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월 30일 본교 세미나실에서 교직원 연수가 있었다. 1교시에는 서산여고 김숙영(영어) 선생님의 '2007개정교육과정 및 학업성적관리'에 관한 설명이 있었고, 이어 2교시에는 윤기수 서산고등학교장의 '수업혁신방안'에 관한 강연이 있었다. 강연에서 윤기수 교장은 '변화하는 여건에 적응하는 생물만이 살아남는다.'는 찰스 다윈의 말을 인용하며 정보화 사회에서 정보 지식의 발생은 12초마다 변화하므로 이에 적응하려면 혁신만이 살길임을 강조했다.
“재택 장애아도 찾는 함·울·터 만들고 싶다” 유치원 특수반, 온돌 시설을 갖춘 장애 아동을 위한 생활체험적응실, 특수교육 종일반, 특수교육 보조원 지원, 장애아동을 위한 방과 후 교실…. 장애아를 둔 부모라면 누구나 솔깃할 만한 조건을 갖춘 학교가 있다. 경기도내 최고의 장애아 학습시설을 갖춘 남양주 진건초(교장 박명숙)가 바로 그곳. 진건초가 통합교육의 산실이 된 것은 특수교육에 남다른 관심을 가지고 노력을 기울여온 이 학교 황승택 교감의 노력이 있었다. “아이를 위한 마음은 어떤 교사나 같습니다” “일반 교사라고 특수교육에 관심을 가지지 말라는 법은 없습니다. 다 똑같이 우리가 가르치는 아이들이죠.” 황 교감이 특수교육에 관심을 가지기 시작한 것은 1986년도에 3년 동안 특수학급을 맡으면서. “전공분야도 아니어서 힘들었습니다. 솔직히 말해서 아이들에게 ‘졌다’고 손을 들었죠. 장애아동은 자기 나름의 목표가 있어서 시도해보지 않고 ‘이거 이상은 못해요’라고 선을 긋죠. 그런 아이들을 달래서 한발 더 나아가게 해야 하는데 저는 아이들과의 기 싸움에서 졌습니다. 지금 생각해보면 헌신적이지 못했던 것 같아요.” 황 교감은 2005년 3월 진건초에 부임하면
Q1. 현재 임신 5개월인 여교사입니다. 육아휴직을 신청하려고 하는데 가능한지와 출산휴가는 언제쯤 사용할 수 있을까요? 또 육아휴직기간이 전보내신을 위한 현임교 근무연수에 포함되는지요? A1. 「교원휴가업무처리요령」에 의하면 육아휴직은 임신·출산·자녀 양육을 사유로 신청할 수 있으나 임신 중에 심한 입덧이나 부작용 또는 안정이 필요한 경우 일반 병가를 사용할 수도 있습니다. 출산휴가(90일)는 산모의 건강을 고려해 출산일 또는 출산예정일 이후 45일 이상이 확보돼야 하므로 출산예정일 45일 전부터는 언제라도 육아휴직원을 제출하고 출산휴가를 사용할 수 있습니다. 출산휴가 기간은 보수(시간 외 근무수당 등 특정수당 제외)가 정상 지급되며, 경력에도 100% 포함됩니다. 이처럼 여직원이 임신 또는 출산하게 된 경우 모두 육아휴직 신청이 가능합니다. 한편 출산휴가는 전보내신을 위한 현임교 근무연수에 포함되지만 육아휴직은 실제로 교육활동에 참여하지 않았기 때문에 제외됩니다. 또 「교육공무원법」 제44조 제1항에 의거 육아휴직은 본인이 원하는 경우 인사권자는 휴직을 명해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으므로 신청하면 반드시 최초 1년은 사용 가능할 것입니다. Q2. 쌍둥이 출산으
한국미의 특질에 대한 이해를 위해 폭넓게 다루어지는 대상은 바로 우리 멋의 세계이다. 우리의 멋은 미술뿐만 아니라 문학, 음악, 무용 등 모든 예술 분야에 스며들어 있다. 그러나 우리의 멋을 제대로 이해하려면 먼저 한국의 전통에 대해 바르게 이해하고 인식해야 한다. 그 장점이나 특징을 제대로 느끼고 올바로 볼 수 있는 눈을 가지는 것도 중요하다. 문제는 전통이나 한국적인 것을 제대로 알지 못하거나 잘못 알고 생각하는 사람이 상당히 많다는데 있다. 예를 들어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고려청자나 조선백자 등을 모방하여 열심히 만드는 것이나 단청, 전통문양, 색동옷 등을 그리는 것이 곧 한국적인 것으로 착각하는 경우가 있다는 것이다. 한국미의 미학적 개념 규정한 혜곡 최준우 한국적 아름다움을 나타내는 한국미란 한국 사람들의 성정과 생활양식이 깊이 우러나는 것으로서 한국인다운 체취가 짙게 표현된 누구도 모방할 수 없는 고유하고 독특한 아름다움을 일컫는 말이다. 특히 한국미의 정체성(正體性)과 전통성을 일깨워 줘야 한다. 이러한 우리 아름다움을 연구한 대표적인 사람으로는 한국 최초의 근대적 학문을 배운 미술사학자이며 미학자였던 우현 고유섭(又玄 高裕燮, 1905~1944)
BC 490년. 아테네의 밀티아데스는 아테네 북방의 마라톤 평원에서 아테네군 1만과 플라테이아군 1천을 이끌고 2만 5천여 페르시아군에 맞섰다. 페르시아의 기병이 주력군과 떨어져 있음을 확인한 밀티아데스는 페르시아군의 측면을 공격한 후 포위하는 데 성공했으나 결국은 참담한 패배로 마라톤전을 끝냈다. BC 480년. 아테네해군은 8일 전 아테네를 정복하고 약탈한 페르시아군과 살라미스 해에서 최후의 일전을 벌였으나 역시 대패했고, 그로 인해 최초의 동양과 서양의 전쟁으로 운위(云謂)되기도 하는 페르시아전쟁도 10여 년 만에 막을 내렸다. 물론 사실은 그 반대였다. 그리스는 마라톤전과 살라미스해전을 값진 승리로 장식했다. 하지만 만약 아테네를 비롯한 그리스 세계가 페르시아에 패했더라면 고대 그리스의 역사, 아니 서양의 역사는 어떻게 달라졌을까? 서양문화의 뿌리, 고대 그리스 1820년대에 그리스인들이 400여 년에 이르는 오스만 제국(현 터키)의 식민통치에서 벗어나기 위해 독립운동을 일으켰을 때 영국 시인 셸리는 “우리의 법률, 우리의 문학, 우리의 종교, 우리의 예술, 그 모든 것의 뿌리는 그리스에 있다. 그리스가 없었다면… 우리들은 아직까지도 야만인과 우상숭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