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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세검색“교단 수기공모에 입상하신 것을 축하드립니다.” 미술 수업 중에 우연히 보게 된 문자 한 통. 얼핏 본 문자에 가슴이 두근거리기 시작했고 가라앉히기 힘든 기쁨의 감정을 애써 누르고 자세히 살펴봤다. 그런데 이게 웬일인가? ‘금상’이었다. 열심히 미술 활동을 하고 있는 아이들을 향해 나도 모르게 “얘들아, 선생님 금상 받았어!”하니 아이들은 일제히 “와!~”하며 일어서서 박수를 쳐줬다. 교단수기 공모에 응모하면서 우리 반 아이들에게 ‘5학년 9반 꿈쟁이들’ 이야기를 글로 써서 공모전에 제출했는데 결과가 나오면 알려주겠다고 미리 얘기했기 때문에 아이들은 ‘금상’의 의미를 금방 알았다. 아이들을 모두 보내고 혼자 남은 교실에서 내가 쓴 수기를 다시 한 번 읽어봤다. 부족한 글이지만 진정성을 인정해주신 교단수기 심사위원분들께 감사했다. 그리고 이 상이 특별한 목적 없이 출퇴근을 반복하던 10년의 월급쟁이 같은 생활을 마감하고 아이들을 향한 나만의 꿈으로 진짜 교사가 되기 위해 몸부림쳤던 최근 2년 동안의 노력에 대한 가장 큰 보상으로 여겨졌다. 어떤 교사가 훌륭한 교사일까? 수업을 잘하는 교사? 학급경영을 시스템화해 능숙하게 운영하는 교사? 아이들의 마음을 잘 읽어 주고 생활지도를 잘하는 교사? 다양한 연구대회에 참여해 좋은 성적을 내는 교사? 지금도 많은 선생님들이 좋은 교사가 되기 위해 고민하고 노력하고 있을 것이다. 사실 난, 아직도 어떤 교사가 훌륭한 교사인지 답을 얻지 못했다. 그러나 지금의 나는 내가 맡은 아이들이 자기 안에 있는 가능성의 씨앗을 발견해 꿈을 꿀 수 있고, 미래에 이룰 꿈으로 어떤 가치 있는 일을 하며 살아야 하는지 가르쳐주고 보여주는 교사이고 싶다. OECD 국가 중 청소년 주관적 행복지수 꼴찌라는 불명예스러운 타이틀을 가지고 있는 대한민국에서 공부하는 학생들. 학교폭력, 과도한 경쟁 등에서 자유로워졌으면 좋겠다. 스스로 세운 목표를 향해 즐거운 탐험을 하듯 공부에 몰입하고, 가치 있는 미래를 설계하며 매 순간 신바람 나는 학교생활을 한다면 얼마나 좋을까. 이런 세상이 올 것을 기대하고 꿈꾸면 나도 모르게 입가에 웃음이 번진다. 교사생활에 새로운 힘을 얻게 해주고, 내가 하고 있는 일에 의미를 부여해 준 한국교육신문에 다시 한 번 감사한 마음을 전하고 싶다.
월급쟁이 같은 생활 마감 “연금 받으려면 학교에 얼마나 더 다녀야 하지? 어유~ 아직도 많이 남았네.”, “방학이나 빨리 왔으면 좋겠다.”, “학교를 그만두면 뭘 할 수 있을까?” 지난 10년 동안 난 ‘교사’가 아닌 그냥 그런 월급쟁이였을 뿐이다. 그런 나에게 ‘교사’라는 직업이 갖는 정체성에 커다란 변화를 일으킨 터닝 포인트가 있었다. 2010년 겨울 길목에 들어선 11월 어느 날, 퇴근길 라디오 89.1MHz에서 평소 듣던 진행자가 아닌 낯선 사람의 목소리가 들려 귀를 기울였다. 김연아 선수의 슬럼프 이야기를 잠깐 하면서 ‘꿈 너머 꿈’을 꾸어야 한다는 그의 말에 이상하리만큼 몰입이 됐다. 우리 아이들이 ‘의사’, ‘변호사’, ‘교사’ 등의 명사형의 꿈을 갖는 것이 아니라 이제는 형용사로 말하는 꿈을 꿔야 한다고 확신에 찬 어조로 말했다. ‘교사가 되어 행복하게 공부할 수 있도록 도와주겠다’, ‘어떤 처지에 있더라도 삶은 아름답다고 알려주는 작가가 되겠다’, ‘저소득층의 학생들이 양질의 교육을 받을 수 있도록 도와주는 경영자가 되겠다,’ 다소 포괄적이고 모호할 수 있어 보이지만 ‘꿈 너머 꿈’, ‘형용사로 말하는 꿈’은 내게 무척이나 매력적으로 다가왔고 그런 꿈을 꾸는 아이들을 생각하니 가슴이 두근거리기까지 했다. 그날 이후 나는 학생들에게 어떤 교사가 되어야 할지, 동료교사들에게는 어떤 영향을 끼치면 좋을지 나만의 ‘꿈 너머 꿈’을 생각하게 됐다. 그러다 새해가 밝았고 2011년을 새로운 선생님들과 새 학년을 시작하게 됐다. 나는 학년부장도 진로부장도 아니었지만, 학년협의 시간에 용기를 내 아이들에게 ‘꿈 너머 꿈’을 심어줄 수 있는 진로교육을 해보자고 제안했다. 그렇게 시작된 나의 꿈 교육은 아이들을 향한 특별한 목적 없이 출퇴근을 반복했던, 월급쟁이 같은 10년의 생활을 마감하게 했다. 2011년 순수한 마음으로 계획하고 진행했던 ‘꿈 너머 꿈 교육’은 아이들에게 작은 변화를 일으켰고 함께 연구했던 교사들도 의미 있는 상으로 보상받을 수 있어서 더없이 행복했다. 다시 나를 움직이게 한 원동력 내 마음속에 지펴진 꿈은 2012년 2월, 우리나라 최초의 맹인 박사인 강영우 박사의 ‘원동력’이라는 책을 접하게 되면서 더 강하게 타올랐다. 강 박사는 두 아들을 모두 미국의 필립스 아카데미에 보냈는데 그것은 아이가 어렸을 때부터 계획했던 것이라고 한다. 그 이유는 필립스 아카데미의 건학이념에 있는데 ‘Not For Self’ 나 스스로를 위해서가 아닌, 다시 말해 공부하는 이유가 자신의 출세나 높은 명성을 얻기 위해서가 아니라 지역사회, 국가, 더 나아가 세계를 위함에 있다는 말이다. 나 자신을 위한 작은 목표가 아니라 다른 이들을 위한 목표로 공부를 하니 출발부터 다른 것이다. 나는 ‘Not For Self’ 가치를 바탕으로 하는 꾸준한 실천 교육을 통해 과도한 경쟁에 의한 스트레스, 학생들 간에 이루어지는 심각한 학교폭력 문제, 그 밖에도 우리나라 학교에서 발생되는 부정적인 요소들을 조금씩 해결할 수 있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어렵기만 한 ‘Not For Self’의 꿈 학생들이 생각하는 공부에 대한 부정적인 인식, 학교에서 발생하는 크고 작은 사건 등은 ‘Not For Self 교육’을 통해 해결할 수 있을 것이라는 확신으로 아이들과의 첫 만남을 가졌다. 원대한 목표를 가지고 열정적으로 2012학년도 새 학기를 출발했다. 그렇지만 예상과는 달리 학생들 간의 다툼은 끊이지 않았고, 공부에 대한 의욕도 좀처럼 생기지 않았다. 심지어 한 학생을 여러 명이 이유 없이 놀리고 소외시키는 일까지 벌어지는 지경이었다. 그러나 그런 와중에도 아침마다 끊임없이 자성예언을 외쳤고, 59비전선언문(5학년 9반 비전 선언문)을 낭독했으며 좋지 않은 사건이 발생할 때마다 Not For Self의 가치를 운운했다. 아이들의 변하지 않는 생각과 행동을 지켜보면서 인내심의 한계를 느끼기도 했지만 ‘그래, 사람이 변하기란 그렇게 쉬운 일이 아니야’하며 나를 다스려갔다. 점심시간마다 급식데이트를 하면서 아이들의 마음을 읽어보려 애썼고, 공부하는데 어려움을 겪는 아이들을 위해 내 시간을 쪼개 열심히 가르쳐 보기도 했다. 그런데 이런 와중에 그렇게 나 나름대로 끝까지 최선을 다해보려는 마음에 분노가 치밀어 내가 하고 있는 교육이 무의미하게 여겨지는 일이 발생했다. ‘찌는 듯한 더위’가 실감 나는 뜨거웠던 어느 날, 남아서 공부를 하기로 했던 아이가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집으로 가버렸다. 전화를 걸어도 받지 않아 그 아이와 친한 친구에게 전화했지만 통화를 할 수 없었다. 너무 화가 나서 그 아이 집으로 향했지만 만날 수 없었다. 사실 아이들이 도망가는 일은 흔히 있는 일이다. 하지만 애쓰는 내 마음을 알아주지 못한 서운함이 컸던 탓일까? 그날 난, 그 아이에 대해 지나치다 싶을 정도로 집요했다. 퇴근길에 차 안에서 3월부터 있었던 많은 일들을 떠올리니 하염없이 눈물이 쏟아졌다. 그러면서 속으로 중얼거렸다. ‘너희들에게 Not For Self가 가당하기나 한 얘기냐?’ 왠지 모를 서러움이 복받쳐 눈물이 멈추질 않았다. 그날 저녁, 아이로부터 전화가 걸려왔다. 혼날까 봐 기죽은 나지막한 목소리로 ‘죄송하다’고 하는데 화가 나기보다는 괜스레 측은히 여겨졌다. 다음 날 아침 조회시간, 없었던 일로 하고 그냥 넘겨서는 안 될 것 같아 반 학생들 모두에게 어제 일에 대해 이야기하고 그 아이를 앞으로 나오게 했다. “태성(가명)이가 선생님에게 말하지 않고 그냥 가버린 것은 잘못한 일이고, 그런 행동에 대해서는 반성하는 시간을 가질 것이다. 하지만 태성이의 의사와 관계없이 선생님이 공부를 시킨 것이 태성이에게는 힘들었던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지금 이 시간에는 태성이가 앞으로 공부를 잘할 수 있도록 너희들 모두가 한 사람씩 나와서 꽉 안아주며 격려해줬으면 좋겠구나. 남자들은 허깅(hugging)을 하고 여자들은 악수하며 격려해주자. 그렇게 해 줄 수 있지?” 드라마에서나 나올 것 같은 대사를 하고 난 후 왠지 모를 뿌듯함이 느껴졌는데, 내 눈앞에서 펼쳐지고 있는 아이들의 모습은 영화에서나 볼 수 있을 장면이었다. 힘을 다해 꽉 안아주는 남자아이들이 너무 대견했고, 쑥스러워하면서 악수를 해주는 여학생들은 얼마나 사랑스러웠는지 모른다. 태성이는 그날 안겼을 때 특별한 느낌을 받았다고 말했다. 그날 이후부터 지금까지 태성이는 비록 성적에는 큰 변화가 없어도 적어도 공부를 왜 해야 하는지는 분명히 말할 수 있게 됐다. 그리고 나는, 그날 본 아이들의 모습을 통해 새롭게 힘을 얻으며 또다시 열정을 뿜어낼 수 있었다. “선생님, 슈퍼맨이 된 것 같아요” 우리 반에서는 Not For Self 가치를 실현해보기 위해 많은 활동을 했는데 그중에서도 가장 기억에 남는 것은 국제 NGO ‘생명누리’에 기부금을 전달한 일이다. 그것은 4월 수학여행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불국사에서 몇몇 학생들이 땅에 떨어진 돈 7000원을 주워왔다. 주인을 찾아줘야 한다고 해서 사실 매우 난감했다. 그때 불국사는 발 디딜 틈도 없을 만큼 학생들로 가득 차서 돈의 주인 찾기는 불가능해 보였기 때문이다. 나는 학생들과 함께 안내센터로 가서 혹시 돈을 잃어버려서 찾으러 온 사람이 있었냐고 물었지만 없다는 이야기만 들었다. 아이들을 교육하는 입장에서 더 적극적인 방법을 찾아야 했기에 이곳에 기부할 곳이 마련돼 있냐고 물었는데 그런 곳도 없다고 했다. 돈을 주워온 학생들과 의논한 결과 우리 반 저금통에 넣어 좋은 일에 쓰자고 결론을 맺었다. 우리 반 저금통은 돈을 발견했는데 찾아주지 못했을 때 넣는 통이다. 가끔 복도나 학교운동장에서 100원짜리 동전을 줍는 경우가 종종 있는데 이런 동전들은 주인을 찾아 주기가 매우 어렵기 때문에 생각해 낸 것이다. 이렇게 모인 돈과 미술․실과․도덕교과를 통합 운영한 바자회 활동을 통해 얻은 기금을 합치니 7만8000원이나 됐다. 이 기금은 Not For Self의 가치를 실천하는 일에 쓰인다는 것을 알고 있었던 아이들은 어디에, 어떻게 사용될지 무척 궁금해했다. 어떻게 의미 있게 사용할지에 대해 고민하던 중, 대학 때부터 ‘생명누리’라는 NGO에서 봉사활동을 했던 학년 선생님을 통해 단체에 기부하기로 결정했다. 액수가 크지 않았지만 기부의 취지를 알게 된 생명누리에서 고맙게도 직접 학교를 찾아와 아이들이 모은 기금이 어디에 쓰이는지 영상을 보여주며 설명해 줬다. 그런 과정들은 아이들 스스로 지금 하는 행동이 얼마나 뜻 깊은 지 느끼게 해줬다. 아이들이 그날 일에 대해 쓴 소감문에는 “내가 생명누리 단체에 기부금을 전달했는데 그 순간이 우리 반의 Not For Self 정신이 담겨있다고 생각했다.” “나의 돈을 다른 사람들에게 기부할 수 있다는 것 자체가 신기하고 즐거운 추억이 될 것 같다.” “우리가 바자회를 해서 모은 돈을 뜻 깊은데 쓰는 게 자랑스러웠다.” “정말 우리 반이 슈퍼맨이 된 것처럼 좋았고, 다른 사람에게 자랑하고 싶었다” 등의 내용이 적혀있었다. 학생의 변화, 진짜 교사 만들어 학생과 교사 모두가 행복한 학교생활이 되기를 꿈꾸며 시작한 Not For Self 교육. 그것을 통해 우리 반 28명 모두에게 가슴 뛰게 하는 꿈이 생기고, 자기 스스로가 주체가 되는 공부를 할 수 있게 된 것은 아니었다. 하지만 교사로서 보람을 느낄 수 있었던 것은 다양한 활동 후에 학생들이 말한 소감이 희망적이기 때문이다. 또한 내가 Not For Self 교육을 계속 해야겠다 마음먹은 이유는 나 외에 다른 사람들을 생각하는 마음이 생겼다고 말하는 학생들, 자기에게 더 어울리는 꿈을 찾았다고 말하는 학생들, 하고 싶은 것이 생겼다고 말하는 학생들, 공부하고 싶어졌다고 말하는 학생들이 있기 때문이다. 부족한 선생님을 좋아해 주며 내가 하는 말을 실천해보려고 애쓰는 우리 5학년 9반 꿈쟁이들을 떠올리면 입가에 미소가 저절로 번지게 된다. “사랑한다. 꿈쟁이들!”
