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해보니 그 아이 때문에 내가 지난 1년 동안 힘들었거나 교사로서 아이들 지도에 부담을 느꼈었던 기억은 전혀 없다. 누가 보더라도 그 아이로 인해서 뭔가 힘들었어야 당연할 것인데 너무나 자연스럽게 1년이 지나갔던 것 때문일까? 지금 이 글을 쓰고 있는 이 순간 그 아이는 물론 그해 우리 반 모든 아이들…
2020-09-02 13:24
“선생님, 스승의 날 뵙고 카네이션 달아드리지 못해서 죄송해요. 선생님은 제게 가장 기억에 남는 선생님이세요! 항상 웃는 일만 있으시고 행복하세요!” 스승의 날 밤, 이전 학교의 제자에게 메시지를 받았다. 처음엔 갑자기 받은 메시지의 누구였지 싶었다. 약간 뜸을 들이고 나서야 그 친구의 모습이 기억났…
2020-08-24 11:08
2018년 3월 내가 전근 가게 된 곳은 경남 지역에서 다문화 학생이 가장 많은 농어촌 학교, 진영금병초등학교였다. 생김새는 조금 다르지만 새로운 선생님을 바라보는 호기심 어린 눈빛만큼은 누구보다 순수하고 여느 또래 아이들과 다를 바 없는, 그런 다문화 학생들이 많은 학교에 첫발을 내딛게 된 것이다.…
2020-07-13 16:23
올해 우리 반에는 특별한 아이가 하나 있었다. 조금 생소하긴 하지만 어찌 보면 지극히 평범할 수도 있는 아이, 바로 탈북 학생이었다. 엄밀히 말하면 북한 출생은 아니지만 북한 사람인 어머니가 중국으로 탈북하고 거기서 만난 조선족 아버지와 함께 낳은 아이라서 법적으로 탈북 학생으로 분류된다고 한다.…
2020-06-09 09:31
덜덜거리는 버스를 타고 1988년 초임지에 설렘으로 교직의 문을 두드리던 햇병아리 교사가 어느새 30년을 넘기며 어미 닭이 되어 아이들의 꿈과 희망을 품어내고 있다. 항상 새로이 맡게 되는 아이들을 볼 때마다 새로운 기대와 소망이 차오른다. 아마도 그것은 이미 내 가슴속에 민들레 꽃씨가 되어 나를 더…
2020-04-21 18:02
제자들과 함께 학교생활을 시작한 지도 벌써 30년의 세월이 흘렀다. 1989년 처음 교단에 섰을 때, 제자들이 ‘선생님! 이라고 불러줄 때 너무 기쁘기도 했고 한편으론 내가 교사라고 불릴 만한 그릇이 될 수 있는지에 대하여 생각하며 과분한 호칭이라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성경에 보면 선생은 옳은 말을 하…
2020-04-21 17:49
어릴 적 사고로 인해 오른쪽 다리를 저는 절름발이 인생을 살아야 했다. 초등학교부터 고등학교 졸업 때까지 전 교생 중 장애인은 유일하게 나 혼자였다. 하지만 부모님의 헌신과 사랑을 통해 장애로 인한 나름대로의 고통의 기간을 슬기롭게 극복할 수 있었다. 장애의 과정을 겪어서인지는 몰라도 장애인들에…
2020-03-24 16:41
“우리 아빤 모닝글로리 사장님이야. 서울에서 일주일에 한 번씩 내려오시는데 장난감과 예쁜 옷을 사다 주시지. 우리 4남매는 부모님과 행복하게 살고 있어.” 혜인이는 가족을 이렇게 소개했고 아이들은 혜인이를 부러워했다고 담임 말했다. 내가 혜인이를 처음 만난 건 2017년 7월이었다. 시청에서 복지…
2020-02-18 16:22
‘카톡-’ 나른한 주말, 가을 햇살을 받으며 거실 쇼파에 누워있는데, 메시지가 왔다. 작년에 졸업한 제자, 마이크다. 「필승-! 해병 김마익! 쌤- 저 뉴스에 나왔어요 한번 보세요」 첨부한 뉴스 링크를 확인한다. ‘해병대에 자원입대한 외국인 화제’란 기사 그 속에 피부가 유달리 까만 그 아이는 ‘김마익’…
2020-02-12 15:32
지난 1월 방송국에서 연락이 왔다. 학생들과 함께해온 헌혈 릴레이와 나의 헌혈 이야기를 방송하고 싶다고 했다. 사실 몇 년간 제자들과 헌혈 활동, 캠페인 활동을 한 이야기가 신문을 통해 지역에 알려지면서 1년 전에도 연락이 왔었지만 사양했었다. 나보다 헌혈도 더 많이 하고 훨씬 더 감동적인 삶을 살고 계…
2020-01-17 10:4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