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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르게 읽는 책> 파리의 노트르담

빅토르 위고가 쓴 소설 <파리의 노트르담>은 아름다운 사랑 이야기이다. 그러나 <파리의 노트르담>을 단지 집시 처녀를 향한 꼽추의 애절한 사랑 이야기로만 읽는 것은 아쉬운 일이다.

 

이 소설의 제목이 <노트르담의 꼽추>가 아니고 파리에 있는 성당 이름을 딴 것이라는 것을 상기하자. 노트르담 성당은 파리를 찾는 관광객이 가장 쉽게 자주 찾는 관광 명소이니만큼 <파리의 노트르담>을 다르게 읽는다면 말 그대로 노트르담 성당을 ‘둘러보았다’기 보다는 ‘낱낱이 뒤져’보게 된다. 그만큼 노트르담 성당에 대한 이해와 애정이 깊어지게 된다.

 

우선 우리는 빅토르 위고가 <파리의 노트르담>을 쓴 목적이 숭고한 인간의 사랑을 찬양하기 위함이 아니라 옛 건축물에 대한 사랑을 불어 넣고 새로운 건축물이 세워지기 전까지는 오래된 건축물을 잘 보존하자는 의도였다는 것을 상기했으면 좋겠다. 옛 건축물에 대한 사랑이야말로 <파리의 노트르담>을 쓴 주요한 목적 중의 하나이며 심지어 빅토르 위고 인생 목적 중의 하나였다. 그렇다. 이 소설의 주인공은 콰지모도가 아니고 ‘파리에 있는 노트르담 성당’이다. 노트르담 성당에 대한 자세한 설명은 ‘장광설’로 비하되기도 하며 <레 미제라블>에 나오는 ‘파리의 하수도 수리 이야기’와 더불어 ‘쓸데없는 이야기’로 악명높다.

 

그러나 참을성이 충분하지 못한 독자들이 ‘줄거리와 상관없는 뜬금없고 지루한’ 내용이라고 투덜거리며 읽지 않고 지나칠 수 있는 3장 1부와 2부야말로 <파리의 노트르담> 성당의 핵심일 수도 있다. 3장 1부와 2부는 ‘노트르담’, ‘파리의 조감’이라는 제목에 맞게 노트르담 성당에 관한 세밀한 역사와 묘사 그리고 원래의 노트르담 성당 탑 위에서 바라본 파리의 전경을 기술한다.

 

그리고 빅토르 위고는 세월이 흐르고 혁명을 거치면서 원형을 무시하고 함부로 수리하고, 파괴해서 제 모습을 거의 잃은 노트르담 성당을 안타까워한다. 노트르담 성당에 함부로 가해진 수리와 복원을 빅토르 위고는 ‘무수한 만행’이라고 절규한다. 빅토르 위고의 분노가 이해가 잘 안 된다면 우리의 자랑스러운 문화재인 석굴암을 생각해보면 되겠다. 일제 강점기 초기 일제는 석굴암의 복원을 통해서 자신들의 선진 기술을 자랑하려고 했다. 그래야 식민지 통치가 좀 더 수월할 것 같았기 때문이다. 일제는 석굴암을 복원한다기보다는 토목 공사로 진행했다. 석굴암을 완전히 해체하여 아예 콘크리트 구조물을 만들고 거기에다가 조각상을 붙이는 만행을 저질렀다. 콘크리트 구조물을 보고 어떻게 석굴암을 세운 장인들의 정성과 예술혼을 느낄 수 있겠는가. 마찬가지로 빅토르 위고는 18세기 무렵 성당이 어둡다는 이유로 스테인드글라스를 일반 유리로 교체한 것에 대해서 만행이라고 규탄했다.

 

빅토르 위고는 금속 인쇄술이 발명되기 전에 건설된 건축물을 인류 문명이 집중된 한 권의 책이라고 생각했다. 책이라는 물건이 귀했던 시기에 노트르담 성당 같은 건축물이야말로 당대 사람들의 사상이나 문화가 고스란히 반영된 결과물이라는 것이다. 그만큼 빅토르 위고는 중세 건축물에 대한 애착이 컸다. 빅토르 위고의 작품이 유난히 뮤지컬이나 영화로 자주 재생산되는 이유가 물론 작품 자체가 좋기도 하겠지만 원작을 보면 무대나 배경 설명이 너무나 자세히 묘사되어 있어서 무대를 설치하기 위해서 별도로 고증을 할 필요가 없기 때문이다.

 

빅토르 위고가 살았던 19세기에는 이미 원래의 노트르담 성당은 온데간데없고 심지어 마구간으로 사용되기도 했다. <노트르담 성당>을 통해서 ‘위대한 인류의 자산’을 되살리자고 주장한 빅토르 위고의 노력은 헛되지 않아서 소설이 출간된 지 10년이 지난 1845년 시민들의 모금 운동이 열매가 맺었다. 마침내 노트르담 성당 복원 공사가 시작되었고 대역사는 1864년 마무리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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