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바나 알바나 디 로마냐…람브루스코
이번 호에서 우리는 베네토 지역을 위 아래로 감싸고 있는 세 지역을 돌아보게 됩니다. 첫 번째 지역은 바로 에밀리아로마냐(Emilia Romagna)입니다.
이탈리아에서 가장 큰 강인 포강(江)은 알프스 산 속에서 시작돼 동쪽으로 680㎞나 흐른 뒤 에밀리아로마냐에서 바다와 만나게 됩니다. 에밀리아로마냐는 파다나 평원과 아펜니노 산지의 사면으로 이루어진 지방으로 라벤나, 파르마, 볼로냐 등 8개의 현으로 이뤄져 있습니다. 아드리아해 연안의 리미니로부터 주의 중앙부, 아펜니노 산록을 따라 피아첸차까지 거의 일직선을 이루며 고대 로마 이후에 에밀리아 가도가 뻗어 있습니다.
주도는 볼로냐인데 중세 이래로 유럽의 학문과 예술의 중심지로서 유명합니다. 11세기에 세워진 볼로냐대학은 법학의 볼로냐파와 함께 널리 알려졌고 17세기에는 회화나 음악에서 볼로냐파가 크게 활약했습니다. 세상에서 가장 슬픈 곡 중의 하나인 ‘샤콘느’의 작곡자 토마소 안토니오 비탈리(Tomaso Antonio Vitali)가 이곳 출생입니다.
단테가 정치적으로 망명길에 올랐다 말년을 보낸 곳으로 유명한 라벤나는 그가 52세때 <신곡>을 완성한 곳이기도 합니다. 피렌체와 라벤나는 단테를 두고 보이지 않는 전쟁을 치르고 있습니다. 피렌체가 단테의 무덤을 돌려달라고 했지만 라벤나가 무시했기 때문이죠. 우리나라에서도 설화나 소설 속 주인공, 혹은 작가의 주 무대를 놓고 두 도시가 싸우는 걸 심심찮게 보곤 하지요. 그러니 라벤나가 단테를 내어놓는 일은 없을 테고, 평생 베아트리체를 생각하며 살았던 단테는 성 프란체스코 대성당에 그대로 묻혀 있습니다.
파르마산 치즈에 붙여진 명칭으로 유명한 파르마(Parma)나 루치아노 파바로티(Luciano Pavarotti)의 고향 모데나(Modena)도 이름을 기억해야할 멋진 곳입니다.
람브루스코아, 루비콘 강도 빠트려선 안 되겠군요. 아드리아해로 흘러들어가는 아주 조그만 강에 불과하지만 카이사르로 인해 유명해졌지요. 로마 공화정 말기, 이탈리아와 속주(屬州)인 갈리아주 사령관이던 카이사르는 기원전 49년 1월 폼페이우스를 추대한 원로원의 보수파에 대항, 내란을 일으킬 때, “주사위는 던져졌다(그리스의 후기 희극시인 메난드로스의 시구)”고 외쳤다고 하지요.
아드리아해 해변에 위치한 조그만 도시가 리미니(Rimini)입니다. 파스타 음식점 이름으로 우리나라에서 사용되기도 하던데 페데리코 펠리니라는 탁월한 영화감독이 태어난 곳이지요. 쓸쓸한 아드리아해를 배경으로 잠파노와 젤소미나를 등장시켰던 <라 스트라다(La Strada)>, <달콤한 인생(La Dolce Vita)> 등을 기억하시리라 믿습니다. 꺼이꺼이 눈물을 흘리던 잠파노의 어깨 너머로 흔들리던 아드리아해의 파도가 인상적이었습니다. 마치 영화 <파이란>에서 격하게 울먹이던 주인공 강재의 뒤로 펼쳐지던 동해의 파도처럼 말이죠.
에밀리아로마냐주의 DOCG 와인으로는 화이트 와인인 알바나 디 로마냐(Albana di Romania)가 있습니다. 유일한 DOCG 와인으로 1987년 4월부터 인증받았으며 볼로냐에서 동쪽, 거의 바다까지 펼쳐진 아펜니노 산맥의 면을 따르는 넓은 지역에서 생산됩니다. 총 4개의 다른 종류로 생산되는데 그중 세 종류는 잔여 당도 함량에 따라 구분되며 네 번째 방식인 파씨토는 나무에 달린 채로 또는 다른 알맞은 환경에서 건조시킨 포도를 사용해 만듭니다.
사용품종인 알바나는 고대 로마시대부터 잘 알려진 품종입니다. 생장력이 뛰어나 서리나 가뭄에 잘 견디는 지대에서 잘 자랍니다. 알코올 도수도 적당하며 알맞은 바디감과 탄닌을 자랑합니다.
