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등학교 삼학년의 경우, 일주일에 세 시간의 체육시간이 있다. 나는 세시간의 학습활동 중 한 시간 정도는 실내에서 체육교과서에 따라 건강을 위한 보건 위생교육, 안전생활, 실기에 앞선 이론 등을 충분히 지도하고 싶다. 그런데 학생들은 체육시간만 되면 언제나 운동장이나 강당으로 나가 체육 실기를 하길 원한다. 의자에 따분하게 앉아서 하는 학습보다는 몸을 자유자재로 움직이며 이리 뛰고 저리 뛰며 달려보자는 욕구 때문이라고 본다. 어느 날 체육시간이었다. 삼십여명의 학생들을 종횡으로 반듯하게 줄 세워 정지간 방향전환, 이동 중에 방향 전환, 체조, 순환운동 등을 하다 보니까 어느새 정해진 수업시간이 반을 넘고 있었다. 한참 수업을 하던 중 체육부장으로 선임된 하람이란 아이가 나에게 한마디를 던진다. “선생님, 빨리 저희들이 좋아하는 체육해요.” 애들이 좋아하는 `체육’이란 보나마나 놀이와 게임이다. 우리 반 아이들이 가장 좋아하는 종목은 축구경기다. 삼학년이 여섯 번이나 되는데 축구경기에서 언제나 우리 반이 이기고 있으니 그 우승의 자리를 고수하기 위해서는 체육시간에 게임기술을 익혀야 한다는 게 아이들의 주장이다. 연습이나 시합을 할 때 선생님이 정확한 심판을 봐
지난달 전북도 교육감 선거가 평온 속에 끝났다. 세 명의 후보가 각축전을 벌이다 당선자가 생기자 서로 축하와 위로해주는 아름다운 모습을 보면서 흐뭇함을 느낀다. 그런데 금번 선거를 유심히 지켜보니 교사들이 투표권이 있는 교사나 없는 교사나 모두 다 관심도가 높은 것을 알 수 있었다. 현행 교육감 선거의 투표권은 학교운영위원회의 교사와 학부모 운영위원들의 일부만 투표권을 행사한다. 교육감 선거에 관심이 많은 지역 교사들은 일부 교사들만 참여하는데 불만이 많다. 그래서 대다수 교원들은 교원 모두 다 투표권이 주어지기를 간절히 바라고 있다. 지역의 교육수장인 교육감을 뽑는 데는 학부모들보다 교사들이 인물 선택에 더욱 신중을 기해 투표권을 행사할 수 있다고 자부한다. 지방자치 시대가 활발히 열리고 있는 이 시대에 모든 단체장들은 직선제로 뽑히고 있다. 그런데 교육감 선거만 유별나게 반절충식 직선제로 되어 있어 시대흐름에 걸맞지 않다고 본다. 차후부터는 각 시·도 교육감 선거는 그 지역의 전체 교원이 참여함으로써 교육발전에 기여하는 인물을 찾기 위해 교원들이 결집하는 계기를 만들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
방학중에 어른이 다 된 제자 한 명을 만났다. 오랜만에 만난 제자는 결혼해 적성에 딱 맞는 일도 하며 안정된 생활을 하고 있다는 소식을 들려주었다. 같이 앉아 이야기를 나누다보니 자연 옛날의 기억을 더듬게 됐다. 그러니까 우리 제자가 삼 학년 시절이었다. 삼월 신학기 때, 새롭게 만난 반 친구들과 선생님으로 희망의 설렘이 가득한 때였다. 선생님들은 반 아이들의 얼굴과 이름 익히기에 진땀을 흘린다. 빨리 정상적인 생활을 하기 위해 이름과 얼굴을 번갈아 보며 머리에 입력하는 집중작업이 벌어진다. 그러나 실수는 있는 법. 지명한 학생 이름을 실수로 달리 불러 교실에 웃음꽃이 피어나는 시기도 바로 삼월 학기초다. 새 학기가 시작됐고 우리 반은 약 사 십여 명이 되었다. 그날부터 얼굴과 이름을 외우기 시작했다. 잠자리에 누워서도 사 십여 명의 얼굴을 그리고 지우기를 반복했다. 만난 지 일주일도 채 안된 어느 날이었다. 우리 반 학생과 옆 반 학생을 혼동해서 웃었고 또 오늘 만난 제자는 쉬는 시간에 문 옆에서 딱지치기를 하고 있었다. "야, 너는 몇 반인데 우리 교실 옆에 와서 딱지치기 하니?" 그랬더니 아이는 "선생님, 저 선생님 반이에요"하며 밖으로 밀어내는 나의
