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졸업 후 오래도록 기억하는 선생님들은 무엇을 어떻게 가르친 분일까. 정말 잘 가르친다는 것은 무엇일까. ‘미국 최고의 교수들은 어떻게 가르치는가’(뜨인돌)는 이 질문의 답을 찾는 데 도움을 주는 책이다. 뉴욕대학교 ‘최고 교수법 연구소’ 소장인 저자는 다양한 학문 분야에서 활동한 100여 명의 교수들을 대상으로 15년에 걸친 연구를 통해 최고의 교수법이 무엇인지를 밝히고 있다. 저자는 최고 교수들의 교수법을 여섯 가지로 요약하고 있는데, 첫째 최고의 교수들은 자신의 전공 이해가 뛰어나다는 것이다. 이를 통해 학문에 대한 학생들의 어려움을 실질적으로 파악하고, 학생들이 쉽게 받아들일 수 있는 예화나 인상적인 질문을 통해 근원적인 이해를 구한다. 대개의 교수들이 지식 전달자에 만족하는 데 반해, 이들은 학생들이 이해의 지평을 넓혀 그 이해가 학생들이 생각하고 행위하고 느끼는 방식에 지속적이고 본질적인 영향력을 끼치는 학습에 중점을 둔다. 둘째, 최고의 교수들은 자신이 무엇을 해야 할지에 초점을 두고 강의 준비를 한다. 그래서 질문의 폭이 넓고 깊으며, 다양하고 구체적인 경로를 통해 학습목표에 도달할 수 있도록 한다. 셋째, 최고의 교수들은 학교가 학생에게 요구하는 기본 능력 ‘그 이상의 것’을 기대한다. 즉 ‘학생들이 자신이 관심을 갖고 있는 문제에 대해 따지고, 파고들고, 의문을 제기하고, 타당한 이유를 찾고 또 뼈대를 세울 정도로 의지가 굳어야 하며, 흥미를 느낀 모든 분야와 문제에 직접 몸으로 부딪혀 볼 것’을 기대한다는 것이다. 넷째, 최고의 교수들은 강의 진행 방식은 다르지만, 비판적 학습을 위한 자연스러운 환경을 조성하고, 주의를 집중시키고 그대로 유지하며, 과목이 아니라 학생에서 시작한다. 또 학습에 헌신하고, 교실 밖의 학습, 해당 학문과 연계된 사고를 유도하며, 다양한 학습경험을 제공한다는 7가지 공통점을 갖는다. 다섯째, 최고의 교수들은 권위를 구축하지 않는다. 이들은 신뢰와 사랑을 중심으로, 학생들을 겸손하게 대하고, 제자일지언정 그들의 품위를 존중한다. 마지막으로, 최고의 교수들은 성적 평가를 우수 학생과 열등 학생의 구별로 보지 않는다. 대신 그것을 교수와 학생 개인의 의사소통의 시각에서 바라본다. 따라서 성적 평가 방식이 누적되는 종합 평가의 성격을 지닌다. 교수는 학생들 개개인이 끊임없는 자기평가와 반성, 그리고 변화 의지를 통한 자기 능력 향상을 이루도록 돕는다. 저자는 이런 최고의 교수들이 꼭 ‘완벽하거나 천재에 가깝게 머리가 좋은 사람’은 아니라고 강조한다. 이들 역시 자신의 약점에 도전하고 하나의 완성된 교수법을 천편일률적으로 따르는 것이 아니라, 기본을 중심으로 변화무쌍하게 교수법에 변화를 주는 등 끊임없이 노력하고 연구해 부족함을 채우는 노력을 등한시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50년 교편을 잡으며 제자들에게 스스로 창의력을 발견하는 능력을 부여한, 최고의 교수 폴 베이커(Paul Baker)가 이런 말을 했다. “교수법의 출발은 학생에서부터 시작해야 한다. 수업의 1분 1초는 온전히 수업을 듣는 학생 한 명 한 명에게 바쳐져야 한다”고 말이다. “교수는 한 반을 가르치는 것이 아니라 한 학생을 가르치는 것”이기 때문이라는 그의 이 말은, 교육의 기단(基壇)이 결국 교육자의 자질과 역량, 노력임을 다시금 되새기게 한다.
PK, PVP, 현P, KIN, 현질, 베프가 무엇인지 아십니까? 나는 오늘 친구에게 간지 패스를 하였다는 청소년의 쓴 말에서 간지는 무슨 뜻인가? 최근 중고등학교의 학교폭력문제나 군부대의 총기난사사건이나 자살사건을 접하면서 과연 우리의 청소년들은 어떤 생각을 하고 있으며 어떤 문화속에서 생활하는가에 관심이 주어지고 있다. 대표적인 예의 하나로 A라는 학생의 하루 일과를 살펴보자. A는 지난 밤 늦게 까지 인터넷을 하느라 피곤한 몸이지만 이효리의 노래 소리에 잠에서 깨어났다. 핸드폰의 라이브벨 서비스가 알람 역할을 해 주었기 때문이다. 잽싸게 세수하고 밥을 먹는 둥 마는 둥 하고는 허겁지겁 인터넷에 접속한다. 오늘은 바로 인터넷 동호회 카페에서 만난 여자친구의 생일이기 때문. 여자친구의 싸이에 리모티콘으로 축하메세지를 보내고 한창 흥행중인 영화의 예매를 확인했다. 서둘러 학교에 등교한 A는 친구들과 이야기를 나누느라 정신이 없다. 게임 방에서 와우를 레벌을 올렸다는 친구 이야기며, 어느 가수의 콘서트 이야기 등을 나누다 보니 어느새 수업시간, 필기를 하다보니 키보드를 칠 때 보다 2배는 더 걸리는 것 같아 답답하다. 책상 밑에서 몰래 이동 전화를 확인해 보니 문자 메시지가 들어와 있다. 핸드폰으로 이모티콘 메시지를 잘 받았다고 여자친구가 보내온 것, 왠지 기분이 좋아진다. 학교생활의 하이라이트-점심시간. 친구들과 밥을 먹으며 신기한 인터넷 사이트에 대한 정보를 교환한다. 5, 6교시는 일주일에 한번 있는 CA시간이다. 홈페이지 제작부에 있는 A는 이때가 학교에서 유일하게 컴퓨터를 맘껏 쓸 수 있는 시간이라 흥이 난다. 수업을 마친 후 A는 테크노마트에서 여자친구를 만나 영화를 보고 테크노마트 홈페이지에서 다운받은 할인 쿠폰 매장에서 밥을 먹었다. 맛있고 친절해서 맘에 들었고 그래서 인터넷에 글을 올리려고 생각했다. 배도 불러 PC방에 가서 여자 친구와 함께 카트라이더를 했다. PC방에서 연습한 실력을 여자친구에게 보여 줬더니 아주 좋아하였다. 이렇게 놀다 보니 집에서 정해 놓은 통금시간이 다가온다. 그렇지만 집에 가도 인터넷을 통해 세상과 접속할 수 있으니 상관없다. 아쉽지만 여자친구와 헤어지고 집에 돌아와 PC 앞에 앉아 보고서를 쓰고 싸이 방명록 리플을 달고 음악과 영화 프로그램을 다운받았다. 어느덧 밤이 깊어 가고 PC전원을 끄고 잠자리에 든다(장영실 선생님의 N세대 보고서를 필자가 업데이트한 것임). 이상의 정보를 교사와 학부모들은 얼마나 이해할 것인가? PK는 플레이어 킬링이라고 하여 게임상에서 상대편늘 죽이는 것을 의미하며 현피란 현실상에서 플레이어 킬링을 하는 것을 의미하며 KIN이란 글자를 90도 누워서 보면 즐이라는 뜻이며 베프란 베스트 프렌드란 것이며 간지라는 것은 일본어로 포장한다는 뜻이다. 우리가 학교현장에서 매일 만나는 우리의 아이들은 이런 용어를 사용하는데 담당교사들이 학생의 세계를 이해하지 않으면 안되겠다. 지난 6월초 교육인적자원부에서 주도한 교육혁신박람회가 보름가량 개최된바 있다. 그 장소에서 PK가 무엇이고 그것이 얼마나 나쁜 것인가에 관하여 전시장 입구 가까운곳에 크게 전시되어 있었지만 그에 대한 관심을 두는 교사나 학부모들이 거의 없는 것을 보고 놀란 적이 있었다. 학생들이나 청소년들에게 이렇게 하라고만 하고 부모들이나 교직자들은 그에 대한 이해하려는 노력을 하지 않으면 무엇인가 문제가 있는 것이 아닌가? 청소년들의 문화에 대한 이해가 필요하며 이를 위한 성인들의 노력이 더욱 요구될 때이다.
최근에 ‘코러스’라는 영화를 보았다. 2차대전 후에 사회적, 가정적, 심리적으로 어려움을 겪는 청소년들을 교육하는 기숙학교에서 합창단을 구성해 음악활동으로 학생들을 안정시키고 교화시키는 선생님을 주제로 한 감동적인 영화였다. 하지만 그 영화의 내용 중에는 끝내 선생님을 따라오지 않는 한 학생이 등장하는데, 동료학생들을 위협하여 금품을 갈취하고 심지어는 선생님을 폭력으로 위협하기도 하는 학생이다.선생님들은 보듬어 주거나 체벌을 통해 그 학생을 교화하려고 노력을 하지만 교장실 금고가 털리는 도난사건이 발생했을 때, 범인은 다른 학생이었지만 늘 말썽을 일으키던 그 학생을 범인으로 지목하여 체벌을 하며 스스로의 범행을 인정하도록 강요하였다. 끝내 그 학생은 학교에 불을 지르는 비행을 저지르고 만다. 학교폭력을 일으키는 학생들의 원인을 살피면 여러 가지 사회적, 가정적 문제들을 가지고 있을 뿐만 아니라 심리적인 요인들을 가지고 있는 경우도 많다. 이처럼 다양한 원인들을 가진 학교폭력의 가해학생의 개선을 위해서는 다양하고도 전문적인 대처가 필요하다. 우선 성장배경에서 다양한 가정적, 사회적인 요인들로 인하여 정신과적인 치료가 필요한 경우도 있다. 물론 드문 경우이지만 염두에 두어야 한다. 대부분의 경우는 꾸준하고 정기적인 상담과 함께 인간관계기법과 분노조절능력을 향상시켜주는 다양한 프로그램을 병행해 좋은 결과를 얻고 있다. 가벼운 경우는 본인이 한 행동이 범죄에 해당되며 피해자들이 얼마나 심리적으로 고통 받고 있는지를 알려주는 것만으로도 행동에 변화를 일으키기도 한다. 하지만 단기적이고 일회적인 교정프로그램으로 일시에 변화하는 것은 어려운 문제이고 가해학생이 과거의 환경으로 돌아가서도 다양한 형태로 전문가와 지속적인 만남을 가져야 한다. 청소년폭력예방재단에서는 가해학생들을 위해 주중 프로그램과 방학을 활용한 캠프형 프로그램, 방문 진행 프로그램 등을 운영하고 있다. 구체적으로는 미디어를 활용한 상담프로그램인 ‘친구야 놀자’ 프로그램 등이 있으며, 학교폭력 피·가해학생들을 위한 대안학교도 운영 중이므로 이를 활용한다면 도움이 될 것이다. 김형 래 청소년폭력예방제단 사무국장
이번 여름 방학에 K대학에서 열리는 전문상담 자격연수를 신청하였다. 겨울방학까지 계속되는 연수이기에 무척 기대를 갖고 연수에 임하고 있다. 초, 중, 고 교사로 구성된 2개 반 60명이 20일 동안 받게 되는 연수이다. 첫날 자기 소개를 하는 시간에 소속 학교, 이름과 함께 전문상담 자격연수를 신청하게 된 까닭을 말하는 시간이 있었다. 연수에 임하는 선생님들의 의욕에 가득찬 말씀을 들으면서 앞으로 이 연수가 얼마나 뜨거운 연수가 될 것인지를 짐작케 하였다. M초등학교 30대 남자 선생님께서는 결석이 잦은 어떤 6학년 아이를 담임하고 있었는데, 학교에 나올 때마다 불러서 결석을 하지 않도록 당부하는 수준에 그치고 부모님께서도 상담에 응해 주시지 않아서 더 이상 그 아이에 대해서 관심을 두지 않았다고 한다. 그런데 중학교에 들어간 후 들려오는 소문이 학교에 다니지 않고 폭력배와 어울려 다니며 경찰서에 자주 드나든다는 소문을 듣고 전문적인 상담지식을 가졌더라면 좀 더 의도를 갖고 그 아이를 바르게 지도할 수 있었을 텐데 그렇지 못했던 것을 후회하며 다시는 그런 일이 없도록 하기 위하여 이 연수를 신청했다고 한다. D고등학교 여선생님께서는 아들이 공부를 열심히 하여 서울대 치대에 들어갔으나 대인관계에 있어 고충이 있는 듯하여 아들에게 조금이나마 도움을 주기 위하여, S고등학교 남자선생님께서는 고1 딸이 있는데 중학교까지는 아무 문제없이 공부를 잘 하였으나 고등학교에 진학한 후 일진회에 들어가 활동하며 공부를 하지 않고 문제 있는 행동을 하여 어려움을 겪었던 일을 말씀하시면서 그 일이 이 연수를 신청하게 된 동기라고 하셨다. 또 충남 당진의 어느 학교 기간제로 있는 여선생님께서는 앞으로 상담 분야의 전망이 밝아서 전문 상담인이 되면 기간제 교사를 그만두었을 때 유익이 있을 것이라는 생각에서, 또는 사춘기의 자녀를 키우는 것과 학생들을 지도하는 데 있어 많은 도움을 줄 것이라는 생각에서, 그리고 전문상담 인이 되면 퇴직 후 교사로서 사회에 봉사할 수 있는 기회가 될 것 같아서, Q고등학교 선생님께서는 학생부장을 하시면서 학생들의 생활지도를 하는 중에 규칙을 어기는 학생들이 있으면 큰 소리를 지르거나 회초리를 들곤 하였는데 나이가 들수록 좀 더 학생들을 감화시키는 전문적인 방법은 없을까 하는 생각에서 신청하게 되었다고 하셨고, A고등학교 보건 선생님께서는 보건실에 찾아오는 아이들의 대부분이 실제 몸이 아프기 보다는 심리적인 요인이 크다는 것을 알고 보건실을 찾아오는 아이들 한 명 한 명에게 양질의 상담을 제공하고 싶어서 신청하였다고 하셨다. 가장 공감이 갔던 말씀을 하셨던 선생님은 서울 J여고 진로상담부장을 맡고 계신 선생님이셨다. 선생님께서는 20여년 동안 전공과목 한 과목을 가르치다보니 교과지도에서만은 그 누구에게도 뒤지지 않고 학생들에게도 인정받고 있는 교사라고 자처하셨다. 그러나 교과지도 외에 학생들을 대하는 것만큼은 날이갈수록 부족함을 느끼게 되어 전문상담 자격연수를 통하여 진로상담부장의 역할을 잘 감당하며 학생들을 더 잘 이해하고 조력할 수 있기 위하여 신청하였다고 하셨다. 이번 연수에 참가한 모든 교사들이 전문 상담 자격연수에 대하여 긍정적으로 생각하는 바는 단시일에 끝나는 연수보다 깊이 있게 상담분야를 배울 수 있다는 것과 전문상담 교사자격증이 주어진다는 것, 또 1정 자격연수와 동일한 것으로 승진에 도움이 된다는 것을 들었다. 이제 2주일째 연수가 진행되고 있다. 청소년상담원으로 오랜 경험이 있는 강사들이 간혹 들려주시는 상담사례들은 우리가 교육현장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상담사례들이었으나 내담자로 하여금 상황을 극복하고 그들의 감정과 사고와 행동양식의 변화를 가져오기까지의 과제해결을 위해 정보를 수집하고 바람직한 생활과정과 성장발달의 지도를 위하여 기울인 노력은 전문적인 상담지식이 부족한 교사들과는 매우 다른 부분이 있었다. 나 자신에 대한 성격유형검사(Myers-Briggs Type Indicator)를 받아보며 일상적인 삶의 현장에서 나타나는 학습지도 및 자녀교육의 강점과 약점, 대안, 사랑, 업무처리에 있어 나 자신과 타인의 성격역동을 이해하는데 많은 도움을 주었고, 의사결정유형검사(Assessment of Career Decision Making:ACDM-Decision Making Style)를 받아본 결과 의사결정시 의존적인 점은 없지만 합리적인 면보다는 직관적인 점 다소 높게 나온 새로운 사실도 알게 되어 나 자신을 돌아보는 계기가 되었다. 그동안 여러 연수를 받아보았지만 이번 연수처럼 열띤 토의와 넘치는 질문, 강사와 함께 오고가는 인정미 넘치는 대화로 활기찬 연수는 그다지 많지 않았던 것 같다. 연수가 진행될수록 전문적인 상담지식의 부족으로 아이들의 생활지도에 있어 오류를 범했던 부분들을 하나 하나 깨달으며 좀더 일찍 이 연수를 받았더라면 하는 생각이 들었다.
