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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장

<교단수기> 할머니의 기도

만남

그 녀석을 처음 만난 것은 96년 5월 어느 날이었다. 퇴근 무렵 싱그런 오월의 햇살을 받으며 현관을 나서는데 교감 선생님, 관할 파출소 순경, 담임 선생님, 그 녀석의 손을 잡은 할머니 이렇게 다섯 명이 어두운 표정으로 교장실로 들어가는 것을 보았다.

그 녀석에 대한 소문은 작년부터 여러 번 들었지만 만남은 처음이었다. 나는 속으로 ‘겉모습은 멀쩡하게 잘생긴 녀석이’하고 되내이며 교문을 나섰다. 집으로 오는 길에 그 녀석의 모습이 뇌리에서 떠나지 않았다. 그 녀석보다 시골 할머니처럼 온화한 표정으로 손자 녀석의 손을 꼭 쥐고 교장실로 들어가시던 할머니의 모습이 애처롭고 안타까워 발걸음을 무겁게 하였다.

96년 초부터 불어닥친 학교폭력 문제는 크게 사회 문제가 되었다. 우리학교는 그 녀석 혼자서 온통 학교를 휘저어 놓았다. 도심의 신개발 지역에 위치한 우리학교는 60학급이 넘는 다인수 학교였다. 개발 붐을 타고 우뚝우뚝 솟는 고층 아파트 사이에 조상 대대로 농사지으며 살던 원주민들은 하루 아침에 도심의 이방인이 되어버렸다. 그 녀석도 할머니 일손을 도우며 농사를 짓고 살다가 주위가 갑자기 도시화되자 새로운 환경에 적응하지 못하고 말썽쟁이가 되고 말았다.

작년 4학년 때 담임을 맡았던 김 선생님은 성격이 무던하신 분이셨다. 김선생님은 그 녀석의 고집을 꺾어 보려고 애를 썼으나 결석은 더 많아지고 학교 안팎에서 수없이 말썽을 부렸다. 그 녀석의 손등에는 담배불로 지진 흉터가 여러군데 있으며, 칭찬을 해도 야단을 쳐도 표정의 변화가 없다고 하였다.

올해 부임 해오신 이 선생님의 아들은 덩치도 큼직하고 씩씩한데도 그 녀석한테 당했단다. 뾰족한 쇠붙이에 위협당해 돈을 뺏겼는데 그 녀석이 우리학교 학생이라는 사실에 깜짝 놀라고 말았단다. 올해 담임을 맡으신 한선생님은 물론이고 주위의 여러분들이 온갖 정성을 기울여도 그 녀석은 학교에 돌아오지 않았다. 마을 주위를 맴돌며 하급생, 선배, 심지어 중학생들까지 이 녀석한테 당하기 일쑤였다.

이제 학부모님들도 그 녀석을 피하거나 혹시 마주치면 가진 돈을 줘버리라고 하는 단계까지 왔다. 나이가 어려 소년원에 보낼수도 없고 파출소 순경들도 이 녀석한테 꼼짝없이 당하기만 하였다. 여름방학이 가까워 오자 선생님들 사이에 그 녀석이 우리학교에서 분교되는 백합초등학교로 전학가게 되었다며, 환경이 바뀌면 혹시 달라지지나 않을까하는 기대를 하였다.

방학이 끝나갈 무렵 나는 자의반 타의반 분리 개교하는 백합초등학교로 전근을 가게 되었다. 학기중에 개교하는 바람에 본교나 분리되는 학교 모두 학급을 재편성하고 담임을 바꾸고 교실을 이동하느라 한바탕 소란이 일었다. 분리되는 백합초등학교는 넓은 들판을 택지로 개발하여 아직은 허허벌판에 최신식 학교 건물만 덩그러니 자리하고 있었다. 개교를 앞두고 며칠째 학교에 나와 교실정리, 책걸상 고르기, 기본 학습환경꾸미기 등 모든 선생님들이 눈코뜰새 없이 바빴다.

