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8년전, 전교생 42명의 조그마한 학교에서 5,6학년 복식학급을 맡았다. 시키지 않으면 먼저 말도 잘 하지 않는 전형적인 시골 아이들 중에서 말도 잘 건네고 출근 시간이면 주차장까지 나와 가방을 들어다주는 덕환이라는 아이가 있었다.
나는 부임 첫날부터 3월 중순에 있을 교육장기 육상대회 훈련을 했다. 그런데 800m 경기에서 우리 아이들은 1등에게 한바퀴나 떨어져 탈락하고 말았다. 큰 학교에 견줄 수는 없는 일이지만 자존심이 상하고 화도 많이 났다.
매일 아침 자습시간에 전교생 달리기를 하자고 교장 선생님께 제안을 했다. 오후에는 전교생이 달리기를 한 뒤 운동을 한 아이들만 학교버스를 태우는 방법을 동원했다. 덕환이는 가장 열심히 달렸지만 기록은 나아지지 않았고 꼴찌를 맡아놓고 했다. 그러나 개의치 않고 육상화에 초시계까지 용돈으로 사서 스쿨버스도 타지 않고 2km 거리를 매일 뛰어다녔다.
걱정스러운 부분은 건강이 좋지 않은 덕환이가 달리기를 하고 나면 꼭 수돗가로 달려가 토하고 만다는 것이었다. 말려도 막무가내로 달리는 덕환이의 의지를 꺾을 수 없었다. 3개월 연습 후 지역별 육상대회가 열렸는데 5학년인 덕환이가 또 꼴찌를 했다. 그러나 1등과의 거리가 줄어들어 본인도 무척이나 기분이 좋은 듯했다.
다음해 난 다시 덕환이의 6학년 담임이 되었고 육상밖에 모르는 덕환이는 나가는 대회마다 항상 2,3위를 차지했다. 육상에 재미를 완전히 붙여 쉬는 시간에도 몸을 푼다며 매일 뛰어다녔다. 가을에 있는 학교대항 단축 마라톤 대회를 앞두고 나는 혹독할 만큼 강한 훈련을 시켰다. 남자 3명, 여자 2명이 팀을 이뤄 각각 3km, 2km씩 달리는 경기였는데 하루에 18km 이상을 뛰는 강행군을 감수했다.
이 대회에서 우리 학교는 우승은 물론 덕환이는 그토록 바라던 군대표로 선발돼 도대회 3위를 차지했다. 아무리 믿으려 해도 도저히 믿어지지 않는 사실이었다. 많은 선생님들은 “느림보 거북이 만세”를 불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