‘사이먼 안홀트’라는 사람이 개발한 국가 브랜드 지수(NBI)는 세계시장에서 긍정적인 자원이 된단다. 즉 브랜드 지수가 높아야 투자자와 소비자, 관광객들을 끌어 들이기 위해 다른 나라들과 경쟁하는데 유리하다는 얘기다. 미국에 있는 국제 온라인 시장조사 기관인 GMI가 사이먼 안홀트와 공동으로 세계 10여개 국가 소비자 1만8천여 명을 대상으로 투자, 이민, 관광, 문화, 국민, 정부조직, 수출 등 각 분야에 걸쳐 국가 브랜드 지수를 조사한 결과 호주가 1위를 차지하고 한국은 20위를 차지한 것으로 나타났다. 세계 25개 국가들을 대상으로 지난 4월에 조사를 실시해 이번에 발표한 국가 브랜드 순위는 호주, 캐나다, 스위스, 영국, 스웨덴, 이탈리아, 독일, 네덜란드, 프랑스, 뉴질랜드, 미국, 스페인, 아일랜드, 일본, 브라질, 멕시코, 이집트, 인도, 폴란드, 한국, 중국, 남아공, 체코, 러시아, 터키 순이란다. 국가의 수준을 나타내는 매우 중요한 개념으로 평가되고 있기에 국가 브랜드는 국가의 얼굴이다. 그런데 이번 조사에서 한국이 차지한 20위는 중국(21위)을 간신히 제쳤지만 인도나 폴란드에 뒤진 수치다. 올림픽을 주최하고, 월드컵을 공동개최한 나라이기에 결과를 보며 뒷맛이 씁쓸하다. 한편 여러 가지 국내의 상황을 들여다보면 왜 그런 결과가 나왔는지 이해할 수 있다. 굴지의 재벌들이 재투자 대신 현금 확보에 사활을 걸고, 돈 있고 많이 배운 사람일수록 이민을 생각하고, 국내의 관광지는 관광객이 감소해 울상인데 해외로 떠나는 사람들이 공항을 북새통으로 만들며 외화를 낭비하고, 사회를 안정시켜야 할 정치권은 거짓ㆍ위선ㆍ부정부패로 바람 잘날 없는데 어떻게 좋은 결과를 기대할 수 있을까? 그렇다고 그들만 탓할 수 있는가? 지나칠 정도로 제몫 챙기기를 해 재벌들의 투자의욕을 꺾은 근로자들, 높은 자리에서 권세만 누리느라 살기 좋은 나라로 만들지 못한 위정자들, 지역 알리기보다는 바가지 씌우는데 골몰했던 관광지 상인들, 눈앞의 이익을 좇느라 돈이나 줄서기로 정치권을 흔든 잘난 사람들, 이런 일련의 일들을 남의 일인 양 방관하고 있던 국민들까지 모두 반성해야 한다. 문제는 지금부터다. ‘늦었다는 것을 알았을 때가 가장 빠른 때다.’라는 말도 있지 않은가? 한강의 기적을 이뤄낸 저력이 있지 않은가? ‘할 수 있다.’는 슬로건을 아직은 기억하고 있지 않은가? 두 팔 벌려 ‘꿈(★)은 이루어진다.’고 목청을 높이며 온 국민이 하나 되던 때가 있지 않은가? 지금과 같이 당장 눈앞에 있는 이익에 눈멀거나 개인의 이익만 챙기려 한다면 국가 브랜드 지수는 제자리걸음을 할 것이다. 공익을 위한 일이라면 손해 보는 것을 감수할 줄도 알고, 국가에 이익이 된다면 먼 미래를 생각하며 양보할 줄도 알아야 한다. 꼭 순위가 중요한 것은 아니지만 그러다보면 국가 브랜드 순위에서 10위권 안에 들어 대한민국 국민이라는 것이 떳떳하고 당당한 날이 올 것이다. 재벌들의 재투자로 일자리가 늘어나고, 외국에서 투자자나 관광객이 몰려오고, 신망 받는 정치인들은 국가발전에 기여할 것이고, 국민들은 신바람이 날 것이다. 이럴 때 국가 브랜드 지수를 높이는데 교육계가 할 일이 무엇인가를 꼼꼼히 챙겨보며 앞장서는 것은 어떨까?
정부가 50억원 미만 학교 공사를 BTL(민간투자유치)사업에서 제외키로 하는 등 BTL사업 개선안을 마련, 그동안 BTL사업으로 인해 경영난을 겪어온 지방 중소 건설업체들의 숨통이 트일 전망이다. 3일 건설업계에 따르면 최근 교육인적자원부는 50억원 미만 학교 공사를 BTL사업에서 원칙적으로 제외하도록 권고하는 내용의 공문을 일선 교육청에 보냈다. 이와 함께 기획예산처도 내년도 사업부터 BTL 공사 기본계획 및 기초조사를 주무관청이 직접 수행하도록 해 사실상 중소업체들의 참여를 막아온 초기비용 부담 문제가 완화됐다. 이같은 내용은 지난달말 이해찬 총리주재 관계 장관 회의에서 보고됐으며, 이로써 BTL 사업으로 인해 학교 공사 등 지역 소규모 공사 수주에 어려움을 겪어온 지방 건설업체들은 한시름 덜게 됐다. 교육부가 BTL사업에서 50억원 미만 공사를 제외하기로 함에 따라 당초 2조6천462억원 규모인 초.중등 학교 BTL 공사는 1조5천450억원으로 조정돼 1조1천12억원 어치 공사는 지방 중소업체들이 수주할 수 있게 됐다. 또 교육부는 지방 건설업체들의 원활한 참여를 보장하기 위해 내년부터 500억원 내외로 묶였던 공사 규모를 200-300억원선으로 낮추고 기본 설계도를 건설사가 작성하는 것이 아니라 교육청에서 작성해 제공하는 방안도 검토키로 했다. 기획예산처도 내년도 사업부터 기본계획 및 기초조사를 주무관청이 수행할 수 있도록 관련 예산 확보에 나섰으며, 민간 사업자에게 기본설계 수준 이상의 사업제안을 요구하는 경우에는 사업제안에 들어간 비용의 일부를 보상하기로 했다. 또 보통 30-40일 정도 밖에 주어지지 않은 사업제안 준비기간을 대폭 늘려 2개월 이상 사업공고를 하도록 하고 기존의 지역 중소업체 일정비율 의무시공 제도 등을 적극 활용해 지역 중소업체의 참여 확대를 도모키로 했다. 올해 1월 민간투자법 개정과 함께 도입된 BTL사업은 민간 사업자가 시설을 지으면 정부가 리스해 사용하는 방식으로 시중의 부동자금을 끌어들여 경기를 활성화시키고 일자리를 창출하기 위해 도입됐다. 그러나 BTL사업은 그동안 지방 중소 업체들이 맡아 온 소규모 공사들을 수백억원 단위로 묶어놔 자금력이 부족한 지방 중소건설사들의 참여를 배제한다는 지적이 끊이지 않았다. 또 BTL사업에 참여한 건설사가 사업 제안을 위해 총사업비의 2-4%에 달하는 설계비용 등 초기비용을 부담하도록 해 지방 중소업체들의 큰 반발을 샀다. 급기야 서울과 경북, 제주를 제외한 대한건설협회 산하 13개 시도지회는 정부가 BTL사업 개선안을 마련할 때까지 BTL사업 조건부 불참 결의를 하기에 이르렀다. 그러나 정부가 BTL사업 개선안을 마련함에 따라 건설사들의 BTL사업 참여는 재개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건설업계 관계자는 "정부의 BTL사업 개선안이 100% 만족스러울 수는 없지만 개선안 내용이 일정부분 중소 건설업체 참여를 확대시켜줘 지역 건설 경제 활성화에 도움이 될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호주에서 현지 학생들이 학사 과정을 공부하는 데 10만 호주 달러(한화 7천800만원정도) 이상 학비가 드는 학과가 크게 늘고 있으며 내년이면 60개 이상 될 것으로 보인다. 3일 호주 신문들에 따르면 내년도 대학 가이드북은 학사과정을 마치는 데 학비가 10만 달러 이상 드는 과정이 금년 45개였으나 내년에는 63개에 이를 것으로 보인다고 밝혔다. 학비가 10만 달러 이상 드는 과정 가운데 절반은 멜버른 대학과 모나쉬 대학에 설치돼 있는 데 가장 비싼 곳은 모나쉬 대학의 의학.법학 복수 전공 과정으로 무려 25만6천 달러나 한다. 또 모나쉬 대학의 의학 전공은 16만 달러, 공학.법학 복수 전공은 12만8천50달러, 약학.무역학 복수 전공은 12만1천800달러이며 멜버른 대학의 의학 전공은 18만3천달러, 치과학 전공은 15만 달러, 공학.법학 복수 전공은 13만6천800달러 등이다. 하지만 학생들이 학업 성적이 일정한 수준에 도달해 정부보조 혜택을 받을 경우 학비 부담은 크게 경감시킬 수 있다. 호주의 명문 대학 중에서도 호주 국립대학이나 웨스턴 오스트레일리아 대학에는 학비를 전액 본인이 부담하는 과정은 개설돼 있지 않다. 고등교육 문제 전문가인 브루스 채프먼은 학비를 본인이 부담하는 현지 학생들의 비율이 학사과정의 경우 2% 정도 되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지만 2008년에는 10%로 늘어날 것으로 보인다고 전망했다.
일본 후소샤(扶桑社)가 왜곡된 역사ㆍ공민교과서의 본격적인 판매에 들어간 가운데 아시아평화와역사교육연대가 이들 교과서의 채택 거부를 호소하는 내용의 의견광고를 일본내 일간지 4곳에 게재했다고 2일 밝혔다. 이 단체는 의견광고 게재를 위해 지난달 4일부터 범국민모금운동을 벌인 결과 이날까지 3억4천여만원을 모았고 이를 재원으로 요미우리ㆍ아사히ㆍ홋가이도ㆍ니가타 신문에 의견광고를 냈다. 이들은 앞으로 후소샤 교과서를 채택할 가능성이 높은 지역의 신문인 에히메ㆍ구마모토ㆍ시마네 신문 등 3개 일간지에 의견광고를 게재할 계획이다. 이 단체가 낸 의견광고는 '함께 동아시아의 평화를 맡자'는 큰 제목아래 후소샤 교과서로 공부하는 학생들이 "전쟁이란 멋진 것이구나. 다시 해보고 싶은 걸?"이라는 대사가 실린 박재동 화백의 삽화가 담겨있다. 그러나 에히메 신문은 이 삽화를 문제삼아 광고 게재를 거부해 다른 그림으로 대체하는 우여곡절도 겪고 있는 상황이다. 한편 이 단체는 4일부터 일주일간 중국 베이징(北京)에서 한ㆍ중ㆍ일 3개국 청소년과 교사 등 180명이 참가하는 '제4회 청소년 역사체험 캠프'를 연다.