죄 없는 아이들의 고통은 ‘세상의 업’이라고 한다. 교육 현장에서 위기 가정의 아이들을 상담하면서 어린아이 시절 입은 영혼의 상처는 세상 뭇 어미인 나의 가슴에 슬픔으로 각인되곤 했다. 예전 같으면 아이들의 비뚤어진 행동을 질책하고, 내 노력에도 불구하고 쉽게 바뀌지 않는 그들에게 속상해 했겠지만 그들 역시 가정과 사회의 피해자라는 생각에 인내하며 기다려주게 됐다. 전문상담교사로서 나의 작은 소양을 그들을 위해서 쓸 수 있음에 감사한다. 영은이는 부모로부터 버림을 받고 언니의 학대를 못 이겨 가출했던 아이였다. 아이를 찾았을 때 마른버짐이 핀 얼굴과 벌에 쏘인 것처럼 온몸에 생채기 투성이었던 모습이 떠오른다. 지금은 사회의 건강한 구성원으로서 잘살아갈 것이라고 확신한다. 세상이 각박하다고 하지만 온정의 손길도 많다. 당시 처녀티가 나던 아이를 잘 보살펴 주었던 시장의 국수집 할머니, 번갈아가며 아이를 보살펴주던 우리 반 학부모님들의 모습이 떠오른다. 지금 현재 전국에 가출이 아동 10만 명, 학업 중도 포기 청소년 20만 명, 학교 부적응학생 178만 명이 있다고 한다. 그들은 ‘예비 사회부적응인’들이라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그들은 태어날 때부터 그런 문제를 가지고 태어났을까? 지금도 많은 문제를 가진 아이들을 상담하고 있다. 어떤 일이 있어도 그들을 포기하지 않겠다는 소명의식을 가지고 바라본다. 햇살이 앉은 책상을 쓸며 수업 준비를 하고 있을 때 수상을 확인하라는 문자를 받았다. 교사로서 할 일을 당연히 했을 뿐인데 이런 큰 상을 주신 한국교육신문에 감사드린다. 더욱 정진하라는 뜻으로 알고 ‘아이들을 섬기자’라는 내 교육 철학을 다시 한 번 다진다.
새내기 교사로 교직에 들어왔을 때 열악한 교육환경 때문에 그리 보람을 느끼지 못했었다. 그러나 세월이 흐르면서 수많은 아이들을 만나고 헤어지는 과정을 통해서 교사는 성직자 못지않게 소중한 직업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수정이의 담임을 하면서 1학년인 수정이가 혹시 잘못되지는 않을까 조바심과 걱정이 앞섰다. 수정이가 보통 아이들과 함께 건강하게 성장해 우리 사회의 구성원으로서 우뚝 서기를 바라는 마음이 간절했다. 아이들은 교사의 사랑을 먹고 무럭무럭 자란다. 아이들은 교사의 관심만큼 성장한다는 평범한 진리를 이 수기를 쓰면서 다시 한 번 알게 됐다. 교사에게 있어 담임은 정말 매력적인 보직이다. 담임을 맡아 소속감을 느끼고 아이들과 함께해야만 교사의 진정한 생명력이 있다. 그렇기 때문에 아이들이 있어 교사는 행복한 것이다. 비록 높은 보수와 지위는 없지만 교사는 세상 어느 누구도 누릴 수 없는 보람이 있어 행복하다. 한국교육신문 교단수기 공모 입상소식은 그동안 바쁜 교직 생활로 나를 잊고 살았던 차에 다시 한 번 삶의 활력소를 넘치게 해준 행복한 사건이었다. 더불어 앞으로 더욱 열심히 교직에 정진하라는 메시지로 이 상을 주신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교실은 작은 사회다. 교실 속의 작은 변화는 사회의 변화와 동일시해도 될 것이다. 이 시간에도 묵묵히 교단을 지키며 아이들과 함께하는 이 땅의 수많은 선생님들 앞에서 나의 자그마한 이야기가 당선된 것 같아 조금 부끄럽기도 하다. 올해 아들 녀석이 교대 입학사정관 전형으로 합격했다. 아들을 보며 “부모로서 그래도 부끄럽게는 살지 않았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다른 몇 개의 대학에 합격했음에도 불구하고 굳이 교사의 길을 가겠다며 매일 피아노를 연습하는 아들을 보면서 최소한 아들만큼은 좋은 교사가 되도록 조력하는 멘토 역할을 잘해야겠다는 다짐도 해봤다. 부족한 글을 뽑아주신 한국교육신문사에 감사를 드리며 앞으로 더욱 좋은 교사가 될 것을 다짐해본다.
몇 해 전일이다. 우리 반에 여학생이 전학을 왔다. 얼굴이 까무잡잡한 수정이는 키가 보통 아이들보다는 조금 컸다. 아이는 “선생님, 안녕하세요? 제 자리가 어디예요?”라고 묻고는 겸연쩍다는 표정을 지어 보였다. 그러나 왠지 어딘가에 그늘이 있어 보였고 자꾸 눈동자를 마주치지 못했다. 수정이 아버지도 무슨 할 말이 있는 눈치였다. 함께 온 여동생과 수정이를 잠시 나가 놀게 하고 아버님께 의자에 앉을 것을 권했다. 아버지는 묻지도 않았는데 “저 아이가 지난번 학교에서 좀 문제가 있었어요. 친구들 돈도 훔치고 거짓말을 해서 많이 힘들었답니다. 선생님께서 각별히 신경을 쓰셔야 할 것 같습니다”라고 말했다. ‘그 정도야 뭐 아이들에게서 흔히 나타날 수 있는 문제지’하는 생각에 안심하며 “걱정 마세요. 제가 잘 지도하겠습니다”하고 자신만만하게 대답을 했다. 쌀가게 털이 사건 수정이가 전학 온 지 며칠이 흘렀지만 염려했던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그러나 드디어 대형사고가 터지고 말았다. 어느 날 방과 후 교실 정리를 하고 있는데 웬 젊은 남자가 수정이를 질질 끌다시피 하며 교실로 들어서는 것이었다. 그 남자는 “여기 사물함에 있니? 빨리 말 해봐!”하며 몹시 흥분한 상태였다. “수정이가 무슨 잘못을 했나요?”하고 묻자 “죄송합니다. 제가 외삼촌인데 글쎄 이 녀석이 돈을 훔쳤어요. 교실 사물함에 숨겨 놓았다고 해서 왔습니다”라고 했다. 그는 사물함 여기저기를 뒤져보더니 자세한 상황을 알아보려는 나를 뒤로한 채 “다음에 말씀드리겠다”며 훌쩍 나가버렸다. 담임으로서 궁금하고 책임감도 들어서 퇴근 후 수정이가 살고 있는 임대아파트를 방문했다. 집에 들어서니 수정이 아버지가 천정만 바라보고 담배를 피우며 한숨만 쉬고 있었다. 자초지종을 들어보니 어제저녁 수정이가 쌀가게 금고에서 거액을 훔쳤다는 것이었다. 초등 1학년 아이의 행동이라고는 믿기지 않았다. 수정이가 물건을 사러 동네슈퍼에 갔고, 100만 원권 수표를 수상히 여긴 가게 주인이 파출소에 신고해 발각됐다는 것이었다. 수정이가 돈을 숨긴 곳을 자꾸 번복해 학교 등을 샅샅이 뒤졌지만 끝내 돈은 못 찾았다고 했다. 외삼촌에게 다리를 절뚝거릴 정도로 맞았음에도 돈의 행방을 말하지 않은 수정이가 한편으로는 불쌍해 보였다. 이런 큰 사건은 처음 겪는 일이어서 일이 손에 잡히지 않았다. 수정이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우선 가정환경 파악이 급선무였다. 가정방문을 해보니 아버지는 IMF 때 실직한 후 포장마차를 하다 교통사고를 당해 장애인 판정을 받았고, 역시 양쪽 다리가 불편해 장애 2급 판정을 받은 어머니는 매일 침대에 누워 생활하고 있었다. 수정이네는 생활보호대상자로 정부에서 나오는 매월 70만원의 생계보조비로 가정을 꾸려가고 있었다. 수정이 밑으로도 여동생(6세), 남동생(4세)이 있었는데 남동생은 “꺼~꺼~” 소리만 낼 뿐 말도 잘하지 못했다. 내가 방문하자 두 동생은 내 품에서 안아 달라고 조르고 재미있는 이야기를 해달라고 보챘다. 가정방문을 마치고 앞으로 내가 도와야 할 부분이 많음을 깨닫고 최선을 다해 노력하겠노라고 마음속으로 다짐했다. 학교는 잠자는 곳 쌀가게 사건 이후, 수정이는 학교에 오면 수업 시간에 꾸벅꾸벅 졸고 있거나 교실 천정만 멍하니 쳐다봤다. 상담실에서 수정이의 손을 잡고 얘기해보니 파출소에서 아버지, 쌀가게 주인과 함께 밤늦게까지 조사를 받았고 아빠한테 혼나 잠을 자지 못했다고 했다. 이런 상황에서는 공부보다는 쉬는 편이 나을 것 같아서 보건실에서 쉬다 오게 했다. 그런데 4교시가 끝나가도록 교실로 돌아오지 않았다. 보건선생님께 좀 깨워달라고 부탁하니 워낙 곤히 잠들어 차마 깨울 수가 없었다고 했다. 보건선생님이 깨워 오후 4시가 넘어서 교실로 들어오는 수정이에게 “잘 잤니?” 묻자 고개만 끄덕일 뿐 대답이 없었다. 버스 타는 곳까지 바래다주겠다고 했더니 “선생님, 저 집에 들어가기 싫어요. 아빠가 또 때린단 말예요”하며 꺼려했다. 수정이를 몇 번 설득했지만 거절을 해서 아버님께 조금만 데리고 있겠노라 전화를 드리고 교실에서 짜장면을 시켜서 같이 먹고, 마음이 놓이지 않아 집까지 바래다줬다. 아버님께 잘 지도하겠으니 절대로 더 이상 매를 들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신신당부를 했다. 아이의 세 가지 소원 며칠 후 경기도 아동학대센터 상담원이 학교와 수정이를 방문했다. 상담원은 어제저녁 편의점 직원의 신고를 받고 왔다며 수정이에 대해서 이것저것을 물어봤다. 사정을 설명했더니 상담원도 수정이의 집에 있는 사이 그가 보는 앞에서도 엄마에게 큰 소리를 지르며 대드는 등 어린이답지 않은 행동에 깜짝 놀랐다고 했다. 아동학대센터에서 병원을 소개했고, 다음날 수정이 아버님과 함께 찾아갔다. 의사가 상담 중 수정이에게 세 가지 소원을 말해보라고 했다. 아이는 돈을 많이 벌어 부모님을 편안하게 모시는 것, 돈 많은 사람과 결혼해 행복하게 사는 것, 먹고 싶은 것을 마음껏 먹어봤으면 좋겠다고 소원을 말했다. 의사는 수정이의 소원이 대학생 정도 나이에나 할 수 있는 얘기라며 어떻게 초등 1학년 아이가 그런 생각을 할 수 있는지 납득하기 어렵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자기는 소아정신과 전문의가 아니어서 더 이상 도움은 줄 수 없다고 했다. 