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방학중에 어른이 다 된 제자 한 명을 만났다. 오랜만에 만난 제자는 결혼해 적성에 딱 맞는 일도 하며 안정된 생활을 하고 있다는 소식을 들려주었다. 같이 앉아 이야기를 나누다보니 자연 옛날의 기억을 더듬게 됐다.
그러니까 우리 제자가 삼 학년 시절이었다. 삼월 신학기 때, 새롭게 만난 반 친구들과 선생님으로 희망의 설렘이 가득한 때였다. 선생님들은 반 아이들의 얼굴과 이름 익히기에 진땀을 흘린다.
빨리 정상적인 생활을 하기 위해 이름과 얼굴을 번갈아 보며 머리에 입력하는 집중작업이 벌어진다.
그러나 실수는 있는 법. 지명한 학생 이름을 실수로 달리 불러 교실에 웃음꽃이 피어나는 시기도 바로 삼월 학기초다. 새 학기가 시작됐고 우리 반은 약 사 십여 명이 되었다. 그날부터 얼굴과 이름을 외우기 시작했다. 잠자리에 누워서도 사 십여 명의 얼굴을 그리고 지우기를 반복했다.
만난 지 일주일도 채 안된 어느 날이었다. 우리 반 학생과 옆 반 학생을 혼동해서 웃었고 또 오늘 만난 제자는 쉬는 시간에 문 옆에서 딱지치기를 하고 있었다.
"야, 너는 몇 반인데 우리 교실 옆에 와서 딱지치기 하니?"
그랬더니 아이는 "선생님, 저 선생님 반이에요"하며 밖으로 밀어내는 나의 손길을 밀치고 우리 교실로 들어왔다. 그때의 추억을 제자는 어른이 돼서도 기억으로 되살려내고 있었다. 교사라면 삼월 학기초에 흔히 겪는 작은 실수인데 아이들의 마음에는 그런 일까지 남아 있는 모양이다.
사람은 누구나 만나면 얼굴과 이름을 익히기를 원한다. 그래서 따뜻한 마음이 오간다. 학교에서 만난 스승과 제자 사이는 더욱 말할 것도 없다. 오랜만에 만난 제자 때문에 난 노을진 하늘에 흐릿해진 그 아이들의 얼굴을 그렸다 지우기를 반복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