지난 6월 23일에 나는 MAACCE에서 미주리대학(at Saint Louis)의 Dr. Cochran 교수와 공동으로 ESL 교육에 관한 논문을 발표하였다. MAACCE는 The Missouri Association for Adult Continuing and Community Education의 약자로 굳이 한국어로 번역을 하자면 ‘미주리지역 성인교육 및 지역사회 교육협회’라고 할 수 있겠다. 여기서 협회는 한국으로 말하면 학회의 기능도 하고 있어서 세계적으로 명성을 지니고 있는 교수도 발표에 참여하여 현장 교육을 담당하고 있는 현직 교사들과 만나고 있으며, 초, 중등 교사들, 지역사회 ESL Center의 director 및 교사들이 활발하게 관심 분야에 대한 견해를 발표하고 있었다. 한국에서도 내가 토론자로 참석한 한 영어학회는 초등학교 교사를 비롯한 중등 영어를 담당하는 교사들이 현장에서 실시하고 있는 자신의 교육 내용을 활발하게 발표를 하였고, 그 중 몇몇 발표자의 내용은 깜짝 놀랄 정도의 수준이었다. 코크란 교수는 ESL 교육을 위해 효과적인 교육방법에 대한 내용을 발표하였고, 나는 한국에서 영어는 ESL이 아닌 EFL, 즉 English as a Foreign Language이므로 EFL 상황 하에서 만 5세 유아의 효과적인 영어교육 교수법에 대한 논문을 발표하였다. 이 내용은 한국의 학회지에 실린 것으로 구체적인 영어교수법의 효과를 분석한 것이다. 발표 시간에 교사교육으로 명성높은 헌스키교수를 비롯한 한 대학의 학장님까지 참석을 하여 다소 긴장하였으나 코크란 교수가 계속 웃으며 격려하고 여차하면 도와줄 자세로 바라보고 있었으므로 여유를 가질 수 있었다. ‘추상적인 언어의 의미를 시각적 이미지로 구체화시켜 보여주는 손유희가 단어의 뜻을 보다 쉽고 오랫동안 기억하는데 도움이 될 것이다’라는 것이 나의 가정이었고 처음 시도해본 연구의 결과이므로 더 많은 연구가 필요하겠으나 분석의 결과는 내 가정대로 나왔다. 어린 아동일수록 구체물을 통한 개념인식이 필요하다. 유아를 대상으로 하는 교육기관에 수많은 교육매체가 있는 까닭이 여기에 있다. 감각을 통한 인식의 단계를 차례로 거치며 추상의 언어와 수를 이해할 수 있는 판단력, 분별력, 인식력, 신체적 협응력을 키우고, 언어와 수라는 교육목표뿐 아니라 인간으로서 살아가는데 필요한 독립심, 집중력을 훈련하는 것이다. 발표 중 “잠시 외국어를 배우는 사람들의 심정이 되어보세요” 하며 “다섯 마리 작은 새가 여기 있어요. 꾀꼴꾀꼴 짹짹. '꾀꼴꾀꼴 짹짹. 집으로 날아갑니다” 하고 손유희를 곁들여 보여주고 들려주었더니 미국 선생님들이 호의적인 눈길로 웃으며 바라보아 주었다. 나의 의도는 여기서 한국어를 알려 주려는 것이 아니었다. 한국어는 이들에게 외국어의 하나로서 외국어를 배우기 위해 가장 효과적이고 구체적인 방법이 무엇일까를 함께 고민하여 보고, 또한 외국어를 배우는 외국인을 잠시나마 이해해 보자는 것이었다. 발표가 끝난 후 질문 중에 “외국에서 이민 온 영어를 거의 못하는 성인들의 영어교육을 어떻게 시키면 효과적인가”가 있었다. 참석자들이 모두 선생님들인 까닭으로 자신들의 경험을 서로 나누었는데 모두 한결같이 성인들은 아동보다 기억력이 더디므로 같은 내용을 여러번 반복하여야 한다고 하였다. ‘손유희가 성인들에게도 유용한가’라는 질문에서 나는 “아동과 성인에서의 손유희의 기능은 다르다. 어린 아동의 경우 손동작은 개념의 이해를 돕는 이미지로서 기능을 하나 만 5세만 되어도 정상적인 아동은 두세 번 손동작을 보고난 후엔 손동작에 의지하지 않고 이미 머리 속에 형성된 이미지로 개념을 끄집어내려 한다. 그러므로 성인에게 있어서 손유희는 놀이의 즐거움을 주는 기능을 주로 담당할 것이다”라고 답하였다. 당시에는 성인의 언어교육을 위해서 아동보다 더 많이 반복을 해야한다는 말만을 하였지만 지금 다시 생각해보면 성인의 경우 언어교육이든 그 밖의 어떠한 교육이든 당사자들의 교육 참여목적을 분명히 하고, 그들의 관심에 맞추어 교육과정을 마련하는 것이 효과적일 것이라는 생각이다. 예를 들어보면, 내가 인도네시아의 발리에 갔을 때 한국어 관광안내인은 자신이 모르는 한국말을 배우기 위해 의사소통이 가능한 관광객을 만나면 필요한 말을 물어보고 외우며, 공책에 적고 연습하였다. 내가 미국에 와서 제일 힘들었던 것 중의 하나가 발이나 다름없는 차를 운행하여야 하는데 주유소의 주유방법을 물어보아야 하는 일이었다. 주유기에 사용방법이 쓰여져 있어도 Lift를 하라는데 어떤 기구를 Lift해야 하는지 몰라 매우 당황했던 때가 있었다. 그 밖에도 상점에 가서 필요한 영어 등 일상생활에 필요한 상용어이다. 그런데 ESL 반에 가면 정해진 단어와 문법을 알려준다. 이미 성인이 된 그들이 대학을 들어가려면 문법을 배워야 하겠지만 일상 생활에 도움을 받고자 온 사람들인데 그 소용가치가 얼마나 있는지 모르겠다. 그러므로 아동교육이든 성인교육이든 교육의 필요성과 목표에 따라 내용과 지도방법이 달라져야 한다고 본다. 연구를 하지 않은 상황이라 가정을 해보면 그러하다. 한국도 이제 외국인들이 많아지고 있다. 그 외국인들은 가난한 나라에서 ‘꿈의 한국’을 그리며 오는 경우가 많다. 이러한 사람들은 대체로 그 나라에서 정보를 접하는 능력도 있고, 적극적으로 자신의 앞날을 개선해보려는 의지를 가지고 꿈을 달성하러 오는 사람들이므로 그 사람들의 수준은 중간 이상일 수도 있다. 이들에게 작업의 효율성을 높이기 위해서도, 또 한국 문화를 알려주기 위해서도 이들이 요구하기 이전에 우리가 먼저 이들에게 외국어로써의 한국어를 배워주는 일이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그 한 사람이 바로 한국의 이미지를 전파하는 작은 전도사일 수 있다. 몽골에서 온 서커스 단원인 엄마가 아이를 데리고 와서 한국 초등학교에 넣었더니 학교에서 제대로 알려주지는 않고 선생님이든 아이들이든 왕따를 시켜서 그 몽골아이가 심한 마음의 상처를 받는 것을 TV에서 본 적이 있다. 미국은 ESL반이 있어서 전 세계에서 온 아이들을 그 아이 수준에 맞추어 적응시키고, 알려주려고 노력하고 있다. 몽골의 아이나 방글라데시 아이들은 한국에서는 따돌림을 당하고, 상처를 받지만 미국에서는 한국아이나 마찬가지의 대접을 받는다. 그래도 미국의 ESL반에서도 차별은 있어서 일본사람의 경우 우대를 받는다. MAACCE에서 담당하고 있는 영역은 매우 다양하며, 교육협회의 목적은 다양한 교육프로그램과 활동을 개발, 연구하여 성인과 지역사회, 프로그램을 운영하는 단체와 기관을 지원하는 것이다. Maryland 지역의 MAACCE, 성인교육 및 지역사회 교육협회와 유사한 내용을 다루고 있으나 미주리 지역은 보다 더 넓은 서비스를 추가하여 시도하고 있는 중이다. 포함된 내용에는 Extension Service, School -Age Child Care, Allied Healthcare, Volunteer Program들이 있다. MAACCE 교육협회의 구체적인 담당영역을 살펴보면 아래와 같다(Maryland). - 성인교육(Adult Education) 미국 검정고시(Pre-GED, GED) 과정, 고등학교 졸업과정, 직업교육, ESL 교육 - 글 이해하기(Literacy) 글을 알고 이해하고자 하는 사람들을 돕는 자원봉사 가정교사, 협의회, 단체 지원 -지역사회 학교(Community College) 지역사회 학교의 교직원 지원- 사업, 직업훈련, 특수교육, 일반인의 전문적, 교육적, 문화적, 직업적 필요에 의한 코스나 프로그램 지원 -평생교육(Continuing Education) 고등교육의 행정, 직업/기술 훈련, 사업/산업 세미나, 특수교육 분야에 관한 성인교육 -행정(Administration) 리더십 기술 개발을 위한 토론회, 성인교육, 지역사회교육, 평생교육에 종사하는 행정종사자의 networking 지원 -교정교육(Correctional Education) 감옥에 있는 사람들을 위한 교육- 교정교육에 참여하는 교정원, 행정가, 자원봉사자를 지원 -지역사회 교육(Community Education) 지역사회내의 기관간의 협력을 증진시키고 자원을 활용하여 지역사회 교육개념을 개선하고, 확장시키고, 촉진시킴. -외국어 사용자를 위한 영어 말하기 지원(English for Speaker of Other Language) 외국어 사용자의 영어를 지원하는 교육자, 행정가, 자원봉사자의 관심 사항과 문제 사항 위탁교육 미주리 지역 MAACCE는 미주리 지역사회의 발전과 개인의 평생교육에 관심있는 주제를 중심으로 정규 conference를 운영하고 있는 데 이번 6월 conference는 호수가 많고, 숲이 우거졌으며, 요트 및 각종 운동, spa에 이르기까지 휴양지로서 이름이 높은 지역내 resort에서 개최되었다. 논문 발표의 스트레스에서 벗어나자 호수도 보이고, 숲도, 넓은 풀밭도 보였다. 우리나라로 말하면 평생교육원 개념이나 그 내용에 있어서 지역사회와 지역사회내의 개인들의 필요성과 발전이 중심이 된다는 것이다. 교정교육이나 검정고시 교육과정, 외국인을 위한 언어교육, 지역사회 내 기관들간의 network 연결 및 자원 활용지원은 내게 참신하게 다가왔다. 특히 community college 지원에 관심이 많이 갔다. 외국에서 들어온 학생이거나 현재 University에 재학중인 학생들도 외국인 학생인 경우 언어의 어려움으로, 혹은 경제적인 이유, 집안의 우환 등 여러 가지 이유로 성적이 나쁠 때, 혹은 University에 바로 들어가기 어려울 때 community college에 들어간다. 내가 한국에 있을 때 재직하고 있는 학교에서도 주변의 기술교육기관과 연계하여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었다. 지역의 특수성에 비추어 도움이 되는 프로그램을 개발해 가는 미국이나 여타의 선진국의 사례를 살펴보고 참고해 많은 도움이 될 것 같다.
서울디지털대는 2005학년도 후기 신ㆍ편입생 모집을 보류하라는 교육인적자원부 권고에도 불구하고 당초 예정대로 이달 5일까지 원서를 접수한다고 2일 밝혔다. 아울러 신입생은 5일부터, 재학생은 8일부터 등록을 받고 시간제 등록생도 신ㆍ편입생과 별도로 24일까지 계속 모집하기로 했다. 다만 이달 16일까지 진행하기로 했던 직장인 무시험전형(산업체 위탁생) 원서접수는 5일까지 조기 마감하고 추가모집 여부도 교육부 감사 결과가 나온 뒤 결정하기로 했다. 대학측은 "교육부가 지적한 시스템 문제나 채권ㆍ채무 분쟁에 따른 수업 파행의 우려는 없다는 내부 결론을 내렸지만 교육부 권고를 받아들여 일부 입시일정을 조정했다"고 설명했다. 앞서 교육부는 전 부총장이 공금 횡령 혐의로 구속된 이 대학에 대해 재무ㆍ회계, 학사관리 등 학사운영 전반에 대한 감사를 실시하는 한편 콘텐츠 제공업체 등과의 채권ㆍ채무 분쟁이 해결될 때까지 신ㆍ편입생 모집을 보류할 것을 촉구한 바 있다.
70년대 석유, 천연가스 부존 가능성 제기로 분쟁 시작 중국의 일방적 영유권 주장으로 아세안의 결속을 강화 6개국 걸친 국제분쟁, 무력 충돌은 중·베트남간만 발생 해양자원 공동개발 이해 일치하면 평화적 해결 여지도 20세기 이후 해양 영유권의 중요성이 강조되면서 각국에서는 장기적인 해양 전략을 통해 자국의 해양 영유권을 확보하기 위한 각축전이 전개되고 있다. 동남아시아 지역에서 육상의 국경문제는 어느 정도 정리되었지만, 해양의 영유권은 모호한 채로 남아 있어 새로운 분쟁의 씨앗이 되고 있다. 동남아시아의 영토분쟁은 대부분 정치적으로 비화되어 상대국 국민들의 민족주의 감정을 불러일으키는 도화선 구실을 하고 있다. 동남아시아의 영토분쟁은 역사적인 이유로 특히 민감하다. 즉 서구 열강과 일본의 침략으로 비롯된 식민지, 반식민지 상황의 경험으로 상호 배타적인 감정을 가지고 있어 신뢰를 구축하기 어렵다. 특히 해양 영토분쟁은 뚜렷한 해결의 실마리를 찾을 수 없고 당사국 사이의 협상으로 해결해야 하는데, 상호 불신과 민족 감정은 문제를 더욱 복잡하게 만들고 있다. 남중국해에서 벌어지고 있는 동남아시아 각국 해양 영유권 분쟁의 특징은 중국과 여타 국가의 대립이라는 점이다. 남중국해의 동사, 중사, 서사, 남사군도와 각 국과의 거리 (자료출처: www.enanhai.com) 남중국해는 북쪽으로 중국, 대만, 동쪽으로 필리핀, 남쪽으로 말레이시아, 브루나이, 서쪽으로 베트남에 접해 있다. 남중국해에는 동사(東沙, Pratas), 중사(中沙, Macclesfield Bank), 서사(西沙, Paracels), 남사(南沙, Spratlys)군도 등 4개 군도가 있다. 남중국해의 분쟁은 4개 군도에서 모두 발생하고 있으나 가장 복잡하고 세계의 주목을 받고 있는 곳이 남사군도이다. 동사, 중사, 서사군도는 중국의 관할 아래 있지만, 남사군도는 중국과 동남아 여러 국가들의 영유권 주장으로 아주 민감한 지역이 되었다. 그래서 명칭도 동남아시아 각국이 각기 달리 표기하고 있는데, 영문으로는 Spratlys, 중국에서는 남사군도, 베트남에서는 Trong-Sa(長沙)군도로 표기하고 있다. 73만㎢의 남사군도는 남중국해 남단에 위치한 해역으로, 약 100여개의 작은 섬, 모래 섬, 환초, 암초 등으로 구성되어 있으나, 해상 위에 돌출해 있는 섬의 총 면적은 2.1㎢에 불과하다. 남사군도에 대해서는 중국, 대만, 베트남, 말레이시아, 필리핀 및 브루나이 등 6개국이 영유권을 주장하지만, 그 가운데 중국과 베트남이 주요한 분쟁 당사국이다. 중국, 대만, 베트남은 남사군도 모든 섬에 대한 영유권을 주장하고 있고, 다른 분쟁 당사국은 일부 수역에 대한 영유권을 주장하고 있다. 유엔 해양법에 따르면 인공적으로 형성된 지형물은 섬이 아니며, 만조 때 수면 위로 드러나지 않는 것도 섬이 아니라고 규정하고 있다. 하지만 남사군도에서 브루나이를 제외한 모든 분쟁 당사국들이 섬이 아닌 암초와 같은 지형물까지 점령하고, 여기에 인위적인 시설을 설치, 운영하면서 자국의 영유권을 주장하고 있다. 남사군도 영유권에 대한 각국의 주장을 보면 먼저 중국은 역사적 이유를 들어 남중국해 대부분에 대한 영유권을 주장하고 있다. 중국은 이미 전한(前漢) 때 남사군도를 발견했고, 송대(宋代)에는 석당(石塘), 장사(長沙) 등의 지명으로 인식했다고 주장한다. 또 중국 기록에 무수히 보이고 있다는 것을 증거로 중국의 영유권을 주장한다. 그러나 역사 기록에 명칭만 기록되어 있을 뿐 구체적인 영유의 증거는 제시하지 못하고 있다. 1947년 중국은 9개의 불명확한 점선이 표시된 지도를 발행했고, 이 점선 안의 모든 섬에 대한 영유권을 주장했다. 또 대만을 지배하고 있던 일본이 제2차 세계대전에 패하면서, 1951년 샌프란시스코 강화조약 제2조 (f)에 의거 일본은 남사군도와 서사군도에 대한 일체의 지배권을 상실하게 되었는데, 이 지배권은 카이로 선언과 포츠담 선언에 의거 ‘당연히 중국(대만)에 환원’되었다고 주장한다. 중국은 1974년 베트남으로부터 서사군도를 빼앗아 해남도의 일부로 편입했다. 또 남사군도의 7개 섬을 무력으로 점령했고, 1992년 중국 영해법으로 남중국해 전체에 대한 영유권을 선언했다. 대만은 중국의 주장과 거의 차이가 없으며 1개 섬을 점령하고 있다. 베트남은 역사적 증거 및 대륙붕 원칙에 입각하여 남사군도 전체가 자국의 칸호아성 근해지역이라고 주장한다. 베트남은 중국과 마찬가지로 고고학적 증거들을 제시하여 영유권을 주장하고 있다. 베트남은 17세기 남사군도에 대한 베트남의 영유권이 공식적으로 인정되고, 공식 지도에 표기된 사례도 제시하고 있다. 또한 프랑스가 베트남을 식민 통치하면서 1933년부터 1939년 사이 남사군도 가운데 9개 섬에 대해서 실질적인 지배와 점유를 유지하고 1933년 공식기록에서 이들 섬의 영유권을 명시한 것을 근거로 베트남은 남사군도의 영유권을 주장하고 있다. 