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단수기> 할머니의 기도
만남 그 녀석을 처음 만난 것은 96년 5월 어느 날이었다. 퇴근 무렵 싱그런 오월의 햇살을 받으며 현관을 나서는데 교감 선생님, 관할 파출소 순경, 담임 선생님, 그 녀석의 손을 잡은 할머니 이렇게 다섯 명이 어두운 표정으로 교장실로 들어가는 것을 보았다. 그 녀석에 대한 소문은 작년부터 여러 번 들었지만 만남은 처음이었다. 나는 속으로 ‘겉모습은 멀쩡하게 잘생긴 녀석이’하고 되내이며 교문을 나섰다. 집으로 오는 길에 그 녀석의 모습이 뇌리에서 떠나지 않았다. 그 녀석보다 시골 할머니처럼 온화한 표정으로 손자 녀석의 손을 꼭 쥐고 교장실로 들어가시던 할머니의 모습이 애처롭고 안타까워 발걸음을 무겁게 하였다. 96년 초부터 불어닥친 학교폭력 문제는 크게 사회 문제가 되었다. 우리학교는 그 녀석 혼자서 온통 학교를 휘저어 놓았다. 도심의 신개발 지역에 위치한 우리학교는 60학급이 넘는 다인수 학교였다. 개발 붐을 타고 우뚝우뚝 솟는 고층 아파트 사이에 조상 대대로 농사지으며 살던 원주민들은 하루 아침에 도심의 이방인이 되어버렸다. 그 녀석도 할머니 일손을 도우며 농사를 짓고 살다가 주위가 갑자기 도시화되자 새로운 환경에 적응하지 못하고 말썽쟁이가 되고 말았다.
- 이진락 울산백합초 교사
- 1999-12-13 00:0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