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세기를 살아가는 학생들은 디지털 매체에 매우 익숙하다. 그래서 우리는 그들을 디지털 원주민(Digtal Natives)이라 부르기도 한다. 스마트폰으로 뉴스를 소비하고, 유튜브나 SNS에서 정보의 파편을 모으며, 사고력과 판단력을 키운다. 그러나 기존의 신문활용교육(NIE)은 종이신문 중심, 정답 중심그리고 낮은 참여율로 인해 갈수록 학생들의 현실과 괴리가 커지고 있다. 따라서 이제는 신문 활용을 디지털 중심으로 재구성하고, 비판적 사고와 창의적 표현을 강화하는 새 접근이 필요하다. 디지털 중심 신문활용교육(NIE)의 재구성 첫째, 디지털⋅멀티미디어 기반 플랫폼을 통한 신문활용교육으로 전환해야 한다. 디지털 신문의 기사, 영상, 인터렉티브 데이터 등을 활용해 학생들이 스스로 탐색하고 분석하게끔 유도해야 한다. 예컨대, 사건별로 다양한 뉴스 플랫폼의 관점을 비교⋅분석하는 과제를 통해 뉴스 리터러시를 강화할 수 있고, 기사 내 인포그래픽, 시각 데이터, 영상 인터뷰 등을 함께 읽고 해석하는 활동은 정보 통합력과 이해도를 높여줄 수 있다. 둘째, 프로젝트 기반 활동 중심으로 수업을 설계해야 한다. 단순 기사 요약보다는 학생들이 실제 주제(예, 지역 이슈,
시인 박노해는 ‘다시’라는 시에서 다음과 같이 노래했다. “희망찬 사람은/그 자신이 희망이다/길 찾는 사람은/그 자신이 새 길이다/참 좋은 사람은/그 자신이 이미 좋은 세상이다/사람 속에 들어 있다/사람에서 시작된다/다시 사람만이 희망이다.” 이는 오늘날 세상살이에 온갖 어려움을 겪으며 살아가는 사람들의 다짐이고 마음을 노래한 것으로 보인다. 여기에는 인간이 한없이 나약하고 부족해 보여도 귀한 존재로 창조됨에 대한 감사와 나 자신 안에서 희망을 찾고자 하는 의지가 담겨 있다. 교육은 ‘바람직한 인간’, 곧 ‘올바른 사람’을 길러내고 양성하는 것이다. 우리는 누구나 자신의 의지와는 달리 이 세상에 ‘인간’으로 ‘피투(내 던져진)’된 존재다. 여기서 피투는 존재와 시간이란 명저를 출간한 독일의 철학자 하이데거가 강조하는 존재의 자유와 자기 초월성을 설명하는 개념으로 그는 인간이 항상 미래를 행해 무언가가 되려고 하는 존재로 보고 있다. 예컨대 ‘나는 내가 한국인으로 태어난 것을 바꿀 수는 없지만 그 조건 안에서 철학자가 될 수도, 작가가 될 수도 있는 가능성의 존재’라는 의미다. 여기에 바로 교육의 위대한 힘이 다시 작동하게 된다. 우리는 이미 어떤 조건
오늘날 세계는 국가의 생존을 짊어지고 디지털 대 전쟁에 나서고 있다. 전 세계 어디를 가도 AI 기술은 갈수록 일상의 파트너를 넘어 이제는 인간의 고유 영역 안쪽까지 깊숙이 파고 들고 있다. 가까운 미래는 인류가 AI 로봇을 통제하는 것이 아니라 어쩌면 그들에 의해 조종되는 종속상태를 우려해야 한다는 각종 경고메시지가 나오는 이유다. 그렇다면 이런 디지털 전쟁의 시대에 학교는 어떻게 AI 교육을 실시할 것인가? 