베트남은 현재 남사군도의 29개 섬을 점령하고 있으며 1974년 중국에 빼앗긴 서사군도에 대한 영유권도 주장하고 있다. 필리핀은 위치상의 근접성과 함께 1956년 필리핀인에 의해 탐사가 이루어진 사실에 입각하여 남사군도에 대한 영유권 주장하고 있다. 1971년 필리핀은 칼라얀이라고 부르는 8개 섬에 대한 영유권을 주장하면서 이 섬들은 남사군도의 일부가 아니며, 어느 나라에도 소속된 적이 없으며, 영유권이 주장된 적도 없다고 밝혔다. 1972년 필리핀은 이 섬들을 팔라완주로 편입시켰다. 말레이시아는 대륙붕 원칙에 따라 영유권을 주장하고 있다. 말레이시아는 자국의 대륙붕 지역에 속한다고 생각되는 5개 섬을 점령하고 있다. 말레이시아는 본토에서 운반한 흙으로 1개 환초를 매립하고 이곳에 호텔을 지었다. 브루나이는 분쟁 당사국 가운데 유일하게 어떤 섬에 대한 영유권도 주장하고 있지 않지만 대륙붕과 배타적 경제수역(EEZ)의 일부인 자국에 인접한 남중국해에 대한 영유권을 주장하고 있다. 1984년 브루나이는 루이자 산호초 지역을 포함하는 배타적 경제수역을 선언했다. 인도네시아는 남사군도에 대한 영유권 주장이 없다. 그러나 중국과 대만이 주장하는 해양 경계선이 인도네시아 나투나 가스전이 포함되는 배타적 경제수역과 대륙붕에까지 연장되고 있어 논쟁의 여지가 있다. 남사군도 영서초(永署礁) 만조 때는 0.6m만 수면 위에 드러나는 암초. 중국은 여기에 인공 섬을 만들고 헬리콥터 착륙장과 해양기상 관측 기지를 건설, 4000톤급 선박이 접안할 수 있는 300m 길이의 부두시설까지 갖추었다. (자료출처: www.nansha.org.cn) 1970년대 이전에는 남사군도의 영유권 문제가 제기되지 않았으나 이 지역에 석유, 천연가스의 부존 가능성이 제기되면서 분쟁이 시작되었다. 특히, 중국이 1974년 1월 남베트남 관할 하에 있던 서사군도의 일부 섬을 점령하여 서사군도의 전 지역에 대한 실질적 점유를 시작하였는데, 이때부터 남사군도 분쟁이 시작되었다. 이후 중국은 남사군도로 적극 진출하여 1988년 3월 남사군도 적과초(赤瓜礁, Johnson Reef)에서 중국-베트남 간의 무력충돌이 발생하면서 본격적으로 분쟁이 발생했다. 이 사건 뒤 직접적인 충돌은 없었지만 어선 조업 및 석유 시추활동을 둘러싸고 두 나라 사이의 외교 공방이 지속되고 있다. 중국은 역사적으로 남중국해 일대를 지배해 왔었다고 하는 자부심이 있다. 이러한 자부심과 결합되어 중국은 남사군도에 대한 영유권이 중화주의의 실현에 대단히 중요한 상징적인 의미를 갖는다는 것을 강조하고 있다. 중국의 해상 전략은 단순히 해상 방어의 차원을 넘어서 해상 자원의 이용과 개발을 통해 동아시아 해상의 지배권을 차지하는데 있다. 남사군도 분쟁에서 중국은 실효적 지배를 바탕으로 적극적인 입장을 취하고 있으며, 다른 국가들의 항의에도 불구하고 계속 시설물을 설치하여 지배를 정당화하고 있다. 중국의 해양 영유권 주장은 다분히 이중적이다. 즉 조어도 문제에 대해 중국은 일본이 제국주의적 침략에 의해 조어도를 강탈했다고 비판하면서, 남사군도 문제에 대해서는 반대로 자신이 제국주의적 속성을 드러내고 있다. 중국은 근대 이전 조공국이었던 동남아시아 국가에 대해 종주국의 권리까지 내세워 남사군도의 일부를 강점하고 실효적으로 지배하면서 자신의 영유권을 주장하고 있다. 중국의 이중적 태도는 중화주의적 패권주의의 연장선상에서 이해할 수 있다. 이러한 사고는 중국의 교육에도 나타나고 있다. 중국 교과서에는 남중국해 전체를 중국 영토의 경계선 안에 포함시켜 영유권을 확실하게 주장하고 있다. 중국 사회교과서(歷史與社會, 7年級, 上冊)에는 중국 영토의 최남단을 남사군도 증모암사(曾母暗沙, James Shoal)로 기술하여 이것을 가르치도록 하고 있다. 이는 조어도 영유권에 대한 애매한 서술과는 상당히 구별되는 것이다. 나아가 교사용 지침서에는 영토 교육을 통해 중국은 거대한 국가이고 영토는 신성불가침한 것임을 가르쳐 학생들에게 국가주권 의식을 심어주라고 기술하고 있다. 남중국해 분쟁은 처음에는 중국과 베트남 등 개별 국가 사이의 영토분쟁으로 진행되었으나 1992년 중국이 남사군도 전체를 자국의 영토로 귀속시키는 영해법을 제정하면서 국제법적인 논쟁이 시작되었다. 중국의 일방적인 영유권 주장은 아세안 각국에서 중국의 패권주의에 우려를 표명하면서 아세안의 결속을 강화시켜 주었다. 또한 베트남이 1995년 아세안 회원국으로 정식 가입하고, 아세안이 이 지역 분쟁의 중재자로 남중국해 문제에 개입하면서 국제정치상의 공식 의제로 떠오르게 되었다. 한국의 주요 무역항로인 말라카 해협-동중국해로 이어지는 해로의 중간 지점에 위치한 남사군도는 한국에도 전략적·경제적으로 매우 중요하다. 한국은 남중국해 분쟁의 당사국은 아니지만 이 분쟁이 국익뿐만 아니라 중국, 아세안과의 국제관계와도 연결되어 있기 때문에 이 분쟁의 해결방향은 우리에게도 관심사가 되고 있다. 남중국해 분쟁은 6개국에 걸친 복잡한 국제 분쟁이지만 실제적인 무력 충돌은 중국과 베트남 사이에만 발생했고, 향후 분쟁이 재연될 경우 주로 중국, 베트남, 필리핀 3개국의 분쟁이 될 가능성이 가장 높다. 하지만 분쟁 당사국들은 자국의 영유권 주장을 강화하기 위한 조치와 평화적 해결방안을 동시에 추진하고 있다. 중국과 베트남이 남사군도 문제로 첨예하게 대립하자 아세안에서는 분쟁의 평화적 해결을 위해 남사군도 공동개발안을 제시했다. 최근 남중국해 분쟁의 이해 당사국들은 미국, 일본, 한국, 대만을 포함하여 일부 유럽 국가들까지 끌어들여 자원의 다국적 공동개발을 모색하고 있다. 한편 중국은 미국의 견제에 대한 돌파구로 아세안과의 협력을 강화하고 있다. 그 일환으로 계속 논쟁이 되어왔던 인도, 베트남과의 국경문제에서 중국은 상당한 양보를 했고, 이를 바탕으로 이 지역에서 영향력을 확대하고 있다. 남사군도 문제에서도 중국은 공동 개발을 목표로 상호 이해의 폭을 넓혀가고 있다. 남사군도는 현실적으로 어느 한 국가가 독점하기 어렵다. 그리고 남사군도 분쟁은 영토 그 자체보다는 해양자원의 개발과 이용이 주목적이기 때문에 해양자원의 공동개발이라는 이해관계가 일치하면 평화적으로 해결할 여지를 마련할 수도 있을 것이다. 필자소개고려대 아세아문제연구소 연구교수 박정현
뉴질랜드 크라이스트처치에 있는 링컨 대학 학생들이 교수들의 파업으로 수업을 못 받게 되자 이에 대한 보상을 받아내기 위해 법적 대응을 검토하고 있다고 뉴질랜드 일간 프레스가 2일 보도했다. 이 대학의 앤드루 게이지 학생회장은 교직원들이 2주전 노사 행동을 시작한 이후 학생들로부터 불만신고가 많이 들어오고 있다며 학생들의 요구에 따라 결강에 대한 수업료 반환 문제를 협의하기 위해 변호사들과 접촉하고 있다고 밝혔다. 학생들은 교수들이 강의를 취소한 채 피켓을 들고 시위를 하는 것은 자신들의 학습 기회를 빼앗는 것인 만큼 보상을 해야 한다는 입장을 갖고 있다고 게이지 회장은 전했다. 링컨 대학은 3천600명의 학생들이 재학하고 있으며 이 가운데 절반 이상이 1년에 1만5천 뉴질랜드 달러 정도씩 학비를 내는 외국에서 온 유학생들이다. 게이지 회장은 "많은 학생들이 돈을 내고도 배울 것을 제대로 배우지 못하는 데 대해 불만스럽게 생각하고 있다"며 "가장 큰 문제는 학교 측이나 교직원들이나 학생들을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고 있다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이에 대해 뉴질랜드 대학 교직원 협회(AUS)의 나이젤 하워스 회장은 학생들이 교수들의 파업에 화를 내는 건 메신저에게 총을 쏘는 것이나 마찬가지라고 비난하면서 "우리들은 대우를 개선해 최상의 교수들을 확보함으로써 학생들에게 최상의 교육을 제공하기 위해 투쟁하고 있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21세기 지식, 정보화와 세계화 시대에 요구되는 교육 개혁의 요소 중에 우리가 가장 관심을 가지고 염두에 두어야 할 핵심과제는 교실 속에서 이루어지는 교수-학습 과정의 문제, 즉 교실수업의 질이다. 이 문제는 그 중요성에도 불구하고 실제적으로 교육개혁이 지난 수십 년간 지속적으로 추진되어 왔으면서도 가시적이지 못하고 실행에 어려움이 있다는 이유로 다른 요인에 비해 우선순위에서 뒷전으로 밀리거나 소홀히 취급되었음은 부인할 수 없다. 이제는 다른 무엇보다도 수업의 질을 높이기 위한 각고의 노력이 필요하며 어떠한 문제에서 장애가 되는지, 패러다임의 변화에 따른 학교교육의 변화와 교실수업의 도약을 위하여 특히 학교현장에서 관리자가 어떻게 노력해야 할 것인지에 대한 진지한 논의가 필요하다. 敎室授業跳躍, 管理者의 役割은 무엇인가? 학교 경영의 책임자인 교장이나 중간 관리자인 교감은 학교의 전반적인 활동을 지원하고 조정하는 학교 경영자로서, 학생을 교육하는 일과 학교 교육 전반에 걸친 실제적 운영자로서의 중요한 역할을 수행하는 관리자로서 교실수업도약의 주역인 교사의 전문성 향상은 물론 학교 교실수업의 제 문제점을 개선하고, 미래지향적인 학교경영이 되도록 다음과 같은 역할을 충실히 수행하여야 할 것이다. 첫째, 수업의 질 향상을 촉진하는 학교 경영 방식을 추진해야 한다. 직원회의를 연수 위주의 회의로 전환하고 교사의 담임 및 업무 배정은 물론 교무실을 교과 중심의 연구실화 하는 등 관리자가 앞장서서 교실수업도약을 경영중점 과제로 설정 추진해야 한다. 둘째, 교실수업도약을 위한 기본 정보화 인프라를 구축해야 한다. ICT, LAI 수업 등 교실수업도약을 위한 기본적 여건 조성은 물론 하드웨어와 소프트웨어 그리고 휴먼웨어의 세 가지 요소가 유기적인 관계를 가진 인프라가 구축될 때 참다운 교육개혁이 이루어 질 수 있고 수업의 질이 향상 될 수 있음을 인식하고 다. 셋째, 자율장학을 활성화하여 전교사의 '수업★STAR化' 분위기를 확산해야 한다. 수업의 질 향상을 위한 현직연수, 외부강사 초빙 연수, 선진학교 견학, 교과 연구회 활동의 활성화, 교사 1인 1연구 활동, 공개 수업 등 교사 간 수업 기술을 공유하는 체제를 구축하는 등 자율장학의 활성화하여 교사들의 전문성을 신장시켜야 한다. 넷째, 학생 중심의 교육과정을 만들어가야 한다. 도서관, 탐구실, 실험실, 자습실 등을 개방적으로 운영하여 학생들에게 선택 기회를 넓히고 자발적인 탐구의 기회를 많이 제공함으로써 자율과 창의성을 신장하고, 학생 수준을 고려하는 다양한 교육과정을 편성·운영함으로써 학습자 중심의 자기주도적학습 능력을 신장시켜야 한다. 학교에서 교실수업도약의 과제는 교육환경과 여건의 개선도 중요하지만 그보다 더욱 중요한 것은 교사 개인의 교과에 대한 전문적 역량을 개발하고 열정을 갖는 일이다. 이를 위한 교사 아니 스승의 역할이 그 어느 때보다 필요하며, 학교현장에서 이루어지는 교실수업의 도약이 절실한 시기이다. 따라서 교장과 교감은 행정가로서만이 아니라 전문직으로서 교사들의 전문성을 보다 높여주기 위하여 노력하여야 한다. 교사들의 전문성 신장을 위한 자율적인 노력과 신념의 배양, 교과에 대한 전문적 소양과 깊은 이해, 학생에 대한 애정, 교육의 가치에 대한 열정, 교육활동 전 영역에 대한 바른 이해와 협조 분위기 조성에 노력함으로써 궁극적으로는 교실수업이 한 단계 도약할 수 있도록 그 역할을 다해야 할 것이다.
이해찬(李海瓚) 총리는 1일 "두뇌한국21(BK21) 2기 사업은 평가에 따라 중도탈락할 수 있다는 인식을 갖도록 해야 한다"고 밝혔다. 이 총리는 이날 오전 확대간부회의를 주재한 자리에서 최근 문제가 된 서울대 연구비 유용문제를 거론하면서 "제도를 정비해서 이런 사건이 다시는 재발하지 않도록 하는 것이 중요하다"면서 이같이 말했다고 이강진(李康珍) 총리 공보수석이 전했다. 이 총리는 "시대의 잘못된 유죄들이 하나씩 정리되기 시작하고 있다"면서 "연구비 유용문제가 온정주의에 의해 지속되지 않도록 제도를 정비해 철저히 관리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그는 특히 새로 시작되는 BK21 2기 사업과 관련해 "지난번 1기때는 SCI(국제과학논문색인) 연구논문을 많이 써 내는 정도의 성과를 얻었는데 이제는 특허, 산학협정, 기술이전 등 원래의 BK21 목적에 좀더 가깝게 갈 수 있도록 사업계획을 세우고 관리할 수 있는 체계를 만들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이어 "적어도 사업단이 평가에 따라 중도탈락할 수도 있다는 인식을 갖도록 해야하며 한번 받아 7년 무한정 가면 그 과정에서 누수가 발생한다"면서 "하위 5%(실적 부진한 대학)에 대한 온정주의 때문에 탈락을 시키지 못하면 나머지 95%가 평균 80점 밖에 받지 못하게 된다"고 지적했다. 이 총리는 "그런 점에서 냉정하게 평가를 해야되고 냉정한 평가는 전체의 질을 높이게 위해 도리가 없는 것"이라고 덧붙였다. 이 총리는 이와 함께 부동산대책과 관련, "금융을 바로잡고 세제를 정비하며 불로소득을 방지해 수요에 맞춰 공급하는 그런 종합적인 대책을 만들고 있다"면서 "그동안 막연한 수요예측으로 수요와 공급의 미스매칭이 있었는데 소득계층별로 원하는 평형에 대한 수요조사를 정밀하게 해서 공급대책에 포함시켜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 총리는 이밖에 "지난번 당정 협의회에서 사회적 일자리 10여만개 만들기로 했는데 이제는 일시적인 공공근로가 아니라 간병인 등 계속적으로 필요한 사업이 무엇인지를 발굴해 사업에 반영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방학을 맞아 선생님들의 연수 열기가 삼복더위보다 뜨겁다. 한국교총에서도 올여름 300명의 교원들이 현장교육연구방법론 등의 연수를 받는다. 게 중에는 지방에서 올라와 하숙방을 얻어놓고 수고하는 열성파도 있다. 노력과 시간은 물론, 경제적 부담도 적지 않을 것임은 짐작하고도 남는다. 모두들 학점, 또는 승진점수를 따기 위해 자발적으로 연수에 참여하고 있다. 하지만 교육청에서 연수 경비를 지원받은 교원은 별로 없는 것 같다. 그런가하면 최근 3년동안 연수를 한번도 받지 않았다는 교원들이 20%가 넘는다는 연전의 조사결과도 있었다. 현행 체계로는 승진에 관심이 없고, 연수의 필요성을 느끼지 않는 사람은 교직생활 3년이 지나면 받게되는 1급정교사 자격연수만 받고 나면 나머지 30여년 동안을 연수한번 받지 않아도 교직을 유지할 수 있도록 돼 있다. 실제로 그런 교원은 한사람도 없겠지만, 한마디로 승진에 목마른 사람은 스스로 돈들여 가며 우물을 파고, 싫으면 관두라는 식이다. 지식기반 사회, 평생학습 시대를 맞이하여 온 국민들이 생애교육에 관심을 기울이고 있고, 기업체에서는 직원연수에 명운을 걸고 투자를 아끼지 않는 이 때, 정작 가르치는 일을 업으로 삼고 있는 교원들의 연수 체계가 이렇게 허술해서야 될 일인가? 교원 연수의 중요성은 재론의 여지가 없는 만큼 정부는 교직 생애에 걸쳐 단계별로 자기가 필요로 하는 내용을 시간적, 경제적 부담없이 받을 수 있는 체제를 서둘러 갖추어야 한다. 4년 이상을 공들여 양성한 교직인재들이 2, 30년이 지나도 변함없는 열정으로 시대를 이끌어갈 수 있도록 인력관리를 해야 할 책임이 국가에 있다. 연수체제 개편에 관해서 교육부는 올해 대통령 업무보고에서 -교직 전생애에 걸친 전문성 개발에 중점을 두고 연수프로그램 개선, - 교직수행 필수분야에 대한 주기적 연수이수제 도입 추진, -연수기회 확대 및 연수비 지원 등을 계획하였다. 기실, 이같은 계획은 표현만 달리하면서 수년동안 거듭되고 있다. 문제는 실천이다. 하반기를 넘어선 이 시점에서 제대로 진행되고 있는지 궁금하다. 교육부의 답변을 기다린다.
