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05.09 (금)

  • 구름많음동두천 17.6℃
  • 맑음강릉 20.3℃
  • 구름많음서울 18.2℃
  • 맑음대전 18.5℃
  • 맑음대구 19.0℃
  • 맑음울산 20.0℃
  • 맑음광주 18.4℃
  • 맑음부산 19.1℃
  • 맑음고창 18.4℃
  • 맑음제주 21.3℃
  • 구름많음강화 15.3℃
  • 구름조금보은 17.3℃
  • 맑음금산 18.1℃
  • 맑음강진군 18.7℃
  • 구름조금경주시 20.7℃
  • 맑음거제 19.7℃
기상청 제공
상세검색

신종 데이를 즐기는 아이들

신종 데이들은 고를 필요도 없고 고민할 필요도 없이 특정 선물의 가이드라인을 제시해준다. 실제로 무슨 선물을 준다는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주었다, 안 주었다는 결과론적 책임만이 남는 것이다.

크리스마스의 신비, 만들어진 전통
 이제는 산타할아버지가 존재한다고 믿는 아이들이 없다. 어린이들의 순수함이 사라져서가 아니라, 크리스마스가 우리 일상에서 이미 관습화되었기 때문이다. 크리스마스 유래에 관해서는 수많은 가설들이 있다. 그 어느 하나 신빙성이 있는 주장이라 말할 수 없다. 그저 사람들이 크리스마스의 의미를 ‘믿을’ 뿐이다. 사람들에게 중요한 것은 크리스마스의 본래 의미가 아니라, 그날 쉴 수 있다는 것, 그리고 선물을 주고받아야 할 것 같다는 것이다.
종교의 자유와 국교가 없는 우리나라에서는 해방 이후 이승만 정부 때 크리스마스를 공휴일로 제정했다. 그 당시까지 국민의 대다수가 예수님의 존재를 몰랐지만, 국가에서 기념을 하기로 했다. 당시 사람들에게 익숙하지 않았던 크리스마스는 이제 많은 사람들이 고대하는 기념일로 익숙해졌다.
영국의 에릭 홉스봄(Eric Hobsbawm)이란 사학자는 <만들어진 전통>이라는 책에서 “모든 전통은 발명된 것이다”라고 주장했다. 책에는 우리가 피상적으로 알고 있는 전통들이 ‘허구’라는 것을 증명한다. 유럽 사례의 경우, 대부분 지금 전통(이라고 믿고 있는 것)들은 19세기나 20세기 초에 ‘급조’된 것이라고 서술한다. 국경일 제정, 영웅만들기, 의례(ritual)를 만드는 작업이 국가의 기획에 의해 구성되었다고 주장한다. 저자의 주장은 전통을 만드는 것을 국민국가로 통합하기 위해서, 현재를 위해 과거를 재구성하는 작업이라고 설명한다. 이러한 전통을 발명하는 것은 단지 유럽만의 사례가 아닐 것이다.

전통이란 모호함
 오늘 이야기하는 주제는 우리 역사에 재구성된 전통을 살펴보는 것이 아니라, 청소년들 사이에서 전통이라는 것이 어떻게 작용하는 것인가에 대한 고찰이다. 사실 이것은 청소년만의 문제도 아니다. 전통이란 현재 사람들이 설명하지 못하는 것을 과거에 권위를 빌려 오는 것이다. 예컨대 역사가 오랜 학교마다 전통이 있으며, 그것을 자랑스러워한다. 이러한 전통은 실체가 없어 느껴지지는 않지만, 쉽게 설명되기는 한다. 물론 학창 시절에 그런 전통을 체감하는 경우는 거의 없다. 졸업한 이후에 사회생활을 하면서 인맥을 만들어낼 때 사용되는 것이 학교의 전통이다. 전통은 이러한 점에서 쓸모가 있다.
그러나 전통이 다 좋은 것은 아니다. 예를 들어 현재로서는 이해 안 되는 일들도 전통이라고 하면 합리화된다. 사실 의례 자체가 현재의 논리로서 설명되는 것이 아니라 과거 사실에 대한 답습이기에 논리적으로 이해하거나 설득 당하는 영역이 아니라, 받아들여야 한다. 시대가 변하고 전통과 현대가 부딪히면서 문화적 차이는 발생한다. 이러한 사례는 무수히 많으며 또한 우리 주변에 일상적으로 일어나는 일이다.
전통이란 말이 무서운 것은 비합리적이거나 잘못된 일도 ‘전통’으로 포장될 수 있다는 것이다. 군대나 동아리 등에서 선배가 후배에게 폭력을 하는 경우, 대부분 ‘전통’이라고 말한다. 과거 대학생 신입환영회나 집합 등 불합리한 일들이 전통으로 포장되는 경우가 많았다. 그래서 우리가 전통이라고 말할 때에는 조심스러움이 필요하다.
또한 대부분의 전통에서는 유래가 불분명하다. 언제부터 누구로부터 시작했는지 불명확해서 대부분 추측하거나 또는 유래 자체가 중요한 문제가 아니라고 생각한다. 왜 해야 하는지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행위만 남게 된다는 의미이다.

