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검색결과 - 전체기사 중 78,703건의 기사가 검색되었습니다.
상세검색7일 충남과학교육원에서 열린 '제21회 충청남도고등학교 과학탐구대회'에 출전한 충남 서령고(교장 김동민)의 전수일, 최한주(지도교사 손평수) 팀이 금상, 이희창, 서창규(지도교사 임재원) 팀이 은상, 박상빈, 윤두영(지도교사 홍경표) 팀이 동상을 수상하여 세 팀이 모두 입상하는 영광을 안았다. 특히 금상을 수상한 전수일, 최한주 팀은 전국대회에 출전하게 됐다. 전국대회는 충남에서 서령고와 한일고 단 두 팀만이 출전하게 된다. 이번 대회는 충남에서 내로라 하는 93개 팀 186명이 참가하여 치열한 접전을 벌여 위와 같은 쾌거를 거두었으며 전국대회는 오는 7월 13일에 있다.
전남혁신교육시민모임(회장 서정분)은5일 광양 커뮤니티센터에서 김기웅 광양교육지원청교육장을 비롯해 관내 중학교 학부모 200여명이 참석한 가운데 광양 관내 중학교 새내기 학부모 연찬회를 실시했다. 이번 새내기 학부모 교실 취지는 학교폭력 예방을 위한 학부모의 역할 및 밥상 머 리교육의 중요성을 강조하고 진로비전 코칭과 독서·토론교육의 이해를 통해 자녀교육에 대한 학부모의 역량을 강화해 교육공동체가 함께 소통하고 협력하는 학교문화를 조성하는데 있다. 김 교육장은 "타인을 배려하고 존중하는 고운 품성 함양, 체계적인 학력 관리를 통한 기초‧기본학력 정착, 독서‧토론수업의 활성화를 통해 감동 주는 교육으로 학생이 행복한 학교를 만드는데 최선의 노력을 다하겠다"며 "학부모가 자녀교육에 대한 열정을 바람직한 방향으로 학교교육 참여에 쏟는다면 학부모의 교육만족도 제고와 공교육의 질을 개선하는데 큰 도움이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독서․토론교육 전문가 이경훈 교수는 독서와 디베이트를 연계할 경우 학생들은 책에 몰입하고 주제를 파악하는 능력이 향상되며 사물을 비판적으로 보는 시각을 기를 수 있다고 강조했다. 조원식 미래비전개발원원장은 적성에 맞는 직업을 선택하는 것은 좋아하는 분야에서 잘 할 수 있는 일을 찾는 것임을 강조하고 진로 지도 시 고려 사항, 자녀의 비전 탐색을 어떻게 할 것인지에 대한 심도 있는 강연을 펼쳐 학부모들의 관심을 불러 일으켰다.
6월 6일은 현충일이다. 해마다 현충일을 맞이하면서도 어딘가 부족함을 느끼는 것은 나만의 생각일까? 요즘 아이들에게 애국이라는 말이 진부하게 들릴지도 모른다. 하지만 오늘 우리가 이렇게 존재하는 것은 피와 땀으로 나라를 건설하고 위기의 시기에 몸을 던진 그들의 희생이 있었기 때문이다. 이를 다시 돌아보기 위하여 KBS 1TV는 다큐멘터리 프로그램 '파노라마'에서 6일 밤 10시 '아버지의 나라'를 선택한 청년들의 이야기를 소개했다. 9년의 시간을 재일동포 교육에 몸담은 필자로써 감회가 새롭고 재일동포들에 대한 올바른 이해를 위한 좋은 자료라 생각이 된다. 1950년 한국에서 전쟁이 나자 재일동포 청년들은 앞다퉈 전쟁에 자원했다. 642명의 청년이 청춘과 바꿔 선택한 것은 지옥과도 같은 전쟁터였고, 한번도 가본 적도 없는 '아버지의 나라'였다. 이들 대부분은 윤택한 삶을 살 수 있던 명문대 학생들과 엘리트 청년들이었다. 그들은 안정된 현재와 보장된 미래를 버리고애국심 하나로'아버지의 나라'를 택한 것이다. 그 선택은 그들의 삶을 송두리째 바꿔 놓았다. 일본의 미군기지에서 군번도, 계급도 없이 단 사흘간의 훈련을 받고 참전한 청년들에게 한국 전쟁터는 지옥이었다. 특히 일본에서 나고 자란 그들에게 언어의 문제는 생존의 문제였다. 퇴각명령을 알아듣지 못하고 전투에 임하다가 죽어간 청년도 있었으니 말이다. 결국 153명의 청년이 '아버지의 나라'에서 전사했다. 살아남은 이들에게는 또 다른 운명이 기다리고 있었다. 1952년 4월 샌프란시스코 강화조약의 발효로 주권을 회복한 일본이 허가 없이 떠난 청년들의 재입국을 거부한 것이다. 이로 인해 242명의 청년이 일본으로 돌아가지 못하고 한국에 남게 됐다. 김운태 씨도 이들 중 한 명이었다. 일본을 떠나올 때 그에게는 세 살배기의 어린 딸과 만삭의 일본인 아내가 있었다. 그는 지금까지도 가족의 행방을 알지 못한 채 오늘을 살아가고 있다. 살아남은 것은 다행이었지만 돌아갈 수 없는 것은 불행이었다. 이같은 아픔 위에 우리의 대한민국은 존재한다는 사실을 가르쳐야 할 사명이 오늘의 어른들에게 있지 않을까
사범대학 국어교육과를 졸업하고 줄곧 고등학교에서 국어를 가르치고 있다. 햇수를 따져도 25년을 넘겼다. 오래 한 것으로 치면 뒤지지 않는다. 그러나 그 동안 국어교육을 제대로 했냐고 하면 마음이 무겁다. 이 시점에 국어교육이란 무엇일까. 답을 찾아본다. 국어교육은 말 그대로 국어를 가르치는 것이다. 국가에서 만든 교육과정에 근거하여 국어를 체계적으로 교육하는 것을 일컫는다. 국어의 개념도 찾아갈 필요가 있다. 국어라는 과목이 생긴 것은 1894년 이후 정규 학교 교과서를 편찬하기 시작하면서다. 이후 교육제에서 교과서를 편찬하면서 국어 교과서가 등장했다. 그러다가 다시 일제강점기에서는 국어가 일본어로 대치되고 우리 국어는 조선어 과목으로 전락하기도 했다. 국어는 말 그대로 이해하면 나라말이다. 그러나 이렇게 해도 마음에 차지 않는다. 우선 나라의 말이라고 하면 과거 우리나라의 역사가 걸린다. 우리는 고조선, 그리고 신라, 고구려, 백제의 역사가 있다. 그렇다면 어느 나라의 말을 국어라고 할지 애매하다. 우리가 써야 하는 국어라는 개념은 나라가 사라지는 나라말이 아니라 온 겨레가 함께 쓰는 말이어야 한다. 이래서 쓰기 시작한 말이 겨레말, 배달말(배달민족이 쓰는 말)이라고 했다. 하지만 이도 익숙하지 않다. 그래서 나온 것이 우리말이다. 우리가 오랜 동안 써 온 말이다. 이것이 자연스럽다. 그래서 지금은 보편적으로 우리말이라고 한다. 즉 국어교육은 우리말 교육이다. 그러면 우리말 교육을 제대로 했을까. 다시 말하면 국어교육을 제대로 했을까. 아쉬움이 남는다. 가장 큰 문제점은 기능주의적 관점이다. 언어 사용 신장이라는 활동을 기계적으로 반복하면서 국어교육의 흥미를 잃었다. 국어교육의 목표는 표준어를 바르게, 상급학교에 가서는 어법에 맞게, 효과적으로 혹은 분명하게 등으로 했다. 이는 교육의 수준에 관계없이 동일한 성격을 반복적으로 제시함으로써 학생들이 흥미와 기능을 잃어버리게 했다. 언어 영역을 분절적으로 구분한 것도 문제였다. 듣기, 말하기, 쓰기, 읽기의 구분을 마치 중요한 영역 구분으로 생각했다. 이들 사이에는 국지적이고 지엽적인 차이만 존재한다. 아니 오히려 듣기 말하기 등은 같은 상황에서 일어나는 언어 행위이다. 문학 교육을 할 때도 융합적으로 실행되어야 한다. 신이 아닌 이상 듣기 말하기를 분리해서 교육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말하기와 쓰기도 마찬가지다. 말하기와 쓰기는 그 매체가 음성언어인가 문자언어인가 하는 점에서 다른 것이지 표현이라는 언어활동의 구조는 동일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것을 나눈 것은 기능의 동질성보다는 매체의 이질성이라는 외형적 측면에 주목한 것으로 해석된다. 이런 분절이 ‘국어사용 기능’이라는 목표로 설정되고 결국은 국어가 하나의 도구 교과로 전락했다. 도구는 물리적 개념이다. 언어는 도구로 남아 있지 않는다. 언어 사용에 의해 언어 표현이라는 실체가 생겨나고, 의미가 창조된다는 점이 다르다. 언어의 창조적 기능에 초점을 두는 교육이 미흡했다. 결국 우리 국어교육은 듣기, 말하기, 쓰기, 읽기에 몰입되어 있었다. 그러다보니 말을 잘 하는 법만 가르치고, 듣기, 쓰기, 읽기의 요령만 가르쳤다. 지금부터라도 국어교육의 방향이 바뀌어야 한다. 기능을 강조할 것이 내용을 담는 데에 초점을 두어야 한다. 말이란 주고받기도 하지만 우리 마음 안에 자리 잡고 있으면서 우리의 인격을 지우는 틀이다. 말하는 기능은 조금 떨어지면 어떤가. 그 내용에 진정성이 담겨 있다면 된다. 따라서 국어교육은 언어의 내용을 가르치는 방향으로 가야 한다. 두 살만 지나면 우리말을 유창하게 하는데, 정작 국어가 어렵다고 한다. 청소년의 비속어 사용 빈도도 예전보다 늘어났다. 이 모두가 언어 교육을 하면서 기능에 치우친 결과다. 무엇을 주고받을 것인가를 놓친 결과다. 주고받을 알맹이가 없다. 주고받을 수 있는 것을 챙기는 것 그것이 국어교육이다.