돌아오며 생각해보니 수정이의 소원은 불우한 가정환경과 가난 때문인 것 같았다. 아이는 급식시간에 언제나 다른 아이들보다 두 배 정도의 양을 더 먹었다. 혼자 먹기가 멋쩍었던지 “선생님, 제가 밥을 다 먹을 때까지 기다리셔야 해요. 약속할 수 있죠?”하고 다짐까지 받았다. 좋아하는 반찬이 나오는 날이면 수정이가 정신없이 먹었던 이유를 알 것 같았다. 다시 시작된 절도, 결석 병원에 다녀온 후 며칠 조용했던 수정이가 또 도벽을 했다. 3교시 수업을 하려는데 남자아이들이 “수정이가 돈을 훔쳤어요”라며 1반 아이의 호주머니에서 꺼내 갔다는 것이었다. ‘설마’하는 생각에 1반 선생님을 통해 확인했더니 사실이었다. 새삼스럽지도 않았지만, 지난 일로 앞으로 도둑질, 거짓말은 절대하지 않겠다던 나와의 약속을 깨뜨린 수정이가 얄미웠다. 더구나 돈을 잃어버린 아이는 할아버지와 단둘이 사는 어려운 형편이어서 수정이의 행동은 그냥 넘어갈 수가 없었다. 수업이 끝난 후 수정이를 교실에 남게 했다. 늘 그래왔듯 이번에도 수정이는 도벽을 완강히 부인했다. 타일러도, 윽박질러도 봤지만 끝까지 말하지 않았다. 일단 집으로 돌려보내고 퇴근 후 어머니와 통화해보니 아직 집에 오지 않았다는 것이었다. 다시 밤늦은 통화에서 수정이는 밤 11시가 다 돼서 들어왔으며 학교에서 1만1000원을 훔쳤다고 말했다고 했다. 나에게 말하지 않았던 이유는 약속을 깬 죄책감이거나, 혼날까봐 겁을 먹었거나 둘 중 하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다음 날 수정이는 학교에 나타나지 않았다. 아이들의 생활지도가 이렇게 힘들었던 적은 없었다. 문제아 한 명이 우리 반 전체보다 더 큰 느낌이었다. 학교 주변의 오락실과 PC방, 만화방을 찾아봤지만 헛수고였다. 가는 곳마다 오락실 주인들에게 수정이네 집과 내 연락처를 알려주고 앞으로 수정이가 올 때면 연락을 달라고 당부를 했다. 3시간의 추적을 끝내고 집으로 돌아오는 발걸음이 무거웠다. 이튿날 학교로 출근하기 전 곧장 수정이의 집으로 향했다. “수정아 학교가야지”하고 아무리 불러도 이불을 쓰고 꿈쩍하지 않았다. 아빠한테 많이 혼난 모양이었다. 가까스로 달래 손을 붙잡고 학교까지 걸었다. 선생님한테 혼날까봐 학교에 오지 않았고, 아빠한테 벌을 받거나 매를 맞기 때문에 집도 싫다고 했다. 자신의 잘못된 행동을 반성하기보다 부모님의 체벌이 억울하고 부당하다는 생각이었다. 어떻게 하면 수정이의 도벽을 고칠 수 있을까 고민이 됐다. 자존감 높여주기 대작전 수정이가 학교에 잘 적응하고 도벽을 줄일 방법은 자존감을 높여주는 방법이 좋을 것 같았다. 1반 아이의 돈을 훔친 뒤로는 아이들이 수정이를 왕따 시키고 있다는 느낌이었다. 수정이는 학교에 오면 주로 나와 대화했다. 그런 수정이에게 “학교에 오면 친구들 하고 놀아야지”하면 “저하고는 안 놀려고 해요. 저보고 자꾸 00년이라고 해요”라며 내 손을 꼭 잡을 때가 많았다. 가끔씩 아이들이 보는 앞에서 수정이를 꼭 안아주기도 하고 불끈 들어서 빙 돌려주면 “선생님이 수정이 아빠예요? 왜 수정이만 예뻐해요”라며 질투하는 아이도 있었다. 수정이는 아이들에게 선생님 집에 가봤다는 얘기부터 선생님이 붕어빵과 아이스크림도 사주고 자신의 집에 자주 오신다며 자랑스럽게 이야기했다. 나에게 만이라도 마음의 문을 활짝 열게 하기 위해서는 충분한 레포 형성이 필요할 것 같아 수업이 끝나면 아이스크림도 사주고 우리 집 구경도 시켜줬다. 우리 집에서만큼은 편안한 마음을 가지도록 동화책도 읽어주고 받아쓰기 연습도 하고 라면도 같이 먹으면서 친해지려고 노력을 했다. 수정이의 손을 붙잡고 교실로 가는 계단을 오르며 앞으로 정직하고 올바르게 행동하면 지난번과 같이 상도 주고 친구들 생일파티에 꼭 초대되도록 약속하겠다는 얘기를 해줬다. 그동안 여러 번의 생일파티가 있었지만 번번이 수정이는 초대받지 못해 간절히 원해왔었다. 그러던 중 얼굴도 예쁘고 똑똑한 우리 반 은아의 생일이 있었다. 하지만 은아 역시 수정이를 생일 파티에 초대하지 않았고, 수정이는 눈물을 글썽거렸다. 더구나 생일 파티를 집이 아닌 ‘정글인’이라는 곳에서 했기 때문에 수정이의 실망은 매우 컸다. 며칠 전 약속도 있고 해서 수정에게 “선생님이 노력해 볼 테니 걱정 말아라”하고 위로하고 은아네 집에 전화를 했다. 마침 학교운영위원의 자녀여서 부모님께 사정을 말씀드리니 걱정 말라며 은아를 설득해 초대하겠노라고 했다. 드디어 생일 파티에 수정이도 함께 할 수 있었다. 정글인에 도착하니 아이들은 마냥 신나서 정신없이 놀았고 수정이를 배척했던 아이들도 나와 학부모님이 놀이기구를 타고 수정이와 함께했더니 서서히 마음의 문을 열었다. 놀이기구를 신나게 타는 수정이는 여느 아이와 다를 바 없는 초등 1학년이었다. 수정이에게 긍정적인 변화의 가능성이 있다는 신념을 포기한 적은 단 한 번도 없었다. 12월24일 한 학년을 마무리하는 기분으로 학예회를 준비했다. 노래와 율동, 닭싸움, 태권도 시범 등과 촛불의식이 있었다. 1년간 친구들이나 선생님께 잘못했던 점을 반성하고 새 학년의 각오를 한 가지씩 적어서 부모님들 앞에서 큰 소리로 낭독하는 시간을 가졌다. 드디어 수정이 차례가 왔다. “부모님, 선생님 말씀을 잘 듣겠습니다. 정직한 어린이가 되겠습니다!” 수정이의 목소리가 교실에 울려 퍼졌다. 다짐을 발표하는 모습을 보면서 ‘교사에게 담임은 정말 소중하구나, 정말 내가 보람 있는 일을 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수정이에게 이 순간은 매우 의미 있는 시간으로 기억될 것이다. 대부분의 도벽은 인정받고 싶은 욕구의 왜곡된 표현이거나 경제적 빈곤 때문에 일어난다고 한다. 우리 주변에는 수정이 같이 누군가의 도움의 손길이 절실히 필요한 아이들이 많이 있지만 자칫 소홀히 여겨지는 경우가 있는 것 같다. 그러나 모든 어린이가 다 내 자식이라고 생각한다면 결코 소홀히 할 수 없을 것이다. 많은 선생님들께서 수정이와 같은 아이에게 좀 더 깊은 관심과 사랑을 가졌으면 좋겠다.
서울시의회가 올해 처음 임시회를 열면서 문용린 서울시교육감이 취임 후 시의회 데뷔전을 치렀다. 하지만 예상대로 민주당 의원이 다수인 시의회와 문 교육감의 만남은 순탄치 않았고, 간극만 더 확인됐다. 다른 교육정책에 대한 논의는 빠진 채 혁신학교, 학생인권조례로 시작해 혁신학교, 학생인권조례로 끝났기 때문이다. 문 교육감과 시의회 의원들 간의 갈등은 지난해 첫 상견례 때부터 예고됐던 일이다. ‘혁신학교 확대’와 ‘시설개선 사업 예산 확보’ 등에서 서로의 온도차를 확인한 것에 그치지 않고 설전까지 벌이면서 신경전이 이어졌기 때문이다. 이번 임시회도 마찬가지다. 포문은 본회의 시작과 함께 김명수 시의회 의장(민주통합당)이 열었다. 김 의장은 개회사에서 “교육감이 바뀌었다고 해서 서울 교육의 근간이 흔들려서는 안 된다”며 “교육감은 학생인권조례를 수정하기에 앞서 교육여건 개선과 학교폭력 예방 등 학교의 근본 문제 해결이 시급한 과제임을 명심하고 당면 현안인 혁신학교 추진에 박차를 가해달라”고 주문한 것. 윤명화 의원(민주통합당)도 가세했다. 윤 의원은 “교육감은 행복교육을 하겠다면서 혁신학교를 거부하고 흠집내고 있다”며 “곽 교육감과 학생인권조례 혁신학교 등 많은 일들을 해냈는데 문 교육감 취임으로 3년간의 노력이 헛수고가 될까 우려된다”고 꼬집었다. 진보성향의 김형태 의원도 “시교육청이 혁신학교 추가 지정을 하지 않고 감사를 하겠다고 한다”며 비판했다. 문 교육감도 “혁신학교 감사는 지난해 11월부터 대상에 포함돼 있었던 것으로 표적감사가 아니다”, “새로 지정한 6개교는 이미 공모 진행 상태여서 교육행정의 신뢰도를 위해 지정했고, 신설교 2교는 정책 평가 후 지정 여부를 결정하는 것이 맞다”, “지금 혁신학교 홍보예산을 집행하는 것은 옳지 않다”, “부모도 자녀가 잘못된 물건을 가지고 다니면 검사를 하는데 담배 등을 지닌 학생을 학교에서 소지품 검사를 하는 게 진정한 교육 아니냐”며 맞섰다. 교육상임위에서는 임시회 기간 동안 문 교육감을 두 차례 불렀다. 하지만 상임위에서 이미 설명하고 답변한 혁신학교, 인권조례는 본회의까지 반복됐다. 시교육청 관계자는 “교육청 공무원들이 연일 시의회에 배석한 것을 보고 한 시의원이 혁신학교, 인권조례 담당 과장만 남고 다 돌아가서 일해도 되지 않겠느냐며 농담을 할 정도였다”라고 전했다. 혁신학교, 인권조례는 임시회가 폐회한 8일에도 ‘긴급현안 질문’으로 이어졌다. 민주통합당 소속 김형태 의원, 윤명화 의원, 김종욱 의원이 연이어 공세를 펼친 것. ‘혁신학교, 인권조례 데뷔전’을 치른 문 교육감은 “시의회를 존중하고 싶지만 교육감 권한으로 정할 수 있는 사항까지 연일 지적을 받으니 교육정책 추진에 어려움이 많을 것 같다”며 교육청 간부들에게 시의회와의 소통을 강조한 것으로 알려졌다. 시교육청 관계자는 “혁신학교는 정책 판단을 다시 하겠다고 밝혔고, 학생인권조례는 조례무효에 대한 대법원의 결정을 앞두고 있는 사항인데 교육청 교육정책은 두 가지 사안만 있는 것 같았다”며 “문 교육감이 의욕적으로 추진하는 교육정책은 전혀 관심이 없더라”고 토로했다.