결론은 각종 부작용의 틈새에도 불구하고 학교에서의 AI 교육은 확고한 철학을 전제로 그 역기능을 철저히 보안해 대폭 확대 적용해야 한다는 것이다. 2025년 초, 미국 라스베이거스에서는 미래 기술을 미리 볼 수 있는 세계 최대의 행사가 열렸다. 바로 CES(Consumer Electronic Show)다. CES를 살펴보면 혁신 트렌드와 미래 산업의 변화 방향을 알 수 있기에 전 세계의 이목이 집중된다. 그렇다면 이번 CES를 관통하는 주제는 무엇이었나? 그것은 바로 인간의 삶을 바꾸는 기술, 바로 인공지능(AI)이었다. 1년 전 CES 2024에서는 ‘All together, All on’을 주제로 인류 문제 해결의 열쇠를 혁신기술, 그중에서 AI
한국인의 저력은 어디까지 일까? 최근 한국의 토종 창작 뮤지컬 ‘어쩌면 해피엔딩(Maybe Happy Ending)’이 미국 연극⋅뮤지컬의 아카데미상으로 불리는 토니상에서 무려 6관왕에 오르는 기염을 토했다. 최고 영예인 작품상을 비롯해 극본상, 연출상, 작사⋅작곡상, 무대디자인상, 남우주연상 등을 석권한 것이다. 토니상은 오스카상(영화), 에미상(TV), 그래미상(음악)과 함께 미 대중문화계에서 최고 권위를 인정받는 상이다. 우리에게 이제는 그래미상만 남았다. 이 또한 현재까지의 BTS, 블랙핑크 등 빌보드 차트를 휩쓰는 K-팝 그룹의 활동으로 가능성이 높은 상태다. 머잖아 ‘그랜드 슬램’을 이룰 날이 멀지 않았음을 예측할 수 있다. 이렇게 한국인의 창의성 저력은 그저 어쩌다 우연히 주어지는 상황이 아님을 증명하고 있다. 지난달에도 국산 기술과 자본으로 제작된 에니메이션 ‘킹 오브 킹스’가 북미 박스오피스에서 기록적인 흥행 수익을 올렸다. 이미 오스카상에 빛나는 ‘기생충’을 뛰어넘는 실적이다. 이런 놀라운 성과는 잠재력이 뛰어난 한국인의 두뇌에서 충분히 입증이 되고 있다. 한국인은 오래 전부터 국민 평균지능지수(IQ)가 전 세계의 2~5위권을 오르내리고
역사학자이자 미래학자인 유발 하라리 교수는 저서 『호모 데우스』에서 신이 되려는 인간 세상에는 “변화만이 유일한 미래의 상수(常數)”라고 주장했다. 하루가 다르게 변모하는 요즘 세상은 첨단 과학⋅기술 문명의 요람인 4차 산업혁명 명찰을 달고 입학한 아이가 얼마 지나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눈을 비비고서야 알아볼 정도로 괄목상대(刮目相對)하게 성장한 상태라 할 수 있다. 이제 현실과 가상의 상호작용을 이용한 3차원의 디지털 세상과 챗GPT, AI와 로봇기술 등 첨단과학기술은 앞으로 어떤 모습으로 인류를 변화시킬지 상상의 끝을 측량하기 어려울 정도다. 하지만 인간은 역사적으로 볼 때 약간의 성공을 거두면 이내 오만해지는 속성이 있다. 그래서 결국 영원히 성공한 사람도, 영원히 실패한 사람도 없다. 우주의 섭리가 조화로운 것처럼, 인간의 흥망성쇠 역시 공평하다. 한때 예루살렘은 바빌론 제국에 의해 무너진 것이 아니라, 자멸했던 것이다. Covid-19가 가져온 지난 3년 여의 기나긴 역경의 시간은 인류에게 새로운 삶을 다시 시작해 보라는 경고와 같았다. 마치 르네상스가 죽어가는 유럽을 살려냈듯이, 이제 인류에게 필요한 것은 과거의 체계를 대체하여 다시 태어나려는