앞으로 가짜 단속카메라 사라질 것으로 보인다. 모형 무인카메라 9월까지 철거된다고 한다. 내용인즉 경찰청은 “전국의 모형 무인단속 카메라 2466대 중 경찰이 설치한 1109대를 모두 철거할 방침”이고 나머지 1357대의 모형 카메라도 조속히 철거하도록 지방자치단체와 한국도로공사에 협조를 요청할 계획이라는 것이다. 이는 모형 카메라가 교통사고 예방에는 기여하지만 법을 집행하는 기관이 결과적으로 국민을 속이는 셈이어서 인권침해 요소가 있다는 시민단체 등의 지적에 따른 것이라고 한다. “허허, 내가 너무 구세대인지, 세상이 빨리 변하는 건지? 내가 세상을 못 쫒아가는건지?” “인권이라는 단어 희한하게 갖다 붙이네….” “시민단체의 말 잘도 먹혀 들어가네.” 가치관이 급변하고 있다. 어찌보면 혼돈의 세상이다. 모형 카메라가 교통사고를 예방하여 국민들의 수많은 소중한 생명을 구한 것이 사실이라면 그대로 두어도 괜찮을 법도 한데 철거를 한다니 아쉽기만 하다. 그것이 인권을 침해한 것인지? 인권이 사람의 생명보다 더 중요한 것인지? 그렇다면 경찰청에 묻고 싶다. 과속을 방지하기 위하여 아파트와 사람 통행이 많은 곳, 사고 다발지역에 마치 도로의 과속방지턱처럼 보이게 한 노란색 페인트칠은 어떻게 할 것인지? 그러면 이것도 결국엔 사람을 속인 결과가 되므로 모두 없애야 되는지? 우리 교육자들은 학생들에게 가치판단을 가르치고 있다. 예컨대, 환자가 있어 의사의 정밀진단에 의해 불치의 암에 걸려 시한부 생명이라는 결과가 나왔을 때 이 사실을 환자 본인에게 알려 주어야 하느냐 마느냐의 문제가 있다. 환자의 나머지 행복한 삶을 위하여 본인에게 알리지 않고 쉬쉬하는 것이 좋은지? 거짓말은 나쁘니까, 환자의 알 권리도 있으니까, 인권을 중시하여 사실대로 알리는 것이 좋은지…. 참여정부에서 하는 일, 이번 일 뿐만 아니라 심사숙고가 부족한 듯 싶다. 대통령부터 연정(聯政)이니 대통령의 권력 이양이니, 정권을 내놓는다는 둥 헌법을 자의로 해석하고 대통령으로서 해서는 안 되는 ‘막가는 듯한 말’을 줄줄이 하고 있다. 국민들의 살림살이를 걱정하는 소리는 들리지 않는다. 국민이 공감하지 못하는 독선과 오만, 때로는 협박으로 들리는 말도 서슴지 않는다. 대통령으로서 냉철한 균형 감각을 잃고 외곬으로 빠져드는 느낌이 들어 이대로 가다간 나라가 위태로워질 것 같기만 하다. 잘하리라 기대하진 않았지만 나라를 말아먹으라고 국정을 맡긴 국민은 하나도 없을 것이다. 국민을 편안하게 해 주는 대통령, 국민의 생명을 보호하고 안전을 지켜주는 경찰. 이것이 그렇게 어려운 일일까? 작은 일이지만 국민의 편에 서서, 국민의 삶의 질 향상이라는 입장에서 일을 처리할 수는 없을까? 어느 한쪽의 말만을 일방적으로 듣고 가볍게 처리하는 것이 아니라 그 반대편에 서서 한번쯤 심사숙고해야 하지 않을까? 참여정부는 집권 반이 지나도록 ‘시행착오를 반복하는 아마추어 정부’라는 말을 여전히 듣고 싶을까? 참여정부는 그렇게 자존심도 없나? 리포터는 가짜 단속 카메라에서 교육을 생각하고 우국(憂國)까지 이르렀다. 교육자가 교육을 생각하고 교육에만 전념하는 세상이 그립다.
신동호 | 코리아 뉴스와이어 편집장 이 미라의 주인공은 문정왕후의 종손녀. 부검 결과 미라의 태아는 머리가 질 입구까지 내려와 있었고 산모의 자궁은 파열된 끔찍한 상태였다. 자그마한 몸집의 이 여성은 출산의 고통 속에 아기와 함께 인생을 마감한 것이다. 요즘에는 이렇게 목숨을 걸고 출산하는 여성이 없다. 하지만 옛날에는 미라가 된 ‘윤씨’처럼 죽어간 산모와 태아가 부지기수였다. 20세기 초에만 하더라도 우리나라의 유아 사망률은 4명 중 한 명 꼴이었다. 출산 과정에서 죽는 것까지 합치면 거의 절반가량이 세상에 태어나 걷지도 못하고 죽은 것이다. 출산의 고통은 커진 뇌와 좁아진 골반 때문 우리는 흔히 출산의 고통을 당연한 일로 받아들이지만 동물의 출산은 사람보다 훨씬 수월하다. 고통스런 출산은 지난 수백 년 동안 인간이 원숭이에서 사람으로 진화하는 과정에서 두뇌가 커져 생긴 부작용이다. 인간은 두뇌가 커지면서 고도의 기술을 만들고, 추상적 사고 능력과 언어 능력을 키워 복잡한 사회생활을 할 수 있게 됐지만 그 부작용도 만만치 않았던 것이다. 인간은 같은 몸 크기의 포유류에 비해서는 두뇌의 크기가 6배나 크며, 가장 가까운 친척인 침팬지나 고릴라에 비해서도 3배가 크다. 인간은 머리 큰 기형적 생물체인 셈이다. 인간은 머리가 그렇게 크지 않았던 숲 속의 원숭이 시절에는 누가 도와주지 않아도 외진 곳에서 혼자 아기를 낳을 수 있었다. 침팬지는 골반이 크고 아기의 머리가 작기 때문에 출산이 쉽다. 게다가 침팬지는 산도에서 빠져 나올 때 아기와 엄마가 서로 얼굴을 마주보는 자세로 나오므로 엄마가 자신의 두 손으로 아기의 머리를 잡아당겨 빼낼 수 있다. 하지만 250~180만 년 전 사람(Homo) 속의 영장류인 인간이 출현해 두뇌가 급팽창하기 시작하면서 출산의 고통은 갈수록 커졌고 누군가가 옆에서 도와줘야 아기를 낳을 수 있게 됐다. 세계 어느 문화권이나 조산원이 그 사회에서 중요한 역할을 해온 것도 바로 이 때문이다. 침팬지와 사람이 공통의 조상에서 갈라진 것은 600만 년 전. 인간은 침팬지보다 뇌의 크기가 3배나 커졌다. 사람의 아기는 큰 머리로 자궁경부를 압박해 열고 나온 뒤 머리를 옆으로 돌려 모체의 골반 뼈를 통과하므로 아기를 잡아 뺄 수 없다. 이런 상황에서 아기를 자기 손으로 무리하게 잡아 빼면 척추나 목을 다치게 할 가능성이 크다. 아기는 임신 9개월이 되면 골반 개구부의 산도를 통해 머리부터 나온다. 산도를 비집고 나오는 아기의 머리는 0.5∼1㎝나 찌그러질 만큼 큰 압력을 받는다. 지난 300만 년 동안 인간의 뇌는 무려 3배나 커졌다. 반면 골반은 오히려 좁아졌다. 네 발로 걷던 원숭이가 직립보행을 하면서 다리와 다리 사이가 좁아진 것이다. 서서 배와 히프를 지탱하려면 두 다리 사이가 점점 좁아져야 한다는 것은 간단한 물리 법칙으로도 이해할 수 있다. 골반이 좁아지면서 아기가 나오는 골반의 개구부도 따라서 좁아졌다. 갈수록 커지는 뇌와 좁아지는 골반 때문에 생겨난 출산의 부작용은 상상을 초월하는 것이었다. 호모속의 인류가 출현한 이래 태어난 무수한 아기가 좁은 산도를 빠져 나오면서 질식해 죽었다. 이는 세상에서 가장 가혹한 생존 경쟁이자 자연선택의 과정이었다. 이 과정에서 미숙성한 뇌를 가진 태아만이 살아남았다. 지금 이 글을 읽고 있는 우리 자신은 수만 세대에 걸쳐 모두 무사히 좁은 골반을 통과한 선조의 후예인 셈이다. 조상 가운데 단 한 명이라도 골반 통과에 실패했다면 지금 이 순간의 나는 존재할 수 없다. 인간은 뇌 미숙아 상태에서 태어나 보통 침팬지나 포유류는 뇌가 성체 뇌 용적의 45% 정도 됐을 때 세상에 나온다. 하지만 인간은 어른 뇌 용적의 25%일 때 태어난다. 걷지 못하는 것은 물론 기어 다니지도 못할 정도로 미숙한 상태에서 세상에 태어나는 것이다. 1993년 침팬지와 인간의 뇌를 비교해 발표한 미국 노틀 데임 대학의 제임스 맥케나 박사는 만일 다른 동물처럼 태아가 충분히 성숙한 상태에서 세상에 나온다면 임신 기간이 21개월은 되어야 한다는 사실을 알아냈다. 뱃속에서 9달, 태어나서 12달을 합쳐 21개월이 되어야 아기는 겨우 혼자서 걷기 시작하고 뇌도 어느 정도 성숙하기 때문이다. 태어난 아기의 뇌는 만 한 살이 될 때까지 뱃속 태아와 똑같은 빠른 속도로 성장하다가 비로소 성장이 둔화된다. 세상에 어떤 영장류도 이처럼 특이한 뇌 성장 패턴을 가진 동물은 없다. 그래서 앨런 워커와 팻 쉽맨은 1996년 에서 인간이 고등한 지적 존재로 진화할 수 있었던 결정적인 요인은 뇌의 75%가 출산 뒤에 크는 특이한 성장 패턴을 갖게 됐기 때문이라고 주장하기도 했다. 이처럼 사람의 어머니는 새끼의 두뇌 성장을 위해 다른 포유류보다 극도로 많은 에너지와 자원을 장기간에 걸쳐 투자해야 한다. 동물 가운데 포유류는 암컷의 양육 부담이 무겁다. 그 포유류 가운데서도 인간은 더욱 더 양육의 부담이 크다. 사실 세상의 어느 동물도 인간처럼 자식 양육에 많은 시간과 자원을 투자하는 동물은 없다시피 하다. 인간은 엄마에 의해 미숙아에서도 생존 인간의 어머니는 생물학적으로 보면 극도로 미숙한 아기를 돌보게 디자인되어 있다. 엄마는 자궁과 태반 속의 따스함, 영양, 보호를 아기에게 제공할 수 있도록 유전적으로 프로그램 되어 있다. 특히 아기에게는 엄마의 젖가슴이 제2의 자궁이다. 거기에는 엄마가 음식을 먹고 소화를 해 만든 고농도의 영양물질을 빨대처럼 빨아먹을 수 있는 젖꼭지가 달려 있다. 또 엄마의 젖가슴은 체온이 1∼2도 가량 높아 따뜻하다. 보드라운 엄마의 젖가슴은 촉감을 먹고 사는 아기에게는 더할 나위 없이 좋은 감촉을 준다. 엄마가 아기에게 주는 모유는 단순한 영양물질이 아니라 사회적 영양물질이다. 엄마의 젖가슴은 아기가 울고 보채면 자동적으로 젖이 나온다. 처음에 아기와 엄마는 서로 다른 존재이지만 울기 시작하는 순간부터 아기와 엄마는 하나가 된다. 아기는 탄생 직후부터 웃으면서 엄마의 관심과 사랑을 끊임없이 자극한다. 엄마가 웃으면 아기도 웃고 엄마가 실망하면 아기의 기분도 우울해진다. 아기와 엄마의 관계는 세상에서 가장 깊은 인간관계이다. 이때 엄마와 아기 사이에 맺어진 관계가 커서 어른이 될 때까지 인간관계와 행동의 틀이 된다. 출산 전 아기는 유전적 프로그램에 의해 성장한다. 하지만 탄생 뒤 아기는 엄마와의 사회적 관계 속에서 이처럼 다시 한번 창조된다. 미숙아로 태어남으로써 인간의 행동은 본능보다는 교육에 의해 사회적으로 형성되도록 운명을 타고나는 것이다. 현대 사회에 접어들면서 아기는 엄마의 품에서 떨어져 나오고, 혼자서 잠을 자고, 보모의 보호를 받는다. 하지만 이런 환경 속에서 자란 아이는 무언가 불안한 존재가 되기 쉽다. 미숙아로 태어난 것이 뇌 발달에 결정적 그렇다면 언제부터 인간은 미숙아로 진화하기 시작했을까? 인간이 직립하면서부터다. 인류학자 리처드 리키는 1984년 아프리카의 케냐에서 180만 년 전의 완벽한 호모 에렉투스 화석을 발견했다. ‘나리오코톰 소년’으로 불리는 이 호모 에렉투스의 뇌 용적과 골반의 크기를 조사해 본 결과 이때부터 이미 사람은 미숙아로 태어났다는 것이 밝혀졌다. 미숙아로 태어난다는 것은 매우 위험하지만 호모 에렉투스에게는 역설적으로 엄청난 이점을 가져다주었다. 뇌세포가 왕성하게 자라는 시기에 어둡고 재미없는 엄마의 자궁 속에서 있는 것보다 1년 빨리 세상에 나와 엄마와 세상이 주는 자극을 맛볼 수 있게 된 것이다. 비록 기어 다니지도 못하지만 아기는 다양한 자극을 통해 감각신경이 매우 예민하게 발달한다. 그렇게 됨으로써 호모 에렉투스는 사회적 지능이 매우 발달하게 되었고 복잡한 협동 사회를 만들 수 있었던 것이다. 두뇌가 커지면서 인간은 상대의 마음을 읽을 수 있는 사회적 지능이 특히 발달했다. 상대방의 마음을 읽을 수 있게 됨으로써 인간은 서로 도움을 주고받고, 상대를 속이고, 또 상대가 나를 속이는지 그렇지 않은지도 분별하고, 없는 데도 있는 척하고, 다른 사람의 행동을 모방하고, 상대의 행동을 예측하고, 상대의 심리를 읽고, 협동 행동을 유도해 복잡한 사회를 만들 수 있게 됐다. 게다가 직립보행으로 손까지 자유롭게 쓸 수 있게 된 호모 에렉투스는 힘을 합쳐 사냥을 하기 시작했고, 사냥 기술이 날로 발전함에 따라 음식도 고단백으로 업그레이드됐다. 이로 인해 아기들은 뇌가 한창 자랄 때 충분한 단백질을 공급받게 됐다. 호모 에렉투스가 등장한 200만 년 전쯤 최초의 돌도끼나 박편이 나오고 석기 사용이 시작된다. 100만 년 전에는 매우 우수한 공예술이 나타났다. 이 시기는 뇌의 용적이 커지는 시기와 일치한다. 미숙아로의 진화로 부부 관계도 달라져 짧은 시간 동안에 매우 빠른 속도로 뇌의 용적이 늘어날 수 있었던 것은 바로 진화 과정에서 이처럼 인간의 미숙아 전략이 성공했기 때문이다. 최근에는 네안데르탈인이 멸종한 것도 현생인류보다 더 큰 머리를 갖고 있어 출산의 부작용이 훨씬 컸기 때문이라는 주장도 나오고 있다. 인간이 미숙아를 낳게 되고 유인원 가운데 자녀의 양육을 위한 투자가 극대화되면서 부부 관계에도 큰 변화가 일어났다. 양육의 부담을 혼자서 지는 것이 어렵게 된 엄마가 아버지를 자녀 양육의 동반자로 끌어들인 것이다. 일반적으로 자식에게 시간 투자를 많이 하는 동물은 일부일처제가 많다. 포유류 가운데 일부일처제는 3∼5%에 불과하다. 소나 말 같은 대부분의 포유류는 낳자마자 걸어 다니기 때문에 부모의 도움이 그다지 필요 없다. 따라서 굳이 일부일처제가 필요 없다. 반면 지구상에서 사람 못지않게 자식에게 공을 많이 들이는 동물인 새는 90%가 일부일처제다. 새들은 알을 품어야 하고 또 새끼가 나오고 난 뒤에도 스스로 날 수 있을 때까지 먹이를 물어다 줘야 한다. 초기 원시인류도 처음에는 인간과 가장 가까운 친척 동물인 침팬지처럼 난교 생활을 했을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미숙아를 낳게 되면서 상황은 달라졌다. 비록 바람을 좀 피우더라도 일단 가정을 이루면 일정 기간 동안 부부가 힘을 합쳐 미숙아를 잘 돌보는 경우에만 아기가 살아남았다. 부부가 사랑해 아기를 돌보지 못하는 유전자를 가진 사람은 진화의 무대에서 도태될 수밖에 없었다. 요즘 많은 부류가 성 해방을 외치고 또 포르노가 판을 치지만 우리의 몸속에는 어느 정도 일부일처제의 DNA가 있다. 이 DNA는 부부간의 사랑과 함께 아기를 키우는 기쁨을 준다. 아이를 키워 본 사람이라면 아이를 기르는 것이 얼마나 큰 행복인지, 얼마나 큰 사랑의 기쁨을 우리에게 주는지 잘 안다. 