‘인간과 멸치의 세 가지 공통점은 첫째. 좁은 문을 좋아한다. 둘째, 남 따라 한다. 셋째 떼거리로 몰려다닌다.’ 이 말은 2012년 11월에 발간된 박진욱의 ‘바람과 이슬로 몸과 마음을 씻고 조선의 귀양터 남해 유배지를 찾아서’ 중 지족해협 죽방렴을 찾은 대목에 나오는 내용이다. 이 책의 시작은 유배객 후송 류의양이 처음 건넜다는 노량에서 문을 연다. 그리고 한 여름날 자전거에 다리품을 팔아 남해의 곳곳을 돌아보며 옛 문헌과 전해오는 이야기를 근거로 한 포토에세이 형태로 발간되어 남해에 담겨있는 사연을 누구나 쉽게 들여다볼 수 있도록 하였다. 책을 읽어보면서 지은이가 남해에 뿌리를 내리고 사는 사람보다 더 남해에 관한 역사와 민담, 설화를 잘 알고 있는 것에 대하여 지금껏 남해를 떠나본 일이 없는 남해 사람으로서 부끄러움이 앞섰다. 남해를 더 잘 아는 방법은 무엇일까? 남해유배문학관이 건립된 이후 2012년에 제3회 김만중 문학상시상식이 있었다. 그 중 소설부문에 임종욱의 ‘남해는 잠들지 않는다’라는 작품이 대상으로 선정되었다. 뒤이어 제1회 김만중문학상수상작 독후감 대회와 전국 유배문학스토리텔링 대회가 개최되었다. 이를 계기로 서서히 유배문학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있으며 얼마 있지 않으면 김만중의 유배지 노도가 문학의 섬으로 새롭게 단장된다고 한다. 이런 시점에서 앞에서 말한 수상작품이 남해를 어떻게 피력하고 있는지 궁금하였는데 결과는 남해 사람으로서 부끄러움을 가지게 하였다. 소설은 허구의 세계다. 하지만 그 밑바탕은 사실의 씨앗이 발아하여 허구의 꽃으로 피어난다. 즉 허구 속에 진실이 숨어있는 셈이다. 대상 작품에서는 김만중의 유배 당시 남해의 풍물, 인심, 생활상이 작가의 머릿속에서 절묘하게 조화를 이루어 재탄생하고 있다. 남해에 태를 묻지도 않은 사람이 어떻게 남해를 속속들이 잘 알고 있는지 경이로웠다. ‘수구초심’이라는 말이 있다. ‘여우가 죽을 때 머리를 자기가 살던 굴로 향한다.’는 말로 고향을 그리워 하는 마음을 담은 한자성어이다. 모든 사람에게 고향은 있다. 고향은 유년의 기억을 언제나 되새김 하게 만들고 그리움으로 남아있다. 어쩌면 영원한 어머니의 품인지 모른다. 내 고향 남해! 올겨울 김만중문학상수상작 읽기와 독후감을 쓰면서 남해에 대한 문외함을 반성하며 내 고향을 보는 시각이 새로운 화두로 다가왔다. 당신은 남해에 대하여 얼마나 잘 알고 있습니까? 모든 사람은 자기 근본에 대한 궁금증과 자긍심이 있다. 그 뿌리와 역사를 기록한 책이 성씨별 족보이다. 하지만 족보는 한집안의 내력으로 국한되지만, 고향에 대한 내력은 집안의 성씨를 벗어난 공동체로 엮어져 숨을 쉬며 미래로 이어진다. 남해를 방문한 사람의 남해에 대한 첫인상은 어떠할까? 남해는 남성적인 거제도와 비교하여 해안선이 아름답고 산세가 부드러워 여성성을 가진 섬이라고 말한다. 지도를 보고 어떤이는 남해를 엄마가 아이를 안고 있는 모습으로 보는가 하면 어떤 이는 의자 모양이라고 하기도 한다. 어찌하던 두 의견 모두 포근함과 휴식을 주는 여유를 가진 섬으로 함축할 수 있다. 하지만 객지 사람들은 남해사람의 성향이 배타적이고 투박하고 거칠다고 한다. 정작 남해에 몸을 담고 하나가 된 사람은 그런 성향에 대하여 실감하지 못하고 있다. 왜 남해사람이 배타적이고 거칠다고 느끼는 것일까? 남해는 고려 시대부터 왜구의 노략질 때문에 살기 어려운 곳이었다. 남해에서 왜구와의 싸움으로 유명해진 사람이 고려 시대 정지 장군의 관음포 대첩, 조선수군기지가 있고 최영 장군을 모신 미조의 무민사, 그리고 임진왜란의 마지막 싸움인 노량해전과 더불어 관음포 앞바다에서 전사한 이순신 장군으로 대변된다. 남해는 지리적으로 한양에서 멀어 중앙정부의 힘이 미약한 곳이었다. 기껏해야 현령이 있을 정도였다. 이런 상황에서 민초들이 왜구의 노략질을 피해 살아남기 위해서는 얼마나 많은 고생을 하였는지 가히 상상이 간다. 때론 섬을 버리기도 하였으며 사람들 스스로 성을 쌓고 왜적의 침입을 대비하기도 했다. 그 대표적인 곳이 바다에서 돌을 건져다 쌓은 설천면 진목리의 대국산성이며 남면 상가리의 임진성이다. 이 임진성이 일명 민보 산성이라 불리는 것을 보면 쉽게 수긍이 갈 것이다. 앞에서 말한 박진욱의 글 중에서도 이런 왜구와 관련된 부분이 있다. 일본군은 임진왜란의 마지막 싸움인 노량해전에서 대패한 이후 운요호사건으로 강화도조약 체결 전까지 우리나라 근해에 그 모습을 보이지 않았다고 한다. 그리고 무력으로 조선을 침탈한 이후 전국 곳곳에 파출소를 세우고 일본인 파출소장을 두었지만 유독 남해의 설천면 노량파출소만 조선인 파출소장이 근무했다고 한다. 이유인즉 일본인 파출소장이 오면 얼마못가 급사를 하는 일이 많아 아직도 식지 않은 이순신 장군의 혼백에 대한 두려움 때문이라 한다. 그리로 현대건설에서 남해대교를 건설할 당시 일본인 기술자의 도움을 받았는데 기술자들이 가까운 하동이나 남해읍에 머무를 수도 있었겠지만 이순신 장군이 무서워 저 멀리 여수에 숙소를 정하고 잠깐 둘러보는 형태를 취했다고 하니 얼마나 놀라운 일인가? 19번 국도가 통과하는 관음포를 보자. 그곳은 일본의 침략사에 치욕적이고 굴욕적인 장소였다. 그래서 일제강점기 많은 사람들을 불러서 매립을 하여 농경지로 만들었다고 한다. 오지도 가지도 못한 퇴로가 막힌 관음포 만에서 일본군은 조․명연합 수군의 공격으로 전멸하였으며 임진왜란의 종지부를 찍었던 곳인 만큼 일본으로서는 떠올리기 싫은 역사였다. 이런 왜구의 침탈에 시달린 남해 사람들의 생존 방법은 처절했으리라 생각된다. 그것이 대를 이어 남해 사람의 성향으로 자리를 잡은게 아닌가 한다. 박진욱은 남해섬을 둘러보고 물러남의 아름다움, 돌아감의 지혜, 멈춤의 여유를 말하고 있다. 남해에 몸담고 사는 자신보다 더 상세하게 남해 곳곳을 알려주고 있다. 남해사람이 아닌 타향사람이 남해에 관하여 관심을 두고 책까지 펴내는 것을 보며 남해에 발을 딛고 사는 사람으로서 부끄럼과 더불어 좀 더 내 고향 남해에 대하여 더 많이 알고 관심을 가지는 것이 고향의 뿌리를 깊게 하는 것으로 생각된다.
교권침해가 1년 사이에 24%나 증가했다고 한다. 한국교총의 발표자료이다. 이 자료에는 실제로 교권침해가 일어났지만 알려지지 않은 것이 빠져있기 때문에 실제로는 이보다 더 많은 사례가 있을 것으로 보인다. 따라서24%보다 더 많은 교권침해 사례가 있을 것이다. 교직생활 하면서 학생들을 외면할 수밖에 없는 상황을 최근들어 겪고 있다. 교권침해는 더이상 특별한 사건도 아니고 뉴스거리도 아니다. 흔하디 흔한 일로 발전했다. 이런 상황까지 온 원인은 여러가지가 있겠지만 학생인권이 강조되면서 심해졌다는 것이 교사들의 공통된 의견이다. 애써 학생인권조례와 관련이 없다고 하더라도 시대적인 변화만으로 그 원인을 돌리는 것은 억지에 가깝다. 언론에 보도되는 횟수나 상황을 보더라도 최근 4-5년 사이에 훨씬더 많은 일들이 발생했기 때문이다. 시대가 변했기 때문에 그렇다는 주장도 있지만 시대는 최근에만 변한 것이 아니고 예전에도 변해왔기 때문에 설득력이 없다. 소모적인 논쟁일 뿐이다. 인권조례 발효후에 더 많은 사건이 발생한 것을 외면하지 말아야 한다. 문제는 어떻게 해결하느냐에 있다. 교권보호법을 만들어야 한다고 한다. 당연히 매우 중요한 법안이다. 그러나 그것으로 기대할 수 있는 기대치는 높지 않을 것으로 본다. 그 이유는 학부모에 의한 교권침해사건이라면 어느정도 해결이 가능 할 수 있겠지만 학생에 의한 교권침해사건은 교권보호법으로 해결하기 어렵다고 보기 때문이다. 학생들은 미성년자가 대부분이다. 이들이 교권보호법을 제정하면 정신차리고 교권침해사건을 일으키지 않을 것으로 보이지 않는다. 법이 있건 없건 그들의 행동을 변화시키기 쉽지 않을 것이다. 결국 학교에서의 분위기가 쇄신되어야 한다. 최근의 분위기는 학생인권조례가 전부인 것처럼 돌아가고 있다. 학생들에게 어떤 불이익도 없다는 것을 학생들이 더 잘알고 있다. 따라서 법을 만든다고 이들의 행동에 변화가 올 것으로 기대하기 어렵다는 이야기이다. 학교 전체의 분위기가 형성되어야 비로소 이들의 행동변화를 기대할 수 있는 것이다. 서울시교육감이 강제전학조치를 취하도록 하겠다는 발표가 도리어 학생과 학부모에게 영향을 줄 수 있다. 그 발표 이후로 학생들의 변화가 감지되고 있다. 법보다 실제로 전학을 갈 수도 있다는 것에 더 많은 학생과 학부모가 반응을 나타내고 있는 것이다. 방법이 묘연하긴 하지만 학교에서 교권침해 행동을 하면 안된다는 분위기를 만드는 것이 더 급하다. 교권보호법을 만드는 것보다 더 급하다. 예전처럼 잘못하면 퇴학을 당할 수도 있고, 전학을 갈 수 있다는 생각을 가지도록 해야 한다. 법을 하나 만드는 것보다는 잘못한 학생들에 대해 어떤 조치를 내릴 것인가에 대한 논의가 더 시급하다. 학생들이 가장 무서워하는 것은 강제전학과 학부모 소환이다. 이런 규정들을 더 먼저 만들어야 한다. 학부모가 소환에 응하지 않을 경우 강제로 전학을 보낼 수 있다는 등의 규정이 빨리 마련되어야 한다. 교권보호법도 필요하겠지만 국가적, 사회적인 노력도 필요하다. 학교교육에 관심을 갖고 가장 적절한 해결책이 무엇인지 연구되어야 한다. 국가적 사회적으로 분위기를 쇄신하자는 이야기이다. 이를 위해서는 학교뿐 아니라 지역사회와 관계당국의 노력이 필수로 이루어져야 한다. 법을 만들기 이전에 우선적으로 해결해야 할 문제를 먼저 해결해야 한다. 교권침해사건 발생에 더 많은 관심과 노력을 기울일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
새누리당과 정부가 담뱃값을 2,000원 인상하는 방안을 추진하고 있다. 새누리당 김재원 의원은 담뱃값을 2,500원에서 4,500원으로 인상하는 내용을 담은 지방세법·국민건강증진법 개정안을 6일 발의했다. 보건복지부도 담뱃값 인상에 적극적이다. 진영 보건복지부 장관 후보자는 인사청문회에서 담뱃값 인상 관련 질문을 받고 “(담배가) 외국에 비해 싸기도 하다.”며 “가격을 적정 수준으로 인상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보건복지부도 지난 1월 대통령직인수위원회에 담뱃값을 지금의 두 배인 5,000원으로 인상하겠다는 방침을 보고했었다. 담뱃값 인상의 목적은 국민 건강 증진에 있다. 담뱃값을 인상하면 흡연율이 대폭 줄어든다. 이에 따라 흡연 관련 질환도 줄어들어 국민건강보험공단 재정도 줄어들 것이라는 기대다. 법안을 발의한 김 의원도 이점을 명시했다. 흡연으로 인한 각종 피해 금액이 연간 10조원에 달하고, 흡연으로 인한 사망자가 교통사고 사망자보다 6배나 많다고 했다. 따라서 담뱃값을 2,000원 올리면 담배 소비량이 연간 12억8,000갑(29.3%) 줄어들고, 현재 성인 남성 흡연율(47.8%)도 30%대로 떨어질 것으로 보고 있다. 담뱃값 인상의 주된 목적은 흡연율을 떨어뜨리기 위한 것이다. 가격을 10% 올리면 흡연으로 인한 질병으로 죽었을 미국인을 매년 6,000명씩 살리는 효과가 난다는 조사도 있다. 특히 우리나라 고교생 흡연율이 현재 6~12%에 달하는데, 담뱃값을 2,000원 정도 올리면 주머니가 얇은 청소년의 흡연율을 떨어뜨리는 데도 효과가 크다고 전망한다. 반면 담뱃값 인상은 증세를 위한 꼼수라는 주장도 있다. 세제를 담당하는 기획재정부는 담뱃값 인상은 국민건강증진 차원에서 이뤄지는 것으로 세수 확대 목적은 아니라는 입장을 밝혔지만 그대로 믿는 사람은 많지 않다. 김 의원이 발의 당시에도 개정안이 통과되면, 담배 관련 지방세 징수 금액은 연 4조 2,000억 원에서 5조 4,000억 원으로, 국민건강증진부담금 징수금액은 연 1조 5,000억 원에서 3조 5,000억 원으로 늘어날 것이라고 언급했다. 특히 박근혜 정부가 복지예산 확충이 필요한 시점에 재원 마련을 위해 고민하고 있는 상황과 맞물려 담뱃값 인상은 국민 건강을 명분으로 한 세입 증대안이라는 시각이 많다. 양쪽의 주장이 팽팽하다. 흡연율을 낮춰 국민 건강을 지키려는 의도도 맞고, 세수 확보를 위한 의도도 있다. 그렇다면 두 가지 목적을 어떻게 실현하는가에 있다. 그 방안으로 ‘담뱃값 가격 조정위원회(가칭)’를 두는 것이다. 여기에는 의사, 세금 과련 공무원, 애연가 등 이해 당사자가 함께 의견을 모아 담뱃값을 결정하도록 한다. 그리고 흡연율로 국민 건강 실태를 조사하고, 세수 확보 필요성 등을 종합적으로 검토하면서 담뱃값을 정하면 사회적 갈등도 줄일 수 있다. 흡연율이 일정 부분 떨어지지 않을 때 위원회에서 가격을 조절하게 하는 것이다. 그리고 정부에서는 국민 건강을 챙기는 것이 목적이라면 가격 정책과 함께 근본적인 대책을 수립해야 한다. 담뱃값 판매 수익금 중 일정액을 흡연자를 위한 금연 정책 및 건강 대책에 투자해야 한다. 이렇게 하면 정부는 세수 확보만이 아니라 국민 건강 증진이 목적이라는 의도도 의심을 받지 않을 수 있다. 조사에 의하면 저소득층일수록 학력이 낮을수록 담배를 많이 피운다고 한다. 미국인을 대상으로 1944~2004년 사이 흡연 실태를 조사한 연구에 따르면 1964년까지는 대졸자 흡연율이 고졸자보다 6%포인트 낮았지만, 1986년 이후에는 차이가 15%포인트로 더욱 벌어졌다. 우리나라도 대졸 이상(48.0%)은 초등학교 이하(66.8%)보다 20%포인트 가까이 흡연율이 낮다(2005년 기준). 2004년 12월 담뱃값을 500원 인상한 후 가격을 올리지 못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담뱃값 인상은 서민 가계 부담에 직접적인 이유가 된다. 그래서 일부에서는 서민 흡연자는 비싸진 담배를 필터 부분까지 완전히 피우고 깊이 들이마셔 건강을 더 해치는 원인이 되기도 한다고 경고한다. 우리나라는 꾸준히 노력한 결과 공공장소에서 남에게 피해를 주는 흡연은 하지 않는 등 문화가 선진화되고 있다. 하지만 성인 남성 흡연율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34개 회원국 중 2위(1위 그리스)이다. 이유는 담배 가격이 가장 낮은 데 있다. 반갑지 않은 통계다. 분명한 것은 국민 건강도 챙겨야 하고, 세수도 확보해야 한다. 두 마리 토끼를 잡을 수 있는 방안을 검토해야 할 시기다. 이제는 과거처럼 정부가 일방적으로 물가를 올리면 국민 저항이 심하다. 합리적인 행정이 국민 삶의 질을 높인다.