DOCG 와인만 얘기하고 지나가기엔 뭔가 섭섭하군요. 품질이 뛰어난 와인은 아니지만 이 지방에서 대중적으로 재배되는 람브루스코 품종으로 만든 와인도 유명합니다. 특히 파바로티가 즐겼다는 것 때문에 더 그러합니다. 파바로티는 오넬라이아(Ornellaia), 사시카이아(Sassicaia), 티냐넬로(Tignanello)등 수퍼투스칸을 좋하했던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하지만 그가 동네 와인숍에서 평생을 구입해온 와인이 바로 람브루스코(Lambrusco)입니다. 람브루스코 품종은 이탈리아 중북부 전역의 숲에서 자라나던 야생포도에서 시작된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에밀리아 로마냐 지역에 집중돼 있는데 이 와인 가격도 무척 쌉니다. 슈퍼 투스칸과는 비교도 할 수 없이 부드러운 스파클링 와인이며 저가 와인입니다. 람부르스코 포도 품종에 있어서 가장 오랜 역사와 함께 랭킹 1위를 달리는 와이너리 ‘키알리 1860’이 있습니다.
우아한 화이트와인의 고장
프리울리 베네치아 지울리아(Friuli-Venezia Giulia)의 주도는 트리에스테(Trieste). 커피를 좋아하시는 분이라면 익히 아실 일리(illy)의 본사가 있는 곳이지요. 북쪽은 오스트리아, 동쪽은 세르비아-몬테네그로, 서쪽은 베네토주에 접하고 남쪽은 베네치아만에 면하는 지역입니다. 북부는 산지이지만 남부는 베네치아만 연안으로 연속되는 비옥한 평야가 전개됩니다.
이탈리아와의 변경지대에 위치해 정치적 이해관계가 복잡했는데 1947년 이탈리아가 이스트라 반도 및 프리울리 지방의 동쪽 절반을 유고슬라비아에 할양했습니다. 북부 이탈리아 중에서 가장 공업화가 뒤진 곳으로 빈농이 많아 이전 세기 이래 이민이 많다고 합니다.
1차 대전 전 오스트리아 합스부르크 왕가의 소유지였던 이 지역은 이탈리아 화이트 와인의 본고장입니다. 특히 계절적으로는 여름에 무덥지 않으며 밤낮 일교차로 인한 충분한 산도와 토양에 함유되어 있는 미네랄이 풍부해서 우아하고 섬세한 화이트 와인이 생산됩니다.

Corso, Colli, Isonzo, colli Orientali del Friuli, Grave, Lison Pramaggiore, Annia, Acquileia, Latisane 등이 주요 생산지역입니다. 이 지역은 주변의 트렌티노 알토 아디제, 베네토와 더불어 의외로 외래 품종이 일찍 심어졌는데 19세기 초 이미 카베르네소비뇽, 카베르네프랑, 메를로 등이 생산되었던 지역입니다. 그러다 19세기말 번진 필록세라의 영향이 20세기 초에 이곳을 초토화시켰고 이 지역의 대부분 와인메이커들은 다시 보르도에서 이러한 품종을 들여오게 됩니다. 이 품종들 외에도 이곳에는 전통적으로 화이트 품종들이 뛰어났는데 토카이 프리울리노(Tocai Friullano), 피콜리트(Picolit), 베르두쪼(Verduzzo) 등의 전통 품종 등이 있습니다.
이 지역에서 보유하고 있는 DOCG는 모두 두 개입니다. 먼저 라만돌로(Ramandolo)가 있습니다. 베르두쪼 프리울라노(Verduzzo Friulano)라는 품종 100%로 만들어지는데 이 품종은 고대 로마시대 이전부터 프리울리 지역에서 재배되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특히 우디네(Udine)에 재배가 집중돼 있는데 2001년 10월 프리울리 베네치아 줄리아주 최초의 DOCG가 된 와인입니다. 오랜 전통의 와인으로 1409년 종교회의 대에 그레고리오 12세 교황을 위해 준비한 오찬에 제공됐다고 합니다. 쿠키나 발효 치즈에 잘 어울립니다.
최근에 등급을 획득한 와인으로 콜리 오리엔탈리 델 프리울리 피콜리트(Colli Orientali del Friuli Picolit)가 있습니다. 피콜리트(Picolit) 품종을 최소 85% 이상 포함시키며 경우에 따라 산지 내 다른 화이트 품종을 혼합해 생산되는데 2006년 4월 등급이 확정됐습니다. 피콜릿 품종은 이 주에서만 재배되고 있는데 경작의 어려움과 낮은 생산량으로 최근에는 고르지아, 우디네 지역에 국한돼 있습니다.
