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모나 교사에게 순종적이고 다정했던 아이가 어느 때부터인가 불만 가득한 표정을 지으며 말대답을 하거나 대들면 ‘사춘기가 심하게 왔구나’ 하고 생각한다. 반대로, 길거리를 지나가다가 키는 제법 큰데 밝은 표정으로 부모님과 대화를 하는 아이를 보면 ‘얘는 아직 사춘기가 안 왔나 보네’ 생각한다. 이렇듯 ‘반항심’을 사춘기의 도래를 가늠하는 가장 대표적인 신호로 보는 경우가 많다. 사춘기 가늠하는 대표적 신호 중·고등학교에서 교사 생활을 하면서 보란 듯이 반항적인 말과 행동으로 인내심을 시험에 들게 하는 제자들을 많이 만나 보았다. 그러한 제자들의 반항심 충만한 언행이 참으로 괘씸하게 느껴졌다. 그러다가 내 아이의 사춘기, 분신이라 믿었던 아들의 반항적 태도와 직면하면서, 괘씸한 수준을 뛰어넘어 깊은 실망과 배신감까지 느꼈다. ‘내가 너를 어떻게 키웠는데….’ 그런데 이 ‘반항’이라는 단어는 도대체 누구의 시각에서 이렇게 명명되고 정의 내려져 왔을까? 누구 입장에서 ‘반항’이란 말이 생긴 것일까? 결국은 부모와 교사로 대표되는 연장자 혹은 어른의 시각에서 아랫사람의 탐탁지 않거나 언짢게 여겨지는 몇몇 행동들이 반항의 범주로 분류돼 온 것이다. 우리 기
‘자식 이기는 부모는 없다’라는 말을 자주 듣는다. 이는 자식 일이 부모 뜻대로 되지 않으며, 자식이 부모의 뜻과 반하는 결정이나 행동을 하더라도 부모가 결국 수용하게 된다는 뜻일 것이다. 가정마다 상황이 조금씩 다르지만, 카리스마 넘치는 부모가 있는가 하면, 자녀의 눈치를 살피면서 자녀에게 맞추려고 애쓰는 부모도 분명히 있다. 사춘기 이후 바뀌는 부모의 태도 자식 앞에서 권위적이고 엄격했던 부모도 자녀의 사춘기 이후에는 조금씩 태도를 바꿔야 하는 경우가 생긴다. 아무리 야단쳐도 소용이 없고 오히려 아이가 더욱 반항하거나 어긋나게 행동하는 모습을 보이면, 부모는 자식에 대해 취했던 강경 노선을 조금씩 완화하게 된다. 그러다 보니, 아이 사춘기 이후 자식과의 관계에서 언제나 을이 되는 부모가 많다. 그러나 자식에게 을인 부모도 마음이 편치는 않다. 자식이 부모를 걱정시키고 속을 썩여도 부모는 자식에게 제대로 말도 못 하고 항상 져주고 받아 줄 수밖에 없는 상황이 과연 자녀 교육에 도움이 될까 걱정되기 때문이다. 눈에 거슬리는 행동을 하는 사춘기 자녀에 대해 단호하고 강경한 입장에 서는 부모들은 자식에게 맞춰주려고 쩔쩔매는 부모들을 보고, 이러한 양육 태도
맹자의 어머니는 자식 교육을 위해 이사를 세 번이나 했다고 한다. 교육환경이 좋은 곳으로 이사 가는 일은 요즘 우리 사회에서도 자주 목격된다. 유명 학군의 초등학교나 중학교에서는 학년이나 학기가 바뀔 때 전입생이 한꺼번에 몰려서 전입 담당 교사의 업무가 폭증하곤 한다. 예나 지금이나 교육환경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보여 주는 사례들이다. 교육환경도 중요하지만… 서울의 한 중학교에서 근무할 때, 친하게 지내던 선배 선생님들이 자녀의 교육을 위해 하나둘씩 이사하는 모습을 봤다. 먼저 이사 간 선생님들이 우수한 학군과 학원가에 관해 이야기하면서 아이의 전학을 권하자, 마음이 심하게 동요했다. 그런 동네로 이사를 하면 아이가 면학 분위기에 젖어서 더 열심히 공부할 것 같고 고입과 대입 등 아이의 진로가 근사하게 풀릴 것 같은, 막연한 희망과 환상이 마음 한가운데에 자리 잡으면서 무모하리만큼 용감하게 이사 대열에 동참했다. 그러나 현실은 기대와는 아주 다른 모습이었다. 친한 선생님의 자녀가 전학 가서 성공적으로 잘 지낸다고 해서 우리 아이도 반드시 그러하리라는 보장은 없었다. 성공은커녕 낯선 환경에 적응하고 새 친구를 사귀는 것조차 아이가 너무 힘들어했다. 웬만큼
