득했던 들판은 곡식이 가득한 밭으로 바뀌어 있었다. 스승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고 이런 글귀가 적힌 팻말 하나만 꽂혀 있었다. “들판의 잡초를 없애는 방법은 딱 한 가지뿐이다. 바로 그 자리에 곡식을 심는 것이다. 마찬가지로 마음속에 자라는 잡초는 선한 마음으로 어떤 일을 실천할 때 뽑아낼 수 있다.”《좋은생각》2007년 9월호 중 강점을 살리는 교육 선생이라는 직업의 특성 탓인지 세상을 보는 눈이 긍정보다는 부정적인 경우가 많은 자신을 봅니다. 제자들이 바람직하지 못한 점을 고쳐서더 좋아지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늘 충고를 하거나 훈계를 하고 살기 때문입니다. 그것이 지나쳐서 잔소리가 되기도 합니다. 누구라도 완벽한 사람이 없다는 점을 잊은 채 어린 제자들에게, 자식들에게 은연중에 범하는 잘못된 습관이기도 합니다. 99가지 강점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한 가지 단점에 집착하여 훈계하는 버릇을 고치고 싶습니다. 그 단점이 도덕적으로나 인격적으로 큰 흠결을 지닌 것이 아니라면 상처를 주는 일만은 저지르지 않겠다는 게 설날을 맞이하는 마음입니다. 깨끗한 백지 위에 까만 점 하나를 찍어놓고 무엇이 보이냐고 물으면 대부분의 사람들이 까만 점만 보인다고 지적합니다. 나머지 99%의 백지보다는 1% 밖에 되지 않는 까만 점에 집착합니다. 그 버릇이 바로 선생으로 살아온 제 습관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드는 요즈음입니다. 제자들이 지닌 검은 점 하나가 위의 선사가 말한 잡초라는 생각을 하기로 했습니다. 잡초 한 뿌리에 집착해서 없애려고 몸부림치다가 시간을 허비하고 상처를 내느라고 그가 지닌 강점을 키우지 못하는 잘못을 하지 말자고 다짐하며 소개한 글입니다. 잡초는 아무리 뽑아도 다시 생깁니다. 독한 농약을 쓰면 잠시 없어진 것 같지만 시간이 지나면 더 독한 잡초로 돋아납니다. 잡초의 생명력이 얼마나 강한지 농사를 지어보면 압니다. 마치 인체에 생겨난 암과 같이. 암을 대하는 최근의 의학지식들은 암을 사랑하라고 말합니다. 무리하게 칼을 댔다가 온몸으로 혈액을 타고 흘러서 암종이 퍼지는 경우에는 생존 자체가 힘들다는 것입니다. 초기가 아니라면 함부로 칼을 대지 말고 살살 달래서 같이 살라는 의학서적을 읽으면 인생의 지혜를 보는 것 같아 깨달음을 얻습니다. 제자들이 가진 잡초 한 포기에 집착하지 말고 그가 가진 강점을 찾아내어 살려내면 잡초를 키우는데 마음을 덜 쓰게 될 것입니다. 강점을 찾아 칭찬하고 격려하며 자신감과 자존감을 높여서 성취의 기쁨을 얻는 기회를 자주 맛보게 하는 것입니다. 인간은 인정받기를 좋아합니다. 칭찬받기를 좋아합니다. 부모나 선생님에게 인정을 받기 시작하면 달라지기 시작합니다. 누군가 자신을 믿어주고 지지한다는 사실에 고무됩니다. 그것은 일회성에 그쳐서는 안 됩니다. 입에 발린 칭찬이어서는 안 됩니다. 진정성이 담긴, 눈높이를 맞춘 마음에서 우러나온 진심일 때 감동을 주는 언어가 되어 마음밭에 꽂힙니다. 변화는 그 다음부터 생깁니다. 지혜롭게 늙어가기를 우연히 읽은 에피소드에 꽂혀서 이 글을 씁니다. 설날을 맞아 나 자신에게도 그렇게 살자고 다짐을 합니다. 내가 가진 잡초와 같은 단점과 약점에 집착하지 말자고, 그보다 더 많이 가진 강점을 키우자고 생각하니 한 살을 더 먹는 우울함으로부터 벗어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나이가 들면 두 가지로 나뉜다고 합니다. 지혜로운 사람이거나 자기 생각만 옳다고 고집부리는 사람이 되거나! 나이가 들수록 혀처럼 부드럽게 살기보다는 쇠막대기나 두꺼운 나무막대처럼 옹고집을 부리는 사람들을 만나면 숨이 턱턱 막힙니다. 아예 다른 사람의 말은 들을 생각도 없이 소리 지르는 노인들을 보는 일이 어렵지 않습니다. 제가 어렸을 때 보았던 동네 어르신들은 인자했다고 기억됩니다. 따스한 인품으로 힘들어하는 동네 사람들을 위로해 주시곤 했습니다. 옆 집 아이도 잘 돌봐 주시곤 했습니다. 무엇보다 잘 웃으셨습니다. 그런데 요즈음의 어르신들 모습에서는 웃음과 인자함이 줄어든 것 같아 안타깝습니다. 오히려 화를 잘 내시거나 골을 부리는 분들이 많아졌습니다. 자신의 강점을 꾸준히 살리지 못하고 타성에 젖어 살다보면 잡초가 자라 쭉정이 밭이 되어가는 줄도 모르고 나이만 들어갑니다. 묵정밭이 되어버리면 자식들도 힘들어합니다. 인간이 평생 공부를 해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공부란 어느 한 시기에만 해당되는 것이 아님을 옛 선비들의 지혜를 통해 배웁니다. 끊임없이 책을 읽어야 죽어가는 뇌세포를 자극하여 새로운 시냅스를 만들어 낼 수 있습니다. 그런 점에서 본다면 교직만큼 뇌세포의 노화를 지연시키는 직업도 없다고 봅니다. 늘 공부를 해야 하니까요. 제자들을 위해서나, 나 자신을 위해서도 이미 나와 함께 살고 있는 잡초에 연연하지 말고 좋은 생각을 가꾸는 노력을 해야겠습니다. 지혜롭게 늙어가는 방법을 찾아서 하나씩 실천해야겠습니다. 어떻게 하면 제자들과 자식들, 이웃들에게 내가 가진 것들을 표 나지 않게 나눌 것인지, 선한 마음으로 선한 씨앗을 뿌릴 것인지 생각하는 설전야입니다. 한교닷컴의 모든 가족 분들께 설날 인사를 올립니다. 지면으로나마 인사올립니다. 행복하시고 건강하소서! 새해에도 변함없이 좋은 글로 한교닷컴을 빛내주시길 빕니다. 좋은 생각으로 깨우쳐 주시길 빕니다.
최근 세계 경제지도의 지각 변동이 일어났다. 그러나 이는 이미 예정된 것이라 할 수 있다. 일본 요미우리 신문 보도에 의하면 지난 해 중국이 미국을 제치고 세계 최대 교역국이 됐다는 보도가 나왔다. 1978년 개혁·개방을 실시한 이후 34년 만이다. 철강과 자동차 생산에 있어서도 중국은 세계 최고 자리를 지켰다. 국제통화기금(IMF)과 세계무역기구(WTO)가 지난 달 21일 발표한 지난해 중국의 교역액은 3조8900억 달러(약 4100조원)로 미국의 3조8700억 달러보다 200억 달러 많았다. 개방 4년째에 접어든 81년 중국의 수입·수출 규모는 미국의 8%에 불과했었다. 중국 경제는 전 세계의 11%를 차지했다. 지난 해 중국의 국내총생산(GDP)은 8조3000억 달러로 미국(15조6000억 달러)의 절반을 넘었다. 1인당 GDP는 6200달러였다. 영국의 이코노미스트지는 중국 경제 규모가 2000년대 들어 매년 9000억~1조4000억 달러씩 커지고 있어 이 같은 추세라면 이르면 2018년, 늦어도 2020년에 미국을 추월할 것으로 예상했다. 이같은 현실 속에서 한국의 경제는 중국의 영향을 무시할 수 없는 상황임을 직감하게 된다. 그러나 아직도 우리의 의식은 크게 달라진 것이 없다. 중국은 한국보다 경제가 뒤진 나라쯤으로 여긴다면 미래가 힘들어질 것이라는 예감이다. 춘절을 맞이하여 한국을 찾는 관광객의 모습도 뉴스꺼리가 되어 일본인이 빈 자리에 중국인들이 자리잡아 가고 있다. 분명히 중국인의 외모나 행동양식은 일본인과는 다른 모습이다. 그러나 이러한 다른 모습을 이유로 이들에 대한 대접을 소홀히 하면 안되는 상황에 놓인 나라가 한국이라는 나라이다. 한국을 자주 오가는 지인들이 터트린 불만을 귀담아 들은 일이 있다. 한국에선 중국인들이 시끄럽고 덜 씻는다는 선입견으로 관광객(요우커)들을 기피하는 일이 종종 있다는 것이다. 사회주의 집단문화의 영향에, 머리를 자주 감으면 건강에 좋지 않다는 생활 관습 때문에 생기는 불가피한 문화 충돌인데 냉대를 받고 나니 얼굴이 화끈거리면서도 속이 뒤집어지더라는 것이다. 연휴 때 한국을 찾는 요우커들의 씀씀이가 매우 큰 사람들이다. 이들은 지역사회와 소속 직장에서 오피니언 리더에 속하는 사람들이다. 압축 성장으로 인민들의 주머니가 두둑해졌다지만 춘절에 해외 여행 정도 갈 수 있는 계층은 13억 중국인들 가운데 아직은 소수에 불과한 현실이다. 객지 생활 하는 저임금 노동자들은 길게는 3~4년에 한 번 하는 귀성이니 며칠이 걸려도 고향으로 갈 테지만 요즘 소득 수준이 웬만한 중국인들은 굳이 춘절에 맞춰 고향을 찾지 않는다고 한다. 그렇다고 폐에 끔찍한 영향을 미친다는 초미세 먼지가 짙어지는 대도시에 머무를 리도 없다. 최대 2주나 낼 수 있는 춘절 연휴 때 아예 중국을 떠나 유럽·미국·동남아 등 해외 휴양지로 나가는 시대가 되었다. 한국에도 6만 3천명의 요우커(遊客·관광객)들이 찾아온다니 명절을 맞아 한산했을 서울 도심의 쇼핑가와 제주도 등 유명 관광지가 요우커들로 한바탕 들썩거릴 모양이다. 마침 인내의 한계를 시험 받는 맹독성 스모그에 시달리다 떠나는 춘절 여행인 만큼 한국의 녹색 환경과 청정 이미지를 각인시킬 수 있는 좋은 기회를 맞이하고 있다. 먹거리 안전 때문에 늘 심리적으로 쫓기고 오염된 공기를 깊이 마시며 정신적으로 지쳐 있을 요우커들에게 발상의 전환을 자극하는 기회의 문이 우리에게 열린 것이다. 환경은 경제성장의 브레이크가 아니라 지속가능한 성장을 위한 필수 조건이라는 신념이 생기게 된다. 질 높은 깨끗한 환경과 중국 관광객을 고객대접하는 서비스 자세는 중국인들에게 새로운 서비스이자 갖고 싶은 상품이 될 것이다. 또한, 신뢰할 수 있는 먹거리 제공과 청정 산업 경쟁력과 원천기술, 관리 노하우는 우리의 새로운 상품으로 개발되도록 연구가 필요한 시점이다.
