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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세검색시행령에 따르면 교육부장관은 5년마다 인성교육 종합계획을 수립하게 된다. 이를 바탕으로 시·도교육감은 학교 교육과정 편성·운영에 관한 사항, 재원 조달 및 관리방안 등을 담은 시행계획을 매 학년도 시작 3개월 전까지 수립해야 한다. 다만 이번에 한해 오는 11월까지 종합계획을, 내년 1월까지 시행계획을 수립키로 했다. 인성교육 종합계획과 시행계획에는 학교·가정·지역사회·범사회적 인성교육 실천과 확산에 필요한 사항을 담도록 했다. 인성교육과 관련한 사항을 심의하기 위한 인성교육진흥위원회의 구성원도 교육 종사자 외에 학부모 대표, 비영리민간단체 추천자, 인성교육 관련 단체 및 학회 추천자 등을 포함시키도록 하고 있다. 국가나 지방자치단체는 인성교육 프로그램에 대한 주기적인 수요조사를 하고, 보유하고 있는 시설이나 자료 제공에 적극 협조해야 한다. 또 인성교육진흥협의회를 구성·운영할 수 있도록 인성교육 지원에 대한 부분도 명기했다. 학교뿐만 아니라 범사회적으로 힘을 모아 인성교육을 추진해 나가겠다는 의미다. 인성교육 관련 교원 연수는 연간 4시간 이상 이수로 정해졌다. 당초에는 연간 15시간 이상 이수를 명시해 입법예고 과정에서 교원들에게 과도한 부담을 준다는 의견이 많았다. 현행 연수기관에서 실시하는 직무연수와 더불어 학교장이 학교교육계획에 따라 다양한 방식으로 실시하는 연수도 포함시켰다. 인성교육법 도입으로 가장 논란이 됐던 대입전형 인성평가는 전면 백지화됐다. 교육부는 “대입전형 과정에서 인성항목만을 별도로 계량화해 평가하거나 독자적인 전형요소로 반영해서는 안된다”고 밝혔다. 인성교육 관련 민간자격증은 학교생활기록부나 자기소개서에 기재할 수 없고 대입에도 반영되지 않는다. 단, 학생부 종합전형 등의 서류나 면접 평가에서 인성 등 다각적인 정의적 특성을 종합적으로 평가하고 있는 부분에 대해서는 대학의 자율성을 존중하겠다고 밝혔다. 실태조사를 통해 민간 자격증의 허위·과장 광고 등 위법사항에 대해서는 형사고발을 통해 자격검정 정지나 등록 취소 등의 조치를 할 예정이다. 이는 교육부가 지난 1월 대통령 업무보고를 통해 2017학년도부터 교대와 사대를 중심으로 대입 전형에서 인성평가를 강화하고 인성평가 우수 대학에 인센티브를 주겠다고 밝힌 방침에서 한발 물러선 것이다. 인성을 어떤 기준으로 평가할 수 있느냐는 비판 여론과 법 시행을 앞두고 250여 개의 민간자격증이 도입되는 등 새로운 사교육 시장이 형성되는 현실을 반영했다는 분석이다. 그러나 교육부가 설익은 정책을 내놓으며 혼란을 가중시켰다는 비판을 면치는 못하게 됐다. 인성교육에 대한 평가는 종합계획이나 시행계획의 달성 정도, 교육 프로그램에 대한 만족도 등을 중심으로 매년 실시하고 이를 교육부나 교육청 홈페이지에 공개하게 된다.
2011년 대구 중학생 자살사건은 성과 지향의 가속페달만을 높이는 우리 교육에 각성과 자성을 요구했다. ‘기본’을 잃어 곳곳서 벌어지는 병리현상을 근본적으로 예방하고 사람이 중심인 세상을 회복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여기저기서 터져나왔다. 뼈저린 반성과 실천의지는 누구보다 교육계에서 먼저 시작됐다. 교총은 2012년 스승의 날 기념식에서 ‘인성교육 범국민운동 전개’를 선언했다. 교실 액자 속 문구로만 내걸린 ‘전인교육’을 다시 회복하겠다는 다짐이었다. 하지만 학교가 모든 걸 하겠다는 과거의 방식은 아니었다. ‘한 아이를 키우려면 온 마을이 필요하다’는 점을 강조한 교총은 같은 해 7월 24일 160여개 교육시민단체를 참여시켜 ‘인성교육범국민실천연합’(이하 인실련)을 결성했다. 가정의 밥상머리교육, 학교의 전인교육이 살아나고 사회 전체가 교실이 돼야 인성교육이 뿌리내릴 수 있다는 생각이 모아진 것이다. 교총은 법․제도적 기반 마련에도 산파 역을 자처했다. 인실련 출범 초기부터 인성교육지원법 제정을 비전으로 제시하고 정치권의 동참을 설득했다. 그 결과 2013년 2월, 여야의원 50여명이 함께 한 ‘국회 인성교육실천포럼’ 창립을 끌어냈고 11월에는 인성교육진흥법 초안이 공개됐다. 이때부터 인실련은 본격적인 대 국회활동을 폈다. 2014년 2월, 제4회 대의원회에서 인성교육진흥법 제정 추진을 주요사업으로 발표했고, 7월 창립 2주년 총회에서는 국회의 조속한 법 처리를 촉구했다. 결국 지난해 5월, 정의화 국회의장이 여야의원 101명과 발의한 진흥법은 12월 29일, 의원 199명 만장일치로 국회 본회의를 통과했다. 이후 교총과 인실련은 시행령 성안 과정에서 교육부와 협치를 통해 ‘규제’보다는 ‘지원’ 중심 시행령을 끌어냈다. 교총과 인실련은 11월 발표될 ‘인성교육종합계획’의 수립에도 적극 참여해 바른 인성교육이 범국민적으로 실천될 수 있도록 할 계획이다.
일본 큐슈에는 한반도와 인연이 많다. 그래서 가끔 고대사의 흔적을 찾으려면 이같은 곳을 방문한다. 필자는 후쿠오카에 근무하면서 일본인들과 함께 하루 탐방계획으로 역사학습 체험을 한 적이 있다. 가카라시마는 백제 무령왕의 탄생지이다. 이 작은 섬에 가려면 일반교통으로는 후쿠오카에서 한 시간 동안 지하철을 타고 가라쓰까지 간 뒤 다시 버스로 갈아타고 요부코 항에서 여객선을 타고 20분 정도 가야한다. 일본인 가운데는 역사적 인연이 있는 곳을 연구하면서 대외적으로 활동을 한다. 사카모토 쇼이치로씨는 백제무령왕국제네트워크협의회 부회장이다. 이 단체는 백제 문화와 무령왕을 매개체로 한일 민간교류를 활성화하기 위해 한일 민간인들이 자발적으로 만든 단체다. 사카모토 부회장에게 “여객선에 탄 사람이 적냐”고 했더니 “본래 평소에도 사람이 없다”는 답을 돌아왔다. 둘레가 약 12㎞인 이 섬 인구는 불과 108명이다. 어업이 번창했던 1952년엔 560명이 살기도 했지만 지금은 거의 떠났다고 한다. 남아 있는 사람들은 주로 도미와 오징어잡이에 종사한다. 섬에 뚜렷한 관광 자원도 없다보니 낚시꾼들이나 오는 섬이 되었다. 배에서 내리면 곧 ‘百濟武寧王生誕地(백제무령왕생탄지)’라고 새겨진 커다란 돌 기념비가 보인다. 2006년 6월 25일 충남 공주와 일본 가라쓰 시민들이 모금해 세운 높이 3.6m의 기념비는 무령왕릉 입구의 아치 모양을 본 따 만들었다. 돌은 한국 최고 화강암 산지인 전라북도 익산에서 다듬어 배로 실어왔다고 한다. 기념비를 지나 15분 정도 더 걸어가면 무령왕이 태어났다는 해안가 동굴이 나온다. 섬사람들은 동굴이 있는 해변을 ‘오비야우라(オビヤ浦)’라고 불렀다. 오비는 일본어로 기모노 등을 묶는 허리띠를 의미하니 허리띠를 풀고 아이를 낳은 포구란 뜻이다. 오랜 기간 파도에 부딪친 탓인지 벼랑 아래쪽이 약 2m 정도만 깎여 들어간 작은 굴이었다. 예전에는 좀 더 깊었지만 풍화 작용으로 위가 무너져 막혔다고 한다. 동굴 안 판자 팻말에는 ‘百濟第二十五代武寧王生誕の地(백제 제25대 무령왕이 태어난 곳)’라는 글이 적혀 있고, 그 앞에는 누가 갖다 놓았는지 작은 화분과 술잔 몇 개가 놓여 있다. 지금으로부터 무려 1500여 년 전 이 낯선 땅 거친 야생 동굴에서 혹독한 산고를 치르며 아이를 낳았을 백제국 왕비 생각에 가슴 한 구석이 짠했다. 이렇게 춥고 어두운 동굴에서 갓 세상 밖으로 나온 무령왕은 또 얼마나 두려웠을 것인가. 무령왕이 이곳에서 태어나 백제로 다시 돌아가 훗날 왕위에 올랐다는 게 신기하게 느껴졌다. 지금도 건강한 성인남자도 힘든 뱃길에 동생(곤지)이 탄 배에 임신한 자신의 왕비를 태웠던 무령왕의 아버지 개로왕은 도대체 무슨 생각으로 그랬던 것일까…선뜻 이해가 안 간다. 하지만 뒤집어 생각하면 해로가 그만큼 안전했다는 뜻도 되고 무엇보다 왜와의 친선관계가 지금 우리들이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깊었기 때문 아니었을까 하는 확신이 들긴 했다. 동굴을 나와 50m 정도 걸어가니 갓 세상 밖으로 나온 무령왕이 첫 목욕을 했다는 우물이 나왔다. 계곡 옆에 깊이 수십cm 구덩이를 파놓고 판자 몇 개로 대충 둘러친 형태를 띠고 있었다. 물맛이 어떨까 궁금해 떠서 마셔 보니 특별한 맛은 없다. 가카라시마는 침체돼 가는 섬 경제를 살리기 위해 백제왕이 태어난 곳이란 점을 부각시켜 한국 관광객들을 끌어 들이고 싶어 한다. 섬에선 2002년부터 매년 6월 첫 번째 토요일에 한일 관계자들이 참가하는 무령왕 탄생제가 열린다. 올해에도 14회를 맞이한 탄생제는 한국에서 건너간 31명을 포함해 200여명이 모였다고 한다. 올해는 첫 번째 토요일이 현충일임을 감안해 7일에 행사가 열렸다. 섬이 속한 가라쓰 시내에선 무령왕 관련 공연과 연극도 진행됐다. 한국과의 인연을 계속 이어가기 위한 노력에 고맙고 미안하고 또 친근감이 느껴진다.
