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성예언은 ‘내’ 안에 있는 잠재가능성을 일깨워 ‘나’를 무엇인가로 만들어가는 방향타다. 그러므로 내 삶을 향상시키는 긍정적 자성예언을 찾고 이를 실현하는 데 공을 들여야 한다. 자성예언은 나뿐 아니라 내가 관심을 갖는 다른 사람(너)을 변화시키기도 한다. 따라서 자성예언은 내가 디자인한 세상에 나와 너를 함께 얼싸안고 들어가게 하는 꿈이라고 말할 수 있다. 이 꿈을 이룰 수 있게 하는 열쇠는 바로 열정이다.
원래 자성예언은 다른 사람을 통해서 내가 바라는 바를 이루는 현상을 설명하기 위하여 만들어진 말이다. 그러니까 다른 사람을 변화시키는 일이 자성예언의 궁극적 목적이다. 피그말리온 효과가 그렇고 지난 호에서 분석한 평강공주의 경우가 그렇다. 자성예언이 흔히 다른 사람의 행동을 변화시키는 원리로 활용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그런데 필자는 여기서 방향을 조금 틀려고 한다. 자성예언에 담긴 속성을 다른 사람이 아니라 자기의 잠재가능성을 불러일으키는 원리로 활용하자는 것이다. 다른 사람을 감응시켜 변화를 일으킬 정도로 큰 힘이 들어 있다면 남도 아닌 자기 스스로를 새롭게 변화시키는 데는 얼마나 강력한 힘을 발휘할 것인가! 앞에서 자성예언을 ‘앞을 내다보며 스스로 일으키는 바람과 노력’이라고 폭넓게 정의한 것은 이를 염두에 두고 한 말이다. 자, 그럼 ‘나’는 ‘나’를 두고 어떻게 자성예언을 할 것이고 이를 어떻게 이루어나갈 것인가?
자성예언의 첫 출발은 간절한 바람
첫째, 간절한 바람과 소망을 가진다. 자성예언의 첫 출발은 간절한 바람이다. 바라는 바가 없으면 성취할 것도 없다. 따라서 무엇을 얻을 것인지 간절히 바라는 마음을 갖는 일이 선행되어야 한다. 간절한 바람은 아주 큰 것일 수도 있고 아주 작은 것일 수도 있다. ‘이다음에 커서 이러이러한 사람이 되어야지’라는 생각이 큰 바람이라면 ‘내일 친구와 화해해야지’라는 생각은 작은 바람이다. 크든 작든 일단 마음에 바람을 갖게 되면 그 바람을 이루기 위한 활동이 시작된다. 더구나 그 바람이 간절할수록 그것을 향한 에너지에 힘이 붙는다. 간절한 바람을 가지고 어떤 일을 하면 그 일에 흥미를 느끼고 깊이 빠지게 되는데 이렇게 되면 순간순간 사는 게 매우 재미있어진다. 간절한 바람을 통해서 그 일과 자신을 하나로 묶어놓았기 때문이다. 우리는 얼마 전에 끝난 월드컵을 기억한다. 그때 경기를 기다리는 하루하루, 경기가 진행되는 순간순간 얼마나 재미있었나. 내가 관심을 가지고 참여하는 순간 월드컵이 바로 내가 하는 경기로 뒤바뀌었기 때문이다. 자, 이제 자신에게서 간절한 바람거리를 찾자. 공부, 성격, 습관, 취미, 몸매, 이성, 봉사, 독서, 진로, 스포츠, 인간관계 등 어떤 것이든 자신이 관심을 갖고 도전할 거리를 찾아서 에너지를 쏟아보자. 사는 게 밋밋하고 재미없다고 느끼는 친구들이여! 문제는 세상이 아니고 ‘나’에게 있다. 밋밋하다고 여기는 그 활동을 자신의 간절한 관심사로 끌어들이는 순간 그 활동은 이제 나를 열광의 도가니로 몰아가는 오락거리로 뒤바뀔 것이다. 그리고 나에게 숨어 있던 잠재가능성이 현실에서 실현되는 쾌감을 맛보게 될 것이다.
