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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을 대신한 죽음

- 대구광역시 신숭겸 유적지

신숭겸 장군은 신라의 정치가 어지러울 때 궁예가 나라를 세우자 그의 지휘를 받는 장군이 되어 많은 공을 세웠다. 그런데 궁예가 백성들에게 못된 정치를 하자 배현경, 복지겸 등과 함께 그를 몰아내고 왕건을 임금으로 모셨다.

 

대구 동구 파군재 삼거리에는 왼손에 칼을 집은 늠름한 모습의 신숭겸 동상이 있고 그 뒤로 말을 타고 활시위를 당기는 사안도와 파군재에서 후백제군과 전투를 벌이는 충렬도를 새겼다.

 

사안도(射雁圖)는 기러기를 향해 활시위를 당기는 모습으로, 고려 태조 임금과 함께 황해도 삼탄으로 사냥을 나갔는데 한낮에 기러기 세 마리가 날았다.

 

“저기 세 번째 기러기 왼쪽 날개를 누가 맞추겠는가?”

“전하, 제가 쏘아 보겠습니다.”

“와! 살을 맞았다.”

“장군의 활 솜씨가 대단하구려.”

 

신숭겸이 선뜻 나서 명한 대로 맞혔더니 태조가 신(申)씨 성을 내리고 평산 지역을 다스리도록 하였다.

 

충렬도(忠烈圖)는 서기 927년 9월, 견훤이 신라의 경주를 공격해 경애왕을 죽이고 갖은 행패를 부리며 경순왕을 임금으로 삼고 물러갔다. 이 소식을 들은 고려 태조 임금은 5천여 군사와 함께 빠르게 달려가 대구의 팔공산 동화사 인근에서 견훤의 후백제군과 맞서 싸우다 겹겹이 포위되어 위급한 상황에 놓이게 되었다. 함께 있던 신숭겸 대장군이 임금에게 다급히 말했다.

 

“전하, 견훤의 군사에 포위되어 앞이 보이지 않습니다.”

“어떻게 하면 좋겠소?”

“전하, 제가 대왕의 갑옷을 입고서 후백제 군사들을 한쪽으로 유인하겠습니다. 그러는 동안 병졸의 옷을 입고 이곳을 빠져나가 후일을 도모하셔야 합니다.”

“짐은 신숭겸 대장군의 공을 꼭 보답하리다.”

 

신숭겸이 태조 왕건의 갑옷을 입고 백마를 타고 군사를 지휘하자 후백제군이 집중 공격을 하여 장렬히 전사하였고 그의 머리는 후백제군이 베어갔다. 그러는 사이에 고려 태조 왕건은 병졸의 옷으로 바꿔 입고 숨어 있다가 포위를 뚫고 탈출하였다.

 

고려 태조 왕건은 전투가 끝난 후 신숭겸의 시신을 찾았으나 머리가 없으므로 이를 안타깝게 여겨 황금으로 머리를 만들어 장례를 치르도록 하였다. 지금도 춘천시 서면 방동리에는 도굴을 막기 위해 봉분을 셋으로 만든 신숭겸의 무덤이 있다. 전하는 말에 의하면 견훤이 고려 태조의 머리가 아닌 것을 알고 버린 것을 장군이 타던 말이 전남 곡성 태안사로 물고 와 스님들이 수습하여 묻었다는 신숭겸 장군 머리무덤이 있다고 한다.

 

 

전남 곡성은 신숭겸 장군이 태어난 곳으로 목사동면에 장군의 태를 묻은 태무덤이 있는 용산재가 있고, 이웃한 오곡면에 장군의 제사를 모시는 덕양사가 있다.

 

대구광역시 동구 지묘동에는 신숭겸 장군이 돌아가신 자리에 피 묻은 갑옷과 피를 머금은 흙을 담아 묻고 돌을 사각형으로 쌓아 올리고 옆에 순절비를 세웠다. 조선 현종 임금이 진실한 마음을 드러내 보인다는 뜻으로 ‘표충사(表忠祠)’라는 이름을 내렸다. 이곳 지묘동에서 이웃한 평광동에는 공산전투에서 전사한 장군의 공적을 기리는 비를 세웠고 이 비를 기리는 모영재(慕影齋)가 있다.

 

신숭겸이 고려 태조 왕건을 대신하여 죽은 ‘위왕대사(爲王代死)’는 한나라 유방을 탈출시킨 한나라 장군 기신(紀信)의 ‘동문일사(東門一死)’에 견주어도 으뜸가는 공적이다. ‘동문일사’는 유방과 항우가 맞섰던 중국 영양의 형양성 이야기이다.

