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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로 다른 아이들'과 함께한 시간



출산휴가에 들어가기 전 마지막 날이다. 불러온 배를 쓰다듬으며 아이들에게 설명을 해주었다. 이제 새로운 선생님이 잠깐 오셔서 가르쳐주실 것이라고, 선생님은 아기 낳고 오겠다고.

“선생님 배 나왔어요.” 배로 손을 뻗는 우진이 녀석.
“응. 그래, 선생님 배가 많이 나왔지?”

나는 우진이의 손을 잡아 내 배 위로 올려놓았다. 내 손이 이끄는 대로 자신의 손바닥을 내 배 위에 살짝 얹어놓은 우진이의 표정이 묘하다. 신기한 듯, 신나는 듯, 신통한 듯…. 위 아래로 쓸어보기도 하고 노크하듯 배를 통통 두들겨보는 우진이.

“애기 나와, 이제?”
“응, 이제 조금 있으면 아가가 나와요. 우진이랑 태희도 이렇게 엄마 뱃속에 있다가 나온 거야.”
“아기가 나와. 아기가 나올꺼야.”
내가 하는 말을 외우듯이 따라 해보는 우진이. 몰입하다보면 존댓말을 해야 한다는 것을 잊는 우진이는 어느새 또 아기에 몰입했나보다.
“그럼 선생님 다른 학교로 가?”
“아니, 선생님은 병원에 가서 애기 낳아야지.”
“병원에 가서 애기 낳아?”
“응. 병원에 가서 애기 낳아요.”

우진이의 끊임없는 질문공세가 시작되었다. 우진이는 우리 반 귀염둥이다. 아스퍼거증후군이란 진단명을 가지고 있지만 나름대로 사회성이 있고, 항상 싱글싱글 웃는 얼굴이라 선생님들도 아이들도 우진이를 귀여워하며 챙겨주는 편이다.

엉뚱하면서도 기발하고, 아이 같은 천진함을 가진 우진이 덕분에 웃는 일이 많았었는데, 가장 기억나는 일은 우진이네 반에서 통합지원 수업을 할 때 일어난 일이었다.

특수교사인 내가 통합학급에서 하고 있는 ‘통합지원 수업’은, 장애학생들이 통합학급에서 반 친구들과 잘 적응할 수 있도록 1주 1회씩 하는 친구 관계 향상 프로그램으로, 반 아이들이 장애학생뿐 아니라 서로를 존중하고, 상대의 감정이나 의사표현에 민감성을 가지고 대하기, 다름을 차이가 아닌 다양성으로 받아들이기, 서로를 도와주기, 갈등이 일어났을 때 평화롭게 해결하고, 친구나 약한 사람을 감싸주기, 내게 있는 것을 나누기 등을 활동을 통해 경험해보도록 하는 수업들로 이루어져있다.
 
‘서로 다른 아이들이 함께 만드는 우정(이하 서·다·우)’이라는 이름을 가진 이 프로그램은 2003년에 ‘서울경인특수학급교사연구회’라는 특수학급교사들의 자율조직 연구회 선생님들이 만들었고, 그 후 2년여 간의 수정· 보완 과정을 거쳐 책으로 출판되기도 한 프로그램이다. 이 프로그램을 통합학급에서 6년간 해오면서 많은 에피소드가 있었고, 올해 역시 나에게 이 수업은 생각거리를 잔뜩 안겨주었다.

올해, 4학년 6반에서의 ‘서다우’수업은 담임선생님과 나, 아이들이 참 많이 웃었던 수업이었다. 개인적인 사정으로 수업을 1학기밖에 할 수 없어서 프로그램을 반 정도의 분량으로 재구성해서 진행했었는데 압축된 만큼 진행이 빨라 유달리 활동적인 수업이 되었었다.

프로그램의 초반부에, 서로에 대해 탐색하고 알아 가보는 시간이 있었다. 반 친구들의 모습을 잘 관찰해보고 친구들의 특징적인 점을 놀림거리가 아닌 ‘개성’으로 생각하게 되었으면, 그래서 장애를 가진 친구의 행동이나 언어특성도 그 친구만의 독특한 개성으로 받아들여주었으면 하는 목표가 담긴 수업이었다.
우리 반에서 머리가 제일 긴 친구, 얼굴이 까무잡잡한 친구, 잘 웃는 친구, 손이 제일 부드러운 친구….

