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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동리의 복사꽃, 박완서의 복사꽃

 

봄이면 일주일에서 열흘 간격으로 절정의 꽃이 바뀐다. 매화가 피고 나면 목련, 목련이 지고 나면 벚꽃이 만개하는 식이다. 봄꽃들이 차례로 카덴차(연주에서 솔로 악기가 기교적인 음을 화려하게 뽐내는 부분)를 연주하는 것 같다. 4월에 막 접어들면 복사꽃 차례다.


달력이 4월 것으로 바뀔 즈음이면 복사꽃이 지천이다. 주변에 복사꽃이 이렇게 많았나 싶을 정도다. 복사꽃(복숭아꽃)은 꽃색이 연분홍색인데다 꽃 안쪽으로 갈수록 붉어지는 것이 요염한 느낌을 주는 꽃이다. 과일꽃 중 가장 섹시한 꽃이 아닐까 싶다. 박완서 작가가 즐겨 쓴 표현으로 하면 ‘화냥기’가 느껴지는 꽃이다. 조지훈의 시 ‘승무’에서 ‘복사꽃 고운 뺨에 아롱질 듯 두 방울이야’가 괜히 나오지 않았을 것이다.

 

과일꽃 중 가장 섹시한 꽃, 복사꽃
복사꽃이 피면 생각나는 소설이 김동리의 <무녀도>와 박완서의 단편 <그리움을 위하여>다. 먼저 <무녀도>(1936년 발표)는 샤머니즘과 기독교 사이 갈등을 그린 작품이다. 김동리는 1978년 이 작품을 장편 <을화(乙火)>로 개작했다.


무당인 모화는 그림을 그리는 딸 낭이와 경주 성 밖의 퇴락한 집에서 살고 있다. 그런데 어려서 집을 나간 아들 욱이가 아름다운 청년으로 돌아오면서 모자 사이에 큰 갈등이 생긴다. 욱이가 기독교를 믿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들은 각각 기도와 주문(呪文)으로 대결하다가 결국 모화가 성경을 태우는 일이 발생한다. 욱이는 이를 저지하다 모화의 칼에 찔려 죽는다. 이후 마을에 예배당이 들어서고, 모화는 예기소에서 죽은 여인의 넋을 건지는 굿판을 벌이다 물속에 잠겨 죽는다.


소설에서 모화의 딸 낭이 역할도 상당히 크다. 우선 소설 제목 <무녀도>는 낭이가 작중 화자인 ‘나’의 할아버지 댁에 남기고 간 그림이다. 소설에서 낭이는 복숭아를 좋아했다. 모화는 술에 취해 집에 돌아올 때 여름 한철은 언제나 복숭아가 손에 들려 있었다. 모화는 낭이가 수국 용신(龍神)님의 열두 따님 중에서 마지막인 꽃님의 화신(化身)이라 믿고 있다. 모화가 꿈에 용신님을 만나 복숭아 하나를 얻어먹고 꿈꾼 지 이레 만에 낭이를 낳았다는 것이다.


이런 이야기도 나오고 있다. 꽃님은 자기 차례를 기다리지 않고 언니의 신랑감인 새님을 가로챘다가 수국에서 추방당했다. 그리고 봄마다 산기슭에 강가에 붉은 복사꽃으로 피어난다. 하지만 귀를 먹어서 새님이 가지에 와 아무리 재잘거려도 말이 없다. 낭이와 같은 것이다. 소설에 이런 설명이 길게 나오고 모화의 가락에도 ‘봄철이라 이 강변에 복숭아꽃 피그덜랑’ 같은 표현이 나온다. 그래서 작품에서 꽃 하나를 고르라면 복사꽃을 고를 수밖에 없다.


<그리움을 위하여>는 박완서 작가가 2001년 발표한 그리 길지 않은 글이다. 그런데도 물 흐르듯 자연스러우면서도 현란한 문장, 사태의 본질을 꿰뚫는 시선, 그리고 꽃을 양념처럼 살짝 얹는 솜씨 등 박완서 글쓰기의 특징을 골고루 보여주는 글이다.