전통과 의례를 만들어 내는 아이들
 아이들 사이에서 가장 유명한 데이는 아마 밸런타인데이일 것이다. 이 날은 내가 학창시절이던 20여 년 전에도 유행하고, 지금도 유행(?)하고 있다. 밸런타인데이의 여러 유래가 있기는 하나, 중요한 것은 여자가 남자한테 초콜릿을 주는 날이라는 것이다.
이미 현대 사회에 새로운 풍습으로 정착되었다고 볼 수 있다. 그러나 밸런타인데이 이후, 여자만 남자에게 초콜릿을 주는 게 부당하다고 생각했는지 3월 14일은 화이트데이라고 말하며, 남자가 여자에게 사탕을 주는 날이 ‘발명’됐다. 그리고 애인 없는 서러운 사람들을 위해서 짜장면을 먹는 풍습도 만들어졌다. 가히, 전통의 변증법적 확장이라 할 수 있다. 이외에도 매달 14일을 기준으로 다양한 이벤트를 고안했다.
도대체 왜 각 날짜의 이름이 지어졌는지 이해가 되지 않고, 왜 그 날짜에 그런 일을 해야 하는지도 모르지만, 이러한 날짜를 꼭 지켜야 한다고 생각하는 아이들도 있다. 특히 나이 어린 연인(?)들은 이러한 날짜를 꼭 지켜야 한다고 생각하며, 각 날짜를 기념하기 위해 노력한다.
그들은 특별한 이유는 없지만, 마치 놀이하듯이 그날의 의례를 따르는 것을 기념하는 것이라고 생각하며 이를 통해 서로의 관계를 재확인할 수 있는 기회라고 생각한다. 새로운 전통은 이렇게 발명되기 시작한다.

신종 데이의 재생산
최근에 유행하는 데이가 11월 11일 ‘빼빼로데이’였다. 빼빼로라는 특정 과자가 숫자 1의 모양과 닮았다는 단순한 이유로 유행하면서 이날만 되면 전국 편의점과 팬시점에는 빼빼로가 가득하다. 일설에 의하면, 이날 하루에 과자의 한해 판매량의 절반 이상이 소비된다고 한다. 올해는 2011년 11월 11일로 “100년 만에 돌아오는” 빼빼로데이라고 과대 선전을 하기도 했다.
이날만 되면 나오는 뉴스는 젊은이들이 국적 모를 풍습에 빠져 있다는 풍토를 비판적으로 지적하면서, 과도한 상업주의 때문이라는 기사가 의례적으로 나오게 된다. 익숙한 비판이다. 그러나 이러한 비판을 비웃듯이 유사 데이들은 많이 만들어졌다. 지식인 검색을 통해서 살펴보니 가래떡데이(1/1), 2%데이(2/2), 삼겹살데이(3/3), 오이데이(5/2), 아구데이(5/9), 핸드데이(5/24), 부채데이(5/31) 등 다양했다.
이러한 신종 데이의 특성은 어떠한 날짜의 필연성이 있거나 유래가 있다기보다는 대부분 숫자의 모양, 발음 또는 형상을 통해서 구성된 것으로 추측된다.
각각의 데이는 마치 상형문자와 같은 모양(1/1 데이)이나 발음의 유사 형태(5/2데이)를 차용한 것이다. 예컨대 9월 9일 99데이는 구구라는 닭의 소리를 연상하거나, 막대사탕의 모양을 연상하는 두 가지로 해석할 수 있다. 그러나 물론 몇몇 데이는 연유와 까닭을 추측하기 어려운 ‘데이’도 많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청소년들 사이에서 이러한 신종 데이들이 억지스럽지만 자연스럽게 느껴지는 이유는 무엇일까. 그것은 청소년들 사이에 익숙한 이모티콘의 연장에서 언어유희가 일상적으로 받아들여지는 문화적 특성 때문이다.