이 지방에는 토카이 프리울라노(Tocai Friulano)라는 품종으로 빚어지는 화이트 와인도 유명합니다. 토카이 프리울라노 품종과 헝가리 와인 토카이와는 아무 상관이 없는데 들꽃 향과 함께 부드럽고 적당한 산도의 과실 맛을 느낄 수 있습니다. 리비오 펠루가(Livio Felluga), 스키오페토(Schiopetto), 예르멘(Jerman), 빌라루시즈(Villa Russiz) 등이 기억해둘만한 유명한 와이너리입니다.
이질적 문화, 트렌티노 알토아디제
나머지 한 곳인 트렌티노 알토아디제(Trentino -Alto Adige)의 주도는 볼차노. 스위스와 오스트리아 양국의 국경에 접하며, 제1차 세계대전 전까지는 남 티롤 지방으로 오스트리아의 영토였습니다. 독일계 주민이 많으며 공용어로서 독일어와 이탈리아어를 병용하고 있습니다. 특히 볼차노 지방은 대부분이 독일계 주민이고 메라노 등지는 오스트리아 복귀운동의 거점이 되었습니다. 중앙부는 아디제 강이 흘러 계곡이 아름다우며 스키장 또한 많아서 관광객이 붐비는 곳입니다.
이 지역은 참 독특한 문화를 볼 수 있는데 아래위로 붙어 있으나 문화적으로는 정말 다르기 때문입니다. 2006년 월드컵 준결승에서 독일과 이탈리아가 겨뤘을 때 트렌티노는 이탈리아를, 알토 아디제의 대부분 사람들은 독일을 응원했을 정도입니다. 알토 아디제는 오스트리아와 근접한 지역이고 남 티롤(South Tyrol)이라 불립니다. 북 티롤(North Tyrol)은 오스트리아 남부를 말합니다. 이 지역은 1차 대전 전에는 오스트리아 영토였고 지금도 학교에서 독일어를 가르치는데 오스트리아가 전쟁에 지면서 빼앗긴 영토입니다. 대부분의 상점이나 학교 등에서도 독일어를 쓰고 이탈리아어는 가볍게 여기는 경향이 많습니다. 와인 입장에서는 같이 두고 봐도 무리가 없을 만큼 두 지역은 공통적인 지형과 토양, 그리고 계절을 공유하고 있습니다.
이 두 지역은 모두 워낙 다른 개별적인 기후와 토양을 가지고 있는 아주 작은 소지역으로 구성되어 있기 때문에 불과 200m 떨어진 곳에도 다른 품종을 심어야 할 정도입니다. 고대 빙하기 마지막엔 거대한 세 개의 빙하가 만나는 곳이었다고 합니다. 산의 경사면의 경우는 220~560m까지 포도밭이 형성되어 있으며 아주 드문 경우는 700m 이상도 볼 수 있습니다.
트렌티노 알토 아디제는 우리에게 널리 알려진 지역은 아니지만 이미 와인의 역사나 양조 기술이 깊고, 양적으로는 그다지 많지 않으나 다양한 포도를 고루 훌륭하게 재배하고 와인 또한 우아하고 세련된 맛을 가진 지역입니다. 테누타 산 레오나르도(Tenuta San Leonardo), 포라도리(Foradori) 등의 와이너리가 유명합니다. | 임형준 한국교육신문 기자 penwrite@kfta.or.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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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탈리아 와인상식
전통적인 독주(毒酒), 그라빠(Grappa)
이탈리아 와인을 이야기하면서 빼놓을 수 없는 술이 있는데 바로 그라빠(Grappa)라고 불리는, 증류를 시켜 만든 이탈리아 전통 독주입니다.
그라빠는 와인 제조에 쓰여 발효가 끝나고 남은 포도의 껍질과 껍질 안에 남아있는 와인 부산물(Pomace), 그리고 씨를 증류시켜 만들어집니다. 와인 제조회사들이 포도를 발효시키고 남은 부산물에는 약간의 에틸 • 메틸알코올이 포함돼 있어 이를 함부로 아무데나 버릴 수가 없습니다. 처분을 하기 위해서는 별도의 비용을 필요로 하게 되는데, 그라빠 제조 회사들이 이 부산물를 아주 싼값에 사가게 됩니다. 보통 11월 초에서 말까지 엄청난 양의 부산물이 각각의 와이너리로부터 증류소(Distillery)로 몰리게 됩니다.
그동안 소규모 전통적인 증류소들은 보관시설을 갖추지 못해 약간의 생산량밖에 유지를 하지 못하면서 또한 품질도 낮았는데 노니노, 그라빠폴리, 베르타, 알렉산더 등과 같은 증류소들이 보관 기술을 고안, 1년 내내 부산물을 저장해 놓고 조금씩 증류를 하는 방식으로 많은 생산량을 유지하고 있습니다.