‘어떻게 하면 공부를 잘할 수 있을까?’ 이는 학생들이 가지는 가장 기본적이자 공통된 질문이다. 물론 이에 대한 다양한 학습법이 세간에 널리 소개되어 있다. 그러나 사람의 얼굴과 개성이 각자 다르듯이 공부하는 효과적인 방법도 개인에 따라 천차만별이다. 그렇다면 실제로 옛 성인(聖人)들이나 천재들은 어떻게 공부했을까? 여기선 개략적이나마 서양과 동양을 아우르는 공부와 사색의 조화, 전통적인 격물치지(格物致知) 학습법을 소개하고 이를 우리 교육에 적용하기 위한 방법을 모색하고자 한다. 2500년 전 고대 그리스에서 당시 최고의 현자로 불리던 소크라테스는 일명 ‘산파술’의 교육자로 알려져 있었다. 그는 아테네의 젊은이들을 정신적으로 타락시켰다는 죄명으로 독배를 받고 순간에 생을 마감했다. 그렇다면 그의 완전학습을 위한 교육 방식인 산파술은 무엇인가? 가장 먼저 “그게 무엇인가?(What?)”라는 질문으로 시작한다. 이는 선입견, 편견, 자기의 생각, 현재의 잘못된 앎을 검토하게 하면서 무지 자각, 즉 원점에서 다시 시작하도록 하게 한다. 그런 후 “왜(Why?)” 그리고 “어떻게(How?)”라는 질문이 계속되면서 생각의 각도를 조금씩 틀어준다. 이렇게 함으로써
필자는 1979년 대전의 D고교를 졸업했다. 당시 전국의 5대 도시가 고교평준화로 인해 대전의 D고교는 지방의 몇몇 도시의 고교들과 함께 S대 진학의 최상위권을 다투던 시기였다. 76년 D고교에 입학하니 본관 건물의 상단 한 가운데 “전국 제패 학생 되고 끌어주는 스승 되자”라는 슬로건이 크게 돋보였다. 3년의 고교생활은 그야말로 오직 하나 S대 진학의 목표에 몰입되어 공부 밖에 할 줄 아는 것이 없을 정도로 학구파가 되었다. 하지만 그러한 노력도 한 순간의 결정으로 다양한 진로의 폭을 넓히지 못하고 단순한 사고에 집착했다. 그 결과는 개인적 환경을 넘어 입시철이면 후학들에게 전하고 싶은 진로 선택의 고언이자 충언으로 남았다. 필자는 집안의 장손으로 대학생 1호다. 1960년 출생 당시, 대한민국은 대부분의 가정이 가난한 시절이었지만 필자의 경우 그중에서도 특히 빈곤한 집안으로 부모 세대는 모두가 초등학교 졸업에 그쳤다. 필자의 부친은 할아버지가 일찍 작고하신 이유로 9남매의 장남으로 젊어서부터 한 집안의 부(父) 역할을 대신했다. 막내 동생(필자의 삼촌)만이라도 가르치고자 하는 의지로 충청도 시골에서 교육도시 공주의 고등학교까지 유학을 시켰으나 그 동생은
대한민국 이공계 엘리트 육성의 산실인 카이스트(KAIST)는 ‘실패할 수 있는 자유’를 모토로 2021년에 설립된 실패연구소가 있다. 이는 실패로부터 배우는 카이스트의 이색적인 도전을 상징한다. 실패를 용납하지 않는 경직된 사회 분위기와 맞물려 학교에서 한때 극단적 선택의 사례가 빈번해짐에 따라 대학으로서 이에 대한 대책을 마련한 역발상의 산물이다. 카이스트 실패연구소는 지난 11월 8일부터 2주간을 ‘실패 주간’으로 정하고 ‘망한 과제 자랑대회’와 ‘실패 에세이 공모전’ 등 실패 사례를 공유하는 다양한 행사를 열었다. 