설날이 오면 생각나는 것들 3-- 조청 단지 설날이 돌아오면 주부들이 하는 큰 일 중의 하나가 조청을 곱는 일이다. 설탕이 귀하던 시절에 시골에서는 설날에 조청을 고우면 이것이 일 년 내내 가족들에게 줄 수 있는 단 것의 재료를 만드는 일이 되었다. 혹시라도 단 ㅈ것을 먹을 일이 생기거나 어르신들을 모시고 사는 사람들은 설에 만든 조청을 단지에 모셔두고 일 년 내내 꿀 대신으로 새ㅣ용하곤 하였던 것이다. 그러다보니 이 조청을 곱는 일이 보통 큰 일이 아니었다. 가을에 보리씨를 뿌리고 남겨주었던 보리를 물에 불려서 시루에 담아서 놓아두고 하루에도 몇 번씩 물을 주곤 하면 보리가 싹을 틔우기 시작한다. 이렇게 보리 싹이 나오기 시작하면 2,3일 동안 더 싹을 키워서 싹의 길이가 1~3cm정도가 되면 멍석에 널어서 말린다. 이것을 엿기름이라고 하는 식혜의 원료가 되는 것이다. 이렇게 잘 말린 엿기름을 맷돌에 갈면 엿기름가루가 되는 것이다. 조청을 만들려면 우선 식혜를 만들어야 한다. 엿기름을 물에 불리도록 충분히 물을 붓고 담가두고 나서 고두밥을 한다. 고두밥은 술을 빚을 때 하는 밥을 일컫는데 보통 먹는 밥보다 더 되고 고슬 하게 짓는다. 엿기름을 담가둔 것을 잘 주무르면서 엿기름물을 만들어서 잘 가라앉혀 두었다가 윗물만을 따라서 붓고 고두밥을 넣어서 훌렁하게 저어서 물독에 담아서 아랫목에 놓고 이불로 싸서 하룻밤을 숙성시킨다. 24시간 정도 하면 가라앉았던 밥풀이 위로 떠오르면서 달착지근한 식혜가 된다. 엿기름물 남은 것과 나머지 엿기름을 잘 주물러 받아낸 것을 합쳐 가라앉힌 엿기름물을 잘 따라서 식혜가 된 것과 함께 솥에 넣고 끓이면 한 솥 가득 식혜가 된다. 이 식혜를 그냥 식혜로 먹기도 하지만 조청을 만들기 위해서는 식혜를 체에 밭쳐서 물만 따라낸다. 그리고 밥풀은 꼭 짜고 나서 버리게 된다. 물론 그냥 버리지 않고 어린아이들의 간식거리로 주는데 어린 시절이 식혜 밥이 얼마나 달콤하고 맛있는지 잔뜩 먹고 나면 당분이 너무 많아서 배가 아프곤 하였다. 식혜에서 물만 따로 받아낸 물식혜물을 솥에 넣고 더 진하고 걸쭉해지도록 끓이는 것을 곱는다고 한다. 한나절 정도 장작 물에 고운 조청은 마치 꿀처럼 걸쭉하고 진하게 된다. 타지 않게 저어가면서 곱던 주부들은 주걱으로 조청을 떠올려서 길게 줄을 이루고 바닥에 닿을 정도로 걸쭉해지면 곱기를 그친다. 이제 조청이 다 된 것이다. 이 조청을 한 단지 담아서 방안의 놀은 다락방이나 아이들의 손이 닿지 않는 곳에 잘 간직해주는데 이것이 꿀 대신이고 유일하게 감미료의 재료가 되는 것이다. 이 조청요즘 시장에서 파는 요리당 중에서 약간 검붉은 빛을 띠는 것과 같은 모양과 색, 맛을 지녔음 : 요리당 중에 조청이라 쓴 것도 보임은 설날에 집에서 만든 인절미나 쑥떡을 먹을 때에 찍어먹는 재료가 되는 것으로 설 준비물 중에서 아주 중요한 것이다. ** 여기서 내 어린 시절에 이웃에서 일어난 조청단지에 얽힌 이야기 하나 들려 드리죠. 조청 단지 “필호야, 문턱이 우디냐?” 어머니는 정신을 차릴 수가 없어서 팔을 휘두르며 소리칩니다. 먼 옛날 게딱지같은 초가집들이 옹기종기 모여 앉은 산골 마을에서 끼니조차 이어가기가 어렵던 시절이었습니다. 이렇게 생활이 어려우면서도 설날, 추석날은 물론 삼질, 초파일, 단오, 유두, 칠석, 백중 등 갖가지 명절을 잊지 않고 쇠고, 어른 아이 할 것 없이 손꼽아 기다리곤 했었지요. 이 무렵에는 지금처럼 군것질을 할 만큼 생활에 여유도 없었지만, 돈이 있다고 하더라도 요즘처럼 맛있는 과자와 빵 같은 맛있는 음식도 없고, 마음대로 사먹을 수 있는 상점도 없었습니다. 시골에서는 몇 십리를 걸어서 가는 장날이나 되어야 과자라도 몇 개 살 수 있었고, 엿장수가 마을을 찾아오는 날이라야 단물이 흐르는 엿을 사먹을 수 있을 뿐 구멍가게도 있을 리 없고, 더더구나 수퍼나 연쇄점 같은 가게는 서울에도 없을 때였으니까요. 그래서 명절이 되면 보통 때에 먹을 수 없는 색다른 음식을 배불리 먹을 수가 있었기 때문이었는지도 모릅니다. 먼 남쪽 바닷가에서 조금 산골로 들어간 산골 마을에 다섯 살짜리 필호와 세 살짜리 필순이 남매를 데리고 동네에서 제일 조그맣고 초라한 오두막집에서 엄마 혼자서 어렵게 살림을 꾸려가고 있는 집이 있었습니다. 너무나 가난하여 1년 내내 쌀밥 한 그릇을 마음놓고 먹여 보지 못한 필호 어머니였기에 설날이 가까워지자 큰맘 먹고 좁쌀로 조청을 한 단지 만들어 보물처럼 아끼는 단지에 담아 두고, 찹쌀에 쑥을 듬뿍 넣어서 쑥떡도 한 함지박 모촘하게 해두었습니다. 1년 내내 먹고 싶은 것을 제대로 먹이지 못한 어린것들에게 설날만이라도 배불리 먹여 주고 싶었고, 사실은 엄마도 무척이나 떡이 먹고 싶었지만 참아왔었기 때문이었습니다. 먹고 싶다고 떡을 해먹고 나면 새 봄엔 식량이 떨어져서 굶든지 굶지 않으려면 누구네 집에서 장리쌀(1년에 50% 이자를 물어야 하는 빚)을 얻어먹어야 하기 때문에 참고 남의 집 잔치나 제삿날이면 음식품(음식을 만드는 일을 돕는)을 팔아서 품삯도 받고 먹고 싶은 음식도 얻어먹으면서 참아 왔지만 남의 집 음식을 얻어먹는 게 어디 흡족하게 얻어먹을 수 있었겠어요. 말랑말랑하게 찐 쑥떡을 한 덩이 뚝 떼어서 초코렛 빛이 나는 걸쭉한 조청(물엿)을 듬뿍 찍어 먹는 맛이란 어디에도 비길 수 없을 만큼 좋았습니다. 손가락에 묻은 떡과 조청을 빨아 먹다보면 그만 혓바닥까지 따라 넘어가는 것만 같습니다. 어머니는 아이들에게 한 조각이라도 더 먹이려고 침을 꼴깍 삼키면서도 귀여운 아이들을 들여다보면서 먹이고 또 먹여 주었습니다. 아직 다섯 살짜리이지만 건강하고 아직 배불리 먹어 보지 못한 필호는 어지간히 먹을 탐이 심해서 언제나 더 달라고 조르기 일쑤이고, 딸따니 필순이도 조청을 찍은 쑥떡이 그리도 맛있는지 깜찍하게 생긴 그 까만 눈동자를 굴리면서 오물오물 씹어 삼키고선 입술이 닳도록 빨아댑니다. 이렇게 맛있게 먹다보니 한 단지 그득하던 조청과 함지박 모춤하던 쑥떡이 며칠도 가기 전에 조금 밖에 남지 않았습니다. 필호 엄마는 너무나 아까와서 밑바닥에 조금 남은 조청을 아끼고 아끼면서 어린것들을 달래서 한 입 먹이고는 “참아라 !” 두 입 먹이고 나서 “먹고 싶더라도 조금만 참아라!” 