자성예언을 상상하고 또 상상해라
둘째, 속으로 간절한 바람과 소망을 속삭이고 상상한다. ‘미쳐야 미친다’는 말이 있다. 미친 것처럼 온통 마음이 한 가지 목적에 쏠릴 때 그 목적을 달성할 수 있다는 뜻이다. 그런데 마음이 온통 한 가지에 쏠린 듯 미치는 일이 한순간에 그냥 오는 것이 아니다. 혹 그런 순간이 있다고 해도 이는 그전에 오랫동안 쌓아왔던 업이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진정 무엇인가에 미치려면, 다시 말해 바람을 간절한 것으로 만들려면 그쪽으로 마음을 키워가는 일을 해야 한다. 이 방법의 하나가 틈날 때마다 자신의 간절한 바람을 속삭이고 이미 그렇게 되어 있는 자신을 상상하는 것이다. ‘공부를 잘하는 학생’이 되고 싶으면 스스로 ‘나는 공부를 잘하는 학생이 되고 싶다’고 말하고 그렇게 된 자신의 모습을 상상한다. 공부를 잘하지 못하는 자신을 공부를 잘하는 학생이라고 말하고 그런 모습을 상상하는 행동이 처음에는 영 어색하고 가슴에 잘 와 닿지 않을 터이지만 멈추지 않고 이런 작업을 반복한다. 그러다 보면 공부를 잘하는 학생으로 자신을 인식하고 상상하는 일이 점점 더 쉽고 친숙해진다. 사람이란 참 묘한 구석이 있다. 처음에는 꿈도 꾸지 못할 일인데 되풀이해서 그렇게 생각하고 상상하고 행동하면 진짜 그렇게 믿어버리게 된다. 같은 거짓말도 자꾸 하다 보면 참말로 여겨지고 멀쩡한 사람을 바보라고 몰아치면 정말 바보가 되어버린 듯 행동하는 현상도 여기서 비롯된다. 자기암시 또는 자기최면의 원리다. 이 원리를 이용하여 마치 자성예언이 완성된 것처럼 미래 자신의 모습을 앞당겨 살아보고 상상하는 방법을 잘 활용하라. 단, 이 방법이 터무니없는 망상이 되지 않으려면 간절한 바람을 성취하려는 구체적인 노력이 함께 이루어져야 한다.
소망의 내용을 구체화하고 세분화해라
셋째, 간절한 바람과 소망의 내용을 구체화한다. 간절한 바람을 갖게 되면 그 바람을 현실 세계에서 실현할 수 있도록 구체화하고 세분화하는 작업이 필요하다. 고등학교 1학년 최은선 양을 예로 들어보자. 은선 양은 학교 공부를 잘하는 사람이 되고 싶어서 간절하게 ‘공부 잘하기’를 마음에 품고 살기로 결심했다. 그런데 공부 잘하려는 마음을 품고 있다고 해서 저절로 공부가 잘된다면 오죽 좋으련만 현실은 그렇지 않다. 공부를 잘하기 위하여 공을 들여야 하는데 어떤 공을 어떻게 들여야 할지 구체적이고 세부적인 계획과 전략을 짜야 한다. 일단 은선이는 여러 과목 중에서 ‘수학’ 한 과목을 선정하여 공부에 대한 자신감을 붙이기로 계획한다. 은선이는 학기, 달, 주, 하루 단위로 소화해야 할 수학 학습량, 참고해야 할 수학자습서와 문제집, 문제풀이에 막혔을 때 지도받을 방법, 문제풀이에 성공했을 때 자신을 상 줄 방법, 단계적으로 도달해야 할 학급 및 학교 수학 성적 석차 등을 자세하게 정해 나간다. 처음에는 어설프게 시작했는데 계획을 세우고 세부적인 일정을 짜감에 따라 수학에 대한 태도가 조금씩 달라진다. 마지못해 하던 수학공부였는데 어느덧 수학이 좋아하는 과목이 될 것처럼 마음이 조금씩 움직인다. 정교하게 짜여진 수학공부 계획표를 바라보면서 해낼 수 있다는 자신감이 솟는다. 어느 정도 수학공부에 재미를 붙인 은선이는 이제 다른 과목들에 대해서도 세부적인 계획과 학습 전략을 세우고 접근한다. 은선이는 처음에 막연하게 가졌던 ‘공부 잘하는 사람’은 세부 계획을 세우면서 서서히 자성예언으로 실현되어가고 있다.
넷째, 간절한 바람과 소망을 이루기 위하여 인내심을 가지고 꾸준히 노력한다. 아무리 간절한 바람이 있어도 계획을 짜고 머릿속으로 되뇌며 상상하는 것만으로 목적이 달성될 리가 없다. 이를 실천으로 옮기려는 노력이 반드시 뒤따라야 한다.
