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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현실적인 신비, 우유니 소금호수

 

소금호수가 그려 준 하늘의 모습

우유니 소금호수.

할 말을 잊는다는 표현이 어쩌면 가장 적확(的確)한 표현이 될 수 있을 법합니다. 나는 사람들 입에 그렇게나 빛나게 회자되던 곳, 그래서 살짝 미화를, 지나친 포장을 의심했던 그 우유니 소금호수에 섰습니다. 의심은 모독이었고, 현실은 비현실적이었습니다. 처음엔 탄성을, 이후엔 눈앞에 펼쳐진 풍경의 너무나도 비현실적인 신비에, 진정으로 내가 현실 속에서 보고 있는 것인지에 대한 의구심을 가져야만 했습니다. 표면은 벌집 모양의 다각형 결정체로 촘촘하게 얽혀있고, 그 위를 아주 일정한 깊이의 물이 드리워져 있습니다. 지평선이라 해야 할까요? 수평선이라 해야 하나요. 어찌하였건 그 너머로는 어디까지가 하늘이고 어디부터 땅인지 가늠할 수가 없습니다. 하늘의 모습을 그대로 소금호수가 그려내 주는 까닭이지요. 

 

 

세상에! 이런 풍경이 이 세상에 존재할 수 있다니요. 고산증, 숱한 날들과 흙먼지를 기꺼이 감수하고 이 머나먼 볼리비아 고원지대로 달려오는 이유를, 그럴 만한 가치를 비로소 알겠습니다.

 

그러나 우유니에는 환상적인 소금호수만 있는 것이 아닙니다. 3,700m에서부터 근 5,000m를 넘나드는 고원 사막은 지각 변동이 빚어낸 기묘한 형상의 바위들과 수많은 호수들과 라마, 플라밍고 같은 생명들을 품고 있습니다. 1만 2,000㎢에 이르는 광활한 면적은 먼지와 모래와 바윗돌들을 헤집어, 달려도 달려도 결코 끝날 것 같지 않았습니다. 눈을 뗄 수 없던 그 황량함이 야생성이 그저 신비롭고 낯선 즐거운 풍경입니다. 그러다가 문득 기적처럼 호수가 나타나고 그 속엔 많은 생명이 살아가고 있었습니다. 

 

 

소금호수 위에서 해지는 풍경을 보고, 우유니에서의 첫날 밤은 온통 소금으로 지어진 숙소에서 보냈답니다. 그리고 이틀째 밤 숙소에서도 세상에나! 별빛이 쏟아지는 사막 한가운데입니다. 황량한 고원 사막 한가운데 부려진 숙소라니!

 

 

우유니에서의 이틀째 해가 질 시간이 가까워져 옵니다. 해발 4,000m가 넘는 곳에 자리한 숙소는 마치 황야에서 사람들이 모두 떠나고 적막만 남은 것 같은 곳에 웅크리고 있었지요. 조금 거리가 있긴 하지만 눈앞에 소금호수가 펼쳐져 있고 고원 특유의 황량함이 영화처럼 펼쳐져 있으니, 평생 언제 다시 이런 멋진 숙소에 머물 수 있단 말인가요? 영화 ‘바그다드 카페’의 음울하고도 애절한 OST ‘콜링 유(calling you)’의 멜로디가 떠오릅니다. 먼지, 사막, 외로움, 인생, 기약 없는 기다림, 그리움들. 

 

창이 드리워진 거실에 앉아 먼 풍경을 한참 바라봅니다. 일본인 젊은 친구가 주인집 아들인 듯 새까맣게 그을린 아이들과 장난을 치고 있다가 다시 창 쪽 풍경을 비워냅니다. 몇몇 거니는 사람이 보이고 이윽고 산 그늘이 드리워지면서 으슬으슬 몸이 추워지는군요. 

 

시설은 열악하기 짝이 없습니다만 내겐 문제 될 것이 없습니다. 흙먼지를 종일 뒤집어쓰고도 찬물로 대충 세면을 하고, 한 숙소에서 머물게 된 다른 여행자들과 이야기를 나눈 뒤 일찍 침대 위에 몸을 뉘었습니다. 윙윙 바람이 시공을 스쳐 흐르는 소리를 듣습니다. 판이 서로 부딪히고 먼바다였던 당신과 만나 이 낯설고도 높은 곳까지 떠밀려와 한세상 이뤘으나, 나는 다시 먼바다인 당신이 그립습니다. 당신을 향한 이 목마른 목숨을 어찌해야 할까요.

 

행복은 추구의 대상이 아니라 발견 

이제 멀고도 먼 곳에 있던 당신과의 만남도 끝자락에 이르렀고 이틀 뒤면 다시 떠나야 합니다. 한 번만이라도 좋으니, 그 만남의 삯으로 평생 그리움의 신열에 고통스러울지라도, 꼭 보고팠던 마음 채우고 떠날 채비를 합니다. 다시 볼 수 있을까요? 다시 만날 수 있을까요? 생이 이렇게 가파른 비행을 하는데 말입니다.

그리하여 생은 또 지속되고 생의 끝날까지 다시 목마른 그리움, 그 힘으로 시간을 다독이는 생의 즐거움을 거듭 알겠습니다. 깨어있는 시간, 삶 속에 당신 속에 내가 존재하고 있다는 각성, 그것 하나만으로도 나는 얼마나 행복한 사람인지 모릅니다.

 

 

어느 사이엔가 그리움에도 많은 에너지, 열정이 필요하다는 걸 알았고 나는 그만 편안함과 지극한 일상성에 나를 묻어두고자 묶어두고자 하는 속삭임에 때로 귀를 내주곤 하였답니다. 그렇습니다. 여행은 한없이 무뎌져 가는 그리움에 새로운 에너지를 채워 다시 일상의 관자놀이를 펄떡이게 하는 일임을 알겠습니다. 

 

칠레의 수도 산티아고를 향하는 버스 안입니다. 자다깨다를 몇 번 하면서 벌써 5시간을 달려왔는데도 길은 가까워질 생각을 하지 않습니다. 어쩌면 지금 달려온 것을 네 곱 다섯 곱을 해야 이를 수 있을지도 모릅니다. 더 놀라운 것은 5시간 가까이 달려왔는데도 황막한 황무지의 모습은 걷힐 줄 모른다는 것입니다. 푸른 잎을 가진 나무라고는 경유해온 도시에 야자수 몇 그루 본 것이 모두였을 뿐 생명의 기운이라곤 풀 한 포기 찾아보기 어려운 곳입니다

 

 

그리곤, 읽고 있던 책의 한 구절을 머릿속에 떠올려 보았습니다. ‘행복과 불행은 조건이 아니라 선택이며, 행복은 추구의 대상이 아니라 발견’이라는 글귀를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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