하고 아꼈지만 열흘이 되기도 전에 바닥이 나고 말았습니다. 다 먹어버린 조청이 자꾸만 나오는 요술단지도 아니건만 어머니는 떡으로 닦고 또 닦아 먹어서 단지 바닥이 다 닳아버릴 만큼 닦아 먹고서도 그냥 풍덩 물에 씻을 수가 없었습니다. 아이들이 없는 사이에 아까운 조청단지를 씻으려고 내어놓고 이리저리 손가락으로 훑어보았습니다. 그러나 손가락에 묻어 나오는 게 없었습니다. ‘헐 수 없제. 쌔로 훑어 봐야제.“ 필호 어머니는 조청단지를 핥기 시작하였습니다. 큰 수박 만큼한 항아리를 주둥이 쪽에서 핥아보고 점점 안쪽으로 핥을수록 조청이 조금씩 더 많이 묻어 있는 것만 같았습니다. ‘쪼끔만 더, 쪼끔만 더.’ 하다가 머리는 자꾸만 항아리 속으로 들어갔습니다. 그러나 핥기에 정신이 팔린 필호 어머니는 그만 덥썩 항아리를 덮어쓰고 말았습니다. ‘아이고, 큰일 나부렀구만,’ 머리를 빼려 했지만 뒷머리에 틀은 낭자와 비녀가 단지에 걸려서 뺄 수가 없습니다. 손을 넣어서 머리를 풀어 보려고 했지만 손가락이 들어갈 틈새가 없었습니다. 숨이 막힐 것 같았으나 쉽게 빠져 나올 방법이 없어서 안달이 났습니다. 하는 수 없이 소리를 쳐보았습니다. “필호야, 필호야 ! 아이 문턱이 어디라냐 ?” 그러나 단지 속에서 지른 소리에 귀청이 터질 듯 쩌렁쩌렁 울려서 귀만 아플 뿐 밖에서는 소리가 들리지도 않았습니다. 하는 수 없이 두 팔을 허우적거리며 문턱을 찾았습니다. ‘문턱을 찾아서 박치기를 하문 이놈의 항아리 박살이 나겄제?’ 호박가면을 쓰고 가장행렬에 나온 사람처럼 두 팔을 허우적거립니다. 금방 까지도 그렇게 고맙고 아깝던 조청단지가 원수만 같고 어서 깨뜨려서라도 벗어 던지고 싶습니다. 두 걸음만 걸어가면 어디든지 벽이 만져질 좁은 방이건만 허둥지둥 제자리를 맴돌고 있으니 문턱을 찾을 수가 없습니다. 또다시 팔을 휘두르다 간신히 벽을 스치고 나서 “옳제, 여그 그만.” 하고 혼자 중얼거리며 벽을 더듬어 문을 밀어 젖혔습니다. “엄니!" 뛰어들던 필호가 문에 마당까지 떠밀려 가서 털썩 주저앉았습니다. “아아앙--” 우렁찬 소리를 지르며 발버둥을 치려고 발을 뻗치려다가 조청단지를 덮어쓴 어머니의 모습을 보고 “엄니이 !” 하고 두 눈이 둥그래져서 소리를 치는 순간 “쿵, 짤그랑!” 깨어지는 소리와 함께 조청단지는 박살이 나고, 얼굴이 시뻘개진 어머니의 모습이 나타났습니다. “와아, 아하하하하! 엄니가 단지 속에서 나왔다. 단지 속에서 나왔당께 ! 아하하하.” 필호는 배를 움켜쥐고 데굴데굴 구르면서 깔깔거립니다. 어머니는 눈에서 불이 번쩍 나도록 이마가 아팠지만 깨어진 단지 조각을 주어서 맞춰 보면서 “내가 미쳤제, 미쳤어.” 하고 중얼거립니다. 필호는 울상이 되어서 어머니의 이마를 만져보며 물어 봅니다. “엄니, 안 아퍼?” “필호야.........” 어머니는 말을 잇지 못하고 필호를 꼬옥 껴안고 눈물만 흘립니다. 아지랑이가 아물거리는 듯한 앞산을 바라보면서 중얼거립니다. “이제 곧 봄이 오겄제......”
시행착오 우려, 교육 인프라 구축 시급 지적 새 정부의 핵심 교육정책을 진단하는 현장 점검 토론회가 2월 7일(목) 오후 2시, 프레스센터 19층 기자회견장에서 200여명의 교육관계자가 참석한 가운데 열렸다. 이번 토론회는 강기수 동아대 교수의 ‘새 정부 핵심 교육정책 진단’이라는 발제를 통해 자유학기제, 온종일 돌봄학교, 공교육정상화촉진특별법의 문제점 및 대안을 모색하는 목적으로 마련됐다. 토론은 김미정 대전 금동초 교사, 구교정 인천 영종중 교사, 나일수 인천 초은고 수석교사, 이영관 경기 율전중 교장, 이지연 한국직업능력개발원 선임연구위원, 최상덕 한국교육개발원 미래교육연구실장의 지정토론이 있었다. 강기수 교수는 “자유학기제는 학생들에게 진로를 생각하고, 공부의 목적을 갖게 하는 측면에서 바람직하다” 그러나 악용되어 자칫 ‘사교육학기제’로 변질될 우려가 있고, 아직 학교현장의 진로교육 인프라가 구축되지 않음을 문제점으로 지적했다. 이영관 교장(경기 율전중)은 “직업 체험장소가 없는 현재의 상태에서 자유학기제 운영은 인프라 구축이 우선이다”며 지자체와 기업, 관공서, 문화센터 등이 동참하도록 인센티브를 부여하고, 각 학교에 배치된 진로진학상담교사를 활용해 창의적 체험활동이나 특별활동 시간에 지도하는 것이 현실적인 방안임을 밝혔다. 김미정 교사(대전 금동초)는 학교가 온종일 돌봄학교의 운영 주체가 될 경우 교원의 업무 부담 가중, 수업 전문성 침해의 문제점을 들어 “온종일 돌봄학교는 학교나 교육청이 아닌 별도의 독립적인 기관을 통해 운영돼야 하며, 지자체가 책임을 지는 정부차원의 지원체계가 마련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나일수 수석교사(인천 초은고)는 선행학습 금지와 관련된 공교육정상화촉진특별법에 대해 선행학습을 유발하는 교육과정의 축소 및 대입 시험 개편을 제안했다. 최상덕 미래교육연구실장(교육개발원)은 “진로교육은 행복교육 구현을 위해 긴 안목으로 학생들이 세계에 대한 관점을 키울 수 있는 교육이어야 하고, 구체적인 방법은 시기와 대상, 목적에 따라 달라질 수 있다”며 무엇보다 “교육정책을 마련하는 데 있어 교사의 참여와 지지를 얻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참석자 토론 시간에는 다변화하는 미래를 대비하는 진로교육은 단순한 직업과 적성의 매칭이 아니라 보다 큰 틀에서 다루어져야 하며, 정부의 교육정책 성공을 위해서는 현장 교사들의 공감과 자발적인 참여를 이끌어내야 한다는 의견이 다수 있었다. 이 토론회는 한국교원단체총연합회(회장 안양옥)가 17개 시․도교총(협의회장 신남철 충북교총 회장), 한국초·중·고교장총연합회(회장 심은석), 행복교육네트워크(공동대표 이옥식 등), 공교육살리기학부모연합(대표 이경자), 교총 한국교육정책연구소(소장 황영남)와 공동 개최로 이루어졌다. 안양옥 회장(한국교원단체총연합회)은 인사말에서 “정책이 성공하려면 현장 적합성 있는 세밀한 방안과 철저한 준비가 필요하다”며 정책을 시행하는 과정에서 “새 정부에 학생과 학부모, 교원이 모두 행복할 수 있는 개선 방안을 제시하겠다”고 말했다.
