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올해에는 수능 후유증이 유례 없이 오랫동안 지속되고 있다. 제한된 공간에서 소수의 출제위원만으로 정해진 기간 내에 완벽에 가까운 검사를 개발해내야 하는 우리 대입문화의 취약점이 적나라하게 드러난 것 같다.
이번 후유증을 보면서 출제 관리 전반에 걸친 재검토가 이뤄져야 한다는 점에는 대다수 국민들이 동의하는 것으로 보인다. 그렇다고 10년 동안 사용해 온 수능체제를 개선하는 일이 단기간 내에 만족스럽게 이뤄지기를 기대하는 것은 무리인 것 같다.
수능체제의 개선은 거시적이고 장기적 관점에서 국민의 지혜를 모아 서두르지 않고 체계적이고 합리적으로 추진되어야 할 필요가 있다. 그러는 동안 기존의 수능체제에 관해서 단기적인 차원에서의 개선안이 우선적으로 준비돼야 할 것은 말할 나위가 없다.
단기적 개선안에는 우선 출제위원 선정을 중심으로 한 출제과정 전반에 대한 관리체제 보완 및 강화에 관심을 둬야 한다. 수능의 출제는 출제위원으로 선정되는 전문가(교과교육 및 교과교육평가 전문가)들에 의해서 이루어진다는 점을 그 주요 단서로 삼아야 한다. 측정도구로서 수능의 질적 수준이나 관련 보안문제 등도 궁극적으로는 출제위원들에 의해 좌우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단기적인 개선안은 수능 출제위원 선정 과정과 출제 과정에 대한 보다 합리적이고 철저한 확인점검과 검토과정을 강화하는데 초점을 둬야 할 것이다. 종래에 비해 보다 강화된 질 관리체제의 도입이 필요한 바, 이중 삼중의 확인검토 과정이 요구되고 이를 위한 전문가집단의 수용과 준비, 적절한 여건 조성이 보장돼야 한다.
출제위원 선정에서 위원들간의 팀웍이 특별히 요구된다는 점도 중시돼야 한다. 수능 마피아라는 말을 들을 정도로 소수의 위원들만이 반복적으로 선정되는 일을 구조적으로 예방하려는 노력이 필요하며, 신진 출제위원을 적당히 배합함으로써 향후 유능한 출제위원들을 양성해내는 기능도 중시돼야 한다.
또한 실전 능력을 중심으로 한 예비 출제위원을 양성하기 위한 체계적인 노력도 절실하다. 교육과정평가원은 관련 학회와의 연계 하에 예비 출제위원을 체계적으로 양성하는 프로그램을 실시할 필요가 있다. 이 프로그램에는 전문가들이 자율적으로 참여하는 과정과 관련 학회나 지방자치별로 추천받은 전문가들이 참여하는 과정을 적절하게 배합할 필요가 있다고 본다.
당국은 출제위원 양성과 선정, 출제 과정에 대한 자율적 모니터링, 출제 문항에 대한 체계적인 검토과정 등이 체계적으로 진행될 수 있도록 행정적인 지원책을 강구할 필요가 있다.
또한 선발된 출제위원들에 대한 인센티브도 중시해야 한다. 출제위원에 대한 사회적 대우도 신통치 않은 실정이고, 최선을 다해 책무를 완수해도 보람을 느끼기 어렵고 큰 과오가 없어야만 본전이라는 푸념이 나오고 있다. 최근에는 출제위원으로 선발되기를 꺼려하는 경지에까지 이르렀다는 점을 간과해서는 안된다. 국가적으로 막중한 과제수행에 대한 책무를 부과하면 그에 상응할만한 보상을 보장해야 하기 때문이다.
장기적인 안목에서 중점을 둬야 할 것은 수능의 측정 목표와 성격을 재규정하는 일과 개선된 출제방식을 개발하는 일이다. 이를 위해 관련 기관과 전문가를 포함한 교육계 인사들이 숙고해 최선안을 제시해야 하고 이를 국민적 합의 하에서 결정하게 되면 대폭적인 지원을 보장해야 한다.
국제적으로 경쟁력 있는 인재를 양성해야 한다는 시대적 사명감을 중시하면서도 학생의 과도한 부담감을 완화하며 선택의 여지를 확장해 나갈 수 있도록 기본 틀을 짜야 한다. 고교교육의 정상화를 기할 수 있으며 대학측에서 신뢰할 수 있는 학생선발 근거자료로 활용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학교에서 아무리 열심히 공부해도 좋은 수능점수를 보장받을 수 없어 학원을 가게 된다는 현실, 대학에서의 수학능력이나 성취도를 수능점수로 예측하기가 매우 어렵다는 현실이 우리 앞을 가로막고 있다는 점을 망각해서는 안된다. 관련자들은 수능의 방향과 성격을 규정하고 그에 걸맞은 성숙하고 합리적인 출제체제를 개발하는 데 모든 지혜를 모아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