담임 배정과 반편성을 시작하면서 선생님들의 분위기는 어딘지 모르게 긴장이 감돌기 시작하였다. 그 녀석 현이가 5학년이라는 사실이 알게 모르게 선생님들의 말초신경을 자극하였다. 이 녀석에 대한 소문은 널리 퍼져 있었고 선생님들의 사랑과 노력을 헛수고로 만들어 버리고 말썽쟁이를 누가 맡아야 할지 모두들 걱정스런 눈치였다.

선생님들의 팽팽한 긴장감을 깨트리고 나는 5학년을 희망했고 현이를 맡겠다고 자청하였다. 순간 선생님들의 염려스러운 눈길이 쏟아졌다. 꼭 그 녀석을 담임해보겠다는 자신은 없었으나 몇 달전 만난 현이 할머니의 인자하신 모습이 뇌리를 떠나지 않았고 그 녀석과의 만남이 어떤 인연같이 느껴졌다. 선뜻 담임을 맡겠다고 자원을 했으나 알 수 없는 불안감과 걱정이 마음을 짓눌렀다.

나는 25년이라는 짧지 않은 교사 생활에서 항상 부족하고, 어린이들을 실망시키지 않았나 하는 생각에 스스로 부끄러워 한적이 얼마나 많았던가. 그래서 남들이 기피하는 학년인 5학년만 열 다섯 번을 맡았다. 나는 스스로를 위로했다. 십 년이면 강산도 변한다는데, 나는 5학년 베테랑이 아닌가. 현이도 5학년이니까 내 모든 정성을 쏟아 이 녀석을 학교 울타리 안으로 돌아오게 하자. 이렇게 다짐을 하고 나니 한결 기분이 나아졌다.


인내의 한계

96년 9월 1일 나는 700여명의 어린이들과 함께 백합초등학교로 이사를 왔다. 본교 어린이들의 성대한 환송을 뒤로한 채 30분쯤 걸어 새 학교에 도착하였다. 깨끗한 교정, 새로운 선생님, 새로 편성되는 학급에서 만나는 친구들, 백합초등학교는 본교의 다인수 학급에서 복잡하고 술렁이던 분위기와는 달리 차분하고 안정된 분위기로 바뀌었다. 학생수가 18학급 규모이고 학급당 인원수도 30여명으로 줄어들어 교실 분위기도 한결 조용해졌다.

5학년 성실반 33명을 데리고 새 교실로 입실하였다. 출석을 부르다 그 녀석의 이름을 부르자 일시에 교실 분위기가 술렁거렸다. 물론 첫날부터 그 녀석은 나타나지 않았다. 좌석 배정을 할 수가 없었다. 녀석과 짝이 되는 것은 물론이고 가까이 앉는 것마저 싫어하는 눈치였다. 그 녀석의 자리는 정하지 않은 채 남, 여 여섯줄로 띄어서 앉히고 맨 뒤 남학생 자리 세 군데 빈 책상을 두게 하였다.

둘째날, 출근하여 교실에 들어서는 순간 나는 깜짝 놀라고 말았다. 현이 녀석이 비워둔 남학생 줄의 맨 오른쪽에 떡 버티고 앉아 있는 게 아닌가. 나는 반갑게 그 녀석을 맞이하였다. 자리도 마음에 드는가 싶어 그대로 두었다. 몇 번을 물어도 대답이 없었다. 현이는 평범한 아이가 아니었다. 칭찬하면 웃고 즐거워하고 야단치면 조용히 하는 그런 어린이가 아니었다. 웃겨도 야단쳐도 무반응에다 선생님을 쳐다보지도 않는 거만한 태도. 한마디로 자기 마음대로였다.