 

항우의 초나라 군사들이 형양성을 포위하여 공격하자 한나라 유방은 식량이 다 떨어져 항복하려 하였다. 이때, 한나라 장군 기신이 한밤중에 유방의 수레를 타고 형양성 동문으로 나가 초나라 군사들이 공격하도록 유인하였다. 초나라 군사들이 가까이 다가오자 기신은 한나라 유방을 흉내 내어, “식량이 다 떨어져서 항복하겠다. 항복! 항복!”

 

초나라 군사들이 마음 놓고 기신을 맞이할 때, 한나라 유방은 형양성 서문으로 나갈 수 있었다. 초나라 항우는 기신에게 속아 유방이 형양성을 탈출하게 된 것을 알고 그를 베었는데 이를 동쪽 문에서의 죽음이라는 의미로 ‘동문일사(東門一死)’라 한다.

 

고려 예종 임금이 평양의 팔관회에 참석하였는데 갑자기 관복을 입은 두 인형이 말을 타고 뛰어다니기에 물었다.

 

“저기 말을 탄 인형은 무엇인고?”

“저 인형은 신숭겸 장군과 김락 장군으로 대구 팔공산 전투에서 견훤의 후백제군과 싸우다가 태조 대왕을 대신해서 죽은 장군입니다. 그래서 태조께서 팔관회에서 두 장군을 위로하려고 인형을 만들어 관복을 입히고 앉혔더니 살아있는 것처럼 술도 마시고 춤도 추었습니다. 그래서 지금도 팔관회에서는 말을 탄 인형을 만들어 함께하고 있습니다.”

“그럼 두 장군을 위로하는 노래를 지어야겠다.”

 

고려 예종은 신숭겸과 김락 장군의 충절을 신하와 백성들이 본받도록 향가와 한시로 도이장가를 지었다.

 

 

대구 표충재

忠義明千古 死生惟一時 - 충의명천고 사생유일시

文魁詳籍記 武德煥銘鐫 - 문괴상적기 무덕환명전

一氣貫人天 磅礡山河壯 - 일기관인천 방박산하장

蒼茫海日懸 - 창망해일현

충성과 의로움은 오랜 세월 동안 밝고

삶과 죽음은 한순간의 일이라네. -고려 예종

문과 장원급제 책에 자세히 기록하고

장군의 덕행도 뛰어나 비에 새겼네.

타고난 기질과 마음은 하늘을 꿰뚫고

씩씩한 기상이 산하에 드높으니

바다에 뜬 해는 멀어 아득하구나. -신기성

 

대구 모영재

忠義明千古 死生惟一時

- 충의명천고 사생유일시

先生節義感人多 頑者廉而隘者和

- 선생절의감인다 완자렴이애자화

假使當季公不死 半千功業迺如何

- 가사당계공불사 반천공업내여하

孤忠貫日壯氣成功

- 고충관일장기성공

 

충성과 의로움은 오랜 세월 동안 밝고

삶과 죽음은 한순간의 일이라네. - 고려 예종

선생의 꿋꿋한 태도와 도리는 많은 사람에게

감동을 주었고

완고한 사람을 청렴하게 하고 편협한 사람을

화목하게 하였네.

그때 신숭겸 장군이 죽지 않았다면

오백 년 고려의 번성이 지금과 같을 수 있을까?

외로운 충성은 해를 뚫고 웅장한 기세는

공적을 세웠네.

 

곡성 용산재

용산재

存亡係大義 不媿俯仰間 - 존망계대의 불괴부앙간

賢將死一節 聖祖統三韓 - 현장사일절 성조통삼한

若無必殉國 麗遺有誰環 - 약무필순국 려유유수환

삶과 죽음의 순간에 행한 큰 의로움은

굽어보나 우러러보나 부끄럽지 않고

뛰어난 장군은 죽음으로써 사람의 도리를 지켰고

빼어난 조상은 삼한을 통일하셨네.

만일 고려를 위해 목숨을 바치지 않았다면

누가 고려의 문화를 꽃피게 하였을까?

 

진덕재

見二功臣像 汍瀾有所思 - 견이공신상 환란유소사

公山蹤寂寞 平壤事留遺 - 공산종적막 평양사유유

두 공신의 인형을 보노라니

저절로 눈물이 흘러 넘쳐나네.

팔공산의 옛 자취는 아득하건만

그대들 기리는 풍습 평양에 전하네. -고려 예종

 

모충재

忠義明千古 死生惟一時 - 충의명천고 사생유일시

爲君躋白刃 從此保王基 - 위군제백인 종차보왕기

충성과 의로움은 오랜 세월 동안 밝고

삶과 죽음은 한순간의 일이라네.

임금을 위하여 목숨을 바치니

이로써 나라의 터전을 보존하였네. -고려 예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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