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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축미에 나타난 순리(順理)의 아름다움

한국인의 대표적인 성정을 나타내는 순리미.
자연과 조화를 꾀하는 순리의 아름다움은
우리의 국토라면 어디서든 만날 수 있다.
2회에 걸쳐 한국의 순리미를 만나보자.


한국미의 특질에 대한 이해를 위해 폭넓게 다루어지는 대상은 바로 우리 멋의 세계이다. 우리의 멋은 미술뿐만 아니라 문학, 음악, 무용 등 모든 예술 분야에 스며들어 있다. 그러나 우리의 멋을 제대로 이해하려면 먼저 한국의 전통에 대해 바르게 이해하고 인식해야 한다. 그 장점이나 특징을 제대로 느끼고 올바로 볼 수 있는 눈을 가지는 것도 중요하다.

문제는 전통이나 한국적인 것을 제대로 알지 못하거나 잘못 알고 생각하는 사람이 상당히 많다는데 있다. 예를 들어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고려청자나 조선백자 등을 모방하여 열심히 만드는 것이나 단청, 전통문양, 색동옷 등을 그리는 것이 곧 한국적인 것으로 착각하는 경우가 있다는 것이다.

한국미의 미학적 개념 규정한 혜곡 최준우
한국적 아름다움을 나타내는 한국미란 한국 사람들의 성정과 생활양식이 깊이 우러나는 것으로서 한국인다운 체취가 짙게 표현된 누구도 모방할 수 없는 고유하고 독특한 아름다움을 일컫는 말이다.

특히 한국미의 정체성(正體性)과 전통성을 일깨워 줘야 한다. 이러한 우리 아름다움을 연구한 대표적인 사람으로는 한국 최초의 근대적 학문을 배운 미술사학자이며 미학자였던 우현 고유섭(又玄 高裕燮, 1905~1944)과 그의 영향을 받으면서 한국 미술사에 뜻을 두고 평생을 한국의 아름다움을 찾아 외길 인생을 살았던 전 국립중앙박물관장 혜곡 최순우(兮谷 崔淳雨, 1916~1984, 〈배흘림 기둥에 서서〉 저자)를 들 수 있다.

그리고 또 다른 한 사람은 일본 강점기의 일본인 야나기 무네요시(柳宗悅, 1889~1961)이다. 야나기 무네요시는 젊은 시절부터 조선예술에 남다른 흥미와 관심을 가지고 노년까지 부단히 노력하며 조선미술에 심취해 있던 사람이다. 고유섭과 야나기 무네요시는 같은 시대 사람으로 한국미술에 대한 이해를 하면서도 동일대상을 두고 이해하는 미적 관점에는 차이가 있었다. 이를테면 야나기 무네요시는 조선공예에 남다른 관심을 갖고 연구했는데 그는 당시 일본의 식민지 상태에 있던 조선인에 대한 감상적인 동정론으로 한국미의 특질을 ‘비애의 미’로 판단했다.

그러나 고유섭은 우리 고유의 미의식을 탐구하기 위해 야나기 무네요시의 정신사적 미술사학에 관한 이론은 수용하고 적용하면서 조선성 확보를 위해 노력했다. 다만 유종열의 이론인 식민지사관에 입각하여 한국의 미를 비애의 미로 판단한 이론은 문제가 있다고 볼 수 있다. 그에 반해 최순우는 고유섭의 학문적 영향을 받았지만 우리 문화의 특색과 장점을 현장체험 위주로 작은 것 하나라도 소홀함 없이 미학적 개념들을 정리하고 또 그 개념들을 통해 한국미적 특질을 규명했다. 최순우의 학문이 우리 곁에 정답게 다가올 수 있는 것은 한국미의 아름다움에 대한 해박한 지식은 물론이려니와 누구든 쉽게 이해할 수 있게 쓴 필치와 아름다움의 특질을 분명하게 규정했기 때문이다.


자연의 태도에 가장 알맞은 형질미
한국미적 특질로는 백색의 아름다움, 곡선의 아름다움, 해학적 아름다움, 추상의 아름다움 등 여러 가지를 들 수 있다. 그리고 이러한 한국미의 특질을 형성하는 배경에는 지리적 환경이나 역사적 환경 등 여러 요소가 있겠으나 우선 순리의 아름다움을 형성하는 요소로 자연환경을 들 수 있다.