지금 교실에는 교사들이 서서 학생을 가르치던 교단이 없어지고 그 자리에 멀티학습을 위한 교육 기자재가 놓여 있다. 즉, 다목적 책상에는 컴퓨터가 있고 캠코더, 엔코더 등이 TV, 비디오에 연결돼 있어 학습활동에 큰 몫을 하고 있다. 그런데 이런 변화로 인해 교사나 학생들이 쓰기를 소홀히 하는 경향이 생겨났다. 교사들이 옛날처럼 칠판을 쓰는 일이 줄어들면서 학생들 역시 공책을 잘 정리하려는 마음이 없어진 듯하다. 컴퓨터에서 자료를 얻을 수 있고 컴퓨터 자판 두드리기에 이미 익숙해진 탓도 있다. 그래서인지 고학년이 되어도 아라비아 숫자, 우리 한글 자모 순서를 틀리게 쓰거나 써 놓은 글씨라도 모양새가 예쁘지 않고 알아보기조차 힘든 경우가 많다. 다 학생 스스로 글씨를 직접 써보는 일이 많이 줄었기 때문이다. 아무리 컴퓨터에 의존하는 사회가 됐지만 손에 필기구를 잡게 하고 바른 글씨로 글을 쓰도록 하는 교육은 보다 중요하게 이뤄져야 한다고 본다. 글씨에는 그 사람의 인격이 담겨 있다고 하지 않는가. 아이들이 직접 글을 쓰고 각자의 글씨에 애정을 갖도록 관심있게 지도해야 할 때다.
지금 교실에는 교사들이 서서 학생을 가르치던 교단이 없어지고 그 자리에 멀티학습을 위한 교육 기자재가 놓여 있다. 즉, 다목적 책상에는 컴퓨터가 있고 캠코더, 엔코더 등이 TV, 비디오에 연결돼 있어 학습활동에 큰 몫을 하고 있다. 그런데 이런 변화로 인해 교사나 학생들이 쓰기를 소홀히 하는 경향이 생겨났다. 교사들이 옛날처럼 칠판을 쓰는 일이 줄어들면서 학생들 역시 공책을 잘 정리하려는 마음이 없어진 듯하다. 컴퓨터에서 자료를 얻을 수 있고 컴퓨터 자판 두드리기에 이미 익숙해진 탓도 있다. 그래서인지 고학년이 되어도 아라비아 숫자, 우리 한글 자모 순서를 틀리게 쓰거나 써 놓은 글씨라도 모양새가 예쁘지 않고 알아보기조차 힘든 경우가 많다. 다 학생 스스로 글씨를 직접 써보는 일이 많이 줄었기 때문이다. 아무리 컴퓨터에 의존하는 사회가 됐지만 손에 필기구를 잡게 하고 바른 글씨로 글을 쓰도록 하는 교육은 보다 중요하게 이뤄져야 한다고 본다. 글씨에는 그 사람의 인격이 담겨 있다고 하지 않는가. 아이들이 직접 글을 쓰고 각자의 글씨에 애정을 갖도록 관심있게 지도해야 할 때다.
내가 초등학교 다니던 1950년대 후반 그때의 우리나라는 모든 것이 어려움이 많던 시절이었습니다. 교실이 부족해서 운동장 한켠에서 혹은 학교에서 가까운 제각이나 야외에서 칠판을 걸고 공부를 했습니다. 오전, 오후반으로도 나뉘어 있었고요. 우리 부안남 초등학교의 학생들은 그 당시 교복을 입었습니다. 남녀학생 모두 여름, 겨울로 나누어 입었는데 하복으로는 검정 바지에 하얀 옷, 추동복으로는 검정 양복에 이름표를 달고 흰 칼라를 하고 다녔습니다. 교복을 입었기에 학생들이 모이면 보기 좋았던 정점들도 있었으나 하얀 칼라를 자주 세탁해야하는 부지런함도 있어야 했습니다. 매주 수요일에는 용의검사를 어김없이 해서 손, 발톱 및 몸의 때, 옷의 청결 등이 불량한 학생으로 적발되면 상당한 기합(?)을 받았습니다. 그 당시 저는 옷을 너무나 함부로 더럽히고 아무렇게나 입고 다녔기에 늘 기합을 받는 편이었습니다. 학교 갔다오면 옷을 갈아입지 않고 그냥 흙장난하고 뒹굴며 놀았기 때문이었습니다. 몇 차례의 용의검사 때 나는 적발되어 친구들이 보는 앞에서 더러워진 칼라를 뜯겼던 때도 있었습니다. 어린 마음이었지만 창피감을 많이 느꼈습니다. 그러나 사 학년 때 담임 선생님께서는 칼라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