설날이 오면 생각나는 것들 2-- 놋그릇 닦기 이제 설날이 되어가니 어린 시절을 되돌아보면서, 그 옛날의 이야기를 들려주기로 하자. 그 설날의 추억들 중에서 가장 우리를 힘들게 한 일이 하나 있었으니 설날 준비는 대부분이 어머니의 몫이었지만, 우리 어린 남자들에게 주어진 몫이 있었으니 그것이 바로 살날을 맞이하기 위해서 놋그릇을 닦을 때의 일이다. 요즘은 갖가지 재료로 만든 그릇들이 즐비하고 어지간하면 한두 번 쓰고 버리기도 하지만, 어머니들은 한 번 준비한 그릇을 한 평생 쓰시곤 하였다. 이 때 쓰던 그릇은 대부분이 유기라는 놋그릇이었다. [유기는 구리와 주석을 78:22로 합금하여 거푸집에 부은 다음, 불에 달구어 가며 두드려서 만든 그릇. 유기의 종류는 제작기법에 따라 방자(方字)와 주물(鑄物), 반방자(半方字) 등으로 나눈다.] -네이버지식백과- 이 유기는 유해독성을 막아주는 성질이 있어 인체에 유익하며 체내의 독을 제거하여주고, 순동 특유의 성질을 가지고 있어서 세균번식 억제 및 살균효과가 있어 사용하는데 큰 효과를 볼 수 있어서 면역력이 약한 노약자나 허약체질에 적극 추천할만한 용기이다. 다만 구리라는 금속이 쓰인 까닭에 무게가 무거운 것이 단점이지만, 그래서 이유기에 담은 음식은 쉬 식지 않고 한식은 한꺼번에 차려지는 음식이지만, 유기에 담은 음식은 식사가 끝날 무렵까지 완전히 식지 않아서 다른 식기의 음식과 달리 따뜻한 음식을 먹을 수 있는 게 장점이다. 아무리 이런 장점이 있다지만 지금은 다 사라지고 찾을 길이 없을 정도가 되었다는 것은 분명 무슨 이유가 있어서 일 것이다. 그것이 바로 더렵혀지면 닦기가 쉽지 않다는 것이다. 요즘은 닦는 약품들이 나와서 어쩔지는 모르겠지만 우리가 어린 시절에는 명절이 오면 이 그릇을 닦는 일이 하루 꼬박 걸리곤 하였다. 이렇게 어려운 그릇 닦기의 첫 번째 과제는 아직 어린 우리 남자아이들의 몫이었다. 그것은 아주 오래된 절터에 가서 기왓장을 주어오는 것이었다. 절터의 여기저기를 뒤져서 부서진 기왓장을 주어 담아오면 이것을 깨끗이 씻어서 불에 달구었다가 식혀서 가루로 빻아야 한다. 그냥 빻은 것이 아니라 아주 곱게 채로 쳐서 만든 가루를 만드는 것이다. 유기그릇을 닦는 날은 온 마당에 널찍하게 멍석을 펴고, 그릇들을 죽 늘어놓고서 기왓장 가루를 짚을 구겨서 만든 수세미에 기왓가루를 물에 개어 놓고 이것을 묻혀서 그릇을 닦아낸다. 기운대로 싹싹 문지르면 놋그릇은 황금빛으로 반짝이는데, 얼굴이 환히 비추어지고, 거울처럼 집안 풍경이 어리는 모습은 정말 신기할 정도가 된다. 닦아낸 유기그릇은 마른 행주로 잘 닦아서 말려야 다시 더러움을 타지 않게 된다. 이렇게 닦아 놓은 그릇에 물기가 가면 금세 얼룩이 져서 다시 닦지 않으면 안 된다. 우리들이 장남하다가 물이라도 뿌리면 야단을 맞고 쫓겨나기 일쑤이었다. 이렇게 그릇을 닦아야만 명절에 깨끗한 그릇으로 제사를 모실 수 있는 것이어서 기본적으로 반드시 해야 할 일중의 하나이었다. 보통은 설날이 오기 한주일쯤 전에 하는데 이때는 추워서 방안에서 일을 하는데, 온통 집안이 그릇으로 가득하였다. 그 고생스러운 일을 마다하지 않았던 어머니들은 일 년 내내 일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단 하루도 조용히 쉴 날이 없었던 고달픈 삶을 살아 오셨었다. 요즘 젊은 주부ㅈ들이 가정일이 고되다는 말을 하면 그 무렵의 어머니가 하셨던 일을 비교한다면 1/3도 안되는데 싶어 보인다. 그러나 요즘의 젊은이들에게는 명절 증후군이라는 고달픔으로 미리 겁을 먹고, 명절에는 피난하듯이 외국 여행으로 고달픔을 달래곤 하는 모습은 참으로 부러운 모습이기도 하고 새로운 풍속도로구나 싶어서 씁쓸하기도 하다.
박근혜 정부가 새롭게 실시하고자 하는자유학기제. 자유학기제는 중학교 과정에서 한 학기를 진로탐색의 기회로 제공하기 위해 주요 과목의 수업은 진행하되 지필고사를 최소화하고, 대신 진로교육과 토론․실습․체험 등을 중심으로 학기를 운영하는 제도이다. 박근혜 후보의 공약집에 나타난 자유학기제는 중간고사, 기말고사 등의 필기시험을 치르지 않으며, 학교생활기록부에는 학생의 꿈과 끼를 키우기 위한 활동 내역을 기록하고, 수업도 학생이 자신의 꿈과 끼를 찾도록 시험 위주의 강의식 교육 대신에 토론․실습․체험 등 다양한 자율적 체험활동을 중심으로 학교교육을 진행하는 것을 핵심으로 하고 있다. 자유학기제, 학교 현장에 곧바로 적용될 수 있을까? 교장 6년차 필자의 경우, 진로교육을 강조하고 있다. ‘꿈을 싣는 입학식’에서는 자신의 장단점과 3년 후(또는 장래)의 목표, 실천방법 등을 쓰면서 미래를 설계하도록 한다. 학생 개인별 미래설계서는 담임에게 인계·인수되어 진로지도 자료로 활용한다. 교육공동체실 복도 게시판에는 ‘도전하는 사람만이 성취할 수 있다’ 표어를 게시하고 내부에는 ‘목표와 계획-기록-실천, 그것이 성공된 삶이다’를 게시하고 있다. 학교 교육과정 차원에서는 창의적 체험활동중 진로교육 12시간 운영,직업페스티벌, 청소년 진로보물섬 원정대-찾아가는 진로탐색,미래 명함판 만들기, 잡월드 직업체험, 난타공연 문화체험, 서울대 탐방 등 학년별 진로체험 행사, 학부모 진로 아카데미 강좌, 방학 중 진로비전캠프(6일) 등이 이루어졌다. 자유학기제를 시범운영하고 여건이 조성된 학교에서 진로교육을 체계적으로 실시해야 한다. 그렇게 된다면 알찬 진로교육이 우리의 학교교육을 한 단계 높여 공교육 내실화에 크게 기여하리라고 본다. 교장의 교육마인드에 의해 또는 진로진학상담교사에 의해 추진되는 진로교육이 다듬어지고 일반학교에도 파급되어 큰 변화가 예상된다. 새 정부의 교육정책인 자유학기제는 도입의 의도, 취지, 목적은 바르게 방향을 잡았다. 그 동안 학교교육에서 소홀히 다루어졌던 진로교육을 강화하여 학생들이 자신의 특기와 적성, 능력, 소질 등을 파악함은 물론 장차 자신이 몸담을 직업세계를 알고 그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미리 준비한다는 것, 그 자체가 교육적이고 학교가 담당할 일이다. 다만 학교에서 그 동안 체계적으로 다루지 못한 사실은 반성해야 한다. 꿈과 목표가 확실히 정해져 있는 학생은 시간을 유용하게 활용한다. 부모님과 선생님, 어른을 존경한다. 세상을 보는 눈과 사회현상과 대한 이해가 긍정적이다. 학교생활이 성실하다. 수업시간 자신감이 있고 학습의 주체가 된다. 그래서 학교교육에서 꿈을 갖도록, 또 그 꿈을 실천하도록 지도하는 것이다. 이제 자유학기제 현장접목에 대한 제언이다. 첫째, 자유학기제는 의욕만 앞서 급박하게 추진하지 말고 시범학교 운영을 거쳐 여건이 갖추어진 학교부터 점차적, 점진적으로 운영해야 한다. 그런 다음에 전체 학교로 연차적으로 파급해야 한다. 둘째, 학교에 배치된 진로진학상담교사를 100% 활용해야 한다. 그들의 진로교육 능력을 함양시키고 진로프로그램을 운영할 수 있도록 연수를 강화해야 한다. 진로교사가 주축이 되고 기술·가정 교사를 비롯한 전교사가 교과를 통한 진로지도를 해야 한다. 셋째, 교육과정을 통한 진로지도가 바람직하다. 창의적체험활동이나 특별활동 시간을 통해서 지도하는 것이 현실적 대안이다. 특히 진로진학상담교사에게 주어진 수업시수 내에서의 운영은 진로교육의 안정을 꾀할 수 있다. 넷째, 자유학기제 적용 학년과 학기는 현장의 의견을 수렴하는 것이 좋다. 한국교총이 현장의 의견을 대변하고 있으므로 교육부와 교총이 중지를 모으면 해결되리라고 본다. 다만 토의, 토론학습 등은 전학년 전교과에서 이루어져야 한다. 다섯째, 자유학기제 실시를 위한 인프라 구축이 우선되어야 한다. 이것이 자유학기제 성공의 관건이다. 새 정부에서는 지자체와 관공서, 기업, 도서관, 문화센터 등이 동참할 수 있도록 인센티브를 제공해야 한다. 진로교사의 가장 큰 애로사항이 직업 체험장소의 절대 부족이라는 사실을 잊어서는 안 된다.