우리나라는 총면적의 75% 이상이 산악지대지만 산의 형상은 그다지 높지 않고 둥글며 평안하다. 이러한 아름다운 산과 맑은 하늘, 구비구비 이어지는 산과 조화를 이루는 강, 비옥한 농토 등 아름다운 강산을 지닌 자연환경은 한국인의 자연에 대한 애호나 순응성을 기르는 데 크게 도움을 주었다. 이러한 자연환경은 우리나라 사람들로 하여금 담담하면서도 욕심 없는 선천적 성정을 지니게 했고, 그러한 성정은 곧 한국미의 특질을 만드는 근간이 되었다. 즉, 없으면 없는 대로의 재료, 있으면 있는 대로의 솜씨로 자연 속에 순응하는 순리의 아름다움을 만들어 냈던 것이다.

순리의 아름다움에 대해 최순우는 ‘억지가 없는 아름다운 사물의 이치나 자연의 섭리를 거역하지 않는 아름다움’ 또는 ‘자연환경이나 자연의 태도에 가장 알맞은 형질미를 가늠할 줄 아는 것’이라고 규정하면서 이것은 과분하지 않다는 뜻이라고 했다. 또한 고유섭은 ‘무관심성’을 자연에 대한 순응의 논리로 입증했다. 이를테면 ‘무관심성’이란 건축의 경우 목재의 모양이나 형태에 구애받지 않고 자연적 굴곡을 그대로 사용하여 목재 본형을 그대로 양식에 구성해 사용하는 것이다.

예를 들면 가옥의 추녀를 형성할 때 기교를 부리거나 계획적으로 깎아내지 않고 자연 그대로 구부러지면 구부러진 대로 굴곡이 있는 목재를 그대로 얹어 만들어내는 일, 자연 속에 건물이 들어설 자리를 잡아 자연과 건축을 일심동체로 만드는 일, 자연의 형질을 변화시키지 않고 생긴 모양대로 터전을 일구었던 논두렁 밭두렁의 모양 등은 원래 재료가 갖고 있는 자연성이나 자연환경과 조화를 추구함으로써 ‘무관심성’은 자연에 순응하는 섭리로 변화한 것이다.

실제로 한국 사람들처럼 자연에 순응하면서 자연스럽게 살아가는 민족도 드물 것이다. 자연의 섭리를 거역하지 않는 아름다움의 세계는 모든 생활 성정에서도 잘 나타나 있다. 특히 미술제작에 대한 순리적 자세는 작품의 착상이나 제작의 기발함에 무리함 없이 재료의 속성을 존중할 줄 알며 작품이 놓일 환경에 자연스럽게 순종하는 마음의 자세에서 이뤄진 것이다.


세계인에게 조화미 인정받은 ‘화성’
한국 사람들의 자연에 대한 사랑이나 외경(畏敬)은 주로 한국의 건축에 잘 반영되어 있다. 특히 순리의 아름다움이란 건축이 이루는 조형미가 주위 환경과 얼마나 알맞고 적절한 조화를 갖느냐에 그 척도를 삼고 있다.

자연과 조화를 이룬 대표적인 건축은 경상북도 내동면 토함산 꼭대기에 자리 잡은 석굴암과 불국사 굴원, 창덕궁 비원(秘院)의 부용당(芙蓉堂), 수원의 방화수류정(訪花隨柳亭)이나 화홍문(華虹門), 삼척의 죽서루(竹西樓), 밀양의 영남루(嶺南樓), 진주의 남강 촉석루(矗石樓) 등을 들 수 있다. 이러한 한국의 건축은 인공의 자연스러움이 자연의 풍광을 도운 좋은 예들로서 자연에 관한 공경과 조심스러움까지 느낄 수 있는 표징(標徵)이기도 하다.

원래 한국 사람들은 집 한 채를 짓더라도 자연과 하나가 되게 세울 줄 아는 형안(炯眼)을 지닌 민족이었다. 조그만 정자 한 채는 물론 큰 누대(樓臺)나 주택에 이르기까지 뒷산의 높이와 앞, 뒷벌의 넓이 그리고 거기에 알맞은 지붕의 높이와 크기 등 자연과 인위의 조화미에 대한 특별한 안목으로 멋진 조형미를 나타냈던 것이다.