나는 그 녀석과의 지루하고 고통스런 전투를 시작하였다. 내 모든 지혜를 총동원하여 학교에 스스로 걸어 들어온 이 녀석을 교실에 머물도록 해야겠다고 다짐하였다. 그러나 첫날부터 나는 그 녀석한테 무참하게 KO패를 당했다. 하루종일 관심을 보였는데도 눈길 한 번 주지 않았다. 청소당번도 숙제도 모든게 마음대로 였다. 학급 분위기가 엉망으로 변하고 말았다. 그날 오후 학부모들로부터 3통의 전화를 받았다. 그 녀석 앞자리에 앉은 남학생은 체격도 현이 만하고 착실한 웅이였다. 웅이 아버지가 전화를 하였다. 자리를 바꿀 수 없겠냐는 전화였다. 나는 조금만 참고 기다려 보자고 양해를 구했다. 잠시후 옆자리의 여학생 학부모 두분이 똑 같은 내용의 전화를 하였다. 나는 그분들에게 시간을 좀 달라고 간곡하게 부탁을 드렸다.

세쨋날도 이 녀석은 학교에 왔다. 나는 반갑게 현이를 맞았다. 온종일 그 녀석의 거만하고 퉁명스런 태도를 사랑으로 다독이며 그 녀석의 비위를 맞추었다. 3학년 때부터 결석을 밥먹듯 하던 녀석이 학교에 나온 것만도 얼마나 대견한 일인가. 나는 이렇게 생각하며 세쨋날의 전투를 시작하였다. 출석을 불러도 대답은 하지 않고 엉뚱한 곳만 쳐다보았다. 내가 관심을 가질수록 그 녀석의 태도는 좀 더 냉소적이고 야릇한 비웃음까지 띄었다.

둘째 시간에는 교장실로 데려갔다. 교장 선생님은 한 시간 동안이나 따뜻한 타이름을 주셨다. 교감 선생님도 학용품을 챙겨 주시며 공부 열심히 하라고 다독여 주셨다. 네쨋날, 드디어 희한한 효과가 나타났다. 수업을 마치고 컴퓨터실 청소지도를 하러 갔다가 깜짝 놀라고 말았다. 컴퓨터실 바닥이 온통 깨진 유리 조각으로 어지럽혀져 있었다. 무려 다섯 개가 넘는 형광등이 박살이 나있었다. 무섭게 소리를 쳤으나 아무도 사실을 말하지 않았다. 언뜻 우리반 남학생들이 가지고 놀던 장난감총 생각이 났다. 비비탄을 넣어 쏘는 총이었다. 위험하니까 학교에 가지고 다니지 말라고 주의를 줬는데. 현이 녀석의 짓이었다. 점심 시간에 폭력을 써 가져 오게 한 여러 자루의 장난감 총으로 사격 연습을 하였다. 이 사건으로 야단을 친다면 이 녀석을 또 학교에서 도망치고 말겠지. 나는 컴퓨터실 바닥을 깨끗이 청소하였다.

그날 오후 4학년 학부모님의 화난 전화를 받았다. 이 녀석이 돈을 뺏어 간 것까진 참겠으나 담배 심부름까지 시켰단다. 학부모님께 용서를 빌고 다시는 그런 일이 없게 하겠다고 위로를 드렸다. 개교한지 닷새째. 현이는 어슬렁어슬렁 학교를 한바퀴 휭 두르고 교실로 들어왔다. 나는 반갑게 그 녀석을 맞이하였다.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셋째 시간에 클럽활동 부서조직이 있었다. 현이의 희망대로 체육 부서로 가도록 배려를 하였다. 5교시 클럽활동이 끝나고 다들 교실로 돌아 왔는데 현이가 보이지 않았다. 운동장에서 두 녀석이 놀고 있었다. 한 녀석은 5학년에서 몸집이 제일 큰 혁이였다. 혁이는 키가 크고 힘도 세었으나 순한 아이였다. 이 녀석은 혁이를 볼모로 잡고 수돗물을 틀어 물장난을 하다가 혁이를 때리기도 하며 교실로 들어올 생각을 전혀 하지 않았다. 협동반 전선생님과 나는 빨리 들어오라고 손짓하자 두 녀석은 이상한 반응을 보이며 끝까지 교실에 들어오지 않았다. 선생님의 눈을 피해 다른 녀석들이 챙겨다 준 가방을 메고 가버렸다.

