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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통령의 교육개혁이 실패하지 않으려면

3월 9일 새로운 대통령이 탄생했다. 불확실성이 그 어느 때보다 높아진 지금, 새 정부에 바라는 국민들의 기대 역시 크다. 교육분야도 마찬가지다. 문재인 정부 5년간 이렇다 할 성과나 발전이 없다 보니 새 정부가 짊어진 짐 또한 무겁다.

 

지난 대선 기간 동안 교육은 홀대됐다. 미래 비전을 제시한 담론이나 지향점을 찾기 어려웠다. 대신 입시정책의 주변부를 건드리고, 무상교육·보육 등 선심 공약만 선보였다. 교육문제는 ‘잘해야 본전’이라는 인식이 팽배한 탓에 여야 할 것 없이 말을 아꼈다. 흔한 말로 교육대통령은 언급도 기대도 없었다.

 

어쨌든 우여곡절 끝에 새로운 대통령이 탄생하고 5월이면 새 정부가 들어선다. 차기 정부 5년 동안 예측되는 경제·사회·환경이 교육정책에 상당한 위기 요인으로 작용할 가능성이 높다. 교원연금개혁부터 교원 정원감축, 대학구조개혁과 입시제도 개편, 유보 통합, 지방교육재정교부금 축소까지 줄줄이 대기한 상태다.

 

이뿐 아니다. 평등성과 수월성을 둘러싼 논란은 현재 진행형이고, 교육을 둘러싼 개인과 집단의 갈등은 해소보다 격화될 가능성이 크다. 변화의 욕구는 선거를 통해 더욱 커졌지만, 변화를 이룰 여건은 별반 달라진 바 없다. 누구도 불확실한 미래를 투시하지 못하고 있다는 사실은 우리교육의 가장 큰 리스크가 아닐 수 없다.

 

이번 호는 정책의 최종 결정권자인 대통령과 교육과의 관계를 조명한다. 대통령의 통치행위가 우리 교육 곳곳에 얼마나 많은 영향을 미치는지, 그리고 통치력과 정치력이 주는 양면성을 짚어본다.

 

또 역대 정부가 추진했던 교육개혁, 특히 대통령이 중심이 돼 추진했던 교육개혁들이 왜 기대만큼 성공하지 못했는지 원인과 과정을 살펴본다. 교사들이 개혁의 주체가 되지 못한 채 변수로 존재할 수밖에 없었던 구조적 문제도 다룬다.

 

이와 더불어 정권 교체기마다 부침을 거듭했던 교육부, 그리고 교육청과 교육지원청 등 지방교육을 둘러싼 역학구도 변화가 교육자치와 학교 교육에 미친 영향을 분석한다. 특히 국가교육위원회 출범이 우리 교육거버넌스에 어떤 기제로 작동하는지 예측해 본다.

 

 

선거과정에서 외면된 교육문제

앞으로 5년 동안 우리나라를 이끌 새 대통령을 맞이했다. 지난 선거운동 기간 중 극단으로 치달았던 갈등과 분열에서 벗어나, 공존과 연대의 정신으로 화합을 도모할 때다. 이는 새로 선출된 대통령이나 선거에서 이긴 정당을 위한 것만은 아니다. 선거 후유증을 이겨내고 포용과 상생의 새 시대를 열어갈 때, 우리는 코로나19 종식과 함께 펼쳐질 무한경쟁 시대에서 다시 도약할 수 있다.

 

우리의 미래를 위해서 더 중요한 것이 있다. 그것은 교육과 인재양성에 관한 일이다. 지난 선거과정에서 교육문제는 외면됐다. 대통령선거가 국가의 미래 비전과 청사진을 놓고 펼치는 정책 경쟁의 장이라는 점에서 보면, 안타까운 일이었다. 우리는 교육과 인재의 힘으로 발전한 나라다. 기름 한 방울 나오지 않는 나라가 전쟁의 폐허를 딛고 세계 10대 경제대국에 오를 수 있었던 동력은 무엇인가. 교육 말고는 설명할 길이 없다. 오늘을 살아가는 평범한 사람들은 자녀교육에서 희망을 찾고, 자신도 평생에 걸쳐 학습하고 미래를 준비한다. 그런 면에서 교육은 최고의 복지이자 투자이다. 하지만 교육문제를 단순히 개인과 가족의 일로만 여길 때, 우리 사회는 밝은 미래를 기약하기 어렵다. 초저출산 시대를 맞아 국민 한 사람, 한 사람이 소중해지고 평생에 걸친 역량개발이 국가경쟁력을 좌우하기 때문이다.

