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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탐방

유발 하라리의 미래 교육 예측, 《21세기를 위한 21가지 제언》을 읽고

인류는 지금 전례 없는 혁명기에 직면해 있다. 특히나 Covid-19라는 감염병으로부터 생사를 가르는 투쟁을 벌이며 인간의 생명과 안전을 지키려는 절대적인 순간에 직면해 있다. 한 치 앞을 모르는 인간은 미래에 대한 불확실성으로 인해 극히 두려움과 불안한 삶을 영위해 가고 있다. 그동안 우리가 알고 있던 옛날이야기는 다 무너져내리고 전례 없는 변혁과 뿌리째 흔들리는 불확실성의 세계에서 현재를 사는 우리 자신과 지금 태어난 아이들을 어떻게 대비시켜야 할까? 아이들은 인생 100세 시대를 살아가면서 22세기에도 활발한 시민으로 남아 있을지 모른다. 이런 아이들에게 도움을 주려면 무엇을 가르쳐야 할까? 그들이 일자리를 얻고 세상에서 일어나는 일들을 이해하고 미로 같은 인생을 헤쳐나가려면 어떤 종류의 능력이 필요할까? 교육하는 사람으로 직업적인 생리에 따라 생각에 생각의 꼬리를 물면서 필자는 21세기의 석학인 역사학자 유발 하라리의 《21세기를 위한 21가지 제언》이란 책에서 그 답을 찾게 되었다.

 

인간이 불행한 이유 중 하나는 미래의 세상이 어떨지 아무도 모른다는 것이다. 그러니 우리는 서두에서 제기한 두 가지 질문에 답을 할 수 없다. 물론 과거에도 인간은 미래를 정확하게 예측을 할 수 없었으나 오늘날에는 전(前)에 없이 더 어려워졌다. 왜냐면 현재는 기술을 이용해 우리의 몸과 뇌와 정신을 공학적으로 개조할 수 있게 되어 이제 우리는 그 무엇도 확신할 수 없게 되었기 때문이다. 과거에 확고부동해 보이던 것들까지도 영원불변이란 범주에 아예 존재할 수 없게 되었다. 예컨대 과거의 사람들은 인간 사회의 기본적인 특징만큼은 변하지 않을 거라고 믿었다. 그래서 어느 정도 이러한 예측을 하면서 교육을 통해서 전수함으로써 인류 문화를 유지해 왔다. 그러나 오늘날 우리는 미래의 사람들이 무엇으로 생계를 유지할지, 군대와 관료제는 어떻게 작동할지, 젠더 관계는 어떨지 알지 못한다. 또 어떤 사람은 십중팔구 지금보다 훨씬 오래 살 것이고, 인간의 몸 자체도 생명공학과 직접적인 뇌-컴퓨터 인터페이스 덕분에 유례없는 혁명적 변화를 겪을 수 있다. 따라서 오늘날 아이들이 배우는 것의 대부분은 2050년이면 별 소용이 없어질 가능성이 크다.

 

그러나 지금 너무나 많은 학교들이 학생들에게 정보를 입력시키는 데만 열중하고 있다. 과거에는 이런 방법이 어느 정도 일리가 있었다. 그때는 정보가 희소했고 기존 지식의 느린 전파마저도 검열에 의해 반복해서 차단되었다. 가령 전 세계적으로 19세기만 해도 지방 소도시에 사는 사람들은 더 넓은 세상에 대해 많이 알기가 어려웠다. 라디오도 텔레비전도 일간 신문도 공공도서관도 없었다. 또 글을 읽을 줄 알고 사설 도서관을 이용할 수 있다 해도, 소설이나 종교 책자 이외는 읽을 게 많지 않았다. 국가에 따라서는 국내에서 출판되는 모든 서적을 엄하게 검열하고 해외 출판물도 검열을 마친 소량에 한해서만 수입을 허용했다. 그런데 근대에 와서 학교가 도입되면서 모든 아이에게 읽고 쓰는 법을 가르치고, 지리와 역사, 생물의 기본 사실을 교육하게 된 것은 엄청난 발전이었다.