여섯째날, 그 녀석의 자리가 비어 있었다. 차라리 잘되었다 싶은 생각이 들었다. 한 녀석 때문에 다른 어린이들이 겪어야할 피해가 너무 큰 탓에 그녀석이 결석하는게 오히려 났다고 말씀하시는 선생님도 계셨다. 한편 섭섭한 마음이 들기도 하였다. ‘밖에 나가서 사고치는 것보다는 학교 울타리 안에서 선생님의 보살핌을 받는게 그래도 낫지 않을까’이런 생각을 하며 1교시 수업을 시작하려는데 창밖에서 이상한 고함소리가 들렸다. 현이였다. 두 녀석이 교실을 향해 뭐라고 고함을 치다가 선생님이 내다보면 숨어 버리고 또 괴성을 지르고 몇 시간 동안이나 이런 일이 계속되었다.

마침내 학교 아저씨 세 분과 두 녀석을 잡으러 나갔다. 현이는 순순히 교실로 돌아 왔으나 그 녀석은 학교 담장 밖으로 자리를 옮겨 계속 괴성을 질러댔다. 아이들이 모두 하교하고 나자 현이도 사라졌다. 이레째, 현이는 역시 교실에 나타나지 않았다. 운동장을 둘러봐도 보이지 않았다. '이제 가버렸구나' 하고 수업을 시작하려는데 담장 밖에서 숨어보던 녀석이 나를 보자 또 고함을 지르기 시작하였다. 그날 오후 제풀에 꺾여 담장에 기대앉아 있는 녀석을 뒤에서 조용히 불렀다.

“현아, 그래도 학교가 제일 낫지. 너를 위해 주고 사랑해 주는 곳은 학교뿐일 거야” 내말이 끝나기 무섭게 고함을 지르고는 저 멀리 달아나 버렸다. 이 녀석은 분명 내 인내의 한계를 시험하고 있는 것 같은 착각에 빠졌다.
개교 일주일, 그러나 녀석과의 실갱이를 생각하면 몇 주일의 사간이 흐른 것 같았다. 도저히 자신이 생기지 않았다. 그 녀석이 두렵다는 생각마저 들었다. 지금와서 이 녀석을 포기한다고 하면 다른 선생님들께 무슨 면목이 있겠는가. 교직 생활중 이렇게 고민에 빠져 본 적은 없었다.

나는 삶이 몹시 고달프고 어려움에 부딪치면 어머니를 생각한다. 어릴 때부터 참을성 없고 조그만 일에도 쉽게 흔들리는 나약한 자식을 어머니는 평생 사랑으로 감싸 주셨다. 어머니 속을 썩혔건만 매 한번 드신적 없고, 야단 한번 치신적 없으셨다. 나는 어머니께서 화내시는 것을 한번도 본 적이 없다. 철이 들기 시작하면서 어머니께서는 걸인들에게 동냥주는 심부름만은 내게 시키셨다. 누나들이 옆에 있는 데도 꼭 내게만 시키셨다. 아무리 투정을
부려도 어머니의 결심은 변함이 없으셨다. 어느새 나는 걸인들에게 동냥주는 일에 익숙해 졌고 즐거움을 느끼게 되었다.

유년시절, 아침마다 밥얻으러 오는 텃새 걸인들이 있었다. 나는 이들에게 밥과 반찬을 갖다 주었다. 몹시 추운 겨울아침 깡통에 밥을 부어주다 그만 밥 그릇을 깡통에 빠뜨리고 말았다. 내가 꺼내려 하자 거지 아이와 눈이 마주쳤다. 서로의 손에 땟자욱이 낀 것을 보고 둘다 웃음을 터뜨렸다. 어머니께서는 음식을 배불리 먹는 것도 죄가 된다고 하셨다. 배고픈 사람에게 밥 나눠주고, 추운 사람한테 옷 나눠 주는게 가장 큰 선행이라고 타일러 주셨다.