소설 줄거리는 이렇다. ‘나’는 사촌동생을 ‘파출부처럼’ 쓰고 있다. 사촌동생은 바지런하고 음식·살림솜씨도 좋았고, 얼굴도 예뻤다. 젊어서 어른들이 ‘인물값 할까 봐’ 걱정할 정도였다. 둘 다 남편을 여읜 후, 사촌동생은 남해 사량도라는 섬 민박집에 피서를 갔다가 몇 주 지나도록 감감무소식이다. 동생은 뒤늦게 전화를 걸어와 그 섬의 점잖은 선주(船主)와 사랑에 빠져 결혼하기로 했다고 말한다. 사촌동생의 말을 들으며 화자가 느끼는 감정은 복잡하면서도 재미있다.

 

나는 그 목소리를 들으며 명랑하게 조잘대는 시냇물 위로 점점이 떠내려오는 복사꽃잎을 떠올렸다. 다음날 물메기 말린 걸 한보따리 들고 내 앞에 나타난 동생을 보자 그저 반갑기만 해서 허둥대며 맞아들였다. 석 달 만에 만난 동생은 어찌나 생기가 넘치는지, 첫 근친 온 딸자식이라 해도 그만하면 시집 잘 갔구나 마음을 놓고 말 것 같았다.

 

‘조잘대는 시냇물 위로 점점이 떠내려오는 복사꽃잎’이라 했다. 복사꽃을 아는 사람이라면, 화사한 복사꽃의 이미지가 떠오르는 사람이라면 이 문장이 얼마나 보석 같은지 알 것이다. 어떻게 목소리를 복사꽃잎에 비유할 생각을 했을까.

 


소설에서 사촌동생은 환갑이 넘었지만 ‘볼이 늘 발그레하고 주름살이라곤 없는데 살피듬까지 좋아서 오십대 초반으로밖에’ 보이지 않았다. 그런 사촌동생을 꽃에 비유한다면 복사꽃이 가장 잘 어울릴 것 같다. 이처럼 박완서는 꽃잎 하나를 선택해도 최적의 꽃잎을 택했다.


작가는 자전적 소설 <그 산이 정말 거기 있었을까>에서도 여인의 요요함을 복사꽃에 비유했다. 이 소설에 오빠의 죽은 전처에 대해 ‘그가 여자의 얼굴에 피어난 복사꽃 같은 요요함만 보고, 그 안에 번창하는 고약한 병균에는 눈멀어 열병처럼 사랑하고’라고 표현한 대목이 있다.


복사꽃은 한국인이 가장 좋아하는 화가, 이중섭 그림에서 자주 나오는 꽃이다. 제목이 ‘벚꽃 위의 새’인 그림(은은한 푸른빛을 배경으로 하얀 새 한 마리가 가지에 앉는 순간을 포착한 그림)도 사실은 벚꽃이 아니라 복사꽃을 그린 것이다. 이중섭은 주변에 아픈 사람이 있으면 쾌유를 비는 의미에서 천도복숭아를 그려 주었다. 그의 그림에서 복사꽃은 무릉도원, 즉 낙원을 상징하는 꽃이다. 담뱃갑에 든 종이 은지화(銀紙)에 그린 ‘도원(낙원의 가족)’에는 복숭아나무가 가득하다. 남자는 큰 복숭아를 누워 있는 여인에게 선사하고 있다. 이중섭이 그림으로나마 아내에게 복숭아를 전해주고 싶은 마음을 담은 것이다. 현실에선 꽃과 익은 열매가 동시에 달리지 않겠지만 이중섭은 둘을 같이 그렸다.


복숭아밭만 아니라 산기슭이나 강가에서도 화사한 복사꽃을 볼 수 있는데, 이것은 산복사나무꽃이다. 야생의 복사나무라고 할 수 있다. 이런 야생의 산복사나무를 개량한 것이 과수원에 있는 복사나무다. 진분홍색의 겹꽃이 피는 만첩홍도는 과일이 아니라 꽃을 보기 위해 관상용으로 흔히 심는다. 만첩홍도는 겹으로 피는 홍도라는 뜻이다. 꽃이 홑꽃으로 피는 종이 많지만, 겹으로 피는 것도 있다. 이럴 때 ‘겹’ 또는 ‘만첩’을 붙여 겹꽃이라는 것을 표현한다. 만첩홍도는 4~5월 잎보다 먼저 붉은색 꽃이 다닥다닥 피어 눈에 잘 띌 수밖에 없다. 만첩홍도와 비슷하게 생겼지만, 흰색인 만첩백도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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