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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이프

열대의 풍요로움, 빛들의 향연 남인도, 마이소르

 

음유하듯 조상의 흔적들과 공존하는 인도의 하루

마이소르행 기차를 탄다. 30분 연착이라니 정말 너무 착해진 인도 기차에 새삼 놀랐다. 알아듣긴 힘들지만 안내 방송도 있고, 전광판을 부지런히 흘러가며 친절을 열거하는 안내 글자들도 있다. 오래전 북인도를 여행할 때 겪었던 10시간 연착도 그러려니 했던 기차였는데 말이다. 이틀을 주유하던 함피와도 이별이다.

 

 

12시간 정도를 달려 마이소르에 이르게 된다. 인도에 와서 세 번째 야간 이동이다. 다른 사람들과 달리 난 야간 침대 기차나 슬리핑 버스에서도 잘 잔다. 더 소란스럽고 이동이 잦은데도 말이다. 평소에는 숙면을 잘 취하지 못하는 편인데, 이 대목은 정말 내가 생각해도 의아하다.

 

게다가 예전엔 생각도 하지 못했던 깨끗한 침대 시트까지 2매씩 지급이 되었다. 역시 잘 잤다. 카르나타카(Karnataka)주의 주도인 벵갈루루에서 절반 넘는 사람들이 내렸다. 아침 6시가 됐고 이윽고 해가 뜬다. 버스로 3시간 넘게 더 달려선 마이소르에 닿는다. 더욱 짙은 푸름과 무성한 야자수 수풀들이 인도반도의 더 아랫녘으로 내려선 것과 남국의 열대를 증언한다.

 

숙소에 여장을 풀었다. 창 너머로 마이소르 궁전의 돔 지붕이 뵌다. 왼쪽으로는 성필로메나 성당의 뾰족한 첨탑이 뵈니 그야말로 환상적인 전망이다. 오늘 내일 이틀간 이 생면부지의 남인도 한 도시에서 머물게 된다.

음유하듯 그 조상들의 흔적과 현재 그들의 삶의 모습, 그리고 경이롭게 나를 바라보는 그들의 눈빛을 나 또한 경외의 눈으로 바라보리라. 그들이 북적대는 곳에서 오른손으로 식사를 하면서.....

 

저개발국이 그랬고, 특히 인도의 뭄바이가 그랬고, 함피의 호스펫이 다 그랬다. 먼지와 차와 오토바이, 오토릭샤들이 뒤엉킨 무질서와 지저분함. 그러나 몇 거쳐 온 곳 중에 그래도 덜 번잡하고 덜 지저분한 곳. 오히려 차분함마저 느껴지는 첫인상의 도시가 이곳 마이소르다.

 

숙소를 나서 300미터 정도 걸어 나갔는가 했는데 한 식당이 눈에 든다. 현지인들로 그득 차 있다. 휘휘 한 바퀴 둘러보고 개중 가장 많이 먹고 있는 음식을 손으로 가리켰다. 카레와 큼직한 로티 한 장, 그리고 몇 가지가 더 있는 이 메뉴는 50루피, 우리 돈으로 850원 정도이다. 솔직히 맛있다는 말을 하기엔 주저되지만 먹을 만은 했다. 화덕에 로티를 구워내는 장면을 보고 있노라니 신난 요리사가 뭐라고 열심히 설명을 한다. 알아듣지도 못한 채 고개만 끄덕끄덕해 주었지만, 환한 웃음으로 즐거워한다.

 

일단 데바라자 마켓으로 향했다. 놀라워라~ 이렇게 놀라운 삶의 생생함이라니! 열대의 풍요로움과 다양한 인도의 빛깔들이 다 모여 있다. 눈을 뗄 수가 없을 지경이다. 오늘은 스치듯 이렇게 지나가지만, 내일 다시 더 찬찬히 둘러봐야겠다고 마음먹고 다른 길을 재촉했다.

 

인도 여행 위시리스트 중 하나가 인도 현지에서 현지인들과 인도 영화 한 편을 보는 것이었다. 숙소에서 검색해둔 영화관엘 인터넷 지도의 안내로 이르렀다. 그런데 담장으로 둘러처진 영화관에 경비가 대문을 닫아둔 채 아예 들여보내지 않는다. 한 발 물러서 관망해 보니... 알겠다. 상영시간이 가까워져야 들여보내는 거였다. 영화 포스터 한 귀퉁이에 다음 시간이 적혀 있는 걸 발견했다. 4시 30분.

 

일단, 성필로메나 성당으로 향한다. 거리가 조금 멀긴 하지만 호객하는 오토릭샤꾼들의 부름엔 눈길 한번 주지 않고 내내 걸어서 도착했다. 가이드북에도 쓰여 있었지만 인도 분위기와 너무나 이질적이고 고압적이고 날카로워 보이는(보는 관점에 따라 웅장하고 엄숙하다고 표현하는 이도 있으리라) 이 건물. ‘너는 도대체 어느 별에서 왔니?’라는 느낌이다. 그나마 내부는 전체 수리 중.