어머니의 엄지 손가락엔 지문이 나타나지 않았다. 주민등록증을 발급 받으러 갔을 때 지문 채취하는 아저씨께 미안하다고 하였으나 나는 속으로 울었다. 우리 어머니는 아무것도 가진게 없으셨다. 평생 일하고 베풀기만 하셨다. 죽으면 썩을 몸뚱이라고 하시면서. 나는 마음을 다져 먹었다. 내 곁으로 온 현이를 잘 보살펴 주자. 나도 이제 좀 베풀면서 살아가자.

8일째, 녀석은 다시 교실로 돌아왔다. 얼굴에는 역시 표정이 없었다. 항상 굳어 있는 표정, 어쩌다 힐끗 쳐다보는 눈에는 증오의 빛이 번쩍이는 것 같았다. 나는 반가이 현이를 맞이했다. 현이가 어떤 행동을 하던 나는 현이를 위해 주고 사랑해 주어야 한다. 야단 치거나 때려서는 현이를 학교 울타리 안에 잡아두기 어렵다는 사실을 안 이상 우리학교 모든 선생님들도 현이 한테 관심을 가지고 따뜻한 사랑을 베풀어 주셨다. 특히 동학년 선생님들과
전담을 맡으신 선생님들께서 그 녀석을 아끼고 사랑해 주셨다. 미술 전담을 맡으신 서 선생님은 준비물을 일일이 챙겨 주시고 그 녀석의 손을 잡고 스케치도 하고 서예 연습도 시켰다. 음악 선생님도 현이가 장난을 치거나 수업 분위기를 망쳐도 너그럽게 용서하고 그 녀석의 굳어버린 마음에 조그만 사랑의 씨앗을 뿌려 주었다.

가을 운동회 연습이 시작되자 현이는 큰 말썽없이 운동회 연습에 참가하였다. 운동회 연습을 하면서도 옆 친구 괴롭히기, 줄 마음대로 서기 등 분위기를 어지럽혔으나 나는 힘을 다하여 그 녀석의 기분을 상하지 않게 하였다.
개교한지 한 달이 지나고 운동회도 끝이 났다. 그러나 그 녀석의 태도에는 변화가 없었다. 전과 달라진 것이 있다면 학교에 꼬박꼬박 나와서 학습분위기를 엉망으로 만들어 버리는 것이었다.

그 녀석과 만난지도 35일 째, 이 녀석한테만 매달려 있으니 학급분위기가 말이 아니었다. 특히 남학생들의 태도는 눈에 띄게 달라져 갔다. 숙제는 거의 해오지 않고 청소 시간에도 장난이나 치다가 그 녀석과 어울려 슬쩍 가버리는 때가 점점 늘어났다. 그래도 나는 화 한번 내지 않았다. 얼굴 한번 찌푸릴 수도 없었다. 그 녀석 한데 조그만 자극이라도 줄까봐 꾹꾹 참았다. 그날은 토요일이었다. 수업을 마치고 대청소를 실시하였다. 그런데 현이 녀석이 어슬렁어슬렁 다니며 방해를 하다가 비를 들고 복도 청소를 돕고 있는 내 어깨를 툭 치면서 청소하는 친구들을 선동하는 게 아닌가.

나는 순간 이성을 잃었다. 그 녀석의 멱살을 잡고 따귀를 한 대 후렸다. 저만치 나뒹굴던 녀석이 일어서지도 않은 채 삿대질을 하며 대들기 시작하였다.

"왜 때려, 니가 뭔데."
식식거리며 대들었다. 청소를 하던 5학년 어린이들이 우르르 몰려 왔다. 나는 큰 소리로 청소하라고 고함을 치고 난 뒤, 그 녀석의 팔목을 꽉쥐고 교무실로 갔다. 퇴근길 선생님들이 모두 교무실로 모여들었다. 식식거리며 서 있는 이 녀석한테 한마디씩 타일렀으나 조그만 표정의 변화도 없었다.