현충일을 하루앞둔 6월5일 오후 늦게 한통의 문자 메시지가 날아왔다. 중학교 교원 연구비 지급이 확정됐다는 내용이었다. E-메일을 열어 보았다. 자세한 사항을 알 수 있었다. 올해 3월부터 지급이 중단 됐던 교원연구비를 각 시도별로 예산 상황에 따라 지급시기에 다소 차이가 있을 수 있지만 지급이 결정됐다는 것이다. 그것도 지급되지 않았던 기간을 소급해 지급한다는 것이다.무엇보다 돈 몇 만원을 받게 됐다는 사실보다는이번의 지급결정을 통해 교원들의 자존심을 세울 수 있게 됐다는 생각에 기쁨이 더했다. 지급결정 문자메시지 소식을 받은 직후 김동석 교총 정책본부장과 통화를 했다. 그동안의 노력에 대해 감사의 말씀을 드리긴 했지만 노력의 과정을 들으면서 송구한 마음이 앞섰다. 그 노력에 대해 교원들이 기뻐하고 보람을 찾을 수 있다면 그보다 더한 일도 할 수 있다고 했다. 진정으로 교총이 할 일을 해냈다는 것이 매우 기쁘다고 했다. 통화를 마치고 이런 노력이 있었기에 가능했다는 생각을 하니 더욱 더 고마움과 송구함이 함께 밀려왔다. 사실 지급이 정지된 이후 처음에는 다소 관심이 있는듯 했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서서히 잊혀져 가고 있었다. 지급이 정지된 사실은 대부분의 교원들이 알고 있었지만 언제 또 지급이 될 것인지, 지급을 위해 누가 어디서 어떻게 노력을 하고 있는 것인지에 대해서는 잘 알고 있지 못했다. 40만 교원 청원서명을 할 때도 별다른 기대를 하지 않는 교원들이 많았었다. 그만큼 희망이 없었다고나 할까.. 그런데 필자는 교총에서 들려오는 소식을 수시로 접하고 있었다. 수시로 접했었기에 노력을 하고 있다는 것을 알고는 있었지만, 45차례 방문·건의활동, 2차례 집회·기자회견, 교원 17만5000명 서명동참 사실까지는 제대로 알지 못했다. 그동안의 노력에 정말로 지면을 통해 감사의 말씀을 전하고 싶을 뿐이다. 필자가 모든 교원들의 대표는 아니지만 교원의 한사람으로써 어쩌면 모든 교원들이 나서서 활동을 했어야 했음에도 보이지 않게 드러나지 않게 노력해준 한국교총의 전문가 들에게 감사하고 있는 것이다.앞서 언급했듯이 교원연구비 몇 푼을 더 받고 못 받고의 문제는 아니다. 그렇지 않아도 교원들의 자존심이 날이 갈수록 훼손되는 상황이기에 이번의 지급결정이 갖는 의미는 매우 크다 하겠다. 한국교총의 노력이 없었다면 이런 결과를 이끌어 내기 어려웠을 것이다. 모든 행정력을 집중했다는 생각이 든다. 현장교원들이 직접 나서서 해야 할 일들을 교총본부에서 대신 노력해 주었다는 것에 교원의 한 사람으로 부끄럽기 까지 하다. 지면이나 메일을 통해 활동 사실을 알고는 있었지만 격려 한마디 못한 것이 못내 후회된다. 45회의 방문 건의에서 알 수 있듯이 같은 사안을 가지고 계속해서 방문하고 계속해서 건의하는 것이 쉬운일은 아니다. 그 짧은 기간에 그렇게 많은 방문과 건의를 했다는 것에 박수를 보내고 싶다. 노력한 만큼 결과가 좋게 나와서 다행스럽다. 교원연구비 지급결정 보다 더 소중한 것은 한국교총이 존재하는 이유를 확실히 부각시킨 것이 더 소중하다고 본다. 회원들이 단합해 노력을 하고 서명에 적극적으로 동참한 것도 큰 힘이 됐을 것이다. 바쁜 일상에서 쉽게 지나치기 쉬웠지만 관심을 가지고 참여한 것이 교원연구비 지급이라는 결과를 이끌어 내는데 일조를 했다고 본다. 앞으로도 회원 모두가 더욱더 참여하여 힘있는 교총을 만들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여기에 교총본부의 전문가들이 전문성을 가지고 적극 참여했기 때문에 소기의 성과를 거둔 것이다. 이번의 교원연구비 지급결정을 이끌어낸 결과를 두고 이런 생각이 든다. 교총본부의 전문가 들과 일선 현장교원들의 노력이 함께 한다면 그 어떤 잘못된 정책도 바로 잡을 수 있을 것이다. 즉 한마음 한뜻이 된다면 대한민국의 교육을 바로잡고 제대로 된 교육을 할 수 있도록 앞장서는 한국교총이 될 수 있을 것이다. 그동안 밤 낮을 가리지 않고 총력을 기울인 교총본부의 모든 분들께 깊은 감사의 말씀을 드리고 싶다. 무엇보다 단합된 힘을 보여줬고, 자칫 더욱 더 무너질 위기에 처한 교원의 자존심을 살려 준 것에 깊은 의미를 두고 싶다. 단합된 힘과 자존심은 돈으로 따질 수 없는 가치이기 때문이다.
어느 나라이건 교육은 국가의 운명을 좌우한다는 관점에서 국가 지도자들이 많은 관심을 보이고 있다. 전 세계에서 가장 교육 경쟁력이 높은 국가는 어디일까! 현재로서 답은 핀란드라 할 것이다. 핀란드는 사교육뿐만 아니라 공교육으로도 성공한 국가로 공부를 잘하는 학생들을 위한 수월성 교육과 학습 능력이 부진한 학생들을 위한 형평성 교육 모두 성공한 사례로 주목받고 있다. 그래서 우리 나라에서도 많은 사람들이 핀란드를 찾는다. 그러면 우리나라 교육은 어떠할까? 우리나라 교육은 수월성 교육을 하면 평등에 위배되는 것으로 반대하고, 또 형평성을 위한 교육을 하면 엘리트를 키우지 않는다는 논리로 반대를 하는 경향이 있다. 즉 우리나라 교육은 수월성 및 형평성 교육 모두 서로 다른 패러다임으로 충돌을 하고 있는 것이다. 핀란드 교육의 가장 중요한 성공 포인트는 학생 개개인의 머릿속에 있는 학습에 대한 패러다임을 전환한 데 있었다. 우리의 경우는 친구들과 나의 비교에서 성적이 산출되는 데 반해, 핀란드 학생은 ‘어제의 나’와 ‘오늘의 나’가 비교돼 성적이 평가된다는 점이다. 즉 어제 시험지에서 틀린 문제를 다시 보고 풀어도 높은 점수를 줄 수 있는 교육여건과 환경이 조성돼 있고, 학생들 스스로도 친구들과 비교하는 것이 아니라 어제의 내 점수와 오늘의 내 점수를 비교함으로써 자기 스스로의 실력이 발전되는 것을 지켜볼 수 있게 한다는 점이다. 또 이러한 관점에서 교사 양성 및 학교 설립과 허가, 학교 내에서의 교육환경과 여건, 우열반과 직업교육 등 다양한 교육적인 시행제도가 실시됨으로써 세계 1등의 교육 경쟁력을 갖추게 된 것이다. 지금 우리에게 부족한 것은 어제의 나와 오늘의 나를 성찰하는 교육이 매우 부족하다. 국가 방향이 내신을 강조하다보니 뭐라해도 순위가 앞서야 한다. 교육의 문제는 최종 평가를 어떻게 하는가에 따라 좌우된다. 우리 아이들도 어제의 삶을 산 기록을 오늘 돌아보면서 자기의 미래를 스스로 예측하도록 자기 삶을 기록하도록 지도하면 어떨까. 매우 흩트러진 아이들의 가방 속을 들어다보면서 절망을 느낀다면 이제라도 다시 시작하다. 항상 자기의 삶을 자기 스스로 체크하면서 살아가도록 확인하는 노력이 없이는 희망찬 미래를 발견하기란 어려울 것이라는 느낌은 나만의 생각일까?