신종 전통의 탄생
이런 신종 데이들을 대부분의 언론들은 간단하게 ‘상업적’이라고 비판한다. 물론 이 중 어떤 날은 특정 상품과 연계되어 상업적 마케팅 차원에서 이뤄지기도 한다. 언론은 상업적 무분별한 상술에 놀아나는 젊은 세대(청소년)들이라며 비판적인 기사를 쓴다. 그러나 그러한 비판적인 기사 자체가 각종 데이들을 홍보하는 역설적인 효과를 가진다.
아이들 사이에는 상업적이라는 비판이 귀에 들어오지 않는다. 이미 언론 자체가 상업적이기 때문이다. 많은 경우 마케팅은 언론을 통해서 이뤄지기 때문이다. 상술을 비판하면서, 상술을 홍보하는 것이 언론의 모순적 역할이다.
심지어 청소년도 이런 신종 데이가 상업적 마케팅과 연관되어 있다는 것을 모르는 것은 아니다. 그들은 상업적이라는 비판을 알고 있다. 그러나 중요하지 않은 문제라 생각할 뿐이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살고 있으면 모든 일들이 결국 ‘비즈니스’에 귀착되는 것을 현실로 받아들이는 것이다.
오히려 이런 데이라는 신종 전통(?)이 발명되는 이유에 대해 고민해볼 필요가 있다. 또한 왜, 어떤 청소년들이 이러한 만들어진 전통에 열광하게 되는가를 분석할 필요가 있다. 대부분의 데이는 홀로 즐기는 것이 아니라, 누군가(대부분 친한 친구)와 선물을 교환하거나 함께하는 날이다. 프랑스의 인류학자이자 사회학자인 마르셀 모스(Marcel Mauss)는 <증여론>이란 책에서 여러 문화에서 선물교환에 관한 비교연구를 실시했다. 순환적인 형태의 소비를 통해서 사람들이 어떤 관계망을 형성하는 메커니즘을 분석했다.
모스의 시각에서 보면 청소년들은 이런 ‘데이’를 이용해 친한 친구들과 평소의 관계를 확인하거나 또는 강화하고자 한다. 이러한 행위는 호혜적인 인간 본성이며, 이를 통해서 계산적인 사회에서 획득할 수 없는 공동체를 구현할 수 있다고 본다. 청소년의 또래문화에서 이러한 데이 마케팅은 자신들만의 또래 공동체를 강화하기 위한 공리(Public Interest)를 추구하게 된다. 청소년들에게 신종 데이들은 이러한 또래 공동체의 결성과 강화의 계기가 되는 것이다.

편리함만이 남은 순간적인 교환관계의 형성
 각종 데이들이 또래 공동체와 함께 나눌 수 있는 기회이다. 평소 선물을 주기에는 쭈뼛하거나 민망한 일들을 특정 날을 통해서 고백, 친분 과시 등을 한다는 것은 개인과 개인 사이의 차원에서는 권장할 일이다. 문제는 이러한 상호 교환들이 물질화되어 이뤄진다는 것이다. 인간의 모든 감정들이 양화되어 교환관계로 구축될 수밖에 없는 속성은 자본주의 사회의 고질적 한계이다. 신종 데이에 나누는 선물은 우정이나 사랑과 같은 정서적인 감정들을 교환가치로 교류하는 수단일 뿐이다.
인간관계에서 선물을 한다는 것은 사실 고민스러운 일이다. 어떤 선물을 선택하느냐에 따라 우리는 관계의 양이 측정되어 물질화로 표출되는 것 같은 부담을 안는다. 무슨 선물을 주느냐에 따라 의미가 달라지기 때문이다. 그래서 선물의 선택은 복잡한 고민이 필요한 행위이다.
오히려 이런 신종 데이들은 고를 필요도 없고 고민할 필요도 없이 편리하게 가이드라인을 제시해 준다.
따라서 특정 날에 맞추어 특정 선물을 고르기만 하면 된다. 게다가 대부분 가격이 비싼 물품이 아니라 사소한 물품이라 경제적 부담이 없다. 실제로 무슨 선물을 준다는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주었다, 안 주었다는 결과론적 책임만이 남는 것이다. 이러한 선물 교환은 감동을 주기보다는 상투적인 결과만이 중요하게 된다. 실제로 선물을 주면서 마음을 담았다고 볼 수도 없다. 관계에 대한 ‘증거’를 확인하는 과정일 뿐이다.
오히려 이러한 상호 교환은 관계 차원의 의미를 확장하기보다는 축소시키며 즉각적이고 즉시적인 ‘순간’으로만 남아 있게 만든다. 이러한 휘발적인 순간의 관계들은 현대사회를 살아가는 사람에게 때로는 위로와 위안을 주기도 하지만, 또한 공허함을 준다. 결국 청소년들뿐만 아니라, 현대 사회에 살아가는 사람인 우리 모두 사람과 사람의 관계에 대해서 근본적인 성찰이 필요하다.
결국 앞으로 수많은 관계망 속에서 살아갈 청소년들과 함께 고민해야 할 문제는 리처드 세넷(Richard Senett)이 <불평등 사회의 인간존중>이라는 책에서 제기한 어떻게 ‘인간성’을 회복할 것인가에 대한 문제에 집중할 필요가 있다. 결국 인스턴트화되어 가며 얇은 인간관계를 선호하는 자본주의의 한계를 넘어서, 어떻게 신뢰하는 사회를 구축할 수 있을 것인가, 함께 고민을 나누는 것이 우리의 교육적 의무이다.

배너



배너


배너
배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