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아직 논란의 여지는 있지만 태양계에 10번째 행성의 후보 별이 새로 발견되었다고 한다. 이런 소식을 들으면 주된 논란거리와는 별도로 "지금껏 발견되지 않았던 동안 그것은 우리에게 무엇이었을까"라는 생각이 스며든다.
물론 그 행성은 발견되기 전까지 우리 생활과 거의 아무런 상관이 없었으며, 10번째 행성으로 인정되더라도 사실상 무관할 것이다. 다만 '세드나'(Sedna)라는 그 이름이 시험에 나올 경우, 학생부 성적을 통해 입시에 반영되는 정도로 우리에게 영향을 준다고 할 수는 있겠다.
그러나 그것이 발견되기 전 정녕 인간에게 티끌의 티끌만큼도 영향을 주지 않았다고 단정할 수 있을까. 어쩌면 까마득한 옛날의 한 순간 지구를 향해 돌진하는 거대 운석 하나를 가로막아 주었는지도 모른다. 하지만 범위를 더 확대해 생각해보면 어떨까. 항성으로 지구와 가장 가까운 별은
프록시마(Proxima)다. 그러나 가장 가깝다는 말이 무색하게도 4.3광년, 즉 약 40조 킬로미터나 떨어져 있다. 과연 이런 별도 인간에게 그 어떤 영향을 줄 수 있을까.
놀랍게도 현대의 쟁쟁한 과학자들 가운데 일부는 우주가 인간을 위해 필수불가결한 요소들로 가득 차 있다는 주장을 편다. 우선 4.3광년이란 거리는 그야말로 약과이고 지름이 약 300억 광년에 이른다고 보여지는 이 우주의 크기만 해도 인간과 같은 고등생물의 출현에 꼭 필요한 크기라는 것이다.
우주가 창조되고 수많은 별들이 명멸하는 동안 생명의 싹이 태어나 인간의 단계까지 진화하려면 우주 또한 그에 상응하는 진화를 거쳐야 하기 때문이다. 다른 요소들도 많다. 태양계만 보더라도, 태양의 크기가 조금만 더 크거나 조금만 더 작다면, 태양계에 목성이라는 거대 행성이 없다면, 지구에 달이라는 커다란 위성이 없다면, 지구 표면을 물이 70% 가량 덮지 않는다면, 인간처럼 정교한 고등생물은 제대로 된 삶을 꾸려갈 수 없다. 그리고 과학이 발전함에 따라 새로운 증거들도 속속 밝혀지고 있다.
중세의 어둠을 걷고 일어난 르네상스 운동의 핵심 사상을 가리켜 인본주의라고 부른다. 이전에 지나치게 떠받들던 신이나 자연 등의 영향을 벗어나 인간에 대한 관심이 고조되어 새로운 사조를 이루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 인본주의는 과학적 근거가 약한 것이었다. 이에 비하여 앞서 말한 현대 과학자들의 주장은 아주 설득력 있는 과학적 이론들로 무장되어 있다.
그들의 주장은 '과학적 인본주의'라고 부를 수 있다. 실제로 이들은 그동안 밝혀진 증거를 토대로 "우주는 인간과 같은 고등 생물이 필연적으로 출현하도록 조성되었다"는 결론을 정립하고 인본원리(anthropic principle)라고 부른다. 그러나 이 원리가 백 번 옳다 하더라도 영원한 번영까지 약속한 것은 아니란 점을 주목해야 한다. 앞으로의 여정에는 인간 자신의 노력이 중요하며, 그런 뜻에서 과학적 인본주의는 겸허한 인본주의로 나아가야 하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