자식에 대한 과도한 시간 투자 말고도 일부일처제 동물의 또 다른 특징이 있다. 암컷의 ‘배란 은폐’가 바로 그것이다. 대부분의 동물은 암컷이 배란기에만 발정을 해서 성교와 임신을 한다. 하지만 사람은 예외적으로 발정기가 아닌 때도 섹스가 가능하다. 자주 섹스를 하는 게 공고한 일부일처제 가정을 이루는 데 도움이 되기 때문이다. 일부일처제가 바람피우기와 반드시 대립하는 것은 아니다. 일부 학자들은 여성이 배란을 은폐함으로써 자녀 공동 양육의 대가로 성을 제공했고 아버지를 자녀 양육에 끌어들여 일부일처제를 정착시켰다고 본다. 하지만 최근 연구를 통해 새나 사람은 기본적으로 일부일처제 동물이지만 몰래 바람을 많이 피운다는 사실이 밝혀지고 있다. 국내에서는 조사가 없지만 미국에서 유전자 검사를 해본 데 따르면, 태어나는 7명 중 1명이 아버지와 전혀 다른 유전자를 갖고 태어난다. 원앙도 부부간의 금실이 좋기로 유명한 새이지만 암컷 원앙이 낳는 새끼 가운데 40%가 지아비가 아닌 다른 수컷의 새끼이다. 새가 일부일처제 동물이기는 하지만 바람기는 어쩔 수 없는 것이다. 요즘 바람피우는 남편과 아내가 많아 사회 문제가 되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가정이 파괴되는 것을 원치 않는 부부들이 매우 많다. 그리고 이들이 이혼을 하지 못하는 가장 큰 이유는 자녀 양육이다. 자녀에 대한 사랑과 보호의 본능은 수십 년 동안 지속되는 부부애만큼이나 인간성을 규정하는 중요한 본능인 것이다. [PAGE BREAK]인류의 진화는 여성이 주도했다. 여성의 배란 은폐 인류는 성적인 측면에서 보면 다른 포유류 동물과 여러 면에서 다르다. 문명을 만들었다는 점에서만 차이를 보이는 게 아니다. 섹스 행태도 아주 독특하다. 임산과 출산을 목적으로 하지 않고 발정기가 아닌데도 섹스를 하는 거의 유일한 동물이다. 이를 전문 용여로 '배란 은폐'라고 한다. 거의 모든 포유류는 암컷이 배란기가 되면 냄새를 풍기고 자극적인 행동을 함으로써 수컷에게 자신이 임신할 수 있다는 것을 동네방네에 알린다. 하지만 인간 여성에게는 외부로 드러나는 배란기가 없다. 배란기가 아닌데도, 다시 말해 임신을 할 가능성이 없는데도 여성은 남성을 유혹하고 향수를 몸에 뿌린다. '시간'에 대한 통찰 그렇다면 왜 인간 여성은 배란을 은폐하게 되었을까? 최근 국내에도 번역된 책 의 저자인 미국 캘리포니아대 외과 쉴레인 교수(인류학자)는 젊었을 때 의대생으로서 여성이 남성보다 15% 정도 적혈구가 적은 데 주목한다. 철 결핍의 요인은 월경이다. 여성이 월경으로 잃는 피는 평생 40리터. 출산과 수유 등으로 잃어버리는 양까지 포함한다면 56.8리터에 이른다. 산소를 나르는 적혈구의 작용에는 헤모글로빈이 핵심 역할을 하며, 그 주성분은 철이다. 다른 포유류는 월경이 없거나 아주 소량에 그친다. 여기서 질문은 시작된다. '왜 우리 종은 없어서는 안 되는 필수 체액을 그렇게 많이, 흥청망청 내버리도록 진화한 것일까?' 쉴레인의 책은 이 물음에 대한 답을 하나씩 찾아 나선다. 지난 250만년 동안 인간의 뇌는 3배가 커졌다. 특히 15만 년 전 호모 사피엔스의 출현으로 뇌가 급격한 팽창 과정을 거치면서 문제가 심각해졌다. 여성 골반이 뇌의 크기를 따라가지 못하면서 아이를 낳다 죽는 산모가 늘어났다. 출산 시 태아가 산도에 막히거나 산모가 과다출혈을 일으켜 산모와 태아 모두가 사망할 확률이 어느 생물보다 높아졌다. 고통과 죽음의 가능성을 수반하는 임신과 출산은 인류 여성에게 엄청난 스트레스가 아닐 수 없다. 이런 위협적인 상황에서 자연 선택은 여성의 호르몬 사이클을 급격히 재조직화 하는 길을 택했다. 여성의 발정이 사라지고 월경은 달의 주기적인 움직임에 맞춰 일어나게 되었다. 여성은 '달'이라는 시간의 개념을 섹스와 임신 사이에 도입했고, 이런 시간의 비법을 배우면서 고대의 여성들은 배란을 할 때에는 섹스를 거절하는 힘을 갖게 되었다. 남자는 이런 새로운 여성에 적응할 수밖에 없었다. 초기 인류 여성은 자궁이 달의 주기에 따라 피를 흘린다는 것을 알아차렸고, 섹스와 임신의 함수 관계도 눈치를 챘다. 이들은 또한 큰 뇌 덕분에 다른 동물에게선 볼 수 없는 '자유의지'를 갖게 되었다. 발정기만 되면 꼼짝없이 짝짓기에 돌입하는 여타의 종과 달리 여성은 섹스를 이용하고 거부할 수 있는 유일한 암컷이 된 것이다. '현명한 여자'는 섹스의 기쁨과 9개월 뒤의 고통스럽고 위험한 분만을 통해 '시간'에 대한 결정적인 통찰을 갖게 됐다. 여성은 달의 주기에 맞춰 29.5일마다 다량의 피를 흘린 덕분에 시간의 차원을 발견한 것이다. 여성들은 섹스와 임신의 연결고리를 파악했고, 다음에는 섹스와 분만 중 사망 가능성, 그리고 섹스와 태어날 아기에 대한 평생 책임의 관계를 인식했다. 그리고 마침내 '시간'에 대한 결정적인 통찰을 갖게 됐다. 그리고 남성에게 이 관념을 주입했다. 이로 인해 인류는 다른 동물을 앞지를 수 있는 기회들을 늘려나갔다. 여성의 짝짓기 전략 여성에게 부족한 철분은 오직 사냥을 통해서만 얻을 수 있다. (녹슨 쇠와 고기 덩어리가 붉은 것은 철분이 많기 때문이다) 여성의 짝짓기 전략의 변화에 적응할 수밖에 없게 된 호모 사피엔스(남성)는 배고픔보다는 성적 욕망을 해결하기 위해 사냥하는 동물이 되었다. 이를 통해 인류는 지구에서 가장 유능한 포식자가 되고 자연을 지배하게 됐다는 주장이다. 게다가 인류 남성은 성교를 거부하는 여성을 설득하기 위해 언어를 발전시켰다는 가설도 제시한다. 요컨대 여성 섹슈얼리티의 변화가 인간 진화의 기본이라는 것이다.
곽해선 | 경제교육연구소 소장(www.haeseon.net) 저금리와 유동성 함정 이자율 곧 금리가 낮아지면 기업은 싼 이자로 자금을 빌릴 수 있다. 그만큼 전보다 자금을 많이 빌려 사업을 확대할 수 있다. 그러면 전체적으로 생산이 늘어난다. 금리가 낮은 자금이 시중에 풍부하면 가계 소비도 부추겨진다. 늘어나는 소비는 생산 증가와 맞물려 경기를 확대시킨다. 이 과정을 요약하면 이렇다 금리 저하와 통화량 증가 →기업 투자, 가계 소비 확대 →경기 확대 그런데 저금리가 경기를 확대시킨다고 하는 이 일련의 과정이 현실에서 반드시 공식대로 나타나는 것은 아니다. 금리가 낮아 자금을 얻기 쉬운 상황에서도 기업들이 투자에 의욕을 보이지 않을 수 있다. 경제가 ‘유동성 함정(liquidity trap)’에 빠졌을 때 그런 일이 생긴다. 유동성 함정이란 금리가 충분히 낮은데도 경기가 좋아지지 않아 마치 함정에 빠진 것처럼 보이는 경제 상태다. 현금을 구하기도 쉽고 예금해봤자 이자도 못 버는데 투자와 생산, 소비가 요지부동 늘어나지 않는 경우다. 유동성 함정은 금리가 매우 낮을 때 생긴다. 경기도 좋아졌다가는 나빠지고 나빠졌다가는 다시 좋아지듯이 금리도 경기와 함께 올랐다 내렸다 한다. 보통 금리가 낮으면 투자가 늘어나기에 유리하다. 그런데 금리가 이미 충분히 낮다면 금리는 더 이상 투자 결정을 좌우하는 변수가 못 된다. 심지어 금리가 바닥에 와 있으니 앞으론 오르리라는 기대까지 생긴다. 만약 경기 전망이 나쁜 와중이라면 현금을 투자하거나 소비해 없애기보다는 계속 갖고 있으려는 성향이 강해진다. 이럴 때는 중앙은행이 공정금리, 콜 금리를 내리고 통화 공급을 늘려도 소용없다. 통화 공급을 늘려도 금융시장에서는 현금을 보유하려는 수요에 흡수되고 만다. 가까운 미래에 경기가 나아질 전망이 있다면 현금을 보유하려는 성향은 강하게 유지되지 못할 것이다. 경기가 좋아진다면 투자를 해야 경기가 나아지는 덕을 볼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가까운 시일 내에 경기 전망을 낙관하지 못할 때는 기업들은 계속 투자를 미룬다. 금리가 낮아서 자금을 쉽게 빌릴 수 있더라도 마찬가지다. 가계는 가계대로 벌이가 한동안 나아지지 않을 테니 소비를 늘리지 않고 저축한다. 결국 중앙은행이 금리를 내려 경기를 부양하려 해도 투자와 소비가 늘어나는 효과는 나타나지 않는다. 금리를 내리면 경기가 좋아져야 정상인데 아무리 금리를 내려도 소비와 투자가 살아나지 않아 경기는 마치 함정에 빠진 듯한 상태가 된다. 경제가 유동성 함정에 빠지는 이유는 여러 가지다. 전형적인 것은 경제 주체들이 미래 경기가 지금보다 좋지 않으리라고 예상하는 경우다. 장차 경기가 상당 기간 더 나빠진다고 생각하면 소비자나 생산자나 소비와 생산에 적극 돈을 쓰지 않는다. 그러면 경기는 실제로 더 나빠진다. 경제적인 이유가 아닌 다른 이유로 기업이 투자를 꺼릴 수도 있다. 기업에게는 일정 기간 사업이 순조롭게 지속될 수 있으리라는 전망이 서야 투자가 가능하다. 그런데 가령 국내 정치 상황이 불안해 사업상 불리한 급격한 개혁조치 같은 것이 떨어질지도 모른다고 하자. 불안해하는 기업들은 돈이 많아도 투자를 꺼릴 게 당연하다. 유동성 함정에 빠진 우리 경제 우리나라 경제도 지금 유동성 함정에 빠진 상태로 생각된다. 최근 한국은행이 금리를 계속 내렸고 또 계속 저금리 상태를 유지하고 있으나 기업의 투자는 오히려 줄어들고 있다. 2004년 상반기까지 10%를 웃돌던 예금은행의 대출 증가율이 2004년 하반기 이후 5% 안팎으로 줄었고, 2003년 3/4분기에 11.7%의 증가세를 보였던 기업 시설자금 대출은 올해 1/4분기에 1%대로 떨어졌다. 반면 시중 부동자금(浮動資金)은 계속 늘어나고 있다. 만기 6개월 이내로 금융권을 떠도는 시중 부동자금은 올해 1/4분기 말 현재 414조 5천억 원. 그나마 전년도 같은 기간 대비 4%대로 증가하던 이 자금이 2004년 하반기를 넘겨서는 5~6%로 증가 속도가 빨라졌다. 물론 이 자금은 실물경제 곧 기업이 주도하는 생산적 투자로 흘러들지 않고 있다. 기업들이 투자를 안 하는 가장 큰 이유는 금명간 경기 회복이 어려워 보여서다. 하지만 기업들 가운데는 불황 속에서도 미래의 호황을 대비한 투자를 하는 곳이 늘 있게 마련이다. 특히 자금 사정이 좋고 지금도 수출이 잘 되어 실적이 괜찮은 대기업은 상대적으로 투자의욕이 높다. 그러나 국내 기업들의 투자의욕은 단기적으로 여러 경우에서 정부 규제에 부딪쳐 있다. 주로 수도권 집중 억제와 국토의 균형개발, 환경 문제 등이 이유다. 그렇다면 생산적 부문으로 흘러갈 이유를 찾지 못하는 자금이 갈 곳은 재테크 쪽이다. 주식·부동산으로 몰리는 투자 금리는 재테크에도 큰 영향을 미친다. 금리가 높거나 장차 높아지리라고 예상될 때는 금융기관에서 판매하는 예금상품이 인기를 끈다. 반대로 금리가 낮거나 떨어지는 추세일 때는 예금해봤자 별로 이자를 못 받기 때문에 다른 투자 수단을 찾는다. 대안은 주로 주식이나 부동산이다. 저금리 때는 기업도 여유자금 재테크에 나선다. 금리가 낮을 때는 돈을 빌려서라도 투자를 늘리는 게 정상이지만 그것도 경기가 좋거나 좋아질 전망이 있을 때 얘기다. 장차 경기가 나쁘다면 투자해봤자 손해 보기 십상이기 때문이다. 이렇게 해서 가계와 기업의 여윳돈이 주식, 부동산으로 몰리면 전체 경기가 좋지 않은 와중에도 주식, 부동산 시세가 뛰는 수가 있다. 주식이나 부동산이나 경기가 좋을 때 투자가 몰리는 게 정상이다. 다만 주식은 경기가 나쁠 때라도 장차 경기가 좋아진다는 전망만으로 수요가 몰려 시세가 뛰기 쉽다. 그런 만큼 경기 전망이 흐리면 즉시 시세가 침체하기도 한다. 부동산보다는 미래 경기 전망에 따라 투자 수요와 시세가 민감하게 움직인다. 2001~2003년 우리나라에서는 경기가 위축된 가운데 시중 여유자금이 주식과 부동산으로 몰려 비상한 재테크 열풍이 불었다. 2001년 초반을 전후로 우리 경제는 해외 경기 침체로 수출이 부진해 경기가 침체한 상태였다. 한국은행은 기업들이 사업자금을 쉽게 마련해 투자를 늘릴 수 있도록 금리를 낮게 유지하는 정책을 지속했다. 그러다 하반기 들어서자 미국 등 선진국 수출시장 경기가 살아나리라는 전망이 나타났다. 그러자 2001년 말부터 2002년 봄까지 주식으로 투자가 몰렸다. 곧 경기가 회복되리라는 기대심리와 저금리 상황을 업고 수요가 몰린 것이다. 당시 주식은 시세가 몇 달 사이 두 배로 뛰었다. 그러나 해외 경기 회복은 예상보다 늦어졌다. 그러자 수출과 국내 경기 회복도 늦어지리라는 예상이 우세해졌고 주가는 도로 주저앉았다. 이후 주가는 2003년 초 반짝 좋아지는 듯 했던 것을 제외하면 내내 부진을 면치 못했다. 부동산은 2002년 봄 주식 시세가 고개를 숙일 무렵부터 불이 붙었다. 2001~2002년에 정부는 1980년대 말 부동산 시세가 폭등했을 때 도입한 각종 규제를 풀어 아파트 등 부동산 투자를 부추기는 정책을 썼다. 새로 분양하는 아파트의 분양권을 당첨 즉시 전매하지 못하게 했던 규제를 푼 것이 대표적인 조치다. 이로부터 신규 분양 아파트의 프리미엄을 노린 투기가 창궐했다. 새 아파트 프리미엄을 노린 투기가 일자 기존 아파트 가격도 따라서 폭등했다. 집값이 뛰는 걸 보자 가계는 다투어 은행 등에 집을 잡혀 빚을 내서는 주택 매매에 동참했다. 은행들이 집값의 90%까지 담보로 인정해가며 위험한 대출 경쟁을 벌이고, 신용카드회사가 무모할 정도로 신용카드를 남발하면서 신용대출을 마구 늘렸다. 하지만 정부 금융감독기구는 금융 감독을 관대하게 했다. 부동산 투기를 부추긴 정부 정책 이런 현상을 보면서 일각에서는, 정부가 부동산 투기의 부작용이 있더라도 부동산 경기를 살려 국내 경기를 띄우자는 의도를 갖고 있다는 비판을 제기하기도 했다. 해외 경기가 되살아나 수출이 늘 때까지 국내수요를 부추겨 경기를 붙들어보려는 궁여지책을 쓰고 있다는 분석이었다. 