경쟁은 우리 사회 도처에서 발견되는 참으로 익숙한 상황이다. 학업도, 취업도, 승진도 모든 것이 경쟁의 연속이다. 초등학교에 입학하는 순간부터 아이들은 학업에서 평가받기 시작하고 중학교와 고등학교를 거치면서 경쟁이 심화하다가 대입과 취업에서 그 절정에 이르게 된다. “경쟁 좀 안 하면 안 돼요?” 아들이 고등학교에 다닐 때, 어느 날 무심하게 질문을 던진 적이 있다. “엄마, 우리 사회는 왜 이렇게 경쟁이 심한 거예요? 경쟁 좀 안 하면 안 돼요?”하고. 심성이 곱고 마음이 약했던 아들은 친구들과 하는 내신 경쟁을 너무 힘들어했다. 공부 자체도 힘들지만, 자기가 열심히 공부할수록 옆에 앉아 있는 친구를 이기고, 그렇게 되면 친구가 내신 등급이 낮아져 친구에게 미안한 마음을 가져야 하는 것이 더 힘들다고 했다. 소수점 차이로 등급이 달라지는 치열한 고교 내신을 치르면서 아이가 겪었던 내적 갈등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질문이었다. 오래전에 대입도 겪었고 교사가 되기 위해 필기시험과 수업 시연, 면접 등 엄청난 경쟁을 경험했던 터라, 경쟁에 대해 나름의 논리를 세워 놓고 있었기에 다음과 같이 설명했다. 만일 우리 사회에서 경쟁이 없다면 어떻게 될까? 타고난 신분
아이는 어른의 아버지. 이 표현은 영국의 낭만주의 시인 윌리엄 워즈워스의 시, 무지개(Rainbow)에 나오는 구절이다. 대학 시절 시를 읽으면서 이 표현이 참으로 이상하고 난해하게 느껴졌다. 어른인 부모가 아이를 기르고 가르치므로 상식적으로 생각하면 ‘어른은 아이의 아버지’가 이치에 맞는 말이다. 아이가 장성한 후 이해한 말 말장난 같으면서도 심오한 의미를 품고 있을 것이라고 짐작했지만, 이 말의 진정한 의미를 오래도록 이해할 수 없었다. 유난히 이 구절이 마음에 남아서 묘한 울림을 일으켰기에 교육 현장에서 아이들을 가르치면서, 그리고 아이를 키우면서 가끔 떠올려 보곤 했다. 그리고 아이를 길러 장성시키고 나니까 이 말의 의미가 조금씩 이해되기 시작했다. 어른인 부모를 정신적으로 성숙시키고 성장시키는 계기를 마련해 준 사람은 다름 아닌 아이였다. 외둥이 아이의 교육에 올인 했던, 열정만 앞서고 지혜가 부족했던 초보 부모였기에 숱한 실수와 시행착오를 겪었다. 자식 일이 마음처럼 되지 않아 속앓이와 좌절, 후회를 두루 겪고서야 비로소 진짜 부모가 될 수 있었다. 아이와의 상호작용 속에서 아이만 성장하는 것이 아니라 부모도 부모로서 정신적 성장을 경험한
자식을 기르면서 아이와 한 번도 안 싸워 본 부모는 거의 없을 것이다. 눈에 거슬리는 아이의 언행이나 태도, 혹은 게임, 스마트폰 사용, 학업 문제 등으로 인해 자식과 갈등하는 순간이 생각보다 많다. 그럴 때마다 부모는 속을 끓이면서 화를 참았다가 터뜨리기를 번갈아 가며 한다. 아이와 싸우는 부모 자식을 사랑해주고 아끼는 부모가 아니라 아이와 싸우는 부모라니…. 순간적으로 화를 다스리지 못해 아이와 다투면서도 ‘이건 아닌데’ 하고 후회한 적이 있다. 어른답게 아이를 훈육하지 못하고 감정에 휩싸여 분노를 터뜨린 자신을 자책한다. 이런 일이 반복되면 부모로서 효능감과 자존감이 낮아진다. 잘못된 행동을 한 자녀를 훈계하기 위해 야단친 것인데, 왜 부모는 후회와 자책감을 느낄까? 그건 훈육이나 교육을 한 것이 아니라 부모가 분노의 감정을 이기지 못해 자녀에게 화를 냈기 때문일 것이다. 현대사회에서 부모의 역할은 아이를 낳아 기르는 것에서 그치지 않는다. 자녀를 잘 가르치는 역할이 강조되다 보니, 부모들의 책무가 더욱 막중해졌다. 그만큼 부모의 스트레스도 커졌다. 그런 와중에 우리 아이들은 자라면서 자기 생각과 주장이 생기고 선택권과 결정권을 가지려고 한다. 아