법정스님은 살아 생전에 닭벼슬보다 못한 것이 중 벼슬이란 글을 쓰셨다. 수도자는 세속적인 명리와 명예욕에서 훌훌 벗어나야 함을 강조한 말씀이다. 그 글을 보며 리포터 또한 교사의 벼슬에 대해 생각해 보았다. 리포터는재작년에 교직생활 21만에 비록 말단 부장이지만 기숙사부장이 되었다. 처음엔 어색하더니 선생님들이 부장님, 부장님하며 계속 불러주니 약간 우쭐해졌다. 부장이 무슨 큰 벼슬이라도 되는 것처럼 자신도 모르게 학생들과 선생님들 앞에서 거들먹거리고 있었다. 그렇다면 학교에서 부장이 평교사들의 상위의 벼슬일까? 그렇진 않다고 생각한다. 학교에서 부장이 된다고 무슨 막강한 권한이 생기는 것도 아니고 편해지는 것도 아니다. 그러므로 부장이라는 보직이 결코 벼슬인 것 같지는 않다. 그렇다면 부장보다 더 높은 교감과 교장이 평교사의 벼슬일까? 얼마 전 어느일간신문을 보니 교사 중 교감, 교장이 되는 비율이 약 3%남짓하다고 쓰여있었다.선생님들이 피나는 노력을 해도 대다수 평교사들은 관리직에 오를 수 없다는 이야기다. 그렇다면 교감, 교장이 된 교사는 아주 높은 벼슬을 한 진짜 성공한 사람일까? 그러나 교감, 교장도 결코 큰 벼슬은 아닌 것 같다. 교감, 교장이 된다고 사기업체처럼 무슨 어마어마한 스톡옵션을 받는 것도 아니고 연봉이 억대로 인상되는 것도 아니며 예쁜 비서나 기사가 딸린 고급 승용차가 나오는 것도 아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교감, 교장이라는 직위 그 자체도 높은 벼슬 같지는 않다. 그렇다면 교사의 가장 훌륭한 벼슬은 무엇일까? 예전에 선배교사로부터 담임을 많이 한 것이 교사의 진짜 벼슬이라는 말을 들은 적이 있다. 당시에는 귀찮고 힘들기만 한 담임이 무슨 벼슬일까 하는 의문이 들었었는데 이제와 생각해보니 학생들을 위해 사랑하고 희생하는 삶 자체가 교사에겐 가장 큰 자랑거리요 좋은 벼슬이란 뜻으로 말씀하신 것 같다. 리포터는 지금까지 학생들을 위해 희생하는 삶을 살지 못했다. 어설프게 흉내는 조금 내보았지만 결정적인 순간에 나는 내 것을 포기하지 못했다. 몇 해 전 어려운 가정 형편 때문에 차비도 없어 학교에도 나오지 못하는 불쌍한 학생이 있었다. 공교롭게도 엄마 아빠가 모두 가출을 했고 여든이 넘은 할머니 홀로 농사일을 해서 손자 둘을부양하는 집이었다. 다행이 어느 독지가가 나타나 그 학생의 학비와 생활비를 지원해 줘서 무사히 고등학교를 졸업할 수 있었다. 그때의 일을 생각하면 지금도 후회가 된다. 그때 그 학생을 위해 단 한번만이라도 등록금을 내주었더라면 어땠을까 하고 말이다. 등록금 한번 내준다고 내 삶이 당장 곤궁해지는 것도 아닌데 말이다. 앞으로 다시 한번 그런 기회가 주어진다면 그런 학생을 위해 내가 가진 것을 희생하는 교사가 되고 싶다. 우리 주변에는 학생들을 위해 말없이 봉사해주시는 선생님들이 참많이 계시다. 무보수로 각종 동아리활동을 밤늦게까지도와주시는 선생님들이 그런 분들이다. 이러한 선생님들을 뵐 때마다 존경심이 저절로생겨 머리가 숙여진다. 학생들과 학부모님들도 이런 선생님들께 진심으로 감사하고 있음을 본다. 이런 분들은 이미 높은 벼슬을 하고 있는 것과 같다. 학생과 학부모님들로부터 한없는 신뢰와 감사를 받으며, 동료교사들로부터는 진심으로 존경을 받는다면 교사로서 이보다 더 큰 벼슬과 명예가 어디에 있겠는가. 따라서 교사의 가장 큰 벼슬은 부장도 아니요, 교감도 아니요, 장학사도 아니요, 교장도 아닌 바로 학생들과 학부모님들께 받는 무한한 존경과 사랑이다.
지난 4일(월) 개학 이후, 어수선한 가운데 3학년 야간 자율학습이 시작되었다. 꽃샘추위로 교실 안은 다소 냉기가 감돌았지만, 코앞으로 다가온 대학입시 탓에 자율학습에 임하는 아이들의 향학열(向學熱)은 뜨겁기만 했다. 교실을 순회하면서 아이들의 동정을 살폈다. 아이들 대부분이 요일별로 짠 학습 계획을 실천하고 있었으나 일부 아이들은 아직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할지를 몰라 시간 때우기 식으로 공부하면서 내 눈치를 살폈다. 자율학습 시간을 잠깐 할애하여 대학진학과 관련, 학급 아이들(35명) 생각을 들어보기로 하였다. 부담 없이 자신의 생각을 말해 줄 것을 주문하면서 아이들에게 몇 가지 질문을 던졌다. 우선 2014년 올해부터 달라지는 수능시험에 대해 물었다. 대부분이 달라진 수능시험에 부담을 느끼고 있다고 응답하였다. 그 이유로 A형과 B형 두 개 중 어느 것이 더 자신에게 더 유리한지 모른다고 하였다. 그리고 수능에 대한 부담 때문인지 정시보다 수시로 대학을 가겠다는 아이들이 더 많았다. 다음으로 대학과 학과 결정 여부를 물었다. 대부분 아이들이 아직 대학과 학과를 결정하지 못해 방황하고 있었다. 조사결과, 대학과 학과 모두를 결정한 아이가 10명뿐이었다. 이들은 자신의 목표를 확고하게 정한 탓인지 자율학습에 임하는 자세 또한 남달랐다. 대학만 결정해 놓고 학과를 결정하지 못해 고민 중인 아이가 11명이었다. 반대로 적성에 맞는 학과를 결정했음에도 성적이 되지 않아 대학 결정을 망설이는 아이가 7명이었다. 이 아이들에게 필요한 것은 대학별 전형요소를 꼼꼼하게 읽어보고 자신에게 유리한 대학과 학과를 선택하는 맞춤식 전략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문제는 대학과 학과 모두를 결정하지 못해 하루속히 상담이 이뤄져야 하는 아이 7명이었다. 자율학습시간 떠들거나 잠자는 아이들 모두가 이 부류에 속했다. 자율학습 분위기가 정착되는 대로 이른 시일 내 이 아이들과 상담을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과반수의 학생이 4년제 대학 진학을 원했으며 수시지원 가능 회수 6회 중 4회를 지원하겠다는 아이들이 제일 많았다. 그리고 아이들은 지방대보다 수도권에 소재한 대학에 진학하기를 희망하였으며 그 이유로 졸업 후 지방대와 수도권 대학 간 취업률 격차를 들었다. 그리고 대학과 학과 중 어디에 더 비중을 두느냐의 질문에 대학보다 학과에 더 비중을 두는 아이들이 많아 다행이었다. 학급 아이들의 성향을 대충 파악하고 난 뒤, 각자에게 종이 한 장씩을 나눠주고 본인이 가고자 하는 대학과 학과, 신 담임에게 하고 싶은 이야기나 당부의 말을 적게 하였다. 아이들이 적은 용지를 수거하고 난 뒤, 용지에 적은 바람이 이뤄질 수 있도록 담임으로서 많은 관심을 가져주겠노라고 약속을 하였다. 그리고 아이들에게도 대학에 합격하는 그날까지 최선을 다할 것을 당부하였다. 개학한 지 일주일 지났다. 어수선한 가운데 시작된 자율학습이 빠른 시일 내 정착되기 위해서는 아이들의 목표 설정이라고 본다. 다양하고 복잡해진 현행 입시제도 탓에 아이들이 대학과 학과를 선택하는데 다소 어려움이 많으리라 본다.지금 이 시기, 어쩌면아이들은 선생님과의 상담을 절실히 원하고 있는 지도 모른다. 새 학기 담임으로서 해야 할 일이 많겠지만 아이들이 마음을 잡고 자율학습에 임할 수 있기 위해서라도 진학상담이 빨리 이뤄져야 하지 않을까.
정아야, 입학하여 일주일이 지난 것 같구나. 학교생활은 아직 익숙하지는 않지만 점차 잘 적응해 가리라 믿는다. 이 세상 모든 것은 익숙해지기 전까지는 힘든 것이라는 사실을 알고 있겠지? 이제 새로운 배움터에서 중학교에서 배운 것을 기초로 한 단계 수준 높은 공부를 할 수 있게 된 것을 축하한다. 무엇보다 새 친구들을 많이 만났겠구나. 앞으로 세상을 살아가는데는 학문적인 성과도 중요하지만 좋은 친구를 얻는 것도 아주 중요한 일이니 관심을 갖고 살아가기 바란다. 그리고 너와 난 중학교라는 울타리에서 만난 인연으로 이렇게 다시 글을 쓴다. 인상적인 것은 학습일기를 상당히 깔끔하게 쓴 것이다. 그러나 며칠 간 그것을 쓴다고 너의 일생의 변화를 가져오기는 어려운 일이다. 그런데 내가 살아오면서 기억에 남은 사람들을 돌이켜 생각해 보면 정말 꾸준히 썼다는 것을 기억할 수 있구나. 초등학교 때 만난 한 친구 그는 6년동안 생활일기를 썼는데 아직도 내 기억에서 지워지지 않구나. 너도 초등학교 때방학숙제로 밀린 일기를 쓰느라 애먹었던 기억은 없었는지? 그리고 지금은 유명한 일간지에서 논설을 쓰시는 분은 중·고등학교 시절부터 대학 마칠 때까지 10여 년에 걸쳐 꽤 꾸준히 일기를 썼으며, 게다가 이곳저곳 여행할 때마다 쓴 기행일기도 여럿 있단다. 그런가 하면 구한말 의료 선교사였던 이가 쓴 '알렌의 일기'가 유명하단다. 이것은 일기를 넘어 우리 근대 역사의 중요한 사료에 다름 아니다. 산파였던 마서 무어 밸러드가 1785년부터 1812년 77세를 일기로 죽을 때까지 27년간 썼던 '산파일기'도 그 자체로 생활사의 걸작이라 생각한다. 이 일기에 따르면 그녀는 816명의 아이를 받아냈다는 것이다. 그녀 스스로도 아홉 자녀를 낳았고 그중 셋이 어릴 때 죽었다. 일기 그 자체가 인생을 웅변하는 것 같다. 아니 일기가 곧 역사였다. 일기의 힘은 지속하는 데 있다. 우리는 지나온 생에 대한 연민보다 앞으로 살아가야 할 나날들에 대한 애정 때문에 일기를 쓴다. 일기는 단지 매일매일 뭔가를 기록한다는 것 이상의 의미를 갖는다. 그것은 결코 놓아버릴 수 없는 자기 삶에 대한 담담한 애정이며 절절한 세상과의 생의 소통이라 생각한다. 지금은 안팎으로 위기이다. 북한은 공격을 하겠다고 하고경제가 어려워 자살하는 사람도 나타나고, 취업이 어려워 눈물 속의 생활을 하는 젊은이도 있다는 사실이다. 이제 넌고교생활을 통하여네가 만난 친구가 이 세상에 대하여 어떤 자세를 가지고 있는가? 친구의 강점은 무엇이며, 내가 배울 수 있는 것은 무엇인가? 관점을 가지고 일기를 쓰자. 그리고 네가 존경하는 선생님을 만나 네가 던진 질문에 어떻게 답하는가도 모아가면서 기록해 보는 것이다. 그러러면 네가 물을 질문을 만들어야 할 것이다. 그래서 이 삶의 여정에서 결코 놓아버릴 수 없는 자기 삶에 대한 증인이 되자. 그리고 이제 3년 후에는 네가 금융인이 되기 위하여 여러 가지 면접 등을 통과해야 하는데 그때 가서 네가 자랑할 수 있는 것 한 가지 나는 고등학교 생활 속에서 친구들과 만난 이야기를 꾸준히 기록한 이야기가 있다는 사실을 증명 한다면 이것은 요즈음 아이들이 갖지 못하는 중요한 스펙이 될 것이다. 만일 이런 준비가 없이 시간을 보내고 나서 그때 가서야 내가 뭘 공부하고 실천했지?라고 어리석음을 후회하는 것은 너에게 하나도 도움이 되지 않을 것이기에 말이다. 하루에 한 페이지 쓰는 것 사소하게 보이지만 3년의 기록을 모은다면 그것은 바로 너의 '삶의 역사'가 되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평범한 생활인일지라도 일기를 쓰는 것은 스스로의 생을 견디게 하고 촛불처럼 흔들리는 삶을 붙들어 주리라 믿는다.