성공 여부를 결정짓는 인내심과 노력
실천으로 옮길 때는 가능하면 세부 계획표에 따라서 작은 단위부터 시작한다. 이렇게 하면서 작은 성공 경험을 쌓아나간다. 계획표를 따라가다가 무리한 점이 발견되면 계획을 수정할 수도 있다. 실천을 하는 과정에 어려움은 반드시 있기 마련이다. 따라서 계획대로 잘 안되거나 또는 몇 번 실패했다고 해서 쉽게 포기하지 말고 인내와 끈기로 버티도록 한다. 평강공주가 온달을 공부시킬 때 어디 쉽고 재미있기만 했을까. 힘들고 어려운 과정을 곳곳에서 만났겠지만 인내와 끈기로 버티며 이를 극복해 나갔을 것이다. 잘 알겠지만 인내와 끈기는 어떤 일을 이루는 데 없어서는 안 될 필수 요소다. 작은 물방울이 단단한 바위를 뚫을 수 있는 힘은 물방울 자체가 아니라 쉬지 않고 떨어지는 ‘끈기’에 있다. 성공한 사람들을 연구한 자료들도 성공을 가름하는 결정적 요소가 지능이 아니라 인내, 끈기와 같은 성격적 요소에 있다고 보고한다. IQ 85만 넘기면 그다음은 머리가 아니라 성격이 열쇠가 된다. “천재는 1%의 영감과 99%의 노력”이라는 에디슨의 말은 진실이다. 그러므로 자성예언이 실현될 때까지 꾸준히 인내와 끈기를 발휘하도록 하라. 결국 자성예언의 성취 여부는 자기와의 싸움에 달렸다. 여기서 지면 어떤 일이든 이루어내기가 어렵다. 고통을 이겨내고 얻은 결과는 그만큼 더 달다는 사실을 상기하며 힘들고 어려운 고비들을 잘 극복해 나가자.
다섯째, 실패를 담담하게 받아들이고 결과를 낙관한다. ‘실패는 병가지상사’라는 말이 있다. 무슨 일을 하든 실패는 있기 마련이니 한두 번 실패했다고 해서 너무 낙심하지 말라는 뜻이다. 또 ‘실패는 성공의 어머니’라는 말도 있다. 실패한 이유를 잘 따져보면 성공할 수 있는 길을 발견할 수 있다는 뜻이다. 이처럼 실패는 으레 있기 마련이고 또 있어야 한다. 그러니까 실패 경험은 피할 게 아니라 오히려 느긋하게 맞이하는 자세를 갖는 편이 낫다.
실패를 담담하게 받아들여라
하지만 실패 경험이 그리 유쾌하지는 않다. 실패를 하게 되면 뭔가 불쾌한 감정, 찝찝한 감정이 남는데 이런 것들은 빨리 털어내는 게 좋다. 실패 후 느끼는 감정을 빨리 털어내는 좋은 방법이 있다. 실패한 원인을 ‘내 탓’으로 돌리지 말고 다른 사람이나 다른 곳에 돌리는 것이다. 그러니까 이번 시험에 점수가 목표한 대로 나오지 않은 이유를 ‘내 머리가 따라주지 않아서’나 ‘노력이 조금 부족해서’가 아니라 ‘수업시간의 선생님 설명이 충분치 않아서’라든가 ‘시험기간 중 가족 행사가 많아서’라고 생각한다. 이렇게 하면 실패하게 된 원인이 ‘나’ 이외의 다른 것에 있기 때문에 자신을 비난하고 채찍질하는 강도가 훨씬 낮아진다. 실패를 하고서도 마음을 편하게 가질 수 있는 비결이 여기에 있다.
그런데 이렇게 말하면 대뜸 대들 사람이 있을 것이다. 그런 식으로 남 탓을 하고 책임을 피하면서 과연 발전할 수 있겠느냐고. 글쎄, 만일 별 준비도 안 하고 시험을 치러서 시험점수가 낮게 나왔다면 ‘내 탓’을 해야 마땅하다(우스운 사실은 실제로 이런 사람은 전혀 자기 탓을 하지 않는다). 하지만 최선을 다해 열심히 노력했음에도 만족할 만한 점수가 나오지 않았는데 ‘내 탓’만을 한다면 좌절감만 커질 뿐이다. 차라리 실패의 원인을 다른 것에 돌려 재빨리 마음을 안정시키고 다시 새롭게 정진하는 것이 현명한 방법이 아닐까? 실상 우리는 잘못된 일에 지나치게 ‘내 탓’을 많이 한다. 공부를 못하는 것도 ‘내 탓’이요, 부모님 사이가 좋지 않은 것도 ‘내 탓’이며, 사회가 부패한 것도 ‘내 탓’이요, 우리나라가 선진국에 끼지 못한 것도 ‘내 탓’이다. 그러므로 내가 책임감을 느끼고 앞장서서 바꿔나가야 한다. 무척 훌륭한 발상 같지만 이런 식으로 가다가는 머지않아 너무 힘들어 불안과 우울증에 사로잡힐 게 뻔하다. 왜 그런 것이 다 ‘내 탓’인가?