아이들은 과제를 받자마자 주위를 둘러보며 친구들의 얼굴이며 손을 바라보기에 여념이 없었다. 드디어 발표하는 시간. 머리가 제일 긴 친구로 뽑힌 여자 친구들을 나오게 하여 머리 길이도 재어보고, 잘 웃는 친구들이 살인미소를 보여주어 반 아이들을 쓰러지게 만들기도 했다. 그런데 찾아야 하는 친구 중에 ‘남의 흉내를 잘 내는 친구’가 있었다. 대부분의 아이들이 민철이와 동규를 지목했다. 민철이는 개그맨 흉내를 내어 아이들을 웃겼고, 동규가 할아버지 흉내를 냈는데, 동규가 자기의 장기를 보여주고 나더니 갑자기 우진이를 지목했다.

“선생님! 근데요, 우진이는 맨날 저 따라 해요. 우진이도 흉내 잘 내는 거 맞지요? 우진아, 너 일어나서 나랑 똑같이 해봐.”

순간 약간 당황했다. 다른 사람들의 말을 따라하는 언어 특성을 가진 우진이의 장애가 부각되는 것이 아닌가, 이 순간 이후로 아이들이 우진이에게 말을 따라 해보라고 시키는 장난이 심해지면 어떻게 하나 하는 등등의 많은 고민들이 스쳐갔다. 그러나 아이들을 믿기로 했다.

“그래, 우진아, 일어나서 한 번 해봐.”

우진이는 싱글싱글 웃기만 할 뿐 일어나지 않는다. 우진이의 말을 이끌어내는 특정한 지시가 아닌가보다. 그 때 동규가, “우진아. 내가 민규 부를 때 ‘민규야리야아~’하고 부르잖아. 그거 해봐”라고 큐를 주었다. 순간 우진이의 얼굴에 신나는 표정이 가득 하더니 벌떡 일어나 동규의 억양과 똑같이 아니, 그것보다 더 크고 구성지게,

“민규야리야아~~~!”라고 소리를 지르는 것이다. 그 목소리와 표정이 어찌나 천진하고 능청스러운지 나도 모르게 “풉~”하고 웃음을 터뜨렸고, 담임선생님도 깔깔깔 마음껏 웃으셨다. 아이들은 책상을 치며 폭소를 해댔고, 우진이도 아이들이 웃는 것을 신기한 듯 둘러보면서 싱글싱글 웃었다.

수업 정리를 하고 6반을 나와 내 교실에 들어와서도 내 얼굴에는 내내 우진이의 웃음이 묻어와 있었다. 이 수업으로, 그리고 앞으로의 관심으로 우진이를 잘 몰랐던 아이들도 우진이에 대해 조금 더 알게 될 것이고, 우진이의 특성들이 우진이의 긍정적인 면으로 아이들에게 다가가도록 하면 될 것이라고 생각하니 처음의 걱정이 줄어들었다. 장애로 인한 특성을 숨기려고 하고, 다른 아이들과 비슷하게 맞추려고 하는 것보다 이렇게 자연스럽게 아이들에게 보여주고 웃는 분위기 속에서 인정할 수 있게 유도하는 것이 어쩌면 우진이와 반 아이들에게 도움이 될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또 한가지의 에피소드가 있었다. 얼마 전 통합지원수업 마지막 날, 내가 가진 것을 반 친구들에게 나누어주는 ‘까치밥활동’을 했다. 친구에게 내가 가진 것들 중 주고 싶은 것을 감모양의 종이에 적어보는 활동이었다. 물건뿐 아니라 ‘청소 도와주기’, ‘수학숙제 같이하기’ 등의 도움과 내가 가진 능력, 노력들도 친구와 나누어보도록 하였다. 우진이가 어려운지 연필을 입에 물고 짝궁 동규만 쳐다보고 있기에 우진이에게 다가갔다. 내가 다가가자 동규가 나에게 작게 속삭였다.

“선생님, 저 전학가요. 7월에 이사가요.”
“정말?”

우진이를 가장 잘 이해해주고 챙겨주던 동규가 이사를 간다니 정말 애석한 일이 아닐 수 없다. 친한 내 친구가 전학 가는 듯 아쉽고 서운한 마음이 드니, 나도 그동안 동규에게 꽤나 반해 있었나보다. 그도 그럴 것이 동규는 활동할 때마다 우진이를 참여시키려고 이런저런 방법을 써보고, 학습지도 자기 것을 제쳐놓고 우진이가 이해할 수 있도록 쉽게 설명해주고, 우진이가 직접 써보도록 해주기도 했다. 그야말로 적절한 도움을 주면서 우진이랑 사이좋게 지내는 ‘친구’였던 것이다. 장애학생이 친구를 사귀기가 얼마나 어려운지를 생각해볼 때 이렇게 먼저 다가서고, 교사보다 더 오랜 관찰로 장애학생을 잘 이해하고 반 수업에 같이 참여하려고 시도하는 친구는 참 드문데, 내가 본 동규는 우진이에게 참 좋은 친구가 되어주었었다. 아쉬운 마음에 우진이에게 제안했다.

