쑥부쟁이· 여뀌 등 가을꽃이 지고 나면 ‘꽃쟁이들’은 무엇을 보러 다닐까. 퉁퉁마디·나문재·칠면초·해홍나물 등 갯벌에서 사는 염생식물(鹽生植物)을 찾아다니는 사람들이 많다. 필자도 대부도·소래습지 공원 등으로 염생식물을 보러 다녔다. 인천국제공항에 가기 위해 영종도에 들어서면 서해 갯벌에 자주색 장관이 펼쳐져 있는 것을 볼 수 있는 데, 해홍나물 등 염생식물들이 무리를 이룬 모습이다.
갯벌을 뒤덮은 자줏빛 향연, 함초
원래 함초는 퉁퉁마디의 별칭이지만, 염생식물들을 뭉뚱그려 함초라고 부르는 사람들도 있다. 권지예 단편소설 <꽃게 무덤>을 읽으면 이 함초의 자주색 이미지가 강하게 남는다.
삼년 전 아내와 이혼한 주인공은 함초밭을 촬영하기 위해 강화도 앞 석모도 갯벌을 찾았다. ‘함초와 나문재 같은 식물이 넓게 깔린 장엄한 자줏빛 뻘은 그야말로 압권이었다.’ 거기서 주인공은 우연히 자살하려는 여인을 구한다. 여인은 스스럼없이 주인공의 집으로 와 살았다. 그런데 여인은 새벽에 일어나 간장게장을 꺼내 먹을 정도로 간장게장을 좋아했고, 게장 요리도 잘했다. 주인공은 여인과 1년 가까이 살면서 사랑을 느꼈지만, 여인은 주인공에게 마음을 주지 않았다. 여인에겐 사랑의 상처가 있었다. 주인공은 어느 날 여인의 배낭에서 남자 사진을 발견하고 누구냐고 추궁하면서 우발적으로 손찌검을 했다. 다음 날 새벽 여인은 집을 떠났다. 속살을 발라 먹고 남은 꽃게 무덤 같은 자리만 남겨놓고 사라진 것이다. 주인공은 여인을 잊지 못하다 석모도 바닷가에서 그녀의 소지 품들을 떠내려 보내며 그녀를 잊기로 다짐한다.
‘함초’는 이 소설에서 두 남녀가 처음 만난 배경이자 소설에 강렬하면서도 비극적인 색채를 주는 이미지로 쓰이고 있다. 주인공이 떠난 여인을 그리워하다 꿈을 꾸는 장면 이다.
넓은 갯벌엔 무리 지어 자생한 자줏빛 함초밭이 끝없이 펼쳐져 있다. 아주 넓은 자주색 비로드 치마가 펼쳐진 것 같다. 하늘도 온통 함초잎 빛깔이다. 해는 이미 바다로 떨어졌다. 바다는 은갈치 빛으로 창백하게 반짝인다. 이 글이글 불타는 생피 덩어리 같던 석양이 지고 난 후 수평선 언저리는 점점 검 붉은 자줏빛으로 변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