율전중, 학교폭력 추방 캠페인과 다짐대회 가져 율전중(교장 이영관)은 8일 등교시간을 이용하여 교직원, 율천파출소 경찰 등 70여명이 교문 진입로에서 학교폭력 추방 캠페인을 실시했다. 오후에는 전교생이 운동장에서 학교폭력 추방 다짐대회를 가졌다. 교사들은 등교하는 학생을 맞이하며 “친구들과 사이좋게 지냅시다”, “폭력없는 학교를 만듭시다”등의 인사말을 건넸다. 또 ‘서로 아끼고 사랑하는 것이 우정이다’, ‘때리는 넌 행복하니? 난 너무 힘든데…’, '친구가 있어 행복합니다’ , ' 폭력은 멋이 아닙니다. 범죄입니다’ 라는 피켓을 들어 폭력 근절을 홍보했다. 율천파출소에서는 최명균 소장을 비롯한 경찰관 4명이 나와 ‘학교폭력 예방 및 근절을 위한 학교폭력 대처요령’(중부경찰서 발행)이라는 유인물을 나누어 주며 학교폭력 예방을 위해 학생들이 뜻을 모으고 힘을 합쳐 줄 것을 당부하였다. 교사들은 스파이더맨, 짱구, 슈퍼맨의 캐릭터 인형 복장을 하고 학생들에게 친근하게 다가가 폭력없는 행복한 학교를 만들자고 했다.이날 캠페인은 분위기가 딱딱하고 형식적이지 않도록 하기 위해 참가자가 어깨띠를 두르고 부드러운 미소와 손을 흔들며 학생들을 맞이했다. 학생들도 반겨주는 선생님께 미소로 답했다. 율전중은 오후 전교생이 운동장에 모여 학교폭력 추방 다짐대회를 열어 선후배간 인사를 나누고 학교폭력 추방 선서를 제창하였다. 선생님과 함께 ‘학교폭력 멈춰!' 실연을 하면서 올해 학교폭력 제로 원년을 만들 것을 다짐하였다. 이 날 다짐대회에서 학생들이 선서한 내용은 ‘나는 학교폭력을 절대 하지 않겠습니다’ ‘나는 다른 학생을 괴롭히지 않겠습니다’ ‘나는 학교폭력을 당하게 되면 선생님과 부모님께 도움을 요청하겠습니다’ ‘나는 학교폭력을 당한 친구를 도와주겠습니다’ ‘나는 학교폭력 발생 사실을 신고하겠습니다’ 등이다. 이 학교 이영관 교장은 “학교폭력은 범죄다. 나는 친구에게 장난으로 무심코 하지만 친구에게는 커다란 상처가 된다. 만약 그 친구가 자살했다면 나는 간접살인자가 된다. 학교폭력이 발생하면 경찰과 학교에 신고하자. 학교폭력의 방관자가 되지 말자. 신고전화는 112나 117로 하고 인터넷, 모바일, 문자로도 가능하다”고 말했다.
경칩이 지나서인지 봄볕이 따스하게 창가에 스며든다. 새 봄을 맞아 우레가 처음으로 진동하면, 땅속에서 겨울잠을 자던 벌레가 앞다퉈 움직이기 시작한다는 뜻에서 '경칩'이라는 말은 유래했다고 한다. 올 겨울은 유난히 길고 추웠다. 최악의 한파에 기습 폭설도 여러 번 경험했다. 그래서인지 봄이 더 반갑기 그지 없다. 겨울의 끝자락에서 기억에 남는 일은 방송을 타고 흘러나온 에너지 대란 우려였다. 영광 원전 5·6·7호기 작동이 멈추면서 때아닌 전력대란 걱정에 불안한 겨울을 보낸 것이 산업계의 현실이었다고 한 중견기업 사장이 토로했다. 불행 중 다행인 건 대란은 피했고 에너지에 대한 관심이 커진 점이다. 우리 집에서도 실내 온도를 18~20℃로 맞추었고 실내 온도 보호를 하기 위해 작년에는 그냥지냈지만 문풍지도 달았고, 가전제품 플러그 뽑기와 내복 입기를 실천했다. 이런 행동이 나만이 아니라 상당수가 참여하였다니 대단한 변화라 생각된다. 그러나 아직도 이런 정신이 필요한 곳은 공공기관과 학교가 아닐런지! 풍요로운 시대를 살고 있는 요즈음의아이들은 조금만 불편하여도 아우성이다. 인내력이 고갈된 심성을 발견하게 된다. 그래도 꼭 가르쳐야 할 것이 절약정신이 아니겠는가. 세계 곳곳에서 해마다 반복되는 기상이변 탓에 여러 나라가 에너지 절약을 강조하고 나섰다. 유럽은 재정 위기로 에너지 수요가 급감한 가운데 가스 대신 가격 대비 열효율이 높은 석탄 수입을 늘렸다. 에너지 소비 대국인 미국도 마찬가지다. 미국 시사주간지 타임에서는 2009년 불·석유·원자력·신재생에너지에 이은 제5의 에너지로 ‘에너지 절약’을 꼽았다. 획기적인 발상의 전환이다. 대표적인 에너지 기업 셸에 따르면 2050년 전 세계 에너지 수요는 2000년의 3배에 이를 것이라고 한다. 어려운 실정이다. ‘에너지 절약’이 제5의 에너지가 된 배경이다. 미래의 대체 에너지를 찾는 게 아니라 '에너지 절약'이 살 길이라는 걸 강조한 것이다. 절약을 생각해 보면 유럽인이 먼저 떠오른다. 유럽인들은 마치 옛 우리 조상처럼 근검 절약이 몸에 밴 듯하다. 예컨대 밀레 본사 회장은 대대손손 돈 걱정 없이 먹고 살수 있는 부호인데도 요리에 남아 있는 소스 국물을 빵으로 깨끗이 닦아서 먹는다니 믿어지지 않는다. 그뿐만 아니라 많은 유럽인이 가까운 곳에 갈 때는 자동차 대신 자전거를 이용하고 팔꿈치가 닳아 구멍이 난 외투를 더 오래 입으려고 천이나 가죽으로 덧대 입는 모습도 발견하게 된다. 유럽인들은 물을 아끼는 방법에도 일가견이 있다. 절수기가 설치되어 있다. 화장실 변기를 절수형으로 바꾸면 하루에 50L를 줄일 수 있다는 것이다. 그리고 물 사용에 대하여 누진제를 적용한다는 것이다.우리 나라처럼 무한대로 물을 틀러놓고 설거지 하는 건 유럽에서는 상상하기 어려운 일이라 한다. 유럽인들에게 에너지 절약은 전력대란 때 반짝 지키는 캠페인이 아니라 습관에 가깝다해도 과언은 아닐 것이다. 일본 역시 마찬가지이다. 일본인들은 습기 탓도 있지만 추우나 더우나 일과를 마치면 가정에서 목욕을 하는 것이 습관화되어 있다. 그렇지만 물을 데워 온 가족이 순서대로 다 사용한 후에 버리는 시스템을 가지고 있다. 또한 변기는 거의 모두 소량과 대량으로 구분하여 제조된 상품이 판매되고 있다. 그리고 자연 환경에 의해 우리 보다 강우량이 많지만 빗물을 사용할 수 있도록 노력하여 아스팔트를 타고 밖으로 흘러가는 것보다는 땅속으로 스며들게 하거나 물 받이 탱크를 지하에 마련하여 재활용하고 있다. 에너지의 96%를 수입하는 우리나라가 에너지 걱정 없이 사는 날이 올 수 있을까? 새로운 에너지 자원을 개발하지 않는 이상 어려울 것이라는 예상이다. ‘전쟁’으로까지 불리는 ‘에너지 확보 경쟁의 시대’를 걱정 없이 살아가는 방법을 찾아야 한다. 문제는 석유나 원자력 등 기존 자원의 개발만으로는 이 수요를 감당하기 어렵다는 사실이다. 점점 강도가 높아지는 온실가스 감축 의무까지 고려한다면 부담은 더욱 커질 수밖에 없다. 대체 에너지의 대량생산도 아직은 기술적으로 어려운 실정이다. 때문에 ‘에너지 절약’이 제5의 에너지가 된 배경이다. ‘에너지 절약이 곧 새로운 에너지’라는 마술을 현실로 바꾸지 않는다면 영원히 걱정에서 벗어날 수 없다. 에너지 생산의 효율을 높이는 방안을 찾고, 또 에너지 절약이 새로운 성장 동력이 되는 경제적 트렌드를 빨리 읽어 에너지를 아끼는 습관이 중요하다. 우리의 에너지에 대한 인식과 자세도 선진국 스타일로 변해야 함을 공감하는 길이 우리의 과제가 아닐까? 공적인 것을 사적으로 사용하면서도 아무런 가책도 없다면 양심의 마비를 의심하지 않을 수 없다. 아이들에게도 에너지 절약을 몸으로 가르치지 않으면 얼마 가지 않아 에너지 대란과 함께 찾아와 언젠가는추운 겨울을 맞이하지 않으면 안되게 될 것이다.
올해 3월 새롭게 도입된 초등학교 1ㆍ2학년(군) 수학과 교과서 ‘길이 재기’ 단원은 임금님의 생일에 맞춰 옷을 만드는 내용의 우화로 시작한다. “임금님께서 생일잔치에 입으실 멋진 옷을 만들어라! 팔 3뼘, 다리 4뼘, 발 1뼘….” 재단사들이 ‘뼘’이라는 단위에 맞춰 임금의 옷을 만들고, 결국은 ‘소매는 너무 길고 바지 길이는 짧은 옷이 만들어진다’는 내용이다. 우화가 끝나면 학생들은 “임금님의 옷은 왜 짧을까?”하는 질문과 함께 센티미터(cm), 미터(m) 등 길이 단위를 자연스럽게 배우게 된다. 생활과 관련된 친근감 있는 소재를 통하여 다양한 문제해결을 지향하고 있다. 2011학년도부터 초중고교 교육과정에 창의력과 사고력 신장을 핵심으로 하는 ‘2009 개정교육과정’이 연차적으로 적용되고 있다. 이에 따라 올해부터 초등학교 1ㆍ2학년(군), 중학교 1학년 학생들은 개편된 새로운 교과서로 교수학습을 하고 있다. 올해 처음 초등학교 1~2학년과 중학교 1학년에 스토리텔링 수학을 도입하여 2014년 초등학교 3~4학년, 2015년 초 5~6학년까지 연차적으로 확대 적용할 방침이다. 올해 신학기부터 적용되는 새로운 교과서에서 가장 눈길을 끄는 교과는 수학과이다. 지난해 1월 교육과학기술부에서 발표한 ‘수학교육 선진화 방안’에 따라 기존의 암기 위주 수학교육의 한계를 극복하고, 추론능력, 의사소통능력, 문제해결력, 창의력 등 통합적 고급 사고력을 길러주는 ‘스토리텔링(storytelling) 수학교육’과 ‘교과 통합형(STEAM) 수학교육'이 도입되었다. 스토리텔링(storytelling)은 본래 기업의 마케팅 전략에서 나온 용어인데, ‘이야기(story)’와 ‘말하기(telling)’의 합성어로 생각과 행동의 변화를 목적으로 의미 있는 이야기 통하여 상대방의 마음을 감동시키고 함께 공감하는 커뮤니케이션 기법이다. 초등학교 1ㆍ2학년, 중학교 1학년의 수학과 새 교과서는 다양한 스토리텔링 교재로 편찬되었다. 과거 문제 나열 중심에서 탈피하여 그림, 만화, 사진 등으로 생활 속 수학의 쓰임을 쉽게 풀어내고 있다. 이를 위하여 ‘생각 열기, 활동, 약속하기, 마무리, 알아봅시다, 체험마당, 놀이마당, 이야기 마당’ 등 다양한 코너를 통하여 스토리텔링을 전개하고 있다. 또 실생활과 관련된 통합적 문제로 수학에 대한 흥미와 창의력을 높여주고자 하였다. 전국의 초등학교 1ㆍ2학년과 중학교 1학년 학생들은 이와 같은 ‘스토리텔링’ 방식을 적용한 수학 교과서로 공부하게 된다. 스토리텔링 수학이란 이야기하듯 수학적 개념을 가르치고 배우는 기법이다. 학습 주제와 관련된 소재·상황 등을 이용해 학생들이 좀 더 쉽게 수학을 이해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교수 기법이다. 스토리를 통하여 마음을 열고 ‘생각하는 힘을 길러주는 수학’을 지향하는 것이다. 중학교 1학년 교과서도 수학 공식을 일방적으로 주입하는 방식에서 벗어나 실제 생활과 연계해 이해할 수 있도록 이야기를 구성했다. 문제 풀이도 다양한 방식을 소개하고 있다. 스토리텔링 수학을 도입하는 것은 현재처럼 틀에 박힌 공식 암기, 문제 풀이식 수학 교육으로는 수학에 대한 흥미를 잃어 거부감을 유발하고 나아가 창의적 인재 육성이 어렵다는 문제의식 때문이다. 실제로 지난해 12월 국제교육성취도평가협회(IEA)가 발표에 의하면 우리나라 학생들의 수학에 대한 흥미도는 50개 국가 중 꼴찌였다. 앞으로 스로리텔링 교과서가 초ㆍ중학교 수학과에 전면 확대 적용되면, 기존의 연산 중심이 아닌 문제해결 과정과 의사소통 능력을 중시하는 등 수학과 교육과정에 획기적인 변화가 이루어질 것으로 예견된다. 이는 다른 교과교육에도 큰 영향을 미칠 것이다. 21세기 글로벌 시대를 맞아 다양한 분야에서 스토리텔링이 화두가 되고 있다. 스토리텔링은 인간의 감성에 호소하여 몰입과 공감을 이끌어내는 것이다. 스토리텔링은 바람직한 인간관계 형성을 통한 소통과 공감의 핵심적 기술이다. 이를 통하여 꿈과 감동을 심어주는 교수 기법이다. 그 스토리는 꾸며진 이야기가 아니라, 경험에 바탕을 둔 진솔한 이야기이다. 미래에는 어떤 이야기도 담겨 있지 않은 이른바 ‘혼이 없는’ 상품은 사람들에게 꿈과 감동을 주지 못할 것이다. 이제는 모든 상품이 소비자의 내면에 끊임없는 ‘공감의 울림’을 줄 수 있는 이야기를 담아내야 한다. 고객들이 명품에 갈채를 보내는 것은 그 명품 속에 담긴 함의(含意), 즉 이야기에 공감하기 때문이다. 명품에 담겨 있는 장인 정신에 감동하고, 생산업체의 정감 어린 사연에 감동하고, 브랜드에 담긴 아름다운 이미지에 감동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지갑을 여는 것이다. 제조업자가 감동이 담긴 상품을 만들고, 경영자들이 꿈과 감동을 주는 리더십을 발휘하듯이, 교사들은 학생들에게 꿈과 감동을 심어주어야 한다. 그 꿈과 감동을 주고받는 공감과 소통의 수단이 곧 아름다운 이야기인 스토리텔링인 것이다. 따라서 교사들은 훌륭한 스토리텔러(Storyteller)가 되어야 한다. 사제동행으로 수업을 통하여 꿈과 감동이 오롯이 담긴 소통과 공감의 이야기를 주고받아야 한다. 교사들은 ‘진솔한 이야기’를 구성하여 학생들에게 세상을 보는 눈을 넓혀 주어야 하고, 또한 인격적인 감화를 주어서 새 시대의 주인공으로 성장해 갈 수 있도록 도와주어야 할 것이다. 세계화 시대, 유비쿼터스(ubiquitous) 사회에서 스토리텔링(storytelling)은 핵심적 교수기술로 자리 잡을 것이다. 교사들은 학생들의 마음을 열어 꿈과 감동을 심어주어야 한다. 럭비공같은 성격, 고삐 풀린 망아지 같은 언행을 일삼는 학생들의 마음을 딱딱하고 현학적인 논리 내지 직접적인 감정 표현으로는 열 수 없다. 그들의 마음을 열 수 있는 열쇠는 혼이 담긴 교사의 진솔한 이야기뿐이다. 분명히 좀 어눌하고 논리정연하지 못하더라도 진솔한 이야기는 학생의 가슴에 진한 감동과 울림이 일게 하지만, 진실성이 결여된 이야기는 공허한 메아리에 불과한 것이다. 스토리텔링은 흥미와 호기심을 북돋워서 즐거움과 성취감을 맛보게 해 준다. 한편, 스토리텔링식 교육이 소기의 목적을 거두기 위해서는 교사의 충실한 교재연구가 선행되어야 하고 사교육 예방 교육정책이 지속적으로 추진되어야 한다. 이번 스토리텔링식 교과서 적용에 앞서 교육부와 각 시ㆍ도교육청은 전국적으로 여러 차례의 예비 담임교사 연수, 예비 학부모 연수 등을 진행하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일선학교 교사들은 새로운 교과서 적용에 대해서 불안해하고 있는 게 사실이다. 이를 해결할 수 있는 열쇠는 교사들의 부단한 자기 연찬과 교재연구이다. 교과 교재연구 및 교수법을 바탕으로 한 교육과정 및 교과서 탐구로 교육전문성을 함양하여야 한다. 특히 유념해야 할 점은 스토리텔링은 궁극적 목표가 아니라, 교육과정의 목표를 달성하기 위한 수단이라는 점이다. 학생들이 스토리텔링 속에서도 달성하고자 하는 학습목표를 반드시 달성하고 핵심 필수 요소를 터득토록 유도해야 할 것이다. 또한, 이 스토리텔링식 교과서 적용이 또 다른 사교육을 부추길 우려가 있다는 점이다. 벌써 스토리텔링 학습법에 관한 학원이 전국적으로 우후죽순처럼 생겨나고 있으며, 관련 도서도 여러 권 출시되고 있는 실정이다. 스토리텔링이라는 새로운 교과서 도입, 교수법 적용에 불안해하는 학부모들이 사교육 현장으로 뛰어들고 있다는 반증인 것이다. 국민들에게 공교육이 충분히 스토리텔링 교육을 담보할 수 있다는 신뢰를 주는 것이 우선이다. 교육 당국은 학생들과 학부모, 그리고 교사들이 스토리텔링식 교과서 도입과 교수법 적용에 불안해하지 않고, 학교 현장에 연착륙할 수 있도록 다양한 연수 기회 부여, 자료 개발 제공, 사례 일반화 등 지원 등을 해주어야 할 것이다. 이번 초등학교 1ㆍ2학년과 중학교 1학년의 수학과 스토리텔링 교과서 도입이 우리나라 교육과정 실행과 교과서 편찬과 적용의 새로운 장을 여는 전환점이 될 것이다. 따라서 앞으로 스토리텔링 교과서 적용이 초ㆍ중학교 전반에 확대되고, 시행착오를 최소화하여 연착륙되기 위해서는 교사들의 충실한 교재연구와 더불어 교육당국의 다양한 후속 지원이 필수적이라는 점을 간과해서는 안 될 것이다. 분명히 교사는 교육의 성패를 가름하는 주체이기 때문이다.