전남 광양여중(교장 김광섭)에서는 2013년 2월 8일(금) 10시, 다목적 강당에서 2학년학생들과 전교직원 선생님들이 참석한 가운데 박형근선생님의 퇴임식이 이루어졌다. 39년동안의 교직생활을 마감하는 소중한 자리로, 후배 교사들의 본보기가 되신 것을 기리고자 그동안 삶의 흔적을 담은 동영상이 펼쳐지자 식장은 숙연하여졌다. 교장 선생님께서 광양여중 전교직원의 고마움과 아쉬움을 담아 송공패 증정과 함께 헌신과 열정으로 참된 스승의 길을 걸어오신 박형근 선생님을 위해 애정과 감사의 마음이 담긴 축사를 해 주셨다. 박형근선생님께서는 학생들에게 “나는 언제나 할 수 있다는 믿음을 갖고 원대한 꿈을 꾸는 사람이 되십시오. 꿈과 열정이 있는 사람은 오늘도 내일을 향해 열심히 준비하고 노력하는 학생입니다. 인성이 참 좋은 여러분이기에 반드시 그런 사람이 되리라 선생님은 믿습니다.”라는 소중한 말씀을 해 주셨다. 이어진 후배교사의 편지글 낭독에서 지난 광양여중의 3년, 보이지 않는 곳에서 감초같은 역할을 맡은 박형근선생님의 지혜로 광양여중 동료애의 등불이 켜졌고, 고향을 지키는 후덕한 팽나무같은 박형근 선생님이 계셔서 교사들은 참 행복했으며, 선생님이 계셔서 여기 모인 광양여중의 환하고 사랑스러운 꽃들이 다정다감하게 피었다라는 감사의 말씀이 있었다. 이 순간을 잊지 마시고 항상 건강하시고 행복하셨으면 좋겠다는 후배선생님들과 아이들의 노래 공연은 퇴임식장을 훈훈하게 해 주었다. 2학년 1반 아이들이 영예로운 정년퇴임을 하시는 담임선생님을 위해 정성껏 몰래 준비한 노래 ‘청개구리’를 부르면서 눈물을 흘렸으며 꽃 한송이씩 전달하는 장면에서 함께 참석한 아이들과 선생님들도 눈시울을 붉혔다. 평생을 참스승으로 살아오신 박형근선생님을 위한 스승의 노래를 마지막으로 감동과 눈물의 아쉬운 퇴임식이 막을 내렸다. 박형근 선생님께서는 1973년 화양중학교에서 교직을 시작하시어 거문중학교 등 도서벽지 학교를 거쳐 오늘에 이르기까지 한마디로 열과 성을 다하시어 업을 수행하신 분입니다. 선생님께서 열정을 품고 교직을 시작할때만 해도 우리나라는 보릿고개가 있었고, 넉넉치 못한 살림살이를 꾸려 가시면서 다른 곳에 대한 유혹도 있었을 것입니다만 헛눈팔지 않으시고 묵묵히 2세교육의 길을 걸어오셨습니다. 지금까지 선생님께서는 전남도내 중학교에서 선수육성을 많이 하셨고, 율촌중학교를 거쳐 거쳐 2010년 3월 본교에 부임하셨습니다. 선생님은 본교에 오셔서 매년 담임을 맡아 성심성의껏 학급운영을 하시는 솔선수범을 하신 선생님이셨습니다. 이 솔선수범이야말로 교사의 가장 중요한 조건이며, 인간적인 매력으로 젊은 선생님들의 본이 되신 참 스승이셨습니다. 또한 선생님께서는 무사안일을 배격하시고 새로운 지도방법을 적극적으로 흡수하시어 수업에 임하시면서 학생들과 호흡을 같이 하였습니다. 솔선수범하신 그 열정 때문에 교육현장을 지킨 우리들의 머릿속에 진정한 고참으로 남아 계시리라 생각합니다. 지금 세상은 엄청난 변화의 물결속에 있습니다. 산업계는 물론이고 교육계도 마찬가지입니다. 세계적 자동차 브랜드로 유명한 토요타 회장 오쿠다히로시는 “아무것도 바꾸지 않는 것이 가장 나쁜 것이다.”라고 무사안일을 배격하여 오늘날 미국시장을 사로잡는 토요타 자동차를 만들게 된 것입니다. 우리 학교도 마찬가지입니다. 광양여중은 2012년 한해 동안 광양여중 개교 이래 가장 놀랄만한 교육성과를 이뤄냈습니다. 그것이 바로 전국의 초중고 일만여개가 되는데 그 가운데 100대 학교에 선정된 것입니다. 선생님께서는 본교에서 체육교과를 통하여 변화의 주역으로 열성을 다하신 것입니다. 선생님께서 진정한 고참이 아닌 그저그런 선생님으로 자리매김하였다면 오늘의 광양여중의 이같은 영광은 존재하지 않았을 것이라 믿습니다. 박 선생님께서 막상 교직을 떠나려 하시니 마음 속에는 만감이 교차하시리라 믿습니다. 무슨 말씀을 저희 후배들에게 남겨 주시겠습니까? 교단을 떠난지 이제 3년이 되신 한 선배님은 다시 교단에 서게 된다면 애들과 눈높이를 맞추고 싶다는 간절함을 저에게 이야기 하셨습니다. “애들과 눈높이를 맞추고 싶은데, 나이를 먹을수록 거리감이 생기더군요. 아무리 늙어도 아이들과 어울릴 수 있는 선생님이 되어야 하는데…” “소통이 안되면 아무리 지식을 전달해도 소용없지요. 중요한 것은 지식의 전달이 아니라, 실생활에서 아이들을 지도하는 것입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교사의 눈으로 보지 말고 학생의 눈으로 봐야 합니다.” 이 말씀이야말로 오늘도 교직을 지키고 있는 우리 후배들에게 박선생님이 들려주시고자 하는 음성이 아닐까 생각해 봅니다. 박 선생님, 이제 더 이상 같이 뛰고 쉽고 같이 호흡하고 싶어도 시간과 공간이 달라져 우리를 갈라놓게 됩니다. 그러나 때로는 마음이 움직이신다면 언제라도 들러 주시기 바랍니다. 대나무 사이로 불어오는 봄의 향기를 맡으며 살아오신 인생의 지혜를 들려주시길 간절히 바랍니다. 시작이란 말은 참 아름답습니다. 한 해, 하루의 시작, 인생 2막의 시작, 여기에는 무한한 희망이 담겨있습니다. 이제 은퇴가 아닌 새로운 일터로 옮기시어 인생의 제2막을 시작하신 박선생님의 가정과 앞날에 행복이 함께 하시길 광양여중 학생들과 교직원 모두는 기원드립니다. 감사합니다.
설날이 오면 생각나는 것들 1-- 설빔 짓기 나는 시골에서 자라서 설날에 대한 추억이 유난히 많다. 이제 설날이 되었으니, 그 설날의 추억들을 차례로 적어볼까 한다. 가장 먼저 설날을 맞이하는 어머니들이 해야 할일이 베를 짜서 아이들의 설빔을 만드는 것이었다. 벌써 한 달 전쯤부터 어머니들은 아이들에게 줄 옷을 만들기 위해서 열심히 베를 짰다. 지금처럼 옷을 사다가 입히는 것은 꿈도 꾸지 못하던 시절이었다. 6.25 전쟁이 시작되어서 휴전이 되고 공비토벌 등으로 시끄럽던 그런 시절을 산골에서 보내었기 때문에 모든 것을 집에서 어머니의 손으로 다 해야 하는 시절이었다. 그 후로 거의 10년이 지나서 초등학교 4학년1955년 무렵에야 겨우 옷감을 사다가 옷을 지어 입을 수 있게 되었던 것으로 생각된다. 그 이전의 이야기를 해보자. 가을 농사가 끝나면 어머니들은 밭에서 딴 목화를 가지고 솜공장으로 가서 목회 솜을 만들어 오셨다. 이때부터 사실은 설빔을 짓기 위한 일을 시작하는 것이었다. 목화솜을 가져다가 기다란 요즘 길거리에서 파는 어묵꼬지처럼 길게 말아서 고치라고 하는 것을 만든다. 이것 고치를 가지고 물레에서 가느다란 실로 뽑아내는 것이다. 물레의 가느다란 가락기다란 철사 바늘(?)에 솜의 끝을 손으로 비벼서 만든 실모양의 부분을 대고 물레를 들리면 물레가 가락을 돌려서 솜으로 만든 고치에서 가느다란 실이 계속하여 뽑혀 나오게 되는 것이다. 이것을 계속 돌리면서 가락의 아랫부분에다가 감아서 실꾸리를 만든다. 이렇게 실꾸리를 만들어서 이 실을 이용하여 씨실을 만들고, 실꾸리를 북에 넣어서 날실을 만들어서 차례로 엮어가면서 짜는 것이 무명베가 되는 것이다. 이렇게 짠 베는 그 폭이 약 45cm~60cm 안팎이다. 이렇게 짠 베를 20자 단위로 잘라서 팔기도 하는데, 이것을 한 필이라고 부른다. 이 무명베를 검정 물을 들이는데, 커다란 가마솥에 넣고, 검정 색소와 조달이라는 소금기가 있는 약품을 함께 넣고 한 두 시간 동안 삶듯이 끓여서 물에 헹구어 말리면 검정베가 된다. 이 검정 베를 가지고 옷을 지었는데, 우리 집에서는 아버지가 제단을 하여서 재봉틀로 박아서 옷을 지어주셨다. 이 무렵 우리가 살던 동네에는 재봉틀을 가진 집이 두 집 밖에 없었는데, 우리 집에서만 남의 옷을 지어 줄 수가 있었다. 그래서 동네 아이들의 옷을 지어주고 삯을 받기도 하였고, 이 삯이 무서워서 직접 손바느질로 옷을 지어 입히기도 하였다. 이렇게 솜에서 옷이 되기까지에는 적어도 한 달 가량이나 걸렸으니 설날에 입을 설빔을 하기 위해서는 음력으로 동짓달 초부터 시작이 되었었다. 이렇게 어머님이 직접 짠 베로 만든 검정 양복 한 벌을 얻어 입으면 동네에서는 가장 호사한 아이가 되었다. 온 동네를 돌아다니면서 어른들의 칭찬을 받아야 했고, 다른 아이들의 부러움을 사곤 하였으니,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설날이었던 셈이다. 내가 이렇게 어머님이 짜서 직접 물들여 지어주신 옷을 입고 찍은 사진이 꼭 한 장이 있으니l 초등학교 5학년 때의 사진이다. 이 사진의 아이들은 대부분이 자기 집에서 짠 옷감으로 만든 옷들을 입고 있었고 몇 명보성강발전소의 직원자녀와 면 서기라도 하는 집안의 자녀 등 부잣집아이들 6,7명만이 도시에서 사온 옷을 입었던 것으로 기억된다.