정신적으로 건강한 사람들은 ‘내 탓’과 ‘네 탓’을 잘 가릴 줄 안다. 좋은 일, 성공한 일은 ‘내 탓’을 하고, 좋지 않은 일, 실패한 일은 ‘네 탓’을 한다. ‘잘되면 내 탓, 못되면 조상 탓’이라는 속담도 있지 않은가? 얼핏 보면 이기적인 방법 같지만 이는 세상을 건강하게 살아가는 숨은 비결이다. 자신을 수용하고 용서할 줄 아는 사람이 다른 사람도 수용하고 용서할 줄 안다. 마찬가지로 자신이 편안해야 남도 편안하게 대한다. 이렇게 보면 제대로 된 이기적 방법은 이타적 방법으로 가는 지름길임을 알 수 있다. ‘내’ 인생은 ‘나’의 것이다. 그러므로 내 인생은 내가 디자인해야 옳다. 부모님을 포함해서 지금까지 내가 살아오는 데 도움을 준 많은 분들은 모두 인생극장에서 ‘나’라는 주인공이 주인공 역할을 제대로 할 수 있도록 ‘나’를 보호하고 보조하고 지원해준 조연들이다. 조연이 주인공보다 역할이 크면 안 되듯이 ‘나’의 인생에서 이분들은 항상 배경 세력으로 남아있어야 한다. 이 배경 세력의 바탕 위에서 ‘나’는 ‘내’가 살고 싶은 멋진 인생을 꿈꾸고 기획하고 만들어가야 한다.
자성예언은 ‘내’ 안에 있는 잠재가능성을 일깨워 ‘나’를 무엇인가로 만들어가는 방향타다. 그러므로 ‘내’ 삶을 향상시키는 긍정적 자성예언을 찾고 이를 실현하는 데 공을 들여야 한다. 자성예언은 나뿐 아니라 내가 관심을 갖는 다른 사람(너)을 변화시키기도 한다. 따라서 자성예언은 ‘내’가 디자인한 세상에 ‘나’와 ‘너’를 함께 얼싸안고 들어가게 하는 꿈이라고 말할 수 있다. 이 꿈을 이룰 수 있게 하는 열쇠는 열정이다. 간절한 마음으로 열정을 다해 많은 시간을 들이고 노력을 쏟다 보면 어느새 꿈은 현실이 되어 찬란하게 빛을 발할 것이다. 우리가 멋진 꿈을 갖고 여기에 열정을 쏟기만 한다면 모든 것이 힘을 합하여 좋은 결과를 이룰 것이다. <끝>
--------------------------------------------------------------------------- 교사에게 드리는 Tip 학교 선생님이라면 한 번쯤 자성예언에 대해 들어보셨을 겁니다. 학생들의 학업 성취를 향상시키는 데 교사의 자성예언이 큰 역할을 한다는 주장 말입니다. 자성예언의 효과는 처음 이 효과를 언급했던 로젠탈과 제이콥슨의 실험 이후에도 여러 연구에서 입증된 바 있습니다. 우리나라에서도 석·박사 학위 논문 주제로 자성예언을 다룬 연구들이 많습니다. 하지만 아쉽게도 자성예언에 대해 자세히 다룬 국내 서적을 찾기가 쉽지 않습니다. 자성예언의 효과를 잘 알고 있는 분은 학생들에게 사용하는 언어에 특별히 신경을 쓸 겁니다. 별생각 없이 습관적으로 반복한 말이 학생에게 커다란 영향을 줄 수 있다는 점을 알기 때문입니다. 말이 씨앗이 되어 학생의 미래를 결정할 수도 있습니다. 자성예언과 관련하여 교사들이 특별히 관심을 써야 할 말이 칭찬과 꾸중입니다. 교사가 칭찬과 꾸중을 할 때 그 목적은 학생들로 하여금 건강한 미래를 가꿔가게 하는 데 있습니다. 그런데 자칫 잘못하면 칭찬과 꾸중이 건강한 미래를 가꾸는 데 도움이 되기는커녕 부정적으로 작용할 수도 있습니다. 특히 꾸중이 그렇습니다. 잘못된 꾸중은 학생에게 마음의 상처를 주고 부정적 자성예언으로 작용할 가능성이 높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교사는 칭찬과 꾸중을 그 목적에 알맞게 잘 활용할 줄 아는 지식을 가져야 합니다. 최근에 칭찬과 꾸중하는 방법에 대한 서적이 많이 출판되었습니다. <칭찬은 고래도 춤추게 한다>는 책이 베스트셀러가 된 후 보이는 현상입니다. 좋은 책을 골라 칭찬과 격려하는 법, 꾸중하는 법에 대한 지식에 접하고 이를 잘 활용하면 좋겠지요. 필자가 쓴 <꾸중을 꾸중답게, 칭찬을 칭찬답게>(2005)도 이 분야의 서적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