각자의 실패 사례를 숨김없이 드러내고 그에 따른 고통을 어떻게 극복했는지 서로의 경험담을 공유하면서 ‘실패는 누구라도 피할 수 없는 것’이며 ‘실패야말로 성공의 첫 걸음’이란 인생의 진리를 자연스럽게 깨닫게 하자는 취지에서 해마다 실패학회 행사를 이어오고 있다. 중앙선데이(2024.11.16.)의 심층기획 기사에 의하면 실패연구소가 설립된 뒤 학생들은 ‘실패’라는 단어를 터놓고 얘기할 수 있는 자리가 만들어지자 변화의 움직임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금년에 2회 째 열린 ‘망한 과제 자랑대회’는 성황리에 개최되고 학생들의 반응은 예상보다 뜨거
한때 직업 선호도 조사에서 초등학교 교장이 크게 선망의 대상이 된 적이 있다. 자녀에게 상속하고 싶은 직업 1위로 선정된 것이다. 자신의 직업을 자녀에게 물려주거나 대를 이어 승계하기에는 망설임이 큰 것이 보통 사람들의 인지상정(人之常情)이다. 그만큼 자신의 직업이 힘들고 어렵다고 느껴 사랑하는 자녀에게는 그와 같은 고통을 물려주지 않고자 하는 것이 부모로서의 마음의 발로이기 때문으로 판단된다. 하지만 초등 교장은 그와 같은 통념을 깨고 일시적이나마 한때 상속해주고 싶은 최고의 선망의 직업으로 드러난 것은 특별한 의미를 갖는다. 그렇다면 교장이란 위치가 사회적 인지도 역시 그에 비례해 국민으로부터 존경과 부러움을 받고 교사들로부터 선망의 대상인가? 안타깝게도 각종 언론에서는 전국에 걸쳐 학교 관리자로서의 교장에 얽힌 안타깝고 불명예스러운 소식들이 자주 들려온다. 대개는 권위적이고 불통이며 반민주적인 학교 경영으로 같은 가족인 교사들로부터 비난과 성토를 당하고 또 학부모들로부터도 원망과 공격의 대상으로 등장하기도 한다. 그럴 때마다 솔직히 전국 50만 명의 교원 중에 일부로 간주하고 위로하며 가슴을 쓸어내리곤 한다. 그런데 최근 한 초등 교장의 비상식적이고
이 시대 대한민국의 교사들의 몸과 마음이 매우 아프고 절망적이다. 이는 그들이 더없이 나약하고 자신들 하나 관리하고 책임질 능력이 없어 그런 것이 결코 아니다. 주지하는 바와 같이 대한민국의 교사들은 세계적으로 우수한 역량을 널리 인정받고 있다. 예컨대 미국의 전임 오바마 대통령은 재임 중에 수차례에 걸쳐 “한국의 교육을 보라”고 외치면서 국민의 높은 교육열과 함께 교사들을 '국가의 건설자(Nation Builder)'라고 칭송했다. 최근 그 어렵다는 교원 임용고시를 통과하고 교직에 입문한 젊은 교사들이 낮은 경제적 처우와 교권 추락에 절망하여 이직을 하는 기사가 언론에 자주 오르내리고 있다. 특히 폭발적으로 증가하는 N수생(3수 이상의 수험생)에 가담하여 의사되기에 도전하고 있다는 소식은참담할 뿐이다. 이는 단편적으로 보아도 그들이 소위 ‘공부의 달인’들만이 되는 의사되기에 도전할 만큼 높은 학력(學力)을 소유하고 있기 때문이다. 실제로 교사 중에는 고등학교를 최우등으로 졸업하고 S대에도 이중 합격한 상태에서 교직을 최종 선택한 경우도 적지 않다. 대한민국의 교사들은 이런 학력을 바탕으로 자존심이 매우 강하고 남에게 지기를 싫어하는 특성을 보유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