인천에서 음주운전을 한 것도 모자라 단속 경찰관을 폭행하고 속옷을 던지는 등 난동을 부려 불구속 입건된 한 여성(47)의 직업이 ‘교사인가, 아닌가’를 두고 논란이 분분하다. 음주운전 단속이 논란의 중심이 된 것은 이번 사건이 ‘음주 女교사, 단속 걸리자 대변 묻은 팬티로 난동’ 등의 제목으로 언론에 전면 보도됐기 때문이다. 인천서부경찰서가 해당 여성이 만취한 상태에서 자신을 ‘교사’라고 진술했다고 밝힌 반면, 교원들의 명예가 걸린 문제라 보고 즉시 사태 파악에 나선 인천시교육청(교육감 나근형)은 “해당 여성은 인천시 교사가 아니다”라고 밝혔기 때문이다. 시교육청은 해명자료를 통해 “교육행정정보시스템(NEIS)을 확인한 결과 인천 관내 학교 재직 교사가 아닌 것으로 밝혀졌다”며 “그릇된 언론보도로 인해 인천시교육청 및 교원들의 명예가 심각히 훼손될 수 있음을 서부경찰서에 전달했다”고 밝혔다. 교총도 즉각 반발했다. 김동석 교총 정책본부장은 “교사인지 아닌지 여부도 밝혀지지 않은 사건에 대한 언론의 선정적인 보도로 교직사회는 물론 전체 교육자의 이미지와 명예가 훼손되고 있다”며 “해당 경찰서는 하루 빨리 명확하게 피의자의 신분을 밝혀야 한다”고 촉구했다. 인천교총도 윤석진 회장 등 대표단이 5일 오전 서부경찰서를 방문하고 조속한 수사를 요청했다. 이에 대해 인천서부경찰서 관계자는 “단속 당시 상황만 파악 했을 뿐 추가 조사는 하지 않아 신분에 대해서는 정확히 알 수가 없다”며 “해당 피의자가 언론보도로 많이 놀란 상황이어서 조사 일정을 조율하고 있는 중이라 언제 결론이 나게 될지는 알 수 없다”는 답변만 내놨다. 지난달 31일 음주운전 단속에 걸린 이 여성은 음주측정 결과 혈중 알콜농도가 면허 정지에 해당하는 0.07%였다.
서울시교육청(교육감 문용린)이 학칙에 따라 학생들의 휴대전화를 수거해 보관하다가 교사가 분실했을 경우 학교당 최대 2000만원까지 지원한다. 시교육청은 학생의 수업권 보호와 교사의 생활지도권 보장을 위해 마련한 ‘교사에 의한 휴대전화 등 물품 분실 보상 대책’을 이달부터 시행한다고 5일 밝혔다. 시교육청의 이번 대책 시행은 “학생 휴대전화 수거·분실 책임에 대한 제도 개선을 해달라”며 교총이 지난달 7일 건의한 내용을 적극 수용한 것이다. 교사는 수거·보관하던 휴대전화를 도난·분실했을 경우 즉시 학교장에게 보고하고, 학교는 자체 조사, 경찰서 신고 등 원상회복을 위한 노력을 해야 한다. 그럼에도 찾지 못하면 학교교권보호위원회를 개최해(안건 접수 후 일주일 이내) 보상 신청 여부 및 금액을 정한 후 시교육청에 보상 신청을 하면 된다. 시교육청은 교육청 교권보호위원회 심의를 거쳐 예산의 범위 내에서 교당 최대 2000만원까지 지원한다. 보상금 지원은 2014년 말까지 발생한 분실사고에 대해 한시적으로 운영되며사안조사 결과 절도범을 찾은 경우, 휴대전화 분실보험에 가입한 경우, 분실한 휴대전화 잔여할부금 등은 지원에서 제외된다. 교총은 “이번 정책은 시교육청이 학교 현장의 애로와 고충을 해결하기 위해 교총이 직접 건의한 내용을 적극적으로 반영한 모범사례”라며 “다른 시·도에서도 교사가 학생의 수업권을 보호하려고 학교규칙에 따라 휴대전화를 수거·보관하다가 발생한 분실 사고에 대해 서울교육청과 같은 포괄적 배상이 이루어질 수 있도록 제도적 장치를 마련해 달라”고 촉구했다.
수원 칠보초(교장 양원기)에서는 5일 오후 2시부터 후관 3층 글벗도서관에서 송용진 작가와의 만남을 가졌다. 사전에 참가 희망 여부를 안내할 때부터 그 반응이 뜨거웠고, 드디어 오늘 학생들은 물론이거니와 학부모님들과 교직원 분들도 만남을 함께하여 유익한 시간을 가졌다. ‘작가와의 만남’은 작품의 집필 동기, 작품과 관련된 에피소드, 경험담, 작가의 청소년기 독서생활, 작가와의 대화 및 사인회 등의 프로그램으로 구성돼 있다. 학생들이 즐겨 읽고 또 학생들에게 적극 추천하는 권장도서의 작가를 직접 만날 수 있다는 것은 흔한 기회가 아니다. 이 만남을 통해 학생들은 ①작가의 글 쓴 의도를 잘 파악할 수 있으므로, 더욱 깊이 있는 독서가 가능하고 ② 작가라면 당연히 책을 가까이 하기 때문에 그들의 다양하고도 바람직한 독서 습관들을 배우고 모방할 수 있으며 ③ 이러한 만남이 학교 내 도서관에서 이루어진다는 점에서 학생들이 책을 진정으로 벗 삼을 수 있는 계기를 마련할 수 있다. 오늘 본교 글벗도서관에 초청된 ‘송용진 작가’님께서 글을 쓰게 된 계기는 매우 놀랍다. 만날 친구를 기다리다가 우연히 들어가게 된 경복궁의 매력에 푹 빠지면서 본격적으로 역사공부를 하기 시작했고 2005년에 우리 궁궐의 역사와 문화를 담은 ‘쏭내관의 재미있는 궁궐기행’ 이라는 책을 펴내게 된 것이다. 그리고 이에 그치지 않고 우리의 역사를 학생들의 수준에 맞도록 쉽고 재미있게 풀어나가는 ‘쏭내관의 재미있는 史.교육 현장’을 운영하고 계신다. 그의 저서로는 「쏭내관의 재미있는 궁궐기행 1,2」「한국사 기행」「왕릉 기행」등이 있는데 오늘 작가와의 만남을 참석한 학생들은 그의 저서를 지참하여 사인을 받아가기도 했다. 그 학생에게 오늘은 아주 특별한 날이 될 것이며, 작가의 친필 사인을 입은 그 책 역시 학생의 또 하나의 보물이 될 것이라는 점은 볼 수 없어도 자명하다. 우리나라가 반 만년 이상의 장구한 역사를 자부할 수 있는 것은 이를 통해 우리 민족의 정신과 정체성이 계승돼 올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요즘 학생들에게 역사란 ‘따분하고 복잡한 것’ ‘알아도 별 소용없는 것’으로 치부되는 듯하여 매우 안타깝다. 급변하는 세대를 살아가는 학생들이 역사를 따분한 것으로 여긴다면, 이러한 행동을 나무라기보다는 ‘학생들 수준과 흥미에 맞는 눈높이 역사교육’ 에 대해서 끊임없이 고민해야 한다. “이렇게 쉬운 말을 어렵게 써 놓으니, 학생들이 역사를 싫어하지!”라며 체념하는 것에 그치지 않고, ‘쉽고 흥미로운 역사 이야기를 내가 한 번 구상해 보아야겠다’라는 도전이 오늘 이시간의 ‘송용진 작가’를 낳았다. 아무쪼록 칠보초 학생들은 오늘 이 시간이 매우 귀중한 시간임을 깨닫고 ‘책을 한 권 쓰기 위해선 적어도 책 100권을 읽어야 한다‘는 작가님의 말씀을 잘 새겨서 역사도서 뿐 아니라 다양한 분야의 책 읽기에 끊임없이 도전하고 즐기는 칠보초 학생들이 되기를 소망한다.