결과적으로 경기는 나쁜데 시중 자금은 흘러넘치는 상황이 빚어졌다. 자금은 넘치는데 경기가 나빠 투자할 곳은 마땅찮은 가운데 부동산 투기 규제가 풀리자 넘치는 자금이 흘러갈 곳은 부동산밖에 없었다. 은행 등이 대출에 열을 올린 결과 2001년과 2002년 가계의 부채 증가율은 전년 대비 30% 이상 급증했다. 가계대출은 2001~2002년 1년간 새로 67조원이 늘었다. 그 중 50~60%에 해당하는 40조원 정도가 2002년 봄부터 맹렬한 기세로 아파트 등 부동산시장으로 몰려 부동산 가격을 폭등시켰다. 투기가 심했던 서울 강남과 수도권 일대 인기지역에서는 집값이 불과 한 두해 사이에 두, 세배로 뛰었다. 서울, 수도권과 지방의 땅 값, 집값은 그만큼 크게 벌어졌다. 부동산의 투기 열풍과 시세 폭등은 2003년에도 가속됐고, 시간이 흐르면서 경기 부양 효과보다는 부동산 값 폭등이 서민의 생활고를 가중시키는 효과가 더 부각되었다. 국민들 사이에는 부동산 시세 폭등을 막지 못하는 정부와 여당에 대한 불만이 고조됐다. 2년간 이어진 부동산 투기 열풍은 2004년 들어 안정세로 돌아서는 듯했다. 2003년 10월 말 정부가 비교적 강력한 부동산 투기억제대책을 내놓았기 때문이기도 했지만, 이 시기엔 이미 투기 자금이 에너지를 분출할 대로 분출하고 단기적으로 스스로 잦아드는 단계에 이르고 있었다. 가계도 이미 이전의 투자에 소요된 빚 부담에 짓눌리고 있었다. 이 시기의 부동산 가격 폭등은 저금리 상황 아래 넘치는 자금이 생산 활동으로 흘러가지 않아도 되게 하고, 가계를 빚 부담에 눌리게 해 소비를 부진하게 함으로써 그렇지 않아도 부진한 국내 경기를 한층 내리눌렀다. 그 탓에 2004년엔 해외 경기가 살아나 수출이 잘 됐음에도 불구하고 국내 경기는 내내 내리막길을 걸어야 했다. 결국 국민의 불신만 높아져 그보다도 우리 국민경제가 입은 더 큰 타격은, 정부가 부동산 투자를 부추겨 경기를 띄워보려 한 데 따라 가계가 정부의 경제정책을 불신하게 된 점이다. 가계는 적어도 부동산에 관해서는 정부가 표명하는 정책의지를 깊이 의심하게 됐다. 가계는 2000년대 전반기의 경제 학습을 통해, 언제 또 부동산 시세가 폭등할지 몰라 불안해하는 한편 여차하면 부동산 투기에 끼어들어야 뒤처지지 않는다는 생각을 강박관념처럼 갖게 됐다. 시장이 정부의 정책의지를 불신하게 됨에 따라 부동산 시장은 한층 자기논리를 고집하는 체질이 강해졌다. 그만큼 정부 정책은 시장에 제대로 먹혀들기 어렵게 됐고, 시장은 전보다 더 큰 부동산 투기 의욕을 갖게 됐다. 저금리와 시중 부동자금이 흘러넘치는 상황에서는 정부가 부동산 경기 부양을 경기부양 수단으로 써먹지 않는다는 보장이 없는 한, 가계도 부동산 시세 폭등에 따른 불안이나 투자수익 기대를 갖는 것이 당연하다. 저금리 정책에 대한 일대 수정이 필요한 시기이지만 막상 정부는 사태를 그리 심각하게 보지 않는 듯하다.
박경민 | 역사칼럼니스트 cafa.daum.net/parque 불가피했던 충돌의 시작 오리엔트를 두 번째로 통일한 페르시아! 이란에서 발흥하여 리디아와 신 바빌로니아를 정복하더니 기원전 525년에는 제26왕조의 이집트도 멸망시키고 메소포타미아와 나일 강 일대를 자신의 영역으로 편입시키니 펠로폰네소스 반도와 나아가 발칸 반도에 둥지를 틀고 있는 그리스의 폴리스가 잔뜩 긴장하게 되었다. '빛은 동방에서(Lux ex Orient)'가 아니라, '전운(戰雲)은 동방에서(Guerra ex Orient)'가 된 것이다. 거대한 통일제국 페르시아는 전성기인 다리우스 1세 치세에 그 여세를 몰아 그리스를 원정하게 되었는데, 그의 눈에 지중해가 눈에 들어오니 바다 건너편에 있는 발칸반도와 펠로폰네소스의 폴리스를 평정하지 않고서는 마음이 편할 날이 없었던 것이다. 그것은 그리스의 입장에서도 마찬가지였다. 왜냐하면 대부분의 폴리스는 대내적으로 정치·경제·사회 각 부문에 걸친 체제정비를 통해서 문화적으로는 성취기반을 확립하면서 식민지 개척에 적극적으로 나서는 입장에서 페르시아라는 존재는 눈엣가시와 같았다. 식민지 개척에 열을 올리는 아테네를 비롯한 폴리스와 흑해와 지중해 방면으로 팽창하려는 페르시아가 만났으니, 이렇게 동서양의 충돌은 불가피했던 것이다. 강력한 전제군주체제하의 페르시아와 그리스 연합군은 전쟁을 통한 문제해결에 합의(?)하고 진검승부를 위한 칼을 빼어 들었다. 다리우스 1세의 엄청난 착각 여기서 페르시아의 정치·외교의 기본 틀을 알아보자. 우선 페르시아는 단명의 아시리아를 반면교사로 삼아 정복지의 관습을 존중하고 자치를 인정하는 관대한 정책을 폄으로써 무단통치 때문에 스스로의 명운을 재촉한 아시리아의 경우와는 달리, 민심수습에 성공하여 안정된 토대 위에서 전체 오리엔트 세계를 다스릴 수 있었다. '흐흐흐… 세상에서 날 대적할 자가 누구냐! 서쪽 편에 있는 그리스 녀석들은 통일조차 이루지 못하고 밤톨만한 폴리스로 서로 분열되어 살고 있지 않은가!' 다리우스 1세는 엄청난 착각을 하고 만다. 그는 오리엔트에 만족하지 않았다. 교통망의 정비로 광범위한 교역과 문화교류로 그리스 인과 접촉하면서 그들의 문명에 대해서 호기심, 나아가서 정복욕이 발동하였고 페르시아의 통일된 내부적 역량이 능히 그리스를 도모하는데 조금도 부족함이 없을 것이라 생각했던 것이다. 그는 이미 수사에서 사르데스에 이르는 '왕의 길'을 닦아 새 도읍지로 페르세폴리스를 건설한 바 있었으므로 자신만만에 야심만만의 군주였던 것이다. 다리우스 1세는 첫 번째 군사행동을 시작하였는데, 소아시아 서안 이오니아 지방의 그리스 식민도시를 압박하고 본국인 그리스 측이 어떻게 나오는지 반응을 기다렸다. 적대행위를 하면 그것을 트집을 잡아 침략의 구실로 삼겠다는 뜻이었다. 마치 1875년 일본이 운양호사건을 일으키고 조선 조정이 어찌 나오나 보는 것처럼 말이다. 이렇게 다리우스 1세가 전쟁이라는 모험을 감행하게 된 배경에는 앞에서 그가 착각한대로 '그리스'라는 정치적 실체가 없었다는 데에 있었다. 이 말은 독립된 폴리스가 지방정부라면 각 폴리스를 전체 그리스 차원에서 통제할 연방정부 내지 중앙정부가 없다는 데에 있었는데, 그것은 착각이었다. 그리스인들에게는 정치적인 '그리스'라는 것은 없었을지라도 '헬레네스', 즉 헬렌의 후손이며 '헬라스(그리스인들의 땅)'는 스스로의 힘으로 지켜낸다는 정신적인 힘을 간과하고 있었던 것이다. 마라톤의 기원, 마라톤 전투 다리우스 1세는 기원전 499년 식민도시의 하나였던 밀레토스가 아테네의 지원을 받아 반(反)페르시아 운동을 일으키자 기원전 494년 이를 무력진압하고 테러집단(밀레토스)를 지원한 아테네를 비롯한 그리스의 폴리스를 불량집단(국가로 인정하지도 않고)으로 낙인찍고 페르시아 함대에 발진명령을 내렸다. 우선 페르시아 함대는 트라키아 해안을 경유하여 그리스 본토를 친다는 작전을 세웠지만 폭풍을 만나 페르시아 해군이 궤멸당함으로써 실패로 끝나고 본격적인 전쟁은 페르시아의 2차 침공부터 시작되었다. 마침 그 당시 페르시아에 나라를 팔아먹은 매국노가 있었다. 전직 아테네의 참주 히피아스였다. 그는 독재로 일관하여 아테네 시민들의 도편추방에 의해서 쫓겨난 인물이었는데, 엉뚱하게 페르시아 원정군을 도움으로써 조국에 복수하려고 하였다. 매국노의 길 안내로 페르시아군은 발칸반도에 상륙했지만 그리스측은 밀티아데스를 지휘관으로 하는 아테네의 중무장 보병대를 마라톤 평원으로 보내어 격전 끝에 페르시아 군대를 격파하였는데(기원전 490년), 총사령관인 밀티아데스는 전에 트라키아 지방에서 페르시아군과 싸운 전투경험이 있어 적을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지피지기(知彼知己)면 백전불태(百戰不殆)라는 손자병법이 맞다. 마라톤 평원은 그리스 영웅들이 무용을 겨루던 장소로도 유명하다. 후세의 로마 역사가 플루타르코스(Plutarchos)는 그의 에서 마라톤의 승리를 아테네 시민들에게 전하기 위해서 한 사람의 전령이 아테테까지 쉬지 않고 계속 뛰어 승전보를 알림과 동시에 숨을 거두었다는 일화를 기록하여 마라톤 경주의 유래가 되었다. 실제 아테네에서 마라톤까지의 거리는 39.909km이다. 그러나 마라톤 경기가 42.195km가 된 것은 윈저 궁을 출발점으로 삼은 제4회 런던대회의 코스를 기준으로 하고 있으며 1924년 제8회 올림픽 이후부터는 42.195km가 공식거리로 굳어지게 되었다. 세계 4대 해전, 살라미스 해전 마라톤 전투의 패배로 충격을 받은 다리우스 1세가 대규모 병력을 동원하여 재침을 준비하였으나 기원전 486년 갑자기 죽고 말았다. 마음의 병이 너무 깊어서였을 것이다. 복수혈전은 대를 잇게 되는데, 그의 아들 크세르크세스 1세(Xerxes : BC 486∼465)는 복수하기 위해서 전쟁준비를 했지만, '페르시아는 사실 덩치만 컸지, 별 볼일 없더라'는 소문이 전체 페르시아 제국으로 퍼져 나가 이집트와 바빌론이 반란을 일으키는 바람에 그리스 침공을 늦추어야 했다. 드디어 기원전 480년 크세르크세스 1세가 그리스 원정을 감행하였는데, 이제 페르시아와 그리스는 서로를 너무 잘 아는 사이가 되었다. 그리스 측은 전쟁에 대비해서 아테네는 데미스토클레스가 주장한 해군력 강화, 스파르타는 육군을 동원하여 대 페르시아 방어전선을 구축한다. 충무공 이순신의 한산대첩과 더불어 세계 4대 해전 가운데 그 첫 번째가 페르시아 전쟁 당시에 벌어졌다. 페르시아 대군이 임전무퇴와 필사즉생의 각오로 그리스에 상륙하여 여러 폴리스를 굴복시키면서 파죽지세로 진격하였지만 이는 자발적이 아니라 물러서면 참수하겠다는 자기네 왕이 더 무서웠기 때문이다. 크세르크세스 1세는 속전속결로 전쟁을 결말지으려고 하였다. 물론 자신의 승리로 말이다. 만약 이번에도 진다면 아케메네스 왕조가 창업된 이래 지금까지 쌓아왔던 모든 것을 잃게 되는 것이며, 돌아가는 귀로에 어떤 봉변을 당할지 모른다는 위기감에 사로잡혀 있었다. 기원전 480년 페르시아군은 '테르모퓔레 전투'에서 그리스 연합군의 중심이었던 스파르타의 레오니다스 왕이 이끄는 군대와 치열한 싸움을 벌여 3백여 명의 스파르타군을 전멸시켜 버렸다. 승리가 눈앞에 보이는 듯 하였다. 페르시아군은 방어선이 뚫린 아테네로 진군하여 도시를 함락시키고 철저한 복수를 하였다. 신상을 무너뜨리고 신전을 유린하면서 도시 곳곳에서 철저한 살육전을 벌였는데 페르시아군의 무자비한 살상극은 오히려 자신들에게 독이 되어 돌아왔다. 일단 민주주의와 자유의 맛에 길들여진 아테네 시민은 전제적인 페르시아의 압제 하에서는 도저히 살아갈 수 없다고 생각하여 최후의 일전을 벌이기 위해서 살라미스 앞 바다로 필사적으로 탈출하여 아테네를 수복하기 위한 전선을 구축하였다. 과연 현명한 판단이었다. 어차피 육전에 강한 스파르타의 방어선이 무너진 마당에 구태여 아테네를 사수한답시고 아까운 목숨을 버릴 필요가 없었다. 해전에 강한 아테네인들은 차라리 적을 바다로 끌어내어 섬멸하겠다는 전략을 세웠다. 일순간의 승리에 도취한 페르시아군은 바다에서 약을 살살 올리고 있는 아테네 해군을 보고 분을 참지 못하고 그만 돌이킬 수 없는 실수를 저지르고 말았다. 아테네 시민들은 자발적으로 배 밑바닥에서 노를 젓고 전투요원들은 배 위에서 페르시아 함대를 상대로 불화살을 날려 좌충우돌하는 페르시아 함대를 수장시켜 버렸다. 페르시아 함선의 노를 젓던 노예들이 달아날 궁리만 하니 지휘관의 전투수행에 차질이 생겨 마치 훈련이 잘된 이순신 장군의 판옥선과 귀선에 섬멸당하는 일본수군과 같았다. 지상전도 물론 그렇겠지만, 특히 해전은 전체적인 팀웍을 중요시하는 전투이다. 이렇게 아테네 시민과 해군은 살라미스 해전에서 페르시아 함대를 격파하고 대승을 거두었다. 만약에 아테네에서 민주정치가 이루어지지 않았더라면(비록 노예를 기반으로 한 제한적 민주정이었지만) 그토록 자유시민들이 결사적으로 싸웠겠는가? 아마 '아테네의 독재나, 페르시아의 전제나 그것이 그것이며 목숨만 부지하면 된다'는 생각을 했을 것이다. 결론적으로 아테네의 승리는 동방 전제세력의 침략에 대한 서방 민주주의의 수호였으며 최초의 동·서 충돌이었다. 전쟁 후에 나타난 승자의 분열 양대 축을 중심으로 세력균형을 유지하면서 발전하다가 어느 한쪽이 힘을 잃게 되면 선의의 경쟁심이 없어짐으로써 둘 다 공멸하게 된다는 것을 그리스 역사를 통해서 알 수 있다. 페르시아의 침공으로부터 그리스를 구한 아테네는 발언권이 세졌다. 따라서 종전의 아티카 계열의 아테네를 중심으로 하는 폴리스와 스파르타를 중심으로 하는 라코니아 계열의 폴리스간의 힘의 균형이 깨지고 말았던 것이다. 스파르타 계열의 폴리스는 아테네 측의 공금횡령을 규탄하면서 물고 늘어졌는데, 전쟁이 터지자 그리스는 아테네를 중심으로 '델로스 동맹'을 구축하고 기금을 모아 델로스 섬의 아폴론 신전에 비축해 두었고 의장격인 아테네가 관리했던 것이다. 살라미스 해전에서 페르시아를 물리친 아테네는 그리스의 맹주가 되어 크게 번영하였는데, 공동으로 출자한 델로스 동맹의 비축자금을 각 도시국가에 돌려주지 않고 그 돈을 아테네로 옮겨 오로지 아테네 해군력 강화에 유용하고 말았다. 물론 다른 도시국가도 페르시아 전쟁 이후에 번영하였으나 아테네의 융성을 도저히 따라잡을 수 없어 이를 질투한 스파르타가 반 아테네 동맹인 펠로폰네소스 동맹 을 결성함에 따라 패권을 다투는 펠로폰네소스 전쟁이 일어났다. 승자는 없고 패자만 남았다. 물론 스파르타가 이겨 일시적 전성기를 누렸으나 자신에게도 독(毒)이 되었다. 아테네의 쇠퇴는 그리스 전체의 침체를 가져와 소아시아에 대한 직접적인 지배권을 상실하였을 뿐만 아니라, 세계사의 주역이 될 수 있었던 기회를 잃고 말았다.