조선 시대 해남 윤씨 가문은 고산 윤선도를 배출한 명문가 집안이다. 그러나 남인 계열로 중앙 정치 무대에서 밀려났다. 본인도 정치적 탄압으로 귀양 생활을 했지만, 결국 후손들도 관직에 나가지 못하는 운명을 안고 살았다. 벼슬에 나가지 못했지만 선비로 기품을 잃지 않고 학문에 힘썼다. 특히 서화를 통해 내면의 아픔을 달래는 일생을 보냈다. 해남 윤씨 어초은파 종택 녹우당에 ‘해남 윤씨 가전 고화첩’(보물 제481호로)이 전한다. 이 화첩은 고산 윤선도의 증손인 공재 윤두서, 공재의 아들인 낙서 윤덕희, 낙서의 아들인 청고 윤용 3대의 그림 70여점을 모아놓았다. 공재 윤두서는 1688년 해남 연동에서 윤이후의 넷째 아들로 태어나 윤선도의 종손 윤이석에게 입양되었다. 여느 양반 집안의 자제들처럼 그는 학문에 정진했다. 그는 나이 25세에 (숙종 15년) 진사시에 합격했다. 하지만 벼슬에 나가지 않았다. 그 당시는 서인이 득세하고 있어 남인인 해남 윤씨에게는 뜻을 펴 볼 기회가 주어지지 않았다. 관직에 나가지 못하는 대신 친구들과 학문에 열중하며 다양한 식견을 넓혔다. 그는 실학자 성호 이익의 형인 옥동 이서와 친했다. 윤두서의 사망 때에 성호 이익 선생이 제문을 썼다. 여기에 “우리 형제는 매사에 자신이 없었지만 공의 칭찬을 듣고 용기를 내었다.”라고 한 것으로 보아 그들의 관계를 짐작할 수 있다. 조선 후기 실학을 대성했던 성호 형제와 교우는 그의 학문의 세계를 형성하는데 큰 영향을 미쳤다. 그의 집안 녹우당에 전하는 유물 ‘방성도, 송양휘산법, 동국여지지도, 일본여도’ 등을 보면 천문, 수학, 지리 등 폭넓은 분야에서 학식을 지닌 실학자였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공재가 활동한 시기는 조선 역사에서 많은 변화가 있었다. 임진왜란과 병자호란을 겪으면서 사회, 정치적 상황의 변화로 실사구시의 새로운 조짐이 싹트기 시작했다. 조선 전기에 관념성을 지향하던 예술 분야에서도 변화가 와 일반 백성들의 생활과 정서를 반영한 풍속화가 그려지기 시작했다. 공재의 그림은 자화상(국보 240호)이 으뜸이다. 이 그림은 화폭 전체에 얼굴만 그려지고 몸은 생략된 형태로 시선은 정면을 바라보고 있다. 탕건을 쓰고 눈은 마치 자신과 대결하듯 앞면을 보고 있으며 수염을 한 올 한 올 섬세하게 표현하였다. 그는 말 그림을 많이 그렸는데 그때마다 하루 종일 관찰한 뒤에야 붓을 들었다고 한다. 자화상도 마찬가지다. 백동경(녹우당에 있는 거울)을 보면서 자신의 모습을 사실적으로 표현했으며, 나아가 정신까지 그리려고 애썼다. 얼굴만 그려진 자화상은 눈동자가 부각되어 강한 힘과 생기를 느끼게 한다. 사실적인 외모는 단호한 정신세계도 풍기고 있다. 전문가들은 동양인의 자화상으로는 최고라는 평가를 내리고 있다. 윤두서는 정선·심사정과 더불어 조선 후기의 3대 화가로 평가한다. 전하는 화첩에는 산수화·인물화·풍속화 등 여러 종류의 그림이 실려 있다. 선비화가였던 윤두서의 다양한 회화 세계와 그림솜씨를 보여주는 중요한 자료이다. 아울러 그의 그림은 당시 화단의 주류였던 산수화에서 벗어나 농민들의 현실적인 삶을 소재로 그림을 그렸다. 이를 통해 실학자적인 면도 엿볼 수 있다. 그의 풍속화는 후에 김홍도의 풍속화에도 영향을 주었을 것으로 보인다. 작품으로는 ‘채애도’, ‘선차도’, ‘백마도’, ‘노승도’, ‘심득경초상’, ‘출렵도’, ‘우마도권’, ‘심산지록도’ 등이 있다. 윤두서의 화풍을 이어받은 사람은 맏아들 윤덕희이다. 그는 어릴 때는 서울 회동에 살며 이저에게 학문을 배웠다. 그러나 덕희와 그의 동생들 역시 모두 과거 시험을 치르지 않았다. 1694년 갑술환국 때 남인이 폐비 민씨의 복위를 반대하다가 실권하면서 아버지 윤두서가 당쟁의 타격으로 관직에 진출하지 않자, 그의 자재들도 일찌감치 과거를 포기한 것이다. 아버지와 함께 한양 생활을 정리하고 해남으로 낙향했지만, 정착 2년 만에 아버지가 세상을 떠났다. 그러나 윤덕희는 차분하게 집안을 지켜나갔다. 물려받은 토지를 동생들에게 공평하게 분배하고 선조들이 남긴 글씨와 그림을 서화첩으로 꾸미는 등 양반가 종손으로서의 업무를 착실히 수행했다. 윤선도의 문집과 윤두서의 그림 등이 오늘날까지 그대로 전하는 데는 그의 공이 컸다. 윤덕희는 아버지의 화풍을 전수하여 전통적이고 중국적인 소재의 도석인물(道釋人物), 산수 인물, 말 그림을 잘 그렸다. 그 중에 압권은 ‘여인독서도’이다. 이는 여염집 여인네가 마당 탁자에 앉아 책을 읽고 있는 광경이다. 당시에 여인에게 책은 가까이 할 수 없는 매체였을 것이다. 그런데 여인도 앎에 대해 접근하고, 책을 통해 즐거움과 휴식을 취할 수 있다는 생각을 담은 것이다. 여인이 책을 보는 광경에 주목하고 그림으로 표현했다는 것은 그가 여자들의 인권에 선구자적 사상을 가졌다는 것을 짐작할 수 있다. ‘오누이’, ‘공기놀이’ 등도 평범한 일상을 담았다. 이런 그림은 과거의 산수화에 집중한 조선의 그림과 많이 다르다. 작품으로 ‘송하고사도’, ‘마상부인도’, ‘마도’, ‘산수도첩’, ‘연옹화첩’, ‘송하인물도 등이 있다. 윤용은 덕희의 차남이다. 어려서부터 할아버지와 아버지의 재능을 이어받아 글과 그림에 뛰어났다. 28세 때인 1735년에 진사시에 합격하였으나 역시 벼슬을 멀리 하고 서화에 뜻을 두었다고 한다. 기록에 따르면 술을 즐겼으며 기품이 있고 성격이 맑고 깨끗했으며 용모가 단정하고 아름다웠다고 한다. 윤용도 여인을 그렸다. ‘나물 캐는 여인’이다. 들녘에서 일을 하다가 모처럼 허리를 펴고 먼 곳을 바라보는 모습을 포착했다. 이 그림 역시 우리 주변의 평범한 여인을 내세웠다는 점에서 아버지의 영향을 많이 받은 듯하다. 그러나 그림의 소재며 구상은 할아버지 윤두서의 ‘채애도’를 연상하게 한다. 실제로 그는 산수화에서는 아버지의 영향을 받아 남종화풍을 따랐고, 풍속화에서는 할아버지의 영향을 받아 전통성이 강한 화풍을 보였다. 하지만 33세라는 젊은 나이로 세상을 떠나는 바람에 독자적인 화풍을 남기지 못했다. 작품은 ‘수하필서도’, ‘홍각춘망도’, ‘연강우색도’ 등 많이 남기지 못했다. 윤씨 삼부자의 공통점은 풍속화에 대한 관심이다. 윤두서에서 시작된 여인 풍속 장면이 아들 윤덕희를 거쳐 손자 윤용에까지 전승된다. 해남 윤씨 삼부자 이전에는 여성을 주인공으로 부각한 작품이 그리 많지 않다. 이들은 여인의 생활상에 착안한 여러 소재를 개발하여, 후배 화가인 신윤복, 김홍도가 그린 미인도나 사녀도의 전범을 제공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해남 윤씨 삼부자가 조선 회화사에서 실생활을 소재로 한 풍속화와 그림의 소재로 여성을 내세운 것은 신선한 시도를 한 셈이다.
인생은 여행이다. 보통 사람이라면 시간과 돈의 제한이 따른다. 기왕이면 정해진 시간에 좋은 추억을 쌓을 수 있는 재미있는 여행을 하고 마무리 하여야 한다. 교육활동도 큰 틀에서 보면여행코스의 하나와 같다. 1학기를 마치면서 좋은 선생님, 좋은 친구를 만나 좋은 추억을 쌓았다면 그 이상 더 좋은 일이 없을 것이다. 오늘은 한 학기를 마감하는 종업식을 실시하고 내일은 여수에서 개최되는 행복교육박람회 관람으로 이어지는 일정이다. 아무 탈 없이, 그리고 학생 폭력 문제가 없이 전반기 학사 일정이 막을 내렸다. 그러나 날이 갈수록 아이들에게서 느낄 수 있는 것은 무기력한 아이들이 눈에 띈다는 것이다. 아무것도 안 하고 싶은 아이들의 문제이다. ‘아무것도 안 하고 싶다. 이미 아무것도 안 하고 있지만 더 격렬하게 아무것도 안 하고 싶다.’ 이 글귀는 최근 등장한 어느 카드회사 광고 속 대사다. 무덥고 나른한 주말 지친 몸을 침대에 파묻고 있노라면 정말이지 아무것도 하고 싶지가 않다. 그러다 아까운 주말이 지나갈 때 쯤이면 서글픈 직장인으로 돌아온다. 아직 오지 않은 내일이 벌써부터 걱정되고, 한편으로는 평일이 주말처럼 즐거웠던 어린 시절이 그리워지는 것이다. 우리는 가끔 이런 이런 생각을 한다. '어쩌다 나는 과거에 대한 후회와 미래에 대한 걱정에 사로잡혀 정작 살아 있는 오늘 아무 것도 못하는 사람이 된 걸까'라는 하소연이다. 브라질 작가 코엘류는 자신의 수필집 ‘흐르는 강물처럼’에서 인간 존재의 흥미로움에 대해 이렇게 묘사했다. "미래에 골몰하느라 현재를 소홀히 하다가, 결국에는 현재도 미래도 놓쳐 버리고요. 영원히 죽지 않을 듯 살다가 살아 보지도 못한 것처럼 죽어 가죠." 사실 이런 모습을 그려보면 흥미롭기보다는 서글픈 일이다. 우리 아이들이 긴 여름 방학을 현재에 충실하게 보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다. 어른들의 이야기 같지만 아이들도 마음만 먹으면 가능하다. ‘살아 보지도 못한 것처럼’ 죽지 않기 위해 색다른 도전을 시작해 보는 것이다. 죽기 전에 해보고 싶은 일을 적은 목록을 방학동안에 만들어서 이를 실천하여 보는 일이다. 이에 반응이 뜨겁게 일어난다면 휘감고 있는 무기력증은 분명히사라지는 것이다. 누군가가 만일 혼자 세계일주를 꿈꾼다면 실제 지구를 한 바퀴 돌고 온 멘토의 강연을 듣고서 구체적인 계획을 세우기 시작할 것이다. 이러한 접근을 할 수 있도록 만들어 주는 것은 다름 아닌 성인들의 몫이다. 혼자서 실천하기에 좋은 시간을 억지로 과외를 받으러 가는 모습은 피했으면 좋겠다. 일상생활에 찌들어 아까운 주말을 흘려보내던 우리 아이들도 진정 자신이 하고 싶은 건 무엇일까를 생각하면서 올 여름 방학때는 차분한 마음으로 버킷리스트를 작성하여 실천하여 보기를 기대하여 보는 것은 무리일까?
