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감독 시험은 양심을 키우는 우리 학교의 자랑입니다. 양심 1점이 부정한 100점보다 명예롭지 않나요?"
수학능력시험 부정행위가 전국에서 속출하고 있는 가운데 수십 년째 감독 없이 시험을 치르거나 교사 대신 학부모들이 시험 감독을 하는 학교들이 있어 눈길을 끌고 있다.
3일 모의고사가 치러진 인천시 중구 전동 제물포고교 1학년 7반 교실에는 여느 학교와 달리 감독 선생님이 없었다. 시험감독 없이 양심에 따라 시험을 치르고 있는 것.
학생들은 시험에 앞서 부정행위를 하고도 죄책감마저 무디어진 많은 수험생들을 향한 일갈(一喝)인 듯 오른손을 들고 또랑또랑한 목소리로 "무감독 고사는 양심을 키우는 우리 학교의 자랑입니다. 양심은 나를 성장시키는 영혼의 소리입니다. 때문에 양심을 버리고서는 우리는 성공할 수 없습니다"라는 선서문을 읽어 내려갔다.
개교 2년 뒤인 1956년부터 시작된 이 학교의 무감독 시험은 올해로 48년째 이어지고 있는 자랑스런 전통이다.
고(故) 김영희 초대 교장 때부터 시작된 이 학교의 무감독 시험에서 부정행위를 하다 적발된 학생은 해당 과목이 0점 처리되는 것은 물론 벌칙으로 교내 봉사활동을 해야 한다.
무시험 전통은 72년 고교 평준화와 80년대말 내신성적 비중이 높아지면서 "일부 학생들이 커닝으로 성적을 올리면 어떻게 하느냐"는 교내외 우려가 나오면서 한때 위기를 맞기도 했다.
그러나 학생회장단이 "선배들보다 학교성적은 떨어질지 모르지만 양심만은 뒤질 수 없다"며 학교측에 제도 유지를 요구, 지금까지 명맥을 이어오고 있다.
학생들은 "'양심의 1점은 부정의 100점보다 명예롭다'는 구호를 시험 때마다 외치고 선생님과 친구들이 서로 믿고 있는데 어떻게 부정행위를 할 수 있겠어요"라며 "우리는 이 전통을 자랑스럽게 생각하며 언제까지나 이어갈 생각입니다"라고 말했다.
이 학교 추연화 교장(61)도 "우리학교의 무감독 시험 전통은 학력보다 양심을 중시하는 학풍을 유지하려는 학생과 동문이 이뤄낸 성과"라고 자랑스럽게 이야기했다.
경남 진주 삼현여고(교장 최문석)의 무감독 시험 전통도 제물포고에 못지 않다.
삼현여고는 지난 72년 학교 문을 연 뒤 지금까지 32년째 무감독 시험을 치르고 있다.
시험 때마다 교사들의 할 일은 시험 시작 5분전에 교실에 들어가 방송에 따라 시험지와 답안지를 나눠주고 복도나 교무실에서 시간을 보내다 종료 10분전에 들어가 답안지를 회수하는 것이 전부다.
1년 간 4차례 실시되는 시험은 교내방송으로 진행되며 학생들은 시험시간에 필기도구를 빌려서는 안 되고 도중에 나간 학생은 들어올 수 없는 규정은 이제 상식이 됐다.
30년이 넘도록 계속된 무감독 시험이지만 지금까지 이 학교에서 커닝문제가 제기된 적은 단 한 번도 없었다.
손재호(44·국어) 교사는 "무감독 시험이 오랜 전통으로 자리 잡은 데다 학생들 스스로 내신성적을 위해 친구들을 견제하고 있어 커닝 등 부정행위는 있을 수 없다"고 말했다.
양심을 주요 덕목으로 내세우면서 삼무(三無 무감독 시험, 무인매점, 무잡부금)를 실천덕목으로 정한 이 학교는 커닝 뿐 아니라 관리인이 없는 매점에서 상품이 없어진 경우도 없다.
충북 청주의 한 중학교에서는 무감독 시험은 아니지만 3년째 학부모들이 교사들을 대신해 시험감독을 하고 있다.
화제가 되고 있는 청주 대성중학교(교장 이상수)는 학생들의 부정행위를 예방하고 내신성적 산출 등 시험에 대한 신뢰도를 높이기 위해 지난 2002년부터 학부모들의 신청을 받아 중간·기말고사 감독위원으로 위촉하고 있다.
3년 간 모두 1천43명의 학부모가 시험감독으로 참여했으며 오는 14∼16일 실시되는 2학기 기말고사 역시 학부모들이 시험을 감독하게 된다.
이 제도를 도입한 이후 매년 10∼20명에 이르던 부정행위 학생이 사라졌을 뿐 아니라 부모 앞에서 시험을 보는 학생들은 집중력이 강해지면서 성적까지 높아졌다.
이들 학교 외에도 서울 서대문구 중앙여고, 경기도 이천시 양정여고, 경북 김천시 성의여고 등 전국 10여개 학교가 현재 무감독 시험을 실시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