드디어 아들과 함께 한라산의 백록담에 오르는 날이 밝았다. 한라산(높이 1,950m)은 분출을 멈춘 휴화산으로 누구나 한 번쯤 오르고 싶은 남한에서 가장 높은 산이다. 백록담뿐만 아니라 다양한 오름이 많고 봄철의 철쭉부터 겨울철의 설경과 운해까지 사계절 다른 정취를 느낄 수 있다. 또한 해발고도에 따라 아열대‧온대‧냉대의 고산식물이 자생하고 한라산의 상징인 노루를 곳곳에서 만나는 것도 산행의 재미다. 백록담에 오를 사람들은 이른 아침을 먹고 6시 30분경 관광버스에 올랐다. 육지와 다른 것이 많은 제주의 풍경을 구경하며 구불구불 굽잇길을 돌아 해발 750m의 성판악에 도착했다. 산행 준비를 하고 주변의 풍경을 카메라에 담았다. 입구의 ‘한라산 정상 등산안내’에 성판악에서 출발해 진달래밭과 정상을 거쳐 관음사지구로 하산하는 산행코스가 자세히 그려져 있다. 몸을 풀고 7시 20분경 한라산 정상을 향해 힘차게 발을 내디뎠다. 900m‧1000m 표석을 지나 화장실이 있는 4.1㎞ 거리의 속밭대피소에서 8시 20분까지 피로회복 시간을 가졌다. 성판악 초입에서 대피소에서 가까운 1100m 표석까지는 평지에 가까운 나무데크와 돌길이 이어지는데다 수목의 싱그러움과 맑은 공기가 발걸음을 가볍게 한다. 산행하는 사람들의 얘기에 귀를 열면 집안. 직장, 모임 얘기가 들려와 남들이 살아가는 모습도 배운다. 샘터와 1200m 표석을 지나면 사라오름 입구다. 이곳에서 사라오름 전망대까지는 왕복 40여분 거리다. 단체 산행은 시간이 문제다. 백록담 방향으로 1300m, 1400m 표석을 지나 경사가 급한 계단길이 끝나는 지점의 평지에 진달래가 한창이다. 이곳의 진달래밭대피소는 컵라면, 식수 등을 파는 매점이 있어 한라산을 찾은 사람들에게 쉼터 역할을 톡톡히 한다. 9시 30분경 도착해 점심을 먹고 10시경 출발했다. 진달래밭을 지나면 힘든 코스가 이어진다. 산행을 시작할 때도 아주 맑은 날씨가 아니었지만 1500m, 1600m, 1700m, 1800m 표석을 지나며 위치가 높아질수록 짙은 구름이 멋진 풍경을 감춘다. 울퉁불퉁한 돌길과 앞을 가린 구름을 뚫고 1900m 표석을 만난다. 기어서라도 갈 수 있는 거리에 백록담이 있어 새로운 힘이 생긴다. 위에서 내려오는 사람들이 백록담을 구경하지 못했다고 실망스런 표정을 짓더니 반원형의 백록담 안내소 위쪽은 구름 속에 모습을 숨겼다. 11시 20분경 한라산 정상에 도착했다. 성판악에서 정상까지 9.6Km, 정상에서 관음사지구까지 8.7Km의 총 18.3km를 오르내리며 고생하는 가장 큰 이유가 백록담을 구경하는 것이다. 하지만 짙은 구름 때문에 기대하지 않고 정상에 올랐다. 그런데 어쩌면 그렇게 한 치 앞을 모르는 인생살이를 닮았는지... 막 도착해 백록담으로 발길을 옮겼을 때 무대의 막이 열리듯 구름이 서서히 사라졌다. 구름이 걷히자 총 둘레 약 3㎞, 동서길이 600m, 남북길이 500m의 타원형 화구 백록담이 모습을 드러냈다. 와아! 목이 마를 만큼 물이 없는 백록담을 바라보며 예서제서 환호성을 지른다. 백록담은 하늘 가까이에서 자연의 아름다움을 간직하고 있다. 백록담이라는 이름은 옛 선인들이 백록주를 마시고 놀았다는 전설과 흰 사슴으로 변한 신선과 선녀의 전설에서 유래했다. 사방의 풍경을 카메라에 담은 후 한라산천연보호구역 백록담 정상 표석, 한라산 동능 정상을 알리는 고사목, 대형 한라산 사진을 배경으로 추억을 남기고 12시 6분경 하산을 시작했다. 관음사지구로 하산하다보면 수시로 모습을 바꾸는 구름과 고사목, 멋진 바위와 북벽이 어우러지며 만든 풍경이 아름답다. 1700m 표석을 지나면 주변에 모양이 특이한 무덤과 군데군데 진달래꽃이 만발한 헬기장이 있다. 급경사 내리막길을 따라가면 30여년 동안 등산객들에게 쉼터를 제공하다 2007년의 폭우로 흔적 없이 사라진 추억의 산장 용진각대피소를 사진으로 만난다. 나무데크 옆에 화장실이 있어 지금도 임시휴게소 역할을 하는데 손색이 없다. 출렁다리와 샘터를 지나 편안한 산책길을 걷다보면 해발 1500m에 위치한 삼각봉대피소다. 대피소 앞 뾰족한 봉우리가 삼각봉이다. 조릿대가 많은 길을 따라가면 1000m표석을 지난다. 삼각봉대피소에서 개미등을 거쳐 탐라계곡 목교까지의 탐방로 2.8㎞는 등산하기 힘든 구간이다. 힘이 들면 언제쯤 끝이 날까를 기다리느라 산행이 지루해진다. 몸과 마음이 지친 것을 아는지 관음사지구 초입에서 ‘한라산은 여러분을 사랑합니다’라는 문구가 반긴다. 탐방로 입구에 바라보기만 해도 마음을 편안하게 해주는 나무들이 많다. 하늘이 잿빛으로 변하더니 제법 굵은 빗방울이 떨어진다. 산에서 막 내려왔으니 이래저래 재수 좋은 날이다. 3시경 차에 올라 제주도특산품매장으로 향했다. 제주여객선터미널에서 5시에 출항할 씨스타크루즈에 승선해 뒤쪽을 바라보니 제주기상대가 가깝게 보인다. 우연만한 생활시설 다 갖춘 크루즈의 내부를 둘러본 후 저녁도 먹고 맥주도 마셨다. 로얄스타호 취항을 기념해 6시부터 7시까지 임시무대에서 외국인 가수들이 라이브로 노래를 부른다. 흥이 난 관광객들이 춤을 추며 스트레스를 푸는 모습이 재미있다. 목포가 가까워지자 조명을 밝힌 목포대교와 유달산의 야경이 아름답다. 9시 40분 목포에 도착해 터미널 광장으로 나오니 입구의 조형물이 비를 맞고 서있다. 10시 20분 목포를 출발한 관광버스가 호남고속도로 이서휴게소와 경부고속도로 죽암휴게소에 들른 후 1시 55분경 청주에 도착했다. 비록 짧은 1박 2일의 여정이었지만 산행을 하며 부자간에 대화를 많이 나눈 유익한 시간이었다.
5일 2014학년도 대학수학능력시험 6월 모의평가가 전국 일선 고등학교에서 시행됐다. 이번 시험은 진행방식이 11월 7일에 실시되는 대학수학능력시험과 똑같아 아이들이 실전에서의 실수를 최소화시키기 위해서라도 각별히 주의를 상기시켜 줄 필요가 있다. 교사들 또한 한국교육과정평가원의 실시요강을 철저히 숙지하고 난 뒤 감독에 임해야 할 것이다. 이번 모의고사가 고등학교 3학년 재학생과 졸업생 또는 이와 동등한 자격이 있는 많은 수험생이 응시하기에 자신의 성적을 가늠하는데 좋은 지표가 되리라 본다. 한국교육과정평가원 주관으로 치러지는 첫 선택형(A형, B형) 수능 모의고사인 만큼 아직 선택과목을 결정하지 못한 아이들에게 중요하게 작용하리라 본다. 우리 학급의 일부 아이들의 경우, 이번 시험 결과를 보고 선택과목을 결정하겠다며 시험에 임하는 자세가 사뭇 남달랐다. 아무쪼록 시험이 끝난 뒤, 후유증으로 아이들이 선택과목을 결정하는데 아무런 어려움이 없기를 기대해 본다.
김복실 강원 김화초 교장은 4일 ‘하늘빛! 물빛! 쪽빛! 천연염색체험’을 주제로 전교생 천연염색체험활동을 실시했다. 학생들은 이날 염색체험을 통해 만든 손수건을 10일 개교 기념 마라톤 대회 때 사용하기로 했다.
김성로 경기 서정중 교장은 12~17일까지 ‘아름다운 세상’을 주제로 인사동 갤러리각에서 개인전시회를 연다. 공주사대 미술교육학과, 홍익대 대학원 서양화과를 졸업한 김 교장은 분할기법을 통해 우리가 살고 있는 세상의 모습을 다채롭게 표현한다.
정정택 국민체육진흥공단 이사장은 8일부터 4박 5일간 올림픽공원에서 국내외 청소년들을 대상으로 ‘태권도 교류 문화활동 캠프’를 개최한다. 태권도 종주국 방문을 희망한 버클리대 대학생 18명과 국내 태권도 특기생 36명이 멘토-멘티로 구성되며 국제적인 태권도 선수로 성장하기 위한 다양한 체험활동을 한다.