성당을 한 바퀴 돌고 나선 서둘러 다시 서울의 상암과 같은 이름을 한 극장, 상암시어터(Sangam Theater)를 향해 바삐 걸었다. 4시 10분. 문이 열렸고 벌써 사람들이 많이 모여 있다. 영화는 단 하나. 70루피 티케팅을 하고 기다리니 30분이 되어 관람을 마친 앞 시간대 사람들이 썰물처럼 빠져나온다. 관람객의 95% 정도는 남자로 보인다.

 

우리나라에선 지금은 찾아볼 수 없는, 대공연장 같은 규모의 넓은 영화관이다. 인도는 극장 영화 제작 편수에서 해마다 1000편 이상을 만드는 유일한 나라로 기네스북에도 등재될 정도로 극장 영화를 가장 많이 만드는 나라이다. 이는 전 세계를 통틀어도 최고 수준이다. 할리우드 영화가 힘을 못 쓰고, 자국 영화에 환호하는, 영화를 사랑하는 나라로 유명하다.

 

영화관에 들어서서 인도 남자들 사이에 앉아 있었더니, 잠시 후 인도 국가인가 보다. 일제히 일어서서 경의를 표하길래 나도 따라 일어섰다. 그리고 영화가 시작되자 세상에나 관객들이 난리다. 손뼉을 치고 휘파람과 괴성을 지르는데 고막이 찢어질 지경이다. 이렇게 영화관이 해방구 같은 역할을 하다니! 인도인들의 영화사랑을 온몸으로, 생생하게 경험했다. 인도인들이 영화를 보는 이유는 비현실적인 영화를 보면서 잠시나마 꿈과 같은 세상을 경험하고 해피엔딩을 보며 자기 위안을 얻는 것이라고 한다. 넓고 큰 공간이라 대화면에 화질도 좋고 음향도 준수하다. 부대시설은 우리의 70~80년대 수준. 러닝타임이 무려 3시간이란다. 1시간만 보고 마이소르 궁전의 해질 무렵을 보기 위해 극장을 나왔다.

 

해가 지면 불빛과 더불어 더욱 수려해진다는 마이소르 궁전의 풍경을 보기 위해 서둘렀다. 북문이었나 보다. 남문에서는 5시 30분까지만 입장한단다. 내일 다시 올 건데 지나가도 되냐고 물었더니 오케이란다. 외관 몇 컷과 서녘으로 떨어지는 해와 궁의 모습 몇 컷을 담으니 퇴장을 외치는 경비원들의 목소리가 들려온다. 그리고 더 어두워지기를 기다려 궁전 외곽에서 디즈니 만화에나 나올 법한 동화의 모습 같은 야경을 감상했다.

 

 

마이소르에서 가장 유명한 것은 당연 마이소르 궁전이다. 마이소르에는 모두 7개의 궁전이 있기 때문에 마이소르는 ‘궁전의 도시(City of Palaces)’라고 불린다. 마이소르 궁전이라고 하면 보통 마하라자 궁전(Maharaja Palace)을 말하며, 마하라자 궁전을 암바 빌라스 궁전(Amba Vilas Palace)이라고도 부른다. 14세기에 최초의 궁전이 건축된 후, 1897년 결혼식 축제를 열던 중 전소되었고, 현재의 궁전은 영국의 식민 지배 시절 여왕이 영국계 인도인 건축가 헨리 어윈에게 새로운 궁전의 설계를 맡겨, 1897~1912년에 건축된 것이다. 마이소르 궁전은 인도 힌두교의 와디야르 왕조(Wadiyar Dynasty(1399~1950))의 마이소르 왕국(Kingdom of Mysore)의 궁전으로 인도에서 타지마할과 더불어 가장 방문객이 많이 찾는 관광지이며, 빼어난 조형미와 거대 규모, 동화 속 왕궁 같은 수려한 외관과 화려한 내부 장식으로 인도 남부 카르나타카주의 랜드마크 같은 곳이기도 하다.

 

이튿날, 마이소르에서의 여정이 좀 여유롭다. 자간모한 궁전과 마이소르 궁전 내부까지 다 관람을 했는데도 말이다. 그래서 스리랑가파트나행 버스를 시티버스스탠드에서 탔다.

 

 

여기 마이소르의 시내버스는 여태 들렀던 다른 도시의 그것보다 깨끗하고 최신식이다. 그런데 버스에 빈자리가 하나도 없다. 앞문으로 타서 그 자리에 서 있었더니, 운전기사가 무슨 말을 하면서 역정을 낸다. 상황 파악. 버스 중간쯤에 문이 하나 있고, 앞쪽은 여성 전용이다. 무슬림도 많다는 이 도시의 여성 배려 문화인가 보다. 아니면, 얼마 전에 있었던 인도 여성 추행이 문제가 되어서 철저히 남녀 구분해서 타게 하는 것인지.