헬퍼스 하이 1998년 하버드 의대 교수가 학생들에게 흥미로운 실험을 했다. "먼저 두 그룹으로 나누겠네." 교수는 학생들에게 해야 할 일을 알려주었다. 한 그룹은 대가가 주어지는 일을 하게 하고 다른 그룹에는 아무런 대가 없는 봉사활동을 하게 했다. 학생들은 자신이 하는 일이 무엇인지 몰랐다. 며칠 후 교수는 학생들이 면역 항체 수치를 조사했다. "예상은 했지만 이럴 수가!" 교수는 자신의 눈을 의심했다. 면역항체 수치를 조사한 결과 무료로 봉사한 학생들에게서 나쁜 병균을 물리치는 항체가 월등히 높아진 것이 발견된 것이다. 몇 달 후 교수는 마더 테레사 수녀의 일대기를 담은 영화를 학생들에게 보여주는 실험을 했다. 그리고 다시 측정했다. 이번에도 놀라운 현상이 일어났다. 이 영화를 본 학생들은 혈압과 콜레스테롤 수치가 현저히 낮아지고 엔돌핀이 정상치의 2배 이상 증가하여 몸과 마음에 활력이 넘친다는 사실을 알았다. 교수는 남을 돕는 활동을 통해 일어나는 정신적, 신체적, 사회적 변화에 대해 헬퍼스 하이(Helper's High)라고 이름을 붙였다. 이는 '마더 테레사 효과'라고도 하고 '슈바이처 효과' 라고도 한다. 실제로 남을 돕거나 봉사하면 심리적 포만감 즉 '헬터스 하이'가 최고조에 이른다. 결국 남을 돕는 것은 자기 자신을 돕는 것이다. 생각대로 살지 않으면 사는 대로 생각한다30~31쪽에서 은지성 지음 헬퍼스 하이가 일상생활이었던 어린 날들의 추억 설날이 코앞이다. 설날이면 온 동네가 축제처럼 들썩였던 어린 시절이 그립다. 누구네 집에서 먼저 떡을 하면 이웃집에 돌리며 나눠 먹던 따끈한 떡부터 시작해서 누구네 집에서 기름 냄새를 풍기며 전을 부치면 그것도 나눠 먹었다. 대문도 없던 집들은 누구라도 드나들 수 있었다. 옆집의 밤나무가 밤알을 떨어뜨릴땐 부지런한 아이들은 알밤 줍기 시합을 하며 가을날을 보냈다. 커다란 장두감도 일찍 일어나면 차지할 수 있었다. 우리 집에 없는 과일도 어렵지 않게 나눠 먹는 게 일상이었다. 팥죽만 끓여도나눠 먹고 밀가루 수제비 죽만 끓여도 당연히 나눠 먹었다. 그러니 자기 식구만 먹으려고 음식을 마련하는 일은 거의 없었다. 그러니 가난해도 심리적 포만감으로 충만했던 어린 시절이 그립다. 이웃집에 슬픈 일이 생기면 서로 위로를 했고 같이 눈물을 흘렸다. 가난함이 슬픈 일로 여겨지지 않았다. 다 같이 가난해서 그런 걸까? 마음으로 나누는 삶이어서 그 가난조차 나누며 살았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설날이면 온 동네를 떼 지어 다니면서 동네 어르신들께 넙죽넙죽 세배를 올리던 철없던 친구들은 감 한 개, 사탕 몇 개로도 충분히 즐거웠다. 아니, 아무것도 받지 않아도 행복했다. 집안 사정이 어려워 설음식을 장만하지 못한 집도 동네에서 돌리는 음식만으로도 따스하게 배를 불릴 수 있었고 그걸 부끄럽게 여기지 않았다. 설날이 헬퍼스 하이가 되도록 그러나 지금 우리는 어떤가? 명절에나 먹을 수 있는 하얀 쌀밥을 날마다 먹으면서도, 귀한 계란이나 김을 날마다 먹을 수 있으면서도 그때보다 더 행복하지 않은 표정들이 넘친다. 아니, 문을 잠그고 살아도 도둑을 걱정하고 해침을 당할까 봐 마음을 닫고 산다. 내가 나를 보호하지 않으면, 장막을 치지 않으면 언제 피해를 당할지 모르는 불안을 안고 산다. 누군가와 마음을 열고 친해지려면 용기를 내야만 하는 세상이 되었다. 자칫하면 이용당하는 슬픈 세상에서 명절이 더 슬픈 사람들도 많다. 동네가 누가 어려운 처지인지, 누구네가 밥을 굶는지 다 알고 살아서 아무런 대가 없이 베풀고 살았으니 그야말로 '헬퍼스 하이' 시대였던 그날들이 그립다. 가난했던 어린 시절보다 모든 것이 풍요로워졌는데 무섭고 험한 소식들을 보면 그때만 못한 게 분명해 보인다. 고독사를 걱정하는 세상이 되었으니 더 말해 무엇하랴! 요즘은 아무리 가난해도 밥을 굶는 사람은 그때만큼 없다. 얻어먹는 사람들을 늘 볼 수 있었던 그 시절에 비하면 의식주 생활이 나아진 건 분명하다. 아프리카 아이들처럼 물을 얻기 위해 물동이를 이고 다니던 친구들, 눈 속에 물지게를 지고 물을 긷던 우물가에 가면 동네 소식을 전해주던 어른들은 설날이면 누구네를 도울까 걱정을 나누던 풍경들이 그립니다. 지금 우리 사회는 제대로 굴러가고 있는 걸까? 인간답게 살고 있는 걸까? 마음이 추운 사람들, 상처 받은 사람들에게 설날은 더 춥다. 사회의 냉대가 슬프고 속해 있던 일터에서 밀려난 소외감으로 슬프다. 찾아갈 고향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빈손으로 갈 수 없어 타향을 배회하는 시린 가슴으로 더 춥다. 명절이라 밥을 사 먹을 식당조차 찾기 어렵다는 학생들 이야기가 마음을 때린다. 설날이 서러운 날이 되어버린 사람들을 돌아보는 날이 설날이다. 헬퍼스 하이를, 말없이 실천할 일을 찾아보아야 하는날이다. 주는 기쁨으로 행복해지는 날이다.
화성동화중학교 김진대 지난 2월 7일 경기 화성시 소재 화성동화중학교(교장 홍완성)에서 열린 이 학교 6회 졸업식장에서 특별한 분위기가 연출됐다. 이 날 졸업식은 반별로 짙은 파란 가운을 입고 졸업식장에 입장하면서 시작되었다. 입장행렬 좌우에 교사와 2학년 학생들이 도열해서 박수로 졸업생을 맞이했다. 교장선생님이 졸업생 한 명 한 명에게 졸업장과 이 학교 평생교육 서예반이 마련한 서예작품을 줄 때마다, 옆에 설치된 멀티화면에서는 졸업생의 사진과 장래희망, 좌우명 등이 담긴 영상편지가 띄워졌다. 부모님에 대한 감사함과 선생님에 대한 고마움을 담은 영상을 지켜 본 학부모들과 선생님들은 어느새 의젓하게 자란 아이들의 모습을 대견해 했다. 졸업생들도 영상에 자신의 모습이 소개될 때 즐거워하며 장래희망의 각오를 다시한번 다졌다. 졸업장이 수여되는 도중에 어떤 학생은 교장선생님에게 큰 절을 넙죽 올리는 아이, 교장선생님을 들쳐 업고 한 바퀴 도는 아이, 한 반 전체가 식장 내 선생님과 학부모님을 향해 큰절을 올리는 반이 나타나면서 졸업식장을 일순간 감동의 도가니로 몰아가기 시작했다. 누가 시키는 것도 아닌데 아이들은 자진해서 선생님과 학부모를 향해 존경과 감사를 몸으로 표시하고 있었다. 이를 지켜보고 있던 학부모님들은 눈물을 훔치고 있는 분이 생기는가 하면 어떤 학생들은 감격의 눈물을 흘리는 학생도 생겨났다. 이런 모습이 우리가 추구하는 진정한 교육일 것이다. 이 학교는 교사가 주체가 되어 졸업식을 계획하고 진행하는 것이 아니라 학생이 주체가 되어 졸업식을 계획하여 진행하고 있었다. 이날 학생회장과 부학생회장이 연단에 나와 졸업식을 진행함에 따라 평상시보다 훨씬 조용하면서도 활기찬 모습으로, 약 2 시간가량 진행되는 동안 그 어디에도 소란한 모습은 찾아볼 수 없었다. 시상도 학교에서 시상하는 것 외에도 학생이 학생에게 수여하는 상도 있었다. 졸업생들이 평소 친구에게 하고 싶었던 말이나 친구의 특징을 잘 살린 특별상이 있는데, 이 상은 1년 동안 반 친구들이 서로를 특별히 기억하기 위해 마련했다. 학부모도 졸업식에 구경꾼으로 남는 것이 아니라 함께하는 모습을 연출했다. 2부에 학부모님들이 비밀리에 준비한 합창공연 박수갈채를 받았다. 이렇게 학생, 학부모, 교사가 함께 만들어가는 감동의 장이 사회문제로 떠오른 졸업식 뒤풀이에 대한 우려를 비웃고 있었다.
