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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를린, 윤리과목 의무화 둘러싸고 공방

지난 2006년 7학년부터 10학년까지 윤리를 의무과목으로 정한 베를린시 교육 당국이 진통을 겪고 있다. 윤리과목 의무화를 폐지하고 다시 과거처럼 학생들에게 윤리나 종교과목 중 하나를 선택하도록 하게 하자는 기독교계의 주장이 정치적 행동으로까지 번지고 있기 때문이다.

독일은 각 주가 교육행정방안을 결정할 수 있는 권한을 가지고 있다. 베를린은 시이자 독립된 주로 지난 2006년 윤리를 매주 두 시간 의무과목으로 도입할 것을 결정했다. 그리고 종교는 선택과목으로 남겼다.

기독교 국가 독일, ‘종교’가 의무과목

독일의 다른 주는 보통 ‘종교’가 의무과목이다. 종교과목이라고 세계의 종교에 관해 두루 배우는 것도 아니다. 일반 교회에 다니는 것처럼 보통 가톨릭이나 개신교를 신앙으로 받아들이며 교리로 배운다. 전통적으로 기독교 국가인 독일은 종교과목이 시험과 성적을 동반하는 의무과목이다. 하지만 독일의 다른 대도시보다 더욱 다문화 도시인 베를린에서는 1년 반 전부터 종교과목은 시험도 성적도 필요 없는 선택과목이 되었다. 그 대신 독일인들에게는 생소한 윤리과목이 도입됐다.
베를린은 인구의 20% 이상이 이주민이다. 특히 그 중 무슬림인 터키 출신의 이주민이 대부분이다. 베를린 교육 당국이 윤리를 의무과목으로 정하게 된 것은 2005년 2월에 일어난 충격적인 명예살인과 직접적 관련이 있다. 쿠르드 출신 청년이 대낮 길에서 자신의 여동생을 총격으로 살해한 것이다. 여동생이 이슬람 방식대로 살지 않은 것이 그 이유였다. 강제결혼을 했다가 이혼을 당한 이 여성은 스스로 직업을 가지고 자립하려고 직업교육을 받고 있었다.
사건도 충격적이었지만 한 설문조사 결과가 베를린시 정부에게 위기의식을 느끼게 했다. 무슬림 학생들을 대상으로 한 설문 조사에서 학생들이 이러한 명예살인을 이해할 수 있다는 입장을 보인 것이다. 이로써 이주민 통합이 어린 세대에도 이뤄지지 않는다는 것이 드러났고 베를린 시 정부는 서둘러 ‘윤리’의 의무과목 도입을 추진했다.
이를 위해 베를린 시의회는 일 년 반 동안 윤리과목 의무화에 대해 토론했다. 그리고 결국 문화, 종교, 세계관이 다양한 학생들이 모여 있는 베를린에서는 종교 수업보다는 윤리수업으로 서로 공통된 가치를 배우는 것이 좋을 것 같다는 생각에 합의했다.
윤리수업은 청소년의 ‘정체성 형성’에 큰 도움이 된다는 것이 윤리수업 의무화 도입 찬성자들의 입장이다. 그래서 지난 2006년 3월 마침내 시의원의 대다수가 윤리과목을 의무로 하는 학교법 개정안을 통과시켰다. 현재 베를린 시 정부는 사민당과 과거 동독 공산당의 후신인 좌파당의 연정으로 이루어져 있다. 윤리수업 의무화에 찬성하는 세력은 사민당(SPD), 녹색당, 좌파당이고, 반대세력은 보수적 입장을 대표하는 기민련(CDU)과 자민당(FDP)이다.