선사시대에서 현대에 이르기까지 한반도와 일본 열도와의 교류는 시대의 변화에 따라 다양하게 전개되었다. 2300여 년 전 우리 고조선과 삼한시대 조상들이 집단이동하면서 전해준 벼농사가 본격화되자 일본 역사는 수렵과 채집이 생산 기반이었던 조몬시대(기원전 1만 년∼기원전 5세기)와는 질적으로 다른 야요이 시대(기원전 5세기∼기원후 3세기)로 넘어간다. 미국의 문명사학자 재러드 다이아몬드는 세계적 베스트셀러이자 퓰리처상 수상작인 ‘총, 균, 쇠’의 개정 증보판(2003년)을 내면서 야요이 시대에 선진 농업기술을 갖고 이주한 한국인의 조상들이 오늘날 일본인의 조상이라고 주장해 파문을 불러일으켰다. 그의 이론은 단순한 주장이 아니라 DNA 분석이라는 과학적 실험 결과에 따른 것이었다. 즉, 일본 고대인인 조몬인과 야요이인의 두개골 유전자를 채취해 현대 일본인과 일본에 살던 원주민족 아이누족과 비교 분석해보니 조몬인이 현대 일본인이 아니라 아이누족을 닮았다는 것이다. 이에 비해 현대 일본인의 유전자는 야요이인 것을 닮았다. 더 충격적이었던 것은 이 유전자가 한국인과도 닮았다는 것이다. 다이아몬드 교수는 유전자 분석 외에 고고학 분자생물학 인류학 언어학 등의 연구 결과를 바탕으로 한 논문 말미에 “과거 현재의 여러 요소를 종합적으로 고려해볼 때 한국과 일본은 성장기를 함께 보낸 ‘쌍둥이 국가’와도 같았다”며 “이런 사실은 이후 역사를 거듭하며 불편한 관계를 맺었던 양국을 생각한다면 아이러니한 사실이 아닐 수 없다”고 말했다. 가혹한 식민 지배와 아직도 자신들의 잘못을 인정하지 않고 있는 일본 정치인들의 후안무치를 생각한다면 ‘쌍둥이 국가’라는 말에 불편해하는 한국 사람들이 있을 것이다. 일본인도 자신들이 조몬인으로부터 진화해 최소 1만2000년간 독자성을 지켜왔다는 학설을 선호하는 사람이 많기 때문에 한반도에서 건너온 사람들이 조상이라는 다이아몬드 교수의 주장은 ‘말도 안 된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많을 것이다. 하지만 고대 한국과 일본의 교류사 흔적이 짙게 배어 있는 현장을 돌다보면 다이아몬드 교수의 주장이 무리가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된다. 그 대표적인 유적지를 우리는 한반도와 가까운 일본 규슈 열도 내에 위치한 사가현에서 만나게 된다. 이곳은 한반도와의 직선거리가 200km 정도밖에 되지 않아 과거부터 현재까지 매우 긴밀한 교류가 이뤄진 한일 교류 현장이다. 사가현 일대에 위치한 간자키군 간자키정과 미타가와, 히가시세후리 등 3개 마을 87만 m²(약 26만3000평)에는 요시노가리 역사공원이 넓게 펼쳐져 있다. 이곳은 야요이 시대 말기 생활상이 정밀하게 복원된 역사적 장소이다. ‘요시노가리’는 한국어로 ‘좋은 들판이 있는 마을’이라는 뜻이다. 멀리 보이는 산들을 배경으로 풍요롭고 넓은 들판에 청명한 날씨는 일본이 아니라 호남평야 같은 포근함과 친근감을 느낄 수 있는 곳이다. 지형을 보면 배를 타고 건너온 낯선 땅이었지만 전혀 낯설지 않은 이곳에 도착한 우리 조상들이 정착하기에는 최상의 조건이었을 것 같았다. 가라쓰를 굳이 인천으로 비교한다면 요시노가리는 서울이라 할 수 있다. 배를 타고 인천에 도착한 이들이 정주하기 좋은 땅을 찾아 육지로 들어와 정착한 곳이 바로 요시노가리이기 때문이다. 이곳에서 일본 고대 문화의 최전성기를 보여주는 야요이 시대 유물이 대거 쏟아져 나온 것은 당연한 것이 아닐까 생각해 본다. 이곳에는 나무 울타리가 둘러쳐 있다. 이는 논농사를 시작하면서 생긴 잉여 생산물을 지키고 식량 쟁탈이 일어나자 외부의 적을 막기 위해 만든 방어물 역할을 하고 있다. 그러나 지금에 이르러 역사를 보는 시각은 누가 누구에게 무엇을 전했다는 것만 강조하며 우위라는 우월감을 내세우는 것이 것이 아니라 한국과 일본이 각자의 문명 전환기에 상대방에게 매개자 또는 촉매자로서 중요한 역할을 했다는 점을 상기할 필요가 있다. 즉, 일본의 선사 고대 시대에는 한국이 중국 문명을 전한 전수자였고, 한국 근현대 문명 형성기에는 일본이 서구 문명의 매개자 역할을 했다. 고대 문명 교류도 이런 관점에서 보아야 한다.
사진 왼쪽에서 첫 번째가 어머니, 두 번째가 아버지 2015년 7월 15일(수) 오전 10시. 최윤성 군의 부친이 서령고를 방문하여 장학금을 쾌척했다. 최윤성 군의 부친은 자제가 재학하고 있는 본교의 발전을 위해 매달 50만원씩 장학금을 전달하기로 약속했다. 최군의 부친은 평소 남을 배려하고 도와주기를 좋아하는 성격으로 대산에서 크레인회사를 운영하는 대표이기도 하다. 서령고는 최윤성 군 부친의 숭고한 뜻을 받들어 재학생 중 모범학생을 선발하여 장학금을 전달하기로 했다.
담양금성초등학교(교장 이영재)는 7월 14일 오전 9시부터 12시까지 3~6학년 35명과 교직원, 학부모회장과 함께 금성면 독거노인 가정 6곳을 찾아 나눔의 기쁨을 몸으로 느끼는 진정한 의미의 봉사활동을 실시하였다. 지역의 독거노인을 찾아 부족한 일손을 도와드리고 외로운 노인들을 위로하는 시간을 통해 교육의 위대한 목표는 앎보다 실천임을 깨닫게 했다. 사전에 금성면사무소와 독거노인생활담당자와 협의하여 철저하게 조사하고, 사전 답사로 독거노인의 실태를 파악하여 교육적 효과를 높였다. 아무리 좋은 계획도 상대방이 원하지 않는 프로그램은 하지 않음만 못하기 때문이다. 금성초는 창의적 체험활동 봉사활동의 목표를 ‘효 봉사활동’에 두고 교직원 협의와 다모임 활동을 통해 학생들이 실제로 참여하는 봉사활동으로 지역사회와 학교가 연계되는 ‘배움의 경험’을 소중히 하는 무지개학교의 정신을 실천하고 있다. 교육과정이란 한마다로 말하면 ‘배움의 경험’이기 때문이다. 자신이 사는 고장, 이웃집에 사는 독거노인은 지역사회와 우리들 스스로 보살피고 위로가 필요한 어른이며, 우리 부모님이나 할아버지 할머니의 모습, 더 나아가 미래의 자신의 모습일 수 있음을 깨닫는 통찰의 시간이었다. 6모둠으로 이루어진 두레 별로 청소도구를 준비하고 독거노인을 방문하는 기본예절을 배우고 선물까지 준비하였다. 교과교육의 한계를 넘어서 주거환경이나 노인복지문제까지 생각해 보게 한 이번 봉사활동은 ‘만들어가는 교육과정’으로서 성찰하는 배움으로 이끄는 소중한 경험을 제공했다. 불편한 몸으로 홀로 삶을 이어가는 독거노인의 방을 청소해 드리고 쓰레기를 분리수거해 드리는 일, 웃자란 마당의 풀들을 정리해 드리는 일, 어르신의 말동무가 되어 손자 손녀 노릇을 해 드리는 일, 건강하지 못한 몸을 가볍게 안마해 드리는 사랑스러운 손길은 인정이 넘치는 최상의 경험이었다고 입을 모은 학생들. 독거노인에게 대가를 바라지 않고, 친구들과 함께 땀 흘리며 풀밭을 매는 동안 느꼈을 인간애의 마음은 학생들 가슴에 오래오래 남을 것이다. 최상의 종교는 ‘친절’이 확실하니! 봉사활동에 참가한 4학년 학생들의 소감을 들어보니 생각보다 많은 것을 느꼈음을 알 수 있었다. 이윤서 : 할머니가 할아버지와 헤어지셔서 술과 담배를 많이 피시는 것 같아서 슬펐다. 박병규 : 엄청 많은 일들을 해야 하는 줄 알았는데, 생각보다 쓰레기가 안 나왔다. 노연재 : 나의 힘으로 도움을 준 것 같아서 좋았다. 이채은 : 봉사활동이 쉬운 줄 알았는데 어렵고 힘들었지만 끝나고 나니 조금은 뿌듯하였다. 전선형 : 쓰레기를 버리러 갈 때 정말 힘들었다. 송수아 : 청소 봉사는 쉬웠는데 끝나고 잡초 제거하는 것이 너무 힘들었다. 홍기현 : 여럿이 청소해도 이렇게 어려운데, 할머니께서 청소를 하며 사시는 것이 믿기지 않았다. 조문애 : 청소가 힘들고 곰팡이가 많아서 안타까웠다. 이가연 : 마을 봉사활동은 힘들었지만 뿌듯하였다. 이제는 개인적으로 부모님과 함께 또 봉사활동을 해보고 싶다. 임성민 : 할머니가 허리가 아프셔서 일을 잘 못하시는데 우리가 도와드린 게 보람 있고 뿌듯하였다. 김민주 : 봉사활동이 참 좋은 일이라는 걸 알았다. 금성초는 배움의 공동체가 분명하다. 그것은 지혜로운 가르침과 즐거운 배움이 기본이다. 학생 자신이 살고 있는 지역사회 속에서 각자가 주인공이 되어 함께 어울려 살아가는 지혜를 배우고 나눔을 행동으로 실천하는 교육, 순간순간 만들어가는 창조적 교육과정이 절실하다. 인간의 지혜는 경험의 수준을 넘을 수 없다고 했다. 금성초등학교는 “바로 지금 여기서 모두 다 행복한 학교” 로서 독거노인에게도 그 행복을 나누는 멋진 학교다.