발전이 지속 가능한 사회를 위하여 인간에게 필요한 것은 후손들을 어떻게 교육시킬 것인가이다. 일반적으로 어른들이 아이들의 지도 과정에서 훈계하는 모습을 모면 매우 다양하게 나타나며 분명한 지침을 가지고 자녀를 훈계하는 경우가 드물다. 이는 실제적으로 부모가 되면서 어떻게 하는 것이 좋은 훈계인가를 제대로 학습한 경험이 부족하기 때문이라 생각된다.잘못된 훈계는 자녀에게 상처를 주며 잘못된 길로 이끄는 촉매제가 될 수 있다. 그러므로 부모들은 바른 방법으로 자녀를 훈계해야 한다. 예를 들어 자녀가 거짓말을 했을 때, 무조건 벌을 주거나 꾸중하기보다는 “네가 거짓말하는 것은 잘못이란다. 앞으로 거짓말을 하면 엄마가 벌을 세울 거야”라는 지침이나 경고가 먼저 있어야 한다. 그런데, 대부분의 부모들은 자녀의 실수나 잘못에 대해 소리치고 매를 드는 것에는 익숙한 반면 잘한 일에 대해 적합한 보상을 하는 것에는 인색하다. 칭찬도 훈계에 포함된다는 사실이다. 그리고,편견 없이 공평한 가정이 되어야 한다. 마지막으로,관계가 사랑으로 이어지고 있는가이다. 사랑의 표현은 상대방이 사랑으로 공감하지않으면 사랑이 아니다. “사랑이 없으면 울리는 꽹과리와 같다”(고전 13:1)는 사실이다. 첫째, 온유함으로 훈계해야 한다. 아이들이 어떤 잘못을 저질렀을 때 부모는 분노한 심정으로 격노할 것이 아니라 온유한 마음으로 대해야 한다. 만약 부모의 마음이 감정의 역류 상태에 있다면 자녀 훈계는 나중으로 미루는 것이 바람직하다. 둘째, 자녀를 실족케 해서는 안 된다. 셋째, 때에 알맞은 말로 훈계해야 한다. 부모는 아이들의 마음이 움직일 수 있도록 지혜로운 언어를 사용해야 하며, 훈계가 적중할 때는 때에 맞는 말을 썼을 경우이다. 성공적인 자녀 훈계를 위한 바람직한 세 단계로는, 제1단계 가르침의 단계이다. 이 단계는 자녀에게 훈계에 대한 지침과 정보를 주는 것이다. 편안하고 일상적인 상황에서 아이들에게 가르쳐 주는 한 마디 한 마디는 그 아이가사회적으로 정신적으로 성장하는 데 큰 도움을 준다. 제2단계 훈련의 단계이다. 이 단계는 자녀 스스로 실천하는 단계로, 부모는 계속해서 자녀가 합당한 행동을 할 수 있도록 반복적인 연습을 시켜야 한다. 제3단계 교정의 단계이다. 자녀가 부모의 훈련을 잘 따르게 하기 위해 구체적인 행동을 취하는 단계이다. 부모들은 자녀에게 분명하고 단호한 지시나 명령을 할 수 있어야 한다. 모든 부모에게 해당되지만 특히 다루기 힘든 자녀를 둔 부모는 명료하고 효과적인 지시나 명령을 할 때 그들의 행동을 더 잘 수정할 수 있다. 지나친 강요보다는 스토리텔링을 통한 감동으로 다가간다면 더 이상 바랄 것이 없을 것이다.
중국 광주시월수외국어학교(廣州市越秀外國語學校 - 중․고 통합)는 캠퍼스가 둘이었다. 처음 방문한 학교는 북캠퍼스였다. 전교생은 2,000명 되는데 두 캠퍼스에 1,000여명씩 나누어서 교육활동을 하고 있었다. 두 캠퍼스에 교장선생님은 한 분이셨다. 남캠퍼스에도 방문을 했는데 학교 크기는 비슷했다. 교장선생님께서 하루씩 돌아가면서 남, 북 캠퍼스를 오가고 있었고 교감선생님은 ‘부교장’이라고 부르는데 부교장선생님이 모두 4명이었는데 두 명씩 나누어서 근무하고 계셨다. 한 가지 특이한 것은 학교에 ‘서기장’이 계셨는데 학교를 관리하고 감독을 하신다고 하였다. 함께 가신 선생님께서안내하는 선생님께 교장선생님과 서기장님이 누구 높으신지 물었는데 대답을 잘 하지 못했다고 한다. 사무실 배치를 보니 교장선생님이 근무하시는 교장실이 제일 왼쪽에 있었고 그 다음에 서기장님이 근무하시는 사무실이 있었다. 교장선생님은 40대이신데 서기장님은 50대 후반쯤 되어 보였다. 첫날에는 담당부교장선생님께서 환영을 나오셨고 마지막날 돌아가는 날에는 서기장님이 나오셨다. 대충 직위와 맡은 일이 무엇인지 짐작이 되었다. 중국 광주시월수외국어학교(廣州市越秀外國語學校-북캠퍼스)는 학교건물이 아파트처럼 생겼다. 두 개의 교문이 없었다면 아무도 학교라고 생각할 수가 없었을 것이다. 주변에는 아파트로 가득 찼다. 거리는 너무 가까웠다. 학교 건물에서 아파트 내부가 훤히 보일 정도다. 학교 건물이 60년이 되었고 복도식 아파트로 연상하면 대충 이해가 될 것이다. 계단의 폭이 너무 좁았고 낡았으면 골마루의 폭도 좁았고 골마루 바깥 부분은 유리창도 없고 난간으로 설치되었으며 비바람이 바로 치게 되어 있었다. 너무 환경이 열악했다. 우리의 재건축 아파트로 생각하면 맞을 것 같다. 두 동의 건물 사이에는 통로가 있었고 교사동의 벽면에는 큰 글씨로 학생들에게 무언의 교육을 시키고 있었다. 그 중에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온 것이 네 글자였다. 첫 자가 ‘존사(尊師)’였다. 다음은 ‘수칙(守則)’이었다. 한자가 중국식 간체자이기 때문에 조금 표기가 다르다. 교칙을 준수하는 것을 존사(尊師) 다음으로 중요시하였다. 첫째, 선생님을 존경하라. 선생님을 존경해야 교육이 제대로 된다. 교권이 확립되어야 바른 교육을 할 수 있다. 둘째, 교칙을 준수해라. 학교의 모든 교칙을 잘 지켜야 한다. 게시판에는 40개의 수칙이 적혀 있었다. 그 중의 제일 첫머리에는 애국심이었다. 나라 사랑, 국가 사랑, 국기 사랑, 국화 사랑이었다. 교칙 중에 특이한 것은 예절교육이었다. 학생들은 아침 7시부터 7시30분까지가 등교시간이었다. 아무리 일찍 와도 문을 열어주지 않았고 7시가 되어야 문을 열어 주었다. 7시 30분이 되니 교문을 닫았다. 지각하는 학생들이 없었다. 두 번째 정문 옆에 숙소가 있어 학생들의 등하교와 선생님들의 지도모습을 지켜볼 수 있었다. 제1 교문에는 두 명의 경비가 서 있었고 안쪽인 제2 교문에도 두 명의 경비가 있었고 부교장선생님 한 명과 담당선생님, 그리고 선도부 학생들이 네 명씩 양쪽에 서 있었다. 남캠퍼스에도 그러했다. 교장선생님께 물었더니 예절교육 차원에서 그렇게 지도한다고 하였다. 학생들은 규칙을 잘 준수하였다. 등교시간을 철저히 지키는 것도 그렇고 매일 있는 2교시 후 체조시간에도 그 좁은 골마루에서 두 명씩 짝을 지어 운동장으로 나오는 모습을 봐도 그러했다. 쉬는 시간에 장난하는 이들도 거의 눈에 띄지 않았다. 학생들의 머리는 남학생은 귀가 보이도록 단정하게 했고 여학생들은 머리를 묶었다. 인성교육이 잘 되어 있었다. 학생들의 교복은 체육복이었다. 실용적인 것을 택했다. 다른 학교 학생들을 보아도 역시 체육복을 입고 있었다. ‘선생님 존경, 교칙 준수’ 이 두 가지만 잘 이뤄져도 우리 교육도 큰 활기를 되찾을 수 있을 것 같았다.