교감 선생님이 "현아, 좀 참아야지. 요즘 결석도 하지않고 학교에 얼마나 잘 나왔니" 교감 선생님의 말씀이 끝나기도 전에 괴성을 한번 지르고는 선생님들 사이를 헤치고 달아나 버렸다. 나는 그 자리에 주저앉고 싶었다. 손끝 발끝 하나 움직이기 싫었다. 선생님들의 위로의 말이 한마디도 귀에 들어오지 않았다.

얼마나 지났을까. 넓은 교무실에는 시계소리가 크게 울리기 시작하였다. 지금까지 참고 쌓아온 탑이 일시에 무너져 버린 느낌이었다. 내 능력의 한계인가. 자신이 한없이 밉고 초라하게 느껴졌다. 그 순간 갑자기 울리는 전화벨 소리에 정신이 번쩍 들었다. 교무실을 꽉채우는 전화벨 소리, 나는 지금까지 그렇게 천둥처럼 울리는 전화벨 소리는 처음이었다.

"여보세요, 학교죠? 현이 담임 좀 바꿔 주이소."
현이 할머니였다.
"예, 제가 현이 담임입니다."
"선생님, 우리 손주 때리지 말고 가르쳐 주이소. 때리거나 야단치면 말을 더 않듣심더."
"예, 할머니 잘 알겠습니다."

지난 5월 어느날 만나 뵌적이 있는 현이 할머니였다. 집나간 어머니, 공사장으로 막일 다니느라 집을 비운 현이 아버지를 대신해서 지극한 정성으로 손자를 돌봐 주신다는 현이 할머니. 내게도 그런 할머니가 계셨다. 어릴 적부터 몸이 허약한 나는 운동회나 먼길 소풍 다녀온 뒤면 한번씩 앓아 누었다. 신열이 불덩이 갔다며 할머니는 물수건으로 내몸을 닦으시며 밤새 내곁을 떠나지 않으셨다. 열이 좀 내려 눈을 뜨면 가물가물한 등잔불 아래 염주를 꼭잡고 계시던 할머니는 죽그릇을 챙겨 오셨다. 먹어야 낫는다며 소태같이 쓴 입에다 김치국물을 떠 넣으시고 안 먹겠다고 손사래 하는 손자를 달래 몇 숟갈의 죽을 떠 넣으셨다. 할머니는 한 손에 염주를 굴리시고 한 손은 내 이마를 집고서 자장가 같은 기도로 긴 밤을 박꽃처럼 밝히셨다.

그 녀석을 만난지 36일째 되는날 아침, 내 예상과 달리 현이는 교실에 앉아있었다. 조금 풀이 죽은 표정이었다. 나는 현이에게 전처럼 관심을 주지 않고 출석을 불렀다. 그 녀석의 이름을 부르자 조그만 소리로 대답을 하였다. 처음 듣는 대답소리였다. 그날 오후 날카로운 쇠붙이를 하나 주워왔다. 임자가 없었다. 위험한 물건 같으니 버리자고 하였다. 다음날 손잡이가 없는 과일칼을 하나 주워왔다. 또 임자가 없었다. 현이가 가지고 있던 흉기를 스스로 버리는 것이 분명하였다. 외부에서 걸려오는 항의 전화가 눈에 띄게 줄어들었다. 현이의 굳어 있던 표정이 조금 풀린 것이 확실하였다. 그러나 현이의 짓궂은 행동은 계속되었다.

나는 이 녀석의 약점을 찾아 공략하였다. 주먹은 세고 힘은 있었으나 운동신경이 좀 둔한 녀석이었다. 체육시간에 우리 반에서 체격이 제일 크고 힘이 센 철이와 씨름을 시켰다. 현이 녀석이 나뒹굴었다. 현이 녀석은 분한지 한번 더하자고 했다. 둘째 판도 졌다. 현이는 자존심이 몹시 상한 것 같았다. 방과후 두녀석이 싸움을 했단다.
이제 현이가 절대자가 아님을 친구들은 알게 되었다. 그 후 두 녀석은 제법 친해졌다. 현이 한테 친구가 생긴 것이다. 매일 괴롭힌다며 일러바치는 6학년 남학생들에게 여럿이 힘을 합쳐 그 녀석의 버릇을 고쳐 놓으라고 귀뜸을 해주었다.