교총, 인성교육범국민실천연합(이하 인실련)의 2년 여 노력 끝에 제정된 인성교육진흥법과 동법 시행령이 21일부터 시행된다. 이로써 대한민국 교육에 인성이 중심에 서고 가정‧학교‧사회가 동참하는 범국민 실천운동이 확산되는 기틀이 마련됐다. 정부는 인성교육진흥법을 구체화한 동법 시행령을 14일 국무회의에서 심의‧의결하고 21일부터 공포‧시행한다. 시행령의 주요내용은 △범정부 차원의 인성교육진흥위원회 구성·운영 △5년마다 인성교육 종합계획 수립 △국가‧지자체의 예산 지원 의무화 △현직교원 연간 4시간 이상 연수 △교‧사대에 인성 관련 과목 필수 개설‧이수 △인성교육 전문인력 양성기관 지정 등이다. 시행령 마련 과정에 적극 개입한 교총의 요구로 당초 연 15시간 이상 교원연수는 4시간(직무연수 포함)으로 축소됐고, 학교․교원에게 부담했던 시행계획 수립, 실태조사, 전담부서 설치 등의 내용도 삭제됐다. 반면 가정‧학교‧사회의 실천적 인성활동 지원을 인성교육종합계획에 포함하도록 명시했다. 교원의 자발성을 끌어내고 ‘진흥’이 목적인 법 취지를 살리자는 의미에서다. 교총은 14일 즉각 입장을 내고 “우리 교육이 학력에서 인성 중심으로 패러다임의 전환을 이루는 전기가 마련됐다”고 환영하면서 “官 주도로 학교를 옥죄는 방식이 아닌 民 중심의 자발적 실천운동이 활성화 되도록 규제보다는 지원에 초점을 맞춰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와 관련 “이제 올바른 실천이라는 과제가 남았다”면서도 “다만 결과 평가적 인성교육으로 법 제정 취지가 훼손되고 공정성 시비가 우려되는 만큼 과정 중심으로 인성교육이 이뤄져야 한다”며 향후 보완과제도 제시했다. 우선 국가 수준의 지도자 자격 검증 장치 마련을 주문했다. 교총은 “인성교육 민간자격증이 250여개나 난립해 정비가 필요하다”며 “영리 목적이거나 자격과 프로그램에 문제가 발생하지 않도록 별도의 시행규칙을 제정해 보완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이어 “인성교육을 추진 성과 등 실적위주로 평가하지 말고, 입시 반영 등이 아닌 과정 중심의 국민적 실천운동화 되도록 정부 지원 체제가 강화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아울러 교원연수도 자기연수(self study) 과정이 되도록 지원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안양옥 교총회장은 “학교 인성교육의 성패는 프로그램 중심이 아닌 그 자체가 인성교육의 내용이자 방법인 교원들이 얼마나 자발성을 갖고 실천할 수 있는 환경을 지원하느냐에 달려있다”며 “여기에 가정과 사회의 동참운동이 확산될 때 꽃을 피울 수 있다”고 당부했다. 가정의 인성교육 회복, 학교 인성교육 환경 조성 등도 과제로 지적된다. 최근 교원교육학회가 인성교육을 주제로 연 춘계학술대회에서 학교현장 실태(초‧중등교원 49명 설문)를 발표한 김황 광주극락초 교사는 “교사들의 의견은 과도한 양의 교육과정과 교사의 잡무를 줄여야 실질적인 인성교육이 가능하다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토론에서 김성기 협성대 교수는 “인성교육의 시발점은 가정이다. 대만에서는 이미 ‘가족교육지원법’을 만들어 혼인신고를 하는 예비부부에게 ‘부부교육, 부모교육’을 의무화하고 있다. 우리나라에서도 안양시에서 시행한 적이 있다”며 “법에 ‘혼인신고 시 부부교육 및 부모교육’을 의무화하거나 별도로 ‘가정교육법’을 제정해야 한다”고 제안했다. 교육부는 11월까지 공청회 등을 거쳐 인성교육의 기준과 방법을 구체화하고 관련 예산을 확보해 내년부터 본격 시행할 계획이다.
현재 교장공모제의 병폐에 대한 지탄과 폐지의 여론이 매우 높은 와중에 이번에 제주도에서 문제가 불거져 혼란스럽니다. 최근 제주 모 초등학교 내부형 교장공모제 추진 과정에서 지난 3월 다른 초등학교 내부형 교장공모제 심사과정에서 탈락한 후보였던 전교조 북제주지회장 출신 교사가 또다시 단독 공모하여 문제가 되고 있다. 직선제 교육감제 하의 코드인사, 보은 인사, 끼리끼리 인사 논란이 일고 있는 것이다. 일전에 집권 여당 대표가 한 지방의 세미나에서 현재 교육 정책 중에서 가장 먼저 폐지해야 할 것이 교육감 직선제라고 강조한 의미도 숙고해 봐야 한다. 이제 정말로 교육감 직선제와 교장공모제는 수명을 다한 정책이지 제도가 아닌가 한다. 교육감 직선제와 교장 공모제 시행 이후 우리 교육계에는 교육은 사라지고 교육정치만 횡행한다는 비판을 귀담아들어야 할 것이다. 주지하다시피 교장공모제엔 3가지 종류가 있다. 교장자격증 소지자끼리 경합하는 초빙형과 교장자격증 없이도 응모 가능한 내부형, 개방형 교장공모가 그것이다. 교장공모제 근본 취지는 바로 내부형과 개방형을 통한 젊고 유능한 인재 영입이었다. 기존 승진제도의 폐단을 막고, 교장 임용방법의 다양화가 핵심이었다. 그런데 교육 혁신 제도로 도입한 교장 공모제가 교육 비리의 온상으로 실추되고 있다고 걱정하는 식자들의 우려가 기우만은 아닌 것이다. 제도와 법령을 교묘히 빠져나가면서 교육과 인사를 어지럽게 하고 있는 것이다. 현임 이석문 제주도교육감은 전교조 제주지부장 출신이다. 이 교육감 취임 후 지난해 9월 1일자 제주도내 첫 내부형 교장 공모로 제주시 모 초등학교에 전교조 제주지부장 출신인 강 모 교사가 교장으로 선발된 데 이어, 올해 3월 1일자 모 중학교 내부형 교장 공모에서도 제주시중등지회장 출신인 김 모 교사가 교장으로 선발된 바 있다. 여기에 더해 오는 9월 1일자 모 초등학교 교장공모제 과정에서 교육감과 같이 활동을 한 인사가 또다시 임용될 가능성이 커졌다는 것은 진보 교육감들의 코드 인사 내지 교장 공모제 악용의 그림자로 의심받기에 충분한 것이다. 사실 교장 자격증 소지자만 응모할 수 있는 초빙형은 문제가 덜하지만 교장 자격증 없이도 응모가 가능한 내부형 교장공모제는 일명 무자격 교장공모제로 막강한 인사권을 가진 직선교육감 하에서 코드인사로 악용될 수 있다는 점에서 이를 반드시 폐지해야 한다. 만약 이를 계속 유지하려면 객관적이고 공정한 절차가 담보된 획기적 개선책이 마련돼야 한다. 절차상의 문제가 없다는 것과 절차적 정다성을 담보하는 것은 전혀 다른 것이다. 지난 해 6.4 지방 선거에서 진보 교육감들이 대거 당선되면서 교육감과 노선이 같은 전교조 출신 평교사가 잇따라 교장으로 공모․임명됨에 따라 자격을 갖춘 공모 대상자들은 아예 응모조차 하지 않아 명백한 코드인사라는 논란이 지속적으로 일고 있다. 제주도교육청에서 연이어 전교조 간부 출신 교사들이 내부형 교장으로 선발되고, 타교에서 탈락한 교사가 단복 공모하여 6개월 뒤 다른 학교 교장으로 선발되는 현실을 달리 설명할 방법이 없는 것이다. 내부형 교장공모제는 안전 장치가 미비해서 심사과정에서 학연, 지연 등 파벌에 따른 학교의 선거장화라는 부작용에 더해 직선교육감의 코드인사로 악용될 수 있는 개연성이 매우 높다. 인사권을 가진 교육감이 특정인을 염두에 두고 공모 절차를 추진할 경우 여타 교원의 응모는 상대적으로 배제될 뿐 아니라, 교육감과 같은 조직에 몸을 담았거나 선거과정에 도움을 준 이들에 대한 보은 차원의 인사로 전락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결국 이번 제주도교육청의 내부형 교장 공모제 추진은 ‘눈 가리고 아웅’하는 식이다. 혹평을 하면 ‘짜고 치는 고스톱’과 다름 아니다. 인사 밀약도 교장직을 가지고 해서는 안 된다. 그 길은 교육을 망치는 지름길이다. 교육 혁신과 유능한 교장 임용이라는 2대 원칙은 교장 공모제에서 양보할 수 없는 목적이고 가치이다. 따라서 빨리 공정하고 정당하게 바로 잡아야 한다. 만약 일각의 지적대로 교육감의 코드 인사, 이념 인사라면 교육감은 도민들에게 사과하고 당사자인 공모자는 사퇴해야 마땅하다. 그리고 그 과정과 결과가 정당하다면 교육감은 그에 상응하는 증빙을 해야 한다. 왜 교장 자격증 소지자가 많은 데 당해교에 1인 응모자로 단독 응모가 됐는지, 수많은 교사 중에서 왜 전교조 간부 출신 교사만 당해교에 응모했는지도 도민들에게 진솔하게 답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잘못을 인정하고 진솔하게 모든 것을 원 위치로 돌려야 할 것이다.