 

반면에 21세기는 엄청난 양의 정보가 넘쳐난다. 권력기관조차도 정보를 차단하기보다, 잘못된 정보를 퍼뜨리고 하찮은 것들로 우리의 주의를 분산시키느라 바쁘다. 이제는 세계 어느 지역에 있더라도 스마트폰만 있으면 위키피디아를 찾아 읽고, 테드(TED: Technology, Entertainment, Design : 미국의 비영리 재단에서 운영하는 강연회) 강의를 시청하고, 대규모 무료 공개 온라인 강좌인 무크 (MOOC)를 수강하면서 평생을 보낼 수 있다. 이젠 어떤 국가도 원치 않는 정보라 해서 감출 수 없다. 전 세계인들은 클릭 한 번으로 온 지구촌의 최신 뉴스를 접할 수 있다. 문제는 정보가 너무나 많고 복잡하여 오히려 사람들의 시선이 다른 쪽인 개인적 취향과 쾌락을 좇는 일에 매몰되기 쉽다는 것이다.

 

이런 세상에서 교사가 학생에게 전수해야 할 교육 내용은 특별하다. 다만 ‘더 많은 정보’에 대한 집착은 과감히 버려야 한다. 정보는 이미 학생들에게 차고 넘친다. 그보다 더 필요한 것은 정보를 이해하는 능력이고 중요한 것과 중요하지 않은 것의 차이를 식별하는 능력(미디어 리터러시: Media Literacy)이며, 무엇보다 수많은 정보 조각들을 조합해서 세상에 관한 큰 그림을 그릴 수 있는 능력이다. 사실 이런 능력은 수 세기 동안 서구의 자유주의 교육이 추구해온 이상(理想)이기도 했다. 하지만 서양의 많은 학교조차 지금까지 그런 이상을 추구하는 데는 오히려 태만했다.

 

이제 우리는 미래 교육에 대한 자세와 준비에 관심을 가져야 한다. 깨어있는 교사는 학생들에게 ‘스스로 생각하라’고 권장한다. 그러나 정작 교사 자신은 아무렇지도 않게 데이터를 주입시키는 데만 집중한다. 앞으로는 지금 세대가 하지 못하는 -모든 데이터를 종합해서 전 세계적으로 하나의 일관되고 의미 있는 이야기를 만들어 내지 못하는- 것을 훌륭하게 종합적으로 이루어낼 것이다. 하지만 지금 우리에게는 시간이 없다. 앞으로 수십 년 사이에 우리가 내릴 결정들이 지구에 존재하는 모든 생명 자체의 미래를 결정지을 것이다. 여기엔 지금 우리가 가지고 있는 세계관을 기초로 해서 그 결정들을 내리게 될 것이다. 그래서 우주에 관한 포괄적인 견해가 없다면 지구상의 생명의 미래는 무작위로 결정될 것이다.

 

그렇다면 우리는 학생들에게 무엇을 가르쳐야 하는가? 많은 교육 전문가들은 학교의 교육 내용을 ‘4C’, 즉 비판적 사고(critical thinking), 의사소통(communication), 협력(collaboration), 창의성(creativity)으로 전환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보다 포괄적으로 말하면 학교는 기술적 기량의 교육 비중을 낮추고 종합적인 목적의 삶의 기술을 강조해야 한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변화에 대처하고, 새로운 것을 학습하며, 낯선 상황에서 정신적 균형을 유지하는 능력이다. 이는 새로운 생각과 상품을 발명하는 데에만 그쳐서는 안 된다. 대신에 무엇보다도 자기 자신을 반복해서 재발명해야만 한다. 왜냐면 변화의 속도가 점점 빨라지면서 경제뿐 아니라 ‘인간이라는 것’의 의미 자체가 변할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미래에는 사람들이 사이버 공간으로의 이민이라든가 유동적인 젠더 정체성, 컴퓨터 체내이식을 통한 새로운 감각 체험 등에 대처하게 될지 모른다. 간단한 실례로 자신이 3D 가상현실 게임에 사용할 최신 유행 패션을 디자인하는 직업(패션디자이너)을 찾았다 해도 10년 안에 이런 특정 직업이 인공지능(AI)에 의해서 대체될 수도 있다. 자신이 성취한 업적도 나이와 시간의 흐름에 따라 다 퇴물이 될 수가 있다. 자신의 최고 성취물이 시간이 지나서 보면 자부심보다는 수치심에 휩싸일 수 있다. 그러니 미래에는 단지 알고리즘이 자기에게 꼭 맞는 것을 찾아주거나 만들어주는 것을 기다리면 된다. 이것이 바로 미래의 우리 삶의 모습이다. 우리에게 펼쳐질 미래는 지금으로서는 공상과학 소설(SF)처럼 들릴 것이다. 하지만 현재는 세부 내용을 확신할 수는 없지만, 변한다는 것만큼은 유일하게 미래의 진실임에는 틀림없을 것이다.