지숙 | 인천 심도중 교사 시작하며 21C 고도 정보화 사회로 들어서면서 수많은 정보와 자료 속에서 자신이 필요한 것을 스스로 찾아내어 구성해 갈 수 있는 자기주도적 학습 능력을 길러주는 학습자 중심의 학습이 요구되고 있다. 이는 학습자들로 하여금 정보의 수동적 동화나 기계적 암기 능력이 아니라 문제 해결력, 반성적·비판적 사고, 창의성을 비롯한 고등정신 능력을 갖춘 사람으로 교육하자는 의미이기도 하다. 한영균은 종래의 국어 교육 내용에 필요한 정보를 수집하고, 취사선택하여 적절히 활용·요약할 수 있도록 하고, 목적과 필요에 맞는 내용을 선택적으로 빨리 읽어 내면서 자신의 생각을 정리하여 상대방에게 이론적으로 설명할 수 있도록 하는 정보 활용 능력 신장에 관한 교육이 추가되어야 한다고 주장한 바 있다. 언어문화연구원, 2001, p.7.. 그렇다면 이러한 시대적인 요구에 발맞춰 자기주도적인 학습 능력을 길러주는 학습자 중심의 학습과 필요한 정보를 찾아 분류, 분석하고 요약하여 사회현상을 바르게 이해하고 대처할 수 있는 능력을 키워줄 수 있는 적합한 학습 방법은 무엇일까? 신문을 활용하는 교육(NIE: Newspaper in Education / NIE를 한 마디로 정의하기가 쉽지는 않지만 본 연구에서는 NIE를 ‘신문을 알고, 신문으로 학습하는 교수-학습 프로그램’으로 정의한다. 이하 본문에서는 편의상 NIE로 약칭하기로 한다.)이 바로 이러한 문제점을 해결하는 대안이 될 수 있다는 것이 본고의 출발점이다. 왜냐하면 신문은 우리 사회뿐만 아니라, 세계 여러 나라에 대한 정보, 현재나 미래에 관한 시대를 초월하는 정보를 매일 신속하게 전달해주고 있어 관심 있는 기사를 언제라도 접할 수 있다. 윤덕홍은 신문은 유익한 정보를 다양하게 얻을 수 있을 뿐 아니라 간접 체험을 통해 사회를 알고 삶을 배울 수 있고 비판능력, 표현력, 독서력을 향상시킬 수 있으며, 인성지도를 위한 학습 자료로도 활용할 수 있어 학생들에게 살아있는 훌륭한 학습 자료가 될 수 있다고 하였다(윤덕홍, 한국신문협회주최 2003년 7월16일 프레스센타 19층 기자회견장에서 「주제 중심 통합 학습을 위한 NIE 프로그램 개발 방안」 세미나 내용 중 일부 인용). NIE를 교육 현장에서 실천하는 교사들은 신문으로 가르치는 것이 교과서를 위주로 가르칠 때보다 더 효과적이라는 것을 안다. 그러기에 수업과 관련된 NIE 프로그램을 꾸준히 개발해 왔다. 그러나 논리적인 구조를 형성하지 못하고 개별적 수업 사태에 부분적으로 활용한 것을 소개하는 수준에 머물고 있는 실정이므로 NIE가 더욱 발전하기 위해서는 구체적인 근거를 바탕으로 하여 체계를 가지고 적용할 수 있는 프로그램이 개발되어야 함이 사실이다. NIE란 무엇인가 NIE의 탐구 대상은 크게 인간 요인(언어 표현과 이해 활동의 주체자로서의 학생), 언어 요인(신문에 보도된 기사), 활동 요인(사회적·문화적 맥락 속에서 이루어지는 언어의 이해나 표현 행위 등), 교육 요인(국어 교육의 목표, 신문 자료 선정, 교수-학습 방법, 교육 결과 평가 등) 등 총 4가지로 볼 수 있다. NIE에 대하여 살펴보기로 한다. 1. NIE의 정의 1948년 파리에서 결성된 국제신문발행인협회(FIEJ)는 NIE를 ‘학교에서 유용한 보조교재와 교수 방법을 제공하는 수단이며, 동시에 미래의 신문 독자를 키우는 수단으로 이해하는 것이 가장 공통적이다’라고 밝힌 바 있다. 일본 신문 협회는 ‘교육에 신문을’이라고 번역하고 있으며 중앙일보사에서는 ‘신문을 학습에 활용하여 신문을 친숙하게 하며 교육적인 효과를 높이는 이라고 하였다. 위에서 살핀 바와 같이 NIE를 한 마디로 정의하기가 쉽지는 않지만 ‘학교에 유용한 보조자료와 교수방법을 제공하는 수단으로써 신문을 학교 수업에 활용하여 신문과 친숙하게 하며 교육적인 효과를 높이는 교수·학습 프로그램’이라고 정의할 수 있다. 2. NIE의 시작 NIE는 ‘신문을 교육에 활용하여 교육적인 효과를 높이고 교육 속에 신문을 활용하자’는 취지로 1955년 미국의 아이오와주 레지스터(Register) 신문이 미국교육협회와 협력해 처음에는 NIE의 전신인 NIC(Newspaper in Classroom ‘신문을 교실로’)를 채택하였다. 이후 NIC는 1976년부터 NIE(Newspaper in Education ‘교육에 신문을’)로 한걸음 더 나아갔다. 신문을 활용한 교육 프로그램에 ‘NIE’라는 명칭을 붙여 준 것은 캐나다 일간 신문 발행인협회였다. 신문의 교육적인 활용 방법이 전통적인 학교 교육의 범주를 넘어서 일반 사회단체나 연구 기관에까지 폭넓게 발전시켜 나가야 한다는 필요성을 인식한 것이다. 우리나라에서는 1994년 한국신문편집인협회에서 ‘NIE 세미나’를 주관하면서 ‘NIE’라는 용어를 소개하였다. 한국신문편집인협회는 그 당시 교육부 장관 앞으로 서한을 보내어 ‘X세대라고 불리는 요즈음 신세대들은 읽고 쓰기를 싫어하며 문자로부터 이탈 현상을 보이고 있다’고 지적하고, ‘TV, VTR 등에서 얻는 정보량은 많지만 생활체험의 부족에서 오는 편협한 인간관계, 자율적인 의견 및 판단력의 결여, 주장만 있고 책임이 따르지 않는 행동, 피동적이고 끈기 없는 생활태도 등의 부작용은 갈수록 심화되고 있다’고 주장하였다. 협회는 또 이 운동을 효과적으로 전개하기 위해 언론계와 교육계가 협력하여 구체적인 실천방안을 국가시책으로 추진할 것과 그 방안으로 신문 알기 교육, 신문 읽기 훈련, 신문 제작 실습, 시사 토론 연습, 신문을 통한 전인교육, 민주교육, 사회교육, 역사교육을 제안했다. 이 같은 신문편집인협회의 건의에 따라 교육부는 ‘특별활동 시간에 교장 재량 아래 신문을 교육교재로 활용하는 방안을 포함, 다각적인 실천방안을 검토키로 했다’는 입장을 표명하였다. NIE의 불모지였던 우리나라는 이를 계기로 정부·교육계·언론계가 NIE에 대한 논의와 관심을 갖게 되었다. 3.NIE의 교육적 목적 (1) 미국 미국의 ‘Pantagraph’지는 NIE의 목적을 신문매체의 올바른 이해와 교육적 활용에 초점을 맞추어 크게 다음의 4가지로 정리하고 있다. 첫째, 민주사회에서 자신의 운명을 결정하고 가늠할 수 있는 민주시민의 양성 둘째, 신문 읽기 능력을 키워줌으로써 학생들의 비판적 사고능력 강화 셋째, 과목이나 주제 중심으로 작문·역사·수학·시사·소비문제·생태학 등 여러 분야의 내용들을 효과적이며 흥미 있게 가르쳐 주는 교수도구의 제공 넷째, 현대 생활에 필요한 정보나 오락기능 등을 제공함으로써 학생들의 개인적 성장도모 (2) 영국 영국신문협회가 밝힌 NIE의 교육적 목적을 살펴보도록 한다. 첫째, 다양하고 현실적이며 비용이 적게 드는 보조적인 교육 자료의 제공 둘째, 역사적 기록과 정보에 대한 일상적인 접촉 셋째, 적극적인 독서를 통한 실용적인 단어와 문장력의 증대 넷째, 학생들의 개인적·사회적인 교육의 추진 다섯째, 다양한 미디어 중 하나인 신문에 대한 이해를 촉진 여섯째, 신문의 제작과정에 대한 이해 일곱째, 실질적인 청중을 대상으로 목적 있는 글쓰기 기회의 제공 (3) 우리나라 한편, 우리나라 중앙일보사에서는 NIE의 목적을 10개로 나누어 구체화시켰는데 그 내용은 다음과 같다. 첫째, 실용적인 단어와 문장능력의 증대 둘째, 신문의 제작과정에 대한 인식의 창조 셋째, 목적을 갖고 실질적인 청중을 대상으로 한 글 쓰는 기회의 제공 넷째, 간결한 작문, 레이아웃(어떤 특정한 기사를 전체 지면의 어느 부분에 어떻게 구성하느냐 하는 부분적이며 개별적인 지면구성 방법)과 디자인, 이야기의 명쾌한 검증 등에 대한 창조적인 훈련 다섯째, 지역의 역사와 지리, 현재의 사회적 이슈와 사건 등에 대한 일반적인 지식 확대 여섯째, 팀워크를 통해 자신감과 의사소통의 효율성 제고와 프로젝트 수행의 개인적인 능력 개발 일곱째, 사회의 문제를 자기의 문제로 생각할 수 있는 사회성 확립 여덟째, 다양한 의견과 가치의 존재 사실 인식 아홉째, 많은 사실과 의견 가운데서 자기 자신의 입장을 분명히 할 수 있는 판단력과 사고력 배양 열째, 많은 정보 가운데 자기에게 필요한 것을 취사선택해 활용할 수 있는 능력 육성 위에서 살펴본 바와 같이 NIE의 목적이 다소 차이가 있기는 하나, 신문 매체가 지니고 있는 특성을 활용하여 교육의 효과를 높이고자 하는데 NIE의 목적을 두고 있다는 점을 알 수 있다. 4. NIE의 세계 동향 (1) 미국 1958년부터는 미국 신문 발행인 협회가 NIE 프로그램을 짜서 재정적·행정적·기술적 지원을 하기 시작했다. 현재는 미국 신문 협회(NAA : Newspaper Association of America)가 NIE 사업을 전담하여 전국적 규모로 전개하고 있다. 1990년에는 FIEJ와 공동으로 뉴욕에서 세계 각국의 NIE 대표를 초청하여 NIE에 관한 첫 번째 국제회의를 개최했으며, 이 날을 ‘국제 NIE의 날’(International NIE Day)로 이름 붙이고 기념일로 정하였다. 현재 700여 개 신문사에서 NIE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으며, 세미나와 워크숍을 통한 교사연수를 하고, 안내책자와 교재도 발간하고 있다. 또한 NIE 주간행사를 매년 3월 첫 주에 마련하고, NIE 주간이 아니라도 항상 학생들의 신문사 방문과 신문제작을 돕고 있다. (2) 영국 1984년 신문협회(Newspaper Society)의 주도 아래 시작되었다. 미국에 비해 본격적인 신문활용교육의 역사가 길지는 않지만, 1997년 8월 현재 약 700여 개의 신문사가 NIE 프로그램을 실시할 정도로 빠르게 보급되고 있다. 신문협회 안에 NIE 소위원회가 조직되어 신문사로부터 재정적인 지원을 받아 각종 NIE 프로그램을 활성화하고 있으며, 미국처럼 학교와 신문사, 지역사회 사이의 연계가 잘 되어 있다. 인터넷에도 미국 다음으로 많은 NIE 사이트를 개설하며 정보화 시대에 발 빠르게 적응하고 있다. 영국의 신문협회 역시 매년 10월 첫째 주를 NIE 주간으로 정하고 전국적인 행사를 하고 있다. 특히 1993년의 NIE 주간에는 어린이들의 독서에 부모가 참여하자는 주제의 행사(Reading Together)를 열고 모두 네 권의 독서 여권(Reading Passport)을 개발·보급하여 교사와 학생들에게 많은 호응을 얻었다. (3) 일본 지난 1987년에 설립된 일본신문협회가 중심이 되어 NIE의 도입을 추진해 왔으며, 1988년에는 NIE 소위원회를 구성하였다. 1989년부터 NIE 교육의 토대를 쌓기 위해 5년간 실시한 실험 프로젝트는 일본의 문화적·교육적 환경에서 매우 적절한 것으로 평가되어 일본 전역에서 적용될 수 있는 실천적 모델로 채택되었다. 1992년에는 최초의 NIE 세미나가 신문협회 주최로 열렸다. (4) 독일 일부 교육자나 신문사의 관심과 이해에 따라 간헐적으로 NIE가 전개되고 있으나 본격적이고 조직적인 NIE 실시는 1970년대에 전개된다. 이때 독일신문협회는 ‘학교에서의 신문교육’(Zeitung in der Schule)이라는 프로젝트를 추진시켜 전국지 및 지방지의 호응으로 붐을 일으켰다. NIE에 대한 열정으로 NIE 알리기에 널리 힘쓰고 있는 지숙 교사(인천 심도중)가 본지에 6회에 걸쳐 NIE에 대한 글을 싣는다. 1981년 교직생활을 시작한 지 교사는 학습자 중심의 교육 방법을 찾던 중 대학 시절 학보사 기자 경험을 살려 NIE 교육 직무연수를 받고 NIE를 통한 수업에 힘써왔다. 인천광역시북부교육청 국어교과 연구회 부회장, 중앙일보 NIE 연구위원, 교육인적자원부 제3기 사이버 현장교원 자문위원 등을 역임하였으며, 각종 언론과 인터넷 홈페이지 ‘지숙선생님의 NIE(www.goodnie.pe.kr)'를 통해 NIE 알리기에 앞장서고 있다. 지 교사는 NIE는 생각의 폭을 넓히고, 사고력과 창의력을 높이는 데 매우 효과적이라며 이번 연재를 통해 많은 동료 교사들이 다양한 사례들을 공유할 수 있기를 바란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