지금 세계는 디지털 전쟁의 시대다. 그 가운데 있는 것이 스마트폰 시장이다. 스마트폰은 나날이 진화를 거듭하여 막강한 기능과 편리함으로 우리 생활 한 부분에 깊숙이 자리 잡고 있다. 그리고 사용층도 전 연령층으로 확대되고 있으며 단말기유통구조개선법 이후 후발 주자들의 중저가 단말기 출시로 스마트폰 대전 양상을 보이고 있다. 국내 굴지의 회사도 후발주자들의 추격으로 이윤 감소가 늘어났다는 소식이 신문지상을 장식하고 있다. 스마트폰 디지털 기기 전쟁! 앞으로 몇 년 안에 지금의 스마트 폰은 또 다른 형태로 시장을 공략할 것이다. 이런 디지털 기기의 변화 속도는 엄청난 쓰나미로 우리 현실을 강타하며, 주변 환경이 미래에 어떻게 변할지 알려주고 있다. 그러면 지금부터 십 년 뒤의 우리 생활은 어떻게 변할까? 문득 영화 007시리즈를 떠올려 본다. 영화 속에서 가능했던 제임스 본드의 자동차와 첨단 무기들이 우리 앞에 하나씩 나타나 실용화되고 있다. 상상으로 생각한 일들이 현실로 나타나는 것을 보면 경악을 금할 수 없다. 과연 인간의 두뇌 한계가 어디까지인지 가늠하기 어렵다. 이런 현실은 교육과 배움의 현장에서도 엄청난 변화를 예고하고 있다. 유엔미래포럼의 연구에 의하면 2020년 제일 중요한 산업은 기후산업과 신농업혁명으로 에너지자원의 공급처를 찾는 농업이라고 밝혔다. 또한, 미국 소재 교육의 미래재단에서는 2020년 교육환경은 천지개벽 한다고 말하고 있는데 그 전조가 곳곳에서 보이고 있다. 사람이 살아가면서 닥쳐올 일을 예측할 수 있다면 여러 가지 이득을 얻을 수 있다. 세계화 시대에 변화의 소용돌이를 예측하고 준비하는 자만이 미래사회의 경쟁자로 설 수 있다. 그 근원에 바로 교육이 있다. 교육도 변화할 미래를 예측하고 그 방향을 미리 선점하여 준비하는 쪽으로 나아간다면 국가와 본인 모두 경쟁력을 높일 수 있다. 이런 생각으로 2020년 다가올 주요 교육환경의 다양한 변화를 미리 살펴본다. 첫째, 학교의 기능과 역할의 변화이다. 종래의 학교가 지식을 전달하고 시험 치는 장소였다면 미래의 학교는 건강, 학력증강, 학생 행복, 지역사회 네트워크 장으로 탈바꿈한다. 지식전달은 교육공동체에서 운영하는 교육포털에 맡기고 학교는 공동체의 삶과 체험, 네트워크형성, 스킨십, 리더십, 팀워크 경험의 장소로 변한다. 즉 지금의 지식 전달을 위한 학교나 학원의 기능은 한계점에 도달하며, 다양한 장소에서 다양한 콘텐츠를 통하여 필요한 지식을 받을 수 있다. 둘째, 교육방법 면에서 시공간 초월학습이 이루어진다. 미래사회의 학습은 커뮤니티 학습, 트위터나 페이스북 온라인 학습과 유비쿼터스 환경에서 이루어진다. 시공간의 제약을 벗어나 언제 어디에서 학습할 수 있으며, 로봇 센서나 교과서 칩을 통해 학습이 이루어진다. 또한, 학습장소도 지역사회, 가정의 영상 매체, 가상현실 등 새로운 교육 인프라가 구축된다. 이미 미국의 하버드 대학에서 학생들은 수업할 때 노트북이나, 트위터를 활용하여 강의에 참여하고 있다. 셋째, 교육내용에서도 많은 변화가 이루어진다. 기초지식도 중요하지만 당장 사회에 나가서 사용할 수 있는 기본적인 교육내용이 중요하게 자리 잡는다. 교육내용은 직업과 관련이 있는 만큼 2020년에는 현존하는 직종의 80%가 소멸한다. 그리고 인간 장기 제조회사, 나노 의사, 기후변화 대응전문가, 날씨 조절 관리자 등 지금까지 들어보지 못한 새로운 직종이 탄생하게 된다. 이런 교육의 변화만큼 사회변화도 급물살을 탈 것이다. 첨단 생명산업의 발달로 사람의 평균 수명이 130세가 되어 인구가 고령화된다. 또한, 가족구조도 변하여 1인 가구, 무자녀 가구, 핵 가정, 동성애 가정, 혼합가정 등 다국적 다문화 가정이 늘어날 것이다. 그리고 국경이 소멸하고 지구촌 정부로 글로벌 경제가 될 것이다. 그러므로 이런 변화에 맞는 교육이 필요해졌다. 통계에 의하면 2020년이 되면 우리나라는 대학교 정원 숫자가 고등학교 졸업생 숫자보다 많아져서 대학교의 상당수가 사라질 수밖에 없게 된다고 한다. 출생인구의 감소로 초중학교도 급속히 사라지는 중이니 눈으로 보이는 현실이다. 이런 미래의 변화된 모습을 미리 알고 대처하는 교육환경이 지금의 현실에 던져진 과제이다. 사람들은 항상 미래보다는 과거에 얽매인 경향이 농후하다. 그렇게 되면 발전을 기대하기란 어렵다. 지난 일들은 그 자체로 의미를 남겨 두고 새로이 도래할 미래 환경의 발 빠른 대처가 글로벌한 미래사회의 살아남는 방법이다. 답습보다는 새로운 아이디어와 방법을 도입한 변화의 시대에 맞는 교육환경투자가 미래의 지구촌의 승자로서 살아남는 길이다.
지난 7월 4일, 청주아름다운산행에서 지리산의 뱀사골로 계곡 트레킹을 다녀왔다. 뱀사골은 태고의 생명이 살아 숨 쉬는 골짜기로 지리산 반야봉에서 반선까지의 곳곳에 기암괴석과 어우러진 소(沼)와 폭포가 아름다운 풍경을 만든다. 전구간이 기암절벽으로 이루어져 지리산국립공원의 여러 골짜기 가운데 피아골과 함께 최상의 계곡미를 자랑한다. 또한 수량이 풍부하고, 수림이 울창한 여름 최고의 피서지로 ‘돌돌골’로도 불린다. 한국지명유래집에 의하면 뱀사골이라는 지명은 물이 뱀처럼 굽이쳐 흘러 붙여졌다 하고, 근처에 있던 배암사라는 사찰의 이름에서 유래했다거나 용이 되지 못한 이무기가 죽었다는 전설에 의해 부르게 되었다고 전해온다. 제54회 충북도민체육대회와 통합청주시 1주년을 경축하는 꽃탑이 서있는 청주종합운동장 앞에서 7시 20분에 출발한 관광버스 2대가 중간에 회원들을 태운 후 남쪽으로 향한다. 통영대전중부고속도로 인삼랜드휴게소에 들르며 부지런히 달리는 차안에서 캠프 부회장의 인사말과 거누 산행대장의 하루 일정 소개가 이어진다. 88올림픽고속도로 지리산IC를 나선 관광버스가 10시 15분 반선매표소 출발점에 도착할 때까지 차창 밖으로 광천과 만수천의 물길이 이어진다. 차에서 내려 산행준비를 하고 오룡대, 탁용소, 뱀소, 병소, 병풍소, 제승대, 간장소로 이어지는 뱀사골 계곡 트레킹을 시작한다. 반선교를 건넌 후 ‘한국의 명수(名水) 뱀사골 계곡’이 써있는 표석을 지나면서 뱀사골 계곡이 본격적으로 시작된다. 초입은 물가로 나무데크를 설치해 평지처럼 발걸음이 가볍다. 와운골과 뱀사골의 물이 합쳐지는 계곡 건너편에 흔들바위로 불리는 오룡대가 있다. 오룡대라는 이름은 30m가 넘는 큰 바위가 계곡을 굽어보고 있는 모습이 승천하는 용이 머리를 흔들며 몸부림치는 모양을 닮아 붙여졌다. 오룡대에서 탁용소를 지나 금포교까지 수려한 계곡미를 자랑한다. 탁용소(濯龍沼)는 이리저리 파인 암반 틈새로 흐르는 물줄기가 용이 승천하는 모습을 닮았는데 이곳에서 목욕을 한 후 용이 되어 하늘로 오르던 이무기가 암반 위에 떨어져 100여m나 되는 자국이 생겼다는 이야기가 전해온다. 뱀사골은 물길이 잠시 머무는 곳마다 여러가지 전설을 간직하고 있다. 특히 오룡대, 탁용소, 뱀소 등은 용이나 뱀과 관련된 이야기가 전해온다. 뱀이 꿈틀거리는 모양의 뱀소를 지나면 웅덩이의 모양이 호리병과 같이 생긴 병소(甁沼)를 만난다. 뱀사골에 왜 이름난 폭포만 있겠는가. 이름을 그럴듯하게 붙여주면 더 빛날 바위와 폭포들이 즐비하다. 숲길이 넓고 경사가 가파르지 않아 걷는데 부담도 없다. 계곡의 물 색깔이 곱고 제법 널찍한 쉼터도 많다. 뱀사골계곡의 명소 중에는 빼어난 경관과 관련된 명칭이 있다. 병풍소(屛風沼)는 계곡물에 의해 깎인 바위의 모양이 병풍과 같이 생겼다. 계곡에 내려서는 것이 위험해 바위 사이로 맑은 물이 흐르는 모습은 보기 어렵다. 안내판의 내용에 의하면 제승대는 1300여년 전 송림사 고승 정진스님이 불자의 애환과 시름을 대신하여 제를 올렸던 장소로 소원의 영험이 오늘까지 이어져 오는 곳이고, 간장소는 옛날 소금 상인들이 하동의 화개장터에서 화개재를 넘어오다 소금짐이 빠져 간장이 되었다는 이야기와 소의 물을 마시면 간장까지 시원해진다는 이야기가 전해온다. 간장소에서 왔던 길을 되짚어 아래로 향한다. 한참을 걸어 출발지였던 반선매표소를 지나고 반선교를 건넌다. 물가를 따라 내려가며 심원계곡이 만든 풍경을 구경하고 3시 30분경 반야교 건너편의 대형버스 주차장에 도착했다. 3시 50분 주차장을 출발하여 통영대전중부고속도로 함양휴게소에 들른 관광버스가 무주IC를 빠져나가 무주 만남의광장으로 간다. 이곳에서 된장찌개로 식사를 겸한 뒤풀이를 하고 7시 45분경 청주종합운동장 앞에 도착하며 아름다운산행 회원들과 함께 했던 뱀사골 트레킹을 마무리한다.
또다시 개방형 교장공모 잡음이 불거졌다. 군산기공 교장공모제 공정성을 촉구하는 군산교육 및 시민사회단체(이하 ‘군산교육단체’)가 도교육청을 향해 “공정성 문제가 불거진 군산기계공고의 공모 교장 지원 자격 및 심사 규정을 바로잡으라”고 촉구한 것. 마침내 군산기계공업고등학교의 교장공모는 전면 백지화됐다. 내용은 다음과 같다. 군산기계공고 개방형 교장 공모에 7명이 지원했다. 그중 2명이 현직 학교운영위원과 전북교육청 장학사이다. 일단 장학사는 차치하고라도 1차 심사위원단에 들어가는 학교운영위원의 지원이 개인적 후안무치함만으로 치부될 사안은 아니다. 거기에 1차심사과정에서의 재채점 등 하자가 드러나 아예 공모 자체를 취소한 것. 앞에서 ‘또다시 개방형 교장공모 잡음’이라고 말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어서다. 도내의 경우 개방형 교장공모가 진행된 곳은 칠보종합고등학교⋅장계공업고등학교⋅군산기계공업고등학교⋅전북기계공업고등학교⋅한국경마축산고등학교⋅줄포자동차공업고등학교 등이다. 이들 학교중에는 2순위자의 문제제기로 공모가 취소되었는가 하면 표절 구설과 함께 금품수수 의혹의 경찰수사까지 받은 곳도 있다. 2개 학교는 본청 장학관이 교장으로 임용돼 구설에 올랐다. 또 어떤 학교는 처음엔 개방형이었다가 아예 초빙형공모를 한 곳도 있다. 이미 필자는 칼럼 ‘개방형교장은 본청 장학관 자리인가’(전북도민일보, 2013.2.4.)를 통해 그런 문제점을 제기한 바 있다. 가령 지원 자격을 보면 ‘본교 재직 교원 지원 제한 및 현임학교 2년 미만 근무 교장 지원 불가’로 되어 있다. 현임 교장이 아니고 도교육청 장학관이라서 지원 자격이 있다는 것인가 싶어 당시 교과부에 민원을 냈는데, 그 답이 ‘걸작’이다. 현임 2년 미만이라도 일선 학교 교장은 안되고, 본청 장학관은 된다는 것이었다. 그러나 그것은 해당 지역 교육지원청의 교육전문직을 관내 교장공모에 지원할 수 없도록 제한하고 있는 점과 비교해보면 금방 형평성 문제가 불거진다. 본청 근무 장학관이나 장학사만 아무런 제한도 받지 않는 엄청난 특혜를 누리는 셈이 되기 때문이다. 자연스레 의문이 생긴다. 공모학교의 재직 교원 응모를 제한하고, 현임학교 근무 2년 미만의 교장도 지원못하게 한 제약이 본청 장학관을 개방형 교장공모학교의 교장으로 임용하기 위한 ‘안전장치’였는가? 전임 교육감 시절에도 없었던 본청 장학관의 개방형 교장공모 고등학교장이라는 전무후무한 일이 이른바 진보 교육감 시대에 두 번이나 벌어졌는데, 다시 그 냄새를 피우다 소멸한 셈이라 할까. 그런데 필자가 2년 5개월 전 ‘개방형교장은 본청 장학관 자리인가’에서 적시한 문제 제기는 무시되거나 묵살당했다. 당시 교원인사과장의 반론이 며칠 후 같은 신문에 실렸지만 소통은 아니었다. ‘공모절차에 아무 하자가 없고, 그래서 탈락자의 푸념’ 정도로 문제 제기를 인정치 않겠다는 것으로 요약되는 글이어서다. 만약 그때 여론의 엄중함을 깨달았다면, 문제 제기에 대해 진지하게 검토하고 대책을 세웠다면 오늘날 공정성 시비가 또다시 불거지진 않았을 것이다. 알려진 대로 이명박정부는 참여정부에서 도입한 교장공모제 본래 취지인 내부형 교장공모의 씨를 말리다시피 했다. 자격증 있는 초빙형 위주로 교장공모제를 확대해왔기 때문이다. 개방형공모 학교에도 국립인 전북기계공업고등학교만 빼고 모두 교장자격증 소지자가 임용되었다. 당연히 매우 좋지 않은 결정이다. 이를테면 유능한 교사의 교장 진출을 차단한 교육부의 ‘내부형교장공모 죽이기’와 같은 맥락인 셈이어서다. 교육부와 도교육청은 군산기계공고의 교장공모 전면 백지화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게 되었다. 특히 “껌 한 통도 받지 말라”며 교원들에게 청렴을 강조해온 교육감에 대한 아쉬움이 크다. 2년 5개월 전 문제가 처음 제기되었을 때 귀기울여 개선했더라면 백지화되는 이런 ‘쪽팔릴’ 일은 벌어지지 않았을테니까.