서남수 교육부 장관이 달라졌다? 지난 달 28일 자유학기제 운영계획 기자 브리핑을 기점으로 자신감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자유학기제는 서 장관의 첫 브리핑이기도 했다.(국정과제 브리핑은 나승일 차관이 진행) 오전 백브리핑에서 우려 섞인 질문들이 많았기 때문인지, 서 장관은 이날도 ‘정책의 연속성’에 방점을 뒀다. 박근혜정부 출범 100일에 맞춰 진행된 자유학기제 연구학교 발대식 축사 역시 마찬가지였다. 한국교육개발원(KEDI)을 비롯해 인프라 구축에 협력할 기관들을 하나하나 소개하며 공을 들인 것은 물론 “항구적 제도로 정착시키겠다”고 힘주어 말했다. 17개 시‧도교육감, 국회 교문위 위원장과 교원단체장, 42개 연구학교 관계자와 교육지원청 담당자까지 모두 초청해 공개적으로 ‘계속될 정책’이라고 홍보한 사실을 뒤집어 보면, 씁쓸한 교육계 정서가 숨어 있다. ‘정권과 함께 사라진’ 수많은 정책들을 겪어 온 교사, 학생, 학부모를 안심시킴과 동시에 같은 전철을 밟지 않겠다는 다짐이기도 했기 때문이다. 사실 이번 정부는 MB 정책을 단절시키거나 크게 바꾸지 않고 이어가려고 노력하고 있다. 2012년 중학교 1학년부터 적용하기 시작된 성취평가제가 인문계 고교에서 완성되는 2016년에 맞춰 중학교 자유학기제를 비롯한 모든 초‧중‧고에 핵심성취기준 도입, 입시제도 변경 등 로드맵이 진행되고 있는 것도 그렇다. 그러나 화려한 발대식과 교육부 장관의 자신에 찬 일성(一聲)에도 자유학기제 등 일련의 정책들의 성공을 낙관하기는 어렵다. 이상(理想)에 비해 현실은 교육과정과 교과서, 성취기준과 핵심성취기준, 선행학습과 심화학습의 차이 등에 대한 개념조차 모호한 ‘미성숙’ 단계 수준임을 인정해야 하기 때문이다. 4일 발대식과 같은 시간에 열린 ‘핵심성취기준 개발 워크숍’에서도 이런 모습은 포착됐다. 교육과정 전문가들이 모였지만 ‘성취기준을 덜어내거나 감축하는 것’으로 오해하는 등 우왕좌왕하고 있음을 드러낸 것이다. 신학용 국회 교문위원장은 발대식 축사에서 “아무리 좋은 정책도 혼자해서는 안 된다”고 조언했다. 신 위원장은 학부모들과 싸워야 한다고 강조했지만, 그보다 먼저 교사와 교‧사대 교수 및 학생, 관계기관 전문가들부터 설득해야 한다. ‘수업이 탄력‧집중적으로 이뤄지고, 교사가 학생들과 더불어 심도 있게 활동할 수 있도록 전체적 성취기준을 압축‧확장하는 것’이 핵심성취기준임을 이들에게 이해시키지 못하면, 학부모와의 전쟁은 시작조차 할 수 없을 것이기 때문이다. 또 약속을 중요시하는 박근혜정부의 교육부 장관이 공식석상에서만 두 번을 강조한 정책의 항구성과 연속성이 빈말이 아님을 보여줘야 한다. ‘자유학기제 지원센터(KEDI)’가 5년 한시조직이거나, 자유학기제 연구‧희망학교에 대한 운영 예산도 지자체에 슬쩍 떠 넘겨서는 ‘제도의 항구성’을 신뢰할 수 없지 않겠는가.
지난달 17일부터 이틀간 청주의 ‘사람과 산’ 회원들과 목포와 제주를 여객선으로 오가는 산행을 다녀왔다. 이번 산행은 취업 공부로 몸과 마음이 지친 둘째에게 휴식을 주고자 여행이었다. 또한 시간에 구애받지 않고 유달산의 일등봉과 한라산의 백록담에서 부자간에 자유를 만끽하는데 의미를 뒀다. 출발 시간인 5시가 지나자 88명을 태운 관광버스 두 대가 목포로 향한다. 차창 밖으로 파란 하늘에 흰 구름이 보여 여행 떠나는 사람들을 설레게 한다. 이른 시간에 떠나는 여행은 급하게 서둘러야 해 사연도 많다. 늦게 일어나 목포에서 합류하는 회원도 있다. 7시경 호남고속도로를 달리던 관광버스가 백양사휴게소에 도착했다. 화장실에 다녀오다 우연히 바라본 하늘에 평행선이 그려져 있다. 삶이 뭐 별건가. 때로는 여행길에 만난 멋진 풍경이 삶의 활력소가 된다. 무안광주고속도로와 서해안고속도로를 부지런히 달리더니 푸른 바다가 보인다. 오른편 바닷가로 압해대교, 목포대교, 목포해양대를 지나쳐 8시 40분경 목포연안여객선터미널 앞에 도착했다. 여객선터미널 주변은 뜨내기손님이 들르는 곳이라 음식 맛이 비슷하다. 아침을 먹은 후 터미널 안팎과 우리가 제주도에서 타고 올 로얄스타호가 출항하는 모습을 구경했다. 내륙의 큰 산줄기가 바닷가에 이르러 기암괴석으로 솟아오른 유달산. 이곳에 오르지 않았으면 목포에 다녀왔다고 말하지 말라 했다. 유달산(높이 228m)은 목포의 뒷산으로 야트막하지만 목포시내와 다도해를 한눈에 굽어볼 수 있는 명산이다. 이순신 장군이 전술에 이용했다는 노적봉, 영혼이 심판 받는다는 일등바위(율동바위), 심판 받은 영혼이 이동한다는 이등바위(이동바위) 등 갖가지 기암괴석과 병풍처럼 솟아오른 기암절벽이 이어져 '영달산' 혹은 ‘호남의 개골’이라고도 한다. 9시 30분부터 유달산 산행을 시작했다. 노적봉은 유달산 초입에 있는 해발 60m의 큰 바위덩어리다. 임진왜란 때 이순신 장군이 군량미를 쌓아놓은 것처럼 노적봉을 이엉으로 덮어 멀리서 바라본 왜적들이 저렇게 군량이 많으니 군사 또한 많을 것이라며 도망치게 했다. 노적봉 옆에 밀레니엄 새천년을 앞두고 제작한 ‘새천년시민의종’과 우리나라에서 최초로 정규 기상관측을 시작한 옛 목포기상대 터를 기리는 ‘근대기상 100주년 기념’ 표석이 있다. 종각 처마에 김대중 전 대통령의 친필 현판이 걸려있다. 유달산은 오르지 않고도 왜 목포를 대표하는지 알 수 있는 산이다. 노적봉에서 앞을 바라보면 멋진 분재와 수석이 가득한 산이 정원처럼 펼쳐진다. 수목과 암석이 어우러진 풍경이 한 폭의 그림을 펼쳐놓은 것처럼 아름답다. 유달산과 유달산정기 표석을 구경하며 계단을 오르면 초입부터 멋있는 복바위(쥐바위,탕건바위)가 맞이한다. 두 번째 계단을 오르면 이순신장군동상이 서있고, 충성을 그리워하는 모충(慕忠) 표석을 지나 대학루로 가면 오포대가 있다. 원래 시민종각 위치에 있었던 오포는 1909년 1월부터 목포 시민들에게 정오를 알리기 위해 화약만 넣어 사용했는데 전쟁도구를 생활도구로 이용했다는 것이 특이하다. 남녀노소 누구나 산책하듯 가볍게 다녀올 수 있는 유달산에 대학루, 달성각, 유선각, 관운각, 소요정 정자가 있다. 이곳 정자에 앉아 아래를 내려다보면 유달산의 진면목이 느껴진다. 가깝게 또는 멀리 바라보이는 바다와 도시의 풍경이 일품이다. 한 남자를 사모했던 세자매가 사랑을 이루지 못한 채 학이 되어 하늘로 날아간 자리에 생겼다는 삼학도가 가깝게 보인다. 목포의 눈물, 목포는 항구다, 목포의 추억... 목포가 제목에 등장하는 노래들이 국민가요로 사랑받은 이유가 있다. 목포는 인근의 여러 섬을 비롯해 제주와 일본을 연결하는 호남의 대표적인 항구도시이다. 나라 잃은 설움과 가난으로 고생하던 시절 목포는 애환의 중심지였다. 유달산 중턱에서 이난영이 노래한 목포의 눈물 노래비를 만난다. 노래비에 앉아 흘러나오는 노랫가락을 음미해본다. 천자총통이 있는 광장에서 발포를 체험할 수 있는 기회도 주어진다. 