며칠 후 교문동에서 큰 싸움이 벌어졌다는 여학생들의 호들갑에 나가봤더니, 6학년 남학생들 사이에 둘러싸인 현이가 몇 번 씩씩거리더니 달아 나는 게 아닌가. 이제 현이의 표정은 보통아이들과 비슷해졌다.

문제아는 없다

그러나 3학년 때부터 결석을 밥먹듯 한 탓인지 공부에 전혀 흥미를 느끼지 않았다. 어떻게 하면 현이에게 공부하려는 의욕을 불어넣을 수 있을까. 여러 가지 방법으로 애를 써 봤으나 또 한계에 부딪치고 말았다. 공부가 하기 싫으니 수업시간에 옆 친구들을 괴롭히기 일쑤였다. 연필로 엉덩이 찌르기, 전자총으로 친구들의 등을 공격하여 외마디 소리에 모두를 놀라게 한 적도 여러번 있었다.

넓은 들판을 가로질러 달려오는 찬바람이 유리창에 부딪쳐 제법 소프라노 음을 내기 시작하자 긴 겨울방학이 시작되었다. 방학동안 현이는 한 건의 말썽도 피우지 않았다. 그러나 개학날 현이는 탐구생활도 하는 둥 마는 둥, 다른 숙제는 한 가지도 해오지 않았다. 당번날 학교에도 나오지 않았다. 특히 현이가 속한 남학생 조는 다섯 명 모두 잊어버렸단다.

야단을 치려는 순간, 현이가 “선생님, 저는 학교에 나왔어요.”하는 게 아닌가.
“학교에 왔으면 왜 선생님께 말씀드리지 않았니”
일직하시는 여선생님께 부끄러워서 창밖에 서 있다가 그냥 돌아갔단다. 이제 현이가 학교로 돌아온 것은 확실하구나. 나는 오랜만에 안도의 숨을 크게 쉬었다. 한해를 마무리하는 종업식이 가까워지자, 나는 또 걱정거리가 하나 생겼다. 현이 녀석을 6학년 때 누가 맡아야 하나. 현이를 학교에 돌아오게는 했지만 공부하는 습관을 고치기에는 내 힘이 너무 부족했다. 내 고민을 알아챈 박선생님이 선뜻 현이를 맡아보겠다고 나섰다.

'젊고 패기찬 박선생님의 지도아래 현이는 새로운 아이로 다시 태어나야 할텐데.’ 나는 속으로 기도했다.
새 학년이 시작되었다. 박선생님은 현이한테 자신감을 심어 주기 위해 여러 선생님들께 자주 심부름을 시켰다. 한결 밝아진 현이를 보며 나는 보람을 느꼈다. 97년 3월 하순경, 숙제를 해오지 않은 현이를 박 선생님은 가방을 챙겨 교실 밖으로 내쫓았단다. 대단한 모험이었다. 그러나 이 녀석 복도를 배회하다 교감 선생님을 만났다.

깜짝 놀란 교감 선생님은 “현아, 수업시간에 어디 가려고”현이는 고래를 숙인 채 말이 없었다. 교감 선생님은 현이를 데려다 숙제를 같이해 교실로 보냈다. 현이가 조금씩 공부에 흥미를 느끼기 시작했다며 박선생님이 기뻐하셨다. 나는 현이의 학교 생활을 매일 확인하는 버릇이 생겼다. 우리 모두의 사랑과 관심은 현이를 우리 곁으로 돌아오게 하였고 평범한 아이로 다시 태어나게 하였다. 우리는 그를 문제아라 부르기 전에 현이를 위해주고, 이해해 주고, 용서해 주고, 아껴 주고, 예뻐해 주고, 사랑해 주었다. 비록 현이 할머니의 지극하신 사랑에는 비할 수 없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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