국가의 미래 좌우할 학생 고위험군 22만 명 정신건강 문제 시급 교육과학기술부는 지난해 전체 초·중·고교생 668만2320명 가운데 97.0%(648만2474명)를 대상으로 벌인 2012년 학생 정서행동특성검사(학생정신검사) 결과를 7일 발표했다. 정부가 학생정신검사를 전수조사한 것은 이번이 처음인데, 그 결과를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1. 학교 내에서 상담·관리 등 지속적인 관심이 필요한 학생 전체의16.3%인 105만4447명이 '관심군' 2. 학교 내에서 관리가 어려워 외부기관의 상담과 관리가 요구되는 '주의군'은 4.5%.22만3000여명 3. 특히 자살을 생각해본 고위험군이 9만7000여명 4. 특히 중학생이 정서적으로 취약하여, 관심군으로 분류된 중학생은 평균보다 높은 18.3%로 33만2008명,주의군도 7.1%로 9만6077명에 이른다. 정부의 대처방안 1. 위센터를 현재 137개에서 올해 190개로 2. 위기 대응팀을 구성해 운영 -고위험군 학생을 위해 학교장·담임교사·상담교사·정신건강 전문가로 구성 3. 3월말 60개 내외의 시범학교를 지정해 교내 상담을 전담하는 정신과 의사인 '학교의사(스쿨닥터)'지정 운영 4.저소득층을 위한 치료비 지원 그동안 막연히 걱정하고 우려했던 일들이 실체를 드러냈다. 연일 터지는 학생들의 아픈 모습이 비로소 통계적 숫자로 모습을 드러낸 것이다. 그 심각성을 짐작은 하고 있었지만 이토록 아픈 모습이라니, 가슴이 아프다. 초중고 전체 학생의10명 중 약 2명이 관심군이고 20명 중 1명은 더 위험한 주의군,특히 위험한 고위험군도 10만 명에 이른다. 통계에 잡히지 않은 학교 밖 학생들까지 생각하면 문제는 더 심각하다. 이렇게 많은 아이들이 아픈 마음과 정신을 이끌고 학교와 가정을 오가고 있었다니! 그러니 서로 할퀴고 싸웠으리라. 부모와 선생님께, 친구들에게 상처를 주고받았으리라. 이것은 모두 우리 어른들의 잘못이다. 부모의 잘못이고 사회와 학교, 교육정책의 잘못이라고 겸허히 받아들이고 인정해야 한다. 그들이 아픈 이유의 제 1원인이 학업 스트레스임은 누구나 다 아는 사실이다. 과도한 학업부담으로 행복하지 않다는 학생들의 실태를뒤집어 보면, 학생정신검사의 결과와 통한다. 행복한 학생은 정신건강에 큰 문제가 없다고 볼 수 있다. 2011년 한국청소년정책연구원이 전국 초등학교 4학년부터 고등학교 3학년 9,297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설문조사를 바탕으로 발표한 `한국 아동 청소년 인권실태 연구 보고서'에 나타난 아래의 그래프를 보면 문제의 내면을들여다 볼 수 있다. 행복하지 않은 학생들의 정신건강이 좋지 않은 것은 같은 현상의 다른 표현이기 때문이다. 고위험군은 지금 당장 전문상담가와 의사를 투입해야 문제점을 진단했으니 하루 빨리 대응 방안을 내놓아야 한다. 가장 급선무인 고위험군 학생을 위한 정책은 시간이 급하다. 가장 많이 아픈 그들에겐 지금 당장 엠블런스가 필요한 상태이다. 학부모도 학교 선생님도 초긴장 상태로 일거수일투족을 관찰하고 전문상담사와 의사를 투입하여 마음을 안정시키며 자존감을 높여주는 가시적인 프로그램을 투입해야 한다. 마음의 문을 더 닫기 전에 붙잡아야 한다. 정신이 건강하지 못하니 공부가 즐거울 리 없다. 학교 공부를 좀 뒤로 미루더라도 조금 천천히 가더라도 인생에 희망을 걸고 걸어갈 수 있도록 따스한 보살핌이 절실하다. 상담 한 두 번으로 끝날 수 있는 일이 아니다. 고도로 숙련된 전문가의 도움이 필요하다. 단기간의 상담과정으로는 그들의 상처를 덧내는 일이 생긴다는 염려들을 보고하고 있지 않은가. 장기적으로는 유아기의 애착 형성에 주력해야 북유럽에서 앞서간다는 핀란드도 이미 우리와 같은 문제를 겪은 바 있다. 청소년기에 겪는 정신건강 문제의 뿌리를 들추어 보면, 대부분 가정 문제인 부모와의 관계에서 비롯된다고 본 것이다. 그래서 0세부터 2세까지는 어머니의 육아가 절대적으로 필요하다고 판단한 정책을 펴고 있다. 모든 어머니는 자신의 아이가 만 2세에 이를 때까지는 직장을 의무적으로 쉬어야 한다. 그리고 육아에 힘써야 한다. 그렇다고 육아휴직을 끝내고 직장에 복귀할 때 어떤 불이익도 받지 않는다. 직장에 근무하는 것처럼 육아수당도 똑같이 받는다. 0세부터 2세까지는 애착이 형성되는 매우 중요한 시기다. 이 시기에 엄마와 잘 형성된 애착은 자존감을 높이고 사랑 받는다는 행복감으로 자아정체감이 잘 형성되게 도와준다. 자존감이 높은 청소년은성인이되어서도 정신적으로 큰 문제를 일으키지 않는다는 교육심리학에 근거한 정책을 펴고 있는 것이다. 어떠한 상황에서도 자신을 소중히 하는 자존감은 6세 이전에 85%가 이루어진다. 어려서 형성된 자존감은 평생에 걸쳐 영향력을 행사한다. 모든 임산부에게 육아수당을 투입하는 초기 비용이 비록 부담이 될지라도 나중에 발생할 사회적 문제에 비하면 매우 현명한 정책이 분명하다. 그러므로 사람이 먼저이고 사람이 가장 소중하다는 인간의 존엄성에 충실한 정책이다. 길게 보면 저비용 고효율 정책으로 훨씬 안정적이고 발전적인 국가전략이 되고 있음을 핀란드의 교육이 보여주고 있지 않은가? 사회 전체가 그런 시스템이니 지금은 다자녀를 출산하는 비율도 높아지고 있고 가정 중심이며 저녁이 있는 삶의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가정이 행복해야 한다는 전제 아래 가족을 소중히 하는 가장 기본적인 정책이 사회 전반에 깔려 있다. 그들에겐 퇴근 후에 가족과 함께 하는 생활이 보편화 되어 있다. 가족끼리 대화하고 마음을 나누며 정신적 문제가 될 소지를 미리 차단하는 삶을 소중히 하고 남에게 피해를 주는 것을 매우 조심하는 모습을 보여준다. 마음 놓고 자식을 기르고 가족과 사랑을 나누는 삶이 학생정신건강 문제를 해결하는 가장 근본적이고 장기적인 전략이라고 보아 핀란드의 가족 중심 문화와 국가의 정책적 배려는 시사하는 바가 크다. 그에 비해 우리나라의 맞벌이 부부들은 자녀 교육에 엄청난 부담을 느끼는 것이 현실이다. 육아에 전념할 수도 없고 다른 사람에게 맡겨서 키우니 비용도 문제지만 가장 중요한 엄마와 애착 형성에 문제가 생기니 정서적으로 불안정한 아이들은 일찍부터 마음의 허전함과 슬픔을 잉태하게 된다. 아기를 돌보는 사람이 자주 바뀌거나 육아에 전념하는 엄마라 할지라도 경제적으로 불안정한 경우나 정서적으로 건강하지 못한 경우 역시 아이에게 미치는 영향은 지대하다. 특히 일찍부터 학과 공부로 내몰고 경쟁과 비교 속에서 자라는 우리나라 아이들은 가정과 학교,학원이나 사회 곳곳에서 상처를 받는 일이 벌어진다. 공부란 즐거운 것이며호기심에서 시작해야 함에도하지 않으면 안 될 의무감부터 지워주거나 본인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진로마저 스스로 찾지 못하는 경우가 얼마나 많은가? 전문상담교사의 역할 매우 중요, 단기연수는 지양했으면 이제라도국가적으로 전수조사를 실시한 점에는늦었지만 다행이라고 생각한다. 문제를 진단하고 해결하려는 정책도 이미 입안하여 실시할것이므로 그 과정에서 의학계나 교육 전문가, 외국의 사례를 충분히 살펴서 잘 이행하리라고 확신한다. 최대한 시행착오를 줄이면서도 학생 한 사람 한 사람에게 집중하여 그들이 믿고마음을 열 수 있도록자주 면담하고 치유프로그램을 투입하며 사랑으로 다가서는 정책을 펴 줄것을부탁하고 싶다. 아울러 학교 현장에서도 전문상담사가 많이 필요하다. 눈에 보이지 않는 질병에 대처하려면 고도로 숙련된, 전문적인 이론으로 무장하고 실전 경험이 풍부한 노련한 전문가의 자질이 중요하다. 특히, 단기적인 연수가 아닌 전문과정을 이수한 상담사가 필요하다. 실전 경험을 쌓은 훌륭한 상담사가 실적을 낼 수 있기 때문이다. 상담사의 인품이 중요해지는 대목이다. 단기간에 이론 연수만으로는 수술이 필요한 그들을 손조차 대지 못하고 경청의 수준에 그치는 경우가 되어서는 곤란하다. 이미 투입된 상담교사도 다른 업무에 투입하는 일만은 제발 없었으면 한다. 환자가 찾아오기 전에 찾아내서 마음 아픈 이야기를 들어주려면시간이 많아야하고늘 준비되어 있어야 하기 때문이다.마음이 아픈 22만3000명은 이 나라를 이끌어 갈 기둥들이다. 그들은 곧 미래의 꽃이자 희망이다.아프다고 하소연하며 자신의 상처를 드러낸 그들의 눈물을 닦아 줄 마음의 손수건을 여러 장 준비하고 같이 울어줄 따스한 심장을 가지고 3월을 맞이해야 한다. 모든 선생님은 이미 상담자다. 내 반 아이 누가 그늘에서 울고 있는지 현미경을 들고 청진기를 들고 살아야 한다. 그것이 학습보다 먼저다. 마음이 모든 것의 시작이다. 한 생명은 온 우주보다 크다. 정말로 예산을 아끼지 말고 써야 할 곳은 교육 부문이다. 더 시급한 곳은 학생정신건강 분야이다. 보이지 않는 정신건강이 모든 것을 좌우한다. 진정한 교육은 정신의 고양에 있음을 잊지 말자.