발포가 눈 깜짝할 사이에 이뤄져 포연만 카메라에 담았다. 투구와 코뿔소를 닮은 투구바위를 지나면 일제 때 목포 개항 35주년을 기념하여 만든 유선각이 있다. 정자에서 목포 시내가 한눈에 내려다보인다. 유달산은 거대한 수석전시장이다. 큰 고래가 입을 벌리고 있는 고래바위, 아래쪽에서 보면 서양식 종 모양인 종바위, 애기를 업은 큰 엄씨가 작은 엄씨에게 등을 돌리고 있는 애기바위(두 엄씨바위), 손가락을 걸고 약속하는 손가락바위를 차례로 만난다. 관운각을 지나면 앞 끝이 살짝 위로 올라간 나막신바위와 사각기둥 모양의 입석이 길게 뻗은 입석바위가 기다린다. 마당바위에 올라서면 바로 앞에서 일등봉이 위용을 자랑하고 다도해의 경관이 한눈에 내려다보인다. 목포 시내와 다도해, 일등바위와 목포대교, 크고 작은 선박들이 시원스레 물살을 가르는 모습이 한 폭의 동양화다. 이렇게 멋진 곳에 1920년경 일본 불교를 전파하고자 홍법대사 상과 부동명왕 상을 조각해 눈엣가시다. 일등봉(일등바위)은 유달산에서 제일 높은 봉우리로 사람이 죽어서 영혼의 심판을 받는다하여 율동(律動)바위로도 불린다. 해발 228m를 알리는 유달산 정상 표석을 배경으로 추억도 남긴다. 이등바위 방향으로 내려서면 거북이를 닮은 흔들바위를 만난다. 큼지막한 바위에 올라서면 사람의 무게 때문에 바위가 균형을 잃을까 조바심이 난다. 아래로 지나가는 사람들을 보고 포효하는 얼굴바위에서 바다 방향을 바라보면 고하도와 용머리, 목포대교 뒤편의 달리도․장좌도․외달도가 가깝게 보인다. 주변에 멋진 바위들이 많다. 이곳에 올라 소요정과 여러 개의 바위가 무리를 이룬 이등바위(이동바위)를 바라보며 휴식한다. 전설에 의하면 일등바위에서 심판 받은 영혼이 이등바위에서 대기하다 삼학도의 3마리 학이나 고하도 용머리의 용에 실려 극락세계로 떠나거나 거북섬(龜島)의 거북이 등에 실려 용궁으로 떠났다. 점심을 먹은 후 유달산과 목포해양대학교, 목포대교, 고하도와 허사도를 지나 해남의 우수영임시여객선터미널로 갔다. 터미널에서 가까운 법정스님의 생가를 찾아갔다. 강강술래길의 시골집이 평생 '무소유'의 삶을 실천한 스님을 닮았다. 오후 2시 40분이 되자 3월 29일 첫 출항한 로얄스타호가 제주도로 향한다. 내해는 펄이 많아 바닷물이 흙탕물처럼 탁하다. 갑판에 올라 하의도, 조도, 관매도 등 크고 작은 섬들이 나타났다 사라지는 모습을 구경했다. 섬의 모습이 다르듯 사람들이 감판 위에서 여행을 즐기는 방법도 제각각이다. 왕년에 전선을 호령했던 참전노인들은 조용히 소주잔을 비우는데 오랜만에 구속에서 해방된 아줌마들은 왁자지껄 맥주잔을 돌리며 자유를 만끽한다. 제주도 부근의 해상 기상 악화로 배가 많이 흔들린다. 배 멀미로 고생하는 사람들이 늘어나고 도착시간이 늦어진다. 조급해 한다고 해결될 일도 아니다. 여유를 누리며 시구를 떠올렸다. 내해는/ 바다 속 뻘 뒤집어/ 흙탕물 만들고// 외해는/ 사람들 속 뒤집어/ 갈지자 걷게 한다 6시경 제주도가 보인다. 항구에 도착하고도 땅에 발을 내딛는데 오랜 시간이 걸렸다. 연동의 숙소에 짐을 푼 후 저녁을 먹고 밖으로 나오니 어둡다. 택시 요금 5천원 거리의 용두암으로 갔다. 아들과 산책을 하며 용두암 주변의 야경을 즐기는데 밤늦게까지 중국인 관광객들을 만난다. 용두암에서 가까운 선상횟집(064-742-5206, 011-9660-5206)에서 갈치 회를 먹었다. 주인의 인상이 선해 보여 들어갔더니 은빛갈치를 맛나게 하는 소스, 문어숙회 등 깔끔한 곁두리 음식, 진경국 사장님과 아드님의 친절한 서비스, 외부 손님에게 실내의 화장실을 선뜻 내주는 인간미 등 시간이 지날수록 이영돈의 먹거리 파일에 나오는 착한 가게를 닮았다. 문어숙회를 리필 받으며 아들과 오랫동안 얘기를 나누다 숙소로 갔다.
세상 많이 변했다. 옛날엔 남성 위주의 사회였지만 지금은 여성 상위시대다. 가정에서도 그렇고 특히 교직사회에서 여성의 파워는 점차 커지고 있다. 그러다 보니 남성들이 밀리고 있다. 숫자 면에서 열세다. 어떤 경우에는 약자가 되기도 한다. 우리 학교 남자친목회, 줄여서 남친회다. 어제 퇴근후 광교산 문암골 보리밥집에서 모임이 있었다. 모여서 저녁먹고 대화 나누고 윷놀이하면서 친목을 도모하려는 것이다. 교직원 73명 중 남성은 19명이다. 교원, 행정실, 운동부 코치까지 합친 인원 수이다. 오늘 17명이 모였다. 매월 일정액의 회비를 내면서 돈을 적립한다. 지난 3월에 갖고 이번 모임이 두번째다. 이런 모임을 통해서 친목을 도모하면서 서로 사귀는 것이다. 같은 직장이지만 교무실이 다를 경우 일년 내내 대화 나누기가 힘들다. 업무 관련성이 없으면 더욱 그렇다. 저녁 5시 30분. 음식점에 모여 저녁식사부터 한다. 메뉴는 오리백숙과 영양수육이다. 희망에 따라 음식을 먹는다. 술 한잔도 곁들인다. 이 때 회장이 편을 나눈다. 사다리타기로 하는데 고유번호를 정하면 4명 1조로 편성된다. 밖으로 나와옆마당에서의 윷놀이. 규칙이 있다. 윷을 던지는데 1미터 정도 거리에서던진다. 윷이 하나만 판에서 나가면 낙, 라인 밟으면 아웃이다. 이러다 보니 모나 윷 등 기술적 요인보다 낙이 많이 나온다. 특히 결정적인 순간에 나오는 낙은 웃음꽃을 피게 한다. 광교산 녹음을 바라보면서 시냇물 소리 들으며 즐기는 윷놀이는 낭만이 있다. 그러나 욕심도 있다. 내기이므로 이겨야 하는속마음을 숨길 수 없다. 어느 팀은 계속 끌려다니다가 역전을 한다. 낙만 10여 차례 하던 교사가 윷으로 상대방 말을 잡으며 역전시킨다. 필자의 경우, 다 이긴 것을 놓쳤다. 역전패 했다. 맨 마지막 말이 끝에 놓인 상황.낙만 하지 않고 아무거나 나와도 이기는 것이었다. 그런데 무엇이 나왔을까? 나오기 어려운 '빽도'가 나왔다. 그대로 있었으면 상대방에게 '윷낀'을 주는 건데 '걸낀'을 주었다. 결국 잡혔다. 상대편은 환호성이다. 야구에서는 9회말 투아웃부터라는데 윷놀이도 마지막 말이 나올 때까지 안심할 수가 없다. 상대방에게 말을 잡히면 다시 시작해야 하기 때문에 공들여 쌓은 탑이 무너진 것이다. 대신 상대방은 의기양양하다. 상대가 잘 되면우리편이 불리하다. 이런 상황에서 상대를 격려할 수도 없다. 그러나 어디까지나 친목행사다. 이기려는 욕심을 억제하고 상대방에게 베풀려는 마음을 가지면 좋은 이미지를 준다. 억기로 이기든가 억지를 써서 이기면 친목이 깨진다. 윷놀이 규칙이 엄격하면 억지를 부릴 수도 없다. 어찌보면 승패를 운에 맡긴다. 윷놀이를 하는 동안 웃고 소리치면서 스트레스 다 해소했다.그리고 이어지는 맥주 한 잔. 친목이 더 다져진다. 직장에서 하지 못했던 이야기도 허심탄회하게 나눌 수 있다. 때론 충고나 조언도 오고간다. 필자는 '직장생활에서 먼저 화내는 사람은 미성숙함을 드러내는 것'이라고 말한다.직장 화합을 강조하는 것이다. 오늘 우리 학교 남자 교직원, 윷놀이로 정신건강 평온함을 찾았다.