교총 3개월 노력 끝 관철 시교육청추경안에 반영 10일 시의회 본회의 통과 서울시교육청이 추경예산안을 통해교원 맞춤형 복지비를 원상복귀 했다. 서울교총이 지난3개월 여 동안교원 복지 회복을 위해 노력하며관철한 것이다. 10일 서울시의회는 본회의를 열고교원 맞춤형 복지비 원상복귀를 포함, 삭감 학교운영비 일부를 증액시킨 ‘서울시교육청 2015 추경예산(안)’을 수정의결 했다. 이로써 서울 교원 맞춤형 복지비는 삭감된 지 거의 반년 만에 복구됐다. 시교육청은 세수부족으로 본예산 편성에서 교원 맞춤형 복지비, 학교운영비 등을 삭감·편성, 지방재정 부족 문제를 교원에게 전가했다는 비판을 받았다. 교원 맞춤형 복지비 복구를 위해서울교총은지난 4월부터 시교육청에 추경 반영 건의서를 전달하고 지속적인 요청활동을폈다. 6월부터는 시의회를 대상으로 의원 개별 면담과 성명서 및 건의서 전달 등을해왔다. 서울교총은 “이번 추경예산은 학교현장 요구예산, 교육여건 및 교육환경 개선을 위한 예산에 중점을 뒀다는데 큰 의미가 있다”며 “이제라도 현장 요구를 적극 반영한 것은 대단히 바람직하다”고 평가했다. 이어 “더 이상 무리한 교육복지로 인한 교육재정의 어려움을 학교와 교원에게 전가하지 말아야 할 것”이라면서 “시교육청과 시의회는 2015년 예산 편성 시 부족재원을 이유로 삭감한 출장여비, 업무추진비, 당직비, 특근매식비 등 실비에도 미치지 못하는 예산에 대해서도 반드시 현실화해 교원 사기를 진작시키고 근무의욕을 고취시켜야 한다”고 촉구했다. 유병열 서울교총 회장은“향후 어떤 경우라도 교육재정의 어려움을 학교와 교원에게 전가하는 행위에 대해서는 적극 대응하겠다”며 “누리과정, 고교무상교육 등 교육시책사업과 재정지원 실험학교 정책으로 인한 지방교육재정 부족의 악순환을 끊기 위해 범정부차원의 근본적인 대책 마련과재정 확보 촉구활동을 전개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인간생활의 필수요소를 우리는 '의, 식, 주'라고 부른다. 그러나 영어권에서는 'food, clothing and housing'이다. 순서대로 보면 '식, 의, 주'이다. 이처럼 사람이 먹고 사는 일은 중요하다. 그리고 사회가 발전하려면 혼자서는 불가능하다. 공동체를 이뤄야 발전이 가능하다. 한국과 더불어 수천 년 동안 자포니카(단립종) 쌀을 주식으로 먹고 살아 온 나라는 일본이 유일하다. 둥근 모양의 자포니카 쌀은 밥을 지으면 차진 것이 특징으로 동남아에서 생산되는 길고 점성이 없는 인디카(장립종) 쌀과 밥맛이 확연히 다르다. 역사상 일본의 논농사는 2500∼2600년 전 한반도에서 전해진 것으로 알려졌다. 일본에서 가장 오래된 벼농사 유적이 있는 곳은 규슈 사가현 가라쓰시이다. 가라쓰시는 규슈의 최대 도시 후쿠오카에서 서남쪽으로 약 40km 떨어져 있다. 인구는 약 13만 명으로 후쿠오카 공항에서 내려 JR 지쿠히선을 타고 환승없이 1시간 만에 닿을 수 있는 곳이다. 가라쓰는 부산까지의 거리가 약 180km로 일본에서 한국과 가장 가까운 도시다. 가라쓰의 ‘가라’는 일본말로 ‘외국’이란 뜻으로 본래는 한국을 의미한다는 게 일본 학계의 정설이다. 현재 가라쓰를 표기하는 한자 ‘唐津’은 옛날에는 ‘한진(韓津)’이라고 쓰고 가라쓰라고 불렀는데, 이후 당나라와의 교역이 늘어나면서 ‘韓’ 자만 ‘唐’으로 바뀌었다고 일본 고서들은 기록하고 있다. 이런 지리적 요인 때문에 가라쓰는 오래전부터 한반도와의 교류가 활발했다. 훗날 조선 도자기가 처음 전해진 곳도, 도요토미 히데요시가 임진왜란을 일으키기 전 병력을 집결시켰던 나고야성도 이곳에 있다. 이런 지역에서 일본 최초의 벼농사 유적이 발견된 것은 결코 우연이 아닐 것이다. 유적이 발견된 가라쓰 나바타케에는 ‘마쓰로칸’이라는 이름의 벼농사 박물관이 있다. 기원전 가라쓰 지역에 존재했다는 마쓰로란 원시 국가의 이름을 따온 것이다. 마쓰로칸은 가라쓰 시내를 울타리처럼 둘러싸고 있는 산자락 안에 있었다. 가라쓰 역에서 걸어서 15분밖에 걸리지 않는다. 일본식 주택들이 늘어서 있는 동네에 높은 통나무 울타리로 가려져 있어 대문에 ‘마쓰로칸’이란 표지판이 없었다면 그냥 지나치기 쉬웠다. 현장을 보면 왜 옛날 사람들이 이곳에 터를 잡았는지 이해가 된다. 뒤에는 울창한 산이 있고, 1km 정도 평지를 사이에 두고 바다가 있다. 수렵과 채집, 어업이 가능한 데다 산골짜기로 흘러내려오는 물을 이용해 논농사를 짓기엔 최적의 장소로 보였다. 다지마 마쓰로칸 관장의 안내를 받으며 박물관을 둘러보았다. 일요일인데도 찾아오는 관람객은 한 명도 없었다. 마쓰로칸은 땅에 기둥을 박고 그 위에 집을 짓는 고상식(高床式) 형태의 특이한 2층 목조 건물이다. 고상식 가옥은 맹수나 독충을 피하고 장마철 습기를 최소화할 수 있는 장점 때문에 신석기시대 동굴을 벗어난 원시인들의 대표적 주거 형태이다. 나바타케 유적에서도 고상식 가옥 흔적으로 보이는 나무 말뚝이 2개 발견됐다. 박물관에 들어서니 입구에 이 일대에서 발굴된 검은색 탄화미를 확대경으로 볼 수 있게 전시해 놓았다. 나바타케 유적에서 발견된 탄화미는 기원전 600년경 재배된 것으로 분석됐다. 주요 전시물은 2층에 있었다. 2층 중앙에는 조몬시대(기원전 1만3000년∼기원전 300년) 말기 이 지역에 존재했던 마을을 상상으로 복원해 만든 큰 모형이 놓여 있었다. 당시 사람들이 벼농사와 수렵, 축산업, 어업을 어떤 방식으로 진행했는지를 한눈에 볼 수 있다. 이때 이미 제사를 지내는 풍습도 있었다. 마쓰로칸에 전시된 유물들을 보면 한반도 고유 문명의 흔적들이 고스란히 남아 있다. 발굴된 독 항아리 사발 굽접시 등은 토기의 주둥이 부분에 검은 반점이 있거나 소뿔형 손잡이로 마무리한 점이 눈에 띈다. 이는 한반도와 규슈 지역을 중심으로 공통적으로 발굴되는 유물의 특징이다. 홈자귀라고 불리는 돌도끼나 손잡이 부분을 깊게 판 마제석검, 버들잎 모양의 석촉 등 한반도에서 고유하게 발굴되는 석기들도 이곳에서 나왔다. 다지마 관장은 석검 하나를 가리키며 “이것을 만든 재질의 돌은 일본에 없으니 한반도에서 넘어온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마쓰로칸을 둘러보면 일본의 농경문화는 한반도에서 농경문화를 향유하던 주민들이 직접 일본 열도로 이주함으로써 개화한 문화라는 확신이 굳어진다. 박물관 안내문에도 ‘나바타케는 2500∼2600년 전 조선 반도에서 건너온 사람들에 의해 벼농사가 전해진 곳으로, 이는 일본 벼 재배의 시작으로 알려졌다’라고 적혀 있다. 눈에 띄는 것은 이곳 유적 발굴 과정에 다양한 석기와 함께 세형단검, 청동거울 등 청동기문화 유적도 나온 것이다. 벼농사와 청동기의 도입은 수렵과 채집에 의존하던 일본의 신석기시대 조몬인들을 농경문화에 기반을 둔 야요이시대로 이끌었다. 한 나라가 다른 나라에 벼농사를 전했다는 것은 단순한 식량 문제의 해결을 넘어서 농업 기술력은 물론이고 식량을 담는 그릇 문화(토기)에서부터 무기의 전파까지 이뤄지는 과정으로 원시인들을 촌락에 이어 국가로까지 만드는 결정적 계기가 될 수 있다. 한반도가 일본에 벼농사를 전한 것은 명실상부하게 일본인들이 공동체를 만들게 하는 데 매우 중요한 의미를 갖고 있다. 이 증거는 나바타케 유적에서 산 하나를 넘어 약 40km 떨어진 일본 청동기 문화 유적 요시노가리(吉野ヶ里)에서 확인할 수 있다.
