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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은 이야기> 아이들의 탄원서


창 너머 골목길을 내려다보고 앉았는데 느닷없이 커다란 봉투가 눈앞에 쑥 내밀어 놓여졌다.

'선생님께 올리는 탄원서'

'탄원서라고…. 이 녀석들 또 장난기가 서서히 발동했구먼.'

놓여진 봉투를 책상 모서리 쪽으로 밀어붙이고는 다시 아무런 일 없었다는 듯이 창문 쪽 길 너머로 시선을 보내고 있었다. 그런데 다음 순간 전혀 예기치 못한 일이 일어났다.

모여 섰던 녀석들이 모두들 넙죽 엎드려 큰절을 하고는 "선생님!"하고 소리를 질렀다. 그리고는 하나같이 교실 바닥에 엎드리는 것이었다. 아이들의 등줄기를 한참 물끄러미 내려다보다가 올려진 봉투를 뜯었다.

"선생님께 드립니다. 선생님, 졸업하기 전 마지막 부탁입니다. 좋아하는 남자애들하고 짝꿍 되어 같이 앉고 싶어요. 선생님께서는 웃으실지 모르겠지만 저희들의 간절한 바램입니다. 저희들의 간절한 소원입니다. 저희들에게 한번만 기회를 주십시오. 멋쟁이 여학생 일동."

또박또박 글씨가 박혀져 있었다.

'꽤나 솔직한 녀석들이군!'

많은 생각이 머리를 스쳤지만 정작 할 말은 떠오르지 않았다. 그냥 엎드려 고개를 조아리고 꿇어앉아 있는 녀석들의 손을 하나하나 잡아 일으켜 가까운 걸상에 앉혔다. 장난기 가득 섞인 웃음들을 머금은 채 빤히 올려다보는 아이들을 찬찬히 훑어봤다. 아이들이 요구하는 '마지막 소원'을
들어줄 수밖에 다른 방법이 없었다.

그 일이 있은 후 며칠이 지났다. 평소에 말수가 적고 조용하던 진희의 일기장에 다음과 같이 적혀있었다.

"선생님께 올린 탄원서로 남자애들과 여자애들 사이에 한바탕 짝꿍 소동이 있었다. 겉으로는 정말 아닌 체하면서, 속닥속닥 무엇이 그렇게도 재미가 있는지 빌려주고 받는 것도 많아지고…. 어제는 짝꿍이 감기로 결석을 했다. 그래서 병문안을 갔다."

나도 모르게 씩 웃고 말았다.

"오늘은 내 짝 성원이 생일날이다. 엄마 몰래 내 저금통을 털어 꽃과 선물을 마련했다."

짝궁들의 이야기가 온통 아이들의 일기장을 메우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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