“우진아, 알고 있었어? 동규가 이사를 간대. 동규에게 까치밥 하나 쓰자. 뭐라고 쓸까? 우진이, 동규에게 뭐 주고 싶어?”
우진이는 동규의 얼굴에 자기 얼굴을 들이밀고 가깝게 바라보며 “동규 이사 가? 하고 묻는다.
“그래. 이사 간대. 동규에게 뭐 줄까? 써보자, ‘동,규,에,게’”
내가 불러주자 또박또박 받아쓰더니 이내 연필을 입에 문다. 뭘 주어야 할지, 뭐라고 써야 할지 잘 모르겠나보다.
“이제 다른 학교 가니까 못 만나는 거야. 동규에게 하고 싶은 말 써볼래?”
우진이는 한참을 미간을 찌푸리고 생각을 하더니 도움을 요청하듯 나를 올려다본다.
“동규가 가는 거 좋아, 싫어?”
“싫어, 동규 가는 거 싫어. 동규 가지마.”
“그래, 그렇게 써.”
“동규 가지 마? 동규 가지 마 써?”

하더니 또박또박 글씨를 눌러 쓴다. ‘가.지.마’. 글자를 한 자씩 쓸 때마다 글자 언저리에 점을 찍는 습관이 있는 우진이가 그 세 글자를 소중히 쓴다. 동규는 그걸 힐끗 보더니 말없이 우진이에게 가위를 건네주었다. 우진이는 선에서 빗나갈 새라 조바심 내며 감 모양으로 오린 다음 칠판에 있는 감나무에 붙였다. 칠판의 감나무에는 이미 30명의 아이들이 친구들에게 주려는 까치밥들로 가득 차 있었다. 이파리도 열매도 하나도 없던 감나무 그림에 아이들의 나눔이 담긴 까치밥들로 가득 메워지니 감나무뿐 아니라 감나무 주변의 하늘, 땅까지도 감천지다. 꾸며놓고 나니 아이들은 벌써 다 주고 다 받은 듯 뿌듯한가보다. 꼭 쓴 것을 나누어보라는 말을 하며 통합지원 수업을 끝냈다.

이렇게 또 한 번 프로그램을 마무리했다. 1년이 끝나버린 느낌이다. 장애를 가진 아이들이 반에서 조금 더 제 자리를 찾고 아이들과 잘 지냈으면 하는 바람으로 시작했던 통합지원수업, ‘서로 다른 아이들이 함께 만드는 우정’. 이제 출산과 휴직으로 이 수업, ‘서다우’를 잠시 멈추면서 지금까지 만나왔던 아이들의 얼굴을 다시 한 번 떠올려본다. 아이들은 이 수업에서 무엇을 배웠을까? 무엇을 느꼈을까? 아이들이랑 함께 했던 이 시간들은 아이들에게 어떻게 기억되어 앞으로의 삶에서 어떻게 쓰이게 될까? 5년간 매주 이 수업을 해왔다는 뿌듯함과 함께, 매 수업에 이런 질문들을 스스로에게 끊임없이 던지며 수업에 임했더라면 더 좋은 수업을 할 수 있었을 텐데 하는 아쉬움도 남았다. 다시 이 자리에 왔을 때에는 지금과 같은 마음, 끝에서 처음을 바라보는 마음으로 새롭게 시작하게 되기를.

내일도 또 올 것처럼 늘어놓고 교실을 떠난다. 다시 왔을 때 아이들은 또 얼마나 자라있을까. 아이들이 자란 키만큼 나도 아이들과 세상을 보는 눈이 조금 더 자라 지금보다 돌돌이 색연필의 한 마디만큼은 더 성숙한 선생님이 되어있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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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원들이 참여하는 <독자와 함께하는 새교육>은 수필, 동화 등의 문학작품, 교단일기, 교육정책 제언, 색다른 수업 등 주제의 구분 없이 모두 소개 하는 코너입니다. 참여를 원하시는 선생님께서는 <새교육> 이메일 sae@kfta.or.kr로 원고를 보내주십시오. 관심 있는 선생님들의 많은 참여 부탁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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