(사)한국환경교육협회(회장 이진종, 이하 환교협)는 환경부 국립환경인력개발원의 지원으로 수고둰 초등교사 대상 환경교육 지도자 과정 직무연수를 실시한다. 환경교육 지도자 과정 직무연수는 환경관련 전문성을 함양하고 학교 환경교육 프로그램 운영능력의 제고를 위해 실시된다. 연수일정은 1,2차로 구분되며 1차 연수는 2015. 7. 27(월) ~ 7.31(금) 일산동구청에서 실시되며 2차 연수의 경우 2015. 8. 3(월) ~ 8. 7(금) 서울교육문화센터에서 실시된다. 참가비는 무료이며 80%이상 출석시 이수 가능하다. 환경교육 지도자 과정 직무연수의 참가 신청기간은 2015. 6. 26(금) ~ 7. 17(금) 17:00 까지이며 참가신청서를 작성해 keea1008@naver.com으로 접수하면 된다. 자세한 사항과 참가신청서 등의 양식은 한국환경교육협회 홈페이지(http://www.greenvi.or.kr) [공지사항] 게시판에서 확일할 수 있으며 문의는 전화번호(02-571-1195)으로 하면 된다.
(사)한국환경교육협회(회장 이진종)는 환경부 국고지원 사업의 일환으로 전국 초등학교를 대상으로 ‘환경일기장’ 쓰기를 실시하며 참가 학교를 모집한다. ‘환경일기장’은 환경부와 한국환경교육협회에서 제작한 초등학생 대상의 자기주도적 환경체험교육 워크북으로, 일기장에서 일정별로 제시되는 온실가스 줄이기와 에너지 절약 등의 활동을 수행하고 그 절감 효과(전기요금, 수도요금 등)를 체험할 수 있는 내용으로 구성되어 있다. 이밖에도 읽기자료는 물론 활동 기록지, 스토리텔링 자료 등 참가 대상자로부터 흥미를 불러일으키고 직접적으로 에너지 절감 효과를 느낄 수 있는 컨텐츠들도 포함하고 있다. 또한 효과적인 ‘환경일기장’ 작성을 위해 참가 학교 지도교사들을 대상으로 환경일기장 작성방법 및 수업에서의 활용방법 등을 설명하는 “지도교사 워크샵”도 개최할 예정이다. ‘환경일기장’ 우수 활동자에게는 “어린이환경캠프”의 기회는 물론 상장과 장학금이 주어지며 최우수 활동자를 대상으로는 우수환경 도시로의 “해외연수” 기회도 주어진다. ‘환경일기장’ 참가신청 기간은 2015. 7. 27(금) 18:00시까지이며 정해진 양식에 따라 참가신청서와 활동계획서를 작성해 이메일(akdong6908@naver.com)로 접수하면 된다. 자세한 사항과 참가신청서 등의 양식은 한국환경교육협회 홈페이지(http://www.greenvi.or.kr) [공지사항] 게시판에서 확일할 수 있으며 문의는 전화번호(02-571-1196)으로 하면 된다.
최근 특성화고의 인기 때문인지 미리 준비된 학생들이 들어오고 있다. 우리학교도 마찬가지이다. 아마 현재 2학년과 현재 1학년이 가장 좋은 아이들이다. 물론 3학년부터 이러한 분위기가 시작되었기에 가능했던 일이다. 점점 더 준비된 아이들이 들어올수록 선생님들이나 학교에서 신경써야 할 부분이 많아지는 것은 사실이다. 3월초부터 시작된 우리반 아이들과의 이야기를 시작하고자 한다. 여러 가지 좋은 점과 나쁜 점들이 발견되기 시작하면서 좌충우돌하고 있다. 그 이야기를 시작하면서 교사로서 내가 지닌 것과 내가 발견해야 할 것들을 알아가고 싶다. 또한 이 아이들의 미래를 위해 뭔가 준비하는 사람이 되길 희망하는 마음으로 시작하고 싶다. 이제 12년차인 교직생활, 정말 어떻게 지나갔는지도 모를 세월이었다. 그동안 학생들을 바라보는 나의 시선은 점차 바뀌어갔다. 처음 교단에 섰을 때, 학생들이 손님이었다. 그들을 어떻게 대해야 할지 몰라서 고민하고 걱정하다가 잠이 들곤 했다. 그래도 여지없이 그 다음날에는 희망을 가지고 갔다. 힘든 하루하루, 정말 학교가기 싫은 날도 있었지만 사회에 나와서 혼자힘으로 살아야 했기에 더욱 의무감으로 다가갔다. 그러니 더욱 힘들었고 그 손님들이 싫어지는 때도 있었다. 한 번은, 불미스런 일이 일어났다. 학생들의 수행평가와 관련된 일이었는데, 불만을 가지고 있던 학생들 몇몇이 수업시간에 저항을 하는 것이었다. 평소에 친근하게 대해주었는데 이를 이용해 막무가내로 점수를 바꿔달라고 요구하는 것이었다. 나중에 연륜있는 선생님께서 중재를 해주셔서 일이 잘 넘어갔다. 정말 막무가내인 손님을 대할 때 방법이 없는 것 같다. 그런 경험을 한 후에는 학생들을 조심조심 대했다. 함부로 대할 수도, 그렇다고 전혀 모른척 할 수도 없었지만 나에게도 뚜렷한 방법론은 없었다. 그저 모든 것이 신기했고 낯설었다. 그 다음으로, 학생들이 고객이었다. 이제는 조금 알 것 같기도 하고 만만해 보이긴 하다. 하지만 여전히 모르는 부분이 많아서 힘들다. 그렇지만 그들이 내가 매일 만나야만 하는 고객으로 보이기 시작한다. 기업에서 손님을 고객이라고 떠받치듯 나도 그들을 고객이라고 생각하고 최선을 다했다. 고객이기에 불만족한 부분이 발생하지 않도록 최선을 다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또한 불만이 있으면 얼굴 붉히지 않게 잘 처리해야 했다. 수업은 마치 그들이 내는 수업료와 관련된 계약관계라고 생각했다. 그들이 싫지는 않지만 그들의 내면에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에 대해서는 전혀 관심이 없는 시간이었다. 기간제로 근무하던 학교에서 있던 일이었다. 락밴드를 맡아달라던 어떤 학생이 있었다. 그 학교 사정을 몰랐던 나는 그저 학생이 부탁하던 일이었고 어차피 클럽활동을 맡아야 해서 수락했다. 그런데 나중에 안 사실은, 그 학생들은 공부를 많이 하는 학생들이었고 없는 시간까지 쪼개서 동아리활동을 열심히 하는 학생들이었던 것이었다. 경험이 많이 없던 터라 그 아이들과 상담한번 하지 않았고 먹거리라도 사주면서 연습을 독려하지 못했다. 무슨 말을 어떻게 해야 할지도 몰랐다. 그저 내 앞길이 막막했기에. 그것은 현재 몸을 담고 있는 학교에서 정식으로 교편을 잡는 동안에도 몇 년 지속되어왔다. 많이 배운 것 같았다. 아주 조그만 것에서 느끼는 행복을 학생들은 찾고 있었던 것이었다. 나는 여전히 배워야만 했다. 그럼, 최근 나에게 있어서 학생은 어떤 모습일까? 학생들은 나의 동반자이다. 이제 졸업했던 친구들이 군대를 제대하고 사회에서 자리를 잡을 시기가 왔다. 그들이 나의 잊어버린 교직을 되찾는 데 일조하는 동반자가 되었다. 나의 부족했던 모습을 보게 해주고 잊어버린 초심을 되찾도록 도와준다. 심지어, 담임을 하지 않고 과목만 가르친 학생들도 나를 기억해 주는 것을 경험했다. 나와 우연한 사건을 같이 하게 된 학생은 졸업식이 2-3달 지났을 때쯤에 찾아왔다. 다른 친구들과 같이 와서 하는 말이, “선생님, 작년에 저에게 하셨던 말씀이 생각납니다. 정말 지금도 생각나요.” “뭔데?” “선생님이 저에게 말을 할 때, 포장을 잘 하라고 하셨잖아요. 지금도 뇌리에 선명해요.”“아, 그랬구나! 기억난다!” 사건은 이랬다. 어느 날 수업을 하고 있는데, 아까 그 학생이 같은 반 친구에게 욕을 했다. 그것도 적당한 것이 아니라 좀 심했다. 그래서 주의를 주었는데 좀 기분나빠하는 표정이 역력했다. 다른 사람들 앞에서 기죽게 하지 말라는 표정이었다. 수업이 끝나고 교무실까지 같이 가면서 사건의 전말을 물어보며 말을 걸었다. 교무실로 들어가서 내 자리에 앉아서 이렇게 말했다. “000야, 너 선물을 누구에게 줘본 적 있니?” “네.” “선물을 줄 때 어떻게 주니? 포장을 해서 줘야 받는 사람이 기분이 좋겠지?” “네. 그럴 것 같아요.” “그래. 말하는 것도 마찬가지란다. 너가 아무리 좋은 말을 해도 받는 사람이 기분이 나쁘면 전달이 잘 안된거야. 앞으로는 포장을 잘 해보렴. 포장을 잘 하면 너도 기분이 좋고 받는 사람도 기분이 좋아질거야.” 아까 그 학생은 바로 이 대화를 아직까지도 기억하고 있었다가 학교에 와서 나를 보고 그때 그 사건을 말한 것이었다. 정말 신선한 충격이었다. 그리고 난 내가 새로운 단계로 발전하고 있음을 발견한 날이었다. 결론을 내리자면, 나의 교직생활가운데 학생을 바라보는 자세가 처음부터 좋았던 것은 아니었다. 처음에는 손님이었고 조금 지나서 고객이었다. 물론 발전하는 것은 좋았지만 그 과정의 인내는 힘들었다. 지금은 동반자이다. 학생들은 이제 나와 같이 발전하든지, 나와 같이 정지해 있든지 하는 존재들이다. 그래서 내가 발전해야 한다. 이렇게 교단일기를 쓸 수 있게 된 것도 우연이 아니라고 생각한다. 내 인생을 하나님이 주관하시듯, 학생들의 인생에 조금이라도 도움이 될 수 있다면 나를 더욱 발전시켜 그들을 지지해주는 버팀목이 되고 싶다. 이러한 글쓰기가 계속될 수 있기를 희망한다.