 

당장 해결해야 할 교육과제

공약으로 제시하지 않았다고 해서 추진하지 말라는 법은 없다. 오히려 공약이라는 형식적 굴레에서 벗어나 훨씬 창조적인 발상으로 국정과제를 계획할 수도 있다. 당장 해결해야 할 과제가 많지만, 큰 틀에서 세 가지를 제언한다.

 

첫째, 새로운 교육패러다임을 담은 교육개혁 종합 청사진과 로드맵을 만들어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교육현실에 대한 냉철한 인식과 시대정신 그리고 강력한 혁신의지가 필요하다. 교육문제는 많은 사회문제와 얽혀있다. 사회의 구조적인 문제를 도외시하고 교육문제만 떼어내어 해결하기 어렵다. 따라서 사회 각 분야의 ‘전문가’들이 참여하는 ‘대통령 직속 교육개혁특별위원회’를 만들고, 심층연구와 함께 국민의견을 폭넓게 들어 개혁 청사진을 만들어야 한다. 물론 국가교육위원회를 통해서 할 수도 있다. 그러려면 위원 선정부터 매우 신중해야 하고, 폭넓은 자율을 보장해야 할 것이다. 특정 이념에 치우치거나 이익 집단을 대변하는 위원들은 교육과 공동체를 위한 계획보다 다툼과 갈등만 일삼을 가능성이 크다. 지금까지 정부는 문제상황만 골라서 응급대처하는 핀셋 처방을 했다. 대부분 교육문제는 서로 긴밀히 연관되어 있다. 기초학력보장과 교사 책임, 초·중등과 고등교육 재정의 합리적 배분, 에듀테크 도입과 학교시설 개선, 초·중등교육 정상화와 대입제도 등 모든 이슈가 얽혀 있다. 따라서 전체를 조망하고 세심히 처방하는 패키지 전략이 필요하고, 개혁 순서와 속도를 담은 중장기 로드맵을 제시해야 한다, 그래야 국민이 믿고, 개혁 물결에 동참할 것이다.

 

역사적으로 ‘교육대통령’을 자임했던 사람은 김영삼 대통령이었다. 퇴임 후 교육대통령으로 기억되고 싶다고 했다. 그는 오늘날까지 영향을 미치는 ‘5·31 교육개혁’을 국민에게 직접 발표했다. 유·초·중등교육부터 고등교육과 평생학습까지 폭넓게 다룬 종합 개혁방안이었다. 국가와 공급자 중심에서 국민과 수요자 중심으로의 대전환이라는 비전을 제시하고, 교육정보화와 세계화를 전략으로 내세웠다. 개혁이 정치적 구호에만 머물지 않도록 교육투자를 GNP 대비 5%까지 올리겠다는 파격적인 대안도 내놓았다. 경제부처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이를 관철하는 뚝심을 발휘했다. 무엇보다 교육을 통해 21세기 세계 중심국가로 도약하겠다는 비전을 국민에게 제시했다. 대통령이 나선 덕분에 언론도 크게 다루었고, 정치적 관심도 집중되었다. 대통령의 강력한 지시를 받은 정부는 법과 제도를 만들면서 하나씩 추진해나갔다. 청와대 박세일 수석, 교육부 안병영 장관, 그리고 교육개혁위원회 이명현 상임위원의 협력과 공조는 이를 뒷받침했다. 이후 5·31 교육개혁방안은 김영삼 정부를 넘어 진보정부인 김대중 정부와 노무현 정부에서도 추진되었다. 교육영역에 대한 ‘신자유주의’의 침범이라는 비판도 있지만, 역대 정부는 5·31 교육개혁의 큰 흐름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오늘날 5·31 교육개혁은 교육에 대한 대통령의 의지가 얼마나 중요한지를 보여준 사례로 평가되고 있다.

 

1995년 교육개혁방안이 발표된 후, 강산이 세 번이나 바뀌었다. 학생·교사·학교, 그리고 사회가 변했다. 그때와 비교해서 과학기술 수준과 세계 질서도 확연히 달라졌다. 이제 새 대통령이 짊어진 역사적 과제는 앞으로 30년 동안 추진할 새로운 교육개혁방안을 만드는 것이다. 시대는 아날로그 시대에서 벗어나 디지털 전환 시대로 가고 있다. 형식적 공정이 아닌 실질적 교육정의를 구현해야 한다. 초저출산 시대를 극복하고 국민 한 사람 한 사람이 가진 잠재력을 꽃피울 수 있는 새로운 인재양성 패러다임을 제시해야 한다. 정부 초기에 빨리 시작할수록 좋다.