베를린시 종교 대신 윤리과목 의무화해 마찰

이에 윤리 의무과목 폐지를 요구하는 세력이 손을 잡고 ‘프로 렐리(Pro-Reli)’라는 시민단체를 꾸렸다. 지난 1년 반 동안 ‘가치는 신을 필요로 한다’라는 구호가 적힌 플래카드를 들고, 윤리과목 의무화 폐지를 외치며 베를린 중앙역, 베를린 브란덴부르크문 등 학부모회와 개신교 단체가 모여 시위와 서명운동을 벌였다. 또 시 정부에 윤리수업 의무화 폐지를 요구하는 진정서도 쇄도했다. 그러나 이에 대해 베를린시 교육담당관은 “수학이나 독일어 수업이 필수인 것과 마찬가지로 윤리수업도 필수다”라고 윤리수업에 등록하지 않겠다는 학부모들의 주장을 일축했다. 베를린의 12세 학생과 학부모는 윤리수업 의무화가 헌법에 저촉된다며 독일 헌법재판소에 소송을 걸었으나, 패소한 바 있다.
그럼에도 윤리수업의무화에 반대하는 세력들은 의지를 굽히지 않고 있다. 개신교 측도 윤리교육 의무화에 반대하는 진정서 제출했다. 베를린 행정담당관이 윤리과목이 세계관, 종교적으로 가치중립적이라고 아무리 강조해도 베를린 학부모위원회 의장 안드레 쉰들러는 “이 과목은 정치에 바탕을 두고 있다. 이는 좌익세력의 순전한 정치적 결정이다”라고 주장한다. 또 베를린-브란덴부르크의 개신교회 대변인인 마르쿠스 브로이어는 “윤리교육 의무화에 반대하는 수많은 진정서는 국가가 선전하는 가치를 그대로 받아들이지 않겠다는 개인의 의지를 보여준다. 정치인들은 종교 없는 윤리를 우선시 할 권리가 없다”고 비난했다.
프로 렐리는 서명운동을 통해 국민 청원을 발의를 준비하고 있다. 베를린 시민 17만 명의 서명을 받으면 이 문제를 시민 투표에 부칠 수 있는데 이미 20만 명이 넘는 서명을 확보해 6월에는 베를린 시민 투표가 실시될 전망이다.

윤리과목 의무화 전 독일에 뜨거운 찬반논쟁

이런 움직임을 보면 베를린 시민이 매우 종교적일 것이라 생각할 수도 있겠지만 실은 그렇지 않다. 미국 종교 사회학자 피터 L. 버거(Peter L. Berger)가 ‘베를린은 현대 무교를 대표하는 세계도시’라고 평한 바 있을 정도다. 실제 베를린은 전체 340만 명의 인구 중 약 60%가 종교가 없다. 오히려 신자수로 따지면 기독교보다 무슬림이 더 강세를 보일 정도다.
베를린 교육 당국에서 종교, 윤리과목 기본 내용 콘셉트 부분을 담당하고 있는 만프레드 침머만은 “개신교와 가톨릭계에서는 윤리과목에서 무신교적 가치전달이 이뤄진다고 믿는다. 또 이들은 윤리과목이 국가 윤리를 주입한다고 생각한다. 종교적 신앙을 바탕으로 하지 않고 올바른 가치관이 형성될 수 없다는 것이 이들의 입장이다. 그러나 결국 도덕은 종교나 형이상학 없이도 설명이 가능하다”라고 말했다.
새로 도입된 윤리수업에서는 출신, 습관, 관습, 사람의 성격, 행동의 목표 등에 관한 문제에 대해 함께 토론하며 고민한다. 또 종교의 다양성과 가치관도 다룬다. 즉, ‘나는 누구인가?’, ‘거울이 없다면 어떻게 될까?’, ‘친구가 잘못하고 있는데도 도와줘야 하나?’, ‘우정은 눈을 멀게 하는가?’, ‘행복이 지속될 수 있는가?’ 등의 내용이 윤리과목의 주제다. 베를린 교육행정담당관 클라우스 뵈거는 “사회의 기본 동의에 저촉되지 않으면 다른 의견도 존중하는 것이 중요하다. 윤리수업은 세계관, 종교적으로 중립적이지만, 가치중립적인 과목은 아니다.”라고 했다.
침머만은 “종교과목은 신앙 중심으로 전달된다. 기독교면 기독교만, 이슬람이면 이슬람에 관한 가치관만을 배운다. 하지만 윤리과목에서는 한 가지 종교에만 치중하지 않는다. 이 수업에서는 공통된 가치관을 찾는 것이 주된 관심이기 때문이다. 요컨대 평화로운 공존을 위한 과목이라 할 수 있다”라며 윤리과목의 필요성을 강조했다.
이 문제는 전 베를린을 넘어 전 독일에 논쟁을 일으킬 정도로 화두가 되고 있다. 수많은 유명인들이 윤리과목에 관한 성명서를 내놓았다. 이로써 윤리과목을 둘러싼 이주민 통합과 교육을 주제로 한 논쟁과 토론이 진행될 것이다. 힘겹지만 민주적 합의 과정의 한 단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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