이탈리아는 전통적으로 높은 알코올에 대한 정부의 규제가 심한데 이는 높은 알코올에는 강화된 세금이 붙어서도 그렇고 국민건강을 유지하는 차원에서도 관리가 필요하다고 합니다. 모든 증류소의 저장 용기에는 정부가 고안한 밀봉된 계측기가 설치되어 정확하게 생산량을 계산합니다. 훌륭한 세금 징수 방법인 셈이지요.
그라빠는 다음과 같은 제조과정을 거치게 됩니다.
먼저 부산물을 큰 찜통에 넣어 고온 고압의 증기로 찝니다. 찌는 순간 증발된 알코올성분은 관을 타고 수직으로 된 세 개의 방 중 제일 아래로 모이게 되고 이를 다시 가열하면 음주가 가능한 알코올을 중간방에서 얻어냅니다. 뽑아낸 알코올은 약간의 미세한 기름(포도 씨로부터 나오는)을 냉각시키면서 필터를 통과시켜 거르고 아주 섬세한 필터를 거친 깨끗한 물(증류수)로 음주가 가능한 도수가 될 때까지 희석시킵니다. 희석된 알코올은 부산물마다 가지고 있는 향이나 맛을 보유하고 있는데 좀 더 숙성을 원하면 오크 숙성시설로 보내지며 깨끗하고 상쾌한 맛을 유지하는 경우 바로 각각의 병에 병입하게 됩니다.
그라빠는 주로 북부지역 알프스가 가깝고 추운 지역에서 널리 애용되어 왔습니다. 지금도 나이가 지긋한 분들은 아침에 그라빠와 에스프레소로 하루를 시작한다고 합니다. 현재 120여 개의 증류소가 이탈리아에 있으며 대부분이 국내소비이며 북부유럽과 아시아, 북아메리카에 수출되고 있습니다. 만족스러운 식사와 와인이 끝난 뒤에 그라빠로 입안을 정리한다고 하니 그라빠에 대해서도 알아두면 도움이 될 듯합니다.
★TIP도대체 와인은 왜 이리 비싼거야?
잘 아는 와인수입회사 사장님에 따르면 유럽 국가들은 와인에 20% 전후의 부가세를 붙이는 것 외에 별도의 세금이 없다고 합니다. 하긴 식사 때 먹는 음료수 정도로 여기는 나라들에서 비싸게 팔다가는 큰 일 나겠지요.
그럼 우리나라에서는 도대체 와인이 왜 이리 비싼 걸까요? 예상은 하셨겠지만 세금이 가장 큰 부분을 차지합니다. 관세, 주세, 부가세, 농특세, 교육세 등 모두 68%의 세금이 붙습니다. 결정적인 것은 와인에 붙는 세금이 ‘종가세’라는 것입니다. 즉, 수입가가 1만 원이면 6800원의 세금이 따로 붙고 10만 원이면 무려 6만 8000원이 세금으로 붙는다는 것입니다. 비싼 와인일수록 세금이 천정부지로 올라갑니다.
계산 한번 해볼까요? 수입사가 현지에서 1만 원짜리 와인(현지 도매가)을 들여온다고 가정합니다. 세금으로 6800원이 붙고 보험료에 운송료까지 포함시키고 거기에 수입회사 마진과 소매상 마진까지 얹게 되면 3만원을 훌쩍 넘겨버리게 됩니다. 소비자는 결국 와인숍에서 현지 소비자가격의 2~3배가량의 금액으로 구입하게 되는 것입니다. 이것이 레스토랑이나 와인바에서 판매될 경우는? 상상에 맡기겠습니다.
해외 출장 등으로 일본에 가는 사람들이 심심찮게 고가의 와인을 구매해 오는 경우가 있습니다. 왜? 일본은 종량세거든요. 와인이 비싸든 싸든 1병에 매겨지는 세금은 똑같습니다. 기본 세금도 우리보다 작고 와인시장도 우리보다 훨씬 크기 때문에 기본 가격 자체가 더 쌉니다. 홍콩은 아시아의 와인허브를 자처하며 아예 세금 0%를 선언하기도 했구요. 칠레와는 FTA를 체결하고 있고 조만간 EU와의 FTA도 체결할 전망이니 훨씬 싸지지 않겠느냐고요? 꽤 비싼 와인을 사지 않는 한 관세 부분만 고려하면 그 효과는 기대하지 않는 편이 나을 겁니다. 와인을 찾는 인구는 늘어만 가는데 그 옛날 비싼 수입양주의 소비를 억제하기 위해 만들었던 법령들을 한 번쯤 손 볼 때가 되지 않았을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