10여전부터 우리나라는 저출산이 시작되면서 드디어 학령인구의 급격한 감소로 2016년부터 대학입학정원에 비해 고등학교졸업생의 수가 적어지게 되므로 많은 대학의 생존이 위협 받고 있다. 그래서 2023년에는 2,000명 규모의 대학 80개 이상 폐교될 것으로 예상되고, 당분간은 지방소재 대학에만 심각한 위협이 되겠지만 장기적으로는 어떤 대학도 '대학교육의 효과성'에 대한 현실적인 추궁에서 자유로울 수 없을 것이다. ‘2003년 대비 2013년 대학 계열별 학과 수 및 입학정원 변동 현황’을 분석한 결과, 지난 10년 동안 정부의 대학 구조조정 추진으로 인문, 자연, 공학 분야는 각각 -4.7%, -4.1%, -2.0%로 줄어들었다. 반면 사회, 교육, 예능, 의약계열은 각각 2.6%, 10.5%, 14.3%, 100.3% 늘어났다. 그러니까 인문계열 등 기초학문 학과는 줄어들고, 상대적으로 취업률이 높은 실용학문 학과는 증가한 것으로 나타났다. 몇 년 전부터 미국사회에서 대학진학을 장려하는 분위기가 확산되는 가장 큰 이유는, 노동시장의 변화에 따라 고등교육이 필요한 직업과 일자리 수가 크게 늘었고 국가발전의 핵심동력을 고학력 외국인들에게 의존하는 현상이 심화되었기 때문인데 우리나라도 장기적인 대학구조조정을 위해 외국인 유학생 유치 카드를 내 놓았다. 하지만 2011년 이후 감소세를 보이고 있는 외국인 유학생을 무작정 늘리겠다는 ‘장밋빛’ 청사진에 일선 대학들은 “비현실적”이라며 고개를 가로젓고 있다. 그러니까 2014년 기준 8만 4000명 수준인 외국인 유학생을 8년 후인 2023년까지 2.5배인 약 20만명으로 늘리겠다고 7월7일 밝혔다. 학생 수 감소와 구조조정 부진 등으로 악화되고 있는 대학들의 운영난을 외국인 유학생 대거 유치로 해결해 보겠다는 의도는 아닌지 의문이 있는가 하면, 그 실현 가능성에 대해 역차별 논란이 불거지는 등 전형적인 탁상공론을 우려한다. 핵심은 외국인과 재외동포 유학생에게 특화된 맞춤형 교육과정 개설이다. (유학생으로만 구성된 학과ㆍ학부 개설, 유학생ㆍ가족의 국내취업 지원, 외국어 전용 강의 개설, 정부 초청 장학생 지방대로 분산) 한국이 강점을 보이는 정보기술(IT), 조선, 원자력, 자동차 등의 특화산업과 보건, 미용, 자동차 정비 등의 전문 기술 관련 학과를 외국에 적극적으로 알리고 유학생 유치의 걸림돌인 한국어 수업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외국인 유학생 전용 강의 등을 늘린다는 내용이다. 현재 경희대, 한양대, 건국대 등 일부 대학이 실시하는 중국어· 영어 등 유학생 전용 강의가 확대된다. 유학생 유치에 어려움을 겪는 지방대학을 위해 지방대학 특성화사업(CK) 중 국제화 기반을 갖춘 대학의 유학생 유치를 집중적으로 지원한다고 한다. 하지만 교육부가 목표로 삼은 ‘20만명’의 산출이 주먹구구식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교육부 관계자는 “2008년 이후의 증가율을 기반으로 산출한 결과”라고 말했으나 전반적인 국내외 사정과 여건을 감안했다기보다는 최종 목표치에 연간 증가율을 꿰맞춘 경향이 강하다는 게 교육부 안팎의 평가다. 이런 가운데 최근의 통계들은 오히려 외국인 유학생 유치 전망을 어둡게 하고 있다. 2005년 2만 2526명에 불과했던 외국인 유학생은 ‘한류’ 열풍을 타고 꾸준히 늘어 2011년 8만 9537명으로 정점을 찍었다. 2012년 8만 6878명, 2013년 8만 5923명, 2014년 8만 4891명으로 감소세로 돌아섰다. 이는 가장 많은 비중을 차지했던 중국인 유학생이 2011년 5만 9317명에서 4만 8109명으로 무려 1만 1000여명 이상 줄었기 때문이다. 전남 지역의 한 대학 국제협력센터장은 “중국인들의 한국 유학 열풍이 급격히 식은 뒤 다들 침체기라고 아우성인데 교육부만 반대로 생각하고 있다”고 말하는 사람도 있다는 사실을 당국자는 알아야 한다. 대학들이 외국인 유학생을 위해 외국어 전용 강의를 개설할 수 있을지에 대해서도 부정적인 의견이 많다. 각 대학이 외국인 대상 강의를 할 수 있는 교원을 충분히 확보하기가 어렵기 때문이다. 특히 외국인 학생 유치로 당장의 경영난을 개선하는 것보다는 대학의 체질 개선이 우선이라는 지극히 당연한 지적도 나온다. 서울 지역의 한 대학 국제팀장은 “외국인 유학생 유치의 가장 큰 걸림돌이 한국어 수업이란 점을 감안할 때 유학생 전용 강의는 언뜻 일리 있어 보이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다”면서 “유학 오고 싶은 대학으로 만드는 구체적인 방안은 없고 장황한 목표만 있다.
올 1월 23일 우리학교 학생 3명이 일본의 한 작은 학교 교구 주관으로 실시한 일본인 가정 홈스테이를 하면서 일본 문화를 체험하는 기회가 있어 후쿠오카에 갔다. 이때 마침 규슈국립박물관에는 개관 10주년 특별전으로'고대 일본과 백제의 교류'전시회가 열리고 있었다. 후쿠오카한국교육원 이병윤 원장님의 안내를 받아 특별전을 관람하게 되었다. 1층 전시장은 관람객들로 발 디딜 틈이 없었다. 중년의 관람객들이 백제와 왜의 문화 교류를 보여주는 중요한 유물인 칠지도 앞에 서서 뚫어지게 바라보고 있었다. 조용히 줄을 지어 관람하던 일본인들은 유물 앞에 서서 한동안 뚫어지게 보거나 뭔가를 열심히 적는 등 매우 진지한 모습이었다. 관람객들은 대부분 50대 이상 중년들이었으며, 이번 전시를 보기 위해 멀리서 온 사람들도 있었다. 은퇴했다는 기시모토 씨(65)는 “도쿄에서 5시간 신칸센 기차를 타고 왔다. 평소 일본 고대 문화에 관심이 많았는데 신문에 난 전시 소식을 듣고 짬을 내 이곳에 왔다”고 전했다. 올해로 개관 10년째를 맞는 규슈박물관은 후쿠오카시에서 차로 30여 분 가야 닿는 비교적 외곽에 있다. 하지만 규모와 건물 디자인 면에서 동서양의 미학을 제대로 살린 건축물이라는 평을 듣는 곳이다. 연 평균 관람객이 10여만 명에 달할 정도로 시민들에게 인기가 있는 공간이지만 그중에서도 이번 전시가 2개월(1~2월) 동안 무려 5만 명을 불러 모을 정도로 각별한 주목을 받았던 것은 ‘고대 일본과 백제의 교류’라는 제목을 내건 특별전 때문이었다. 일본 대부분의 미술관이나 박물관들에 가보면 문화 전파를 언급할 때 '중국에서 건너왔다'고 두루뭉술하게 표현되어 있기 일쑤이다. 그러나 이번 전시에서는 제목에서부터 아예 '백제'를 내걸고 일본과의 문화 교류를 강조했다는 점에서 눈길을 끌었다. 실제로 둘러본 전시장 곳곳에 걸린 시대별 유물을 설명하는 글들에서는 백제인에 대한 존경과 헌사의 내용들로 가득했다. 전시장 입구에서부터 백제가 왜와 연합군이 되어 신라와 중국에 맞서 전쟁을 치른 ‘백천강’ 전투를 조명하면서 두 나라가 혈맹이었음을 강조하는 다음과 같은 대목은 파격적으로 느껴질 정도로 강렬했다. ‘신라와 중국 당나라(나당) 연합군의 공격으로 660년 백제가 패하자 백제 유민들은 너도나도 규슈로 왔고 3년 뒤 유민들을 중심으로 백제 부흥 운동이 일어나자 왜와 손을 잡았다. 663년 백제와 왜 연합군은 백제왕조 복원을 위해 백천강(지금의 금강 하구) 전투에서 나당연합군과 싸우지만 대패한다.’ ‘백천강 전투’는 일반인들에게는 생소하다. 하지만 한일 고대 사학계에서는 익히 알려진 사건이다. 한반도에 고대 국가가 만들어진 330년부터 백제·고구려가 잇따라 망하는 660년대까지 백제는 고구려 신라와는 적으로 싸웠지만 왜에게는 문명을 전해주고 군사적 지원을 받았다. 백천강 전투 때 왜군들은 무려 3만여 명의 군사를 파견했다가 대부분 희생됐다.' 전투 후 신라와 중국이 쳐들어올 것을 우려한 일본인들은 백제의 병법과 건축 기술을 활용해 미즈키, 오노조, 기이조 세 성을 쌓았는데 '일본서기'는 이 건축물들에 ‘백제에서 망명한 관료들이 관련돼 있다’고 기록하고 있다. 이처럼 백제인들은 고대 일본이 국가를 건설하는 과정에 깊게 관여한 매우 중요한 사람들이었다. 전시에는 백제와 고대 일본의 문화 교류를 상징하는 토기, 장식품, 기와, 불상 등이 공개됐는데 이중 가장 눈길을 끈 것이 백제 칼 ‘칠지도(七支刀)’였다. 일본 국보로 지정된 ‘칠지도’는 고대 일본의 수도였던 나라현 덴리시 이소노카미신궁에 보관된 것으로 일본인들에게조차 잘 공개되지 않는 국보 중의 국보로 통한다. 비록 일주일 한정이긴 했지만 이번 전시에서 진품이 공개되자 일본인들은 물론이고 한국인들까지 관람을 했다. 전시를 보고 나오며 박물관 관계자들에게 취지를 물었다. 이구동성으로 “지금으로부터 1350년 전 이곳 규슈로 이주한 백제인들을 떠올리며 전시를 기획했다”고 전해주었다. 작금의 한일 관계는 매우 답답한 형국이다. 뭔가 다른 접근이 필요하다고들 말한다. 이 전시회를 보면서 최근 왜곡된 역사관을 스스럼없이 말하는 일본의 정치인들과는 달리 경색된 한일관계를 풀어보려는 민간인들이 이런 기획을 한다는 것에 용기가 대단하다는 생각도 들었다. 또 눈여겨 볼 것은 일본인들 스스로 자신들의 피 속에 백제인의 피가 흐르고 있음을 고백하면서 한국과 일본인들이 서로를 더 잘아야 한다고 말한 사람이 있다. 다름 아닌 아키히토 일왕이었다. 한일 월드컵 공동 개최를 1년 앞둔 2001년 12월 23일 아키히토 일왕은 68세 생일을 맞아 왕실에서 한 기자회견에서 한국에 대한 생각을 묻는 질문에 “나 자신으로서는 간무 천황(일본 고대문화 전성기 헤이안 시대를 연 왕)의 생모가 (백제) 무령왕의 자손이라고 ‘속일본기’에 기록돼 있어 한국과의 인연을 느끼고 있다”고 말했었다. 이어 “두 나라는 한층 더 서로의 과거를 정확하게 알기 위해 노력하고, 개개인으로서는 서로의 입장을 이해해 나가는 것이 중요하다”고 했다. 일왕의 이 말은 같은 날 아사히신문 석간 1면과 4면에 대서특필되었다. 그로부터 14년이 흐른 2015년 한일 수교 50주년이라는 뜻 깊은 해를 맞았지만 한일관계는 그때보다 오히려 후퇴했다는 느낌이다. 지금 이 시점에서 한일 관계는 양국의 평화와 더불어 지구촌 평화와 공영에 공동 기여한다는 미래지향적 시각이 중요하다. 특히 젊은이들에게 역사를 잘 가르쳐 미래의 주역이 되도록 도와야 한다. 새로운 시대를 열기 위한 씨앗을 심어야 한다. 이제는 한일 두 나라 관계가 단순한 일방적 교류나 식민 피지배 시기로만 한정되는 적대적 관계의 틀에서 벗어나야 할 시점이다. 오랜 시공간적 역사로 보면 지구상 어느 나라에서도 찾아볼 수 없을 정도로 한국과 일본은 동질적인 문명적 복합체 성격이었음을 알게 된다. 장차 한일 젊은이들이 미래에 함께할 수 있는 공통분모를 한일 간의 2천년 교류 역사 속에서 재발견하는 기회를 만드는 것이 이 시대를 사는 어른들의 책임이라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