요사이는 집을 지으려면 대개 자연의 지형을 마구 헐어내고 깎고 돋우고 해서 자연 풍광을 훼손하고 학대하는 일이 예사인 경우가 많다. 그러나 과거의 우리 민족은 결코 자연을 훼손하거나 거역하는 무모한 짓은 삼가는 슬기로움과 인정을 지니고 있었다. 이 같이 자연과 하나된 것으로 세계 문화유산으로 지정된 수원 화성을 둘러보면 자연을 훼손하지 않으면서 성곽의 실용성과 아름다움을 단적으로 말해주는 건축물이 있다. 7개의 수문 아래로 옥수가 흘러내리고 수문 위에 놓인 다리 위에는 누각과 성벽이 마치 한 폭의 그림처럼 펼쳐진다. 이는 정조대왕의 아버지에 대한 지극한 효성이 녹아내리는 것 같은 옥수의 흐름과 그 흐름을 자연스럽게 흐르게 하는 성곽의 기묘한 조화를 볼 수 있는 곳이다. 화성의 화려함은 화홍문과 어울린 방화수류정에 이르러 극치를 이룬다.

덤벙주초의 조형성 대표하는 농월정
평양의 부벽루, 밀양의 영남루와 함께 한국 3대 누각으로 꼽히는 진주의 촉석루와 의암(義巖)은 유유히 흐르는 남강을 품에 안고 자리 잡고 있으면서 자연과 충성이 하나되게 한 논개의 충절이 돋보이는 곳이다. 남강 속에 묻힌 의암과 그 강을 굽어보며 도도하게 벼랑 끝에 우뚝 솟은 촉석루는 자연과 하나가 된 건축물로서 천년 고도를 지킨 그 위상이 가히 으뜸이다.

경복궁이나 창덕궁을 보아도 야트막한 언덕이나 작고 낮은 시냇물 그리고 궁원(宮苑)을 돌아볼 수 있는 오솔길들은 있는 그대로의 자연과 조화시킨 순리의 아름다움으로 몸과 마음을 편안하게 한다.

이 외에도 생긴 그대로의 절벽을 손상시키지 않고 바위 둔덕 위에 높고 낮은 자연 암석들을 적당히 의지해서 주초(柱礎)로 삼고, 꼭 필요한 곳에만 자연석을 옮겨 놓아 주초의 수를 채워 기둥의 길이를 여기에 맞추어 길게 또는 짧게 마름질한 ‘덤벙주초’는 실로 우리 민족이 분수에 맞추어 표현한 순리의 아름다움을 대표하는 자연 미감이라 할 수 있다.

경남 함양의 농월정(弄月亭)은 덤벙주초의 조형성을 잘 느낄 수 있는 대표적 누각이다. 경상남도 함양군 안의면에는 수려한 경관을 이룬 화림동 계곡이 덕유산 자락까지 펼쳐져 있다. 이곳에는 5개의 정자가 그림같이 지어져 있는데, 특히 농월정은 ‘달을 희롱하며 논다’는 옛날 우리 선조들의 풍류사상이 깃든 곳으로 함양을 찾은 많은 시인과 묵객들이 필히 거쳐 간 곳이기도 하다. 맑은 물이 급한 굴곡을 이루는 곳에 커다랗고 평평한 바위, 즉 반석들이 편안함을 주며 자리 잡고 있다. 반석 위를 흐르는 물이 달빛을 받아 금물결을 이루는 이곳에 높고 낮은 반석을 있는 그대로 두고 그 위에 덤벙주초를 세운 농월정은 이름 그대로 달을 희롱하고 있는 듯하다. 이렇게 화림동 계곡에 멋있는 정자가 많은 것은 예전부터 이곳에 자연을 사랑하는 선비가 많았기 때문이리라.

또 하나 이 계곡의 거연정도 주위 경관이 아름답고 흐르는 계곡물과 우거진 숲, 가설해 놓은 구름다리 등이 조화를 이루고 있는데, 이 아름다운 풍광은 자연과 혼연일체가 되게 하는 곳으로 길손들의 발길을 멈추게 하고 세상일을 잊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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