아무리 좋은 교사에게 잘 배워도 학생 본인이 배운 것을 스스로 익혀서 자신의 것으로 만들지 못하면 제대로 공부했다고 하기 힘들다. 부산 석포초(교장 강형렬)에 주목해야 하는 이유는 바로 전교생이 자기주도학습을 실천하고 있기 때문이다. 학습 콘텐츠의 변화를 중요하게 여긴 석포초는 2009년부터 석포초만의 장점을 만들기 위해 노력했다. 맞벌이 가정이 많고 상대적으로 열악한 환경에 있는 학생들이 성장하는데 ‘자기주도학습’ 만큼 필요한 것이 없다고 판단하고 이것을 중점 과제로 삼아 교육과정을 새로 짰다. 2011년 교과부의 자율형 창의경영학교로 지정·운영되면서 방과 후 학습 매니저의 지도하에 스스로 공부할 수 있는 장소인 ‘꿈나래방’을 만들어 자기주도학습법을 학교 교육에 접목시켰다. 이런 성과로 ‘전국 100대 인성교육실천 우수학교’로 선정되면서 자신감을 얻은 석포초는 2012년, 모든 수업에 자기주도학습을 바탕으로 하는 새로운 수업 모델을 도입했다. 올해는 학교라는 울타리를 벗어나 지역사회 자원을 활용하는 등 가정에서도 스스로 공부하고 성취하는 능동적 학생으로 발전시키는 것이 새로운 목표다. 스스로 공부‧내실 있는 수업 자기주도학습이란 스스로 공부하는 것을 의미한다. 수업을 듣고 그것을 이해하고 정리하는 모든 과정을 본인의 계획 아래 하는 것, 그것이 바로 올바른 자기주도학습이다. 석포초는 학생들이 효과적으로 배우고 익히는 ‘학습방법’을 학기 초부터 익히도록 한 결과, 지금은 많은 학생들이 자기 주도적 수업 및 학습을 하는 것이 가능해졌다. 숙제를 따로 내지 않아도 수업 시간에 배울 내용을 예습해 오고, 수업이 시작되면 배울 내용의 핵심 낱말을 찾아 개념 학습을 하고, 모둠 활동을 통해 학습 목표를 달성해 발표하며, 본인 스스로 그날 배운 내용을 정리하는 과정이 반복되는 것이다. 수업이 끝난 후에는 ‘꿈나래방’에서 스스로 복습 하고 자신이 계획 한 공부를 보충한다. 자신의 수준에 맞는 공부 방법을 찾아 학습에 임하게 되자 블록타임제나 교과집중이수제 등 학교에서 추진하는 수업방식 역시 훨씬 좋은 효과를 거두게 됐다. 교사들의 노력과 열정도 돋보인다. 전 교원이 30시간짜리 ‘학습상담사과정’ 연수를 받고, 심화 과정을 배우고 싶은 교사들은 60시간 연수를 더 받는다. 이와 함께 ‘학습력 향상의 비밀’이라는 연수도 전 교원이 받고 있다. 연수 후에는 학생들에게 적용할 수 있는 교재를 직접 만들어 수업에 활용한다. 공부하는 습관 쑥쑥, ‘꿈나래방’ 자기주도학습 시스템을 가장 잘 확인할 수 있는 곳은 ‘꿈나래방’이다. 방과 후 자기주도학습을 할 수 있는 곳으로 개인 독서대 및 의자가 구비돼 있어 독립적으로 공부할 수 있다. 3~6학년 중 희망하는 학생은 누구나 참여 할 수 있다. 학교 일과 시간 이후인 오후 2시부터 7시 사이에 자신이 원하는 때, 원하는 요일에, 원하는 시간만큼 공부하면 되는데, 자율적으로 운영되지만 그 안에서의 규칙만은 철저하다. 일단 꿈나래방에 입실하면 출석체크 후 좌석을 배정받는다. 메모지에 오늘의 학습 목표와 학습 계획을 적어 학습 매니저와 상의한다. 꿈나래방의 운영을 위해 따로 채용된 학습 매니저는 이곳에 상주하며 학생들을 도와준다. 계획을 세운대로 공부하다가 질문할 부분이 생기면 학습 매니저의 도움을 받는다. 공부가 끝나면 매니저와 학습한 부분을 확인하고 퇴실한다. 스스로 계획을 세우고 부족한 부분은 코칭을 받는 공부 습관이 반복되면서 꿈나래방에 참여하는 학생들은 성적이 평균 5점 이상 올랐고, 공부에 흥미도 갖게 됐다. 공감‧배려 배우는 ‘MAGIC-AI’ 인성 및 창의 교육을 확인할 수 있는 활동 중 하나가 매직아이(MAGIC-AI) 활동이다. 반마다 급훈처럼 ‘학급헌법’을 정해 교실 입구에 걸어두고 이를 지키도록 격려하는 약속의 M(Manifesto), 매월 8일을 ‘효(孝) 데이’로 정해 가족 사랑을 느끼는 예절의 A(Adoration), 폭력을 쓰지 않고 먼저 인사 하며 공감대화를 나누는 좋은 습관의G(Good habit), ‘꿈 자람 인증제’를 통해 자신의 재능을 확인하는 꿈과 재능의 I(Idea), 자발적으로 실내 생활을 지도하고 교실을 정리하는 ‘자율봉사대’와 자신의 재능으로 또래 친구들을 가르치고 이끌어 주는 ‘또래 도우미제’를 시행하는 배려의 C(Consideration)가 그것이다. 이런 활동을 통해 학생들은 서로에 대해 공감하고 상대를 배려할 줄 아는 올바른 인성을 키운다. 1년 과정 한눈에…‘평가 알리미’ 성적표는 시험 결과를 알려 주는 것이지만 1년간의 성적표를 모아 비교해보면 얼마나 성장했는지 알 수 있는 중요한 지표가 된다. 석포초는 개인별로 ‘평가 알리미’라는 파일을 만들었다. 기초학습 및 교과학습 진단평가 결과를 시작으로 1, 2학기 중간고사와 학업성취도 평가 결과를 클리어 파일에 차곡차곡 모은다. 학기 중에 실시하는 표준화 심리검사 결과까지 첨부해 학생의 재능과 심리 상태까지 한눈에 파악할 수 있도록 도와준다. 1년간 학생의 활동 결과를 한데 모은 평가 알리미를 보면 그 학생이 얼마나 변화하고 발전했는지 한 눈에 확인할 수 있고, 부족한 부분이 무엇인지도 명확하게 나타난다. 성장포트폴리오=진로 길잡이 ‘나의 스토리’는 초등학교 생활에 대한 자신의 성장 기록 포트폴리오다. 초등학교 시절에 꾸었던 꿈, 진로와 연계한 체험학습, 그룹별 프로젝트학습․자유탐구 결과물뿐만 아니라 비교과활동으로 문화예술체험, 자연관찰, 탐구활동, 직업체험, 상장, 자격증 등 다양한 체험활동을 한 후 결과물을 차곡차곡 스크랩한다. ‘나의 스토리’는 혼자만의 활동이나 잘하는 점이 아닌 여러 친구들과 함께 활동하면서 내 역할의 소중함을 알게 하는 사회문화적인 가치와 올바른 인성을 기르는 데도 큰 의미가 있다. 주5일제의 주말, 방학을 유의미하게 보낼 수 있도록 유도한 ‘나의 스토리’는 향후 아이들이 청소년이 됐을 때 자신의 진로를 설정할 때 방향을 잡는 중요한 길잡이가 될 것이다. “교육 목표는 STAR입니다” 우리 학교의 교육 목표는 ‘STAR’라는 단어 로 집약할 수 있습니다. 학생들이 스스로 자신을 사랑하는 자존감(Self-esteem)을 갖고 서로를 배려(Tolerance)하며, 학습능력(Ability)을 기르고 친구와 부모님, 교사를 존중(Respect)하는 학생이 되는 것입니다. 자존감을 갖고 주도적으로 자신의 삶을 사랑하며, 상대도 나와 같은 존재임을 깨닫고 배려하고 존중하며, 공부도 열심히 하는 학생으로 크는 석포초 학생들을 기대해주십시오. -강형렬 교장 “자기주도학습장, 좋아요” 우리학교에는 조용한 분위기에서 집중해 공부할 수 있는 꿈나래방이 있어서 참 좋습니다. 하루에 1시간씩 꿈나래방에 들러 그날 공부한 내용을 복습하고 학습매니저 선생님의 도움을 받아 공부하다 보니 나만의 방법도 터득하게 됐어요. 그리고 ‘석포 자기주도학습장’에는 공책을 효과적으로 활용하는 방법도 안내돼 있어 공부한 내용을 내가 알고 있는 여러 가지 방법으로 정리를 하다 보니 성적도 많이 올랐어요. 처음에는 ‘내가 잘 할 수 있을까’ 걱정도 됐는데 이제는 매일 아침 학습플래너에 오늘의 학습계획을 세우고 꿈나래방에서 복습하고 자기주도학습장을 꼼꼼히 정리하는 것이 습관이 돼 부모님께도 칭찬해 주셔서 저절로 신이 나고 공부가 재미있어요. -최지윤 6학년 “적게 가르치고 많이 학습” 자율형 창의경영학교 운영 3년째인 올해는 학교 밖에서도 스스로 찾아서 공부하는 ‘적게 가르치고 많이 학습하는 활동’을 전개합니다. 학생들이 학교 주변에 있는 다양한 지역사회 자원을 활용해 프로젝트학습을 통한 자기주도학습을 하는 것입니다. 주변에 부산 박물관, 대연 수목전시관, 부산문화회관, 유엔기념공원, 대학, 일제강제동원 역사기념관(건립 중) 등 부산의 대표적인 교육적 문화적 공간을 가까이 하고 있는 우리학교는 학생들이 스스로 프로젝트학습 주제를 정해 친구들과 함께 방과 후나 주말, 방학에 걸어서도 다양한 체험과 공부하기에 아주 좋은 환경을 가지고 있습니다. 친구들끼리 한데 모여 평소에 관심 있는 주제를 정하고 문제해결을 위해 즐겁게 계획하는 모습을 보면서 저 또한 무한한 설렘과 기대를 갖게 됩니다. -장성옥 교사