 

스리랑가파트나에 도착해서 먼저 만난 큰 건물이 자마맛지드란 이슬람 모스크였다. 모스크 안으로 들어가 보고 싶어서 다른 출입자들의 행동을 관찰해 보았다.

 

먼저 발을 씻는다. 그런 다음 2층으로 오른다. 나도 따라서 신발 벗고 발 씻고 들어서는데 통행로 양쪽에 차도르를 쓴 여성들이 구걸을 하며 나를 유심히 바라보고 있다. 그 싸한 눈길을 지나 2층에 오르니 한창 예배 중이었다. 실내로 들어가서 한쪽 가에 서서 그 모습을 지켜보았다. 의식이 끝나자 이맘(Imam, 무슬림의 지도자)으로 추정되는, 다른 사람과 복식이 조금 차이가 나는 한 명이 걸어 나오자 한 사람이 나를 밖으로 나가도록 안내한다. 모두 밖으로 나오자, 이맘은 막바지 축복과 기도인 양 양손을 허리춤 약간 위로 올리고 기도를 하더니 마친다.

 

아래로 다시 내려가서 아이 두 명과 간단히 인사를 나눴다. 이 지역에서 제일 유명한 곳이 어디냐고 물었더니 ‘Tippu's Death place’란다. 외세에 맞서 싸우다 술탄이 장렬히 전사했다는 곳. 그는 외세(영국군)와 가장 강력하게 조직적으로 맞서 싸운 거의 유일한 왕이었다고 한다. 그 후 영국군에 매수된 인근 왕국 연합군에 의해 4차 마이소르 전투에서 전사하게 되고, 영국은 이후 티푸 술탄 이전 와디야르 왕조 괴뢰 정권을 옹립하며 섭정을 시작하게 된다.

 

 

티푸 술탄의 행적을 보면 국가적 영웅으로 추앙받아 마땅하지만, 다소 초라하고 허술하게 관리된 그의 유적지 앞에 서니 쓸쓸함이 느껴진다. 그의 불꽃같은 투혼은 영국 식민지의 지속과 힌두 정권의 주도권 아래 부역자와 그로 말미암아 대대손손 부귀를 누려온 세력에 의해 퇴색된 것이라는 씁쓸한 생각에 우리의 현대사를 반추해 보게 된다.

 

다음으로 찾은 곳은 스리랑가나타스와미 템플. 그러나 오늘 오후 4시엔 종교행사가 있는 모양이다. 4시 이전엔 출입이 안 된단다. 4시까지 기다리기엔 시간이 너무 많이 남아서 외관만 둘러보고 다시 마이소르로 돌아가는 버스를 기다리며 거리표 짜이 한 잔을 마셨다. 잠시 후 버스가 온다. 이번엔 넉넉하게 남은 자리 덕분에 차창 밖 풍경을 여유롭게 음미하며 돌아갈 수 있다. 야자나무만 배경에서 지운다면 우리네 시골 여느 모습과 다를 바 없는 차창 밖 정겨운 풍경이다.

 

마이소르에서 머무는 마지막 날 오후. 시내에 이르러, 다시 찾아오마 생각했던 데바라자마켓으로 걸음을 하여 그 북적이는 삶의 온기 속에 흠뻑 몸을 맡겨 보았다.

 

200년의 역사를 가지고 있는 이 재래시장은 골목별로 상품들이 잘 구획되어 있다. 풍성하고 넘치는 색감에 더하여 향기까지 정겹다. 오래오래 시장을 거닌다. 어깨가 부딪혀도 좋고, 호객하는 사람들의 외쳐대는 큰 목소리들도 더 이상 소란스럽게 들리지 않는다.

 

열대의 갖가지 과일들이 모여 있고, 신께 바쳐지기 위한 온갖 꽃들이 축복처럼 시장 거리를 치장하고 있다. 그리고 종교적 표식과 치장, 염료로 두루 쓰이는 ‘꿈꿈(KumKum)’이라는 천연 가루가 수북이 쌓여 있어 다채로운 빛의 축제라도 열고 있는 듯하다.

 

코로나 이전에 다녀왔던 남인도, 그중 마이소르 지역을 배낭 여행했던 기억을 다시 호출해 보았다.

 

죽기 전에 꼭 봐야 할 세계 유적이라는, 화려한 치장을 자랑하는 마이소르 궁전보다도 내겐 재래시장 데바라자마켓의 모습이 먼저 떠오른다. 열대의 풍요로움과 다채로운 빛이 어우러진 속에 현재를 살아가는 사람들의 삶의 숨결이 생생하게 느껴지던 곳. 그런 곳에서라면 언제든 길을 잃고 한없이 거닐고 또 거닐어도 좋을 것만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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