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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장소식

다랭이마을의 유월

 

유월 초 다랭이마을은 바쁜 듯 느긋함을 품고 있다. 먼바다는 연무를 두른 채 다가오는 여름을 피워올린다. 봄 가뭄이 심한 탓에 천수답인 다랭이논은 아직 모내기를 다 마치지 못했다. 지난봄 유채꽃으로 층층의 물결을 이루었던 다랭이논은 메말라 있다.

 

농촌에 사는 아이들이지만 체험활동이 아니면 농사일을 경험할 수 없는 시대이다. 아이들에게 내가 사는 고장의 뿌리, 남해 섬사람의 억척스러운 다랭이정신과 바래정신을 알게 해주고 싶었다.

 

전날부터 들뜬 아이들과 함께 다랭이마을에 도착한다. 설흘산 중턱 도로에서 시작된 골목길은 경사를 이루며 꼬불꼬불 바닷가로 이어진다. 사람과 지게만이 다닐 수 있는 좁은 골목길에 아이들의 웃음소리와 발소리가 메아리친다. 햇볕은 따갑지만 오래된 느티나무 그늘에 서면 설흘산에서 내려온 명주바람이 땀을 식혀준다. 눈이 흘러내려 설흘산이라는 말이 있는데 그 품은 응봉산과 더불어 마을을 감싸준다.

 

출발하기 전 아이들에게 밥무덤과 삿갓배미 이야기를 해주었다. 아이들은 밥무덤에 왜 쌀밥을 묻었는지 실감하지 못한다. 풍요 속에 살고 있기 때문이다. 다랭이마을 밥무덤은 세 군데가 있다. 동쪽 언덕과 서쪽 언덕에는 돌을 쌓아 감실처럼 만들어 밥을 묻어둔다. 그리고 마을 한가운데는 삼 층 탑 모양의 조형물을 만들어 밥을 묻어 둔다. 이 의식은 음력 10월 보름, 동제나 당산제를 지내고 밥을 묻어 두는 의식으로 농사의 풍요와 안녕을 기원함에 있다.

 

밥무덤을 보며 지난 일을 떠올린다. 어릴 때 제일 먹고 싶은 것이 쌀밥과 떡이었다. 쌀밥은 제사나 생일 때 아니면 구경하기가 어려웠다. 그래서 이 마을 사람들은 쌀을 얻기 위해 설흘산 7부 능선까지 108개의 석축을 쌓아 만든 계단식 논이 680여 개다. 그 지난한 고생을 어찌 말로 표현할 수 있을까? 오직 다랭이논 벼농사와 밭농사로 허기를 달랬을 이 마을 사람들의 쌀은 생명 그 자체였다. 그 마음을 더듬기라도 하는 듯, 밥무덤을 지난 한 줄기 바람은 당산나무 잎들을 흔들고 묵은 시간과 함께 마을 안길 골목을 허허로이 맴돈다. 암수 바위를 지나 개울을 따라 난 내리막길로 걸음을 옮긴다. 머리에 이고, 지게에 지고 오르내렸을 이 길에 얼마나 많은 땀방울이 스며들었을까?

 

높은 곳 굽어진 언덕길을 따라 바래길 정자 쉼터로 향한다. 파도는 하얀 포말을 일으키는 갯바위에 철썩거린다. 땀을 식힐 겸 정자에서 휴식을 갖는다. 아이들은 제각기 가져온 간식을 먹고 재잘거린다. 해맑고 걱정 없는 표정이다. 아이들에게 잠시 눈을 감고 귀만 열어 보자고 한다. 조용해진다. 소란함이 사라지니 스치는 바람결과 부딪히는 파도 소리, 새소리만 주위를 감싼다.

 

바래길은 먹을 것이 귀한 시절 물이 빠지면 드러나는 개펄이나 갯바위에 가서 해산물을 채취하기 위해 마을 사람들이 다니던 길이었다. 남해 사람들은 바래간다를 갱번간다고도 하였다. 이 바래길은 배고픔을 달래고 먹거리를 구하기 위한 삶의 길이었다. 하지만 지금 바래길은 바다 경치를 보면서 걷는 힐링의 길로 알려져 있다.

 

바래길의 뜻을 아이들에게 설명하고 지겟길을 걷는다. 바래길이 내리막길이었다면 지겟길은 오르막 내리막이 교차하는 길이다. 굽은 논두렁 밭두렁의 지겟길엔 먼지가 푸석거린다. 아이들은 높아질수록 한눈에 들어오는 다랭이논과 바다를 사진 속에 담는다.

 

지겟길엔 또 얼마나 많은 애환이 스며 있을까? 고개를 들어 젖혀야 보이는 설흘산 자락의 비탈에 땔감, 거름, 돌 등 생계를 잇기 위한 물건의 이동 수단은 오로지 지게뿐이었다. 어깨를 누르는 무게의 중압감과 흐르는 땀, 먹고 살아야겠다는 그 고달픔이야 오죽했을까?

 

남면 다랭이마을은 남해군에서도 오지 중의 오지였다. 전기도 제일 늦게 들어왔고 찻길도 늦게 만들어졌다. 이 남면 다랭이마을로 시집올 때면 가마 속에서 새댁의 옷고름이 젖었다고 한다. 어떻게 살 것인지 그 생활의 어려움을 능히 알기에 흘린 눈물이었다.

 

아이들에게 지게를 져본 경험이 있는지 묻자 아무도 없다. 이 다랭이마을 부모님들은 아무리 어려워도 내 자식만은 여기서 살게 하지는 않겠다고 손발이 닳도록 악착같이 일하여 자식들 외지 공부를 시켰다. 다른 어느 곳보다 교육열이 높았다.

짧은 시간이었지만 다랭이마을 골목을 돌아서 다시 오르막을 걸어야 한다. 직각에 가깝게 석축을 쌓은 다랭이논 사이의 길이다. 아이들은 다리가 아프고 덥다고 아우성친다. 오르다 숨돌리기를 몇 번 한다. 그리고 다시 아래를 본다. 올라온 길이 보이고 한 계단 한 계단 쌓아 만든 물을 담은 다랭이논들이 물결처럼 풍경화처럼 한눈에 들어온다.

 

다랭이마을에 스민 사람들의 삶, 손마디에 새겨진 주름살과 굳은살처럼 108계단의 다랭이논을 만들어 수확하는 쌀의 소중한 이야기는 자연에 순응하며 대를 이어 옹골차게 살아온 삶의 경이를 말하고 있다. 우리가 먹는 쌀에는 땅의 서사가 있고 비의 눈물이 있고 해의 기쁨과 달의 기다림이 있다. 삿갓배미 이야기와 쌀의 소중함으로 마무리를 한다.

 

돌아오는 길, 아이들이지만 다랭이마을 돌아보기로 들은 이야기가 마음의 씨앗으로 뿌려져 다랭이논에 스민 정신이 성장하는 동안 삶의 이정표가 되었으면 기원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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