꿈ㆍ사랑ㆍ재능을 키우는 격포초(교장 김윤배)는 지난달 29일 부안군다문화가족지원센터와 ‘정보소외계층 정보화교육’에 대한 협약을 체결했다. 부안군과 MOU 협약 사업으로, 지역사회 다문화 가정 컴퓨터교실을 12월까지 매주 수요일과 금요일 15:00-17:00에 본교 컴퓨터실에서 변산면 결혼이민자를 대상으로 운영한다. 정보화 교육은 인터넷 기초반 ․ 인터넷 활용반 ․ 컴퓨터 자격증반 등을 통해 정보교육의 사각지대 해소 및 결혼이주여성의 정보 활용 능력을 향상시키고, 정보화 교육 관련 자격증 취득 지원을 통한 취업기회를 마련하고자 한다. 처음은 10여명으로 시작했지만 앞으로 확대해 변산지역 다문화 가정과 지역주민 및 학부모의 한글, 인터넷 검색 등 다얀한 프로그램을 내실있게 운영해 우리나라에 빨리 적응하고 나라사랑하는 마음을 갖도록하고 있다. 학교장은 개강식에서 정보소외계층 정보화교육의 필요성과 6월 호국 보훈의 달을 맞이해 우리나라 국민으로서 나라사랑하는 마음도 강조했다. 한편 격포초는 정보화 교육을 비롯한 다양한 체험학습을 통해 학생들이 즐겁게 공부하며 꿈ㆍ사랑ㆍ재능을 키우는 즐거운 학교를 만들기 위해 교육공동체가 한마음이돼 노력하고 있다.
며칠 전에 교육지원청에서 한통의 전화를 받았다. '13년 전에 담임을 맡았던 홍○○라는 학생이 선생님을 찾는다고 합니다. 그 분의 전화번호를 알려 드릴테니, 연락을 하시는 것은 선생님이 판단 하시면 됩니다.'라는 내용이었다. 잠시 생각을 해 보니, 2001년 3학년 8반 담임을 했던 여학생 이었다. 그 학교에 부임 첫해에 담임을 했던 학생중 한 명이었다. 항상 건강해서 좋겠다라는 이야기를 해 주었던 녀석이었다. 사실 몸무게가 좀 나가서 그런 이야기를 했었다. 살을 빼라는 이야기를 하기에는 상처를 줄 것 같아서 늘 건강해 보인다는 이야기를 많이 해 주었던 녀석이었다. 그 당시 재직했던 학교는 여학교에서 남녀공학으로 바뀐 학교였다. 부임해 간 첫해에 담임을 했는데, 그때 2, 3학년이 여학생이었고, 1학년에는 남학생도 있었다. 교직에 들어서서 담임을 수없이 했지만 여학생 학급을 맡은 것은 그때가 처음이자 마지막 이었다. 현재 서울에는 남녀공학 중학교가 거의 없다. 극히 일부 학교를 제외하고는 모두 남 여 공학으로 바뀐 상황이다. 현재 재직하고 있는 학교도 여학교에서 남녀공학으로 변경된 학교다. 따라서 앞으로 여학생 학급을 맡을 가능성은 매우 낮다. 특히 필자가 근무하는 교육지원청 관내에서는 공립 여자중학교가 한 군데도 없다. 거의 가능성이 없는 것이다. 그런데 이해가 안되는 부분이 있었다. 필자는 1995년부터 핸드폰을 가지고 있었다. 잘 아는 독자도 계시겠지만 그때는 전화기의 크기도 컸고, 개통하는데 돈도 많이 들었다. 보증금도 있고 뭐 그런 시기였다. 그래도 담임을 잘 할려면 수시로 연락을 해야 한다는 생각에 무리해서 핸드폰을 구입했었다. 현재까지 통신사를 한번도 바꾸지 않고 그 번호 그대로 사용 중이다. 아이들은 시대에 뒤떨어진 2G핸드폰을 쓴다고 아우성이지만 계속 사용하고 있다. 그 이유는 간단하다. 막연한 기대감 때문이다. 혹시나 예전에 담임했던 제자들이 찾게 된다면 그 번호 그대로이니 쉽게 찾는데 도움이 되지 않을까 싶어서이다. 실제로 혹시나 하고 전화를 했던 제자들을 만난 적이 여러번 있다. 그런데 이번의 경우는 핸드폰 개통시기보다 한 참이나 뒤에 담임했던 경우였음에도 교육지원청을 통해 찾은 것이 이해가 되지 않았다. '선생님 핸드폰 번호 안 바꿨는데, 교육지원청에까지 연락을 해서 찾아야 했니? 그냥 한번 전화를 해보지 그랬니.'라고 이야기를 했더니, '요즈음 011번호를 누가 써요. 당연히 번호 변경됐을 것으로 생각하고 교육청에 전화한 거예요. 아직도 그번호 쓰신다니 대단하시네요. 그런데 요즈음 011쓰면 놀림 받아요.' 전화번호 이야기는 그 선에서 끝내고 주말에 만나기로 했다. 토요일에 학교로 몇명 더 찾아왔다. 사실 그 중에는 간혹 연락이 되는 녀석도 있었다. 자기들끼리 서로 연락을 잘 안했던 모양이었다. 추억을 더듬으면서 이런 저런 이야기를 나누다보니 점심시간이돼 갔다. 같이 나가서 점심이나 먹자고 했다. 그랬더니 한 녀석이 '중학교때 선생님이 가끔 사 주셨던 짜장면 먹고 싶어요. 추억의 짜장면 어때요?'라고 하는 것이었다. 그래도 결혼할 나이가 되었는데, 어떻게 짜장면을 먹느냐고 했더니, 그래도 짜장면을 먹으면서 이야기 하고 싶다는 했다. 근처의 중화요리 집으로 이동을 했다. 그런데 이녀석들이 이미 올때부터 짜장면을 먹기로 약속을 한 모양이었다. 추억도 추억이지만 부담을 주지 않도록 하자고 했다는 것이다. 자신들이 이제 성인이 됐기 때문에 같이 짜장면 먹으면서 옛날 이야기를 하면 더 많은 이야기가 나올 것이라는 이야기도 했다. 학교에 다닐때는 그렇게 천방지축이었던 아이들이 훌쩍 자란 것을 보니 왠지 뿌듯한 마음이 생겼다. 필자를 찾는다고 했던 그 녀석은 원래부터 성격이 남달랐다. 중학교때 부터 같이 뭐라도 먹으면 선생님 먼저 드시라고 챙겨주고, 친구들도 챙겨주는 남을 배려하는 성격을 가지고 있었다. 그러니 그 녀석을 따르는 친구들이 많을 수밖에 없었다. 이번에 같이 식사를 하러 가서도 그 성격은 그대로였다. 어쩌면 그녀석과 결혼을 하는 사람은 정말로 복을 받은 것이나 마찬가지라는 생각이 든다. 점심식사를 마치고 다음에 또 찾아 뵙겠다고 하면서 결혼하게 되면 꼭 연락을 주겠다고 한다. 벌써 결혼할 나이가 되었다니 믿어지지 않았다. 그래도 이 녀석들이 중3때 담임을 찾아 준것이 마냥 고맙기만 했다. 성인이 되면 선생님을 잘 안찾아오는 경우들이 많다. 고등학교때 까지는 자주 찾던 아이들도 대학가면 횟수가 줄어들고 대학졸업하고 직장인이 되면 발길을 끊는 경우들이 많은데, 30이 다 돼가는 녀석들이 찾아주었으니 반갑고 고마울 따름이었다. 어쩌면 제자들이 자라서 성인이 되고, 그 녀석들이 잘 돼서 찾아오는 것을 고대하는 것이 바로 교사가 아닐까 싶었다. 필자뿐 아니라 모든 교사들의 바람이기도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