 

 

둘째, 국민은 이념에서 교육을 해방하고 교육 본질을 바로 세우는 대통령을 원한다.

교육이란 본래 미래와 화합을 상징하고 이를 구현하는 사회제도다. 하지만 오늘날 많은 학교가 이념에 사로잡힌 갈등의 장이 되었다. 케케묵은 이념 다툼 속에 학교의 교육력은 약해지고, 교사들은 냉소적으로 변했다. 뒤처진 학생은 늘고 기초학력 국가책임제가 무색해졌다. 교육감선거 때마다 정치권에서나 볼 법한 진영 싸움이 첨예하다. 정치 공학을 연상하는 후보 단일화가 단골 메뉴로 등장한다. 일부 교사는 다른 가치관이나 생각을 가진 동료교사를 적대시하기도 한다. 도대체 무슨 낯으로 학생을 보려 하는가. 이대로는 개혁도, 미래도 어둡다. 이념에서 벗어나 교육 본연의 모습으로 돌아가는 것이 시대정신이다. 교육에 스며든 이념 병은 오랫동안 쌓여온 적폐다. 한순간 척결할 수는 없을 것이다. 하지만 희망은 있다. 우리 사회의 민주주의가 더 성숙해졌고, MZ세대 선생님이 늘어나면서 교직사회 문화와 풍토가 바뀌고 있다. 공유와 협력을 기반으로 하는 교사학습공동체도 활발하다.

 

이제 국가 지도자인 대통령이 나서야 한다. 생각이 다른 상대방에 대한 이해, 끊임없는 대화와 타협, 교육공동체를 먼저 생각하는 정신이 필요하다. 대통령과 정부가 나서면, 교원단체와 노동조합도 대승적인 자세로 화답해야 할 것이다. 정치권도 적극적으로 나서서 교육에서만큼은 이념의 색채를 지우자는 사회적 대타협을 끌어내야 한다. 사회 각계각층의 지도자들이 참여하는 ‘교육 대화합 위원회’를 만드는 것도 고려할만하다. 누구도 갈등·대결·반목이 교육과 어울린다고 생각하지 않기 때문이다. 우리 사회의 번영과 발전을 위한 새로운 교육체제와 인재양성의 토대를 닦는다는 각오로 임해야 할 것이다.

 

셋째, 선생님들이 신바람 나는 문화를 만들어야 한다.

대통령·교육부장관·교육감의 말과 지시로 학교와 교실이 바뀌지 않는다. 교사의 협조와 참여 없이 교육개혁은 불가능하다. 코로나19의 암흑 속에서 학교와 교육을 지킬 수 있었던 것은 교사들의 숨은 노력 때문이었다. 그런데도 교사집단을 개혁 대상으로 여기는 풍조가 여전하다. 실망한 교사들의 마음은 좌절과 냉소로 얼룩지고 있다. 정부가 바뀔 때마다 교육부를 폐지하라는 말이 나오고, 시시콜콜 간섭하는 교육청이 더 밉다는 불만이 이를 잘 보여준다. 미국 오바마 전 대통령은 ‘한국에서 선생님들은 나라를 세운 사람들로 인정받는다(In South Korea, Teachers are known as nation builders)’라며 부러워했다. 학생과 가장 가까운 곳에 있는 선생님들이 교육개혁을 선도하도록 믿고 맡겨야 할 것이다. 군림하고 지시하는 교육부와 교육청을 개혁해서 현장 중심의 행정과 정책이 이루어지도록 해야 한다.

 

교육은 한순간에 바뀌지 않는다. 정책효과도 금방 나타나지도 않는다. 게다가 정권 후반기가 되면, 정부는 정책의 추진 동력을 잃기 마련이다. 따라서 교육문제는 정부 초기부터 긴 호흡으로 힘 있게 추진해야 한다. 국민이 느끼는 교육 고통을 치유하고, 교육을 바로 세우겠다는 것에 반대할 국민은 없을 것이다.

 

교육은 최고의 민생(民生) 문제이자 사회발전과 국가경쟁력을 높이는 최고의 전략이다. 미래사회를 이끌 창의적 인재를 길러내고, 과학기술 경쟁력을 높이기 위한 ‘창의적 학습국가’를 만들어야 한다. 교육대통령의 시대가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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