-‘이런 사람이 되어라‘ 시 한 장씩으로 격려 해주었던 그 많은 아이들은?- 나는 교직 생활 중에 유난히 6학년 담임을 많이 한 경우에 해당한다. 42년 총 교직 경력 중 학급담임을 하였던 것은 27년이었고, 그 중에서 10년을 6학년 담임을 하였으니 좀 많은 편이라 하겠다. 이 11번의 6학년 담임 기간을 별나게 보낸 기록들이 많다. 중학입시를 위해서 아이들과 함께 200일간 교실에서 합숙을 하면서 입시 공부(67)를 시켰는가 하면, 졸업사진까지 다 찍고 나서 전근(72)이 되어서 비담임으로 전락하기도 하였고, 아이들이 이발을 손수 해주면서(77) 보내기도 하였고, 방학동안 마을별 마을공부방을 운영하여 전국적으로 알려지기도(78)하였었다. 경기도로 전입한 뒤로는 첫 번째 학교에서 3년 연속 6학년만 담임을 하기도 하였고, 다음 학교에는 아이들과 함께 박태기나무의 씨앗을 심어 가꾸어서 졸업식날(84) 모두 3포기씩 꽃나무를 선물로 안겨 주기도 하였다. 교감으로 발령을 받은 뒤로부터는 근무하던 학교마다 매년 졸업생들에게 학교문집을 만들어서 졸업기념문집으로 안겨주었었다. 그러나가 내가 교장이 되면서 부터는 학교문집과 함께 졸업하는 어린이들에게 그들이 희망을 실어서 축하 시를 만들어서 개개인에게 시 한 수씩을 만들어 인쇄하여 졸업장 케이스의 한쪽 면에 끼워서 나누어 주었다. 직접 담임을 하지 않았기 때문에 아이들의 성격이나 개성을 파악하기가 어려워서 각 학급마다 2시간 정도씩 졸업 전 특별 수업을 하면서 각자의 희망사항도 적어내게 하고, 성격 파악도 하는 기회를 가졌었다. 이렇게 하여서 각자의 희망사항을 들어서 이런 정도의 성공을 하여주기를 바란다는 기원을 담은 시를 만들어 준 것이다. 2003년도 졸업생에게 준 시 그 아이들이 내가 만들어준 시를 잘 간직하고 있을지는 모르지만 그래도 그런 기원을 받았다난 것만은 기억하리라 믿는다. 그 중에서 정말 한 명이라도 그 말, 그 기원을 잊지 않고 그런 성공을 이루어 준다면 그 것만으로도 충분하다고 생각하고 한 일이었다. 각 학교의 졸업식이 이루어지고 있으니까, 그런 아이들 중에서 아직도 기억하고 있는 아이가 있을까 생각을 해본다. 혹시라도 단 한 사람이라도 이 글을 본다든지 알고 들어와서 댓글을 남겨 준다면 얼마나 좋을까 생각하면서 그 날을 생각해본다.
음력 1월 1일은 설날이다. 이때는 조상에게 차례를 지내고, 친척이나 이웃 어른들에게 세배를 한다. 설날은 신라 때 시작되었다. 이후 고려와 조선까지 이어졌다. 그러다가 을미개혁 이후 양력을 도입하면서 새해 첫날이 설날이 되었다. 그러나 민간에서는 여전히 음력으로 명절을 지냈다. 일제강점기에는 우리 문화 말살을 위해 음력설을 쇠는 것을 탄압했다. 일제는 순사(경찰)까지 동원해 감시를 했으나 음력설을 쇠는 풍습을 막지는 못했다. 광복 이후에도 정부는 이중과세(二重過歲)라는 이유로 음력설을 없애려고 했다. 그러나 여전히 대부분 가정에서는 음력설에 차례를 지내는 전통을 유지했다. 이를 감안하여 정부는 음력 1월 1일을 ‘민속의 날’이라고 하고, 이 날 하루를 공휴일로 정했다. 이후 민족 고유의 설날을 부활시켜야 한다는 여론이 비등해 1989년에 음력설을 ‘설날’로 하고, 지금처럼 3일 간을 공휴일로 지정하였다. 그런데 여전히 설날을 구정이라고 하는데 괜찮을까. ○ 구정을 맞이하여 새로운 모바일 연하장 12종을 추가했다고 6일 밝혔다. 일반 연하장과 구정 설의 특징을 살린 재미있고 감동적인 테마의 스페셜 연하장으로 구성됐다. ○ 이 관계자는 “원래 일정은 구정 쯤 입국하는 것이었다. 뮤지컬 ‘황태자 루돌프’ 지방 공연 일정이 있기 때문에 그 전에 잠시 휴식 차 미국에 갔던 것”이라며 “수술로 인해 ‘황태자 루돌프’ 일정도 다시 조율하게 됐다” ○ 2013년 구정을 맞이해 그 동안 감사한 분들께 드릴 선물로 믿을 수 있는 퀄리티와 품격을 원한다면 이 선물세트를 주목해보자. 음력설을 구정이라고 부른 것은 일제강점기다. 일제는 양력설을 새롭고 진취적이라는 의미에서 신정으로 부르고, 우리가 쇠는 음력설은 오래되어 폐지되어야 한다는 의미에서 구정으로 불렀다. 이 이름은 일제가 물러간 이후에도 사용됐지만, 1989년에는 음력설을 설날로 개칭한 이후에는 거의 사용하지 않는다. 구정이라는 단어는 역사의 아픔이 있는 단어일 뿐 우리의 고유 명절하고는 거리가 있다. 애초부터 설날이라는 본래의 이름이 바른 표현이다. 구정이라는 표현을 써서는 안 된다. 설날에는 그믐밤에 잠을 자면 눈썹이 하얗게 샌다고 하여 밤을 지새우기도 한다. 설날부터 정월 대보름까지의 15일 동안을 정초라 하며, 이 기간 동안 행하여지는 여러 풍습이 전해진다. 차례를 지내고 세배를 한 후에는 윷놀이·널뛰기·연날리기 등 여러 민속놀이를 한다. 보통 설날 아침에는 전통적으로 차례를 지내고, 떡국을 먹는다. 흰쌀을 빻아 만든 떡국은 설날 아침 제사지낼 때 제물(祭物)로 차리거나 손님에게 차려 낸다. 흰떡을 사용하여 떡국을 만드는 것은 새해 첫날이 밝아오므로 밝음의 뜻으로 흰떡을 사용하고, 떡국의 떡을 둥글게 하는 것은 둥근 태양을 상징하는 등 태양숭배 사상에서 유래된 듯하다. 설날에 떡국을 먹는 것이 나이를 한 살 더 먹는다는 의미가 있다. 차례를 지내고 난 후에는 친척이나 이웃 웃어른들에 세배를 한다. 세배는 웃어른에게 감사의 마음을 표현하고 건강을 기원하는 의미가 담겨 있다. 세배를 받은 웃어른들은 아랫사람에게 답례로 세뱃돈이나 덕담을 해준다. 설은 조상께 제를 올리고, 흩어져 사는 가족이 만나는 데서 즐거움이 있다. 이때만이라도 서로 기대며, 가족의 사랑을 느끼는 기회가 되어야 한다. 특히 칭찬과 격려의 덕담을 주고받으면 힘이 된다. 그러기 위해서는 덕담도 사전에 준비해 두는 것이 좋다. 무심코 하는 말보다 생각을 깊게 하고 말해야 감동이 있다. 온라인 취업 포털 조사에 따르면 구직자들이 설 명절에 가장 듣기 싫은 말은 ‘앞으로 어떻게 할 거니?’라고 한다. 그리고 직장인들이 가장 듣기 싫은 말은 미혼인 경우 ‘결혼은 언제 할래?’가 가장 많았고 기혼자의 경우 ‘애는 언제 가질래?’가 가장 많았다고 한다. 덕담을 하는 사람은 걱정해준다고 하는 말이지만 듣는 사람은 부담을 느낄 수 있다. 덕담을 하고 싶으면, “우리 집안의 기둥감이구나, 웃는 모습이 더 맑아졌다, 이제 어른처럼 보여 부족함이 없어 보인다”라고 말하면 듣는 사람도 기분이 좋아진다. 이번 설날에는 마음의 상처까지 치유되는 짧은 덕담 한마디를 준비해 보라. 고용노동부가 설을 앞두고 임금체불 실태를 조사한 결과 1주일 사이 2천여 곳에서 2백억 여 원의 체불 사례가 확인됐다는 뉴스가 있다. 체불임금은 지난 2009년 1조 원을 넘어 급증했다가 줄어드는 추세였는데, 지난해 다시 늘었다고 한다. 이는 처벌이 약하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국민권익위원회가 최근 3년간 설 전후 15일간 국민신문고를 통해 접수된 민원을 분석한 결과에서도 설날과 관련한 민원 중에서는 체불임금 관련 민원이 가장 많은 것으로 나타났다. 3년간의 설 관련 민원 916건을 제기한 민원을 유형별로 보면, 체불임금 지급요청이 310건(33.8%)으로 가장 많았다. 불경기를 핑계로 곳곳에서 임금을 지급하지 않고 있어 가슴 아프다. 그들은 대부분 서민인데 명절이라도 따뜻하게 보낼 수 있도록 사회적 관심이 있어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