일반적으로, 교직에 있는 부모들은 남다른 자녀교육 비법을 가지고 있거나 자녀교육을 훨씬 수월하게 할 것이라고 기대하는 사람이 많다. 가르치는 직업에 종사하는 부모니까 자신의 아이들을 가르칠 때는 더 잘할 수 있을 것이라는 논리이다. 그런데 겪어보니 현실은 달랐다. 중학교와 고등학교에서 학생들을 가르쳤기에 사춘기 청소년에 대해서는 누구보다 잘 안다고 생각했는데 막상 우리 아이 사춘기가 너무나 낯설고 힘들게 느껴졌다. 학교에서 아이 또래의 학생들을 많이 만나왔는데도 정작 내 자식 사춘기에는 ‘설마 우리 아이가 이럴 줄은…’ 하고 당황하고 분노하면서 보냈다. 교사는 자녀교육도 잘한다? 사춘기 제자들을 교육했던 경험이 우리 아이의 교육에 왜 큰 도움이 되지 않았을까? 수업 시간과 일과 중에 마주했던 제자들과의 제한적 소통은, 태어나면서부터 지금까지 계속 이어온 우리 아이와의 전인격적인 소통과는 상당히 달랐다. 제자들을 지도하면서 섭섭함을 토로하거나 화를 낸 적도 있었지만, 감정보다는 이성적 판단으로 대하려고 노력했다. 그런데 내 아이에게는 부모로서 이런 모습, 저런 모습을 다 보여주면서 이성보다는 감정적으로 대할 때가 많았다. 학교에서는 제자들에게 높임말을 쓰면
신학기가 시작됐다. 신학기를 맞이할 때마다 아이들도, 부모님들도 설렘과 함께 두려움도 느낀다. 새로운 환경에 잘 적응할 수 있을지, 새 반 친구들은 어떨지, 담임선생님은 어떤 분일지…. 궁금증과 걱정이 공존한다. 친한 친구와 반이 달라져서 우울해하는 아이도 있고 소심해서 신학기마다 친구 사귀기를 힘들어하는 아이도 있다. 설렘과 걱정이 공존 초등학교에 입학하는 아이들과 부모님들은 어떤 마음일까? 아이들은 유치원이나 어린이집과는 상당히 다른 느낌이 드는 학교라는 곳에 다녀야 하니 낯선 학교가 두렵기도 할 것이다. ‘우리 아이는 집중할 수 있는 시간이 짧고 산만해서 잠시도 가만히 있기 힘든데 어쩌나?’, ‘낯을 많이 가리고 예민한데 어쩌나?’ 하고 근심할 것이다. 우선 학교에서 아이가 적응하도록 돕는 일이 시급하다. 또 초등학생 자녀를 둔 학부모는 학업에 대해서도 고민한다. ‘요즘 초등 신입생 아이들 대부분이 한글을 모두 뗀 상태로 온다는데, 우리 아이는 받침 있는 글자는 아직 서툰데 어쩌나?’, ‘초등학교 3학년부터는 영어 수업도 한다는데, 영어를 따로 가르쳐야 하나?’ 이 생각, 저 생각을 하느라 바쁘다. 중학생 자녀를 둔 학부모는 공부에 대한 걱정이
영어독서가 영어 실력 향상에 효과적이라는 입소문을 타면서 초등부모들 사이에서 영어원서 읽기에 대한 관심이 뜨겁다. 영어독서는 보통 초등 저학년 때 파닉스를 익히고 영어원서 읽기훈련용 책인 얇은 리더스를 단계별로 읽으면서 시작된다. 뒤늦게 영어원서 읽기의 효과를 알게 되어 자녀에게도 이를 시도해 보고 싶지만, 자녀가 이미 초등 고학년이거나 중학생이어서 너무 늦었다고 생각하는 부모들도 있다. 그러나 영어원서 읽기는 어느 단계, 어느 연령대에 시작해도 결코 늦지 않다고 생각한다. 영어원서 읽기를 초등생뿐 아니라 중·고교생에게도 권하는 이유는 영어독서야말로 영어 문해력을 높이는 최고의 방법이며, 자신의 수준에 맞는 영어원서부터 시작해서 꾸준히 읽어나간다면 엄청난 효과를 볼 수 있기 때문이다. 매일 30분 읽기의 효과 2001년 미국 오클랜드에 있는 Langford중학교에서 8주간 읽기훈련 프로그램을 실시한 적이 있었다. 이 학교에서 만12세에서 14세 학생 중 읽기 수준이 자기 학년의 평균 수준보다 3~4년 뒤처진 학생들을 대상으로 8주간 매일 30분씩 책을 소리 내어 읽게 했다. 이 프로그램을 마친 후, 학생들의 읽기 이해도와 어휘력을 측정해 본 결과, 아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