가수 아이유가 작년 ‘새미의 어드벤처2’ 더빙에 참여하고, 목소리 값으로 1억을 받았다는 뉴스가 있었다. 이를 두고 수익성을 고려했을 때 고액 출연료는 문제가 없다는 판단이다. 성우와는 다르게 시사회 및 프로모션 일정에 스타가 적극적으로 참여하게 되므로 출연료가 아닌 모델료 개념으로 생각해야 한다는 의견을 내놓고 있다. 반면에 아이유가 일반 성우의 50배에 달하는 출연료를 챙겨갔다는 주장도 있다. 출연료로 적정 액수가 아니라는 의미다. 최근 애니메이션 영화에 이름 있는 스타가 더빙을 하는 것이 유행처럼 번지고 있다. 어린아이들의 귀에 익숙한 스타를 출연시켜 마케팅을 극대화하는 것이다. 그러다보니 출연 스타의 몸값이 수 천만 원에서 1억 원을 넘는 현실에 왔다. 한국 영화 시장이 급성장하면서 영화배우의 출연료가 커지는 것과 마찬가지 현상이다. 현재 톱 배우의 영화 출연료는 5억~6억 원대까지 치솟았다. 과거와 다르게 국내 영화계는 도둑들, 광해, 7번방의 선물까지 천만 관객을 연일 돌파하고 있다. 이에 따라 톱 배우들은 적지 않은 돈을 벌어들이고 있다. 물론 이에 대해 겉과 속이 다르다고 한탄하기도 한다. 배우들은 세금부담이 커서 손에 쥐는 돈은 적다고 한다. 그리고 수익 배분 구조가 복잡하기 때문에 막상 자신들의 손에 들어오는 돈은 많지 않다며 억울해 한다. 그러나 일반 사람들이 볼 때는 배우들의 논리는 엄살에 지나지 않는다. 세금 부담은 국가 기본 정책이다. 국민으로서 당연히 짊어져야 할 의무다. 그리고 수익 배분 구조 문제로 억대 영화 출연료가 적다는 논리도 받아들이기 어렵다. 이들이 정당한 대가를 받는다고 해도 이면에 영화계에 그늘진 곳에 비해 과한 측면이 있다는 사실이다. 한국 영화가 최근 연속으로 천만이 넘는 관객이 나올 때 독립영화는 여전히 어둠의 시기를 보내고 있다. 지난해 7만 관객을 모은 ‘두 개의 문’을 제외하곤 평균 관객이 1,500명 수준에 불과했다. 게다가 영화진흥위원회의 지원 감소는 독립영화의 어려움을 가중시키고 있다. 톱 배우가 억대의 출연료를 받을 때 영화 스태프는 저임금에 시달리는 보도도 자주 들린다. 몇 년 전 시나리오작가 최고은씨가 안타깝게 죽어 우리 사회에 경종을 울렸다. 최씨는 한국예술종합학교 출신의 젊은 영화감독이자 시나리오작가였다. 촉망받는 영화계 인재였지만 영화 작업이 거듭 무산되면서 생활고와 지병으로 고통을 겪다가 집에서 숨진 채 발견되었다. 이 사건은 당시 사회적으로 적지 않은 충격을 주었다. 재능 있는 젊은 예술가가 제대로 뜻을 펴지 못하고 죽음에 이른 만큼 편중된 처우 문제 등이 떠올랐다. 영화계에 대한 비판과 사회적 상황에 대한 자성론도 있었다. 하지만 관심은 그때뿐이었다. 여전히 영화계는 다수의 스태프들이 생활고에 시달리고 있다. 영화산업협력위원회의 2012년 영화 스태프 근로환경 실태 조사에 따르면, 후반작업분야를 제외한 팀장(퍼스트)급 이하의 연 평균소득은 916만원으로 집계됐다. 그야말로 생계유지가 곤란한 부끄러운 임금이다. 상업논리로 독립영화를 밀어내는 것도 경계해야 한다. 전문가들은 독립영화는 상업영화의 밑거름이자 자양분이라고 말한다. 독립영화는 한국 영화의 다양성과 미래의 성장 동력을 위한 발판이다. 발판도 다지지 않고 서려고 하는 것은 모래 위에 집을 짓는 것과 같다. 특정 스타에 기대는 상업성을 탈피하고, 작은 영화들을 장려하는 문화적인 인식 제고 등이 필요하다. 스타 마케팅으로 활기를 찾았던 뮤지컬 시장도 돌아볼 필요가 있다. 국내 뮤지컬계는 지난 10년간 외국 브랜드 수입 경쟁만 치열했다. 대기업 자본까지 달라붙어 로열티는 자꾸 치솟았다. 표 값은 어느새 10만원을 훌쩍 넘겼다. 그러나 비싼 로열티 탓에 수익은 제자리걸음이었다. 웬만한 뮤지컬은 이미 다 수입된 상태이기도 했다. 시장은 정체기에 접어들었다. 새로운 관객층을 확보할 필요가 있었다. 여기에 음반 시장 역시 불황이었다. 이때 음반 제작사들은 공연 제작사와 손을 잡았다. 아이돌 스타들을 뮤지컬 무대에 올리기 시작했다. 결과는 대체로 좋았다. K-팝과 더불어 K-뮤지컬도 인기를 끌었다. 한동안 침체기에 빠졌던 뮤지컬 시장은 K-팝에 힘입어 아이돌을 캐스팅하면서 흥행에 성공하는 듯했다. 한류 열풍으로 일본과 중국 시장까지 확대되었다. 공연장과 뮤지컬 연습실을 방문하는 한국 뮤지컬 관광 투어가 존재할 정도다. 그러나 스타 마케팅에 의존한 뮤지컬은 점차 한계를 드러내고 있다. 트리플 캐스팅도 모자라 다섯 명이 공동 주연을 맡고 있다. 배우들은 실력도 부족한데, 연습까지 부족한 실정이다. 그 와중에 아이돌 가수의 출연료는 회당 3,000만원까지 치솟았다. 출연료는 엄청나게 올랐지만 여타 배우와 스태프들은 변한 것이 없다. 상대적 박탈감만 커졌다. 제작자들이 작품으로 승부하는 것이 아니라 스타 캐스팅에만 치중하다가 만난 결과다. 외국 애니메이션을 사다가 그때마다 스타를 내세워 흥행에 성공한다면 국내 애니메이션은 창의적인 작품 개발 의욕을 잃게 된다. 국내 콘텐츠의 건전한 탄생을 위해서라도 정도(正道)의 마케팅을 해야 한다. 아울러 영화, 뮤지컬 등 모든 예술 산업에 종사하는 사람들에게 적정한 분배와 성장이 이뤄져야 한다. 그래야만 독자를 감동시키는 콘텐츠가 탄생한다. 일부 스타에 기대는 마케팅은 흥행에서는 성공할지 모르지만, 궁극적으로 예술 산업이 성장하지 못한다.
다니엘 드림 스쿨 야학 개설 얼마 전 필자는 저녁 7시교감선생님과 함께 학교 옆 교회를 찾았다. 이 곳에 모인 대학생 오리엔테이션에서 격려사를 하려는 것이다. 여기 모인 대학생들은 우리 학교 학생 70여 명을 대상으로 매주 화요일과 목요일 저녁 7시부터 9시까지 두 시간 동안 영어와수학을 가르치게 된다. 그러니까 여기 모인 학생들은 야학 선생님들이다. 공식 명칭은 ‘다니엘 드림 스쿨’이다. 2011년 겨울 방학 때 20여명의 우리 중학생을 대학생 5명이 가르친 것이 시작이다. 그 성과가 좋아 이렇게 확대된 것이다. 이번엔 축구부원들과 태권도부원들이 합류하였다. 선수들을집중적으로 지도하여 학력을 올리려는 것이다. 대학생들의 소속을 보니 성균관대, 아주대, 경기대 등 수원지역이다. 캠퍼스에 모집 공고 게시판을 보고 재능봉사를 자원한것이다. 자기 공부와 취업을 위한 자격증 따기에 바쁜데 이렇게 소중한 시간을 내어 준 학생들이 고맙다. 아마도 이 학생들은 이번 활동을 통해 인생에서 더 귀한 것을 얻으리라 본다. 업무를 담당하고 있는 김형찬 사역자는 “드림스쿨에서 1년 2개월간 지도한 결과 중학생 성적이 놀랄만큼 올랐다”며 “100등 이상 올라간 학생이 70% 정도 된다”고 말한다. 중학생들 반응도 “공부하는데 크게 부담이 없고 학교나 학원보다 재미있다”고 한다. 수업 전에 미리 와서 기다리는 학생이 대부분이라고 전해 준다. 교육성과를 거둔 비결도 전해 준다. 대학생은 무보수로 가르치고 중학생은 무료로 배우지만 이 세상 공짜가 좋은 것은 아니다. 무단 결석과 지각 등을 막고 교수-학습의 규율을 확립하기 위해 중학생과 대학생들은 일정 금액을 내야 한다. 이 돈은 과정이 끝나면 돌려주게 된다. 작은 아이디어지만 이것이 성실하게 가르치고 배우는데 도움을 주었다고 한다. 학교 운동부 무엇이 문제인가? 학교교육과는 관계없는 그들만의 모임이라는 것이다. 운동선수와 학부모, 코치 등만 관심이 있다. 절대 다수의 학생, 학부모, 교직원, 지역사회 등 교육공동체의 무관심 속에 운영되고 있다. 운동부 학생의 성적은? 운동 연습에 시간을 많이 쓰다 보니까 학업성취도가 낮은 편이다. 학업에 관심이 부족하여 수업태도 또한 지적을 많이 받는다. 다른 학생에게까지 피해를 준다. 기초학력 미달 학생수가 많으면 학교평가가 낮게 나온다. 교원성과급에도 나쁜 영향을 미친다. 그렇다고 그들만 탓할 없다. 그래서 생각해 낸 것이 성과를 거둔 드림 스쿨 합류다. 다행히 코치와 선수들 모두 찬성이다. 그들도 운동선수 이전에 학생이다. 학생의 본분은 공부다. 교장은 그들이 학업 성적이 중간 이상 정도가 되었으면 좋겠다. 다음은 미리 준비한 교장 격려사 메모다. 대학 6년 후배 교감이 있는데 학창시절 야학교사 경험을 큰 자랑으로 여긴다. 필자도 보이스카우트 지도자로서 20여년 간 청소년 육성 지도를 했다. 한국잼버리 아태잼버리, 세계잼버리에 참가비 내고 봉사했는데 삶의 소중한 자산이다. 내가 갖고 있는 재능을 베푼다는 것, 얼마나 숭고하고 아름다운 일인가! 내가 다른 사람의 모델이 되어 긍정적인 영행을 준다는 것 자체가 가슴 뿌듯한 일이다. 우리 학교 학생들이 공부하는 재미에 흠뻑 빠지게 해 달라. 일방통행 주입식으로 가르치지 말고 자기 주도적 학습능력을 키워주었으면 한다. 학생들이 대학생 선생님을 좋아하고 존경하고 따르게 해 달라. 여러분들은 배우는 학생의 멘토이고 동일시의 대상이다. 학교와 교회가 상생을 하고 있다. 좋은 이웃이 있으면 행복해 진다. 서로 도움을 주고받는 것은 아름다운 일이다. 작년 우리 학교 수원음악진흥원 초청 음악회 때에는 교회가 공연장이 되었다. 지난 1월, 교회의 전국적 행사에 운동장을 주차장으로 대여해 주어 편의를 도모한 적이 있다. 2년차의 다니엘 드림 스쿨,참가자 모두에게 좋은 성과 있기를 기대한다.좋은 일하는 학교 옆 이웃교회가고맙다.
신선대(부산기념물 제29호)는 수많은 컨테이너들이 우리나라의 힘을 느끼게 하는 신선대부두 뒤편의 부산만과 수영만 사이에 불쑥 튀어나온 작은 돌산이다. 용당동 해변의 왼쪽기슭에 자리 잡은 바닷가 절벽과 산꼭대기에 화산암질의 해식절벽과 해식동굴이 절경을 만들었다. 주변의 산세가 못을 둘러싼 용의 모습 같대서 일대를 용당으로 불렀다. 멋진 경치만큼이나 전설도 많다. 신선대를 절단하여 도랑을 만들 때 사토에서 혈흔이 나왔다거나 가야진이라는 사람이 용이 되어 하늘로 올라갔다거나 신라 말기에 최치원이 신선이 되어 유람한 곳이었다는 전설이 전해온다. 신선대라는 명칭은 산봉우리의 무제등이라는 큰 바위에 신선의 발자국과 신선이 탄 백마의 발자취가 있다는데서 유래되었고, 옛날에는 이곳에서 신선들이 노는 풍악소리가 들려왔다고 한다. 날씨가 맑은 날 오르막길을 따라 숲이 울창한 산에 오른 후 1797년 영국인들이 용당에 처음 상륙했던 것을 기념하여 세운 기념비 앞에서 푸른 바다를 바라보면 수평선 너머로 일본의 대마도가 선명하게 보인다. 길쭉하게 모습을 드러낸 대마도를 맨눈으로 바라보고 있노라면 우리 땅 독도를 탐내는 일본인들이 가소롭다. 조망이 좋은 신선대 정상에 서면 오륙도와 영도구, 부산항과 감만부두가 한눈에 들어온다. 신선대는 외지 사람들에게 알려지지 않았지만 부산 앞바다를 시원하게 조망하며 항구도시 부산의 색다른 경치를 맛볼 수 있는 명승지다. 꽃피는 동백섬에 봄이 왔건만 형제 떠난 부산항에 갈매기만 슬피 우네/ 오륙도 돌아가는 연락선마다 목메어 불러 봐도 대답 없는 내 형제여 / 돌아와요 부산항에 그리운 내 형제여… 부산항과 오륙도가 주인공인 조용필씨의 '돌아와요 부산항에'가 한때 국민가요로 사랑받았다. 바위섬 오륙도(명승 제24호)는 예로부터 부산을 대표하는 상징물이자 경승지였다. 오륙도SK뷰아파트 앞 부산만에 우삭도, 수리섬, 송곳섬, 굴섬, 등대섬이 나란히 태종대가 있는 영도구를 바라보고 있다. 육지 쪽에 가장 가까운 우삭도가 밀물 때는 해식동에 의해 방패섬과 솔섬으로 분리되었다가 썰물 때는 하나의 섬이 되어 오륙도라는 이름이 붙여졌다. 등대지기가 있는 등대섬을 제외한 나머지 5개 섬은 모두 무인도이다. 오륙도 앞이 이기대 해안산책로의 종점이자 부산 오륙도에서 고성 통일전망대까지 688km 구간을 잇는 국내 최장 탐방로 ‘해파랑길’의 시작지점이다. 해파랑길은 ‘떠오르는 해와 푸른 바다를 바라보며 바다 소리를 벗 삼아 함께 걷는 길’을 뜻한다. 광안대교와 부산세계불꽃축제로 부산의 랜드 마크가 된 광안리해수욕장! 해변의 모래사장과 예술 공원이 오감을 즐겁게 해줘 추억과 낭만 찾기를 즐기는 젊은이들이 많이 찾는다. 광안대교는 수영구와 해운대구를 연결하는 해상 복층 교량으로 상층부에서 바라보는 주변경관이 일품이고, 해가 지면 여러 가지 색상으로 다리를 밝히는 경관조명이 유명하다. 부산불꽃축제는 매년 10월에 광안리해수욕장과 광안대교 일대에서 개최되는 ‘멀티미디어 해상쇼’로 다양한 불꽃과 화려한 레이저쇼가 관람객들을 황홀하게 만든다. 부산바다축제와 국제록페스티벌이 개최되고 주변에 회 센터가 있어 먹거리도 다양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