 

그 변화는 너무나 심대해서 삶의 기본 구조까지 바꿔놓을 수 있다. 그래서 미래는 안정을 누릴 만한 여유가 거의 없게 될 것이다. 늘 낯선 것이 새로운 기본(뉴노멀: New Normal)이 될 것이다. 10년마다 직업을 바꾸어야 할지 모른다. 이때는 살아남고 성장하기 위해 정신적 회복탄력성과 풍부한 감정적 균형감이 필요할 것이다. 그렇다면 미래에 교사는 어떠한 모습일까? 이들도 과거 교육 체계의 산물이기 때문에 미래가 요구하는 정신적 탄력성을 갖추지 못하기 쉽다. 한마디로 교육 모델이 될 수 없다.

 

미래의 교육에서는 ‘어른들에게 너무 의존하지 말라’는 것이 학교 교육의 모토(Motto)가 될지 모른다. 변화의 속도로 인해서 어른들의 말은 시간을 초월한 지혜인지 시대에 뒤진 편견인지 결코 확신할 수 없게 될 것이다. 그렇다면 무엇에 의존하도록 해야 할까? 기술? 그렇지 않다. 그렇다면 우리 자신에게 의존해야 할까? 우리의 마음에 따르는 일도 점점 위험해질 것이다. 왜냐면 생명기술과 기계 학습이 발전하여 인간의 심층 감정과 욕망까지 조작하는 것이 점점 쉬어지기 때문이다. 결국 내가 누구인지, 내가 인생에서 바라는 것이 무엇인지를 알아야 한다. 일찍이 소크라테스는 ‘너 자신을 알라’고 촉구하지 않았던가. 중국의 영원한 고전 <노자>도 마찬가지였다.

 

하지만 소크라테스와 노자의 가르침도 위협을 받고 있다. 우리는 지금 인간을 해킹하는 시대에 살고 있기 때문이다. 우리 자신과 우리의 유기적 운영 체제를 해킹당하고 있는 것이다. 지금 이 순간에도 알고리즘은 우리를 지켜보고 있다. 우리가 어디로 가고, 무엇을 사고, 누구를 만나는지는 물론 조만간에는 우리의 모든 걸음과 숨결, 심장박동까지 모니터할 것이다. 그래서 우리는 이른바 <매트릭스> 혹은 <트루먼 쇼> 속에 살게 될 것이다. 이제 우리의 선택은 정해져 있다. 그것은 바로 우리 개인의 존재와 삶의 미래에 대한 통제권을 갖고 싶다면 알고리즘보다, 아마존보다, 정부보다 더 빨리 달려야 한다는 것이다. 그들보다 먼저 나 자신을 알아야 한다. 거기에 덧붙여 빨리 달리려면 가벼워야 한다. 짐이 많아서는 곤란하다. 그래서 소유하는 모든 환상들을 뒤에 남겨야 한다. 왜냐면 그 환상들은 너무 무겁기 때문이다.

 

이러한 상황에서 미래를 사는 참 지혜는 모든 것이 변한다는 사실에 근거해야 한다. 변화만이 유일한 상수(常數)이다. 이는 교육에서도 예외가 아니다. 미래 교육은 예측이 아니라 상상이다. 이것이 우리가 감당해야 할 미래 교육의 과제이다. 교육만이 살아있고 그 힘은 강력히 미래를 대처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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